불교관련

<삶의 방식으로서의 불교>

수선님 2026. 6. 7. 12:39

<삶의 방식으로서의 불교>

이기영 교수

우선 이 글에서는 불교도(佛敎徒)와 불교신자(佛敎信者)를 구분하고자 한다. 원칙적으로 불교도, 불교신자는 같은 말이지만, 편의상 여기서 불교신자는 ‘삼귀의(三歸依)’라는 격식과 절차를 거쳐 특정 사찰에 신자로 등록된 재가불자를 의미하고, 불교도는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은, 특정 사찰에 등록되지 않은, 그러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규정하고 싶다.

재가자로서 불교도가 되기 위해서 그쳐야 할 특별한 방식은 없다. 단순히 불교를 좋아해서 불교적 삶을 사는 불교도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가르침이 바른 길(Path)이라고 확신하며, 이를 따르려고 노력한다면, 그런 사람을 불교도라 하려고 한다.

비록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불교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많다. 그리고 학자는 아니지만 불교의 매력에 호응해 불교를 공부하고 불교적 삶을 존중하는 지식인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 중에도 구체적인 불교 교의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집안, 내지는 자라난 환경으로 인해 불교를 신봉하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모두 사찰에 등록된 신자는 아니지만 불교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불교신자는 불교라는 오래된 종교 전통에 따라 일정한 격식과 절차를 밟아, 불(부처님), 법(부처님의 가르침), 승(스님들의 공동체)이라는 ‘삼보(三寶, Triple-Gem)’에 귀의하고, 재가 불자로서의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인 오계(五戒. Panca-sila)를 지녀 지키기로 서원하고, 사찰의 신자 명단에 등록되면 정식으로 불교 신자가 될 수 있다.

불교 신자가 지켜야할 오계는 다음과 같다.

*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 것.

* 도둑질하지 말 것.

* 간음하지 말 것.

* 거짓말하지 말 것.

* 술(취하게 하는 것)을 마시지 말 것.

고대 경전에 나오는 이 내용들을 암송하고 실천함으로써 불교 신자가 되고, 불교 신자는 의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정해진 행사 일에 참석해 행사 대중은 스님의 인도에 따라 이 구절들을 함께 암송한다. 그리고 종교적 행사 때 행해지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의식들, 사찰에는 불상, 불탑 등이 있어 불교신자들이 꽃, 향, 등불 등 공양물을 올리고 예배한다.

그런데 공식적인 불교신자가 아니고, 평범한 불교도라고 하더라도 일단 불교도라면 불교적 삶의 방식으로서 ‘팔정도(Noble Eightfold Path)’ 정도는 따르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유신론 종교의 ‘기도’와 다르게 단지 바른 길을 일러주신 스승의 가르침에 경의를 표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관례들은 본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지적 혹은 영성적으로 불교에 관심을 가진 불교도들의 종교적 감정과 욕구를 충족시켜 주며, 그들이 점진적으로 도(道)를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불교도가 된 사람의 일화 한 토막――――

1963년 11월, 가을볕도 저문 스산한 어느 토요일. 서울대 의예과 1년생이었던 김00는 조계사 마당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뒤뜰에 있는 청년회관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는 충격에 가까운 환희와 함께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됐다.

불교에서는 ‘초발심(初發心)’이라 부르는 순간이었다. 당시 회관 안에는 세계적인 불교학자인 불연(不然) 이기영(李箕永, 1922~1996) 교수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떤 불교적 배경도 없었던 스무 살 학생이 듣기에는 턱없이 수준 높은 강의였다.

“그러니 필연이랄 수밖에요.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들었는데 그렇게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니!”

그리고 50여 년 후인 2012년, 그는 이기영 교수가 재가불자(在家佛子) 중심의 생활불교를 정립하기 위해 1974년 설립한 한국불교연구원에 제4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사)한국불교연구원은 일종의 ‘종단’이다. 연구원 산하에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구도회(求道會)가 있고 절인 유마정사(경기도 광주시 곤지암)가 있다. 출판부와 교사불자회, 의료봉사를 위한 ‘무량감로회’도 한 식구다. 종교인 아닌 불교도 중심으로 생활 속에서 불교를 실천하고, 교리를 연구하고 배우며 믿음에 깊이를 다진다. 재가불자를 위한 종단, 한국불교연구원 김 이사장을 만났다.

한국불교연구원을 소개한다면?

1974년 이기영 교수가 만든 재가불자 단체다. 보통 재가불자모임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하는데 설립자인 이기영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6년째인데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1986년에 법인화됐고, 이사, 서울구도회장을 하다가 올해부터 4대 이사장을 맡게 됐다.

여기 오시는 분들이 가방끈들이 좀 긴 분들이 많아서 절에 가서 복을 빌고 하는 분위기를 꺼린다.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던 분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토요일에는 법회, 주중에도 강의나 참선이 열린다. 우리나라 유식학 대가인 안성두 서울대 철학과 교수, <법화경> 대가인 리영자 동국대 명예교수 등이 와서 강연을 하기도 한다. 불자들을 위한 출판사업과 봉사활동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불연 이기영 선생과의 인연은?

