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과학 1

소승불교 와 대승불교의 비교 연구

수선님 2019. 4. 21. 12:09

소승불교 와 대승불교의 비교 연구

 

Ⅰ. 서론
불교는 넓은 포응력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지역의 문화를 흡수하고 또한 지방신을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으로 받아들이는 대승불교(大乘佛敎)와 일체의 외부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근본 계율을 유지 할려는 소승불교가 동시에 공존하면서 발전해 왔다. 소승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보존유지 하기 때문에 원래의 불교 모습을 보존하는 장점은 있지만 보수파의 철저한 계율사상과 개인적인 수행에 전념하므로 현실 사회와는 유리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나 재가(在家)불자들의 중심으로 결성된 진보파는 현실에 맞는 계율(戒律)과 경전해석을 하고 소승불교에서는 성불할 수 없다는 재가불자를 비롯한 일체중생을 성불(一切衆生實有佛性)할 수 있는 길을 열므로 대승의 이념(理念)이 성립되었다.
불교는 대소승 뿐만아니라 부처님 재세시(在世時)의 근본불교(根本佛敎)와 입멸후 원시불교(原始佛敎) 각 교파가 일어난 부파불교(部派佛敎)시대부터 밀교(密敎)까지 시대와 지역과 문화에 따라 사상이 발전했고 또한 그 발전과 더블어 여러가지 명칭으로 구분해 부른 것을 볼 수 있다.
이 論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부파불교(설일체유부.三世實有法體恒有)와 대승불교(일체개공.一切皆空) 기원과 사상을 비교 고찰하고져 한다.

Ⅱ. 소승불교
소승불교(히나야나.Hinayana)는 불멸 1백년 후부터 생겨나 표면화되었는데 보수파(保守派)는 주로 장로 비구를 일파로 하는 상좌부(上座部)의 형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에 대해 진보적 사고를 가진 젊은 비구들을 중심으로 한 파를 대중부(大衆部)라 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불교 사학에서는 "근본분열"이라 말하고 있다. 근본부파(대중부. 상좌부) 지말부파(18부)의 20부파가 인도 불교를 풍미하던 시대를 부파불교 시대라 일컬었다.

부파불교시대 (BC 344년 - BC 271년)
대승불교시대 (AD 1년 - AD 700년)

여기서 다루는 소승불교는 부파불교시대의 불교 사상을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소승불교라 함은 부파불교 시대를 실질적으로 풍미하던 설일체유부【불멸 3백년(BC 344 - BC 245)초경에 가다연니자가 상좌부에서 출가하였다가 뒤에 상좌부의 본지를 어기는 새로운 교리(敎理)를 조직하여 론장(論藏)을 주로 하고 경장(經藏). 율장(律藏)을 반(半)으로 했다. 이에 舊習의 무리들이 이를 좇지 않고 따로 설산 아래에 있으면서 설산부(雪山部)가 되고 가다연니자는 또 한파를 이루어 설일체유부(設一切有部)라 불렀다. 이 부류(部類)는 아(我)는 없어도 법(法)은 존재한다는 아공법유(我空法有)와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法體恒有)의 뜻을 새우고 있다. 대승에서 소승으로 부르는 것도 부파불교 설일체유부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파불교를 통틀어 소승불교라 말하는 것도 이 이유 때문이다.
원시불교의 사상적 본질은 연기 법에서 찾아야 한다. 연기법에 대해 설일체유부에서는 이른바 유(有) 사상(思想)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당시의 인도 사상계를 풍미하고 있었던 실제론 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소승불교의 윤회관은 매우 교조적이고 형식적이다. 즉 번뇌(煩惱) 업(業) 고(苦)로 이어지는 그 순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열반(涅槃)이라하며 열반의 경우도 유여(有餘)와 무여(無餘) 열반으로 엄격히 구분하였다.
이루어진 육체는 아직도 전생(前生)의 번뇌(煩惱)에 기초한 업(業)의 찌꺼기가 남아있는 유여(有餘) 열반에 두고 있다. 소승불교는 한 마디로 원시불교 사상과는 배치되는 실유(實有)사상으로 특징 지을 수 있으며 더욱이 소승에서는 경전의 주석이나 해석을 위한 학문적 연구에만 몰두한 나머지 리론(理論)과 사변적(思辨的) 불교로 변모되어 자기 완성의 수행과 중생구제 활동이라는 불타본원의 행원을 망각하고 개인 열반을 중요시하며 리타적(利他的)으로 일체 중생의 구원이나 해탈(解脫)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해탈에 대해서도 무여(無餘) 열반하여 몸도 지혜도 다 없어짐을 목적으로 삼았다. 대승불교의 이타행과는 달리 독선적이고 형식적인 사상이며 고행과 은둔생활을 중요시하므로 염세적(厭世的)이고 허무주의(虛無主義)라는 오해의 소지도 있다.

