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반야심경

금강경 해석 자료

수선님 2018. 7. 15. 12:31

<금강경 강의 참고자료>

 

 

*오시팔교는 천태종의 개조인 지의가 법화사상을 위주로 하여 세운 교상판석이다.천태종은 일반적으로 화엄종과 함께 중국불교 교학의 최고 수준으로 불리는데, 그 교학은 교()와 관()의 두 부문으로 조직되어 있다. ()는 교판(敎判)과 교리(敎理)로 구성되었다. 천태종의 교판(敎判)은 남북조시대에 도생(道生혜관(慧觀) 등 소위 남37(南三北七)의 열명의 스님이 세운 교판을 연구하여 자기네의 교판을 수립하였는데, 그 교판이 바로 오시팔교(五時八敎)이다. 오시(五時)란 부처님의 설법을 순서에 따라 다섯 단계로 배열한 것이다.인도에서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전개된 불교가 그 순차와 상관없이 중국에 전래되었기 때문에, 그 차이와 모순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경전 및 교리의 분석, 판단, 석가 일대(一代)의 설법의 순서를 시간적으로 분류한 것이 오시이다. 팔교(八敎)는 설법한 방법을 분류한 화의사교(化儀四敎)와 설법 내용의 분류인 화법사교(化法四敎)를 통칭한 말이다. 즉 가르침으로 이끄는 형식과 방법을 4종으로 나눈 것이 화의사교이고 사람들의 성질과 능력에 대응하여 가르치는 교리 내용을 4종으로 나눈 것을 화법사교라 한다.오시(五時)는 화엄시와 아함시, 방등시, 반야시, 법화열반시를 말한다. 화엄시(華嚴時)는 부처님이 성도한 뒤 최초의 21일간 화엄경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부처님 자신이 증득한 이치 깊은 법 그대로를 설하였다고 한다.둘째, 아함시(阿含時)는 화엄경을 설한 뒤의 12년 간에 소승의 아함경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근기가 하열한 이를 대상으로 하여 얕은 수준의 삼장교(三藏敎)만을 설하였다. 셋째, 방등시(方等時)는 아함을 설한 뒤 8년 동안 유마경’, ‘승만경등의 대승을 설한 시기이다.넷째, 반야시(般若時)는 방등시 뒤의 22년 간에 반야경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대소승을 구별하는 집착을 씻어내어서 깨끗이 하기 위하여 제법은 모두 공()이요, 대소승은 일미(一味)라고 가르쳤다.다섯째,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이의 능력이 아주 진전되었기 때문에 바야흐로 진실한 불지견(佛知見)을 여는 때로서 부처님이 최후의 5년 동안 법화경을 설한 시기와 하루 낮밤 동안에 열반경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또 팔교 중 화의사교(化儀四敎)는 돈교와 점교, 비밀교 그리고 부정교의 네 가지가 있다. 돈교(頓敎)는 부처님 자신의 깨달음을 처음부터 그대로 설하는 것으로 화엄경이 여기에 속한다. 점교(漸敎)는 내용이 얕은 가르침에서 깊은 가르침으로 점점 나아가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아함부, 방등부, 반야부 경전의 가르침이 여기에 해당된다. 비밀교(秘密敎)는 가지가지의 능력자가 한자리에 있을 때, 이들 서로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가만히 각기 다른 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부정교(不定敎)는 가지가지의 능력자가 한자리에 있을 때, 각자의 힘에 응해서 나름대로 체득하는 바의 교법이 일정하지 않은 설법을 말한다.또 화법사교(化法四敎)는 삼장교·통교·별교·원교 등 네 가지로 이루어져있다.삼장교(三藏敎)는 아함경에 의해서 공()의 도리가 밝혀지고 석공관(析空觀)에 의해서 무여열반에 들게 하는 가르침이다. 통교(通交)는 삼승인이 함께 받는 대승에 처음 들어가는 가르침이며 별교(別敎)는 이승(二乘)과 공통하지 않고 다만 보살만을 위한 가르침이고, 또 모든 것을 차별의 면에서 보는 가르침이다. 원교(圓敎)는 부처님의 깨달음 그대로를 설한 가르침이다. 원교의 보살은 공((()의 삼관을 일심으로 관하기 때문에 일심삼관(一心三觀)이라고 하며, 또 원융삼관(圓融三觀)이라고도 한다. 이같이 화의·화법의 4교를 합하여 8교라고 하는데, 이 교판은 법화경을 설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였다.또한 원교의 입장에서는 모든 경론이 각각의 의의(意義)를 지니고 있는데, 원교가 바로 천태종의 입장이라 하여 법화경을 가장 중시하면서도 포용적인 자세를

*방등경에는 두가지 뜻이 있는데요. 하나는 대승경전을 통틀어서 의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던 시기를 나누었을 때 방등시에 설해진 경전들을 방등경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대승경전에 속하는 주요 경전들은

반야부 경전(금강경, 반야심경, 대반야경 등..), 법화경, 화엄경, 유마경, 수능엄경, 능가경, 원각경, 대보적경 등

팔만대장경 1514 종에서 첫번째 부터 646 번째까지가 대승경전에 속합니다.

방등경에는 두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대승경전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대승경을 말하는 것은 횡()으로 시방(十方)에 두루 방광보편[方廣普遍:대승경에서 말한 이치는 방정(方正)한 것이므로 방{:동서남북 사유상하(四維上下)등의 방소(方所)]이라 하며, 뜻이 원만히 구비되고 언사(言事)가 풍족하므로 광()이라 한다]의 실()다운 이치이며, 범부나 성인들을 포함한 평등한 교()이므로 이렇게 말한다. 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다른 뜻으로 방등경은 부처님께서 경전을 설하시던 시기별로 나눌때 다섯가지의 시기가 있는데

첫번째, 화엄시(성도후 3.7), 두번째 아함시(12), 세번째 방등시 (8), 네번째 반야시 (21), 다섯번째 법화열반시 (8) 이 있습니다.

 

이중 방등시에 설해졌던 경전들을 방등경이라고 합니다. 방등시에는 초기의 설법이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인줄 모르고, 소승의 낮은 깨달음을 부처님의 깊은 깨달음과 동일시하여 여기에 만족하고 머물려고 하는 자들에게 소승은 방편 일 뿐이고 부처님의 본 뜻은 대승에 있다고 가르쳐 이들의 잘못된 견해를 타파하는 시기에 해당됩니다. 여기에는 유마경, 승만경, 능가경, 사익경, 능엄삼매경, 금광명경 등이 포함됩니다.

 

*여시아문-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뜻. 온 몸으로 듣는 것, 즉 불성으로 듣는다는 뜻. 여시이문(如是耳聞)- 귀로 듣는다는 뜻이 아니다.

여시(如是)는 경()가운데 설()한 부처님의 말씀을, 아문(我聞)은 아난(阿難) 자신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하다.

모든 불경의 한문번역본은 여시아문 일시불 (如是我聞 一時佛)로 시작합니다.

그 뜻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땐가 부처님께서 ~"으로 해석하고

그 이유는 불경이란 것이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제자들이 부처님가르침을 되뇌이며 복원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문제일의 아난존자의 기억

불멸 후 약 400 여년에 걸쳐 약 100 여년 간격으로 부처님의 제자들은 4번의 결집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서로 복원하며 외우고 확인하고 만장일치로 확인이 되면 경전에 올리는 형식이었습니다. 1차 결집과 2 차결집에서 불경의 확인 작업은 모두 구두낭송으로 이루어졌으며 문자로 처음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3차 결집 때 부터라고 합니다.

