普照思想14집
규봉종밀의 수행이론
- 돈점관을 중심으로 -
신규탁 / 연세대 철학과 교수
차 례
1. 머리말
2. 수행이론의 여러 양상
가)돈오점수
나)점수돈오
다)돈수점오
라)점수점오
마)돈오돈수
3. 맺음말
1. 머리말
규봉종밀(圭峯宗密; 780-841)이 ‘頓’ ‘漸’ ‘悟’ ‘修’의 네 개념을 세워서 수행에 관한 이론을 정리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혜능이나 신회의 돈오사상에 연원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기원은 도생(道生; ?-434)에 까지 올라간다. ������양고승전������의 축도생전에 의하면 도생은 “頓悟成佛”을 설했다1)고 전한다. 이 “돈오성불”의 이론은 晉·宋 당시에도 격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이미 湯用彤 씨에 의해2) 보고 된 바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도생의 돈오사상이 뒷날 혜능이나 신회에게 영향을 미쳤음을 생각할 수 있지만, 양자가 사용하는 돈오의 의미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종밀의 頓·漸사상은 혜능과 신회의 그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역대법보기������에 의하면, 신회는 돈오사상을 유포하기 위하여 2회에 걸쳐 무차대회를 열어, 南·北과 頓·漸의 시비를 판정하려 했다. 신회의 법계임을 자임하는 종밀은 신회의 활동을 ������배휴습유문������(卍110-867-하)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然能和尙滅度後, 北宗漸敎大行, 因成頓門弘傳之障, ······. 天寶(742- 756)初, 荷澤入洛, 大播斯門. 方顯秀門下, 師承是傍, 法門是漸. 旣二宗双行, 時人欲揀其異, 故標南北之名, 自此而始.”
이 문장에서 보면 頓·漸을 하나의 짝으로 해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하택사의 신회 이후에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신회에 의해 새로운 양상으로 제기된 頓·漸의 문제는 징관을 거쳐3), 종밀의 대에 와서 보다 조직적으로 정리되었다. 그런데 신회와 징관·종밀의 차이점은, 신회의 경우는 선종만을 취급하고 있는데, 징관과 종밀의 경우는 禪·敎를 한데 모아서 頓漸설에 적용하고 있다.
2. 수행이론의 여러 양상
그러면 종밀은 頓·漸·悟·修의 네 개념을 어떻게 사용하여 수행론을 정리했는가를 보도록 한다. 수행론에 관한 종밀의 생각을 조사할 경우 기본적으로 쓰이는 자료는 ������원각경대소������와 ������원각경대소초������의 각 현담, ������배휴습유문������, ������선원제전집도서������(이하 ������도서������로 약칭)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원각경대소������「懸談」(卍14-238-上)에 나오는 「八, 修證階差」 부분에서 종밀은 위에서 든 네 개의 개념을 조합하여 아홉 경우로 짝짓기를 한다. 이것을 흔히 ‘九對頓漸’이라 부른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순서에 따라 각 조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1)돈오점수(여기서의 悟는 解悟)
(2)점수돈오(여기서의 悟는 證悟)
(3)돈수돈오(여기서의 悟는 證悟)
(4)점수점오(여기서의 悟는 證悟)
(5)돈오돈수(先悟後修의 경우는 解悟)
(6)돈오돈수(先修後悟의 경우는 證悟)
(7)돈오돈수(悟와 修를 동시에 하면 解悟·證悟 모두에 해당)
(8)오수일체(悟와 修를 동시에 하면 解悟·證悟 모두에 해당)
(9)능가경의 4돈 4점(여기서의 悟는 證悟)
이 9대 중에서 (8)과 (9)는 이전의 7대와 그 성질을 달리한다. 아라키 겐고 씨의 지적처럼4), (8)과 (9)는 특정 경전의 설을 인용하여 첨부한 것이다. 한편 ������원각경대소������와 ������원각경대소초������를 간결하게 요약한 ������원각경약소������와 ������원각경약소초������에서는 (9)가 생략되어 있다. 또 ������도서������에서는 (8)과 (9)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8)과 (9)는 별도로 취급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원각경대소������의 9대 돈점 중 (8), (9)를 제외한 나머지 7대 頓漸의 의미를 검토하자. 그런데 더 생각해 보면 (5), (6), (7)은 悟와 修의 순서에 의해 셋으로 나눈 것이기 때문에 실제는 하나로 간주되므로, 결과적으로는 5개의 조합이 되는 셈이다. 즉 가)돈오점수, 나)점수돈오, 다)돈수점오, 라)점수점오, 마)돈오돈수가 되는 셈이다.
