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달마(阿毘達磨) 불교의 발달
일반적으로 아비달마 논서에는 세 가지 발달 단계가 있다. 그 첫째 단계에서는 경장(經藏) 가운데서 이미 교법을 정리, 조직하기도 하고 해설이나 주석을 하기도 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비달마는 아니며 경장 가운데 아비달마적 경향을 띠고 있다고 할 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발달하여 두번째 단계에 이르면 아비달마(藏) 즉 논장(論藏)으로서 경장에서 독립하는데, 거기에서는 교법의 조직이나 해석이 더욱 더 촉진되었다. 다음 세번째 단계에서는 그것이 촉진된 결과 아비달마는 단순히 아함경(阿含經)을 해석하거나 조직하는데 머물지 않고 나아가 그러한 기초 위에서 장대한 교의체계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아함경전의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즉흥적, 우연적 요소가 많았던 석존의 교설을 그가 입멸한 후 정리하여 전승한 것이기 때문에 본래 짧고도 단편적인 경의 집성이다. 그러한 비체계적인 아함의 경설이 점차 정리되고 조직화되어 하나의 교의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함 가운데 나타나는 아비달마적 요소로서는 대개 두 가지 종류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교설 속의 어구에 대해 주석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갖가지 교설을 정리하고 배열, 조직하는 것이다. 석존의 교법은 일반적으로 쉬운 말로 이야기되며 특이한 용어나 난해한 어구가 사용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석존 자신이 청중을 위하여 그가 사용한 말의 의미를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며 또 어떤 때에는 석존이 설법을 마친 후 청중 가운데 선배가 후배에게 스승의 말씀에 대하여 해설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석존이 입멸한 후 시대가 지남에 따라 또 불교가 전파된 지역이 확대됨에 따라 교설 속의 어떤 어구에 대해 주석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더욱 더 많아지게 되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아함경전에서는 석존 자신이 그러한 주석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설법을 마친 후 제자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 그것을 해설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 두 사람의 유력한 제자가 서로 대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 어느 것이든 그렇게 이루어진 설명과 해석을 옆에서 듣고 있는 자가 훗날 그 상황을 이야기하는 형식을 기술하는 것이 아함경전의 원칙이다. 그러나 형식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설명과 해석 모두가 석존 재세시대에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그 중 상당부분은 석존이 입멸한 후 승단 내부에서 점차로 발전한 아비달마적 연구에 의해 부가되어진 해석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부가된 부분이 점점 더 증대하여 마침내 아함경전 속에 도저히 포함시킬 수 없을 만큼 되었을 때 아함으로부터 분리 독립되었으며, 여기서 아비달마라고 하는 불교성전의 새로운 장르가 성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교설이 정리, 조직되었다고 하는 측면에서 볼 때 그러한 방식으로서 두드러진 것은 숫자와 관계있는 교설을 그 숫자대로 정리하여 일법(一法), 이법(二法), 삼법(三法)과 같은 순서로 배열하는 방법과 교설을 내용에 따라 분류, 구별하여 동일한 주제를 가진 것들을 모아 한 곳에 정리, 배열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를 ‘법수(法數)’에 의한 정리라 하고, 후자를 ‘상응(相應)’에 의한 정리라고 한다. 각각의 짧은 경 가운데에는 법수에 의해 정리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몇 개의 짧은 경을 모은 경전군에다가 그러한 방법을 적용시킨 것도 있다. 또 다수의 경전군을 모아 동일한 방법으로 전체를 정리한 것이 증지부(增支部), 증일아함(增一阿含)이다. 상응에 의해 정리하는 방법은 짧은 경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경전군상에는 그것을 적용시킨 예는 많은데 다수의 경전군을 그 같은 방법으로 정리한 것이 상응부(相應部), 잡아함(雜阿含)이다.
경장(經藏)은 그것이 승단 안에서 전승되는 동안 거기서 아비달마적 연구가 고조됨에 따라 점차 이같은 부가, 증가, 정리, 안배가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경장을 보면 그 중에는 원초적이고도 간결한 교설을 그대로 전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비달마적 경향이 진전되어 이제 거의 하나의 아비달마 논서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내용이나 형식을 갖추고 있는 부분도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경장 안에서 점차 아비달마적 경향이 발달하여 마침내 독립된 아비달마 논서가 형성되었다. 즉 아비달마발전의 두번째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성립한 최초기의 아비달마는 아함 속의 아비달마적 경향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과 비교할 때 질적으로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 주로 아함에 나타난 그러한 경향을 각 부파에서 그대로 연장, 발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내용에 있어서도 각 파 사이에 공통된 점이 많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이미 각 부파의 독특한 교의학설을 반영한 특수한 용어나 특수한 해석이 적지 않게 드러나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독립한 아비달마 경장은 순조롭게 발달하여 마침내 아함 경전의 연장적인 입장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나 서서히 새로운 형태의 논서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부파적 색채는 점차 농후해지고 술어를 독특하게 해석, 정의하였으며 여러 가지 개념들의 상호관계에 대한 극단적일 정도의 자세한 분석적 고찰이나 개개의 문제에 대한 전문적 연구 등이 두드러지게 발달하였다. 그리고 아비달마 발전의 세번째 단계에 이르러 그러한 교설을 조직적으로 논술하는 웅장한 구성을 지닌 논서가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논서의 발달
설일체유부의 논서는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즉 초기의 논서는 경장 가운데 이미 존재하고 있던 아비달마적 경향의 직접적인 연장으로 보아야 하는 것, 중기의 논서는 그 뒤를 이어 부파의 독특한 교설을 점차 발전시킨 것, 후기의 논서는 그렇게 발전된 교설을 조직적이고도 일관된 체계로 논술한 것이다.
초기의 논서로서는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과 <법온족론(法蘊足論)>이 있다. <집이문족론>은 장아함에 속하는 경전의 하나인 <싱기티숫탄타>의 내용을 부연, 해석한 것이다. <싱기티숫탄타>는 여러 가지 불교술어를 1에서부터 10까지의 숫자에 따라 열거한 경전으로 상당히 아비달마적인 색채가 농후한 경인데 논에서는 그 경전에 열거되고 있는 술어 하나하나에 주석적인 설명을 부가하고 있다. 이것은 아함 가운데 특정한 술어 하나하나에 주석적인 설명을 부가하고 있다. 아함 가운데 특정한 하나의 경전을 채택하여 그것에 해석한 뜻을 부가한 것이기 때문에 아함의 직접적인 연장으로 볼 수 있으며 논장이 경장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하나의 원초적인 형태를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다. <법온족론>은 <집이문족론>처럼 특정한 한 경전에 대해 주석하는 형태가 아니라 아함에서 21가지 주요한 교설을 선정하여 교설 하나마다 하나의 장을 할애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그 교설을 담은 경문을 첫머리에 게재하고 난 다음 이에 대해 자세히 해석하는 방법은 요컨대 최초기 아비달마 논서의 특징적인 것이다.
이 두 론은 아비달마 논서로서 성립하였지만 아직 경전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경전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논’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는 이미 설일체유부 특유의 용어나 사상도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여러 부파와 공통되는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 다음에 성립한 것으로 생각되는 <시설족론(施說足論)>에서부터 아함 경전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스타일에 있어 아비달마 논서 특유의 색채가 짙게 나타난다. <식신족론(識身足論)>이나 <계신족론(界身足論)>에 이르면 법수에 의해 종합, 정리된 술어는 매우 복잡하게 해석되고 각 술어간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극단적일 정도로 자세한 분석이 이루어져 아비달마적 논의는 현저하게 정치해지고 번쇄해졌다. <시설족론>은 아비달마적인 우주론과 세계론을, <식신족론>은 마음의 작용에 대한 분석을, <계신족론>은 마음과 마음의 작용에 대한 해석을 각각 크게 발전시켜 설일체유부 교학의 기초를 확고히 하였다.
바수미트라가 지었다는 <품류족론(品類足論)>은 원래 몇 개의 작품을 한데 모아 하나로 만든 것일지도 모르며, 혹은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술어에 대한 분석적 고찰이 더욱 더 발전되어 있으며 동시에 ‘오위(五位)’설이나 ‘구십팔수면(九十八隨眠)’설 등 설일체유부의 독특한 이론이 확실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논서이다.
카트야야니푸트라가 저술한 <발지론(發智論)>의 출현은 설일체유부 아비달마 역사상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시설족론>에서부터 <품류족론>에 이르는 동안 여러 논들이 주로 각기 특정한 문제를 분담하여 고찰하고 있는데 반해 이 론에 이르면 비로소 설일체유부의 학설 전반에 걸쳐 조직적인 논술이해도 8장으로 이루어진 이 론의 구성이 반드시 완전하고도 정연한 순서로 작성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며, 고작해야 관련이 있는 문제를 가능한 한 곳에 모아 논술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발지론>에 대한 매우 방대한 주석서가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이다. 이 논서가 나타남으로써 문제의 세분화는 한층 더 촉진되었고 고찰 역시 더욱 더 정밀해졌다. 실제로 이것은 단순히 발지론의 주석일 뿐만 아니라, 만약 어떤 연관되는 부분이 있다면 발지론에서 언급되지 않는 문제까지도 새롭게 채택하여 논의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부파내의 여러 가지 이론(異論)이나 다른 학파의 학설을 수없이 인용하고 있어서 실로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가능한 한 집대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주석방법에 있어서도 반드시 발지론의 문구 하나하나에 대해 충실하게 해설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문제라고 인정되는 부분에서는 특별히 충분한 분량을 할애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극히 간략하게 취급하는 것이 상례였다. 따라서 이 론은 실질적으로 발리본론의 한계를 뛰어넘어 분명히 독자적인 커다란 발전을 보이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모두 발지론의 조직에 따라 그 문의에 근거하여 주석하는 태도를 지키고 있다.
