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전

선림보전

수선님 2020. 8. 9. 12:17

선림보전



선림고경에 씀

설봉스님이 하루는 원숭이들을 보고 말하기를
“원숭이가 각각 한 개의 옛거울[고경]을 짊어지고 있구나!”
하니 삼성스님이
“숱한 세월 동안 이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옛거울[고경]이라고 합니까?”
하고 물었다. 설봉스님이
“흠이 생겼구나!”
하자 삼성스님이 말하기를
“천오백명을 거느리는 대선지식이 말귀도 못 알아들으십니까?”
하니 설봉스님이 말하였다.
“노승이 주지하기가 번거로와서...”

알겠는가.

비가 연잎을 적시니
향기가 집에 떠돌고
바람은 갈대잎을 흔드는데
눈은 배에 가득하네.








설봉일일견미후내운, 자미후각각배일면고경.
삼성편문, 역겁무명하이창위고경.
봉운, 하생야.
성운, 일천오백인선지식화두야불식.
봉운, 노승주지사번.

회마

우증하엽향부옥
풍교노화설만선



불기 2532년 단오절
가야산에서
퇴옹 성철 씀
선림고경총서(선림고경총서) 간행사









귀의삼보(귀의삼보)하옵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 이 땅에 전해져 겨레의 문화창달에 이바지하고 나라의 동량을 배출하여 온 지도 천육백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지나고 연륜이 멀어짐에 따라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선종의 정법은 감추어지고, 고불고조(고불고조)들의 바른 뜻은 매몰되어 잘못된 주장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성철 큰스님께서는 이런 선문(선문)의 병폐를 일찍부터 지적하시고, 그 시정을 위해 몇 해 전에는 「선문정로(선문정로)」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선)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무엇이 가장 요긴한 일인가를 심려해 오시던 차에, 우리들 주면에는 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필요한 선서(선서)들이 너무나 빈곤하다는 사실을 통감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는 고불고조들의 말씀이 한문(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언어생활이 다른 요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스님께서는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는 옛 조사 스님들의 말씀 가운데 참선(참선)을 위해 가장 요긴하다고 생각되는 삼십여 종의 저서들을 가려내어 번역토록 하시고, 그 전집(전집)의 이름을「선림고경총서(선림고경총서)」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한문으로 된 말씀들을 한글로 번역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때로는 큰스님의 구술(구술)을 옮기











고, 때로는 선(선)의 이치를 여쭈면서 글 밝은 이들에게 번역을 부탁하였습니다. 따라서 선림고경총서 간행불사(간행불사)가 겨레 공동의 문화 재산이 되고 후손들에게 부처님의 크고 밝은 가르침을 전하는 이 시대의 훌륭한 유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종사에서 처음 시도하는 번역인만큼 큰스님께서 연로하시어 일일이 감수하실 수 없어 번역에 허물이 많으리라 믿습니다. 이 점 널리 이해하시고 잘못된 번역이 있으면 독자들께서 동참하시어 더 완벽한 글이 되도록 이끌어 주신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이러한 선림고경총서의 원만한 간행이 조계(조계)의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어, 선림(선림)에 백화(백화)가 난만하고 모든 이들은 자성을 깨쳐 성불(성불)하길 발원합니다.




불기 2532년 단오절
해인사 백련암(해인사 백련암)
백련선서간행회(백련선서간행회)
원택 화남

차례



제1권  돈황본단경(돈황본단경)………………………………11
    1  단경 지침(지침)……………………………………… 17
    2  돈황본단경 편역(편역)……………………………… 55
    3  선교결(선교결)……………………………………… 149

제2권  돈오입도요문론(돈오입도요문론)………………… 159

제3권  전심법요(전심법요)………………………………… 227
    1  전심법요(전심법요)………………………………… 235
    2  완릉록(완릉록)……………………………………… 279

제4권  신심명(신심명)……………………………………… 347

제5권  증도가(증도가)……………………………………… 359


제1권 돈황본단경(돈황본단경)


머리말

조계육조(조계육조) 이후 선(선)은 천하를 풍미(풍미)하여 당․송․원․명 시대에 불교가 꽃을 피우게 한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림에 따라 육조 본연의 종지가 많이 변하여 육조의 정통 사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대저 육조의 종지는 육조가 항상 주창한 “오직 돈법만을 전한다[유전돈법]”고 하는 것으로서, 점문(점문)은 일체 용납치 않는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 교가(교가)의 점수사상(점수사상)이 혼입되어 선문(선문)이 교가화됨으로써, 순수선(순수선)은 없는 실정이다.
「단경」은 육조의 법문을 전하는 유일한 자료이나, 그 유통 과정에서 첨삭(첨삭)이 많아 학자들을 곤혹케 하였다. 다행히도 최고본(최고본)인 「돈황본단경」은 천여 년 동안 석굴에 비장되어 뒷사람들의 첨삭을 면할 수 있었으므로, 육조의 성의(성의)를 잘 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가운데서 오락(오락)된 부분은 각 유통본을 참조하여 엄정교정(엄정교정)하고 사의(사의)는 개입시키지 않았으며, 토를 달고 번역을 하였다. 그리고 약해(약해)를 붙여 거룩한 뜻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니, 권두(권두)의 지침과 함께 읽기 바란다.
「선교결」은 서산(서산) 만년(만년)의 명저(명저)로서 「단경」이해에 도움이 되겠기에 더불어 실으니, 참학고류(참학고류)는 「단경」을 근본삼아 육조정법을 선양하기 바란다.



불기 이천오백삼십일년 가을
가야산 해인사 퇴설당에서
퇴옹 성철 씀






















일러두기

*○는 제I편에서는 엮은이의 평석(평석)을, 제II편과 제III편에서는 약해(약해)를 말한다.
*제I편과 제II편에서, 보기를 들어 성(성)은 원문의 성자를 성자로 바로잡은 것이고, [심]은 원문에는 심자가 빠진 것을 보충해 넣은 것이며, ‘돈점’은 원문의 돈점을 삭제해야 할 것으로 부호를 일치시켰다.
*제I편에서 원문 끝의 돈․대․흥․덕․종은 각각 돈황본․대승사본․흥성사본․덕이본․종보본을, 그리고 끝에 표시된 숫자는 「혜능연구(고마자와대학 선종사연구회 1978년 간행)의 면(면) 수를 말한다.
*제II편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임의로 제목을 붙이고 단락을 나누었다.
돈황본단경 차례


머리말………………………………………………………………………………13
일러두기……………………………………………………………………………14

제1편  단경 지침(지침)…………………………………………………………17
서언(서언)…………………………………………………………………………19
 1.식심견성(식심견성)……………………………………………………………21
 2.내외명철(내외명철)……………………………………………………………25
 3.유전돈법(유전돈법)……………………………………………………………29
 4.무념위종(무념위종)……………………………………………………………37
 5.정혜체일(정혜체일)……………………………………………………………43
 6.무생서방(무생서방)……………………………………………………………47
 7.불오염수(불오염수)……………………………………………………………50
 8.불보리인(불보제인)……………………………………………………………51

제2편  돈황본단경 편역(편역)…………………………………………………55
 1.서언(서언)………………………………………………………………………57
 2.심사(심사)………………………………………………………………………57
 3.명게(명게)………………………………………………………………………60
 4.신수(신수)………………………………………………………………………61
 5.정게(정게)………………………………………………………………………65
 6.수법(수법)………………………………………………………………………68
 7.정혜(정혜)………………………………………………………………………70
 8.무념(무념)………………………………………………………………………74
 9.좌선(좌선)………………………………………………………………………77
10.삼신(삼신)……………………………………………………………………  79
11.사원(사원)……………………………………………………………………  83
12.참회(참회)……………………………………………………………………  85
13.삼귀(삼귀)……………………………………………………………………  86
14.성공(성공)……………………………………………………………………  88
15.반야(반야)…………………………………………………………………… 90
16.근기(근기)…………………………………………………………………… 92
17.견성(견성)…………………………………………………………………… 95
18.돈오(돈오)…………………………………………………………………… 96
19.멸죄(멸죄)…………………………………………………………………… 99
20.공덕(공덕)……………………………………………………………………102
21.서방(서방)……………………………………………………………………104
22.수행(수행)……………………………………………………………………108
23.행화(행화)……………………………………………………………………113
24.돈수(돈수)……………………………………………………………………114
25.불행(불행)……………………………………………………………………119
26.참청(참청)……………………………………………………………………123
27.대법(대법)……………………………………………………………………126
28.진가(진가)……………………………………………………………………131
29.전게(전게)……………………………………………………………………134
30.전통(전통)……………………………………………………………………138
31.진불(진불)……………………………………………………………………140
32.멸도(멸도)……………………………………………………………………144
33.후기(후기)……………………………………………………………………146

제3편  선교결(선교결)……………………………………………………… 149
제1편 단경 지침(지침)

서언





「단경(단경)」은 육조(육조)의 법손인 동토(동토) 선종의 근본이 되는 성전(성전)이다. 「단경」은 전래되는 과정에서 다른 본(본)이 많이 나와 학자들을 곤혹케 하였으나, 돈황고본(돈황고본)이 발견되어 천고의 의심이 해결되었다고들 말한다.
그리하여 근래 일본의 고마자와대학(구택대학) 선종사연구회(선종사연구회)에서는 그 중 기본이 되는 다섯 본을 서로 대조하여 「혜능연구(혜능연구)」라는 책을 발간함으로써 단경연구에 공헌하였다.
다섯 본은 돈황본(돈황본), 대승사본(대승사본), 흥성사본(흥성사본), 덕이본(덕이본), 종보본(종보본)이다. 또한 열두 종류의 다른판(판)들을 영인 수록한 「육조단경제본집성(육조단경제본집성)」도 좋은 자료이다. 이에 가장 오래된 돈황본을 중심으로 네 본을 서로 대조하고 다른 여러 본을 참고하여 「단경지침(단경지침)」을 작성하여 보았다.
돈황본을 베껴 쓸 때 부주의하여 글자를 잘못 쓰거나 빠뜨린 것이 많으나, 다른 본들을 참조하면 성의(성의)를 파악하는 데 별로 지장이 없다. 각 본의 자구(자구) 차이는 대강의 뜻만 취하고 하나하나 지적하지 않았으니 양해하기 바란다.
「단경」의 근본 사상은 식심견성(식심견성 마음을 알아 성품을 봄)이요, 식심견성은 법신불(법신불)인 내외명철(내외명철 안팎이 사무쳐 밝음)이어서 견성(견성 성품을 봄)이 곧 성불(성불 부처를 이룸)이므로, 깨달은 뒤[오후]에는 부처님 행을 수행한다[수행불행]고 분명히 하였다. 뒷날 교가(교가)의 점수사상(점수사상)이 섞여 들어와 오후점수론(오후점수론 깨친 뒤 점차로 닦는다는 이론)이 성행하나, 이는 「단경」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니, 육조대사의 법손인 선가(선가)는 「단경」으로 되돌아와 육조대사 본연의 종풍을 떨치기 바란다.
1. 식심견성(식심견성)

모든 법이 모두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있거늘, 어찌 자기의 마음을 따라서 진여의 본성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서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였으니, 식심견성(식심견성 마음을 알아 성품을 봄)하면 스스로 부처님 도를 성취하는 것이니 곧 활연히 깨쳐서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

일체만법이 진재자신심중이어늘 하불종어자심하야 돈현진여본성(성)고 보살계경에 운아본원(원)자성이 청정이라하니 식심견성하면 자성불도라 즉시활연하야 환득본심이로다-돈 316

만법이 모두 자기의 마음 가운데 있거늘 어찌 자기의 마음 가운데에서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서 말하기를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였으니, 식심견성하면 다 부처님 도를 성취하는 것이니 곧 활연히 깨쳐서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

만법이 진재자심이어늘 하불종자심중하야 돈견진여본성고 보살계경에 운 아본원자성이 청정이라하니 식심견성하면 개성불도라 즉시활연하야 환득본심이로다-대.흥.덕.종 316
○앞의 인용문은 돈황본이요, 뒤의 인용문은 대승사본․흥선사본․덕이본․종보본이니,돈황본을 중심으로하여 네 본을 참조하였다. 네 본이 더러 자구의 차이는 있으나 그 근본 뜻은 같다.
‘자성청정(자성청정 자성이 맑고 깨끗함)’은 「보살계경」의 말씀이요. ‘식심견성’은 육조의 말씀이요, ‘즉시활연(즉시활연 즉시에 탁 트이어 깨침)’은 「유마경」의 말씀이다. 두 경의 글을 인용하여 육조 자신의 법문인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면 스스로 부처님 도를 성취한다[식심견성 자성불도]’ 함을 강조한 것이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십이부의 경전들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 있어서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고 말하니, 자기의 성품을 깨치지 못하였다면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성품을 볼지니라.

삼세제불과 십이부경이 운재인성중하야 본자구유어늘 불능자성오어든 수득선지식시도(도)하야 견성이니라 -돈 317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십이부의 경전들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에 있어서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으므로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였다면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바아흐로 성품을 볼지니라.

삼세제불과 십이부경이 재인성중하야 본자구유ㅓ늘 불능자오어든 구선지식시도하야 방견이니라 -대.흥.덕.종 317
○스스로 오달(오달 깨쳐 통달 함)하지 못하면 선지식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저마다 스스로 마음을 관찰하여 자기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깨닫게 하되, 만약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는 모름지기 큰 선지식을 찾아서 지도를 받아 성품을 볼지니라.

각자관심하야 령자본성을 돈오하되 약[불]능자오자는 수멱대선지식시도(도)하야 견성이니라 -돈 317

보리 반야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 스스로 가졌거늘 다만 마음이 미혹하므로 스스로 깨칠 수 없으니, 반드시 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성품을 볼지니라.

보제반약지지는 세인이 본자(백)유지어늘 즉연심미하야 불능자(백)오하니 수구대선지식시도(도)하야 견성이니라 -돈 292

보리 반야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 스스로 가졌거늘 다만 마음이 미혹하므로 스스로 깨칠 수 없으니, 반드시 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성품을 볼지니라.

보제반약지지는 세인이 본자유지어늘 지연심미하야 불능자오하나니 수구대선지식시도하야 견성이니라 -대.흥.덕.종 292

사람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되 망념이 있어서 진여를 덮고 있으니 망념이 없어지면 본래의 성품이 깨끗하니라.

인성(성)은 본정이로되 위망념고로 개복진여하니 리망념하면 본성(성)이 정하니라 -돈 298

사람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되 망념이 있어서 진여를 덮고 있으니, 다만 망념이 없으면 본래 성품은 스스로 청정하니라.

인성은 본정이로되 유망념고로 개복진여하니 단무망상하면 성자청정이니라 -대.흥.덕.종 298
○망상이 소멸하면 본래로 청정한 자성이 스스로 드러나니, 이것이 식심(식심 마음을 앎)이며 견성이다.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니라.

식자(백)본[심]이 시견본성이니라 -돈 295

스스로 본래 마음을 알고 스스로 본래 성품을 보느니라.

자식본심하고 자견본성이니라 -대.흥.덕.종 295

본래 마음을 알지 못하면 불법을 배워도 이로움이 없으니,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면 곧 큰 뜻을 깨치느니라.

불식본심하면 학법무익이니 식심견성(성)하면 즉오(오)대의니라 -돈 284
○‘큰 뜻[대의]’이란 돈황본 윗글에서 ‘큰 뜻을 알면 곧 의발을 부촉하리라[식대의하면 즉부의발하리라]’고 한 그 ‘큰 뜻’이다.

앞 생각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 생각이 깨치면 곧 부처니라.

전념이 미즉범이요 후념이 오즉불이니라 -돈312

앞 생각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 생각이 깨치면 곧 부처니라.

전념이 미즉범이요 후념이 오즉불이니라 -대.덕.종 313
○흥성사본에는 이 구절이 빠지고 없으나 상관은 없다. 이는 돈오견성(돈오견성 단박에 깨쳐서 성품을 봄)이 곧 성불임을 말한 것이다.

자성(자기의 성품)이 미혹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성이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자성을 미하면 불즉중생이요 자성을 오하면 중생이 즉불이니라 -돈 315

자성이 미혹하면 곧 중생이요, 미혹을 떠나면 곧 깨달음이니 깨달으면 곧 부처니라.

자성을 미하면 즉시중생이요 리미즉각이니 각즉시불이니라 -대 315

자성이 미혹하면 곧 중생이요, 자성을 깨치면 곧 부처니라.

자성을 미하면 즉시중생이요 자성을 오하면 즉시불이니라 -대.덕.종 325
○불(불)은 구경묘각(구경묘각)이며, 십지(십지)․등각(등각)도 미혹중생이니, 정오정각(정오정각 바르게 깨치고 바르게 깨달음)이 아니다. 식심견성은 정오정각을 말함이니, 그것은 구경묘각이라야 한다.

2 . 내외명철(내외명철)

무엇을 청정법신불이라 하는가? 세상사람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청정하여 만법이 다 자기의 성품 가운데 있으니, 모든 법이 다 자기의 성품에 있어서 자기의 성품은 항상 청정하니라.
해와 달이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여서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 일월성신(일월성신)을 뚜렷하게 보지 못하다가, 문득 지혜의 바람이 불어와서 구름과 안개를 말끔히 거두어 버리면 온갖 것이 일시에 모두 나타나느니라.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청정함도 마치 깨끗한 하늘과 같으며 혜(혜)는 해와 같고 지(지)는 달과 같아 지혜가 항상 밝거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서 자기의 성품이 밝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참다운 법을 열어 주시는 선지식을 만나 미망(미망)을 없애 버리면 내외 명철하여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다 나타나 일체법에 자재하나니, 청정법신이라고 이름하느니라.

  하명청정<법>신불 세인 성본자정 만법 재자성(성) 일체법 진재자성 자성 상청정 일월 상명(명) 지위운개복 상명(명)하암 불능료견일월성(서)신 홀우혜풍 취산 권진운무 만상삼라 일시개현 세인성정 유여청천 혜여일지여월 지혜상명(명) 어외 착경(간경) 망념부운 개복 자성(성) 불능명(명) 고우선지식 개진법 취각미망 내외명(명)철 어자성(성)중 만법 개현 일체법 자재성(성) 명청정법신-돈 삼백이(29)

무엇을 청정법신이라 하는가? 세상 사람의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모든 법이 모두 자기의 성품으로부터 나느니라. 모든 법이 자기의 성품 가운데 갖추어 있으니 하늘이 항상 맑음과 같으며, 해와 달이 항상 밝되 뜬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둡다가 문득 바람이 불어 모든 구름이 흩어지면 위 아래가 함께 밝아서 모든 모양이 다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라. 세상 사람의 성품이 항상 떠돌아다님도 저 구름 낀 하늘 같아서 또한 그와같으니라. 지(지)는 해와 같고 혜(혜)는 달과 같아 지혜(지혜)가 항상 밝거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서 자성이 밝고 맑지 못하다가, 만약 선지식을 만나 참된 법을 듣고 미망을 스스로 없앤다면 내외명철하여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모두 나타나나니, 성품을 본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므로 이를 청정법신불이라고 이름하느니라.

하명청정법신 세인 성본청정 만법 개종자성생 제(30)법 재자성중 여천상청 여일월 상명 위부운 개복 상명하암 홀우풍취 중운 산진 상하구명 만상 개현 세인성 상부유 여피운천 역부여시 지여일혜여월 지혜상명 어외 저경 피망념부운 개복 백성 불득명랑 약우선지식 문진법 자제미망 내외명철 어자성중 만법 개현 견성지인 역부여시 차명청정법신불-대.흥.덕.종 삼백이(31)

* 만법의 근원인 청정자성(청정자성)을 덮은 망념의 뜬구름을 다 흩어버리면 우주의 위 아래와 몸과 마음의 안팎이 확연명철(확연명철 툭 트이어 사무쳐 밝음)하여, 깨끗한 유리병 속에 밝은 달을 담은 것과 같다. 내외명철을 <영락경(영락경)>, <능엄경(릉엄경)>에서는 구경묘각(구경묘각)이라고 하였으며, 육조는 법신불(법신불)이라고 하였다. <천태사교의 원교장(천태사교의원교장)>에서는 아래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였다.
“미세한 무명(무명)을 나아가 부수고 묘각의 지위에 들어가서 무명의 부모를 영원히 이별하고 구경의 열반산정에 오르니 대열반이라 이름하는지라, 청정법신을 이루어 상적광토(상적광토 언제나 고요한 광명 세계)에 사니, 곧 원교불상(원교불상 원교의 부처님 모습)이니라[진파미세무명하고 입묘각위하야 영별무명부모하고 구경등열반산정하니라 명대열반이라 성청정법신하야 거상적광토하니 즉원교불상야니라].”
자재보살(자재보살)들이 오매일여(오매일여 자나깨나 한결 같음)는 되어도 구경묘각을 실증(실증)하지 못하면 ‘내외명철’의 경지는 되지 못하니, 이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극심심처(극심심처 지극히 깊은 곳)이다.
동황본에는 ‘견성한 사람도 또한 이와 같다[견성지인도적부여시라]’는 구절이 빠졌으나, 망념이 없어져 만법이 모두 나타난 청정법신불이 곧 견성이므로 상관이 없다. 이로써 육조는 견성이 곧 성불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자기 성품의 심지(심지 마음자리)를 지혜로써 관조(관조 비추어 봄)하여 내외명철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나니,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요 이미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매요,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곧 무념이니라.

`자성심지 이지혜관조 내외명(명)철 식자본심 약식본심 즉시해탈 기득해탈 즉시반약삼매 오반약삼매 즉시무념-돈 삼일팔(34)

지혜로 관조하여 내외명철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나니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요, 만약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매며 무념이니라.

지혜관조 내외명철 식자본심 약식본심 즉본해탈 약득해탈 즉시반약삼매 즉시무념-대.흥.덕.종 삼일팔
*앞 항(항)에서는 내외명철이 청정법신불이라 하였고, 이 항에서는 내외명철이 곧 식심(식심 마음을 앎), 해탈, 반야삼매(반야삼매), 무념(무념 생각 없음)이라고 하였다. 식심은 곧 견성이므로, 견성은 법신불(법신불)이며 반야삼매며 무념임을 말하여 주고 있다.
곧 견성을 하여서 반야삼매에 들어가느니라.

즉득견성 입약삼매-돈 삼일사(35)
*견성은 곧 반야삼매임을 말한다.

육진(육진) 속에서 여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아서 오고 감에 자유로움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니, 무념행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어육진중 불리불염 래거자유 즉시반약삼매 자재해탈 명무념행-돈 삼일팔

육진 속에서 물들지도 않고 섞이지도 않아서, 가고 옴에 자유로우며 널리 사용하여도 걸림 없음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니, 무념행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어육진중 무염무잡 래거자유 통용무체 즉시반약삼매 자재해탈 명무념행-대.덕.흥.종 삼일팔(36)
*식심, 견성, 해탈, 무념, 반야삼매 등은 모두 법신불이며, 묘각인 내외명철임을 강조하여 말하였다. 이는 견성이 곧 성불이라고 말함이니, <기신론(기신론)의 ‘구경각 즉 견성(구경각즉견성)’과 같은 말이다. 육조는 ‘견성이 곧 성불’임을 이렇게 소상하고 정확하게 말씀하였으므로, 견성하여 점수(점수 점차로 닦음)한 뒤에 성불한다는 것은 육조의 정통 사상이 아니니, 이러한 주장은 육조의 정전(정전)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3. 유전돈법(유전돈법)

오조(오조)가 <금강경>을 강설하심에 혜능이 한 번 듣고 말 끝에 문득 깨치니라. 그 밤에 법을 받으니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문득 돈법(돈법)과 가사를 전하며 ‘너를 육대조(육대조)로 삼는다’고 하였다.

  오조설금강경 혜능 일문 언하 편오(오) 기야 수법 인진불지 편전돈법 의 여위육대(벌)조-돈 이팔오
*이는 오도전법(오도전법 도를 깨치고 법을 전함)을 대강 서술한 것으로 돈법은 돈오법(돈오법)이라는 말이다.

말 끝에 모든 법이 자기의 성품을 떠나지 않음을 문득 깨닫고 내가 말씀드렸다.
“어찌 자성이 본래 청정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생멸 없음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음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움직임이 없이 능히 만법을 냄을 알았으리오!”
오조스님은 내가 본래의 성품을 깨쳤음을 아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본래 마음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느니라. 만약 말 끝에 스스로 본래 마음을 알아 스스로 본래 성품을 보면 곧 ‘인천의 스승, 부처[인천사불]’니라.”
삼경(삼경)에 법을 받으니, 사람들이 다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곧 심인(심인)의 돈법과 의발(의발)을 전하고, ‘너를 육대조사로 삼는다’고 하였느니라.

언하 편오일절만법 불리자성 모갑 계언 하기자성 본자청정 하기자성 본불생멸 하기자성 본자구족 하기자성 무동무요 능생만법 오조지오본성 내보모갑(38) 언 불식본심 학법무익 약언하 자식본심 자견본성 즉명인천사불 삼갱 수법 인진불지 변전심인돈법 급의발 여위육대조-대.흥.덕.종 이팔오(39)
*이는 돈황본보다 상세하다.
대승사본의 ‘모갑(모갑)’과 돈법(돈법)]을 다른 본에서는 각각 ‘혜능(혜능)’과 ‘돈교(돈교)’라고 하였다. 돈법은 돈오법문(돈오법문)이요, 돈교는 돈오교시(돈오교시)이므로, 내용은 동일하다.
‘하기(하기)’이하는 깨친 법[오법]의 내용인데, 오조가 인가(인가)하며 말씀하시기를 식심견성하면 곧 이름이 ‘인천의 스승, 부처’라고 단언하였다. 그리하여 식심견성하면 불지(불지 부처님의 지위)임을 선언하였으며, 지위(지위)와 점차(점차)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넘어 여래지(여래의 지위)에 들어가는[일초직입여래지] 돈오법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견성하면 내외 명철인 묘각불지(묘각불지)임을 말한 것이니, 불지가 아닌 삼현(삼현), 십성(십성)은 모두 견성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오직 돈교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을 부수는도다.

유전돈교법 출세파사종-돈 삼이칠

오직 견성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을 부수는도다.

유전견성법 출세파사종-대.흥.덕.종 삼이칠(41)
*돈황본에는 돈교법(돈교법)이라 하고 다른 본에는 견성법(견성법)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교가(교가)의 돈교가 아니요 선무느이 ‘견성돈오교법’을 지칭하는 것이어서, 견성법이 곧 돈교이며 돈교법이 곧 견성법이다. <단경>에서 많이 언급한 돈교는 견성하는 돈오교시(돈오교시)이다.
대사가 이 돈오교법을 전하니 배우는 사람들은 같은 한 몸이기를 바라노라.

대사령전차돈교 원학지인동일체-돈 삼이십

우리 조사가 오직 이 돈법을 전하니 배우는 사람들이 같은 한 몸이기를 바라노라.
오조유전차돈법 원학지인동일체-대.덕.흥.종 삼이십
*조조상전(조조상전 조사와 조사가 서로 전함)은 견성하는 돈오교법뿐이다.

이는 다만 돈교라, 또한 대승(대승)이라 이름하나니, 미혹할 때는 수많은 세월을 지나지만 깨치면 잠깐 사이로다.

차단시돈교 역명위대승 미래경루겁 오즉찰나간-돈 삼이구(42)

이 게송은 돈오 법문이요 또한 큰 법의 배[대법선]이니, 미혹하여 들으면 수많은 세월을 지나지만 깨치면 잠깐 사이로다.

차송 시돈교 역명대법선 미문경루겁 오칙찰나간-흥.덕.종 삼이구(43)
*여러 겁을 잘못 헤매다가도 찰나 사이에 오달하므로 ‘돈(돈)’이라고 한다. 육조의 법문은 유돈무점(유돈무점 오직 ‘돈’만 있고 ‘점’은 없는 것)이어서 돈오하면 곧 바로 불지에 들어가[직입불지] 지위, 점차를 없애는 것이 <단경>의 근본 방침이니, 육조는 이를 ‘직료성불(직료성불 당장 성불해 마침)’이라고 표현하였다.

나는 오조인(오조인)화상의 회하에서 한 번 듣고 말 끝에 크게 깨쳐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다. 그러므로 이 돈법을 뒷날에 널리 퍼지게 하여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돈오케 하여 저마다 스스로 마음을 관찰하여 자기의 본성을 단박에 깨치도록 하는 것이니라.

아어인화상처 일문 언하 대오(오) 돈견진여본성 시고 장차(여)돈법 류행후대 령(금)학도자 돈오보제 각자관심 령자본성 돈오-돈 삼일칠
*돈견본성(돈견본성 본성을 단박에 봄)과 돈오보리(돈오보제 보리를 단박에 깨달음)는 같은 뜻이니, 이것이 육조의 돈교법문이다.

내가 오조스님 밑에서 한 번 듣고 말 끝에 문득 깨쳐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으니, 이러므로 이 교법이 널리 퍼져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돈오하여 저마다 스스로 마음을 살펴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게 하느니라.

아어인화상처 일문 언하 편오 돈견진여본성 시이 장차교법류행 령학도자 돈오보제 각자관심 자견본성(44)-대.흥.덕.종 삼이칠
*다섯 본이 표현에 있어 자구의 차이는 조금 있으나, 근본 뜻은 같으므로 상관이 없다.

법에는 ‘돈’과 ‘점’의 구별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차츰차츰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느니라.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바로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니, 깨치면 원래로 차별이 없느니라.

법무돈점 인유리둔 미(명)점계(권) 오인 돈수 식자(백)본<심> 시견본성 돈즉원무차별-돈 이구오(45)
*‘명’은 각 본에 ‘미’로, ‘권’은 ‘계’로, ‘본’은 ‘본심’으로 되어 있으므로, 잘못되고 빠진 것이 분명하여 바로잡는다. 오인돈수(오인돈수 깨친 사람은 단박에 닦음)는 분명하게 있으므로 식심견성이 곧 돈수임을 말한다. 그리고, 깨달은 뒤에는 영리함과 어리석음[이둔]의 차별도 있을 수 없다.

미혹한 사람은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으니, 스스로 본래 마음을 알고 스스로 본래 성품을 보면 곧 차별이 없느니라.

미인 점계 오자 돈수 자식본심 자견본성 즉무차별-대.흥.덕 이구오(46)
*종보본에는 <미혹한 사람은 점차로 닦고 깨친 이는 단박에 계합한다[미인점수오인돈계]>로 되어 있으나, 근본 뜻은 앞의 항목과 같다.

“청하오니 대사의 세우지 않는다[불입]하심은 어떤 것입니까?”
대사는 말씀하였다.
“자성은 잘못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어서 생각 생각이 반야 지혜로 관조하여 항상 법의 모양을 떠났으니 무엇을 가히 세우리오. 자성은 단박에 닦는 것이니 세우면 점차가 있으므로 세우지 않느니라.”

청대사 불립 여하 대사언 자성(성) 무비무란무치 념념반약관조 상(당)리법상 유하가립 자성돈수 립유점 차소(계)이불립-돈 삼삼팔(47)

“어떤 것이 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자성은 잘못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으며 어지러움도 없어서 생각마다 지혜가 밝게 비춰 항상 법의 모양을 떠나서 자유자재하여 거침이 없으니 무엇을 세운단 말인가? 자기의 성품을 스스로 깨쳐서 돈오돈수(돈오돈수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음)하여 점차가 없느니라.”

여하시불립의 사왈자성 무비무치무란 념념반야관조 상이법상 자유자재 종횡진득 유하가립 자성자오 돈오돈수 역무점차-대.흥.덕.종 339
*식심, 견성, 대오(대오), 돈오는 원해 묘각인 내외명철을 내용으로 한다. 그리하여 삼현(삼현), 십성(십성)을 뛰어넘었으므로 돈오돈수라 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선(육조선)의 근본 사상이다. 그러므로 돈법, 돈교로써 일체의 점문(점문)을 배제한 것이다.

마땅히 반야로 관조하면 찰나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져 이것이 곧 나의 진정한 선지식이라, 한 번 깨침에 곧 부처님을 아느니라. 자기의 성품의 마음자리에 지혜로 관조하여 내외명철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요 곧 해탈이니라. 이미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매니,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무념이니라.

당기반약관조 찰나간 망념 구멸 즉시자진정선지식 일오 즉지불야 자성심지 이지혜관조 내외명(명)철 식자본심 즉시해탈 기득해탈 즉시반약삼매 오반약삼매 즉시무념-돈 삼일팔(49)

반야지혜가 일어나 비추면 한 찰나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지나니, 만약 자기의 성품을 알면 한 번 깨침에 곧 부처님 지위에 이르느니라. 지혜로 비춰서 내외명철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나니, 본래 마음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요, 만약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매니, 이것이 무념이니라.

기반약관조 일찰나간 망념 구멸 약식자성 일오 즉지불지 지혜관조 내외명철 식자본심 약식본심 즉본해탈 약득해탈 즉시반약삼매 즉시무념-대.흥.덕.종 삼일팔(50)
*돈황본에는 ‘한 번 깨침에 부처님을 안다[일오지불]’고 하였고, 각 본에서는 ‘한 번 깨침에 부처님 지위에 이른다[일오불지]’고 하여 표현이 서로 다른 것 같으나, 반야로 관조하여 망념이 다 없어지면 내외명철하여 불지[불지 부처님의 지위]가 아닐 수 없으므로, ‘부처님을 안다[지불]’함은 곧 ‘부처님 지위[불지]’인 것이다. 또한 네 본에서 ‘만약 자기의 성품을 알면 곧 부처님 지위에 이른다[야식자성하면즉지불지]’고 한 것은 ‘식심견성’이 곧 부처님 지위임을 육조가 친히 말씀한 중요한 법문이니, 식심 견성하면 묘각(묘각)인 내외명철임을 더욱 더 뚜렷이 하였다.

법달이 말 끝에 크게 깨치고 말하기를 “이후로 생각생각 부처님 행을 수행하겠습니다”하니, 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부처님 행이 곧 부처님이니라”하였다.

법달 언하 대오 자언 이후 념념수행불행 대사언 즉불행 시불-돈 삼사오(51)
*대승사본에는 ‘부처님 행 닦기를 원한다[원수불행]’, 흥성사본에는 ‘바야흐로 부처님 행을 닦는다[방수불행]’고 하였으나 뜻은 같다. 덕이본과 종보본에는 이 구절이 빠졌으나, 다른 세 본에는 수록되어 있으므로 상관이 없다.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이니 기억과 집착이 없는지라, 광망(광망)을 일으키지 말라. 곧 스스로 진여의 성품이니라. 지혜로써 관조하여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곧 성품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는 것이니라.
돈오견성(돈오견성)하면 불지(불지)이므로 오후점수(오후점수 깨친 뒤에 점차로 닦음)는 필요없고 부처님 행을 수행하는 것이니, 이는 교가의 점수사상으로 어지럽게 된 종문(종문)에 일대 활로(활로)가 되는 것이다.

자성이 삼신(삼신 법신, 보신, 화신의 세 몸)을 갖추어 밝음을 빛내어 사지(사지 부처가 갖추는 세 가지 지혜)를 이루나니, 보고 듣는 인연을 여의지 않고 초연히 부처님 지위에 오르느니라.

자성 구삼신 발명성사지 불리견문연 초연등불지-덕.종 삼오십(52)
*이 항(항)은 뒷 날 덧붙인 ‘참청기연편(참청기연편)’에 들어 있는 것으로 돈황본에는 없으나 <전등록> 등에 육조의 법문으로서 많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육조의 법문임을 의심할 수 없는 유명한 구절이다. 돈오견성하면 삼신, 사지를 이루어 초연히 부처님 지위에 오르니[초연등불지] 오인돈수, 유전돈법(유전돈법 오직 돈법만을 전함)을 항상 주장한 육조의 면목이 뚜렷하다.

4. 무념위종(무념위종)

나의 법문은 옛부터 모두 무념을 세워 종(종)을 삼나니, 모양 없음[무상]으로 몸[체]을 삼고 머뭄 없음[무주]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아자법문 종상이래 「돈점」 개립무념위(무)종 무상위(무)체 무주「무」위본-돈 이구오
*돈점(돈점) 두 자는 군더더기임이 밝혀졌으며, 무념무종(무념무종), 무상무체(무상무체), 무주무위본(무주무위본)은 무념위종(무념위종), 무상위체(무상위체), 무주위본(무주위본)을 잘못 베낀 것이다.

나의 이 법문은 옛부터 먼저 무념을 세워 종을 삼고, 모양 없음으로 몸을 삼고 머뭄 없음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아차법문 종상이래 선립무념위종 무상 위체 무주 위본-대.흥.덕.종 이구오(54)
*육조의 무념은 망상이 다 없어진 불지무념(불지무념 부처님 지위의 무념)이다.

그러므로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시이 립무념위종-돈 이구육

그러므로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소이 립무념위종-대.흥.덕.종 이구육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차교문 립무념위종-돈 이구칠

이 법문은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차법문 립무념위종-대.흥.덕.종 이구칠(55)
*육조가 무념위종(무념위종 무념으로 종을 삼음)을 거듭 말씀하신 것은 육조의 근본 입장이 내외명철한 묘각무념(묘각무념)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이 견해를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 만약 유념(유념 생각 있음)이 없으면 무념도 또한 서지 못하느니라. 없다[무]함은 무슨 일이 없다 함이며, 생각함이란 무슨 물건을 생각함인가? 없다 함은 상대되는 두 모양의 모든 진로(진로 번뇌)를 버림이요, 진여는 생각[념]의 몸[체]이며 생각은 진여의 씀[용]이니라. 자성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견문각지], 만 가지 경계에 물들지 아니 하고 항상 자재하나니, <유마경>에 이르기를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 뜻[제일의]에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였느니라.

세인 리견 불기어념 약무유념 무념 역불립 무자 무하사 념자 념하물 무자 리이상제진로 진여 념지체 념시진여지용 성(성)기념 수즉견문각지(지) 불염만경(경)이상자(백)재 유마경 운 외능선분별제상 내어제일의이불동-돈 이구칠(56)
*무념은 유무(유무)나 선악(선악)처럼 상대되는 두 모양의 진로를 영원히 여읜 진여정념(진여정념)을 말한다.

없다 함은 상대되는 두 모양의 진로의 마음이 없음이요, 생각함이라 함은 진여본성을 생각함이니, 진여는 생각의 몸이요 생각은 진여의 씀이니라, (삭제 부분) 진여의 자성이 생각을 일으켜 여섯 모양을 생각하여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만 가지 경계에 물들지 앟아 참된 성품이 항상 자재하며 밖으로는 비록 모든 물질과 모양[색상]을 분별하나 안으로는 첫째 뜻에서 움직이지 않느니라.

무자 무이상제진로지심 념자 념진여본성 진여 즉시념지체 념 즉시진여지용 (삭제부분)진여자성 기념 념육상 수유견문각지 불염만경이진성 상자재 외능분별제색상 내어제일의이불동-대.흥.덕.종 이구칠(57)
*이 항은 돈황본과 약간 표현이 다르기는 하나, 진로를 영원히 떠난 진여정념(진여정념)의 근본 사상은 같다. 중간에 보조(보조)가 발문(발문)에서 지적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는 부분(진여자성기념 비안이비설능념 진여유성 소이기념 진여야무 안이색 성당시즉괴-삭제부분) 은 삭제하였는데, 돈황 고본에는 이 부분이 처음부터 없으므로 돈황본의 뛰어남을 알 수 있으며, 삭제 부분은 이 항의 본 뜻인 ‘진여정념(진여정념)’을 설명해 보이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이니 기억과 집착이 없는지라, 광망(광망)을 일으키지 말라. 곧 스스로 진여의 성품이니라. 지혜로써 관조하여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곧 성품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는 것이니라.

오차법자 즉시무념 무억무착 막기(거)광망 즉자시진여성(성) 용지혜관조 어일절법 불취불사 즉시견성성불도-돈 삼일삼(59)
*법을 깨달으면 곧 무념이요, 성품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는 것이다.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이라, 기억도 없고 집착도 없으며 망념도 없어서 광망(광망)을 일으키지 않고 자기의 진여의 성품을 써서 지혜로써 관조하여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곧 성품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는 것이니라.

오차법자 즉시무념 무억무저무망 막기광망 용자진여성 이지혜관조 어일절법 불취불사 즉시견성성불도-대.흥.덕.종 삼일삼
*이 항 또한 돈황본과 표현이 약간 다르기는 하나 큰 뜻은 같다. 법을 깨달으면[오법] 무념이요 견성성불임을 말하여 준다.

무념이란 모든 법을 보되 모든 법에 물들거나 매달리지 않으며, 모든 곳에 두루하되 모든 곳에 끄달리지 않느니라.

무념법자 견일절법 불저일체법 편일절처 불저일절처-돈 삼일팔(60)

만약 모든 법을 보되 마음이 물들어 끄달리지 않으면 이것이 무념이니라.

약견일절법 심불염착 시명무념-대.흥.덕.종 삼일팔

모든 경계 위에서 물들지 않음을 무념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일절경(경)상 불염 명위무념-돈 이구육

모든 경계 위에서 일만 가지 경계를 만나서도 마음이 늘 고요하여 생각 위에 모든 경계를 떠나고 경계 위에 마음이 나지 않나니, 그러므로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어제경상 심약능만경 상적 념상 상리제경 불어경상 생심 소이 립무념위종-대 이구육(61)

모든 경계 위에서 마음이 물들지 않음이 무념이라, 자기의 생각 위에 항상 모든 경계를 떠나 경계 위에 마음이 나지 않느니라.

어제경상 심불염왈무념 어자념상 상리제경 불어경상 생심-흥.덕.종 이구육
*모든 경계 위에 마음이 나지 않고 마음이 물들지 않음을 무념이라고 하는 바, 식심견성한 불지무념이 아니면 될 수 없는 것이니, 불오염(불오염 물듦이 없음)은 곧 구경무념(구경무념)을 말한다.

무념법을 깨친 이는 모든 법에 두루 통달하며, 무념법을 깨친 이는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면, 무념법을 깨친 이는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느니라.

오무념법자 만법 진통 오무념법자 견제불경계 오무념법자 지불지위-돈.대.흥.덕.종 삼일팔(62)
*이는 옛 조사들이 특히 많이 인용하는 구절로, 육조는 무념이 곧 만법진통(만법진통 만법이 다 통함), 제불경계(제불경계 모든 부처님의 경계), 불지위(불지위)이므로, 식심견성하면 내외명철, 불지무념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 법문은 언제나 한결같아 터럭만큼도 어김이 없으니, 이 법을 잇는 법손들은 이 철칙(철칙)을 저버려서는 안 되며, 만약 어긋난다면 육조의 법손이 아니다.
이로써 <단경>의 대강을 알았다. <단경>의 목표는 식심견성이며 식심견성은 묘각인 내외명철이므로, 이를 반야삼매, 해탈, 무념이라고 한다.
이는 점차(점차)를 밟아 닦아가지 아니하고 당장 성불해 마친다[직요성불]고 하는 돈수이므로, 육조는 늘 유전돈법을 고창(고창)한 것이다. 돈법이므로 무념으로 종을 삼아서 모든 망념이 사라졌으니, 제불의 경계인 불지라고 단언하였다. 그리하여 견성이 곧 성불임을 청천백일과 같이 선설(선설)하였으며, 깨달은 뒤에는 부처님 행을 수행[수행불행]하였으니, 이 법을 잇는 법손들은 육조의 성의(성의)를 바르게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돈오견성하고 차제점수(차제점수 차례로 차츰차츰 닦음)하여 구경성불(구경성불)한다’는 하택(하택), 규봉(규봉)의 점수사상은 교가(교가)의 전통이요 육조의 사상을 바로 전한 것이 아닌 지해(지해)라고 옛 조사들이 극력 배제한 것이니, 육조의 후손인 우리는 <단경>을 숙독(숙독)하고 실천하여 삿된 길에 빠지지 않도록 힘써 노력하여야 한다.

5. 정혜체일(정혜체일)

나의 이 법문은 정(정)과 혜(혜)로써 근본을 삼나니, 먼저 혜와 정이 서로 다르다고 그릇 말하지 말라. 정과 혜가 한 몸이어서 둘이 아니니, 곧 정은 혜의 몸[체]이요 혜는 정의 작용[용]이니라. 곧 혜의 때에 정이 혜 속에 있고 정의 때에 혜가 정 속에 있나니, 이 뜻은 곧 정과 혜가 함께 함이니라.

아차법문 이정혜위본 제일물미언정혜별 정혜체일불이 즉정시혜체  즉혜시정용 즉혜지시 정재혜즉정지시 혜재정 차의  즉시<정>혜등-돈 이구삼

나의 이 법문은 정, 혜로써 근본을 삼나니, 정, 혜가 서로 다르다고 그릇 말하지 말라. 정과 혜가 한 몸이요 둘이 아니니, 정은 혜의 몸이요 혜는 정의 작용이니라. 곧 혜의 때에 정이 혜에 있고 정의 때에 혜가 정에 있나니, 만약 이 뜻을 알면 정과 혜가 함께 배움이니라.

아차법문 이정혜위본 물미언정혜별 정혜일체불이 정시혜체 혜시정용 즉혜지시 정재혜 즉정지시 혜재(65)정 약식차의 정혜등학-대.흥.덕.종 이구삼(99)
*함께 배운다[등학]함은 정혜등지(정혜등지 정과 혜를 함께 가짐) 곧 자성삼매(자성삼매)를 말함이요 수도방편(수도방편)이 아니니, <열반경> 28에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정과 혜를 함께 하기 때문에 부처의 성품을 밝게 본다[제불세존은 정혜등고로 명견불성이니라]’고 하였다.
이렇게 제불의 자성삼매인 정과 혜를 수행점차(수행점차 수행해 가는 차례)의 방법으로 삼는 것은 큰 착각이며 육조가 말씀하신 정, 혜의 본 뜻이 아니다.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빛 같아서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곧 빛이 없느니라. 등불은 빛의 몸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이니 곧 두 몸이 있으나 두 갈래가 아니니, 이 정과 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정혜 유여하등 여등광 유등즉유광 무등즉무광 등시광지(지)체 광시등지용 즉유이체 무양반 차정혜 역부여시-돈 이구오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빛 같아서 등불이 있으면 빛이 있으나 등불이 없으면 빛이 없나니, 등불은 빛의 몸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이라. 이름은 비록 둘이 있으나 몸은 본래 같은 하나이니, 이 정과 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정혜 유여하등 유여등광 유등즉광 무등즉불광 등시광지체 광시등지용 명수유이 체본동일 차정혜 역부여시-대.흥.덕.종 이구오(67)
*정, 혜를 등불과 빛에 비유한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 대저 정, 혜는 적조(적조 고요함과 비침)를 말함이니, 일체 미망(미망)이 없어지면 자연히 진여혜광(진여혜광)이 드러나 적조가 쌍류(쌍류)하여 정혜등지가 되어 제불의 대적광삼매(대적광삼매)에 들게 된다. 그러므로 정혜등등(정혜등등 정과 혜가 함께 하고 함께 함)의 구경불지(구경불지)가 아니면 정, 혜가 아니요 미망이다.
점문(점문)에서 ‘정으로써 어지러운 생각을 다스리고[이정치평난상] 혜로써 무기를 다스린다[이혜치평무기]’고 하여 이것을 ‘정혜쌍수(정혜쌍수 정, 혜를 쌍으로 닦음)’라고 하나, 이는 정혜등지인 육조의 정, 혜는 아니다.

최상승법을 닦으면 경정코 성불하여 감도 없고 머물음도 없고 옴도 없나니, 정, 혜가 함께 하여 일체법에 물들지 아니하므로 삼세제불이 여기서 삼독(삼독)을 바꾸어 계정혜(계정혜)로 삼느니라.

최상승법 수행 정성불 무거무주무래 시 정혜등 불염일절법 삼세제불 종중 변삼독위계정혜-돈 삼일삼
*정혜등등하면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나니, 이는 삼세제불의 자성삼매(자성삼매)이다.

정, 혜가 서로 다르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은 법에 두 모양이 있느니라.

정혜각별 작차견자 법유이상-돈 이구삼(69)
*정혜각별(정혜각별 정과혜가 서로 다툼)하면 법에 두 가지 모양을 둔 것으로서 정혜등등한 육조의 정혜는 아니니, 종문(종문)에서 금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으로서 어지러운 생각을 다스린다[이정치평난상]’하고, ‘혜로써 무기를 다스린다[이혜치평무기]’고 하여 정과 혜를 각각 따로 하여 점수(점수)의 방편으로 삼으니, 이는 실로 육조의 사상을 거스른 것이다.
그러므로 교가(교가)의 점수사상을 버리고, 오매일여가 되어도 언구(언구)를 참구(참구)하는 바른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곧 대혜(대혜)선사가 오매일여에 이르렀으나 원오(환오)선사는 ‘언구를 의심치 않음이 큰 병이다[불의언구시위대병]’고 꾸짖으므로, 마침내 대혜선사가 대오(대오 크게 깨침)하여 양기정전(양기정전)을 계승한 것이다.
‘오매일여한 때에 점점 이르렀어도 다만 화두하는 마음을 여의지 않음이 중요하다[점도오매일여시에도 지요화두심불이라]’고 한 태고(태고)선사의 유훈(유훈)과 같이, 극히 어려운 오매일여의 깊은 경계에서도 화두를 힘써 참구해야 한다.
만약에 오매일여는 고사하고 몽중일여(몽중일여 꿈속에서 한결같음), 동정일여(동정일여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으나 한결같음)도 안 된 미망에서 화두를 버리고 정혜쌍수를 말한다면 참으로 한심스런 노릇이며 불조의 혜명(혜명)을 끊어 버리는 잘못된 법이니, 오직 <단경>을 스승으로 하여 가르침을 바로 계승하는 본분납승(본분납승)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육조가 천명한 내외명철의 단경사상이다.

곧 마음을 혜라 하고 곧 부처가 이에 정이니, 정과 혜가 함께 하여 마음 속이 청정하니라. 이 법문을 깨침은 너의 익힌 성품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인(인)은 본래로 남[생]이 없음이라, 쌍수(쌍수 쌍으로 닦음)가 바르도다.

즉심명혜 즉불내정 정혜등등 의중 청정 오차법문 유여습성 인본무생 쌍수시정-덕.종 삼삼칠(72)
*이는 나중에 추가된 <참청기연편(참청기연편)>에 들어있다. 이 쌍수를 점수문으로 오해하는 바 있으나, 이는 본 송(송)과 같이 마음속[의중]이 청정하여 정혜등등한 자성무생(자성무생 자성은 남이 없음)에서 하는 말이다. 무생(무생 남이 없음)에서 쌍수(쌍수 쌍으로 닦음)라 함은 적조쌍류(적조쌍류 고요함과 비침이 쌍으로 흐름)라 함과 같으니, 무생을 깨달아 마음 속이 청정하면 자연히 고요하면서 항상 비추고[적이상조], 비추면서 항상 고요하여[조이상적] 적조쌍류라고 말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정혜등등이며 등지(등지 함께 지님, 삼매)라고 하는 바, 정 가운데 혜가 있고 혜 가운데 정이 있어서 정, 혜가 쌍등(쌍등 쌍으로 함께 함)하므로 쌍수라고도 한다.

6. 무생서방(무생서방)
우매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기에 가서 나려 하고 깨친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나니,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그 마음 깨끗함을 따라서 불국토도 깨끗하다’하시니라.

미인 념불 왕생피 오자 자정기심 소이불언 수기심정 칙불토정-돈.대.덕.종 삼이삼

마음에 다만 깨끗치 않음[부정]이 없으면 서쪽 나라가 여기서 멀지 않고, 마음에 깨끗치 못한 생각이 일어나면 염불을 해도 왕생하여 이르기 어렵느니라.

심단무불정 서방 거차불원 심기부정지심 념불 왕생난도-돈 삼이사(74)

마음 자리[심지]에 다만 착하지 않음[부선]이 없으면 서쪽 나라가 여기서 멀지 않고, 만약 착하지 않은 생각을 가지면 염불하여도 왕생하여 이르기 어렵느니라.

심지 단무불선 서방 거차불요 약회불선지심 념불 왕생난도-대.흥.덕.종 삼이사(75)
*정토가(정토가)에서는 대업왕생(대업왕생 업을 지닌 채로 극락 세계에 가서 남)을 주장하여 착하지 못한 사람도 미타(미타)의 원력으로 극락에 가서 난다고 말하지만, 설혹 가서 난다 하여도 이는 자기의 업력(업력)에 따르는 환주장엄(환주장엄)이요, 모든 부처님의 실지정토(실지정토)는 아니다.
내외명철하면 서쪽 나라와 다름 없나니, 이 법을 닦지 않고 어떻게 서쪽 나라에 이르리오.

내외명철 불이서방 불작차수 여하도피-돈.대.흥.덕.종 삼이오
*내외명철은 묘각정토(묘각정토)니, 이것이 육조의 정토이다. 십지(십지)와 등각(등각)도 내외명철한 제불정토(제불정토)와 법신불(법신불)인 아미타불은 보지 못한다.

만약 무생인 돈법(돈법)을 깨치면 서쪽 나라를 봄이 찰나 사이에 있느니라.

약오무생돈법 견서방 지재찰나간-돈.대.흥.덕.종 이구오(76)
*<단경>의 사상은 철두철미한 자성자오(자성자오 자기의 성품을 스스로 깨침)에 있으므로, 그 이외의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한 생각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곳곳마다 연꽃 피나니, 한 꽃에 한 정토요 한 국토에 한 여래로다[일념심청정하면처처에연화개니일화일정토요일토일여래라]’고 한 방거사(방거사)의 송구(송구)가 단경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설사 대업왕생을 한다 하여도 제불정토와 미타면목(미타면목)은 꿈에도 보지 못하나니, 자성자오하여 남이 없음[무생]을 단박에 깨달아(돈증], 참으로 미망으로부터 해탈하여야 한다. 미타(미타)의 진면목(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왕생은 꿈 속의 꼭두각시 놀음[몽중환희]이니, 선가(선가)에서 선정겸수(선정겸수 선과 정토를 함께 닦음) 운운하는 것은 본분납자(본분납자)가 아니며 육조의 법손이 될 수 없다.

7. 불오염수(불오염수)

대사가 말씀하셨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오는고?”
“한 물건이라고 말씀드린다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대사가 말씀하셨다.
“그러면 닦아 증득[수증]하는가?”
“닦아 증득함은 없지 않으나 오염(오염)될 수는 없습니다.”
대사가 말씀하셨다.
“다만 이 오염되지 않음[불오염]은 모든 부처님께선 호념(호념)하시는 바라, 네가 벌써 이러하고 나 또한 이러하니라.”

사왈 십마물 임마래 왈설사일물 즉불중 사왈 환가수증부 왈수증즉불무 오염즉부득 사왈 지차불오염 제불지소호념 여기여시 오역여시-덕.종 삼오 구(78)
*불오염(불오염)을 육조는 무념이라고 하였으며, 무념은 내외명철인 불지(불지)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불지무념이 아니면 불오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오염은 제불의 호념하는 바이며, 너도 이러하고 나 또한 이러하도다>라고 한 것은 부처님행을 수행[수행불행]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면 수증(수증 닦아 증득함)이란 무슨 말인가?
옛 조사들은 이 불오염의 수증을 점차수증(점차수증 점차로 닦아 증득함)이 아니요, 불지인 원증(원증) 후의 원수(원수)라고 하여, 착의끽반(착의끽반 옷 입고 밥 먹음), 소지분향(소지분향 땅을 쓸고 향을 사룸) 등을 지칭하는 바, <털끝만큼도 닦고 배우는 마음이 없고, 모양 없는 빛 속에서 항상 자재하다[부기섬호수학심하고무상광중상자재라]>고 한 것이다.
이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이 수증을 점수사상에 배합하여 망상을 닦아 다스리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이 불오염을 모르는 큰 잘못으로서, 육조의 법문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점수문에서도 불오염을 주장하기는 하나, 점수문의 돈오는 ‘육진의 번뇌가 전과 다름 없어서[객진번뇌 여전무수]’ 무념이 아니므로 생각 생각 오염되어 불오염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념을 돈증(돈증 단박에 깨침)하기 전의 수행은 모두 오염수(오염수)인 것이다. 비록 망념이 본래 공(공)한 것은 안다 하여도, 망념이 계속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므로 경계를 따라 생각이 일어나[우경생념] 전전(전전)히 오염되기 때문이다.