가)돈오점수
돈오점수는 먼저 돈오하고 그런 뒤에 점수한다는 의미로, 종밀은 이것을 해택종의 수행론으로 보고 있다5). 여기서 말하는 돈오란 ������배휴습유문������(卍14-875-상)의 표현을 빌면 “靈靈(明 ; 眞福寺本)한 知見을 단박에 깨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 知見이 있다는 것을 아무리 깨치더라도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경우의 悟는 어디까지나 解悟로서 수행을 통하여 체험한 悟는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적인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수행에 의해 번뇌를 다스리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것을 ������도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한다. “約斷障說, 如日頓出, 霜露漸消. 約成德說, 如孩子生, 卽頓具四肢六根, 長卽漸成志氣功用也.” 이 비유는 돈오점수의 의미를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는 번뇌를 끊어 가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아침에 해가 쓱 떠오르는 것은 돈오를 비유한 것이고, 그 해에 의해서 서리나 아침 이슬이 점점 녹아 가는 것은 점수를 비유한 것이다. 둘째로 공덕을 완성해 가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어린이가 태어나는 순간 사지를 모두 갖춘 것은 돈오를 비유하고, 그 어린이가 성장하여 가는 것은 점수에 비유한 것이다. ������원각경대소������에서는 이 두 측면에 주목하여 「離過」와 「成德」이라고 각각 科目을 달고 있다6).
종밀이 말하고 있는 돈오점수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경전을 해석할 경우에, 그가 이 ‘돈오점수’설을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실제로 종밀은 ������원각경������의 「위덕장」에 나오는 3종 觀行을 설명하는 곳에서, 자신의 돈점이론을 사용하고 있다. 「위덕장」에는 「미륵장」에서 규명한 2障을 퇴치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3종 관행이다. 3종 관행은 사마타, 삼마발제, 선나로서 범어의 음사어인데, 종밀은 그것의 의미를 泯相澄神觀, 起幻銷塵觀, 絶待靈心觀으로 의미를 취하고 있다7). ������원각경������의 본문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선남자야,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닫고서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써 고요함을 취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으면 망념이 맑아진 까닭에 심식이 번거로이 요동했음을 깨닫고, 조용한 지혜가 일어나나니, 몸과 마음의 객진이 일로부터 영원히 소멸해서 안으로 적정의 輕安을 일으키느니라. 정적 때문에 시방세계에 계신 여래들의 마음이 거기에 나타남이 마치 거울 속의 그림자 같나니, 이런 방편은 奢摩他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닫고서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써 심성과 근진이 모두 幻化로 인한 것임을 깨달아 알고는 곧 온갖 환을 일으켜서 환이 되는 것을 제거할 때, 온갖 환을 변화시켜서 환같은 무리들을 깨우쳐 주나니, 환을 일으키는 까닭에 안으로 크게 가엾이 여김의 輕安을 일으키느니라. 일체 보살이 이로부터 수행을 시작하여 차츰차츰 더해가나니, 환이 되는 것을 관찰함은 환과 같지 않은 까닭이며, 환과 같지 않다고 관찰하는 것도 모두가 환인 까닭에 환의 모습을 영원히 여의느니라. 이 보살들이 원만히 묘한 수행은 흙이 싹을 자라게 하는 것과 같으니, 이런 방편은 三摩鉢提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닫고서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써 환화와 조용한 모습을 취하지 않으면, ……… <필자 임의 생략> 이런 방편은 禪那라 하느니라. <������원각경주해������, 92-96쪽, 김월운 역해, 동국역경원, 1974년>
이상의 경문은 3종 관행이 설해지고 있는 부분이다. 종밀은 각각의 관행이 설해지고 있는 본문을 세 科目(標本, 正釋<起行/功成/感應>, 結名)을 세워서 설명한다.
종밀은 위와 같이 經文을 분류하고 그 각각에 과목을 달았다. 그리하여 각 관행의 최초의 「標本」부분은 돈오, 다음의 「起行」부분은 점수에 해당한다고 한다8). 여기에서는 3종 관행 중에서 사마타 부분만 뽑아서 종밀의 돈점관을 검토하기로 한다.
