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과학 1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 법성종(法性宗)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 송진섭

수선님 2020. 5. 31. 12:48

【논문】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법성종(法性宗)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송 진 섭

 

【주제분류】불교철학, 윤리학

【주요어】원각(圓覺), 진여(眞如), 대비심(大悲心), 서원(誓願), 법성종(法性 宗),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요약문】

불교의 이념은 그것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에서뿐만 아니라 그것의 논의를 구성하는 주요한 개념적 요소들에서까지 윤리적인 문제의 영역을 경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닌 오랜 역사는 윤리학적 논의의 구조와 개념의 용법을 지나치게 다양화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윤리적 판단 이 요구되는 구체적인 사안들에 있어 일관성 있는 해답의 제시가 어려워지 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의 해소를 위해 불교의 이념, 특히 그 안에서 도 ‘법성종(法性宗)’의 영역에서 발견되는 윤리학적 논의의 구조를 정형화 된 형태로써 도출해내고자 했다. 법성종이 지닌 윤리이론의 정형화된 구조 는 객관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내적 요소로서의 ‘원각(圓覺)’ 혹은 ‘진여(眞如)’에 그 근간을 둠으로서 마련된다. 바로 이 원각 내지는 진여의 개념이 도덕적 판단을 수행하는 자에게 ‘현상에 대한 사실판단’ 및 ‘도덕적 가치판단’의 객관적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도덕적 행위를 위한 토 대를 구성한다. 도덕적 판단이 구체적인 행위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둘을 이어줄 매개 적 개념이 필요하다. 법성종에서는 원각 내지는 진여라는 최상의 도덕 원 리로부터 필연적으로 발현되는 도덕적 감정인 ‘대비심(大悲心)’으로서 그러 한 간극을 특징적으로 해소한다. 대비심은 원각 내지는 진여에 의해 도출 4 논문 된 ‘현상에 대한 사실적 이해’에 그 발현 근거를 두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나아가 구체적인 행위를 위한 ‘의지’의 개념에 해당하는 ‘서원(誓 願)’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도덕적 원리에서부터 도덕적 판단 및 행위를 관통하는 이상의 필연적 관계는, 법성종의 이론구조와 체계상의 유사성을 지닌 칸트철학과의 부분적인 대조를 통해 그 특징적인 면모를 밝히는 방면 으로 수행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렇게 도출된 이론적 구조에 철학적 재해석을 가함으로써 보다 정형화된 형태의 윤리이론을 도출해내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고통’ 의 문제가 전면으로 등장함으로써, 법성종의 윤리이론이 지향하는 대상의 범위가 ‘고통 받는 중생’으로 압축되고 그것의 철학적 입장과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밝혀지게 된다. Ⅰ. 서론 불교의 이념이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 이래, 이상적인 인간 공동체 를 위한 윤리적 규범들을 제시하고 그것에 순응해줄 것을 일관적으로 요구해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실로 ‘일심(一心)’을 비롯하여 ‘자심(慈心)’, ‘바라밀(波羅蜜)’, ‘자리이타(自利利他)’ 등 불교 사상의 근간을 이루 는 핵심적 개념들은 대부분 그 자체로 윤리적인 의미를 강하게 함축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교를 기반으로 다루어지는 존재론을 비롯 한 여타의 문제들도 위의 개념들을 공유하는 이상 윤리적인 문제로부 터 완전히 독립되어 논의될 수는 없는데, 이 같은 점들로 미루어 열 반(涅槃)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는 불교의 사상이란 기실 특수한 형태 의 도덕철학에 해당한다고 말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불교는 인도에서 최초로 발생한 이래 오랜 기간에 걸쳐 복 합적인 사상적 변천을 겪어왔고, 때문에 다양한 체계의 윤리이론들이 불교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 공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이상적인 윤리규범의 제시라는 통일된 근본이념에도 불구하고,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5 불교가 지닌 풍부한 개념적 자원들은 오히려 도덕적으로 엄밀한 판단 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사안들에 있어 일관성 있는 답변의 제시를 어 렵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도덕적 판단의 문제가 윤리학적 논의에 있어 핵심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한, 적어도 그것이 지닌 근본 이념의 원활한 성취를 위해서라도 불교의 윤리이론은 정형화된 형태 로서 체계적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일회적인 연구를 통해 조직화되기에는 불교가 지닌 이론적 요소들이 몹시 방대하며, 심지어는 그 모든 요소들을 하나의 체계로 정형화하는 작업이 가능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인 것이 사실이다. 때 문에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사상체계의 범위와 내용을 분명하게 제 한해둘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대승불교 가운데서도 이른바 ‘불성(佛性)’의 존재를 사상적 중심으로 삼는 법성종(法性宗)1)의 영역 을 그 제한된 범위로 삼고자 한다.2) 따라서 본고에서는, 도출된 윤리 1) 본고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법성종(法性宗)’의 개념적 틀은 청량징관(淸凉 澄觀, 738∼839)에 의해 처음으로 화엄의 교판에 도입된 그것을 골자로 한다. 이러한 법성종이 가리키는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에 관해서는 다음 을 참고. 박인석(2010) pp.68∼74; 신규탁(2010) pp.297∼302; 한편 우리는 다음의 연구에서 이러한 법성종과 관계된 일련의 철학적 논의들을 ‘법성 철학(法性哲學)’이라는 하나의 얼개로서 범주화시키고자 하는 최초의 시 도를 발견할 수 있다. 신규탁(2008) pp.7∼14; 신규탁(2012) pp.96∼99. 2) 예컨대 불교와 칸트에 관한 최인숙 선생의 논의들을 앞서 살펴본 독자라 면, 본고의 논의가 그것과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결코 연장적인 형태를 띠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는 구체적으로는 양자 사이의 불교적 인간관에 대한 관점 차이, 나아가 그러한 각각의 관점들이 토대로 삼는 세부적인 이념이 확연히 구별되기 때문이다. 기실 오늘날의 불교 이념이 광범위한 시공간적 배경 위에서 전 개되어 온 만큼, 거기에는 다채로운 이론적 요소들이 명료하게 정돈되지 않은 채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그것에 대한 일관성 있는 해 석을 이끌어 내기 위해 보다 엄밀한 분석적 방법들을 사용할수록 모순성 을 갖는 난관에 봉착할 위험도 커지게 되는데, 이러한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라도 이상과 같은 연구 범위의 제한은 사실상 불가피한 것으로 생 각된다. 비교적 초기불교에 중점을 두기는 하지만, 포괄적인 불교의 이념 과 접목될 수 있는 이론적 틀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다음의 연구를 참고. 안옥선(2002) pp.106∼109; 불교와 칸트의 윤리이론에 관한 최인숙 선생의 대표적인 연구로는 다음을 참고. 최인숙(2005). 6 논문 이론의 체계를 곧장 ‘불교 일반’의 범주로 확장시켜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불교라는 전체적인 테두리 내에서 도출될 수 있는 이론 체계들 가운데 한 특수한 형태에 해당한다. Ⅱ. 법성종에서의 도덕적 판단의 근거 윤리적인 논의에 있어 ‘도덕적인 행위’의 문제에 선행적으로 다루 어져야 할 부분은 ‘도덕적인 판단’의 기준이 어떠한 원리로부터 비롯 되는가의 문제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 둘은 종종 유사한 의미처럼 혼 용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서로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 겠는데, 발생적으로 볼 때 어떤 사안에 대한 행위는 그에 대한 판단 이 먼저 이루어진 이후에야 비로소 합리적으로 수행될 수 있기 때문 이다. 기존의 윤리 이론들을 돌아보면 이러한 도덕적 판단의 기준은 크게 인간의 내부로부터 혹은 외부로부터 도출되는데, 이 가운데 법 성종 입장은 전자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중생이 본래적으 로 지닌 부처의 본성’이라는 의미를 지닌 ‘불성(佛性)’ 개념이 그와 같은 해석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불성의 개념을 ?원각경(圓覺經)?에서는 “원각(圓覺)” 등의 용어로 표현하는데, 그에 대한 기술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선남자여, 위없는 진리의 임금(無上法王)께서는 거대한 다라니(陀羅尼) 의 관문(門)을 가지고 있으니 이름하여 원각(圓覺)이라고 한다. [이 원 각의 다라니 관문으로부터]3) 온갖 청정한 진여와 보리(菩提)와 열반과 바라밀을 흘려보내 보살들을 지도한다. 일체의 여래께서 하신 근본적 인 수행은 모두 다 이 청정한 원각을 총체적으로 관조하는 방법에 의 지한다. [이로써] 무명을 영원히 끊고 마침내 불도를 완성한다.4) 3) 본 연구에 인용된 자료 가운데 ‘[…]’는 필자의 임의적인 생략을 가리키 며, ‘[ ]’ 안의 내용은 필자에 의해 임의적으로 첨부된 것임. 4) 佛陀多羅 譯,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善男子. 無上法王, 有大陀羅尼 門, 名為圓覺, 流出一切清淨真如菩提涅槃及波羅密, 教授菩薩. 一切如來, 本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7 위의 인용에서 ‘원각’이란 “온갖 청정한 진여와 보리와 열반”의 근 원으로 설명되고 있다. 즉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근원으 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원각경?