<아비담심론> 역시 작은 론이지만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조직화하는 데 특기할 만한 공헌을 하였다. 이 론은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7장에서는 복잡하게 발달한 설일체유부의 사상을 정연하게 조직하고 있다. 그것은 <발지론>에서 이루어진 8장의 조직에 비해 훨씬 진보한 것이다. 제1, 2장에서는 이 학파의 근본입장으로서 法의 이론을 설하고 제3, 4장에서는 미혹한 세계의 실상을 밝혔으며 제5, 6, 7장에서는 깨달음의 경지와 그것에 도달하는 길을 논하였다. 이 같은 론의 구성방법은 이후 거의 모든 설일체유부 논서가 답습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 논서 이후를 ‘후기의 논서’라고 한다.
<구사론> 역시 그것의 연장, 발전이지만 <아비담심론> 등에서 맨 마지막 3장에 포함된 보유나 부록을 정리하여 앞의 7장 가운데 적당한 곳에 수록하고 다른 새로운 1장을 더하여 미록한 세계의 현실을 밝히는 부분으로 삼았기 때문에 모두 8장으로 이루어진 한층 더 정연한 조직이 되었다. 거기다 다시 론의 말미에 특별히 독립된 1장을 부가하여 무아의 문제를 논하고 있다. <집이문족론><법온족론>에서 시작하여 <발지론>에서 학설의 대강의 전모를 드러내고 <아비담심론>에서 그 조직적 논술의 정형을 갖춘 설일체유부 논서는 이 <구사론>에서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체계적 논서의 완성태라고 할 수 있는데 분량에 있어서도 <발지론>의 한 배반, <아비담심론>의 두 배나 되는 대작이다.
<구사론>의 저자는 바수반두(Vasubandhu)이다. <구사론>은 설일체유부의 아비달마 사상을 상세히 설명하여 밝히고 있으며 특히 많은 불교술어에 대하여 명쾌한 정의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후에 불교교리의 기초가 되는 교과서로서 활발한 학습과 연구가 이루어져 수많은 주석서, 연구서, 해설서가 작성되었다. 그러나 <구사론>은 설일체유부의 학설만을 충실히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때때로 저자 자신의 견해에 따라 전통 학설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다른 주장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럴 경우 설일체유부의 정통설을 비판하는 저자의 입장이 경량부(經量部)의 그것과 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설일체유부의 논서라고 단정짓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구사론>을 계승한 것으로 상가바드라(Samghabhadra, 衆賢이라고 한역)의 <아비달마순정리론>과 <아비달마장현종론>이 있다. 이 두 가지 논서는 운문의 부분에서는 구사론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채용하지만 산문으로 된 해설부분에서는 바수반두의 학설을 엄격히 비판하여 정통파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선양하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즉 기본골격은 구사론을 따르되 그 학설의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반박하는 것이다. <순정리론>은 그 분량에 있어 구사론의 두 배 이상이 되며, <현종론>도 구사론보다 많은 분량으로 되어 있는데 전자에서는 특히 그 예리한 비판과 상세한 반론이 두드러지며 후자에서는 비판보다 오히려 정통설의 천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비달마의 법체계]
다르마의 이론
다르마라는 말은 불교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었지만 아비달마(abhidharma)라는 말은 불교의 독자적인 용어로서 이미 아함경에 나타나고 있다. 아함에서는 아비달마는 ‘법에 대하여’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법에 대하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비(abhi)에는 ‘향하여, 대하여’라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나게, 매우’라는 의미도 있으며 이로부터 아비달마는 ‘훌륭한 법’으로 해석하는 설도 대두되었다. 설일체유부에는 아비달마를 ‘대법(對法)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팔리 상좌부에서는 아비달마를 오로지 ‘훌륭한 법’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르마란 불타가 설한 교법을 말하지만 불타의 교법은 현실의 인간존재를 문제삼고 있다. 그 때문에 다르마는 그대로 현실의 인간존재를 가리키는 셈이다. 그리고 현실의 인간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현상으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현상을 성립시키고 있는 ‘요소적 실재’이기도 하다. 현상으로서의 현실은 육체와 정신, 외계 등으로서 나타나고 있지만 다시 그것을 세세한 요소로 분석할 수가 있다.
다르마의 실재성에 대하여 <구사론>에서는 존재를 승의(勝義)의 존재와 세속(世俗)의 존재로 나누고 승의의 존재를 다르마라 하고 있다. 예컨대 병은 깨어지면 없어지고 만다. 이러한 존재를 세속적 존재자라고 한다. 인간존재도 육체적, 정신적인 갖가지 요소의 복합체이기 때문에 세속적 존재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병의 색이 청색이었을 경우 그 청색은 병이 깨지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병을 무한히 부수면 최후에는 극미(極微)로 되지만 청색은 그 경우에 존재성을 상실하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svabhava, 自性)을 승의의 존재라고 하고 이것을 다르마로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다르마는 요소로서의 실재이다. 그러나 현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무상하다. 따라서 법은 실재이긴 하지만 영원한 실재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법이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으로 나뉜다. 상주하는 법은 무위법이며, 무상한 법은 유위법이다. 유위법과 무위법의 구별은 이미 아함경에 보이지만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부파불교의 시대이다. 무위법의 대표는 열반이다. 열반은 시간을 초월한 실재이며 불타는 깨달음을 통해 이 열반과 합일한 것이다.
<구사론>에서는 승의의 법은 열반뿐이지만 법상법(法相法)도 법에 포함된다고 말하고 있다. 자상을 갖는 것이 법이며 열반도 이 중에 들어가지만 유위법도 자성을 갖는 법이다. 그러나 유위법은 무상하다. 이 무상이라는 것에 관해 상좌부나 설일체유부는 유위법은 자성을 갖지만 찰나(刹那)만 현재에 존재하고 해석했다. <구사론>에서는 ‘유위법은 찰나 멸하기 때문에’라고 서술하고 있다. 유위법은 실재이지만 찰나 멸한다는 점에서 법은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을 추구하면 ‘법의 공(空)’이라는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그러나 부파불교에서는 ‘법의 유(有)’의 문제를 강조함에 그쳤을 뿐, 법공사상에는 이루지 못했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과제가 된다.
또 법에 대한 분류로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이 있다. 유루법이란 루(漏) 즉 번뇌에 더럽혀져 있는 법을 말한다. 무루법이란 번뇌에 더럽혀져 있지 않은 법을 말한다. 불타나 아라한의 깨달음의 지혜는 번뇌를 모두 끊고 있기 때문에 무루이다. 무위법도 번뇌와 결합하지 않기 때문에 무루이다. <구사론>에서는 ‘도제(道諦)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유위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미혹의 세계의 원인과 결과는 유루인 것이다.
완성된 설일체유부의 이론에 의하면 존재의 요소로서 법을 75가지로 분류하고 그것을 다시 다섯 가지 그룹으로 나누는데 이것을 이른바 오위칠십오법(五位七十五法)이라고 한다. 오위(五位)라는 것은 색법(色法), 심법(心法), 심소법(心所法), 심불상응법(心不相應法), 무위법(無爲法)을 말한다. 존재의 제1법으로 물질(色)을 들고, 제2로 그것에 대립하는 마음을, 제3으로 마음과 상응하는 심소법을, 그리고 제4로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심불상응을 제시한다. 이들 사종은 유위법이다. 이들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제5의 무위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색에 11법, 심에 1법, 심소에 46법, 심불상응행에 14법 및 무위법에 3법을 상정하여 모두 75법이되는 것이다. 이러한 75가지의 법은 상호 다양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같은 인과 관계 위에서 유동적으로 구성되고 있는 것이 현실세계이다. 그렇다고 할 때 그러한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다.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설일체유부의 주장은 바로 이러한 존재의 기본적인 요소인 법에 관한 것이다.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데, 이 모든 것이 있다, 즉 존재한다는 주장은 모든 것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통하여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렇다면 일체의 사물은 무상하다고 하는 불교의 기본적 입장과 모순되지 않는가라는 것이 바로 이 부파가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게 하였던 문제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모든이라는 것은 소박하게 사물, 존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존재의 기본적 요소인 법의 모든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러한 논란이 반드시 적용되지는 않는다. 과거의 법도, 현재의 법도, 미래의 법도 모두 있다고 하는 것이 일체유의 의미이며, 그러한 과거, 현재, 미래 어디에서도 존재하는 법의 고찰을 통해 비로소 일체의 사물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분명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설일체유부 아비달마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미혹한 세계와 깨달음의 세계
불교의 세계론은 수미산설로, 이는 중앙에 수미산이 있으며 그 사방에 4개국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남섬부주(南贍部州), 동승신주(東勝身州), 서우화주(西牛貨州), 북구노주(北俱盧州)의 4주이다. 이 중 우리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은 남섬부주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이 4주의 밖은 바다인데, 그 바닷물이 새지 않도록 외측은 소철위산(小鐵圍山)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그 바깥에는 또 바닷물이 있고 산맥이 있어 도합 구산팔해(九山八海)가 있다고 했다. 가장 외측에는 대철위산이 있으며 이것이 대지의 외측이다. 이 지리적인 세계를 기세간(器世間)이라고 한다.
