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노니게(長老尼偈, Therīgāthā)》
빠알리경 5부중 마지막에 속하는 소부(小部 Khuddaka Nikaya)에 속해 있다. 소부는 총 15개 경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장로니게경(長老尼偈經 Therigatha)은 9번째 경이며 총 73명의 장로니(비구니)들의 시 522수가 실려있다.
<<장노니게경의 이해>>
성도(成道)에 있어서 성의 차별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문헌으로 《장노니게(長老尼偈)》가 있다. 《장노니게》는 《장노게(長老偈, Theragāthā)》와 함께 붓다의 제자인 비구니들과 비구들의 게송을 모아 놓은 초기 불교문학 작품집이다. 붓다 재세 시부터 후의 아소카 왕 시대 이후에 이르기까지 2~3백 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이 게송들이 구두로 전해지다가 기원전 80년경에 문자로 옮겨져 오늘날까지 전해 온다. 보수적인 남성 중심의 교단에서 이 기록들이 살아남아 후대에 전해졌다는 것은 초기의 불교인들이 이 문헌을 성전에 넣을 만큼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며, 그것은 다시 말해 당시의 비구니들의 위상이 결코 낮은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집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비구니를 포함하여 73명 비구니의 게송 522수가 수록되어 있다. 《장노니게》에 나타난 당시 여성들의 생활상은 “육신을 굽게 하는 세 가지−절구통, 절굿공이 그리고 포악한 남편”이라는 말이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은 끝없는 육체노동과 가난, 그리고 편견에 시달리고 있었음이 게송의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다. 게송의 작자 가운데는 한 남자를 남편으로 했던 모녀도 있었고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그 빚을 갚기 위해 첩이 되었던 여성도 있고 기생도 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이들 여성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장노니들은 교단에 들어오면 그들이 속해 있던 카스트를 초월하여 ‘여래의 딸’로서 존재하게 된다. ‘나는 여래의 아들’이라는 비구의 자각에 대하여 ‘나는 여래의 딸’이라는 자각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것은 당시 일반 사회의 여성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던 평등권이었다. 그들은 세속의 삶을 청산하고 불법 안에 귀의하면서 평등한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장노니들의 게송 어디에서도 아라한이 된다는 최고의 목표에 대한 의심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여성이기 때문에 아라한이라는 목표를 가질 수 없다든지 하는 자기 비하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딸, 아내, 어머니라는 여성의 역할에서 오는 제약이나 고통에 대한 호소는 있으나 여성에 대한 본질적인 열등감은 없다. 뿐만 아니라 “마음이 잘 안정되고 지혜가 솟아날 때, 바르게 진리를 관찰하는 데 있어 여인이라는 점이 무슨 장애가 될까 ?”라는 당당한 의식도 보여주고 있다.
붓다가 출가와 재가,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가르친 근본 교설들이 비구니들의 게송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붓다 교단의 평등성은 설법의 내용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비구니들은 사성제라는 진리에 가장 많은 감화를 받고 있었다. 인간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고통을 없애려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으며,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외치는 비구니가 적지 않다. 장노니들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고통과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 즉 이중고에 대해 토로하고 있으며 그 고통의 원인은 잘못된 견해와 욕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노니게》의 영역자인 리스 데이비즈 여사는 구원, 열반, 아라한과의 성취가 장노니들의 시에서 표현되고 있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괄호 안의 숫자는 표현이 나와 있는 게송의 수)
A.해방 제거의 부정적인 모습으로는
a.열반(5)
b.자유(17)
c.안락, 죄의 종료(11)
d.생성 또는 생의 끝(9)
e.갈망의 종료(10)
f.휴식(3)으로 나타났다.
B.긍정적인 모습으로는
1)주관적으로는
a.정신적인 교화가 ①빛(12) ②통찰력(8)으로 마음에 그려지고 b.느낌의 상태는 ①행복(5) ②냉정, 고요, 만족(12) ③평화, 만족(11)으로 마음에 그려지고 c.의지의 상태는 ①자제(14)로서 마음에 그려진다.
2)객관적으로는
a.진실(3) b.최고선(1) c.최고의 기회(1) d.절제된 생활(2) e.최고자와의 영적인 교섭(6) f.취미에 맞는 일을 하는 것(5)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표현 가운데서도 ‘더 이상 몸을 받지 않는 것’은 모든 게송에서 직접적인 표현이 없는 경우에도 항상 내재하는 인식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리스 데이비즈여사는 《장노니게》와 《장노게》를 비교 분석하여 장노니의 시에서 성취된 목표가 ‘해방’ ‘자유의 획득’ 등으로 마음에 그려진 비율(23%)이 장노의 시에서 이에 일치하는 비율(13%)보다 높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그 ‘자유의 획득’이나 ‘해방’은 죽음과 재탄생의 순환인 윤회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많은 여성들이 아라한의 과위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장노니게》에는 2명의 재가 여성도 과위에 오른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들은 과위에 오르자마자 출가하여 비구니가 된다. 이러한 사실로서 초기불교에 있어서 재가 여성의 성도를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성도가 출가자만의 몫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론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1271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장노니게(장로니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노니게 (1-174) (0) | 2018.08.0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