8. 불보리인(불보제인)

만약 수행하여 부처님을 찾는다고 할진댄 어느 곳에서 참됨[진]을 찾으려 하는지 알지 못하노라. 만약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이 있으면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인]이로다.

약욕수행운멱불 불지하처욕구진 약능신중 자유진 유진 즉시성불인-돈 삼팔육
*몸 가운데 진여(진여)가 있는 줄 알면, 이것이 수도하여 성불할 수 있는 씨앗이 된다는 말이다.

만약 수행하여 부처가 되고자 할진댄 어느 곳에서 참됨을 찾으려 하는지 알지 못하노라. 만약 마음 가운데 스스로 참됨을 보면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이로다.

약욕수행멱작불 불지하처의구진 약능심중 자견진 유진 즉시성불인-흥.덕.종 삼팔육(81)
*돈황본에는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이 있다[신중자유진]’고 되어 있고, 다른 각 본에는 ‘마음 가운데에서 스스로 참됨을 본다[심중에자견진]’고 하여 서로 차이가 있다.
‘몸 가운데 참됨이 있음’은 몸 속에 진여가 있음이 되고, ‘마음 가운데에서 스스로 참됨을 본다’함은 진여를 스스로 보는 것인지라 곧 견성이 된다. ‘몸 가운데 참됨이 있음[신중유진]’은 성불하는 씨앗[성불인]이지만, ‘마음 가운에서 참됨을 봄[심중견진]’은 견성인 불과(불과)로서 인지(인지)가 될 수 없으므로 <단경>의 ‘견성즉불(견성즉불 견성이 곧 부처)’이라는 원칙에 어긋난다.
물론 다른 본들도 ‘참됨을 보는 것이 곧 성불하는 씨앗[견진즉성불인]’이라고 하지 않고 돈황본처럼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유진즉성불인]’이라고 하였으므로 원칙상 모순은 없다. 그러나 ‘마음 가운데에서 참됨을 본다[심중견진]’고 해 놓고 바로 뒤에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유진즉시성불인]’이라고 하였으니, 돈황본이 아닌 다른 본들은 자체의 모순을 면치 못하므로 앞뒤의 글이 맞지 않는다.

화신 보신 및 정신이여! 세 몸이 원래 한 몸이니, 만약 몸 가운데서 스스로 보는 걸 찾으면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루는 씨앗이로다.

화신보신급정신 삼신 원본시일신 약향신중 멱자견 즉시성불보제인-돈 삼팔오(83)
*‘멱자견(멱자견)’을 ‘찾아서 스스로 본다’고 하면 이는 견성한다는 말로서 성불하는 씨앗이 아니므로 ‘견성즉불’이라는 원칙에 어긋난다. ‘스스로 보는 걸 찾는다’고 하면 ‘견성하는 길을 닦는다’는 말이므로 성불하는 씨앗이라 하여도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화신 보신 및 정신이여! 세 몸이 원래 한 몸이라, 만약 자성 가운데로 향하여 능히 스스로 보면 곧 성불하는 깨달음의 씨앗이로다.

법신보신급화신 삼신 본래시일신 약향성중 능자견 즉시성불보제인-흥.덕.종 삼팔오(84)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품 가운데서 스스로 본다[성중자견]’함은 견성이 된다. 그런데 견성은 불과(불과)요 인지(인지)가 아니니 ‘성품 가운데서 스스로 본다[성중자견]’고 하면서 ‘성불하는 씨앗[성불인]’이라 하면, <단경>의 ‘견성즉불’이라는 원칙에 어긋난다.
본디 각 본에서는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면 곧 부처라 한다[식심견성 즉명위불]’고 하였고, 또 ‘만약 자성을 알면 곧 부처님 지위에 이른다[야식자성 즉지불지]’고 하여 ‘견성즉불’을 더욱 강조하였으니, 이 대원칙(대원칙)에 이긋나는 것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뒷 사람들이 베껴 쓸 때 잘못하였거나 아니면 일부러 고쳐 바꾼 것일 터이므로, 일본 조동종의 개조(개조)인 도원(도원)의 필사본(필사본)이라는 대승사본에는 논란이 된 앞의 두 구절이 들어 있는 ‘자성진불송(자성진불송)’을 모두 삭제해 버렸다.
모름지기 돈황본 및 다른 본에 일관된 근본 사상은 내외명철, 법신불, 묘각견성(묘각견성), 오인돈수, 자성돈수의 돈법돈교, 불지무념을 전제로 한 무념위종, 식심견성, 오후수행불행(오후수행불행) 등이니, 이에 어긋나는 사상은 모두 없애고, 오직 <단경>의 근본으로 돌아와 육조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어야 한다. 특히 각본 가운데서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면 곧 부처라 한다[식심견성 즉명위불]’, ‘만약 자성을 알면 곧 부처님 지위에 이른다[야식자성 즉지불지]’와 같은 법문은 육조의 가르침을 바로 잇고 드날리는 데 한층 도움이 되는 것이다.
제2편 돈황본단경 편역(편역)
1.서언(서언)

혜능대사가 대범사 강당의 높은 법좌에 올라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고 무상계를 주시니, 그때 법좌 아래에는 스님, 비구니, 도교인, 속인등, 일만여 명이 있었다.
소주 자사 위거와 여러 관료 삼십여 명과 유가의 선비 몇몇 사람들이 대사에게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해주기를 함께 청하였고, 자사는 이윽고 문인 법해로 하여금 모아서 기록하게 하였으며, 후대에 널리 행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함께 이 종지를 이어받아서 서로서로 전수케 한지라, 의지하여 믿는 바가 있어서 이에 받들어 이어받게 하기 위하여 이 <단경>을 설하였다.

혜능대사 어대범사강당중 승고좌 설마가반약파라밀법 수(수)무상계 기시좌하 승니도속 일만여인 소주자사위거(등거) 급제관료(료)삼십여인 유사여인 동청대사설마가반약파라밀법 자사수령문인승법해집기 류행후대(벌)여학도자 승차종지 체상전수 유소의(어)약 이위품승 설차단경

2. 심사(심사)

혜능대사는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마음을 깨끗이 하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하라 !"
대사께서는 말씀하시지 않고 스스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한참 묵묵하신 다음 이윽고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조용히 들어라. 혜능의 아버지의 본관은 법양인데 좌천되어 영남의 신주 백성으로 옮겨 살았고 혜능은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늙은 어머니와 외로운 아들은 남해로 옮겨와서 가는에 시달리며 장터에서 땔나무를 팔았더니라.
어느 날 한 손님이 땔나무를 샀다. 혜능을 데리고 관숙사(관숙사)에 이르러 손님은 나무를 가져갔고, 혜능은 값을 받고저 문을 나서려 하는데 문득 한 손님이 <금강경>을 읽는 것을 보았다.
혜능은 한번 들음에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치고, 이내 손님에게 묻기를
"어느 곳에서 오셨기에 이 경전을 가지고 읽습니까.?" 하였다.
손님이 대답하기를
"나는 기주 황매현 동빙무산에서 오조 홍인화상을 예배하였는데, 지금 그 곳에는 문인이 천여 명이 넘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오조대사가 승려와 속인들에게 다만 <금강경> 한 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바로 부처를 이루게 된다고 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혜능은 숙세의 업연이 있어서, 곧 어머니를 하직하고 황매의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화상을 예배하였다.

능대사언 선지식 정심 념마가반약파라밀법 대사불어 자정심신 량구내언 선지식 정(정)청 혜능자부 본관 범양 좌강천류(령)남신주백성 혜능유소 부소조망 노모 고유 이래(남)해 간신빈핍(지) 어시매(90)(매)시 홀유일객 매시 수령혜능 지어관점 객장시거 혜능 득전 각향문전 홀견일객 독금강경 혜능 일문 심명(명)편오 내문(문)객왈 종하처래 지차경전 객 답왈 아어기주황매현(현)동빙무(묘)산 예배오조홍인화상 견금(령)재피 문인 유천여중 아어피청견대사권도속 단지(특)금강경일권 즉득견성 직료성불 혜능 문설 숙업유연 편즉사친 왕황매빙무(묘)산 예배오조홍인화상(91)

홍인화상께서 혜능에게 묻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에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며, 이제 나에게서 새삼스레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셨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제자는 영남 사람으로 신주의 백성입니다. 지금 짐짓 멀리서 와서 큰스님을 예배하는 것은 다른 것을 구함이 아니옵고 오직 부처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 하였다.
오조대사께서는 혜능을 꾸짖으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영남 사람이요 또한 오랑캐거니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하셨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니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오조스님은 함께 더 이야기하시고 싶었으나, 좌우에 사람들이 둘러 서 있는 것을 보시고 다시 더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혜능을 내보내어 대중을 따라 일하게 하시니, 그 때 혜능은 한 행자가 이끄는 대로 방앗간으로 가서 여덟 달 남짓 방아를 찧었다.

홍인화상 문혜능왈 여 하방인 래차산 예배오 여금향오변 부구하물 혜능 답왈 제자 시령(령)남인 신주백성 금고원래 예배화상 불구여물 유구<작>불법 「작」 대사수책혜능왈 여시령(령)남인 우시갈료 약위감작불 혜능 답왈 인 즉유남북 불성(성) 즉무남북 갈(93)료신 여화상 불동 불성(성) 유하차별 대사욕갱공의 견좌우재방변 대사갱불언 수발견혜능 령수중작무 시유일행자 수차혜능어대방 답대팔개여월(94)
*금강경(금강경)... ‘이 한 권의 경이 중생의 자성 속에 본래 있으니, 스스로 보지 못하는 이는 다만 문자만 독송할 것이요, 만약 본래 마음을 깨치면 이 경이 문자 속에 있지 않음을 비로소 알비니라[차일권경 중생성중 본유 불자견자 단독송문자 약오본심 시지차경 불재문자 -금강경서-육조]’
*직료성불(직요성불 곧바로 요달하여 부처를 이룸)... 지위와 점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성불함이니 <영가증도가(영가증도가)>의 일초직입여래지(일초직입여래지 한 번 뛰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간다)와 같은 뜻이다.

3. 명게(명게)

오조 횽인대사께서 하루는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셨다. 문인들이 다 모이자 말씀하혔다.
"내 저희들에게 말하나니, 세상 사람들의 나고 죽는 일이 크거늘 너희들 문인들은 종일토록 공양을 하며 다만 복밭만을 구할 뿐 나고 죽는 괴로운 바다를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모두 자성이 미혹하다면 복의 문이 어찌 너희들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 스스로 잘 살펴보라. 지혜가 있는 자는 본래의 성품인 반야의 지혜를 스스로 써서 각기 게송 한 수를 지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육대의 조사가 되게 하리니, 어서 빨리 서둘도록 하라."

오조홍인어일일 환문인진래 문인 집흘(기) 오조왈 오향여(여)설 세인 생사사대 여등문인 종일공양 지구복전 불구출리생사고해 여등자성(성) 미 복문 하가구여 여총차귀방자간 유지(지)혜자 자(백)취본성(성)반약지지(지지) 각작일게정오 오간여게 약오(오)대의자 부여의법 품위육대 화급급(97)

문인들이 처분을 받고 각기 자기 방으로 돌아와 서로 번갈아 말하기를
"우리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뜻을 써서 게송을 지어 큰스님께 모름지기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상좌는 우리의 교수사이므로 신수상좌가 법을 얻은 후에는 저절로 의지하게 된 터이니 굳이 지을 필요가 없다."하고, 모든 사람들은 생각을 쉬고 다들 감히 게송을 바치지 않았다.
그때 화공 노진이 홍인대사의 방 앞에 있는 삼칸의 복도에 '능가변상'과 오조 대사가 가사와 법을 전수하는 그림을 그려 공양하고, 후대에 전하여 기념하고 자 벽을 살펴보고서 다음날 착수하려고 하였다.

문인 득처분 각래각지자방 체상위언 아등 불수정심용의작게 장정화상 신수상좌 시교수사 수상좌득법후 자가의(어)지 청불용작 제인 식심 진불감정게 시대사당전 유삼간방랑 어차랑하 공양 욕화릉가변 병화오조대사 전수의법 류행후대 위기 화인로진(령)간벽료 명일 하수(98)

4. 신수(신수)

상좌인 신수는 생각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교수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오조스님께서 나의 마음 속의 견해가 얕고 깊음을 어찌 아시리오. 내가 마음의 게송을 오조스님께 올려 뜻을 밝혀서 법을 구함은 옳거니와, 조사의 지위를 넘봄은 옳지 않다.
도리어 범인의 마음으로 성인의 지위를 빼앗음과 같다. 그러나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마침내 법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한참을 아무리 생각하여도 참으로 어렵고 어려우며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로다. 밤이 삼경에 이르면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마음의 게송을 지어서 써 놓고 법을 구해야겠다. 만약 오조스님께서 게송을 보시고 이 게송이 당치 않다고 나를 찾으시면 나의 전생 업장이 두터워서 합당히 법을 얻지 못함이니, 성인의 뜻은 알기 어려우므로 내 마음을 스스로 쉬리라.'

상좌신수사유 제인 불정심게 연아위교수사 아약불정심게 오조여하득견아심중 견해심천 아장심게 상오(99)조정의 구법 즉선(즉선구법) 멱조 불선 각동범심 탈기성위 약불정심 종(수)불득법 량구사유 심난심난 심난심난 야지삼경 불령인견 수향남랑하중간(문)벽상 제작정심게 욕구어법 약오조견게 언차게어<불감> 약방멱아 아숙업장중 불합득법 성의난칙 아심자식(100)

신수상좌가 밤중에 촛불을 들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게송을 지어 써놓았으나 사람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수상좌 삼경 어남랑하중간벽상 병촉제작게 인진불지(화) 게왈

  신시보제수     심여명경대(101)
  시시권불(불)식  막사유진애

신수상좌가 이 게송을 다 써 놓고 방에 돌아와 누웠으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오조스님께서 아침에 노공봉을 불러 남쪽 복도에 '능가변상'을 그리게 하려 하시다가, 문득 이 게송을 보셨다. 다 읽고 나서 공봉에게 말씀하셨다. "홍인이 공봉에게 돈 삼만냥을 주어 멀리서 온 것을 깊이 위로하니, 변상을 그리지 않으리라. <금강경>에 말씀하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 하셨으니, 이 게송을 그대로 두어서 미혹한 사람들로 하여금 외우게 하여, 이를 의지하여 행을 닦아서 삼악도에 떨어지니 않게 하는것만 못할 것이다. 법을 의지하여 행을 닦으면 사람들
에게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니라."  
이윽고 홍인대사께서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여 게송 앞에 향을 사르게 하시니,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므로 오조스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모두 이 게송을 외우라. 외우는 자는 바야흐로 자성을 볼 것이며,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 않으리라."
문인들이 다들 외우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훌륭하다!'고 말씀하였다.

신수상좌제차게필 귀방와 병무인견 오조평단 수환(환)로공봉래 남랑하 화릉가변 오조홀견차게 독흘(청기) 내위공봉왈 홍인 여공봉전삼십천 심로원래(102) 불화변상야 금강경 운 범소유상 개시허망 불여류(류)차게 령미인송 의차수행 불타삼악 의법수행 인유대리익 대사수환문인진래 분향게전 인중 입(인)견 개생경심 <오조왈> 여등 진송차게자 방득견성(성) 의(어)차수행 즉불타락 문인진송 개생경심 환언선재(103)    

오조스님이 신수상좌를 거처로 불러서 물으시되,
"네가 이 게송을 지은 것이냐? 만약 네가 지은 것이라면 마땅히 나의 법을 얻으리라." 하셨다.
신수상좌가 말하기를,
"부끄럽습니다. 실은 제가 지었습니다만 감히 조사의 자리를 구함이 아니오니, 원하옵건대 스님께서는 자비로써 보아 주옵소서. 제자가 작은 지혜라도 있어서 큰 뜻을 알았습니까?" 하였다.
오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은 이 게송은 소견이 당도하였으나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였다. 범부들이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견해를 가지고 위 없는 보리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문 안으로 들어와야만 자기의본성을 보느니라. 너는 우선 돌아가 며칠 동안 더 자성을 보았다면 마땅히 가사와 법을 너에게 부촉 하리라."하셨다.
신수상좌는 돌아가 며칠을 지냈으나 게송을 짓지 못하였다.

오조(갈)수환수상좌어당내 문(문)시여작게부 약시여작 응득아법 수상좌언 죄과 실시신수작 불감구조 원화상 자비 간 제자유소지혜 식대의부 오조(갈)왈 여작차게 견즉래도 지도문전 상미득입 범부의(어)차게수행 즉부타락 작차견해 약멱무상보제 즉미가득 수입득문 견자본성(성) 여차거 일양일래사유 갱작일게 래정오 약입득문 견자본성(성) 당부여의법 수상좌거 수일작불득(105)
*‘이 게송을 외는 이는 바야흐로 자성을 본다.[송차게자 방득견성]’고 함은 오조(오조)가 대중을 유인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다.

5. 정게(정게)

한 동자가 방앗간 옆을 지나면서 이 게송을 외고 있었다. 혜능은 한번 듣고, 이 게송이 견성하지도 못하였고 큰 뜻을 알지도 못한 것임을 알았다.
혜능이 동자에게 묻기를,
"지금 외우는 것은 무슨 게송인가?"하였다. 동자가 혜능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너는 모르는가? 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전하고저 한다 하시고, 문인들로 하여금 각기 게송 한 수씩을 지어와서 보이라 하시고, 큰 뜻을 깨쳤으면 가사와 법을 전하여 육대의 조사로 삼으리라 하셨는데, 신수라고 하는 상좌가 문득 남쪽 복도 벽에 모양 없는 게송(무상게) 한 수를 써 놓았더니, 오조스님께서 모든 문인들로 하여금 다 외우게 하시고, 이 게송을 깨친 이는 곧 자기의 성품을 볼 것이니,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나고 죽음을 벗어나게 되리라고 하셨다."

유일동자 어대방변과 창송차게 혜능 일문 지미견성(성) 미(즉)식대의 능 문동자 적래송자 시하언게 동자답능왈 이불지 대사언 생사사(시)대 욕전의(어)(107)법 령문인등 각작일게 래정간 오대의 즉부의법 품위육대조(갈) 유일상좌명신수 홀어남랑하 서무상게일수 오조(갈)령제문인 진송 오차게자 즉견자성(성) 의차수행 즉득출리(108)

혜능이 대답하기를
"나는 여기서 방아찧기를 여덟 달 남짓 하였으나 아직 조사당 앞에 가 보질 못하였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나를 남쪽 복도로 인도하여 이 게송을 보고 예배하게 하여 주게. 또한 바라건대 이 게송을 외워 내생의 인연을 맺어 부처님 나라에 나기를 바라네"하였다.
동자가 혜능을 인도하여 남쪽복도에 이르렀다. 혜능은 곧 이 게송에 예배 하였고, 글자를 알자 못하므로 어느 사람에게 읽어 주기를 청하였다. 혜능은 듣고서 곧 대강의 뜻을 알았다. 혜능은 한 게송을 지어, 다시 글을 쓸 줄 아는 이에게 청하여 서쪽 벽 위에 쓰게 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을 나타내 보였다. 본래 마음을 모르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으니,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아야만 곧 큰 뜻을 깨닫느니라.
혜능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또 게송에서 말하였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절 안의 대중들이 혜능이 지은 게송을 보고 다들 괴이하게 여기므로, 혜능은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오조스님이 문득 혜능의 게송을 보시고, 곧 큰뜻을 잘 알았으나, 여러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하시어 대중에게 말씀하기를
"이도 또한 아니로다!"하셨느니라.

혜능 답왈 아차답대팔개여월 미지당전 망상인 인혜능지남랑하 견차게예배 역원송취 결래생연 원생불지 동자인능지남랑하 능 즉예배차게 위불식자 청일인독 혜<능>문(문)이 즉식대의 혜능 역작일게 우청득일해서인 어서간벽상 제(제)저 정자본심 불식본(109) 심 학법무익 식심견성(성) 즉오(오)대의 혜능게 왈

  보제 본무수 명경 역무대
  불성(성) 상청(청)정 하처유진애

우게왈

  심시보제수 신위명경대
  명경본청정 하처염진애

원내도(종)중 견능작차게 진괴 혜능 각입대방 오조(갈)홀견혜능게(단) 즉선「지」식대의 공중인지 오조내위중인왈 차역미득료(110)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불성상청정 하처유진애]’... 각 유통 본에는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일어나리오[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로 되어 있다.

6. 수법(수법)

오조스님께서 밤중 삼경에 혜능을 조사당 안으로 불러 <금강경>을 설해 주셨다. 혜능이 한번 듣고 말끝에 깨쳐서 그날 밤으로 법을 전해 받으니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이내 오조스님은 단박 깨치는 법과 가사를 전하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육대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써 신표로 삼을 것이며, 대대로 이어받아 서로 전하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치도록 하라."
오조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혜능아, 예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서 목숨은 실날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속히 떠나라."

오조야지(지)삼경 환혜능당내 설금강경 혜능 일문 언하 편오(오) 기야수법 인진불지 편전돈법급의 여위육대조 의장위신 품대대상전 법이심전심 당령자오 오조언 혜능 자고전법 명(기)여현사 약주차(113)간 유인해여 여즉수속거(114)

혜능이 가사와 법은 받고 밤중에 떠나려 하니 오조스님께서 몸소 구강역까지 혜능을 전송해 주시었으며, 떠날 때 문득 오조스님께서 처분을 내리시되,
“너는 가서 노력하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삼 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하지 말라. 환란이 일어나리라. 뒤에 널리 펴서 미혹한 사람들을 잘 지도하여, 만약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침과 다름이 없으리라.” 하셨다.
이에 혜능은 오조스님을 하직하고 곧 떠나서 남쪽으로 갔다.

능 득의법 삼경 발거 오조자송능어구강역 등시 편오(오)조처분 여거노력 장법향남 삼년 홀홍차법 난기(거) 재후홍화 선유미인 약득심개 여오 무별 사위이료 편발향남(115)  

두 달 가량 되어서 대유령에 이르렀는데, 뒤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쫓아 와서 혜능을 해치고 가사와 법을 빼앗고자 하다가 반쯤 와서 다들 돌아간 것을 몰랐었다. 오직 한 스님만이 돌아가지 않았는데 성은 진이요 이름은 혜명이며, 선조는 삼품장군으로,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하여 바로 고갯마루까지 쫓아 올라와서 덮치려 하였다. 혜능이 곧 가사를 돌려 주었으나 또한 받으려 하지 않고 "제가 짐짓 멀리 온 것은 법을 구함이요 그 가사는 필요치 않습니다" 하였다.
혜능이 고갯마루에서 문득 법을 전하니 혜명이 법문을 듣고 말끝에 마음이 열리었으므로, 혜능은 혜명으로 하여금 "곧 북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하셨다.

양월중간 지대유(경)령 불지향후 유수백인래 욕의해(두)혜능 탈의(어)법 래지반로 진총각회 유유일승 성진 명혜명(순) 선 시삼품장군 성행 추악 직지령상 래진범저 혜능 즉환법의 우불긍취 아고원래 구법 부요기의 능 어령상 편전법혜명(순) 혜명(순) 득문 언하심문개 능 사혜명(순) 즉각향북화인래(116)
*박학다문한 대선배인 신수(신수)를 물리치고 일자무식인 초동목수(초동목수)에게 대법을 전하였으니, 불법은 문자에 있지않고 견성에 있는 것임을 알겠다.
*변전돈법(변전돈법 곧 돈법을 전수함)... <단경>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돈법뿐이오 점법(점법)은 없으니, 점수(점수)를 말함은 단경의 법이 아니다.

7. 정혜(정혜)
혜능이 이곳에 와서 머무른 것은 모든 관료, 도교인, 속인들과 더불어 오랜 전생부터 많은 인연이 있어서이다. 가르침은 옛 성인이 전하신 바요 혜능 스스로 안 것이 아니니, 옛 성인의 가르침 듣기를 원하는 이는 각각 모름지기 마음을 깨끗이 하여, 듣고 나서 스스로 미혹함을 없애어 옛 사람들의 깨침과 같기를 바랄지니라.[아래로부터는 법(법)이니라.]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보리반야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부터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지도를 구하여 자기의 성품을 보아라.
선지식들아, 깨치게 되면 곧 지혜를 이루느니라.

혜능 래의(의)차지 여제관료(탈)도속 역유루겁지인 교시선성(성)소전 불시혜능자지 원문선성(성)교자 각수정심 문요원자제(여)미 여(어)선대오 혜능대사환언 선지식 보제반약지지(지) 세인 본자유지 즉연심미 불능자오 수구대선지식 시도(도) 견성 선지식 우오즉성지(118)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정과 혜로써 근본을 삼나니, 첫째로 미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정과 혜는 몸이 하나여서 둘이 아니니라.
곧 정은 이 혜의 몸이요 혜는 곧 정의 씀이니, 곧 혜가 작용할때 정이 혜에 있고 곧 정이 작용할 때 혜가 정에 있느니라.
선지식들아, 이 뜻은 곧 정,혜를 함께 함이니라. 도를 배우는 사람은 짐짓 정을 먼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하여 정을 낸다고 해서 정과 혜가 각각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소견을 내는 이는 법에 두 모양이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착함을 말하면서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혜와 정을 함께 함이 아니요, 마음과 입이 함께 착하여 안팎이 한가지면 정,혜가 곧 함께 함이니라. 스스로 깨쳐 수행함은 입으로는 다투는 데 있지 않다. 만약 앞 뒤를 다투면 이는 곧 미혹한 사람으로서 이기고 지는 것을 끊지 못함이니, 도리어 법의 아집이 생겨 네 모양(사상)을 버리지 못함이니라.

선지식 아차법문 이정혜위본 제일물미언혜정 별 정혜 체일불이 즉정시혜체 즉혜시정용 즉혜지시 정재혜 즉정지시 혜재정 선지식 차의 즉시<정>혜등 학도지인 작의 막언선정발혜 선혜발정 정혜각별 작차견자 법유이상 구설선 심불선 혜정불등 심구구선 내외일「중」종 정혜즉등 자오수행 불재구쟁 약쟁선후 즉시<미>인 불단승부 각생법아 불리사상(120)

일행삼매란 일상시에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정명경>에 말씀하기를 '곧은 마음이 도량이요 곧은 마음이 정토다'라고 하였느니라.
마음에 아첨하고 굽은 생각을 가지고 입르로만 법의 곧음을 말하지 말라.
입으로는 일행삼매를 말하면서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부처님 제자가 아니니라. 오직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고 일행삼매에 국집하여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곧은 마음이라고 하며, 망심을 제거하여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이 법은 무정과 같은 것이므로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니라.
도는 모름지기 통하여 흘러야 한다. 어찌 도리어 정체할 것인가? 마음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곧 통하여 흐르는 것이요, 머물러 있으면 곧 속박된 것이니라.
만약 앉아서 움직이지 않음이 옳다고 한다면 사리불이 숲속에 편안히 앉아있는 것을 유마힐이 꾸짖었음이 합당하지 않느니라.
선지식들아, 또한 어떤 사람이 사람들에게 '앉아서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보되, 움직이지도 말고 일어나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이것으로써 공부를 삼게하는 것을 본다. 미혹한 사람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문득 거기에 집착하여 전도됨이 곧 수백 가지이니, 이렇게 도를 가르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짐짓 알아야 한다.

일행삼매자 어일절시중 행주좌(좌)와 상행직(진진)심(121)
시 정명경 운 직(진)심 시도장 직(진)심 시정토 막심행도곡(전) 구설법직 구설일행삼매 불행직(진)심 비불제자 단행직(진)심 어일절법 무「상」유집저 명일행삼매 미인 저법상 집일행삼매 직(진)심 좌불동 제망불기심 즉시일행삼매 약여시 차법 동무정(청) 각시장도인연 도수(순)통류 하이각체 심<불>주재 즉통류 주즉피(피)박 약좌불동 시 유마힐 불합가사리불 연좌(좌)림중 선지식 우견유인 교인좌(좌) 간심간정 불동불기 종차치공 미인 불오 변집성전 즉유수백반(반) 여차교도자 고지(지)대착(122)

선지식들아,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그 빛과 같으니라,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곧 빛이 없으므로, 등불은 빛의 몸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지만 몸은 둘이 아니다. 이 정,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 정혜 유여하등 여등광 유등즉유광 무등즉무광 등시광지(지)체 광시등지용 <명>즉유이 체무양(124)반 차정혜법 역부여시(125)
*정혜위본(정혜위본 정.혜를 근본으로 삼음)...‘모든 부처님은 정.혜가 함께 하므로 불성을 밝게 본다.[제불세존은 정혜등고로 명견불성하니라-열반경이십팔]’고 함과 같이 정혜등지(정혜등지)가 된 부처라야 견성(견성)이므로 정혜로써 근본을 삼는다고 한 것이다.
*일행삼매(일행삼매)는 행주좌와(행주좌와)에 정.해가 등등(등등)한 삼매이다.

8.무념(무념)

선지식들아, 법에는 단박 깨침과 점차로 깨침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느니라.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하느니라.

선지식 법무돈점 인유리둔 미(명)즉점계(권) 오인 돈수 식자본<심> 시견본성 오즉원무차별 불오 즉장겁륜회선지식 아자법문 종상이래 「돈점」개립무념위(무)종(126)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예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무념)을 세워 종(종)을 삼으며 모양 없음(무상)으로 본체를 삼고 머무름 없음(무주)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새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과 지금의 생각과 다음의 생각이 생각생각 이어져 끊어짐이 없나나, 만약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이 곧 육신을 떠나느니라.
순간순간 생각할 때에 모든 법 위에 머무름이 없나니, 만약 한생각이라도 머무르면 생각마다에 머무는 것이므로 얽매임이라고 부르며 모든 법 위에 순간순간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하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는 것 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무상위(무)체 무주「무」위본 하명(명)무(위)상 무상자 어상이리상 무념자 어념이불념 무주자 위인본성 념념불주 전념금(념)념후념 념념상속(독) 무유단절 약일념단절 법신 즉시리색신 념념시중 어일절법상무주 일념약주 념념즉주 명계박 어일체법상 념념불주 즉무박야 <시>이무주 위본(127)

선지식들아, 밖으로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모양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모양을 여의기만 하면 자성의 본체는 청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양이 없는 것으로 본체를 삼느니라.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을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하나니, 자기의 생각 위에서 경계를 떠나고 법에 대하여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니라. 일백 가지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서 생각을 모두 제거하지 말라. 한 생각 끊어지면 곧 다른 곳에서남(생)을 받게 되느니라.
도를 배우는 이는 마음을 써서 법의 뜻을 쉬도록 하라. 자기의 잘못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권하겠는가. 미혹하여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한 경전의 법을 비방하나니, 그러므로 생각 없음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미혹한 사름은 경계 위에 생각을 두고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그것을 반연하여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이 이로부터 생기느니라.

선지식 외리일절상 시무상 단능리상 성체청정 「시」 시이무상위체 어일절경(경)상 불염 명위무념 어자념(128)상리경(경) 「불」불어법상념생 막백물사 념진제각 일념 단 즉「무」별처수생 학도자 용심 막불식법의 자착 상가 갱권타인 미불자견 「미」 우방경법 시이립무념위종 즉연미(명)인 어경(경)상 유념 념상 변기사(거야)견 일절진로망념 종차이생(129)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세상 사람이 견해를 여의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만약 생각함이 없으면 생각 없음도 또한 서지 않느니라.
없다 함은 두 모양의 번뇌를 떠난 것이고, 생각함은 진여의 본성을 생각하는 것으로서, 진여는 생각의 본체요 생각은 진여의 작용이니라. 그러므로 자기의 성품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일만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하느니라. <유마경>에 말씀하시기를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뜻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하였느니라.

연차교문 립무념위종 세인 리견 불기어념 약무유념 무념 역부립 무자 무하사 념자 「념」하물 무자 리이상제진로 「념자 념진여본성」 진여 시념지체 념(130)시진여지용 「자」성(성)기념 수즉견문각지(지) 불염만경(경)이상자재 유마경 운 외능선분별제법상 내어제일의이불동(131)
*오인돈수(오인돈수 깨친 이는 단박에 닦음)... 육조는 불지(불지)만을 돈오견성(돈오견성 단박에 깨쳐서 성품을 봄)으로 인정하였으며, 불지에는 오후점수(오후점수 깨친 뒤 점차로 닦음)가 없으므로 오인돈수라고 한 것이다.
*무념위종(무념위종 생각 없음로 종을 삼음)... 등각(등각) 이하의 모든 중생은 모두 망념이 있으므로[금강이환의 일절중생은 개시유념일새]중생이라 하고, 모든 부처는 다 무념을 얻었으므로 부처라고 이름하느니라.
*십지(십지).등각(등각)도 유념(유념 생각이 있음)이요 불지만이 무념(무념 생각이 없음)이니, 견성은 불지무념(불지무념)이므로 무념위종이라고 한 것이다.

9.좌선(좌선)

선지식들아, 이 법문 중의 좌선은 원래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깨끗함에도 집착하지 않느니라. 또한 움직이지 않음도 말하지 않나니, 만약 마음을 본다고 말한다면, 마음은 원래 허망한 것이며 허망함이 허깨비와 같은 까닭에 볼 것이 없느니라. 만약 깨끗함을 본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함에도 허망한 생각으로 진여가 덮인 것이므로 허망한 생각을 여의면 성품은 본래대로 일으켜 깨끗하느니라. 자기의 성품이 본래 깨끗함은 보지 아니하고 마음을 일으켜 깨끗함을 보면 도리어 깨끗하다고 하는 망상이 생기느니라.
망상은 처소가 없다. 그러므로 본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허망된 것임을 알라. 깨끗함은 모양이 없거늘, 도리어 깨끗한 모양을 세워서 이것을 공부라고 말하면 이러한 소견을 내는 이는 자기의 본래 성품을 가로막아 도리어 깨끗함에 묶이게 되니라.
만약 움직이지 않는 이가 모든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면 이는 자성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미혹한 사람은 자기의 몸은 움직이지 아니하나 입만 열면 곧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나니, 도와는 어긋나 등지는 것이니라.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본다고 하는 것은 도리어 도를 가로막는 인연이니라.

선지(제)식 차법문중 좌(좌)선 원불저심 역불저정 역불언「불」동 약언간심 심원시망 망여환(유)고 무소간야 약언간정 인성(성) 본정 위망념고 개복진여 리망념 본성(성)정 불견자성(성)본정 심기간정 각생정망 망무처소 고지간자 「간」 각시망야 정무형상 각립정상 언시공부 작차견자 장(장)자본성(성) 각피정박 약불동자 「불」견일절인과환 시 성불동 미(133)인 자신 불동 개구즉설인시비 여도위배 간심간정 각시장도인연(134)

이제 너희들에게 말하나니, 이 법문 가운데 어떤 것을 좌선이라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는 일체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좌)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는 것이 선(선)이니라.
어떤 것을 선정이라 하는가?
밖으로 모양을 떠남이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정이다. 설사 밖으로 모양이 있어도 안으로 성품이 어지럽지 않으면 본래대로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정)이니라. 그러나 다만 경계에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부딪쳐 곧 어지럽게 되나니, 모양을 떠나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이니라. 밖으로 모양을 떠나는 것이 곧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이니, "밖으로 선(선)하고 안으로 정(정)하므로 선정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유마경>에 말씀하기를 '즉시에 활연히 깨쳐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는다'하였고, <보살계>에 말씀하시기를 '본래 근원인 자성이 깨끗하다'고 하였느니라.
선지식들아, 자기의 성품이 스스로 깨끗함을 보아라. 스스로 닦아 스스로 지음이 자기 성품인 법신이며, 스스로 행함이 부처님의 행위이며, 스스로 짓고 스스로 이룸이 부처님의 도이니라.

금기여 시차법문중 하명좌(좌)선 차법문중 일절무애 외어일절경계상 념불기(거)위좌 「내」견본성(성)불난 위선 하명위선정 외리(잡)상왈선 내불난왈정 외(135)약유상 내성(성)불난 본자정자정 지연경촉 촉즉난 리상불난 즉정 외리상 즉선 내「외」불난 즉정 외선내정 고명선정 유마경 운 즉시(시)활연 환득본심 보살계 운 본원(수)자성(성) 청정 선지식 견자성(성)자정 자수자작 자성(성)법신 자행 불행 자작자성 불도(136)
*정.혜를 함께 한 부처의 무념(무념)만이 선정이요 그밖의 것은 모두 번뇌.진로이다.

10.삼신(삼신)

선지식들아, 모두 모름지기 자기의 몸으로 모양 없는 계(무상계)를 받되, 다 함께 혜능의 입을 따라 말하라.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삼신불을 보게 하리라.
"나의 색신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천백억화신불에 귀의 하오며, 나의 색신의 당래원만보신불에 귀의합니다". [이상 세번 부름]
색신은 집이므로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앞의 세 몸은 자기의 법성 속에 있고 세상 사람이 다 가진 것이다. 그러나 미혹하여 보지 못하고 밖으로 세 몸의 부처를 찾고 자기 색신 속의 세 성품의 부처는 보지 못하느니라.
선지식들은 들으라. 선지식들에게 말하여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색신에 있는 자기의 법성이 세 몸의 부처를 가졌음을 보게 하리라.

선지식 총수자체 이(여)수무상계 일시 축혜능구도 령선지식 견자삼신불 어자색신 귀의(의)청정법신불 어자색신 귀의(의)천백억화신불 어자색신 귀의(의)당래원만보신불 이상삼창 색신 시사택 불가언귀 향자삼(138)신 재자법성 세인진유 위미(명)불견 외멱삼「신」여래 불견자색신중삼성불 선지식 청 여(여)선지식설 령선지식 어(의)자색신 견자법성 유삼신(세)불(139)

이 세 몸의 부처는 자성으로부터 생긴다. 어떤 것을 깨끗한 법신의 부처라고 하는가?
선지식들아, 세상 사람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깨끗하여 만 가지 법이 자기의 성품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악한 일을 생각하면 곧 악을 행하고 모든 착한 일을 생각하면 문득 착한 행동을 닦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다 자성 속에 있어서 자성은 항상 깨끗함을 알라.
해와 달은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서 일월성신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지헤의 바람이 불어 구름과 안개를 다 걷어 버리면 삼라만성이 일시에 모두 나타나느니라.
세상 사람의 자성이 깨끗함도 맑은 하늘과 같아서, 혜(혜)는 해와 같고 지(지)는 달과 같다. 지혜는 항상 밝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 자성이 밝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 참법문을 열어 주어 미망을 불어 물리쳐 버리면 안팎이 사무쳐 밝아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다 나타나나니, 모든 법에 자재한 성품을 청정법신이라 이름하느니라.
스스로 돌아가 의지함이란, 착하지 못한 행동을 없애는 것이며 이것을 이름하여 돌아가 의지함이라 하느니라.

차삼신불 종성상생 하명청정「법」신불 선지식 세인 성 본자정 만법 재자성(성) 사량일체「악」사 즉행어(의)악 사량일절선사 변수어선행 지여시일절법 진재자성(성) 자성(성) 상청정 일월상명(명) 지위운복개 상명(명)하암 불능요견일월성(서)신 홀우혜(혜)풍 취산 권진운무 만상삼(삼)라 일시개현 세인성정 유여청천 혜여일 지여월 지혜상명(명) 어외저경(간경) 망념부운 개복 자성(성) 불능명 고우선지식 개(140)진법 취각미(명)망 내외명(명)철 어자성(성)중 만법 개견 일절법 자재성(성) 명위청정법신 자귀의(의)자제불선행 시명귀의(의)(141)

어떤 것을 천백억화신불이라고 하는가?
생각하지 않으면 자성은 곧 비어 고요하지만 생각하면 이는 곧 스스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악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지옥이 되고 착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이 되고 독과 해침은 변화하여 축생이 되고 자비는 변화하여 보살이 되며, 지혜는 변화하여 윗세계가 되고 우치함은 변화하여 아랫나라가 된다. 이같이 자성의 변화가 매우 많거늘, 미혹한 사람은 스스로 알아보지를 못한다.
한 생각이 착하면 지혜가 곧 생기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자성의 화신이라하니라.

하명위천백억화신불 불사량 성즉공적 사량 즉시자화 사량악법 화위지옥 사량선법 화위천당 독해(142)
화위축생 자비 화위보살 지혜 화위상계 우치 화위하방 자성(성)변화심다(명) 미인 자불지견 일념선 지혜즉생 <차명자성화신>(143)

어떤 것을 원만한 보신불이라고 하는가?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애나니,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항상 미래만을 생각하라. 항상 미래의 생각이 착한 것을 이름하여 보신이리고 하는니라.
한 생각의 악한 과보는 천년의 착함을 물리쳐 그치게 하고 한 생각의 착한 과보는 천년의 악을 물리쳐 없애나니,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미래의 생각이 착함을 보신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법신을 좇아 생각함이 곧 화신이요, 순간순간의 생각마다 착한 것이 곧 보신이요, 스스로 깨쳐 스스로 닦음이 곧 돌아가 의지하는 것이다. 가죽과 살은 색신이며 집으로 귀의할 곳이 아니다. 다만 세 몸을 깨치면 큰 뜻을 아느니라.

<하명원만보신불> 일등 능제천년암 일지능멸만년우 막사향전 상사어후 상후념선 명위보신 일념악보 각천년선지(심) 일념선보 각천년악멸 무시(상)이래 후념선 명위보신 종법신사량 즉시화신 념념선 즉시보신 자오자수 즉명귀의(의)야 피육 시색신 시사택 불재귀의(의)야 단오삼신 즉식대의(억)(144)
*내외명철(내외명철 안팎이 사무쳐 밝음)은 묘각(묘각)이니 불교의 구경(구경)이다. ‘시방세계 및 몸과 마음이 깨끗한 유리처럼, 내외명철은 식음(식음)이 다하였다고 이름하나니, 부처님의 묘장엄해에 들어가 보리를 원만케 하니라[십방세계와 급신심이 여폐류리하야 내외명철을 명식음진이니 입어여래묘장엄해하야 원만보제니라 - 릉엄경 십].’
‘깨끗한 유리 속에 밝은 달을 담은 것 같으면 문득 지위를 초월하여 괴해(과해)에 들어가 무소득에 돌아가나니, 바야흐로 구경극칙이라고 이름하느니라[여정류리내함보월하면 편초월지위하야 입어과해하야 귀무소득이니 방명구경극칙이니라 - 감산릉암통의 십]’
‘만약에 식음이 다하면 바아흐로 지위를 넘어 얻는 바가 없이 구경을 원만성취하여 깨끗한 유리에 보배달을 담음과 같으니라[약득식음진하면 방초지위하야 요무소득하야 구경원성하야 여정류리내함보월하니라 - 종경록 팔십팔].’
‘수정영락은 안팎이 사무쳐 밝아서 묘각에 항상 머무나니, 일체지혜의 지위라고 이름하느니라[수정영락은 내외명철하야 묘각에 상주하니 명일절지지니라 - 영락경 상].’
*육조스님은 내외명철을 청정법신이라고 하였다. 이는 불교의 구경인 원교불상(원교불상 원교의 부처님 모습)이다.
“묘각의 지위에 들어가서 청정법신을 성취하니, 원교불상이니라[입묘각위하야 성청정법신하니 원교불상야니라 - 천태사교의 원교장 일].‘
*조사스님의 말씀을 구차하게 교리에 배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육조스님이 강조하신 내외명철은 불교의 구경극칙인 원교묘각(원교묘각)이다. 육조스님은 내외명철이라야 식심견성(식심견성 마음을 알아 성품을 봄)이라고 하였으니, 종문의 표방(표방)인 견성(견성)은 불교의 구경묘각 즉 성불(구경묘각즉성불)임이 분명하다.

11.사원(사원)

이제 이미 스스로 삼신불에 귀의하여 마쳤으니, 선지식들과 더불어 네 가지 넓고 큰 원을 발하리라. 선지식들아, 다 함께 혜능을 따라 말하라.

무량한 중생 다 제도하기를 서원합니다.
무량한 번뇌 다 끊기를 서원합니다.
무량한 법문 다 배우기를 서원합니다.
위 없는 불도를 이루기를 서원합니다. [이상 세번 부름]

선지식들아,
무량한 중생을 맹세코 다 제도한다 함은 혜능이 전지식들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중생을 각기 자기의 몸에 있는 자기의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자기의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한다고 하는가?
자기 육신 속의 삿된 견해와 번뇌와 어리석음과 미망에 본래의 깨달음의 성품을 스스로 가지고 있으므로 바른 생각으로 제도하는 것이니라.
이미 바른 생각인 반야의 지혜를 깨쳐서 어리석음과 미망을 없애버리면 중생을 저마다 스스로 제도한 것이니라, 삿됨이 오면 바름으로 제도하고 미혹함이 오면 깨침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이 오면 지혜로 제도하고 악함이 오면 착함으로 제도하며 번뇌가 오면 보리로 제도하나니, 이렇게 제도함을 진실한 제도라고 하느니라.
무량한 번뇌를 맹세코 다 끊는다 함은 자기의 마음에 있는 허망함을 제거하는 것이다. 무량한 법문을 맹세코 다 배운다 함은 위 없는 바른 법을 배우는 것이다. 위 없는 불도(불도)를 맹세코 이룬다 함은 항상 마음을 낮추는 행동으로 일체를 공격하며 미혹한 집착을 멀리 여의고, 깨달아 반야가 생겨 미망함을 없애는 것이다. 곧 스스로 깨쳐 불도를 이루어 맹세코 바라는 힘(서원력)을 행하는 것이니라.

금기자귀의삼신불이 여선지식 발사홍대원 선지식 일시 축혜능도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변서원단 법문무변서원학 무상불도서원성 선지식 중생무변서원도 불시혜능 도선지식 심중중생 각어자신 자성(성)자도 하명자성(성)자도 자색신중 사견번뇌 우치미(명)망 자유본각성 장정견도 기오정견 반약지지 제각우치미망 중생 각각자도 사래(견) 정도 미래 오도 우래지도 악래선도 번뇌래보제(살)도 여시도자 시명진도 번뇌무변서원단 자심 제허망 법문무변서원학 학무상정법 무상불도서원성 상하심행 공경일절 원리미집 각지생반야 제각미망 즉자오불도성 행서원(148)력

12. 참회(참회)

지금 이미 사홍서원 세우기를 마쳤으니 선지식들에게 '무상참회(무상참회:모양 없는 참회)'를 주어서 삼세의 조장을 없애게 하리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우치와 미혹에 물들지 않고, 지난 날의 나쁜 행동을 일시에 영원히 끊어서 자기의 성품에서 없애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니라.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고 지난 날의 거짓과 속이는 마음을 없애도록 하라.
영원히 끊음을 이름하여 자성의 참회라고 한다. 과거의 생각,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질투에 물들지 않아서 지난 날의 질투하는 마음도 없애도록 하라. 자기의 성품에서 만약 없애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이니라." [이상 세번 부름]

선지식들아, 무엇을 이름하여 참회라고 하는가?
참(참)이라고 하는 것은 종신토록 잘못을 짓지 않는 것이요, 회(회)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아는 것이다. 나쁜 죄업을 항상 마음에서 버리지 않으면 모든 부처님 앞에서 입으로 말하여도 이익이 없느니라. 나의 이 법문 가운데는 영원히 끊어서 짓지 않음을 이름하여 참회라 하느니라.

금기발사홍서원흘 여선지식 무상참회 <멸>삼세죄장 대사언 선지식 전념후념급금념 념<념>불피우미염 종전악행 일시<영단> 자성(성) 약제 즉시참회 전념후념금념 념념<불>피우치염 제각종전교광심 영단명위자성참 전념후념급<금념> 념념불피달투(달질)염(151)
제각종전질투(구)심 자성 약제 즉시참 이상삼창 선지식 하명참회 <참>자 종신불작 회자 지어전비 악업 항불리심 제불전 구설무익 아차법문중 영단불작 명위참회(152)
*견성을하여 업식종자(업식종자)가 전부 소멸하여야만 참다운 참회이다.

13. 삼귀(삼귀)

지금 이미 참회하기를 마쳤으니 선지식들을 위하여 '무상삼귀의계(무상삼귀의계:무양이 없는 삼귀의계)'를 주리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깨달음의 양족존께 귀의하오며, 바름의 이욕존께 귀의하오며, 깨끗함의 중중존께 귀의합니다.
지금 이후로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고 다시는 삿되고 미혹한 외도에게 귀의하지 않겠사오니,바라건대 자성의 삼보께서는 자비로써 증명하소서'하라.
선지식들아, 혜능이 선지식들에게 권하여 자성의삽보에게 귀의하게 하나니, 부처란 깨달음이요 법이란 바름이며 승이란 깨끗함이니라."

금기참회이 여선지식 수(수)무상삼귀의계 대사언 선지(지)식 귀의(의)각양족존 귀의(의)정리욕<존> 귀의(의)정중중존 종금이후 칭불위사 갱불귀의(의)여사미(명)외도 원자<성>삼보 자비증(등)명(명) 선지식 혜능 권「선」선지식 귀의(의)<자성>삼보 불자 각야 법자 정야 승자 정야(154)

자기의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되고 미혹이 나지 않고 적은 욕심으로 넉넉한 줄을 알아, 재물을 떠나고 색을 떠나는 것을 양족존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바름으로 돌아가 생각마다 삿되지 않으므로 곧 애착이 없나니, 애착이 없는 것을 이욕존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깨끗함으로 돌아가 모든 번뇌와 망념이 비록 자성에 있어도 자성이 그것에 물들지 않는 것을 중중존이라고 하느니라. 범부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삼귀의계를 받는다. 그러나 만약 부처님에게 귀의한다고 할진대는 부처가 어느 곳에 있으며, 만약 부처를 보지 못한다면 곧 귀의할 바가 없느니라. 이미 귀의할 바가 없으면 그 말이란 도리어 허망될 뿐이니라.
선지식들아, 각각 스스로 관찰하여 그릇되게 마음을 쓰지 말라. 경의 말씀 가운데 '오직 스스로의 부처님께 귀의한다'하였고 다른 부처에게 귀의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자기의 성품에 귀의하지 아니하면 돌아갈 바가 없느니라.

자심 귀의각 사미(명)불생 소욕지족 리재리색 명양족존 자심 귀정 념념무사고 즉무애저 이무애저 명리욕존 자심 귀정 일절진로망념 수재자성(성) 자성(성) 불염저 명중중존 범부 <불>해 종일지일 수(155)삼귀의(의)계 약언귀불 불재하처 약불견불 즉무소귀 기무소귀 언각시망 선지식 각자관찰 막착용의 경중 지즉언자귀의불 자성(성) 불귀 무소귀처(156)
 
14. 성공(성공)

지금 이미 삼보에게 스스로 귀의하여 모두를 지극한 마음들일 것이니 선지식들을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리라.
선지식들아, 비록 마하반야바리밀법을 생각은 하나 알지 못하므로 혜능이 설명하여 주리니, 각각 잘 들으라.

마하반야바라밀이란 서쪽 나라의 범어이다. 당나라 말로는 '큰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니라. 이 법은 모름지기 실행할 것이요 입으로 외우는데 있지 않다. 입으로 외우고 실행하지 않으면 꼭두각시와 같고 허깨비와 같으나, 닥고 행하는 이는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어떤 것을 마하라고 하는가?
마하란 큰 것이다. 마음의 한량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으나 빈 마음으로 앉아 있지 말라. 곧 무기공에 떨어지느니라.
허공은 능히 일월성신과 대지산하와 모든 초목과 악한 사람과 착한 사람과 악한 법과 착한 법과 천당과 지옥을 그 안에 다 포함하고 있다. 세상 사람의 자성이 빈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금기자귀의(의)삼보 총각각지심 여선지식 설마가반야파라밀법 선지식 수념 불해 혜능여설 각각청(157) 마가반야파라밀자 서국범어 당언 대지혜피안도 차법 수행 불재구<념> 구념불행 여<환>여화 수행자 법신 여불 등야 하명마가 마가자 시대 심량 광대 유여허공 막공(정)심좌(좌) 즉락무기(기)공 <허공> 능함일월성신 대지산하(하) 일절초목 악인선인 악법선법 천당지옥 진재공중 세인성공 역부여시(158)

자성이 만법을 포함하는 것이 곧 큰 것이며 만법 모두가 다 자성인 것이다.
모든 사람과 사람 아닌 것과 악함과 착함과 악한 법과 착한 법을 보되, 모두 다 버리지도 않고 그에 물들지도 아니하여 마치 허공과 같으므로 크다고 하나니, 이것이 곧 큰 실행이니라.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우고 지혜 있는 이는 마음으로 행하느니라. 또한 미혹한 사람은 마음을 비워 생각하지 않은 것을 크다고 하나, 이도 또한 옳지 않느니라.
마음의 한량이 넓고 크다고 하여도 행하지 않으면 곧 작은 것이다. 입으로만 공연히 말하면서 이 행을 닦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성함만법 시대 만법 진시자성(성) 견일체인급비인 악지(지)여선 악법선법 진개불사 불가염저 유(유)(159)여허공 명지위대 차시마가행 미인 구념 지자 심<행> 우유미(명)인 공심불사 명지위대 차역불시 심량 <광>대 불행 시소(소) 막구공설 불수차행 비아제자(160)

15. 반야(반야)

어떤 것을 반야라고 하는가.?
반야는 지혜이다. 모든 때에 있어서 생각마다 어리석지 않고 항상 지혜를 행하는 것을 곧 반야행이라고 하느니라.
한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기고 한생각이 지혜로우면 곧 반야가 나거늘,
마음 속은 항상 어리석으면서 '나는 닦는다'고 스스로 말하느니라.
반야는 형상이 없나니, 지혜의 성품이 바로 그것이니라.
어떤 것을 바라밀이라고 하는가?
이는 서쪽 나라의 범음으로서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니라.
뜻을 알면 생멸을 떠난다.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서 물에 파랑이 있음과 같나니, 이는 곧 이 언덕이요, 경계를 떠나면 생멸이 없어서 물이 끊이지 않고 항상 흐름과 같나니, 곧 저 언덕에 이른다고 이름하며, 그러므로 바라밀이라고 이름하느니라.

하명반약 반약 시지혜 일<절>시중 념념불우 상행지혜 즉명반약행 일념우 즉반약절 일념지 즉반약생 심중상우 <자언>아수 반약 무형상 지혜성 즉시 하명파라밀 차시서국범음 언피안도 해의 리생멸 저경(경) 생멸기(거) 여수유파랑 즉시어차안 리경 무생멸 여수승장류 고즉명도피안 고명파라밀(161)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우고 지혜로운 이는 마음으로 행한다.
생각할때 망상이 있으면 그 망상이 있는 것은 곧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 생각마다 행한다면 이것을 진실이 있다고 하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반야의 법을 깨친 것이며 반야의 행을 닦는 것이다.
닦지 않으면 곧 범부요 한생각 수행하면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선지식들아, 번뇌가 곧 보리니,
앞생각을 붙잡아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 생각에 깨달으면 곧 부처니라.
선지식들아, 마하반야바라밀은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라. 머무름도 없고 가고 옴도 없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다 이 가운데로부터 나와 큰 지혜로써 저 언덕에 이르러 번뇌와 진로를 쳐부수나니,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니라.
가장 으뜸임을 찬탕하여 최상승법을 수행하면 결정코 성불하여, 감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며 내왕 또한 없나니, 이는 정과 혜가 함께 하여 일체법에 물들지 않음이라.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서 삼독을 변하게 하여 계.정.혜로 삼느니라.