인도인은 이 지상 윗쪽에는 천계가 있고 천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욕계의 천계와 색계의 천계가 있다. 욕계의 천은 6종이며, 수미산의 정산은 대지로서 그 사방에 사천왕중천(四天王衆天)이 있고 수미산의 한가운데에 33천이 있다. 그 위에 밑에서부터 차례로 야마천, 도사리천, 악변화천, 타화자재천이 있다. 이상을 육욕천(六欲天)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도인의 세계관을 불교에서 수용하여 이것을 교리와 결합시킨 것이다.
미혹한 세계의 인과(因果)는 한마디로 말해 번뇌에 의해 업을 일으키고 그로 말미암아 윤회의 괴로움에 빠지는 세계이다. 이 우주 안에서는 무수한 생명이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생명있는 것을 불교에서는 중생(衆生) 혹은 유정(有情)이라고 하는데, 설일체유부에서는 이러한 중생들이 겪는 여러 가지 생존방법을 삼계(三界)와 오취(五趣)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삼계라고 하는 것은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이다. 욕계와 색계는 물질적인 세계이고, 무색계는 물질이 아닌 세계 즉 순수한 생존의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질적 세계 가운데 특히 욕망, 다시 말해 생물의 본능적 욕망이 강하게 일어나는 영역을 욕계라 하고, 욕망이 그다지 왕성하지 않은 영역을 단순히 색계라고 한다. 욕계보다는 색계가, 색계보다는 무색계가 한층 더 수승한 생존방법이며, 그 장소에 있어서도 욕계보다 색계가, 색계보다는 무색계가 위쪽에 위치한다. 즉 지하의 세계와 지표의 세계 그리고 공중의 세계 중 하층이 욕계에 속하고, 천계의 상층이 색계에, 나아가 천계의 최상층이 무색계에 속한다.
지하의 세계에는 지옥의 생활이 있고, 지표의 세계에는 아귀, 축생, 인간의 생활이 있고, 천계에는 천(天, 하늘의 신들)의 생활이 있다. 이것이 오취이다. 그리고 지옥, 아귀, 축생은 인간에 비해 열등하고 고뇌가 많으며, 좋지 않은 경계이기 때문에 삼악취(三惡趣)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 하늘은 인간세계에 비하면 휠씬 낫고 행복하며 좋은 경계이다. 그러나 천계도 결코 영원한 지복(至福)의 세계는 아니며 유한한 세계이고 전변이나 쇠망을 면할 수 없는 세계이다. 이것 역시 윤회하는 경계인 것이다. 천계에 살았던 자라고 할지라도 다음 생에는 아귀나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중생은 오취 중 어딘가로부터 어딘가로의 끝없는 생사의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다.
이같은 삼계와 오취로 설명되는 윤회적 생존의 다양한 모습은 중생이 행한 선악업의 결과이다. 과거의 선한 행위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좋고도 즐거운 결과로 되고, 과거의 악한 행위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좋지 않고도 괴로운 결과로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업보는 엄격히 개별적인 것이다. 타인이 행한 선행의 좋은 결과를 자신이 받을 수 없으며, 자신이 행한 악행의 좋지 않은 결과를 타인에게 억지로 떠맡길 수 없다. 업의 문제는 나 한 사람의 문제이며, 하나의 행위적 주체의 문제이다.
업보의 필연과 자업자득, 이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중생의 생활 속에 선악의 근거가 성립하며 도덕의 근거가 성립한다. 업과 윤회의 세계라는 것은 다시 말해 선악의 세계, 세간적 도덕의 세계이다. 이 세계 안에서 인간은 악을 피하고 선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악취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선업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업에 의해 선취(善趣 즉 천계)에 태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불교가 목표로 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윤회의 세계를 초월하는 것으로, 그것은 업보의 속박에서 벗어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선취에 태어나게 하는 선업은 여전히 세간적 도덕에서 선 곧 유루의 선이다. 따라서 번뇌를 떠나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루의 지혜에 의한 무루의 선업이 필요하다. 그것은 세간적 도덕을 초월한 출세간의 도이다.
무루의 지혜에 의해 번뇌를 하나하나 끊고,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는 성도는 설일체유부 아비달마에서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의 세 가지로 설명된다. 맨 마지막의 무학도는 도라고 하지만 앞의 견도, 수도의 과정을 통해 모든 번뇌를 끊은 결과로써 얻어지기 때문에 과정이 아니라 목적이다. 무학이라는 것은 더 이상 배워야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의미이다.
따라서 삼도(三道)라고 해도 사실상 번뇌를 끊는 수행의 도는 견도, 수도뿐이다. 그러나 보통 그에 앞서 오랜 예비적 수행의 단계가 있어야 한다. 즉 계율을 지켜 그 생활을 올바르고 청정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삼매를 닦아 산란한 마음을 점차 아주 맑은 안온의 상태로 이끄는 도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심신의 수련에 의해 수행자가 마침내 무루의 지혜를 일으켜 번뇌를 끊게 될 때 그는 성도(聖道)에 들어간 것이며, 이제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이 아닌 성자인 것이다.
성도(聖道)의 첫번째는 견도(見道)이다. ‘견(見)’이라는 것은 사성제를 관한다는 의미이다. 견도는 고집멸도인 사성제의 도리를 관하고 알아서 무루의 도를 일으켜 바로 88가지 번뇌를 단절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번뇌는 수행자가 무지하고 도리에 어둡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그가 일단 사성제의 진리성을 인식한다면 단번에 단절된다. 여기서 아는 것은 바로 끊는 것이다.
계속해서 수행자는 수도의 과정으로 행한다. 수도에 있어서 단절해야 할 번뇌는 10가지인데 모두 정의(情意)적인 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견도에서 끊어진 이지적 번뇌와는 달리 단순히 이성상의 이해만으로는 끊을 수 없다. 즉 여기서는 아는 것이 바로 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알아도 여전히 끊어지지 않는 것이 애욕이라든지 증오와 같은 정의적인 번뇌의 공통된 성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의 과정에서는 삼매의 수련을 거듭하고 사성제의 관찰을 반복함으로써 또한 싫증내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마음을 고양함으로써 끊기 어려운 번뇌가 점차 단절되는 것이다.
성자가 견도와 수도의 과정을 거쳐 모든 번뇌를 다 끊어버렸을 때의 그를 아라한(阿羅漢, arahan)이라고 한다. 아라한은 원래 ‘공양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말로써 깨달음에 이른 불타를 그렇게 부르며 또한 불타의 제자로서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비달마에서 설해진 성자의 단계 중 가장 높은 계위를 가리킨다. 곧 아비달마에서는 아라한과 다시 말해 아라한의 계위를 얻는 것이 모든 출가 수행자가 목표로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수행자가 수행도의 예비적 단계를 마치고 난 후 비로소 견도에 들어와 88가지 번뇌를 단절하여 수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예류향(預流向)이라 하고, 바야흐로 이 수도에 들어간 단계를 예류과(預流果)라고 한다. 예류과로부터 아라한과 사이에 일래과(一來果), 불환과(不還果)의 두 단계를 두며 예류과에서 일래과에 이르는 과정을 일래향, 일래과에서 불환과에 이르는 과정을 불환향, 불환과에서 아라한과에 이르는 과정을 아라한향이라고 한다. 이러한 모든 계위를 합해 사향사과(四向四果)라고 하는데, 성도(聖道)에 있어서 번뇌를 단멸하는 정도에 따라 그 단계를 설정하였다. 예류(預流)라는 것은 ‘불법(佛法)의 흐름에 들어간 자’의 뜻이고 일래(一來)는 ‘이제 인간과 하늘 사이를 오직 한 번만 왕래하는 자’의 뜻이며, 불환(不還)은 ‘이제 더 이상 욕계에 돌아옴이 없는 자’의 뜻이다.
아라한은 원래 불타를 의미하였다. 이 말은 경전에서 불타의 다른 이름의 하나로서 잘 쓰이고 있어서 실제로 여래라든가 세존이라고 하는 말과 같다. 그러나 아비달마 논서에 있어서 수행자가 이르러야 할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로서의 아라한과 불타의 경지는 분명히 구별되고 있다. 무루의 지혜에 의해 모든 번뇌를 끊고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모두 불타일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범부로터 성자로, 그리고 아라한으로의 도는 보살로부터 불타로의 도와 동일하지 않다.
