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다라표'라고 하는 위대한 승려가 있었습니다.
다라표는 머리가 총명할 뿐만 아니라 정진력도 굉장히 투철한 분이어서,
십사 세에 출가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년 동안 용맹정진을 해서 십육 세에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성취했습니다.
아라한과는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마는, 불교에서 공부하는 모든 과정과
명상 과정을 거쳐서 삼명육통三明六通을 했다는 말입니다.
삼명육통은 과거에도 통달하고 미래도 비추어 보고,
또 자기 번뇌의 뿌리를 뽑아버렸을 때 얻습니다.
아라한과는 기적적인 지혜입니다.
자기 공부는 다 했으니까, 다라표 스님은 봉사할 것을 지원했습니다.
손님들이 오면 손님들을 바라지하는 심부름꾼으로 자처했습니다.
전기가 없는 때라, 밤에 손님이 오면 촛불 등으로 불을 밝혀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화광삼매火光三昧라,
몸에서 불을 내는 삼매를 내가지고, 왼손으로 불을 비추면서
오른손으로는 이리저리 가리켜서 지도했습니다.
삼매를 닦아서 초월해 버리는, 우리 인간의 번뇌성을 초월해 버리는 그런 단계에
이른 분들은, 단지 다라표 스님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같은 수행자도 공부를 잘 했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데,
사실은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렇지, 본래 못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진력이 부족해서 여실히 못 닦아서 그렇지, 원래 못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성은 아라한도를 성취하면, 누구나 다 삼명육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성은 정말로 끝도 가도 없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춘 것인데,
중생들은 아라한도를 성취할 만하게 제대로 닦지를 못할 뿐입니다.
제대로 닦는 길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우선 철저하게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이른바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계율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음식을 함부로 먹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리生理와 심리心理가 본래 둘이 아니라서 서로 상응하기 때문에,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우리 마음도 흐리멍덩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몸도 오염이 됩니다.
그래서 철저한 계율로 해서 준비작업을 하고,
그 다음에는 불교말로 하면 삼마지三摩地라, 삼매三昧에 들어야 합니다.
삼매라는 것은 명상을 말합니다. 보통 명상은 삼마지, 삼매라고 못합니다.
초보적인 위빠사나나 관조하는 초보적인 명상을 해서,
우리 마음이 분열되지 않는 오직 일념으로 흘러가는 것을 삼매라 하지요.
삼매에 들어야 비로소 자기를 초월합니다.
삼매에 온전히 들어서 삼매를 성취해야 자기를 초월해 성자가 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특수한 사람만 성자가 되는 것으로 생각할는지 모르나,
옛날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분도 성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소크라테스는 길을 가다가도 가만히 서서 엑스타시스(ekstarsis)라,
명상에 잠기고 망아忘我적인,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를 초월하는 경지에 들어갔습니다.
깊은 사유를 하면, 모든 것이 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이루어졌기 때문에,
내 관념이든 내 몸뚱이든 눈에 보이는 현상계는 결국 자기라고 고집할 것도 없고,
자기 소유를 주장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 자기라는 에고나 소유를 주장하지 않고서 생활한다면,
부조리가 생겨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라는 에고가 생기면, 거기에 내 남편, 내 아내, 내 재산, 내영역이 따르겠지요.
그래서 철학이란 것은 철저하게 사유해야 합니다.
끝까지 투철하게 사유해 나가야, 이른바 인생과 우주의 본바탕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본래적인 본바탕을 안다고 할 때는, 결국 무아를 체험한 것입니다.
기독교와 불교와 이슬람교의 어떤 종교도 별도로 따로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리가 하나기 때문에, 종교도 하나입니다.
진리는 하나기 때문에, 종교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2001년 5월, 국제철학대회 법어] 말씀 中에서
성륜사 신도회 부회장인 배광식 거사는 청화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85년인가, 제가 집사람과 스님을 뵙기 위해 태안사에 갔을 때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때 걸레로 마루바닥을 훔치고 계시다 저희를 맞으셨어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죠. 큰 스님이 마루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직접 걸레질을 한다는 것을요. 그때 <금강경>에 ‘희유세존(希有世尊)’이라는 감탄사가 나오게 된 연유를 깨달았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스님의 자세, 행동 그대로가 바로 가르침이 되어 부단히 우리 불자들을 각성시키시는 걸요.”
스님을 곁에서 지켜본 불자들은 한결같이 항상 겸손하고, 자비하신 청화스님의 모습에 감복한다. 찾아온 불자들이 행여 불편할까 항상 편하게 앉으라 하고, 방석이라도 없이 앉은 이가 있으면 스님이 앉았던 방석을 내어주신다. 몇 해 전에는 당신이 평생 지니며 굴리면서 수행의 도반으로 삼아온 온 염주를 ‘우리는 선우’의 장학기금마련 자선 바자회에 내놓으시기도 하는 등 자비로운 스님의 면모는 널리 알려져 있다.
스님은 일찍이 14살 되던 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5년제 중등학교과정을 마친 후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고향 무안에 청운고등공민학교를 세워 후학을 지도했다. 그 학교가 지금도 남아있는 망운중학교다. 현대 물리학과 철학에도 관심을 갖고 있던 스님은 청년시절부터 여러 서적을 두루 섭렵했다. 그러나 궁극에도 풀리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의문은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는데 금타스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의문을 풀게 되었다 한다.
스님이 은사 금타스님의 유고들을 모아 펴낸 <금강심론>에는 근본불교의 핵심으로서 견성성불에 필수적인 근본선정인 구차제정의 역설과 각 경론의 모든 수행법과 수행의 위차를 종합 회통하여 해탈 16지로서 수행차서를 정립해 놓았는데, 특히 불교의 우주관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스님은 이같은 금타스님의 영향으로 현대물리학과 철학 등에도 매우 해박하고 법석에서도 이를 불교적으로 풀이한 법문도 자주 하신다. 세상의 모든 물체들은 물질입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입자를 분석하면 핵전자의 소립자 단계를 거쳐 종국에는 텅 비어버리는 공의 세계가 되는 것이며, 이것은 그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데, 이 순수에너지가 바로 불성이라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의 양자론과 현대과학으로도 증명하지 못하는 순수 에너지의 실체를 설명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세계를 스스럼없이 펼쳐보이시는 것이다.
스님은 수행이 철저하셨던 은사스님을 따라 묵언과 장좌불와를 평생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 오셨다. 상원, 백장암 등 여러 토굴에서 50여년간 늘 검소함과 부지런함으로 한치의 게으름도 용납없이 수행에 매진하셨다고 한다. 직접 끼니를 만들어 잡수시고, 의복 빨래도 직접 하셨다. 한 겨울에도 찬물에 목욕을 하는 등 철저히 정진했다. 스님은 지난 95년 미국으로 건너가 팜스프링 금강선원에서 3년간 하루 한끼 공양과 묵언, 장좌불와의 정진결사를 성취하셨다. 현재 청화스님은 80에 가까운 세수지만 참선과 묵언수행을 철저히 지키시는 등 여전히 엄격한 수행의 길을 걷고 계신다. 그런 스님이 불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가르침은 계율을 지키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률 가운데 부처님이 설하신 계율 만큼 합리적인 것은 없습니다. 계율은 우리 사회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우주의 질서입니다. 유교의 인의예지신이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십계명, 그러한 세계종교의 우수한 도덕률도 다 불교의 계율에 들어있습니다. 계율만 제대로 지키면 자연적으로 우리의 마음도 편해지고 주위도 편해집니다. 우리가 참선염불을 해서 깊은 명상에 들어가려 하더라도 계율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흉내만 낼 뿐이지 마음이 정화가 안됩니다. 명상이라는 것은 마음의 정화를 도모하는 것인데 계율이 밑받침 안되면 명상을 해서 이루는 마음 정화는 올 수가 없지요.”
혜운사에서 스님은 환한 미소로 기자를 비롯한 내방객들을 맞았다. 무릎을 꿇고 앉은 우리에게 연신 편히 앉으라고 하셨다. 옆에 있던 한 분이 “편히 앉지 않으시면 스님께선 불편해서 말씀을 제대로 못하십니다. 편하게 앉으세요”라고 눈치를 준 후에야 무릎을 풀어 편한 자세를 취했다. 스님께 옛날 수행하던 시절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했다.
“내가 수행은 잘 못했거든요. 그래서 오늘날 이러고 있습니다. 수행을 잘 했으면 삼명육통을 다해서 신통자재할 것인데, 수행을 흉내만 내놔서 잘 못했어요. 그래서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후회만 막심합니다. 당시에 계행도 훨씬 더 철저히 하고, 공부도 용맹정진을 거듭했으면 진작 생사대사를 끝내버렸을 터인데... 나는 지금도 생사대사를 다 끝내버리지를 못했거든요. 공부를 시원찮게 했다는 증거 아닙니까.”
언젠가 기자가 서울에 있는 책방 여시아문에서, 안거를 마치고 시자와 함께 책을 사러 오신 스님을 우연히 만나 뵙고, 안부를 여쭈었던 적이 있다. 그때도 스님은 “나이가 들어서도 묵언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30~40대에 열심히 공부하고, 나이 들어서는 중생교화에 힘써야 마땅하나, 아직 공부가 덜 돼서 중생교화를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참된 수행에 이르기 위해 묵언수행은 필수입니다. 정평있는 수행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라며 겸손해 하셨다.
스님께 다시 여쭈었다. “스님, 공부하다가 막힐 때는 어찌해야 하나요? 특히나 요즘엔 다양한 수행법이 유행해서 불자들이 혼란스러워 합니다. 어떻게 판단하고 수행에 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모든 명상법이 다 좋기는 좋은데, 그런 법은 해탈의 법이 아닙니다. 이른바 생사대사를 해탈하고 성자가 되는 법이 아니라, 불교적인 의미로 말하면 유위법이라. 삶의 유한적인 공덕을 위해 하는 법이기 때문에 몸이 좋아진다든가, 머리가 맑아진다든가 하는 데에 관심을 둔 사람들은 좋겠지요. 그러나 종교인으로서 정말로 생사윤회를 떠나서 부처가 되어야겠다, 성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에겐 미흡합니다. 미흡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제시한 수행법으로 나아가기 위해 준비 하는 데는 좋지요. 그러나 그것이 구경(究竟)의 경지라고 하면,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부처님법과는 거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근본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사나도 삼매에 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위빠사나가 끝이 아니라 이 위빠사나를 통해서 삼매로 나아가면 좋지요. 그러나 보통은 위빠사나가 제일 수승하다고 해서 문제가 되요. 부처님의 명상법이 제일 완벽하고, 가장 최상의 수행법입니다. 부처님 명상법은 바로 성인이 되고, 생사대사를 초월해서 영생으로 가는 법이기에 가장 완벽한 법입니다. 다른 법은 최상의 법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일 뿐입니다. 다른 법은 유한적인 공덕이 크므로,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성을 알고 하면 좋습니다.”
하루 하루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 생활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청했다.
“부처님 법은 쉽다고 하면 제일 쉽습니다. 어째서 쉽다고 하느냐면 우주의 원리를 보탬이 없이 그대로 정확히 말씀하신 것이 부처님 법이기 때문입니다. 생활속에서 가장 쉽게 행할 수 있는 수행법은 염불입니다. 염불이라는 것이 굉장히 소중한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체계가 복잡한 것만을 높은 줄 알고 염불은 너무 쉬우니까 소홀히 생각한단 말입니다. 명호부사의라! 그 이름 자체에 부사의한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음성 모든 형체 하나 하나에 다 의미가 있습니다. 최상의 개념이 담겨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 이름입니다. 제일 쉽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부처님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삼세제불이 모두 순수한 이름입니다. 우주의 자비가 바로 관세음보살인 것이고, 우주 생명자체가 바로 나무아미타불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님은 불자들에게 수행방법으로 어느 한 방법에만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인 사람에게는 화두선으로, 의지적인 사람에게는 묵조선으로, 각기 근기에 맞도록 이끌어주신다. 특히 스님은 지정의(知情意)를 조화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염불선(念佛禪) 제창하기도 하셨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현대인들에게 알맞은 행법이 인간의 근본을 되찾는 염불법이라 설하시는 스님은 염불에 화두를 붙여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참구하는 방법과 본래가 부처라는 확신을 갖고 부처님의 법신을 관하는 실상염불(實相念佛)의 방법을 통해 깨달음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가르침을 주셨다.
육도중생 (六道衆生)
십법계(十法界) 가운데서 가장 낮은 법계가 지옥법계(地獄法界)입니다. 마치 땅속에 갇혀 있는 감옥이나 같다는 말입니다. 지옥법계는 우리 중생은 안보이니까 부인합니다.
"그것은 권선징악으로 사람들 한데 나쁜 짓을 못하게 하고 좋은 짓을 하게 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말했겠지" 하며 부인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합니다. 천지우주가 텅 비어있다는 즉, 제법공(諸法空)이란 경계에서 보면은 사람도 없다고 봐야 합니다. 공에서 본다면 사람도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사람도 임시 동안 가짜로 있다고 생각할 때는 지옥도 분명히 있습니다.
