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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일아함경 : 오온(색수상행식)에서 해탈하라 - 정말 위대한 법문

수선님 2018. 8. 5. 11:13

증일아함경 : 오온(색수상행식)에서 해탈하라 - 정말 위대한 법문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많은 비구들은 때가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걸식을 하기 위해 성으로 들어갔다. 그 때 많은 비구들이 갑자기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들이 성에 들어가 걸식하기에는 아직 때가 좀 이르다.

그러니 우리 지금 외도(外道) 범지(梵志)들이 있는 곳이나 우르르 몰려 가보자.'

 

 

그 때 비구 대중들은 곧 이학(異學) 범지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 가서 서로 문안을 하고 한 쪽에 앉았다.

 

 

이 때 범지들이 사문(沙門)에게 물었다.

 

 

"구담(瞿曇) 도사(道士)는 늘 욕론(欲論)·색론(色論)·통론(痛論)·상론(想論)에 대해서 말씀하신다고 하던데,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주장은 우리들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들이 주장하는 것이 곧 사문의 주장이요, 사문의 주장이 곧 우리들의 주장이다. 설법도 우리들이 하는 설법과 같고 가르침도 우리들이 가르치는 것과 같다."

 

 

그 때 비구 대중들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나서 훌륭하다고 말하지도 않고 나쁘다고 말하지도 않은 채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리들은 꼭 이 뜻을 세존께 가서 여쭈어보리라.'

 

 

그 때 비구 대중들은 걸식을 마치고 곧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 때 비구 대중들은 범지들이 물었던 일들을 전부 세존께 아뢰었다.

 

 

그러자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저 범지들이 그렇게 물었다면 너희들은 마땅히 이런 이치를 가지고 저들의 질문에 대답했어야 했다.

 

 

탐욕에는 어떤 맛이 있고 또 어떤 허물이 있는가?

마땅히 탐욕을 버려야 한다.

 

 

색(色)에는 어떤 맛이 있고 또 어떤 허물이 있는가?

마땅히 색을 버려야 한다.

 

 

통(痛 : 受)에는 어떤 맛이 있고 또 어떤 허물이 있는가?

마땅히 통을 버려야 한다.

 

 

만일 너희들이 이런 말로 저들이 던진 물음에 대답했다면, 저들 범지는 잠자코 아무 대답도 못했을 것이다. 비록 무슨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 심오한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침내는 어리석음과 의혹만 더 늘려 한쪽으로 치우친 소견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저들의 경계(境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또 비구들아, 여래·등정각과 여래의 가르침을 받은 성중을 제외하고, 그밖에 저 마(魔)·마천(魔天)·제석천·범천·사천왕·사문·바라문·사람과 그리고 사람이 아닌 것들은 이 이치를 논할 수 없느니라.

 

 

탐욕[欲]에는 어떤 맛이 있는가? 말하자면 다섯 가지 욕망[五欲]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눈으로 빛깔[色]을 보아 안식(眼識)을 일으키게 되면, 그 물질에 대하여 매우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운 마음을 내는데, 이는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또 귀로 소리[聲]를 듣고 코로 냄새[香]를 맡으며, 혀로 맛[味]을 알고 몸으로 보드랍고 매끄러움을 느끼면, 그것에 대하여 매우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운 마음을 내는데, 이는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욕망 속에서 괴롭다거나 즐겁다는 마음을 내면 이것을 탐욕의 맛이라고 말하느니라.

 

 

탐욕에는 어떤 허물이 있는가?

 

 

어떤 좋은 집안[族姓]의 자제는 온갖 기술(伎術)을 배워 스스로 살아가면서, 혹 농사를 짓는 일을 배우기도 하고 혹은 글 쓰는 것을 배우기도 하며, 혹은 품팔이를 하기도 하고 혹은 셈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며, 혹은 방편상 남을 속이는 것을 배우기도 하고 혹은 조각하는 기술을 배우기도 하며, 혹은 통신(通信)하는 것을 배워 저기에 갔다가 여기로 오기도 하고 혹은 임금을 받들어 섬기는 법을 배워 추위와 더위를 피하지 않고 고달픈 것을 무릅쓰고 부지런히 애쓰지만,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이렇게 고생하면서 재물을 모으나니, 이것을 탐욕의 허물이라고 말한다.