「표본」에 해당하는 경문은 “만약 보살들이 청정한 圓覺을 悟하고”이다. 원문에도 분명히 나타나지만, 돈오의 대상은 圓覺인데, 이 원각은 어떤 더러움도 없는 청정한 것이다. 즉 중생이면 누구나 간직한 것으로 이것이 내게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돈오이다. 그러나 이 경우의 悟는 수행의 경험에 거쳐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지식으로서 납득된 悟로서 解悟임을 알 수 있다9).
다음으로는 점수를 설명하는 부분을 보도로 하자. 점수에 해당하는 經文은 「起行」이라는 과목으로 지칭되는 부분으로,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써 고요함을 취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으면 망념이 맑아진 까닭에 심식이 번거로이 요동했음을 깨닫고”이다. 이 문구는 원각을 悟한 뒤에 행해야 할 수행의 내용을 서술하는 부분이다. 사마타관에서는 주로 ‘靜’을 닦아서 2障 중에서 煩惱障을 끊을 수 있다고 한다10). 이어서 이 점수에 필요한 방편을 천태의 지관법에 기초하여 10 부분으로 나누어서 설명한다11).
나)점수돈오
여기서 말하는 점수돈오는 먼저 점수하고 다음에 돈오하는 순서로 조합되었다. 가)돈오점수의 돈오는 해오였지만, 나)점수돈오에서의 돈오는 증오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의 悟는 수행의 결과로서 획득된 것이기 때문이다. ������원각경대소초������(卍14-560-상)에서는 나)점수돈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初言漸修頓悟者, 此有二意. 一者, 卽前解悟之漸修, 修極故證. 二卽從初便漸, 如諸聲聞因四十年漸. 前修三乘修行故, 靈山會中, 聞法華經, 疑網頓斷, 心安如海, 授記成佛.
이 인용문에서 보여주듯이 종밀은 나)점수돈오를 다음과 같이 두 종류로 나누어서 논하고 있다.
제1 : 돈오(이때의 오는 해오임) → 점수 → 돈오
제1의 경우는 해오로서의 돈오가 전제되어진 점수돈오이다. 즉 앞에서 검토한 돈오점수 중에서 圓覺의 존재를 지식적으로 悟하는 것을 선행조건으로 한다. 그런 뒤에, 이 悟에 기초하여 점차적으로 수행을 더해 가는 것이 제1의 점수에 해당하고, 그 수행의 결과로서 얻은 것이 마지막의 돈오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의 돈오는 해오가 아니고 증오이다.
점수돈오說을 앞에서 서술한 사마타의 경문에서 종밀이 분류한 과목에 맞추어 보면, 「起行」科에 속하는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써 고요함을 취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으면 망념이 맑아진 까닭에 심식이 번거로이 요동했음을 깨닫고”라고 한 문장은 점수에 해당하고, 「功成」科에 속하는 “조용한 지혜가 일어나나니, 몸과 마음의 객진이 일로부터 영원히 소멸해서 안으로 적정의 輕安을 일으키느니라.”는 經文은 돈오에 해당한다.
제2의 경우는 해오로서 돈오의 경험이 없이, 40 여 년간의 설법을 직접 들은 성문들처럼 오랫동안 수행하고, 뒷날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의 수기를 받고, 그 순간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종밀은 이 수행법을 ������도서������에서는 「伐木」이라든가 「멀리 떨어진 성을 향해 걸어가는 것」 등의 비유를 들고 있다12). 또 이 수행법의 사례로서 종밀은 천태대사의 百日加行을 들고 있다13).
가)돈오점수의 돈오는 해오인데 비해, 지금의 점수돈오에서의 돈오는 증오이다. 종밀이 이렇게 悟의 의미를 둘로 나눈 이유는 수행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점은 종밀의 수행관을 살피는 데에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종밀이 점수돈오를 위와 같이 둘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유는, 점수돈오를 둘로 나누는 것에 의해 점수의 내용에 가치적인 우열을 매기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즉 인간이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 ‘본각진심’을 인식한 위에 실천한 점수만이 오로지 참된 점수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점수는 허망한 수행이라는 것이 종밀이 하고 싶은 말이다. 이렇게 필자가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위에서 인용한 ������원각경������ 본문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써; 以淨覺心”의 釋文에 해당하는 ������원각경대소������(14-351-하)의 다음과 같은 문구를 들 수 있다.
解曰, 以淨覺心者, 約其所悟, 而起行也. 以者用也. 凡夫用妄, 菩薩用覺, 迷悟異故.