미인 구념 지자 심행 당념시유망 유망 즉비진유 념념약행 시명진유 오차법자 오반약법 수반약행 불수즉범 일념수행 법신 등불 선지식 즉번뇌시보제 착전념 미즉범 후념 오즉불 선지식 마가반약파라밀 최존최상제일 무주무거무래 삼세제불 종중출 장대지(지)혜)도피안 타파오음번뇌진로 최존최상제일 찬최상 최상승법 수행 정성불 무거무주무래주 시 정혜등 불염일절법 삼세제불 종중변삼독 위계정혜(163)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팔만 사천의 지혜를 좇느니라. 무엇 때문인가?
세상에 팔만 사천의 질로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로가 없으면 반야가 항상 있어서 자성을 떠나지 않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이니라. 기억과 집착이 없어서 거짓되고 허망함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이 곧 진여의 성품이다.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니도 않나니, 곧 자성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느니라.

선지식 아차법문 종팔만사천지혜 하이고 위세유팔만사천진노 약무진노 반약상재 불리자성(성) 오차법자 즉시무념 무억(억)무저 막기(거)광망 즉자시진여성(성) 용지(지)혜관조 어일절법 불취불사 즉견성(성)성불도(165)
*오즉불(오즉불 깨치면 곧 부처)... 육조는 불지(불지) 이외는 깨달음[오]으로 인정치 않는다.
*최상최존(최상최존 가장 으뜸이고 가장 높음)... 육조가 설하신 법문의 전체를 두고 말함이다.

16. 근기(근기)

선지식들아, 만약 매우 깊은 법의 세계에 들고자 하고 반야삼매에 들고자하는 사람은 바르게 반야바라밀의 행을 닦을 것이며 오로지 <금강반야바라밀경>한 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반야삼매에 들어가느니라.
이 사람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경에서 분명히 찬탄하였으니, 능히 다 갖추어 설명하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최상승법으로서 큰 지혜와 높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만약 근기와 지혜가 작은 사람이 이 법을 들으면 마음에 믿음이 나지 않나니, 무엇 때문인가?
비유하면 마치 큰 용이 큰 비를 내리는 것과 같다. 염부제에 비가 내리면 풀잎이 떠다니듯 하고, 만약 큰비가 큰 바다에 내리면 불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대승의 사람은 <금강경> 설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깨치고 안다.
그러므로 본래 성품이 스스로 반야의 지혜를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서 문자를 빌리지 않음을 알라.
비유컨데, 그 빗물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님과 같다. 원래 용왕이 강과 바다 가운데서 이 물을 몸으로 이끌어 모든 중생과 모든 초목과 모든 유정. 무정을 다 윤택하게 하고, 그 모든 물의 여러 흐름이 다시 큰 바다에 들어가고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여 한 몸으로 합쳐지는 것과 같나니, 중생의 본래 성품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 약욕입심심법계 입반약삼매자 직수반약파라밀행 단지금강반약파라밀경일권 즉득견성 입반약삼매 당지차인공덕 무량 경중 분명(명)찬탄 불능구설 차시최상승법 위대지상근인설 소(소)근지인 약문<차>법 심불생신 하이고 비여대룡 약하대우 우어(의)염부제 여표초엽 약하대우 우어(방)대해 불증불감 약대승자 문설금강경 심개오해 고지본성 자유반약지지 자용지(지)혜관조 불가문자 비여기우수불종천(무)유 원시룡왕 어강해중 장신인차수 령일절중생 일절초목 일절유정무정 실개몽(상)윤 제수중류 각입대해 해납중수 합위일체 중생본성 반약지지 역부(167)여시

근기가 작은 사람은 단박에 깨치는 이 가르침을 들으면, 마치 근성이 작은 대지의 초목이 큰 비를 맞고 모두 다 저절로 거꾸러져서 자라지 못함과 같나니, 작은 근기의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반야의 지혜가 있는 점은 큰 지혜를 가진 사람과 또한 차별이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법을 듣고도 곧 깨치지 못하는가?
삿된 소견의 장애가 무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해가 능히 나타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반야의 지혜도 또한 크고 작음이 없으나 모든 중생이 스스로 미혹한 마음이 있어서 밖으로 닦아 부처를 찾으므로 자기의 성품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이같이 근기가 작은 사람일지라도 단박에 깨치는 가르침을 듣고 밖으로 닦는 것을 믿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마음에서 자기의 본성으로 하여금 항상 바른 견해를 일으키면 번뇌, 진로의 중생이 모두 다 당장에 깨치느니라. 마치 큰 바다가 모든 물의 흐름을 받아들여서 작은 물과 큰 물이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곧 자성을 보면 안팎에 머물지 아니하며 오고감에 자유로워 집착하는 마음을 능히 없애어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나니, 마음으로 이 행을 닦으면 곧 <반야바라밀경>과 더불어 본래 차별이 없느니라.

소(소)근지인 문설차돈교 유여대지초목근성자소(소)(169)자 약피대우일옥 실개자도(도) 불능증장 소(소)근지인 역부여시 유반약지지 「지」 여대지지인 역무차별 인하문법즉불오 연사견장중 번뇌근심 유여대운 개복어일 불득풍취 일무능현 반약지지 역무대소 위일체중생 자유미심 외수멱불 미(래)오자성 즉시소근인 문기돈교 불신외수 단어자심 령자본성 상기정견 번뇌진노중생 당시진오 유여대해납어중류 소수대수합위일체 즉시견성 내외불주 래거자유 능제집심 통달무애 심수차행 즉여반약파라밀경 본무차별(170)
*반야삼매(반약삼매)... 식심견성하면 반야삼매라고 육조는 말했다.

17. 견성(견성)

모든 경서 및 문자와 소승의 대승과 십이부의 경전이 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나니, 지혜의 성품에 연유한 까닭으로 능히 세운 것이니라. 만약 내가 없다면 지헤있는 사람과 모든 만법이 본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요, 일체 경서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음'을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사람 가운데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기 때문에, 어리석으면 작은 사람이 되고 지혜로우면 큰 사람이 되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지혜있는 이에게 묻고 지혜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성하여 어리석은 이로 하여금 깨쳐서 알아 마음이 열리게 한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쳐서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과 더불어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알라, 깨치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한생각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그러므로 알라, 모든 만법이 다 자기의 몸과 마음 가운데 있느니라. 그럼에도 어찌 자기의 마음을 좇아서 진여의 본성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 말씀하기를 "나의 본래 근원이 자성이 청정하다"고 하였다.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면 스스로 부처의 도를 성취하나니, 당장 활연히 깨쳐서 본래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

일체경서급문자 소대이승 십이부경 개인<인>치 인지혜성고 고「연」능건립 아약무 지인 일체만법 본무불(172)유 고지만법 본인(종)인흥 일체경서인인설유 연재인중유「유」우유지 우위소(소)고 지위대인 미인문(문미인)어지자 지인여우인설법 령사우자 오해심(심)개 미인 약오심개 여대지인무별 고지불오 즉「시」불시중생 일념약오 즉중생「불」시불 고지일체만법 진재자신심중 하불종어자심 돈현진여본성(성) 보살계경 운 아본원(원)자성(성) 청정 식심견성 자성불도 즉시활연 환득본심(173)
*오즉시불(오즉시불 깨치면 곧 부처)... 거듭 말하건대, 육조의 깨달음은 불지(불지)뿐이요 십지.등각은 깨달은 경지가 아니다.

18. 돈오(돈오)

선지식들아, 나는 오조 홍인화상의 회하에서 한 번 듣자 그 말끝에 크게 깨쳐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으니라.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법을 뒷세상에 유행시켜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단박 깨쳐서 각기 스스로 마음을 보아 자기의 성품을 단박 깨쳐게 하는 것이다.
만약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는 모름지기 큰 지식들을 찾아서 지도를 받아 자성을 받아 자성을 볼 것이니라.
어떤 것을 큰 선지식이라고 하는가?
최상법이 바른 길을 곧게 가리키는 것임을 아는 것이 큰 선지식이며 큰 인연이다. 이는 이른바 교화하고 지도하여 부처를 보게 하는 것이니, 모든 착한 법이 다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느니라, 모름지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자성을 볼지니라.
만약 자기의 마음의 삿되고 미혹하여 망념으로 전도되면 밖의 선지식이 가르쳐 준다 하여도 스스로 깨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반야의 관조를 일으키라. 잠깐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곧 자기의 참 선지식이라, 한번 깨침에 곧 부처를 아느니라.

선지식 아어인화상처 일문 언하 대오(오) 돈견진여본성 시고장차(여)교법 류행후대 령(금)학도자 돈(175)오(오)보제 각자관심 령자본성 돈오 약<불>능자오자 수멱대선지식시도(역도) 견성(성) 하명대선지<식> 해최상승법 직시정로 시대선지식 시대인연 소위(위)화도(도)령득견불 일체선법 개인대선지식능발기 고삼세제불 십이부경 운재인성중 본자구유 불능자성(성)오 수득선지식시도(도) 견성 약자오자 불가외선지식 약취외구선지식 망득해탈(설) 무유시처 식자심내선지식 즉득해<탈> 약자심 사미 망념전도 외선지식 즉유교수 「여약」불득자오 당기반약관조 찰나간 망념 구멸 즉시자진정선지식 일오즉지불야(176)

자성의 마음자리가 지혜로써 관조하여 안팎이 사무쳐 밝으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고,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이것이 곧 해탈이며, 이미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곧 무념이니라.
어떤 것을 무념이라고 하는가?
무념법이란 모든 법을 보되 그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면, 모든 곳에 두루하되 그 모든 곳에 집착치 않고 항상 자기의 성품을 깨끗이 하여 여섯 도적들로 하여 오고감에 자유로운 것이다. 이것이 곧 반야삼매이며 자재해탈이니 무념행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온갖 사물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항상 생각이 끊어지도록 하지 말라. 이는 곧 법에 묶임이니 곧 변견이라고 하느니라.
무념법을 깨친 이는 만법에 다 통달하고, 무념법을 깨친 이는 이는 모든 부처의 경계를 보며, 무념의 돈법을 깨친 이는 부처의 지위에 이르느니라.

자성심지 이지혜관조 내외명(명)철 식자본심 약식본심 즉시해탈 기득해탈 즉시반약삼매 오반약삼(178)매즉시무념 하명무념 무념법자 견일체법 불저일체법 편일체처 불저일체처 상정자성 사육적 종육문주출 어육진중 불리불염 래거자유 즉시반약삼매 자재해탈 명무념행 막백물불사 상(당)령념절 즉시법박(전) 즉명변견 오무념법자 만법진통 오무념법자 견제불경계 오무념돈법자 지불위지(179)
*돈견본성(돈견본성 본래 성품을 단박에 봄)... 내외명철하면 이것이 곧 식심(식심 마음을 앎).해탈.무념이고, 무념은 곧 불지라 하였다. 내외명철은 묘각이며, 식심은 견성(견성 성품을 봄)이므로, 견성하면 묘각해탈이요 불지무념이다. 그러므로 견성하면 곧 성불인 것이다.
‘곧 불성을 보아서 아뇩다라삼보리를 얻느니라[즉견불성하야 득아누다라삼막삼보제니라 - 열반경 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불성을 보느니라[필득아누다라삼막삼보제하야 득견불성이니라 - 열반경 이십]’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상정각 곧 성불이니, 위의 글들은 성불과 견성이 동일한 내용임을 말한다.
‘지위가 십지인 보상이라 하여도 오히려 불성을 밣게 보지 못하느니라[보살이 위계십지하여도 상미명요지견불성이니라 - 열반경 팔]’
‘모든 부처님은 정.혜를 함께 함으로써 불성을 밝게 보느니라[제불세존은 정혜등고로 명견불성이니라 - 열반경 이십팔].’
‘보살의 지위가 다하여 미세한 망념을 멀리 떠남으로써 심성을 보나니, 구경각이라고 이름하느니라[보살지진하야 이원리미세념고로 득견심성이니 명구경각이니라 - 기신론].’
‘십지의 성인들이 법문을 설하기를 구름 이는 듯하고 비오듯 하여도, 견성은 비단으로 눈을 가리운 것과 같으니라[십지성인이 설법은 여운여우하야도 견성은 여격라곡이니라 - 운문 전등록 십구].’
‘견성하면 곧 부처가 되느니라[견성하면 즉성여래니라 - 종경록 사십사].]
*이상과 같이 부처님과 조사들이 한결같이 견성이 곧 성불이라고 하였으니, 육조스님 말씀과 같다. 그리고 교가(교가)의 권위인 현수(현수)도 그의 <기신론의기(기신론의기)>에서 구경불지(구경불지)만이 견성이라고 하였으니, ‘견성이 곧 성불’임은 선(선).교(교)를 통한 근본 철칙이다.

19.멸죄(멸죄)

선지식들아, 뒷 세상에 나의 법을 얻는 이는 항상 법신이 너희의 좌우를 떠나지 않음을 보리라.
선지식들아, 이 돈교의 법문을 가지고 같이 보고 같이 행하여 소원을 세워받아 지니되 부처님 섬기듯이 함으로써, 종신토록 받아 지녀 물러나지 않는 사람은 성인의 지위에 들어가고자 하느니라.
그러나 전하고 받을 때에는 모름지기 예부터 말없이 부촉하여 큰 서원을 세워서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곧 모름지기 분부한 것이니라.
만약 견해가 같지 않거나 뜻과 원이 없다면 곳곳마다 망령되어 선전하여 저 앞사람을 손상케 하지 말라. 마침내 이익이 없느니라. 만약 만나는 사람이 알지 못하여 이 법문을 업신여기면 백겁 만겁 천생토록 부처의 종자를 끊게 되리라.

선지식 후대 득오(오)법자 상견오법신 불리여좌우 선지식 장차돈교법문 동견동행 발원수지 여사(시)불고 종신수지이불퇴자 욕입성위 연수전(박)수시 종상이래 묵연이부어법 발대서원 불퇴보제 즉수분부 약불동견해 무유지원 재재처처 물망선전 손피전인 구( 귀)경무익 약우인불해 만차법문 백겁만겁천생 단불종성(183)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나의 '모양 없는 게송'을 들어라. 너희 미혹한 사람들의 죄를 없일 것이니 또한 '죄를 없애는 게송(멸죄송)'이라고 하느니라."
게송에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은 복은 닦고 도는 닦지 않으면서
복을 닦음이 곧 도라고 말한다.
보시 공양하는 복이 끈이 없으나
마음 속 삼업은 원래대로 남아 있도다.
만약 복을 닦아 죄를 없애고자 하여도
뒷 세상에 복은 얻으나 죄가 따르지 않으리오
만약 마음 속에서 죄의 반연 없앨 줄 안다면
저마다 자기 성품 속의 참된 참회니라.
만약 대승의 참된 참회를 깨치면
삿됨을 없애고 바름을 행하여 죄 없어지리.
도를 배우는 사람이 능히 스스로 보면
곧 깨친 사람과 더불어 같도다.
오조께서 이 단박 깨치는 가르침을 전하심은
배우는 사람이 같은 한 몸 되기를 바라서이다.
만약 장차 본래의 몸을 찾고자 한다면
삼독의 나쁜 인연을 마음 속에서 씻어 버려라.
힘써 도를 닦아 유유히 지내지 말라.
어느덧 헛되이 지나 한세상 끝나리니
만약 대승의 단박 깨치는 법을 만났거든
정성들여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라.

대사께서 법을 설하여 마치시니, 위사군과 관료와 스님들과 도교인과 속인들의 찬탄하는 말이 끊이지 않고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사언 선지식 청오(오)설무상송(송) 령여미(명)자죄멸 역명멸죄송 송왈
    우인수복불수도  위언수복이시<도>.
    포시공양복무변  심중삼업원래재.
    약장수복욕멸죄  후세득복죄무조.
    약해향심제죄연  각자성(세)중진참회(해).
    약오대승진참회(해) 제사행정조무죄.
    학도지인능자관  즉여오인동일례.
    대사령전차돈교  원학지인동일체.
    약욕당래멱본신  삼독악연심중세.(185)
    노력수도막유유  홀연허도일세휴.
    약우대승돈교법  건성합장지심구.
대사설법료 위사군관료승중도속  찬언무진 석소미문   (186)
*동견동행(동견동행 같이 보고 같이 행함)···같은 아래 글에서 ‘만약 견해가 같지 않으면[야불동견해]’이라고 함과 같이 ‘견해가 같음’을 말한다.
*대승돈교(대승돈교)···삼승(삼승) 가운데의 대승이 아니요 최상최존(최상최존)의 표현이며, 최상최존의 돈오교법(돈오교법)을 말한 것이다.

19.공덕(공덕)

위사군이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께서 법을 설하심은 실로 부사의합니다. 제자가 일찍이 조그마한 의심이 있어서 큰스님께서 여쭙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큰스님께서는 대자대비로 제자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의심이 있거든 물으라. 어찌 두 번 세 번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위사군이 물었다.
"대사께서 설하신 법은 서쪽 나라에서 오신 제일조 달마조사의 종지가 아닙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제자가 듣자오니 달마대사께서 양무제를 교화하실 때, 양무제가 달마대사께 묻기를, '짐이 한평생 동안 절을 짓고 보시를 하며 공양을 올렸는데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사자 달마대사께서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시니, 무제는 불쾌하게 여겨 마침내 달마를 나라 받으로 내보내었다고 하는데 이 말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청컨대 큰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으니, 사군은 달마대사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 무제가 삿된 길에 집착하여 바른 법을 모른 것이니라."

사군 예배 자언 화상설법 실불사의 제자상(당)유소의 욕문(문)화상 망「의」화상 대자대비 위제자설 대사언 유의(의)즉문(문) 하수재삼 사군문(문) 법 가불「불」시서국제일조달마조사종지 대사언시 제자견설 달마대사화(벌)양무제(체) 문달마 짐 일생이(미)래 조사포시공양 유「유」공덕부 달마답언 병무공(189)덕 무제 추창 수견달마 출경 미심차언 청화상설 육조언 실무공덕 사군 「짐」 물의달마대사언 무제저사도 불식정법(190)

위사군이 물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습니까?"
육조도사께서 말씀하셨다.
"절을 짓고 보시하며 공양을 올리는 것은 다만 복을 닦는 것이다. 복을 공덕이라고 하지는 말라. 공덕은 법신에 있고 복밭에 있지 않느니라. 자기의 법성에 공덕이 있나니, 견성이 곧 공(공)이요, 평등하고 곧음이 곧 덕(덕)이니라. 안으로 불성을 보고 밖으로 공경하라. 만약 모든 사람을 경멸하고 아상(아상)을 끊지 못하면 곧 스스로 공덕이 없고 자성은 허망하여 법신에 공덕이 없느니라.
생각마다 덕을 행하고 마음이 평등하여 곧으면 곧 가볍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항상 공격하고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곧 공이요, 스스로 마음을 닦는 것이 곧 덕이니라. 공덕은 자기의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이같이> 복과 공덕이 다르거늘 무제가 바른 이치를 알지 못한 것이요, 달마대사께서 허물 있는 것이 아니니라."

사군 문 하이무공덕 화상 언 조사포시공양 지시수복 불가장복 이위공덕 <공덕> 재법신 비재어복전 자법성 유공덕 <견성 시공> 평직시덕 <내견>불성 외행공경 약경일체인 오(오)아불단 즉자무공덕 자성허망 법신 무공덕 념념덕행 평등직(진)심 덕즉불경 상행어경 자수신 즉공 자수「신」심 즉덕 공덕 자심작 복여공덕별 무제불식정리 비조대사유과(192)
*견성시공(견성시공 견성이 공임)···참다운 공덕은 오직 견성 뿐이다.

21.서방(서방)

위사군이 예배하고 또 물었다.
"제자가 보오니 스님과 도교인과 속인들이 항상 아미타불을 생각하면서 서쪽 나라에 가서 자기를 바랍니다. 청컨대 큰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저기에 날 수가 있습니까? 바라건대 의심을 풀어 주소서."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사군은 들으라. 혜능이 말하여 주리라. 세존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서방정토에로 인도하여 교화해 말씀하셨느니라. 경에 분명히 말씀하기를 '여기서 멀지 않다'고 하였다. 다만 낮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멀다 하고, 가깝다고 말하는 것은 다만 지혜가 높은 사람 때문이다.
사람에는 자연히 두 가지가 있으나 법은 그렇지 않다. 미혹함과 깨달음이 달라서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을 뿐이다. 미혹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곳에 나려고 하지만 깨친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그 마음이 깨끗함을 따라서 부처의 땅도 깨끗하다'고 말씀하셨느니라.
사군아, 동쪽 사람일지라도 다만 마음이 깨끗하면 죄가 없고, 서쪽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허물이 있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가서 나기를 원하나 동방과 서방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는 다 한 가지니라.
다만 마음에 깨끗치 않음이 없으면 서방정토가 여기서 멀지 않고, 마음에 깨끗치 아니한 생각이 일어나면 염불하여 왕생하고자 하여도 이르기 어렵느니라. 십악(십악)을 제거하면 곧 십만 리를 가고, 팔사(팔사)가 없으면 곧 팔천 리를 지난 것이다. 다만 곧은 마음을 행하면 도달하는 것은 손가락 퉁기는 것과 같느니라.
사군아, 다만 십선(십선)을 행하라. 어찌 새삼스럽게 왕생하기를 바랄 것인가. 십악의 마음을 끊지 못하면 어느 부처가 와서 맞이하겠는가.
만약 남(생)이 없는 돈법(돈법)을 깨치면 서방정토를 찰나에 볼 것이요, 만약 돈교의 가르침을 깨치지 못하면 염불을 하여도 왕생할 길이 멀거니, 어떻게 도달하겠는가?"

사군 례배 우문 제자견승도속 상념아미타(대)불 원왕생서방 청화상 설 득(덕)생피부 망위파의 대사언 사군 청 혜능 여설 세존 재사위국 설서방인화 경문 분명 거차불원 지위하근 설원(근) 설근(원) 지연상지 인자양(우)종(중) 법무불<동> 미(명)오유수 견유지질 미인 념불생피 오자 자정기심(194) 소이불언 수기심정 칙불토정 사군 동방 단정심 무죄 서방 심불정 유건 미인 원생 동방서방(자) 소재처병개일종 심단무불정 서방 거차불원 심기불정지심 념불왕생난도 제십악 즉행십만 무팔사 즉과팔천 단행직(진)심 도여탄(선)지 사군 단행십선 하수갱원왕생 불단십악지심 하불 즉래영청 약오무생돈법 견서방 지재찰나 불오]돈교대승 념불 왕생로요 여하득달(195)

육조께서 말씀하셨다.
"혜능이 사군을 위하여 서쪽 나라를 찰나 사이에 옮겨 눈앞에 바로 보게 하리니
보기를 바라는가?"
위사군이 예배하며 말하였다.
"만약 여기서 볼 수 있다면 하필 가서 나겠습니까. 원컨대 스님께서 자비로써 서쪽 나라를 보여 주시면 매우 좋겠습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문득 서쪽 나라를 보아 의심이 없을 터이니 당장 흩어져라."
대중들이 놀라 무슨 일인지 모르자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대중은 정신 차리고 들으라. 세상 사람의 자기 색신은 성(성)이요 눈.귀.코.혀.몸은 곧 성의 문이니 밖으로 다섯 문이 있고 안으로 뜻의 문이 있다. 마음은 곧 땅이요 성품은 곧 왕(왕)이니 성품이 있으면 왕이 잇고 성품이 가매 왕은 없느니라. 성품이 있으매 몸과 마음이 있고 성품이 가매 몸과 마음이 무너지느니라.
부처는 자기의 성품이 지은 것이니, 몸 밖에서 구하지 말라. 자기의 성품이 미혹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기의 성품이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자비는 곧 관음이요 희사는 세지라고 부르며, 능희 깨끗함은 석가요 평등하고 곧음은 미륵이니라. 인아상은 수미요 삿된 마음은 큰 바다이며 번뇌는 파랑이요 독한 마음은 악한 용이면 진로는 고기와 자라요 허망함은 곧 귀신이며 삼독은 곧 지옥이요 어리석음은 곧 짐승이며 십선은 천당이니라.
인아상이 없으면 수미산이 저절로 거꾸러지고 삿된 마음을 없애면 바닷물이 마르며 번뇌가 없으면 파랑이 없어지고 독해(독해)를 제거하면 고기와 용이 없어지느니라.”

육조언 혜능 여사군 이서방찰나간(문) 목(일)전편견 사군 원견부 사군 례배 약차득견 하]수왕생 원화상 자비 위현서방 대선 대사언 당견서방무의 즉산 대중 악연 막지하]사(시) 대사왈 대중 대중 작의청 세인 자색신 시성 안이비설신 즉시성문 외유오(육)문 내유의문 심즉시지 성즉시왕 성재왕재 성거왕무 성재신심존 성거신<심>괴 불시자성작 막(198)향신<외>구 자성 미 불즉중생 자성 오 중생 즉시불 자비 즉시관음 희사 명위세지 능정 시석가 평직(진) 시미륵 인아 시수미 사심 시대해 번뇌 시파랑 독심 시악룡 진노 시어별 허망 즉시신귀 삼독 즉시지옥 우치 즉시축생 십선 시천당 무인아(아무인) 수미자도 제사심 해수갈 번뇌무 파랑멸 독해제 어룡절(199)

자기 마음의 땅위에 깨달은 성품(각성)의 부처가 큰 지혜를 놓아서 그 광명이 비추어 여섯 문이 청정하게 되고 욕계의 모든 여섯 하늘들을 비추어 부수고, 아래로 비추어 삼독을 제거하면 지옥이 일시에 사라지고 안팎으로 사무쳐 밝으면 서쪽 나라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 수행을 닦지 아니하고 어찌 피안(피안)에 이르겠는가.
법문을 들은 법좌(법좌) 아래서는 찬탄하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쳤으니, 응당 미혹한 사람도 문득 밝게 볼 수 있었다. 위사군이 예배하며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널리 원하옵나니, 법계의 중생으로 이 법을 듣는 이는 모두 일시에 깨쳐지이다."

자심지상 각성여래 방(시)대지혜 광명 조요 육문(201) 청정 조파(파)육욕제천 하조 삼독 약제 지옥 일시소멸 내외명철 불리서방 불작차수 여하도피 좌하문(문)설 찬성 철천 응시미인 요(인)연변견 사군 례배 찬언선재선재 보원법계중생 문자일시오해(202)
*안팎이 사무쳐 밝으면 서방정토와 다르지 않다[내외명철불이서방]···내외명철한 제불의 정토 이외에는 모두 꿈 속의 장엄인 것이다.

22.수행(수행)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만약 수행하기를 바람다면 세속에서도 가능한 것이니, 절에 있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절에 있으면서 닦지 않으면 서쪽 나라 사람의 마음이 악함과 같고, 세속에 있으면서 수행하면 동쪽 나라 사람이 착함을 닦는 것과 같다. 오직 바라건대, 자기 스스로 깨끗함을 닦으라. 그러면 이것이 곧 서쪽 나라이니라."
위사군이 물었다.
"화상(화상)이시여,세속에 있으면서는 어떻게 닦습니까? 원하오니 가르쳐 주소서."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혜능이 도속(도속)을 위하여 '모양없는 게송'을 지어 주리니 다들 외워 가지라.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항상 혜능과 더불어 한 곳에 있음과 다름이 없느니라."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설법도 통달하고 마음도 통달함이여!
   해가 허공에 떠오름과 같나니
   오직 돈교의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취를 부수는도다.
   가르침에는 돈(돈)과 점(점)이 없으나
   미혹함과 깨침에 더디고 빠름이 있나니
   만약 돈교의 법을 배우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하지 않느니라.
   설명하자면 비록 일만 가지이나
   그 낱낱을 합하면 다시 하늘로 돌아오나니
   번뇌의 어두운 집속에서
   항상 지혜의 해가 떠오르게 하라.
   삿됨은 번뇌를 인연하여 오고
   바름(정)이 오면 번뇌가 없어지나니
   삿됨과 바름을 다 버리면
   깨끗하여 남을 없음에 이르는도다.
   보리는 본래 깨끗하나
   마음 일으키는 것이 곧 망상이라
   깨끗한 성품이 망념 가운데 있나니
   오직 바르기만 하면 세 가지 장애를 없애는도다.
   만약 세간에서 도를 닦을진대는
   일체가 다 방해롭지 않나니
   항상 허물을 드러내어 자기에게 있게 하라.
   도와 더불어 서로 합하는도다.
   형상이 있는 것에는 스스로 도가 있거늘
   도를 떠나 따로 도를 찾는지라
   도를 찾아도 도를 보지 못하나니
   필경은 도리어 스스로 고뇌하는도다.
   만약 애써 도를 찾고자 할진대는
   행동의 바름이 곧 도이니
   스스로에게 만약 바른 마음이 없으면
   어둠 속을 감이라 도를 보지 못하느니라.
   만약 참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나니
   만약 세간의 잘못을 보면
   자기의 잘못이라 도리어 허물이로다.
   남의 잘못은 나의 죄과요
   나의 잘못은 스스로 죄 있음이니
   오직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번뇌를 쳐부수어 버리는도다.
   만약 어리석은 사람을 교화하고자 할진대는
   모름지기 방편이 있어야 하나니
   저로 하여금 의심을 깨뜨리게 하지 말라.
   이는 곧 보리가 나타남이로다.
   법은 원래 세간에 있어서
   세간에서 세간을 벗어나나니
   세간을 떠나지 말며
   밖에서 출세간(출세간)의 법을 구하지 말라.
   삿된 견해가 세간이요
   바른 견해는 세간을 벗어남이니
   삿됨과 바름을 다 쳐 물리치면
   보리의 성품이 완연하리로다.
   이는 다만 단박 깨치는 가르침이며
   또한 대승이라 이름하나니
   미혹하면 수많은 세월을 지나나
   깨치면 잠깐 사이로다.

대사언 선지식 약욕수행 재가 역득 불유재사 재사불수 여서방심악지인 재가약수행 여동방인수선 단원자가수청정 즉시서(악)방 사군 문 화(상) 재(203)가여하수 원위지수 대사언 선지식 혜능 여도속작무상송 진송취 의(의)차수행 상여혜능 「설」일처무별 송왈

      설통급심통     여일지허공.
      유전돈교법     출세파사종.
      교즉무돈점     미오유지질.
      약학돈교법     우인불가미.
      설즉수(수)만반  합리환귀일.
      번뇌암택중     상수생혜(혜)일.
      사래인번뇌     정래번뇌제.
      사정구(질)불용  청정지무여.(204)
      보제본청정     기심즉시망.
      정성재(어)망중   단정제삼장.
      세간약수도      일체진불방.
      상현재기과      여도즉상당
      색류자유도     리도별멱도.
      멱도불견도     도두환자오.
      약욕탐멱도     행정즉시도.
      자약무정심     암행불견도.
      약진수도인     불견세간우.
      약견세간비     자비각시좌.
      타비아유죄     아비자유죄.(205)
      단자거비심     타파번뇌쇄.
      약욕화우인     시수유방편.
      물령파피의     즉시보제견.
      법원재세간     어세출세간.
      사견시(출)세간  정견출세간.
      사정실타각    <보제성완연>
      차단시돈교     역명위대승.
      미래경루겁     오칙찰나간.(206)
*‘오직 돈교의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취를 부순다[유전돈교법하야출세파사종이로다]’···육조스님은 <단경>전체를 통하여 돈오돈수(돈오돈수)하는 돈교법만을 설하였으므로, 돈법(돈법)이외는 모두 사종(사종)이라고 배척하였으니 이는 최사현정(최사현정)의 대자비인지라, 육조의 법손(법손)으로서 점수(점수) 운운하는 것은 육고를 반역(반역)하는 것이다.

23.행화(행화)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너희들은 다들 이 게송을 외워 가지라.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을 하면 천리를 혜능과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혜능의 곁에 있는 것이요,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얼굴을 마주하여도 천리를 떨어져 있는 것이다. 각각 스스로 수행하면 법을 서로 지님이 아니겠느냐.
여러 사람들은 그만 흩어지거라. 혜능은 조계산으로 돌아가리라. 만약 대중 가운데 큰 의심이 있거든 저 산으로 오너라. 너희를 위하여 의심을 부수어 같이 부처의 성품을 보게 하리라."
함께 앉아 있던 관료.스님.속인들이 육조대사께 예배하며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들을 '훌륭하십니다. 크게 깨치심이여! 옛적에는 미처 듣지 못한 말씀이로다. 영남에 복이 있어 산 부처가 여기 계심을 누가 능히 알았으리오' 한 다음 한꺼번에 다 흩어졌다.

대사언 선지(지)식 여등 진송취차게 의게수행 거혜능천리 상재능변 차불수 대면천리 각각자수 법(213)불상지 중인 차(단)산 혜능 귀조(조)계산 중인(생) 약유대의 래피산간 위여파의 동견불성(세) 합좌관료(탈)도속 례배화상 무불차탄 선재 대오 석소미문(문) 령남 유복 생불재차 수능득지(지) 일시진산(214)

대사께서 조계산으로 가시어 소주.광주 두 고을에서 교화하기를 사십여년이었다.
만약 문인을 말한다면 스님과 속인 삼오천(삼오천)명이라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며, 만약 종지를 말한다면 <단경>을 전수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믿음을 삼게 하셨다. 만약 <단경>을 얻지 못하면 곧 법을 이어받지 못한 것이다. 모름지기 간 곳과 년 월 일과 성명을 알아서 서로서로 부촉하되 <단경>을 이어 받지 못하였으면 남종(남종)의 제자가 아니다. <단경>을 이어받지 못한 사람은 비록 돈교법을 말하나 아직 근본을 알지 못함이라. 마침내 다툼을 면치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법을 얻은 사람에게만 [돈교법의] 수행함을 권하라. 다툼은 이기고 지는 마음이니 도와는 어긋나는 것이다.

대사왕조계산 소광이주 행화사십여년 약론문인 승지여속 삼오천인 설불진 약론종지(지) 전수단경 이차위의(의)약 약불득단경 즉무품수 수지거(법)처년월일성(성)명 체(편)상부촉 무단경품승 비남종제(정)자야 미득품승자 수설돈교법 미지근본 종(수)불면쟁 단득법자 지권수행 쟁시승부지심 여도위배(215)

24.돈수(돈수)

세상 사람이 다 전하기를 '남쪽은 혜능이요 북쪽은 신수'라고 하나, 아직 근본 사유를 모르는 말이다.
또 신수선사는 형남부 당양현 옥천사에 주지하며 수행하고, 혜능대사는 소주성 동쪽 삼십오 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무시니, 법은 한 종(종)이나 사람에게 남쪽과 북쪽이 있어 이로 말미암아 남쪽과 북쪽이 서게 되었다.
어떤 것을 '점(점)과 '돈(돈)'이라고 하는가?
법은 하가지로되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기 때문이다. 견해가 더딘즉 '점'이요 견해가 빠른즉 '돈'이다. 법에는 '점'과 '돈'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는 까닭으로 '점'과 '돈'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일찍이 신수스님은 사람들이 혜능스님의 법이 빠르고 곧게 길을 가리킨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신수스님은 드디어 문인 지성스님을 불러 말하였다.
"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하여 조계산으로 가라. 가서 혜능 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예배하고 듣기만 하되, 내가 보내서 왔다 하지 말라. 들은대로 그 뜻을 기억하여 돌아와서 나에게 말하여라. 그래서 혜능스님의 견해와 나와, 누가 빠르고 더딘지를 보게 하여라. 너는 첫째로 빨리 오너라. 그래서 나로 하여금 괴이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라."
지성은 기쁘게 분부를 받들어 반달쯤 걸려서 조계산에 도달하였다. 그는 혜능스님을 뵙고 예배하여 법문을 들었으나 온 곳을 말하지 않았다.
지성은 법문을 듣고 그 말끝에 문득 깨달아 곧 본래의 마음에 계합하였다.
그는 일어나서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제자는 옥천사에서 왔습니다. 신수스님 밑에서는 깨치지 못하였으나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본래의 마음에 계합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자비로써 가르쳐 주시기 바라옵니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거기에서 왔다면 마땅히 염탐꾼이렸다!"
지성이 말하였다.
"말을 하기 이전에는 그렇습니다만, 말씀을 드렸으니 이미 아니옵니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임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세인 진전 남「종」능북(비)수 미지근본사유 차수선사 어형남부당(남형부당)양현옥천사 주지(시)수행 혜능대사 어소주성동삼십오리조계산 주 법즉일종 인유남북(비) 인차편립남북 하명(이)점돈 법즉일종 견유지질 견지즉점 견질즉돈 법무점돈 인유리둔고 명점돈(217) 신수사상(상)견인 설혜능법 질직지(지)로 수사수환(환)문인승지성왈 여총명다지 여여오지조계산 도혜능소 례배단청 막언오사여래 소청득(덕)의지 기취(218) 각래여오설 간혜능견해여오수질지 여제일조래 물령오괴 지성 봉사탄희 수반월중간 즉지조계산 견혜능화상(당) 례배즉청 불언래처 지성(성) 문법 언하편오 즉계본심 기립즉]례배 자언 화상 제자종옥천사래 수사처 불득(덕)계오 문화상설 편계본심 화상 자비 원당교(산)시 혜능대사왈 여종피(피)래 응시세작 지성왈 미설시즉시 설「급」요불(즉)시 육조언 번뇌즉시보제 역부여시(219)

대사께서 지성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들으니 너의 스님이 사라을 가르치기를 오직 계.정.혜를 전한다고 하는데, 너의 스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계.정.혜는 어떤 것인가? 마땅히 나를 위해 말해 보라."
지성이 말하였다.
"신수스님은 계.정.혜를 말하기를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을 계라고 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혜라고 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것을 정이라고 한다. 어것이 곧 계.정.혜이다'고 합니다.
신수스님의 말씀은 그렇거니와, 큰스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알지 못합니다."

혜능대사께서 대답하셨다.
"그 법문은 불가사의하나 혜능의 소견은 또 다르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어떻게 다릅니까?"
혜능스님께서 대답하셨다.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느니라."
지성이 계.정.혜에 대한 스님의 소견을 청하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말을 듣고서 나의 소견을 보라. 마음의 땅에 그릇됨이 없는 것이 자성의 계요, 마음의 땅에 어지러움이 없는 것이 자성의 정이요, 마음의 땅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자성의 혜이니라."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계.정.혜는 작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요,
나의 계.정.혜는 높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다.
자기의 성품을 깨치면 또한 계.정.혜도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뜻은 어떤 것입니까.?"
지성은 단박 닦으라. 세우면 점차가 있으니 그러므로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은 예배하고서 바로 조계산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문인이 되어 대사의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대사위지성왈 오문여(여)선사교인 유전계정혜 여(여)(221)화상 교인계정혜 여하 당위오설 지성(성)왈 수화상 언계정혜 제악불작 명위계 제선봉행 명위혜 자정기의 명위정 차즉명위계정혜 피작여시설 불지화상소견 여하 혜능화상답왈 차설 불가사의 혜능소견 우별 지성(성) 문 하이별 혜능답왈 견유지질 지성(성) 청화상설소견계정혜 대사언 「여」여청오(오)설 간오(오)소견처 심지무「의」비자성(성)계 심지무난 시자성(성)정 심지무치 자성(성)[시]혜 능대사언 여계정혜 권소근제인 오계정혜 권상[근]인 득오(오)자[성] 역불립계정혜 지성(성) 언 청대사설불립 여하 대사언 자성(성) 무비무난무치 념념반약관조 상(당)리법상 유(222)하가립 자성(성)돈수 립유점 차소(계)이불립 지성 례배 편불리조계산 즉위문인 불리대사좌우(223)
*자성돈수(자성돈수 자성으로 단박 닦음)···육고는 <제 8무념편>에서 ‘미혹한 사람은 점점 계합하고[미인점계] 깨친 사람은 단박에 닦는다[오인돈수]’고 말함과 같이, 깨침[오]은 모두 돈수(돈수)임을 말하였다. 돈황본에서는 ‘자성으로 단박에 닦는다[자성돈수]’고 간명하게 말하였으나, 각 본(본)에서는 ‘자성이 스스로 깨쳐서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아서 또한 점차도 없다[자성이 자오하여적무점차라]’고 소상히 말씀하심으로써, <단경>에는 돈오돈수(돈오돈수)뿐이요 점수(점수)는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25.불행(불행)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법달이라 하였다. 항상 <법화경>을 외워 칠년이 되었으나 마음이 미혹하여 바른 법의 당처(당처)를 알지 못하더니 와서 물었다.
"경에 대한 의심이 있습니다. 큰스님의 지혜가 넓고 크시오니 의심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은 제법 통달하였으나 너의 마음은 통달하지 못하였구나. 경 자체에는 의심이 없거늘 너의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고 있다. 네 마음이 스스로 삿되면서 바른 법을 구하는구나. 나의 마음 바른 정(정)이 곧 경전을 지니고 읽는 것이다.
나는 한평생 동안 문자를 모른다. 너는 <법화경>을 가지고 와서 나를 마주하여 한편(일편)을 읽으라. 내가 들으면 곧 알 것이니라."

우유일승 명법달 상송법화경칠년 심미불지정법지처 <래문왈>경상 유의 대사 지혜광대 원위결(시)처 대사언 법달 법즉심달 <여심불달> 경상무의(치) <여시자의> 여심자사(야) 이구정법 오심정정 즉시지경 오일생이래 불식문자 여장법화경래 대오독일편 오문(문)즉지(지)(227)

법달이 경을 가지고 와서 대사를 마주하여 한편을 읽었다. 육조스님께서 듣고 곧 부처님의 뜻을 아셨고 이내 법달을 위하여 <법화경>을 설명하시었다.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화경>에는 많은 말이 없다. 일곱 권이 모두 비유와 인연이니라.
부처님께서 널리 삼승을 말씀하심은 다만 세상의 근기가 둔한 사람을 위함이다.
경 가운데 분명히 '다른 승(승)이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한불승(불승) 뿐이라'고 하셨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너는 일불승을 듣고서 이불승을 구하여 너의 자성을 미혹하게 하자 말라. 경 가운데서 어느 곳이 일불승인지를 너에게 말하리라.
경에 말씀하기를 '모든 부처님.세존께서는 오직 일대사인연(일대사인연) 때문에 세상에 나타나셨다.'고 하셨다. [이상의 열여섯 자는 바른 법이다.]
이 법을 어떻게 알며 이 법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너는 나의 말을 들으라.
사람의 마음이 생각을 하지 않느면 본래의 근원이 비고 고요하여 삿된 견해를 떠난다. 밖으로 미혹하면 모양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면 공(공)에 집착한다.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공에서 공을 떠나는 것이 곧 미혹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을 깨달아 한생각에 마음이 열리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니라.
마음에 무엇을 여는가?
부처님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이니라. 네 문으로 나뉘나니, 깨달음의 지견을 여는 것과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는 것과 깨달음의 지견을 깨침과 깨달음의 지견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열고(개) 보이고(시) 깨닫고(오) 들어감(입)은 한 곳으로부터 들어가는 것이다. 곧 깨달음의 지견으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법달 취경도 대대사독일편 육조문(문)이 즉식불의 편여(여)법달설법화경 육조언법달 법화경 무다어(228) 칠권 진시비유인(내)연 여래광설삼승 지위세인근둔 경문(문)분(공)명 무유여승 유일불승 대사<언> 법달 여청일불승 막구이불승 미각여성(성) 경중 하처시일불승 여여(여여)설 경운 제불세존 유이(여)일대사인연고 출현어세(이상십육자(가)시정법) <차>법 여하해 차법 여하수 여청오설 인심 불사 본원 공적 리각사견 즉일대사(시)인연 내외불미 즉리양변 외미저(간)상 내미저공 어상리상 어공리공 즉시불「공」미 오(오)차법 일념 심개 출현어세 심개하물 개불지견 불 유여각야 분위사문 개각지견 시각지견 오각지견 입각지견 개시오입 종(상)일처입 즉각지견 견자본성 즉(229)득출세(230)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언제나 마음 자리로 부처님의 지견을 열고 중생의 지견을 열지 않기를 항상 바라노라. 세상사람의 마음이 삿되면 어리석고 미혹하여 악을 지어 스스로 중생의 지견을 열나니,중생람의 마음이발라서 지혜를 일으켜 관조하면 스스로 부처님의 지견을 여나니, 중생의 지견을 열지 말고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이것이 [법화경의 일승법이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삼승을 나눈 것은 미혹한 사람을 위한 까닭이니, 너는 오직 일승불만을 의지하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마음으로 행하면 <법화경>을 굴리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나니, 마음이 바르면 <법화경>을 굴리고 마음이 삿되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을 굴리고 중생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힘써 법대로 수행하면 이것이 곧 경을 굴리는 것이니라."
법달은 한번 듣고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슬피울면서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실로 지금까지 <법화경>을 굴리지 못하였습니다. 칠 년을 <법화경>에 굴리어 왔습니다. 지금부터는 <법화경>을 굴려서 생각생각마다 부처님의 행을 수행하겠습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 행이 곧 부처이니라."
그 때 듣는 사람으로서 깨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대사언 법달 오(오)상원일체세인 심지 상자개불지견 막개중생지견 세인 심<사> 우미조악 자개중생지견세인심정 기지혜관조 자개불지(지)견 막개중생지(지)견 개불지(지)견 즉출세 대사언 법달 차시법화(232)(달)경일승법 향하분삼 위미(명)인고 여단의(어)일불승 대사언 법달 심행 전법화 불행 법화전 심정 전법화 심사(야) 법화전 개불지(지)견 전법화 개중생지(지)견 피법화전 대사언 노력의법수행 즉시전경 법달 일문 언하대오 체루비읍 자언 화상 실미증(승)전법화 칠년 피법화전 이후 전법화 념념수행불행 대사언 즉불행 시불 기시청인(입) 무불오자(233)
*수행불행(수행불행 부처님 행을 수행한다)···깨친 뒤에는 부처님 행을 수행한다고 하였다. 돈오견성(돈오견성)이 성불이어서 <금강경 제 8분 육조해의(육조해의)>에 ‘행동불행 천리불행(행동불행천리불행)’이라고 하였고, 또한 <제12분>에는 ‘상수불행(상수불행)’이라고 말씀하셨다.
‘수행불행’을 대승사본에는 ‘원수불행(원수불행)’, 흥성사본에는 ‘방수불행(방수불행)’이라 하였고, 유통본(유통본)에는 모두 누락되었으나, 돈황, 대승, 흥성의 세 고본(고본)에 실려 있으므로 상관이 없다.

26.참청(참청)

그 무렵 지상이라고 하는 한 스님이 조계산에 와서 큰스님께 예배하고 사승법(사승법)의 뜻을 물었다.
지상이 큰스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삼승을 말씀하시고 또 최상승을 말씀하시었습니다. 제자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가르쳐 주시기 마랍니다."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너는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바깥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윈래 사승법이란 없느니라.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누어 법에 사승이 있을 뿐이다. 보고 듣고 읽고 욈은 소승이요, 법을 깨쳐 뜻을 앎은 중승이며, 법을 의지하여 수행함은 대승이요 일만 가지 법을 다 통달하고 일만가지 행을 갖추어 일체를 떠남이 없으되 오직 법의 모양을 떠나고 짓되, 얻는 바가 없는 것이 최상승이니라. 승(승)은 행한다는 뜻이요 입으로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너는 모름지기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라."

시유일승명지상 래조계산 례배화상 문(문)사승법의 지상 문(문)화상왈 불설삼승 우언최상승 제자불해 망위교(경)시 혜능대사왈 여자신심견 막저외법상 원무사승법 인심자유(불량)사등 법유사승 견문독송 시소승 오<법>해의시중승 의(의)법수행 시대승 만법 진통 만행(행)구비 일체무리 단리법상 작무소득(덕) 시최상승 승시「최상」행의 불재구쟁 여수자수 막문오(오)야(237)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을 신회라고 하였으며 남양사람이다.
조계산에 와서 예배하고 물었다.
"큰스님은 좌선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대사께서 일어나서 신회를 세 차례 때리시고 다시 신회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다. 아프냐, 아프지 않으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신회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은 어째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다고 말한다.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 까닭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네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했는데 어떤 것이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만약 아프지 않다고 하면 곧 무정인 나무와 둘과 같고, 아프다 하면 곧 범부와 같아서 이내 원한을 일으킬 것입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신회야, 앞에서 본다고 한 것과 보지 않는다고 한 것은 양변(양변)이요, 아프고 아프지 않음은 생멸이니라. 너는 자성을 보지도 못하면서 감히 와서 사람을 희롱하려 드는가?"
신회가 예배하고 다시 더 말하지 않으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아라. 마음을 깨쳐서 스스로 보게 되면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라.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면서 도리어 와서 혜능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내가 보는 것은 내 스스로 아는 것이라 너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느니라. 만약 네가 스스로 본다면 나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어찌 스스로 닦지 아니하고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신회가 절하고 바고 문인이 되어 조계산중을 떠나지 않고 항상 좌우에서 모시었다.

우유일승명신회 남양인야 지조계산 례배문언 화상좌(좌)선 견 역불견 대사기타신회삼하 각문신회 오타여 통 불통 신회답언 역통역불통 육조언왈 오역견역불견 신회우문 대사 하이역견역불견 대사언 오역견
상견자과환 고운역견 역불견자 불견천지인과죄 소이역견역불견(야) 여 역통역불통 여하 신회답왈 약불통 즉동무정목석 약통 즉동범(부) 즉기어한 대사언 신회 향전 견불견 시양변 통<불통> 시생멸 여자성 차불견 감래롱인 신회(례배)례배 갱불언 대사언 여심미불견 문선지식멱로 이심오자견 의법수행(239)
여자미(명) 불견자심 각래문혜능견부 오견(불)자지 대여미불득 여약자견 대득오미 하불자수 문오견부 신회작례 변위문인 불리조계산중 상재좌우(240)
 *최상승(최상승)···삼승(삼승)을 초월한 최존최상제일(최존최상제일)의 선문(선문)이다.

27. 대법(대법)

대사께서 드디어 문인 법해.지성.법달.지상.지통.지철.지도.법진.법여.신회 등을 불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열명의 제자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너희들은 각각 한곳의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에게 법 설하는 것을 가르쳐서 근본 종취를 잃지 않게 하리라.
삼과의 법문(삼과법문)을 들고 동용삼십육대(동용삼십육대)를 들어서 나오고 들어감에 곧 양변을 여의도록 하여라.
모든 법을 설하되 성품과 모양을 떠나지 말라. 만약 사람들이 법을 묻거든 말을 다 쌍(쌍)으로 해서 모두 대법(대법)을 취하여라. 가고 오는 것이 서로 인연하여 구경에는 두 가지 법을 다 없애고 다시 가는 곳마저 없게하라. 삼과법문이란 음(음).계(계).입(입)이다. 음은 오음(오음)이요 계는 십팔계(십팔계)요 입은 십이입(십이입)이니라.
어떤 것을 오음이라고 하는가?     색음.수음.상음.행음.식음이니라.
어떤 것을 십팔계라고 하는가?     육진(육진).육문(육문).육식(육식)이니라.
어떤 것을 십이입(십이입)이라고 하는가?     바깥의 육진과 안의 육문이니라.
어떤 것을 육진이라고 하는가?     색.성.향.미.촉.법이니라.
어떤 것을 육문이라고 하는가?     눈.귀.코.혀.몸.뜻이니라.

법의 성품이 육신인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의 육식과 육문과 육진을 일으키고 자성은 만법을 포함하나니, 함장식(함장식)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생각을 하면 곧 식(식)이 작용하여 육식이 생겨 육문으로 나와 육진을 본다. 이것이 삼(삼).육(육)은 십팔(십팔)이니라.
자성이 삿되기 때문에 열여덟 가지 삿됨이 일어나고, 자성이 바름(정)을 포함하면 열여덟 가지 바름이 일어나느니라.
악의 작용을 지니면 곧 중생이요, 선이 작용하면 곧 부처이니라.
작용은 무엇들로 말미암는가? 자성의 대법으로 말미암느니라.

대사수환문인법해,지성,법달,지상,지철,지도,법진,법여,신회 대사언 여등습제자 근전 여등 불동여인 오멸도후 여각위일방두 오교여설법 불실본종 거<삼>과법문 동<용>삼십육대 출몰 즉리양변 설일체법 막(243)리어성상 약유인 문법 출어진쌍 개취법대 래거상인 구(귀)경 이법 진제 갱무거처 삼과법문자 음계입 음시오음 계<시>십팔계 <입>시십이입 하명오음 색음,수음,상(상)음,행음.식음 시 하명십팔계 육진,육문,육식 하명십이입 외육진 중육문 하명육진 색성향미촉(미독)법 시 하명육문 안이비설신의 시 법성 기육식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 육문육진 자성 함만법 명위함장식 사량즉전식 생육식 출육문<견>육진 시삼육십팔 유자성사 기십팔사 함자성<정기>십팔정 함악용즉중생 선용즉불 용유(유)하등 유(유)자성대(244)

바깥 경계인 무정(무정)에 다섯 대법이 있으니, 하늘과 땅이 상대요 해와 달이 상대이며, 어둠과 밝음이 상대이며, 음과 양이 상대이며, 물과 불이 상대이니라.
논란하는 말(어)과 직언하는 말(언)의 대법과, 법과 형상의 대법에 열두가지가 있다. 유위가 무위.유색과 무색이 상대이며, 유상과 무상ㅇ이 상대이며, 유루와 무루가 상대이며, 현상(색)과 공이 상대이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대이며, 맑음과 흐림이 상대이며, 범(범)과 성(성)이 상대이며, 승(승)과 속(속)이 상대이며, 늙음과 젊음이 상대이며, 큼과 작용이 상대이며, 김(장)과 짧음(단)이 상대이며, 높음과 낮음이 상대이니라.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 대법에 열아홉 가지가 있다. 삿됨과 바름이 상대요, 어리석음과 지혜가 상대이며, 미련함과 슬기로움이 상대요, 어지러움과 선정이 상대이며, 계율과 잘못됨이 상대이며, 곧음과 굽음이 상대이며, 실(실)과 허(허)가 상대이며, 험함과 평탄함이 상대이며, 번뇌와 보리가 상대이며, 사랑과 해침이 상대이며, 기쁨과 성냄이 상대이며, 버림과 아낌이 상대이며, 나아감과 물러남이 상대이며, 남(생)과 없어짐(멸)이 상대이며, 항상함과 엇없음이 상대이며, 법신과 색신이 상대이며, 화신과 보신이 상대이며, 본체와 작용이 상대이며, 성품과 모양이 상대이니라.
유정.무정의 대법인 어(어).언(언)과 법(법).상(상)에 열두 가지 대법이 있고, 바깥 경게인 무정에 다섯 가지 대법이 있으며,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데 열아홉 가지의 대법이 있어서 모두 서른여섯 가지 대법을 이루니라.
이 삼십육 대법을 알아서 쓰면 일체의 경전에 통하고 출입에 곧 양변을 떠난다.
어떻게 자성이 기용(기용)하는가?
삼십육 대법이 사람의 언어와 더불어 함께 하나 밖으로 나와서는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공(공)에서 공얼 떠나나니, 공에 집착하면 오직 무명만 기르고 모양에 집착하면 오직 사견만 기르느니라.
법을 비방하면서 곧 말하기를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할진대는 사람이 말하지도 않아야만 옳을 것이다. 언어가 곧 문자이기 때문이다.
자성에 대해서 공(공)을 말하나 바른 말로 말하면 본래의 성품은 공하지 않으니
미혹하여 스스로 현혹됨은 말들이 삿된 까닭이니라.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 때문에 어두운 것이다.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으로써 변화하여 어둡고, 어둠으로써 밝음이 나타나나니, 오고감이 서로 인연한 것이다. 삼십육 대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외경무정 대유오 천여지대 일여월대 암여명대 음여양대 수여화대 어여언대 법여상대 유십이대 유위무위유색무색대 유상무상대 유루무루대  색여공대,동여정(정)대,청여탁대,범여성(성)대,승여속대,노여소대,대대여소소대,장여단대,고여하대 자성「거」기용대 유십구대 사여정대,치여혜대,우여지대,난여정대,계여비대,직여곡(전)대,실여허대,험여평대,번뇌여보제대,자여해(공)대,희여진대,사여간대,진여퇴대,생여멸대,상여무상대,법신여색신대,화신여보신대,체여용대,성여상<대> 유정(청)무정(248)(친)대 언어 여법상 유십이대 「내」외경유무<정>오대 자성기유십구대(삼신유삼대) 도합성삼십육대법야 차삼십육대법 해용 통일체경 출입 즉리양변 여하자성기용 삼십육대공인언어 출외 어<상>리상 입내 어공리공 저공즉유장무명(명) 저상유<장>사견 방법 직언불용문자 기운불용문자 인불합언어 언어즉시문자 자성상설공 정어언 본성 불공 미자혹 어언사(제)고 암불자암 이명(명)변암 이암불자암 이암현명 래거상인 삼십육대 역부여시(249)

대사께서 열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후에 법을 전하되 서로가 이 한 권의 <단경>을 가르쳐 주어 본래의 종취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라. <단경>을 이어받지 않는다면 나의 종지가 아니니라. 이제 얻었으니 대대로 유포하여 행하게 하라.
<단경>을 만나 얻은 이는 내가 친히 주는 것을 만남과 같으니라."
열명의 스님들이 가르침을 받아 마치고 <단경>을 베껴서 대대로 널리 퍼지게 하니, 얻은 이는 반드시 자성을 볼 것이다.


