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장. 구멍을 막으면 근심이 없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襲常
천하에는 비롯함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천하의 어머니이다. 그 어머니를 알면 자식을 안다. 그 자식을 알고 어머니에게로 돌아가 지키면 몸이 다하는 날까지 위태롭지 않다. 그 구멍을 막고 문을 닫으면 종신토록 근심할 일이 없다. 그 구멍을 열고 일을 벌이면 평생 헤어나지 못한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이 밝음이며,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이 강함이다. 그 빛을 활용하여 밞음으로 돌아가면 몸에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 이것이 항상한 道를 잇는 것이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천하유시 이위천하모 기득기모 이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25장에서 “고요하고 텅 비어 있음이여. 홀로 존재하며 변하지 않고, 두루 다니되 지치지 않는다. 가히 천하의 어머니라 하겠다. 나는 그 이름을 모르나 말하자면 道라 한다”라 했는데, 여기서의 어머니와 같은 의미이다. 어머니가 道이며, 자식은 천하만물이다. 어머니를 알면 자식을 알고, 자식을 알아 어머니를 지킨다는 얘기는 본체와 현상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형이상학적인 이법을 알아도 그 현상을 가늠할 수 있고, 현상을 통해서도 그 근원적 질서를 파악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襲常(색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
兌는 인체의 구멍을 가리킨다. 즉, 입ㆍ코ㆍ귀ㆍ눈ㆍ항문ㆍ요도의 9규(竅)이다. 이러한 구멍, 문을 통해 현상계를 인식하고 번뇌와 욕망이 생긴다. 그런 까닭에 구멍, 문을 막아버려 욕망이 꿈틀거릴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佛家에서는 감각기관인 눈[眼]ㆍ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의식[意]을 6근(根) 또는 6문(門)이라 일컫고, 그것에 상응하는 사물과 경계인 형체[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느낌[觸]ㆍ마음의 대상[法]을 6진이라 한다. 그리고 6근과 6진이 상응하여 일어나는 인식을 6식(識)이라 하는데, 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이라 한다.
6조 혜능 선사가 이르길,
“법의 성품이 육식과 육문과 육진을 일으키고 자성(自性)은 만법을 포함하나니, 함장식(含藏識)이라 이름하느니라. 생각을 하면 곧 식이 작용하여 육식이 생겨 육문으로 나와 육진을 본다. 이것이 삼육은 십팔이니라. 자성이 삿되기 때문에 열여덟 가지 삿됨이 일어나고, 자성이 바름을 포함하면 열여덟 가지 바름이 일어나느니라. 악의 작용을 지니면 곧 중생이요, 선이 작용하면 곧 부처이니라.”
노자는 아홉 구멍을 막으면 수고로울 일이 없고, 아홉 구멍을 열면 끝내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는 비유에 지나지 않다. 경계에 마음이 부딪쳐도 물들지 않으면 될 터이다.
혜능 선사가 덧붙여 말씀하시길,
“그러므로 자기의 성품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온갖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自在)하느니라. <유마경(維摩經)>에 말씀하시기를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 뜻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外能善分別諸法相 內於第一義而不動)’하였느니라.”
귀와 눈으로 듣고 보는 것은 바깥 도적이며
정욕과 의식은 안의 도적이라
다만 마음의 주인이 맑게 깨어 흐리지 않고
뚜렷이 중당(中堂)에 홀로 앉아 있으면
도적이 문득 변하여 집안 사람이 되리라
<채근담>의 한구절이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이 밝음이라 했는데, 이는 34장의 “道는 항상 욕심이 없으므로 작다고 할 수 있다”와 연결시켜서 이해하면 되겠다. 약한 것을 지키는 것이 강함이라는 얘기는 36장의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와 같은 의미이다. 빛과 밝음은 빛과 등불에 비교할 수 있겠다. 즉 빛은 등불의 用이고 등불은 빛의 體이듯, 빛은 밝음의 用이고 밝음은 빛의 體이다. 결국 用其光 復歸其明가 의미하는 바는 지혜로써 현상계를 관조하여 道를 체득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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