 

초기 경전들 뿐만 아니라 대승불교의 경전인 금강경도 여시아문으로 시작합니다. 사실 금강경이나 법화경같은 대승경전들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파하신 말을 옮겼다기 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은 후대의 사람들이 부처님말씀의 형식을 빌어서 쓰다보니 여시아문의 형식을 빌린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기수급고독원-

중인도 사위성에서 남쪽으로 기원정사(祇園精舍)(Jetavana-anathapindasyarama) 가 있는 곳에서 서가모니불이 설법한 유적지.서가모니불은 생애의 후반기 20여년 간의 우기(雨期) 대부분을 이곳에서 지냈고, 현존하는 경전의 상당수를 이곳에서 설했다. 석가모니가 생존하였을 때 자주 머물면서 설법한 곳으로 초기 불교의 정사 가운데 가장 유명하며, 마가다 국 왕사성의 죽림정사와 함께 불교 최초의 양대가람이라 한다.

원래는 코살라 국의 기타 태자의 소유였던 동산을 사위성의 수달다 장자가 매입하여 정사를 지었다.

수달다 장자는 고독한 사람들에게 많은 보시를 베풀었기 때문에 급고독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었다. 그는 동산을 뒤덮을 만큼의 금을 주고서 이 동산을 사들였으며, 이러한 그의 신심에 감동한 기타 태자가 동산의 일부를 무상으로 제공하여 함께 정사를 건립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기타 태자의 동산을 의미하는 기수와, 수달다 장자를 의미하는 급고독을 합해서 이 정사를 기수급고독원이라고도 한다.

*죽림정사-가란타죽원·죽원가람이라고도 한다.

중인도(中印度) 마가다있었던 최초불교 정사. 천축국 다섯 정사하나인도 승원(僧院) 시초이다. 왕사성(王舍城) 남쪽 가란다(迦蘭陀)에 있었기 때문에 가란다 죽림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가 성도하던 초년대밭 세운 정사석가모니가끔 이곳 살면서 설법하였다고 한다. 코살라국 사위성의 기원정사와 함께 불교 최초의 2대가람으로 불린다. 석가모니가 생존해 있을 때 자주 이곳에 머물면서 설법한 불교 포교의 중심지였다.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에 의하면 가란타죽림은 가란타 장자의 소유로서 왕사성의 여러 동산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곳이었다. 가란타 장자는 본래 외도를 숭배했으나 뒤에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고 불교로 개종하면서 이 죽림을 승단에 기증했다. 이 죽림에 당시의 마가다 국왕인 빔비사라 왕이 가람을 지어서 정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과거현재인과경 過去現在因果經사분율 四分律에 의하면 이 죽림도 빔비사라 왕이 보시한 것이라고 한다.

 

*수보리(須菩提, 산스크리트어: Subhuuti、सुभूति)석가모니십대제자 중 한 명이다. ()에 대해 깊이 이해하였다 하여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수부티라이다.

 

'세족이 부좌이좌 ' 사위성에서 밥을 빌고 돌아와 발을 씻고 앉으니

" 본래 空한 바탕에 空한 色身(足)이 딛고 나녔으니 온종일 다녔어도 움직인 바가 없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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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來는 涅槃에 들고 제자들은 禪定에 들었으니 깊고 얉음의 차이는 따지지 않겠다 行하라

*여래(如來)

범어(梵語)로는 타타아가타(tatha-gata)라고 한다. 이 말은 두 단어(tatha-gata 또는 tathaagata)의 합성어로, 그 단어에 따라 해석에도 약간의 차이가 따른다. 타타아(tatha-)는 여시(如是) 또는 여실(如實)이라는 뜻이고, 타타(tatha)는 진실의 뜻이 있다. 가타(gata)가다는 뜻이 있고, 아가타(agata)도달한다’, ‘오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타타아가타는 지금까지의 부처들과 같은 길을 걸어서 열반의 피안에 간 사람, 또는 진리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여래는 여실히 오는 자’, ‘진여(眞如)에서 오는 자라는 뜻이며, 진여세계에서 와서 진여를 깨치고 여실한 교화활동 등의 생활을 한 뒤에 사라져 가는 이로서, 부처와 같은 뜻을 가진 낱말이다.

원시불교시대에는 석가모니가 여래를 복수형으로 많이 사용하였고, 윤회에서 해탈한 진인(眞人)에 대하여 제3인칭 제3자적으로 사용하였을 뿐, 1인칭으로서 자신을 호칭할 때 여래라고 한 경우는 없었다. ()이라는 말도 당시 사람에게는 희귀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여래라는 말은 더욱 이상인(理想人)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석가모니는 자기가 여래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삼가했다.

후세에는 여래와 불이 구별 없이 사용되어 아미타불을 아미타여래, 약사불(藥師佛)을 약사여래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부처에게 있는 공덕상(功德相)을 일컫는 명호를 여래십호(如來十號)라고 하여 대부분의 의식문(儀式文) 속에 이 십호를 넣어 외우도록 하였다. 이 십호는 여래의 열 가지 별칭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외우는 자체가 공덕이 있다고 본 것이다. 십호의 명칭과 뜻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응공(應供)여래는 진리와 상응한 이로서 능히 사람과 천인의 존경을 받고 공양을 받을 수 있는 이라는 뜻이다. 정변지(正遍知)여래는 바르고 완전하게 진리를 깨달은 이라는 뜻이다. 명행족(明行足)여래는 천안통(天眼通숙명통(宿命通누진통(漏盡通) 등의 신통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온전하게 갖추어진 이라는 뜻이다.

선서(善逝)여래는 잘 가는 이라는 뜻으로, 미혹의 세계를 뛰어넘어서 다시는 미혹으로 돌아오지 않음을 나타낸다. 세간해(世間解)여래는 세간과 출세간(出世間)의 일을 남김없이 다 아는 이라는 뜻이다. 무상사(無上士)여래는 세간에 있어 가장 높은 이라는 뜻이다. 조어장부(調御丈夫)중생을 잘 조복(調伏)하고 제어하며 열반으로 인도하는 이라는 뜻이다.

천인사(天人師)여래는 능히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 되는 이라는 뜻이다. ()여래는 깨달은 이, 진리의 눈을 뜬 이라는 뜻이다. 세존(世尊)여래는 많은 덕을 갖추어서 세간에서 능히 존경을 받는 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명호 가운데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여래와 불과 세존이며, 응공은 아라한(阿羅漢)을 지칭할 때 많이 사용하고 있다.

 

경계(色)에서 경계 없음(空)을 보는 것.

사구게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는 환영과 환청(귀신)에 빠지지 말라 입니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阿縟多羅三貘三菩提)

무상(無上) 정등(正等) 정각(正覺)의 경지이다.-연기(緣起)()()인 삼법인(三法印)

아뇩다라삼막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가장 완벽한 깨달음을 뜻하는 말로 산스크리트어 아누타라삼약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발음(發音) 그대로 음사(音寫)한 것입니다. 아뇩보리(阿耨菩提)라고도 한다.