대개 범부로부터 아라한으로의 도는 오로지 번뇌의 단절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자의 도이지만 보살로부터 불타로의 도는 그 밖에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커다란 과제를 안고 있다. 즉 자비로써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는 이타행(利他行)이 바로 그것이다. 범부로부터 아라한으로의 도는 사람들에게 널리 개방되어 있지만 보살로부터 불타로의 도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보살로서 불타로의 도에 들어설 수 있는 사람은 과거의 무수한 생애에서 한량없는 덕을 쌓고, 사람들을 위하여 자비를 베푸는데 소홀함이 없는 무한한 이타성과 자기를 연마한 존재뿐이다. 이렇게 선택된 희유한 인간이 그 도를 성취하여 불타로서 출현하는 것은 실로 십억의 세계를 그 속에 포함한다는 전 우주를 통해 보더라도 동시에 두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아비달마 논사들은 석존을 숭앙하는 깊은 마음에서 불타의 위대함을 극구 찬탄하면서 스스로 목적하는 바를 아라한과에 두어 아라한과 불타의 거리를 엄격히 유지하였다.
3. 대승불교
대승(大乘)은 소승(小乘)에 맞서는 말로, 커다란 승물(乘物, 탈 것) Maha-yana를 의미한다. 소승 즉 작은 hina 승물(乘物)이란 열등한 승물이라는 뜻이며 대승불교가 처음 일어났을 때 그 이전의 모든 불교를 일괄하여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것이다. 따라서 소승교도 자신은 이 명칭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승불교가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진실한 깨달음에로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가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승불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에서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대승의 길을 걷는 사람을 보살(菩薩)이라 하고, 소승의 길을 걷는 사람을 성문(聲聞) 및 연각(緣覺)이라 한다. 소승에는 이들 두 길이 있으므로 소승을 이승(二乘)이라고 한다. 대승에서 보면 이들 성문, 연각이라는 구별은 이승이 궁극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그들도 참으로 궁극적인 것을 구한다면 모두 대승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전 불교는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길이며, 그런 의미에서 일승(一乘)이라고 한다.
1) [대승불교의 성립]
불탑신앙과 불전문학
불교교단은 석존이 입멸 후 약 100년간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러나 100년쯤(기원전 4세기) 되어서는 계율과 교리에 대한 엇갈린 견해가 발생하여 마침내 교단은 분열하기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불교의 전파범위가 넒어짐에 따라 각 지방으로 퍼진 불교는 그곳의 기후, 풍토, 습관 내지 문화적 제반 사정에 영향을 받음으로써 비구들의 생활양식이 변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법과 율에 대한 다른 견해가 생겨나 교단은 통일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예컨대 붓다는 비구는 신자로부터 금이나 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한편에서는 시대적 상황변화에 따라 그것의 완화를 요구하였다. 이로부터 불교교단은 전통적인 계율을 고수하려는 보수적 경향의 상좌부(上座部)와 계율을 자유로이 해석하려는 진보적 경향의 대중부(大衆部)로 근본 분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근본 분열한 불교교단은 그 후 교리상의 해석을 둘러싸고 분열의 분열을 한 후 불멸 400년이 지날 무렵에는 근본 2부를 포함하여 20여 부파로 분열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 시기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하며 분열이전의 불교의 초기불교, 원시불교, 근본불교라고 한다. 나아가 이 시기의 출가자들은 수행의 최고단계인 아라한(阿羅漢)에 관한 문제를 비롯하여 불교의 일체 교법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논의하여 방대한 논서를 작성하였는데 이러한 논서를 아비달마(阿毘達磨)라고 하며 그로 인해 이 시기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 하기도 한다.
아비달마란 붓다 교법에 대한 연구, 해석이라는 의미로 부파불교란 말이 분열된 교단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아비달마불교라는 말은 그들의 사상적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불교는 지나치게 번쇄하고 난해하여 점차 본래의 의도를 상실하게 되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현실의 괴로움에 대해 연기설에 입각하여 고찰하고 바른 지혜와 수행으로 해탈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 원칙 위에 교리를 세운 것이기는 하지만 점차로 실제의 수행보다는 번쇄한 교리해석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하였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 반발하고 비판하는 집단에 의해 대승불교가 싹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불교가 흥기할 무렵 정통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였던 바라문교는 기원전 2세기경 사성(四姓) 즉 브라흐마나, 크샤뜨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네 계급에 대한 종교적 의무와 생활규범 등을 규정한 <마누법전>을 비롯한 각종 제사경전과 서사시가 작성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종래 베다성전이 바라문의 전유물이었다면 새로이 편찬된 <마하비라타>와 <라마야나> 등의 서사시는 일반 대중이 애호하였던 종교문헌으로 이 두 서사시를 기점으로 그 이전을 바라문교의 시대, 그 이후를 힌두교의 시대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베다>에는 보이지 않던 시바와 비슈누가 최고신으로 등장하는데, 다른 수많은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개성이 강한 신격(神格)이 되면서 다양한 신자층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마하비라타>의 일편을 알려지는 <바가바드 기타>는 오늘날까지도 힌두교의 최고성전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바라문교의 형식적인 제사주의를 배격하고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인 신애(信愛, bhakti)를 강조하고 있다.
불탑신앙과 불전문학
아쇼카왕 이래 부파불교의 출가자들은 국왕이나 장자들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원조에 힘입어 광대한 장원을 소유하게 되었고 안정된 경제적 기반 위에서 선정과 교법에 대한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단이 분열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붓다의 교법에 대한 부파간의 쟁론을 초래함으로써 한편으로는 학문적, 철학적으로 발전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속의 대중들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부파불교의 아비달마 교학은 초기불교의 교설을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지만 너무나도 번쇄한 이론체계를 전개시켜 전문적으로 교학을 연구하는 출가 수행자가 아니고는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난해한 교리나 엄격한 계율이 아니라 불타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었다.
이에 따라 법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와 논의를 위주로 하는 기존의 승원불교에 만족하지 못한 재가자와 이에 동조하는 출가자들은 점차 불탑(佛塔)에 모여들게 되었다. 불탑은 부처님의 유골 즉 사리(舍利, sarira)를 봉안한 무덤으로 ‘포개어 쌓는다’는 뜻의 스투파(stupa)에서 비롯된 말이다. 부파불교에 있어 붓다는 중생을 구제하는 이가 아니라 법으로 인도하는 스승, 즉 도사일 뿐이었기 때문에 법을 떠난 불신(佛身)의 숭배는 무의미한 것이었으며 불상이나 불탑의 숭배 역시 그러하였다. 또한 붓다는 쿠시나가라에서 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들었기 때문에 진리 자체로서는 실재할지라도 인격으로서는 실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붓다의 사리에 대한 공양과 예배는 무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으로 불탑의 조성은 생천(生天)을 보장하였고, 따라서 불탑의 조성과 경영은 재가신자들의 몫이었다. 나아가 그들은 불타의 탄생지인 룸비니와 성도지인 붓다가야,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의 녹야원, 입멸지인 쿠시나가라 등을 성지로서 숭배하였으며 그곳에 사당을 세워 순례하기도 하였다.
기원 전후의 시기가 되면 불탑의 건립이 매우 활발해지는데 여기에는 꽃이나 향 등이 바쳐지고 보물과 귀금속 등이 봉헌되었으며 춤과 노래가 베풀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은 기존의 부파 교단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비구들은 보통 승원이나 정사(精舍)에 머물렀으며 그곳은 불탑과는 전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였다. 그들에게는 금이나 은을 받는 일, 춤추고 노래하는 것 등이 금지되었다. 부파불교는 법 중심의 불교, 계율을 중시하는 출가자 중심의 불교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세속의 직업에 종사하는 재가자로서는 계율을 엄격하게 지킬 수가 없고, 선정(禪定)도 충분히 실천할 수 없으며 그것을 통해 증득되는 교법의 참다운 이해는 더욱 더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일반 대중들은 붓다에 대한 소박한 믿음으로 예배하고 공양함으로써 구원을 바라게 되었고, 그것이 행해진 대상은 불탑이었다. 만약 법 중심의 출가교단에 반하여 붓다 중심의 교법을 발전시킨 어떤 그룹이 있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출가교단에서 독립하여 자신들의 교법을 발전시키고 관불(觀佛)이라는 종교행위를 실천하기 위한 장소로서 불탑을 선택하였을 것인데 바로 이 같은 불탑교단의 재가성과 신앙적 성격이 대승불교 성립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대승불교 성립의 또 하나의 주요한 원인이면서 불탑 신앙과 밀접히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불전(佛傳) 문학이다. 불탑 신앙자들이 생각한 붓다는 이제 더 이상 법의 도사나 아라한이 아니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생애를 거쳐 오면서 초인적 이력을 쌓을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사모와 찬탄은 종래 법 중심의 이론적 교설과는 다른 형태의 문헌을 낳게 되었으며, 그것에는 논리적 설명을 초월한 비유와 은유, 혹은 우화의 성격을 띤 문학적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불전문학으로 이 같은 불전문학을 주도한 그룹을 찬불승(讚佛乘)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자타카>는 붓다의 전생을 설한 불전의 한 장르로서, 붓다의 성불을 가능하게 한 전생과 현생의 수행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현존하는 불전은 대개 부파교단의 문헌이지만, 그것들은 부파를 초월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상의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대승경전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2) [대승보살도(大乘菩薩道)]
보살의 수행
소승불교가 아라한의 불교라면, 대승불교는 보살의 불교이다. 대승경전은 오로지 보살의 이념과 실천에 대해 설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보살이란 상세하게는 ‘보디삿트바, 마하삿트바(Bodhisattva, Mahasattva)’라고 한다. 보디삿트바란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 그리고 마하삿트바란 위대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불타가 되겠다는 커다란 서원을 세우고 고된 수행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보살에게는 자기가 불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갖추고 있다는 신념이 없으면 안 된다. 이 점이 찬불승이나 소승과 다른 대승의 독자적인 입장이다.