현상계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천지우주가 텅 비어서 부처님의 광명 뿐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리(理)에서, 불성(佛性)에서 안 보고, 차별적으로 본다고 할 때는 분명히 사람도 있고 지옥도 있습니다. 다만 인간의 한정된 안목으로써 못 볼 뿐입니다. 우리가 전자(電子)나 또는 양자(陽子)를 눈으로 볼 수 있습니까? 못 보지요, 그와 똑같이, 인간의 한정된 안목으로 안 보일뿐이지 분명히 지옥은 존재합니다.
아귀법계(餓鬼法界)입니다.
하품(下品)의 오역, 십악을 범하여 주리고 목마른 기갈(飢渴)의 고통을 받는 나쁜 귀신인 악귀의 경계라는 말입니다.
귀신은 등급도 많고 수도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귀신은 또 역시 몸이 없는 의식(意識)만 있어서 신통(神通)을 합니다.
의생신(意生身)이라 마음만 먹으면 그냥 광파(光波)보다도 더 빨리 순식간에 미국도 갔다가 한국도 갔다가 하는 것 입니다.
이런 귀신이 우리 사람 수보다도 훨씬 더 많은 가운데 특히 자기 배를 못 채워서 고통하는 그런 귀신이 아귀(餓鬼)인 셈입니다.
아수라법계. 이것도 역시 사람 눈에는 안 보입니다.
이것은 귀신보다는 등급이 조금 더 높지만 성자의 지위도 못되고 천상도 미처 못 되지만 하여튼, 신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경계가 아수라법계입니다.
보통, 자칭(自稱) 도사라 하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 아수라에 집혀서 그러는 경우가 있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아수라는 하품(下品)의 십선(十善) 곧, 십선의 정도가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별로 덜 지키는 하품의 십선을 행(行)하고 통력자재(通力自在)라, 신통을 자재롭게 하는 것을 얻은 비인(非人)인, 사람이 아닌 경계라는 말입니다.
아수라들은 어떤 때는 우리들 앞에 극락세계 모양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야말로 찬란한 경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한 신통을 다 해서 자기도 보고 또 남에게 보여주기도 하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인법계(人法界)라, 이것은 사람 법계입니다.
오계(五戒)를 지키고 곧, 죽이지 않고, 훔치지 않고, 사음하지 않고, 망령된 말 하지 않고, 술 먹지 않는 오계를 지키고 또는 중품(中品)의 십선을 닦아서, 비록 통력(通力) 신통도 못하고 좀 어정쩡할 망정 그래도 역시 아수라 보다는 더 정도가 높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랑으로 해야 합니다.
같은 십선도 아수라보다는 더 높은 십선을 닦아야만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와 같이 오계를 지킨다거나, 중품의 십선을 닦아서 사람 가운데 고락(苦樂)을 받는 경계가 사람 법계입니다.
따라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실은,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뭐라해도 역시 과거 전생에 오계나 십선을 닦았기에 사람으로 이렇게 태어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천법계(天法界)라, 이것은 하늘 나라 즉, 천상계를 말하는 셈이지요. 상품(上品)의 십선을 닦고, 사람보다도 더 정도가 높게 지킨다는 말입니다. 아울러, 고요한 데를 골라서 마음을 오로지 한 경계에 머물게 하는 정신통일의 참선으로 선정(禪定)을 많이 닦아 천계(天界)에 나서 정묘(靜妙)한, 고요하고 묘한 안락(安樂)을 얻는 경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러면 천상이 사람보다 훨씬 좋겠구나' 이렇게 생각도 됩니다만 물론, 고요하고 묘한 안락을 받으니까 좋겠습니다만, 천상은 고요하고 안락스러우니까 거기에 집착하고 안주하여 거기에서 벗어 날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고통도 있고 안락도 있으니까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성불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상계는 안락스러워서 거기에 머물려고 하지 나올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천상사람들은 좀처럼 성불을 못하는 것입니다. 해탈(解脫)은 못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해탈한다는 견지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천상은 우리 사람만도 못 한 것입니다. 사람은 그와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비록 고락(苦樂)으로, 고도 있고 락도 있고 또는 자재롭게 신통도 못한다 할지라도 역시, 그런 고통 때문에 고통이 역연(逆緣)이라, 그것이 나쁜 연이지만 거기에 거슬러서 벗어날려고 애쓰는 그 마음 때문에 오히려 해탈(解脫) 하려는 인연이 되고 결국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더러 사업에 실패하는 것을 슬퍼도 하고 여러가지로 좌절도 합니다만 실은, 그런 좌절을 당하고 고생하는 그것이 우리한테는 어느 면으로 봐서는 참 좋은 것입니다. 따라서, 도인들은 누가 고생한다고 그러면 그 사람 말 따라서 '참,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은, 거시적(巨視的)으로 그 사람 해탈을 생각해서는 고생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고생이 기연(機緣)이 되어서 무상(無相) 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악같은 것도 명곡을 들어 보십시요. 명곡에는 어떤 것이나 애조가 띠어 있습니다. 인생의 허무나 무상을 음률적으로 나타내지 않은 명곡은 없습니다. 그런 것을 본다 하더라도 무상을 느끼는 것이 인간에게 굉장히 귀중한 것입니다. 무상을 느낌으로서 별것도 아닌 현실의 안락을 떠나 영생의 행복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스님, 얼마만큼 부처님을 그리워해야 합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외로운 토굴생활이 마땅하신가요?”
“공부하다 보면 감사한 마음이 끝이 없어서 계속하여 눈물이 납니다. 수건 두 개를 걸어놓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염불을 권하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염불은 제일 하기 쉬우면서도 공덕 또한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빨리 초승(超乘)할 수가 있습니다.”
“토굴 생활이 적적하실 때가 있으신지요?”
“바람이 있고 달이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신묘한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이상의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1982년 백장암에서 자훈 박병섭 거사가 청화 스님께 한 질문)
반세기동안 장좌불와와 하루 한 끼 식사 등 투철한 수행과 무소유를 실천한 당대의 선승. 선(禪)은 물론 현대의 철학과 자연과학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사상을 바탕으로 불교수행의 회통(會通)을 주장한 원통(圓通)불교의 주창자. 한없이 겸허한 마음으로 찾아오는 모든 이의 고통을 어루만진 성자. 청화 큰스님을 설명할 때마다 등장하는 수식어들이다.
청화 스님은 “금생 세연이 다했으니 이제 가련다” 라며 2003년 11월12일 곡성 성륜사에서 열반했다. 스님은 그 이전에 “올 때도 빈손이었는데 마지막 가는 길을 호화롭게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거적떼기에 말아서 일반 화장터에 가서 태운 뒤 그냥 뿌려라. 그렇게 해서 장례비용이 다소 남으면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하라”고 유지를 남겼다. 스님에게는 스님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누구나 다 하는 다비식도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청화 스님의 구도를 향한 초인적인 수행 방법은 생명을 내건 것이었다. 그중 일반인들에게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잠과 식사의 절제에 관한 부분이다. 생식가루 한 되로 100일 동안 엄동설한을 났다는 이야기. 하루 한 끼의 식사로 앉으면 자꾸만 굽어지는 허리를 펴기 위해 포대로 기둥에 허리를 묶고 참선한 이야기. 겨울 산 속, 불도 없이 석달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수행한 이야기. 겨울 한밤 중 일어나는 번뇌ㆍ망상을 다스리기 위해 머리에 찬물을 끼얹고는 얼굴과 온 몸에 고드름이 언 채로 수행 정진하던 일화 등등.
스님은 실제로 50여년 동안 병환이 나지 않는 한 눕지 않는 장자불와를 실천했다. 또한 열반에 드는 날까지 하루 한끼의 식사 외에는 하지 않았다. 입적하는 날까지 80의 노구에 형형한 눈빛을 빛내던 스님은 당신의 고행에 대해 “정신과 육체에 모두 이로운 일이었다며 잠을 자지 않고 하루 한끼만 먹어도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스님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일 수 있는 음식과 잠의 문제를 해결해 신체의 리듬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마침내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대자유의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스님의 일대기를 정리한 『성자의 삶』(사회문화원)에는 청화 스님이 당신의 토굴 수행을 자세히 회상하는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몸뚱이도 분명 내 마음이 머물고 있는 집이라서 너무 무리하면 그만치 장애가 된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고 장좌불와 한다고 버티며 토굴 생활을 그래저래 30년을 했다. 수행자로는 꽤 많이 한 편이다. 또한 토굴 생활이라는 것은 혼자이니까 저절로 묵언을 하게 된다. 한 4년 동안 오로지 묵언을 지키고 안 나오기도 했다. 묵언도 나같이 많이 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먹는 것은 낮 한 때인데, 아궁이에 불을 땔 때는 밥을 해서 먹기도 하지만 반찬은 깨와 소금을 볶아 섞은 것이나 김가루를 간장으로 버무린 것이 고작이었다. 사실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 미숫가루만 먹고 석 달 동안을 지내기도 했다. 그것도 결제 들어갈 때 짐도 무겁고 하니까 서너 되나 되는 미숫가루로 한철을 지내기도 했다. 미숫가루를 물에 타서 하루에 한 컵씩 먹고 석 달 동안을 지낸 것이다. 그리고 어떤 때는 하루에 둥글레 가루 한 스푼을 물에 타 마시며 석달 동안 지냈다. 또한 어떤 때는 생쌀을 물에 불렸다가 한 숫갈씩 먹기도 하였다. 하여튼 내 토골 생활이라는 것은 표현하자면 비참한 생활이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내가 내 몸뚱이를 너무나 확대하지 않는가 하여 몸에 대하여 가엾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다분히 유익했다고 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부에 힘을 얻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철두철미하게 다 바르게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에는 나같이 토굴 생활을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권고할 생각은 없다.”
청화 스님은 1923년 무안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강호성. 14세에 일본에 건너가 5년제 중학을 졸업했고 귀국해서는 교육사업에 뜻을 두어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했으며 고향에 망운중학교를 세우고 잠시 교편을 잡았다. 그는 출가해 부인과 아들 하나를 두기도 했지만, 해방 후인 47년(24세) 장성 백양사 운문암에서 근대의 숨은 도인으로 알려진 금타 화상을 은사로 출가를 결행한다. 이후 무안 혜운사, 두륜산 진불암, 지리산 백장암과 벽송사, 구례 사성암, 용문사 염불선원, 보리암 부소대, 부산 혜광사, 두륜산 상원암, 월출산 상견성암, 지리산 칠불사 등 전국의 토굴을 오가며 수행정진에 매진했다. 남이 보건 보지 않건, 평생 하루 한끼 공양을 실천하고 눕지 않는 수행을 보여 온 것은 물론이다.
64년 지리산 벽송사에서 31킬로미터 쯤 떨어져 있는 두지터 산정(山頂) 옛 암자자리에서 청화 스님은 산죽과 억새로 막을 짓고 한 겨울을 지냈다. 이 때의 상상을 초월한 고행을 제자인 성본 스님은 이렇게 증언한다. “큰스님께서는 두지터에 대나무와 억새풀로 임시 처소를 만들어 극도의 고행 정진을 하셨다. 한 겨울 지리산 높은 곳에서 더욱이 생식하시며 불을 때지 않은 바위에 앉아계시니 상상이나 되는가. 큰스님은 가부좌하고 계셨는데, 온 몸이 얼어서 얼굴은 검푸르다 못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런데 큰스님께서는 정작 맑고 온화한 모습으로 그렇게 편안히 대하셨다. 순간 가슴이 미어지더라. 큰스님께서 나를 보고 일어서시는데 다리가 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얼른 주물러 드리니까 ‘괜찮네, 괜찮네’ 하시며 손수 몸을 쓰다듬으시며 일어나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성자의 길을 간다는 것, 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았다.”
이러한 용맹정진 이후, 오산 사성암에서 청화 스님은 물러섬이 없는 수행 경지인 불퇴전지(不退轉地)에 드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화 스님은 60년대 중ㆍ후반 이후 세 번에 걸쳐 이곳에 주석하면서 ‘안 자고 안 눕고 하루 한 끼만 드시고’ 초인적인 신심으로 몸을 던져 공부하셨다. 사성암에서 보인 스님의 초인적인 용맹정진은 제자들에게 가슴시린 수행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별한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면 이렇다.
암주 보살은 홑겹옷을 입은 청화 스님이 걱정되어 이불을 가지고 올라가 보면, 한겨울 바위틈에서 나오는 찬 샘물을 받아 아주 천천히 머리에서부터 붓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죄스러워 혼비백산으로 내려와 멀리서 냉수 붓는 소리를 들으면서 암주보살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독하신 어른, 천하에 강하신 어른, 30년 동안 이 암자를 지키고 살았어도 저렇게 한 겨울 찬물 부으며 공부하시는 스님은 처음 뵙는구나”하고 경탄하면서 얼마나 추우실까 생각해서 소리내 울면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1970년 청화 스님은 전남 장흥군 부산면 심천리에 삼칸 능엄사(현 금선사)를 창건하고, 장좌불와한 채 둥들레 나무뿌리로 만든 한됫박 남짓한 가루로 6개월을 넘겼다. ‘먹지 않아도 기쁨을 느끼는 모습’[無食喜樂]을 도반들 눈앞에서 보여준 것이다.