의 또 다른 구절에서는 이러한 원각을 두고 현상(現像)을 바르게 깨우치 는 “지혜(智慧)”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5) 이러 한 설명으로부터 원각이란 동시에 ‘현상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능케 하는 근거’로도 제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우리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활용함으로써 이 원각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당(唐)대의 고승인 종밀(宗密, 740∼840)에 따르면 ?대승기신론?의 “일심(一心)” 개념은 그 내용상 ?원각경?의 “원각” 개념에 해당한다.6) 이 두 문헌에 대한 종밀의 견해가 타당하다면, 그것들 각각에 기술된 내용의 교차를 통해 ?원각경?의 원각 개념은 보다 넓은 의미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7) ?대승기신론?에서의 ‘일심’이란 곧 “진여(眞如)”로도 표현되는데,8) 이에 대하여 ?대승기신론?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이를테면 [진여의] 본바탕에는 거대한 지혜 광명의 기능(義)이 있기 때문이며, 법계를 두루 비추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며, 진실하게 아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며, 자성청정(自性淸淨)한 마음의 기능이 있기 때 문이며, 상(常)ㆍ락(樂)ㆍ아(我)ㆍ정(淨)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며, 청량 起因地, 皆依圓照清淨覺相. 永斷無明, 方成佛道.”(T17, 913b19-22) 5) 佛陀多羅 譯,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文殊汝當知, 一切諸如來, 從於本因地, 皆以智慧覺. 了達於無明, 知彼如空花, 即能免流轉. 又如夢中人, 醒時不可得.” (T17, 913c13-17) 6) 종밀에 따르면 ?대승기신론?에서는 허망함의 근본을 밝히기 위해 중생을 기준으로 하여 ‘마음(心)’을 표방한 것이며, ?원각경?에서는 청정함의 근 원을 드러내려고 했기에 부처를 기준으로 하여 ‘깨달음(覺)’을 표방한 것 이나 그 둘의 근본은 같은 것이다. 宗密 述, ?圓覺經大疏?, “論中, 欲究妄 本, 故約凡標心. 此經意顯淨源, 故約佛標覺. 華嚴稱性, 不逐機宜對待, 故直 顯一真法界. 至於能起染淨一切諸法, 則三義皆同, 三法體一也.”(X9, 331c17-19) 7) 뿐만 아니라, 종밀에 따르면 ?원각경?과 ?대승기신론? 모두는 법성종에 속하는 대표적인 경론들이기도 하다. 신규탁(1993) p.111 참고. 8) 馬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 “是故一切法從本已來, 離言說相, 離名字相, 離心緣相, 畢竟平等, 無有變異, 不可破壞. 唯是一心故名眞如.”(T32, 576a10-13) 8 논문 하고 불변하며 자유자재한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9) 위의 인용 가운데 진여의 본바탕에 ‘온 법계를 비출 수 있는 지혜 의 기능’이 있으며, 또한 ‘진실하게 아는 기능’이 있다는 설명은 ?원 각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원각에 대한 해설과 일치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법계(法界)’란 진리의 세계 및 불법이 닿을 수 있는 현상 의 세계를 모두 포괄하는바, 이상과 같은 맥락의 기술로부터 우리가 확인해볼 수 있는 점은 원각의 개념 안에는 본질 및 현상세계에 대 한 특수한 사실판단(factual judgement)의 기준이 객관적인 형태로 내 재되어 있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원각 이 본질적으로 인간 안에 내재하기 때문에, 세계 및 그 속의 모든 유 위(有爲)하는 현상들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참된 이해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적으로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10) 그런데 원각이 지닌 바른 이해의 기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실로 우리는 그것이 지닌 사실판단의 기준 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치 판단(value judgement)에 대한 객관적 형태의 기준까지 포함하고 있 음을 나타내는 기술을 ?대승기신론?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대승의 ‘속성(義)’에 세 가지가 있다. 그 셋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바 9) 馬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 “所謂自體有大智慧光明義故, 遍照法界義故, 真實識知義故, 自性清淨心義故, 常樂我淨義故, 清涼不變自在義故.”(T32, 579a15-17) 10) 원각 내지 진여에 의한 현상의 객관적 인식에 대한 언급은 ‘진여의 본바 탕에 갖추어진 기능(覺體相)’을 나타내는 다음의 구절에서도 나타난다. 馬 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 “復次, 覺體相者, 有四種大義, 與虛空等, 猶 如淨鏡. 云何為四? 一者, 如實空鏡. 遠離一切心境界相, 無法可現, 非覺照義 故. 二者, 因熏習鏡. 謂如實不空, 一切世間境界悉於中現, 不出不入, 不失不 壞, 常住一心, 以一切法即真實性故. 又一切染法所不能染, 智體不動, 具足無 漏熏眾生故. 三者, 法出離鏡. 謂不空法, 出煩惱礙, 智礙, 離和合相, 淳淨明 故. 四者, 緣熏習鏡. 謂依法出離故, 遍照眾生之心, 令修善根, 隨念示現 故.”(T32, 576c20-29); 법성종에서의 의식 주체와 현상적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그러한 세계의 객관적 인식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는 다음을 참고. 송진섭(2012) pp.40∼54.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9 탕의 측면에서 본 드넓음(體大)’인데 이를테면 일체의 법(法)에 진여는 평등하게 있어서 더하거나 덜함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기능의 측 면에서 본 드넓음(相大)’인데 이를테면 여래장 속에는 무량한 공덕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작용의 측면에서 본 드넓음(用大)’인 데 이를테면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한 원인과 결과를 일으킬(生) 수 있기 때문이다.11) 위의 인용 가운데 “대승의 속성(義)”이란 ‘대승의 본질(法)’인 일심 에 근거하여 드러나는 성질을 가리킨다.12) 그리고 “여래장(如來藏)”이 라는 표현은 ?대승기신론?에서 “진여”와 동일한 대상을 지칭하는 용 어로 사용된다.13)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여 위의 인용을 이해할 경 우, 원각 내지 진여는 무한한 공덕(功德)을 갖추고 있으며 아울러 그 자체로 선(善)한 인(因)과 과(果)를 산출해 낼 수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즉 선(善)을 야기하는 기능은 이미 원각 속에 내포되어 있 으며, 우리가 저마다 지닌 자신의 원각을 따를(隨順) 때 비로소 그와 같은 기능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진술을 전제로 받아들일 경우 요컨대 선악의 판단 문제 역시 원각을 따름으로써 자 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각에 대한 이상과 같은 해설은 윤리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한 도덕적 가치판단이 개개인의 주관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 으로 설명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실로 이상의 분석에서 ?원각 경?에서의 원각이나 ?대승기신론?에서의 진여는 ‘중생의 마음’을 가 리키는 ‘중생심(衆生心)’이라는 용어와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 11) 馬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 “所言義者, 則有三種. 云何為三? 一者體 大, 謂一切法真如平等, 不增減故. 二者相大, 謂如來藏, 具足無量性功德故. 三者用大,能生一切世間, 出世間善因果故.”(T32, 575c25-28) 12) 馬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 “摩訶衍者, 總說有二種. 云何為二? 一者, 法. 二者, 義. 所言法者, 謂眾生心, 是心則攝一切世間法, 出世間法. 依於此 心, 顯示摩訶衍義.”(T32, 575c20-23) 13) 馬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 “真如自體相者, 一切凡夫, 聲聞, 緣覺, 菩 薩, 諸佛, 無有增減, 非前際生, 非後際滅, 畢竟常恒. (…) 具足如是過於恒沙 不離, 不斷, 不異, 不思議佛法, 乃至滿足無有所少義故, 名為如來藏, 亦名如 來法身.”(T32, 579a12-20) 10 논문 우가 있기 때문에, 원각을 따른다고 함이 곧 중생 저마다의 마음을 따르 는 것을 의미함은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14) 그러나 그렇다 해서 원각에 근거를 둔 도덕적 가치판단이 일종의 도덕적 직관주의(intuitionism) 로 함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원각은 객관적인 동시에 보편적 인 개념으로서, 모든 중생들 안에 동일한 형태로 내재되어 있는 것으 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원각경?에서는 “시방(十方) 중 생들의 원각이 청정하며”15), 그와 같은 원각의 “본바탕에는 두 모습 이 없다.”16)고 기술하고 있다. ?대승기신론? 역시 “[부처는] 모든 중 생과 자신의 몸이 진여라는 측면에서는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여실 하게 안다.”17)고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구체적 인 다수의 중생들이 저마다의 원각에 수순하여 따르더라도, 그 결과 는 동일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해 개별적인 단위로서 저마 다의 원각을 따르는 것이 곧 보편적 원리를 따르는 것과 동일한 결 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원각에 대한 설명이 이렇다 보니 그것은 경험적 조건으로부터 벗어 나 불변하는, 즉 선험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그 리고 실로 ?원각경?에서는 이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4) ?대승기신론?에 따르면 중생심(衆生心)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의 두 측면으로 해석될 수 있으 며, 본문의 원각 내지 진여 개념은 이 가운데 심진여문의 측면과 상통하 는 것이다. 때문에 원각이나 진여 개념을 곧장 중생심의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원각이나 진여를 따른다고 말할 경우, 이것은 달리 말해 중생심 가운데 심진여문의 측면을 따른다는 의미 와 동일한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원각 혹은 진여를 따름이 곧 중생 자신의 마음을 따름이라는 본고의 해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으로 보인다. ?