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반야심경

금강경해석1-32(현각스님)

수선님 2018. 7. 8. 11:22

개경게
- 경전을 열면서 찬탄하는 노래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건난조우
- 가장 높고 미묘하며 깊고 깊은 부처님 법 백천만겁 지나도록 만나뵙기 어려워라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 제가 이제 다행이도 보고 듣고 지니오니 부처님의 진실한 뜻 모두 알게 하옵소서

개법장진언
- 법을 여는진언

옴 아라남 아라다 (3번)
- 저의 마음자리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불가능과 굴할줄 모르는 무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하는 경전이다.

1.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천이백오십명의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공양하실 때가 되었으므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대성에 들어가셨다.
성안에 있는 집들을 차례로 다니시며 밥 받기를 마치고
다시 본래 계신 곳으로 돌아와 공양을 끝내신 다음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 참고>
내가 이렇게 들었다는 붓다가 이렇게 말했다와는 다르다.
제자가 스승의 말을 기록할 때는 이렇게 적어야 한다.
사위성은 스라바스티, 즉 영광의 도시라는 뜻이다.
붓다는 45년간 가르침을 폈는데 그 중 25년을 이 도시에 머물렀다.
"붓다가 탁발에서 돌아와 공양을 마친 다음 의발을 치우시고 발을 씻으시고"
등과 같은 자질구레한 내용이 기록된 이유는
붓다의 모든 행동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붓다는 매 순간 각성된 의식으로 산다.
비록 만인의 존경을 받으신 성인 이셨지만
스스로 모든것을 절도있게 행하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어떤 몸짓을 할 때 붓다는 그 몸짓 자체가 된다.
미소지을 때 붓다는 미소가 된다.
삼마사마디, 즉 바른 삼매(正定)는 전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경지이다.
홀로(alone)라는 말은 모두가 하나(all one)라는 의미이다.
홀로 있음 안에서 우리는 우주 만물과 하나가 된다.
바른 삼매는 삼매하는 자가 사라짐으로서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금강경은 벼락처럼 단번에 자르는 지혜의 완성이라는 뜻이다.
붓다는 그대를 죽이고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 이 설법을 했다.



2.시 장로 수보리 재대중중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 이백불언. 희유세존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세존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불언. 선재선재.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여금제청. 당위여설.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 유연 세존 원요욕문

▶그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 속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옷을 걷어올리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을 표시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호념(護念)하시고
모든 보살들에게 불법을 잘 부촉하십니까?
세존이시여, 어진 남자(善男子)와 어진 여인(善女人)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한 마음을 일으킨 이는
어떻게 행동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실천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도다.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것처럼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호염하고 부촉한다.
내가 그대를 위해서 말하노니 잘 들으라.
어진 남자와 여인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해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행동하며
이렇게 그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고자 원합니다.



3.불고 수보리 제보살마아살 응여시항복기심.
소유일체중생지류 약란생 약태생 약습생 약화생 약유색 약무색
약유상 약무상 약비유상 비무상
아개영입무여열반 이멸도지
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 실무중생득멸도자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비보살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같이 그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있는 바 모든 중생의 종류, 즉 알(卵)에서 생겨나는 것이나,
태(胎)에서 생겨나는 것이거나, 습기(濕氣)로 태어나는 것이거나,
화(化)하여 태어나는 것이거나, 형태가 있는 것이거나
형태가 없는 것이거나, 생각이 있는 것이거나, 없는 것이거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닌 것들을
내가 모두 남김없는 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여 제도하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는 중생들을 제도하였으나
실제로는 그 어느 중생도 멸도(滅度)를 얻은 바가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 참고>
수보리는 두가지 질문을 했다.
마음을 어디에 머물러야 하며,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시킬 것인가?
그러나 붓다는 한가지만 대답했다.
"마음을 어디에 머물 것인지는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오직 네 마음을 무릎 꿇릴 길만 찾아라“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한다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치도파드이다.
치토파드는 위대한 결정을 말한다.
즉 다음과 같은 위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라는 뜻이다.
이 부분이 금강경의 핵심이라고 한다. 왜 핵심인가?
보살은 모든 중생을 무여열반의 세계로 인도하되,
자신이 인도했다는 생각을 내서는 안된다는 것이 붓다의 말이다.
사상(四相)이라고 하는 아, 인, 중생, 수자는 산스크리트어로
아트만(anatma) 푸드갈라(pudgala) 사트바(sattva) 지바(jiva)이다.
아트만은 진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너와 다른 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푸드갈라는 내가 인간이라는 생각이다.
짐승이나 식물, 벌레 따위와 다른 사람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사트바는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다.
무생물과 다른 생물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지바는 내가 시간의 존속을 가지는 존재라는 생각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명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이 네가지는 분별심의 열매이다.
모두는 나라는 외연의 확대이다.
백승욱 박사는 사상을 나라는 생각(아상), 남이라는 생각(인상),
무식한 마음(중생상), 경험이 많아 잘 안다는 마음(수자상)이라고 해석했다.



4.
부차 수보리 보살 어법응무소주 행어보시
소위부주색보시 부주성향미촉법보시
수보리 보살 응여시보시 부주어상
하이고 약보살 부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가사량부 불야세존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 상하 허공 가사량 부. 불야세존.
수보리 보살 무주상보시복덕 역부여시 불가사량

수보리 보살 단응여소교주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법(法)에 집착하는 바 없이 보시(布施)를 행할지니라.
그것은 형태에 머물지 않는 보시이며
소리․냄새․맛․느낌,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지 않는 보시이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하여 형상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동방의 허공을 가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헤아릴 수 없습니다."
"수보리여, 남서북방과 상하(上下), 사방(四方)과 그 중간의 방향을
가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헤아릴 수 없습니다."
"수보리여, 그와 같이 보살이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행하는 보시의 복덕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오직 가르침대로 실천해야 하느니라."

< 참고>
집착은 동기를 의미한다.
집착한다는 것은 내가 보시함으로써 무엇인가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래이지 보시가 아니다. 보시는 흘러 넘치는 것이다.
깨달음은 샘물과 같다. 그것은 끊임없이 솟아난다.
그 때 주는 사람도 없고 받은 사람도 없다. 왼손이 오른 손에게 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주는 것도 없다. 그래서 無着은 보시란 보시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물건이라는 대립적인 관계로부터 마음을 차단하는 일이라고 했다.