 

 

현재 세상의 고뇌(苦惱)는 모두 이 은애(恩愛)로부터 생기고 또한 모두 탐욕 때문에 생겨난다. 그러나 저 좋은 집안의 자제들은 그렇게 고생을 하고서도 재물을 얻지 못하면, 저들은 갑자기 시름하고 근심하며 고뇌하기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한다. 그러다가 그들은 곧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괴롭게 공(功)을 들이고 온갖 방법을 써 보았으나 재물을 얻지 못하였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이런 짓을 버리자.'

 

 

이것이 바로 탐욕을 여읜다는 것이니라.

 

 

또 저 좋은 집안의 자제는 혹 어느 때는 그런 방법으로써 재물을 얻기도 한다. 그는 그 얻은 재물을 여러 가지 방법을 총동원하여 보호하려고 한다. 혹 왕(王)에게 빼앗기지나 않을까, 도둑들에게 도둑을 맞지나 않을까, 물에 떠내려가지나 않을까, 불에 타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늘 걱정하다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땅에 파묻어 간직하려 하니 나중에 그 자리를 잊을까 걱정이 되고 이자 놀이를 하자 하니 되돌려 받지 못할까 걱정이며, 혹은 집 안에 나쁜 자식이라도 태어나면 내 재물을 다 낭비하고 말 것이다.'

이것을 일러 탐욕이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한 것으로서, 다 탐욕의 근본으로 인하여 이런 재변(災變)이 생기는 것이니라.

 

 

저 좋은 집안의 자제는 항상 이런 마음을 내어 그 재물[財貨]을 보호하려 하지만, 그는 훗날 오히려 국왕에게 빼앗기고 도둑에게 겁탈 당하거나, 물에 떠내려보내고 불에 타버리게 되기도 한다. 땅에 묻은 것은 찾아내지 못하고 이자놀이를 한 것은 받지 못하게 되며, 집안에 나쁜 자식이 태어나서 그 재물을 모두 써버려 만 분(分)의 하나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근심하고 걱정하며 괴로워하고 번민하면서 가슴을 치고 부르짖는다.

'내가 본래 가지고 있던 재물이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그러면서 마침내는 어리석어지고 미혹되어 마음과 뜻이 착란(錯亂)을 일으킨다. 이것을 일러 탐욕은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하는 것으로서, 이 탐욕의 근본을 조건[緣]으로 하여 무위(無爲 : 涅槃)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또 이 탐욕의 근본을 조건으로 하여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서로 공격하여 치게 되는데, 서로 공격하여 치기 때문에 혹은 코끼리 군사 앞에서나 말 군사 앞에서나 보병의 앞에서나 수레 군사의 앞에서, 말을 보면 말과 싸우고 코끼리를 보면 코끼리와 싸우며, 수레를 보면 수레와 싸우고 보병을 보면 보병과 싸우면서, 혹은 서로 칼로 베고 활을 쏘며 창으로 서로 찌른다. 이와 같은 일들을 좇는 것은 다 탐욕이 큰 걱정거리가 되는 것으로서 탐욕의 근본을 조건으로 하여 이런 재변이 생기는 것이니라.

 

 

또 이 탐욕의 근본을 조건으로 하여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혹은 성문에서, 혹은 성 위에서 서로 칼로 베고 활로 쏘며 창으로 찌르기도 하며, 혹은 쇠 바퀴[鐵輪]로 그 머리를 갈고 쇠를 녹여 서로 퍼붓는다. 이런 고통을 받아 죽는 사람이 매우 많다.

 

 

또 탐욕이란 역시 무상(無常)한 것으로서 사라지고 생겨나면서 번갈아 변화하고 바뀌어 잠시도 멈추지 않으며 풀리지도 않는다. 이렇게 탐욕은 변하고 바뀌어 무상한 것이므로 이것을 일러 탐욕은 큰 걱정거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니라.

 

 

어떻게 해야 마땅히 탐욕을 버리겠는가?

만일 수행해서 탐욕을 버리면 그것을 탐욕을 버렸다고 말하느니라.

 

 

그런데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은 탐욕이 큰 걱정거리가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또한 탐욕의 근본을 버릴 줄 모르며, 사문(沙門)으로서 사문의 위의(威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알지 못하고, 바라문(婆羅門)으로써 바라문의 위의를 제대로 알지 못하나니, 그들은 사문도 바라문도 아니다. 또한 온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遊戱)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탐욕이 큰 걱정거리의 근원임을 자세히 알아 헛되지 않고 참답게 탐욕을 버린다. 그들은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며, 제 자신의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한다. 이것을 일러 탐욕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몸의 맛[色味]인가?