대승기신론?에서의 대승(摩訶衍) 및 중생심, 진여 개념의 관계구조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송진섭(2012) p.61. 15) 佛陀多羅 譯,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善男子, 一切實相性清淨故, 一 身清淨. 一身清淨故, 多身清淨. 多身清淨故, 如是乃至十方眾生圓覺清淨.” (T17, 914c25-27) 16) 佛陀多羅 譯,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威德汝當知, 無上大覺心, 本際 無二相.” (T17, 918a12-13) 17) 馬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 “謂如實知, 一切眾生及與己身, 真如平等, 無別異故.” (T32, 579b14)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11 그 체험(證)의 대상이 되는 경계란, 획득하는 것도 아니고 잃는 것도 아니며, 취하는 것도 아니고 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 체험하는 당사자 가 작(作)할 것도 지(止)할 것도 임(任)할 것도 멸(滅)할 것도 없다. 이 체험 속에는 능과 소의 [구별이] 없어서 필경에는 체험해야 하는 대상 도 없고 체험하는 주체도 없으니, 일체의 법성은 동일하여(平等) 무너 짐이 없다.18) 위의 인용에서 “체험의 대상이 되는 경계”란 물론 원각을 가리킨 다. 그런데 ‘획득하거나 취할 수 없다’는 표현을 보아 알 수 있듯, 이 러한 원각의 경계는 수행자의 현상적인 접근을 통해서 경험될 수 있 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이 지닌 공덕과 기능은 늘 동 일하여 변동됨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한편 ?원각경?의 다른 구절 에서는 “사유가 있는 마음으로 여래가 말하는 원각의 경계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19)라고 기술함으로써, 원각에 대한 지식적 접근의 가능 성 역시 부정하고 있다. ?대승기신론? 역시 “[진여는] 본래부터 언설 로 형상화 할 수도 없고, 명자로 형상화할 수도 없고, 마음의 작용으 로 형상화 할 수도 없으니”20), “변하여 달라지지도 않으며 파괴되지 않는 것으로 오로지 일심일 따름이다.”21)라고 기술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그와 같은 원각이 우리 안에 내재함을 자각하고22) 그에 따르 18) 佛陀多羅 譯,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其所證者, 無得無失, 無取無捨. 其能證者, 無作無止無任無滅. 於此證中, 無能無所, 畢竟無證, 亦無證者, 一 切法性, 平等不壞.” (T17, 915a23-25) 19) 佛陀多羅 譯,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何況能以有思惟心, 測度如來圓 覺境界.”(T17, 915c24) 20) 馬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 “是故一切法從本已來, 離言說相, 離名字 相, 離心緣相.” (T32, 576a11-12) 21) 馬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 “無有變異, 不可破壞, 唯是一心, 故名真 如.” (T32, 576a12-13) 22) ?대승기신론?에 따르면 이와 같은 진여 내지 원각의 체득은 지속적인 수 행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제시된 여러 수행법들 가운데 ‘지관(止觀)’수행에 대한 해설이 그 심도에 있어 주를 이룬다. ?대승기신 론?에서 묘사되는 지관수행의 방법은 기본적으로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모든 우연적이고 가변적인 요소들을 배제하는 방법을 골자로 삼는데, 그 와 관련된 일련의 특수한 절차를 거쳐 우리는 깨달음이라는 절대적 경지 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지관수행의 원리와 깨달음에 이르는 구조 12 논문 도록 하는 ‘방편적 지혜(智)’를 갖추고 있을 따름인데, 이러한 지혜 역시 진여의 작용(用)에 소속된 하위개념으로 간주된다.23) 이상의 논의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법성종에 있어 도덕판단의 근 거는 ?원각경?에서의 ‘원각’ 내지는 ?대승기신론?의 ‘진여’로부터 마 련된다. 이 원각이란 현상에 대한 사실적 인식 및 도덕적 가치에 대 한 객관적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보편적 근거이다. 다시 말해 사실 판단의 기준 뿐 아니라 도덕판단에 대한 기준까지 제시해주는 객관적 보편원리에 해당하는 개념으로서, 기실 법성종의 윤리이론에 있어 중 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24) 따라서 이로부터 이어서 다루어져야 할 부분은 이상과 같은 선험적 원리가 어떠한 방 식을 통해 구체적인 행위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밝히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 송진섭(2012) pp.40∼54; 한편 안옥선 선생 역 시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우연적 요소들을 탐진치(貪瞋癡)의 범위로 한정 한 뒤, 그것의 존재 여부가 곧 깨달음의 성취 여부 및 선악 판단의 기준 을 결정짓는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안옥선(2006) pp.36∼49. 23) 馬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 “此以何義? 謂如實知一切眾生及與己身, 真如平等, 無別異故. 以有如是大方便智, 除滅無明, 見本法身, 自然而有不思 議業種種之用.” (T32, 579b14-16) 24)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각 혹은 진여 개념은 분명 경험 이전의 보 편적 원리로서 제시되고 있다. 경험적 인식으로써 이러한 형이상학적 대 상이 갖는 성격이나 기능 등을 증명하고 규정하려 할 때 그와 같은 시도 는 불가피하게 이율배반적인 난관에 빠지게 되는데, 법성종에서는 그러한 대상에 대한 경험적 접근의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함으로써 논리적 난관 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원각 내지는 진여가 갖춘 것으로 설명되는 근본적 가정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명이 요구될 수밖 에 없는데, 법성종에서는 이러한 해명을 ‘진리에 대한 믿음(信)’이라는 소 박한 방법으로써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형이상학적 대상 에 대해 근대 이전의 대개의 형이상학적 사조들이 취했던 태도와 근본적 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법성종에서의 ‘보편적 원리’와 ‘믿음’ 사이의 관 계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송진섭(2012) pp.55∼63; 한편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난점에 대한 해설은 다음에 자세하다. 회 페(1997) pp.55∼66.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13 Ⅲ. 행위와 의지 및 의지의 근거 분석 이렇게 볼 때 법성종에서 이해하는 원각 및 진여의 개념은 언뜻 칸 트의 ‘실천이성(Praktische Vernunft)’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25) 그에 따르면 실천이성이란 모든 도덕 개념을 선험적인(transzendental) 형식 으로 갖추고 있는 절대적 법칙에 해당한다.26)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인 간 저마다의 이성(Vernunft)으로 간주되는 동시에 보편적인 성격을 지 닌 것으로 설명되는 바,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주관적인 원칙인 동시 에 객관적인 원칙이며, 동시에 최상의 실천적 근거’이다.27) 비록 그러 한 이성개념은 선험적이어서 우리의 지성(Verstand)으로는 도저히 그 것의 동기를 알아낼 수 없지만,28)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비롯된 우연적 경향성(Neigung)29)들을 우리의 의지로부터 배제함으로써 그와 25) 칸트의 실천이성 개념이 갖는 근본이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Kant(1974) pp.16∼24. 칸트(2010);한편 칸트의 도덕이론과 불교 사상 사이의 만남은 오랜 역사를 지니는데, 이에 관한 국내의 연구는 한용운의 ?朝鮮佛敎維新 論?(1910)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연구의 경향은 오늘날까지 이어 져 여러 학자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저술로 는 다음 등이 있다. 김진(1992); 김진(2004); 안옥선(2002); 최인숙(2005); 최인숙(2011); 한자경(2008); 한편 도덕형이상학의 관점에서 특히 대승불 교의 사상과 칸트의 철학을 다룬 해외의 연구로는 다음이 대표적이다. Berman(2006). 26) Kant(1920) pp.32∼34 참고. Kant(1964); 칸트(2002). 27) Kant(1920) p.53∼34. 28) Kant(1920) pp.26∼29 참고; 이러한 이성의 존립 가능성은 수학과 같은 이론적인 내용을 갖는 것이 전혀 아니며, 때문에 우리의 지성을 통해 그 것을 명증적으로 밝혀내는 일도 불가능하다. 다만 그럼에도 그것의 존립 가능성은 객관적인 실천 법칙을 따르기 위해서라도 필연적으로 가정되는 데, 칸트가 사용한 ‘요청(Postulats)’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맥락을 나타내 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설명된다. ‘요청’이라는 표현에 대한 칸트의 설명 은 다음을 참고. Kant(1974) pp.11∼12. 29) 칸트에 따르면 경향성이란 달리 말해 ‘행복 추구의 원칙들’이며, 기본적으 로 감정에 기초해 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경향성은 현상과 감각에 기 초하여 끊임없이 전변하며, 따라서 그 어떤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도 내포 할 수 없다. 객관적 도덕법칙 및 경향성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Kant(1974) pp.84∼96. 14 논문 같은 법칙에 부합하여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게 된다.30) 이와 같은 실천이성에 대한 칸트의 설명은 앞서 분석한 법성종에서의 원각 개념 과 상당히 유사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31) 그러나 도덕적 행위에 관한 이론들은 대개 도덕적 판단의 문제에서부 터 시작하여 그것이 구체적인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과정까지도 포함 하게 되는데, 바로 이와 같은 광범위한 영역에 있어 법성종의 사상체계 와 칸트의 사상체계는 분명히 구별되는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다시 말 해 그 둘의 사상체계는 도덕적 최상의 법칙과 그에 근거를 둔 구체적 행위 사이를 연결하는 절차에 대한 설명방식을 달리한다. 