대사언 십제자 이후전법 체상교수일권단경 불실본종 불품수(수)단경 비아종지 여금득료 체대류행 득우단경자 여견오친수 습승 득교수이 사위단경 체대류행 득자필당견성(253)
*열명의 제자들이란 당시에 가까이에서 육조스님을 모시고 있던 제자들을 말한다.
*즉리양변(즉리양변 양변을 떠남)···양변을 떠남은 중도(중도)를 말한 것이니, 불교의 근본 원리이다. 석존은 초전법륜(초전법륜)에서 녹야원 다섯 비구들에게 ‘여래는 양변을 떠난 중도를 정등각(정등각)하였다’고 유명한 ‘중도선언’을 하였다. 용수(용수)도 그의 <대지도론(대지도론)사십삼>에서 양변을 떠난 중도는 반야바라밀이라고 상세히 말하였으니, 육조가 항상 고창(고창)한 반야는 곧 중도를 말한다.

28. 진가(진가)

대사께서는 선천 이년 팔월 삼일에 돌아가셨다. 칠월 팔일에 문인들을 불러 고별하시고, 선천 원년에 신주 국은사에 탑을 만들고 선천 이년 칠월에 이르러 작별을 고하셨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나는 팔월이 되면 세상을 떠나고자 하니 너희들은 위하여 의심이 있거든 빨리 물어라.
너희들을 위하여 의심을 부수어 마땅히 미혹을 다 없애어 너희들로 하여금 안락하게 하리라. 내가 떠난 뒤에는 너희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으리라."
법해를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듣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으나, 오직 신회만이 꼼짝하지 아니하고 울지도 않으니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 신회는 도리어 좋고 나쁜 것에 대하여 평등함을 얻어 헐뜯고 칭찬함에 움직이지 않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구나. 그렇다면 여러 해동안 산중에서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 지금 슬피 우는 것은 또 누구를 위함인가? 나의 가는 곳을 너희가 몰라서 근심하는 것인가?
만약 내가 가는 곳을 모른들 마침내 너희에게 고별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곧 나의 가는 곳을 몰라서이다. 만약 가는 곳을 안다면 곧 슬피 울지 않으리라.
자성의 본체는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느니라.
너희들은 다 앉거라. 내 너희들에게 한 게송을 주노니, '진가동정게(진가동정게)'이다. 너희들이 다 외워 이 게송의 뜻을 알면 너희는 나와 더불어 같을 것이다.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해서 종지를 잃지 말라."
스님들이 예배하고 대사께 게송 남기시기를 청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아 가졌다. 게송에 말씀하셨다.

모든 것에 진실이 없나니 진실을 보려고 하지 말라.
만약 진실을 본다 해도 그 보는 것은 다 진실이 아니다.
만약 능히 자기에게 진실이 있다면 거짓을 떠나는 것이 곧 마음의 진실이다.
자기의 마음이 거짓을 여의지 않아 진실이 없거니, 어느 곳에 진실이 있겠는가?
유정은 곧 움직일 줄을 알고 무정은 움직이지 않나니
만약 움직이지 않은 행을 닦는다면 무정의 움직이지 않음과 같다.
만약 참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본다면
움직임 위에 움직이지 않음이 있나니.
움직이지 않음이 움직이지 않음이면 뜻도 없고 부처의 씨앗도 없도다.
능히 모양을 잘 분별하되 첫째 뜻은 움직잊 않는다.
만약 깨쳐서 이 견해를 지으면 이것이 곧 진여의 씀이니라.
모든 도를 배우면 이에게 말하노니 모름지기  힘써 뜻을 써서
대승의 문에서 도리어 생사의 지혜에 집착하지 말라.
앞의 사람이 서로 응하면 곧 함께 부처님 말씀을 의논하려니와
만약 실제로 서로 응하지 않으면 합장하여 환희케 하라.
이 가르침은 본래 다툼이 없음이라 다투지 않으면 도의 뜻을 잃으리오,
미혹함에 집착하여 법문을 다투면 자성이 생사에 들어가느니라.

대사선천이년팔월삼일 멸도 칠월팔일 환문인고별 대사<선>천원년 어신주국은사조탑 지선천이년칠월고별 대사언 여중 근전 오(오)지팔월욕리세간 여등 유의조문 위여(외)파의 당령미자진 사여(여)안락 오약거후 무인(입)교여(여) 법해등중승 문이 체루비읍 유유신회 불동역불비읍 육조언 신회소승 각득선<불선>등 훼예불동 여(제)자 불득 수년 산중 갱수하도 여금비읍 갱유아수 우오불지거처재 약불지거처 종불별여 여등비읍  즉불지오<거>처 약지거(255)처
즉불비읍 성체(청) 무생무멸 무거무래 여등 진좌(좌) 오여여(여)일게 진가동정(정)게 여(여)등 진송취 견차게의 여<여>오동 의(어)차수행 불실종지 승중례배 청대사류게 경심수지(특) 게왈
      일체무유진      불이견어진.
      약견어(의)진자   시견진비진.
      약능자유진       리가즉심진.
      자심불리가       무진하처진.
      유정(성)즉해동   무정(성)즉부동.
      약수불동행      동무정부동.
      약견진불동      동상유불동.(256)
      불동시불동      무정무불종(중).
      능선분별상      제일의불동.
      약오작차견      칙시진여용.
      보제학도자      노력수용의.
      막어대승문      각집생사지.
      전두인상응      즉공론불어.
      약실불상응      합장령환희(권선).
      차교본무쟁      무쟁실도의.
      집미쟁법문      자성입생사.(257)

29.전게(전게)

대중스님들은 다 듣고 대사의 뜻을 알았으며, 다시는 감히 다투지 아니하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였다. [대중이] 일시에 예배하니, 곧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무시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상좌인 법해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큰스님이시여, 큰스님께서 가신 뒤에 가사와 법을 마땅히 누구에게 부촉 하시겠습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전하여 마쳤으니 너희는 모름지기 묻지 말라. 내가 떠난 뒤 이십여년에 삿된 법이 요란하여 나의 종지를 혹란케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와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교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여 종지를 세우리니, 이것이 곧 나의 바른 법이다. 그러므로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너희가 믿지 않을진대는 내가 선대의 다섯 분 조사께서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신 게송들을 외워 주리라.
만약 제일조 달마조사의 게송의 뜻에 의거하면 곧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잘 들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외우리라."
게송에 말씀하셨다.

제일조 달마화상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내 본시 당나라에 와서 부처님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노니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리어 그 결과가 자연히 이루리로다.

제이조 혜가스님 게송에 말씀하셨다.

  본래 땅이 있는 까닭에 땅으로부터 씨앗 꽃 피나니
  만약 본래로 땅이 없다면 꽃이 어느 곳으로부터 피어나리오

제삼조 승찬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꽃씨가 비록 땅을 인연하여 땅 위에 씨앗 꽃을 피우나
  꽃씨는 나는 성품이 없나니 땅에도 또한 남이 없도다.

제사조 도신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꽃씨에 나는 성품있어 땅을 인연하여 씨앗 꽃이 피나
  앞의 인연이 화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자니 않는도다.

제오조 홍인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유정이 와서 씨 뿌리니 무정이 꽃을 피우고
  정도 없고 씨앗도 없나니 마음 땅에 또한 남이 없도다.

제육조 혜능의 게송에 말한다.

  제마음의 땅이 뜻의 씨앗을 머금으니 법의 비가 꽃을 피운다.
  스스로 꽃 뜻의 씨앗을 깨달으니, 보리의 열매가 스스로 이루는도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내가 지은 두 게송을 들어라. 달마스님의 게송의 뜻을 취하였으니 너희 미혹한 사람들은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라. 그러면 반드시 자성을 보리라.

첫째 게송에 말씀하셨다.

  마음 땅에 삿된 꽃이 피니 다섯 잎이 뿌리를 좇아 따르고
  함께 무명의 업을 지어 업의 바람에 나부낌을 보는도다.

둘째 게송에 말씀하셨다.

  마음 땅에 바른 꽃이 피니 다섯 잎이 뿌리를 좇아 따르고
  함께 반야의 지혜를 닦으니 장차 오실 부처님의 깨달음이로다.

육조스님께서 게송을 말씀하여 마치시고 대중을 해산시켰다. 밖으로 나온 문인들은 생각하였으니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으실 것임을 알았다.

중승 기문 식대사의 갱불감쟁 의법수행 일시례배 즉지(지)대사불영주세 상좌법해향전언 대사 대사거후 의법 당부하인 대사언 법즉부요 여불수문 오멸후이십여년 사법료(료)난 혹아종지 유인출래 불석신명 정(제)불교시비 수립종지 즉시오정법 의불합전(전) 여불신 오여송선대오조전의부법송(송) 약거제일조달마송]의 즉불합전의 청 오(오)여여송(송) 송왈
  제일조달마화상 송왈(262)
      오본(대)래당국    전교구미정(명청).
      일화개오엽        결과(과)자연성.
  제이조혜가화상 송왈
      본래연유지       종지종화생.
      당본원(원)무지    화종하처생.
  제삼조승찬화상 송왈
      화종수인지     지상종화(화)생.
      화종무생성     어지역무생.
  제사조도신화상 송왈
      화종유생성      인지종화생.
      선연불화합      일체진무생. (263)
  제오조홍인화상 송왈
      유정래하종       무정화즉생.
      무정우무종       심지역무생.
  제육조혜능화상 송왈
      심지함정종       법우즉화생.
      자오(오)화정종   보제과(과)자성.
능대사언 여등 청오작이송 취달마화상송왈 여미인 의차송수행 필당견성
   제일송왈
       심지사화방     오엽축근수.
       공조무명업(엽)  견피업(엽)풍취.
   제이송왈
       심지정화방     오엽축근(한)수.
       공수반야혜     당래불보제.
육조설게이요 방중생산 문인 출외사유 즉지대사 불구주세(265)
*‘내가 떠난 뒤 이십여 년[멸후이십여년]’운운한 것은 신회(신회)에서 해당된 것으로서, 이 말은 신회 계통에서 조작한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고 있다.

30.전통(전통)

그 뒤, 육조스님께서는 팔월 초삼일에 이르러 공양 끝에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차례를 따라 앉아라. 내 이제 저희들과 작별하리라."
법해가 여쭈었다.
"이 돈교법의 전수는 예부터 지금까지 몇 대입니까?"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은 일곱 부처님으로부터 전수되었으니, 석가모니불은 그 일곱째이시다.
대가섭은 제팔, 아난은 제구, 말전지는 제십, 상나화수는 제십일,
우바굽다는 제십이, 제다가는 제십삼, 불타난제는 제십사, 불타밀다는 제십오,
협비구는 제십육, 부나사는 제십칠, 마명은 제십팔, 바라장자는 제십구,
용수는 제이십, 가나제바는 제이십일, 라후라는 제이십이, 승가나제는 제이십삼,
승가야사는 제이십사, 구마라타는 제이십오, 사야나는 제이십육,
바수반다는 제이십칠, 마나라는 제이십팔, 학륵나는 제이십구,
사자비구는 제삼십, 사나바사는 제삼십일, 우바굴은 제삼십이, 승가라는 제삼십삼,
수바밀다는 제삼십이,  남천축국 왕자 셋째 아들 보리달마는 제삼십오,
당나라 스님  혜가는 제삼십육, 승찬은 제삼십칠, 도신은 제삼십팔, 홍인은 제삼십구, 나 혜능이 지금 법을 받은 것은 제사십대이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이후로는 서로서로 전수하여 모름지기 의지하고 믿어서 종지를 잃지말라."

육조후지팔월삼일 식후 대사언 여등저(선)위좌(좌) 오(오)금공여(여)등별 법해문(문)언 차돈교법전수(수) 종상이래 지금기대 육조언초전수(수)칠불 석가모니불 제칠
    대가엽제팔,          아난제구,
    말(미)전지제십,      상나화수제십일,
    우파국다제십이,      제다가제십삼,
    불타(타)난제십사,    불타(타)밀다제십오,
    협비구제십육,       부나사제십칠,
    마명제십팔,         비라장자제십구,(270)
    룡수제이십,         가나제파제입일,
    라후라제입이,       승가야제제입삼,
    승가야(나)사제입사, 구마라태제입오,
    도야다제입육,       파수반다제입칠,
    마나라제입팔,       학륵나제입구,
    사자비구제삽,       사나파사제삽일,
    우파굴제삽이,       승가라제삼십삼,
    수파밀다제삼십사,
    남천축(죽)국왕자제삼자보제달마제삼십오,
    당국승혜가제삼십육, 승찬제삼십칠,
    도신제삼십팔,      홍인제삼십구,
혜능자신 당금수법제사십(십사) 대사언 금일이후 체(271)상전수(수) 수유의약 막실종지(272)
*옛 역사는 증빙의 불충분으로 고증(고증)이 어렵다. 종문법통(종문법통)에 대하여 이설(이설)이 있긴 하나, 가섭으로부터 달마까지 이십팔대설(이십팔대설)은 육조스님과 같은 해에 입적한 영가의 <증도가>에서도 ‘이십팔대는 서천의 기록이로다[이십팔대는서천기로다]’라고 하였다.

31. 진불(진불)

법해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이제 가시면 무슨 법을 부촉하여 남기시어, 뒷 세상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부처님을 보게 하시렵니까?"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들으라. 뒷 세상의 미혹한 사람이 중생을 알면 곧 능히 부처를 볼 것이다. 만약 중생을 알지 못하면 만겁토록 부처를 찾아도 보지 못하리라. 내가 지금 너희로 하여금 중생을 알아 부처를 보게 하려고 다시 '참 부처를 보는 해탈의 노래(견진불해탈송)'를 남기리니, 미혹하면 부처를 보지 못하고 깨친 이는 곧 보느니라."
"법해는 듣기를 바라오며 대대로 유전하여 세세생생에 끊어지지 않게 하리이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들으라. 내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여 주리라. 만약 뒷 세상 사람들이 부처를 찾고자 할진대는 오직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라. 그러면 곧 능히 부처를 알게 되는 것이니, 곧 중생이 있음을 인연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떠나서는 부처의 마음이 없느니라.
미혹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깨치면 중생이 부처이며
우치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지혜로우면 중생이 부처니라.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마음이 평등하면 중생이 부처이니
한평생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 속에 있도다.
만약 한생각 깨쳐 평등하면 곧 중생이 스스로 부처이니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음이라 자기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약 자기에게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어느 곳을 향하여 부처를 구하리요."

법해우백 대사금거 류부하법 령(금)후대인 여하견불 육조언 여청 후대미인 단식중생 즉능견불 약불식중생 멱불만겁 불득견야 오(오)금교여 식중생 견불 갱류견진불해탈송 미즉불견불 오자즉견 법해원문 대대류전 세세불절 육조언 여청 오여여(여여)설 후대세인 약욕멱불 단식자(불)심중생 즉능식불 즉연유중<생> 리중생무불심
        미즉불중생       오즉중생불
        우치불중생       지혜중생불
        심험(검)불중생   평등중생불(275)
        일생심약험(검)   불재중생중
        일념오(오)약평   즉중생자불
        아심자유불      자불시진불
        자약무불심      향하처구불(276)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문인들은 잘 있거라. 내가 게송 하나를 남기리니 '자성진불해탈송' 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뒷 세상에 미혹한 사람이 이 게송의 뜻을 들여면 곧 자기의 마음, 자기 성품의 참 부처를 보리라. 저희에게 이 게송을 주면서 내 너희와 작별하리라."
게송을 말씀하셨다.

진여의 깨끗한 성품이 참 부처요
삿된 견해의 삼독이 곧 참 마군(마군)이니라.
삿된 생각 가진 사람은 마군이 집에 있고,
바른 생각 가진 사람은 부처가 곧 찾아오는도다.
성품 가운데서 삿된 생각인 삼독이 나나니,
곧 마왕이 와서 집에 살고
바른 생각이 삼독의 마음을 스스로 없애면
마군이 변하여 부처되나니, 참되어 거짓이 없도다.
화신과 보신과 정신(정신)이여,
세 몸이 원래로 한 몸이니
만약 자신(자신)에게서 스스로 보는 것을 찾는다면
본래 화신으로부터 깨끗한 씨앗이니라.
깨끗한 성품은 항상 화신 속에 있고
성품이 화신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행하게 하면
장차 원만하여 참됨이 다함 없도다.
음욕을 없애고는 깨끗한 성품의 몸이 없다.
다만 성품 가운데 있는 다섯 가지 욕심을 스스로 여의면
찰나에 성품을 보나니, 그것이 곧 참[진]이로다.
만약 금생에 돈교의 법문을 깨치면
곧 눈앞에 세존을 보려니와
만약 수행하여 부처를 찾는다고 할진대는
어느 곳에서 참됨을 구해야 할지 모르는도다.
만약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 있다면
그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이니라.
스스로 참됨을 구하지 않고 밖으로 부처를 찾으면,
가서 찾음이 모두가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돈교의 법문을 이제 남겼나니
세상 사람을 구제하고 모름지기 스스로 닦으라.
이제 세간의 도를 배우는 이에게 알리노니,
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크게 부질없으리로다.

대사언 여등문인 호주 오류일송 명자성진불해탈송 후대미<인> 문(문)차송의 「의」즉견자심자성진불 여여차송 오공여별 송왈
    진여정성시진불         사견삼독시진마(마)
    사견지인마(마)재사 정견지(지)인불칙과(278)
    성중(중)사견삼독생      즉시마왕래주사
    정견자제(홀칙)삼독심(생) 마(마)변성불진무가.
    화신보신급정신          삼신원본시일신
    약향신중멱자견         즉시<성>불보제인
    본종화(화)신생정성      정성상재화(화)신중
    성사화(화)신행정도      당내원(원)만진무궁
    음성본신청정인          제음즉무정성신
    성중단자리오(오)욕      견성찰나즉시진
    금생약오(오)돈교문      오즉안전견세(성)존
    약욕수행운멱불         불지하처욕구진
    약능신중자유진         유진즉시성불인(279)
    자불구진외멱불        거멱총시대치인
    돈교법문금이류(자시서류) 구(구)도세인수자수
    금보(보)세간학도자    불의(어)차시대유유(280)
*게송 가운데서 ‘멱자견(멱자견)’을, ‘찾아서 스스로 본다’고 하면 견성(견성)으로 해석될 염려가 있으므로 ‘스스로 보는 것을 찾는다’고 번역하였다. 유통본에는 ‘약향성중능자견 즉시성불보리인(야향성중능자견 즉시성불보제인)’이라고 하였는 바, ‘성중자견(성중자견)’은 견성이며 ‘견성이 곧 성불’임을 <단경>의 근본사상으로서 성불하는 씨앗[성불인]이 될 수 없으므로,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며 <지침(지침)> 가운데서 이미 지적하였다.

32.멸도(멸도)

대사께서 게송을 말씀해 마치시고 드디어 문인들에게 알리셨다.
"너희들은 잘 있거라. 이제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내가 떠난 뒤에 세상의 인정으로 슬피 울거나, 사람들의 조문과 돈과 비단을 받지 말며, 상복을 입지 말라. 성인의 법이 아니면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내가 살아 있던 날과 한가지로 일시에 단정히 앉아서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감도 없어서 탄연히 적정하면 이것이 큰 도이니라,
내가 떠난 뒤에 오직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내가 있던 날과 한가지일 것이나, 내가 만약 세상에 있더라도 너희가 가르치는 법을 어기면 내가 있은들 이익이 없느니라."
대사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밤 삼경에 이르러 문득 돌아가시니, 대사의 춘추는 일흔여섯이었다.

대사설게이요 수고문인왈 여등 호주 금공여별 오거이후 막작세정비읍 이수인조문(문)전백 저효의 즉비성법 비아제자 여오재일일종 일시단좌 단무동무정(정) 무생무멸 무거무래 무시무비 무주<무왕> 탄(단)연적정(정) 즉시대도 오거이후 단의(의)법수행(284) 공오재일일종 오약재세 여위교법 오주무익 대사운차어이 야지삼경 엄연천화(화) 대사춘추칠십유육(285)

대사께서 돌아가신 날, 절 안은 기이한 향내가 가득하여 여러 날이 지나도 흩어지지 않았고, 산이 무너지고 땅이 진동하여 숲의 나무가 희게 변하고 해와 달은 광채가 없고 바람과 구름이 빛을 잃었다.
팔월 삼일에 돌아가시고 동짓달에 이르러 큰스님의 영구를 모시어 조계산에 장사지내니, 용감(용감) 속에서 흰 빛이 나타나 곧장 하늘 위로 솟구치다가 이틀 만에 비로소 흩어졌으며, 소주 자사 위거는 비(비)를 세우고지금까지 공양하니라.

대사멸도지(제)일 사내리향온온 경수일불산 산붕(붕)지동 림목변백 일월무광 풍운실색 팔월삼일 멸도 지십일월 영화상신좌어조계산장 재룡감지내 백광 출현 직상충천 이일시산 소주자사위거(처)립비 지공양(286)

33. 후기(후기)

이 <단경>은 상좌인 법해스님이 모은 것이다. 법해스님이 돌아가니 같이 배운 도제스님에게 부촉하였고, 도제스님이 돌아가니 문인 오진스님에게 부촉하였는데, 오진스님은 영남 조계산 법흥사에서 지금 이 법을 전수하니라.

차단경 법해상좌집 상좌무상 부동학도제 도제무상 부문인오진 오진 재령남조계산법흥사 견금전수(수)차법(287)

만약 이 법을 부촉할진대는 모름지기 상근기의 지혜라야 하며, 마음으로 불법을 믿어 큰 자비를 세우고 이 경을 지니고 읽어 의지를 삼아 이어받아서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다.

여부차(산)법 수득(덕)상근(한)지(지) 심신불법 립대비지차경 이위의(의)승 어금불절.

[법해]스님은 본래 소주 곡강현 사람이다. 여래께서 열반하시고 법의 가르침이 동쪽 땅으로 흘러서 머무름이 없음을 함께 전하니, 곧 나의 마음이 머무름이 없음이로다.
이 진정한 보살이 참된 종취를 설하고 진실한 비유를 행하여 오직 큰 지혜의 사람만을 가르치나니, 이것이 뜻의 의지하는 바이다.
무릇 제도하기를 서원하고, 수행하고 수행하되, 어려움을 만나서는 물러서지 않고, 괴로움을 만나서도 능히 참아 복과 덕이 깊고 두터워야만 바야흐로 이 법을 전할 것이다. 만약 근성이 감내하지 못하고 재량이 좋지 못하면 모름지기 이 법을 구하더라도 법을 어긴 덕 없는 이에게는 망령되이 <단경>을 부촉하지 말 것이니, 도를 같이 하는 모든 이에게 알려 비밀한 뜻을 알게 하노라.

화상 본시소주곡강현(현)인야 여래입열반(반) 법교류동토 공전무주 즉아심무주 차진보살 설진종(시)(288) 행실유 유교대지인 시지의(의) 범도서수수행행 조난불퇴 우고능인 복덕심후 방수차법 여근성 불감 재(림)량 불득 수구차법 위률(립)불덕자 불득망부단경 고제동도자 령지밀(제밀)의(289)
*도제(도제), 오진(오진)···도제는 법해(법해)의 동학(동학)이니 육조의 문인이요, 오진은 도제의 문인이니 육조의 손제자이다. 이는 단경 전수의 계맥(계맥)이니, 돈황원본은 오진 이전의 최고본(최고본)임이 분명하며, 일천여년간 돈황석굴(돈황석굴)에 비장(비장)되어 유통본처럼 뒷 사람들의 첨삭(첨삭)이 없으므로 육조의 성의(성의)를 전한 진본(진본)으로 평가된다.




제3편 선교결(선교결)

유정대사에게 보임(시 유정대사)
서산대사(서산대사)
요즈음 선(선)을 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이것이 우리 스승의 법이다’하고 교(교)를 하는 사람도 ‘이것이 우리 스승의 법이다’라고 말하면서 한 법을 가지고 서로 같다느니 다르다느니 하여 손가락과 말로 서로 다투고 있으니[손가락과 말[지마]··· <장자>제물편에서 쓸데없는 논쟁을 비유한 말] 슬프도다, 그 누가 능히 결단하겠는가!
그러나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교는 말이 있는 곳으로부터 말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요, 선은 말 없는 곳으로부터 말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다. 말 없는 곳으로부터 말 없는 곳에 이르면 그것은 누구도 무엇이라고 이름할 수 없어 억지로 이름하여 마음이라고 한다. 세상 사람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배워서 알고 생각하여 얻는다고 하니, 이는 실로 가엾은 일이다.
교를 하는 사람으로서 ‘교 가운데도 또한 선이 있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성문승도 아니며 연각승도 아니고 보살승도 아니며 불승도 아니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선가(선가) 입문의 첫 구절이요 선의 뜻은 아니며, 세존께서 한평생 말슴하신 가르침[교]인 것이다. 비유컨대 세 종류의 자비의 그물을 가지고 과거, 현재, 미래의 나고 죽음의 바다에 펴서 작은 그물로는 새우와 조개를 건지고[인천소승교와 같음] 중간 그물로는 방어와 송어를 건지고[연각의 중승교와 같음], 큰 그물로는 고래와 큰 자라를 건져서[대승원돈교와 같음] 함께 열반의 언덕에 두는 것과 같으니, 이는 가르침의 순서이다. 그 가운데 한 물건이 있어서, 갈기는 시뻘건 불과 같고 발톱은 무쇠 창날과 같으며, 눈은 햇빛을 쏘고 입으로는 바람과 우뢰를 내뿜는다. 몸을 뒤쳐 한 번 구르면 흰 물결이 하늘에 닿고 산과 강이 진동하며, 해와 달이 어두워진다. 세 가지 그물을 뛰어넘어 바로 구름 위로 올라가서 감로수를 퍼부어 뭇 생명들에게 이로움을 주니[바로 조사문 중의 교외별전의 기틀임], 이는 선이 교와 다른 점이다.

금선자왈 차오사지법야 금교자왈 차오사지법야 일법상 동어동리어리 이지마교쟁 오호 기숙능결지 연 선시불심 교시불어야 교야자 자유언지어무언자야 선야자 자무언지어무언자야 자무언지어무언 칙인막득이명언 강명왈심 세인 불지기유 위학이지사이득 시가 민야 교자왈 교중 역유선야운자 출어비성문승 비연각승 비보살승 역비불승지어야 연 차 선가입문지초구 비선지야 세존일대소설지교야 비여장삼종자비지망 장삼계생사지해 이소망 록하현(여인천소승교) 이중망 록방준(여연각중승교) 이대망 록경별(여대승원돈교) 구치어열반지안언 차교지서야 기중 유일물 렵여주화 과여철극 안사(293)일광 구토풍뢰자 번신일전 백랑 도천 산하진동 일월 회명 초출호삼망지외 직상호청운지단 주감로이익군생언(정여조문교외별전지기) 차 선지별어교자야(294)
*믿기 어려운 비유 같기는 하지만, 선의 뛰어남을 이 말로써 능히 짐작할 것이다. 이 비유는 서산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선, 교의 우열을 가리는 데 쓰인 말이다.
그리고 화엄사상에 철저한 보조(보조)도 ‘교외별전은 교승보다 한층 더 뛰어나다[교외별전은 형출교승이라일간화결의론]’고 하였고 또한 ‘교외별전이란 교학자만이 믿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선종에서도 근기가 낮은 이도 또 얕게 아는 이도 망연하여 알지 못한다[교외별전은 비단교학자난신난입이요적내부종하근천식도망연부지의니다일간화결의론]’고 하였으며, 또한 서산은 그의 <선교석(선교석)>에서 말하기를 “화엄소[청량 지음]에 이르기를 ‘원돈 위에 따로 한 종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선문을 일컫는 것이다(화엄소일청량일에 운, 원돈지상에별유일종이라하니차는선문지위야라]”고 하였다. 이로서 선과 교의 차이가 이같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선과 교의 차이가 이같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 선의 법은 우리 부처님 세존도 또한 진귀조사에게서 따로이 전해받은 것이며, 옛부처의 케케묵은 말이 아니다. 요즈음 선의 뜻을 그릇 이어받은 자는 더러는 돈, 점의 문으로써 정맥을 삼으며, 더러는 원돈의 교로써 종승을 삼고, 더러는 외도의 글을 인용하여 비밀한 뜻을 설하며, 더러는 업식을 희롱함으로써 본분을 삼고, 또 더러는 그림자를 인정하여 자신으로 삼는다. 심지어는 눈멀고 귀먹은 방할(봉갈)을 함부로 행하여 부끄러움도 없으니 이는 참으로 무슨 마음들인가? 법을 비방하는 그 허물을 내가 어찌 감히 말하겠는가?

차선지법 오불세존 역별전호진귀조사자야 비고불지진언야 금착승선지자 혹이돈점지문 위정맥 혹이원(297)돈지교 작종승 혹인외도서 설밀지 혹이롱업식 위본분 혹이인광영 위자기자 지어자행맹롱봉갈 무참무괴자 시성하심재 기방법지건 여하감언(298)
*돈오점수를 <수심결>에서 ‘돈, 점의 양문[돈점양문)’, ‘돈, 점의 두 뜻[돈점이의]’이라고 하였으니, 돈, 점의 문은 돈오점수를 말한 것이다.
돈오점수는 하택(하택)과 규봉(규봉)이 먼저 주장하고 보조가 힘써 퍼뜨린 것으로서, 보조는 처음에는 돈오점수를 ‘달마의 법을 바로 이은 것[달마정전]’이라고 하다가 입적하기 한해 전의 겨울에 출판된 <절요(절요)>의 첫머리에서 ‘하택은 지해종사라, 조계의 적자가 아니다[하택은시지해종사니비조계적자라]’고 하여 종전의 주장과는 달리 돈오점수는 지해(지해)이며 조계의 정통이 아니요 교가의 행상[교가행상]이라고 하였다. 이는 사상의 큰 변환이며 진전(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원교의 극치(원교극치]는 화엄연기(화엄연기)로서, <간화결의론>에서 보조는 원돈신해(원돈신해)인 여실언교(여실언교)는 사구(사구)라고 단정하고 무애연기(무애연기)를 불법 지해의 병[지해지병]이라고 지적하여 평생 받들던 화엄사상을 원돈사구(원돈사구)이며 지해지병(지해지병)이라는 대담한 발언을 하였으니, 그의 사상에 커다란 진전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돈오점수와 원돈신해는 같은 내용이지만 서산(서산)은, 선의 뜻을 잘못 알고 돈, 점의 문을 정맥으로 삼거나 원돈의 교를 종승(종승)으로 삼는 것은 큰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확실히 말함으로써, 돈오점수와 원돈신해가 선의 정통이 아님을 잘 밝혀 주었다. 그러나 요즘의 선계(선계)에는 아직도 돈오점수와 원돈신해를 선(선)으로 오해하는 이가 많으니, 참으로 통탄하고도 남을 일이다.
*교외별전은 팔만장경과는 달리 가섭, 아난으로 이심전심(이심전심)하여 내려온 것이니, 선의 특색이다. 진귀조사설(진귀조사설)은 한국에만 있는 전설로서, 서산이 이를 인용하였으나 <선교결>의 본지(본지)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교외별전이란 배워서 알며 생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마음 길이 다하여 끊긴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며, 스스로 알아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대는 듣지 못하였는가? 세존이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가섭이 얼굴 가득히 미소한 뒤로부터, 나아가서는 후세에 전한, 이른바 달마의 ‘툭 트이어 성(성)이랄 것도 없다’한 것과 육조대사의 ‘선, 악을 생각하지 말라’한 것과, 회양의 ‘수레가 멈추니 소를 채찍질한다’고 한 것과 행사의 ‘여능의 쌀값’과 마조의 ‘서쪽 강물을 다 마심’과 석두의 ‘불법을 모른다’함과 운문의 ‘호떡’과 조주의 ‘차 마심’과 투자의 ‘기름 팜’과 현사의 ‘흰 종이’와 설봉의 ‘공굴림’과 화산의 ‘북 두드림’과 신산의 ‘바라 두드림’과 도오의 ‘춤을 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옛 부처와 옛 조사들이 같이 교외별전의 곡조를 노래한 것이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머뭇거릴 수 있겠는가? 이는 모기가 무쇠 소를 물어뜯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이제 말세에 이르러 낮은 근기는 많으나 이들이 교외별전의 근기가 아니므로 다만 원돈문의 이치의 길, 뜻의 길, 마음의 길, 말의 길로써 보고 듣고 믿고 아는 것[견문신해]을 귀하게 여길 뿐으로 이치와 뜻과 마음과 말의 길이 끊어져 자미(자미)가 없고 만지지 못하는 곳에서 칠통을 두드려 부수는 경절문(경절문)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이제 그대가 팔방의 납자 무리들을 접대할 때 칼을 쓰되 긴밀히 하여(사량복탁으로) 억지로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하지 말 것이요, 바로 본분인 경절문의 활구로써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쳐 스스로 얻게 하여야만 할 것이니 그것이 바야흐로 종사의 사람을 위하는 됨됨이니라.
만일에 배우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함을 보고 문득 뻘밭으로 이끌어 교리를 말하면 사람의 눈을 멀게 함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만일에 종사가 이 법을 어기면, 비록 설법하매 하늘에서 꽃비가 어지러이 쏟아져 내릴지라도 이는 모두 어리석고 미쳐서 밖으로 내닫는 것이 될 뿐이다.

오소위교외별전자 비학이지사이득자야 수궁심로절연후 시가지야 수경자긍점두연후 시가득야 시불문호 자석존 념화시중 가엽 파안미소 내지출어구이전지어후일 달마확연무성 육조선악불사 양사차체편우 사사려릉미가 마조흡진서강 석두불회불법 지어운문호병 조주끽다 투자고유 현사백지 설봉곤구 화산타고 신산고라 도오작무 사등 개선불선조 동창교회별전지곡야 사량득마 의의득마 가위문자지상철우야 금당말세 다(301)시열기 비별전지기야 고 지귀원돈문 이리로의로 심로어로 생견문신해자야 불귀경절문 몰리로몰의로 몰심로몰어로 몰자미무모색저상 타파칠통자야 연칙여지하이가야 금사대팔방납자지배 하인요긴 불득천착 직이분분경절문활구 교이자오자득 방시종사 위인체재야 약견학인 불천 변여타니설교 할인안불소 약종사위차법 칙수설법 천화난추 총시치광외변주야(302)
*설교(설교)의 교(교)는 <선가귀감>에서 ‘교라 함은 돈오점수이다[교야자는돈오점수라]’고 한 그것이다. 근기가 낮다고 하여 사구(사구)인 원돈신해, 돈오점수로써 사람을 가르치면 배우는 사람의 눈을 다 멀게 하며, 아무리 설법을 잘 하여도 ‘어리석고 미쳐서 밖으로 내닫는다[치광외변주]’고 하였으니, 무서운 경책이다.
서산도 <선가귀감>을 지은 시절 -44세 때- 에는, 돈오점수의 교의(교의)를 먼저 배워 익힌 뒤에 교의 뜻을 놓아 버리고[방하교의] 참선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묘향산 금선대(금선대) 시절에 이르러서는 공부가 익어가면서 사상도 바뀌어, 원돈, 점수는 사구이며 지해의 병[지해지병]이니 ‘사람의 눈을 멀게 함이 적지 않다[할인안불소]’고 하여 가르치지 못하게 하였고, 만일에 그를 따르지 않으면 ‘어리석고 미쳐서 밖으로 내닫는다’고 심히 나무랬으며, 또 한편으로 그의 <선교석(선교석)> 끝부분에서 ‘교를 중히 여기고 마음[선]을 가벼이 여기면 비록 많은 겁을 거쳐 닦더라도 모두 천마, 외도가 된다[중교경심[선]하면수력다겁하여도진작천마외도라]’고까지 극단적으로 말하였다.
보조는 서산과는 달리 원돈신해는 사구이며 불법 지해의 병이라고 배척하여 놓고도, <간화결의론> 끝부분에서는 ‘증지가 현전(현전)한 사람은 오늘날 보기도 드물고 듣기도 드물기 때문에, 다만 화두참의문[사구]에 의지하여 바른 지견을 밝히는 것이 귀할 따름이다[증지현전자는 금시에 한견한문고로 금시에 단귀의화두참의문[사구]하야발명정지견이라]’고 하였으니, 보조는 이만큼 선종의 안목에 혼란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아무리 낮고 열등한 근기라 하여도 활구(활구)만으로 지도하여야 하거늘, 자기가 지적한 사구인 지해의 병을 거듭 권장하였으니, 결국 <간화결의론>도 용두사미가 되어 버렸다. 끝부분에서 ‘활구를 잘 참구하라[참상활구]’고 말하였지만 활구를 잘 참구하는 것이 그의 진의일진대 ‘참의사구(참의사구)’를 어째서 거론했는지 모르겠다. 만일에 선종의 바른 법안을 가진 스승[정안종사]이라면 오직 활구로써 나아갈 뿐 ‘참의사구’는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다행히도 서산은 보조와는 달리 경절활구(경절활구)로써 일관하였으니 후세의 명훈(명훈)이 되었다.

만일에 배우는 사람이 이 법을 믿으면 비록 금생에 철저한 깨침을 얻지 못하여도 목숨을 마칠 때에 악한 업에 끌리지 않고 바로 깨달음의 바른 길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옛날 마조가 한 번 소리치자 백장이 귀먹었고 황벽이 혀를 내둘렀으니, 이는 임제종의 연원이다. 그대는 반드시 정맥을 가려서 종안이 분명할 것이므로 이렇게 누누히 말하는 것이니, 뒷날 이 노승의 말을 저버리지 말라. 만일에 노승의 말을 저버리면 반드시 부처님과 조사의 깊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될 것이니, 자세히 살피고 자세히 살펴야 한다.

약학인신차법칙 수금생 미득철오 임명종시 불피악(307)업소견 직입보제정로야 석마조일갈야 백장 이롱 황벽 토설 차 임제종지연원야 사필택정맥 종안분명고 여허루루 후일 막고부노승야 약고부로승 칙필고부불조심은야 상실상실(308)
*이 <선교결>은 서산 만년의 명저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위의 글과 같이 선(선), 교(교)가 엄연히 구별되어 있으므로, 선교일치(선교일치) 운운하면서 혼동하지 말 것이며, 말세의 낮은 근기라고 하여 원돈사구, 지해의 병으로 그릇 들어가게 하지 말고 오직 종문정전(종문정전 선종의 법을 바로 전함)의 활구를 내세워야 한다.
선문의 가장 큰 병은 원돈지해에서 오는 점수사상이니, 오직 육조의 ‘유전돈법(유전돈법 오직 돈법만을 전함)’의 유법(유법)을 지켜서 참구하는 화두[소참화두]에 마음과 힘을 다할 것이며, 공부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경계와 지해(지해)에 병들지 말고 오매일여(오매일여 자나 깨나 한결같음)와 내외명철(내외명철 안팎이 사무쳐 밝음)을 참으로 깨달음으로서 불성을 밝게 보아 본분납승(본분납승)으로서 불조(불조 부처님과 조사)의 정법을 계승하기 바란다.

제2권 돈오입도요문론(돈오입도요문론)
머리말

이 논을 지은이는 마조 도일(마조도일) 스님의 제자인 대주 혜해(대주혜해)스님입니다.
스님의 전기는 명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고 다만 「조당집(조당집)」권14,「경덕전등록(경덕전등록)」 권6 등에 단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이를 종합해 보면 마조스님을 6년간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만이 스님의 생존 연대를 추정할수 있는 유일한 단서 입니다.
혜해스님은 건주(복건성) 사람으로 성은 주[주]씨이며 월주(절강성)의 대운사 도지(도지)스님에게 출가 득도 하였습니다.
그후 스님은 강서(강서)에 있는 마조스님을 찾아가 뵈오니, 마조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와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가??"
"불법(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의 보배창고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떠나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어떤 불법(불법)을 구하려 하는가??"
그러자 혜해스님이 절을 하고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혜해 자신의 보배창고 입니까?"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 너의 보배창고이다. 일체가 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사용[사용]이 자제한데 어찌하여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이 말 끝에 혜해스님은 크게 깨쳐서 자신의 본래 마음을 알았는데, 그것은 지적인 이해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뛸듯이 기뻐서 절을 올려 감사를 드리고 6년 동안 마조스님을 시봉하였습니다.
그 후 도지스님이 연로 하시므로 대운사로 다시 돌아와서 도지스님을 봉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취와 활동을 감춘채 겉으로는 어리석게 살면서 「돈오입도요문론 (돈오입도요문론)」 한 권을 저술 하였습니다. 이책을 조카 상좌인 현안(현안)스님이 훔쳐서 마조스님에게 보이니 스님이 이것을 보시고 대중들에게
"월주(월주)에 큰 구슬이 있으니 둥글고 밝은 광명이 비추어 자유자재로와 걸림이 없구나"
하고 감탄하시었습니다. 대중가운데 혜해스님이 주씨임을 알고 있던 자가 있어서 큰 구슬(대주)은 바로 혜해스님을 크게 칭찬하는 말임을 알아차리고,
"옛날 같이 살았을때는 그렇게 훌륭한 스님인줄 몰랐는데 이제보니 큰 도인임에 틀림 없구나."
하고 다시 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도반을 이루어 앞을 다투어 월주의 스님 문하에 들어와서 공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혜해스님을 대주(대주)스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마조스님 문하에서 대주스님의 위치를 본다면 마조스님 비문에서나 「경덕전등록」,「조당집」에서나 모두 스님을 마조 스님 수제자(수제자)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덕전등록」에 1700여명의 큰 스님 법문이 실려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주 스님의 법문이 가장 많이 실려있고 제 28권에도 다시 스님의 긴 법어가 따로 실려 있습니다.
마조스님의 정맥은 백장(백장)스님에게로 내려갔다고 하는 것이 선가의 정설로 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백장(백장)스님, 남전(남천)스님, 법상(법상)스님들보다 대주스님이 더 유명하였으며 천하에 이름을 더 날렸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돈오입도요문론」은 당대에 명성을 떨친 대주 스님의 저술이고 또 선가의 대조사이신 마조스님이 극찬한 책이므로 선종(선종)의 정통사상을 아는데 있어서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자료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한가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육조단경(육조단경)」 이라든가, 「전심법요(전심법요)」라든가, 「백장광록(백장광록)」이라든가 하는 선종의 어록들이 많이 있지만 이러한 어록들은 당시 사람들이나 후세 사람들이 그 스님이 입적 하신뒤에 그 법문을 기록하거나 수집한 것이지 본인들이 직접 편찬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돈오입도요문론」은 대주스님이 직접 저술하였으므로 거기에 가필이나 착오가 없다고 보며 다른 어떠한 어록보다도 완전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마조스님이 인가하신 논이니 만큼 부처님의 정법(정법)을 정확하게 기술한 것으로서, 선종 초기의 근본사상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증도가(증도가)와 함께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돈오(돈오)란 구경각(구경각)을 말합니다. 즉 제8 아뢰야 근본 무명이 완전히 끊어져서 중도(중도)를 정등각(정등각)하여 진여본성(진여본성)을 깨친 증오(증오)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도를 정등각한 구경각을 돈오라고 하는 만큼, 입도(입도)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성불과 같은 뜻으로서 증도라는 말과 뜻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돈오입도요문론」은 영가스님의 「증도가」와 그 사상과 내용이 같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돈오입도요문론 차례

머리말 …………………………………………………………………………161

1. 불보살(불보살)께 헌사(헌사) ………………………………………… 167
2. 돈오(돈오)………………………………………………………………… 167
3. 선정(선정)………………………………………………………………… 169
4. 무주처(무주처)와 무주심(무주심) …………………………………… 170
5. 자성견(자성견)…………………………………………………………… 171
6. 열반경(열반경)의 이구(이구) ………………………………………… 172
7. 불견유무(불견유무)가 진해탈(진해탈) ……………………………… 173
8. 무소견(무소견) ………………………………………………………… 174
9. 돈오문(돈오문)의 종지(종지)와 체용(체용)………………………… 176
10.돈오(돈오)는 단바라밀(단파라밀)로부터 …………………………… 180
11.삼학(삼학)을 힘쓰다.…………………………………………………… 183
12.무생심(무생심) ………………………………………………………… 184
13.상주(상주)………………………………………………………………… 187
14.오종법신(오종법신)……………………………………………………… 187
15.등각(등각)과 묘각(묘각) ……………………………………………… 188
16.설법(설법)………………………………………………………………… 189
17.금강경(금강경)의 경전(경천) ………………………………………… 190
18.여래(여래)의 오안(오안) ……………………………………………… 191
19.대승(대승)과 최상승(최상승) ………………………………………… 191
20.정혜(정혜)를 함께 씀…………………………………………………… 192
21.경상(경상)과 정혜(정혜) ……………………………………………… 192
22.언어도단심행처멸(언어도단심행처멸)………………………………… 194
23.여여(여여)………………………………………………………………… 195
24.즉색즉공(즉색즉공)……………………………………………………… 196
25.진(진)과 무진(무진)………………………………………………………196
26.불생불멸(불생불멸)……………………………………………………… 198
27.불계(불계)는 청정심(청정심) ………………………………………… 198
28.불(불)과 법(법)의 선후(선후) ………………………………………… 199
29.설통(설통)과 종통(종통) ……………………………………………… 200
30.도(도)와 부도(부도) …………………………………………………… 201
31.부진유위(부진유위)며 부주무위(부주무위) ………………………… 201
32.지옥유무(지옥유무)……………………………………………………… 202
33.중생(중생)과 불성(불성) ……………………………………………… 203
34.삼신사지(삼신사지)……………………………………………………… 204
35.불진신(불진신)…………………………………………………………… 206
36.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함………………………………………… 207
37.무위법(무위법)…………………………………………………………… 207
38.중도(중도)………………………………………………………………… 208
39.오음(오음)………………………………………………………………… 209
40.이십오유(이십오유)  …………………………………………………… 210
41.무념(무념)과 돈오(돈오) ……………………………………………… 211
42.중생자도(중생자도)……………………………………………………… 215
43.동처부동주(동처부동주)………………………………………………… 216
44.일체처(일체처)에 무심(무심) ………………………………………… 217
45.필경정(필경정)…………………………………………………………… 219
46.필경증(필경증)…………………………………………………………… 220
47.진해탈(진해탈)…………………………………………………………… 221
48.필경득(필경득)…………………………………………………………… 221
49.필경공(필경공)…………………………………………………………… 222
50.진여정(진여정)…………………………………………………………… 222
51.중도(중도)는 일체처무심(일체처무심)   …………………………… 223
52.일체처무심(일체처무심)이 해탈(해탈) ……………………………… 225
 1.불보살[불보살]께 헌사[헌사]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님들께 머리 숙여 예배를 올립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제가 이 논을 지었으나 부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을까 두려우니 부디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만약 부처님의 이치를 알았거든 일체 유정의 중생에게 모두 회향하여 내세(내세)에 다 함께 성불하기를 바라옵니다.

계수화남십방제불 제대보살중 제자금작차론 공불회성심 원사참회 약회성리 진장회시일절유정 원어래세 진득성불

 2.돈오(돈오)

"어떤 법을 닦아야 곧 해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돈오의 한 문[일문]만이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을 돈오(돈오)라고 합니까?"
"돈(돈)이란 단박에 망념(망념)을 없앰이요, 오(오)란 얻은 바 없음[무소득]을 깨치는 것이니라."
"무엇부터 닦아야 합니까?"
"근본(근본)부터 닦아야 하느니라."
"어떻게 하는것이 근본부터 닦는 것입니까?"
"마음이 근본이니라."
"마음이 근본임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능가경」에 이르기를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고 하였고, 「유마경」에 이르기를 ‘정토(정토)를 얻고저 하면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하나니 그 마음 깨끗함을 따라 불국토가 깨끗해진다’ 하였고, 「유교경」에 이르기를 ‘마음을 한곳으로 통일하여 제어하면 성취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고 하였고, 어떤 경에서는 ‘성인은 마음을 구하나 부처를 구하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구하면서 마음을 구하지 아니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나 몸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몸은 다스리나 마음을 다스리지 아니한다’고 하였고, 「불명경」에 이르기를 ‘죄는 마음에서 났다가 다시 마음을 좇아서 없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악과 일체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알지니, 그런 까닭에 마음이 근본이니라. 만약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모름지기 근본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런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노력을 허비하여 바깥 모양에서 구한다면 옳지 않느니라. 「선문경」에 이르기를 ‘바깥 모양에서 구한다면 비록 몇 겁을 지난다 해도 마침내 이루지 못할 것이요, 안으로 마음을 관조하여 깨치면 한 생각 사이에 보리를 증득한다’고 하였느니라."

문 욕수하법 즉득해탈
답 유유돈오일문 즉득해탈
운하위돈오
답 돈자 돈제망념 오자 오무소득
문 종하이수
답 종근본수
운하종근본수
답 심위근본
운하지심위근본
답 릉가경운 심생즉종종법생 심멸즉종종법멸 유마경운 욕득정토 당정기심 수기심정 즉불토정 유교경운 단제심일처 무사불변 경운 성인 구심불구불 우인 구불불구심 지인 조심불조신 우인 조신불조심 불명경운 죄종심생 환종심멸 고지선악일체 개유자심 소이 심위근본야 약구해탈자 선수식근본 약불달차리 허비공로 어외상 구 무유시처 선문경운 어외상 구 수경겁수 종불능성 어내각관 여일념경 즉증보제

 3.선정(선정)

"근본을 닦으려면 무슨 법으로써 닦아야 합니까?"
"오직 좌선하여 선정을 하면 얻을 수 있느니라. 「선문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인 일체종지(일체종지)를 구할진댄 곧 선정(선정)이 요긴한 것이니, 만약 선정이 없으면 망상이 시끄럽게 일어나서 그 선근(선근)을 무너뜨린다’ 고 하였느니라."
"어떤 것을 선(선)이라 하며 어떤 것을 정(정)이라 합니까?"
"망념(망념)이 일어나지 아니함이 선(선)이요, 앉아서 본성(본성)을 보는 것이 정(정)이니라. 본성이란 너의 무생심(무생심)이요, 정이란 경계를 대(대)함에 무심하여 팔풍(팔풍)에 움직이지 아니함이니라. 팔풍이란, 이로움과 손실(이.쇠), 헐뜯음과 높이 기림(훼.예), 칭찬함과 비웃음(칭.기), 괴로움과 즐거움(고.락)을 말하느니라. 만약 이와 같이 정(정)을 얻은 사람은 비록 범부(범부)라고 하더라도 부처님 지위(불위)에 들어 가느니라.
왜냐하면 「보살계경(보살계경)」에 이르기를 ‘중생이 부처님계(불계)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 지위에 들어간다’ 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얻은 것을 ‘해탈’ 이라고 하며 또 ‘피안에 이르렀다’고 하느니라. 이는 육도(육도)를 뛰어넘고 삼계(삼계)를 벗어난 대력보살(대력보살)이며 무량력존(무량력존)이니 대장부(대장부)인 것이니라."

문 부수근본 이하법수
답 유좌선선정 즉득 선문경운 구불성지 즉요선정 약무선정 념상 훤동 괴기선근
문 운하위선 운하위정
답 망념불생 위선 좌견본성 위정 본성자 시여무생심 정자 대경무심 팔풍불능동 팔풍자 이쇠훼예칭기고락 시명팔풍 약득여시정자 수시범부 즉입불위 하이고 보살계경운 중생 수불계 즉입제불위 득여시자 즉명해탈 역명달피안 초육도월삼계 대력보살 무량력존 시대장부

 4.무주처(무주처)와 무주심(무주심)

"마음이 어느 곳에 머물러야 곧 머무는 것 입니까?
"머무는 곳이 없는데 머무는 것이 곧 머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머무는 곳이 없는 것입니까?"
"일체처(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함이 곧 머무는 곳 없는데 머무는 것 이니라."
“어떤 것이 일체처(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한다 함은 선악(선악).유무(유무).내외(내외).중간(중간)에 머물지 아니하며,공(공)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공(공)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선정(선정)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선정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함이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함이니, 다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 곧 머무는 곳이니라. 이와 같이 얻은 것을 머물음이 없는 마음(무주심) 이라 하는 것이니 머물음이 없는 마음이란 부처님의 마음이니라."
"그 마음은 어떤 물건과 같습니까?"
"그 마음은 푸르지도 않고 누르지도 않으며, 붉지도 않고 희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아니하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아니하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아니하여, 담연(담연)하고 항상 고요한 이것이 본래 마음의 형상이며 또 본래 몸이니 본래의 몸이란 곧 부처님의 몸이니라."

문 심주하처즉주
답 주무주처즉주
문 운하시무주처
답 불주일절처 즉시주무주처
문 운하시불주일절처
답 불주일절처자 불주선악유무내외중간 불주공 역불주불공 불주정역불주불정 즉시불주일절처 지개불주일절처즉시주처야 득여시자 즉명무주심야 무주심자 시불심
문 기심사하물
답 기심 불청불황불적불백 불장불단불법불래 비구비정 불생불멸 담연상적 차시본심형상야 역시본신 본신자 즉불신야

 5.자성견(자성견)

"몸과 마음은 무엇으로써 보는 것입니까, 눈으로 봅니까, 귀로 봅니까,
 몸과 마음 등으로 봅니까?"
"보는 것은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느니라."
"이미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을진댄 다시 어떻게 보는 것입니까?"
"이것은 자성(자성)으로 보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담연히 비고 고요하므로, 비고 고요한 본체(체) 가운데서 이 보는 것[견]이 능히 나느니라."
"다만 청정의 본체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이 보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 입니까?"
"비유하면 밝은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일체 모양을 볼수 있는 것과 같으니, 왜냐하면 밝은 거울이 무심이기 때문이니라. 배우는 사람이 만약 마음에 물든 바 없어 망심이 나지 아니하고 주관과 객관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자연히 청정한 것이니, 청정한 까닭에 능히 이 보는 것이 생겨나느니라. 「법구경」에 이르기를 ‘필경의 공 가운데서 불꽃 일듯 건립함이 선지식이다’ 고 하였느니라.

문 신심 이하위견 시안견 이견 비견 급 신심등견
답 견무여허종견
운 기무여허종견 복하견
답 시자성견 하이고 위자성 본래청정 담연공적 즉어공적체중 능생차견
문 지여청정체 상불가득 차견 종하이유
답 유여명감중 수무상 능견일절상 하이고 위명감무심고 학인 약심무소염 망심 불생 아소심 멸 자연청정 이청정고 능생차견 법구경운 어 필경공중 치연건립 시선지식야

 6. 열반경(열반경)의 이구(이구)

"「열반경」 금강신품(금강신품)에 이르기를 ‘볼 수 없되 분명하고 밝게 볼 수 있어 아는 것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도  없다’ 하니 무슨 뜻 입니까?"
" ‘볼수 없다’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모양이 없어서 얻을 수 없는 까닭에  볼 수 없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얻을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공적하고 담연하여 가고 옴이 없으나 세간의 흐름을 여의지 않으니 세간의 흐름이 능히 흐르지도 아니하여 탄연히 자재[자재]함이 곧 ‘분명하고 밝게 보는 것’ 이니라.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자성의 모양이 없어서 본래 분별(분별)이 없음을 이름하여 아는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알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은 분별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사묘용을 갖추어서 능히 일체를 분별하여 알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알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반야(반야)의 게송」에 이르기를 ‘반야(반야)는 아는 것이 없으나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반야는 보지 못하나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고 하였느니라."