이어 청화 스님은 78년 전남 영암 월출산 도갑사 견성암에서 3년 결사로 안거하였다. 해인주(김안순) 보살의 증언이다. “큰스님은 상견성암에 계실 때도 무엇을 통 안드셨다. 냄비에 밥을 하다 보면 까딱 실수로 태우기 쉽고 그러면 쌀 아까워, 씻기 사나워 참 고약스럽다고 하셨다. 거기에 금쪽같은 공부 시간이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스님은 물에 불린 생쌀하고 솔잎을 드셨다. 그러다 그만 치아가 다 못 쓰게 되어버렸다고 그러시더라. 그 말씀을 듣자마자 바로 미숫가루를 해 가지고 갔는데, 기척이 없었다. 서운한 마음으로 서 있는데, 땔나무를 해 가지고 내려 오시더라. 육십이 가까운 큰스님의 그 모습을 보니 왈칵 눈물이 나왔다. 그 와중에도 큰스님께서 얼른 보따리를 받아서 그대로 부처님 앞에다 놓고 기도를 해주시더라. 공양도 안드시고…. 울면서 산을 내려왔다.”
그렇다면 이렇게 토굴수행을 꼭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대중수행을 하지 않고 토굴수행을 선택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청화 스님의 다음 말씀을 들어보면 그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삼매를 수행할 때 인연조건이란 독처한거(獨處閑居)라. 우리가 대중적으로 공부할 때는 사실 오로지 삼매에 들기는 좀 어렵다. 왜냐하면 주변 조건에 관심을 둬야 하니까. 우리가 보살심으로서 더불어 닦는다고 생각할 때는 모르거니와 정말로 내가 꼭 며칠 동안에 깨달아야 겠다고 비장하게 마음 먹을 때는 한가한 데서 독처에서 지내면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다.”(『성자의 삶』중에서)
청화 스님은 계행을 잘 지켜서 몸이 청정하면 마음도 청정해지고, 어느날 갑자기 확 트인 때가 있다고 했다. 그 때 가서는 자기 몸에 아무런 부담이 없어 자기 몸을 위하여 남을 희생시킬 수가 없다고도 했다. 공부를 해서 마음이 일념이 되면 ‘몸도 마음도 쑥 빠져버리는’[身心脫落] 환희가 충천하는 기분이 된다고 한다. 자기 몸에 대해서 부담이 없을 때 마음은 더욱 더 맑아지고 천지ㆍ우주 모두가 생명으로 보여 참다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다가 정말로 빛을 보고 몸이 가벼워지면 유연선심(柔軟善心: 부드럽고 선한 마음)이 되어 착한 마음이 차근차근 깊어진다는 것이다.
청화 스님은 우주에는 빈틈없이 청정한 적광(寂光: 고요한 빛)이 충만해 있음을 확신하며 지혜와 선정이 같이 어우러진 공부에 성심을 다했다. 생각생각 부처님의 본 성품을 놓치지 않고 안팎으로 충만한 광명자리를 염불, 참선으로 참구하였다. 위대한 생명을 그대로 믿고 몸도 마음도 잊은 채 천지ㆍ우주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 이미 성품을 보아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생을 장좌불와로 보임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견도여파석(見道如破石)이요, 우리가 진리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돌을 깨는 것과 같다. 마치 돌을 깰 때는 순간에 파삭 깨듯이, 견도할 때도 문득 활연대오해서 훤히 깨달아 버려야 한다. 하지만 수도여우사(修道如藕絲)라, 우리가 연뿌리를 딱 부러뜨리면, 연뿌리라는 것이 실이 있어서 그냥 안 부러뜨려진다. 끈끈하니 실이 나온다. 그와 똑같이, 수도할 때도 쉽지가 않다. 수도도 돌 깨듯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습기를 녹일 때는 오랫동안 두고 두고 녹여야 한다는 말이다.
깨달은 그 자리를 안 놓치고서 닦아나갈 때는 공덕이 성취가 되어서, 장양성태(長養聖胎)라. 성자의 태를 오랫동안 길러 나간다. 성인 자리에서는 자타, 시비의 구분이 다 없는 자리라고 우리가 분명히 느껴버리는, 그런 성태(聖胎)를 두고두고 오랫동안 닦아 나가는 것이다. 장양성태는 우리가 공부하는 분상에서 지킬 중요한 성구이다. 사량 분별로 닦는 것이 아니라, 무념수(無念修)로 닦는 수행을 성태장양이라 한다. 이렇게 닦아나갈 대는 구구성성(久久成聖)이라, 두고두고 일구월심으로 닦아 나가서, 비로소 참다운 구경지인 성인의 지위가 된다는 말이다.”(『성자의 삶』중에서)
청화 스님은 1985년 태안사를 다시 세우면서 비로소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스님은 3년동안 묵언정진하며 직접 등짐을 지고 터를 닦아 10년만에 태안사를 다시 일으켰다.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세수로 60이 넘어서이다. 마치 조주 스님이 80세까지 중국 천하를 주유하며 만행을 한 뒤에야 비로소 조주 관음원에서 법을 펴기 시작했듯이, 자신의 공부에 더욱 만전을 기한 다음 전법에 나서는 모습과 같았다.
끝없는 고행으로 자신에게 엄격했던 스님은 그러나 타인에게는 한없이 인자하고 자비로운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으로 스님은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경어를 사용하고 언제나 똑 같은 맞절로 사람들을 맞았다. 스님은 자신을 보러 산문 밖에 찾아오면 이름 없는 거지라도 다 받아들일 만큼 자애로운 분이었다. 입적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몸 안의 한 점 기운을 짜내어 후학들을 위해 법문하시던 큰스님의 자비심은 철저한 수행으로 얻은 깨달음을 아낌없이 후학들에게 회향한 아름답고도 감동 깊은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일생동안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인 스님의 전설과도 같은 용맹정진의 자세는 오늘도 무문관에 들어가는 수행자들이 본받아야 할 영원한 수행자의 전범(典範)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광대무변합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마음이 본래 광대무변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한계의 마음을 분별과 시비를 내서 좁히고 한계를 두어 자승자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과 성자의 구분은 무엇입니까?
중생은 ‘아견我見을 참다운 나라로 생각하고, 성자는 아견의 한계를 초월해서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간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부를 하는 뜻은 아견에서 벗어나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참선법은 본래근본적인 마음자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의 법문은 모두 마음을 깨닫는 문제입니다.
마음을 확장시키려고 할 때 마음은 우주법계에 충만해있습니다.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좁혀서 잘 못살면 바늘귀 하나도 못들어갈만큼 좁아집니다.
우리가 평생 사는 것은 마음쓰는 생활이 전부입니다.
육도윤회는 불교의 실존적 가르침입니다.
인간의 최상과제는 우리 마음을 해방시키는 작업입니다.
마음을 확장시키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사회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그것은 지상명령입니다.
석가모니나 예수, 역대조사, 성현이 모범을 보인 것은 모두 그런 의미입니다.
좁아진 마음이 저승입니다.
육도윤회를 생각해보십시오..
지은대로 꼭 받습니다.
하나의 행동, 하나의 생각.. 지금 우리의 생의 형태가 금생과 내생을 결정한단 말입니다.
하루 살면 하루 산만큼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한도 끝도 없이 광대무변한 본래마음자리, 그 자리가 바로 부처입니다.
마음과 중생과 부처는 하나입니다. 얼마만큼 확장시키는가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본래마음 자리가 부처다.”
굳건히 마음을 거기에 안립(安立)시키고 지내는 것이 참선공부입니다.
우리의 최상의 행복은 마음자리의 근본, 부처의 마음자리, 자성불을 깨닫는 일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마음자리의 근본을 모르는 것만큼 한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는 오염이 안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 생각 돌이키면 성자입니다.
가상에 얽매어 있으므로 중생인 것입니다. 본래 마음 자리로 항시 비약시키고 초월해야합니다.
그게 인간 생활의 보람입니다.
정말로 마음공부 열심히 하셔서 절대청정, 오염이 안되어 있는 마음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깊이 공부하셔서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
어느 해 청화큰스님께서 어느 한 토굴에서 한철을 나시려고 갔을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첫날 토굴에 가셔서 앉았는데 얼마나 집이 허름했으면 비가 오는데 지붕이 새서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산을 바치고 책상 앞에 앉아서 스님은 밤새도록 두 글자를 쓰셨다고 합니다.
"무아無我”
무아! 무아!
큰스님의 어느 법문에선가 “무아”라는 두 글자가 가슴 깊이 다가오지 않아 밤새도록 벽에 ‘무아’라는 두 글자를 쓰셨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만, 비오는 날 우산을 받쳐들고 앉아 밤새도록 '무아 ' 두 글자를 쓰셨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1월 태안사 정진을 하고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금륜행보살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금륜행보살님은 큰스님께서 태안사에 계실 때 처음 뵙고 법문을 들으러 다니셨던 수행깊은 보살님이십니다.
“큰스님께선 정말 '무아'를 체득, 실천하신 분입니다. 언젠가 그러셨죠. 중생이 참, 어여쁘단 말입니다."
스님께 직접들은 이 이야기와 함께 보살님은 태안사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큰스님께서 태안사에 계실 때 저희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뜻밖의 별세 앞에 저희 시어머님의 충격을 너무 크셨어요. 육십이 넘으신 연세였지만 남편의 죽음 앞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우셨습니다. 그리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붙들고 지나간 이야길 하셨어요. 열아홉에 시집온 이야기서부터 지아비와 함께 한 지난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셨지요. 처음엔 모두 위로를 했지만 날이 가도 똑같은 말씀에 울음을 그치지 않자 모두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가 49재를 지내려고 태안사에 갔을 때였어요.
저희 어머니께서 큰스님을 뵙자 눈물을 흘리면서 예의 그 이야기를 하시려고 했죠.
'스님.. 제가 열아홉에 시집을 와서 말입니다...... '
그때 저희 시누이가 어머니의 팔을 잡으면서 거세게 제지를 했어요. 큰스님 앞에서 또 그 참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거냐는 힐책이었는데...
그때였어요. 큰스님께서 저희 어머님 손을 꼬옥~잡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보살님께서 얼마나 상심이 크셨겠습니까?”
예의 그 자애로운 모습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셨는데, 그때였습니다.
어머님께서 울음과 말씀을 동시에 멈추면서 주위를 살피셨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오랜 꿈에서 깨어나는 표정이었어요.
제가 보기에 ‘내가 지금껏 꿈을 꾸었나’ 하는 표정이셨어요.
그 순간 이후로 어머님은 팔순이 넘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시아버님 말씀을 하시면서 우신 일이 없었습니다. “
그리고 그날 시어머님이 태안사에서 며느님인 금륜행보살님께 물었다고 합니다.
“얘야, 저 분이 부처님이시냐?”
그리고 집에 와서 또 물으시더랍니다.
“그분이 돌아가시면 부처님이 되시는 거지?”
비오는 날 우산을 바치고 앉아 밤새 “무아” 두 글자를 쓰셨다는 큰스님!
얼마나 피나는 고행정진을 하셨으면 끝내 ‘무아’를 이루셨을까. 그대로 ‘무아’ 자체이셨기 때문에 스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정화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디, 사람 뿐이었겠습니까? 유정, 무정의 모든 존재에까지도 그 자비심이 미쳤겠지요.
단 한번의 만남으로 상대방의 진한 슬픔, 깊은 업까지 녹여주셨던 큰스님!
보살님의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나이 들어도 분별을 일삼는 “나”가 강하게 도사리고 있어 자식의 마음 하나조차 활짝 열게 하지 못하는 것이 가슴 쓰려왔습니다.
“자식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관세음보살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힘든 역할입니다.”
자식키우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자녀분 넷을 키우신 보살님 말씀이 이러시더군요. (금륜행보살님은 예순 중반이십니다)
"네.. 그렇지요. 그런데 보살님! 관세음보살이 되어야 된다는 그 생각도 무거워요.
그냥 빈 배가 되세요. 장자의 빈 배 이야기 아시지요? “
그러면서 보살님께서는 장자의 “빈 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빈 배가 그의 배와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이니까.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보살님! 그냥 빈 배가 되세요.”
나이: 81세
체중: 30Kg전후
그는 그 나이를 무던히도 부끄러워 했다.
세상을 떠나기 3일전
내가 부처님보다 더 오래 살았지 않은가?
그것이 참으로 죄송하다.
11월 12일밤
대중과 화합하고 잘살아라.
승가란 화합이다.
올 때도 빈 손이었는데 마지막 가는 길 호화롭게 할 필요없다.
내가 죽거든 그냥 거적데기에 둘둘말아 일반 화장터에서 태운후 그냥 뿌려라.
그리고 장례비용이 남거든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하라고...
그의 마지막 날은 참으로 평안하였다.
만행을 떠날때처럼 의복을 갖추어 달라고 말씀하시고 승복으로 갈아입고 평소에 쓰시던 모자까지 쓰고 10분만 앉아 있겠다고 말씀 하셨다.
제자는 옆에 있으면서도 평소처럼 정진하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듯 떠나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육조단경의 번역이었다.