5.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불야세존 불가이신상 득견여래
하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
불고 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가히 육신의 형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육신의 형상만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육신의 형상은 곧 육신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형상 있는 것은(凡所有相) 모두 허망하느니라.(皆是虛妄)
모든 형상이 실체가 없다고 보면(若見諸相非相) 곧 여래를 보느니라(卽見如來)

< 참고>
붓다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깨달음조차 소유하지 않는 것이 붓다의 특징이다.
그래서 붓다는 전적으로 평범할 수 밖에 없다.
붓다는 외부적인 특징이 아니다.
그래서 法身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모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히브리서 11:2).
만일 누가 어떤 사물에서 그것을 있게 한 ‘사물 아닌 것’을 본다면
그는 바로 하느님을 보고 있는 것이다.





6.
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득문여시언설장구 생실신
불고 수보리 막작시설. 여래 멸후 후오백세 유지계수복자 어차장구 능생신심 이차위실.
당지 시인 불어일불이불삼사오불 이종선근 이어무량천만불소 종제선근
문시장구 내지 일념생 정신자.
수보리 여래 실지실견 시제중생 득여시무량복덕
하이고 시제중생 무부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무법상 역무비법상
하이고 시제중생 약심취상 즉위 착아인중생수자. 약취법상 즉착아인중생수자
하이고 약취비법상 즉착아인중생수자 시고 불응취법 불응취비법
이시의고 여래상설 여등비구 지아설법 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중생들이 이와 같은 말씀이나 글귀를 듣고
진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하여서는 안된다.
여래가 입멸한 후 오백 년이 지난 뒤에도 계를 지키고
복을 닦는 자가 있어서 이 글귀를 보고 능히 신심을 내고
진실로 깨닫게 될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한 분의 부처님, 두 분의 부처님,
세 분, 네 분의 부처님에게만 귀의하여
선근(善根)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께 귀의하여
여러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글귀를 듣고 일념에 청정한 믿음을 낼 것이다.
수보리여, 여래는 다함없는 지견으로써
모든 중생이 이와 같은 무량 복덕을 얻은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에게는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 없으며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지도 않고,
마음의 대상 없음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 모든 중생이 형상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면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며
만약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면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마음의 대상 없음에도 집착하게 되면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법(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여러 제자들이여,
나의 설법은 뗏목의 비유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라고 설한 것이다.

< 참고>
믿음은 사드하(shaddha)이다. 사드하는 산스크리트어 쉬라드하이다.
이 말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자기 확신, 자신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
자신의 고유한 존재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내맡김을 가능하게 한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은 결코 자신을 내맡기지 못한다.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이야말로
마치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이 붓다에게 내맡길 수 있다.
그래서 깨끗한 믿음(정신)이란
믿는 나도 없고, 믿는 대상도 없고, 믿는 일도 없는,
믿음만 있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말한다.
여래의 다함없는 지견이란 이원성을 벗어난 바라봄을 말한다.
사랑과 증오는 한 단어이다.
사랑증오, 낮밤, 삶죽음, 불행행복, 고통쾌락, 물질마음이 모두 한 단어이다.
우리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두 개로 분리해서 본다.




7.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여래 유소설법야
수보리언 여야해불소설의 무유정법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역무유정법여래가설
하이고 여래소설법 개불가취 불가설 비법 비비법
소이자하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는가? 또한 여래가 설한 진리가 있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알고 있는 부처님의 말씀에 의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일정한 법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또한 여래께서는 일정한 법을 설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모두 들어서 취(取)할 수 없으며,
또 말해질 수 없고 법이 아니며 법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현인과 성인은 하염없는 진리(無爲法)로써 차별을 두기 때문입니다.






8.
수보리 어의운하 약인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즉시소득복덕 영위다 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하이고 시복덕 즉비복덕성 시고 여래설 복덕다
약부유인 어차경중수지 내지 사구게등 위타인설 기복승피.
하이고 수보리 일체제불 급 제불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 개종차경출
수보리 소위불법자 즉비불법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 세계에 가득 찬 칠보(七寶)로써 보시를 행한다면
이 사람이 얻는 복덕은 얼마나 많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복덕은 곧 복덕성(福德性)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의 사구게(四句偈)를 항상 외우고 배워서
남을 위해 설한다면 이 복덕은 앞의 복덕보다 더욱 훌륭할 것이다.
수보리여,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과 또한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모두 이 경전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이미 불법이라고 말한다면 곧 불법이 아닌 것이다."

< 참고>
여기서 사구게는 특별한 구절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圭峰스님은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이면 則見如來가
가장 묘한 구절이라고 하였다.
복덕성과 복덕의 차이는
마음에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있으면 곧 복덕이요, 없으면 복덕성이다.
내 이마의 땀을 내 손이 닦는다면
누가 누구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며, 누가 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
경은 손가락과 같고 법은 달과 같다.
다만 경에 의지해서 법을 알 수 있거니와
경문은 육안으로 볼 수 있지만 법은 慧眼으로만 볼 수 있다.
법이란 하나의 말에 불과하다.
삶도 말이고 죽음도 말이다. 행복도 말이고, 진리도 말이다.