문 열반경 금강신품 불가견 요요견 무유지자 무불지자 운하
답 불가견자 위자성체 무형 불가득고 시명불가견야 연 견불가득자 체적담연 무유거래 불이세류 세류불능류 탄연자재즉 시요요견야 무유지자 위자성 무형 본무분별 시명무유지자 무불지자 어무분별체중 구유항사지용 능분별일절 즉무사불지 시명무불지자 반야게운 반야 무지 무사부지 반야 무견 무사불견

7.불견유무[불견유무]가 진해탈[진해탈]

"경에서 이르기를 ‘있음(유)과 없음(무)을 보지 않는 것이 참다운 해탈이다’고 하시니 어떤 것이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않는 것 입니까?"
"깨끗한 마음을 증득하였을 때를 곧 ‘있음’이라 하고, 그 가운데서 깨끗한 마음을 얻었다는 생각이 나지 않음이 곧 ‘있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얻고서,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이 곧 ‘없음’을 보지 못함이니, 그런 까닭에 `있음과 없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니라.
「능엄경」에 이르기를 ‘지견(지견)에 앎(지)을 세우면 무명(무명)의 근본이 되고 지견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것이 곧 열반이며 또한 해탈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문 경운 불견유무즉진해탈 하자시불견유무
답 증득정심시 즉명유 어중 불생득정심상 즉명불견유야 득상무생무주 불득작무생무주상 즉시불견무야 고 운불견유무야 릉엄경운 지견 입지 즉무명본 지견 무견 사즉열반 역명해탈

 8.무소견(무소견)

 "어떤 것이 보는 바가 없는 것입니까?"
 "만약 남자나 여자 및 일체 색상을 보되 그 가운데에 사랑함과 미워함[애증]을 일으키지 아니하여 보지 못함과 더불어 같은 것이 곧 보는 바가 없는 것이니라."
"일체 색상을 대할 때는 곧 본다고 하거니와 색상을 대하지 않을 때도 또한 본다고 할 수 있읍니까?"
"보느니라."
"물건을 대할 때는 설령 보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건을 대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서 보는 것이 있읍니까?"
"지금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물건을 대하거나 물건을 대하지 않거나를 논(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다고 하는 그 성품은 영원한 까닭에 물건이 있을 때도 보고 물건이 없을 때도 또한 보는 것 이니라. 그런 까닭에 물건에는 본래 스스로 가고 옴(거래)이 있으나 본다는 성품에는 가고 옴이 없음을 알지니, 다른 모든 감각 기관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바로 물건을 볼 때에 보는 가운데 물건이 있읍니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서지 못 하느니라."
"바로 물건이 없음을 볼 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없읍니까?"
"보는 가운데는 물건 없는 것도 서지 못하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는 곧 들을 수 있거니와 소리가 없을 때에도 들을 수  있읍니까?"
"역시 듣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엔 설령 들을 수 있다고 하지만 소리가 없을 때는 어떻게  듣습니까?"
"지금 ‘듣는다’고 하는 것은 소리가 있거나 없거나를 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듣는다’는 자성은 영원한 까닭에 소리가 있을 때도 듣고 소리가  없을 때도 또한 듣느니라."
"이렇게 듣는 자는 누구 입니까?"
"이는 자기의 성품이 듣는 것이며 또한 아는 이가 듣는다고 하느니라."

문 운하시무소견
답 약견남자녀인급일절색상 어중 불기애증 여불견 등 즉시무소견야
문 대일절색상시 즉명위견 불대색상시 역명견부
답 견
문 대물시 종유견 불대물시 운하유견
답 금언견자 불논대물여불대물 하이고 위견성 상고 유물지시 즉견 무물지시 역견야 고지물 자유거래 견성 무래거야 제근 역이
문 정견물시 견중 유물부
답 견중 불립물
문 정견무물시 견중 유무물부
답 견중 불립무물
문 유성시즉유문 무성시 환득문부
답 역문
문 유성시 종유문 무성시 운하득문
답 금언문자 불논유성무성 하이고 위문성 상고 유성시즉문 무성시역문
문 여시문자시수
답 시자성문 역명지자문

9.돈오문(돈오문)의 종지(종지)와 체용(체용).

  1. 종지와 체용
"이 돈오문은 무엇으로써 종취(종취)를 삼고 무엇으로써 참 뜻(지)을 삼고 무엇으로써 본체로 삼으며 무엇으로써 작용(용)으로 삼는 것 입니까?"
"무념을 종취로 삼고 망심이 일어나지 않음을 참 뜻으로 삼으며 청정을 본체로 삼고 지혜로써 작용을 삼느니라."
"이미 무념으로 종취를 삼는다고 말씀할진댄 무념이란 어떤 생각이 없는 것 입니까?"
"무념이란 삿된 생각이 없음이요 바른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삿된 생각이며 어떤 것이 바른 생각 입니까?"
"있음(유)을 생각하고 없음(무)을 생각하는 것이 삿된 생각이요 있음과 없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괴로움[고]과 즐거움[락], 나는 것[생]과 없어짐[멸], 취함[취]과 버림[사], 원망(원)과 친함(친), 미워함(증)과 사랑함(애)을 생각하는 것이 모두 삿된 생각이요, 괴로움과 즐거움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어떤 것이 바른 생각 입니까?"
"바른 생각이란 오직 보리(보제)만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보리는 얻을 수 있습니까?"
"보리는 얻을 수 없느니라."
"이미 얻을 수 없을진댄 어떻게 오직 보리만 생각 합니까?"
"보리는 다만 거짓으로 이름을 세운 것이라 실지로 얻을 수 없으며 또한 과거에도 미래에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까닭에 곧 생각 있음이 없느니라.
오직 이 무념을 진실한 생각이라 하는 것이니 보리는 생각할 바가 없는 것이니라.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 생각하는 바가 없음이니, 다만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무념이란 모두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운 것인지라 모두가 하나의 본체로서 같음이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는 것이니라.
다만 일체처에 무심함을 알면 곧 이것이 무념이니 무념을 얻을 때에 자연해탈이니라.“
“어떻게 하여야 부처님의 행을 하는 것입니까?”
“일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 행동이라 하며 또 바른 행동이라 하며 또 성스러운 행동이라 함이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있음과 없음 미워함과 사랑함등을 행하지 않는 것이니라.
「대율」5권 보살품에서 이르기를 ‘일체 성인들은 중생의 행동을 행하지 않고 중생들은 이와같은 성인의 행동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느니라."
"어떤 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까?"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곧 바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이라 합니까?"
"일체 색을 볼 때에 물들거나 집착함을 일으키지 아니함이니, 물들거나 집착하지 아니한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므로 곧 보는 바 없음을 본다고 하는 것이니라.
만약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얻었을 때 곧 부처님의 눈이라 하나니 다시 별다른 눈이란 없느니라.
만약 일체 색을 볼 때에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보는 바가 있다고 하는 것이니 보는 바가 있음이 곧 중생의 눈이니라. 다시 별다른 눈을 가지고 중생의 눈이라 할 것이 없으니, 내지 다른 오근(오근)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문 차돈오문 이하위종 이하위지 이하위체 이하위용
답 무념 위종 망심불기 위지 이청정위체 이지위용
문 기언무념위종 미심 무념자 무하념
답 무념자 무사념 비무정념
문 운하위사념 운하위정념
답 념유념무 즉명사념 불념유무 즉명정념 념선념악 명위사념 불념선악 명위정념 내지고락생멸취사원친증애 병명사념 불념고락등 즉명정념
문 운하시정념
답 정념자 유념보제
문 보제 가득부
답 보제 불가득
문 기불가득 운하유념보제
답 지여보제 가립명자 실불가득 역무전후득자 위불가득고 즉무유념 지개무념 시명진념 보제 무소념 무소념자 즉일절처무심 시무소념 지여상설 여허종무념자 개시수사방편 가립명자 개동일체 무이무별 단지일절처 무심 즉시무념야 득무념시 자연해탈
문 운하행불행
답 불행일절행 즉명불행 역명정행 역명성행 여전소설불행유무증애등 시야 대률권오 보살품운일절성인 불행어중생행 중생 불행여시성행
문 운하시정견
답 견무소견 즉명정견
문 운하명견무소견
답 견일절색시 불기염저 불염저자 불기애증심 즉명견무소견야 약득견무소견시 즉명불안 갱무별안 약견일절색시 기애증자 즉명유소견 유소견자 즉시중생안 갱무별안작중생안 내지 제근 역복여시

   2. 이성공(이성공)
"이미 지혜로써 작용을 삼는다고 말씀 하셨는데 어떤 것이 지혜입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공)한 줄 아는 것이 곧 해탈이며 두가지 성품이 공하지 않은 줄 알면 해탈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을 지혜라 하며 또 삿됨과 바름을 요달하였다고 하며 또 본체와 작용을 안다고 하느니라.
두 가지 성품이 공했다고 하는 것은 있음과 없음, 선과 악, 사랑함과 미워함이 나지 아니한 것을 이름하여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고 하느니라."

문 기언이지위용자 운하위지
답 지이성공 즉시해탈 지이성불공 불득해탈 시명위지 역명료사정 역명식체용 이성공 즉시체 지이성공 즉시해탈 갱불생의 즉명위용 언이성공자 불생유무 선악애증 명이성공

 10.돈오(돈오)는 단바라밀(단파라밀)로 부터

"이 돈오의 문은 어디로부터 들어갑니까?"
"단바라밀(단파라밀)로부터 들어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이 보살의 행(행)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단바라밀 하나만을 말씀하시며 어떻게 구족하여야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미혹한 사람은 다섯바라밀이 모두 단바라밀로 말미암아 나는 것인줄 알지 못한 것이니 오직 단바라밀만을 수행하면 곧 육바라밀을 모두 구족하는 것이니라."
"어떤 인연으로 단바라밀이라고 합니까?"
"단(단)이란 보시(포시)를 말하느니라."
"어떤 물건을 보시하는 것입니까?"
"두 가지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두가지 성품입니까?"
"선과 악의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며, 있음과 없음의 성품, 사랑함과 미워함의 성품,공과 공 아님의 성품,정과 정 아님의 성품과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함의 성품을 보시해 버려서 일체 모든 것을 전부 보시해 버리면 두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느니라.
만약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을 때에 또한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하며 또 보시한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함이 곧 진실로 보시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이니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고 하느니라.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 함은 곧 일체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법의 성품이 공하다 함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니라.
만약 일체처에 무심함을 얻었을 때에는 한 모양(일상)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느니라.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다 함은 곧 실상이니 실상이란 여래의 묘한 색신의 모양이니라.
「금강경」에 이르기를 ‘일체의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곧 모든 부처님이라 한다’ 고 하였느니라."
"부처님은 육바라밀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어떻게 하나를 말하며 능히 구족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바라건대 하나가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하는 까닭을 말씀해 주십시요."
「사익경」에 이르기를 ‘망명존이 범천에게 말하되
[만약 보살이 일체의 번뇌를 버리면 단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보시요,
모든 법에 대해서 일어나는 바가 없음이 시라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지계요,
모든 법에 대하여 손상하는 바가 없음이 찬제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인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모양을 떠남이 비리야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정진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머무는 바가 없음이 선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선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희론이 없음이 반야바라밀이라 하니니 곧 지혜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여섯 가지 법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지금 다시 여섯가지 법에 이름을 붙이면 첫째는 버림과 둘째는 일어나지 아니함과 세째는 손상하지 않음과 네째는 모양을 떠남과 다섯째는 머물지 않음과 여섯째는 희론이 없음과 다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여섯가지 법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움이요, 묘한 이치에 이르러서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느니라.
다만 하나를 버릴줄 알면 일체를 버림이요, 하나가 일어나지 않으면 곧 일체가 일어나지 않거늘 미혹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차이가 있다고 모두 말 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여섯가지 법의 숫자에 머물러서 오래도록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니라.
너희들 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하나니, 다만 보시의 법만을 닦으면 만법이 두루 원만해지거늘 하물며 다섯가지 법이 어찌 구족하지 않겠는가."

문 차문 종하이입
답 종단파라밀입
문 불설육파라밀 시보살행 하고 독설단파라밀 운하구족이득입야
답 미인 불해오도개인단도생 단수단도 즉육도실개구족
문 하인연고 명위단도
답 단자 명위포시
문 포시하물
답 포시각이성
문 운하시이성
답 포시각선악성 포시각유무성 애증성 공불공성 정불정성 정불정성 일절 실개시각 즉득이성공 약득이성공시 역불득작이성공상 역불득작념유시상 즉시진행단파라밀 명만연 구절 만연 구절자 즉일절법성공 시야 법성공자 즉일절처무심 시 약득일절처무심시 즉무유일상가득 하이고 위자성 공고 무일상가득 무일상가득자 즉시실상 실상자 즉시여래묘색신상야 금강경운 이일절제상 칙명제불
문 불설육파라밀 금운하설일 즉능구족 원설일구육법지인
답 사익경 운 망명존 위범천언 약보살 사일절번뇌 명단파라밀 즉시포시 어제법 무소기 명시라파라밀 즉시지계 어제법 무소상 명□제파라밀 즉시인욕 어제법이상 명비이야파라밀 즉시정진 어제법무소주 명선파라밀 즉시선정 어제법무희론 명반야파라밀 즉시지혜 시명육법 금갱명육법 불이일사 이무기 삼무상 사이상 오무주 육무희론 여시육법 수사방편 가립명자 지어묘리 무이무별 단지일사 즉일절사 무기즉일절무기 미도불계 실위유차 우자 체기법수지중 즉장윤생사 고여학인 단수단지법 즉만법 주원 황어오법기불구야

11.삼학(삼학)을 함께 쓰다.

"삼학을 함께 쓴다 하니 어떤 것이 삼학이며 어떤 것이 함께 쓰는 것입니까?"
"삼학이란 계.정.혜니라."
"어떤 것을 계.정.혜라 합니까?"
"청정하여 물들지 아니함이 계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알아 경계를 대하여 고요함이 정이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알 때에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며 마음이 청정함을 알 때에 청정하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여 내지 선.악을 모두 능히 분별하되 그 가운데에 물들지 아니하여 자재를 얻음을 혜라고 하느니라. 만약 계.정.혜의 본체가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 때에 곧 분별함이 없어서 곧 동일의 본체이니 이것이 삼학을 함께 쓴다고 하는 것이니라."

문 삼학등용 하자시삼학 운하시등용
답 삼학자 계정혜시야
문 운하시계정혜
답 청정무염 시계 지심부동 대경적연 시정 지심부동시 불생부동상 지심청정시 불생청정상 내지선악 개능분별 어중 무염 득자재자시명위혜야 약지계정혜체구불가득시 즉무분별자 즉동일체 시명삼학등용

12.무생심(무생심)

"만약 마음이 청정함에 머물 때에는 청정함에 집착하는 것이 아닙니까?"
"청정함에 머뭄을 얻었을 때에 청정함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이 청정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라."
"마음이 공에 머물 때에는 공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까?"
"만약 공하다는 생각을 짓는다면 곧 공에 집착한 것이니라."
"만약 마음이 머뭄이 없는 곳에 머물 때에 머뭄이 없는 곳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까?"
"다만 공한 생각을 지으면 곧 집착할 곳이 없으니 네가 만약 머물 바 없는 마음을 분명하고 밝게 알고저 할진댄 바로 좌선할 때에 다만 마음만 알고, 모든 사물을 생각하여 헤아리지 말며 모든 선악을 생각하여 헤아리지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생각하여 헤아리지 아니하면 과거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지니 곧 과거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미래의 일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니 원하지도 아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하면 미래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지니 곧 미래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현재의 일은 이미 현재라 일체의 일에 집착함이 없음을 알뿐이니, 집착함이 없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집착함이 없음인지라 현재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서 곧 현재의 일이 없다고 하느니라. 삼세를 거두어 모을 수 없음이 또한 삼세가 없다고 말하느니라.
마음이 만약 일어날 때에 따라가지 아니하면 가는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 없어짐이요, 만약 마음이 머물 때에 또한 머뭄에 따르지 아니하면 머무는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서 머무는 마음이 없음이니, 이것이 머무는 곳 없는 곳에 머문다고 하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머뭄이 머뭄에 있을 때에는 다만 사물이 머물 뿐이요 또한 머무는 곳이 없으면 머무는 곳 없음도 없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마음이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면 곧 본래 마음「본심」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성품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느니라.
만약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마음이란 곧 부처님 마음「불심」이며, 또한 해탈심이며, 또한 보리심이며, 또한 무생심이며, 또한 색의 성품이 공함이라 이름하나니, 경에 이르기를 ‘무생법인을 증득했다’고 함이 이것이니라.
너희들이 만약 이와 같이 아직 체득하지 못하였을 때는 노력하고 노력하여 부지런히 공력을 더하여 공부를 성취하면 스스로 알 수 있으니, 그러므로 안다고 하는 것은 일체처에 무심함이 곧 아는 것 이니라.
무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되어 참되지 않음이 없으니, 거짓됨이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인 것이며 참됨이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라. 다만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곧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란 자연해탈이니라."

문 약심주정시 불시착정부
답 득주정시 불작주정상 시불착정
문 심주공시 불시착공부
답 약작공상 즉명착공
문 약심득주무주처시 불시착무주처부
답 단작공상 즉무유착처 여약욕요요식무소주심시 정좌지시 단지심 막사량일절물 일절선악 도막사량 과거사 이과거이막사량 과거심 자절 즉명무과거사 미래사미지 막원막구 미래심 자절 즉명무미래사 현재사 이현재 어일절사 단지무저 무저자 불기증애심 즉시무저 현재심 자절 즉명무현재사 삼세불섭 역명무삼세야 심약기거시 즉막수거 거심 자절 약주시 역막수주 주심 자절 즉무주심 즉시주무주처야 약요요자지 주재주시 지물주 역무주처 역무무주처야 약자요요지 심불주일절처 즉명요요견본심야 역명요요견성야 지개불주일절처심자 즉시불심 역명해탈심 역명보제심 역명무생심 역명색성공 경운증무생법인시야 여약미득여시지시 노력노력 근가용공 공성자회 소이회자 일절처무심 즉시회 언무심자 무가불진야 가자 애증심 시야 진자 무애증심 시야 단무애증심 즉시이성공 이성공자 자연해탈야

 13.상주(상주)

"앉아서만 쓸 수 있는 것입니까, 다닐 때도 또한 쓸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 공(공)을 쓴다고 말함은 단지 앉아 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하는 짓는 바 움직이는 모든 때 가운데 항상 써서 사이가 끊어짐이 없음이 항상 머문다고 하느니라."

문 지좌위용 행시 역득위용부
답 금언용공자 불독언좌 내지 행주좌와소조운위 일절시중 상용무간 즉명상주야

14.오종법신(오종법신)

「방광경(방광경)」에 이르기를 ‘다섯가지 법신은 첫째는 실상 법신이요, 둘째는 공덕법신이요, 셋째는 법성법신이요, 네째는 응화법신이요, 다섯째는 허공법신이다’고 하였는데, 자기의 몸에는 어떤 것이 이것입니까?
"마음이 무너지지 아니함을 아는 것이 실상 법신이며, 마음이 만상을 포함하는 것을 아는 것이 공덕법신이며, 마음이 무심임을 아는 것이 법성법신이며, 근기따라 응하여 설법함이 응화법신이며, 마음이 형상이 없어 얻을 수 없음을 아는 것이 허공법신이니, 만약 이 뜻을 확실히 아는 이는 곧 증득할 것이 없음을 아느니라.
얻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음이 곧 불법법신을 증득한 것이요, 만약 증득함이 있고 얻음이 있음을 증득으로 삼는 이는 곧 삿된견해의 증상만인이며 외도라고 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유마경」에 이르기를 ‘사리불이 천녀에게 묻되 그대는 얻은 바가 무엇이며 증한 바가 무엇이기에 말재주가 이와 같으냐’ 하고 물으니, 천녀가 대답하기를 ‘나는 얻음도 없고 증함도 없어서 이와 같음을 얻었오. 만약 얻음이 있고 증함이 있으면 불법 가운데에 증상만인이 되는 것이오’ 라고 하였느니라.

문 방광경운 오종법신 일실상법신 이공덕법신 삼법성법신 사응화법신 오허공법신 어자기신 하자시
답 지심불괴 시실상법신 지심함만상 시공덕법신 지심무심 시법성법신 수근응설 시응화법신 지심무형 불가득 시허공법신 약요차의자 즉지무증야 무득무증자 즉시증불법법신 약유증유득 이위증자 즉사견증상만인야 명위외도 하이고 유마경운 사리불 문천녀왈 여하소득 하소증 변내득여시 천녀답왈 아무득무증 내득여시 약유득유증 즉어불법중 위증상만인야

15.등각(등각)과 묘각(묘각)

"경에 이르기를 ‘등각,묘각’이라하니, 무엇이 등각이며 무엇이 묘각입니까?
"색(색)에 즉하고 공(공)에 즉함이 등각이요, 두 가지 성품이 공한(이성공) 까닭에 묘각이라 하며,또한 깨달음이 없음과 깨달음이 없음도 없음을 일컬어 묘각이라 하느니라."
"등각과 묘각이 다릅니까, 다르지 않습니까?"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두 이름을 세운 것으로서, 본체는 하나요, 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니 내지 일체법이 모두 그러하니라."

문 경운 등각묘각 운하시등각 운하시묘각
답 즉색즉공 명위등각 이성공고 명위묘각 우운 무각무무각 명위묘각
문 등각여묘각 위별 위불별
답 위수사방편 가립이명 본체시일 무이무별 내지일절법 개연야

16.설법(설법)

"「금강경」에 이르기를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다’하니 그 뜻이 무엇 입니까?
"반야의 체는 필경 청정하여 한 물건도 얻을 수 없음이 설할 법이 없다고 함이요, 반야의 공적한 본체 가운데에 항사의 묘용을 갖추어서 알지 못할 일이 없음이 법을 설한다고 함이니, 그러므로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라고 하느니라."

문 금강운 무법가설 시명설법 기의운하
답 반야체필경청정 무유일물가득 시명무법가설 즉어반야공적체중 구항사지용 즉무사부지시명설법 고운무법가설 시명설법

17.금강경의 경천(경천)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경을 수지독송하여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게 되면 이 사람은 전세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세의 사람들의 경멸과 천대를 받음으로 해서 전세의 죄업이 곧 소멸하여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 입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대선지식을 아직 만나지 못하여 오직 악업만 짓고 청정한 본래 마음이 삼독의 무명에 덮여서 능히 나타나지 못하므로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말한 것이니라. 금세의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 것은, 곧 오늘 발심하여 불도를 구함으로 무명이 다 없어지고 삼독이 나지를 아니해서 곧 본래 마음이 명랑하고 다시 어지러운 생각이 없으며, 모든 악이 영원이 없어져 버리므로써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하느니라. 무명이 모두 없어져서 어지러운 생각이 나지 아니하면 자연히 해탈한 것이므로 마땅히 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니, 곧 발심한 때를 금세라 하는 것이요, 격생이 아니니라."

문 약유선남자선녀인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시인 선세죄업 응타악도 이금세인경천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당득하뇩다라삼막삼보제 기의운하
답 지여유인 미우대선지식 유조악업 청정본심 피삼독무명소복 불능현요고 운위인경천야 이금세인경천자 즉시금일 발심구불도 위무명 멸진 삼독 불생 즉본심 명랑 갱무란념 제악 영멸고 이금세인경천야 무명 멸진 난염 불생 자연해탈고 운당득보제 즉발심시명위금세 비격생야

18. 여래(여래)의 오안(오안)

"또 여래의 다섯가지 눈이란 어떤 것입니까?"
"색의 청정함을 보는 것이 육안이요, 색의 본체가 청정함을 보는 것이 천안이요, 모든 색의 경계와 내지 선악에 대해서 모두 미세하게 분별하여 물듦이 없고 그 가운데 자제함이 혜안이요, 보아도 보는 바가 없음이 법안이요, 보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음도 없는 것이 불안이라고 하느니라."

우운 여래오안자 하
답 견색청정 명위육안 견체청정 명위천안 어제색경내지선악 실능미세분별 무소염저 어중 자재명위혜안 견무소견 명위법안 무견무무견 명위불안

19. 대승(대승)과 최상승(최상승)

“또 대승과 최상승의 뜻은 어떠합니까?”
“대승이란 보살승이요, 최상승이란 불승이니라.”
“어떻게 닦아야 이 승을 얻습니까?”
“보살승을 닦음이 대승이니 보살승을 증득하여 다시 관(관)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닦을 곳이 없음에 이르러 담연히 항상 고요하여 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아니함이 최상승이니 곧 이것이 불승이니라.”

우운 대승최상승 기의운하
답 대승자 시보살승 최상승자 시불승
우문 운하수이득차승
답 수보살승자 즉시대승 증보살승 갱불기관 지무수처 담연상적 불증불감 명최상승 즉시불승야

20. 정혜(정혜)를 함께 씀

“「열반경」에 이르기를 ‘선정은 많고 지혜가 적으면 무명을 떠나지 못하며 선정은 적고 지혜가 많으면 삿된 견해를 증장하며 선정과 지혜를 함께 하는 까닭에 해탈이다’고 하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일체 선악에 대하여 모든 것을 분별함이 지혜요, 분별하는 곳에 애증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물드는 바에 따라가지 아니함이 선정이니, 곧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니라.”

문 열반경운 정다혜소 불이무명 정소혜다 증장사견 정혜등고 즉명해탈 기의운하
답 대일절선악 실능분별 시혜 어소분별지처 불기애증 불수소염 시정 즉시정혜등용야

21. 경상(경상)과 정혜(정혜)

“말이 없고 설함이 없음이 곧 선정이라 하니, 바로 말하고 설할 때도 선정이라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말함과 말하지 않음을 논하지 않고 항상 선정인 것이니라. 왜냐하면 선정의 본성을 쓰기 때문에 말하거나 분별할 때에 곧 말하거나 분별함도 선정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공(공)한 마음으로 색(색)을 볼 때에는 색을 볼 때도 또한 공이며, 만약 색을 보지 아니하고 말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을 때도 또한 공이며, 내지 보고 듣고 깨닫고 알 때에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공하기 때문에 곧 일체처에 있어서 모두 공한 것이니, 공이란 곧 집착이 없음이며 집착이 없음이 곧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니라. 보살이 항상 이와 같이 공 그대로「등공」의 법을 써서 구경에 이르는 까닭에 선정과 지혜가 함께 함을 곧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다시 그대들을 위하여 비유로써 나타내 보여 그대들로 하여금 분명하게 알아서 의심을 끊게 하리라.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모습을 비출 때에 그 밝음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추지 아니할 때도 또한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밝은 거울의 작용에는 밝게 비친다는 정(정)이 없으므로  비출 때도 움직이지 않고 비추지 아니할 때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라. 어째서 그러냐 하면 분별의 정(정)이 없는 가운데에는 움직이는 것도 없고 움직이지 않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또,
‘햇빛이 세상을 비출 때 그 빛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약 비추지 않을 때도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빛이 분별의 정(정)이 없기 때문이니 정이 없음으로써 빛이 비추므로 움직이지 아니하며 비추지 않을 때도 또한 움직이지 아니 하느니라. 비춘다 함은 지혜요, 움직이지 아니한다 함은 선정이니 보살이 선정과 지혜를 함께한 법을 써서 삼먁삼보리를 얻는 까닭에 선정과 지혜를 함께 씀이 곧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정(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범부의 정이 없음이요, 성인의 정이 없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범부의 정이며 어떤 것이 성인의 정입니까?”
“만약 두 가지 성품을 일으키면 곧 범부의 정이요, 두가지 성품이 공(공)하기 때문에 곧 성인의 정이니라.”

우문 무언무설 즉명위정 정언설지시 득명정부
답 금언정자 불논설여불설상정 하이고 위용정성 언설분별시 즉언설분별 역정 약이공심 관색시 즉관색시 역공 약불관색불설불분별시 역공 내지견문각지 역복여시 하이고 위자성공 즉어일절처실공 공즉무저 무저 즉시등용 위보살 상용여시등공지법 득지구경고 운정혜등자 즉명해탈야
금갱위여비유현시 령여성성득해단의 비여명감조상지시 기명 동부 부야 불조시 역동부 불야 하이고 위명감용 무정명조 소이조시 불동 불조 역불동 하이고 위무정지중 무유동자 역무불동자 우여일광 조세지시 기광 동부 불야 약불조시 동부 불야 하이고 위광무정고 용무정광조 소이불동 불조역불동 조자 시혜 불동자 시정 보살 용시정혜등법 득삼보제고 운정혜등용 즉시해탈야 금언무정자 무범정 비무성정야
문 운하시범정 운하시성정
답 약기이성 즉시범정 이성공고 즉시성정

22. 언어도단심행처멸(언어도단심행처멸)

“경에 이르기를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 그 뜻이 어떠합니까?”
“말로써 뜻을 나타냄에 뜻을 얻으면 말이 끊어지니 뜻이 곧 공함이요, 공함이 곧 도인지라, 도는 곧 말이 끊어진 까닭에 언어의 길이 끊어졌다고 하느니라.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중도실제의 뜻을 얻어서 다시 관(관)을 일으키지 아니함을 말함이니, 관(관)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곧 나는 것이 없음(무생)이니라. 나는 것이 없는 까닭에 곧 모든 색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색의 성품이 공한 까닭에 곧 만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짐이요, 만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짐이 곧 마음가는 곳이 없어진 것이니라.“

문 경운 언어도단심행처멸 기의여하
답 이언현의 득의언절 의즉시공 공즉시도 도즉시절언고 운언어도단 심행처멸 위득의실제갱불기관 불기관고 즉시무생 이무생고 즉일절색성공 색성공고 즉만연 구절 만연구절자 즉시심행처멸

23. 여여(여여)

“여여란 어떤 것입니까?”
“여여(여여)란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이니 마음이 진여인 까닭에 여여라고 하느니라. 과거 모든 부처님들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셧고 현재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시고 미래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또한 성도하실 것이니, 삼세에 닦아 증한 바의 도가 다름이 없으므로 여여라 함을 알지니라.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들도 또한 같으며 미륵에 이르러도 또한 같으며 내지 일체 중생에 이르러도 모두 같다. 왜냐하면 불성이란 끊어지지 아니하고 있는 성품이기 때문이니라’고 하였느니라.”

문 여여자 운하
답 여여 시불동의 심진여고명여여야 시지과거제불 행차행 역득성도 현재불 행차행 역득성도 미래불 행차행 역득성도 삼세소수증도 무이고 명여여야 유마경운 제불 역여야 지어미륵 역여야 내지일절중생 실개여야 하이고 위불성 불단유성고야

24. 즉색즉공(즉색즉공)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하며 범에 즉하고 성에 즉함이 돈오입니까?”
“그러니라.”
“어떤 것이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함이며 어떤 것이 범부에 즉하고 성인에 즉한 것입니까?”
“마음에 물듦이 있음이 곧 색이요, 마음에 물듦이 없음이 곧 공이며, 마음에 물듦이 있음이 곧 범부요 마음에 물듦이 없음이 곧 성인이니라. 또한 진공묘유이므로 곧 색이요, 색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곧 공이니, 지금 공이라고 말한 것은 이 색의 성품이 스스로 공함이요 색이 없어져서 공한 것은 아니니라. 지금 색이라고 하는 것은 이 공의 성품이 스스로 색이요, 색이 능히 색인 것은 아니니라.”

문 즉색즉공 즉범즉성 시돈오부
답 시
문 운하시즉색즉공 운하시즉범즉성
답 심유염 즉색 심무염 즉공 심유염 즉범 심무염 즉성 우운 진공묘유고 즉색 색불가득고 즉공 금언공자 시색성 자공 비색멸공 금언색자 시공성자색 비색능색야

25. 진(진)과 무진(무진)

“경에 이르기를 ‘다함과 다함 없음의 법문’이란 무슨 뜻입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한 까닭에 보고 들음이 나지 않음이 다함「진」이니 다함이란 모든 망루(망루)가 다함이며, 다함이 없음은 남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하사의 묘용을 갖추고 있어서 일을 따라 응하여 나타나서 모두 다 구족하여, 본체 가운데에 손감이 없음을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다함과 다함 없음의 법문인 것이니라.”
“다함과 다함 없음이 하나입니까, 다릅니까?”
“본체는 하나이나 말하면 다름이 있느니라.”
“본체가 이미 하나일진댄 어째서 다름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라 함은 말의 본체「체」요, 말함은 본체의 작용이니 일을 따라서 응용하는 까닭에 본체는 같으나 말함은 다르다고 하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천상의 한 해「일」 아래 여러가지 그릇들을 놓아두고 물을 채우면 하나하나의 그릇 가운데 모두 해가 있어서, 모든 그릇 가운데의 해가 다 원만하여 하늘 위의 해와 아무런 차별이 없는 까닭에 본체는 같다고 말하는 것이요, 그릇에 따라 이름을 세워서 곧 차별이 있으므로 다른 것이니라. 그러므로 본체는 같으나 말하면 곧 다름이 있다고 하느니라.
그릇에 나타난 모든 해가 모두 원만하여 하늘의 본래 해와 또한 손감이 없는 까닭으로 다함이 없다고 하느니라.“

문 경운 진무진법문여하
답 위이성공고 견문무생 시진 진자 제누진 무진자 어무생체중 구항사묘용 수사응현 실개구족 어본체중 역무손멸 시명무진 즉시진무진법문야
문 진여무진 위일 위별
답 체시일 설즉유별
문 체기시일 운하설별
답 일자 시설지체 설시체지용 위수사응용고 운체동설별 유여천상일일하 치종종분기성수 일일기중 개유어일 제기중일 실개원만 여천상일 역무차별고 운체동 위수기립명 즉유차별 소이유별 고운체동 설즉유별 소현제일 실개원만 어상본일 역무손멸고 운무진야

26. 불생불멸(불생불멸)

“경에 이르기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하니 어떤 법이 나지 아니하며 어떤 법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착하지 않음이 나지 않음이요, 착한 법은 없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어떤 것이 착함이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음입니까?”
“착하지 않음이란 염루심(염루심)이요, 착한 법이란 염루심이 없음이니 다만 염루가 없으면 곧 착하지 않음이 나지 않음이며, 염루가 없음을 얻었을 때에 곧 청정하고 둥글고 밝아 담연히 항상 고요해서 마침내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착한 법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나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한 것이니라.”

문 경운 불생불멸 하법불생 하법불멸
답 불선 불생 선법 불멸
문 하자선 하자불선
답 불선자 시염누심 선법자 시무염누심 단무염무루 즉시불선불생 득무염무루시 즉청정원명 담연상적 필경불천 시명선법불멸야 차즉시불생불멸

27. 불계(불계)는 청정심(청정심)

“「보살계」에 이르기를 ‘중생이 부처님 계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의 지위에 들어가는지라 지위가 대각과 같아서 참으로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다’고 하시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계란 청정한 마음이니 만약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청정행을 수행하여  받는 바가 없는 마음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의 계를 받았다고 하느니라.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다 청정하여 받음이 없는 행을 닦아서 불도를 이룬 것이니, 지금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받음이 없는 청정행을 닦는 사람은 곧 부처님과 더불어 공덕을 균등하게 써서 다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 지위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 깨달은 사람은 부처님과 더불어 깨달음이 같으므로 지위가 대각과 같아서 참으로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니라. 청정한 마음으로부터 지혜가 나는지라 지혜가 청정함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며 또한 이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니라.”

문 보살계운 중생 수불계 즉입제불위 위동대각이 진시제불자 기의운하
답 불계자 청정심 시야 약유인 발심 수행청정행 득무소수심자 명수불계야 과거제불 개수청정무수행 득성불도 금시 유인 발심수무수청정행자 즉여불공덕등용 무유이야 고운입제불위야 여시오자 여불오동고 운위동대각이 진시제불자 종청정심생지 지청정 명위제불자 역명차불자

28. 불(불)과 법(법)의 선후(선후)

“부처님과 법에 있어서 부처님이 앞입니까, 법이 앞입니까? 만약 법이 앞이라고 하면 법은 어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이며, 만약 부처님이 앞이라고 하면 어떤 가르침을 이어 받아서 도를 이룬 것입니까?”
“부처님은 법보다 앞에 있기도 하고 법의 뒤에 있기도 하느니라.”
“어찌하여 부처와 법에 앞뒤가 있읍니까?”
“만약 적멸법에 의거하면 법이 앞이요 부처님이 뒤이며, 문자법에 의거하면 부처님이 앞이요 법은 뒤이니라. 왜냐하면 일체 모든 부처님이 모두 적멸법에 의해서 성불을 했으므로 곧 법이 앞이요 부처님은 뒤이니,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의 스승됨은 이른바 법이다’고 하였느니라. 성도하고 나서 비로소 십이부경을 널리 설하여 중생을 인도하여 교화하시니 중생이 부처님 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수행하여 성불하므로 곧 부처님이 앞이요 법은 뒤인 것이니라.”

문 지시불지여법 위시불재선 위시법재선 약법재선 법시하불소설 약불재선 승하교이성도
답 불 역재법선 역재법후
문 인하불법선후
답 약거적멸법 시법선불후 약거문자법 시불선법후 하이고 일절제불 개인적멸법이득성불 즉시법선불후 경운 제불소사 소위법야 득성도이 연시광설십이부경 인화중생 중생 승불법교 수행득성불 즉시불선법후야

29. 설통(설통)과 종통(종통)

“어떤 것이 설법은 통하고 종취는 통하지 못한 것입니까?”
“말과 행동이 서로 틀림이 곧 설법은 통하고 종취는 통하지 못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한 것입니까?”
“말과 행동이 차이가 없음이 곧 설법도 통하고 종취도 통한 것이니라.”

문 운하시설통종불통
답 언행상위즉시설통종불통
문 운하시종통설역통
답 언행무차 즉시설통종역통

30. 도(도)와 부도(부도)

“경에 이르기를 ‘이르되 이르지 아니하고 이르지 않되 이른 법’이란 무엇입니까?”
“말은 이르러도 행은 이르지 못함이 이르렀으나 이르지 못함이요,
 행은 이르러도 말은 이르지 못함이 이르지 않되 이르른 것이며,
 행과 말이 함께 이르름이 이르고 이름이라 하느니라.”

문 경운 도불도불도도지법운하
답 설도행불도 명위도불도 행도설불도 명위불도도 행설구도 명위도도

31. 부진유위(부진유위)며 부주무위(부주무위)

“불법은 유위(유위)에도 다하지 아니하고 무위(무위)에도 머물지 아니한다 하니 어떤 것이 유위에도 다하지 아니하고 무위에도 머물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유위에도 다하지 아니한다 함은 처음 발심으로부터 드디어 보리수 아래에서 등정각을 이루시고 마침내 쌍림에 이르러 열반에 드실 때까지 그 가운데 일체법을 모두 다 버리지 않음이 곧 유위(유위)에도 다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무위(무위)에도 머물지 아니한다 함은 비록 무념을 닦는다 할지라도 무념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으며, 비록 공을 닦으나 공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으며, 비록 보리.열반.무상.무작을 닦으나 무상.무작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음이 곧 무위에도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문 불법 불진유위 불주무위 하자시불진유위 하자시불주무위
답 불진유위자 종초발심 지보제수하성등정각 후지쌍림입반열반 어중 일절법 실개불사즉시불진유위야 불주무위자 수수무념 불이무념 위증 수수공 불이공위증 수수보제열반무상무작 불이무상무작 위증 즉시불주무위야

32. 지옥유무(지옥유무)

“지옥이 있습니까, 지옥이 없습니까?”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하느니라.”
“어째서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합니까?”
“마음을 따라 짓는 바 일체 악업이 곧 지옥이 있음이요,
 만약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곧 지옥이 없느니라.”

문 위유지옥 위무지옥
답 역유역무
문 운하역유역무
답 위수심소조일절악업 즉유지옥 약심무염 자성 공고 즉무지옥

33. 중생(중생)과 불성(불성)

“죄를 지은 중생도 불성이 있읍니까?”
“또한 불성이 있느니라.”
“이미 불성이 있을진댄 바로 지옥에 들어갈 때에 불성도 함께 들어갑니까?”
“함께 들어가지 않느니라.”
“바로 지옥에 들어갈 때에 불성은 다시 어느 곳에 있읍니까?”
“또한 함께 들어가느니라.”
“이미 함께 들어갈진댄 지옥에 들어갈 때 중생이 죄를 받음에 불성도 또한 함께 죄를 받습니까?”
“불성이 비록 중생을 따라 함께 지옥에 들어가지만 중생이 스스로 죄의 고통을 받는 것이요 불성은 원래 고통을 받지 않느니라.”
“이미 함께 지옥에 들어갔을진댄 무엇 때문에 지옥고를 받지 아니합니까?”
“중생이란 모양「상」이 있음이니 모양이 있는 것은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있음이요, 불성이란 모양이 없음이니 모양이 없는 것은 곧 공한 성품이니라. 그러므로 진공의 성품은 무너짐이 없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허공에 땔 나무를 쌓으면 땔 나무는 스스로 무너지나 허공은 무너지지 않음과 같으니 허공은 불성에 비유하고 땔 나무는 중생에 비유한 것이니, 그러므로 함께 들어가나 함께 받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문 수죄중생 유불성부
답 역유불성
문 기유불성 정입지옥시 불성 동입부
답 불동입
문 정입지시 불성 복재하처
답 역동입
문 기동입 정입시중생 수죄 불성 역동수죄부
답 불성 수수중생동입 시중생 자수죄고 불성 원래불수
문 기동입 인하불수
답 중생자 시유상 유상자 즉유성괴 불성자 시무상 무상자 즉시공성야 시고 진공지성 무유괴자 유여유인 어공 적신 신자수괴 공불수괴야 공유불성 신유중생 고 운동입이불동수야

34. 삼신사지(삼신사지)

“팔식을 굴려서 네 가지 지혜를 이루며 네 가지 지혜를 묶어서 삼신(삼신)을 이룬다 하니, 몇 개의 식이 한 지혜를 함께 이루며, 몇 개의 식이 한 지혜를 홀로 이루는 것입니까?”
“눈.귀.코.혀.몸의 이 다섯 식이 함께 성소작지를 이루고, 제육식은 의식이니 홀로 묘관찰지를 이루고, 제칠심식은 홀로 평등성지를 이루며, 제팔함장식은 홀로 대원경지를 이루느니라.”
“이 네 가지 지혜는 각각 다른 것입니까, 같은 것입니까?”
“본체는 같으나 이름이 다르니라.”
“본체가 이미 같을진댄 어째서 이름이 다르며, 이미 일을 따라 이름을 세울진댄 바로 하나의 본체일 때 어떤 것이 대원경지입니까?”
“담연히 공적하여 둥글고 밝아 움직이지 아니함이 곧 대원경지요, 능히 모든 육진에 대하여 사랑함과 미움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 곧 평등성지요, 능히 모든 육근의 경계에 들어가 잘 분별하되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자재를 얻음이 곧 묘관찰지요, 능히 모든 육근으로 하여금 일을 따라서 응용하여 모두 정수(정수)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이 없음이 곧 성소작지니라.”
“네 가지 지혜「사지」를 묶어서 세 가지 몸「삼신」을 이룬다 함은 몇 개의 지혜가 함께 한 몸을 이루며 몇 개의 지혜가 홀로 한 몸을 이룹니까?”
“대원경지는 홀로 법신을 이루고, 평등성지는 홀로 보신을 이루며 묘관찰지와 성소작지는 함께 화신을 이루니, 이 세 가지 몸도 또한 거짓으로 이름을 세워 분별하여 다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한 것이니라. 만약 이 이치를 확실히 알면 또한 삼신의 응용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본체의 성품은 모양이 없어서 머물음이 없는 근본을 좇아서 서니 또한 머물음이 없는 근본도 없느니라.”

문 전팔식성사지 속사지성삼신 기개식 공성일지 기개식 독성일지
답 안이비설신 차오식 공성성소작지 제육 시의 독성묘관찰지 제칠심식 독성평등성지 제팔함장식 독성대원경지
문 차사지위별 위동
답 체동명별
문 체기동 운하명별 기수사입명 정일체지시 하자시대원경지
답 담연공적 원명불동 즉대원경지 능대제진 불기애증 즉시이성공 이성공 즉평등성지 능입제근경계 선능분별 불기란상이득자재 즉시묘관찰지 능령제근 수사응용 실입정수 무이상자즉시성소작지
문 속사지성삼신자 기개지공성일신 기개지독성일신
답 대원경지 독성법신 평등성지 독성보신 묘관찰지여성소작지 공성화신 차삼신 역가립명자분별 지령미해자간 약요차이 역무삼신응용 하이고 위체성 무상 종무주본이립 역무무주본

35. 불진신(불진신)

“어떤 것이 부처님의 참된 몸을 보는 것입니까?”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아니하는 것이 부처님의 참된 몸을 보는 것이니라.”
“어째서 있음「유」과 없음「무」을 보지 않음이 부처님의 참된 몸「진신」을 보는 것입니까?”
“있음「유」은 없음「무」으로 인해서 서고, 없음은 있음으로 인해서 나타나느니라. 본래 있음을 세우지 아니하면 없음도 또한 존재하지 아니하니 이미 없음이 존재하지 않는데 있음을 어디서 얻을 수 있으리오. 있음과 없음이 서로 인해서 비로소 있으니 이미 서로 인해서 있으니 모두가 생멸이니라. 다만 이 두 견해를 떠나면 곧 부처님의 참된 몸을 보는 것이니라.”
“다만 있음「유」과 없음「무」도 오히려 서로 건립하지 못하거늘 부처님의 진신「진신」이 다시 무엇을 좇아서 설 수 있읍니까?”
“물음이 있기 때문이니, 만약 묻지 않을 때엔 진신의 이름도 서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만약 물건의 모양을 대할 때는 모양이 나타나나 만약 모양을 대하지 않을 때는 마침내 모양을 볼 수 없음과 같으니라.”

문 운하시견불진신
답 불견유무즉시견불진신
문 운하불견유무즉시견불진신
답 유인무립 무인유현 본불립유 무역불존 기불존무 유종하득 유지여무 상인시유 기상인이유 실시생멸야 단이차이견 즉시견불진신
문 지여유무 상불가교건립 진신 복종하이립
답 위유문고 약무문시 진신지명 역불가립 하이고 비여명경 약대물상시 즉현상 약불대상시 종불견상

36.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함(상불리불)

“어떤 것이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마음에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고 경계를 대하여는 고요하여 어느 때나 필경 공적하면 이것이 곧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함이니라.”

문 운하시상불이불
답 심무기멸 대경적연 일절시중 필경공적 즉시상불이불

37. 무위법(무위법)

“어떤 것이 무위법(무위법)입니까?”
“유위법(유위법)이니라.”
“지금 무위법을 물었거늘 어째서 유위라고 대답하십니까?”
“있음「유」은 없음「무」으로 인해서 서고 없음은 있음으로 인해서 나타나느니라. 본래 있음을 세우지 아니하면 없음은 어디서 날 것인가? 만약 참된 무위(무위)를 논할진댄 곧 유위(유위)도 취하지 아니하고 또한 무위도 취하지 아니함이 참된 무위법이니라. 왜냐하면 경에 이르기를 ‘만약 법의 모양을 취하면 곧 아상과 인상에 집착하고 만약 법의 모양 아닌 것을 취하여도 곧 아상과 인상에 집착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법도 취하지 말고 법 아님도 취하지 말라’고 하시니 이것이 곧 참된 법을 취함이니라. 만약 이 이치를 밝게 알면 곧 참된 해탈이며 둘 아닌 법문을 아는 것이니라.”

문 하자시무위법
답 유위시
문 금문무위법 인하답유위시
답 유인무립 무인유현 본불립유 무종하생 약론진무위자 즉불취유위 역불취무위 시진무위법야 하이고 경운 약취법상 즉저아인 약취비법상 즉저아인 시고불응취법 불응취비법  즉시취진법야 약요차리 즉진해탈 즉회불이법문

38. 중도(중도)

“어떤 것이 중도의 뜻입니까.”
“가「변」의 뜻이니라.”
“지금 중도를 물었거늘 무엇 때문에 가「변」의 뜻이라고 대답하십니까?”
“가「변」는 가운데「중」로 말미암아 서고 가운데「중」는 가「변」로 말미암아 나느니라. 만약 본래 가「변」가 없으면 가운데는 무엇을 따라 있으리오. 지금 가운데라고 하는 것은 가로 말미암아 비로소 있는 것이므로 가운데와 가가 서로 인하여 서 있어서 모두가 항상함이 없음「무상」을 알지니 색.수.상.행.식도 이와 같으니라.”

문 하자시중도의
답 변의시
문 금문중도 인하답변의시
답 변인중립 중인변생 본약무변 중종하유 금언중자 인변시유고 지중지여변 상인이립 실시무상 색수상행식 역복여시

39. 오음(오음)

“어떤 것을 오음(오음)이라 합니까?”
“색을 대하여 색에 물들어 색을 따라 남「생」을 받는 것을 색음(색음)이라 하며, 팔풍(팔풍)을 받아들인 까닭으로 삿된 믿음을 즐겨 모아서 받아들임에 따라 남「생」을 받는 것을 수음(수음)이라 하며, 미혹한 마음이 생각을 취하여 생각을 따라 남「생」을 받는 것을 상음(상음)이라 하며, 모든 행을 결집하여 행을 따라 남「생」을 받는 것을 행음(행음)이라 하며, 평등한 본체에 망령되이 분별을 일으키고 얽매어 붙어서 허망한 의식이 남「생」을 받는 것을 식음(식음)이라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오음이라고 일컫느니라.”

문 하명오음등
답 대색염색 수색수생 명위색음 위령납팔풍 호집사신 즉수령수중생 명위수음 미심취상 수상수생 명위상음 결집제행 수행수생 명위행음 어평등체 망기분별계저 허식수생 명위식음 고운오음

40. 이십오유(이십오유)

“경에 이르기를 ‘이십오유(이십오유)’라고 하니 어떤 것입니까?”
“뒤의 몸을 받는 것이 이십오유이니, 뒤의 몸「후유신」이란 곧 육도에 생을 받는 것이니라. 중생이 현세에 마음이 미혹하여 기꺼이 모든 업을 맺어 뒤에 업을 따라 생(생)을 받는 까닭에 뒤가 있다「후유」고 하느니라. 세상에 만약 어떤 사람이 구경해탈을 닦을 뜻을 품고 무생법인을 증득한 사람은 곧 삼계를 영원히 떠나서 후유(후유)를 받지 않나니, 후유(후유)를 받지 않는 사람은 곧 법신(법신)을 증득함이요 법신이란 곧 불신(불신)이니라.”
“이십오유의 이름을 어떻게 분별합니까?”
“본체는 하나이지만 씀에 따라 이름을 세워서 이십오유를 나타내기 때문이니, 이십오유는 십악과 십선과 오음이니라.”
“어떤 것이 십악.십선입니까?”
“십악은 죽이는 것, 훔치는 것, 음행하는 것, 거짓말, 아첨하는 말, 이간하는 말, 나쁜말 내지 탐냄, 성냄, 삿된 견해이니 이것이 십악이요, 십선이란 다만 십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니라.”

문 경운 이십오유 하자시
답 수후유신 시야 후유신자 즉육도수생야 위중생 현세심미 호결제업 후즉수업수생고 운후유야 세약유인 지수구경해탈 증무생법인자 즉영리삼계 불수후유 불수후유자 즉증법신 법신자 즉시불신
문 이십오유명 운하분별
답 본체시일 위수용립명 현이십오유 이십오유 십악십선 오음 시
문 운하시십악십선
답 십악 살도음 망언기언양설악구 내지탐진사견 차명십악 십선자 단불행십악 즉시야

41. 무념(무념)과 돈오(돈오)

1. 무념(무념)
“위에서 무념을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다 이해할 수 없읍니다.”
“무념이란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일체 경계가 없어서 나머지 생각으로 구함이 없음이며, 모든 경계와 사물에 대하여 영영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이 곧 무념이니라. 무념이란 참된 생각「진념」을 이름함이니 만약 생각으로 생각을 삼는다면 곧 삿된 생각「사념」이요 바른 생각「정념」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경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에게 육념(육념)을 가르치면 생각이 아님「비념」이다’고 하나니, 육념이 있으면 삿된 생각「사념」이요 육념이 없으면 곧 참된 생각「진념」이라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선남자야, 우리가 무념법(무념법) 가운데 머물러서 이와 같은 금색의 삼십이상을 얻어 큰 광명을 놓아서 세계를 남김없이 비추나니, 이 불가사의한 공덕은 부처님이 설명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머지 승(승)들이 능히 알 수 있으리오’ 하였느니라. 무념을 얻은 사람은 육근(육근)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자연히 모든 부처님 지견에 들어가나니, 이러한  법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 곳집이며 또 법의 곳집이라 하나니, 곧 능히 일체가 부처이며 일체가 법이니라. 왜냐하면 무념인 까닭이니, 경에 이르기를 ‘일체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이 경으로부터 나오신다’고 하였느니라.“
“이미 무념이라고 하면서 부처님 지견에 들어간다고 하니 다시 무엇을 좇아서 세웁니까?”
“무념을 좇아서 세우니 무슨 까닭인가? 경에 이르기를 ‘머뭄이 없는 근본을 좇아서 일체법을 세운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비유컨대 밝은 거울과 같다’고 하였으니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남이니, 왜냐하면 거울이 밝은 까닭에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나느니라. 배우는 사람의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에 망념이 나지 아니하고 아인심(아인심)이 없어져서 필경 청정하니 청정한 까닭으로 능히 한량없는 지견이 나느니라. 돈오란 금생을 떠나지 않고 곧 해탈을 얻나니 무엇으로써 그것을 아는가? 비유컨대 사자새끼가 처음 태어날 때도 사자인 것과 같으니 돈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돈오를 닦을 때에 곧 부처님 지위에 들어가느니라. 마치 대나무가 봄에 순이 나서 그 봄을 여의지 않고 곧 어미 대나무와 같게 되어 함께 다름이 없는 것과 같음이니, 왜냐하면 마음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문 상설무념 유미진결
답 무념자 일절처 무심 시 무일절경계 무여사구시 대제경색 영무기동 시즉무념 무념자 시명진념야 약이념위념자 즉시사념 비위정념 하이고 경운 약교인육념 명위비념 유육념 명위사념 무육념자 즉진념 경운 선남자 아등 주어무념법중 득여시금색삼십이상 방대광명 조무여세계 불가사의공덕 불설지 유불진 하황여승능지야 득무념자 육근 무염고 자연득입제불지견 득여시자 즉명불장 역명법장 즉능일절불 일절법 하이고 위무념고 경운 일절제불등 개종차경출
문 기칭무념 입불지견 복종하립
답 종무념립 하이고 경운 종무주본 립일절법 우운유여명감 감중 수무상이능현만상 하이고 위감명고 능현만상 학인 위심무염고 망념 불생 아인심 멸 필경청정 이청정고 능생무량지견 돈오자 불리차생 즉득해탈 하이지지 비여사자아 초생지시 즉진사자 수돈오자 역복여시 즉수지시 즉입불위 여죽춘생순 불이어춘 즉여모제 등무유이 하이고 위심공고

2. 돈오(돈오)
“돈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순식간에 망념을 없애버리고 영원히 아인심(아인심)을 끊어서 필경 공적하여 곧 부처님과 같게 되어 다름이 없는 까닭에 범부가 성인이라고 하느니라. 돈오를 닦는 사람은 이 몸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삼계를 뛰어나나니, 경에 이르기를 ‘세간을 무너뜨리지 아니하고 세간을 뛰어나며 번뇌를 버리지 아니하고 열반에 들어간다’고 하였느니라.
돈오를 닦지 않는 사람은 마치 여우가 사자를 따라 좇아 다녀서 백천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사자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느니라.”