이 釋文은 ‘본각진심’의 존재를 돈오하고, 그 悟에 기초하여 진행된 점수를 설명하는 부분으로, 범부의 점수와 보살의 점수의 차이를 밝히는 부분이다. 이 釋文 중에 “凡夫用妄, 菩薩用覺”이란 범부의 경우는 망심에 기초하여 점수를 하지만, 보살의 경우는 본각진심을 悟하여, 그 悟에 기초하여 점수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부분이다. 이 문구에 의하면 종밀은 돈오가 선행된 점수를 보다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先頓悟, 後漸修 즉 돈오점수설을 선양하려고 하는 것이 그의 수행론이며, 이 수행론은 ‘본각진심’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 돈수점오
이 수행법은 先頓修, 後漸悟이다. 이 부분에서 종밀이 사용하고 있는 ‘頓修’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종밀은 頓이라는 어휘를 보통 ‘점차적인 단계를 거치지 않고 순간적으로’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한편 修의 의미 중에는 시간적인 개념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두 개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頓修’라는 말은 아무래도 모순인 듯 보여진다.
이런 모순을 종밀은 어떻게 느끼고 해결했는가를 앞질러서 말해보면 이렇다. 그 사용하고 있는 ‘頓修’는 실제의 수행이라기 보다는 수행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나 강력한 집중력을 말하는 것이지, 수행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써 종밀 자신이 들고 있는 ������원각경대소초������(卍14-560-상)의 다음과 같은 화살 쏘기의 비유가 있다.
又如學射, 初把弓矢, 便注意在的<脚註; 喩發無上菩提也>. 從不故作親疏節級<脚註; 不先發十信, 擇十住等>. 然千白日射億萬箭, 方漸漸親近, 乃至百發百中<脚註; 前喩已其斷證, 後喩唯證成>.
즉 과녁을 향해서 화살을 쏠 적에 화살을 과녁의 정 중앙에 적중시키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돈수에 비유한다. 그러나 이 경우의 돈수는 어디까지나 처음 보리심을 일으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코 반드시 해야만 할 실천행위를 모두 완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을 ������도서������에서는 “此說運心頓修, 不言功行頓畢也”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높은 이상을 가지고 크게 발심하는 것이다. 이것은 화엄의 10지說을 의식하면서 서술한 것으로 10신, 10주, 10행, 10회향, 10지, 등각, 묘각, 불의 순서를 따라가면서 수행하는 「行布斷惑說」이 화엄교가의 입장이지만, 종밀이 말하고 있는 이 頓修의 경우는 절차나 등급 등을 밟지 않고 최상의 圓敎를 듣고 원교를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인용한 “不故作親疏節級<脚註; 不先發十信, 擇十住等>”이다.
또 점오에 대하여 종밀은 ������원각경대소초������(卍14-560-상)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漸悟者, 謂雖聞圓敎, 信圓法, 而根性遲鈍, 不得頓悟. 雖不得頓悟, 而樂欲情殷, 深宗頓悟, 頓發大心, 頓切諸緣, 頓伏煩惱. 由此加行, 漸漸得悟. 悟卽是證, 不唯會解.
이 내용은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다만 여기에서 의심스러운 점은 “由此加行”이라는 구절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加行”이란 천태의 百日加行 처럼 수행을 더하여 가는 것으로 점수를 의미한다. 만약 종밀이 말한 대로라면, 돈수한 뒤에 다시 “加行” 즉 점수를 더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 頓修→漸修→漸悟의 순서가 되는 셈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점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종밀의 수행관을 엿볼 수 있다. 점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종밀의 생각은 「磨鏡」의 이야기에서도 잘 나타난다.
如人磨鏡, 一時遍磨一面終, 不從一分一寸致功. // 塵埃則微微而盡<脚註; 漸淨>, 明相漸漸而著<脚註; 漸照>. <������원각경대소초������(14-560-상)>
위의 문장은 // 부호를 전후로 둘로 나뉘는데, 종밀의 의도는 전반부를 頓修의 예로 들고, 후반부를 漸悟의 예로 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후반부의 “塵埃則微微而盡, 明相漸漸而著”의 의미는 거울의 표면이 붙어있는 때가 조금씩 얇아짐에 따라 거울에 본래부터 갖추어져있는 무엇을 비추는 능력(明相)이 차츰 드러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微微而盡”과 “漸漸而著”라는 점진적인 표현방식이다.