그는 육조단경에 그의 떠나는 심경을 그대로 남긴듯하다.
불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우리에게 들어 있는 그 무한공덕을
믿으면 바로'즉시입필정(卽時入必定)'이라,그 믿음으로 바로
선정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우리 중생들은 자주 의심을 하고
믿질 못합니다.
나한테 있는 무한력을 믿으면 즉시 삼매에 들어간다는데도
못 믿으니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반야심경" 한 편을 보더라도 참선 한 철 하고 볼 때와,
두 철 하고 볼 때와는 해석이 다릅니다.똑같은 법문이지만
성자의 법문은 우주의 본질을 말한 법문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정화가 되면 정화된 만큼 해석을 달리합니다.
참선을 오래하고서 경을 보면 '그렇구나'하고,평소에 풀리지
않았던 까다로운 문제가 자면서 꿈속에서도 문득
풀려버릴 수도 있습니다.무엇이든 일구월심으로 생각하면
우리 마음이란 것이 원래 뿌리가 부처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풀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 한번은 꿈을 꾸었는데,도륜스님이라는
도반하고 어디를 가는데 아주 장엄한 궁전이 나왔어요.
그런데 그 궁전 앞에서지키고 있던 문지기가 문 앞을
가로막고 서서 자기가 묻는 말에 답을 못하면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물어보라고 하니까,저한테 먼저 묻기를
"지옥이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저한테 질문을 했더라면,그때 당시는 삼십대도 채
안 된 나이라 선명한 답을 못했겠지요.그런데 꿈에서는
아주 명쾌하게 '혜안관시 지옥공(慧眼觀是 地獄空)'이라는
대답이 나온단 말입니다.'혜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 지옥은
공(空)이다'라는 뜻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그런 질문에 그
대답이 나오기가 어려웠을 텐데 꿈에서는 아주 명쾌하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투철한 혜안으로 본다면 지옥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혜안관시 지옥공'이라.
지옥이라는 것이 우리 중생의 어두운 눈으로 봐야 있는 것이지
정말로 맑고 투철한 마음으로 보면 지옥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에 무던하게 부처님을 생각하고 정진하다 보면
이렇게 신기하게 꿈에도 나올 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염불도 부처가 밖에 있다고 생각하고
행복스러운 극락이 십만억 밖에 있다고
생각할 때에 방편이 되는 것이지만,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요 만법이 본래 부처일 때는
바로 선(禪)인 것입니다.
염불은 부처님 당시부터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승(念僧)이라고
경전에 다 나와 있고
원래 우리가 부처이기 때문에 또, 부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염불은 따지고 보면 내가
참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본래부처가 부처를 생각하기 때문에 역시 선(禪)이 됩니다.
그런데 깊은 고려 없이 염불은 하근기(下根機) 중생이
하는 것이라고 하면 문제가 큽니다.
그러니까 공안선, 묵조선, 염불선 이런 수행법에 옳고 그르다
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새삼스럽게 역설하는 것입니다.”
20세기가 저물어 가는 1999년 9월5일 밤 11시경 서울 어느 여염집 방을 빌려 누워 있던 성륜사 조실 청화 스님이 시자 광전 스님을 불렀다.
“내가 내일 아침 7시 반경에 가야겠다. 일러 둘 말이 있으니 스님들을 불러라.”
달포 전 미국에서 귀국하기 전부터 올해는 가시겠다는 말씀을 하곤 하여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내일 가시겠다는 말을 듣고 보니 광전은 정신이 아찔하고 혼돈스러웠다. 그러나 마냥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급히 이곳 저곳 연락을 취했지만 새벽까지 도착한 스님은 몇이 안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상좌들의 늦은 도착을 핑계삼아 광전은 스님에게 시간이 짧아 아직 스님들이 제대로 오지 못했는데 하루만 연기하면 안되겠느냐고 졸랐다. 스님은 눈을 들어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날 날이 이슥해서야 인연 있는 스님과 단월 등 60~70여명이 모였다. 스님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 일일이 공부하는 방법을 일러주고는 다음 날 새벽 3시쯤 되자,
“내가 피곤해 좀 쉬어야겠다. 모두 나가거라”하고 말씀하셨다. 모두 방을 나갔지만 시자 광전은 차마 방을 나설 수 없어 그대로 스님의 머리맡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스님은 차츰 호흡이 가늘어졌다. 잡고 있던 손의 온기도 점점 식어 가는 것 같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황망해 있던 중 아침 7시쯤 되었다 싶었는데 스님이 슬며시 눈을 뜨더니
“내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오늘 가는 것을 미루어야겠다.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의식을 바로 회복했다.
이 이야기는 최근 스님의 상좌들인 광전 스님과 전 “해인”지 편집장 성전 스님 등이 전해 준 이야기다.
쥐잡기
"보살님,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청화)스님이 보살님을 보며 엄하게 꾸짖자
"쥐가 하도 돌아다녀서, 스님들 공부하시는데 쥐가 천장에서..."
공양주보살은 말끝을 잇지 못하고 쥐약을 버무리고 있던 밥을 뒤로 숨겼다.
"부처님 도량에서 살생하시면 안됩니다."
스님은 이렇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신발도 신지 않은 양말 발이었다.
'뭐가 급하다고 양말 바람으로 나오셨을까?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닌데....'
공양주보살은 혼자 중얼거리며 쥐약을 탄 밥을 버리려고 두리번거렸다. 그때 스님이 쥐 '鼠'자를 쓴 종이를 몇장 들고 나왔다. 스님은 종이를 공양주보살에게 건네주며
"보살님이 약을 놓으려고 했던 자리에 이 종이를 붙이십시오."하고 들어갔다.
"..?.."
공양주보살은 의아한 얼굴로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스님이 시키는대로 종이를 붙였다. 자신이 약을 놓으려 했던 자리에다가, 그러자 거짓말처럼 쥐가 다니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에도....
청화큰스님께서 벽송사에서 결제하고 계실 때 급히 여쭤보야할 일이 생겨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뵌 스님의 눈빛이 진짜..헤드라이트 같았어요. 푸르스름 해가지고 빛을 내는데 정말.. 뵈올 수가 없었어요. 감히 곁에 갈 수 없는 .. 강렬한 빛이 몸에서 이렇게.. 쏟아지는데 겁나더라니까요.. 그 앞에 저는 마치 지옥중생인 듯 했어요..
나중에 사성암에 계실 때도 그랬어요.. 그때도 눈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누구든 곁에 가면 눈을 뜨지 못해요. 스님께선 본래 눈이 맑으셨지만, 수행에 의해서 빛나는 눈은 정말 다르다니까요. 감히 누가 쳐다보지 못했으니까요..
벽송사에서 함께 정진했던 스님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요. 결제 정진 중에 쉬는 시간에도 지대방 같은 데서 쉬시는 법이란 없고, 큰방 한 쪽에 갈아 입을 옷 두어 벌과 책 몇 권밖에는 안 가지고 계셨다고 해요.
그리곤 저녁이 되어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대중과 함께 자리에 누우셨다가, 대중들이 잠들면 바로 일어나 앉으셨답니다. 대중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시려 했던 배려겠지요..단 한번도 눈을 부치지 않으시고 한철을 나셨다고 하는데, 그해 대중스님들이 스님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신심을 내서 함께 그렇게 한철을 나셨다고 합니다.
큰스님은 위대한 도인이란 이름을 떠나서 그렇게 살아오신 모습만으로도 우리가 영원한 스승으로 모시는 것 이상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님을 처음 만나던 날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내 일생에서 가장 떨리던 만남의 순간이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낯선 세계를 찾아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위대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더욱더 두려운 일인 것이다. 처음에 스승은 내게 그렇게 떨리고 두려운 존재였다.
처음 스승을 보았을 때 나는 넙죽 삼배를 올렸다. 추석 전 날인 그 날은 스님 역시 대중들과 더불어 송편을 빚고 계셨다. 스승은 입가에 미소를 띠시며 어떻게 왔냐고 물으셨다.
나는 머뭇거리다 출가를 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드렸다. 스님은 또 빙그레 웃으시며 왜 출가를 하려 하느냐고 물으셨다.
그것은 내가 기다렸던 질문이었다. 나는 출가 이전에 이미 출가에 대한 멋진 답변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은사가 될 스님이 내게 출가의 이유를 묻는다면 아주 멋진 대답을 그에게 던지고만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준비한 답변들은 노 수행자의 굵고도 짧은 질문 앞에서는 너무도 긴 장광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답변을 꺼내는 것이 오히려 결례일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답하지 않아도 스님은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의 빛이 쏟아지는 듯한 눈동자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필요가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삼배를 마치고 고개를 들며 나는 처음으로 스승의 눈동자를 훔쳐보았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눈에서는 마치 굵은 빛의 입자들이 몽글몽글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내게 그런 사람의 눈동자는 처음이었다. 그 눈빛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투시하고도 남을 만큼의 밝음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 앞에 내 전부가 드러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렵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눈에서 쏟아지던 그 빛들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스승의 눈빛 앞에서 입만 닫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까지도 닫고 싶었다. 혹시 내 마음 속의 순결하지 못한 생각의 흔적들이 그의 눈동자에 투영 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먼 훗날 안 얘기지만 그 때 나의 우려는 절대 기우가 아니었다. 스승은 정말 나의 우려대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스승 앞에서는 나뿐만이 아니라 스승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들을 했던 것이다.
속이려고 해도 속일 수가 없는 그 앞에서는 차라리 입을 닫고 마음까지도 비워 버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언젠가 스승은 법상에서도 이런 우리들의 예감을 확실하게 하는 말씀을 하셨다.
“공부를 하는 수행자가 점쟁이만도 못해서야 어디 공부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능히 볼 수 있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이 일반 사람과 다른 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조금 안다고 그것을 입 밖으로 발설한다면 그것은 또 점쟁이와 다를 바가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남이 능히 보지 못하는 것도 능히 보는 것이 공부인의 다른 점이라면 아는 것을 또한 말하지 않는 것도 공부인의 태도일 것입니다.”
스승의 몽글몽글 빛이 쏟아지는 눈동자 앞에서 나는 정말 이 곳을 찾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눈빛의 사람이라면 내가 스승이라고 부르며 믿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렇게 형형하지만 자비심이 넘치는 눈빛의 수행자를 찾아온 나의 긴 여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 성전스님 >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
법당 쪽으로는 절대 발을 뻗지 않으셨습니다.
조그만 부처님이라도 늘 우러러볼 수 있는 위치에 놓으셨고, 부처님처럼 살지 못한 것을 늘 부끄러워 하셨고, 이번에도 부처님보다 조금 더 사신 것을 안타까워하시면서, 이젠 부처님 따라 가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부처님처럼 살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스럽다는 말을 하셨고, 부처님보다 조금 더 살아서 부끄럽고 이젠 부처님을 따라 가야될 때가 되지 않았나 하셨습니다.
저는 노스님을 모시고 산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부처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부처님이 생전에는 이렇게 사셨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데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살았습니다. 당신의 제자라는 개념보다 도반이라는 개념으로, 같이 깨우쳐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저희를 대하셨습니다.
1. 큰스님께서 진불암에 막 오셨을 때 처음 친견했다. 도륜·금산·정각 스님 등 여덟 분이 계셨는데 그 중에서 큰스님의 연세가 제일 많았다. 큰스님과는 속가로 종친 사이라 가까이서 자주 뵐 수 있었다.
큰스님은 잡수시는 것도 주무시는 것도 없이 공부만 하셨다. 밥을 하루에 한 끼씩 잡수더라도 한 달에 쌀 한 말은 들 텐데, 한 달 두 달이 가도 쌀이 줄지가 않았다. 많이 울고 왔다.
그나마 다행히 쌀 미숫가루는 드셔서 그것만 부지런히 해다 드렸다. 하도 훌륭하고 완벽한 분이라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목숨을 모조리 바칠 각오로 참선을 하셨다. 도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더라.
< 정신안 보살 >
2. 큰스님은 상견성암에 계실 때도 무엇을 통 안 드셨다. 냄비에 밥을 하다 보면 까딱 실수로 태우기 쉽고 그러면 쌀 아까워, 씻기 사나워 참 고약스럽다고 하셨다. 거기에 금쪽 같은 공부 시간이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스님은 물에 불린 생쌀하고 솔잎을 드셨다. 그러다 그만 치아가 다 못쓰게 되어 버렸다고 그러시더라. 그 말씀을 듣자마자 바로 미숫가루를 해가지고 갔는데 기척이 없었다.
서운한 마음으로 서 있는데 땔나무를 지고 내려오시더라. 육십이 가까운 큰스님의 그 모습을 보니 왈칵 눈물이 나왔다. 그 와중에도 큰스님께서 얼른 보따리를 받아서 그대로 부처님 앞에다 놓고 기도를 해주시더라. 공양도 안 드시고···. 울면서 산을 내려왔다.
< 해인주 보살 >
큰스님께서는 아자방 선원에서 묵언 정진하셨는데 방안에 들어서면 신령스러운 기운이 꽉 차 있었다. 팔순을 눈앞에 둔 늙으신 몸임에도 여전히 일종식에 장좌불와하셨다. 큰스님께서 3개월 동안을 누룽지만 드시니까 공양주 보살들께서 야단이었다.