9.
수보리 어의운하 수타원 능작시념 아득수다원과 부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수타원 명위입류 이무소입 불입색성 향미촉법 시명수타원
수보리 어의운하 사다함 능작시념 아득사다함과 부.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사다함
명일왕래 이실무왕래 시명사다함
수보리 어의운하 아나함 능작시념 아득아나함과 부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아나함
명위불래 이실무불래 시고 명아나함
수보리 어의운하 아라한 능작시념 아득아라한도 부.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실무유법 명아라한
세존 약아라한작시념 아득아라한도 즉위착아인중생수자.
세존 불설아득무쟁삼매인중 최위 제일 시 제일이욕아라한.
세존 아부작시념 아시이욕아라한.
세존 아약작시념 아득아라한도 세존 즉불설 수보리 시요아란나행자.
이수보리실무소행 이명수보리 시요아란나행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타원은 자신이 능히 수타원의 과위를 얻었다고 생각 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타원은 영원한 평화의 흐름에 들었지만
영원한 평화의 흐름에 들었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형태(色)를 얻은 것도 아니며,
소리(聲), 냄새(香), 맛(味), 느낌(觸), 마음의 대상(法)에 이르기까지
얻었다고 생각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수다원이라고 불리웁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다함은 자신이 능히 사다함의 과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다함은 다시 한번만 태어나면 깨달음을 얻을 사람이지만
사실은 가고 옴이 없는 까닭에 사다함이라고 불리웁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나함은 자신이 능히 아나함의 과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나함은 결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일이 없기 때문에 아나함이라고 불리웁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라한은 자신이 능히 아라한의 과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실로 법이 없기 때문에 아라한이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그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 제일이며 욕심을 여윈 아라한 가운데 으뜸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욕심을 떠난 아라한이라는
생각까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제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는 아란나행(阿蘭那行)을 즐기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보리는 실로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아란나행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 참고>
수타원은 스로타 아파나(srota-apanna)라고 해서
인간세의 미혹함을 끊고
성자의 영원한 평안함에 들어간 자라는 뜻으로 入流라고 한다.
사다함은 사크르다가민(sakrdagamin)으로 한 번 오는 자(一來)라는 뜻이다.
아나함은 아나가민(anagamin)으로 不來 또는 不還이라고 한다.
아라한(arhat)은 無諍 또는 應供이라고 한다.
무쟁은 끊어야 할 번뇌가 없고 여의어야할 탐진이 없으며,
어기거나 좆을 정이 없어 마음과 경계가 공하고
안팎이 언제나 고요한 사람을 말한다.(六祖)
다툼은 여기 내가 있고 저기 네가 있어 생겨나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때 어찌 다툼이 생기겠는가?
내 손과 내 발이 다툴 수 있겠는가?
이 네가지 단계는 같은 것을 4번 반복한 것이다.
구태여 아나함과 아라한을 구별한다면
아나함은 색계나 무색계로 돌아올 수 있어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면,
아라한은 더 이상 공부할 것이 없는 無學位에 이른 사람이다.



10.
불고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석재연등불소 어법유소득 부
불야 세존 여래재연등불소 어법 실무소득
수보리 어의운하 보살장엄불토 부
불야 세존 하이고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시고 수보리 제보살마아살 응여 시생청정심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수보리 비여유인 신여수미산왕 어의운하 시신위대 부
수보리언 심대 세존 하이고 불설비신 시명대신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옛날에 여래가 연등부처님 계신 곳에서 얻은 바 법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연등부처님 계신 곳에서 실로 얻은 바가 없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살이 불토(佛土)를 장엄하겠는가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장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일으켜야 할 것이니
형태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며,
소리와 냄새, 맛과 느낌,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며,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한다.
수보리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의 몸이 수미산왕 만 하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 몸이 크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매우 큽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은 몸 아닌 것을 이름하여
큰 몸이라고 설하시기 때문입니다."

< 참고>
장엄에는 세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世間불토를 장엄하게 하는 것으로
절을 짓고 경을 베끼고 보시공양을 베푸는 것이요,
둘째는 身불토를 장엄하게 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요,
셋째는 心불토를 장엄하게 하는 것으로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세 번째의 장엄이 가장 중요하다.
유마경에는 “마음을 깨끗이 하면 곧 부처님 땅을 깨끗하게 하는 것인데
어찌하여 거죽을 꾸미랴”고 하였다.
불토는 깨달음의 땅이다.
깨달음의 땅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부처를 깨울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이 곳에서는 세상사로 인해 산만해지고 미혹되는 일이 없으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으며,
일상적인 일이나 금기 사항이 면제되고
깨달음을 위한 모든 시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오직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되는가’
하는 문제만이 유일한 문제가 된다.
이러한 깨달음의 땅이 필요하다. 인류는 지금 문턱에 서 있다.
멸망하여 사라지거나 아니면 크게 도약하여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날 문턱에 서 있다.
수백만년전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내려오면서
인간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역사가 시작되었듯이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육조 스님이 한 번 듣고 깨달음을 냈다는 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무소주이생기심-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낸다)는 말은
아무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마음을 낸다는 말이다.
눈으로 보면서 그 모양에 잡히지 않고,
귀로 들으면서 그 소리에 잡히지 않고,
몸으로 느끼면서 그 느낌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눈은 보이는 사물의 상을 망막에 비치는 순간 지워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비친 상을 망막에 붙잡아 둔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귀의 고막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11.
수보리 여항하중소유사수 여시사등항아 어의운하 시제항아사 영위다 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단제항아 상다무수 하항기사
수보리 아금실연고여 약유선남자 선여인 이칠보만이소항하사수 삼천대천세계
이용보시 득복다 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불고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어차경중 내지 수지사구계등 위타인설 이차복덕 승전복덕

▶"수보리여, 항하(恒河)의 모래알 수 같이 많은 항하가 있다고 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모든 항하의 모래가 얼마나 많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단지 모든 항하만 하더라도 이미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그 모래알에 있어서 이겠습니까?"
"수보리야, 지금 내가 그대에게 진실로 이르노니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저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이나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한다면
그 얻는 바 복덕이 많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하셨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속의 사구게 등을 배우고 외워서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준다면 이 복덕이 앞의 복덕보다도 나으니라."

< 참고>
경을 읽어주는 것은 法布施에 해당된다.
財布施는 欲界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법보시는 능히 三界를 벗어난다고 한다.
법보시가 중요하다고 해서 재보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向善背惡, 즉 선을 향하고 악을 등지지 않고
선악을 함께 버리는 길로 곧장 가는 중생은 없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웃과 나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경을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12.
부차 수보리 수설시경 내지 사구계등 당지차처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 개응공양 여불탑묘.
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수보리 당지시인 성취최상제일희유지법.
약시경전소재지처 즉위유불 약존중제자

▶또한 마땅히 알라. 수보리여,
이 경과 사구게를 설하면 모든 세간의 천(天)․인(人)․아수라(阿修羅)가
모두 공양하기를 부처님의 탑묘와 같이 하거늘
사람에게 이 경을 받아 지니게(受持) 하고 독송하게 함에 있어서랴!
수보리여,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가장 높고 으뜸가는 희유한 법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라면 곧 부처님이나
혹은 존경받는 제자가 있는 곳이라고 할 것이다.