또 전반부의 “一時遍磨一面終, 不從一分一寸致功.”라는 문구가 의미하는 바는, 즉 쌓여있는 때를 시간적인 사이를 두고 닦아내는 것이 아니고, 일괄하여 한 번에 최후까지 말끔히 없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 중에서 거울에 본래부터 갖추어져있는 사물을 비치는 성질을 점차적으로 회복할 수 있게 된 동기는 쌓인 때를 닦아내는 행위이다. 즉 거울을 닦는 행위는 점수이다. 이것은 대통신수의 점수설을 비판하는 목적에서 만들어 낸 ������육조단경������의 전법게 중에 나오는 「磨鏡」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으로부터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에서 인용한 “一時”는 “쉬지 않고 계속하여”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점수를 중시하는 종밀의 수행이론체계에 보다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라) 점수점오
점수돈오에 대해서는 ������도서������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如登九層之臺, 足履漸高, 所見漸遠. 故有人詩云,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也.
9층 누각에 오를 때 높이 올라감에 따라 점점 멀리 보이듯이 점진적으로 수행을 더해감에 따라 그 결과로서 얻는 깨달음의 깊이도 더해간다는 것이다. “足履漸高”는 수행을 비유한 것이고, “所見漸遠”은 證悟를 비유한 것이다14). 종밀은 신수와 그의 문하생 보적 등의 수행법을 점수점오로 규정하고 비판했다. 종밀이 비판한 표적은 그들의 “拂塵” 사상이다. 즉 ������육조단경������의 “時時須拂拭, 莫遣有塵埃.”의 입장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 수행법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중생이라면 누구나 갖추고 있는 본성이 본래 청정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종밀은 비판한다. 만약 중생에게 본래 ‘본각진심’이 갖추어져 있다는 자각 없이 어떠한 수행을 더하더라도 그런 수행에 의해서는 깨달음의 체험이 불가능하다고 한다15). 인간의 근원인 ‘본각진심’을 깨칠 것을 강조하는 것은 ������원각경������의 위덕장의 3종 관행에 붙인 釋文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즉 성불하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 종밀은 사람마다 각자 제 속에 갖추어져 있는 ‘본각진심’을 悟할 것을 들고있다16).
그러나 종밀이 이 점수점오 자체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본각진심’의 실재를 믿지 않는 것이다. 종밀은 ‘본각진심’의 실재에 대한 신뢰에 기초한 점수점오는 수용하고 있다. 그는 ������원각경������ 원각장의 3期 도량을 점수점오의 방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17), 이것은 ������원각경������ 본문에 다음의 문구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善男子, 一切衆生, 若佛住世, 若佛滅後, 若法末時, 有諸衆生, 具大乘性, 信佛秘密圓覺心, 欲修行者, …….
종밀은 이 경문에 「結前」이라는 과목을 붙이고18), 道場加行의 전제로 말하고 있다. 이런 ‘본각진심’에 대한 확신을 강조하는 종밀의 생각은 ������원각경대소초������(卍14-560-상)의 “疏漸悟者, 謂信本性圓滿, 而猶計有業惑障覆, 故勤拂鏡塵, 漸悟心性”이라는 釋文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疏漸悟者”는 ������원각경대소������(卍14-238-상)의 “漸修漸悟”를 지칭한다.
점수점오의 수행방법을 한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그의 법사인 징관이 ������화엄경수소연의초������(권21)에서 돈오점수를 논외로 한 것과19)는 다른 점이다. 이것은 중생의 본원으로 ‘본각진심’을 전제한 종밀 자신의 사상과, 그 사상에 기초한 기존의 여러 사상을 재해석하려는 그의 勘會思想의 산물이라고 생각된다.
마) 돈오돈수
먼저 종밀이 사용하고 있는 頓悟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이 돈오를 ‘斬絲’에 비유하고 있다. 즉 한 타래의 실을 칼로 한 번 내려치면 낱낱의 실오라기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끊어지듯이, 번뇌는 본래 실체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한 순간에 깨치는 행위가 돈오라고 한다20).
한편, 종밀은 ‘染絲’의 비유를 들어서 頓修의 개념을 설명한다. 즉 한 타래의 실을 한 번 물들이면 낱낱의 실이 모두 염색되는 것 같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본성에는 본래 갖추어 있고 이루 셀 수 없는 공덕에 단번에 들어맞아[頓稱], 쉼 없이 수행하는 것이 돈수라고 한다21). 이 돈오와 돈수의 관계에 대하여 종밀은 ������도서������에서는 頓悟를 ‘斷障’, 頓修를 ‘修德’에 각각 배대하여 설명한다. 즉 돈오는 煩惱障과 所知障(종밀식으로는 事障과 理障)이라는 두 가지 장애를 끊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돈수는 공덕을 완수하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22).
