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이 지혜를 깨닫는데 방해가 되나요?
[ 사마타 그리고 위빠사나 ]
아래의 내용은 호두마을의 홈 페이지에 올려진 수행자의 물음에 편집부가 답변한 글을 보완한 것이며 파아욱 또야 사야도의 법문에서 발췌한 부분은 수정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실은 것이다. 법문을 번역해서 법공양해 주신 무념 님께 감사드린다. 편의상 본문 중에서 순서는 차례대로 하지 않은 것을 밝힌다.
물음 : 선정이 지혜를 깨닫는데 방해가 되나요? 책에 따라 깊은 선정이 지혜의 깨달음에 방해가 된다고도 하고 또 반대로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요?
붓다다사 사야도는 얕은 선정이 지혜의 깨달음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는 깊은 선정이 지혜를 깨닫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도대체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깊은 선정이 깨달음에 방해가 된다는 부분은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순수한 위빠사나 수행과 사마타 수행을 닦은 후에 집중된 마음을 바탕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닦는 방법입니다.
선정이 지혜를 깨닫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은 수행자가 깊은 고요와 행복감에 집착을 일으켜서 마음챙김을 놓치고 자기만족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아찬 붓다다사(Achanan Buddhadasa)는 ‘ 깊이 집중된 마음은 전혀 내관(內觀)을 할 수 없다. 그것은 알아차림의 상태에 있지 않은 것이면 지혜를 위해서는 쓸모가 없는 것이다.
깊은 선정은 지혜 수련을 위해서 커다란 장애가 된다. 내관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보다 얕은 수준의 선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에 마음은 이미 획득한 그 힘을 이용할 수 있다. 우리들은 깊은 선정보다는 오히려 고요하고 견실한 마음을 목표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혜 수련에 적용되었을 때에는 모든 세계에 관련된 정견(正見)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아찬 마와 부와는 ‘모든 종류의 선정이 지혜 계발을 돕고 지원하지만 도와주는 정도는 자신의 선정력에 달려있다. 선정을 지혜 계발로 사용하기 위해 전환하는 것은 수행자의 현명함에 달려 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선정을 얻더라도 명상을 수련하는 사람은 그것에 집착하게 되기 쉽다. 왜냐하면 마음이 선정 상태에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 때, 평온하고 행복한 상태가 현전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선정에서 나왔을 때 아직도 깊은 휴식의 상태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수행자가 지혜 명상을 할 만큼 충분히 고요해져 있더라도. 그리고 자신의 고요함을 지혜 명상에 효과적으로 이용할 만큼 충분하다 하더라도, 지혜 계발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깊고 고요한 상태에 머물려고 시도한다. 이것이 선정에 집착하는 것으로 선정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 더 멀리 진보하지 못하게 된다.
수행자님은 책의 내용 중에서, 수행자가 깊은 선정을 즐기려는 경향 때문에 지혜를 닦는 것에 방해가 된다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개인의 특성과 근기에 맞아야 한다.
오근(五根)을 균형 있게 조절해야한다.
[반야가 깊어지면 상관이 없지만, 사띠가 약한데 선정이 깊다든지 아니면]
사마타 수행으로는 우리의 마음과 몸의 진정한 본질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위빠사나는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그 순간에 바로 알아차리는 것이므로 대상에 대해 생각하거나, 분석하거나, 비판하거나, 개념화를 위한 공간이 없습니다. 오직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정신-물질 그리고 그 원인이 무상, 고, 무아임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함께 수행할 때, 사념처(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마음챙김)를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마음집중의 종류는 다르지만 기본적인 불교수행의 구조인 ‘마음집중(定)을 바탕으로 한 지혜의 향상에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칼라파에서 사대요소명상은 깊은 집중 상태이기는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사라지기 때문에 깊게 집중할 수 없다. 항상 변하는 대상으로는 본 삼매를 얻을 수 없다.
사마타를 닦고 위빠사나 지혜를 닦는 사람은 선정의 정신현상(상카라)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봄으로서 무상, 고, 무아임을 관찰한다. 이대의 집중은 깊고 심오하기 때문에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파아욱 사야도)
결국 개인의 특성과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계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부처님의 경전에 의거해서
부처님은 오근(五根)을 균형시켜서 무상, 고, 무아임을 통찰해서 사선정까지
계, 정, 혜 삼학(三學)
사마타를 닦고 지혜를 닦는 사람은 선정의 정신현상(상카라)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봄으로서 무상, 고, 무아임을 관찰한다. 이때의 집중은 깊고 심오하기 때문에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 수행력이 생기면 마음챙김이 더욱 예리해지고 몸과 마음의 현상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 수행이 진전되면서 생겨나는 선정의 상태에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선정의 상태는 수행의 핵심인 마음챙김을 놓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도 결국 마음챙김의 대상일 뿐이다.]