우선 소승과 다른 점은 소승 즉 부파불교는 아라한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교리를 조직하고 있다. 제자가 불타와 똑같은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소승불교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거기에는 당연히 자기에게 불타가 될 수 있는 소질 즉 불성(佛性)이 갖추어져 있다는 인식도 없다. 성불할 수 있는 것은 불타와 같이 위대한 사람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자기 인식의 차이가 바로 대승불교와 부파불교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다음으로 찬불승(讚佛僧)의 경우는 불전문학을 통해 성불의 원인을 탐구하고 보살의 위대한 수행을 찬양하고 있다. 따라서 찬불승도 보살의 가르침을 설한다는 점에서는 대승불교와 가깝다. 그러나 찬불승에서 설하고 있는 보살은 이미 성불이 결정된 보살이다. 성불의 수기(授記)를 받은 보살이다. 이에 비해 대승에서 말하는 보살은 자기 자신이다. 성불의 수기 등과는 관계없는 범부로서의 보살이다. 찬불승에서 설하는 보살은 오로지 석가보살이지만 그는 연등불로부터 당래작불(當來作佛)의 수기를 받았다. 이 수기에 의해 그에게 보살로서의 자신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일반범부인 대승의 수행자에게는 이러한 수기가 없기 때문에 보살로서의 자각은 다른 방편에서 얻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자기에게 불성이 있다는 신념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 이 점이 똑같이 보살을 설하면서도 찬불승과 대승불교가 갖는 본질적인 차이이다. 찬불승의 보살은 선택된 사람이지만 대승의 보살은 일반인이다.
보살의 수행
보살의 자각으로부터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수행이 시작된다. 아라한은 오로지 자기의 완성을 위해 수행한다. 그러나 불타는 중생을 구제하는 사람으로 대자대비의 소유자이다. 그 불타가 되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은 필연적으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수행이다. 즉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자기 수행을 완성하는 길이다. 이것이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수행이다.
여기서 바라밀이란 빠라미따(paramita)의 음사로서 ‘피안(彼岸)에 이른 상태’ 혹은 ‘최상의 상태’ 즉 완성을 의미하는데 한역에서는 보통 도피안(到彼岸)으로 번역되고 있다. 그러나 이 때 도달이나 완성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도달이고 완성할 수 없는 완성이다. 즉 바라밀은 무차별, 공에 입각한 실천이기 때문에 특정한 도달이나 완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닦아가야 하는 것이 바라밀의 참뜻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말미암아 보시 등의 세속의 윤리가 종교적 덕목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바라밀에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보시(布施)바라밀, 지계(持戒)바라밀, 인욕(忍辱)바라밀, 정진(精進)바라밀, 선정(禪定)바라밀, 반야(般若)바라밀이다.
보시(布施, dana)란 베푸는 것이다. 베푸는 것에는 물질적인 베품인 재시(財施)와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법시(法施), 두려움과 근심을 함께 하고 도와주는 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다. 보시할 때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와 주는 물건에 어떠한 차별도 없는 것이 진정한 보시이다. 즉 보시를 행하면서도 보시라는 선행에 집착하지 않고 공덕의 대가도 바라지 않는 무주상(無住相) 보시가 보시바라밀이다. 보시바라밀은 요컨대 공한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계(持戒, sila)란 말 그대로 ‘계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전통적으로 계에는 재가신자들이 지켜야할 오계와 출가비구와 비구니가 갖추어야 할 250계와 350계가 있지만 대승의 보살계는 10가지이다. 그런데 대승의 지계는 소승과 같은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계율지상주의가 아니라 이타를 위한 능동적이고 자율적 정신을 강조한다. 즉 계 역시 공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지키며, 아울러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본질이다.
인욕(忍辱, ksanti)이란 참고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고통이며 그러한 세계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화내지 않고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미움은 미움으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미움을 부르기 때문에 참음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virya)이란 나약함이 없는 부동심의 실천이며 불퇴전(不退轉)의 노력이다. 대승의 공관은 결코 허무에 의한 나태가 아니다. 중생의 정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보살의 정진은 집착함이 없는 이타의 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선정(禪定, dhyana)의 정(定)은 삼매(三昧)란 뜻으로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하는 것’이라고 풀이되며 세계 실상이 무자성(無自性), 공(空)임을 삼매로서 직관하여 그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반야(般若, prajna)란 ‘수승한 지혜’라는 뜻으로 이때 지혜는 사유분별의 망상을 떠난 지혜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득(不可得)이며 무소득(無所得)이다.
이처럼 바라밀의 수행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이타에 전력하는 입장이며 성불도 도모하지 않는 끊임없는 수행이기 대문에 이 수행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대단한 결의가 필요하다. 보살의 이 결의를 갑옷을 입고 싸움터에 나가는 전사에 비유하여 ‘큰 서원(弘誓)의 갑옷(大鎧)을 입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보살은 무량무수의 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하면서도 인도된 사람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도하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3) 대승경전의 성립
교단사적으로 보면 대승불교는 현재까지도 그 실체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대승경전들로 보아 대승불교가 역사상 실재하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승불교의 성립에 대해 말할 때도 그 대부분의 자료를 대승 경전 자체로부터 얻고 있으므로 단적으로 말하면 대승 경전이 바로 대승불교인 것이다. 따라서 대승경전의 발달사는 대승불교의 형성사와 중복되는 점이 많다.
현재 많이 보고 있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은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여 불전을 집대성한 것이다. 총 100권 가운데 앞의 32권이 인도찬술부이며 이것이 본래의 대장경이다. 그것은 아함, 본연, 반야, 법화, 화엄, 보적, 열반, 대집, 경장, 밀교, 율, 석경론, 비담, 중관, 유가, 논집의 1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밀교부까지가 경이며, 율과 석교론 이하의 논을 합하여 삼장(三藏)을 형성한다. 경장부분도 원래 소승경과 대승경만으로 되어 있었는데 대정신수대장경에서 이와 같이 구분한 것이다. 그 중 반야부 이하가 대승경에 해당한다.
대승경전 성립의 배경
당시에는 불타가 직접 설하신 경전인 <아함경>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에 그와 달리 불타의 참뜻을 나타낼 새로운 표현이 필요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대승불교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설하려 했던 것인가 하는 문제와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대승불교는 어떻게 흥기하였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대승불교 성립배경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언급하기로 한다.
대승불교는 원래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서 불탑 공양을 통해 불타를 찬미하고 숭배한 재가 신자들을 주로 하는 집단에 의해 일어난 신운동이다. 이 운동은 재래의 여러 부파들이 승원 중심의 불교로서 아비달마 교학의 확립을 지향하여 너무 전문적인 법 중심의 불교를 발달시키고 있었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불타의 절대성과 자비성이 무한하다는 것으로서 이는 불멸 후 나타난 석존 신격화의 결과이다. 즉 불전과 본생담 등을 통해 점차로 발달하였던 불타에 대한 고찰의 결과, 불타는 과거에 무한의 수행을 한 과보로서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하며, 인행(因行)으로서 이타행을 주로 하는 육바라밀의 행을 설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불타의 체험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결심하였던 곳에 새로운 운동의 출발점이 있었다. 출가수행자들은 불타와 자신들과의 거리감 때문에 스스로가 아라한임에 머무르고자 했음에 대해, 중생의 성불이야말로 불타의 본원(本願)이라고 주장하여 불타와 똑같은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석존의 전신(前身)과 마찬가지인 보살이라 부르게 된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중생이 성불하는 길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 새로운 운동은 대승이라는 이름을 불리기에 이르렀다.
이 운동의 지도자는 법사(法師)라고 불린다. 법사의 기원은 어쩌면 출가 수행자 중에서 재가 신자를 위해 불타의 전기나 비유를 설하는 전문가였는지도 모르지만, 부파의 기록을 통해서는 그 기원을 알 수 없다. 대승 측에서 말하는 바에 의하면 재가 신자에서의 지도자이든가 혹은 출가자이더라도 정식으로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대승 경전이 성립되기 시작하면서 대승불교 자체에 여러 가지 새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대승 경전에 대해 공양하고 숭배하고자 하는 요구와 법사를 존중하고자 하는 요망이다. 결국 경전이 불탑을 대신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되었다는 것이며 대승경전이라고 하는 법의 절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두번째 현상은 성불도(成佛道)로서의 보살도가 정비되고 체계화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처음에 비판하였던 부파의 아비달마 교학을 다시 도입하게 된다. 이것은 재가보살 대신 출가의 보살이 이상상으로 등장한 것과 때를 같이 한다.