종밀은 이 돈오돈수를 ‘悟’와 ‘修’의 전후에 의해 셋으로 나누고 있다.
제1은, 先悟 後修이다. 이 경우의 悟는 解悟이다. 즉 심신과 그것을 둘러싼 대상 세계가 모두 실체가 없는 空이라는 것을 돈오한 뒤에, 그 깨달음에 기초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제2는, 먼저 돈수하고 뒤에 돈오하는 것으로, 이 경우의 돈오는 증오이다. 이것을 종밀은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예를 들고 있다. 이것과 앞서 말한 돈수점오와의 차이점에 대해, 종밀은 ‘根’과 ‘欲’의 우열로 나누고 있다23). ‘根’과 ‘欲’이 뛰어난 경우는 돈수돈오에 해당하는데, 하열한 경우는 돈수점오에 해당한다고 한다. ‘根’과 ‘欲’은 根性과 樂欲으로, ������도서������에서는 “有云頓悟頓修者, 此說上上智根性<脚註; 根勝故悟>, 樂欲<脚註; 欲勝故修>俱勝.”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제3은, 돈오와 돈수를 동시에 행하는 것으로, 종밀은 돈오에 “無心忘照”를, 돈수에 “任運寂知”를 각각 배대하는데24), 이것은 징관의 ������답순종심요법문������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25). 여기에서 말하는 “무심”과 “적지”는 하택신회 선사상의 중심적인 개념으로서 종밀의 선사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밀이 ‘絲’의 비유를 들어 돈오돈수를 설명하는 것은 그의 법사인 징관의 ������화엄경수소연의초������(대정36-164-하)의 설명을 수용한 것이다. 또 종밀이 돈수의 의미를 설명할 때에 징관의 ������답순종심요법문������(卍103-607-상)의 “心心作佛, 無一心而非佛心<종밀 脚註; 念念全眞>. 處處證眞, 無一塵而非佛國<종밀 脚註; 卽染而淨>.”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26), 징관으로 부터의 영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증득한 돈오돈수의 이면에는 점수의 노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종밀이 그의 스승 징관과 다른 점이다. ������도서������의 다음 문구는 종밀의 이런 생각을 잘 드러낸다.
然上皆祗約今生而論, 若遠推宿世, 則唯漸無頓, 已是多生漸熏而發現也.
종밀은 완전한 돈오돈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다. 그는 언제나 점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돈오돈수를 주장하는 수행 집단으로 종밀은 우두종을 들고 있다. 종밀에 의하면 우두종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저 있는 그대로가 진실이라고 믿고 ‘漸’을 부정하는 집단이라고 단정하여 그들을 비판한다. 종밀의 이런 비판의 이면에는 절대적인 ‘頓’을 부정하는 그의 철학사상이 숨어있다. 영원한 시간의 흐름에서 보면 오직 漸만이 있을 뿐이고 頓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종밀의 수행관이다.
3. 맺음말
종밀은 당시의 수행론을 9대 돈점으로 정리 요약했는데,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이 9대는 다시 다섯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다섯 종의 수행론 중에서 종밀이 주장하려고 하는 설은 말할 것도 없이 頓悟漸修이다. 실로 종밀이 돈오점수 이외에 네 종류의 수행론을 소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가치적인 평가가 이미 들어있다. 즉 나)점수돈오의 부분에서도 그 종류를 둘로 나누어 돈오 → 점수 → 돈오의 프로쎄스를 설정하여, 결과적으로 이것을 다시 돈오점수설에 흡수시키고 있다. 또 다) 돈수점오의 경우에도 ‘加行’의 필요성을 강조함에 의해 점수를 요청하는 결과가 되었다. 또 라) 점수돈오의 경우에도 ‘본각묘심’에 대한 자각 없이는 어떠한 점수도 쓸모 없음을 주장한다. 즉 돈오(해오)를 주장한다. 그리고 마) 돈수돈오의 경우에도, 금생에 한정지어보면 돈수돈오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도 결국은 다생의 점수의 결과가 금생에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해석하여 다시 점수설을 끌어들인다.
이상의 검토를 통하여 수행에 대한 종밀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도표화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화엄의 지위설을 들어본다. 종밀을 결국 화엄교학자이다.