 

 

만일 찰리(刹利)의 여자·바라문의 여자·장자의 여자로서 나이 14세·15세·16세쯤 되고 키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살이 찌지도 않고 야위지도 않으며,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아서 세상에서 둘도 없는 단정한 여자를 보면, 그는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기뻐하고 좋아하는 생각을 낸다. 이것을 일러 몸의 맛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몸의 큰 걱정거리인가?

 

 

또 나중에 그 여자가 나이 80·90 내지 1백 살이 되어 얼굴색이 변하여 달라지고 젊은 시절은 이미 다 지나가서 이는 빠지고 머리는 희며, 몸은 추하게 되고 피부는 늘어나고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며, 등은 굽고 숨은 가쁘며, 몸뚱이는 낡은 수레와 같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팡이에 의지해서 간신히 걸어다닌다.

 

 

어떻겠는가? 비구들아,

처음 볼 때에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었는데, 뒤에는 저렇게 변해버렸으니,

그것이 어찌 큰 걱정거리가 아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일러 몸은 큰 걱정거리[大患]라고 말한다. 다시 만일 그 여자가 중한 병에 걸려 병상에 누운 채 대소변(大小便)도 가리지 못하고 스스로 기동하지도 못하는 것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비구들아,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었는데 지금은 저런 병을 앓고 있는 것을 보니, 그런 것들이 어찌 큰 걱정거리가 아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아, 그것을 일러 몸은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한 것이니라. 또 비구들아, 만일 그 여자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무덤으로 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비구들아,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변해버렸으니, 거기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찌 큰 걱정거리가 아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아, 그것을 일러 몸은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한 것이니라. 또 비구들아, 만일 다시 그 여자가 죽은 지 하루·이틀·사흘·나흘·닷새 내지 이레가 되어 몸이 퉁퉁 부어오르고 썩어 문드러져서 냄새가 나고 한쪽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비구들아,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변해버렸으니, 그런 것들이 어찌 큰 걱정거리가 아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아, 그것을 일러 몸은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한 것이니라. 또 만일 다시 그 여자의 시체를 까마귀·까치·솔개·독수리 따위가 다투어 와서 쪼아먹거나, 혹은 여우·개·이리·호랑이 따위가 와서 씹어먹거나, 혹은 아주 작은 벌레나 곤충들이 갉아먹는 것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비구들아,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해버렸으니, 그 가운데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찌 큰 걱정거리가 아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아, 그것을 일러 몸은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한 것이니라. 또 만일 그 여자의 몸을 벌레와 새들이 반쯤 먹어치워 창자와 밥통과 살덩이와 피 같은 것들의 더러운 모습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비구들아,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해버렸으니, 그 가운데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찌 큰 걱정거리가 아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아, 그것을 일러 몸은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한 것이니라. 또 만일 그 여자의 몸이 피와 살은 모두 없어지고 뼈만 서로 연이어져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비구들아,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해버렸으니, 그 가운데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찌 큰 걱정이 아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아, 그것을 일러 몸은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한 것이니라. 또 만일 그 여자의 몸이 피와 살은 다 없어지고 오직 힘줄이 남아 나뭇단처럼 묶여 있는 것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비구들아,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해버렸으니, 그 가운데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찌 큰 걱정거리가 아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아, 그것을 일러 몸은 큰 걱정거리가 될 뿐이라고 한 것이니라. 또 만일 그 여자의 몸이 해골이 되어 여러 개로 나뉘어 흩어져 저마다 한 곳에 나뒹굴고 있어서, 혹은 다리뼈도 어느 한 곳에 있고 장딴지 뼈도 어느 한 곳에 있으며, 넙적다리 뼈도 어느 한 곳에 있고 허리뼈도 어느 한 곳에 있으며, 옆구리 뼈도 어느 한 곳에 있고 갈비뼈도 어느 한 곳에 있으며, 어깨뼈도 어느 한 곳에 있고 팔 뼈도 어느 한 곳에 있으며, 목뼈도 어느 한 곳에 있고 머리뼈도 어느 한 곳에 있어 사방에 흩어진 것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비구들아,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해버렸으니, 그 가운데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찌 큰 걱정거리가 아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아, 그것을 일러 몸은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한 것이니라. 또 만일 그 여자의 해골이 희거나 혹은 잿빛으로 된 것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비구들아,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해버렸으니, 그 가운데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찌 큰 걱정 이 아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아, 그것을 일러 몸은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한 것이니라. 또 만일 그 여자의 해골이 무수히 많은 해를 지내 썩고 문드러지고 무너져서 흙과 똑같은 색깔이 된 것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비구들아,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해버렸으니, 그 가운데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찌 큰 걱정거리가 아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을 일러 몸은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한 것이니라. 이 몸은 무상한 것으로서 변하고 바뀌어 오래 머무를 수 없으며, 또 거기에는 늙고 젊음[牢强]의 구별이 없다. 이것을 일러 몸은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이 몸을 벗어나는 긴요한 방법인가? 만일 몸을 버리고 여의어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면, 이것을 일러 몸을 버리고 여의었다고 하는 것이니라.

