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오가해

[스크랩] 100 화무소화분 1

수선님 2018. 2. 18. 12:59

老子 道德經 道經 第2章 無爲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天下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알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추해지고,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선을 선한 것으로 알기 때문에 不善이 된다.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그래서 유와 무가 상대적으로 생기고,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이 상대적으로 이루어지며, 길고 짧은 것이 상대적으로 비교되고, 높고 낮은 것이 상대적으로 기울게 되며, 音과 聲이 상대적으로 어울리고, 앞과 뒤가 상대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다.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이런 까닭으로 성인은 무위로 살림하며, 말이 끊어진 당처(當處)의 가르침을 행하니,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不居

 

만물을 지어내지만 사양하지 아니하고, 만물을 낳아서 기르지만 소유하려 하지 않고, 모두를 위하지만 뽐내지 아니하고, 공을 이루지만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아니한다.

 

夫惟弗居 是以不去

 

대저 머무르지 아니하니 이런 까닭으로 버림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보충설명1〉 노자를 왜곡하면 허무주의로 폄훼하게 되지만 바르게 이해하면 안으로는 성인이 되는 공부가 보이고 밖으로는 군주의 교과서가 됩니다. 오랫동안 고전의 가치가 있어서 한문 주석서만도 700여 가지에 이르고 영역의 주석서도 70여 가지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서도 유불선을 회통하여 정리한 명나라 감산덕천선사의 주석서가 유명합니다.

 

〈보충설명2〉 우리는 흔히 내가 생각하는 善惡과 美醜에 대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두 각자의 주관적인 경험으로 형성된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상대적 개념이 뚝 떨어져 나간 절대적인 도의 입장에서는 선과 아름다움이 도리어 악하고 추한 것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보충설명3〉 유무(有無), 난이(難易), 장단(長短), 고하(高下), 음성(音聲), 전후(前後). 이 여섯 가지는 유위적인 살림이며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도덕경에서는 이 여섯 가지의 상대적 개념을 초월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도덕경에서 언급한 바 이 여섯 가지의 상대적 개념을 초월하는 것은 이른 바 반야심경에서 가르치는 空의 六相 즉 不生, 不滅, 不垢, 不淨, 不增, 不減의 절대적인 개념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보충설명4〉 성인이 무위로 살고 말이 끊어진 가르침을 행한다는 것은 곧 보살이 구경무아, 일상무상의 경지에서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생각조차 없이 제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충설명5〉 봄비가 내리면 만물이 소생합니다. 이렇듯 자연은 하고자 하는 것 없지만 모든 것을 행하고 모든 것을 행하면서도 내 것이라는 주장도 하지 않으며, 모두를 평등하게 위해 주지만 자랑하지 않으며, 공덕을 이루지만 그 공덕에 안주하여 공덕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만 그렇게 할 뿐입니다.

 

〈보충설명6〉 성인이 실천하는 무위도 천지 만물의 자연적 이치와 같아서 다만 그 공덕을 일체중생의 몫으로 원만회향 할 뿐 고집하거나 분별함이 없으므로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버림받거나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습니다.

 

소명태자가 금강경을 32分으로 나누면서 ‘교화하되 교화할 바 중생을 보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붙인 제25分의 핵심내용은, 부처가 주객 또는 능소의 관계가 뚝 떨어진 절대평등의 상태에서 중생을 교화하지만 중생이라는 분별도 또 교화한다는 흔적도 일체 없다는 것입니다. 즉, 맑고 텅 빈 거울이 사물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수용하면서 그림자를 비추어 주지만 사물이 사라진 뒤에 그 사물의 흔적을 남겨두지 않는 理致처럼 空히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입니다. 부처가 중생을 제도하면서 거울처럼 善惡是非美醜 등을 분별없이 모두 수용해도 수용한다는 흔적이 없고 또 중생을 절대평등의 진리로 여기면 교화하는 부처도 교화를 받는 중생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절대평등의 법신의 이치를 중근기 대중에게 이해시키려고 부처님께서는 여기의 第25分 까지 설법을 진행시킨 것입니다. 상근기 중생은 부처님께서 선정에 드신 모습만 보아도 그 즉시 금강경을 이해하지만 중근기 중생에게는 법신의 규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넝쿨처럼 금강경 설법을 반복하십니다. 金剛經 上卷의 第3 大乘正宗分에서도 대승보살은 중생에게 보리를 얻게 해줘도 그 흔적이 없다는 내용이 소개되었고, 下卷의 第17 究竟無我分에서도 중생을 제도하지만 제도한다는 흔적이 없다는 내용이 소개 되었습니다.

 

여기의 第25 化無所化分에서도 같은 내용의 설법이 세 번째로 등장합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절대평등의 법신은 名相이 끊긴 자리이며 우리의 생명가운데 존재하는 불가사의하고 무한 한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진리의 차원에서는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또 절대적으로 평등하다는 언어에 주저앉으면, 수행할 것은 어디 있으며 불국토를 건설할 필요가 어디 있으며 보리를 얻을 것이 어디 있겠느냐는 의심의 여지가 생깁니다. 第25分에서는 바로 그 의심을 끊어주고 있습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汝等勿謂如來 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提 莫作是念 何以故 實無有衆生如來度者 若有衆生如來度者 如來 則有我人衆生壽者

 

“수보리여!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그대 등은 여래가 생각컨대 ‘내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한다’ 고 말하지 말라. 수보리여! 그대는 이런 생각을 하지 말지니, 왜냐하면, 실상의 이치에서는 어떤 중생이라도 여래가 제도할 대상이 없으니, 만약 어떤 중생이라도 여래가 제도했다면 여래가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보충설명1〉 실상은 과거·현재·미래를 꿰뚫는 진리를 말합니다.

 

〈보충설명2〉 ~‘若有衆生如來度者’~에서 度 앞에 ‘바소 字(所)’가 생략된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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