저러시면 안 된다고 이것저것을 정성들여 챙겨 주었다. 그래서 갖다 올리면 큰스님께서는 손으로 방바닥을 치시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셨다. 두 가지 반찬만 가져오라는 당부이셨다.
또한 큰스님의 장좌불와가 선방 안에 알려지면서 이런 일도 있었다. 운상선원에서 정진하시던 수좌 스님들께서 ‘큰스님이 소문대로 장좌불와하시는지’ 확인해 보겠다는 호기를 부렸다.
급기야 직접 내려가 아자방 창문을 통해 큰스님의 지극히 고요한 모습을 살펴보고 와서는 크게 감탄하여 ‘노장께서 정말로 장좌불와하시더라’며 놀라워했다. 결국 모든 이들이 존경하고 숭배하였다.
남미륵암은 상하 방으로 되어 있는데 아주 조그마했다. 위아래 방 다 두어 명 정도 누울 수 있는 방이었는데 큰스님 양쪽 귀에 얼음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아니 큰스님 어떻게 그렇게 얼음이 박입니까?’
그랬더니 방이 추워서 그런다 하시더라. 그런데 장작이 많이 있었다. 부엌과 창고에 칼로 자른 듯 반듯한 장작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었다.
‘이렇게 장작이 많은데 불 때지 그러시냐.’
했더니 다음 사람이 오면 때야 되니까 아끼신 거라고 했다. 또 하나는 방이 따뜻하면 아무래도 긴장이 풀린다는 것이다. 큰스님은 그렇게 매사에 철저하신 분이다.
천도재를 모시면서도 나는 과연 조상이 천도 되고 병이 나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곧 그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한 번은 순천에서 천도재를 모시기 위해서 환자와 그 가족들이 함께 온 적이 있었다. 정신질환을 알고 있는 환자는 절에 들어서자 제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미친 듯이 날뛰는 모습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그 환자는 젊은 여성이었는데도 그 날뛰는 모습은 마치 성난 짐승과도
같았다.
그렇게 날뛰는 환자에게 스님(청화)은 웃으며 다가서 어깨를 두들기시며 말씀하셨다.
“많이 아픈가. 곧 나을 걸세.”
스님의 손길과 말씀 아래서 환자는 마치 양처럼 순해져 버렸다. 그것은 마치 술 취해 부처님을 향해 돌진하던 코끼리가 부처님 앞에 와서는 순하게 무릎을 꿇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일순간에 얌전해진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사람들이 그토록 스님에게 재를 모시고 싶어 하는지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의구심을 씻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큰스님께서 토굴에서 정진 하실 적에 도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 젊은 스님이 법거량을 하려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젊은 스님이 산으로 올라오시는 것을 알고 자리를 피했고, 그 스님은 "내가 올라오는 줄 알고 피했구나" 생각하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긴긴 여름 해가 기울 때 큰스님께서 나타나시어서 “미안하네” 하시면서 “저녁공양 하세” 하시더랍니다.
당신은 일종식(一種食) 하실 때인데, 젊은 스님을 위해서 저녁공양을 내놓으시는데 밥이 얼마나 쉬었는가 수저로 뜨면 풀처럼 쭉 늘어났다고 합니다. 반찬은 시어 꼬부라진 김치를 잘게 썰어서 내놓으시는데, 젊은 스님은 도저히 못 먹고 쳐다 보기만 했다고 합니다.
젊은 스님이 쳐다만 보고 못 먹고 있으니 큰스님은 당신 바루에다 젊은 스님의 쉰밥과 신김치을 엎어서 수저로 저어 다 드시더랍니다. 젊은 스님은 할 말을 잊고 법거량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1989년 6월에 전남일보 편집부국장 최하림 시인과 대담
“스님이 말씀하신 ‘마음’의 세상이 오면 경찰이 없어도 될까요?”
“되고 말고요. 부처님이 없어도 될 겁니다.”
“어린애들을 폭행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그 같은 제반 사회악이 정말 제거될까요?”
“밝은 달 같아질 겁니다.”
“아무리 갈등과 대립으로부터 벗어난 마음이라 해도, 그 마음은 그 흔적들을 지니고 있지 않겠습니까?”
“완전한 득도에는 흔적이 없지요.”
“불교에서는 무소유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만, 인간이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젖을 빨듯이 생명의 욕구, 소유 욕구를 지니고 있는 것 아닙니까?”
“생명과 소유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되는군요. 불교에서 보면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자유로워집니다. 불교적 정진이나 선행禪行은 욕망을 버리고 생명의 본질에 가까이 가려는 것, 부처에 가까워지려는 것입니다.”
“내세가 있다고 믿습니까?”
“믿지요.”
“보입니까?”
“보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계가 발전하고 있다고 봅니까? 날로 아수라장이 돼 가고 있다고 봅니까?”
“발전하고 있다고 봅니다.”
“범죄행위들은 날로 극악해져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보이는 면도 있지만, 과학의 발달이라든가 자유의 신장, 복지정책 등은 발전이라고 봐야겠지요. 현대물리학은 물질의 본질을 에너지 광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이것은 불교의 광명과 일치합니다. 저는 그 광명이며 불성인 그것을 지닌 인간이, 인간의 역사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는 없다고 봅니다.”
“가장 존경하는 분은?”
“부처님입니다.”
“스님이 믿고 계시기 때문인가요?”
“아니지요. 광명이기 때문입니다.”
큰스님께서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러한 나의 아쉬움은 물론, 대중들의 허전한 마음을 담아 방송에 모신 분이 서울대학교 치대 경주 배광식 교수님이었다. 청화큰스님이 지극히 아끼셨던 재가상좌라는 정보를 얻고 난 후, 그분을 모셔서 큰스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던 것이다.
배교수님은 흔쾌히 방송에 나와서 스승의 지고지순한 삶과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드넓은 사상과 인품을 이야기했다. 스승처럼 그는 겸손했고, 깊은 수행으로 인한 인품 또한 깊었다. 스승을 통해 불교를 이야기하는 데 결코 범상치 않았고 무엇보다 겸손함을 동반한 인품은 나를 감동시켰다.
그분을 만난 날, 아주 오랜 숙제였던 스승 정하는 문제를 결정했다. 나는 그분의 스승을 기리는 헌신적 태도와 존경의 모습을 보고는 저리 겸손한 분이 스승으로 삼은 분이라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청화스님을 스승으로 모셨다. 저 부처님 당시 부처님 제자인 앗사지의 걸음걸이의 위의가 범상치 않음을 보고, 사리불과 목건련이 부처님을 찾아가 수제자가 되었듯, 내게 그분은 앗사지가 되어 부처님 곁으로 인도했던 것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불교에 입문했다는 그분께 물었었다.
“그간 훌륭한 스님들을 많이 친견하셨을 텐데, 어떻게 청화큰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습니까?”
그분은 짧게 대답했었다.
“모든 생물이 빛을 향하는 것처럼, 저도 빛을 따라갔을 뿐입니다."
지난 사월초파일 특집으로 방송되었던 청화큰스님의 ‘그대 고향에 이르렀는가’란 프로에
유일하게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나오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광주 정광사에 계신 보영스님이신데, 저는 큰스님께서 그 분께 보내셨던 편지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금강 게시판에도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언제 읽어봐도 감동을 주는 명문이죠..
지난 8월 중순, 태안사와 성륜사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 보영스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스님께서 하신 큰스님에의 추억의 말씀을 전해봅니다.
해제가 되면 별 일이 없으신 한 먼저 정광사에 들르셨다고 하는데,
큰스님께선 한창 공부하시던 시절, 정광사에 오시면 언제나 꼿꼿하게 앉아
법문만을 하셨다고 합니다.
‘한 시간이나 주무셨나 모르겠어요.’
보영스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곤 열일고 여덟 살의 사형의 따님인 보영스님을 앞에 앉혀 놓고
지극정성으로 법문을 하셨다고 합니다.
아직 나이가 어려 신심도 깊지 않고 불법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어린 비구니스님에게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은 늘,
“이 한 생 안 태어난 셈치고 공부하다가 죽읍시다..” 였다고 합니다.
철없는 행동을 하면 조용히 그러셨다고 합니다.
“그러지 말어.. 인생이 얼마나 많이 남은 줄 알어? ”
그때 인생이 많이 남은 줄 알았던 보영스님은 이제 육십의 나이를 눈 앞에 두고
‘얼마나 업장이 두터웠으면 그렇게 공부하라고 경책하셨는데,
그 말씀을 알아 듣지 못했나’ 싶어서 한없이 죄스럽다고 합니다.
“청화큰스님께서 벽송사에서 결제하고 계실 때
급히 여쭤보야할 일이 생겨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뵌 스님의 눈빛이 진짜..헤드라이트 같았어요.
푸르스름 해가지고 빛을 내는데 정말.. 뵈올 수가 없었어요.
감히 곁에 갈 수 없는 .. 강렬한 빛이 몸에서 이렇게.. 쏟아지는데 겁나더라니까요..
그 앞에 저는 마치 지옥중생인 듯 했어요..
나중에 사성암에 계실 때도 그랬어요..
그때도 눈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누구든 곁에 가면 눈을 뜨지 못해요.
스님께선 본래 눈이 맑으셨지만, 수행에 의해서 빛나는 눈은 정말 다르다니까요.
감히 누가 쳐다보지 못했으니까요..
벽송사에서 함께 정진했던 스님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요.
결제 정진 중에 쉬는 시간에도 지대방 같은 데서 쉬시는 법이란 없고,
큰방 한 쪽에 갈아 입을 옷 두어 벌과 책 몇 권밖에는 안 가지고 계셨다고 해요.
그리곤 저녁이 되어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대중과 함께 자리에 누우셨다가,
대중들이 잠들면 바로 일어나 앉으셨답니다.
대중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시려 했던 배려겠지요..
단 한번도 눈을 부치지 않으시고 한철을 나셨다고 하는데,
그해 대중스님들이 스님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신심을 내서
함께 그렇게 한철을 나셨다고 합니다.
큰스님은 위대한 도인이란 이름을 떠나서 그렇게 살아오신 모습만으로도
우리가 영원한 스승으로 모시는 것 이상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형의 따님이라고는 하나 나이어린 후학스님에게 큰스님은 한번도
아랫사람 취급을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언제나 도반으로 대하며, 말씀을 낮추지 않으셨고 잠시 만나는 시간에도
정성을 다해 공부를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직접 법문을 써주셨던 노트가 아직도 무수하답니다.
돈독한 신심을 내지 못하는 후학에게 억지로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으며,
다만, ‘한 생 없는 셈치고 우리 공부합시다.’ 하셨다구요..
보영스님은 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큰스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한 분이었습니다.
언행의 일치, 불일치를 떠나서 말씀하신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일생을 사신 분입니다.
큰스님께서 머무시던 토굴에 가끔 가서,
공양을 한끼라도 해드리고 오려고 부엌에 들어가보면,
언제나 콩장 조금, 단무지, 김, 깨소금, 간장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한때 잡숫고 방에 들어가면 그만이신 거예요.
항상 처소엔 먼지 하나 없고 신발 한번 흩트러지게 놓은 적이 없어요..
칼로 자른듯 그렇게 반듯하게 놓여 있었죠..
아마 큰스님처럼 완벽한 분은 없었을 거예요.
너무 완벽하셔서 옆 사람도 늘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주무시길 하나, 때로 간식을 잡수신다고 앉아 계시길 하나, 농담을 하시길 하나..
그리 완벽하게 사시는데 함께 살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스님은 항시 관세음보살이 좋아 관음기도를 하는 제게
‘관음의 화신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마, 큰스님이 아니었으면 중노릇 안 했을거예요..
세세생생 큰스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큰 스님.. 다시 오시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죠..”
그리 말씀하시면서 보영스님은 목이 메어 말씀을 한참이나 못하셨습니다.
인연이란 참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부분인 것 같습니다.
보영스님의 아버님은 재가자일 때 청화큰스님의 은사이신 금타선사를 뵙고
지극으로 시봉하다가 급기야 출가를 하셔서 줄곧 선사를 모셨고,
보영스님의 어머니 또한 남편이 출가하자 뒤따라 출가하셔서
평생을 큰스님을 정성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청화큰스님은 은사를 그림자처럼 모셨던 사형의 따님을
정성으로 공부시켰으니까 ‘인연’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인연은 무엇이.. 어째서가 아니라니까요..’
보영스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가장 계율 청정한 도량에서 가장 용맹정진하는 수좌로 사시고자 신조를 삼으셨고
또 일평생 실천하셨던 청화큰스님을 그리워하는 분이 어찌 보영스님 한분 뿐이겠습니까?
큰스님을 목메어 추억하는 분이 어찌 그분 뿐이겠습니까?
청화큰스님께서 보영스님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떠올립니다.
"영스님, 우리들의 길은 자아를 부정하지 않고는 이루지 못할
너무나 가난한 길이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험준한 영생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도 우리들에게 따스한 봄은 멀었습니다.
