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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념처와 사여의족

수선님 2018. 5. 6. 12:46

사념처란 무엇인가?

우리가 마음을 알아차려야 하는 네 군데 즉 신수심법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란 무엇일까?

사념처를 생각해보려면 먼저 오온을 이야기 하여야 한다.

세존께서는 인간이란 존재를 오온으로 설명하셨다.

무엇이 오온인가? 색수상행식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란 무엇인가?

이는 우리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는 모습을 표현하신 것이다.

 

: 외부 물질 혹은 사건이 일어날 때,

: 우리는 이것을 즐거움, 괴로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음으로 해석하고,

: 그 느낌을 탐심, 진심, 치심 등의 마음 상태로 만든 다음에,

: 그에 따라 우리 몸과 마음이 반응()을 하게 되고,

: 이 전체 과정에 대해서 가치 판단을 하게 된다.

 

즉 오온이란 우리가 외부 대상 경계에 반응하는 모습이 쌓여있는 것이며,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을 인생을 경험한 주체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자아(ego)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사념처란 무엇인가?

사념처는 오온 중에서 색수상식을 우리의 수행처로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수행을 하고자 한다면 세상을 경험하는 그 자리인 오온에서 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한다는 말인가?

신수심법이란 오온 중 색수상식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색은 신에 해당하고, 수는 그대로 수, 상은 심 즉 마음상태, 그리고 식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판단 즉 법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행이 빠졌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그에 대한 답은 행이란 수행처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행이란 우리의 자아에 대한 판단이 잘못된 것임을 모르고

몸과 말과 마음으로 번뇌를 일으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것은 오염원이 되며 수행처는 될 수 없으며, 이는 그칠 대상이지 수행처가 되지 못한다.

사념처 수행에서 멈추는 것으로 몸의 형성, 마음의 형성이 나와 있음을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사념처의 신수심법은 오온의 세계를 수행처로 삼아서 공부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시말해 사념처란 오온중 색수상식에 대한 마음챙김이다.

이 수행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 경험이란

마노(意)가 색수상식의 경계를 겪으면서

나라는 잘못된 개념을 기반으로 신구의로 요동을 치는 것 ( sankhara)이므로

마노가 경계에 요동치지 못하도록 sati(알아차림)를 작용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인  ‘sankhara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대한 대답이 사여의족 수행인 것 같다.

 

네 가지 성취수단 (iddhi-pada, 四如意足)이란?

열의 (chanda), 정진 (viriya), 마음 (citta), 검증 (vimamsa)

 

iddhi : 번창, 성취 pada : 발자국, 다리, 단계, 상태

 

사여의족에 대한 빨리어는 아래와 같이 나타난다.

chanda-samadhi-padhana-sankhara

viriya-samadhi-padhana-sankhara

citta-samadhi-padhana-sankhara

vimamsa-samadhi-padhana-sankhara

 

samadhi는 정()이며, padhana는 노력, 그리고 sankhara는 행위이다.

따라서 samadhi-padhana-sankhara는 삼매를 얻으려고 노력을 하는 행위가 아닐까?

 

이렇게 보는 이유는 samadhi상태에서 sankhara를 일으킨다는 것은 왠지 양립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 단어들의 해석은 다음과 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열의를 가지고 삼매를 얻으려고 노력을 하는 행위

정진을 통해서 삼매를 얻으려고 노력을 하는 행위

마음(수련)을 통해서 삼매를 얻으려고 노력을 하는 행위

검증을 통해서 삼매를 얻으려고 노력을 하는 행위

 

즉 탐진치에 물들지 않고 행위로서 수행해야 하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 내용은

열의를 갖고 삼매를 얻으려는 마음을 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행위로서 정진을 해야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도록 노력을 해야 하고

제대로 마음이 삼매에 드는지 확인해야 하는 검증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여의족이란 오온(색수상행식) 중 수행자의 행위(sankhara)에 초점을 맞추어 수행을 바라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로서 나타나는 과보인 육신통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육신통은 다양한 경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유독 사여의족에서 강조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왜일까? 행에 초점이 맞추어졌기 때문에?

 

사여의족의 위치는 칠각지의 염각지에서 택법각지 까지의 과정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또한 이것은 오온 중 행온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것은 함이 있는, 향하는 수행(유위법) 중에서도

열심히 (atapi)를 열의로 풀이하신 것이고,

정진 부분은 사정근을 통해서 청정한 계를 닦는 것을 표현하셨고,

마음 부분은 - 느슨한 상태, 지나치게 팽팽한 상태, 안으로 수축된 상태, 밖으로 흩어진 상태 등으로 표현된 부분이 아닐까? ? 선정의 깊이를 이야기 하시지 않고 오히려 초기 단계의 선정을 들어가는 부분에서 나타나는 장애를 이야기 하시기 때문에, 아직 선정 단계가 아니고,

그런 시행 착오를 통해서 수행법을 검증 (택법)하는 단계가 아닐까?

출처 : 지금 이 순간
글쓴이 : 우암(雨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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