불연 선생은 우리나라 불교학을 현대적 학문으로 끌어올린 세계적인 불교학자다.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라모트 교수를 사사했고, 생활 속의 불교를 구현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것이 1960년 초였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불교 강연을 했는데, 서울대 3대 명강의 중 하나였다. 1학년 때 조계사에서 우연히 강연을 듣고 초발심을 일으킨 후 선생님과의 인연을 이어왔으며, 이비인후과 개원 후, 불교연구원에 본격적으로 관여했다. 좀 더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법인화하면서 창립 이사로 일했고 서울구도회 회장도 역임했다.

순탄하게 살아온 20살 의대생이 수준 높은 교리 강의를 듣고 초발심이 생기는 것이 흔한 일인가?

드문 일이다. 종교하고는 거리가 먼 집안이었고 순탄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는데. 그래서 필연이었고, 전생부터의 닦음 없이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대각(大覺)을 이루기까지 전생에서 진리, 구도를 위해 목숨을 던지고 피나는 고행을 했기 때문에 금생에서 비로소 부처를 이뤘다고 한다. 짧은 일생 동안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기 비춰보면 불교의 ‘ㅂ’자도 모르는 학생이 그 순간에 그런 충격을 받았던 것은 지난 생에서 그런 노력을 했던 필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종교적인 시각이지만.

종교단체에 성직자들이 없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불자들이 성직자를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마련일 텐데.

부처님은 <열반경>에서 사람이 아니라 불법에 의지하라고 하셨다. 부처님은 제자였던 데바닷타가 “승단을 내게 맡기라”고 하자, 이를 거절했다. 부처님은 지도자를 자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에만 의지할 뿐이었다.

우리도 사단법인이니 주인이 없다. 체계 자체는 약할 수 있지만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다. 수능 고득점, 공무원 합격, 무병장수, 사업 번창 기도 같은 것은 안 한다. 그래서 재정적으로 힘들긴 하다, 하하. 월 회비 2만원과 몇몇 분들의 도움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사실 이사장이 가장 열심히 해야 할 일이 그런 보시를 받아내는 것이다.

의사 중 기독교인이 유독 많다는 얘기도 있던데?

얼마 전 내가 주관하는 의사 모임에서 종교 얘기가 나와서 종교를 묻게 됐는데, 기독교가 2명, 무교 2명, 불교가 8명이더라. 불교인들이 상당히 소극적이다. 다른 이에게 불교 공부해보자, 절에 가자, 그런 얘기를 안 한다. ‘가끔 절에 간다’고 하는 사람이 알고 보면 놀라울 정도로 깊이 공부한 경우도 있다. 우스운 것은 8명이 서로 불교를 믿는 걸 모르더라. 내면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교인들은 조문할 때 돌아가신 분 종교에 따라 인사한다. 그 분을 조문하기 위해 왔는데 내 종교가 무슨 상관인가. 엄밀히 따지면 불교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삶의 철학, 방식이다. 절에 오지 않아도 책으로, 수행으로 불교를 접하는 경우도 많다.

가톨릭을 믿으면서도 삶의 방식은 불법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부처님도 개종하려는 왕에게 “종교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 마음으로 올바른 길을 가면 그게 불교”라고 하셨다. 그래서 의료 봉사활동 같은 것을 해도 절대 불교단체임을 밝히지 않는다.

우리 ‘무량감로회’의 원칙은 봉사를 이용해서 약자인 환자에게 우리의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 주고 약 주면서 불교 믿으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래서 밖으로는 안 보일 수 있다.

곰부리치 교수

――――리처드 곰브리치(Richard Gombrich, 1937~ ) 교수에 대해――――

리처드 곰브리치(Richard Gombrich)는 영국의 저명한 불교학자이며, 초기 불교와 테라와다 전통에 대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초기 불교가 가진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강조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당대 문화와 언어 속에서 이해하려고 한 학자다.

2004년 은퇴한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무려 28년간 초기 불교와 산스크리트 및 빠알리어를 가르쳤으며,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 불교 연구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영국불교학회 회장과 옥스퍼드대 불교학센터에서 학술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가 2008년 한국에 와서 동국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중앙일보 백성호 가지와 인터뷰했다. 곰브리치 교수와 백성호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 중의 일부다.

――그에게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는 “제로(Zero)”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나는 부디스트(불자)가 아니다. 불자는 아니지만, 불자들보다 불교를 더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영국에선 중국 이민자들이 믿는 중국 정토종, 티베트불교, 남방불교 등이 알려져 있다. 한국 선불교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런데 서양에선 한국 선불교를 잘 모른다. 영역화 작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당신은 49년째 불교를 연구 중인 불교학자다. 부디스트가 아니라고 하니 다소 뜻밖이다.

“나는 종교를 믿는 데 실패했다. 왜냐하면 나는 신이 있다는 것도,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Rebirth)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부디스트가 될 수가 없다.”