수돈오자 역복여시 위돈제망념 영절아인 필경공적 즉여불제 등무유이고 운즉범즉성야 수돈오자 불이차신 즉초삼계 경운 불괴세간이초세간 불사번뇌이입열반 불수돈오자 유여야간 수축사자 경백천겁 종불득성사자

3. 진여(진여)와 무심(무심)
“진여의 성품은 실로 공한 것입니까, 실로 공하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공하지 않다고 말하면 곧 모양이 있는 것이요 만약 공하다고 말하면 곧 단멸이니, 일체 중생이 마땅히 무엇을 의지해서 닦아야 해탈을 얻을 수 있읍니까?”
“진여의 성품은 공하면서 또한 공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진여의 묘한 본체는 형상이 없어서 얻을 수 없으므로 또한 공하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공하여 모양이 없는 본체 가운데에 항사묘용이 구족하여 곧 사물에 응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또한 공하지 않다고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하나를 알면 천가지가 따라오고 하나를 미혹하면 만가지를 미혹한다’하니, 만약 사람이 하나를 지키면 만가지 일을 마치는 것이니 이것이 오도(오도)의 묘함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삼라만상이 한 법의 도장 찍힌 바라’ 하니 어떻게 해서 한 법 가운데에서 갖가지 견해가 나오는 것인가?
이러한 공업(공업)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근본이 되니 만약 마음을 항복받지 아니하고 문자를 의지해서 증득하려 하면 옳지 못함이라.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여서 피차가 함께 떨어질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여 자세히 살필지니라.
다만 일이 닥쳐옴에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이렇게 얻은 사람은 곧 열반에 들어 무생법인을 증득 하느니라. 이것을 불이법문이라 하며 또 다툼이 없다고 하며 일행삼매라고 하나니, 왜냐하면 필경 청정하여 아상과 인상이 없는 까닭이니라. 애증을 일으키지 않음이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며 보는 바가 없음이니, 곧 이것이 진여의 얻음이 없는 변론이니라.”

우문 진여지성 위실공 위실불공 약언불공 즉시유상 약언공자 즉시단멸 일절중생 당의하수이득해탈
답 진여지성 역공역불공 하이고 진여묘체 무형무상 불가득야 시명역공 연 어공무상체중 구족항사지용 즉무사불응 시명역불공 경운 해일즉천종 미일즉만혹 약인 수일 만사필 시오도지묘야 경운 삼라급만상 일법지소인 운하일법중이생종종견 여차공업 유행위본 약불강심 의문취증 무유시처 자광광타 피차구추 노력노력 세세심지 지시사래 불수 일절처 무심 득여시자 즉입열반 증무생법인 역명불이법문 역명무쟁 역명일행삼매 하이고 필경청정 무아인고 불기애증 시이성공 시무소견 즉시진여무득지변

42. 중생자도(중생자도)

“이 논은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전하지 말며 오직 견해가 같고 행함이 같은 이에게 전할 것이요, 마땅히 앞 사람이 참으로 신심이 있어 감당하여 물러가지 않는 사람인가를 관찰할 것이니, 이러한 사람을 위해 설명하고 보이어서 깨닫도록 해야 하느니라. 내가 이 논을 지은 것은 인연 있는 사람을 위함이요 명리를 구하고자 함이 아니니라. 다만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 천가지 경 만가지 논은 중생이 미혹하기 때문에 마음과 행동이 한결같지 아니하여 삿됨을 따라 대응하여 설명한 것이므로 곧 여러 차별이 있으나, 구경해탈의 이치를 논하는 경우 일진댄 다만 일이 다가와도 받지 아니하고 일체처에 무심하여 영영 고요함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필경에 청정하여 자연해탈이니라. 너희들은 헛된 이름을 구하여 입으로는 진여를 말하되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서는 안되느니라. 곧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서 스스로 속임이라 하나니, 마땅히 악도에 떨어지느니라. 한 세상의 헛된 이름과 쾌락을 구하지 말라. 모르는 사이에 억겁의 재앙을 받게 되는 것이니 힘쓰고 힘쓸지니라. 중생이 스스로 제도함이요 부처님이 능히 제도하지 못하나니,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때엔 과거 모든 부처님이 티끌 수와 같아서 일체 중생을 모두 제도하여 마쳤을 것이어늘, 무엇 때문에 우리들은 지금까지 생사에 유랑하며 성불하지 못하였는가? 중생이 스스로 제도함이요 부처님이 능히 제도하지 못함을 마땅히 알라. 노력하고 노력하여 스스로 닦아서 다른 부처님의 힘을 의지하지 말지니, 경에 이르기를 ‘무릇 법을 구하는 자는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차론 불전무신 유전동견동행 당관전인 유성신심 감임불퇴자 여시지인 내가위설 시지령오 오작차론 위유연인 비구명리 지여제불소설천경만론 지위중생 미고 심행불동 수사응설 즉유차별 여론구경해탈리자 지시사래불수 일절처무심 영적여공 필경청정 자연해탈 여막구허명 구설진여 심사원후 즉언행 상위 명위자광 당추악도 막구일세허명쾌락 불각장겁수앙 노력노력 중생 자도 불불능도 약불능도중생시 과거제불 여미진수 일절중생 총응도진 하고 아등 지금유랑생사 불득성불 당지중생 자도 불불능도 노력노력자수 막의타불력 경운 부구법자 불저불구

43. 동처부동주(동처부동주)

“내세에 있어서는 잡된 배움의 무리가 많을 것인데 어떻게 함께 살겠읍니까?”
“다만 그 빛을 온화하게 할 뿐이요, 그 업은 같이하지 말지니 장소는 같이하나 같이 살지는 아니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흐름을 따르나 성품은 항상하다’고 하였느니라.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은 스스로 일대사인연인 해탈의 일을 위할지니, 아울러 처음 배우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부처님 같이 공경하고 배우며, 자기의 덕을 높이고 남의 능력을 질투하지 말며, 자기의 행동을 살피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춰내지 아니하면, 일체처에 있어서 방해되고 장애됨이 전혀 없어 자연히 쾌락한 것이니라.
거듭 게송을 설하여 말하리라.

    인욕이 첫째 가는 도라
    먼저 아인심을 없앨지니
    일이 옴에 받는 바 없으면
    참다운 보리의 몸이니라.

문 어래세중 다유잡학지도 운하공주
답 단화기광 불동기업 동처불동주 경운 수류이성상야 지여학도자 자위대사인연해탈지사 구물경말학 경학여불 불고기덕 불질피능 자찰어행 불거타과 어일절처 실무방애 자연쾌락야 중설게운 인욕 제일도 선수제아인 사래 무소수 즉진보제신

44. 일체처(일체처)에 무심(무심)

“「금강경」에 이르기를 ‘보살이 아법(아법)이 없는 사람은 여래가 참다운 보살이라’고 말씀하시며, 또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여 영원히 생사를 끊어서 일체처에 무심하면 곧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다’고 하였느니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여래가 열반을 증득하여 영원히 생사를 끊었다’고 하였느니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나는 지금 뜻이 매우 좋아서
    남이 욕할 때도 괴로움이 없고
    말없이 시비를 말하지 않나니
    열반과 생사가 같은 길이로다.
    내 집의 근본 종지를 사무쳐 알아
    본래로 푸르고 검은 분별이 없나니
    일체 망상의 분별은
    세상 사람이 밝게 알지 못함임을 알지니라.
     말세의 범부에게 이르노니
    마음 가운데 우거진 풀을 없애 버려라.
    내 지금 뜻이 크게 넓어서
    말하지 않고 일 없어 마음이 편안하나니
    종용하여 자재해탈이라
    동서 어디를 가나 쉬워 어렵지 않도다.
    종일토록 말 없이 적막하여
    생각 생각에 이치를 향해 생각하노니
    자연히 소요하여 도를 보아
    생사와 결정코 상관치 않는도다.
    내 지금 뜻이 몹시 기특하여
    세상의 침해와 속임에 향하지 않음이라
    영화는 모두 헛된 속임수이니
    헤진 옷 거친 음식으로 굶주림을 채우는도다.
    길에서 세상 사람을 만나 말하기를 게을리하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바보라 하네.
    겉으로는 질린 듯 암둔해 보이나
    마음 가운데는 밝기가 유리같아서
    라후라의 밀행에 묵묵히 계합하나니
    너희 범부들이 알 바 아니로다.

내 너희들이 참 해탈의 이치를 알지 못할까 두려워서 거듭 너희들에게 말해 보이노라.

금강경운 보살 무아법자 여래설명진시보살 우운 불취즉불사 영단어생사 일절처 무심 즉명제불자 열반경운 여래증열반 영단어생사 게왈 아금의황대호 타인매시무뇌 무언불설시비 열반생사동도 식달자가본종 유래무유청조 일절망상분별 장지세인불료 기언범부말대 제각심중고초 아금의황대관 불어무사심안 종용자재해탈 동서거역불난 종일무언적막 염염향리사간 자연소요견도 생사정불상간 아금의황대기 불향세상침기 영화총시허광 폐의추식충기 도봉세인라어 세인함설아치 외현당당암둔 심중명약류리 묵계라후밀행 비여범부소지 오공여등 불회료진해탈리 재시여등

45. 필경정(필경정)

“「유마경」에 이르기를 ‘정토를 얻고져 할진댄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하시니 무엇이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까?”
“필경 청정으로 깨끗함(정)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 청정으로 깨끗함을 삼는 것입니까?”
“깨끗함도 없고 깨끗함이 없음도 없음이 곧 필경 깨끗함이니라.”
“어떤 것이 깨끗함도 없고 깨끗함이 없음도 없는 것입니까?”
“일체처에 무심함이 깨끗함이니 깨끗함을 얻었을 때에 깨끗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깨끗함이 없음이며, 깨끗함이 없음을 얻었을 때에 또한 깨끗함이 없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깨끗함이 없음도 없는 것이니라.”

문 유마경운 욕득정토 당정기심 운하시정심
답 이필경정 위정
문 운하시필경정 위정
답 무정무무정 즉시필경정
문 운하시무정무무정
답 일절처무심 시정 득정지시 불득작정상 즉명무정야 득무정시 역불득작무정상 즉시무무정야

46. 필경증(필경증)

“도를 닦는 사람은 무엇으로 증함을 삼습니까?”
“필경 증함으로 증함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 증함입니까?”
“증함이 없음과 증함이 없음도 없음이 필경 증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증함이 없음이며 어떤 것이 증함이 없음도 없는 것입니까?”
“밖으로 색과 소리 등에 물들지 아니하고 안으로 망념의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여 이렇게 얻은 것을 곧 증함이라고 함이니, 증함을 얻었을 때에 증득했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증함이 없음이며 증함이 없음을 얻었을 때에 또한 증함이 없다는 생각도 하지 아니함이 곧 증함이 없음도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문 수도자 이하위증
답 필경증 위증
문 운하시필경증
답 무증무무증 시명필경증
문 운하시무증 운하시무무증
답 어외 불염색성등 어내 불기망념심 득여시자 즉명위증 득증지시 불득작증상 즉명무증야 득차무증지시 역불득작무증상 즉명무무증야

47. 진해탈(진해탈)

“어떤 것이 해탈한 마음입니까?”
“해탈한 마음도 없고 또한 해탈한 마음이 없음도 없음이 곧 참 해탈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오히려 법도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리오’ 하였으니 법이란 있음「유」이요 법 아님이란 없음「무」이니, 다만 있음과 없음「유무」을 취하지 아니하면 곧 참 해탈이니라.”

문 운하해탈심
답 무해탈심 역무무해탈심 즉명진해탈야 경운 법상응사 하황비법야 법자 시유 비법 시무야 단불취유무 즉진해탈

48. 필경득(필경득)

“어떻게 도를 얻습니까?”
“필경에 얻음으로써 얻음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의 얻음입니까?”
“얻음도 없고 얻음이 없음도 없음을 필경의 얻음이라 하느니라.”

문 운하득도
답 이필경득 위득
문 운하시필경득
답 무득무무득 시명필경득

49. 필경공(필경공)

“어떤 것이 필경의 공함입니까?”
“공함도 없고 공함이 없음도 없음을 곧 필경 공함이라고 하느니라.”

문 운하시필경공
답 무공무무공 즉명필경공

50. 진여정(진여정)

“어떤 것이 진여의 선정입니까?”
“선정도 없고 선정이 없음도 없음이 곧 진여의 선정이니, 경에 이르기를 ‘정한 법(정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할 것이 없으며 또한 여래가 설명할 정한 법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또 경에 이르기를 ‘비록 공을 닦으나 공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공한 생각을 짓지 않음이 곧 이것이며, 비록 선정을 닦으나 선정으로써 증함을 삼지 아니하여 선정이라는 생각을 짓지 않음이 곧 이것이며, 비록 깨끗함을 얻었으나 깨끗함으로써 증함을 삼지 아니하여 깨끗하다는 생각도 짓지 않음이 곧 이것이니라. 만약 선정을 얻고 깨끗함을 얻어서 일체처에 무심함을 얻었을 때에 이와 같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망상이니 곧 얽매이게 되어 해탈이라고 할 수 없느니라. 만약 이와 같이 얻었을 때에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자재를 얻되 이것을 가져 증함을 삼지 않으며 또한 이와 같다는 생각도 하지 아니할 때에 해탈을 얻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정진심을 일으키면 이는 망념으로서 정진이 아니니라. 만약 능히 마음이 망령되지 않으면 정진이 끝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문 운하시진여정
답 무정무무정 즉명진여정 경운 무유정법명아뇩다라삼막삼보제 역무정법여래가설 경운 수수공 불이공위증 불득작공상 즉시야 수수정 불이정위증 불득작정상 즉시야 수득정 불이정위증 불득작정상 즉시야 약득정득정 득일절처무심지시 즉작득여시상자 개시망상 즉피계박 불명해탈 약득여시지시 요요자지 득자재 즉불득장차위증 역불득작여시상시 득해탈 경운 약기정진심 시망비정진야 약능심불망 정진무유애

51. 중도(중도)는 일체처무심(일체처무심)

“어떤 것이 중도입니까?”
“중간도 없고 또한 이변(이변)도 없음이 곧 중도니라.”
“어떤 것이 이변입니까?”
“저 마음이 있고 이 마음이 있음이 이변이니라.”
“어떤 것을 저 마음, 이 마음이라고 합니까?”
“밖으로 색과 소리에 얽매임을 저 마음이라 하며 안으로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이 마음이라 하느니라. 만약 밖으로 색에 물들지 아니하면 곧 저 마음이 없음이요, 안으로 망념이 나지 아니하면 곧 이 마음이 없음이니 이것은 두변이 없는 것이니라. 마음이 이미 두변이 없으니 중간이 또한 어찌 있을 것인가? 이와 같음을 얻는 것을 곧 중도라 하는 것이니 참된 여래의 도이니라. 여래의 도란 곧 일체 깨친 사람의 해탈이니, 경에 이르기를 ‘허공에 가운데와 가장자리가 없으니 모든 여래의 몸도 또한 그와 같다’고 하였느니라. 그리하여 일체 색이 공한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요 일체처에 무심함은 곧 일체색의 성품이 공함이니, 두가지 뜻이 다르지 아니하여 이것을 또한 색이 공함이라 하며 또 색이 법이 없음이라 하느니라. 너희가 만약 일체처에 무심함을 떠나서 보리.해탈과 열반.적멸과 선정.견성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느니라. 일체처에 무심이란 곧 보리.해탈과 열반.정멸과 선정 내지 육바라밀을 닦음이니 모두 성품을 보는 곳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금강경」에 이르기를 ‘조그마한 법도 얻을 수 없음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느니라.”

문 운하시중도
답 무중간역무이변 즉중도야
문 운하시이변
답 위유피심 유차심 즉시이변
문 운하명피심차심
답 외박색성 명위피심 내기망념 명위차심 약어외 불염색 즉명무피심 내불생망념 즉명무차심 차비이변야 심기무이변 중역하유재 득여시자 즉명중도 진여래도 여래도자 즉일절각인해탈야 경운 허공 무중변 제불신역연 연 일절색공자 즉일절처무심야 일절처무심자 즉일절색성공 이의무별 역명색공 역명색무법야 여약이일절처무심 득보제해탈 열반적멸 선정견성자 비야 일절처무심자 즉수보제해탈열반적멸 선정내지육도개견성처 하이고 금강경운 무유소법가득 시명아뇩다라삼막삼보제야

52. 일체처무심(일체처무심)이 해탈(해탈)

“만약 일체 모든 행을 닦아서 구족하여 성취하면 수기를 얻을 수 있읍니까?”
“얻을 수 없느니라.”
“만약 일체의 법을 닦지 아니하고서 성취하면 수기를 얻을 수 있읍니까?”
“얻을 수 없느니라.”
“만약 이럴 때는 마땅히 무슨 법으로써 수기를 얻을 수 있읍니까?”
“행 있음을 쓰지도 않고 행 없음도 쓰지 않으면 곧 수기를 얻느니라. 왜냐하면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행의 성품과 모양이 모두 다 무상하다’고 하였으며 「열반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이 가섭에게 말씀하시되 <모든 행이 항상한지라 옳은 곳이 없다>’고 하셨느니라. 너희는 다만 일체처에 무심하면 곧 모든 행이 없으며 또한 행이 없음도 없어서 곧 이것을 수기라 하느니라. 이른바 일체처에 무심이란 증애심이 없음이니 증애라고 말함은, 좋은 일을 보고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함을 곧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이라 하고, 나쁜 일을 보고도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함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느니라. 사랑함이 없음이란 곧 물든 마음이 없음을 이름하나니 곧 색의 성품이 공함이요, 색의 성품이 공함이란 곧 만가지 인연이 다 끊어짐이요 만가지 인연이 다 끊어짐은 자연 해탈이니라. 너희들이 이것을 자세히 보아서 만약 뚜렷이 밝게 알지 못할 때엔 모름지기 빨리 물을 것이요 헛되이 보내지 말지어다. 너희들이 만약 이 가르침을 의지해 닦아서 해탈하지 못한다면 내가 곧 종신토록 너희들을 위해 대지옥고를 받을 것이며, 내가 만약 너희들을 속인 사람이면 내가 마땅히 나는 곳마다 사자나 호랑이나 이리의 밥이 될 것이다. 너희가 만약 이 가르침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부지런히 닦지 아니하면 내 알 바 아니니라.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에 다시 돌이킬 수 없나니 노력하고 노력해서 합당히 알아야 할지니라.”

문 약유수일절제행 구족성취 득수기부
답 불득
문 약이일절법무수 득성취 득수기부
답 불득
문 약임마시 당이하법이득수기
답 불이유행 역불이무행 즉득수기 하이고 유마경운 제행성상 실개무상 열반경운 불고가엽 제행 시상 무유시처 여단일절처무심 즉무제행 역무무행 즉명수기 소언일절처무심자 무증애심 시 언증애자 견호사 불기애심 즉명무애심야 견악사 역불기증심 즉명무증심야 무애자 즉명무염심 즉시색성공야 색성공자 즉시만연구절 만연구절자 자연해탈 여세간지 약미성성료시 즉수조문 물사공도 여등 약의차교수 불해탈자 오즉종신위여수대지옥 오약광여자 오당소생처 위사자호랑소식 여약불의교 자불근수 즉불지야 일실인신 만겁불복 노력노력 수합지이
제3권 전심법요(전심법요)
머리말

서천 28대로 계계상승(계계상승)한 법등(법등)은 달마스님을 효시(효시)로하여 동토(동토)에서 그 빛을 밝히고, 장차 한 꼿이 다섯 잎이 피어날[일화개오엽] 씨앗을 비로소 뿌리시니, 이것이 달마정전(달마정전)의 원류(원류)입니다. 이 법은 6대로 면면히 전하여 6조 혜능대사에 이르러 그 큰 꽃을 피우니, 아래로 남악(남악)스님과 청원(청원)스님의 양대맥을 이루고, 다시 오가칠종(오가칠종)이 벌어져서 천하에 울창한 대선림(대선림)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남악스님 아래서 천하 사람을 답살(답살)한 한 망아지가 나왔으니 그 분이 마조(마조)대사로서 백장(백장)스님이 그 법을 잇고 다음으로 이 <전심법요>의 설법자인 황벽(황벽)선사가 나왔으며, 그 아래로는 조석(조석)의 영웅으로 칭송되는 임제(임제)선사가 출현하여 임제종의 종조(종조)가 된 것입니다.
달마선종(달마선종)이라고 하면 한 마음의 법[일심법]을 말한 것이니, 이른바 ‘문자를 세우지 않고 교 밖에 따로이 전한 것[불립문자교외별전]’이며,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직지인심견성성불]’고 하는 것입니다.
<전심법요>는 그 내용에서 달마선종의 정통사상과 육조스님께서 말씀한 식심견성(식심견성)의 돈교법문(돈교법문)을 가장 투철하고 명료하게 설파한, 종문(종문)의 대표서라고 예로부터 일컬어온 어록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심법요>라고 하면 <완릉록>을 포함하여 일컫는데, 그 상부를 <황벽단제선사 전심법요> 하부를 <황벽단제선사 완릉록>으로 나누어 부릅니다. 대사의 재속(재속) 제자인 배휴(배휴 797-870)가 그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가 강서(강서)의 종릉(종릉)에 관찰사로 재임할 때인 회창(회창) 2년(842)에 용흥사(용흥사)에서 대사께 문법하던 것을 필록(필록)하여 두었다가, 대사께서 입적하고 난 다음 그 대강을 대사의 문인들에게 보내어 청법(청법) 당시의 장노(장노)들과 대중의 증명을 얻어서 세상에 유포시킨 것입니다. 배휴가 서문을 쓴 해가 대중(대중) 11년(857)이므로, 대사께서 입적한 지 2-3년 뒤로 추정됩니다.
<전심법요>는 배류 자신이 종릉과 완릉 두 곳에서 문법하던 것을 직접 기술한 것이며, <완릉록>은 배류가 완릉의 개원사에서 문법하던 기록을 기저(기저)로하여 뒤에 시자들 측에서 엮은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그것은 <전심법요>에서는 배휴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쓰고 있으나, <완릉록>에서는 “배상공이 운운...” 하면서 시종일관 제3인칭으로 기술한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완릉록>에서는 <전심법요>의 내용과 더러 중복된 부분이 있음을 보게 되는데, 그 후반부 “대사는 본시 민현의 사람이다[사본시민중인]”로부터는 옛 유통본에는 본래 없던 부분으로서 전반부보다 분량이 더 많으며, 당 대중년간(848-859)에 또 다른 사람에 의하여 추가로 기술된 것으로 사료됩니다. 여기에서는 대사의 출생 및 출가 인연에 관해서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으며, 대사께서 초기에 천태(천태)에서 노니시던 일과 귀종(귀종) 염관(염관) 남전(남천) 등의 선사들을 찾아 제방을 역방(역방)하면서 문답하고 거량(거양)하던 대사의 기봉(기봉)과 기연(기연)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배휴가 홍주 개원사에서 벽화를 보고 거량하다가 개오(개오)한 사유를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후반부는 송나라 원풍(원풍) 8년(1085)에 편찬되었다가 명나라 만력(만력) 17년(1589)에 재편된 <사가어록(사가어록)]에 실려 있는 것입니다. 여기 번역에 사용한 원본은 명본(명본) <4가어록> 가운데 제4권<황벽단제선사전심법요> 및 제5권<황벽단제선사완릉록>을 모본으로 삼아 번역하였습니다. 원풍 8년판의 <4가어록>에는 <완릉록>의 전반부밖에 실려있지 않았으나, 명나라 때 재편하면서 <천성광등록(천성광등록)] 제8권에서 그 후반부를 옮겨 증보(증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4가어록>은 일명 <마조4가록>이라고도 일컫는 바, 곧 마조, 백장, 황벽, 임제 등 조계정전(조계정전)의 4대(대) 조사 스님의 어록을 함께 엮은 어록으로서 임제종황룡파(황룡파)에서 자가(자가)의 종지종통(종지종통)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편찬-유포시킨 것이며 종문으 가장 핵심적인 어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서(광서) 9년(1883) 감로사(감로사)에서 <법해보벌(법해보벌)> 가운데 <전심법요>와 <완릉록>을 포함시켜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 유통본은 융희(융희) 원년(1907) 운문사(운문사)에서, 그리고 융희 2년(1908) 범어사(범어사)에서 간행된 <선문촬요(선문촬요)> 상권에 <전심법요>와 <완릉록>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도 역시 <완릉록>의 후반부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황벽스님의 법문들은 <조당집(조당집)> 권16, <경덕전등록(경덕전등록)> 권9, <송고승전(송고승전)> 권20, <천성광등록(천성광등록)> 권8, <고존숙어록(고존숙어록)> 권2,3, <4가어록(사가어록)> 권4,5, <오등회원(오등회원)> 권4, <지월록(지월록)> 권9 등에 단편적이고 부분적이면서 내용이 서로 다르게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명나라 때 증보 재편된 <4가어록>은 <전심법요>와 <완릉록>의 교재로서는 가장 완벽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심법요>의 유통본은 지금까지 체제와 내용에서 크게 변질됨이 없이 유행되어 왔으나, 다만 결미(결미)의 “어떻게 하여야 계급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여하득불락계급]” 이후의 한 단이 <4가어록>에서는 <완릉록>의 결미로 옮겨 싣고 있는 점이 다릅니다.
다음으로 황벽스님과 배휴와의 관계 및 대중황제와의 인연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황벽스님 말년의 교화 시기는 당 무종의 회창법란(회창법난)이 자행되던 때(842-845)로서, 당시 장안과 낙양에는 각각 4개 사찰만을, 각 주에는 1주에 1개 사찰만을 남기고 모조리 폐사시켰으므로 모든 승니들은 자연히 산곡에 은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이런 관계 때문에 사실상 대사의 말년의 행리(행리)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배휴는 다시 지방장관으로 재직하다가 선종(대중황제)이 즉위하고 나서 조정의 상공(상공) 벼슬에 올라 중앙행정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완릉록>에서 보인 바처럼 홍주(홍주) 개원사(개원사)에서 벽화를 보고 황벽스님에게 거량하던 중, 황벽스님이 “배휴야!”하고 부르자 배휴가 “예!”하고 대답하니 대사가 “어느 곳에 있는고?” 하는 말 끝에 깨치고 이 기연으로 대사의 재속제자(재속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대사뿐만 아니라 위산 영우(위산영우)선사에도 귀의 하였으며, 화림 선각(화림선각)과도 교분이 있었고, 규봉 종밀(규봉종밀)과는 도연(도연)이 깊었습니다. 배휴가 종릉, 완릉 두 곳에서 대사를 모시고 조석으로 문법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그 문답 내용을 필록하여 둔 것을 대사의 입멸 후 광당사(광당사)의 옛 법중(법중)의 증명을 얻어 세상에 유포시킨 것이 <점심법요>인 것입니다. 이처럼 배휴라는 훌륭한 필록자를 얻음으로서 황벽스님의 법문이 세상에 크게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중황제는 본시 당 헌종(헌종)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영특하였는데, 열 세 살 때 형 목종(목종)의 용상에 올라가 장난삼아 좌하의 신하들을 읍(읍)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뒷 날 동생의 아들인 무종(무종)으로부터 빈척(빈척)을 당하여 사지(사지)에서 구출되어 입산하고, 향엄지한(향엄지한) 선사 밑에서 사미가 되었다가 나중에 염관 제안(염관제안)선사 회하에서 서기(서기)를 보았습니다. 당시 황벽스님은 수좌(수좌)로 있었는데, 하루는 불전(불전)에 예배하는 대사께 대중사미가 뒤에서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고···”하는 물음으로 거량하다가 대사로부터 뺨을 두 차례 얻어맞았습니다. 뒷날 대중사미는 당나라 황제가 되었는데 그가 제 16대 선종(선종)입니다. 선종은 앞날의 일을 생각하고 대사께 ‘추행사문(추행사문)’이란 호(호)를 내렸는데, 당시 상공으로 있던 배휴의 주청(주청)에 의하여 ‘단제선사(단제선사)’로 개호(개호)하였던 것입니다. 대중황제는 전제(전제)인 무종이 폐불(폐불)을 한 탓으로 조정의 위신이 실추된 것을 다시 일으키는 데 지력하였으며, 불교를 중흥시킨 공로가 컸습니다.

<점심법요>는 구사하고 있는 언어들이 간명하고도 평이하며 격외언구(격외언구)의 고준(고준)한 말들을 사용치 않으면서도 선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선(선)의 개론서로서의 성격뿐만 아니라 조계정전의 정통 선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긴요한 어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계의 원류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이 <전심법요>를 통한 황벽스님의 문정(문정)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심법요 차례

머리말229

제1편 전심법요(전심법요)235
서문(서문)………………………………………………………………… 236
1.한 마음 깨치면 부처……………………………………………………239
2.무심(무심)이 도(도)이다 ………………………………………………241
3.근원이 청정한 마음 ……………………………………………………244
4.일체를 여읠 줄 아는 사람이 곧 부처 ………………………………248
5.허공이 곧 법신 …………………………………………………………249
6.마음을 잊어버림…………………………………………………………253
7.법(법)은 무생(무생) ……………………………………………………255
8.도(도)를 닦는다는 것……………………………………………………261
9.말에 떨어지다……………………………………………………………263
10.사문이란 무심을 얻은 사람 …………………………………………263
11.마음이 곧 부처…………………………………………………………266
12.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한다[이심전심]………………………………269
13.마음과 경계 ……………………………………………………………270
14.구함이 없음 ……………………………………………………………271
15.머문 바 없이 마음이 나면 곧 부처님의 행 ………………………271
16.육조(육조)는 어째서 조사가 되었는가?……………………………275

제2편 완릉록(완릉록) ……………………………………………………279
1.도는 마음 깨치는 데 있다 ……………………………………………280
2.자기의 마음을 알자 ……………………………………………………280
3.기틀을 쉬고 견해를 잊음………………………………………………281
4.마음과 성품이 다르지 않다……………………………………………282
5.모양이 있는 것은 허망하다……………………………………………283
6.한 마음의 법 ……………………………………………………………286
7.모든 견해를 여읨이 무변신보살………………………………………287
8.한 법도 얻을 수 없다 …………………………………………………290
9.한 물건도 없다[무일물]…………………………………………………291
10.마음 밖에 다른 부처가 없다…………………………………………291
11.보리의 마음 ……………………………………………………………295
12.수은의 비유 ……………………………………………………………296
13.무연자비…………………………………………………………………297
14.정진이란? ………………………………………………………………298
15.무심한 행 ………………………………………………………………298
16.삼계(삼계)를 벗어남……………………………………………………299
17.마음이 부처 ……………………………………………………………300
18.유행(유행) 및 기연(기연) ……………………………………………306
19.술찌꺼기 먹는 놈………………………………………………………312
20.배휴의 헌시 ……………………………………………………………314
21.여래의 청정선 …………………………………………………………315
22.양의 뿔 …………………………………………………………………324
23.여래의 심부름꾼 ………………………………………………………326
24.무분별지는 얻을 수 없다 ……………………………………………326
25.견성이란? ………………………………………………………………328
26.한 생각 일지 않으면 곧 보리 ………………………………………331
27.둘 아닌 법문[불이법문]………………………………………………333
28.한 마음의 법 가운데서 방편으로 장엄하다 ………………………334
29.인욕선인…………………………………………………………………335
30.한 법도 얻을 수 없음이 곧 수기……………………………………337
31.법신은 얻을 수 없다 …………………………………………………338
32.물을 마셔보아야 물맛을 안다 ………………………………………338
33.참된 사리(사리)는 볼 수 없다………………………………………339
34.일체처에 마음이 나지 않음 …………………………………………340
35.조계문하생(조계문하생) ………………………………………………341
36.계급에 떨어지지 않으려면……………………………………………344
서문(서문)
당나라 하동 배휴는 모으고 아울러 서문을 쓰노라.

대선사가 계셨으니 법휘는 희운이시다. 홍주 고안현 황벽산 축봉 아래 머무시니, 조계 육조의 적손이요 백장의 사법 제자이며 서당의 법질이다.
홀로 최상승의 패를 차고 문자의 인장을 여의셨으며 오로지 한 마음만을 전하고 다시 다른 법이 없으셨으니, 마음의 바탕이 또한 비었는지라 만 가지 인연이 함께 고요하여 마치 큰 해바퀴가 허공 가운데 떠올라서 광명이 밝게 비추어 깨끗하기가 가느다란 먼지 하나도 없느 것과 같으셨다.
이를 증득한 이는 새롭고 오램이 없고 얕고 깊음이 없으며, 이를 설하는 이는 뜻으로 앎을 세우지 않고 종주(종주)를 내세우지 않으며 문호를 열어젖히지 않은 채, 당장에 바로 이것이라 생각을 움직이면 곧 어긋아는 것이다.
이러한 다음에라야 본래의 부처가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그 말씀이 간명하고 그 이치가 곧으시며 그 도는 준엄하고 그 행이 고곡하시어, 사방의 학자들이 산을 바라보고 달려와 모이고 그 모습을 쳐다보고 깨치니, 왕래하는 대중의 무리가 항상 일천명이 넘었다.
내가 회창 2년 종릉에 관찰사로재임하면서 산중으로부터 스님을 고을로 모셔 용흥사에 계시도록 하고 아침 저녁으로 도를 물었으며, 대중 2년 완릉에 관찰사로 재임할 때에 다시 가서 예로써 맞이하여 관사에 모시고 개원사에 안거하도록하여 아침 저녁으로 법을 받아 물러나와서 기록하였는데, 열 가운데 한둘밖에는 얻지 못 하엿다.
이를 마음의 인장[심인]으로 삼아 차고 다니면서 감히 드러내어 발표하지 못하다가, 이제 신령스런 경지에 드신 그 정묘한 뜻이 미래에 전하여지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드디어 내오놓으니, 문하생인 태주.법건 스님들에게 주어서 옛산의 광당사로 돌아가 장로들과 청법 대중에게 지난 날 몸소 듣던 바와 같은지 다른지를 묻게 하였다.
때는 당나라 대중 11년 시월 초여드렛날에 쓰노라.

당하동배휴집병서
유대선사 법휘 희운 주홍주고안현황벽산취봉하 내조계육조지적손 백장지자서당지질 독패최상승이문자지인 유전일심 갱무별법 심체역공 만연 구적 여대일륜 승허공중 광명 조요 정무섬애 증지자 무신구무천심 설지자 불립의해 불립종주 불개호유 직하편시 동염즉괴 연후 위본불고 기언 간 기리직 기도준 기행 고 사방학도 망산이추 도상이오 주래해중 상천여인 여회창이년 렴우종릉 자산영지주 게용흥사 단석문도 대중이년 렴우완릉 복거례영지소부 안거개원사 단석수법 퇴이기지 십득일이 패위심인 불감발양 금공입신정의 불문어미래 수출지 수문하승태주법건 귀구산지광당사 문장노법중 여왕일상소친문 동이하여야
시당대중십일년십월초팔일서

1. 한마음 깨치면 부처


황벽(황벽: ?-850) 스님이 배휴(배휴:797-870)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새은 한마음일 뿐 거기에 다른 어떤 법도 없다. 이마음은 본래로부터 생기거나 없어진 적이 없으며, 푸르거나 누렇지도 않다. 정해진 틀이나 모양도 없으며, 있고 없음에 속하지도 않고, 새롭거나 낡음을 따질 수도 없다. 또한 길거나 짧지도 않고, 크거나 작자도 않다. 그것은 모든 한계와 분량, 개념과 언어, 자취와 상대성을 뛰어 넘어 바로 그몸 그대로 일 뿐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움직였다 하면 곧 어긋나 버린다. 이것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끝이 없으며 재어볼 수도 없다. 이 한마음 그대로가 부처일 뿐이니 부처와 중생이 새삼스레 다를 바가 없다. 중생은 다만 모양에 집착하여 밖에서 구하므로, 구하면 구할수록 점점 더 잃는 것이다. 부처에게 부처를 찾게하고 마음으로 마음을 붙잡는다면, 겁(겁)이 지나고 몸이 다하더라도 바라는 것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마음을 쉬고 생각을 잊어 버리면 부처가 저절로 눈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 마음 그대로가 부처이고, 부처가 곧 중생이다. 그러므로중생이라 해서 마음이 줄지 않고, 부처라 해서 더 늘지도 않는다. 또한 6도만행과 항하사 같은 공덕이 본래 그자체에 갖추어져 있어서, 닦아서 보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연을 만나면 곧 베풀고, 인연이 그치면 그대로 고요하나니, 만일 이것이 부처임을 결정코 믿질 않고 겉모습에 집착하여 수행하려 하고, 그것으로써 공부를 삼는다면 그 모두가 망상일 뿐 도와는 서로 어긋나게 된다.
이 마음이 곧 부처요 다시 다른 부처가 없으며, 또한 다른 어떤 마음도 없다. 이 마음은 허공같이 밝고 깨끗하여 어떤 모습도 하고 있지않다. 그러므로 마음을 일으켜 생각을 움직이면 법의 몸[법체]과 어긋나는 동시에 모양에 집착하게 된다. 비롯없는 옛날로부터 모양에 집착한 부처란 없다. 또한 육도만행을 닦아서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곧 차제(차제)* 를 두는 것이니, 차제있는 부처란 본래로 없다.
한마음 깨치면 다시 더 작은 법도 얻을것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참된 부처이다. 부처와 중생은 한 마음으로 다름없음이 허공과 같아서, 그것에는 잡됨도 무너짐도 없고, 온누리를 비추는 햇살과도 같다. 해가 떠올라 온 천하가 두루 밝아질 때라도 허공은 한번도 밝은 적이 없으며, 해가 져서 어둠이 온천하를 덮을지라도 허공은 어두웠던 적이없다. 이렇게 밝고 어두운 경계가 서로 번갈아 바뀐다 해도 허공의 성품은 툭 트이어 변하지 않는 것이니, 부처와 중생의 마음도 꼭 이와같다. 만약 부처를 관(관)하면서 깨끗하고 밝으며 속박을 벗어 났으리라는 생각을 떠올린다든가, 중생은 때묻고 어두우며 생사의 고통이 있으리라는 관념을 버리지 못한다고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수많은 세월이 지나더라도 깨닫지 못할 것인데, 이는 모양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런것이다. 오직 이 한 마음일 뿐, 거기에 티끌만큼의 어떤 법도 있을 수 없으니, 이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다. 그런데 지금 도를 배우는 이들은 이 마음 바탕을 깨닫지 모하고 문득 마음에서 마음을 내고 밖에서 부처를 구하면 모양에 집착하여 수행을 하고 있으니, 모두가 악법이지 깨닫는 도가 아니다."

사위휴왈 제불여일절중생 유시일심 갱무별법 차심 무시이래 불증생불증멸 불청불황 무형무상 불속유무 불계신구 비장비단 비대비소 초과일절한량명언종적대대 당체편시 동념즉괴 유여허공 무유변제 불가측도 유차일심 즉시불 불여중생 갱무별이 단시중생 착상외구 구지전실
사불멱불 장심착심 궁겁진형 종불능득 불지식념망려 불자현전 차심 즉시불 불즉시중생 위중생시 차심 불감 위제불시 차심 불첨 내지육도만행 하사공덕 본자구족 불가수첨 우연즉시 연식 즉적 약불결정신차시불 이욕착상수행 이구공용 개시망상 여도상괴 차심 즉시불 갱무별불 역무별심 차심명정 유여허공 무일점상모 거심동념 즉괴법체 즉위착상 무시이래 무착상불 수육도만행 욕구성불 즉시차제 무시이래 무차제불 단오일심 갱무소법가득 차즉진불 불여중생 일심무이 유여허공 무잡무괴 여대일륜 조사천하 일승지시 명편천하 허공 불증명 일몰지시 암편천하 허공 불증암 명암지경 자상준탈 허공지성 확연불변 불급중생 심역여차
약관불 작청정광명해탈지상 관중생 작구탁암매생사지상 작차해자 역하사겁 종불득보제 위착상고 유차일심 갱무미진허법가득 즉심시불 여금학도인 불오차심체 편어심상생심 향외구불 착상수행 개시악법 비보제도


2. 무심(무심)이 도(도)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이 무심도인 한 살에게 공양 올리 것만 못하다. 그것은 무심한 사람에게는 일체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진여 그대로인(여여) 몸이 안으로는 목석같아서 움직이거나 흔들리지 않으며, 밖으로는 허공 같아서 어디에도 막히거나 걸리지 않으며, 주관 객관의 나뉨은 물론 일정한 방위와 처소도 없다. 후학들이 감히 법에 들어오지 못하는 까닭은 공에 떨어져 닿아 쉴곳이 없을까 두려워해서인데, 이런 태도는 막상 벼랑을 보고는 물러나서 거기다가 널리 지견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견을 구하는 자는 쇠털처럼 많아도 정작 도를 깨친 이는 뿔과 같이 드물 것이다.
문수보살은 이치(이)에, 보현보살은(행)에 해당한다. 이치란 진공(진공)으로서 걸림없는 도리이고, 행실이란 형식을 벗어난 끝없는 실천을 말한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세지보살은 지혜를 상징한다. 유마(유마)는 깨끗한 이름[정명]이란 뜻인데, 깨꿋하다는 것은 성품을[성]을 두고하는 말이고, 이름은 모습의 측면에서 한 말이다.성품이 모양과 다르지 않으므로, 그를 정명거사(정명거사)라 한것이다. 대 보살들로 상징된 위의 곳들은 누구나가 가진 성품으로,  한마음을 여의지 않으니 깨치면 곧 그대로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서 깨달으려 하지 않고 마음 밖의 경계인 모양에 집착하여 오히려 도를 등지고 있다. 간지스강의 모래란 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 모래는 모든 불보살과 제석, 범천 및 하늘 무리들이 자기를 밟고 지나간다 해도 기뻐하지 않고, 소나 양.벌레.개미 등이 자기를 밟고 지난다 해도 성내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간지스강의 모래는 보배나 향기를 탐하지도 않으며, 똥.오줌 냄새나는 더러운 것도 싫어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이 곧 무심한 마음으로서. 모든 모양을 떠난 것이다. 중생과 부처과 다를 것이 없으니, 이렇게 무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깨달음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그 당장 무심한 상태가 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여러 겁 동안 수행해도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것은 성문.연각.보살의 단계적인 공부에 얽매여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마음을 증득하는 데는 더디고 빠른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법문을 듣는 즉시 한 생각에 무심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10신(십신).10주(십주).10행(십행).10회향(십회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무심을 얻기도 한다. 그러므로 더디거나 빠르거나 무심을 얻으면 그만이지 거기에 더 닦고 증득할 것이 없으며, 참으로 얻었다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는 것이니 당장 한 생각에 깨친 것과 10지를 거쳐 깨친 것이 효용에 있어서는 꼭 마찬가지여서 다시 더 깊고 얕음의 차이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다만 긴 세월 동안 헛되이 괴로움을 받을 뿐이다.
선악(선악)을 짓는 것은 모두 모양에 집착하기 때문인데 모양에 집착하여 선악을 짓게 되면. 허망하게 윤회의 수고로움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 무엇도 한마디 말에 본래의 법을 문득 스스로 깨닫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 법 그대로가 마음이어서 마음 밖에는 아무 법도 없으며, 이 마음 그대로가 법이어서 법 밖에는 어떠한 마음도 없다. 그런데 마음 그 자체는 또한 마음이라 할 것도, 무심이라 할 것도 없다.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없앤다면 마음이 도리어 있게 된다. 다만 묵묵히 계합(계합)할 따름이다. 모든 사유와 이론이 끊어졌으므로 말하기를 '언어의길이 끊기고 마음 가는 곳이 없어졌다'고 하였다. 이 마음이 본래 청정한 부처인데 사람마다 모두 그것을 지녔으며 꿈틀거리는 벌레까지도 불보살과 한 몸으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망상 분별 때문에 갖가지 업과를 지을 뿐이다.

공양십방제불 불여공양일개무심도인 하고 무심자 무일절심야 여여지체 내여목석 부동불요 외여허공 불색부애 무능소무방소 무상모무득실 추자 불감입차법 공락공무서박처 고 망애이퇴 예개광구지견 소이 구지견자 여모 오도자 여각
문수 당리 보현 당행 이자 진공무애지리 행자 이상무진지행 관음 당대자 세지 당대지 유마자 정명야 정자 성야 명자 상야 성상불이고 호정명 제대보살소표자 인개유지 불이일심 오지즉시 금학도인 불향자심중오 내어심외 착상취경 개여도 배 항하사자 불설시사 제불보살 석범제천 보리이과 사역불희 우양충의 천답이행 사역불노 진보형향 사역불탐 분뇨취예 사역불악 차심 즉무심지심 이일절상
중생제불 갱무차별 단능무심 편시구경
학도인 약불직하무심 누겁수행 종불성도 피삼승공행구계 불득해탈 연 증차심 유지질 유문법 일념 편득무심자 유지십신십주십행십회향 내득무심자 유지십지 내득무심자 장단득무심 내주 갱무가수가증 실무소득 진실불허 일념이득 여십지이득자 공용흡제 갱무심천 기시역겁 왕수신근이 조악조선 개시착상 착상조악 왕수륜회 착상조선 왕수노고 총불여언하 편자인취본법 차법 즉심 심외무법 차심 즉법 법외무심 심자무심 역무무심자 장심무심 심겁성유 묵계이이 절제사의고 왈 언어도단 심행처멸 차심 시본원청정불 인개유지 준동함영 여제불보살 일체불이 기위망상분별 조종종업과

3. 근원이 청정한 마음

본래 부처 자리에는 실로 그 어떤 것도 없다. 툭 트이고 고요하여 밝고 오묘하며 안락할 따름이다. 스스로 깊이 깨달으면 당장 그 자리이므로 원만구족하여 다시 모자람이 없다. 설사 3아승기겁을 정진 수행하여 모든 지위를 거치더라도 한 생각 증득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원래 자기 부처를 깨달을 뿐, 궁극의 경지에 있어서는 어떠한 것도 거기에 더 보탤 것이 없다. 깨닫고 난 다음 지난 세월의 오랜 수행을 돌이켜 보면 모두 꿈속의 허망한 짓일 뿐이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내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에 있어서 실로 얻었다 할 것이 없느니라. 만약 얻은 바가 있었다면, 연등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수기하시지 않았을 것이다'고 하셨다. 도 말씀하시기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니, 이것을 깨달음이라 한다'고 하셨다. 본래 청정한 이 마음은 중생의 세계와 부처님의 세계, 산과 물, 모양있는 것과 없는 것 및 온 시방법계가 다 함께 평등하여 너다 나다 하는 생각이 없다. 이 본래 근원이 청정한 마음은 항상 두렷이 밝아 두루 비추고 있는데도 세상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다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견문각지]으로 마음을 삼고, 그것에 덮이어서 끝내는 정교하고 밝은 본체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에라도 무심하기만 하면, 본 마음자리가 스스로 나타나서 밝은 햇살이 공중에 떠오르듯 시방법계를 두루 비추어 장애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일거일동을 마음이라고 오인하는 것이다. 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텅 비워 버리면 마음 길이 끊기어서 어느 곳에라도 들어갈 틈이 없느니라. 다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곳에서 본래 마음을 인식할지라도, 본래 마음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데에도 속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떠나 있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가운데 다만 견해를 일으키거나 생각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그렇다고 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떠나 마음이나 법을 찾아서도 안되며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버리고 법을 취해서도 안된다. 그리하면 즉(즉)하지도 않고 여의지도[이] 않으며, 머물지도 집착하지도 않으며, 종횡으로 자재하여 어느 곳이든지 도량(도장)아님이 없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부처님께서 마음 법을 전한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 밖에 따로 깨닫고 취할 만한 법이 있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마음을 가지고 법을 찾으면서, 마음이 곧 법이고 법이 곧 마음인 줄 알지 못한다. 마음을 가지고 다시 마음을 찾지 말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는 천만 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깨칠 날은 없을 것이다. 당장 무심함만 같지 못할 것이니, 그 자리가 본래 법이다. 마치 힘센 장사가 자기 이마에 보배 구슬이 있는 줄을 모르고 밖으로 찾아 온 시방세계를 두루 다니며 찾아도 마침내 얻지 못하다가 지혜로운 이가 그것을 가르쳐 주면 본래 구슬은 예와 다름이 없음을 보는 것과 같은 일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도 자기 본심을 미혹하여 그것이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찾아다니면서 의식적으로 수행을 하며 차례를 밝아서 깨달으려고 하지만 억겁 동안 애써 구한다고 해도 영원히 도를 이루지 못할터인즉 당장 무심함만 못하다.
일체의 법이 있다 할 것도 얻었다 할 것도 없고, 의지할 것도 머무를 것도 없으며, 주관이니 객관이니 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아야 한다.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 그 자리가 바로 깨치는 자리다. 그때 가서는 다만 본래 마음인 부처를 깨달을 뿐 많은 세월을 거친 노력은 모두 헛된 수행이다. 마치 힘센 장사가 구슬을 얻은 것은 자기가 본래 갖고 있던 구슬을 얻은 것일 뿐, 밖으로 찾아다녔던 노력과는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내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실제로는 얻었다 할 것이 없으나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염려스럽기 때문에 다섯 가지 눈[오안]과 다섯 가지 말[오어]로써 끌어다 보였노라. 이것은 진실되이 허망하지 않은 것이니, 이것이 맨 으뜸되는 뜻의 이치[제일의체]이니라'고 하셨다.

본불상 실무일물 허통적정 명묘안락이이 심자오입 직하편시 원만구족 갱무소흠 종사삼기정진수행 역제지위 급일념증시 기증원래자불 향상 갱불첨득일물 각관역겁공용 총시몽중망위 고 여래운 <아어아뇩보제 실무소득 약유소득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우운 <시법 평등 무유고하 시명보제> 즉차본원청정심 여중생제불세계 산하유상무상 편십방계 일절평등 무피아상 차본원청정심 당자원명편조 세인 불오 기인견문각지위심 위견문각지소복 소이불도정명본체 단직하무심 본체자현 여대일륜 승어허공 편조십방 갱무장애 고 학도인 유인견문각지시위동작 공각견문각지 즉심로절 무입처 단어견문각지처 인본심 연 본심 불속견문각지 역불이견문각지 단막어견문각지상 기견해 역막어견문각지상 동념 역막이견문각지멱심 역막사견문각지취법 불즉불이 불주불착 종횡자재 무비도장
세인 문도제불 개전심법 장위심상 별유일법가증가취 수장심멱법 불지심즉시법 법즉시심 불가장심갱구어심 역천만겁 종무득일 불여당하무심 편시본법 여력사 미액내주 향외구멱 주행십방 종불능득 지자지지 당시 자견본주여고 고 학도인 미자본심 불인위불 수향외구멱 기공용행 의차제증 역겁근구 영불성도 불여당하무심 결정지일절법 본무소유 역무소득 무의무주 무능무소 불동망념 편증보제 급증도시 기증본심불 역겁공용 병시허수 여력사득주시 기득본액주 불관향외구멱지력고 불언 <아어아뇩보제 실무소득 공인불신고 인오안소견 오어소언 진실불허 시제일의체>

4. 일체를 여윌 줄 아는 사람이 곧 부처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의심치 말아야 한다. 4대(사대)로 몸을 삼으나, 4대에는 '나(아)'가 없고, 그 '나'에도 또한 주재(주재)가 없다. 그러므로 이 몸에는 '나'도 없고 '주재'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오음(오음)으로 마음을 삼지만, 이 5음 역시 '나'도 '주재'도 없다. 그러므로 마음 또한 '나'도 '주재'도 없을을 알아야 한다. 6근.6진.6식이 화합하여 생멸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18계(십팔계)가 이미 공(공)하여 일체가 모두 공하고, 오직 본래의 마음이 있을 뿐, 맑아서 호호탕탕 걸림이 없다. 분별의 양식[식식]과 지혜의 양식[지식]이 있다. 즉 4대로 된 몸은 주림과 질병이 근심거리인데, 알맞게 영양을 공급하여 탐착을 내지 않는 것이 '지혜의 양식'이고, 제멋대로 허망한 분별심을 내어, 입에 맞는 것만 구하면서 싫어하여 버릴 줄을 모르는 것을 '분별의 양식'이라 한다.
성문(성문)이란 소리를 듣고 깨닫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들은 자기 마음 자리를 깨닫지 못하고 설법을 듣고 거기에 알음알이를 일으킨다. 혹은 신통(신통)이나 상서로운 모양.언어.동작. 등에 의지하여 보리.열반이 있다는 설법을 듣고 3아승기겁을 수행하여 불도를 이루려 한다. 이것은 모두 성문의 도(도)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을 성문불(성문불)이라 한다. 다만 당장에 자기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단박 깨달으면 될 뿐이다.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으며, 행도 닦을 것이 없으면, 이것이 가장 으뜸가는 도이며 참으로 여여한 부처이니라.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한 생각 생기는 것만을 두려워하여곧 도와는 멀어지는 것이니, 생각마다 모양이 없고 생각마다 하염 없음이 곧 부처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부처가 되려고 한다면, 불법을 모조리 배울 것이 아니라 오직 구함이 없고 집착이 없음을 배워야 한다. 구함이 없음면 마음이 나지 않고, 집착이 없으면 마음이 없어지지 않나니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 곧 부처이니라.

학도인 막의 사대 위신 사대무아 아역무주 고지차신 무아역무주 오음 위심 오음 무아역무주 고지차심 무아역무주 육근육진육식 화합생멸 역복여시 십팔계기공 일절개공 유유본심 탕연청정 유식식유지식 사대지신 기창 위환 수순급양 불생탐착 위지지식 자정취미 망생분별 유구적구 불생염이 위지식식 성문자 인성득오고 위지성문 단불료자심 어성교상 기해 혹인신통 혹인서상언어운동 문유보제열반 삼승기겁수성불도 개속성문도 위지성문불 유직하 돈료자심 본래시불 무일법가득 무일행가수 차시무상도 차시진여불 학도인 기파일념유 즉여도 격의 념념무상 념념무위 즉시불 학도인 약욕득성불 일절불법 총불용학 유학무구무착 무구 즉심불생 무착 즉심불멸 불생불멸 즉시불

5. 허공이 곧 법신

팔만 사천 법문은 팔만사천 번뇌를 치료하는 것으로서, 다만 대중을 교화 인도하는 방편일 뿐 일체 법이란 본래 없다. 그러므로 여의는 것이 곧 법이요, 여의줄 아는 이가 곧 부처이다. 일체 법을 여의기만 하면 얻을 만한 법이 없으니, 도를 배우는 사람이 깨닫는 비결을 터득하고자 한다면, 마음에 어느 것이라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다'고 한 비유가 바로 이것이다. 법신이 곧 허공이며 허공이 곧 법신인데도 '법신이 허공계에 두루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허공 가운데에 법신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법신 그대로가 허공이며 허공 그대로가 법신임을 모른다. 만약 결정코 허공이 있다고 한다면 법신은 허공이 아니다. 그렇다고 결정코 법신이 있다고 한다면 법신이 허공이 아니다. 다만 허공의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허공이 곧 법신이니라. 법신의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법신이 곧 허공이니라. 허공과 법신은 전혀 다른 모양이 없으며, 번뇌와 보리도 다른 모양이 없는 것이니, 일체의 모양을 여윔이 곧 부처이니라.
범부는 경계를 취하고 도를 닦는 사람은 마음을 취하나니,마음과 경계를 함께 잊어야만 참된 법이다. 경계를 잊기는 오히려 쉬우나 마음을 잊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들이 마음을 감히 잊어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공(공)에 떨어져 부여 잡을 바가 없을까 두려워해서인데, 이는 공이 본래 공이랄 것도 없고, 오로지 한결 같은 참된 법계[일진법계]임을 몰라서 그런 갈 견해이니, 밖으로 경계를 좇으면서 그것을 마음이라고 잘못 알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것은 도둑을 제자식으로 잘못 아는 격이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에 계.정.혜를 세워 말씀하신 것인데, 애초부터 번뇌가 없다면 깨달음인들 어디 있겠느냐?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일체법을 말씀하신 것은 일체의 마음을 없애기 위함이로다. 나에게 일체의 마음이 없거니 일체 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셨다. 본래 근원이 청정한 부처에다가는 다시 어떤 것도 덧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허공이 수많은 보배구슬로 장엄할지라도 마침내 머무를 수 없는 것과 같다. 불성(불성)도 허공과 같아서 비록 무량한 공덕과 지혜로써 장엄한다 하더라도 마침내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본래 성품이 미혹되어 더더욱 보지 못할 뿐이다.
이른바 심지법문(심지법문)이란 만법이 이 마음을 의지하여 건립되었으므로, 경계를 만나면 마음이 있고 경계가 없으면 마음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깨끗한 성품 위에다가 경계에 대한 알음알이를 굳이 짓지 말라. 또 '정혜(정혜)의 비추는 작용이 역력히 밝고 고요하면서도 또렷하다[적적성성]'든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안다[견문각지]'는 것은 모든 경계 위에서 알음알이를 짓는 것이니, 이 말은 임시로 중하근기의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몸소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것은 모두 경계의 법이므로 유견(유견)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일체 법에 대해서 있다거나 없다는 견해를 짓지만 않으면, 곧 법을 보는 것이다.