 

 

그런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몸을 보고 몸에 집착하여 그 몸이 큰 걱정거리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또한 버리지도 못하며, 사실 그대로 알지도 못한다. 이들은 사문(沙門)도 아니요 바라문(婆羅門)도 아니다.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威儀)를 알지 못하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지 못하며, 자신의 몸으로 증득(證得)하여 스스로 유희(遊戱)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몸을 보고도 몸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의 큰 걱정거리임을 확실히 알아 능히 그것을 버릴 줄을 안다. 그들은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며, 제 자신이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한다. 이렇게 하는 것을 일러 몸을 버리고 여의었다고 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느낌의 맛[痛味]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아, 즐거움을 느낄 때에 는 곧 나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알고,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괴로움을 느낀다고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안다.

 

 

만일 음식을 먹고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음식을 먹고 즐거움을 느낀다고 알고, 음식을 먹고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음식을 먹고 괴로움을 느낀다고 알며, 음식을 먹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안다.

 

 

만일 음식을 먹지 않아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스스로 나는 음식을 먹지 않아 괴로움을 느낀다고 알고, 음식을 먹지 않아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곧 스스로 나는 음식을 먹지 않아 즐거움을 느낀다고 알며, 만일 음식을 먹지 않아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스스로 나는 음식을 먹지 않아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안다.

 

 

또 비구들아, 만일 즐거움을 느끼면 그 때에는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없다. 그 때에는 내게는 다만 즐거운 느낌만 있다고 안다. 만일 괴로움을 느끼면 그 때에는 즐거운 느낌은 없고, 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없으며, 오직 괴로운 느낌만 있다. 또 비구들아, 만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면 그 때에는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은 없고 오직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만 있다.

 

 

또한 느낌이란 무상한 것이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느낌은 무상한 것이며 변하고 바뀌는 것인 줄을 알기 때문에 이것을 일러 느낌은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말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느낌에서 벗어나는 긴요한 방법인가? 만일 능히 느낌을 버리고 여의어서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면 그것을 일러 느낌을 버리고 여의었다고 하느니라.

 

 

그런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느낌에 대해서 느낌에 집착하여 또한 버려 여의지도 못하고, 사실 그대로 알지도 못한다. 이들은 사문도 아니요 바라문도 아니다.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지 못하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지 못하며, 자신의 몸으로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느낌에 대해서 느낌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이 큰 걱정거리가 되는 것임을 확실히 알아 능히 그것을 버릴 줄을 안다.


그들은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며, 제 자신이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한다. 이렇게 하는 것을 일러 느낌을 버려 여의었다고 한다.

 

 

또 비구들아,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괴로운 느낌과 즐거운 느낌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쳐 교화시켜 그것을 행하게 하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능히 느낌을 버려 여의고 또한 사실 그대로 알아서 남에게 권유하고 가르쳐서 그것을 멀리 여의게 하면 그것은 진정 옳은 일이다. 이것을 일러 느낌을 버려 여의었다고 하는 것이니라.

 

 

비구들아, 나는 지금 탐욕에 대한 집착과 탐욕의 맛[味欲]과 그런 것들이 큰 걱정거리가 된다는 것과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였고, 또 몸에 대한 집착과 몸의 맛[味色]과 그런 것들이 큰 걱정거리가 된다는 것과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리고 느낌에 대한 집착과 느낌의 맛[味痛]과 그런 것들이 큰 걱정거리가 된다는 것과 그것을 버려야 할 것이라는 것에 대하여 말하였다. 모든 여래께서 꼭 행하셨던 것들을 나는 여기에서 다 말해 마쳤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항상 나무 밑이나 비고 고요한 곳에 앉아서 조용히 사유하고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680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