대승불교의 이론화와 체계화는 결국 출가주의화와 아비달마화를 초래하여 이전의 불교가 걸었던 길을 답습하게 된다. 이로써 제3의 신운동으로 밀교가 일어나고, 이윽고 그 주장을 담은 그릇으로서 밀교 경전이 제작된다. 밀교 경전도 역시 불설임을 표방하지만 그것을 설하는 이가 대승 경전의 경우처럼 불타가 아니라 절대적 존재로서의 법신(法身)이라고 했다. 밀교도 대승불교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승을 초월하여 출현한 것이라는 점은 대승이 불교이면서도 이전의 불교를 초월하여 출현하였던 것과 대비된다. 그리하여 인도불교의 최후까지 소승과 대승과 밀교가 병존하고 있었다.
대승경전의 발달구분
대승경전의 역사는 보통 3기로 나누어 논하게 된다. 제1기인 초기에는 대승의 형성에서부터 용수(龍樹)의 시대까지이고, 제2기인 중기에는 용수 이후에서 무착(無着)과 세친(世親)의 시대까지이고, 제3기인 후기는 세친 이후의 후대이다. 제1기에는 경전 제작이 극대로 성행하였으며, 제2기에서는 조금 덜하였고, 제3기에서는 밀교를 제외하고 극히 드물었다. 제1기는 대체로 기원 전후로부터 3세기 전반까지로서, 북인도에서 쿠샤나 왕조가 번창하던 시대이고 남인도에서는 인드라 왕조가 지배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제2기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굽타 왕조가 흥성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7세기 후반 이전에는 순수한 밀교 경전이 형성되지 않았다.
초기의 경전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최초로 저술한 인물로 지목되는 용수의 학설에 영향을 주거나 또는 인용되고 있는 경전류이다. 물론 용수가 모든 대승 경전을 열거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용수가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지라도 용수와 유사한 교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은 초기의 경전에 포함되는 것이다. 초기 대승경전 발전 이전에 <반야경>이 성립되었고, 이로 인해 교리적 영향은 매우 커서 모든 대승 경전이 공(空)사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동시에 여러 부처를 인정하는 신앙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그 중에서 아미타불의 신앙이 보편화되어 정토교(淨土敎)를 대표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화엄경>의 그룹이 발전하고 또한 <법화경>을 신앙하는 운동이 급속하게 퍼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교리의 조직 및 체계화에 동반하여 다시 부파불교와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나게 된다. 즉 부파불교의 교리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진 것이다.
중기 이후의 대승경전은 대체로 여래장 사상과 유식 사상에 관련된 것이다. 여래장계 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중생에게 여래장(如來藏) 즉 불성(佛性)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인데,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대방등여래장경>을 선두로 하여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 <대운경>, <금광명경>, 구나발타라가 번역한 <승만경>, <앙굴마라경>, <대법고경>, <보살행방편경계신통변화경>, 보리유지가 번역한 <부증불감경>, 진제가 번역한 <무상의경> 등이다.
유식계의 근본성전은 <해심밀경>인데 이의 전모는 보리유지에 의해 처음으로 전해졌으나, 부분적으로는 구나발타라에 의해 번역되어 있으므로 4세기 말까지는 성립되었을 것이다. 이외에 <유가사지론>, <대승장엄경론>, <섭대승론> 등이 있다. 이 시기에는 경전과 논전과의 구별이 어렵다. 더욱이 이 시기의 경전에는 논전을 기초로 하여 개작된 것도 있다.
대승 경전의 제작은 후대에까지 계속되었지만 그 수는 갑자기 줄어들게 된다. 대신 밀교 경전이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그것은 650년을 전후로 <대일경>의 성립을 통해 현교(顯敎)인 대승으로부터 독립을 달성하고, 또한 <금강정경>에 의해 그 교리가 확립되었던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4. 대승사상의 전개
반야바라밀의 이념 아래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도를 지향하는 대승불교의 이론은 서력 기원후 2에서 3세기 무렵에 출현한 용수(Nagarjuna, 龍樹)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된다. 그는 불교 최고의 논사로 제2의 붓다로 칭송되고 있는데, 반야경의 공(空)사상을 논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수많은 논서를 저술하였다. 특히 그의 주저인 <중론(中論)>에서 불교의 근본진리인 연기를 생멸(生滅), 거래(去來), 일이(一異), 단상(斷常)의 차별적인 대립을 넘어선 것[八不中道]으로 해석하여 어떠한 견해에 대한 집착도 부정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되는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재할 뿐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따라서 일체는 공하다고 풀이하고 있다. 연기(緣起), 무자성(無自性), 공(空)의 이론을 확립하여 대승불교의 기반을 다졌다.
용수에 의해 일단 종합 정리된 대승불교는 교리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경전의 제작이 요구되었다. 이들 새로운 경전에서는 앞 시대에 수립된 공사상에 입각하면서, 미혹과 깨달음의 주체문제로서 마음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즉 마음은 한편으로는 깨달음의 세계를 낳는 원천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혹의 세계를 낳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마음은 보리(菩提)의 바탕인 동시에 윤회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전자는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이상적 측면에서 고찰한 여래장설이고, 후자는 마음의 현실적 기능의 분석에서 출발하는 유식설이다.
유식사상은 일체의 분별망상이 비롯되는 장(場)으로서 인간의 의식자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의 전환을 통해 진여(眞如)와 열반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이론으로 3, 4세기 무렵 출현한 무착(無着, Asanga)과 세친(世親, Vasubandhu)에 의해 완성되었다. 나아가 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을 동일시하여 양자간의 융합을 모색하려는 경전과 논서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같은 새로운 경전이 제작되고 연구되는 시기를 중기 대승불교라고 한다.
그러나 중기 대승불교의 이론은 아비달마불교처럼 대단히 번쇄하고 어려워 불교학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 되어 자연히 초기 대승불교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같은 사정에 따라 후기 대승불교라 할 수 있는 밀교가 출현하게 된다. 밀교에서는 불타의 깨달음을 다라니(陀羅尼)나 진언(眞言), 만다라(曼多羅) 등의 상징으로 나타내며, 의례를 중심으로 한 신앙실천의 중심의 불교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점차 힌두교의 의례와 유사하게 되어 그것에 동화되기에 이르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교도들이 인도에 침입하여 불교사원을 파괴함으로써 불교는 13세기 무렵 마침내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편 불교는 서력 기원전 후 동쪽으로 진출해서 중국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 수(隨) 당(唐)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론들이 번역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즉 인도의 불교는 오랜 시간동안 넓은 지역에 체계적으로 전파된 것이었으므로 중국의 불교인들은 번역된 온갖 경론들에 대해 체계성을 부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각기 나름대로 불교의 일체 경론을 분류하고 해석하였는데, 이를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고 한다. 이같은 교상판석에 따라 마지막으로 설해진 또는 가장 뜻이 깊은 것으로 간주된 경론들을 중심으로 하여 마침내 종파들이 성립하게 되었다. 불교의 종파는 이미 동진시대나 남북조시대에 여러 경론이 번역되고 그것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수많은 종파가 성립하게 된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13종파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중국 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법화경>의 일승(一乘)을 대승불교의 근본으로 간주하는 천태종(天台宗), <화엄경>의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계(法界)를 깨달음의 본질이라고 하는 화엄종(華嚴宗), 정토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정토의 실현을 추구하는 정토종(淨土宗), 그리고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앞의 여러 종파와는 달리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표방하는 선종(禪宗) 등이 있다.
이제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산맥인 공사상과 유식사상을 살펴보고 이어서 중국불교의 대표적인 종파인 천태, 화엄, 정토, 선종 등의 사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공사상(空思想)
공사상의 전개
공(空)이란 용어는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말로 특히 <반야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 강조되고 있다. 대승불교에서 이 말은 자성(自性, svabhava), 실체(實體, dravya), 본성(本性, prakti), 자아(自我, atman) 등과 같이 인간이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본질적인 것들이 실제로는 없다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오직 우리의 인식 안에 있는 것으로 실제로 이러한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空)이란 용어의 원어는 sunya로서 본래 ‘부풀어 오른’, ‘속이 텅 빈’, ‘공허한’ 등을 의미하여 ‘부풀어 오른 모양으로 속이 비어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sunya라는 말이 불교에 도입되어 공(空)으로 한역되고, 특히 <반야경>을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 이르러서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이 공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취급하여 사상적인 관점에서 논의한 것을 공사상이라 하며 특히 대승불교에서 이러한 공사상을 강조한 사람들을 공론자(空論者)라 부르고, 그들의 주장을 공론(空論)이라 한다. 이러한 공론자는 용수 이후 중관파(中觀派)를 형성하여 공사상을 전개해 가며 그들은 스스로를 공성론자(空性論者)라 불렀다.
