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장. 가까이 할 수도 멀리 할 수도 없는>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分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疎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는다. 날카로운 끝을 무디게 하며 어지러이 얽힌 것을 풀어준다. 빛과 조화를 이루며 티끌과도 하나가 된다. 이를 일컬어 현묘한 동거라 한다. 그러므로 가까이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다. 이롭게 할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다.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리하여 천하에 귀한 것이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分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지자불언 언자부지 색기태 폐기문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시위현동)
말할 수 있는 道는 道가 아니므로, 아는 사람은 道를 말하지 않고, 道가 이렇니 저렇니 입에 올리는 사람은 정작 道를 모른다. 깨달음은 논리나 이성으로 움켜쥘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몸으로 직접 체험해야만 하는 경지인 것이다. 물이 차가운지 뜨거운지는 직접 먹어봐야 안다. 禪家에서 언어와 문자를 철저하게 배격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塞其兌 閉其門은 52장에 나왔고, 挫其銳 解其分 和其光 同其塵은 4장에 나온다. 玄同은 無와 有를 동시에 품고 있으니 中道를 가리킨다.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疎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고불가득이친 불가득이소 불가득이리 불가득이해 불가득이귀 불가득이천 고위천하귀)
親疎ㆍ利害ㆍ貴賤은 有의 상대법이다. 서로를 부정해야만 하는 모순된 관계이다. 어느 하나를 취하면 어느 하나를 버려야 한다. 그러나 無의 차원에서는 이들은 둘이 아니며 하나이다. 中道의 입장에서는 이 모두를 품으므로, 무차별한 차별 즉 개개의 존재를 동등한 관계 속에서의 차이로써 인정한다. 그리하여 中道가 천하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도덕경>과 불경의 닮은 점 하나가, 不ㆍ非ㆍ不可 등의 부정의 화법이라는 것이다. 이는 언어와 문자, 세속적인 알음알이로는 道를 이해할 수 없다는 강변에 다름 아니다. 생각과 논의는 가능하나, 수행을 통해서 증득(證得)되는 경계이지 달리 이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그런 뜻이다.
禪家에는 화두를 모아놓은 책이 몇 전해 오는데, <무문관(無門關)>, <벽암록(碧巖錄)>, <종용록(從容錄)>이 대표적이다. <벽암록>은 중국 임제종(臨濟宗)에서 최고의 지침서로 꼽았던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송나라 때, 설두(雪竇) 스님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서 수행에 참고가 되겠다 싶은 화두 100칙을 뽑아 송(頌)을 달아 <설두송고(雪竇頌古>라는 책을 펴냈다. 여기에 원오(圜悟) 스님이 나름대로의 평을 달아서 재편집을 하였고, 1125년에 원오 스님의 제자에 의해서 <벽암록>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원오 스님의 제자인 대혜(大慧) 스님이 <벽암록>을 모두 회수하여 불태워 버렸다. 화두를 붙잡고 용맹정진하지는 않고 흉내만 내는 구두선(口頭禪)에 빠지는 것을 우려한 까닭에서이다. 언어와 문자는 지혜의 작용이 없는 방편에 지나지 않은데, 제자들이 이러한 언어 문자에 집착하여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지 못할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언어 문자에 매달리는 공부를 사구(死句) 참구라고 하며, 언어와 문자를 배격하고 불법의 지혜작용을 살리는 참선수행을 활구(活句)참구라고 한다. 헌데, 실제로 <벽암록>을 달달 외워서 마치 활구 참선을 하여 깨달음을 얻은 양 행세하는 사이비 선지식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누군가 한 부를 몰래 숨겨두었다가 뒷날 세상에 내놓아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대혜 스님의 노파심은 절절하게 가슴에 와닿지만, <벽암록>이 그때 실종되었어야 하는 것인지는 뭐라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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