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장. 道는 펼치고 德은 기르고>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莫不尊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 育之 亨之 毒之 養之 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道는 만물을 펼치고, 德은 기른다. 물은 만물에 형체를 주고, 세는 완성시킨다. 그러므로 만물은 道를 존중하고 德을 귀히 여긴다. 道를 존중하고 德을 귀히 여기는 것은 명령을 따라서가 아니라 늘 절로 되는 것이다. 따라서 道는 만물을 펼치고 德은 기르며 자라게 하고 양육하고 성숙케 하고 키우고 덮어준다. 펼치나 소유하지 않고, 이루나 의지하지 않고, 기르나 지배하지 않는 바 이를 현묘한 德이라 일컫는다.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莫不尊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도생지 덕휵지 물형지 세성지 시이만물막부존도이귀덕 도지존 덕지귀 부막지명이상자연)
형이상학적 원리인 道와 그 道의 현실적 실현인 형이하학적인 德에 관한 얘기로 2장, 10장, 34장에서 지겨우리만치 줄곧 강조해 온 내용이다. 그만큼 중요한 까닭에서이겠다. 物과 勢는 德에 다름 아니다. 이기론(理氣論)으로 보자면, 道는 理이며 德은 氣이다. 氣는 고정성인 陰氣와 활동성인 陽氣로 나뉘므로, 物은 음기로 勢는 양기로 봐도 무방하다. 자식이 부모를 존경하고 사랑하듯, 만물 또한 자신을 존재케 한 道와 德에 대해서 마땅히 존중하고 귀히 여길 수밖에 없다. 허나 이는 윤리적인 작위로서가 아닌, 절로 그리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만물은 無와 有의 순환을 통해서 다시금 무위의 道를 실천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道를 펼치는 것은 곧 만물에 내재된 힘인 德이다. 그런 즉 道의 입장에서는 만물을 펼치지만, 德의 입장에서는 道를 실현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道는 존재의 안감이며 德은 존재의 힘이다. ‘본체를 따라서 그 활용이 일어나고, 활용을 거두어 본체로 돌아간다(從體起用 攝用歸體).’ 그리하여 道와 德은 둘이 아닌 한 몸인 것이다.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 育之 亨之 毒之 養之 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고도생지 덕휵지 장지 육지 형지 독지 양지 부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현덕)
毒은 일반적으로는 ‘해치다’이나, 여기에서는 ‘기른다’는 뜻임에 유의하자. 이 문장의 의미는 道는 현실적인 德, 즉 무위로써 실현된다는 것이다.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는 곧 佛家의 ‘머무르지 않는 보시(無住相布施)’ 이다. <금강경>에 이르길, “보살은 법에 있어서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한다. 이른바 형체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하며, 소리ㆍ향기ㆍ맛ㆍ감촉ㆍ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한다.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보시하며 상에 머물지 않는다.” 보살은 노자의 화법으로 얘기하자면 성인이겠다. 여기서 相은 안팎으로 집착하는 것을 가리킨다. 마치 거울처럼 사물이 다가오면 비치나 지나가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머물지 않음’이 곧 ‘방하착(放下着)’이다. 옛말에 ‘눈을 밟아도 흔적이 없다(踏雪無痕)’가 바로 그것이다.
소동파는 동생에게 편지를 자주 보냈는데, 그중 한 편지에 실린 시의 앞구절이다.
人生到處知何事 인생을 무엇이라 말하랴
應似飛鴻踏雪泥 날아가는 기러기 살풋 눈 밟은 것이리
雪上偶然留指爪 눈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더라도
鴻飛那復計東西 기러기 날아가면 다시 어찌 동서를 알리
<和子由沔池懷舊(면지에서 옛날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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