팔만사천법문 대팔만사천번뇌 기시교화접인문 본무일절법 이즉시법 지이자시불 단이일절번뇌 시무법가득 학도인 약욕득지요결 단막어심상 착일물 언불진법신 유약허공 차시유 법신 즉허공 허공 즉법신 상인 위법신 편허공처 허공중 함용법신 불지법신 즉허공 허공 즉법신야 약정언유허공 허공 불시법신 약정언유법신 법신 불시허공 단막작허공해 허공 즉법신 막작법신해 법신 즉허공 허공여법신 무이상 불여중생 무이상 생사여열반 무이상 번뇌여보제 무이상 이일절상 즉시불 범부 취경 도인 취심 심경쌍망 내시진법 망경 유역 망심 지난 인불감망심 공락공무로모처 불지공본무공 유일진법계이
차영각성 무시이래 여허공동수 미증생미증멸 미증유미증무 미증예미증정 미증훤미증적 미증소미증노 무방소무내외 무수량무형상 무색상무음성 불가멱불가구 불가이지혜식 불가이언어취 불가이경물회 불가이공용도 제불보살 여일절준동함영 동차대열반성 성즉시심 심즉시불 불즉시법 일념이진 개위망상 불가이심 갱구어심 불가이불 갱구어불 불가이법 갱구어법 고 학도인 직하무심 묵계이이 의심즉차 이심전심 차위정견 신물향외축경 인경위심 시 인적위자 위유탐진치 즉립계정혜 본무번뇌 언유보제 고 조사운 <불설일절법 위제일절심 아무일절심 하용일절법> 본원청정불상 갱불착일물 비여허공 수이무량진보장엄 종불능주 불성 동허공 수이무량공덕지혜 장엄 종불능주 단미본성 전불견이 소위심지법문 만법 개의차심건립 우경즉유 무경즉무 불가어정성상 전작경해 소언정혜 감용 역역 적적성성 견문각지 개시경상작해 잠위중하근인설 즉득 약욕친증 개불가작여차견해 진시경법 유몰처 몰어유지 단어일절법 불작유무견 즉견법야

6. 마음을 잊어버림

9월 1일 대사께서는 배휴에게 말씀하셨다.
"달마스님께서는 중국에 오신 이후로 오로지 한 마음만을 말씀하셨고 한 법만을 전하셨다. 도한 부처로써 부처에게 전하실 뿐 다른 부처는 말씀하지 않으셨고, 법으로써 법을 전하시고 다른 법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법이란 설명될 수 없는 법이며, 부처란 취할 수 없는 부처로서 본래 근원이 청정한 마음이다. 오직 이 일승(일승)만이 사실이고, 나머지 이승(이승)은 참됨이 아니다.
반야는 지혜라는 뜻으로서, 모양이 없는 본래 마음이다. 범부는 도(도)에 나아가지 않고 단지 육정(육정)만을 함부로 하여 육도(육도)에 빠져 방황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한 생각 모든 견해를 일으키면 곧바로 외도에 떨어진다. 또한 남(생)이 있음을 보고 없어짐으로 나아가면 성문도(성문도)에 떨어지고, 남(생)이 있음을 보지 않고 오로지 없어짐만을 보면 연각도(연각도)에 떨어진다. 법은 본시 남(생)이 없으므로 이제 또한 없어짐도 없으니, 이 두 견해를 일으키지 않아서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으며 일체의 모든 법이 오직 한 마음이어야만 그런 다음에 불승(불승)이 된다. 범부는 모두가 경계를 좇아 마음을 내서 좋고 싫음이 있다. 만일 경계가 없기를 바란다면 그 마음을 잊어야 하고, 마음을 잊으면 경계가 텅 비며, 경계가 공적하면 곧 마음이 없어지느리라. 만약 마음을 잊지 못하고 경계만을 없애려 한다면, 경계는 없어지지 않으면서 오히려 분잡히 시끄러움만 더할 뿐이다. 그러므로 만법은 오직 마음일 뿐이며, 그 마음 조차도 얻을 수 없는데 다시 무엇을 구하겠느냐? 반야를 배우는 사람이 얻을 만한 어떤 법도 없는 줄 알게 되면, 삼승(삼승)에는 뜻이 끊어져 오직 하나의 진실뿐이다. 증득하여 깨달았다고 할 것이 없는 자리인데도 '나는 깨달았노라'고 한다면, 모두가 증상만(증상만)을 내는 사람이다. <법화경>회상에서 옷을 떨치고 나가버린 사람들이 모두가 이러한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있어서 실로 얻었다 할 것이 없다'고 하셨으니, 그저 묵묵히 계합할 따름이다.
범부 중생들은 다만 죽는 순간에 오온(오온)이 모조리 비고 사대(사대)는 '나(아)'가 없음을 본다. 그러나 참된 마음은 모양이 없어서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태어 났다고 해서 성품이 오는 것이 아니고 죽었다고 해서 성품이 가는 것이 아니다. 담연히 둥글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한결같다. 이렇게 될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단박 깨쳐 삼세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니, 곧 세간을 뛰어넘은 사람이다. 털끝만큼이라도 나아가는 향방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만일 모든 부처님께서 맞이해 주시는 것 같은 가지가지 신기한 모습을 보게 될지라도 역시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다만 스스로 마음을 잊고서 법계와 같아지면, 바로 자재(자재)를 얻은 것이니, 이것이 곧 요긴한 대목이다."

구월일일 사위휴왈 「자달마대사도중국 유설일심 유전일법 이불전불 불설여불 이법전법 불설여법 법즉불가설지법 불즉불가취지불 내시본원청정심야 유차일사실 여이칙비진 반약 위혜 차혜 즉무상본심야 범부 불취도 유자육정 내행육도 학도인 일념계생사 즉락마도 일념기제견 즉락외도 견유생취기멸 즉락성문도 불견유생 유견유멸 즉락연각도 법본불생 금역무멸 불기이견 불염불흔 일절제법 유시일심 연후 내위불승야 범부 개축경생심 심수흔염 약욕무경 당망기심 심망 즉경공 경공 즉심멸 약불망심이단제경 경불가제 기익분요 고 만법 유심 심역불가득 복하구재 학반약인 불견유일법가득 절의삼승 유일진실 불가증득 위아능증능득 개증상만인 법화회상 불의이거자 개사도야 고 불언 <아어보제 실무소득> 묵계이이 범인 임욕종시 단관오온개공 사대무아 진심무상 불거불래 생시 성역불래 사시 성역불거 담연원적 심경일여 단능여시 직하돈료 불위삼세소구계 편시출세인야 절불득유분호취향 약견선상 제불래영 급종종현전 역무심수거 약견악상종종현전 역무심포외 단자망심 동어법계 편득자재 차즉시요절야」

7. 법(법)은 무생(무생)

10월 8일 대사께서 배휴에게 말씀하셨다.
"화성(화성)이란 이승(이승) 및 10지.등각.묘각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모든 중생을 이끌어 주기 위한 방편으로 세운 가르침이므로, 글자 그대로 모두 변화하여 보인 성곽이다. 또한 보배가 있는 곳이란 다름 아닌 참된 마음으로서의 본래 부처이며, 자기 성품의 보배를 말한다. 이 보배는 사량분별에 속하지도 않으니,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세울 수 없다.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주관도 객관도 없는데 어는 곳에 성(성)이 있겠느냐? 만약 '이곳을 이미 화성이라 한다면 어느 곳이 보배 잇는 곳인가?' 하고 묻는다면, 보배 있는 곳이란 가리킬 수 없는 것인데, 가리킨다면 곧 방위와 처소가 있게 되므로, 참으로 보배가 있는 곳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경에서도 말씀하시기를 '가까이 있다' 고만 했을 뿐이다. 그것을 얼마라고 한정 할 수 없는 것이니, 오로지 그 자체에 계합하여 알면 되는 것이다.
천제(천제)란 믿음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6도의 모든 중생들과 이승(이승)들은 부처님의 과<불과>가 있음을 믿지 않으니, 그들을 모두 선근(선근)이 끊긴 천제라 한다.보살이란 불법이 있음을 굳게 믿고 대승.소승을 차별하지 않으며, 부처와 중생을 같은 법성(법성)으로 본다. 이들을 가리켜 선근이 있는 천제라고 한다. 대개 부처님의 설법<성교>을 듣고 깨닫는 사람을 성문(성문)이라 하고, 인연을 관찰하여 깨닫는 사람을 연각(연각)이라 한다. 그러나 자기 마음속에서 깨닫지 못한다면, 비록 부처가 된다 하더라도 역시 성문불이라 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교법(교법)에 있어서는 깨닫는 것이 많으나, 마음 법<심법>에 있어서는 깨닫지 못하는데, 이렇게 하면 비록 겁을 지나도록 수행을한다 해도 마침내 본래의 부처는 아니다. 만약 마음에서 깨닫지 못하고서 교법에서 깨닫는다면, 마음은 가벼이 여기고 가르침만 중히 여겨 흙덩이나 쫓는 개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은 본 마음을 잊었기 때문이다. 본래 마음에 계합하면 될 뿐, 법을 구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곧 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계가 마음을 가로막고 현상<사>이 본체<리>를 흐리게 하여, 의례껏 경계로부터 도망쳐 마음을 편히 하려 하고, 현상을 물리쳐서 본체를 보존하려 한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마음이 경계를 가로막고, 본체가 현상을 흐리게 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마음을 비우기만 하면 경계는 저절로 비고, 본체를 고요하게만 하면 현상은 저절로 고요해지므로 거꾸로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보통 마음을 비우려 들지 않는 까닭은 공(공)에 떨어질까 두려워해서인데, 자기 마음이 본래부터 비었음을 모르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의 경우는 경계는 없애려고 하면서 마음은 없애지 않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마음을 없애지 경계를 없애지 않고, 나아가 보살은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기가 지은 복덕마저도 탐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버림에는 세 등급이 있다. 즉 안팎의 몸과 마음을 다 버림이 허공과 같으며, 어디에고 집착하지 않은 다음에 곳에 따라 중생에게 응하되, 제도하는 주체도 제도될 대상도 모두 잊는 것이 '크게 버림<대사>'이다. 만약 한편으로 도를 행하고 덕을 펴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을 이바지하여 놓아 버리고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으면 '중간의 버림<중사>'이다. 또한 착한 일을 널리 행하면서도 바라는 바가 있다가 법을 듣고서 빈<공> 줄을 알고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은 '작은 버림<소사>'이다.
큰 버림은 마치 촛불이 바로 정면에 있는 것과 같아서 더 미혹될 것도 깨달을 것도 없으며, 중간 버림은 촛불이 옆에 있는 것 같아서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며, 작은 버림은 마치 촛불이 등 뒤에 있는 것 같아서 눈앞의 구덩이나 함정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보살의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일체를 다 버린다. 과거의 마음을 버릴 수 없음이 미래를 버린 것이니, 이른바 3세를 함께 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여래께서 가섭에게 법을 부촉하실 때로부터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였으니, 마음과 마음이 서로 다르지 않다. 허공에다 도장을 찍으면 아무 문체가 찍히지 않고, 그렇다고 물건에다가 도장을 찍으면 법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으로써 마음에 새기는 것이니,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다. 새김<능>과 새겨짐<소>이 함께 계합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어서, 그것을 얻은 사람은 매우 적다. 그러나 마음은 마음없음<무심>을 말하는 것이고, 얻음도 얻었다 할 것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세 몸<삼신>이 있는데, 법신은 자성의 허통(허통)한 법을, 보신(보신)은 일체 청정한 법을, 화신(화신)은 6도만행법을 말한다. 번신의 설법은 언어.형상.문자로써 구할 수 없으며, 설할 바도 없고 증득할 바도 없이 자성이 허통(허통) 할 뿐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한 법도 설할 만한 법이 없음을 설법이라 이름한다'고 하셨다. 보신이나 화신은 근기에 따라 감응하여 나타나고, 설하는 법 또한 현상에 따르고 근기에 알맞게 섭수하여 교화하는 것이므로, 이 모두는 참다운 법이 아니다. 그래서 '보신.화신은 참된 부처가 아니며, 법을 설하는 자가 아니다'고 하신 것이다.
이른바 밝고 정밀한 성품인 일정명(일정명)이 나뉘어 6화합(육화합)이 된다고 하였다. 일정명이란 바로 한 마음<일심>이요, 6화합이란 6근(근)이다. 이 6근은 각기 6진(진)과 합하는데, 눈은 색과, 귀는 소리와, 코는 냄새와, 혀는 맛과, 몸은 촉감과, 뜻은 법과 제각기 합한다. 그런 가운데 6식(식)을 내어 18계(십팔계)가 된다. 만약 이 18계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 6화합이 하나로 묶이어 일정명이 된다. 일정명이란 곧 마음이다. 그런데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것을 모두 알면서도, 일정명과 6화합에 대해 알음알이 만을 지어서 드디어는 교설에 묶이어 본래 마음에 계합치 못한다. 여래께서는 세간에 나타나시어 일승(일승)의 참된 법을 말씀하시려 하나, 중생들은 부처님을 믿지 않고 비방하여 고통의 바다에 빠지게 될 것이며, 그렇다고 부처님께서 전혀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설법에 인색한 간탐(간탐)에 떨어져 중생을 위하는 것이 못된다고 하시사, 현묘한 도를 널리 베푸시고 방편을 세워 삼승(삼승)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대승과 소승의 방편이 생겼고, 깨달음에도 깊고 얕음의 차이가 있게 되었으나, 이것은 모두 근본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오직 일승의 도가 있을 뿐, 나머지 둘은 참된 것이 아니다'고 하셨다. 그러나 마침내는 한 마음의 법<일심법>을 나타내시지 못했기 때문에 가섭을 불러 법좌를 함께 하시사, 따로이 그 '한 마음'을 부촉하셨으니, 이는 언설을 떠난 법이다. 이 한 가닥의 법령은 따로이 행해지는데, 만약 계합하여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즉시 부처님 지위에 이른다."

십월팔일 사위휴왈 언화성자 이승급십지등각묘각 개시권립접인지교 병위화성 언보소자 급진심본불 자성지보 차보 불속정량 불가건립 무불무중생 무능무소 하처유성 약문차기시화성 하처 위보소 보소 불가지 지즉유방소 비진보소야 고 운 <재근이이> 불가정량언지 단당체 회계지 즉시 언천제자 신불구야 일절육도중생 내지이승 불신유불과 개위지단선근천제 보살자 심신유불법 불견유대승소승 불여중생 동일법성 내위지선근천제 대저인성교이오자 위지성문 관인연이오자 위지연각 약불향자심중오 수지성불 역위지성문불 학도인 다어교법상 오 불어심법상 오 수역겁수행 종불시본불 약불어심 오 내지어교법상 오 즉경심중교 수성축괴 망어본심고 단계본심 불용구법 심즉법야 범인 다위경애심사애리 상욕도경이안심 병사이존리 불지내시심애경리애사 단령심공 경자공 단령리적 사자적 물도용심야 범인 다불긍공심 공락어공 불지자심본공 우인 제사불제심 지자 제심불제사 보살 심여허공 일절구사 소작복덕 개불탐착 연 사유삼등 내외신심 일절구사 유여허공 무소취착연후 수방응물 능소개망 시위대사 약일절행도포덕 일변선사 무희망심 시위중사 약광수중선 유소희망 문법지공 수내불착 시위소사 대사 여화촉재전 갱무미오 중사 여화촉재방 혹명혹암 소사 여화촉재후 불견갱정 고 보살 심여허공 일절구사 과거심불가득 시과거사 현재심불가득 시현재사 미래심불가득 시미래사 소위삼세구사 자여래부법가섭이래 이심인심 심심불이 인착공 즉인불성문 인착물 즉인불성법고 이심인심 심심불이 능인소인 구난계회고 득자소 연 심즉무심 득즉무득
불유삼신 법신 설자성허통법 보신 설일절청정법 화신 설육도만행법 법신설법 불가이언어음성 형상문자이구 무소설무소증 자성허통이이 고 왈 <무법가설 시명설법> 보신화신 개수기감현 소설법 역수사응근 이위섭화 개비진법 고 왈 <보신 비진불 역비설법자>
소언동시일정명 분위육화합 일정명자 일심야 육화합자 육근야 차육근 각여진합 안여색합 이여성합 비여향합 설여미합 신여촉합 의여법합 중간 생육식 위십팔계 약요십팔계무소유 속육화합 위일정명 일정명자 즉심야 학도인 개지차 단불능면작일정명육화합해 수피법전 불계본심 여래현세 욕설일승진법칙중생 불신흥방 몰어고해 약도불설칙타간탐 불위중생 부사묘도 수설방편 설유삼승 승유대소 득유천심 개비본법 고 운 <유유일승도 여이칙비진> 연 종미능현일심법고 소가섭동법좌 별부일심 이언설법 차일지법 별행 약능계오자 갱지불지의

8. 도(도)를 닦는 다는 것

배휴가 물었다.
"도란 무엇이며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무슨 물건이길래 수행하려 하느냐?"

"그렇다면 제방의 종사가 서로 이어받아 참선하여 도를 배우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둔근기(둔근기)를 이끌어 주는 말이니 의지할 것이 못되느니라."
"그것이 둔근기를 위한 말이라고 하신다면, 상근기(상근기)를 위해서는 무슨 법을 설하시는지요?"
"상근기라면 어디 남에게서 찾으려 하겠느냐? 저 자신마져도 얻지 못하거늘, 더구나 따로 뜻에 합당한 법이 어디 있겠느냐? '법이란 법이 모슨 모양이더냐?'고 한 경(경)의 말씀을 보지 못했느냐?"
"그렇다면 도무지 구하여 찾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마음의 힘이 덜리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온통 끊어져 버려서 '없다는 것'도 가당치 않겠습니다."
"누가 그것을 없다 하였으며, 또 그것이 대관절 무엇이길래 너는 찾으려 하느냐?"
"스님께서는 이미 찾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서는, 어찌하여 그것을 끊지도 말라 하십니까?"
"찾지 않으면 그 자리는 바로 '쉼'인데, 누가 너더러 끊으라 하였느냐? 눈앞의 허공을보아라. 어떻게 저것을 끊겠느냐? 여기에 알음알이를 내는구나."
"사람들로 더불어 알음알이를 내지 않음이 마땅한 것입니까?"
"내 너를 방해한 적은 한번도 없거니와, 요컨대 알음알이란 뜻[정]에 속한 것으로서 뜻이 생기면 지혜가 막히게 되느니라."
"여기에 있어서 뜻을 내지 않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뜻을 내지 않는다면 누가 옳다고 말하겠느냐?"

문 여하시도 여하수행
사운 도시하물 여욕수행
문 제방종사상승 참선학도 여하
사운 인접둔근인어 미가의빙
운 차개시인접둔근인어 미심 접상근인 복설하법
사운 약시상근인 하처 갱취인멱 타자기 상불가득 하황갱별유법당정 불견 교중 운 <법법하상>
운 약여차칙 도불요구멱야
사운 약여마칙성심력
운 여시칙 혼성단절 불가시무야
사운 아수교타무 타시아수 니의멱야
운 기불허멱 하고 우언막단타
사운 약불멱 편휴 즉수교니단 니견목전허공 작마생단타
운 차법 가득편동허공부
사운 허공 조만 향니도유동유이 아잠여차설 니편향자라생해
운 응시불여인생해야
사운 아불증장니 요차해속어정 정생칙지격
운 향자라 막생정 시부
사운 약불생정 아수도시

9. 말에 떨어지다

"스님께서는 제가 한 말씀이라도 드리기만 하면, 어찌해서 바로 말에 떨어진다[화타]고 하십니까?"
"네 스스로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이거늘 무슨 잘못에 떨어짐이 있겠느냐?"

문 재향화상처발언 위십마편도화타
사운 여자시불해어인 유십마타부

10. 사문이란 무심을 얻은 사람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허다한 언설들이 모두 방편으로 대꾸한 것들이어서,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이신 실다운 법이란 아주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실다운 법이란 전도됨이 없거늘, 네 지금 묻는 곳에서 스스로 전도되고 있느니라. 그러면서 무슨 실다운 법을 찾는다는 말이냐?"
"묻는 곳에서 이미 스스로 전도된 것이라면, 스님께서 대답하신 곳은 어떠하십니까?"
"사물을 통해서 자신을 비춰볼지언정 남의 일에는 상관할 것이 없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개와도 같아서 움직이는 물건을 보기만 하면 문득 짖어대니, 바람에 흔들리는 초목과 눠 별다를 게 있겠느냐."
이어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이 선종은 위로부터 이제껏 이어 내려 오면서 알음알이[지해]를 구하게 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도를 닦으라고만 했을 뿐인데, 사실 이것도 교화하는 방편설이니라. 그러니 도 또한 배울 수없는 것으로서, 뜻을 두고 알음알이를 배우게 되면 도에는 도리어 어둡게 된다. 도에는 일정한 방위와 처소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대승의 마음[대승심]이라고 하느니라. 이 마음은 안팍.중간 어디에도 있지 않으며, 실로 방위와 처소가 없는 것이니, 첫째로 알음알이를 짓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너에게 말한 것은 뜻으로 헤아림이 다해 버린 바로 그자리가 도라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뜻으로 헤아림이 다하면 마음에는 방위도 처소도 없느니라.
이 도라는 것은 천진하여 본래 이름이 없다. 다만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뜻으로 헤아리는데 미혹되었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나오시어 이 일을 자상히 말씀하신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 모든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까 걱정하셔서 방편으로 ‘도’라는 이름을 세우셨으니, 이름에 얽매여서 알음알이를 내서는 안되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을 잊으버려라!'고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자연히 도에 통하고 마음을 알아 본래의 근원에 통달한 이를 사문(사문)이라 부른다. 사문이라는 자리는 생각을 쉬어서 이루어 지는 것이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런데도 너희들은 남의 집에 세살이 하듯,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구하면서 배워서 얻으려하니, 될 까닭이 있겠느냐?
옛 사람들은 영민하여 한 말씀 들으면 당장에 배움을 끊었다. 그래서 그들을 '배울 것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이라고 했다. 반면 지금 사람들은 하많은 알음알이를 구하고, 널리 글의 뜻의 캐면서 그것을 수행이라고 하지만, 넓은 지식과 견해 때문에 도리어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이는 매 것이므로 각각 말씀이 다르다. 다만 요달하여 알기만 하면 미혹되지 않느니라. 무엇보다도 주의할 것은 한 근기를 대상으로 말씀에 있어서 글자에 얽매여 알음알이를 내지 말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실로 여래께서 말씀하실 만한 정해진 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종은 이런 일을 따지지 않는 것이니, 다만 마음을 그칠 줄 알면 곧 쉬는 것이요, 다시 앞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느니라."

문 향래여허다언설 개시저적어 도미증유실법지시어인
사운 실법 무전도 여금문처 자생전도 멱십마실법
운 기시문처 자생전도 화상답처여하
사운 니차장물조면착 막관타인
우운 기여개치구상사 견물동처 편폐 풍취초목 야불별
우운 아차선종 종상상승이래 불□교인구지구해 지운학도 조시접인지사 연 도역불가학 정존학해 각성미도 도무방소 명대승심 차심 불재내외중간 실무방소 제일불득작지해 지시설여 여금정량진처위도 정량 약진 심무방소 차도 천진 본무명자 지위세인 불식 미재정중 소이 제불 출래 설파차사 공여제인불요 권립도명 불가수명이생해고 운 <득어망전> 신심 자연달도 식심달본원고 호위사문 여문과자 식려이성 불종학득 여여금장심구심 방타가사 기의학취 유심마득시 고인 심리 재문일언 편내절학 소이 환작절학무위한도인 금시인 지욕득다지다해 광구문의 환작수행 불지다지다해 번성옹색 유지다여아소유끽 소여불소 도총불지 삼승학도인 개시차양 진명식불소자 소위지해불소 개위독약 진향생멸중취 진여지중 도무차사 고 운 <아왕고내 무여시도> 종전소유일절해처 진수병각령공 갱무분별 즉시공여래장 여래장자 갱무섬진가유 즉시파유법왕 출현세간 역운 <아어연등불소 무소법가득> 차어 지위공니정량 지해단쇄용 표리정진 도무의집 시무사인 삼승교망 기시응기지약 수의소설 임시시설 각각불동 단능요지 즉불피혹 제일불득어일기일교변 수문작해 하이여차 실무유정법여래가설 아차종문 불론차사 단지식심즉휴 갱불용사전려후

11. 마음이 부처

배휴가 물었다.
"예로부터 마음이 부처라고들 하는데, 어느 마음이 부처인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사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몇 개의 마음을 가졌느냐?"
"그렇다면 범부에 즉(즉)한 마음이 부처입니까, 아니면 성인(성인)에 즉(즉) 마음이 부처입니까?"
"어느 곳에 범.성의 마음이 있느냐?"
"지금 3승 가운데서 범.성을 말씀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어찌해서 그것이 없다고 하십니까?"
"3승을 말하는 가운데 분명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범.성의 마음이 허망하다'고 하셨느니라. 그런데도 너희는 지금 알지 못하고 아직 '있다'고 집착하여 공허한 것을 무언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 어찌 허망되지 않겠느냐? 허망하기 때문에 마음이 미혹되는 것이니, 네 만약 범부의 뜻과 성인의 경계를 없애기만 한다면, 마음 밖에 다른 부처가 없느니라. 달마스님께서 서쪽에서 오시어 모든 사람이 다 부처임을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도 너희는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범.성을 집착하고 마음을 밖으로 내달리며 도리어 스스로 마음을 미혹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라고 하였으니, 한 생각 뜻이 생기면 그 즉시 6도의 다른 곳에 떨어지게 된다. 비롯없는 옛날로부터 오늘날과 한결같이 다르지 않아 어떠한 다른 법이 없었으니, 그러므로 그것을 일컬어 정등각(정등각)을 성취했다고 하느니라."
"스님께서 말씀하신 '곧 그대로<즉>'라 함은 무슨 도리입니까?"
"너는 무슨 도리를 찾는 것이냐? 어떤 도리라도 있기만 하면 바로 곧 본래의 마음과는 달라지느니라."
"앞서 말씀하신 '시작 없는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다르지않다'고 하신 이치는 무엇입니까?"
"찾기 때문에 네 스스로 그것과 달라지는 것이니라. 네 만약 찾지 않는다면 어디에 다를 것이 있겠느냐?"
"이미 다르지 않다면, 굳이 '곧 그대로'라고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네 만약 범.성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누가 너에게 굳이 ‘곧 그대로’라는 말을 하겠느냐? ‘곧 그대로’가 ‘곧 그대로’가 아니라면, 마음 또한 마음이 아닌 것이니, 이런 가운데 마음과 ‘곧 그대로’라는 것을 다 잊으면, 네가 더 이상 무엇을 찾겠느냐?“

문 종상래 개운 <즉심시불> 미심 즉나개심 시불
사운 니유기개심
운 위복즉범심 시불 즉성심 시불
사운 니하처 유범성심야
운 즉금삼승중 설유범성 화상 하득언무
사운 삼승중 분명향니도 <범성심 시망> 니금불해 반집위유 장공작실 기불시망 망고 미심 여단제각범정성경 심외 갱무별불 조사서래 직지일절인전체시불 여금불식 집범집성 향외치빙 환자미심 소이 향여도 <즉심시불> 일념정생 즉타이취 무시이래 불이금일 무유이법 고 명성등정각
운 화상소언즉자 시하도리
사운 멱십마도리 재유도리 편즉심이
운 전언무시이래 불이금일 차리여하
사운 기위멱고 여자이타 여약불멱 하처유이
운 기시불이 하갱용설즉
사운 여약불인범성 아수향여도즉 즉약불즉 심역불심 가중 심즉 구망 아니갱의향하처멱거

12.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다<이심전심>

"망념이 자신의 마음을 가로막는다는데 무엇으로써 망념을 없애야 합니까?"
"망념을 일으키고 그것을 없애는 것 또한 망념이 되느니라. 망념은 본래 뿌리가 없지만, 다만 분별 때문에 생긴다. 네 다만 범.성의 두곳에 알음알이를 내지 않는다면, 자연 망념은 없어지는 것이니, 다시 그것을 어떻게 떨쳐버리겠느냐? 떨끝만큼도 의지하여 집착함이 없으면, 이른바 '내가 두 팔을 다 버렸으니 반드시 부처를 이루리라'고 한 것이 되느니라."
"이미 의지하여 집착함이 없다면 어떻게 역대 조사들께서는 서로 이어 받았습니까?"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느니라."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한다면 어찌 마음 또한 없다고 하십니까?"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을 마음에 전한다고 하는 것이니, 만약 이 마음을 깨친면 곧 마음도 없고 법도 없느니라."
"마음도 법도 없다면 어찌하여 전한다고 하십니까?"
"너는 마음에 전한다는 말을 듣고는 얻을 만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조사께서는, '마음의 성품[심성]을 깨달았을 때에야 불가사의하리라. 요연히 사무쳐 얻을 바가 없나니, 얻었을 때라도 알았다 하지 못하노라'고 하셨느니라. 만약 이것을 너더러 알도록 한다 하여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문 망능장자심 미심 이금 이하유망
사운 기망유망 역성망 망본무근 기인분별이유 니단어범성양처 정진 자연무망 갱의약위유타 도불득유섬호의집 명위아사양비필당득불
운 기무의집 당하상승
사운 이심전심
운 약심상전 운하언심역무
사운 불득일법 명위전심 약료차심 즉시무심무법
운 약무심무법 운하명전
사운 여문도전심 장위유가득야 소이 조사운 <인득심성시 가설불사의 요요무소득 득시 불설지> 차사 약교여회 하감야
                                     
13. 마음과 경계

"눈 앞의 허공을 경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경계를 가리켜 마음을보는 것이 어찌 없다고 하겠습니까?"
"어떤 마음을 너더러 경계 위에서 보게 하느냐? 설혹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경계를 비추는 마음일 뿐이니라. 사람이 거울로 얼굴을 비출 때처럼 눈썹과 눈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본래 그림자일 뿐 너의 일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거울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의지함'에 빠진다면 항상 의지할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야 언제 깨달을 수 있겠느냐? 너는 '손을 털고 그대에게 내보일 아무 것도 없 구나. 수천 가지로 말한들 모두 헛수고로다.'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느 냐?"
"마음을 분명히 알았다면 비출 만한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까?"
"아무 것도 없다면 어찌 더 비출 필요가 있겠느냐? 눈을 뻔히 뜨고 잠꼬대 같은 말을 하지 말라."

문 기여목전허공 가불시경 기무지경견심호
사운 십마심 교여향경상견 설여견득 지시개조경저심 여인 이경조면 종연득견미목분명 원래기시영상 하관여사
운 약불인조 하시득견
사운 약야섭인 상수가물 유십마요시 여불견 타향여도 <살수사군무일물 도노만설수천반>
운 타약식료 조역무물야
사운 약시무물 갱하용조 니막개안예어거

14. 구함이 없음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백 가지로 많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구하지 않음'만 훨씬 못하니라. 도인이란 일 없는 사람이어서 실로 허다한 마음도 없고 나아가 말할 만한 도리도 없다. 더이상 일이 없으니, 헤어져들 돌아가거라."

상당운 백종다지 불여무구최제일야 도인 시무사인 실무허다반심 역무도리가설 무사산거

15. 머문 바 없이 마음이 나면 곧 부처님의 행

배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세간의 이치[세체]입니까?"
"언어.문자에 얽매인 이치를 논하여 무엇하겠느냐? 본래 청정한 것인데, 어찌 언설을 빌려서 문답을 하겠는가? 다만 일체의 마음이 없기만 하면 번뇌없는 지혜[무루지]라 부른다. 네가 모든 언행에 있어 하염없는 법[유위법]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말하고 눈 깜짝이는 것 모두가 번뇌없는 지혜와 같으니라. 지금 말법 시대에 접어들면서 참선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대부분 온갖 소리와 빛깔에 집착하고 있다. 이래서야 어찌 자기 마음을 여의었다고 하겠느냐? 마음이 허공같고 마른 나무와 돌덩이처럼 되어 가며, 또한 타고 남은 재와 꺼진 불처럼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바야흐로 도에 상응할 분(분)이 조금 있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한다면 뒷날 모두 염라대왕에게서 엄한 문책을 받을 때가 올 것이다. 네가 다만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을 여의기만 하면, 마음이 마치 허공에 떠있는 햇살같아 태양이 비추지 않아도 자연히 두루 비추는 것이니, 이 어찌 힘 덜리는 일[성력사]이 아니겠느냐?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쉬어 머물 바가 없어서, 모든 부처님이 행하시는 행을 하게 되고,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이 난다'는 것이 되느니라. 이것이 바로 자신의 청정한 법신이며 무상정등정각이니라. 만약 이 뜻을 알지 못한다면 많은 지식을 배워 얻고 부지런히 고행수도하며 풀옷을 입고 나무 먹이를 먹는다 하더라도 결국 자기 마음을 모르는 것이니라. 이것을 모두 삿된 수행이라 하며, 정작 천마의 권속이 되는 것이니, 이런 식으로 수행을 한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지공(지공 : 418-514)이 말하기를 ‘부처란 본래 자기 마음으로 짓는 것인데 어찌 문자로 인해 구해지겠는가? 설령 그렇게 해서 삼현(삼현).사과(사과).십지만심(십지만심)의 지위를 얻는다 해도, 그것은 역시 범부와 성인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고 하였다. 너는 보지 못하였느냐? '모든 행위가 무상하나니, 이것이 나고 없어지는 법이니라'고 하였으며, 힘이 다한 화살은 다시 떨어지나니, 뜻대로 되지 않을 내생을 초래하리로다. 어찌 하염없는 실상의 문[무위실상문]에 한번 뛰어넘어 여래의 지위에 바로 드는것만 같으리오' 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는 이 정도의 근기가 아니므로 옛사람이 세우신 방편문에서 알음알이를 널리 배워야 하느니라. 지공이 말하기를 '세간을 뛰어 넘은 명철한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대승의 법약(법약)을 잘못 먹는 것이다.'고 하였다. 네 지금 일거일동에 항상 무심(무심)을 닦아 오래오래 되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역량이 부족하니 단박에 뛰어넘지는 못한다. 다만 3년이나 5년 혹 10년만 지나면 반드시 들어갈 곳을 얻어 자연히 알게될 것이니라. 그러나 너는 이렇게 해내지 못하고, 굳이 마음을 가지고 선(선)을 배우고 도를 배워야 하니, 그것이 불법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경에서 이르시기를, ‘여래의 설법은 모두 사람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누런 나뭇잎을 돈이라하여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따라서 법이란 결코 실다운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우리 종문(종문)의 사람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너의 본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느니라. 그래서 경에 말씀하시기를, '실로 얻을 만한 조그마한 법도 없는 것을 무상정각이라 부른다' 고 하였다. 만약 이 뜻을 알아낸다면, 부처님의 도와 마구니의 도가 모두 잘못 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니라.
본래 깨끗하여 환히 밝아 모남도 둥 섕도 없고, 크고 작음도 길고 짧은 모양도 없으며, 번뇌(루)도 작위(작위)도 없고 미혹됨도 깨달음도 없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요연히 사무쳐 보아 한 물건도 없나니,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 항하사 대천세계(대천세계)는 바다의 물거품이요, 모든 성현들은 스치는 번개불 같도다 ' 한 것이다. 모든 것이 진실한 마음만 같질 못하니라. 법신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부처님.조사와 더불어 마찬가지여서 어디 떨끝만큼이라도 모자람이 겠느냐. 이런 내 말의 뜻을 알았들었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하니, 이 생을 마칠 즈음에는 내쉬는 숨이 들이쉬는 숨을 보장치 못하느니라."

문 여하시세체
사운 설갈등작십마 본래청정 하가언설문답 단무일절심 즉명무루지 여매일행주좌와 일절언어 단막착유위법 출언순목 진동무루 여금말법향거 다시학선도자 개착일절성색 하불여아심 심동허공거 여고목석두거 여한회사화거 방유소분상응 약불여시 타일진피염노자고니재 니단이각유무제법 심여일륜 상재허공 광명 자연불조이조 불시성력저사 도차지시 무서박처 즉시행제불행 편시응무소주 이생기심 차시니청정법신 명위아뇩보제 약불회차의 종니학득다지 근고수행 초의목식 불식자심 진명사행 정작천마권속 여차수행 당복하익 지공 운 <불 본시자심작 나득향문자중구 요니학득삼현사과 십지만심 야기시재범성내좌> 불견도 제행무상 시생멸법 세력진전환추 초득래생불여의 쟁사무위실상문 일초직입여래지 위니불시여마인 수요향고인건화문 광학지해 지공 운 <불봉출세명사 왕복대승법약> 니여금일절시중행주좌와 단학무심 구구 수실득 위니력량소 불능돈초 단득삼년 오년 혹십년 수득개입두처 자연회거 위여불능여시 수요장심학선학도 불법 유십마교섭 고 운 <여래소설 개위화인 여장황엽위금 지소아제> 결정불실 약유실득 비아종문하객 차여니본체 유심교섭 고 경 운 <실무소법가득 명위아뇩보제> 약야회득차의 방지불도마도구착
본래청정 교교지 무방원무대소 무장단등상 무루무위 무미무오 요요견무일물 역무인역무불 대천사계해중구 일절성현 여전불 일절불여심진실 법신 종고지금 여불조일반 하처흠소일호모 기회여시의 대수노력 진금생거 출식 불보입식

16. 육조(육조)는 어째서 조사가 되었는가?

배휴가 물었다.
"혜능스님께서는 경전을 모르셨는데 어떻게 법의를 전수받고 육조가 되셨으며, 반면 신수스님은 500대중의 수좌로서 교수사(교수사)의 임무를 받아 32본(본)의 경론을 강의 할 수 있었는데 왜 법의를 전수받지 못하였습니까?"
"신수스님에게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니, 이는 유위의 법으로서 닦고 깨닫는 것을 옳다고 여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5조께서는 6조에게 부촉하셨느니라. 한편 6조는 당시에 다만 묵묵히 계합하여 여래께서 은밀히 주신 매우 깊은 뜻을얻으셨으므로 그에게 법을 부촉하셨느니라. 너는 듣지 못했느냐? '법이란 본래 법은 법이랄 것 없나니 법없는 법을 또한 법이라 하느니라. 이제 법 없음을 부촉할 때에 법이다 법이다 하는 것이 일찌기 무슨 법이었던고?' 라고 하셨다. 이 뜻을 알면 바야흐로 출가자라고 부르게 되느니라.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어지하여 도명(도명)상조가 대유령 꼭대기까지 달려와서 6조를 찾았겠느냐. 그때 6조스님이 묻기를 '그대는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 옷을 구하는가, 아니면 법인가?' 하니, 도명상좌가 '옷이 아니라 오로지 법을 위하여 왔습니다'고 하였다.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잠시 마음을 거두고 선도 악도 전혀 생각하지 말라' 하시자 도명상좌가 말씀을 받드니, 6조께서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바로 이러할 때부모가 낳기 이전 명상좌의 본래 면목을 나에게 가져와 보아라' 하셨다. 도명상좌가 이 말을 듣고 곧바로 묵연히 계합하고 문득 절하며 말하기를 '마치 물을 마셔 보고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사옵니다. 제가 5조 문하에서 30년 동안 잘못 공부하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지난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하자,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도다' 고 하셨다. 이제 조사가 서쪽에서 오시어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심이 언설에 있지 않음을 바야흐로 알 것이로다. 어찌 듣지 못했느냐? 아난이 가섭에게 묻기를 '세존께서 금란가사를 전하신 외에 따로 무슨 법을 전하셨습니까?' 하니 가섭이 아난을 불렀다. 아난이 대답하자 가섭이 말하기를 '문 앞의 깃대<찰간>를 거꾸려뜨려 버려라'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조사의 표방이니라. 몹시 총명한 아난이 30년도안 시자로 있으면서 많이 들어 얻은 지헤 때문에 부처님으로부터, '천일 동안 닦은 너의 지혜는 하루 동안 도를 닦느니만 못하다' 고 하는 꾸지람을 들었다. 만약 도를 배우지 않는다면 물 한 방울도 소화시키기 어렵다 하리라."

문 육조 불회경서 하득전의위조 수상좌 시오백인수좌 위교수사 강득삼십이본경론 운하불전의
사운 위타유심 시유위법 소수소증 장위시야 소이 오조부육조 육조 당시 기시묵계 득밀수여래심심의 소이 부법여타 여불견도 <법본법무법 무법법 역법 금부무법시 법법 하증법> 약회차의 방명출가아 방호수행 약불신 운하명상좌 주래대유령두 심육조 육조편문 <여래구하사 위구의 위구법> 명상좌운 <불위의래 단위법래> 육조운 <여차잠시렴념 선악 도막사량> 명 내품어 육조운 <불사선불사악 정당여마시 환아명상좌부모미생시면목래> 명 어언하 홀연묵계 편예배운 <여인음수 냉난 자지 모갑 재오조회중 왕용삼십년공부 금일 방성전비> 육조운 <여시> 도차지시 방지조사서래 직지인심견성성불 불재언설 기불견 아난 문가섭운 <세존 전금란외 별전하법> 가섭 소아난 아난 응낙 가섭 운 <도각문전찰간착> 차편시조사지표방야 심심아난 삼십년위시자 기위다문지혜 피불가운 <여천일학혜 불여일일학도> 약불학도 적수 난소
제2편 완릉록(완릉록)
1. 도는 마음 깨치는 데 있다.

배상공이 황벽스님께 여쭈었다.
“산중(산중)의 사오백명 대중 가운데서 몇 명이나 스님의 법을 얻었습니까?”
대사가 말씀하셨다.
“법을 얻은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왜냐하면 도는 마음을 깨치는 데 있는 것이지 어찌 언설에 있겠느냐? 언설이란 다만 어린아이를 교화할 뿐이니라.”

배상공 문사왈 산중사오백인 기인 득화상법
사운 득자 막측기수 하고 도재심오 기재언설 언설 기시화동몽이

2. 자기의 마음을 알자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음이 곧 부처요 무심(무심)이 도이니라. 다만 마음을 내어서 생각을 움직인다든지, 혹은 있고[유], 길고 짧음, 너와 나, 나아가 주체니 객체니 하는 마음이 없기만 하면, 마음이 본래로 부처요 부처가 본래 마음이니라. 마음은 허공과 같기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허공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부처를 따로 구하려 하지 말 것이니, 구함이 있으면 모두가 고통이니라. 설사 오랜 세월 동안 6도[육도] 만행을 실천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완전한 구경(구경)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연의 조작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연이 다하면 덧없음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보신과 화신은 참된 부처가 아니요 또한 법을 설하는 자가 아니다.’고 하였다. 다만 자기의 마음을 알기만 하면 나[아]라고 할 것도 없고 또한 남[인]도 없어서 본래 그대로 부처이니라.”

문 여하시불
사운 즉심시불 무심시도 단무생심동념 유무장단 피아능소등심 심본시불 불본시심 심여허공 소이운 불진법신 유약허공 불용별구 유구개고 설사항사겁 행육도만행 득불보제 역비구경 하이고 위속인연조작고 인연 약진 환귀무상 소이 운 보화 비진불 역비설법자 단식자심 무아무인 본래시불

3. 기틀을 쉬고 견해를 잊음

“성인의 무심은 곧 부처의 경지이지만 범부의 무심은 공적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까?”
“법에는 범, 성의 구별이 없으며 또한 공적한 상태에 빠지는 것도 없다. 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없다는 견해도 내지를 말라. 또한 법은 본래 없지 않으나, 있다는 견해도 내지 말라. 법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모두 뜻[정]으로 헤아리는 견해로서, 마치 허깨비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보고 듣는 것은 마치 허깨비같고, 사량하고 느끼는 것이 바로 중생이니라’고 하였다. 조사문중에 있어서는 오로지 마음을 쉬고 알음알이를 잊는 것을 논할 뿐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쉬어 버리면 부처님의 도가 융성해지고, 분별하면 마구니의 장난이 치성해지느니라.”

문 성인무심 즉시불 범부무심 막심공적부
사운 법무범성 역무심적 법본불유 막작무견 법본불무 막작유견 유지여무 진시정견 유여환예 소이운 <견문 여환예 지각 내중생> 조종문중 기론식기망견 소이 망기칙불도강 분별칙마군치

4. 마음과 성품이 다르지 않다

“마음이 본래로 부처인데 6도만행을 다시 닦아야 합니까?”
“깨달음은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지 6도만행과는 상관이 없느니라. 6도만행이란 그저 교화의 방편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는 쪽의 일 일뿐이다. 설사 보리, 진여와 실제의 해탈법신과 나아가 10지 4과 등의 성인의 지위에 도달한다 할지라도 모두가 교화 제도하는 방편의 문일 뿐이어서, 부처님의 마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느니라. 마음이 곧 그대로 부처이니 교화 제도하는 모든 방편문 가운데서 부처님의 마음이 으뜸이니라. 다만 생사, 번뇌 따위의 마음만 없으면 보리 등의 법을 쓸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은 나의 모든 마음을 제도하시기 위함이로다. 나에게 일체의 마음이 없거니, 어찌 일체법을 쓰리오’라고 하였다. 부처님으로부터 역대 조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른 것은 말하지 않으셨고, 오직 한 마음만을 말했을 뿐이며, 또한 일불승(일불승)만을 말하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시방을 두루 살펴보아도 다시 다른 승(승)이 없나니, 지금 여기에 남아 있는 대중들은 곁가지와 잎은 없고 오로지 모두 잘 익은 열매들뿐이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뜻은 쉽게 믿기가 어렵다. 달마스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양(양), 위(위) 두 나라에 머물렀는데, 오직 혜가(혜가 : 487-593)스님 한 분만이 자기의 마음을 가만히 믿고 말 끝에 문득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았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함께 없음을 이름하여 큰 도라고 하느니라. 큰 도는 본래로 평등하기 때문에, 모든 중생들이 하나의 참 성품으로 같다는 것을 깊이 믿어야 한다. 마음과 성품이 본래 다르지 않으므로 성품이 곧 마음이니라. 마음이 성품과 다르지 않은 사람을 일컬어 조사(조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마음의 성품을 알았을 때 비로소 불가사의하다고 말할 수 있도다’고 하였다.”

문 심기본래시불 환수육도만행부
사운 오재어심 비관육도만행 육도만행 진시화문접물도생변사 설사보제진여 실제해탈법신 직지십지사과성위 진시도문 비관불심 심즉시불 소이 일절제도문중 불심 제일 단무생사번뇌등심 즉불용보제등법 소이도 불설일절법 도아일절심 아무일절심 하용일절법 종불지조 병불론별사 유론일심 역운일승 소이 십방체구 갱무여승 차중 무지엽 유유제정실 소이 차의난신 달마래차토 지량위이국 기유가대사일인 밀신자심 언하 편회즉심시불 신심구무 시명대도 대도 본래평등 소이 심신함생 동일진성 심성불이 즉성 즉심 심불이성 명지위조 소이운 인득심성시 가설불사의

5. 모양 있는 것은 허망하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십니까?”
“정말로 여래께서 제도할 중생은 없느니라. 나[아]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나 아님이야 어찌 얻을 수 있겠느냐! 부처와 중생을 모두 다 얻을 수 없느니라.”
“현재 부처님의 32상(상)과 중생 제도가 분명히 있는데 스님께서는 어찌 없다고 말슴하십니까?”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존재는 모두가 허망하니, 만약 모든 모양을 보되 모양이 아닌 줄을 알면 곧 여래를 보게 되느니라’고 하셨다.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것은 모두 네가 허망하게 지어낸 견해로서, 오로지 본래의 마음을 알지 못한 탓으로 그같은 잘못된 견해를 내게 된 것이니라. 부처의 견해를 내는 순간 바로 부처에 끄달리고, 중생의 견해를 내는 순간 중생에 끄달린다.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견해를 내고, 더럽느니 깨끗하다느니 하는 견해를 내는 등이 모두 그 장애를 받느니라. 그것들이 너의 마음을 가로 막기 때문에 결국 윤회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원숭이가 무언가를 들엇다 놨다 하느라고 쉴 때가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진정한 배움이란 모름지기 배울 것이 없어야 한다. 범부도 성인도 없고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으며, 큼도 없고 작음도 없으며 번뇌도 없고 인위적 작위도 없다. 이와 같은 한 마음 가운데서 바야흐로 방편으로 부지런히 장엄하는 것이다. 설혹 네가 3승 12분의 가르침과 모든 이론들을 배운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가진 것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오직 침상 하나만을 남겨 두고 병들어 누워 있다’고 한 말은 바로 모든 견해를 일으키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한 법도 가히 얻을 것이 없어서 법의 장애를 받지 않고, 삼계의 범, 성의 경계를 훌쩍 벗어나야만 비로소 세간을 벗어난 부처님이라고 하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허공처럼 의지할 바 없음에 머리숙여, 외도의 굴레를 벗어나는도다’고 하였다.
마음이 이미 다르지 않기 때문에 법 또한 다르지 않으며, 마음이 하염 없으므로 법 또한 하염이 없다. 만법이 모두 마음으로 말미암아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비었기 때문에 모든 법이 공하며, 천만 가지 중생들도 모두 다 같은 것이다. 온 시방의 허공계가 같은 한마음의 본체이니, 마음이란 본래 서로 다르지 않고 법 또한 다르지 않건만, 다만 너의 견해가 같질 않으므로 차별이 있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모든 하늘사람들이 다 보배 그릇으로 음식을 받아 먹지만 각자의 복덕에 따라 밥의 빛깔이 다른 것과 같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실로 작은 법도 얻은 것이 없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무상정각이라 한다. 오로지 한 마음일 뿐, 실로 다른 모양이 없으며, 또한 광채가 빼어날 것도 없고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다. 나을 것이 없기 때문에 부처라는 모양이 없고,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중생이라는 모양이 없다.”
“마음이야 모양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부처님의 32상(상) 80종호(종호)와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는 일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32상은 모양에 속한 것이니, ‘무릇 모양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라고 한 것이요, 80종호는 색깔에 속한 것이니, ‘만약 겉 모습으로 나를 보려 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여래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문 불도중생부
사운 실무중생여래도자 아상불가득 비아 하가득 불여중생 개불가득
운 현유삼십이상급도중생 하득언무
사운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불여중생 진시여작망견 지위불식본심 만작견해 재작불견 편피불장 작중생견 피중생장 작범작성 작정작예등견 진성기장 장여심고 총성륜전 유여선후 방일착일 무유헐기 일등시학 직수무학 무범무성 무정무구 무대무소 무루무위 여시일심중 방편근장엄 청여학득삼승십이분교 일절견해 총수사각 소이 제거소유 유치일상 침질이와 기시불기제견 무일법가득 불피법장 투탈삼계범성경역 시득명위출세불 소이운 <계수여공무소의 출과외도> 심기불이 법역불이 심기무위 법역무위 만법 진유심변 소이 아심공고 제법공 천품만류 실개동 진십방공계 동일심체 심본불이 법역불이 기위여견해불동 소이차별 비여제천 공보기식 수기복덕 반색 유이 십방제불 실무소법가득 명위아뇩보제 기시일심 실무이상 역무광채 역무승부 무승고 무불상 무부고 무중생상
운 심기무상 기득전무삼십이상팔십종호 화도중생야
사운 삼십이상 속상 범소유상 개시허망 팔십종호 속색 약이색견아 시인 행사도 불능견여래

6. 한 마음의 법

“부처의 성품과 중생의 성품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성품 자체는 같고 다름이 없으나 만약 3승의 가르침에 의거해 말한다면 부처의 성품과 중생의 성품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3승의 인과가 있어서 같고 다름이 있느니라. 그러나 만약 불승(불승)과 조사가 서로 전한 것에 의거해 보면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고 오로지 한마음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마음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오직 이 일승(일승)의 도뿐이요, 2승도 없고 3승도 없느니라. 그러나 부처님의 방편설만은 제외하노라’고 하셨다.

문 불성여중생성 위동 위별
사운 성무동이 약약삼승교 즉설유불성유중생성 수유삼승인과 즉유동이 약약불승급조사상전 즉불설여시사 유지일심 비동비이 비인비과 소이운 <유차일승도 무이역무삼> 제불방편설

7. 모든 견해를 여읨이 무변신보살

“무변신보살(무변신보살)은 왜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합니까?”
“실로 볼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무변신보살이란 곧 여래이기 때문에 응당 보지 못한다. 다만 너희에게 부처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부처라는 변견(변견)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며, 중생이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중생이라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있다[유]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있다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없다[무]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없다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범부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범부라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나아가 성인이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성인이라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만 모든 견해만 없으면 그대로가 곧 가이 없는 몸[무변신]이니라. 그러나 무엇인가 보는 곳이 있으면 곧 외도라고 부른다. 외도란 모든 견해를 즐기고 보살은 모든 견해에 있어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여래란 곧 모든 법에 여여(여여)한 뜻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미륵도 또한 그러하고 모든 성현도 또한 그러하다’고 하였다. 여여하기 때문에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볼 것도 들을 것도 없다. 여래의 정수리는 두렷이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두렷이 보는 것도 없으므로, 두렷하다는 변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처님 몸은 하염 없으신 것이다. 숫자로써 헤아리는 범주에 속하지도 않지만, 다만 방편으로 허공에 비유할 뿐이니라. ‘원만하기가 태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으며’ 한가로이 일삼을 것이 없다. 다른 경계를 억지로 끌어들여 설명하려 하지 말 것이니, 설명하려 들면 벌써 식[식]이 이뤄지고 만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원성실성(원성실성)은 의식의 바다에 잠겨서 나부끼는 쑥대처럼 흘러 도네’라고 하였다. 그저 말하기를 ‘나는 알았으며 배워서 얻었으며, 깨달았으며, 해탈하였으며, 도의 이치를 얻었노라’고 한다. 그러나 자기가 강한 곳에서는 뜻대로 되지만 약한 곳에서는 뜻대로 되질 않는다면 이런 견해가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내 너에게 말하노니, 한가하여 스스로 일 없도록 하여 쓸데없이 마음을 쓰지 말라. ‘참됨을 구할 필요가 없나니, 오직 모든 견해를 쉴지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안으로 봄[내견]과 밖으로 봄[외견]이 모두 잘못이며 부처의 도와 마구니의 도가 모두 나쁜 것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문수보살이 잠깐 두 견해를 일으켰다가 그만 두 철위산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다.
문수보살은 참된 지혜의 상징이고 보현보살은 방편적인 지혜의 상징이다. 방편과 참됨이 서로서로 작용을 하여 끝내는 방편과 참됨 그것마저도 사라지고 오로지 한 마음뿐인 것이다. 마음은 결코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다. 서로 다른 견해가 있는 것이 아닌데, 부처의 견해를 갖기만 하면 바로 중생의 견해를 내게 되느니라. 있다는 견해[유견], 없다는 견해[무견], 영원불변하다는 견해[상견], 단멸한다는 견해[단견]가 바로 두 철위산 지옥을 이룬다. 이처럼 견해와 장애를 받기 때문에 역대의 조사들께서 일체 중생의 본래 몸과 마음이 그대로 부처임을 바로 가리키신 것이다. 이것은 닦아서 되는것도 아니고 점차적인 단계를 밟아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밝음이나 어두움에 속하지도 않아서, 밝음이 아니기 때문에 밝음도 없으며 어둠이 아니기 때문에 어두움도 없다. 그러므로 밝음 없음[무명]도 없으며 또한 밝음 없음이 다함[무명진]도 없다. 우리이 선가의 종문에 들어와서는 누구든지 뜻을 간절하게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이 볼 수 있는 것을 이름하여 법이라 하고 법을 보기 때문에 부처라고 하며, 부처와 법이 모두 함께 없는 것을 승(승)이라 부르며, 하릴없는 중이라 부르며, 또한 한몸의 삼보[일체삼보]라 하느니라. 대저 법을 구하는 이는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며, 대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아서 마땅히 구하는 바가 없어야 하느니라.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랄 것도 없으며,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에 법이랄 것도 없으며, 대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에 승(승)이랄 것도 없느니라.”