()는 중국말로 번역하면 무()자에 해당하며,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아()도 역시 무량(無量)의 무()에 해당합니다. 뇩다라(耨多羅)는 위()라는 뜻이니까 아뇩다라(阿耨多羅)이 위에 다시없다.’라는 무상(無上)의 뜻이 된다. 삼막삼(三藐三)의 삼막(三藐)은 정(), 즉 올바름을 말하며, ()은 변(), 즉 넓음을 말한다. 본래 변()은 두루하다, 넓게 퍼져 있다는 뜻으로 두루 편이라 발음하지만, 불교에서는 변이라고 발음한다. 마지막으로 보리(菩提)는 깨달음 또는 지혜(智慧)를 뜻한다. 그러므로 아뇩다라삼막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전체를 한문으로 쓰면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가 된다. , 이 위에 다시없는 올바르고 두루한 깨달음,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바로 부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정각(正覺)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간략히 말할 때에는 불지(佛智) 또는 묘지(妙智)라고도 한다. 이 때의 묘()는 바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 해당하는 것으로 천태대사는 ()는 불가사의(不可思議)로 이름 붙인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지견(知見), 즉 천지 우주간의 도리는 인간의 언어로서 이렇다 저렇다 하고 표현할 수 없고 마음으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고 생각할 수도 없는 실로 불가사의한 것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요 심행소멸(心行所滅)인 것이다. 이 불가사의한 것은 이름을 붙일 수 없으므로 무리하게 이름하여 묘()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득무설분 / 얻을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다. /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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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까닭이 무엇인가 모든 현상계가 무위로서 차별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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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수자성수연성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불성으로 차별상을 나타낸다.

금강경은 뜻도 不思議요 공덕 또한 不思議라, 이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에

'수행 할 것 없다' 또는 알기만 하면 된다' 하며 수행을 천착시킵니다.


色이 空과 같기 때문이니 色卽空을 照見하지 못하고 어떻게 受想行識을 비울 수 있겠는가?

若見(같은 것을 보라) 諸相非相(모양과 모양아닌 것) 여기서 諸相은 色이요 非相은 空이니

[空과 色이 같은 것을 보라 =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이 금강경의 키워드 입니다.

다른 경에는 항상 미진수 보살들을 거느린 것을 自覺하는 것, 즉 화엄세계를 보라 입니다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란 '깨달을 것이 없는 것' 을 '깨달으라' 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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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습니다" "당연하지요 깨달을 것이 있다면 가르치기도 쉬우련만 깨닳을 것이 없는

바 를 깨치라 하기 때문에 모두 눈만 멀뚱대며 남의 글이나 줒어 모으고 있는 것이라오.

수차 말했듯이 일체법(삼라만상)은 이름이 그러할뿐 모두가 (무명무상절일체)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고 그런 생각이 모두 끊어진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오. 생각(번뇌, 분별심)을 끊지

못하기에 보여줘도 못보고,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하는 것이라오.

初禪을 체득하면 '텅비어 아무것도 없다

(心空) 달마의 질문에 혜가가 "찾아도 마음이 없습니다." 됐다. 이것이 조사서래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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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반야경을 보니 心空을 구경이라 하지 않고 色卽空이라 했고

금강경에도 若見(같은 걸 보라) 제상비상(상과 상 아닌 것이 같다 는 것을 보라) 色卽空이라

했으니 수보리가 당연히 모를수 밖에 없지요. 마음으로 알면 된다는 착각이 불종을 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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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를 自覺(깨치고)하고 깨침(自覺)이 통찰(마음챙김)과 합일이 되어야 비로서 나가정이 되며

이때 비로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얻게됩니다.

삼세제불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얻었느니라

 

*보살(菩薩)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음사(音寫)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이다. 그 뜻은 일반적으로 깨달음을 구해서 수도하는 중생’, ‘구도자’, ‘지혜를 가진 자등으로 풀이된다.

보살의 용어와 개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2세기경에 성립된 본생담 本生譚에서이다. 본생담은 석가모니가 전생에서 수행한 여러 행적을 이야기한 책이다. 이때의 보살은 후대에 나타나는 대승의 보살에 대하여 보통 본생보살(本生菩薩)’이라고 부른다.

본생보살은 본생담에서 여러 가지 형태, 즉 범천(梵天수신왕(樹神王장자(長者사제(司祭선인(仙人사자(獅子코끼리·원숭이·등으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석가모니 1인에 귀착된다.

그러나 대승보살의 경우는 이와는 대조적이다. , 다수이며 동시에 이들은 각기 별개의 인격들이다. 대승경전들과 여러 관련 불교문헌에는 관세음보살·문수보살·보현보살·지장보살·미륵보살 등 수많은 보살들이 있으나, 이들은 석가모니가 아니며, 따라서 본생보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별개의 개성을 가진 개개인격으로서 복수로 되어 있다.

이 보살 중에는 중생을 교화하여 구제하겠다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대원(大願)을 발하여 부처가 될 권리를 유보하고 윤회의 세계에 머물러 구제(救濟)에 나서고 있는 보살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적으로 최후에는 불과(佛果)를 성취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복수의 부처의 출현을 예견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이와 같이 단수로서 석가모니부처만을 가리켰던 보살이 복수로서 중생을 뜻하게 됨에 따라 과거·현재·미래에 다수의 부처가 있다는 다불사상(多佛思想)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생의 석가모니보살과 같은 특정의 보살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성불(成佛)하겠다는 서원을 일으켜서 보살의 길로 나아가면 그 사람이 바로 보살이며, 장차 성불할 수 있다는 범부보살사상(凡夫菩薩思想)’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보살사상은 공사상(空思想)과 결합하여 대승불교의 근간을 이루었다.

대승의 보살사상 중 기본적인 두 개념은 서원(誓願)과 회향(回向)이다. 그것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이며, 자기가 쌓은 선근공덕(善根功德)을 남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회향이다.

그리고 보살은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머물 것을 자원하여 일체의 중생을 먼저 깨달음의 세계(彼岸)에 도달하게 하는 뱃사공과 같은 자라고 설명되고 있다.

보살은 그 수행의 단계에 의하여 그 계위(階位)가 주어진다. , 초발심(初發心최초단계로 진리를 추구함), 행도(行道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수행함), 불퇴전(不退轉도달한 경지에서 물러나거나 수행을 중지하는 일이 없음), 일생보처(一生補處한 생이 끝나면 다음에 부처가 됨)4단계가 있다.

후에 화엄경에서는 이것이 십지(十地)로 정리되어졌고, 또 그 이전의 단계로서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回向), 그 이후에 등각(等覺묘각(妙覺)2()가 첨가되어 도합 52위라고 불리었다.

보살의 개념은 갖가지로 확대되어 미래불(未來佛)인 미륵불을 탄생시켰다. 미륵불은 미래에 성불할 부처로서 현재는 도솔천(兜率天)에 미륵보살로 머물고 있다는 미래지향의 미륵신앙이 나타났다. 또한 정토사상(淨土思想)과 관련하여 아촉불(阿閦佛)과 아촉보살, 아미타불과 법장보살(法藏菩薩)의 관계가 성립하였다.

그리고 자비(慈悲)와 절복(折伏)의 신앙대상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반야경 般若經계통의 문수보살(文殊菩薩), 화엄경계통의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성립되고 계속하여 지장보살(地藏菩薩) 등 수많은 보살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모든 종류의 인간,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신변에 나타나 중생들의 깨달음의 성취를 위하여 교화실천에 전념한다.

이와 같은 보살 행화(行化)의 사상은 신라불교의 주요한 요소로 나타나 있다. 특히, 삼국유사에 보살 행화를 담고 있는 기사가 많이 전하고 있어 이를 증명하여주고 있다.

관세음보살의 행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는 권3의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南白月二聖努詰夫得怛怛朴朴)조와 대산월정사오류성중(臺山月精寺五類聖衆), 5의 광덕엄장(廣德嚴莊)조와 경흥우성(憬興遇聖)조 등이 있다.

문수보살의 행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는 권4의 자장정률(慈藏定律)조와 권5의 연회도명문수점(緣會逃名文殊岾)조 등이 있다. 또한 미륵보살의 행화가 보이는 것으로는 권5의 낭지승운보현수(朗智乘雲普賢樹)조 등이 있다.