또 불시에 한기가 몰려와 눈보라가 치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비구와 비구니,
그것이 우리들이 부처님 앞에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애타게 소원한
사무친 비원이었습니다.
보다 강인하고 억세고 굵은 의지를 한사코 기르시옵소서.
참다운 실존이 아닌 것이야 거울 속의 꽃과 물 속의 달같이
허무한 가상이 아니옵니까?
비록 삼간토옥의 작은 먼지일지라도
자기가 절대군주로 군림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망상과, 정도를 가로막는 짓궂은 폭군과의 피비린 투쟁은
우리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보다도 귀중한 시일을 미루고 미루다,
온갖 황혼의 마수에 걸려든 산승을 거울삼으시어,
진정 찰라도 자아성불을 떠나는 생활을 말으시기 바라나이다.
아직도 해는 지고 갈 길은 먼 형국이오나 남은 여생이나마
위선이 없는 불자, 임종에 당하여 후회 없는 수행자가 되고자
애타게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현재 산승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과 정정과 독서뿐입니다.
그 무엇 때문에도 남은 생명을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수도의 위차
이렇게 되는 것이 결국 성자가 가는 길입니다. 우리 인간은 여기에까지 가야 비로소 내 고향에 왔구나. 아! 그때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이 되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항시 마음이 불안스러운 것입니다.
일반 범부중생은 가행위(加行位), 즉 사가행범부위(四加行凡夫位) 여기까지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안 놓고 공부를 해서 나아가면, 계율도 바르고 음식도 함부로 안 먹고 정진해 나아가면 그때는 순간 찰나에 천지우주가 광명으로 화하면서 통달위(通達位)라. 통달위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때는 경(經)은 실지로 안 배웠지만 경을 보면 쭉쭉 이렇게 다 알아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단계가 즉 말하자면 견성오도(見性悟道)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와 같이 좀 되었다 하더라도 공부가 그걸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었지만은 아직 우리 번뇌의 습기 그 종자가 남아 있습니다. 습기 말입니다. 금생에 지은, 금생에 잘 못 듣고, 잘 못 배우고, 잘 못 생각하고 잘 못 느낀 것은 이제 다 사라져버렸다 하더라도 과거전생에 지은 업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인간은 과거에 낳고 죽고 무수생을 되풀이 하면서 그때그때 사람도 죽이고 축생으로 살생도 하고 남을 배신도 하고 그러한 것들이 우리 잠재의식에는 다 들어 있습니다. 성인들도 과거 전생에는 배신도 하고 살생도 많이 했던 것입니다. 어떠한 누구나가 개도되었다, 소도 되었다, 무수 만생동안 그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금생에 나와서 지은 번뇌는 견성오도와 더불어서 다 사라진다 하더라도 과거 전생에 지은 번뇌는 그 종자가 남아 있습니다. 그 놈을 차근차근 빼내야 됩니다. 그 놈을 못 빼내면 우리가 원래 갖추고 있는 불성, 천안통도 할 수 있고, 천지우주를 다 알 수 있고 하늘을 날을 수도 있고, 그러한 재주가 다 들어 있지만 번뇌의 종자가 남아 있으면 그런 재주를 못 부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불성에 갖추고 있는 공덕을 못 부리는 것입니다.
불경(佛經)을 보면 우리한테 있는 욕심의 뿌리만 다 뽑혀도 우리 몸이 하늘로 날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신화로만 알지 마십시오. 우리가 공부해 보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차근차근 가벼워 옵니다. 이것만 본다 하더라도 정말로 견성오도하여 욕심의 뿌리가 뽑혀지면 육신 그대로 등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원래 무게가 없습니다. 우리 중생이 봐서 중력이 있는 것이지, 사실은 인력이니 중력이니 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중생차원에서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영원적인 순수 생명 에너지 차원에서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번뇌의 종자를 뽑아버리면 종자를 뽑아버리는 것이 이른바 수습위(修習位)라.
천지우주가 오직 불성뿐이구나! 불성뿐이라는 그 자리에 딱 안주해서, 불성을 확실히 보았으므로 견성오도해서 통달위라 모두를 다 알 수가 있고, 이때는 광탄만상이라, 우주를 불성광명이 다 삼켜버립니다. 다만 번뇌의 뿌리 대문에 불성에 들어 있는 무한한 공덕을 발휘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불성에 입각해서 차근차근 더 닦아 가면 그때는 불성이 보이니까 불성만 보고 있으면 되겠지요. 아미타불이나 관음보살이나 무엇이나 안한다 하더라도 불성이 보이니까 아! 그 자리를 보고만 있어도 공부가 나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있으면 있는 만큼 흐린 탁수를 가만 두면 앙금이 가라앉고서 바닥이 보이듯이 견성오도한 다음에는 가만히 있으면 정(定)에만 들어가면 차근차근 번뇌가 녹아갑니다. 녹아서 조금 올라가면 이지(二地), 삼지(三地), 사지… 이렇게 올라가서 십지(十地), 십지에 올라가서 번뇌가 근본적으로 다 해버리면 그야말로 석가모니 같은 성불이 됩니다.
자고로 원효(元曉)스님 같은 분은 견성오도한 뒤에 팔지(八地)까지 올라갔다고 하고, 서산(西山)스님 같은 분은 사지(四地)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일본의 공해(空海)스님 같은 분은 삼지(三地)에 올라갔다는 그런 말씀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보임수행(保任修行)이라, 지킬 보(保)자, 맡을 임(任)자. 즉 견성오도한 그 자리를 소중히 지켜야 합니다. 불성 봤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됩니다. 더 앞으로는 못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그 교만심(驕慢心)이라는 것이 굉장히 장애(障碍)인 것입니다. 조금 알면 그걸 좀 풀이해 먹을려고, 또 그 견성오도라고 해 가지고서 확 트여서 환희심이 충만하면 우쭐해 가지고서 그래버리면 결국은 공부는 더 못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부처님에 비하면 아직도 멀었는데 신통묘지를 다해야 그래야만이 참다운 깨달음인 것인데 말입니다. 아직은 광명은 좀 봤다 하더라도 우리가 광명 기운을 못 쓰는 것입니다. 순수 에너지에 갖추고 있는 그런 무한한 힘을 못 쓴단 말입니다.
그래서 겸허하니 차근차근 인연도 피하고, 자꾸만 사람 만나고 얘기하면 힘이 빠져버리고 이제 시간이 더 없어 못 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부 깊이 들어간 스님들이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중봉(中峰)스님은 배에가 피하고 산에가 피하곤 했습니다.
청화스님은 수행이 철저하셨던 은사스님을 따라 묵언과 장좌불와를 평생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 오셨다. 상원, 백장암 등 여러 토굴에서 50여년간 늘 검소함과
부지런함으로 한치의 게으름도 용납없이 수행에 매진하셨다고 한다. 직접
끼니를 만들어 잡수시고, 의복 빨래도 직접 하셨다.
30년간 물만 먹고 살고 있는 양애란씨는 청화큰스님과의 만남에 대해 "큰스님은 나처럼
물만 드시지는 않지만 하루 일중식으로 수행에 정진하시는 도인이라고 정평이 나 있다.
내가 그 분을 만난 것은 나의 삶이 새로운 생명을 만난 것과 같이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하루 한 끼 공양과 장좌불와의 수행법에 대해 청화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좌불와의 수련법은 나뿐만 아니라 수행자라면 모든 사람들이 취하고 있는
수행법입니다. 또한 단식이란 사람의 신체와 정신을 유지시켜 주는 최소한의 수단일 뿐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수행자는 적당히 먹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하루 한끼 식사와 오후엔 식사를 하지 않는 오후불식(午後不食),묵언,그리고 잠잘때조차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전남 곡성군 옥과면 성륜사 조실 청화(78) 스님의 한결같은 생활이다. 청화 스님은 지난 47년 금타 스님을 은사로 백양사 운문암에서 출가한 이래 이런 고행(苦行)을 방편삼아 수행정진해왔다.
스님은 특히 "음식이란 사람의 신체와 정신을 유지시켜 주는 최소한의 수단일 뿐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하루 한끼만 식사를 하는 원칙을 지켜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청화스님 육성 :
먹는 것은 낮에 한 때인데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는 밥을 해서 먹기도 하고 반찬은 깨와 소금을 볶아 섞은 것이나 김가루를 간장으로 버무린 것이 고작이었다. 산중생활에 김치같은 것을 누가 갖다 주어도 오래 놔두면 그냥 시어버리고 몇 일 먹으면 없어져 버리니까 못 먹는 때가 보통이다. 단무지 같은 것도 누가 가끔 갖다 주기도 하고 또 조금씩 얻어다 먹기도 하고 그랬었다. 사실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 보리 미숫가루만 먹고 삼개월간 지내기도 했다. 그것도 결제 들어갈 때 짐도 무겁고 하니까 마을에서 서너 되나 미숫가루를 해주면 그것으로 한철을 지내기도 했다. 그때는 삼십대라서 미숫가루를 물에 타서 먹어야 배도 차고 먹은 것 같이 된다. 그렇게 하루에 한 컵씩 먹고 삼개월동안 지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둥굴레미 가루만 먹고 삼개월동안 지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생쌀을 물에 불렸다가 한 숟갈씩 먹기도 하고, 하여튼 토굴생활이라는 것은 표현하자면 비참한 생활이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몸뚱이를 너무나 학대하지 않는가 하여 몸에 대해 가엾은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권장은 하지않는다. 그것은 어느 정도 공부에 힘을 얻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 가사, 이렇게 앉아 있으면 조금도 몸에 부담이 없고, 마음이 절로 고요해지고, 가만히 있으면 있는 만큼 더 맑아지고 그런 때는 별로 에너지 소모가 안되니까 건강에 별로 지장이 없겠지만, 혼침도 미처 참지 못하고 망상만 피우고 그럴 때는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니까 지장이 있을 것이다. 또한 요즈음에는 토굴생활을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니 권할 생각은 없다.
고독은 우리의 고향이라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걸지 않고
어찌 고향에 가겠다고 하는가
처절함이 없이 어찌 고향에 이르겠는가
치열함이 없이 어찌 고향에 이르겠는가
그리움이 간절해야
참선을 하고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더라도 깨달음의 본고향에 대한,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해야 합니다.
부처님을 향한 하염없는
흠모심(欽慕心)이 없으면
우리 마음이 비약이 안됩니다.
마음이 빨리
정화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그렁저렁 공부해서는
전생에 잘못 살고 잘못 배운 습(習)이
빨리 녹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사무치게 본래의 자리,
우리 생명의 근원자리인 실상,
즉 불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없으면
가고 싶은 고향에 갈 수가 없습니다.
선정십종공덕(禪定十種功德)39)
39) 선정십종공덕(禪定十種功德):1. 안주의식(安住儀式) 2. 행자경계(行慈境界) 3. 무번뇌(無煩惱) 4. 수호제근(守護諸根) 5. 무식희락(無食喜樂) 6. 원리애욕(遠離愛慾) 7. 수선불공(修禪不空) 8. 해탈마견(解脫魔羂) 9. 안주불경(安住佛境) 10. 해탈성숙(解脫成熟)
그 다음에는 선정십종공덕(禪定十種功德)이라, 경에 보면 참선을 하면 많은 공덕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무량공덕이 있으나 간추려서 열 가지로 정리합니다.
제1의 안주의식(安住儀式)이라, 이것은 우리가 참선을 하면 항시 점잖은 행동을 취한다는 말입니다. 거친 말과 행동이 가라앉고 남에게 나쁜 말도 하지 않게 되며, 오직 우주의 도리, 참다운 진여불성에 따르게 됩니다. 따라서 그것에 가까워지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몸도 마음도 안정이 취해지고 또는 부당한 일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생활을 위해서 장사를 하더라도 그것이 나와 남을 위해서 유익한 것인가, 설사 돈을 많이 번다하더라도 자기와 남에게 유익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정당한 행동을 취하게 되는 이것이 안주의식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는 행자경계(行慈境界)라, 이것은 자비심이 절로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자비심을 안 내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나와 남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본래 한 생명에서 나온 한 몸이요, 우주는 결국 동일률(同一律)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생각하고 공부를 해 나간다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자비심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자비스러우며 용서도 잘 하는 것입니다.
제3에는 무번뇌(無煩惱)라, 번뇌가 없다는 말입니다. 쓸데없는 생각이 번뇌 아닙니까, 진리에 입각해서 항시 진리만 생각하고 진리에 따라서 정화가 되고 하는 사람들은 번뇌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선공덕을 무번뇌라 합니다.
제 4에는 수호제근(守護諸根)이라, 이것은 눈ㆍ코ㆍ입, 우리가 보는 시각ㆍ청각ㆍ후각 등에 몸에 문제가 생기면 온전치 못하게 됩니다. 물론 병적인 것도 있겠지마는 참선을 하면 이런 것이 다 풀리는 것입니다. 눈이 나쁜 사람들도 참선을 많이 하면 시력과 청각이 밝아집니다. 따라서 칠, 팔십이 되도록 끝끝내 참선한 사람들은 늙어도 노소를 별로 타지 않습니다.