명상은 한 토막의 통나무에 비할 수 있다. 통나무의 한쪽 끝이 통찰과 관찰이라 한다면, 다른 한쪽은 고요과 집중이다.
붓다는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으셨다, 그 중에서도 아나파나 사띠(anapana-sati - 호흡에 대한 마음집중)을 주로 하셨다.
이 사마타- 위빠사나에서도 2가지 종류가 있다, 위빠사나만을 닦는 수행이 그 하나요. 사마타를 닦고 나서 위빠사나로 전환하는 수행이 그 하나입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위빠사나만을 닦는 사람을 ‘마른 위빠사나 수행자’라고 부르고 위빠사나로 깨달음을 얻으면 혜해탈(慧解脫)이라 부르고, 사마타 위빠사나로 깨달음을 얻으면 양면해탈이라 부른다.
부처님께서는 계 정 혜 삼학(三學)을 펼쳐 놓으셨다. 계행의 단속을 통해서 몸과 말을 청청하게 하고, 사마타를 닦아서 삼매를 이루어 마음을 청청하게 하고. 그 청정하고. 집중된 마음으로 위빠사나(지혜)를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는다.
붓다께서는 먼저 사마타를 닦아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집중된 마음이 궁극의 정신, 물질
그리고 그 원인을 볼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삼매를 개발해야한다. 삼매를 얻으면 비구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안다.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色)의 일어남과 사라짐, 느낌(受), 지각(想), 상카라(行)의 일어남, 느낌, 지각, 상카라의 사라짐, 그리고 의식의 일어남과 사라짐이다.
여기서 현상은 오온과 오온이 일어난 원인을 말한다,
그래서 잘 집중된 수행자는 오온과 그 원인 그리고 그것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잘 안다. 그 원인이 일어날 때 오온이 일어나고, 그 원인이 완전히 소멸될 때 오온도 완전히 소멸되는 것을 수행자는 분명히 본다.
[여기서 현상은 오온과 오온이 일어난 원인을 말한다.]오온은 물질, 느낌, 지각, 상카라, 의식이다. 느낌 지각, 상카라, 의식을 함께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오온을 다른 말로 하면 정신-물질이 일어난 원인(연기)를 말한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은 정신-물질과 정신-물질이 일어난 원인(연기)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이다.
어떻게 물질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사선정을 성취한 사람은 삼매에서 나오는 지혜의 빛으로 깊은 통찰이 이루어진다. 그 빛으로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을 관찰하면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인 깔라파(kalaapa)를 식별하고, 그 깔라파를 구성하고 있는 궁극적 물질(paramattha) 땅, 물, 불, 바람의 요소, 색깔, 향기 맛, 냄새, 생명기능 그리고 영양소 등을 볼 수 있다. 이 궁극적 물질은 찰라 간에 생멸을 거듭한다. 이 물질의 일어나고 사라짐으로 봐야 이 몸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해탈을 원하게 된다.
어떻게 정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정신은 물질보다 더 생멸이 빨라서 물질이 한 번 일어나고 사라질 때 심찰라는 16번 또는 17번 일어난다고 한다. 삼매를 성취하지 않은 사람은 빠르게 일어났다 사라지는 심찰라를 볼 수 없다. 이 하나하나의 심찰라 속에 여러 가지 마음 부수(心所)가 같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식별하려면 깊고 강한 집중이 필요하다. 삼매에서 나오는 집중력으로 이것을 식별해야만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할 수 있고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
어떻게 정신-물질이 일어난 원인(연기)를 있는 그대로 보는가?
현상(상카라), 즉 정신-물질가 그 원인은 일어나자마자 사라진다. 그것이 무상인 이유이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괴로움인 이유이다. 그것들은 자아 또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것이 무아인 이유이다.
현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고, 그 다음의 현상의 사라짐만을 관찰하고 나면, 이제 나머지 지혜를 통해 진보해야 한다. 그러면 결국에는 형성되지 않은 것, 닙바나를 알고 보게 될 것이다. 형성되지 않은 것(無爲法)을 보게 될 때, 불멸(Amata)을 보게 된다.