이 기사들에는 보살이 각기 중생의 교화를 위하여 갖가지의 화신(化身)으로 출현하고 있다. 조선 중기에 저술된 선가구감 禪家龜鑑에서 휴정(休靜)보살은 오로지 중생에 대한 생각뿐이다.”라고 하여 보살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보살은 또 실재하였던 고승(高僧)이나 대학자에 대한 일종의 존칭으로도 사용되었다. 인도의 용수(龍樹마명(馬鳴무착(無着세친(世親) 등이 보살로 불렸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원효(元曉)가 보살의 칭호를 받았다. 나아가 요즈음에는 재가(在家출가(出家)를 막론하고 모든 불교도들에게 확대되었다.

이 보살사상은 특히 중기 대승불교 이후 성하였던 여래장(如來藏불성사상(佛性思想)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발전한 대승불교의 정화(精華)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선가귀감(禪家龜鑑)』『불교개론(이기영, 한국불교연구원 출판부, 1977)보살십지설의 전개에 대한 고찰(장규원, 불교학보2, 동국대학교, 1964)

 

*선재동자- [입법계품]의 제 8 서다림회(逝多林會)는 사위성의 중각강당(重閣講) 에서 열린다. [입법계품][화엄경]의 마지막 품이지만 분량은 제 45권에서 60권까지까지 16권이나 되며 [십지품]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부분이다.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천하를 역방(歷訪)하다가, 마지막으로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만나서 그의 십대원(十大願)을 듣는다. 그 공덕으로 아미타불의 국토에 왕생하여 입법계(入法界)의 큰 뜻을 이루었다고 한다.

문수보살은 선재동자에게 가락국(可樂國)의 화합산(和合山)에 있는 공덕운(功德雲)비구를 제일 먼저 방문하여, 보살행에 대해 가르침을 구하라고 권하였다. 그 후로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을 포함하여 55곳과 53명의 선지식을 방문하여 가르침을 구했던 것이다.

 

*대승과 소승-소승불교라는 말은 인도에서 대승불교 운동이 흥기할 때 처음 등장한다. 당시 대승불교도들은 그 이전의 불교, 즉 부파불교의 실천법을 경멸하여 그렇게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소승불교에는 원래 성문승과 연각승의 2 승이 있었다.

성문승은 사성제의 이치를 관하고 아라한의 사과를 증득하여 열반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고, 연각승은 12인연을 관하여 벽지불에 도달하고자 했는데, 이 양자는 모두 스스로의 깨달음만 추구할 뿐 남들을 위해 설법하거나 교화하는 것은 그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대승불교도들이 비난했던 부파불교는 북방에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불멸후 100여년 경에 마가다국의 마하제바가 5개조의 새로운 주장을 하자 불교도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결국 마하제바에 동조하는 자유주의자들은 대중부, 그리고 그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상좌부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것을 일러 불교의 근본분열이라고 한다. 나중에 대중부는 9개의 분파로 갈렸고, 상좌부는 11개의 분파로 나뉘어졌다.

남방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불멸 후 200여 년경에 비야리의 발기 비구가 새로운 10조목을 주장하며 종래에 지키던 계율의 개혁을 요구하자 야사 장로가 학승을 소집하여 그 주장을 심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자유관용파라고 할 수 있는 대중부는 발기 비구의 의견에 동조하고, 엄숙파였던 상좌부는 이를 부정했다. 그 후 대중부는 6, 상좌부는 12파로 나뉘어 결국은 18부파가 성립되게 되었다.

우리가 소승불교라고 말하는 것은 곧 부파불교로, 소승삼장은 이 부파불교의 삼장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어쨌든 이름 그대로의 뜻으로 보면 소승은 작은 수레를 의미하고, 대승은 큰 수레를 가리킨다. , 불교도의 이상향인 피안으로 건너갈 때 소승에 의거하면 일신 혹은 수행자 등 소수의 사람만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반면, 커다란 수레인 대승의 보살도를 실펀할 때는 말 그대로 커다란 수레에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피안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승불교라는 말은 대승불교도들이 만들어 낸 것으로, 현대의 남방불교 국가, 곧 우리가 소승불교 국가라고 부르기도하는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의 불교도들은 소승불교라는 호칭을 매우 싫어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테라바딘(Theravadin)'이라고 부르는데, 이말은 '테라바다(상좌부를 의미함)'를 믿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 테라바딘, 즉 남방불교도들은 자신들이야말고 초기불교의 정통성을 순수하게 지켜왔다는 자부심이 무척 강해서, 우리나라처럼 북방불교, 즉 대승불교를 신봉하는 국가들의 불교를 변질된 불교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대승이란 큰 수레라는 뜻으로, 소승 곧 작은 수레와 대구를 이루는 말이다. 수레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짐을 나르듯,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리석음의 이 언덕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 피안으로 우리를 태우고 간다. 가르침의 수레가 크면 클수록 피안으로 가는 이들은 그만큼 많게 될 것이다.

 

1.소승과 대승으로의 분류한 것은 북방으로 전파된

금강승불교(라마-티벳)와 대승불교(중국,한국,일본)에서

기존의 상좌부불교와의 차별화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입니다.

 

2.그들의(북방불교) 주장에 의하면

"어떠한 것도 고정된 것은 없다"에서 법(경전)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 아공(무아)을 깨달아 알았더라도

법공(강을 건널 때 필요한 뗏목=경전)이 되지 않으면

강을 건넌 후 벌판을 지나갈 때에는 외히려 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3.깨달음에 빠져 회향하지 않으면 즉, 보살정신이 없으면

그 깨달음은 깨달음으로서의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석가부처님이 위대한 것은 중생구제를 위해 회향하셔서 그 의미가 크며

위대한 부처님으로 거듭 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디 성불하여 회향하시기 바랍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함)

*대승의 원력-본원력·대원업력(大願業力숙원력(宿願力)이라고도 한다.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반드시 서원을 세워야 하는데, 그 서원이 성취됨으로써 부처가 된다고 한다. 보살의 계위(階位)에서 세우는 서원을 본원 또는 인원(因願)이라고 하는데, 서원을 세울 때는 반드시 '자신의 이익'(自利)'중생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서원의 원칙은 대승불교의 이념인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함)에 근거한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자리와 이타, 즉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서로 분리되거나 단계적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이 곧 중생의 이익이며 깨달음을 얻는 일인 동시에 중생을 구제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관점에서 서원과 원력을 강조하고 있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발원하고 이것의 성취를 다짐하는 의례가 있다. 사홍서원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이념이 잘 나타나 있는데, 그 내용은 가없는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衆生無邊誓願度), 끝없는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煩惱無盡誓願斷),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法門無量誓願學), 위 없는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佛道無上誓願成) 등으로 이루어진다.

원력은 특히 타력신앙(他力信仰)을 바탕으로 하는 정토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전생에 법장비구(法藏比丘)였을 때 세운 48대원(大願)을 성취하고 부처가 되어 극락세계(極樂世界)라는 불국토를 건설했다고 하는데, 그의 원력으로 모든 중생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고, 최고의 복락을 누리다가 성불하게 된다고 한다.

중생이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원인과 정토에서 얻는 복락(福樂)의 과보가 모두 아미타불의 원력이 중생에게 회향(廻向)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서원의 힘과 작용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므로 원력부사의(願力不思議)라 하고, 그 작용이 자연히 그렇게 되므로 원력자연(願力自然)이라고 한다.

