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の指針 마음의 지침
苦樂の原点は心にある 고락의 원점은 마음에 있다
苦樂の原因はどこにあるのでしょう······。
고락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それは、あなたの〃心〃にある。
그것은, 당신의 〃마음〃에 있다.
〃心〃が現象に振り回されるから、
〃마음〃이 현상에 휘둘림 당하기 때문에,
怒りや憎しみ、
분노나 증오,
哀樂の感情に支配されてしまうのだ。
애락의 감정에 지배되어 버리는 것이다.
はしがき 머리말
現代の佛敎、キリスト敎の神理は、ながい歷史的な過程のなかに埋沒してしまったといっでもいいすぎ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時の勸力や、宗敎家たちの知と意によって解釋され、學問、哲學と化し、人びとの心から遊離してしまったからです。本來、佛敎もキリスト敎も、人びとの心から遊離するようなそんなむずかし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なぜなら、敎えそのものは、人間の心とは、人間とはこうしたものなのだということを、誰にもわかりやすく說いているものにほかならないからです。知情意の情とはどういうものかといいますと、情とは心です。心があってはじめて、知は智慧となり、意は大我となるのです。その情が不在となり、佛敎もキリスト敎も智と意で勝手に解釋され、自分の都合のいいように書き改められたものですから、いよいよもって、民衆の心から離れていったわけです。
현대의 불교, 그리스도교의 신리(神理)는, 오랜 역사적인 과정 속에 매몰해 버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시의 권력이나, 종교가들의 지혜(지식)과 의사에 의해 해석되어, 학문, 철학으로 변하고,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유리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본래,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사람들의 마음에서 유리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르침 그 자체는, 인간의 마음이란, 인간이란 다름 아닌 이러한 것인 것이라고 하는 것을, 누구든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정의(知情意)의 정(情)이란 어떠한 것인가 하면, 정(情)이란 마음입니다. 마음이 있고서야 비로소, 지(知)는 지혜(智慧)가 되고, 의(意)는
대아(大我)가 되는 것입니다. 그 정(情)이 부재가 되어,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지(智)와 의(意思)로 마음대로 해석되어, 자신의 형편이 좋도록 고쳐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민중의 마음에서 떠나 간 이유입니다.
もっとも、それにはそれだけの理由があります。人間は、五官や、六根に左右されるように一面においてできているからです。うまいものを食でたい。いい家に住みたい。偉くなりたい。金を儲けたい、といった自己保存の念が社會生活を營むことによってますます强くなっていったからです。戰爭と破壞――――その原因をだずねれば、みんなこうした欲望にふりまわされたところにあります。そころが、こうした欲望や本能というものは、人間の生活がこの世だけと自ら限定してしまうところに根本的な理由があったといえましょう。手にふれるもの、眼に見えるもの、耳で聽くものなど感覺の世界にしか人間は、これを認識すろことができないために、人は現世に執着を持ってように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
무엇보다도, 그것에는 그것만큼의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오관이나,
육근에 좌우되도록 어떤 관점에 있어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 위대하게 되고 싶다. 위대해지고
싶다. 돈을 저축하고 싶다, 라고 한 자기보존의 생각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것에 의해서 더욱더 강하게 되어 갔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파괴―― 그 원인을 물으면, 모두 이러한 욕망에 휘둘림을 당한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이나 본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생활이 이 세상뿐이라고
스스로 한정해 버리는 데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손에 접하는 것,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것 등 감각의 세계에 밖에 인간은, 이것을 인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은 현세에 집착을 갖게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しかし、人間は死んでも來世に生きつづげけいることを知れば、人びとの人生觀はかわるはずです。すなわち、あの世は嚴然としてあるのであり、あの世こそ本堂の人間の住む世界であり、この世は人間修行の場であり、そうして人間はあの世とこの世の轉生輪廻をくりかえすことによって、魂の淨化、佛性である己の本性に目覺めるものなのです。苦しみ悲しみの原因は、神性佛性の己の自身の「心」から離れた想念行爲の結果であり、その苦しみから解放されるには己の心を直視し、心そのものの實體を認識する必要があります。
그렇지만, 인간은 죽을지라도 다음 세상에 삶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안다면, 사람들의 인생관은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저 세상은 엄연히 있는 것이며, 저 세상이야말로 정말로 인간의 주거하는 세계이며, 이 세상은
인간수행의 장소이며, 그렇게 해서 인간은 저 세상과 이 세상의 전생윤회를 되풀이하는 것에 의해서, 영혼의 정화, 불성(佛性)의 자기의 본성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괴로움 슬픔의 원인은, 신성불성(神性佛性)의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떨어진 상념행위의 결과이며, 그 괴로움에서 해방되는 데에는
자기의 마음을 직시하고,「마음」그 자체의 실체를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本書は、そうした意味で「心」とは何か、「正法」とはどういうものか、「人間」とはいかなる存在かを槪念的ではありますが、そのポイントをしぼって書いたものです。本書を手にされた讀者は、本書の眞意をつかみ、調和のとれた生活と、平和な社會を築くための心の糧とされんことを願いってやみません。
본서는, 이러한 의미에서「마음」이란 무엇인가, 「정법」이란 어떠한 것인가,「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를 개념적입니다만, 그 point(요점,핵심)를 짜내어 기록한 것입니다. 본서를 입수한 독자는, 본서의 진의를 파악하고, 조화가 유지된 생활과,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마음의 양식으로 삼으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昭和四八年十一月吉日
1973년 11월 좋은 날
高橋信次(たか はし しんじ) 다카하시 신지
책 표제 안쪽에 적혀있는 내용입니다. 소개합니다.