<반야경>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는 공사상은 후에 용수에 이르러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대승불교 철학을 발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용수는 공의 개념이 불타가 깨달은 연기법의 이치와 일치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또한 부파불교 중의 하나인 설일체유부에서 주장한 법의 견해를 비판하여 공은 곧 무자성(無自性)인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처럼 용수에 의해 명확하게 체계화되는 공사상에 대한 논리는 이미 불타의 근본교설을 전하는 초기불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왜냐하면 불타의 근본사상을 나타내는 것이 다름아닌 연기설이며, 이 연기설을 바탕으로 공을 이론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의 이론적 전개와 관련하여 불타는 당시 중요한 논쟁의 주제였던 아트만(atman, 自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불타는 세간이 공한 것은 아트만이 없는 까닭이며, 그 아트만은 안, 이, 비, 설, 신, 의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 어디에도 없음을 설하고 있다. 이처럼 초기불전에서는 공의 의미가 무아(無我)설과 밀접히 관련 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 가장 먼저 성립된 것이 <반야경>.으로 이 <반야경>은 후에 <대반야바라밀다경> 600권으로 집대성된다. 이러한 <반야경>에 공통되는 중심사상이 공관(空觀)으로 공관이란 일체 존재하는 사물들은 그 본성이 공하며, 또한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고 관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반야경>의 공관은 대승불교 자체의 기본적인 교설이 되고 아울러 대승불교도의 실천적 기반을 이루게 된다.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관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면 대승불교 이전의 부파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부파불교 가운데 설일체유부의 교리는 <반야경>의 공사상이 출현하는 사상적 배경이 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설일체유부에서 일체법이 존재한다는 실유(實有)의 주장은 <반야경>의 공사상과 대승불교의 중관철학이 발생하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대표적인 부파인 설일체유부는 모든 요소를 법(法)이라 부르고 그 법을 5위75법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일체 존재를 다양한 법의 이름을 분류하고 그리고 그 각각의 법에는 파괴되지 않는 법의 고유한 자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색법, 심법, 심소법, 심불상응법, 무위법의 5위로 구분되는 일체 존재와 그 각각에 속하는 75개의 법은 과거, 현재, 미래를 걸쳐 항상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설일체유부의 법체항유설(法體恒有說)로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야경>은 각각의 법에는 그와 같은 실체, 자성이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공이라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즉 모든 법은 공한 것이기 때문에 고정적인 법의 관념을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체법은 다른 법과 조건지워져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정적, 실체적 본성을 갖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무자성인 것으로, 이 무자성인 것은 곧 공인 것이다.
그러나 일체가 공하다는 관찰은 반야바라밀을 실천하여 얻어지는 것으로 이것은 세간의 일반적인 인식단계가 아니라 지혜의 완성에 도달한 경지에서 얻어진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반야지혜로서 공관은 용수와 그 이후의 사상가들에게 있어 이제설(二諦說)의 입장에서 명확히 그 구분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반야경>은 법의 공을 주장하고 있으며, 공관은 반야바라밀의 경지에서 얻어지는 지혜인 것이다.
공사상의 전개
<반야경>의 공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킨 사람이 용수이며, 이 용수의 대표적인 저술인 <중론>을 중심으로 한 사상을 일반적으로 중관사상이라 말하며, 또 그 중관사상의 흐름을 이어받는 불교 논사들을 중관파라 부른다. 용수는 <중론> 외에도 다수의 저작을 남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중론>으로 이후 많은 주석서가 씌어진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용수는 <중론>을 저술하여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사상의 이론적 체계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 <중론> 속에서 용수는 공사상의 이론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중론> 제24장 18게에서 ‘무릇 연기하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들은 공성(空性)이라 설한다. 그것은 임의로 시설되어진 것이며, 그것은 중도(中道) 그 자체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게송에서 볼 수 있듯이 용수는 <반야경>에서 공이라고 설했던 것은 그것이 바로 연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곧 우리가 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실제는 모든 사물이 각기 독자적인 존재의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진 까닭에 연기의 관계를 떠나있는 독자적인 성질로서 자성이나 실체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용수는 이러한 연기의 인연관계를 떠나 있는 것을 자성(自性)이라고 부르고 따라서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무자성(無自性)이며 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사물이 연기적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실체인 자성에 의해 생긴다고 한다면 그 때는 자성이 서로 연기한다는 모순이 될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곧 자성이란 인(因)과 연(緣)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립적인 것이며, 또한 다른 것에 의존하는 일 없는 항상 고정불변한 존재이지만 실제로 그와 같은 것은 생겨날 수도 있을 수도 없음을 용수는 지적하고 있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과 연의 상호관계로 생겨나는 것이고 따라서 그와 같은 것은 곧 자성이 없는 까닭에 공인 것이다.
이처럼 용수가 고정불변한 자성의 개념을 부정한 것은 그 자성의 관념이 우리 인간들의 망상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즉 이 자성의 개념은 다양한 인연의 관계를 초월해 영원한 동일성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 내재한 본질적 속성을 가리키고 있다. 즉 우리의 삶의 세계는 수많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약속에 의거한 언어적 세계로서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불변의 세계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어를 불변적인 것으로 잘못 생각해 그로 인해 번뇌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론>은 그와 같은 불변적인 성질로서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 자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우리 삶의 세계가 연기의 이치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혔던 것이다.
<중론>이 이처럼 연기법을 바탕으로 무자성, 공에 대한 논리를 수립하여 <반야경>의 공관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를 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이론적 체계에 무엇보다 중요한 관점을 용수는 이제설(二諦說)의 정립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2제에 대한 교설은 공에 대한 이해와 직접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은 물론, 동시에 용수 이후 <중론>의 주석가들 사이에서 그 견해 차이로 인해 중관파가 둘로 나뉠 정도로 중요한 쟁점이 되었던 교설이기도 하다. <중론> 제24장에서 용수의 반대자는 만약 일체가 공이라면 사성제, 사향사과(四向四果), 삼보(三寶) 등의 일체도 공하여 모두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용수는 그 반대자가 공용(空用), 공성(空性), 공의(空意)에 대해 무지한 까닭에 그와 같이 스스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한 뒤 이제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세속제(世俗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의 2제는 불타가 의거해 설하는 것으로 이 2제에 대한 바른 이해는 진실한 뜻을 아는 관건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2제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용수 이후 <중론>의 주석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나아가 용수는 ‘연기와 공성을 파괴한다면 세간의 일체 언어습관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라고 하여 연기와 공의 이치야말로 세간을 성립시키는 근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세간의 언어 습관인 세속제가 다름 아닌 연기와 공을 바탕으로 성립하므로 만약 연기와 공을 부정한다면 세간의 삶을 부정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삶의 세계가 언어의 세계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변의 자성세계가 아니라 약속과 습관에 의거한 연기의 세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와 같이 세속제를 성립시키는 바탕으로서 연기와 공의 이치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제일의제를 알 수도 없고 또한 열반을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기와 공의 이치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경지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반야바라밀의 세계는 곧 제일의제의 진리세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다시 말해 세간의 언어 습관인 세속제가 성립하는 근저로서 연기와 공에 대한 이해야말로 승의의 진리를 알고 열반을 얻게 하는 구체적인 지혜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용수는 2제설을 통해 연기와 공의 이치가 세간을 세간답게 하고 제일의제와 열반을 얻게 하는 구체적인 지혜임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였다.
용수는 <중론>에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관을 연기설과 같은 위치에 놓음으로 공관을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대승불교의 역사적 위상을 확립시켰다. 이로 인해 <반야경>으로 대표되는 대승불교는 역사적으로 그 연원이 불타에게 유래되었음이 분명해지고 아울러 대승불교의 역사적 의미는 더욱 공고히 되었다.
2) 유식사상(唯識思想)
유식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그 원리를 관찰해 보면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에 가치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이 세상의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 마음의 인식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유심론(唯心論)적 성격은 근본불교에서부터 있었다.
초기에 육처(六處)와 십이처(十二處)설이 있었는데, 이것은 인식에 의거하여 존재를 고찰하는 설이다. 12처란 인식하는 것과 인식되는 것을 인식기관에 의거하여 여섯 개의 영역으로 구분한 설이다. 부파불교에서는 외계의 대상이 실재한다고 보았지만 유식설에서는 외계의 대상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외계의 대상은 인식되는 대상으로써 인식되지 않았다면 대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식설에서의 대상은 인식되어진 대상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설하고 제법의 무아(無我)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아설에 의해서 불교에서 ‘인격의 주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 주체가 없으면 기억의 지속이나 업의 과보, 책임의 소재 등의 문제가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자업자득의 원칙을 강조하게 되면 자아의 자기 동일성이나 인격의 지속성이 요청된다. 그 때문에 제행무상과 무아의 교리를 인정하면서도 인격의 지속이나 업의 과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부파불교의 커다란 과제였고 그리하여 이에 대해서 갖가지 새로운 이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설일체유부는 제법의 찰나멸을 주장하면서도 다시 제법의 상사상속(相似相續)을 인정하고 의식의 흐름을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유부는 생리적으로는 명근(命根)의 존재를 설하고 이로써 생명이 지속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직 인격이나 주체의 관념은 나타나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독자부나 정량부가 비즉비리온(非卽非離蘊)의 아(我)를 설한 것은 유명하다. 독자부는 이것을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 불렀는데 이 보특가라는 오온(五蘊)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온을 떠나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동시에 그것은 인식될 수도 없고 적절한 언어로 표현될 수도 없지만 이러한 인격적 주체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화지부에서는 궁생사온(窮生死蘊)을 설하였고, 이 주체들은 개체의 죽음과 함께 사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초월하여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것, 즉 윤회의 주체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또 부파불교시대에는 잠자고 있을 때에도 미세한 마음의 작용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한 것으로서 대중부나 분별론자 등은 세심(細心)을 설하고 미세한 마음의 지속을 주장했다. 대중부가 설한 근본식(根本識)도 이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부터 표면심에 대한 잠재심의 관념이 생겨났을 것이다.