*해심밀경(解深密經)

5세기경에 무착과 세친에 의해 개창된 유식학파를 이끈 선구적인 경전입니다. 이 경은 3~5세기 사이에 편찬된 중기대승경전 중 하나로서 경의 범문 명칭 삼디니르모차나(Samdhinirmocana)를 해석해 보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불설의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해명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심밀경에 나타나는 새로운 교의 중 유식학파의 기초를 다지는 것으로는 유식설(唯識說), 아뢰야식연기설(阿賴耶識緣起說), 삼성삼무성설(三性三無性說)을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유식설은 요가의 수행방법인 지관(止觀) 중 특히 대상을 관찰하는 관에 대해 설명하는 곳에서 관의 삼매 중에 떠오르는 모든 영상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그 영상은 유식이기 때문이다. 식의 대상은 오직 식이 나타난 것일 뿐이다.’라고 하여 이것이 유식(唯識, vijaptimtra)이라는 말이 최초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을 유식학파가 철학적으로 이론화하여 일체 존재는 마음이 대상을 식별하는 작용인 에 의해 현출된 식별하는 것으로만 존재하므로 마음을 떠나 외계에 실재하는 것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두 번째는 아뢰야식으로 종전의 육식(六識)과 더불어 아뢰야식 또는 아타나식(阿陀那識, dna)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경에는 모든 생명이 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이 생장하여 육체적인 여러 기관()을 유지하며, 분별의 언어에서 기인된 인상(薰習)을 유지함을 근본으로 한다. 이 점에서 아타나식 혹은 개인존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아뢰야식이라고 한다.’고 하여 무아설에 입각.

그때 덕본(德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모든 법상(法相)에 공교한 보살을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법상에 공교한 보살이란 어디에 한하여 모든 법상에 공교한 보살이라 하며, 여래께서는 어디에 한하여 그들을 모든 법상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하십니까?”

그때 세존께서 덕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덕본이여. 그대가 지금 이와 같이 깊은 뜻을 여래에게 묻는구나. 그대는 지금 무량한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안락하게 하려고, 세간과 모든 하늘사람아소락들을 불쌍히 여겨 의리(義利)와 안락을 얻게 하려고 이렇게 질문하는구나. 그대는 자세히 들어라.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해 모든 법상을 말하리라.”

이른바 모든 법상에 대략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이요, 둘째는 의타기상(依他起相)이요, 셋째는 원성실상(圓成實相)이다.

무엇이 모든 법의 변계소집상인가?

이른바 이름으로 거짓되게 세워진 일체 법의 자성과 차별이고, 나아가 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무엇이 모든 법의 의타기상인가?

이른바 일체 법의 인연으로 생기는 자성이니,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는 것이다. 이른바 무명(無明)은 행()의 연이 되고, 나아가 순전히 큰 괴로움의 덩어리를 부르고 모은다.

무엇이 모든 법의 원성실상인가?

이른바 일체 법의 평등한 진여이다. 이 진여를, 모든 보살들은 용맹 정진을 인연하기 때문에 진리대로 생각하고 잘못됨 없이 사유하는 것을 인연하기 때문에 통달할 수 있다. 이러한 통달에서 점점 닦고 모아서, 나아가 위없는 정등보리(正等菩提)를 바야흐로 원만하게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선남자여, 눈병 난 사람의 눈에 생긴 눈병의 허물처럼, 변계소집상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눈병 난 사람은 눈병으로 여러 모습 즉 머리털이나 바퀴, 벌과 파리와 거승(巨勝)과 혹은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따위의 차별이 나타남과 같이, 의타기상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은 눈에 눈병의 허물을 여의고 이 맑은 눈의 본성으로 행하는 바에 어지러운 경계가 없음과 같이 원성실상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 등 유식의 삼성설(三性說)을 다룬다. <유식30>20송에서는 첫째의 변계소집을 말하는데 이것은 두루 분별하여 집착됨을 말한다.

성유식론에서는 변계소집을 허망한 분별(虛妄分別)’로 정의한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실재한다고 분별하여 집착하기 때문이다. 초월적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존재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에 집착한다. 자아의 존재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는 구체적이고 확고한 증거가 없는데도 우리는 자아의 존재를 믿는다. 이런 것들이 모두 허망한 분별로서 변계소집이다.

다른 일상의 보다 손쉬운 예를 들면, 경전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용인데,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다가 뱀을 밟아서 놀람과 공포로 옆 사람을 껴안았다. 그때 옆 사람이 정말로 뱀이었나 의심을 하고 확인하였더니, 그것은 새끼줄이었다.

여기서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한 것이 변계소집이다. 새끼줄이 짚임을 아는 것이 의타기성이요. 모든 짚은 인연되어 나타난 것으로 본래는 진여의 공함을 아는 것이 원성실성이다.

 

* 선가귀감은 어떤 책인가 서산(西山) 대사가 후학을 위해 명종 19(1564)에 엮은 참선 교과서이다. 지금 쓰고 있는 선가귀감은 15년 뒤에(1579) 초간본을 토대로 다시 쓴 책이며, 편집 일은 시자 몇몇이서 거들었다.

원래 휴정은 선이나 교를 서로 다른 두 개의 것으로 보지 않았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禪是佛心 敎是佛語)”으로서 그것은 결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휴정의 선교관(禪敎觀)이다. 그러나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은 선이요, 말 있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은 교이다.”라고 하여, 결국 불교의 올바른 수행의 태도는 교를 버리고 선에 들어가야 함을 강조하였던 것이 휴정의 주장이다.

* 쌍차쌍조(雙遮雙照)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마음이 이미 밝고 청정하여 쌍으로 양변을 차단하고 바르게 중도에 들어가서 쌍으로 이제를 비추니 부사의한 부처님 경계를 구족하여 줄어듬이 없느니라

임제스님이 이르길 심청정(心淸淨)이라 마음이 청정해서 일체가 다 끊어진 것을 부처[]라 하고심광명(心光明)이라 일체 광명이 시방세계 법계를 다 비추는 것을 법()이라

있는 그대로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이 중도라즉 본래성품 그대로 아는 여실지견을 말하는 것이그 둘 양변(자타유무)을 여의어(쌍차)그 둘 양변(자타유무)를 하나고 보고 쓰는(쌍조)쌍차쌍조(雙遮雙照)가 차조동시(遮照同時)

 

유무(有無)로 엄격히 표현하자면,

1) 쌍차(雙遮) : 비유비무 역유역무, 쌍조(雙照) : 비유비무 역유역무 입니까?

2) 쌍차(雙遮) : 비유비무, 쌍조(雙照) : 역유역무 입니까?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중도를 벗어나는 것이고 실상을 볼 수 없습니다.

이때 어느 한쪽과 다른 한쪽을 양변이라고 합니다. 이를 모두 부정하는 것을 쌍차라고 합니다.

동시에 둘 다를 인정하여 수용하는 것을 쌍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유와 무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비유비무입니다. 이것이 쌍차입니다.

반면에 둘 다를 수용하는 것은 역유역무입니다. 이것이 쌍조입니다.

 

불성은 무엇인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있음으로 보려고 하면 볼 수 없습니다.(비유)

그렇다고 아무 것도 없으면 진여는 무의미해집니다.(비무)

그러면서 무한한 공덕을 갖추고 있습니다.(역유)

그렇다고 뭐라고 규정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역무)

이렇게 설명하고 있으나 불성은 말로써 설명이 거의 불가능하니 그냥 위의 쌍차와 쌍조를 설명하기 위해 쓸데 없는 말을 했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쌍차 쌍조는 진여의 내용 즉 중도를 설명하는 것 중에 하나 입니다.

천태종의 지자 스님이 이것으로 중도를 잘 설명하였다고 하는데, 그 경증(經證)으로 삼았던 `보살영락본업경` 일부를 우선 소개하겠습니다.