본고의 목적 은 법성종이 지닌 윤리 이론의 정형화된 구조를 검토하는 것인 바, 칸 트의 사상체계를 수단으로 삼아 그것과 부분적으로 대조하면서 법성의 이론 구조가 갖는 특징을 보다 분명하게 밝혀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원각경?의 원각 개념은 도덕적 판단의 객관적 기준을 제시해 주는 최상의 원리에 해당하며, 따라서 단순히 원각에 따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언제나 선(善)을 판가름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도덕적 판단에 대한 이와 같은 설명만으로는 도덕적 행 위를 필연적으로 유발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 떠한 행위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러한 행위를 유발할 수 있는 직접 적인 유인의 제시가 필요한데, 어떠한 상황에서 무엇이 선인지를 알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는 그와 같은 역할을 완전하게 대체할 수 없 30) Kant(1920) pp.20∼22 참고. 31) 칸트의 실천이성과 법성종의 원각 혹은 진여 개념이 갖는 근본이념의 차 이점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이 양자의 개념은 기본적으 로 특수한 형태의 절대적 가치들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양자의 철 학체계에 있어 그러한 개념들이 갖는 역할은 일면 유사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천이성 개념을 통해 절대적 가치를 갖는 도덕 원 리의 확립을 추구했던 칸트와 달리, 법성종에서의 근본이념은 다른 불교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달음’이라는 궁극적 사태의 절대적 가능성을 향 해 있다. 때문에 본고에서 비록 주로 윤리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법성종의 내용을 분석하고는 있지만, 원각 내지 진여 개념으로부터 파생되는 윤리 적 의미는 여전히 ‘깨달음’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에 수반되어 나타나는 것 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15 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특정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타인을 돕는 것 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는 판단을 내리리더라도, 우리는 실제로는 그를 돕지 않을 수도 있다. 요컨대 어떠한 상황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러한 이해를 실행으로 옮겨야만 한다는 당 위성은 곧장 연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상 황에서 내려진 도덕적 판단을 구체적인 행위로 연결시켜 줄 ‘매개적 개념’의 요구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게 된다. 칸트는 이와 같은 문제를 ‘선의지(guter Wille)’의 개념을 통해 일 관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선의지란 ‘하려고 하다’로 표 현되며, 이것은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나 동기와는 상관없이 오직 이성의 법칙에 대한 존숭에 따라 의무로서 발현된다.32) 때문에 객관 적 도덕법칙에서부터 도덕적 행위의 실천까지의 과정은 바로 이 선의 지라는 개념을 매개로 하여 필연적 관계로 구성되게 된다.33)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사적인 경향성은 전부 배제된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에 따라 이성의 법칙에 준수하는 도덕적 행위는 언제나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게 되며 그렇기에 ‘그 자체로 참된 도덕적 가치를 갖게 된다.’34) 한편 법성종에서는 도덕적 행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인을 인간 의 ‘감정적’ 요소로부터 찾아낸다. 흔히 ‘자비심(慈悲心)’으로도 표현 하는 ‘대비심(大悲)’이 그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원각경?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32) Kant(1920) pp.17∼19 참고; 칸트의 ‘순수이성(reine Vernunft)’ 및 ‘실천이 성’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가운데 ‘선의지’의 개념이 차지하는 역할에 관한 해설은 다음의 연구들에 상세하다. 백종현(2011) pp.211∼226; Wood(2008) pp.24∼34. 33) 칸트에 의하면 이러한 선의지 역시 도덕법칙의 순수한 형식에 의해 경험 적 조건들로부터 독립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때문에 선의지 역시 보편 적이고 객관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선의 지는 도덕법칙과 행위자 사이의 인과성을 규정짓는 역할을 담당한다. Kant(1974) pp.36∼38 참고; 한편 회페에 따르면, 선의지에 의한 자기입법 성은 보편적 도덕원리를 따라 행위하는 데에 필요한 ‘최종근거’에 해당한 다. 회페(1997) p.233. 34) Kant(1920) p.11. 16 논문 선남자여,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달으면,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 써 마음(心性)과 감각기관(根)과 감각대상(塵)이 모두 허망함을 원인으 로 삼아 온갖 허망함을 일으키는 것임을 깨달아 알게 된다. 이 허망한 것들을 없앰으로써 온갖 허망함을 변화시키고 [또] 허망함에 빠진 중 생들을 깨우치니, [이처럼] 허망함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대비심과 편안함이 생겨난다.35) 위의 인용에서 나타난 “대비심”이란 ‘중생을 가엾게 여기고 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풀이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36) 그리고 이와 같은 대비심은 인용에서 나 타나는 바와 같이 청정한 원각의 마음에 근거를 두어 발생하는 것으 로 설명된다. 그런데 앞서 Ⅱ장에서의 원각 개념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우리가 얻은 결론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도덕적 가치판단을 위한 객관적 기 준 뿐만 아니라 현상에 대한 사실판단을 위한 객관적 기준까지도 제 시해주는 것으로 설명된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에서 다루는 대비심의 발생은 바로 그러한 원각이 갖춘 현상에 대한 객관적 사실판단의 기 능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인용에 따르면 우리가 청정한 원각을 깨달을 경우, 우리의 감각기관과 감각의 대상이 모두 무상(無 常)하여 가변적인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 여기에서 ‘감각 대상’이란 인간의 6근(六根)에 드러나는 모든 경험적인 대상들을 가리키는 바, 곧 현상적 세계 전체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 적 세계의 가변성에 대한 이해가 곧장 대비심의 발현으로 이어질 수 35) 佛陀多羅 譯,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善男子, 若諸菩薩, 悟淨圓覺, 以 淨覺心, 知覺心性, 及與根塵, 皆因幻化. 即起諸幻, 以除幻者, 變化諸幻, 而 開幻眾. 由起幻故, 便能內發大悲輕安.”(T17, 917c20-23) 36) 사실 불교에서 언급되는 타인을 위한 이타적 감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론적 형식을 보다 간소화 하기 위하여 이러한 여러 감정들을 ‘대비심’이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포괄 하여 다루고자 한자. 필자의 이와 같은 판단은 불교에서 언급되는 다양한 이타적 덕목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안옥선 선생의 견해를 주요하게 따른 것이다. 이와 같은 주요덕목들 사이의 관계 및 대비심 개념의 일반적인 해석에 관해서는 안옥선(2006) pp.50∼58 참고.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17 있다는 점은 ‘일체행고(一切行苦)’라는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세계관과 관련이 깊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대승기신론?에서는 다음과 같 이 기술한다. 관(觀)을 수행하고 익히는 사람은, 일체 세간의 유위법(有爲之法)이란 변치 않는 상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변하여 사라지는 것이며, 이러한 일체의 마음의 작용(行)이란 그것을 떠올리는 매 순간 (念念)마다 생성되고 소멸하는 것이어서 결국 이 모든 것들이 고통이 라는 점을 마땅히 관찰해야 한다. (…) 그러면 마땅히 다음과 같이 생 각하게 될 것이다. ‘일체의 중생은 시원이 없는 과거로부터, 모두 무명 에 의하여 훈습되었기에 마음에 생멸이 있게 되었고, 그로써 이미 일 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았다. 현재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핍박이 있으며, 미래에 받게 될 고통에도 또한 한계(分齊)가 없구나. [이러한 고통을 알아도] 버리기 어렵고 벗어나기도 어려운 마당에, [중 생들은 스스로의 그러한 형편조차] 알지도 못하고 있구나. 중생들이 이와 같으니 몹시 불쌍히 여길 만 하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서, 마땅히 용맹스럽게 큰 서원(誓願)을 세워야 할 것이다. (…) “미래가 다하도록 무량한 방편으로 일체의 고뇌하는 중생들을 구원케 하여, 그 들로 하여금 열반의 가장 참된 즐거움을 얻도록 해주십시오.”37) 위의 인용에 의하면 일체의 현상적 대상들은 모두 변화한다. 그러 나 무명(無明)에 빠져 있는 중생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온 갖 현상적 대상들에 집착을 하게 된다. 때문에 자신이 집착하는 대상 이 변화해 무너져가는 것을 보며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일체행고의 세계관이 갖는 기본적인 함의이다. 그런데 앞선 ?원각경?의 인용에서도 언급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원각에 의지함으로써 비로소 일체의 현상적 대상들이 변화한다는 사 실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가 있게 되는데, 이는 곧 원각에 이르지 못 37) 馬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 “修習觀者, 當觀一切世間有為之法, 無得 久停須臾變壞, 一切心行念念生滅, 以是故苦. (…) 如是當念, 一切眾生從無 始世來, 皆因無明所熏習故令心生滅, 已受一切身心大苦. 