< 참고>
육조 스님은 이 구절을 해석하여 “자기 마음(自心)으로 이 경을 誦得하고
자기 마음으로 경의 뜻을 해득하고 자기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고
모양을 짓지 않는 이치(無着無相之理)를 체득한다.
있는 자리에서 언제나 부처님의 행을 닦으니
곧 자기 마음이 부처인 것이다(自心是佛).
그래서 그 있는 자리가 곧 부처님이 있는 자리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두워서 중생이요 깨달으면 곧 부처(迷卽衆生 悟卽是佛)라고 하였다.
이는 곧 주먹으로 손바닥을 만들고 손바닥으로 주먹을 만드는 것과 같다.
무엇이 부처냐? 하는 질문에 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騎牛討牛)라고 하거나
무엇이 부처가 아니냐(如何不是佛)고 하거나
지금 그대가 곧 부처다(只汝便是)라고 대답하는 것은 다 같은 말이다.




13.
이시 수보리백불언 세존 당하명차경 아등운하봉지
불고 수보리시경 명위금강반야바라밀 이시명자 여당봉지
소이자하 수보리 불설반야바라밀 즉비반야바라밀 시명반야바라밀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소설법 부. 수보리백불언 세존 여래무소설
수보리 어의운하 삼천대천세계소유미진 시위다 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수보리 제미진여래설 비미진 시명미진 여래설세계 비세계 시명세계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견여래 부. 불야 세존.
불가이삼십이상득견여래 하이고 여래설삼십이상 즉시비상 시명삼십이상
수보리 약유선남자 선여인 이항아사등신명보시
약유부인 어차경중 내지 수지사구계등 위타인설 기복심다.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 경전은 무엇이라고 이름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金剛般若波羅密)'이니
그대들은 이 명칭대로 받들어 지녀야 할 것이다.
수보리여, 부처가 설한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설한 바 법이 있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설한 바 진리가 없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작은 먼지(微塵)가
많다고 하겠는가? 적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모든 먼지를 여래는 작은 먼지가 아니라
그 이름을 작은 먼지라고 설하시며
여래는 세계가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일 뿐이라고 설한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히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가히 삼십이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삼십이상은 곧 형상이 아니며
그 이름이 삼십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서
항하의 모래알 수 같은 목숨을 바쳐 보시하고
또한 어떤 사람이 이 경의 사구게 등을 배우고 외워서
남을 위해 설해주면 그 복이 매우 많으니라."

< 참고>
慈受禪師는 말에도 침묵에도 빠지지 않으면
곧 자성의 청정함을 본다고 하였다.
그렇게 되면 비록 종일 말을 해도 아무 말 하지 않은 것 같고,
종일 설해도 설하지 않은 것 같다.
보살은 사람과 법이 모두 공임을 깨달아 설하는 바가 없음을 안다.
부처님께서 문수보살에게 대답하기를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을 떠나고 티끌에 있으면서 티끌을 떠나는 것이
구경법(在世離世 在塵離塵 卽究竟法)이라고 하셨다.
성경에 이르기를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고 하더라고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다”(고린도전서, 13:3)고 하였다.
사구게는 사랑과 같다. 목숨은 보이고 사랑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4.
이시 수보리 문설시경 심해의취 체루비읍 이백불언 희유 세존 불설 여시심심경전
아종석래 소득혜안 미증득문 여시지경
세존 약부유인 득문시경 신심청정 즉생실상 당지 시인성취제일 희유공덕
세존 시실상자 즉시비상 시고 여래설명실상
세존 아금득문여시경전 신해수지 부족위난
약당래세 후오백세 기유중생 득문시경 신해수지 시인 즉위제일희유
하이고 차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소이자하 아상 즉시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시비상 하이고 이일체제상 즉명제불 불고 수보리 여시여시
약부유인 득문시경 불경 불포 불외 당지 시인 심위희유
하이고 수보리 여래설제일바라밀 즉비제일바라밀 시명제일바라밀
수보리 인욕바라밀여래설 비인욕바라밀
하이고 수보리 여아석위가리왕 할절신체 아어이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하이고 아어왕석절절지해시 약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응생진한.
수보리 우념과거어오백세 작인욕선인 어이소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시고 수보리 보살 응리일체상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생무소주심
약심유주 즉위비주 시고 불설 보살 심불응주색보시
수보리 보살 위이익일체중생 응여시보시
여래설일체제상 즉시비상 우설일체중생 즉비중생
수보리 여래 시진어자 실어자 여어자. 불광어자 불이어자
수보리 여래소득법 차법무실 무허.
수보리 약보살 심주어법 이행보시여인입암 즉무소견
약보살 심불주법 이행보시 여인유목 일광명조 견종종색.
수보리 당래지세 약유 선남자 선여인 능어차경 수지독송
즉위여래 이불지혜 실지시인 실견시인 개득성취 무량무변공덕

▶그때 수보리가 이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 그 의미를 깊이 깨달아
슬픈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깊은 경전을 설하심은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제가 과거에 얻은 바 혜안(慧眼)으로서도
일찍이 이와 같은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
믿음이 청정하면 곧 실상(實相)의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마땅히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줄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실상(實相)은 곧 상(相)이 아니므로
실상이라고 여래께서는 설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이와 같은 경전을 듣고 믿어서
받아 지니기에는 어렵지 않습니다만
만약 후 오백세 뒤의 중생들이 이 경전을 듣고 믿어서 수지한다면
이 사람들이야말로 제일 보기 드문 사람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상(我相)은 곧 상(相)이 아니요,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일체의 모든 형상을 초월한
그 이름이 부처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을 듣고서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매우 희유한 사람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가 설하는 제일바라밀은
곧 제일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니라.
수보리여, 여래는 인욕바라밀도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한다.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인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몸을 베이고 끊기었으나
나에게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마디마디 사지를 찢길 때
만약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다면
마땅히 성내고 원망하는 생각을 일으켰을 것이다.
수보리여, 또 생각하니 내가 인욕선인(忍辱仙人)이었던 오백 세 전에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相)을 여의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해야 한다.
마땅히 형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며
소리와 냄새, 맛과 느낌,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지니라.
만약 마음에 머뭄이 있으면 곧 바른 머뭄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보살의 마음이란 마땅히
형상에 집착하여 하는 보시가 아니어야 한다'라고 하였느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해서
마땅히 이와같이 보시할지니라.
여래는 '일체의 모든 형상은 곧 형상이 아니며
일체 중생은 곧 중생이 아니다'라고 설한다.
수보리여, 여래는 참답게 말하는 자이며, 진실을 말하는 자이며,
진여(眞如)를 말하는 자이며, 속이지 않는 말을 하는 자이며,
사실과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바 이 법은 실(實)도 없고 허(虛)도 없느니라.
만약 보살이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여 보시를 행하면
마치 어둠 속에 들어간 사람이 아무 것도 못보는 것과 같고,
만약 보살이 마음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하면
마치 눈 열린 사람이 햇빛에 밝게 비치는 여러 가지 색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여, 먼 미래세에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능히 수지 독송하면
곧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써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아
모두 무량무변한 공덕을 성취하게 하느니라."