또한 업에 관해서는 선악의 행위가 있고 나서 그 과보를 받을 때까지 업력은 어떻게 보존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즉 업과 그 과보를 연관시키는 매개자의 문제이다. 이것을 대중부는 증장(增長)이라고 불렀고 유부의 무표업(無表業)도 본래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경량부는 이 업력을 종자(種子)라고 불렀다. 즉 업력을 식물의 종자가 가진 잠재적인 힘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단지 선악의 업에만 종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위가 종자의 형태로 바뀌어 존속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경량부에서는 이 종자가 어디에 보존되는가를 생각한 끝에 그 장소로서 잠재심을 상정하지 않고 색심호훈(色心互熏)을 설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이 부파불교에서 생겨난 갖가지 사상이 대승불교로 계승되어 인격의 주체 속에 잠재심, 무의식의 영역이 상정되게 되고 거기에 종자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상이 확립되어간 것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아뢰야란 ‘간직한다’는 뜻이다. 종자를 소장하고 있는 식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종자의 집합체 이외에 그 용기로서의 다른 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아뢰야식을 종자식(種子識)이라고 한다. 이 아뢰야식이라는 개념은 이미 <해심밀경>에 나타난다. 이 아뢰야식은 인간 존재의 근저에 항상 상존해 있으면서도 변함이 없으며 그 흐름은 일생동안 끊어지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미래의 생존에까지 계속 영향을 미쳐서 이어져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중생이 어떠한 행위나 행동을 하는 한 그것은 대개 선업이나 악업을 지어서 그 결과를 초래하는데 이 때에 아뢰야식이 업력의 소의처가 되어 그 속에 종자가 잠재하고 있다가 그에 알맞은 환경이나 조건 등의 연(緣)을 만나면 모든 세계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서 현상계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팔식(八識)의 구조
마음을 심(心), 의(意), 식(識)으로 부르는 예는 이미 초기불교에서도 발견된다. <아함경>에서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심, 의,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심, 의, 식의 체성은 염오성(染汚性)이라고 보았으며, 심의식은 무상한 것이라고 여겼다. 초기경전에서는 각각의 개별적인 심리작용은 없었으며, 생각하고 사랑하고 요별하는 심리작용을 총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파불교에서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심왕(心王)과 심소(心所)로 분류하였는데 심왕은 심의 주체로서 인식주관이며, 심소는 개별적인 심리작용이다. 심왕이 바로 심의식이며 이는 육식(六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심, 의, 식의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대비바사론> 제72권에서는 심의식의 무차별설과 차별설을 같이 설하고 있다. 무차별설은 심의식은 명칭의 차이만 있을 뿐 다같이 정신의 주체를 가리키며 체(體)가 동일하다는 것으로 이는 설일체유부의 견해이다. 차별설은 심의식은 명칭과 교설의 시설, 의미, 업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체(體)는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다. 세친은 <구사론>에서 심은 집기(集起)의 의미가 있으며, 의는 사량(思量)의 의미가 있으며, 식은 요별(了別)의 의미가 있다고 설했으며 이는 정신의 주체이며 작용만 다를 뿐 체는 하나라고 하였다.
유가행파의 유가사들은 선정 관행 중 심층적인 식의 흐름과 기능에 주목하여 종래 부파불교시대부터 탐구되던 두 가지 문제인 윤회의 주체와 번뇌와 아집의 주체 및 의근(意根)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윤회의 주체는 아뢰야식, 번뇌와 아집의 주체는 말나식의 식체(識體)를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종래의 육식설(六識說)에다 아뢰야식(阿賴耶識)과 말나식(末那識)을 결합하여 팔식(八識)을 구성하였다. 팔식 가운데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은 묶어서 전오식(前五識)이라고 하는데 이 식들은 각각 대상을 요별하고 분별한다.
의식(意識)은 의근(意根)에 의지하여 인식작용을 일으킨다. 이 의식은 전오식으로는 볼 수 없고 만져볼 수 없지만 없는 것이 아니고 전오식과 함께 일어나거나 아니면 홀로 활동한다. 의식이 일어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첫번째는 전오식과 함께 일어나서 같은 대상을 인식하거나 아니면 전오식과 함께 일어났지만 의식이 한눈을 팔아서 올바르게 인식되지 않은 경우이고, 두번째는 꿈을 꾸거나 망상, 공상 및 선정에 들 때와 같이 의식이 독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제8 아뢰야식을 일으킨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일부러 우리가 어떤 의도적인 행위를 하고나 아니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의 4종 번뇌와 항상 같이하면서 업을 일으킬 때 이들에 의한 인상이나 여운 등을 그대로 흡수하여 저장하는 장소로서 아뢰야식이 활용되는데 이렇게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식은 제6식보다는 깊고 제8식보다는 얕은 제7말나식이라는 의식이 상정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7말나식을 일컬어 자아의식이라고도 하며, 이 식에 의하여 업을 지어서 중생들이 결과적으로 세세생생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제8아뢰야식은 이렇게 모든 업의 산물들을 스스로 저장하는 능장(能藏)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모든 세력들을 소장(所藏)할 장소로서의 처소로도 제공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아뢰야식은 앞에서와 같이 항상 제7말나식의 집착력과 아집 등에 의하여 유린당하는 입장에 서 있으므로 이럴 경우 제8아뢰야식은 집장(執藏)의 뜻이 강하다. 왜냐하면 아뢰야식의 본래 의미는 유루법이 현행하는 사이, 곧 아집 등이 활동하는 동안만 존재하는 것이지 아집 등이 없는 성인위에 오르면 이 식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유식의 수행
유가행의 수습단계가 발전하여 유식사상에서는 오위설(五位說)로 정착되었다. 오위는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및 구경위(究竟位)에 각각 해당된다. 첫째 자량위는 복덕과 지혜의 2자량을 축적하는 수행의 준비단계라는 의미이다. 즉 친구의 권유나 자기의 의지로써 유식의 교리를 배우고 그것이 진리임을 믿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유식이 자기 것으로 체험되지 않은 단계이다. 따라서 아집, 법집의 번뇌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은 단계라 하겠다. 둘째 가행위는 이미 직접적으로 유식의 수행으로 나아간 단계이다. 그러나 눈앞에 어떤 대상을 설정하고 이것이 유식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단계이므로 아직 참된 유식에 들어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즉 유식이라는 것을 인식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러나 가행위에서 사심사관(四尋四觀) 사여실지관(四如實智觀) 등의 관법을 닦아 유식의 수행이 진전함으로써 유식에 통달한다. 이것이 세번째 통달위이다. 즉 인식의 대상을 나로 집착하거나 법으로 집착하는 일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혜가 소연(所緣)에서 생기지 않을 때 유식성에 머문다’라고 한다. 소연에서 앎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집착이 없어졌음을 뜻한다. 거기에는 당연히 집착하는 주체도 없다. 그것은 주객의 분열이 없어진 지혜이기 때문에 무분별지라고 한다. 이것은 상대를 떠난 지혜, 즉 공의 지혜이다. 공(空)은 형태나 크기가 없기 때문에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공을 안다는 것은 스스로 공을 완성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분별지이다.
이 유식에 안주한 지혜를 견도(見道)라고 한다. 견도에는 진(眞)견도와 상(相)견도가 있다. 진견도는 근본 무분별지에 의해 생기며 유식의 성(性)을 깨닫는 것이고, 상견도는 후득지에 의해 생기며 유식의 상(相)을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진견도는 이공소현(二空所顯)의 진여를 깨닫는 것이다. 이 통달위는 성자의 부류에 속하게 되는 것이며, 십지(十地) 중 최초의 환희지에 든다고 한다. 그 후 다시 수행을 계속하여 제10지의 위에 이르기까지가 네번째 수습위이다. 즉 이 단계에서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무분별지를 수습하고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끊어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전의(轉依)를 실현하는 것이다. 앞의 통달위 단계에서도 무분별지가 나타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며 다시 번뇌가 생긴다. 그러한 상태에서 무분별지를 자주 수습하여 그 수습이 완성될 때 전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번뇌장을 떨쳐버림으로써 대열반을 얻고 소지장을 떨쳐버림으로서 대보리를 얻는 것이다. 수습위의 다음인 다섯번째 구경위는 불과(佛果)이다. 이것은 앞의 전의에 의해 얻어진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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