現在即有無量逼迫, 未來所苦亦無分齊, 難捨難離而不覺知. 眾生如是,甚為可愍. 作此思惟, 即 應勇猛立大誓願. (…) 盡其未來, 以無量方便救拔一切苦惱眾生, 令得涅槃第 一義樂.”(T32, 582c15-29) 18 논문 한 모든 중생들이 고통 속에 빠져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적 이해로 이어지게 된다. 위의 인용된 ?대승기신론?은 이와 같은 이해의 확장 과정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고통에 빠져 있다는 사실적 이해에 이르러, 우리는 비로소 그들을 향한 대비심을 일으킬 수 있으며 다시 그로부터 나아가 도덕적 행위를 위한 ‘의지’ 의 역할을 담당하는 “서원(誓願)”38)을 일으킬 수 있게 되는 것이 다.39) 요컨대 중생을 향한 대비심은, 원각에 근거하여 얻은 현상에 대한 바른 이해를 계기로 삼아 발현하게 된다.40)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대비심이 구체적인 도덕적 행위를 위한 의지를 이끌어냄으로써, 원각에 의해 제시된 도덕적 가치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구체적인 행 위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대비심의 존재 근거 역시 기본적으로는 원각 안에 있는 것으로 38) ‘서원’ 개념으로부터 ‘의지’의 역할을 이끌어내는 해석은 본고만의 특유한 관점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실로 권탄준 선생 역시 ‘서원’의 개념을 특수한 내용을 갖는 강한 ‘의지’의 일종으로 해석하는데, 어떤 면에서 본고와 같은 논의의 가능성을 미리 열어두었다 하겠다. 권탄준(1986) pp.422∼424 참고. 39) 물론 이러한 서원 개념은 ‘구체적인 내용을 갖는 어떤 행위’를 야기하도 록 하는 ‘협소한 형태의 의지’를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어떠한 상황에 서든 그리고 어떠한 행위를 통해서든 고통에 빠진 중생을 돕겠다는 포괄 적인 동기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며, 이와 같은 의미에서 그러한 동기를 기 준으로 하나의 범주화된 성격을 갖는 의지 개념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한편, 주로 서양철학의 영역에서 발견되는 ‘의지(意志)’ 개념에 대한 숙고 를 특정 불교의 사상과 연결 짓는 작업은 아직 익숙하지 않게 느껴질 수 도 있다. 그러나 동양철학을 이루는 또 다른 분야인 유학(儒學)의 영역에 서는 의지 개념을 중심으로 한 이와 같은 논의가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 고 있는데, 인간의 행위에 매개되는 하나의 보편적 양식으로서 의지 개념 이 전제되는 한 본고의 작업 역시 지나친 해석이라는 비판은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학의 관점에서 의지와 자율성 개념을 다룬 기존 의 연구로는 다음 등을 참고해 볼 수 있다. 줄리앙(2004) pp.145∼180; Nivison(1996) pp.79∼132; Fingarette(1972) pp.18∼36; 정용환(2005) pp.34∼37. 40) 사실 유위하는 현상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자비심의 발현 근거를 찾는 형 태는 초기불교를 비롯하여 불교사상 내의 다른 이론적 계통에서도 빈번 히 등장한다. 다만 법성종에서는 원각 내지 진여로 표현되는 형이상학적 요소를 중심으로 삼아 일관적인 윤리이론의 체계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큰 차별점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자비심의 요청근거에 대한 초기불교 에서의 해석은 다음을 참고. 안옥선(2002) pp.247∼249.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19 간주된다.41) 그런데 도덕적 행위를 위한 근거로서 인간의 감정적인 요소를 활 용하는 이상의 설명은 그와 관련한 칸트의 입장과는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칸트는 감정과 같이 경험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주관적 경 향성은, 도덕 원리를 구성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절대적 필 연성(absolut Notwendigkeit)’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보았다.42) 그가 도 덕법칙을 선험적인 영역에서 찾아야만 한다고 보았던 것도 바로 이러 한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43) 동정심(Mitleid)에 근거한 선행에 대 해 내리는 그의 평가에서 그러한 견해가 분명히 드러나는데, 이를테 면 타인을 돕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박애주의자는 비록 칭찬과 격려 를 받을 만하기는 하지만 도덕적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지는 않 다.44)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우연적인 요소는 도덕적 행위의 절대적 근거가 될 수도 없으며 따라서 그 어떤 도덕적 가치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성종의 윤리체계가 그 속에 감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칸트가 제기한 필연성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감정이라는 요소를 다루는 방법의 차이로 부터 기인한다. 다시 말해 ?원각경?이나 ?대승기신론?에서 다루는 감 정에는 두 가지의 층위가 존재하는데, 이와 같은 구분은 그러한 감정 적 요소의 존립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 예컨대 ? 원각경?의 미륵장(彌勒章) 에서는 애착(愛心)이나 질투심(嫉) 등의 감정 에 따를 때 얻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45) 이와 41) 佛陀多羅 譯,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善男子. 無上法王, 有大陀羅尼 門, 名為圓覺, 流出一切清淨真如菩提涅槃及波羅密, 教授菩薩.”(T17, 913b19-21) 42) Kant(1974) pp.21∼23 참고; 우드는 칸트가 이러한 경향성을 도덕원리의 구성요소로서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하여 제시하는데, 이 둘 모두 근본적으로는 경향성이 도덕원리로서 반드시 지녀야 할 절대적 보편성 및 객관성을 포함하지 못한다는 점에 의거한다. Wood(2008) pp.36∼38. 43) Kant(1920) pp.4∼7 참고. 44) Kant(1920) pp.15∼16. 45) 佛陀多羅 譯,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善男子, 一切眾生, 從無始際, 由 有種種恩愛貪欲, 故有輪迴. 若諸世界, 一切種性, 卵生胎生濕生化生, 皆因婬 20 논문 같은 조건적이며 우연적인 감정들은 비록 원각에 바탕을 두어 발현되 기는 하지만 그 존립의 근거 자체를 원각에 두는 것은 아니다.46) 그 렇기에 오히려 그것들이 제거됨으로써 원각이 드러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대비심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각의 기능과 함께 드러나 는 것으로서 그 존립의 근거는 원각에 담긴 무수한 공덕 안에 포함 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비록 애착이나 대비심 모두 경험적으 로 발현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대비심의 경우 그 존립의 근거를 절 대적인 원각에 둠으로써 절대적 필연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대비심이란, 원각의 기능이 원만하게 드러남으로 써 현상에 대한 여실한 이해가 확보되는 순간 ‘필연적으로 발현될 수 밖에 없는 도덕적 감정’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원각이라는 최상의 도덕적 원리가 제공하는 절대적 필연성은 구체적 인 도덕적 행위의 실천으로까지 보존되어 이어지게 된다.47) 欲, 而正性命. 當知輪迴愛為根本. 由有諸欲, 助發愛性, 是故, 能令生死相續. 欲因愛生, 命因欲有. 眾生愛命, 還依欲本, 愛欲為因, 愛命為果. 由於欲境, 起諸違順. 境背愛心, 而生憎嫉, 造種種業. 是故, 復生地獄餓鬼.”(T17, 916b4-11) 46) 佛陀多羅 譯,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普賢汝當知, 一切諸眾生, 無始 幻無明, 皆從諸如來, 圓覺心建立. 猶如虛空花, 依空而有相, 空花若復滅, 虛 空本不動. 幻從諸覺生, 幻滅覺圓滿, 覺心不動故.”(T17, 914a24-29) 47) 물론 이때의 도덕적 행위가 갖는 구체적인 내용은 상황 의존적이며 따라 서 조건적이다. 다만 핵심적인 맥락은 원각에 따름으로써 절대적으로 어 떠한 행위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그 상황에 맞는 선행을 하 게 된다는 점에 있다; 한편 선행 및 악행에 관련하여 그것의 불이(不二) 를 주장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는 현상에서의 특정 행위 를 반드시 선행이라 할 수도 없고 또 반드시 악행이라 할 수도 없을 것 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를 있게 하는 원리는 객관적이며 또한 절대적이 다. 만약 이러한 층위에서의 선에 대한 관념조차 거부한다면, 도덕적 행 위 및 그 당위성과 관련하여 우리는 더 이상 어떠한 논의도 전개해 나갈 수 없게 될 것이다.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21 Ⅳ. 정형화의 문제 및 종합적 고찰 이로써 법성종이 나타내는 윤리 이론의 전반적인 구조를 보다 넓 은 시야에서 조망해볼 수 있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구조 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은 물론 ‘원각’ 내지는 ‘진여’로 표현되는 선험 적 도덕원리이다. 각각의 중생의 마음에 해당하는 이 선험적 도덕원 리는 절대적이며 동시에 보편적인 것으로 분명하게 설명되고 있기 때 문에, 이후 그것에 근거를 두어 이루어지는 모든 도덕적 판단 및 행 위에 필연적인 준칙을 객관적인 형태로 제시해줄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선험적 원리가 갖춘 여러 기능들 가운데 도덕적 행위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즉 도덕적 가치판단에 있 어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주는 것이 하나이고, 유위하는 현상에 대 한 사실판단에 있어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주는 것이 다른 하나이 다. 