< 참고>
수보리가 드디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깊이 깨닫는다.
그 결과 슬픈 눈물이 흐른다.
그의 머리(知)가 아니라 가슴(感)이 법에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울의 고백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게 된것”이다.
그런데 왜 슬픈 눈물(悲泣)일까?
눈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소위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눈물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문명은 우리에게 일종의 죄책감을 심어 놓았다.
그러나 눈물은 우리가 가진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눈물이 반드시 슬픔의 표현인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우리의 가슴을 걷잡을 수 없이 휘저어 놓을 때,
무엇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이 담고 있어서
마구 흘러 넘치기 시작할 때 바로 그 때 눈물이 흘러 나오는 것이다.
눈물로 가득찬 눈은 진리를 볼 수 있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은 이 삶의 아름다움과 축복을 볼 수 있다.
노자는 나에게 몸이 없다면 어떻게 병을 앓겠는가하고 말하였다.
암이나 결핵이 병이 아니다.
독립된 나(個我)가 따로 있다는 미숙한 의식이 병이다.





15.
수보리 약유 선남자 선여인 초일분 이항하사등신보시
중일분 부이항아사등신보시 후일분
역이항하사등신보시 여시무량백천만억겁 이신보시
약부유인 문차경전 신심불역 기복승피. 하황서사수지독송 위인해설
수보리 이요언지 시경유 불가사의 불가칭량 무변공덕
여래 위발대승자설 위발최상승자설 약유인 능수지독송 광위인설 여래 실지시인 실견시인
개득성취 불가량 불가칭 무유변 불가사의공덕 여시인등 즉위하담 여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
하이고 수보리 약요소법자 착아인 인견 중생견 수자견 즉어차경 불능청수독송 위인해설
수보리 제제처처 약유차경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 소응공양.
당지 차처 즉위시탑 개응공경작례위요 이제화향 이산기처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아침에도 항하의 모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도 다시 항하의 모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에도 또한 항하의 모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억겁 동안 몸으로 보시하였다고 하자.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믿어 거역하거나 비방하지 않으면
이 사람의 복덕은 앞의 사람보다 훨씬 크다.
그러므로 하물며 이 경전을 붓으로 쓰거나 수지, 독송하고
사람들을 위해 해설함에 있어서이랴!
수보리여, 간추려 말하건대 이 경은 가히 생각할 수 없으며,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지니고 있다.
이 경은 여래가 대승심(大乘心)을 발한 사람을 위해서 설한 것이요,
최상승심(最上乘心)을 발한 자를 위해서 설한 것이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능히 수지하고 독송하며
사람들을 위해 널리 설하면 여래가 이 사람이 하는 일을 다 알고,
다 보고 있어서 모두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도 없으며
끝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될 것이니,
이와 같은 사람은 곧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진 것과 같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소법(小法)을 즐기는 자는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에 집착하여
이 경을 능히 알아듣고 독송하며 남을 위해 해설하여 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이 경이 있는 어느 곳이라도
일체 세간의 천(天)과 인(人), 아수라(阿修羅)가
마땅히 공양할 것이니 마땅히 알라.
이곳은 즉 탑이 되어 모두 공경하여 예배드리며
모든 꽃과 향을 그 속에 뿌리게 되리라.

< 참고>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음으로 향해 찾을 것이니,
만약 부처를 보고자 하면 오직 모름지기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여러 부처를 받들어 모시는 것은
밖을 향해 어지럽게 구함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소법을 지키는 자는 法相을 가진 자이다.
그는 법에 대한 하나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을 뿐
실은 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행복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
아무 조건없이 무조건적으로 행복한 사람,
이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의 정의이다.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이 포도주가 될 정도로 즐겁게 마셔라.
장미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취할 수 없다면
그 때에는 아무것도 우리를 취하게 할 수 없다.
만족을 연기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만족해야 한다.
지금 여기가 아니면 어디에도 만족은 없다.





16.
부차 수보리 선남자 선여인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시인
선세죄업 응타악도 이금세인경천 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아념과거무량아승지겁 어연등불전
득치팔백사천만억나유타 제불 실개공양승사 무공과자
약부유인 어후말세 능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어아소공양제불공덕
백분 불급일 천만억분내 지산수비유 소불능급.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어후말세 유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아약 구설자 혹유인문 심즉광란 호의불신.
수보리 당지 시경의 불가사의 과보 역불가사의.

▶수보리여,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여 남에게 박해를 받게 된다면
이 사람은 전생의 죄업으로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세(今世)에 사람들의 박해를 받은 까닭에 전세(前世)의 죄업이 소멸되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수보리여, 내가 과거의 한량없는 아승지겁을 생각해보니
연등불 앞에서 팔백사천만억 나유타의 여러 부처님을 만나
다 공양하고 받들어서 헛되이 지남이 없었으나,
만약 훗날의 말세에 다른 사람이 있어
능히 이 경을 수지하고 독송하여 얻은 공덕은
내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은 백분의 일에도 못 미치며
천만억분 내지 숫자의 비유로써는 결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됫날의 말세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여 얻는 공덕을
내가 다 설하게 되면 어떤 사람은 이를 듣고
마음이 광란하여 의혹을 품고 믿지 않을 것이다.
수보리여, 마땅히 알라.
이 경전의 진리는 불가사의하며 과보 또한 불가사의한 것이다

<참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와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를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마가복음 10:29-30)