人生を有意義に 인생을 뜻 있게
人の一生は短かいようで永い。永いようで短かいものだ。その人生を有意義に生きるには、?えられた現在の職業を最大限に活かす以外にない。本書は私のこうした考え方を裏付けられ、魂の永遠性と人生の意義を、もっとも平易にしかも率直に述べている。
사람의 일생은 짧은 것 같지만 길다. 긴 것 같지만 짧은 것이다. 그 인생을 뜻있게 살아가는 데에는, 주어진 현재의 직업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이외에는 없다. 본서는 저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뒷받침해주며, 영혼의 영원성과 인생의 의의를, 가장 평이하게 게다가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ややもすると人は人生に?疑的となり、 心を失い、かくれた自分の能力を十分に?揮することなく終る人の多いのにおどろく。本書を?まれ、人生の在り方をもう一度見直して欲しい。
자칫하면 사람은 인생에 회의적이 되며, 마음을 잃는다. 숨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고 끝내는 사람의 많은 것에 놀란다. 본서를 읽고, 인생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를 다시 한 번 재검토해 주셨으먼 합니다.
――岩井半四?氏(歌舞伎俳優) 이와이 한시로우씨(카부끼 배우)
●目次 목차
はしがき 머리말
第一章 間違った信仰
제 1장 잘못된 신앙
心と大自然(마음과 대자연)·········9
ある地獄界への旅(어느 지옥계로의 여행)·········20
後光(オ―ラ)と憑依(후광(오로라)과 빙의)·········39
間違った信仰(その一)(잘못된 신앙 사례 1)·········49
間違った信仰(その二)(잘못된 신앙 사례 2)·········58
間違った信仰(その三)(잘못된 신앙 사례 3)·········70
親と子の愛(부모와 자식의 사랑)·········83
第二章 八正道と中道
제 2장 팔정도와 중도
八正道――――その意味と解釋(팔정도―――― 그 의미와 해석)·········91
八正道こそ中道の道(팔정도야말로 중도의 길)·········91
正見(正しく見ること)(정견, 올바르게 보는 것)·········96
正思(正しく思うこと)(정사,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99
正語(正しく語ること)(정어, 올바르게 말하는 것)·········102
正業(正しく仕事をすること)(정업, 올바르게 일을 하는 것) ·········104
正命(正しく生活すること)(정명, 올바르게 생활을 하는 것)·········107
正進(正しく道に精進すること)(정진, 올바르게 도에 정진하는 것)·······109··
正念(正しく念ずること)(정념, 올바르게 염원하는 것)·········112
正定(正しく定に入ること)(정정, 올바르게 선정에 들어가는 것)·········114
八正道は行ずろこと(팔정도는 실행하는 것)·········116
第三章 人間の精神構造とその機能
제 3장 인간의 정신구조와 그 기능
心の實相(마음의 실상)·········121
旣成觀念を白紙に(기성관념을 백지로)·········121
精神(정신)·········122
90%の潛在意識(90%의 잠재의식)·········125
想念帶(상념대)·········128
10%の表面意識(10%의 표면의식)·········132
自己保存, 黑い想念(자기보존, 검은 상념)·········134
現象界に肉體を持っている上上段界·光の天使(현상계에 육체을 가지고 있는 상상단계·빛의 천사)·········136
第四章 神理問答集
제 4장 신리문답집
病氣(질병)·········151
十字架(십자가)·········153
死者の靈(죽은 사람의 영혼)·········156
他力本願(타력본원)·········158
本能と欲望(본능과 욕망)·········161
信仰の貧しさ(신앙의 빈곤)·········163
煩惱卽菩提(번뇌즉보리)·········166
死について(죽음에 대하여)·········168
念と執着(생각과 집착)·········171
精神活動(정신활동)·········174
運命と自由(운명과 자유)·········177
業(업)·········180
易、占い(역, 점)·········183
自殺(자살)·········186
生命の仕組み(생명의 짜임)·········188