Ⅲ. 대승불교
대승불교 성립
대승(마하야나 Mahayana) 이란 '큰 수레' 란 뜻이며 여기서 수레란 교리를 비유한 것이므로 가르침은 어리석음의 차안(此岸)으로부터 사람을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실어 나른다는 뜻으로 전한다. 대승의 교리를 큰 수레라고 말하는 것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교리로서 많은 사람을 피안(彼岸)의 세계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대승이란 표현이 처음으로 나온 것은 석존의 입멸 후 수 백년이 지난 AD 1세기 후반으로 추정하여 대승불교의 초기과정이라 측정하고 있다. 대승불교라고 하는 불교의 새로운 흐름은 어떻게 하게 시작되었는가?
대승불교의 흥기 배경은 일부 출가 수행자뿐만 아니라 많은 재가자(在家者) 들의 다양한 종교적 욕구에 부흥해 생겨난 것이므로, 많은 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승불교의 역사는 제대로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해탈과 구원을 바라는 대승불교의 이타정신은 석존의 유명한 전도선언에 나타나 있다.
《소품반야경》에 설해진 공 사상(空思想)도 석존의 깨달은 내용이 緣起의 표현이므로 대승불교의 사상사적 원점은 이론적으로는 석존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다. 또한 교단사적 원점은 불멸 직후 불탑을 중심으로 형성된 재가 신자의 신앙 집단이었다고 본다. 원점을 석존 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대승의 역사라고 부를 만한 태동이 나타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멸 2백년쯤 후일 것이라고 본다.
대승불교의 탄생부터 용수(Nagarjuna : 150~250년) 에 이르는 동안 많은 대승불전이 제작되었는데 이들 경전에 나타난 대승불교는 그 뒤의 불전과 구별하여 일반적으로 초기 대승불교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용수(龍樹) 이후로 새로운 사상을 설한 몇몇 대승불전이 이루어지고 무착(無着)이나 세친과 같은 고승(高僧)이 출현해 새로운 사상을 체계화하며 뛰어난 업적으로 '중기 대승불교' 로 발전한다.
이 중기 대승불교는 정치사적으로 굽따 왕조 시대에 해당된 것으로 대승불교는 이후 발전이 더욱 원활해 졌다. 대승은 보살의 가르침이며 누구라도 보리심을 일으키면 실유불성(實有佛性)을 보게 된다. 부처의 씨앗(因)은 연(緣)을 쫓아서 움직이고 싹이 터서 자라고 알찬 열매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대승불교는 .타인을 위한 활동이 바로 자리를  한 수행의 완성' 이 된다는 교리를 위주로 하고 있다.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겸비하고 있으므로 대승불교를 대승(大乘)이라 하며 자각각타 각행원만(自覺覺他 覺行圓滿)이라 한다.
대승불교는 재가와 출가를 일관하는 불교로서 구별을 논하지 않으며 대승에서는 재가자의 수행이 주(主)가 되어 있다. 더우기 이것은 '성불'을 위한 수행이 재가와 출가의 공통 법이다. 대승불교는 재가자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폭넓은 가르침을 교리상에 나타나고 있다.

