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해설(老子와 똥막대기)

[스크랩] 도덕경 45장. 뛰어난 솜씨는 서툴러 보인다

수선님 2018. 12. 23. 12:10
 

<제 45장. 뛰어난 솜씨는 서툴러 보인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크게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하지만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다. 크게 찬 것은 빈 듯하지만 그 쓰임에는 끝이 없다. 크게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뛰어난 솜씨는 서투른 듯싶고, 훌륭한 말은 어눌해 보인다. 움직임은 차가움을 이기고 고요함은 뜨거움을 이긴다. 맑고 고요함은 천하의 바름이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대성약결 기용불폐 대영약충 기용불궁 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눌) 

 

  27장의 “잘하는 말은 흠이 없다”와 ‘어눌하다’가 상충되는 듯싶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흠이 없다’는 것은 매끄럽다는 것과는 다르다.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어눌하다. 언변이 뛰어난 사람들의 경우 대체로 표현이 매끄럽고 화려하며 시종일관 논리적이다. 허나 진리의 말씀은 늘 머뭇거린다. 분별적인 유위의 차원에서 떠나 있기 때문이다. 일테면 ‘글쎄……’, ‘이렇게도 볼 수 있겠고, 저렇게도 볼 수 있겠고……’하는 등의 어눌함이 늘 배어 있다. 입밖에 뱉으면 벌써 그 참된 의미를 상실하기에 道를 섬기는 사람의 언행은 늘 무겁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세련된 유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촌스럽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모자라고, 빈 듯하고, 굽은 듯하고, 서투른 듯싶다. <주역 계사전>에 따르면, “장차 배반할 자는 그 말이 부끄럽고, 마음이 의심하는 자는 그 말에 갈래가 생기고, 길(吉)한 사람의 말은 무겁고, 조급한 사람의 말은 수다스럽고, 위선적인 사람의 말은 매끄럽고, 그 지킴을 잃은 자의 말은 비굴하다.”

 

  그리고 위의 문장은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즉 모순적인 두 존재의 양립을 뜻하기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루어짐과 모자람, 채워짐과 비움, 곧음과 굽음, 뛰어남과 서투름, 매끄러움과 어눌함. 간택(揀擇)하 는 분별지의 차원에서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상대적인 존재이지만, 시비분별이 사라진 무위의 차원에서는 수직적 차별이 아닌 수평적 차이로써 동등하게 존재한다. 서양의 후기구조주의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J. Derrida)가 차용해서 유명해진 ‘파르마콘(parmacon)’이라는 낱말이 있다. 이 말은 원래 플라톤이 글의 이중성을 가리키기 위해서 표현한 것으로, ‘약’과 ‘질병’이라는 뜻을 동시에 지닌다. 약과 질병은 서로 모순되고 대립되는 것인데 글은 이러한 모순을 동시에 품는다. 글은 말을 시간에 제약받지 않고 반복될 수 있게 하므로 약이지만, 반면에 일회적인 말과 달리 그 의미를 고정시키고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질병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플라톤은 글을 말보다는 열등한 존재로 보았다. <주역 계사전>에도 “글로써는 말을 다 펼칠 수 없고, 말로써는 그 뜻을 다 펼칠 수 없다(書不盡言 言不盡意)”라 하였는데, 그 닮은꼴이 참 놀랍다.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조승한 정승열 청정위천하정) 

 

  어떤 판본에는 ‘靜勝躁 寒勝熱’라 나와 있기도 하며, 해석상 다양한 관점이 돌출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문장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어디까지나 비유로써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동(動)과 정(靜)의 순환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躁와 熱은 動과 陽, 靜과 寒은 靜과 陰을 뜻한다. 즉 현상계의 두 양태인 有와 無의 갈마듦, 中道를 말하는 것이다. ‘조급함이 추위를 이기고’ 또는 ‘고요함이 조급함을 이기고’ 따위로 이해해서는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다. 그리고 ‘맑고 고요함’은 中道의 현상적 드러남인 德 또는 무위를 뜻한다. 바깥 사물과 안의 의식에 결코 흔들리지 않으니 절로 맑고 고요해질 수밖에 더 있겠는가. 물에 비친 달은 물이 흘러도 결코 흩어지지 않는다. 거울은 사물을 비칠 따름, 쫓아가지 않는다. 붉은색을 들이밀면 고스란히 비칠 뿐 결코 붉은색으로 물이 들지는 않는다. 달마 대사의 가르침인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느니”가 바로 무위이다.

출처 : 여여불여 如如不如
글쓴이 : slowdrea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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