먼저 전자의 기능이 전제됨으로 인해 우리는 도덕적인 판단이 요 구되는 상황에 있어 무엇이 옳은 일인지를 판가름내릴 수 있는 능력 을 얻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선악 판단의 능력은 그 자체만으로는 도덕적 행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인으로 작용될 수 없는데, 이는 그 자체만으로는 구체적인 행위를 위해 요구되는 의지 개념과 필연적 인 내적 연관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선험적 원리가 갖춘 후자의 기능에 의해 해 결될 수 있다. 즉 그것을 통해 우리는 가변적인 현상에 대한 바른 사 실적 이해를 얻을 수 있는데, 나아가 그로부터 모든 중생들이 고통에 빠져 있다는 특수한 정황적 이해를 확보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현상 에 대한 이해를 계기로 삼아 선험적 원리에 본래적으로 갖추어져 있 는 것으로 간주되는 대비심이 필연적으로 발현되게 되며,48) 다시 그 48) 안옥선 선생 역시 대소승이 갖는 입장의 차이를 막론하고, 청정한 본연의 마음으로부터 자비심이 필연적으로 발휘된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다 만 그녀는 한발 더 나아가 “자애의 성품 상태”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그러 한 마음을 일종의 ‘미덕을 지닌 성품’의 문제로 환원코자 하는데, 청정한 마음의 특징을 윤리학적 관점에 한정하여 논한다 하더라도 필자는 결코 22 논문 대비심에 의해 구체적 행위를 위한 의지 개념에 해당하는 서원을 발 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서원은 다시 앞서 선험적 원리에 의해 제시된 도덕 판단의 기준과 결합하여 구체적인 도덕적 행위로 표출되 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구조 전반은 ‘자신의 원각에 따르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간략하게 기술될 수 있다. 그런데 개개인이 지닌 원각이란 모두 동일한 성격을 갖는 것으로 간주되는 바, 따라서 결국 저마다가 자신의 원각에 의거해 내린 도덕적 판단은 모두 동일한 형식으로 귀 결되게 된다. 다시 말해 개인의 도덕적 행위에 준칙을 부여하는 주관 적 원리는 동시에 보편적인 원리로서의 객관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 며, 도덕적 구속력의 합리적인 근거로서 유효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론의 구조를 철학적 해석의 작업을 통해 ‘보다 정형 화된’ 형태의 논의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그것 이 근본적으로 선험적인 도덕 원리를 전반적인 체계의 중추로 설정하 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이상과 같은 사상체계의 철학적 정형화의 가능성은 그 체계의 형식 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작업에 있어 우리는 앞서 도출한 법성종의 윤리이 론 체계가 갖는 형식적인 구조만을 추출하게 될 것인데, 이는 그것에 담겨있는 특유의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내용들을 사장시키거나 대체 그러한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청정한 마음을 단순히 ‘성품’의 문제로 이해할 경우, 윤리학적 논의에 있어 그러한 마음이 지닌 일부 특 징과 그로부터 발휘되는 능력이 담당하는 역할을 불가피하게 사장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본고의 앞선 논의에서 살펴본 바, 청정한 원각의 마음 은 기본적으로 현상적 세계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가능케 하는 최종근거 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객관적 인식의 기능은 자비심의 발현을 위한 구체적인 토대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때문에 원각의 마음을 단순 한 성품의 문제로 환원할 경우, 우리는 그것이 지닌 객관적 인식의 기능 을 올바르게 포착할 수 없게 되며, 나아가 그러한 원각의 개념을 중심으 로 한 전체적인 이론체계 역시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원각의 개념은 반드시 현상적 대상에 대한 지적 인식 및 도덕적 가치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이상의 논의 에 관련된 안옥선 선생의 입장은 다음을 참고. 안옥선(2006) pp.69∼70.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23 가능한 철학적인 개념들로 치환함으로써 가능해질 수 있을 것으로 생 각된다. 먼저 법성종 이론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원각의 개 념을 살펴보자. 이 원각은 경험의 영역을 완전하게 벗어나 있는 대상 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따라서 앞서 다룬 ?원각경?에서의 기술과 같 이 경험활동이나 지각적 활동을 통해서는 그것의 내용을 알아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구 체성을 갖는 신앙적인 특징들은 그 설명방식 내에서 자체적인 모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의도적으로 그것의 사상적 내 용들을 배제시킬 필요는 없는 것인데, 다만 그것은 ‘절대적이며 필연 적인 도덕원리’로서의 형식적인 역할만을 남겨놓게 된다. 물론 도덕 적 판단과 행위의 근거로서 이와 같은 원리가 남겨지는 이유는 보편 적인 도덕의 준칙을 성립시키기 위해, 그리고 나아가서는 깨달음의 보편적 가능성을 확립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는 가정 적 요청에 근거한다고 하겠다.49) 법성종의 이론체계를 철학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난점 을 야기하는 부분은 바로 일체행고의 세계관이다. 우리가 대비심의 개념을 ‘이타적 감정’이라는 비교적 통상적인 개념으로 치환하여 사 용한다고 하더라도 이상의 세계관을 배제함으로써 나타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이타적 감정이 발현되는 조건과 대상의 범주를 결정하는 데에 핵심적으로 활용되는 개념이기 때문이 다. 앞서 고찰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구체적인 도덕적 행위를 일으키 기 위해서는 행위에 대한 의지 개념에 해당하는 서원을 먼저 세워야 만 한다. 그런데 그 서원은 다시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는 대비심으로 부터 비롯되며, 대비심이란 다시 현상에 대한 바른 이해로부터 도출 49) 도덕판단의 기준 및 깨달음의 성취 가능성의 절대적 보편성 및 객관성이 포기될 수 없는 요소인 한, 원각 개념을 향한 이와 같은 형식적 요청은 사실상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선험적 개념이 선행적으로 전제되지 않고서는 이상의 요구들 역시 그 필연적 계기를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 기 때문이다. 김진 선생 역시 글라제나프(Helmuth von Glasenapp, 1891∼ 1963)의 불교적 자아(自我) 이해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김진(1992) pp.276∼279 참고. 24 논문 되는 것으로 설명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바로 이 ‘현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불교에서는 일체행고라는 개념을 통해 사전적으로 정의 되어 있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즉 현상의 모든 중생들은 고통 에 빠져 있다는 견해가 사실로서 전제되어 있는 것인데, 이와 같은 세계관을 특수한 교설적 요소로 치부하여 배제할 경우 대비심은 그 발생의 계기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법성종의 이론적 구조에 일관적인 형태의 철학적 해석을 덧붙임으로써 이와 같은 난관으로부터 논의를 지속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과정에서 이타적 행위의 대상 범위는 불가피하게 변형되게 될 것인데, 아마도 이는 보다 압축적이고 원리 적인 형태로 정리될 것이며 도덕이론의 구성요소로서는 보다 적합한 형태로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는 일체행고의 세계관으로부터 대비심을 이끌어내는 근본 적인 계기를 도출해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고통(苦)’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앞선 분석에 의하면, 우리가 원각이 제시하는 현상에 대한 사실판단의 기준에 따를 경우 중생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지의 여부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는데, 원각이라는 도덕원리의 절대적 보편성에 따라 이와 같은 판단의 기준이 여전히 유지될 수 있다는 점에 무엇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일체행고의 세계관이 배제된다고 하더라도 고통이라는 현상적 사건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은 어디에서든 존재할 수 있으며 우 리는 여전히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고 이타적 감정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일체행고의 세계관은 고통 받는 중생의 범위 를 결정짓는 특수한 전제조건에 대한 설명일 뿐이며, 그것이 배제되 더라도 도덕원리의 적용 방식은 변형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오히려 일체행고의 배제는 도덕적 행위의 대상을 ‘모든 중생’에서부터 ‘고통 받는 중생’으로 구체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한다.50) 50) 대승과 소승을 막론하고 불교에서 언급되는 ‘고통’에는 기본적으로 ‘실존’ 으로서 겪게 되는 고통이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본질적 계기로서의 유한 성을 지닌 실존에 해당하는 한, 사실상의 모든 중생들은 특수한 형태의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25 그런데 ‘고통’의 개념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또 다른 의문점에 봉착하게 되는 것 같다. 즉 그것은 법성종으로부터 도 출된 형식적인 윤리이론의 구조가 ‘고통의 해소’라는 특수한 ‘좋음 (good)’을 지향하는 목적론과 부분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법성종의 윤리이론이 만약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될 경우 선험적 도덕원리에 해당하는 원각의 개념은 단순히 무엇이 좋은 결과를 야기하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도구적 이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게 되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원각에 대한 앞선 분석의 내용과 상충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부 문헌적 전거들을 통해 이상의 문제에 대한 해명을 제 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바로 법성종의 윤리이론에서 강조되는 도덕적 판단과 행위에 있어, 행위자 자신이 받게 될 고통 여부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도출된다. 