他力と自力(타력과 자력)·········191
騙す(속이다)·········193
ウソと方便(거짓말과 방편)·········196
念力と祈り(염력과 기도)·········199
自由とは(자유란)·········201
第五章 祈りの意義と祈願文
제 5장 기도의 의의와 기원문
天と地のかけ橋(하늘과 땅의 가교《벼랑 같은 험로(險路)에 걸쳐놓은 나무다리》잔교)·········207
祈願文(기원문)·········210
祈りは行爲(기도는 행위)·········212
諸天善神の加護(제천선신의 가호)·········218
守護·指導靈の祈り(수호·지도령의 기도)·········220
自然への感謝(자연에 대한 감사)·········221
先祖に對する感謝(선조에 대한 감사)·········223
神佛との對話(신불과의 대화)·········224
第一章 間違った信仰
제 1장 잘못된 신앙
心とは太陽のように、貧しい人にも富める人にも、
わけへだてのない公平無私の意識である。
エネルギ―である。ウソいえないの心こそあなた自身である。
마음이란 태양처럼,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유한 사람에게도,
차별을 하지 않는 공평무사의 의식이다.
에너지이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음이야말로 당신 자신이다.
心と大自然
마음과 대자연
裏山の斜面の殘雪も消え、黑土の表面に、フキノトウが顔を出していた。春の?いがおとかにただよっています。
뒷산의 사면의 잔설도 사라지고, 검은 흙의 표면에 이른 봄에 머위의 뿌리 줄기로부터 나온 어린 꽃줄기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봄의 내음이 조용하고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습니다.
昨年の秋、友人からいただいた大きな庭石を入れたとき、堀りかえされたはずのフキの根がまだ殘っていたようてした。傘をいろげたようなフキの葉が、今年も庭の片隅を飾ってくれるかと思うと、その生命力の强さに私はおどろきました。
작년 가을, 친구에게서 받은 큰 정원석을 들여놓았을 때, 해자를 판 연못의 머위의 뿌리가 아직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산을 편듯한 머위의 잎이, 올해에도 정원의 한쪽 구석을 장식해 줄까 하고 생각하면, 그 생명력의
강함에 저는 놀랐습니다.
數日前まで、霜柱の立っていた庭です。その冷えた土の中で今までじっと辛棒し、耐えて來たのです。不平もいわず、默默と、時の來るのを持ちつづげてきたのです。
수일 전까지, 서릿발이 서 있던 정원입니다. 그 차가운 땅 속에서 지금까지 꾹 참고, 견디어 온 것입니다. 불평도 말하지 않고, 묵묵히, 좋을 때가 올 것을 계속해서 기다려 온 것입니다.
私は、まだぬくもりも淺い黑土のなかから、春の陽ざしを求めてゆらめいているフキノトウに心をひかれました。
저는, 아직 온기가 부족한 검은 흙 속에서, 봄의 햇살을 찾아서 흔들거리고 있는 머위의 어린 꽃줄기에 마음이 끌리었습니다.
あと一週間もすれば、小さなつはみも綠の葉をひろげるでありましょう。
앞으로 일주일 정도면, 작은 꽃봉오리도 초록의 잎을 넓히고 있을 것입니다.
庭石に腰をおろし、大自然の攝理と人生について思索をめぐらしてゆくと、この兩者の間には垣根はなく、自然は人間の生き方を身をもって敎しえていると思われてきます。
정원석 위에 앉아서, 대자연의 섭리와 인생에 대해서 이런 일 저런 일을 두루 생각해 보아 가면, 이 양자의 사이에는 울타리는 없고, 자연은 인간의 삶의 방식을 몸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되어 옵니다.
一九六八年三月、私は、人間とはいったい何者なのか、そして人間はいったい、何のために生まれ、なぜ仕事をし、苦しみを背負い、老いて死んてゆくのであろうか、という問題について、樣樣な角度から追究していたころのことを思い出していました。
1968년 3월, 저는,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인간은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태어나, 왜 일을 하고, 괴로움을 등에 짊어지고, 늙어서 죽어 가는 것일까, 라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추구해 갈 무렵의 일을 상기하고 있었습니다.