17.
이시 수보리백불언 세존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불고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당생여시심 아응멸도일체중생
멸도일체중생이 이무유일중생 실멸도자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비보살
소이자하 수보리 실무유법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어연등불 소유법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부
불야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어 연등불소 무유법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불언 여시여시 수보리 실무유법여래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약유법여래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석가모니.
이실무유법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고 연등불 여아수기 작시언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석가모니
하이고 여래자 즉제법여의 약유인언 여래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실무유법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시중 무실 무허
시고 여래설 일체법 개시불법 수보리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수보리 비여인신장대 수보리언 세존 여래설인신장대 즉위비대신 시명대신
수보리 보살 역여시 약작시언 아당멸도 무량중생 즉불명보살
하이고 수보리 실무유법 명위보살 시고 불설일체법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
수보리 약보살 작시언 아당장엄불토 시불명보살
하이고 여래설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수보리 약보살 통달무아법자 여래설 명진시보살

▶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은
어떻게 생활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지녀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다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
일체 중생을 제도했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도 제도된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가지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진실로 유법(有法)에 집착함이 없어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이니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연등 부처님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을 얻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이해한 바에 의하면
부처님이 연등 부처님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법을 얻은 일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다. 수보리여, 그와 같으니라.
참으로 여래는 법(法)이 있으므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다.
수보리여, 만약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을 얻었다면
연등 부처님께서 나에게 '그대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가 되리니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고 하리라'는 수기(授記)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실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연등 부처님께서 내게 '그대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가 되리니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고 하리라'는 수기를 주셨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곧 제법(諸法)이 여여(如如)하다는 뜻이니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면
실로 유법(有法)이 없으므로 부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니라.
여래가 증득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실(實)함도 허(虛)함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일체법이 모두 불법(佛法)'이라고 설한 것이다.
수보리여, 일체법(一切法)이란 곧 일체법이 아니니 그 이름만이 일체법이다.
비유컨대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는 것과 같다.
"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는 것은
곧 큰 몸이 아니라 그 이름이 큰 몸임을 설하신 것입니다."
"수보리여, 실로 유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이름하여 보살이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일체법은 무아(無我)이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다'라고 설했느니라.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내가 마땅히 불토(佛土)를 장엄하리라'
라고 한다면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불토를 장엄한다고 설한 말은
곧 장엄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이름을 장엄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무아법(無我法)에 통달한 사람이 있다면
여래는 그를 '참다운 보살'이라고 이름하리라."

< 참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지금 여기서 다른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다.
다른 때 다른 곳에 있다가 유일한 현실인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깨달았다고 생각하면 아직 온전한 깨달음이 아니다.
깨달은 자가 없어야 온전한 깨달음이다.
여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바탕이니 그게 다 그것이고 그래서 如如라고 한다.
사람이 존재계를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가?
아무리 횃불을 밝게 해도 그 빛으로 태양을 더욱 밝게 할 수는 없다.
연등불과 석가모니 부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있다.
연등불은 석가모니 부처에게 등불을 전했다(傳燈). 깨달음의 등불을 전했다.
그러나 사실은 연등불은 석가모니 부처에게 아무 것도 전달한 것이 없다.
다만 스승의 현존에 힘입어 제자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어난다.
그것은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승의 현존, 그 자체로 인해 제자의 깊은 곳에 있는 무엇인가를
표면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18.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육안 부 여시 세존 여래유육안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천안 부. 여시 세존 여래유천안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혜안 부. 여시 세존 여래유혜안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법안 부 여시 세존 여래유법안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불안 부. 여시 세존 여래유불안
수보리 어의운하 여항하중소유사불설시사 부. 여시 세존 여래설시사
수보리 어의운하 여일항하중소유사 유여시사등항하
시제항아소유사수불세계 여시영위다 부. 심다세존.
불고 수보리 이소국토중소유중생 약간종심 여래실지
하이고 여래설제심 개위비심 시명위심
소이자하 수보리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육안(肉眼)을 가졌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육안을 가졌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천안(天眼)을 가졌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천안을 가졌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혜안(慧眼)을 가졌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혜안을 가졌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법안(法眼)을 가졌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법안을 가졌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불안(佛眼)을 가졌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불안을 가졌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처는 '항하의 모래와 같이'라고 말한 일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이 모래를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수의 항하가 있고 이 모든 항하의 모래 수만큼
부처님의 세계가 있다면 참으로 많다고 하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저 모든 국토에 살고 있는 여러 중생들의
가지가지 마음을 여래는 다 알고 있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모든 마음을 다 마음이 아니라고 설하기 때문이니
이를 일컬어 마음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 참고>
부처에게 다섯가지 눈이 있다는 것은
중생에게도 다섯가지 눈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눈으로 무엇을 본다는 것은
보는 자와 보이는 것 사이에 아무 것도 없어
“하나”를 이룬다는 것이다.
눈이 맑다는 것은 눈에 다른 것이 섞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야타 부탐(있는 그대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천안은 하늘의 눈이다.
육안은 한 쪽으로만 볼 수 있지만 천안은 앞뒤 위아래를 동시에 본다.
혜안은 지혜의 눈이다.
대상과 하나가 되어 꿰뚫어 보는 눈이다.
법안은 진리의 눈이다.
개구리를 보면 개구리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불안은 부처의 눈이다.
성을 밝게 꿰뚫어 보아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을
영원히 없애는 것(見性明徹 能所永除)이다.
내가 꽃을 볼 때 나도 없고 꽃도 없고
다만 봄(seeing)이라는 의식만 있는 것이다.
깨달은 자에게는 죄가 없다.
그것을 지은 자가 없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자에게도 죄가 없다.
다만 그 흔적과 죄책감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의 의미이다.



19.
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 이시인연 득복다 부.
여시 세존 차인 이시인연 득복 심다
수보리 약복덕유실 여래불설 득복덕다. 이복덕무고 여래설 득복덕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써 보시를 한다면
그 사람은 이 인연으로 얻을 수 있는 복이 많다고 하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그 인연으로 얻을 복이 많다고 하겠습니다."
"수보리여, 만약 참된 복덕이라면 여래는 얻을 복덕이 많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니라.
복덕이 없는 까닭에 여래는 복덕이 많다고 설한 것이니라. "

< 참고>
참된 복덕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참된 복덕은 발견하는 것이다.



20.
수보리 어의운하 불 가이구족색신견 부
불야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색신견 하이고 여래설 구족색신 즉비구족색신 시명구족색신.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가이구족제상견 부.
불야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제상견 하이고 여래설제상 구족 즉비구족 시명제상구족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처는 모든 상(相)을 다 갖춘 색신(色身)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색신을 구족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한 구족색신은 곧 구족색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름만이 구족색신인 것입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를 모든 상을 다 갖춘 제상(諸相)이 구족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구족제상(具足諸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한 제상구족은 제상구족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름만이 제상구족인 것입니다."