특히 바라밀 (波羅蜜) 수행 가운데 ‘보시(布施)’와 ‘인욕(忍辱)’에 대한 해설은 이 와 같은 암묵적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근거가 된다.51) 타인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자신의 고통은 고려되지 않거나 혹 은 무시된다는 사실은, 이들 양자의 고통이 서로 비교되거나 합산되 는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음을 의미하며, 나아가 ‘고통의 해소’가 언제 고통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다만 그럼에도 이와 같은 개 념적 치환을 시도하는 이유는 논의의 대상이 되는 문제 범위를 보다 엄 밀한 형태로 규정짓기 위함이다.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로 이어지는 실존 론적 사고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 송진섭(2011) pp.219∼229. 51) 馬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 “云何修行施門? 若見一切來求索者, 所有 財物隨力施與, 以自捨慳貪令彼歡喜. 若見厄難恐怖危逼. 隨己堪任施與無畏. 若有眾生來求法者, 隨己能解方便為說. 不應貪求名利恭敬, 唯念自利利他迴 向菩提故. (…) 云何修行忍門? 所謂應忍他人之惱, 心不懷報. 亦當忍於利, 衰, 毀, 譽, 稱, 譏, 苦, 樂等法故.”(T32, 581c17-582a1); 삶과 고통에 대한 이와 같은 이념은 비단 법성종 뿐 아니라 대승불교 일반을 대표하는 특 징으로 볼 수 있는데, 안옥선 선생은 이러한 이념을 “자기희생이 전제된 자리(自利)”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때의 ‘자리’란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원만한 성취를 의미하는 바, 타인을 이롭게 하기 위해 받게 되는 자신의 고통은 마치 당연히 따라야 할 수순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 는 것이다. 안옥선(2006) pp.75∼77. 26 논문 나 ‘좋음’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적시한다. 따라서 타인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려는 행위란 ‘고통의 제거’를 ‘좋음’으로 간주하 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의 제거’를 도덕적인 ‘옳음(right)’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적합한 것이다. 이 경우 좋음이란 바로 그와 같은 옳음이 실천되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 로 해석될 수 있는데, 앞선 분석에서 확인된바 원각이 지닌 선한 인 과(因果)를 산출하는 기능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포괄적으로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법성종이 지닌 윤리이론의 체계를 보 다 정형화된 차원의 논의로 이끌어낼 수 있다. 이는 곧 그것이 불교 라는 종교적인 교설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영역의 논의들과 연계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그럼에도 물론 이것은 여전 히 도덕에 대한 특수한 이념으로 치부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 나 그러한 가능성은 사실 모든 여타의 형이상학적 이론 체계 뿐 아 니라 당위적 내용을 담고 있는 모든 이론의 체계들이 불가피하게 마 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따라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보다 학문적으로 가치 있는 점은 법성종의 이론체계를 ‘비교적’ 철학적인 논의로 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있을 따름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법성종으로부터 도출된 윤리이론의 철학적 의미를 검토해볼 수 있겠다. 먼저 법성종으로부터 도출된 윤리이론은 원각으 로 표현되는 선험적 도덕원리를 상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타의 형 식주의 윤리이론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판단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있어 일관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특히 그와 같은 선험적 원리는 동시에 개개인의 마음이라는 주관적인 영역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도 설명됨을 확인 했는데, 이는 도덕적 판단에 대한 공동체적인 결정에 있어 개인으로 부터 출발하는 이상적인 합의의 모델을 제공해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모든 개인이 외부적인 조건들로부터 비롯된 속박에서 완전 히 벗어나 저마다의 원각에 의거하여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행위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27 를 실천할 경우, 그러한 자율적 판단의 결과는 원각의 보편적 성격으 로 말미암아 언제나 만장일치적인 이상을 지향할 것이기 때문이다.52) 그렇기에 나아가 이와 같은 도덕적 판단 및 의사결정의 모델은 절차 적인 방면에 치중되어 있는 현대의 계약론적 담론을 보완하기에 적합 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상이 달성될 경우, 합의를 통해 결정된 결과가 갖는 타당성은 그것이 본질 적으로 옳은 결정이라는 이유에 의해서도 확보되지만 동시에 다수에 의한 결정이라는 계약론적 원리에 의해서도 확보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나아가 이러한 윤리이론이 갖는 정치학적인 논의들과 의 연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다고 하겠다.53) 한편 법성종으로부터 도출된 윤리이론은 기존의 이성 중심의 형식 주의 이론들과 달리 감정이라는 요소를 단순히 우연적 대상으로 치부 하여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필연적인 역할을 부여해 적극적 으로 수용하는 양상을 보인다.54)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러한 특징 52) 이와 같은 발상의 단서는 사실 칸트의 사상 내에서도 이미 발견된다. 백 종현 선생의 견해에 따르면, 칸트가 제시한 도덕법칙의 요구로부터 그려 지는 역사 진보의 최종장은 “보편적으로 법을 행사하는 시민사회”로, 이 는 한 국가 내에서의 국민들의 화합 뿐 아니라 국제적인 평화까지도 포 괄하여 지향한다. 이와 같은 견해는 기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칸트 자신의 견해에 기초를 둔 것으로 보인다. 임마누엘 칸트(2010) pp.331. 53) 정치이론으로서 불교의 사상을 해석해내려는 시도는 이미 다양한 관점에 서 시도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선행연구로는 다음 등이 있다. 정천구 (2009); 유승무(2005). 54) 안옥선 선생은 이러한 ‘자비’의 감정과 원각의 경지가 갖는 관계를 다룸 에 있어 “이성과 감성의 조화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데 적어도 법성종의 이론체계에 있어 이와 같은 표현은, 원각과 자비심이라는 두 개 념이 갖는 개념적 층위를 모호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비록 여타의 감정 과는 달리 필연성을 부여받는 것으로 설명되지만, 자비심은 여전히 감정 의 한 형태로서 원각의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며, 그것이 현상적으 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특정한 조건적 계기가 갖추어져야 한다. 앞 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와 같은 계기는 원각의 회복으로 인해 확보되는 현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었으며, 이로 비추어 보건대 원각과 자비심은 발생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분명한 위계의 구조를 갖는다. 법성종의 윤 리이론 체계에서 자비심이라는 감정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활용 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각 내지 진여라는 보편 28 논문 은 칸트의 철학체계와 대조했을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칸트를 비롯 한 기존의 이성 중심의 형식주의 이론들이 내세우는 도덕적인 가치의 판단이란 감정적 동기에 의한 행위를 지나치게 경시함으로써 고원(高 遠)하다고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55) 이와 같은 점에 있어 법성종의 윤리이론은 보다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리학 등 의 동양문화권 윤리이론에서 흔히 강조하는 바와 달리, 도덕의 최고 원리를 인간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발견하고자 한다는 점 역시 법 성종의 윤리이론이 여타의 형식주의 이론들에 비에 현실적일 수 있는 이유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물론 어떠한 사상이 지니는 고원함 등의 여부가 그러한 사상 자체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것이 도덕적 행위에 관한 이론일 경우 우리는 불가피하게 적용의 측면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러한 점에 한하여 법성종이 갖는 특징을 상대적인 장점으로 언급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Ⅴ. 결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법성종의 핵심은 물론 ‘법성’이다. 이 법성 은 본래 존재론 및 인식론적 논의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에 해당하지만 본고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도덕의 문제에 초점을 두어 분석을 전개하 적 개념을 중심으로 한 위계적 구조의 확립일 뿐 그 둘 사이의 ‘조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개념의 관계에 대한 안옥선 선생의 언급은 다음을 참고. 