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밧지국에 사는 비사(毘沙)라는 악귀가 수없이 사람을 해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핑계로 하루에 한사람, 때로는 수십 명을 죽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도망을 가려고 하자 비사는 끝까지 쫓아가 제물을 잡아올 것이라고 겁을 주었다. 마을사람들은 비사와 협상을 했다. 하루에 한명씩 동굴로 보낼 테니 한꺼번에 여러 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재산가인 선각장자가 외동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할 때가 됐다. 선각장자는 아들 나우라를 목욕시킨 뒤 귀신의 동굴로 데리고 갔다. 부모는 울면서 누군가 이 아이를 구해주기를 기도하고 돌아왔다. 이처럼 참혹한 사정을 알게 된 부처님은 나우라가 바쳐진 동굴을 찾아갔다. 부처님은 공포에 떠는 나우라를 안심시키고 보시(布施) 지계(持戒) 생천(生天)의 차제설법을 했다. 그는 곧 마음이 깨끗하고 법안이 청정해져서 삼보에 귀의한 불자가 되었다.
얼마 뒤 악귀가 돌아왔다. 뜻밖에도 부처님이 와계신 것을 안 악귀는 부처님을 해치고자 했으나 신력(神力)으로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악귀가 당황하자 부처님이 말씀했다.
“과거의 네가 지은 업이 현재의 너의 모습이다. 현재 네가 짓는 업이 미래의 네 모습이다. 그러나 그대가 이제부터 몸과 입과 생각으로 열 가지 나쁜 업을 짓지 않으면 과거의 나쁜 업이 사라질 것이다.”
“저는 지금 몹시 굶주렸습니다. 왜 저의 먹이를 빼앗으려고 하시는지요?”
“나는 과거에 보살도를 닦을 때 비둘기를 살리기 위해 내 몸을 내준 바 있다. 그런데 어찌 이 아이의 목숨을 너에게 맡기겠느냐.”
악귀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참회하는 마음을 일으켜 그 자리에서 출가했다. 악귀는 사문이 되어 마을로 내려가 부처님의 제자가 됐음을 알리고, 사람들의 근심을 덜어주었다. 나우리의 아버지 선각장자는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을 초청해 공양을 올렸다. 장자는 부처님의 허락을 얻어 많은 음식과 평상과 침구와 의약품을 승단에 보시했다.
<증일아함경> 14권 고당품(高幢品) 제2경
앞의 이야기는 아이를 돌보는 여신인 귀자모신(鬼子母神) 이야기와 플롯이 비슷하다. <잡보장경> 9권 ‘귀자모실자연’에 수록된 귀자모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왕사성 교외에 ‘환희(하리티)’라 불리는 야차녀가 있었다. 그녀는 많은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였다. 그러나 삿된 마음을 품고 마을에 들어가 다른 사람의 어린아이를 빼앗아 산채로 잡아먹었다. 사람들은 야차녀를 두려워하여 귀자모(鬼子母)라 불렀다.
어느 날 이 사실이 부처님에게 알려졌다. 부처님은 방편으로 아난존자를 시켜 그녀의 막내아들인 애자(愛子)를 데려오게 했다. 남의 아이를 유괴하러 나갔다가 돌아온 그녀는 막내아들이 없어진 것을 알고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밤낮으로 막내아들을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그녀는 7일간 성내를 헤매다가 부처님을 찾아왔다. 그녀는 ‘아들을 찾아주시면 다시는 남의 아이를 유괴해서 해치지 않겠으며, 삼귀오계(三歸五戒)를 받고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부처님이 그녀의 마음을 바꾼 것을 알고 아이를 내주었다. 그 뒤 그녀는 정말로 귀자모가 아닌 애자모(愛子母)로 살아갔다.
의정(義淨)이 쓴 기행문 <남해기귀내법전>에 의하면 이후 귀자모는 인도의 여러 사원에서 어린이를 수호하는 신으로 모셔졌다고 한다.
홍사성/불교방송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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