수호제근(守護諸根), 이것은 시각ㆍ청각ㆍ후각ㆍ미각 등 이런 것들이 온전하게 보호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큰스님들은 중생제도 때문에 항시 무리를 많이 합니다. 힘든 데를 가시기도 하고 묵언하고 싶어도 말을 해야 하고, 할 수 없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니까 무리를 해서 몸을 상하게도 되지요. 그렇지 않고 선방에서 공부만 하고 지낼 수 있다면 항시 병 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제5에는 무식희락(無食喜樂)이라, 먹지 않아도 기쁨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일반 사람들이야 만반진수에 맛있는 음식으로 기쁨을 느끼겠지만, 공부하는 사람들이 참선에서 느끼는 맛은 음식에서 느끼는 맛과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몸과 마음도 개운하고 평소에 몰랐던 것도 다 알아지고 항시 컨디션이 가볍고 좋은데 무슨 음식에 마음이 가겠습니까. 많이 먹으면 먹은 만큼 부담스럽고 몸도 무거운 것입니다.
음식은 적게 먹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따라서 부처님식으로 먹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세제불일종(一種)이라, 삼세제불은 다 하루 한 끼만 자시는 것입니다.
원래 선방도 백장청규에서 보면 아침에 죽 조금 먹고 낮에 한 끼 먹고 오후에는 불식(不食)을 다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변하고 너무나 환경도 오염 되고 해서 건강을 유지하기가 어려우니까 조금씩 먹는 것은 무방하겠습니다마는 가급적이면 적게 먹는 것이 우선 비만증을 방지하고 소식(小食)을 하면 소화도 잘되고 또 피도 맑아지며 머리도 훨씬 더 총명해 집니다.
저번에 신문을 보니까 텍사스 주립 대학에 있는 교수가 한국 사람인데 올해 64세가 된 사람입니다. 그이가 노화방지 위원장인데 그분은 일반 교수인데도 하루 한 끼만 먹는다고 했어요. 오후 두시에 한 끼만 먹는데도 몇 십 년을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장수의 비결은 결국 소식(小食)이라, 적게 먹는데서 장수의 비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이 정확한 실험과 데이터를 낸 것이니까 거짓말이 아니겠지요. 그런 것은 참고로 해야 할 문제입니다.
나이 많은 분들도 억지로 배고프게 할 필요는 없다하더라도 가급적이면 미식을 말으십시오. 고기나 기름기 많은 음식들은 문명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현대 병리학자들이 다 밝히고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 제6에는 원리애욕(遠離愛慾)이라, 이성간의 욕심이 애욕 아닙니까. 공부하는 분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역시 이성간의 애욕입니다. 우리 스님이라 해서 애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애욕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간 주의하고 조심하며 공부를 해야 극복하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고 어떤 상황을 함부로 취하고 조금만 방심하면 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보리수하에서 성불하실 적에 마지막 순간까지 삼천녀(三天女)라, 삼천녀가 나와서 방해를 합니다. 삼천녀는 결국 우리 마음의 애욕의 상징이 되겠지요. 그와 같이 욕계 중생은 몸을 받은 이상 그런 욕심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남ㆍ여 이성간의 욕심, 음식 욕심, 또는 잠 욕심, 이것이 욕계의 세 가지 큰 욕심이고 그 나머지의 부수적인 욕심은 한도 끝도 없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이성욕(異性慾)ㆍ수면욕(睡眠慾)ㆍ식욕(食慾)입니다. 그러나 다른 천상에는 이런 욕심이 없습니다. 우리 욕계에만 있는 것입니다. 욕계를 떠나 버리면 그런 욕심은 없어집니다.
따라서 색계(色界)라, 눈에 보이는 세계만 따지는 분들은 색계나 무색계를 다 무시 합니다. ‘그런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어디 실지로 있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합니다마는 그러는 우리 인간도 제법 공 도리(諸法空道理)에서 보면 인간 세상도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지금 가상(假相)으로 꿈같이 존재하는 것이지 실존적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불공을 모실 때에 수월도량(水月道場)이라, 수월이란 물 수(水)자, 달 월(月)자, 물 속에 있는 달은 실재가 아니라 달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 듯이 우리가 불공을 모시는 절이나 모든 도량이 물 속에 달 그림자처럼 사실로 있지가 않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인간도 달 속에 비친 그림자 같이 또는 허깨비같이 가상(假相)으로 존재(存在)하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르고서 곧이곧대로 참말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인간은 실존(實存)이 아닙니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soren Aabye 1813-1855)같은 사람도 아주 훌륭한 실존주의 철학자이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말을 많이 했습니다. “참다운 실존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 영원적인 차원에서 참다운 실존이 있는 것이지, 다른 모든 것들은 항시 무상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도 달 속에 비친 그림자와 마찬가지고 또 색계나 무색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있기는 있습니다. 결코 허무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인간도 허망(虛妄)한 것이지만 이와 같이 있지 않습니까. 내일 죽을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있는 것입니다. 한시도 멈춤 없이 변화무상하고 허망하지만 이렇게 인간이 존재하듯이 색계도 존재합니다. 색계에 올라가면 남녀 이성은 없습니다. 우리 사람 같은 존재만이 남녀가 결합을 합니다. 우리는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성한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신부나 수녀, 비구ㆍ비구니처럼 독신을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결혼을 하지 말라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오로지 본래의 자기, 신성한 본래의 생명을 찾는다고 할 때는 가정을 가지게 되면 분명히 장애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자기의 아들이나 딸도 참다운 종교를 만나고 친척이나 가까운 인연들도 참된 종교생활을 하고 또 열심히 일해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그렇게 하면 공덕이 되겠지요.
원리애욕(遠離愛慾)이라, 우리가 참선을 하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차근차근 애욕이 희박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차츰 희박해지다가 우리가 불성광명(佛性光明)의 참다운 진리를 체험한 뒤에는 완전히 애욕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 제7에 가서 수선불공(修禪不空)이라, 우리가 제법(諸法)이 공(空)이다, 오온개공(五蘊皆空)이다, 물질도 공이고 모두가 공이다, 이렇게 공 도리를 말로 너무 많이 들어 놓으면 마음이 허무해져서 허무주의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말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선을 해보면 마음은 비어 가지만 그냥 빈 공간이 아니라 그 속에는 무량공덕으로 환희심이 충만해 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텅 비어오면 거기에 정비례해서 환희심이 더욱 더 증가가 되어옵니다.
따라서 수선불공(修禪不空), 참선을 닦으면 허무주의적인 그런 공(空)은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환희심과 공덕이 충만하기 때문이지요. 이론적으로 공을 느끼면 허무주의로 빠지기 쉽지만 참선을 한 사람들은 공에 안 떨어지는 것입니다.
제8에 가서 해탈마견(解脫魔羂)이라, 우리가 살다보면 남한테 원망 될 일을 하기도 합니다. 과거 전생에 남을 핍박한 일도 있었을 것이고, 금생에도 어쩌다 더러 섭섭하게 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모두가 다 우리 운명에 장애가 됩니다. 금생에 자기는 무던히 잘 하고 사는데도 어려움을 당하고 더러는 배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는 경우는 과거 전생에 우리가 지은 업장이 장애가 되어 나타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런 것도 우리가 참선을 하면 그 원인들을 차근차근 풀어갈 수 있겠지요.
업장을 많이 지어놓으면 정업불멸(定業不滅)이라, 그 업을 참선으로 다 풀어 버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웬만한 것은 다 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은 참선하는 그 마음은 바로 생명의 실상인 부처를 생각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은 자기를 정화시키고 우주를 정화시키고 다른 사람을 정화시키기 때문이지요. 가사 자기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는데 참회는커녕 더 욕심을 부리고 이기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더욱 더 미워하고 원망이 깊어지겠지요.
그러나 그 사람이 정말로 인간적으로 충실하고 도덕적으로 바른 행동을 취하고 참선도 하고 염불도 한다고 생각할 때는 그 훈기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그 사람에게 옮겨가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면 그 순간에 우리 몸의 산소는 더욱 더 치성(熾盛)해지고 욕심을 부리면 우리 몸에 있는 수소는 더욱 치열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 하나 하나가 다 물질로 화(化)하는 것입니다. 에너지라는 것이 결국은 물질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지독하게 미워하면 그 미워하는 것이 쌓이고 쌓여 암이 되고 병이 되고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따라서 동성애라든가, 너무 애욕적으로 나간다든가, 우주의 도리를 벗어나면 그것이 에이즈 균이 되고 천재지변이 되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에이즈 균 같은 것은 정말 무서운 것 아닙니까. 물론 앞으로 백신을 발명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불확실한 것이고,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바로 사는 것입니다.
제9에 가서 안주불경(安住佛境)이라, 즉 부처님의 경계, 천지우주가 하나라는 영생불멸한 공덕 가운데서 항시 편안하게 머문다는 말입니다.
열 번째가 해탈성숙(解脫成熟)이라, 이렇게 차근차근 부처가 되어 가니까 모든 걸림으로부터 차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참다운 자유는 성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를 부르짖는 민주주의도 역시 우리 정신적인 수양과 더불어서 해야지 도덕은 제쳐 두고서 우선 제도적인 자유 그것만 위해 싸운다면 그야말로 백년하청(百年河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열 가지 참선공덕을 항시 생각을 하십시오. 그러면 더욱 더 참선이 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우선 내 행동이 점잖고 품위가 있어지고 평소에 독한 사람도 악심이 없어지고 부드러워져서 유연선심이 되고, 또 번뇌가 줄어지고 귀도 눈도 밝아지고 이런 것만 되어도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무식희락(無食喜樂)이라, 우리가 고기 먹고 술 마시지 않아도 항상 기쁩니다. 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우리 스님네가 고기를 먹으면 입이 다 부르틉니다.
우리 불자님들, 재가 불자님들도 되도록 고기를 드시지 마십시오. 이것은 우리한테 별로 이익될 것이 없습니다. 항시 말씀드리지만 돼지나 소나 그런 축생들은 사람보다 훨씬 더 업장이 무거운 것인데, 업장이 무거운 세포가 사람한테 들어오면 그만큼 우리가 오염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비심을 손상시킵니다. 우리는 몰라도 귀신들은 다 봅니다. 선신들은 고기 많이 먹는 사람을 무서워서 피합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데, 그것은 사람만 국한시킨 것이 아닙니다. 개와 나도 둘이 아닙니다. 둘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에 그네들의 고기를 어떻게 먹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것 안 먹어도 우리가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만 하더라도 그 전에 우리가 클 때는 일년 내내 가야 돼지나 소고기를 한번이나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농촌에서도 한 달에 몇 번씩 먹는다고 해요. 그렇게 외국에서 수입해서까지 외화를 낭비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더 건강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만 생명을 다 동일하게 보기 때문에 육식을 하게 되면 우리 자비심을 손상시키고 또 악신(惡神)은 그 냄새 맡고 가까이 붙고 훌륭한 선신들은 냄새 맡고 도망가고 또는 우리 마음 닦는 공부도 잘 안되고 죽어서는 악도에 떨어지기 쉽다고 불경에 그와 같이 명문으로 나와 있습니다.
금생에 깨끗이 한 세상 지내다가 가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내외간에 화목하고 하루세끼 먹을 것을 한 끼 먹는 이웃과 나누고 그러면 살기가 참 편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노사분쟁 같은 것이 있을 수 없겠지요. 이것이 도리에 따르는 것이고 참다운 자연법입니다.
그 다음에 삼명육통(三明六通)40)이라, 제가 삼명육통이란 말을 자주하는 편인데 더러는 ‘삼명육통은 외도꾼들이 하는 것인데…’ 하며, 뒤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더러 있는 줄 압니다. 우리가 신통을 하려고 일부러 애 쓸 필요는 없지만 부처님 말씀에, 공부가 되면 저절로 신통이 나온다고 했단 말입니다. 그 말씀을 어떻게 무시할 것입니까.
실지로 무수한 성자가 다 증명을 했고 지금 종교인들이 불신 받는 세상에 삼명육통을 하는 도인이 있다고 생각을 해본다면 집단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40) 삼명육통(三明六通):아라한도(阿羅漢道)를 성취한 성자(聖者)에게 갖추어 있는 자재하고 미묘한 작용
1. 삼명(三明):숙명통(宿命通), 천안통(天眼通), 누진통(漏盡通)
2. 육통(六通):육신통(六神通)이라고도 함. ①천안통(天眼通) ②천이통(天耳通) ③타심통(他心通) ④숙명통(宿命通) ⑤신여의통(身如意通), 신족통(神足通) ⑥누진통(漏盡通)
지금은 컴퓨터 문화가 기기묘묘한 재주를 다 냅니다마는 우리 불성은 그런 류가 아닌 것입니다. 컴퓨터는 인간이 입력을 시켜야 나오지만 그 보다도 훨씬 더 무한성능이 우리 불성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불성을 개발하면 그런 컴퓨터는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 무한 능력 중의 하나가 삼명육통입니다.
삼명은 무엇인가? 과거에 통달무애라, 과거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고, 여러분들도 더러 점쟁이한테 점을 쳐 본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저도 어렸을 때 구경해 본 기억이 있습니다마는 그런 귀신들도 과거를 조금은 봅니다. 더러는 미래를 예언하기도 하고, 사람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으면 본래의 영명함이 많이 가려집니다.