ふと斜の右に目を向けると、黑土が妙に盛り上がりながら、芝生のある方向に進んで行きます。もぐらの移動でした。都會ではみられぬどかな風景です。
문득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자, 검은 흙이 묘하게 부풀어오르면서, 잔디밭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 갑니다. 두더지의 이동이었습니다. 도회지에서는 볼 수 없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풍경입니다.
空にはひばりが鳴き、雀がさえずっています。
하늘에는 종달새가 울고, 참새가 지저귀고 있습니다.
澄んだ空氣と、綠と、赤い太陽の下に自分を置くと、いかにも大自然に包まれ、生かされている己を發見し、喧?の都會では味わえぬ感覺を覺えます。
맑은 공기와, 초록과, 붉은 태양 아래에 자신을 두면, 정말로 대자연에 감싸여, 되살려지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시끄러운 도회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감각을 깨닫습니다.
自然のこうした美しい環境というものは、太陽の熱光のエネルギ―によって育まれる。太陽の偉大さに、いまさらながら脫帽せざるを得ません。
자연의 이러한 아름다운 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태양의 열 빛의 에너지에 의해서 소중히 길러집니다. 태양의 위대함에, 새삼스러운 말 같지만 모자를 벗지 않을 수 없습니다.
私たちの肉體舟は、その環境に適應して保存されるようにつくられています。
우리들의 육체배는, 그 환경에 적응해서 보존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寒い冬は、その寒さに耐えられるように、皮膚はちぢみ、體內溫度をントロ―ルし、反對に暑くなれば、皮膚は膨張し、毛穴から汗を出し、放熱作用をつづけています。
추운 겨울은, 그 추위에 견뎌낼 수 있도록, 피부는 오그라들고, 체내 온도를 control(관리,통제)하고, 반대로 덥게 되면, 피부는 팽창하고, 털구멍에서 땀을 내어, 방열작용을 계속해 갑니다.
內臟諸器官は常に活動を續け、人體という安定された小宇宙を維持しています。
내장 모든 기관은 항상 활동을 계속하고, 인체라고 하는 안정된 소우주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肉體の諸機能を靜かにふりかえりながら、ながめてみると、そこには、〃神秘〃という以外、いいようのない偉大な?きを想像することができます。
육체의 모든 기능을 조용히 뒤돌아보면서, 눈여겨보면, 거기에는, 〃신비〃라고 하는 이외,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작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すなわち、大自然の環境をつくり出している目に見えない力、全能のエネルギ―こそ、神の心の現われでなくて何といえるでしょうか。
즉, 대자연의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눈으로 볼 수 없는 힘, 전능의 에너지야말로, 신의 마음의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そうして、その心の現われこそ、慈悲であり、愛の姿といえでしょう。
그렇게 해서, 그 마음의 표현이야말로, 자비이며, 사랑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ところで、その心について私たちは、これをどこまで理解しているでしょう。おそらく、心とはこうだと、はっきり答えられる人は少な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그런데, 그 마음에 대해서 우리들은, 이것을 어디까지나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까. 어쩌면, 마음이란 이렇다라고, 확실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은 것은 아닐까요.
あの人は精神狀態が惡いとか、心の廣い人だと簡單にいうけれども、では精神とは、心は、となると說明に窮します。
저 사람은 정신상태가 나쁘다든가, 마음의 넓은 사람이라고 간단하게 말을 하지만, 그럼 정신이란, 마음은, 그렇게 되면 설명이 막힙니다.
萬物が生命と同居している事實は誰も否定出來ません。
만물이 생명과 동거하고 있는 사실은 어떤 사람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物理學では、物質がエネルギ―と同居している事實を證明し、エネルギ―とは仕事を爲し得る能力であるとしています。
물리학에서는, 물질이 에너지와 동거하고 있는 사실을 증명하고, 에너지란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そうしてその結果、物質はエネルギ―であり、エネルギ―は物質であるとさえいうことが出來るのです。
그렇게 해서 그 결과, 물질은 에너지이며, 에너지는 물질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目に見られるちがいは、物質という集中された次元と、擴散されたエネルギ―の次元の差だけであり、しかも兩者は常に倂存しているということがいえましょう。
눈으로 볼 수 있는 차이(相異)는, 물질이라고 하는 집중된 차원과, 확산된 에너지의 차원의 차이뿐이며, 게다가 양자는 항상 병존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また、物質は不變であり、エネルギ―は不滅であるという事實も實證されています。
또, 물질은 불변이며, 에너지는 불멸이라고 하는 사실도 실증되어 있습니다.