안옥선(2006) pp.78∼81. 55) 대표적으로 막스 셸러(Max Scheler, 1874∼1928)는 주저 ?윤리학에 있어 서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Der Formalismus in der Ethik und die materiale Wertethik)?에서, 칸트의 윤리학으로 대표되는 형식적 윤리 학이 인간의 정서적 작용을 지나치게 도외시함으로써 인격의 존엄성과 자기가치를 부정한다고 비판한다. 셸러(1998) pp.441∼685; 한편 칸트의 철학에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우드조차 ‘이타적 감정(sympathy)’ 의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칸트의 입장이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적 의(hostility)를 불러일으킬만한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Wood(2008) p.36.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29 였다. 법성은 ?원각경?에서는 ‘원각’으로, ?대승기신론?에서는 ‘진여’ 로 표현되는데, 경험적 차원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절대적 보편원리 로서 설명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에 근거하여 도 덕적 판단 및 도덕적 행위를 위한 의지의 필연적 발생 과정을 체계 적인 구조로서 정리해볼 수 있었다. 한편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과의 부분적 대조를 통해 원각을 중심 으로 한 법성종의 윤리이론이 갖는 특징적인 면모들을 확인해볼 수 있었는데, 대비심이라는 이타적 감정을 필연적인 요소로서 도덕적 실 천의 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와 같은 대비심은 원각에 본래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공덕 가운데 하나로, 이 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도덕적 판단을 구체적인 행위로 연결시켜줄 의지를 일으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절대적 도덕 원리로부터 구체적 행위로까지 이어지는 이상의 전반적인 과정은 법성종에서의 윤리적인 이론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는 선험적인 원리를 도덕적 행위의 최종원리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서 단순히 종교적 교설이라는 제한적인 차원의 논 의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었다. 본고에서는 이러 한 가능성에 근거하여 그러한 구조를 보다 광범위한 논의의 토대 위 로 올려두기 위한 철학적 정형화의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작업 은 그것이 지닌 형식적인 골격을 유지하되, 그 안에 담겨있는 특수한 교설적 경향들을 배제하거나 철학적인 개념으로 치환함으로써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로써 선험적 도덕원리를 중심으로 하는 정형화된 형 태의 이론체계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의 작업은 물론 작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기 도 했다. 법성종의 윤리 이론체계를 정형화시키는 과정에서 그것의 표본이 되는 종교적 교설로서의 불교사상과의 근본적인 괴리를 발생 시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종교로서의 불교를 철학적으로 다룸으로 인해 메워질 수 없는 괴리감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종교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다루는 이와 같은 작업은 일면 30 논문 불가피한 동시에 그 나름의 분명한 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작업을 통해서만이 학문과 문화가 기존의 틀을 벗어나 발전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본고의 말미에 서 다룬 바와 같이, 정형화의 작업을 통해 법성종이 가진 이론체계가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논의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은 점 은 불교 사상이 신앙이 아닌 이성의 차원에서 종교 외적인 영역으로 도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바, 그 나름의 고유한 가치 를 분명히 갖는다고 하겠다. 투 고 일: 2012. 09. 09. 심사완료일: 2012. 10. 15. 게재확정일: 2012. 10. 17. 송진섭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 31 참고문헌 T 대정신수대장경 X 만속장경 佛陀多羅 譯,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T17). 馬鳴 造, 眞諦 譯, ?大乘起信論?(T32). 宗密 述, ?圓覺經大疏?(X9). 권탄준, 華嚴經의 誓願思想小考 , ?한국불교학? 제11집, 1986. 김 진, 칸트의 요청이론과 불교 , ?철학과현실? 제12호, 1992. , ?칸트와 불교?, 서울, 철학과 현실사, 2004. 박인석, 영명연수(永明延壽) ?종경록(宗鏡錄)?의 ‘일심(一心)’ 사상 연구 , 서울,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백종현, ?칸트와 헤겔의 철학?, 서울, 아카넷, 2011. 송진섭, 윤리적 실천종교로서의 대승불교 일반이 갖는 사상적 난점 과 그에 대한 해명 , ?한국불교학?제60집, 2011.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서술구조에 대한 현상학(Phӓnomenologie) 적 접근 , ?철학사상?제43호, 2012. 신규탁, 圭峰宗密の本覺眞心思想硏究 , 東京, 東京大學大學院 博士學 位論文, 1993. , ?화엄의 법성철학?, 고양, 도서출판 깃발, 2008. , ?화엄과 선?, 서울, 정우서적, 2010. , ?한국 근현대 불교사상 탐구?, 서울, 새문사, 2012. 안옥선, ?불교윤리의 현대적 이해?, 서울, 불교시대사, 2002. , ?불교의 선악론?, 파주, 살림출판사, 2006. 오트프리트 회페, ?임마누엘 칸트?, 이상헌 역, 서울, 문예출판사, 1997. 유승무, 불교의 정치문화 전통과 민주주의 , ?한국학논집? 제32집, 2005. 임마누엘 칸트,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이원봉 역, 서울, 32 논문 책세상, 2002. , ?실천이성비판?, 백종현 역, 서울, 아카넷, 2010. 정용환(2005), 맹자의 선천적이고 직관적인 선(善)의 실행 가능성 , ?철학?제82권. 정천구(2009), 불교의 공화주의 정치철학에 관하여 , ?한국교수불자 연합학회지?제15권. 최인숙, 칸트와 불교의 실천철학 , ?칸트연구? 제15집, 2005. , 칸트철학과 불교철학에서 마음과 물질의 관계 , ?철학? 제106 집, 2011. 프랑수아 줄리앙,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 허경 역, 서울, 도서 출판 한울, 2004. 한자경, ?불교철학과 현대윤리의 만남?, 서울, 예문서원, 2008. 韓龍雲, ?朝鮮佛敎維新論?, 서울, 新丘文化社,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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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ereotypical structure of the ethical theory of Beopseongjong is based on ‘perfect enlightenment(圓覺)’, or ‘Tathata(眞如)’, as the intrinsic element which is universal as well as objective. These very concepts of perfect enlightenment, or Tathata, always offer the objective standard of the ‘judgment of the truth of the existing state’ and ‘ethical value judgment’ to the person training in ethical judgment and form the foundation for ethical actions. For ethical judgment to be led to a specific action, an intermediate concept is necessary to connect the two. In Beopseongjong, the ‘ultimate mind of enlightenment (大悲心),’ the ethical emotion inevitably manifested from the highest ethical principles of the perfect enlightenment, or Tathata, 34 논문 fills in the gap distinctively. The ultimate mind of enlightenment is explained as originating from a ‘realistic understanding of the status quo’ deduced from the perfect enlightenment, or Tathata. And, furthermore, it becomes the opportunity to generate ‘Pranidhana (誓願),’ the concept of ‘will’ for a specific acti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inevitable relation above penetrating from the ethical principles to ethical judgment and actions were investigated through a partial contrast to Kant's philosophy, which has a similar theoretical structure and system to those of Beopseongjong. In this thesis, the deduced theoretical structure was philosophically reinterpreted so that the ethical theory of a more stereotyped formality was to be deduced. As the problem of ‘suffering’ appeared all over the surface in this process, the range of the objects that the ethical theory of Beopseongjong seeks was compressed into ‘the suffering mankind,’ and its philosophical standpoint and meanings became clearer. Keywords: Perfect Enlightenment(圓覺), tathata(眞如), ultimate mind of enlightenment(大悲心), Pranidhana(誓願), Beopseongjong (法性宗), Immanuel Kant(1724∼1804)

 

 

 

[출처] 송진섭, 대승불교의 윤리이론이 지닌 정형적 형식에 대한 고찰-법성종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