――그럼 불교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나는 종교가 없다. 그러나 인류가 종교적 성향을 중요시하는 게 삶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에는 매우 공감한다. 그리고 나는 부디스트(불자)에겐 기본적으로 ‘종교’라는 용어가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불교는 종교적 외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거다. 불교적 삶의 방식을 말하는 거다.”

――예를 들면.

“붓다는 우리의 모든 행위와 결과가 서로 연관돼 있음을 알아차렸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거다. 그게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업)’다. 나는 불교의 그런 점이 특히 좋다.”

――처음 불교를 접한 것은 언제였나.

“열여섯 살 때였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불교 서적을 처음 읽었다.”

※2001년 작고한 그의 아버지는 32개국 언어로 번역돼 600만 부가 넘게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의 저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다.

――부처님 당시의 초기불교를 연구했다. 이유가 있나.

“‘초기불교’를 통해 붓다를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초기불교 경전만 다루지 않는다. 힌두교와의 대비 속에서 그걸 다룬다. <우파니샤드> 같은 문헌들과 비교해 읽으면서 당시 지적(知的) 사회와 붓다가 어떻게 대화하고, 논쟁하면서 갔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초기불교’가 더욱 흥미롭다.”

――불교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의 선(禪)불교를 어찌 보나.

“한국 선불교는 경험이 없다. 거기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

――그럼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은 어찌 보나.

“위빠사나는 초기불교의 승려들이 행했던 수행이다. 그런데 위빠사나는 훌륭한 스승이 없으면 상당히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인도의 명상수행은 기본적으로 ‘1대1’이다. 스승과 제자, 1대1 관계의 명상이었다. 스승이 제자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훤히 꿰뚫으며 했던 것이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어떤가.

“요즘은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빅 클래스’로 진행된다. 심지어 태국에는 학교에 ‘위빠사나’ 과목이 있다. 수행 정도에 관한 시험도 보고, 점수도 매긴다. 수행의 지나친 단순화, 이건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지난해 성철 스님 <백일법문>의 영역화 작업에서 직접 윤문을 봤다고 들었다. <백일법문>은 어땠나.

“초기불교에 대한 성철 스님의 이해는 다소 달랐다. 그러나 그건 ‘젠 마스터(선지식)’가 선종의 입장에서 초기불교를 해석한 것으로 본다. 가령 붓다는 인생의 쾌락과 고행, 그 사이의 ‘중도’를 말했다. 태국과 버마, 스리랑카 불교에서도 이렇게 해석한다.

그런데 성철 스님은 존재와 비존재, 그 사이의 ‘중도’로 풀었다. 그건 동북아 선불교의 특징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렇게 불교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재창조한 것이라고 본다.”

――불교는 피안의 땅을 ‘아는 것’이 아니라, 피안의 땅을 ‘딛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 당신은 일상 속에서 수행도 병행하나.

“따로 수행을 하진 않는다. 나는 부디스트가 아니다. 다만 불교적인 생활방식을 따르려고 한다. 불교적 윤리관에 맞춰 살아가고자 한다.”

――궁금하지 않나. 직접적인 수행을 통해 새로운 걸 느낄 수도 있지 않나.

“스리랑카에서 오래 머물며 현장연구를 한 적이 있다. 스리랑카 수행승들과 현지어로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행 과정에서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지를 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기본적으로 ‘윤회관’에 입각해서 말을 했다. 나는 거기에 수긍할 수가 없었다.”

――그럼 수행과 연구는 어떤 관계인가.

“축구를 전혀 못하면서도 축구에 대해 정말 좋은 책을 쓸 수도 있다. 나는 불교에 대한 수행과 학문적 연구를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 이 부분의 번역이 잘못된 것 같다. “수행과 학문적 연구를 나누어 생각한다.”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성철 스님은 “불교 경전만 읽는 것은 금강산을 보지 않고, 금강산에 관한 여행 가이드북만 보는 격”이라고 말했다.

“나는 여행 가이드북을 읽는 것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모든 사람이 이 생에서 다 깨달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수도 없이 불교경전을 읽었을 것이다. 가장 가슴에 담아두는 구절은.

“<법구경>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증오는 증오에 의해선 결코 무너뜨릴 수 없다. 증오는 사랑에 의해서만 무너뜨릴 수 있다.’ 그리고 붓다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증오를 부른다.’”

현각 스님

――――불교는 마음을 찾기 위한 테크놀로지이다――――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을 쓴 벽안의 고승 현각 스님의 글이다.

“불교는 마음을 찾기 위한 테크놀로지이다. 그리고 불교는 과학이다. 불교에서 과학성을 잃을 때 늘 문제가 생겼다. 과학은 없고 신앙만 남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옛날엔 평범한 사람은 글을 배우기가 어려웠다. 한자로 된 경전을 소화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기복적 성격이 강했다.

이제는 다르다. 세대가 바뀌고 더구나 정보화시대이다. 기독교든 불교든 맹목적인 접근을 하면 코웃음을 친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테크놀로지를 요구한다.

불교는 마음 인문학이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화두가 돼 ‘참 나’를 찾아가는 엔진이 불교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들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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