たとえば、密閉したコップの中にマッチ棒を入れて燃燒させても、全體の重さは變りませんし、マッチ棒はコップ
內の酸素によって燃え、炭素や炭酸ガスに變化しても、全體の重さの變化はおきないということなのです。
예를 들면, 밀폐된 컵 속에 성냥개비를 넣고 연소시켜도, 전체의 중량은
변하지 않고, 성냥개비는 컵 안의 산소에 의해서 불타고, 탄소나 탄산가스로 변화해도, 전체의 중량은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私たちの肉體も大自然の中で存在している以上、大自然の法則を無視することは出來ないでしょう。
우리들의 육체도 대자연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이상, 대자연의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生老病死という?を誰も破ることが出來ない事實を知れば、自明の理といえます。
생로병사라고 하는 규정을 어떤 사람도 파괴할 수가 없는 사실을 알면,
자명(명백)한 이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形あるものはいつの日か崩れ去る。しかし肉體も他の物質と同じように、次元の異なった何者かと同居してい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
모양(형태)가 있는 것은 언젠가 무너진다. 하지만 육체도 다른 물질과
마찬가지로, 차원의 다른 누군가(어떤 사람)와 동거하게 될 것입니다.
これを、魂、あるいは意識と名づけてみてもいいでしょう。ちょうど、物質がエネルギ―と共存しているようにです。
이것을, 영혼, 혹은 의식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것입니다. 정확히,
물질이 에너지와 공존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肉體舟は肉體細胞諸器官の生命活動により安定していますが、舟の責任者は五體を支配する船頭さんである魂·意識の活動によって、生活を營んでいるといえましょう。
육체배는 육체세포 모든 기관의 생명활동에 의해 안정되고 있습니다만,
배의 책임자는 온몸을 지배하는 선장인 영혼·의식의 활동에 의해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肉體舟の欠陷は、五體の各諸器官と船頭さんである意識の相互關係がアンバランスになったときに起こるのです。
육체배의 결함은, 온몸의 각 모든 기관과 선장인 의식의 상호관계가 부조화가 되었을 때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私たちの記憶も、旣刊の著書の中でたびたびふれたように、頭腦がそれをするのではなく、魂·意識が記憶しているのです。
우리들의 기억도, 기간(이미 간행된)의 저서 속에서 번번이 접했듯이,
두뇌가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며, 영혼·의식이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つまり、肉體舟と意識·魂という次元の異なった世界のものが不二一體となって、生命活動をしている、といえるでしょう。
즉, 육체배와 영혼·의식이라고 하는 차원의 다른 세계의 것이 불이일체(둘이 아닌 한 몸)가 되어, 생명활동을 하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永遠の生命とは、この世とあの世を超えて、いっさいの記憶を持じながら生き續けている魂·意識の自分であるわけです。
영원한 생명이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초월해서, 일체의 기억을 가지면서 삶을 계속하고 있는 영혼·의식의 자신인 까닭입니다.
肉體の生死にとらわれると、死はすべての終りを意味しますが、肉體を離れた自分を認識し、體驗すると、そこには、死のないことに氣づきます。 ただ、生きている間にこのような體驗を持つ者は、ホンの一部にかぎられているため、想像は出來ても、信ずるところまでは、なかなか、いかないようです。
육체의 생사에 얽매이면,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합니다만, 육체를 떠난 자신을 인식하고, 체험하면, 거기에는, 죽음의 없는 것을 깨닫습니다. 단, 살아 있는 동안에 이와 같은 체험을 가지는 사람은, 본디 일부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상은 할 수 있어도, 믿을 정도까지는, 꽤, 안 되는 모양입니다.
しかし、信じる信じないにかかわらず、人間は、肉體が滅びても死ぬことはないし、死はあの世への誕生といってもいいのです。
그렇지만, 믿고 믿지 않음에 관계없이, 인간은, 육체가 없어져도 죽는 일은 없고, 죽음은 저 세상으로의 탄생이라고 해도 좋은 것입니다.
私たちは旅行をするときに、いろいろな乘り物を使います。飛行機で飛んりだり、自動車に乘ったり、電車を利用したりして目的地に着きます。乘り物はそれぞれちがっていますが、乘っている自分自身は少しても變らないのです。
우리들은 여행을 할 때에, 다양한 교통편을 사용합니다. 비행기로 비행하거나, 자동차에 타거나, 전차를 이용하거나 해서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교통편은 저마다 다릅니다만, 타고 있는 자기 자신은 적어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魂の永遠の生命、つまり轉生輪廻もこれと同じで、自分の過去世は中國で、インドで、あるいは日本人として、生れ變って生き續けていますが、自分自身は少しも變っていないのです。.