종밀의 수행론 : 돈오(해오) → 점수 → 돈오(증오)
화엄의 지위설 : 見道位 → 修道位 → 證道位
종밀이 돈오의 의미를 둘로 나눈 것은 징관의 ������화엄경수소연의초������(대정36-164-하)에서 유래한다. 종밀은 ������도서������에서 “若因悟而修, 卽是解悟. 若因修而悟, 卽是證悟”라고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해오로서의 돈오는, 중생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본각진심’이 실재한다는 것을 悟하는 것이다. 한편 증오로서의 돈오는 점차적인 수행에 의해서 얻어진 결과로서의 悟의 체험이다. 종밀의 이러한 생각은 역시 화엄교학사상의 흐름에 서 있는 것이다. 징관이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大正36-164-下)에서 말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一頓悟漸修. 如見九層之臺, 則可頓見. 要須踏階, 以後得昇. 今亦如是, 頓了心性, 卽心卽佛, 無法不具, 而須積功, 遍修萬行. 此約解悟.
징관의 이 서술에서도 분명해지듯이 悟의 대상은 ‘心性’이다. 종밀은 이 ‘心性’을 ‘本覺眞心’이라고 말을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종밀이 말하고 있는 돈오의 대상이 ‘본각진심’이라는 점은 ������도서������에서 깨달음의 10重을 설명하는 곳에 더욱 분명해진다.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종밀은 다음과 같이 열 겹으로 설정하고 있다.
(1)有衆生, 遇善知識開示, 上說本覺眞心, 宿世曾聞, 今得解悟, …, 信 自眞如及三寶德.
(2)發悲智願, 誓證菩提.
(3)隨分修習施戒忍進及觀門, 增長信根.
(4)大菩提心, 從此顯發
(5)以知法性, 無慳貪心.
(6)隨順修行六婆羅密, …, 常空常幻.
(7)於色自在, 一切融通.
(8)於心自在, 無所不照.
(9)滿足方便, 一念相應, 覺心初起, …, 名究竟.
(10)心旣無念, 則無別始覺之殊, 本來平等, 同一覺故, 冥於根本眞淨心 源, 應用塵沙, 盡未來際, 常住法界, 感而卽通, 名大覺尊.
佛果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본각진심’이 우리의 본래성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런 자각을 그는 해오라고 한다. 이런 해오를 거친 뒤에 수행을 거듭하여, 최후에 佛果에 다다른다. (1)은 頓悟(이 경우는 해오)에 해당하고, (2)-(9)는 漸修에 해당한다. 그리고 마지막의 (10)은 頓悟(이 경우는 증오)에 해당한다.
이상의 10重 차제에서도 분명해지듯이 종밀이 수행이론으로서 돈오점수를 주장하는 근저에는, 중생이라면 누구나 ‘본각진심’을 갖추고 있다는 그 자신의 불교관 내지는 인간관에 기초한다. 종밀은 이 ‘본각진심’을 인간의 근원으로 인정하고, 이런 입장에서 그가 살던 당시 유교나 도교의 인간론을 비판 회통한다.
1) ������宋高僧傳������(卷第七), ‘生旣潛思日久, 徹悟言外. 迺喟然歎曰, 夫象以盡意, 得意則象忘. 言以詮理, 入理則言息. 自經典東流, 譯人重阻, 多守滯文, 鮮見圓義. 若忘筌取魚, 始可與言道矣. 於是校閱眞俗, 硏思因果, 迺立善不受報, 頓悟成佛.’(大正50-366-下).
2) 湯用彤, 「16章,竺道生」(������漢魏兩晋南北朝佛敎史������․下, 商務印書館), 151-154쪽. 參照.
3)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 ‘頓復有多義. 一頓悟漸修, 如見九層之臺, 則可頓見, 要須躡皆, 而後得昇. 今亦如是, 頓了心性, 卽心卽佛, 無法不具, 而須積功, 遍修萬行. 此約解悟. 二者頓修漸悟. 卽如磨鏡, 一時遍磨, 明淨有漸, 萬行頓修, 悟則漸勝. 此約證悟. 三頓修頓悟. 如利劍斬絲, 千莖齊斬, 一時齊斷. 亦如染千絲, 一時齊染, 一時成色. 故萬行齊修, 一時朗悟. 四漸修漸悟. 猶如斬竹節, 節不同. 此今非用.’(大正36-164-下).
4) 荒木見悟, ������佛敎と儒敎������(平樂寺書店, 昭和47年), 111쪽.
5) ������裵休拾遺問������, 「荷澤則, 必先頓悟, 依悟而修.」(卍110-875-下).