< 참고>
에고는 세상의 씨앗이다.
하나의 작은 씨앗이 세상 전체를 담고 있다.
단지 ‘나는 존재한다’는 생각 하나만 일어나도 즉시 온 세상이 뒤따라 일어난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앉아 보라.
그냥 방안에 나무 곁에, 풀밭에 누워 있어 보라.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라.
그러면 순간적으로 어떤 느낌이 우리에게 밀려오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음과 동시에 난생 처음으로 존재한다.
깨달음은 죽음인 동시에 부활이다.



21.
수보리 여 물위 여래작시념 아당 유소설법 막작시념
하이고 약인언 여래유소설법 즉위방불 불능해아소설고
수보리 설법자 무법가설 시명설법
이시 혜명수보리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어미래세 문설시법 생신심부
불언 수보리 피비중생 비불중생 하이고 수보리 중생중생자여래설 비중생 시명중생

▶"수보리여, 그대는 여래가 '나는 응당히 법을 설한다'라고
생각한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께서 설하는 바 법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는 곧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니
이는 내가 설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수보리여, 법을 설하지만 가히 설할 만한 법이 없기 때문에
일컬어 설법이라고 한다."
그때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미래세에 자못 많은 중생들이 설하신 이 법을 듣고
신심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들은 중생이 아니며 중생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는 중생이라는 것은 중생이 아니라고 설하나니
오직 이름만이 중생인 것이다."

< 참고>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삶은 권태로와진다.
아이들은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의 초보적인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에고는 아직 발달되지 않았다.
우리들의 에고가 권태를 만드는 요인이다.
동물들은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나무들도 그렇다.
장미 덩쿨은 해마다 같은 장미꽃을 피우고 새들은 매일 똑같은 노래를 부르지만
싫증을 느끼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 자연은 아직 에고가 없기 때문이다.





22.
수보리백불언 세존 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위무소득야
불언 여시여시 수보리 아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내지
무유소법가득 시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신 것은
얻은 바가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다. 수보리여, 그와 같나니라.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그 어떤 법도 얻은 바가 없기 때문에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한다.

< 참고>
미운 오리새끼가 자신을 오리라고 생각하는 한 그는 백조이면서 백조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백조가 아니라고 생각하든 말든 이미 백조이다.
우리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지혜를 지녔으나
무명에 가려져 그것을 모를 뿐이다.
그래서 무명을 거두었을 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것이 아니다.




23.
부차 수보리 시법평등무유고하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사먁삼보리
수보리 소언선법자여래설 즉비선법 시명선법

▶"수보리여, 이 법(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한다.
아상(我相)도 없고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이
모든 선법(善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수보리여, 여래는 선법이란 선법이 아니기 때문에
선법이라고 부른다고 설하느니라."

< 참고>
길을 떠나서는 길을 갈 수 없다.
그러나 길에 달라붙으면 또한 길을 갈 수 없다.
길을 간다는 것은 길에서 길을 떠남이다.






24.
수보리 약삼천대천세계중소유제 수미산왕 여시등칠보취
유인 지용보시 약인 이차반야바라밀경 내지 사구계등 수지독송
위타인설 어전복덕 백분 불급일 백천만억분 내지 산수비유 소불능급

▶"수보리여,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수미산왕과 같은 칠보의 무더기를 가지고 보시를 행한다고 할지라도
이 반야바라밀경의 사구게만이라도 수지 독송하며
사람들을 위해 설한다면 앞의 복덕은 이에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억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는 숫자로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니라."




25.
수보리 어의운하 여등 물위 여래작시념 아당도중생 수보리 막작시념
하이고 실무유중생여래도자
약유중생여래도자 여래 즉유아인중생수자
수보리 여래설유아자 즉비유아 이범부지인 이위유아
수보리 범부자여래설 즉비범부 시명범부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여래가 '마땅히 중생들을 제도하리라'고 생각한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실로 여래가 제도한 중생은 없으니 만약 여래가 제도한 중생이 있다면
여래는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음이니라.
수보리여, 여래께서 '나'라고 함은 곧 '나'가 아니지만
범부들은 그것을 '내가 있다'하고 집착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범부라는 것에 대해서도 여래는 곧 범부가 아니라고 설하는 것이다."

< 참고>
범부와 부처의 차이는 범부는 부처의 씨앗이요,
부처는 범부의 열매라는 것이다.(凡是佛因 佛是凡果)
부처가 범부라고 하고 다시 범부가 있는 것이 아니고
허명으로 범부라 부른 것이라고 하는 것은
“금방 들어 보이고 금방 지워 버리는” 隨擧隨掃의 설법이다.
무엇을 지우려면 들어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내면에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우리는 오직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만 자신을 안다.
우리는 직접 우리 자신의 존재에 다가설 수 있는 길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에게 간다.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가? 바로 사랑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사랑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주의를 쏟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깊이 사랑할 때 그들은 온 세상을 잊는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에 완전히 몰입해 있다.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볼 때에는 그 밖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
마치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 몰입의 순간 그들은 현상에 머물지 않는다.




26.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 관여래부.
수보리언. 여시여시. 이삼십이상 관여래.
불언. 수보리 약이삼십이상 관여래자 전륜성왕 즉시여래.
수보리백불언.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응이삼십이상 관여래.
이시 세존 이설게언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히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을 아는 바로는
마땅히 삼십이상을 여래라고 볼 수 없나이다."
이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형태에 의해서 나를 보고(若以色見我)
소리에 의해서 나를 찾는 자는(以音聲求我)
잘못된 노력에 빠져 있나니(是人行邪道)
마침내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不能見如來)




27.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불이구족상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막작시념 여래 불이구 족상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여약작시념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설제법단멸 막작시념
하이고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법불설단멸상

▶"수보리여, 그대는 '여래는 상(相)을 구족한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리라.
수보리여, 이와 같이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상을 구족하지 않은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다.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한 자에게는
모든 법의 단멸(斷滅)이라는 상이 있다고 설하셨다'라고 생각하리라.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한 자는
법의 단멸이라는 상이 있다고 설하지 않은 까닭이니라."