영혼의 영원한 생명, 즉 전생윤회도 이것과 마찬가지이며, 자신의 과거세는 중국에서, 인도에서, 혹은 인본인으로서, 다시 태어나서 삶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자기 자신은 조금도 변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過去世の記憶をよみがえらす人は非常に少ない。ほとんどの人は現在の生活だけが絶對であると思っています。ましてや未來について語る人は絶無に近い。そのために、無意味な人生を送ってしまっているのです。
과거세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사람은 상당히 적다. 대부분의 사람은 현재의 생활만이 절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욱이나 미래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전무(조금도 없음)에 가깝다. 그 때문에, 무의미한 인생을 보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過去世の記憶の斷絶は、一つには現世は修行の場であり、もう一つは次元の相違がそれをさせているといえます。過去の記憶がオギャと生れてすぐにわかってしまうならば、この世に生まれた意義は少なくなります。
과거세의 기억의 단절은, 한가지로는 현세는 수행의 장이며, 또 한가지는 차원의 상이가 그것을 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응애하고 태어나서 곧 알아 버린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는 적어지게 됩니다.
もう一つは、ある一定の年令に達しても、なおかつそうした記憶が浮かんでこないというのは、自分の心の中に次元差をつくっているためなのです。次元差とは斷絶という壁であり、スモッグです。
또 한가지는, 어느 일정한 연령에 도달해도, 그래도 그러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차원의 차이를 만들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차원의 차이란 단절이라고 하는 벽이며, 스모그입니다.
そのスモッグは、私たちの思うこと、行うことの、片寄った生活行爲がつくり出したものです。
그 스모그는, 우리들의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 치우친 생활행위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私はその事實を知ったのです。
저는 그 사실을 안 것입니다.
私は幼い頃から生命の神秘に疑問を持ち、自然科學を通して、精神のあり方について、追究して來ました。追究するたびにさまざな體驗が積まれ、體驗を通して、生命のナゾが明らかになって來たからです。
저는 어린 시절부터 생명의 신비에 의문을 가지고, 자연과학을 통해서,
정신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서, 추구해 왔습니다. 추구할 때마다 다양한
체험이 쌓여, 체험을 통해서, 생명의 수수께끼(신비)가 명백하게 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これらについては拙著『心の發見』神理篇、科學篇、現?篇、それに『心の原点』を參考にしていただげば、ご理解願えると思います。
이것들에 대해서는 졸저『마음의 발견』신리편, 과학편, 현증편, 그것에『마음의 원점』을 참고해 주시면,이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ともかく私は、こうした體驗の中から、人間は魂という意識を持って生きつづげる永遠の生命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り、限られたた短かい肉體人生に與えられた己の役割に、全力を擧げてゆきたいと考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어쨌든 저는, 이러한 체험 속에서, 인간은 영혼이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고 삶을 계속하는 영원한 생명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고, 한정된 짧은 육체인생에 주어진 자기의 역할에, 전력을 다해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魂について、さらに明らかになった点は、魂を動かしているもの心であり、心は意識の中心に存在するということです。
영혼에 대해서, 특히 분명하게 된 점은, 영혼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마음이며, 마음은 의식의 중심에 존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私たちが生活の場の中で、さまざまな行爲を指示するものは、意識の中心である心であり、心以外のものは何もないということです。
우리들이 생활하는 장소 속에서, 다양한 행위를 지시하는 것은, 의식의 중심인 마음이며, 마음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もっとも私たちの肉體舟は、植物性神經の?きで心臟や內臟器官が動いており、肉體舟全體の行動は、魂の中心である心が支配しています。したがって、心臟や內臟は心とは關係がないとみる人もいるかも知れませんが、心の動きは內臟器官に大きな影響を與えています。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육체배는, 식물성신경의 작용으로 심장이나 내장기관이 움직이고 있고, 육체배 전체의 행동은, 영혼의 중심인 마음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심장이나 내장은 마음과는 관계가 없다고 모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마음의 움직임(활동)은 내장기관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植物性神經、つまり自律神經は神から輿えられたエネルギ―を吸收しながら活動していますが、また、心の波動を强く受けて動いています。
식물성신경, 즉 자율신경은 신(神)으로부터 주어진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또, 마음의 파동을 강하게 받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この点については拙著『心の原点』を參考にされるといっそう理解が深まるでしょう。
이 점에 대해서는 졸저『마음의 원점』을 참고로 하시면 더욱 이해가 깊게 될 것입니다.