"마음이 이미 밝고 청정하여 쌍으로 양변을 차단하고 바르게 중도에 들어가서 쌍으로 이제를 비추니 부사의한 부처님 경계를 구족하여 줄어듬이 없느니라."

여기서 차단하고 들어간다고 하지만 그것은 순차적인 것이라는 뜻이 아니고 마치 구름이 걷히니 해가 드러나는 것처럼 서로 간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쌍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의 양변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와 무, 이것과 저것, 선과 악등 일체의 차별상입니다.

쌍조라는 것은 이 양변이 서로 비추어서 서로를 드러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저것을, 저것은 이것을.

쌍차라는 것은 그 반대로 이 양변이 서로를 막아서 서로를 숨기는 것 즉 서로의 소멸을 말합니다.

위에서 서로 드러남이란 사성제의 집제입니다. 숨기는 것이란 멸제입니다.

 

* 법이 머무는 시기에 따라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르게 행해지는 정법시대, 정법시대와 비슷하게 닮아서 교법과 수행은 있으나 깨달음이 없는 상법시기, 교법은 있으나 수행하는 이도 없는 말법시대. 이 정//말의 세 시기 각각 오백년씩이라 한다.

(1) 정법 상법 말법의 세 시기에 관한 여러 설 [正像末三時諸家說]

금강경>에서의 '후오백세'라는 표현 설명 2가지 해석이 있음.

후세에는 불교 쇠멸의 역사를 다섯 번의 500(합계 2500)으로 구분한다. 혹은 최초의 500년을 정법의 시대, 그 다음의 500년을 상법(像法, 유사하지만 진실이 아닌 법)의 시대, 그 이후를 말법(末法, 종교적 활동의 멸망)의 시대라고 하여 세 시기로 구분하는 방식도 있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500'은 부처님 열반 후 1000년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것은 정법 쇠멸의 시대라고 부른다.

금강경의 후오백세 구분

1오백세 : 해탈견고(解脫堅固)의 시대

2오백세 : 선정견고(禪定堅固)의 시대

3오백세 : 다문견고(多聞堅固)의 시대

4오백세 : 탑사견고(塔寺堅固)의 시대

5오백세 : 투쟁견고(鬪爭堅固)의 시대

도선(道宣)율사가 말하였다.

부처님이 일멸하신 후 처음 천년을 정법(正法)이라고 하는 것은, 바른 법을 만나 성인을 이룸에 주체의 기틀[]과 주체가 깨닫는 법[]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법 다음의 두 번째 천년 뒤를 상법(像法)이라고 하는 것은, 가르침[]에 의지하여 닦아 배우지만 뜻[]과 식()이 점점 무디어져서 이치를 만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끗함을 받아들여 머물러 지니면서도 성인의 뜻에는 조금밖에 통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지혜로 분별함에 깊이 닦아 밝지 못하여 도의 바름[道正]과 서로 비슷하므로 상법이라 한다.

세 번 째 천년 뒤를 말법(末法)이라고 하는 것은, 첫 기틀에서 만년에 이르도록 선정과 지혜의 도를 떠나 다만 세간의 계율만을 넓히고 위의(威儀)를 거두어 지켜, 모습은 선정의 자취와 같지만 마음 씀은 들뜨고 산란하여 삼매의 바른 받음[正受]과는 완전히 어긋나기 때문에 말법이라 한다.”

③『선견바사론(善見婆娑論)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정법은 천년이고 상법도 또한 같은데, 여인을 출가하게 했으므로 정법이 오백년 줄어든다. 그러나 만약 여인이 여덟 가지 공경하는 법[八敬法]을 지켜 법대로 도를 행하면 정법이 세상에 머물러 다시 천년이 된다.

또 말한다.

불법이 세상에 일만년 머무는데 처음 오천년은 출가하여 도를 닦으면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는 신비한 지혜[三達靈智]를 얻고, 나중 오천년은 출가하여 도를 닦아도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는 신비한 지혜[三達靈智]를 얻지 못한다.

상법시대의 비구(열반경)

부처님은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열반한 뒤 무량백세(無量百歲)를 경과했을 때, 사과(四果)의 성인들까지 모두 열반하여 정법(正法)이 멸하고 상법(像法)의 시대가 되면 그 세상의 비구들은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비구는 표면으로는 율()을 지키는 척하고 경()을 독송하는 일은 적고 오래 살기 위하여 음식을 탐하며 입는 의복은 추악하고 허술하며 용모는 수척하여 위덕(威德)이 없다. 소나 양을 방목하고 장작이나 풀더미를 짊어지고 다니며 두발을 그리고 손톱을 날카롭게 기른다. 가사(袈裟)를 입고는 있지만 마치 사냥꾼 같은 모양을 하고 주의 깊게 살금살금 걷는 모습은 고양이가 쥐를 노리는 것과 다르지 않으면서 항상 '나는 나한(羅漢)이 되었다'고 떠벌리고 병고(病苦)에 시달리는 일이 많고 분예(糞穢) 속에서 기거한다. 겉으로는 현선(賢善)의 상()을 띠고 안으로는 탐욕과 질투를 가득 품고 있다. 아법(啞法)을 수학(受學)하는 바라문과 같아서 실제로는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양을 하고, 사견(邪見)을 주장하고 정법(正法)을 비방한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여래가 정해놓은 계율이나 정행(正行)의 위의(威儀)를 파괴하고, 해탈의 과()를 설하지만 청정한 법을 떠나 깊고 비밀한 가르침을 깨뜨린다. 각자 멋대로 경율(經律)에 반한 것을 설하고, 여래는 우리들에게 고기를 먹는 것을 허용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그 주장을 내 놓으면서, 이것이 불설(佛說)이라고 말하여 서로 싸우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사문석자(沙門釋子)를 자칭한다.

선남자야, 그 무렵, 또 사문들 중에 곡물을 저장하고 어육(魚肉)을 받고, 자기 손으로 음식을 요리하고, 유병(油甁)과 보개(寶蓋)와 가죽신 등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국왕 · 대신 · 장자에게 접근하여 관상과 점을 치고 의술을 행하고, · · 유리 · 차거 · 마노 · 파리 · 진주 · 산호 · 호박 ·벽옥 · 가패와 갖가지 과실 등을 저축한다. 온갖 기예를 배우고 회화 · 조소 · 저작(著作) · 학문 · 원예 · 재배 · 주술 · 약물조합 · 기락 · 가창 · 화장 · 장신 · 위기(圍基) · 도박 · 기술 · 행작(行作) 등도 한다. 만약 비구로서 이러한 나쁜 일에 접근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참으로 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다.

7. 말세(末世)/오탁악세(五濁惡世)

1)말세(末世) :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고 여러 가지 죄악이 성행하는 시대.

2)오탁악세(五濁惡世): 말법 시대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오염된 현상

겁탁(劫濁) : 사람의 수명이 점차 줄어들며 기근과 질병, 전쟁이 잦아진다.

명탁(命濁): 중생의 목숨이 줄어는 것.

견탁(見濁): 옳지 못한 견해가 진리를 흐리게 하는 것.

온갖 그릇되고 비도덕적인 견해가 일어나 세상을 어지럽힌다.

번뇌탁(煩惱濁): 기억하고 인식하고 외우고 익혀서 지혜를 말하고 번뇌를 나타내는 것. 중생의 번뇌가 깊고 무거워진다.