6) ������圓覺經大疏鈔������「此(筆者注:漸修를 지칭)復有二. 一離過, 二成德. 言離過者, 飜前展轉枝末三障也. 旣自識眞淨法身靈鑒眞心, 卽不妄認四大緣慮之軀. 本因煩惱, 只爲此身. 旣不認此身, 卽貪嗔癡自息. ………. 言成德者, 頓悟本無障惱, 則一向稱性修行, 顯發性上塵沙功德妙用. 然非謂先離過然後成德. 卽心心境境, 離過之時卽稱性.」(卍14-670-下)參照.
7) ������圓覺經大疏������(卍14-349-下).
8) ������圓覺經大疏������, “三觀一一, 首標淨圓覺, 次明行相, 後顯成功. 初中爲對, 是頓悟漸修.”(卍14-238-下).
9) ������圓覺經大疏������, “解曰. 發心修行, 欲趣佛果, 須了悟身中淨圓覺, 以爲行本. 本卽解也. 依解以修, 方爲妙行.”(卍14-349-下). 참조.
10) ������圓覺經大疏������, “依解以修, 方爲妙行. 膏明相賴, 目足更資. 此金剛觀, 割煩惱障.”(卍14-349-下).
11) ������圓覺經大疏������(卍14-350-上~351-下).
12) ������禪源諸詮集都序������ 「如伐木, 片片漸척, 一時頓倒. 亦如遠詣都城, 步步漸行, 一日頓到也.」
13) ������圓覺經大疏鈔������, “天台數年修練, 百日加功用行, 忽然證得法華三昧, 旋陀羅尼門, 於一切法, 悉皆通達, 卽其事也.”(卍14-560-上).
14) ������圓覺經大疏鈔������(卍14-560-下).
15) ������圓覺經大疏鈔������, “未見妄念本無, 一性本淨, 悟旣未徹, 修豈稱眞. 修不稱眞, 多劫何證.”(卍14-554-上). 「一性」이 ������裵休拾遺問������에는 「本性」으로 되어있다. 「證」字는 解悟가 아니라는 뜻.
16) ������圓覺經大疏������, “解曰. 發心修行, 欲趣佛果, 須了悟身中淨圓覺, 以爲行本. 本卽解也. 依解以修, 方爲妙行.”(卍14-349-下).
17) ������圓覺經大疏������, “三期道場漸修漸悟.”(卍14-238-下).
18) ������圓覺經大疏������(卍14-389-下).
19)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 “頓復有多義. 一頓悟漸修, 如見九層之臺, 則可頓見, 要須躡皆, 而後得昇. 今亦如是, 頓了心性, 卽心卽佛, 無法不具, 而須積功, 遍修萬行. 此約解悟. 二者頓修漸悟. 卽如磨鏡, 一時遍磨, 明淨有漸, 萬行頓修, 悟則漸勝. 此約證悟. 三頓修頓悟. 如利劍斬絲, 千莖齊斬, 一時齊斷. 亦如染千絲, 一時齊染, 一時成色. 故萬行齊修, 一時朗悟. 四漸修漸悟. 猶如斬竹節, 節不同. 此今非用.”(大正36-164-下).
20) ������圓覺經大疏鈔������, “斬如頓悟. 頓悟煩惱本無, 卽名爲斷. 如一綟之絲, 不勝一劍頓斷故.”(卍14-560-下).
21) ������圓覺經大疏鈔������, “染如頓修. 頓稱性上恒沙功德, 念念無間而修. 如染一絲, 千條萬條一時成色故.”(卍14-560-下).
22) ������禪源諸詮集都序������, “斷障, 如一綟之絲, 萬條頓斷. 修德如染一絲, 萬條頓色.”
23) ������圓覺經大疏鈔������, “以根欲俱勝故, 不同前頓修漸悟也.”(卍14-560-下).
24) ������圓覺經大疏������,“修[間注:無心忘照]悟[間注:任運寂知]一時卽通解證.”(卍14-238-上).
25) ������答順宗心要法門������, “若無心忘照, 則萬累都捐[宗密注:旣忘心照, 煩惱自空.]. 若任運寂知, 則衆行圓起[起卽體之用, 用而無用, 何假因耶.].”(卍103-606-下).
위의 다음 문구로 「言止則雙忘智寂[宗密 脚註; 止․觀俱泯.]. 論觀, 則雙照寂智 [宗密 脚註; 止觀齊彰.].」 이것은 「止」․「觀」과 「智」․「寂」과의 同時性을 드러내는 문장이다.
26) ������圓覺經大疏鈔������(卍14-560-下).
임기영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dlpul1010/1967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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