病氣の80は心因性なのです。
질병의 80%는 심인성인 것입니다.
怒ったり、悲しんだり、愚痴ったり、こうした自己保存が重なると、肉體にさまさまな障害が現れ、病氣になってゆきます。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푸념을 하거나, 이러한 자기보존이 쌓이면, 육체에 다양한 장해가 나타나고, 병이 되어 갑니다.
心が片寄ると、自分だけの問題なら病氣となって現れますが、對外的に影響を與える場合は、事業不振、家庭不和、公害、災害などに發展してゆきます。
마음이 치우치면, 자신만이 문제라면 병이 되어 나타납니다만, 대외적으로 영향을 주는 경우는, 사업부진, 가정불화, 공해, 재해 등으로 발전해 갑니다.
物質文明が發達するにしたがって、人間は普遍的な自分自身の心を失い、物質文明の虜(とりこ)になってしまいます。
물질문명이 발달함에 따라서, 인간은 보편적인 자기자신의 마음을 잃고,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物質文明は誰のためにあるのか、文明のためか、人間のためなのが······。
물질문명은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것일까, 문명을 위함인가, 인간을 위함인가······。
人間はいつのまにか主客を顚倒し、文明に奉仕する人間になり下がっています。愚かというほかありません。.
인간은 어느 사이엔지 주객을 전도하고, 문명에 봉사하는 인간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다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なぜこうなるか、理由はほかでもない「足ることを忘れた欲望」の追求にあるからです。
왜 이렇게 될까, 이유는 다름 아니라「만족함을 잃어버린 욕망」의 추구에 있기 때문입니다.
欲望のためには手段を選ばず、すべてに自己中心的な考えが根底にあるので、世の混亂はいつになっても治まらぬというのが、現實でありましょう。
욕망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에 자기중심적인 생각(思考)이 근저에 있는 것이며, 세상의 혼란은 언제라도 진정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大自然をみると、私たちの眼前にひらかれている姿は、法のル―ルにしたがって、動物も植物も動物も、互い調和されています。
대자연을 보면,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모습은, 법의 규칙에 따라서, 동물도 식물도 동물도, 서로 조화되어 있습니다.
自然は、正しい環境の法、ル―ルを示し、足ることを知った中道の神理を敎えています。
자연은, 올바른 환경의 법, 규칙을 나타내 보이고, 만족함을 아는 중도(中道)의 신리(神理)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動物は酸素を吸って炭酸ガスを吐き、植物は炭酸ガスを求めて酸素を吐きます。動物は植物を求め、植物は動物の排泄物を營養源にして育ってゆく。兩者の相互共存、これは天の攝理です。
동물은 산소를 흡수해서 탄산가스를 내뿜고, 식물은 탄산가스를 구하고 산소를 내뿜습니다. 동물은 식물을 구하고, 식물은 동물의 배설물을 영양원으로 해서 성장해 간다. 양자의 상호공존, 이것은 하늘의 섭리입니다.
肉食動物は草食動物をやたらと殺しません。腹がいっぱいになれば、目の前の獲物も見送ってしまう。彼らは足ることを知り、自然の循環にそって生かされています。したがって、彼らの生活は、人間が踏みこんで荒らさぬかぎり、半永久的に維持されてゆきましょう。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함부로 죽이지 않습니다. 배가 부르면, 눈 앞의 사냥감도 눈으로 보기만 하고 손도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만족할 줄 알며, 자연의 순환에 맞게 되살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생활은, 인간의 발을 들여 놓고 엉망으로 만들어 놓지 않는 한, 반영구적으로 유지되어 갈 것입니다.