중생탁(衆生濁): 거칠고 혼탁한 업인과 업보가 되풀이되고 생멸의 파도가 그치지

않는 것. 중생들이 나쁜일을 좋아하며 과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3) 법화경에서의 오탁악세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께서 다섯 가지 흐리고 더럽고 악한 세상[五濁惡世]을 맑고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 이른바,

세상이 오래되어 생기는 혼란인 겁탁, 사람들의 번뇌가 치열해져서 생기는 혼란인 번뇌탁, 사람들의 성질이 복잡해져서 생기는 중생탁, 사람들이 삿되게 보는 견해가 세상을 뒤엎어 생기는 혼란인 견탁, 사람들의 수명이 짧아져서 생기는 혼란인 명탁이니라.

사리불아, 이와 같이 겁이 흐리고 혼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이 되면 사람들의 업장이 무거워져서 인색하고 탐내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치성하여 좋지 못한 근성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최고의 진리를 즉시 설하시지 않으시고, 방편의 힘으로 일불승(一佛乘)밖에 없는 것을 각자의 능력에 따라 삼승(성문/연각/보살승)으로 나누어 설하시느니라.

*수미세계는 풍륜(風輪: 바람) · 수륜(水輪: ) · 금륜(金輪: )3(三輪) 또는 여기에 공륜(空輪)을 더한 4(四輪)98(九山八海)4대주(四大洲) 그리고 욕계의 하늘[]들인 6욕천과 색계 · 무색계의 하늘들로 구성되는데, 수미산은 9산 가운데 하나로, 하나의 수미세계의 가장 중심에 있는 산이다. 그리고, 나머지 여덟 산은 실제로는 산맥이다. '3륜 또는 4륜과 98해와 4대주와 6욕천과 색계 · 무색계의 하늘들을 포함한, 1개의 태양과 1개의 달이 있는 1수미세계 즉 1세계'1000개 모여서 소천세계(小千世界)를 이루고, 소천세계가 1000개 모여서 중천세계(中千世界)를 이루며, 중천세계가 1000개 모여서 대천세계(大千世界)를 이룬다. 이와 같이 천(, 1000)3번 중첩되었다고 하여 대천세계를 3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도 하며 또는 13천세계(一大三千世界) 즉 하나의 대 3천세계라고도 한다.

소천, 중천, 대천의 세 종류 천세계가 이루어진 세계. 수미산을 중심으로 해, , 사대주(四大洲), 육욕천(六欲天), 범천(梵天)을 합하여 한 세계라 하고, 이것의 천 배를 소천(小千)세계, 또 이것의 천 배를 중천(中千)세계, 다시 이것의 천 배를 대천세계라 한다.

이 지구상에도 200 여개의 나라들이 있는데 각 나라마다 삶이 다릅니다. 한 나라 안에서 사람들 마다 삶이 다릅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의 생명체가 곧 하나의 세계입니다.

한마리의 벌래도 하나의 세상이고 한마리의 세균도 하나의 세상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세상 이 우주는 거의 무한대의 세상이 있는 셈입니다.

*수미산(須彌山)

불교의 세계관에 나오는 상상의 산. 세상은 9개의 산과 8개의 바다가 겹쳐져 있는데 가장 높은 산이 바로 수미산이다. 세계의 중앙에 있는 이 거대한 산의 중턱에는 사천왕이 있고 그 꼭대기에는 제석천(帝釋天)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수미산은 사보(四寶), 즉 황금?백은(白銀)?유리(瑠璃)?파리()로 이루어졌고, 해와 달은 수미산의 허리를 돈다고 한다. 한편 여덟 바다 중 가장 바깥쪽 바다의 사방에 섬(四洲)이 있는데, 그 중 남쪽에 있는 섬, 즉 남염부제(南閻浮提)에 인간이 살고 있다고 한다.

*보리심(菩提心)과 공성(空性)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중에서 핵심중의 핵심입니다.금강경은 보리심(菩提心)과 공성(空性)을 중심으로 설하신 경전입니다. 그래서 이 금강경의 공덕이 무한대입니다. 사구게(四句揭)는 부처님 가르침에서도 가장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공성(空性)에 대한 내용입니다.무아(無我)와 공성(空性)에 대한 기본적이 지혜가 있어야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 [금강경] 사구게(四句揭) 제 일 사구게 -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5범소유상 / 개시허망 / 약견제상비상 / 즉견여래凡所有相 / 皆是虛妄 / 若見諸相非相 / 卽見如來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과 형상 아닌 것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제 이 사구게 -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10불응주색생심 /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 응무소주 / 이생기심不應住色生心 /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 應無所住 / 而生其心응당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성향미촉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 것이요, 응당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제 삼 사구게 -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26약이색견아 / 이음성구아 / 시인행사도 /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 以音聲求我/是人行邪道 / 不能見如來만약 나를 색신으로써 보거나 음성으로써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제 사 사구게 -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32일체유위법 / 여몽환포영 / 여로역여전 /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 如夢幻泡影 / 如露亦如電 / 應作如是觀일체 함이 있는 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 우리 중생들은 다음과 같은 족쇄에 묶여 있어서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족쇄는 오상분결 5가지와 오하분결 5가지로 모두 열 가지

오하분결 - 중생을 욕계에 묶어주는 족쇄 (五下分結)

1. 유신견 - 자아가 있다는 견해. 오온이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집착하는 삿된 견해 (有身見)

2. 계금취견 - 형식적 계율과 의식을 지킴으로써 해탈할 수 있다고

집착하는 것 (戒禁取見)

3. 의심 - 불법승 삼보나 계율, 연기법 등을 회의하여 의심하는 것

4. 감각적 욕망 - 쾌락에 대한 욕망 (탐욕)

5. 악의 - 반감, 증오, 분개, 적대감등의 성내는 마음 (惡意 성냄)

오상분결 - (중생을 욕계는 벗어났지만) 색계나 무색계에 묶어주는 족쇄 (五上分結)

6. 아만 - 내가 남보다 낫다, 못하다, 동등하다 하는 마음 (我慢)

7. 들뜸 - 들뜨고 불안한 마음

8. 어리석음 - 모든 해로움과 괴로움의 근본 뿌리로 사성제를 모르는 것 (無明)

9. 색계욕 - 감각적 욕망을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순수 물질의 세계와 그 느낌에 대한 집착 (色界欲)

10. 무색계욕 - 색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순수 정신세계나 그런 인식에 대한 집착 (無色界欲)

.수다원

수다원은 (1)유신견 (2)계금취견 (3)회의적인 의심, 3가지 족쇄를 끊은 성자

수다원(Sotapanna)은 예류(預流) , '흐름에 들어선 사람' 이라는 뜻 (흐름=팔정도)

수다원은 팔정도의 수행 속에 완전히 들어간 사람, 성인의 무리에 합류한 사람이라는 뜻

아무리 늦어도 여덟 번째 생존을 받지 않는다, 일곱생 만에 아라한이 된다고그래서 수다원은 '파멸되지 않는 이, 결정된 이, 깨달음에 이르는 이' 라고도 불림

파멸되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악도(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

수다원이 되면 4가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생겨남 - ,,승 삼보에 대한 믿음과

()를 깨지 않는 것 회의적인 의심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삼보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계를 자연스럽게 저절로 지키게 됨

따라서 삼보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으며 계를 잘 갖추고 산다면

수다원의 자질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음

.사다함

(1) (2) (3)의 족쇄는 이미 소멸되었고, (4)감각적 욕망 (5)악의는 많이 약화되지만

미세한 (4)감각적 쾌락의 욕망 (5)악의(분노)는 남아 있고, 오상분결도 남아 있는 성자

(거친 형태의 탐욕과 성냄을 극복한 성자)