* 질문 : 초심자가 삼매와 지혜의 기능을 어떻게 균형 잡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아나파나 사띠에서 지혜를 수행합니까? 29p.
대답 : 아나파나 사띠를 수행할 때 호흡을 아는 것이 지혜이다. 호흡에 대해 마음을 챙기는 것이 마음챙김이고, 호흡에 일념을 이루는 것이 삼매이다. 호흡을 분명히 알고자 노력하는 것이 정진이고, 아나파나 사띠로 선정을 이룬다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초심자는 강한 5가지 조절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아나파나 사띠에 대한 믿음이 충분해야 하고, 호홉을 분명히 알려는 정진이 충분해야하며,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이 충분해야한다. 호흡에 대한 집중이 충분해야 하고, 호흡을 분명히 알아야한다. 만약 하나가 과도하게 되면 다른 것들은 그 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다.
[ 예를 들어 믿음이 과도하면 동요하게 된다. 이것은 호흡에 대한 상카라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마음챙김은 호흡을 확립할 수 없고, 삼매 또한 호흡에 깊게 집중할 수 없고, 지혜 또한 호흡을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정진력이 과도하면 마음은 불안하게 되고, 다른 조절능력은 약해진다. 마음챙김이 약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호흡에 대해 집중도 되지 않고, 호흡을 인식하려는 노력도 할 수 없고, 믿음도 떨어진다.]
* 29p (12쪽과 비교할 것)
사마타 명상에서는 강한 집중이 좋다. 그러나 너무 과도하면 게으름을 일으킨다. 게으름이 일어나면, 다른 기능들이 다시 약해지고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 단계에서는 지혜가 가장 둔하고. 단지 자연스러운 호흡을 알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마타를 수행하는 초심자에게도 호흡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니밋따가 나타나면 니밋따를 아는 것이 지혜이다. 이런 단순한 지혜에서 벗어나서 너무 많이 알려고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면 토론이나 비평을 하는 것을 지혜가 과도하다고 하는 것이다.
초심자에게도 균형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어떻게 균형을 잡는가? 호흡을 분명히 알고자 하는 마음챙김과 정진력으로 수행해야한다. 믿음을 가지고 집중해야한다.
* 12P. 삼매가 강하고 정진이 약하면 게을러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수행자의 삼매가 증가하면, 그는 느슨한 마음으로 빠띠바가 니밋따(선명한 표상)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꿰뚫어 보듯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게으름에 떨어진다. 선정의 다섯요소( )는 삼매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자주 바왕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진이 강하고 삼매가 약하면, 마음이 들뜨게 된다. 삼매와 정지니 균형을 이루게 될 때, 게으름에도 떨어지지 않고 들뜨지도 않아 선정을 이룰 것이다.
사마타 명상을 수행하는 삶은 매우 강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좋다. 빠띠바가 니밋따에 대해 삼매를 개발하면, 나는 선정에 도달할 것이다, 라고 확신한다면, 그 믿음의 힘과 빠띠바가 니밋따에 대한 집중때문에 확실히 선정을 이룰 것이다. 선정은 주로 집중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삼매와 지혜가 균형을 이룰 때에만 세간의 선정(lokiya jhana : 색계 4선정과 무색계 4선정)이 일어난다. 이것은 출세간의 선정(loduttara jhana :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도와 과)에서도 똑 같이 적용되며, 출세간의 선정은 삼매와 지혜가 정진과 믿음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 더 요구된다고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챙김은 모든 상황하에서 필요하다. 왜냐하면 과도한 믿음, 정진, 지혜로 마음이 동요되는 것을 보호하고, 과도한 삼매로 마음이 게으름에 떨어지게 되는 것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믿음과 지혜, 삼매와 정진, 그리고 삼매와 지혜의 균형을 잡는다.
[마음챙김은 명상하는 마음의 의지처이고 보호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이 이전에 한 번도 도달하거나 본적이 없는 특별하고 높은 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마음챙김없이 마음은 특별하고 비범한 상태에 도달 할 수 없다. ]
마음챙김은 마음을 보호하고 명상 주제를 잃지 않도록 한다. 마음챙김 없이 마음을 끌어올리거나 마음을 억제할 수 없다.