< 참고>
그러나 얻기 전에는 얻어야 할 것이 있다. 그러니 없다고 하지 마라.
얻은 뒤에는 얻은 것이 없다. 그러니 있다고 말하지 마라.
깨달은 뒤에는 불법을 닦을 필요가 없지만 깨닫기 전에는 불법이 없을 수 없다.
무상정등각을 얻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불법을 좇아 수행해야 하므로
불법이 없다느니 그런 것은 쓸 곳이 없다느니 그 따위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
무상정등각을 구하는 자는 법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28.
수보리 약보살 이만항하사등세계칠보 지용보시 약부유인
지일체법무아 득성어인 차보살 승전보살소득공덕
하이고 수보리 이제보살 불수복덕고
수보리백불언 세존 운하보살 불수복덕
수보리 보살 소작복덕 불응탐착 시고설 불수복덕.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항하의 모래알과 같은 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써 보시하더라도
일체의 법이 무아(無我)임을 깨닫고
인(忍)을 성취한 보살의 복덕이 더욱 나으리라.
왜냐하면 모든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 참고>
인(忍)을 이룬다는 말은 도리에 평안히 머물러 이리저리 헤매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주와 객을 나누는 마음(能所心)이 없어지면 인을 이룬다고 한다.



29.
수보리 약유인언 여래 약래 약거 약좌 약와 시인 불해아소설의.
하이고 여래자 무소종래 역무소법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어디로부터 오고 어느 곳으로 가는 바도 없기 때문에
이름하여 여래라고 하느니라"

< 참고>
눈 앞의 바위를 본다.
저 바위를 쪼개고 쪼개면 빛의 속도로 회전하는 전자를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저 바위는 움직이고 있는가?
진여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아무 의견도 갖지 않고 보는 것,
판단이나 비난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뜻한다.
즉 무심의 상태를 진여라고 한다.





30.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이삼천대천세계 쇄위미진 어의운하 시미진중 영위다 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하이고 약시미진중 실유자 불즉불설 시미진중
소이자하 불설미진중 즉비미진중 시명미진중
세존 여래소설삼천대천세계 즉비세계 시명세계.
하이고 약세계 실유자 즉시일합상 여래설 일합상 즉비일합상 시명일합상
수보리 일합상자 즉시불가설 단범부지인 탐착기사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 세계를 부수어
먼지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 먼지들은 많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먼지들이 진실로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는 곧 먼지라고 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먼지들이란 곧 먼지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름하여 먼지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천대천 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이름이 세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실로 있는 것이라면
곧 하나로 합하는 상(一合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일합상(一合相)은 곧 일합상이 아니다'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일합상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일합상이란 가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다만 범부들이 그 일에 탐착할 뿐이다."

< 참고>
내가 깨달음을 얻겠다는 것은 부분이 전체를 얻겠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보겠다는 것은 열매가 나무를 보겠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에 나의 눈과 귀가 붙들려 있는 한
나는 전체를 볼 수 없다.





31.
수보리 약인언 불설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수보리 어의운하 시인해아소설의 부 불야세존 시인 불해여래소설의
하이고 세존설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즉비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시명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수보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일체법 응여시지 여시견 여시신해 불생법상
수보리 소언법상자여래설 즉비법상 시명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되
'부처님께서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을 말씀하셨다'라고 말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뜻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여래가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곧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아니다'
라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일체법을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깨달아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이 믿고 깨달아서 법(法)에 대한 집착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수보리여, 법상(法相)이란 곧 법상이 아니라고 여래는 설한 것이니
곧 법상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 참고>
법상이란 ‘이것이 법이다’라고 정해 놓은 것이다.
우리는 이러저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행복이라고 규정한다.
천국은 이러저러한 곳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행복과 천국은 규정될 수 없는 것이다.
행복과 천국은 자기 자신이 그것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 안에 천국을 갖고 있지 않다면 어디서도 천국을 발견할 수 없다.



32.
수보리 약유인 이만무량아승지세계칠보 지용보시 약유선남자 선여인
발보살심자 지어차경 내지 사구게등 수지독송 위인연설 기복승피
운하위인연설 불취어상 여여 부동
하이고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불설시경이 장로 수보리 급제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 문불소설 개대환희 신수봉행.
마하 반야 바라밀.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무량아승지 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보살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서
이 경전을 수지 독송하고 남을 위해서 설한다면
그 복덕이 저 복보다 나으리라.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연설할 것인가?
형상에 집착하지 아니하며 여여(如如)하여 동요함이 없느니라.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이슬, 번개와 같다.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해 마치셨다.
장로 수보리와 여러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와
일체 세간의 천(天), 인(人), 아수라(阿修羅)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을 듣고 크게 환희하여
모두 믿고 닦으며 받들어 행하였다.

< 참고>
부처는 우리 마음을 별처럼 여기라고 한다.
별은 캄캄할 때만 존재한다.
의식의 태양이 떠오르면 마음은 자취를 감춘다.
마음은 삐뚤어진 눈이다.
삐뚤어진 눈으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마음은 등불이다. 등불은 욕망이라는 연료가 있어야만 타오른다.
마음은 환영이다. 마술이라는 말은 마야에서 왔다.
마음은 이슬방울이다.
우리는 마음을 진주나 다이아몬드와 같이 아름답게 여기지만
아침해가 떠오르면 없어지는 순간적인 현상이다.
마음은 물거품과 같다.
마음이 가진 모든 경험은 물거품처럼 터져서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마음은 꿈이다. 마음은 우리 자신이 감독이며 배우며 관객인 주관적인 상상이다.
마음은 번갯불과 같다. 한 순간 번쩍했다 사라진다.
마음은 구름과 같다. 마음은 하늘인 의식 주위에 일어나는 구름과 같다.
마음이 없는 상태를 자유라고 한다.
자유라는 말은 자아로부터 자유로와진다는 뜻이다.
모든 자아는 형상이다. 바위도 자아가 있고 영혼이 있다.
나무도 자아가 있고 동물들도 자아가 있다.
그러나 부처는 자아가 없다. 그는 완전한 자유이다.
자유는 모든 사람의 본성이다.
자유는 이미 주어져 있다. 새삼 자유를 가져와야 할 이유가 없다.
자유가 거기 있다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통융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kds11002/13480098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