살면서 세속적인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분별시비가 잔뜩 쌓여서 영명한 본래 생명이 흐려집니다. 그러나 어린 사람들을 보면 더러는 이상하리만치 영특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놀라울 정도로 천재적인 꼬마들이 간혹 있지 않습니까. 하물며 분별시비와 삼독심을 다 떠난 도인들은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요.
우리 마음을 가장 중독 시키는 것이 삼독심입니다. 탐욕심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이 삼독심 아닙니까. 그것이 제일 무서운 독입니다. 자기도 오염시키고 남도 독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모든 병이 과거 전생부터 묻어 온 업병도 있지만 금생에는 이 삼독심 때문에 우리 몸과 마음이 중독을 일으킨다고 봅니다. 삼독심만 떠나버리면 그때는 설사 독을 마신다 해도 그 독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달마대사를 죽이려고 광통 법사나 그런 사람들이 여섯 번이나 독을 드려도 그 독이 받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곱 번째 가서는 달마 대사께서 금생 인연이 다한 고로 스스로 가셨단 말입니다. 그와 같이 청정한 사람들은 독도 침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독심으로 오염되어 우리 내장이 청정하지 못한 고로 온갖 병고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우리 생리가 그만치 오염돼 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을 주의하고 육식과 과식을 피한다면 그만큼 침해를 덜 받습니다. 그것은 생리학자나 병리학자들이 다 증명을 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삼명(三明), 이것은 과거에 막힘이 없고 또는 미래에 막힘이 없고 또 우주를 모두 본다는 말입니다. 부처님 지혜를 가리킬 때 일체종지(一切種智)라, 부처님의 지혜는 일체종지입니다. 그 말은 작은 것 큰 것 할 것 없이 우주의 모두를 다 안다는 말입니다. 그냥 본질적인 것만 아는 것이 아니라 세세한 것까지 다 안다는 말입니다.
가사 정감록의 비기(秘記)들을 보십시오. 물론 비기에도 틀리는 것이 있지만 더러는 아주 신통하게 맞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 계발하면 할수록 그렇게 위대한 힘을 내는 것입니다. 과거를 다 내다보고 미래를 보고 우주를 본단 말입니다. 이런 지혜가 우리한테 본래로 있습니다.
정감록에만 있고 도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한테나 다 있는 것인데 우리가 계발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계발하는 작업이 바로 참선이고 그 참선법이 가장 훌륭하고 지름길로 가는 방법입니다.
참선이야말로 우리가 본래 갖추고 있는 무한공덕을 길러내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지름길입니다. 그러면 참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까도 말씀 드린바와 같이 우리 행동을 주의해서 도덕적인 생활을 하고 우리 마음을 항시 본체인 부처님한테다가 머무르게 하는 것입니다.
남과 얘기를 하거나 책을 볼 때나 일을 할 때나 항시 그 곳에 마음이 머물러 있으면 차근차근, 걸음걸음 그것에 접근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과거에 통달하고 미래에 통달하고 동시에 자기 번뇌를 완전히 녹여 버립니다.
불교말로 하면 숙명통(宿命通), 천안통(天眼通), 누진통(漏盡通)이라, 과거에 통달무애 하는 것이 숙명통이고 또는 미래에 통달무애하고 우주를 모두 내다보는 것이 천안통입니다.
그 다음 누진통은 샐 누(漏)자, 번뇌를 다 떼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번뇌를 다 떼어 버리면 성인이 되겠지요. 과거에는 미개한 때라서 특수한 사람들만 성인이었지만 앞으로는 집단적으로 성인이 나올 때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굉장히 영리하니까, 사상적으로도 그 많은 전쟁과 반목을 통해 많은 경험을 다 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모두가 다 성자의 길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전쟁을 방지하고 사람으로 인한 인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성자의 길을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정보화 시대에서 정보가 교환되면 될수록 성자의 길은 더욱 더 빛날 것입니다. 그 길 밖에 다른 길은 없으니까요.
그 다음은 육통(六通, 六神通)이라, 이 육신통은 아까 말한 삼통에 다 같이 거두어져 있습니다. 천안통(天眼通)은 우주를 다 내다보는 것이고, 천이통 이것은 하늘 천(天)자, 귀 이(耳)자, 우주의 음성을 다 듣는다는 말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재주가 없어서 영어도 잘 못하고 영어하는 사람들 말을 잘 못 알아 듣습니다마는 만약 천이통(天耳通)을 했다면 영어를 안 배워도 다 알아 듣는 것입니다. 천이통이란 그와 같이 개가 짖으면 축생의 말을 알아듣고 하는 것입니다.
타심통(他心通)이라, 이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참선하는 사람들은 타심통을 다는 못해도 사람을 척 보면 대강 그 사람을 짐작은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인격도 있으니 함부로 지적은 않지만….
그리고 숙명통은 과거를 다 아는 지혜고 다섯 번째는 신여의통(身如意通) 즉, 신족통(神足通)이라, 이것은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자기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기적을 부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정통법을 받은 분이 마하가섭이고, 그 다음 분이 아난 존자인데, 아난 존자가 열반 드실 때에 그 열반상은 우리에게 굉장히 신심을 느끼게 합니다. 그 분은 신통을 여실하게 증명을 다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부처님의 금관을 역사들이 횃불로 불을 붙였지만 붙지를 않았습니다. 아무리 기름을 붓고 해도 불이 안 붙으니까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해서 화광삼매(火光三昧)라, 자기 몸에서 불을 내어 스스로 금관을 태우고 몸을 태워 사리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의 불성 가운데는 땅 기운, 물 기운, 불 기운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인간이란 정말 기묘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 즉 우리 불성을 가리켜 마니보주(摩尼寶珠)라, 여의주라, 온갖 것이 다 나오는 보물구슬이라고 합니다. 그런 위대한 마음을 두고서도 모르니까 우리 인간을 가리켜서 금(金)을 가지고서 얻어먹는 거지라고 그럽니다. 그런 값진 보배를 가지고도 가진 줄을 모르고 하찮은 일에 생명을 낭비한단 말입니다. 금을 잔뜩 곳집에 넣어 놓고 거지 행세를 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무한공덕장인 우리 마음을 캐내는 작업을 하면서 사업도 하고 사회 일도 하면 훨씬 잘 될 것입니다. 우리 몸 가운데는 물과 불이 다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불만 생각하면 불이 되고, 물을 생각하면 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삼명육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석가모니한테 꿀릴 필요도 없고 예수한테 주눅들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고 하나님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게을러서 그렇게 못할 뿐입니다.
아함경에서 하신 부처님 말씀 중에 ‘영생 불멸하는 영생의 길은 분명히 있는데 우리 중생이 가고 안가고 하느니라.’ 영생의 길은 분명히 있는데 중생이 게을러서 가고 안가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신여의통은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고, 불경을 보면 부처님께서 그렇게 하신 대목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지금 원자력이 무시무시한 힘을 내지만 그 보다도 훨씬 더 무한 성능이 불성인 것입니다.따라서 그렇게 짐작을 해 보면 압니다.
다음에 누진통(漏盡通), 이것은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번뇌를 모조리 다 떼어버리는 그런 신통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해탈(解脫)이라, 우리는 한사코 해탈을 해야 됩니다. 해탈(解脫)을 해야 만이 우리 삶은 완성이 됩니다. 우리 삶의 보람은 우리 스스로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모두가 다 허망한 것이고 가짜입니다.
우리 생명이라 하는 것은 무상한 것이어서 어느 때 갈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병들어 죽을지 사고를 당할지 또는 천재지변으로 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상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급박한 것이 무엇인가? 가장 절박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를 찾는 일입니다. 참다운 자기는 바로 부처입니다. 따라서 부처가 되는 것이 우리들의 지상과업인 것입니다.
모든 번뇌의 구속을 다 끊어버리고 해탈의 길로 가야합니다. 우리는 지금 구속을 받고 삽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때문에 얼마나 구속을 많이 받았습니까. 또 김일성주의 때문에 우리 북녘 동포들이 얼마나 처절한 속박 속에서 고생을 합니까. 불교는 그런 구속을 다 푸는 것입니다.
관념적인 구속, 제도적인 구속을 다 풀어서 성불하기 좋은 제도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불하기 제일 좋은 제도가 바로 승가의 법인데, 진정한 승가의 법은 감투나 놓고 싸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해탈이라, 해탈에는 지혜해탈(智慧解脫)과 선정해탈(禪定解脫)이 있습니다. 지혜해탈은 먼저 이론적으로 막힘이 없게 됩니다. 우리는 이치로 해서 먼저 부처님의 경전 말씀과 선지식들이나 조사 스님들의 가르침 따라서 기본적인 길을 알고 가야합니다. 불교 공부는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이번 법회도 성불하는 길목만은 바로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해탈이라, 먼저 이론적으로 막히는 것을 배우고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자들은 보통 이론적인 체계만 서면 공부를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교의 세계에서 보면 그것은 지혜해탈에도 미처 못 간 것인데 참다운 해탈은 어림없는 것입니다.
참다운 해탈은 선정이라, 참선을 해서 우리 생리와 심리가 아울러 맑아지고 이른바 환골탈태(換骨奪胎)라, 우리 몸뚱이도 역시 정화가 되어서 나쁜 짓을 할래야 할 수 없이 돼 버려야 합니다.
공자가 칠십이 되어서 말한 “내 마음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 이런 정도가 되어야 선정해탈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도 우주의 도리에 어긋남이 없는 정도가 되려면 평소에 우리 행동을 도덕적으로 훈련을 시켜야 하고 그와 동시에 우리 마음이 우주의 근본진리인 부처님을 여의지 않아야 합니다.
부처님이라 하는 본질을 떠나지 않는 공부가 참선 공부입니다. 화두나 염불이나 주문이나 무엇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우주의 본바탕을 의미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 하늘 어디에 따로 있고 부처님은 극락세계에 계신다’ 이렇게 생각하면 참선이 못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나 밖에나 어디에나 다 존재하는 하나님, 부처님, 이렇게 생각할 때만이 참다운 참선공부가 됩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두 해전에 열반한 청화스님,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도반인 도륜스님 이렇게 셋이서
대흥사 진불암에서 수행할 때다. 우리는 삼총사라고 불릴만큼 서로 마음이 잘 맞아
오랜 동안 수행을 함께 했다. 당시는 한 방에 앉아서 정진을 하지 않고 방을 따로 쓰면서 각자의
방에서 정진을 했다. 하루 일종식을 하기로 하고 정진을 시작했는데, 나는 처음 해봐서 그런지
배가 고파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으니 밤새 앉아 정진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죽 끓여 하루 한 끼 먹고 담요 한 장 가지고 한 겨울을 났다.
그래도 아침에 죽을 끓이면서 아궁이에 불을 넣어놓으면 하루 종일 방은 따뜻해
옷을 얇게 입고 앉아 있어도 추운 줄은 몰랐다. 온 종일 정진하고 나서 따순 물에 발을 씻고는
또 앉아 있었던 그 시절,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날 깜빡 잠이 들었다가 일어났는데 도량석 할 시간이 넘어 있었다.
도량석을 맡고 있었던 나는 ‘아, 내가 늦었구나’ 하고는 목탁을 찾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도량석을 마치고 법당에 들어가 예불을 다 마치도록 아무도 기척을 하지 않았다.
피곤해서 못나왔나 보구나 하고 방으로 들어와 좌복 위에 앉아 정진하고 있으려니
아무리 앉아 있어도 날이 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청화스님의 맑은 도량석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아뿔사! 내가 시간을 잘 못 알고 너무 빨리 도량석과 예불을 해버린 것이다.
들어오는 시주 하나 없이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었으니 시계 하나 변변한 게 없어서 일어났던,
지금도 미소가 피어오르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올해 일흔 여덟인 나는 지금 그때 함께 정진했던 도반인 청화스님의 사진을
내 방문 위에 걸어 놓고 있다. 그리곤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그를 한 번씩 바라본다.
장좌불와를 멈추지 않고 눈푸르게 정진했던 사람, 상좌에게도 싫은 소리를 못할만큼 성품이
유순했으나 정진할 때만큼은 가차 없이 인정을 끊고 지독하리만치 수행에 몰두했던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는 우리와 함께 한철을 나기 위해 암자에 도착하면 그 날부터
천 년이라도 살 것처럼, 허름한 도량 구석구석을 치우고 손질해 청정한 도량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는 한 철 이상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나고는 했다.
무엇 하나에도 집착이 없어야 하는 수행자의 삶을 실천한 것이다.
벽송사에서 함께 한철을 났던 어느 한 스님이 ‘내가 도인이 아니라서 그가 도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진 하나는 이 나라에서 따라갈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존경한다.’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선지禪旨로나 학문적으로나 그만한 사람이 드문 것은 젊은 시절부터 저리 혹독하게
정진했던 그 힘이 아니겠는가. 행자시절은 물론 한평생 내 수행의 길에 있어 잊을 수 없는 도반이요
동지인 그를 날마다 만나면서 나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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