사다함(Sakadagami)이란 말은 '한 번 되돌아오는 성자(一來)' 라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 죽은 후 욕계에는 딱 한 번만 더 태어나서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의미

.아나함

오하분결은 모두 사라지고, 오상분결 중 (6)아만 (7)들뜸 (8)어리석음이 약화된 성자

그러나 (9)색계욕 (10)무색계욕은 남아 있는 성자

아나함(Anagami)'되돌아오지 않는 성자' 라고 해서 불환(不還)이라고도 함

아나함은 죽은 후에 인간의 세계를 포함한 욕계에는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고

미세한 물질의 세계인 색계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 최상의 목표인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음

.아라한

아라한(Arahat)은 열 가지 족쇄가 모두 다 소멸되어

더 이상 태어남이 없어 윤회하지 않는 성자 (해탈)

완전한 성인으로서, 응공(應供)이라고도 함 - '공양 받을 만한 분'이라는 뜻

아만심이 없기 때문에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번거로워할 일도 없고

들뜨는 마음도 없기 때문에 마음은 늘 고요하고 평온하다

 

*화엄경에서 보살 10

1'보시' : 환희지(歡喜地) - 초지

비로소 좋은 법의 맛을 얻고 마음에 기쁨이 많기 때문에 환희지(歡喜地)라 한다.

2'지계' : 이구지(離垢地)

열 가지 착한 길을 행하여 모든 때[]를 여의기 때문에 이구지(離垢地)라 한다.

3'인욕' - 수용이라고 할수 있다 : 명지(明地) - 발광지(發光地)라고도 함널리 배움이 많고 대중을 위하여 법을 말하며 광명을 비출 수 있기 때문에 명지(明地)라 한다.4'정진' : 염지(焰地) - 염혜지(焰慧地)라고도 함

보시와 지계와 많이 들음[多聞]이 더욱 더 늘고 거룩한 덕이 왕성하기 때문에 염지(焰地)라 한다.

5'선정' : 난승지(難勝地)

공덕의 힘이 왕성하여 온갖 악마들이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에 난승지(難勝地)라 한다.

6'지혜'(반야바라밀) : 현전지(現前地)

악마의 일을 막은 뒤에 모든 보살의 도와 법이 모두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현전지(現前地)라 한다.7 방편(方便) 방편바람경지 :(번뇌가 없음) 심원지(深遠地) - 원행지(遠行地)라고도 함

삼계를 떠나 멀고 법왕(法王)의 지위에 가까웠기 때문에 심원지(深遠地)라 한다.

8 () 노력없이도 그냥되느 경지 부동지(不動地)

하늘과 악마범천사문이며 바라문들이 그의 서원(誓願)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부동지(不動地)라 한다.

9 () 참나의 바람경지 선혜지(善慧地)

그 지혜가 점차로 밝고 고르며 부드러움이 더욱 왕성해지기 때문에 선혜지(善慧地)라 한다.10 () 전지 경지 , 천주교에서는 완덕 이라고 함 법운지(法雲地)

보살이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서 한꺼번에 법의 비를 내릴 수 있음이 마치 겁소(劫燒) 후에 큰 비를 널리 쏟는 것과 같기 때문에 법운지(法雲地)라 이름한다.

*도제(道諦, Mārga Satya)고통을 소멸시키는 행을 하는 진리를 말한다.

, 도제를 행함으로써 실제로 멸제("고통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면에서 도제는 멸제의 원인이 되는 실천 또는 수행을 의미한다. 불교의 모든 교의는 사실상 도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원시 불교에서는 도제를 정견(正見) · 정사(正思) · 정어(正語) · 정업(正業) · 정명(正命) · 정정진(正精進) · 정념(正念) · 정정(正定)팔정도(八正道)인 것으로 설명한다.[3]

남방상좌부 불교에서는 도제를 팔정도를 포함하는 사념처(四念處) · 사정근(四正勤) · 사여의족(四如意足) · 오근(五根) · 오력(五力) · 칠각지(七覺支) · 팔정도(八正道)37조도품(三十七助道品)인 것으로 설명한다.

대승불교에서는 도제를 37조도품 외에 보살의 원행(菩薩願行: 보살의 서원과 수행, 간단히 보살행 또는 보살도)을 담은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반야(般若: 지혜)육바라밀(六波羅蜜) 또는 육바라밀방편(方便) · () · () · ()의 네 가지를 추가한 십바라밀(十波羅蜜)을 포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연등불

과거불(過去佛)은 상당히 복잡하여 여기에 다 기록 할 수가 없는데 과거불 중에 연등불(燃燈佛)이 있었다. 일명 정광불(錠光佛)이라고 한다.

연등불(燃燈佛)은 석가모니가 부처님이 되기 전에 과거 어느 생에서 보살(菩薩)로 수행할 때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준 부처님이다.

*수기(授記)란 부처가 그 제자에게 미래에 대하여 예언적(豫言的)으로 한 가르침이다.

석가모니가 부처님이 되기 전인 전생(前生)에서 보살(菩薩)로 수행할 때에

운뢰(雲雷)라는 이름을 가진 바라문(婆羅門)의 교육을 받는 범지(梵志)였다.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에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설산(雪山)에서 공부를 마치고 발마대국(鉢摩大國)으로 향한

운뢰 범지(석가모니)는 그곳의 왕이 연등여래(燃燈如來)를 초청해 의복과 음식을 공양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운뢰 범지(석가모니) 또한 연등여래(燃燈如來)를 직접 뵙고 꽃과 향()을 공양하고 싶었지만, 발마대국(鉢摩大國)의 왕이 ()과 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그것을 팔지 말라는 명을 내린 터라 꽃 한 송이 구할 길이 없었다.

마침 어떤 바라문의 딸 선미(善味)라는 여인이 다섯 송이의 꽃을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운뢰 범지(석가모니)는 꽃을 팔라고 권했다. 여인이 말하기를

태어나는 세상마다 부부가 되겠다고 허락해 준다면 꽃을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다음 생에 연등여래(燃燈如來)처럼 되고 싶다고 서원(誓願)한 운뢰 범지(석가모니)라 여인의 말을 들어줄 수 없다고 했으나,

그 서원(誓願)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여인의 약속을 믿고

운뢰 범지는 다섯 송이의 꽃을 사가지고 연등여래(燃燈如來)께로 갔다.

운뢰 범지(석가모니)는 연등여래(燃燈如來) 앞에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꽃을 뿌리며 이 복()으로 말미암아 다음 세상에 연등여래(燃燈如來) 처럼 될 것을 서원했다.

그때에 비가 왔는지 땅이 흙탕물이 되었었다.

운뢰 범지(석가모니)는 연등여래(燃燈如來)가 진흙을 밟지 않도록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진흙길 위를 덮고 연등여래(燃燈如來)가 걸어가게 했다.

연등불(燃燈佛)은 미소로써 이 공양을 받으시고는

너는 미래세(未來世)에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라는 부처가 될 것이다라는

수기(授記)를 주셨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는

연등불(燃燈佛)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는 공양물(供養物)을 준비하지 못해 스스로 진흙길에 엎드려 몸을 밟고 지나가시게 하여 수기(授記)를 받았다고도 한다. 이를 연등불수기(燃燈佛授記)”라 하며, 불교에서 보살의 개념이 생긴 연유이다. 현재 불교에서 가장 많이 존숭(尊崇)하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은

연등불(燃燈佛)의 수기(授記)에 의해서 존재하는 부처님이시다.

때문에 연등(燃燈)을 밝히는 것은 곧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밝은 세상을 기원하는 의가 된다고 하겠다.

 



 

 

 

 

 

 

 

 

 

 

 

 

통융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kds11002/13480126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