대승의 가르침
대승의 가르침은 부처님께서 일생을 맨발로 걸으면서 중생구원 이라는 불타의 본원력(本願力)을 세워 고해(苦海)의 바다로부터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절대 진리의 말씀이다.
일찍이 원효스님이 세워놓은 한마디 해명에서 그 대승의 의미가 밝혀지고 있다.

"크다할까, 어느 구석진 곳이라도 들어가지 못함이 없고
작다할까, 어느 큰 것이라도 감싸지 않음이 없네"

그것은 광활한 것이고 허공과 같이 사사로움이 없는 평등한 것이다. 조금의 모자라움도 없고 아무런 걸림이 없는 원융무애(圓融無碍)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뒷날 화엄교학(華嚴敎學)의 이르러 다음의 일구(一句)에서 극명하게 들어나고 있다.

"하나 가운데 모든 것이 있고 많은 가운데 하나 뿐이요
하나로부터 많은 것이 되고 많은 것이 곧 하나이다"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세계는 서로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공동체로 파악되는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로 발전하고 있다. 선인(善因)과 악인(惡因)의 분별을 떠나서 모든 사람이 부처의 씨앗을 다 가지고 있다고 설한다. 그러나 소승불교에서 오직 출가 수행자만이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설하므로 재가자(在家者) 중심의 불자들은 출가하지 않고 성불 할 수 있다는 불교관 즉 불성회복(佛性回復)을 향한 일대 행진이 대승불교이다.
대승 핵심사상은 무아(無我)이다. "나" 라는 존재가 없는 것이다. 사제법(고苦 집集 멸滅 도道)은 이 같은 무실체(無實體)의 공(空)사상을 말하는 것이므로 공이란 단순히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 변증법적(辨證法的)인 부정을 통해 중도(中道)의 긍정으로 극복 확립된 개념이다.
용수는 대승의 공사상으로 소승불교의 실유사상(實有思想)을 비판 배격(排擊)하는 전개를 통해 고정 관념을 부정하였다. 무(無)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것에 집착되면 무(無)라는 고정 관념이 유(有)하게 된다고 역설하였다.
대승보살(大乘菩薩)의 공(空)사상은 사바세계를 떠나서 따로 극락의 정토를 구하는 세계가 아니다. 바로 청정(淸淨)한 마음이 보살의 정토(淨土)이다. 만약 보살이 극락과 정토를 얻고자 하면 마음을 정화해야 한다. 즉 보살이 대비원력(大悲願力)이라 하는 것도 마음의 청정(淸淨)으로부터 출발되고 있다. 청정이야말로 대승불교에서 보는 인간구원 사회정의(人間救援 社會正義)를 향한 실천적 일면(一面)이다. 인간의 인격완성(人格完成)이나 이상사회 건설의 원리를 각자의 마음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 대승불교의 입장이다. 중생(衆生)들의 심성은 융통무애(融通無碍)하여 크기로는 허공과 같고 깊기는 큰 바다와 같으며 허공과 같으므로 그 본체가 평등하여 형상을 구별해 볼 수 없다.

여기에 깨끗하고 더러움이 있겠는가?
큰 바다와 같으므로 그 본성이 원활하여 능히 인연을
따르되 거역하지 않으며 흔들림과 고요 할 때가 없겠는가?

깨달음에서 본다면 이것이다 저것이다 할 것이 없다 예토(穢土)와 정토(淨土)가 본래 한 마음이며 생사와 열반도 둘일 수 없다.
대승불교는 다른 말로 바꾸면 보살불교다. 공 사상에 입각한 중도의 지혜를 성취함으로서 보살사상으로 꽃을 피우며 화합교단을 이끌어 오늘에 이르렀다. 사체법 십이인연법 삼법인 팔정도 등의 교법을 부정하고 새로운 교리를 재창한 것이 아니다. 대승보살의 교리에 입각해 구체화하고 적극화시켜 본래의 불교 곧 불타의 참 정신으로 돌아가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중도사상(中道思想)을 재창하며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의 일진법계(一眞法界)를 승화시킨 대비사상이라 하겠다.




 

불종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01193704043/6969253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