닙바나(nibbaana)를 얻고자 한다면, 그 물질을 분석하고 그 요소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아야 한다. 물질의 발생원인은 업, 마음. 온도, 음식의 4가지 하나에 있다.
1. 업에서 생긴 물질
2. 마음에서 생긴 물질
3. 온도에서 생긴 물질
4. 음식에서 생긴 물질
물질이 일어난 4가지 원인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작용하는지 본다. 이렇게 하기 위해 먼저 사대요소를 이해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이 위빠사나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위빠사나 수행에 필요한 궁극적 실재를 식별하는 능력을 사대요소 명상의 끝에서 개발하기 때문이다. 위빠사나로 가는 길은 사마타 명상으로 시작하거나, 4대요소로 시작하는 2가지 방법이 있지만 모두가 위빠사나를 수행하기 전에 사대요소 명상을 완성할 필요가 있다. 사대 요소를 명상할 때, 아나파나 사선정과 같은 깊은 삼매가 있으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강한 집중이 궁극적 정신-궁극적 물질과 그 원인을 분명하게 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 물질을 식별하는 방법-
정신은 물질에 의존한다. 마음은 각각의 물질 토대에 의존해서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 즉 땅, 물, 불, 바람의 요소를 식별해야 한다.
체계적으로 수행한다면 업, 마음, 온도, 음식의 4가지 원인으로 생성된 깔라파를 식별하는데 달인이 될 것이다.
그 식별하는 방법을 요약해 보자.
1. 깔라파를 관찰하기 전에 4대요소를 관찰해서 근접삼매를 개발해야 한다.
2. 깔라파를 볼 수 있을 때, 하나의 깔라파에서 모든 요소들을 관찰하기 위해 모든 물질(땅, 물, 바람, 불, 색깔, 냄새, 맛, 영양소, 생명기능, 눈 투명요소 등)을 분석한다.
3. 간단한 방법으로는 한의 감각기관에서 모든 물질을 분석하고 나머지 감각기관에서 식별 한다.
4. 상세한 방법으로는 몸의 42부분에서 모든 물질을 식별한다.
그 모든 요소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을 때 , 그 요소들은 위빠사나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보든 요소들을 무상, 고, 무아로 보게 된다.
위빠사나 명상에서는 식별해야 할 것이 많다. (지,수,화,풍의 4대요소를 12가지 특징으로 관찰) 그래서 피곤이 몰려온다. 이럴 때 삼매는 휴식처를 제공한다. 마치 전쟁터에 나간 병사가 안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전한 요새와 같다.
* 깔라파 속의 궁극적 물질을 보기 위해서는 강한 삼매가 필요하다. 강한 삼매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삿짜 상윳따의 사마디 숫따에 붓다의 설명이 나온다.
비구들이여, 삼매를 개발하라. 삼매를 얻으면 비구는 담마(dhamma)를 있는 그대로 안다.
그가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아는가?
물질의 일어남과 사라짐.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
지각의 일어남과 사라짐.
상카라의 일어남과 사라짐.
마음(識)의 일어남과 사라짐이다.
또한 붓다께서는 소멸에 이르는 길인 사마타-위빠사나를 가르치셨다. 사마타-위빠사나는 팔정도(八正道)를 의미한다. 정신-물질을 분석하는 지혜, 원인과 조건을 식별하는 지혜가 바른 견해(正見)이다. 정신-물질의 소멸의 지혜 또한 바른 견해이다. 팔정도의 지혜도 바른 견해이다. 사성제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바른 사유(正思惟)이다.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가 위빠사나이다. 위빠사나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마타 삼매가 있어야한다. 이것이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사마타-위빠사나를 실천할 때, 계청정을 이뤄야 한다. 이것이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계행(正命)이다. 계행에 의지해서 사마타-위빠사나를 수행하는 것은 팔정도를 수행하는 것이다. [144쪽]
사마타는 강한 삼매를 일으킨다. 위빠사나에서 궁극적 정신-물질을 보게 하는 것은 이 삼매의 빛이다. 깊고 강한 삼매 때문에 정신-물질 그리고 그 원인의 무상, 고, 무아의 성질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이 명확성이 사마타로부터 오는 가장 큰 이익이다.