人間はこうしたル―ルを忘れ、欲望充足に明け暮れています。
인간은 이러한 규칙을 잊고, 욕망충족에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そのために、大氣は汚染され、河川や大洋までが、工場排水でよごれ、動、植物の生存ばかりか、人間の生存すらおぼつかぬような狀況をつくり出しています。
그 때문에, 대기는 오염되고, 하천이나 대양마저, 공장 배수로 더러워지고, 동, 식물의 생존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존조차 불안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これらは等しく、足ることを忘れた利益追求の人間の存り方に問題があり、今や人類は、大きな壁に突き當っている、といえるでしょう。
이들은 다같이, 만족함을 잃어버린 이익추구의 인간의 본연의 모습에 문제가 있고, 오늘날의 인류는, 큰 벽에 부딪히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結果は原因なくしてあり得ないし、現實の現象に對して私たちは、まずその原因を取り除くことからはじめねばなりません。
결과는 원인이 없고서는 있을 수 없고, 현실의 현상에 대해서 우리들은,
우선 그 원인을 제거하는 일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つまり、行爲をつくっている心の在り方を正す必要があるでしょう。
즉, 행위를 만들고 있는 마음의 본연의 모습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拙著『心の原点』では、諸相の根源はどこにあるか、そうして人間の在り方、生きる目的、苦しみの原因などについて、つまびらかにしたつもりです。本書を一讀されれば、大自然と人間の關係を、ひと目で見渡すことが可能と思います。
졸저『마음의 원점』에서는, 여러가지 양상(모습)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해서 인간의 본연의 모습, 삶의 목적, 괴로움의 원인등에 대해서, 상세히 한 생각입니다. 본서를 한번 읽으면, 대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한 눈에 조망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ともかく私たちは、まず、自分にウソのいえぬ己の心に忠實になることを心がけねばなりません。
어쨌든 우리들은, 우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기 마음에 충실하게 되는 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そうして、自己保存、自我我欲という心の公害を取り除かねばなりません。
그렇게 해서, 자기보존, 자아아욕이라고 하는 마음의 공해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心の公害は、他人は取り除いてくれません。 何となれば、自分の肉體舟の支配者は他人でなくて自分だからです。心の王國の支配者は己であるという自覺を持つ必要があるでしょう。
마음의 공해는, 타인은 제거해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육체배의 지배자는 타인이 아니고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왕국의 지배자는
자기이다 라고 하는 자각을 갖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自分を含めて、自分の周圍で起こったさまざまな諸現象の原因は、他人ではなくて自分にあることを悟るべきです。
자신을 포함해서, 자신의 주위에서 발생한 다양한 모든 현상의 원인은,
타인이 아니고 자신에게 있는 것을 깨달아야할 것입니다.
今日の社會の混亂と公害問題に人びとが惱むのも、もとはといえば、個人個人の心の公害から端を發していることを知るべきです。
오늘의 사회의 혼란과 공해 문제에 사람들이 괴로워하는(고민하는) 것도, 근본이라고 하면, 개인개인의 마음의 공해에서 발단하고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原因と結果の法則は崩すことは出來ません。しかし、この法則を知って、調和と明るい世界、環境をつくろうとするなら、この法則の偉大さに氣づき、人生の目的は期せずして達成されることでしょう。
원인과 결과의 법칙은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법칙을 알고, 조화와 밝은 세계,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면, 이 법칙의 위대함을 깨닫고,
인생의 목적은 예기치 않게 달성될 것입니다.
一九六八年七月、心と行いについて、私の心の窓が開かれたとき、私はこうした問題について多くのことを知りました。
1968년 7월, 마음과 행위에 대해서, 저의 마음의 창이 열었을 때, 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1968냔 7월, 을 1978년 7월, 로 수정합니다.
私たちの心の中につくり出されたさまざまな心の曇りを除いてゆき、平和な人生を送ることが出來たならば、人びとは人生の偉大な價値を自ら悟ることが出來るでしょう。
우리들의 마음 속에 만들어 낸 다양한 마음의 흐림을 제거해서, 평화로운 인생을 보내는 일이 가능하게 되면, 사람들은 인생의 위대한 가치를 스스로 깨달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담[曇]: 흐리다, 구름이 끼다. 먹구름 모양. 한자를 풀면, 구름 위에 해가 떠 있습니다. 그럼 흐리겟죠.^^
庭石に腰をおろし、人生の不安から解放された自分自身を、フキノトウをながめながら、私はしみじみ思うのでした。
정원석 위에 앉아서, 인생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된 제 자신을, 이른 봄에 머위의 뿌리 줄기로부터 나온 어린 꽃줄기를 눈여겨보면서, 저는 절실히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page 1~19
※다음은 「제 1장 잘못된 신앙」의 두 번 째, 어느 지옥계로의 여행편입니다.
※出處 : 高橋信次(たかはし しんじ) 『心の指針』《はしがき》〔目次〕「第一章 間違った信仰」[心と大自然] page 1~19
※出版社 : 昭和49年1月5日(1974년 1월 5일) 初版發刊 三寶出版株式會社
※번역 본인
2010.12.01 20:33
가져온 곳 : 블로그 >신선한 미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