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는 버마족과 카친족, 카렌족, 산족, 몬족등 다양한 종족이 모여 있으며 동남아시아지역에서 인도와 가장 가깝고 인도와 접경한 유일한 국가이다. 지형상으로 말레이반도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상부와 하부로 나뉘어진다. 버어마족은 상부 평원지역에 있으면서 북인도지역에서 넘어온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하부지역은 인도의 아쇼카왕시대 전도사인 (기원전 3세기경) 소나와 유타라 라는 전도사에 의해 불교를 받아들인 몬족이 국가를 건설하고 발전하였다. 11세기초 버어마족의 영웅 아노라타왕(재위 1044-1077)이 버어마지역의 대부분을 통일시키고 몬을 공격했다. 몬을 공격했던 이유는 청정 비구와 팔리어 성전을 보내달라고 그 당시 몬의 왕이었던 마누하왕에게 요구한 것이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불교를 이용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아노라타왕은 1057년에 몬을 멸망시키고 팔리어의 삼장과 주석서들을 가져왔으며 비구 500여명을 자신의 파간왕국으로 데리고 왔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때부터 대승계열의 범어 성전 대신 팔리어 성전을 통일적으로 사용케한 것으로 이것은 통일된 버어마에 본격적으로 상좌부가 수립됨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후 파간에 완전한 상좌부 불교의 상가가 생기자 외국의 상가와 빈번한 교섭을 가지게 되는데 앞에 이야기 된 스리랑카에 비구들을 파견한 것도 11세기 후반인 이때의 일이다. 그러나 이 파간 왕국도 몽고군의 침입으로 1287년에 멸망하고 이백여년의 혼란 속에서 두개의 국가로 정리되는데 이 중 페구를 수도로 하는 라만냐데사의 왕 담마체디(재위 1472-1492)가 1475년 스리랑카에 대규모 파견단을 보내 새롭게 불교의 융성을 꾀하고자 하였고 스리랑카에서 돌아온 장로들에게 켈레니아 도량을 마련하여 주었는데 이후로 스리랑카의 대사파에게서 전승해 온 순수한 작법으로 통일시켜 라만냐데사의 수계작법(부처님이 제정한 계법을 받는 세부적인 절차)이 확립되었으며 이것이 남방불교에서의 라만냐파 불교의 기원이 된다.
18세기에 접어들어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이러한 전통은 계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미얀마는 온 국민의 85%가 불교신자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생활면이 불교와 밀착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교의면보다는 계율면을 중요시해 온 버마불교는 스단마의 다수파, 스와에이진의 개혁파, 도바라의 엄격파 등의 셋으로 구별되고 있다.
1948년의 독립 이후에도 국민들의 불교 신봉의 태도는 변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세계불교회의를 설치 불교연구와 포교를 추진하여 오고 있다.
또한 제6결집을 원조해 독립 후의 불교부흥과 정치에 있어서의 불교의 역할을 국내외에 과시하였다.
현재 미얀마의 인구는 한국 인구와 비슷한 약 4700만 정도이며 이들은 버마어를 공통어로 사용하고 각 소수종족 고유의 언어 242종류가 공존하고 있다. 다수 종족으로 구성되된 미얀마에는 주 종족인 버마 족이 68%, 샨 족 9%, 꺼인족 7%, 라카인 족 4%, 중국계 3%, 몬족 2%, 인도인 2% 그 외 까친, 친, 꺼인 등의 소수종족이 5%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종족 중에 흥미로운 점을 가지고 있는 몇몇 종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황금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에 주로 거주하며 성격이 난폭하기로 유명한 '와'족을 보자. 이들은 초기 화전식 경작법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던 농경민으로서 약용으로 재배하던 아편을 점차 경제적인 목적으로 대량 생산하여 미얀마, 라오스, 태국의 경계지역에서 현재 세계 공급량의 6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다음으로 '버다웅'족은 여인들이 목에 링을 달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링을 달게된 유래라면 노예 상인에게 선택되지 않기 위해 행해졌다는 설도 있지만 현재는 그 수와 종류로서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추측할 수 있다.
미얀마 종교는 불교국가라 불릴 정도로 손색이 없을 만큼 많은 불교 유적지, 문화뿐만 아니라 그 신도들의 구성비가 전체인구의 89.4%를 차지한다. 나머지 10%에는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정령숭배자들 순위이다. 미얀마에 불교가 전래된 계기는 403년 인도 승려 부다고사(Buddhaghosa)가 하부 미얀마의 따톤(Thaton)에 빨리(Pali)어 경전을 들여오면서부터 상좌부 불교가 미얀마에 정착하게 되었다. 사실상 상좌부 불교가 융성하게 된 시기는 11세기버간왕조 아노야타(Anawrahta)왕이 상부 미얀마의 아예찌 불교를 축출하고 따톤으로부터 상좌부 불교를 도입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융성하였다. 이렇듯 미얀마의 불교는 지배자에 의해 장려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는 국민적 정체성을 유발시키는 동인으로써 불교가 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과거 미얀마 왕조사를 보면 왕의 통치권이 왕실 주변에 국한되어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통치범위는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지배자가 국가를 유지하고 한정된 통치범위를 확대시키기 위해서 나라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던 불교의 보호 및 후원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었다. 이 결과로 국민들은 국가를 벗어나지 않고 안주할 수 있었다. 상좌부 불교는 이러한 이유로 미얀마인의 의식 속에 많은 비중을 차지 해 왔는데 그 예로 도처에 널려 있는 파고다, 마을마다 '짜웅'이라는 사원이 하나이상 있고 새벽마다 '폰지'(승려)들의 탁발행렬에 경건한 마음으로 시주하는 불도 신자들의 모습에서 쉽게 엿 볼 수 있다.
불교가 미얀마인의 의식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배경은 불교의 전통적인 사회적 역학 때문이다. 미얀마의 언어는 불경을 기록하였던 빨리(Pali)어의 영향을 받아 미얀마어로 정착할 수 있었고 불교의 법전인 담마(dhamma)가 법을 대신하였고, 승려들은 이를 다음세대에게 전달하는 교육적 역할을 담당했고, 사원들은 공공교육장소로 활용되었다. 이렇듯 불교는 미얀마인들의 생활철학이자 가치관 형성의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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