삼매의 빛으로 바앙가(bhavanga)를 추적해 올라가면 전생의 죽는 순간의 마음을 포착할 수 있고 그 마지막 일어난 재생의 표상(이 표상이 다음 생의 삶의 수준이나 태어나는 곳을 결정한다)이 무엇인가 식별하고 그 원인으로 금생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식으로 연기를 관찰한다.
* 지혜의 광휘, 빛남, 광채, 밝음이 정신-물질을 따라서 현재로부터 금생의 탄생의 순간으로, 전생의 죽음의 순간까지 되돌아갈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수많은 과거 생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또한 미래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빠리닙바나(대열반)의 시간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정신-물질의 구성요소를 관찰함으로써 원인과 결과를 식별할 수 있다.
부지런히 정진해서 삼매를 얻고, 강한 삼매로 마음을 정화하고, 그 정화된 마음으로 궁극적 정신-물질을 식별할 수 있게 되면, 미래의 어느 날 마지막 소멸인 닙바나를 보게 될 것이다. [끝]
* 깔라파(kalaapa) : 생체학적으로 세포 또는 세포보다 더 작은 원소이며, 생멸이 찰나적이어서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고 삼매의 빛으로 식별할 수 있다. 그 한 깔라파 안에도 그 한 깔라파 안에 또 지, 수, 화, 풍, 색깔, 냄새, 맛, 영양소 등의 여러 가지 원소가 들어있다)지
* 바앙가(bhavanga) : 한 개체가 삶의 과정에서 생명이 끝날 때까지 그 연속성을 유지시켜주는 생명연속체이다. 그러나 이 바왕가는 표면 아래에 흐르는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이 아니다. 바왕가는 대상이 없어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때도 이 바왕가는 생멸을 거듭하며 흘러간다. 이것은 꿈없는 숙면 속에서도 계속 흘러간다. 바왕가도 모든 마음처럼 대상을 갖는다. 그것은 전생에 죽는 순간에 일어난 생각, 즉 업, 업의 표상, 재생의 표상 중 하나이다. 이 표상은 금생에서 죽는 순간까지 변하지 않는다. 모든 인식과정은 이 바왕가를 거쳐 다음 인식과정으로 넘어간다.
* 닙바나(nibbaana 산스크리트어로는 니르바나) : 열반이라고 음역하고 있으나, 현재 열반의 의미를 죽음이라는 의미로까지 통용되고 있어서 혼란이 생긴다. 그래서 빨리어 원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닙바나의 의미는 번뇌의 소멸, 즉 깨달음이다.
찰라삼매에는 2가지가 있다.
1. 사마타 명상에서 찰라삼매
2. 위빠사나 명상에서 찰라삼매
사마타 명상에서는 3가지 삼매(1.찰라삼매. 2.근접삼매 3. 본삼매)가 있다. 사마타 명상에서 찰라삼매는 빠디바가 니밋따를 대상으로 취하는 삼매를 말한다. 이것은 근접삼매전의 삼매로 사마타 수행자에게만 해당한다.
순수 위빠사나 수행자에도 또한 찰라삼매가 있다. 순수 위빠사나 수행자는 일번적으로 사대요소 명상으로 시작해야 한다. 사대요소 명상을 쳬계적으로 수행한다면, 깔라파 또는 깔라파 속의 4대요소를 보는 근접삼매 또는 찰라삼매를 얻을 수 있다. 청정도론에서는 이런 삼매를 근접삼매라고 말한다.
[사대요소 명상으로는 본삼매를 얻을 수 없다 각각의 깔라파 속에서 4대요소를 볼 수 있을 때는 깊은 집중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대상으로 사용해서 본삼매를 얻을 수는 없다.]
위빠사나에서도 찰라삼매가 있다. 이것이 청정도론의 아나파나 부분에 언급되어 있다. 사마타 수행자가 위빠사나를 수행하고자 할 때, 본 삼매를 얻은 수행자는 초선정에 들어간다.
이것이 사마타이다. 초선정에서 나와서, 초선정의 34가지 정신 현상(상카라)을 식별한다. 그리고 선정에서의 상카라가 일어나고 사라짐을 봄으로서 무상, 고, 무아임을 관찰한다. 이선정, 삼선정, 사선정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며 여전히 집중이 있다. 그대의 집중은 깊고 심오하기 때문에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이 삼매가 찰라삼매이다. 왜냐하면 대상이 일어나자마자 사라지기 때문이다.
출처: http://www.vmcwv.org/bbs/board.php?bo_table=menu3_3&wr_id=56&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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