문 무변신보살 위십마불견여래정상
사운 실무가견 하이고 무변신보살 편시여래 불응갱견 기교니 불작불견 불락불변 불작중생견 불락중생변 불작유견 불락유변 불작무견 불락무변 불작범견 불락범변 불작성견 불락성변 단무제견 즉시무변신 약유견처 즉명외도 외도자 락어제견 보살 어제견이불동 여래자 즉제법여의 소이운 <미륵 역여야 중성현 역여야> 여즉무생 여즉무멸 여즉무견 여즉무문 여래정 즉시원견 역무원견고 불락원변 소이 불신 무위 불타제수 권이허공 위유 원동태허 무흠무여 등한무사 막강변타경 변착 편성식 소이운 <원성심식해 류전약표봉> 기도 <아지야 학득야 계오야 해탈야 유도리야> 강처 즉여의 약처 즉불여의 사자개견해 유십마용처 아향여도 등한무사 막만용심 불용구진 유수식견 소이 내견외견 구착 불도마도구악 소이 문수 잠기이견 폄향이철위산 문수 즉실지 보현 즉권지 권실 상대치 구경 역무권실 유시일심 심차불불불중생 무유이견 재유불견 편작중생견 유견무견상견단견 편성이철위산 피견장고 조사 직지일절중생 본심본체 본래시불 불가수성 불속점차 불시명암 불시명고 무명 불시암고 무암 소이 무무명 역무무명진 입아차종문 절수재의 여차견득 명지위법 견법고 명지위불 불법구무 명지위승 환작무위승 역명일체삼보 부구법자 불착불구 불착법구 불착중구 응무소구 불착불구고 무불 불착법구고 무법 불착중구고 무승

8. 한 법도 얻을 수 없다

“스님께서는 지금 법을 말씀하고 계시거늘 어찌하여 승(승)이랄 것도 없고 법(법0이랄 것도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네 만약 가히 설명할 만한 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음성으로서 부처님을 찾는 것’이 된다. 나[아]란 것이 있다고 견해를 내면 곧 처소(처소)인 것이다. 법 또한 법이라 할 만한 것이 없으니 법이란 바로 마음이니라.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이 마음의 법을 부촉할 때에
법이라 하는 법이 일찍이 무슨 법이던가.
법도 없고 본래 마음도 없으면
마음, 마음하는 법을 비로소 알리라.

실로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을 이름하여 도량에 앉음이라고 한다. 도량이란 오직 일체의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법이 본래 공(공)한 줄을 깨닫는 것을 공여래장(공여래장)이라 하는데,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엔들 티끌과 먼지가 있겠느냐. 만약 이 소식을 안다면 유유자적하게 소요함인들 논할 바 있겠느냐.

문 화상 견금설법 하득언무승역무법
사운 여약견유법가설 즉시이음성구아 약견유아 즉시처소 법역무법 법즉시심 소이 조사운 <부차심법시 법법 하증법 무법무본심 시해심심법> 실무일법가득 명좌도장 도장자 기시불기제견 오법본공 환작공여래장 본래무일물 하처 유진애 약득차중의 소요 하소론

9. 한 물건도 없음[무일물]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하신다면 한 물건도 없음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없다고 해도 맞지 않다. 깨달음이란 옳은 곳도 없으며 그렇다고 앎이 없는 것도 없다.”

문 본래무일물 무물 편시부
사운 무역불시 보제 무시처 역무무지해

10. 마음 밖에 다른 부처가 없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너의 마음이 부처이니라. 부처는 곧 마음이니, 마음과 부처가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을 떠나서는 따로 부처가 없느니라.”
“만약 자신의 마음이 부처라 한다면,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시어 어떻게 그것을 전수하셨습니까?”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셔서 전한 것은 오직 마음의 부처이니라. 즉 너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바로 가르쳐 주신 것이며,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조사라 부르느니라. 만약 곧바로 이 뜻을 깨닫는다면, 곧 3승의 모든 지위를 단박에 뛰어넘어서 본래의 부처인 것이니, 결코 점차로 닦음에 의지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그러다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무슨 법을 말씀하십니까?”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시사 오로지 한 마음의 법만을 말씀하시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마하대가섭에게 그것을 은밀히 부촉하셨느니라. 이 마음법[심법]의 본체는 허공계를 다하여 온 법계를 두루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이치라고 부른다. 이러한 법을 논하건대 너는 어찌 언어, 문자로써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또한 한 기틀, 한 경계 위에서 결코 심법([심법)을 볼 수 없는 것이니, 오로지 묵묵히 계합할 따름이니라. 이 하나의 문을 얻는 것을 이름하여 하염없는 법의 문[무위법문]이라 한다. 만약 깨쳐 알고자 한다면 다만 무심을 알아야 한다. 홀연히 깨치면 곧 되는 것이요, 만약 마음을 써서 배워 깨달으려 하면 그럴수록 더욱더 멀어지느니라. 갈라진 마음과 모든 취사(취사)하는 마음이 없어서, 나무와 돌 같은 마음이 되어야만 비로소 도를 배울 분(분)이 있느니라.”
“지금 갖가지 망념이 있는데, 스님께서 어찌하여 없다고 하십니까?”
“망념은 본시 본체가 없는 것인데, 너의 마음이 허망하게 일으킨 것이다. 만약 네가 마음이 부처임을 안다면, 마음은 본래 허망함이 없는 것이어늘, 어찌 마음을 일으켜 다시 망념을 알려 하느냐? 네 만약 마음을 내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자연히 망념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지금 바로 망념이 일어날 때 부처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네 지금 망념이 일어난 것을 깨달았을 때에, 그 깨달음이 바로 부처님이다. 그런 가운데 망념이 없다면, 부처 또한 없느니라.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네가 마음을 일으켜 부처의 견해를 지어서 문득 이룰만한 부처가 있다고 하며, 중생의 견해를 지어서 제도할 중생이 있다고 하는데,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것이 모조리 너의 견해가 작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일체의 견해가 없다면 부처는 어느 곳에 있겠느냐? 마치 문수가 부처라는 견해를 일으키자마자 바로 두 철위산 지옥에 떨어진 경우와 같은 것이다.”
“이제 바로 깨달았을 때 부처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물음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으며, 깨달음은 무엇으로부터 일어났느냐? 일상의 어묵동정간에 모든 소리와 빛깔이 모두 불사(불사) 아님이 없거늘 어느 곳에서 부처를 찾겠느냐? 머리 위에 머리를 얹지 말며, 부리 위에 부리를 더하지 말라. 그저 다른 견해만 내지 않으면 산은 산, 물은 물, 승(승)은 승, 속(속)은 속일 뿐이니라. 산하대지와 일월성신이 모두 너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으며, 삼천대천 세계가 모두 너의 본래 면목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곳에 허다한 일들이 있겠느냐?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눈 가득히 푸른 산이니라. 허공세계가 밝고 깨끗하여 한 터럭만큼도 너에게 견해를 짓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소리와 빛깔들이 그대로 부처님 지혜의 눈이니라.
법은 홀로 일어나지 않고 경계를 의지해야만 비로소 생긴 것이니, 경계 때문에 그 많은 지혜가 있는 것이다. 종일 말하나 일찍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종일 들으나 일찍이 무엇을 들었느냐? 그러므로 석가세존께서 49년 설법하셨어도 일찍이 한 글자도 결코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니라.”

문 하제시불
사운 여심 시불 불즉시심 심불불이고 운 <즉심즉불> 약이어심 별갱무불
운 약자심시불 조사서래 여하전수
사운 조사서래 유전심불 직지여등심 본래시불 심심불이고 명위조 약직하 견차의 즉돈초삼승일절제위 본래시불 불가수성
운 약여차 십방제불 출세 설어하법
사운 십방제불 출세 기공설일심법 소이 불 밀부여마사대가섭 차일심법체 진허공편법계 명위제불리 논저개법 기시여어언구상 해득타 역불시어일기일경상견득타 차의 유시묵계 득저일문 명위무위법문 약욕회득 단지무심 홀오즉득 약용심의학취 즉전원거 약무기로심 일절취사심 심여목석 시유학도분
운 여금 현유종종망념 하이언무
사운 망본무체 즉시여심소기 여약식심시불 심본무망 나득기심 갱인어망 여 약불생심동념 자연무망 소이운 <심생칙종종법 생 심멸칙종종법 멸>
운 금정망념기시 불재하처
사운 여금각망기시 각 정시불 가중 약무망념 불역무 하고 여차 위여기심작불견 편위유불가성 작중생견 편위유중생가도 기심동념 총시여견처 약무일절견 불 유하처소 여문수 재기불견 편폄향이철위산
운 금정오시 불재하처
사운 문종하래 각종하기 어묵동정일절성색 진시불사 하처멱불 불가갱두상안두 자상가자 단막생이견 산시산수시수 승시승속시속 산하대지일월성진 총불출여심 삼천세계 도래시개여자기 하처 유허다반 심외무법 만목청산 허공세계교교지 무사발허 여여 작견해 소이 일절성색 시불지혜목 법불고기 장경방생 위물지고 유기다지 종일설 하증설 종일문 하증문 소이 석가사십구년설 미증설착일자

11. 보리의 마음

“만약 그렇다면 어느 곳이 깨달음입니까?”
“깨달음은 일정한 처소가 없느니라. 부처라 해서 역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며, 중생이라 해서 깨달음을 잃는 것도 아니다. 깨달음은 몸으로 얻지 못하며, 마음으로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니, 일체중생이 그대로 깨달음의 모양이니라.”
“그러면 어떻게 보리심을 냅니까?”
“보리는 얻는 것이 아니다. 네 지금 얻음이 없는 마음을 내기만 하면, 결정코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 그대로가 보리의 마음이니라. 보리는 머물 자리가 없기 때문에 얻을 그 무엇도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작은 법도 얻을 수 없었으므로,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하셨느니라’고 하셨다. 일체 중생이 본래 보리이므로, 디시 보리를 얻으려 할 필요가 없음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네 이제 보리심을 낸다는 말을 듣고 한 마음을 가지고 배워서 부처를 얻는다고 말하여, 오로지 부처가 되려고 한다면 네가 3대아승기겁을 닦는다 해도 다만 보신, 화신의 부처만을 얻을 뿐, 너의 근본 연원인 참된 성품의 부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밖으로 구하는 모양있는 부처는 그대와는 닮지 않았도다’고 하였다.”

운 약여차 하처시보제
사운 보제무시처 불역불득보제 중생 역불실보제 불가이신득 불가이심구 일절중생 즉보제상
운 여하발보제심
사운 보제 무소득 니금단발무소득심 결정불득일법 즉보제심 보제 무주처 시고 무유득자 고 운 <아어연등불소 무유소법가득 불 즉여아수기> 명지일절중생 본시보제 불응갱득보제 니금문발보제심 위장일개심 학취불거 유의작불 임니삼기겁수 역기득개보화불 여니본원진성불 유하교섭 고 운 <외구유상불 여여불상사>

12. 수은의 비유

“본래로 이미 부처일진대 어찌하여 4생과 6도가 있어 갖가지로 형상과 모양이 같지 않습니까?”
“모든 부처님께서는 본체가 두렷하여 거기에 더 불어나고 줄어들 것이 없다. 또한 6도에 흘러들어도 곳곳마다 모두 원만하고, 여러 만물이 모두 낱낱이 부처이니라. 이것은 마치 한 덩어리의 수은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흩어졌어도 방울방울이 모두 둥근 것과 같다. 나뉘지 않았을 때에도 한 덩이였을 뿐이니, 이는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니라. 온갖 형상과 모습은 마치 집과 같다. 나귀의 집을 버리고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사람의 몸을 버리고 하늘의 몸이 되기도 하며, 성문, 연각, 보살, 부처의 집은 모두 네 자신이 취하고 버리는 곳이니라. 그래서 모든 구별이 있는 것이지만, 본래 근원의 성품에는 무슨 차별이 있겠느냐?”

문 본기시불 나득갱유사생육도 종종형모불동
사운 제불 체원 갱무증감 유입육도 처처개원 만류지중 개개시불 비여일단수은 분산제처 과과개원 약불분시 기시일괴 차일즉일절 일절즉일 종종형모 유여옥사 사려옥입인옥 사인신지천신 내지성문연각보살불옥 개시여취사처 소이유별 본원지성 하득유별

13. 무연자비

“모든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십니까?”
“부처님의 자비란 인연이 없기 때문에 큰 자비라고 한다. 사랑함[자]이란 이룰 만한 부처가 있다는 견해를 내지 않는 것이고, 슬퍼함[비]이란 제도할 중생이 있다는 견해를 내지 않는 것이다. 설하시는 법은 설함도 없고 보임도 없으며, 그 법을 듣는 자는 들음도 얻음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마술사가 마술로 만들어 놓은 인간을 위하여 설법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법을 어떻게 ‘내가 선지식으로부터 말끝에서 알아차리고 이해하여 깨달았다’고 말하겠으며, 이러한 자비를 어떻게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여 가지고 배워서 얻겠느냐? 스스로 본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면 마침내 아무런 이익도 없느니라.”

문 제불 여하행대자비 위중생설법
사운 불자비자 무연고 명대자비 자자 불견유불가성 비자 불견유중생가도 기소설법 무설무시 기청법자 무문무득 비여환사위환인설법 자개법 약위도아종선지식언하령득 회야오야 자개자비 약위여기심동념 학득타 견해 불시자오본심 구경무익

14. 정진이란?

“어떤 것이 정진(정진)입니까?”
“몸과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가장 굳건한 정진이니라. 마음을 일으켜서 밖으로 구하기만 하면 ‘가리왕이 사냥놀이를 좋아함’이라고 부른다. 마음이 밖으로 나다니지 않는 것이 곧 인욕선인이며, 몸과 마음이 함께 없음이 곧 부처님의 도이니라.”

문 하자시정진
사운 신심불기 시명제일뢰강정진 재기심 향외구자 명위가이왕 애유렵거 심불외유 즉시인욕선인 신심구무 즉시불도

15. 무심한 행

“만약 마음이 없으면 이 도를 행하여 얻을 수 있습니까?”
“마음없음[무심]이 바로 도를 행함이거늘 거기에 다시 더 얻고 말고 할 것이 있겠느냐? 만약 잠깐이라도 한 생각 일으키면 곧 경계이고, 한 생각 없다 하여도 경계이니라. 망령된 마음이 스스로 없어지면 더 이상 쫓아가 찾을 것이 없느니라.”

문 약무심 행차도득부
사운 무심 편시행차도 갱설십마득여불득 차여별기일념 편시경 약무일념 편시경 망심 자멸 무복가추심

16. 삼계(삼계)를 벗어남

“어떤 것이 3계를 벗어나는 것입니까?”
“선과 악을 전혀 생각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곧 3계를 벗어나느니라. 여래께서 세간에 출현하신 것은 3계를 부수기 위해서이다. 만약 모든 마음이 없다면 3계 또한 없느니라. 가령 작은 티끌 하나를 100등분 부수어 그 중 99등분을 없애고 한 등분만 남았더라도, 대승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벗어난 것이 못된다. 100등분이 모두 다 없어야만 대승에 있어서 비로소 잘 벗어났다고 하느니라.”

문 여하시출삼계
사운 선악 도막사량 당처편출삼계 여래출세 위파삼유 약무일절심 삼계 역비유 여일미진 파위백분 구십구분 시무 일분 시유 마가연 불능승출 백분 구무 마가연 시능승출

17. 마음이 부처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꿈틀거리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두다 불성이 있어서, 동일한 마음의 본체를 지녔느니라. 그러므로 달마스님이 인도로부터 오셔서 오직 한마음의 법만을 전하셨으니, 일체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곧 바르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깨달음이란 수행을 빌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의 자기 마음을 알아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요, 결코 달리 구하지 말라.
어떻게 자기의 마음을 아는 것인가?
지금 말하는 것이 바로 너의 마음이니라. 만약 말하지 않고 작용도 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본체는 허공과 같아서 모양도 없고, 또한 방위와 처소도 없다. 그렇다고 그저 한결같이 없는 것만도 아니다. 있으면서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조사스님께서는 ‘참된 성품의 마음자리[진성심지장]는 머리도 꼬리도 없는지라. 인연에 호응하여 중생을 교화하나니, 방편으로 그것을 지혜라 부른다’고 하셨다. 만약 인연에 호응하지 않을 때라도 있고 없음을 말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바로 호응할 때라도 또한 종적이 없느니라. 이미 이런 줄 알았을진댄 ‘없음’ 가운데 쉬어 깃든다면 곧 모든 부처님의 길을 가는 것이니라.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머문 바가 없이 그 마음이 난다’고 하셨으니, 모든 중생이 생사에 윤회하는 것은 뜻으로 반연하고 분주시 조작하는 마음이 6도에서 멈추지 못하여, 마침내 갖가지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유마거사가 이르기를, ‘교화하기 힘든 사람은 원숭이처럼 의심이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 법으로 제어한 다음에 비로소 조복시킨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지느니라. 그러므로 일체 법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며, 인간, 천상, 지옥, 6도, 아수라가 모두 마음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심하기만 하면 모든 반연은 단박에 쉬게 되며 망상 분별을 내지 않으면 남도 없고 나도 없으며, 욕심과 성냄도 없고, 밉고 고움도 없으며, 이김도 짐도 없느니라.
허다한 여러 가지 망상을 없애 버리기만 하면 자성(자성)은 본래부터 청정한 것이니, 곧 깨달음의 법을 수행하여 부처님과 나란히 되는 것이니라. 만약 이 뜻을 알지 못한다면, 설사 널리 배우고 부지런히 수행하며, 나무먹이를 먹고 풀옷을 입는 고행을 한다 하더라도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한 것이니라. 그것을 모두 삿된 수행이라고 하며 모두 다 천마(천마), 외도, 물과 뭍의 여러 귀신 노름을 하는 것이니, 이같이 수행한들 무슨 이로움이 있느냐? 지공이 말하기를 ‘본래 몸은 자기의 마음이 짓는 것이어늘, 어찌 문자 속에서 구하리오?’ 하였다. 지금 자기 마음을 알아서 사량분별하는 망상을 쉬기만 하면 6진의 번뇌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오직 침상 하나만 두고 병들어 누워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니라. 지금 앓아 누워서 반연을 모두 쉬어 망상이 그쳐 없어지면, 그것이 바로 보리이니라.
지금 만약 마음 속이 분분히 시끄러워 안정되지 않았다면, 너의 배움이 비록 3승, 4과, 10지의 모든 지위에 이르렀다 해도 아직 범, 성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함이 옳다. 모든 행위는 끝내 덧없음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은 힘이 다할 때가 있기 마련이니, 마치 화살을 공중에 쏘면 얼마 안 가 힘이 다해 땅에 도록 떨어지는 것처럼, 생사의 윤회에 다시 돌아가고 만다. 이와 같은 수행은 부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요, 헛되이 쓰라린 고초를 받을 뿐이니, 어찌 크게 잘못됨이 아니겠느냐, 지공이 말하기를 ‘세간에 뛰어난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대승의 법약을 잘못 먹은 것이다’고 하였다. 단지 다니고 머물고 앉아 눕는 모든 시간 가운데서 오로지 무심함을 배우기만 하면, 분별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으며, 또한 머물러 집착할 바도 없다. 종일토록 둥둥 떠오르는 기운데로 내맡겨 둔 것이, 마치 바보와도 같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를 모른다 하여도, 일부러 알리거나 모르게 할 필요가 없다. 마음이 마치 큰 바위덩이와 같아서 도무지 갈라진 틈이 없고, 일체 법이 너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여 올연히 어디에도 잡착함이 없어야 한다. 이와 같아야만 비로소 조금은 상응할 분(분)이 있다 하리라.
3계의 경계를 툭 뚫고 지나기만 하면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셨다고 하는 것이며, 번뇌 없는 마음의 모습을 바로 샘이 없는 지혜[무루지]라고 부른다. 인간과 천상업을 짓지 않으며, 그렇다고 지옥업을 짓지도 않으며, 나아가 일체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모든 반연이 전혀 생기지 않으면 곧 이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결같이 나지 않음[불생]만은 아니어서, 뜻 따라 날[생] 따름이니라. 경에 이르시기를 ‘보살은 자기 뜻대로 나는 몸을 가졌다’고 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만약 마음이 없음을 모르고 모양에 집착하여 갖가지 견해를 짓는 것은 모두 마구니의 업에 속하는 것이다. 나아가 정토의 수행[정토불사]을 한다 하더라도 모두 업을 짓는 것으로써, 이것을 부처의 장애[불장]라고 하느니라. 그것이 그대의 마음을 가로막기 때문에 인과에 얽매여, 가고 머무름에 조금도 자유로움이 없다. 왜냐하면 보리 등의 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사람을 교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마치 누런 잎사귀를 돈이라하여 우는 어린아이의 울음을 억지로 그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실로 법이 있지 않음을 무상정각이라 하나니, 지금 이미 이 뜻을 알았다면 어찌 구구한 설명이 더 필요하겠느냐? 다만 인연따라 묵은 업을 녹일 뿐이요, 다시 새로운 재앙을 짓지 말라. 마음 속은 밝고 또 밝기 때문에 옛 시절의 견해를 모두 버려야 한다. 그래서 <유마경>에 이르기를 ‘가진 것을 없애 버린다’고 하였으며, <법화경>에서는 ‘20년 동안 항상 똥을 치게 하셨다’고 하였느니라. 이것은 오로지 마음 속에 지은 바 견해를 없애게 하는 것이다. 또 말씀하시기를, ‘희론(희론)의 똥을 쳐서 없앤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래장은 본래 스스로 공적(공적)하여 결코 한 법에라도 멈춰 머무르지 않으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부처님의 나라도 또한 다 비었다’고 하셨느니라.
만약 부처님의 도를 닦아 배워서 얻는다고 한다면, 이와 같은 견해는 전혀 맞지가 않는 것이다. 혹은 한 기연이나 한 경계를 보이기도 하며, 눈썹을 치켜뜨기도 하고 눈을 부라리기도 하여 어쩌다 서로 통하기라도 하면 곧 말하기를, ‘계합하여 알았다’고 하며 혹은 ‘선의 이치를 깨쳐서 증득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도무지 아는 게 없다가 그 사람을 대하여 무슨 도리라도 얻게 되면 마음 속이 문득 환희하여 기뻐한다. 그러나 만약 상대에게 절복당하여 상대보다 못하게 되면 속으로 섭한 생각을 품게 된다. 이처럼 마음과 뜻으로 배운 선(선)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비록 그대가 자그마한 도리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한낱 마음으로 헤아리는 법일 뿐이요, 우리 종문의 선도(선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달마스님께서 면벽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전혀 견처(견처)가 없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마음의 작용을 잊는 것은 부처님의 도이나, 분별망상은 마구니의 경계이다’고 하였다. 이 성품은 네가 미혹했을 때라도 결코 잃지 않으며, 그렇다고 깨쳤을 때에도 역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니라. 천진스런 자성은 본래 미혹할 것도 깨칠 것도 없으며, 온 시방의 허공계가 바로 나의 한마음의 본체이니라. 그러니 네 아무리 몸부림친다 해도 어찌 허공을 벗어날 수 있겠느냐?
허공이란 본래부터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번뇌라 할 것도 인위적인 작위도 없으며, 미혹할 것도 깨칠 것도 없다. 그래서 ‘요연히 사무쳐 보아 한 물건도 없나니,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고 하였으며, 털끝만큼이라도 사량분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니, 의지하여 기댈 만한 것도 없으며, 달라붙을 것도 없다. 한 줄기 맑은 흐름이 자성의 남이 없는 진리[무생법인]이니, 어찌 머뭇거려 헤아리고 따질 수 있겠느냐! 참 부처는 입이 없기 때문에 설법할 줄 모르고, 진정으로 들음은 귀가 없으니, 뉘라서 들을 수 있겠느냐! 수고하였다. 편히들 하여라.”

상당운 즉심시불 상지제불 하지준동함령 개유불성 동일심체 소이 달마 종서천래 유전일심법 직지일절중생 본래시불 불가수행 단여금 식취자심 견자본성 갱막별구 운하식자심
즉여금언어자 정시여심 약불언어 우불작용 심체여허공상사 무유상모 역무방소 역불일향시무 유이불가견고 조사운 <진성심지장 무두역무미 응연이화물 방편호위지> 약불응연지시 불가언기유무 정응지시 역무종적 기지여차 여금 단향무중강박 즉시행제불로 경운 <응무소주 이생기심> 일절중생 윤회생사자 의연주작심 어육도 불정 치사수종종고 정명 운 <난화지인 심여원후고 이약간종법 제어기심연후 조복> 소이 심생 종종법 생 심멸 종종법 멸 고지일절제법 개유심조 내지인천지옥 육도 수라 진유심조 여금 단학무심 돈식제연 막생망상분별 무인무아 무탐진 무증애무승부 단제각여허다종망상 성자본래청정 즉시수행보제법 불등 약불회차의 종니광학근고수행 목식초의 불식자심 개명사행 진작천마 외도 수륙제신 여차수행 당복하익 지공 운 <본체시자심작 나득문자중구> 여금 단식자심 식각사유망상 진노자연불생 정명 운 <유치일상 침질이와> 심불기야 여금와질 반연 도식 망상 헐멸 즉시보제 여금 약심라분분불정 임니학도삼승사과십지제위 합살기향범성중좌 제행 진귀무상 세력 개유진기 유여전사어공 역진환추 각귀생사윤회 여사수행 불해불의 허수신고 기비대착 지공 운 <미봉출세명사 왕복대승법약> 여금 단일절시중행주좌와 단학무심 역무분별 역무의의 역무주착 종일임운등등 여치인상사 세인 진불식니 니역불용교인식불식 심여완석두 도무봉하 일절법 투여심불입 올연무착 여차 시유소분상응 투득삼계경과 명위불출세 불누심상 명위무루지 불작인천업 불작지옥업 불기일절심 제연 진불생 즉차신심 시자유인 불시일향불생 기시수의이생 경 운 <보살 유의생신> 시야 홀약미회무심 착상이작자 개속마업 내지작정토불사 병개성업 내명불장 장여심고 피인과관속 거주무자유분 소이 보제등법 본불시유 여래소설 개시화인 유여황엽 위금 권지소아제고 실무유법 명아뇩보제 여금 기회차의 하용구구 단수연소구업 갱막조신앙 심라명명 소이 구시견해 총수사각 정명 운 <제거소유> 법화 운 <이십년중 상령제분> 기시제거심중작견해처 우운 <견제희론지분> 소이 여래장 본자공적 병불정유일법고 경운 <제불국토 역복개공> 약언불도 시수학이득 여차견해 전무교섭 혹작일기일경 양미동목 기대상당 편도 <계회야> <득증오선이야> 홀봉일인 불해편도 도무소지 대타약득도리 심중 편환희 약피타절복 불여타 편즉심회추□ 여차심의학선 유하교섭 임여회득소허도리 기득개심소법 선도 총몰교섭 소이 달마면벽 자불령인 유견처 고 운 <망기 시불도 분별 시마경> 차성 종여미시 역불실 오시 역불득 천진자성 본무미오 진십방허공계 원래시아일심체 종여동용조작 기리허공 허공 본래무대무소 무루무위 무미무오 요요견무일물 역무인역무불 절섬호적량 시무의의 무점철 일도청류 시자성무생법인 하유의의 진불 무구 불해설법 진청 무이 기수문호 진중

18. 유행(유행) 및 기연(기연)

대사는 본시 민현(민현) 땅의 어른이시다. 어려서 본주(본주) 땅 황벽산으로 출가하셨다. 스님의 이마 사이에 솟아 오른 점은 구슬과도 같았고, 음성과 말씨는 낭랑하고 부드러웠으며, 뜻을 깊고도 담박하셨다. 뒷날 천태산(천태산)에 노니시다가 한 스님을 만났는데, 처음인데도 오래 사귄 사람 같았다. 이윽고 함께 길을 가다가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난 곳에 이르렀다. 그때 대사께서는 석장을 짚고 멈추시니, 그 스님이 대사를 모시고 건너려고 하자,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형씨가 먼저 건너시오.”
그러자 그 스님은 곧 삿갓을 물 위에 띄우고 곧장 건너가 버렷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 어쩌다 저 나한 좀놈하고 짝을 했을까? 한 몽둥이로 때려죽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어떤 스님이 귀종(귀종)을 하직하는데 귀종이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제방에 다섯 맛의 선[오미선]을 배우러 갑니다.”
“제방은 다섯 맛의 선이지만 나의 이곳은 오직 한 맛의 선이라네.”
“어떤 것이 한 맛의 선입니까?”
그러자 귀종이 문득 후려쳤다. 그 스님이 소리쳤다.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귀종이 다르쳤다.
“말해 봐라, 말해봐라.”
그 스님이 입을 열려고 하자 귀종은 또 몽둥이를 내리쳤다. 그 스님이 뒤에 대사의 회하에 이르자 대사께서 물었다.
“어느 곳에서 오는가?”
“귀종에서 옵니다.”
“귀종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그 스님이 앞날의 이야기를 그대로 말씀드리니, 대사께서는 곧 바로 법좌에 올라가 그 인연을 들어서 말씀하셨다.
“마조스님께서 84명의 선지식을 배출하긴 했으나, 질문을 당하면 모두가 똥이나 뻘뻘 싸는 형편들인데, 그래도 귀종이 조금 나은 편이다.”

대사께서 염관(염관 ?-842)의 회하에 있을 때에 대중(대중) 황제는 사미승으로 있었다. 대사께서 법당에서 예불을 드리는데 그 사미승이 말하였다.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으며, 대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는 것이어늘, 장로께서는 예배하시어 무엇을 구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며 대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면서, 늘 이같이 예배하느니라.”
“예배는 해서 무얼 하시렵니까?”
그러자 대사께서 갑자기 사미승의 뺨을 올려치니 그 사미승은 “몹시 거친 사람이군”하고 대꾸했다. 그러자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에 무슨 도리가 있길래 네가 감히 거칠다느니 섬세하다느니 뇌까리느냐!”하고 뒤따라 또 뺨을 붙이니, 사미는 도망가 버렸다.

대사께서 제방을 행각하실 적에 남전(남천 734-843)에 이르렀다. 하루는 점심 공양을 할 때 발우를 들고 남전의 자리에 가서 앉으셨다. 남전이 내려와 보고는 대사께 물었다.
“장로께서는 어느 시절에 도를 행하였오?”
“위음왕 부처님 이전부터입니다.”
“그렇다면 내 손자뻘이 되는구먼.”
그러자 대사는 곧바로 내려와 버렸다.
또 어느 날 대사께서 외출하려고 할 때에 남전이 말하였다.
“이만큼 커다란 몸집에 조금 큰 삿갓을 쓰셨군!”
“삼천대천 세계가 모두 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 남전의 대답이로다.”
그러자 대사는 삿갓을 쓰고 곧 가버렸다.

또 하루는 대사가 차당(차당)에 앉아 있는데 남전이 내려와 물었다.
“정과 혜를 함께 배워서 부처님의 성품을 밝게 본다 하는데, 이 뜻이 무엇이오?”
“하루 종일 한 물건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레 바로 장로 견해인가요?”
“부끄럽습니다.”
“장물[장수] 값은 그만두어도 짚신 값은 어디서 받으란 말이오?”그러자 대사는 문득 쉬어 버렸다.
뒷날 위산(사산 771-853)이 이 대화를 가지고 앙산(앙산 803-887)에게 물었다.
“황벽이 남전을 당해내지 못한 게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황벽에게는 범을 사로잡는 기틀이 있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대의 보는 바가 그만큼 장하구나!”

하루는 대중이 운력을 하는데 남전이 대사께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채소 다듬으러 갑니다.”
“무엇으로 다듬는가?”
대사가 칼을 일으켜 세우자 남전이 말하였다.
“그저 손님 노릇만 할 줄 알지 주인 노릇은 할 줄 모르는군.”
그러자 대사는 세 번을 내리 두드렸다.

하루는 새로 온 스님 다섯 명이 동시에 서로 보게 되었다. 그 중에서 한 스님만은 예배를 올리지 않고 그저 손으로 원상(원상)을 그리면서 서 있었다. 이것을 본 대사가 그에게 말씀하셨다.
“한 마리의 훌륭한 사냥개라고 말하는 줄 아느냐?”
“영양(영양)의 기운을 찾아왔습니다.”
“영양이란 기운이 없거늘 너는 어디서 찾겠느냐?”
“영양의 발자욱을 찾아 왔습니다.”
“영양은 발자욱이 없거늘 너는 어디서 찾겠느냐?”
“그렇다면 그것은 죽은 영양입니다.”
이 말을 듣자 대사는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았다. 이튿날 법좌에 올라 설법을 끝내고 물러나면서 물었다.
“어제 영양을 찾던 스님은 앞으로 나오너라.”
그 스님이 바로 나오자 대사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어제 너와 대화를 하다가 끝에 가서 미처 다하지 못한 말이 있는데, 어떤가?”
그 스님이 말이 없자 대사께서 말을 이었다.
“본분 납승(본분납승)인가 했더니, 그저 뜻이나 따지는 사문이로구나.”

대사께서는 일찍이 대중을 흩으시고, 홍주(홍주) 당의 개원사(개원사)에 머물고 계셨다. 이 때에 상공 배휴거사가 어느 날 절로 들어오다가 벽화를 보고 그 절 주지스님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그림입니까?”
“고승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고승들의 겉모습은 여기에 있지만, 고승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 절 주지스님이 아무런 대답을 못하자 배휴가 “이 곳에 선승은 없습니까?” 하고 물으니, “한 분이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상공은 마침내 대사를 청하여 뵙고, 전에 주지스님에게 물었던 일을 스님게 여쭈었다. 그러자 대사가 불렀다.
“배휴!”
“예!”
“어디에 있는고?”
상공은 이 말 끝에 깨치고 대사를 다시 청하여 개당설법을 하시게 하였다.

사 본시민중인 유어본주황벽산 출가 액간강기여주 음사랑윤 지의충담 후유천태 봉일승여구식 내동행 속□수폭창 사의장이지 기승 솔사동과 사운 청형선과 기승 즉부립어수상편과 사운 아각공개초자작대 회불일봉타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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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증산중재홍주개원사 배상공 일일입사행차 견벽화 내문사주 저화시십마 사주운 화고승 상공운 형영 재저이 고승 재십마처 사주무대 상공운 차간 막유선승마 사주운 유일인 상공수청사상견 내거전화문사 사소운 배휴 휴응낙 사운 재십마처 상공어언하유성 내재청사개당

19. 술찌꺼기 먹는 놈

대사는 이에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모조리 술찌꺼기나 먹는 놈들이다. 이처럼 행각을 한답시고 남들의 비웃음이나 사면서 모두 이렇게 안이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구나! 세월이 한 번 가면 언제 오늘이 또 오겠느냐? 이 큰 당나라 땅 안에 선사(선사)가 없음을 너희는 아느냐?”
이 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제방에서 지금 선사들이 세상에 나와 여러 대중들을 바로 이끌어 지도하시거늘, 어찌하여 스님께서는 선사가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내 말은 선(선)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라, 선사(선사)가 없다는 말이니라.”
뒷날 위산이 이 인연에 대해 앙산에게 물었다.
“그래 네 생각은 어떠냐?”
“거위왕이 젖을 고르는 솜씨는 본디 집오리 무리와는 다릅니다.”
그러자 위산이 말하기를, “이것은 참으로 가려내기 어렵느니라”고 했다.

상당운 여등제인 진시당주조한 여마행각 소살타인 총사여마용이 하처갱유금일 여환지대당국이 무선사마 시유승문 기여 제방 견금출세 광도령중 위십마 각도무선사 사운 불도무선 기도무사 후위산거차인연문앙산 운 의작마생 앙산운 아왕택유 소비압류 위산운 차실난변

20. 배휴의 헌시

어느 날 배상공이 불상 한 구를 대사 앞에 내밀면서 호궤(호궤)합장하며 말씀드렸다.
“청하옵건대 스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배휴!”
“예!”
“내 너에게 이름을 다 지어 주었노라.”
그러자 배상공은 곧 바로 절을 올렸다.
하루는 상공이 시(시) 한 수를 대사께 지어올리자 대사께서 받으시더니 그대로 깔고 앉아 버리면서 물었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몰라야만 조금은 낫다 하겠지만, 만약 종이와 먹으로써 형용하려 한다면 우리 선문(선문)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상공의 시가 이러하였다.

대사께서 심인을 전하신 이후로
이마에는 둥근 구슬 몸은 칠척 장신이로다.
석장을 걸어 두신 지 십년 촉나라 물가에서 쉬시고
부배(부배)에서 오늘날 장(장)의 물가를 건너왔네.
일천 무리의 용상대덕들은 높은 걸음걸이 뒤따르고
만리에 뻗친 향그런 꽃은 수승한 인연을 맺었도다.
스승으로 섬겨 제자 되고저 하오니
장차 법을 누구에게 부촉하시렵니까?

대사께서 대답하여 읊으셨다.
마음은 큰 바다와 같아 가이 없고
입으론 붉은 연꽃을 토하여 병든 몸 기르네.
비록 한 쌍의 일 없는 손이 있으나
한가한 사람에게 일찍이 공경히 읍(읍)한 적이 없었노라.

배상 일일 탁일존불어사전호궤운 청사안명 사소운 배휴 휴응낙 사운 여여안명경 상공편예배 상공 일일 상시일장 사접득편좌각 내문 회마 상공운 불회 사운 여마불회 유교사자 약형기묵 하유오종 시왈 자종대사전심인 액유원주칠척신 괘석십년서촉수 부배금일도장빈 천도용상 수고보 만리향화 결승인 원욕사사위제자 불지장법부하인 사답왈 심여대해무변제 구토홍연양병신 수유일쌍무사수 불증기읍등한인

21. 여래의 청정선

“도를 배우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잡된 학문과 모든 반연을 물리쳐야 한다. 그리하여 결정코 구하지도 말고 집착하지도 않아서, 아주 깊고 깊은 법을 듣더라도 맑은 바람이 귓가에 잠깐 스쳐지나간 듯이 여기어, 그것을 쫓아가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여래선(여래선)에 매우 깊숙히 들어가 참선을 한다는 생각마저도 내지 않는 것이다. 위로부터 역대의 조사들께서 오로지 한마음[일심]만을 전하셨다. 결코 두 법이 있을 수 없으니 마음이 그대로 부처임을 바르게 가르치신 것이다. 등각이니 묘각이니 하는 지위와 차례를 단박에 뛰어 넘어서 절대로 또 다른 생각으로 흘러들어가서는 안된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우리 선종의 가문에 비슷하게나마 들어오는 것이다. 나희 경망한[취차] 사람들이야 이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마음으로 헤아릴 때에는 그 헤아리는 마음의 마구니에 묶여 버리고, 한편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을 때에는 또 헤아리지 않는 마음의 마구니에 묶인다. 그렇다고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는 것도 아닐 때에는 또 역시 헤아리지 않는 것도 아닌 마음의 마구니에 묶인다. 그러므로 마구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마음에서 저절로 나온다’고 한 것이니라. 이것은 오직 신통없는 보살은 그 발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니라.
만약 언제든지 마음에 항상하다는 견해[상견]가 있으면 그것이 바로 상견외도(상견외도)이며, 만약 일체의 법은 공(공)하다고 관(관)하고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견해에 빠지면 그것이 바로 단견외도(단견외도)이다. 그러므로 ‘3계는 오직 마음이고 만법은 오직 식(식)이다[삼계유심 만법유식]’고 하는 것은 외도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한 말일 뿐이다. 만약 최고의 법신자리에서 본다면 그것은 3현(삼현), 10성(십성)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말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두 가지의 어리석음을 끊으셨는데, 하나는 미세하게 아는 어리석음이며 또 하나는 극히 미세하게 아는 어리석음이다. 그러니 부처님께서는 이미 이와 같으셨거늘, 다시 무슨 등각이니 묘각이니 하는 차례를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그저 밝음만을 추종하고 어둠을 싫어하며, 그저 깨우침만을 얻으려 하고 번뇌와 무명은 받으려 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부처님은 깨달은 분이고 중생들은 망념이 남아 있는 존재이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이렇게 생각하면 백천 겁이 지나도록 다만 6도에 계속 윤회하여 쉴 날이 없으리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의 본래 근원의 자성을 비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너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부처 또한 밝음도 아니요 중생 또한 어둠도 아니다. 왜냐하면 법에는 밝음도 어둠도 없기 때문이다. 부처라고 해서 또한 강하지도 않고 중생이라고 해서 약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법에는 강함도 약함도 없기 때문이다. 또 부처라고 해서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중생이라 해서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법에는 지혜로움도 어리석음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나타나서는 모두들 선을 안다고 말들 하지만 입을 벌리기만하면 그대로 병통이 생기고 만다. 그리하여 근본은 말하지 않고 지말만을 말하며, 미혹함은 말하지 않고 그저 깨달음만 말하며, 본체는 말하지 않고 작용만을 말하는데 제대로 말한 것이라고는 도무지 없다.
저 일체 법은 본래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금 또한 없는 것도 아니어서 반연이 생겼다고 해서 있는 것도 아니며 반연이 사라졌다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니다. 근본이라 할 만한 것이 있지 않으니, 근본은 근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마음 또한 마음이 아니니, 마음은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모양 또한 모양이 아니니, 모양은 모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법도 없고 본래 마음도 없어야만 비로소 마음이라 하는 마음법을 알게 된다’고 했다. 법은 곧 법이 아니요 법 아님이 곧 법이며, 법도 없고 법 아님도 없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마음이라 하는 마음법이니라.
홀연히 한 생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허깨비인 줄 분명히 알면 곧 과거의 부처님에게로 흘러들어 간다. 과거의 부처님은 또한 있지도 않고 미래의 부처님 또한 없지도 않다. 그렇다고 또한 미래의 부처님이라고 부르지도 못한다. 반면에 현재의 생각 생각이 일정하게 머물지 않으니 현재의 부처님이라고도 부르지 못한다. 부처님이라는 생각이 만약 일어날 때에, 그것을 두고 깨달은 것이라거나 혹은 미혹한 것이라든가, 또 이것은 좋은 것이거나 혹은 나쁜 것이라고 사량분별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문득 그것에 집착하여 끊어 버리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한 생각 갑자기 일어나면 수천 겹으로 자물쇠를 채우더라도 가둘 수가 없고, 수만발의 오랏줄로도 그것을 묶어 두지 못한다. 이미 이와 같은데 어찌 그것을 없애려고 하고 그치게 하겠는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의 이 아지랑이같은 의식이 어떻게 저 생각을 끊어 버려서, 아지랑이 같은 데다 비유하겠느냐. 너희가 가깝다고 말하면 시방세계를 두루 찾아도 구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멀다고 말하면, 볼 때에 단지 눈 앞에 있어서 쫓아가면 더더욱 멀리 가 버리며, 피하려 하면 또 쫓아와서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알라. 모든 법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여 그것을 근심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앞 생각이 범부이여, 뒷 생각이 성인이라는 말처럼 손을 뒤집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3승교(삼승교)의 종극(종극)이다. 그러나 우리 선종의 가르침에 의거하면 앞 생각 또한 범부가 아니고 뒷 생각 또한 성인이 아니며, 앞 생각이 부처가 아니고 뒷 생각이 중생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모든 빛깔이 부처님의 빛깔이며 모든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소리이다. 한 이치[이]를 들면 모든 이치가 다 그러하므로, 한 현상[사]을 보아 모든 현상을 보며, 한 마음을 보아 모든 마음을 보며, 한 도를 보아 모든 도를 보아서 모든 것이 도 아님이 없다. 또 한 티끌을 보아 시방세계의 산하대지를 보며, 한 방울의 물을 보아 시방세계에 있는 모든 성품의 물을 보며, 또한 일체의 법을 보아 일체의 마음을 본다. 모든 법이 본래 공(공)해서 마음은 없지도 않다. 없지 않음이 바로 묘하게 있는 것[묘유]이고, 있음[유] 또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있지 않음이 바로 있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참으로 공하면서 오묘하게 있음[진공묘유]이니라.
그렇다면 시방세계가 나의 ‘한마음’을 벗어나지 않으며, 티끌처럼 많은 모든 국토들이 나의 ‘한생각’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안과 밖을 구별하여 말하겠는가? 마치 벌꿀의 성질이 달콤해서 모든 꿀은 다 그러하므로, 이 꿀은 달고 저 꿀은 쓰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일이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허공이 안팎이 없으니 법의 성품도 또한 그러하며, 허공이 중간이 없으니 법의 성품도 그와 같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이 곧 부처요 부처가 그대로 중생이니라. 중생과 부처가 원래로 한 본체이며, 생사열반과 유위(유위), 무위(무위)가 원래 동일한 본체이며, 세간, 출세간과 나아가 6도, 4생과 산하대지와 유정, 무정이 또한 같은 한 본체이다. 이렇게 같다고 말하는 것은 이름과 모양이 역시 공(공)하여 있음도 공하고 없음도 공하여, 간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온 세계가 원래 똑같이 공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중생을 제도할 부처가 어디 있으며, 부처의 제도를 받을 중생이 어디에 있겠느냐? 무엇 때문에 이러한가? 만법의 자성이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저절로 그렇다는 견해를 내면 곧 자연외도(자연외도)에 떨어지고, 만약 나도 없고 나의 것[아소)도 없다는 견해를 내면 3현, 10성의 지위에 떨어진다. 너희들이 지금 어찌 한 자, 한 치를 가지고 끝없는 허공을 재려 하겠는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하기를 ‘법과 법이 서로 다닫지 못하나니, 법은 스스로 공적함으로써 그 자리에 본래부터 머물러 있으며, 그 자리에서 스스로 참되다’고 하였느니라.
몸이 공하므로 법이 공하다고 하며, 마음이 공하므로 성품이 공하다고 하며, 몸과 마음이 모두 공하므로 법의 성품이 공하다고 하며, 나아가 천 갈래로 다른 갖가지의 말들이 모두 다 너희의 본래 마음을 여의지 않은 것이다. 지금 보리와 열반, 진여와 불성, 이승과 보살 등을 말하는 것은 모두 누런 나뭇잎을 가리켜 돈이라 하는 주먹과 손바닥의 비유에 불과하다. 주먹을 펴면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의 모든 대중들이 모두 그 속에 아무 것도 없음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본래 한 물건도 없어서 3세(삼세) 역시 있는 바 없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단도직입으로 이러한 뜻을 알아야만 된다. 그러므로 달마스님께서 인도로부터 이 땅에 오시어 여러 나라를 거치셨지만, 오직 찾아 얻으신 것은 혜가스님 한 분뿐이었다. 혜가스님에게 마음의 도장[심인]을 은밀히 전하였으니, 이는 너희의 본래 마음에 새기신 것이다. 마음으로써 법에 새기며 법으로써 마음에 새겨서, 마음이 이미 이 같으며 법 또한 이 같아서 진제(진제)와 같고 법의 성품과 평등하다. 법의 성품이 공한 가운데 누가 수기(수기)하는 사람이며, 누가 부처가 되는 사람이여, 누가 법을 얻는 사람이겠는가?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보리란 몸으로 얻을 수 없으니, 몸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또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는데, 마음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그허다고 성품으로도 얻을 수 없으니, 성품은 곧 바로 근본원류의 자성이 청정한 부처[본원자성청정불]이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부처로써 다시 부처를 얻을 수 없으며, 모양이 없는 것으로 다시 모양이 없는 것을 얻을 수 없다. 또한 공함으로써 공함을 얻을 수 없고, 도로써 도를 얻을 수 없다. 본래 얻은 것이 없어서 얻은 것이 없음도 얻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얻을 만한 한 법도 없다’고 하신 것이다. 이는 다만 너희로 하여금 본 마음을 분명히 찾게 하고자 한 것이다.
당장 요달했을 때라도 요달한 모양을 얻을 수 없어서, 요달함이 없는 모양도, 요달하지 않음이 없는 모양도 또한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법을 얻은 사람은 곧 얻으나, 얻은 사람이라도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얻지 못한 사람이라도 또한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법을 예로부터 몇 사람이나 알 수 있었겠느냐? 그러므로 말하기를 ‘천하에 자기를 잊은 사람이 몇이더냐?’고 하였다. 지금 한 기틀, 한 경계, 한 경전, 한 가르침, 한 세대, 한 시기, 한 이름, 한 글자를 6근의 문 앞에서 알 수 있다면, 꼭두각시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한 이름, 한 모양 위에서 알음알이를 내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온 시방세계를 다 찾는다 해도 이런 사람은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노라. 그와 버금갈 만한 사람이 둘도 없으므로 조사의 자리를 이으며, 또한 부처님의 종자라고 일컫나니, 순수하여 전혀 잡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왕이 부처를 이룰 때에 왕자도 역시 따라서 출가한다’고 했는데, 이 뜻을 알기가 매우 어렵느니라. 다만 너희에게 아무 것도 찾지 말도록 할 뿐이니, 찾으면 곧 잃어버린다.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산 위에서 한 번 소리를 질러 메아리가 울리면 곧장 산 아래로 달려 가지만 끝내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거기서 또 한 번 소리를 지르자 산 위에서 메아리가 울리며, 그는 다시 산 위로 달려 가는 것과 같다. 이렇게 천생만겁을 소리를 찾고 메아리를 좇는 사람일 뿐이어서 허망하게 생사에 유랑하는 자이니라. 만약 소리가 없으면 메아리도 생기지 않는다. 열반이란 들음도 앎도 없고 소리도 없어서 자취도 발자욱도 모두 끊긴 것이다. 만약 이와 같다면 겨우 조사의 방 근처에 인접한 것이라 하겠다.”

부학도자 선수병각잡학제연 결정불저 문심심법 흡사청풍계이 별연이과 갱불추심 시위심심입여래선 이생선상 종상조사 유전일심 갱무이법 지심시불 돈초등묘이각지표 결정불류지제이념 시사입아종문 여사지법 여취차인 도저리 의작마생학 소이도 의심시 피의심마박 비의심시 우피비의심마박 비비의심시 우피비비의심마박 마비외래 출자니심 유유무신통보살 족적 불가심 약이일절시중 심유상견 즉시상견외도 약관일절법공 작공견자 즉시단견외도 소이 삼계유심 만법유식 차유시대외도사견인설 약설법신이위극과 차대삼현십성인언 고 불단이우 일자 미세소지우 이자 극미세소지우 불기여시 갱설십마등묘이각래 소이 일절인 단욕향명 불욕향암 단욕구오 불수번뇌무명 편도 불시각 중생시망 약작여시견해 백겁천생 윤회육도 갱무단절 하이고 위방제불본원자성고 타분명향니도 불차불명 중생차불암 법무명암고 불차불강 중생차불약 법무강약고 불차불지 중생차불우 법무우지고 시니출두 총도해선 개저구 편병발 불설본 기설말 불설미 기설오 불설체 기설용 총무니화론처 타일절법 차본불유 금역불무 연기불유 연멸불무 본역불유 본비본고 심역불심 심비심고 상역비상 상비상고 소이도무법무본심 시해심심법 법즉비법 비법즉법 무법무비법 고시심심법 홀연별기일념 요지여환여화 즉류입과거불 과거불 차불유 미래불 차불무 우차불환작미래불 현재념념불주 불환작현재불 불약기시 즉불의타시각시미 시선시악 첩불득집체타단절타 여일념별기 천중관쇄쇄불득 만장승색색타불주 기약여시 쟁합편의멸타지타 분명향니도 이염식 니작마생의단타 유여양염 니도근 십방세계구불가득 시도원 간시 기재목전 니의진타 타우전원거 니시피타 타우래축니 취우불득 사우불득 기약여차 고지일절법성 자이 즉불용수타려타 여언전념시범 후념시성 여수번복일반 차시삼승교지극야 거아선종중 전념차불시범 후념차불시성 전념불시불 후념불시중생 소이일절색 시불색 일절성 시불성 거저일리 일절리개연 견일사 견일절사 견일심 견일절심 견일도 견일절도 일절처무불시도 견일진 십방세계산하대지개연 견일적수 즉견십방세계일절성수 우견일절법 즉견일절심 일절법본공 심즉불무 불무즉묘유 유역불유 불유즉유 즉진공묘유 기약여시 십방세계불출아지일심 일절미진국토불출아지일념 약연 설십마내지여외 여밀성첨 일절밀개연 불가도저개밀첨 여저고야 하처유여마사 소이도허공 무내외 법성 자이 허공 무중간 법성 자이 고중생즉불 불즉중생 중생여불 원동일체 생사열반 유위무위 원동일체 세간출세간 내지육도사생 산하대지 유성무성 역동일체 언동자 명상 역공 유역공무역공 진항사세계 원시일공 기약여차 하처유불도중생 하처유중생수불도 하고여차 만법지성 자이고 약작자연견 즉락자연외도 약작무아무아소견 타재삼현십성위중 니여금 운하장일척일촌 편의량도허공 타분명향여도 법법 불상도 법자적고 당처자주 당처자진 이신공고 명법공 이심공고 명성공 신심 총공고 명법성공 내지천도이설 개불리니지본심 여금 설보제열반 진여불성 이승보살자 개지엽위황금 권장지설 약야전수지시 일절대중 약천약인 개견장중 도무일물 소이도 <본래무일물 하처유진애> 본기무물 삼제 본무소유 고학도인 단도직입 수견저개의 시득 고달마대사종서천래지차토 경다소국토 기멱득가대사일인 밀전심인 인니본심 이심인법 이법인심 심기여차 법역여차 동진제등법성 법성공중 수시수기인 수시성불인 수시득법인 타분명향니도 보제자 불가이신득 신무상고 불가이심득 심무상고 불가이성득 성즉편시본원자성천진불고 불가이불갱득불 불가이무상갱득무상 불가이공갱득공 불가이도갱득도 본무소득 무득역불가득 소이도 무일법가득 기교니료취본심 당하요시 불득요상 무요무불요상 역불가득 여차지법 득자즉득 득자 불자각지 불득자 역불자각지 여차지법 종상사래 유기인 득지 소이도 <천하 망기자유기인> 여금 어일기일경 일경일교 일세일시 일명일자 육근문전 령득 여기관목인 하별 홀유일인출래 불어일명일상상 작해자 아설차인 진십방세계멱저개인 불가득 이무제이인고 계어조위 역운석종 무잡순일 고언 <왕약성불시 왕자역수출가> 차의대난지 기교니막멱 멱편실각 지치인 산상규일성 향종곡출 편주하산진 급심멱불득 우규일성 출상향우응 역주상산상진 여시천생만겁 기시심성축향인 허생랑사한 여약무성즉무향 열반자 무문무지무성 절적절종 약득여시 초여조사린방야

22. 양의 뿔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임금님의 창고 안에 이런 칼이 전혀 없다’고 하셨는데, 바라옵건대 그 뜻을 가르쳐 주십시오.”
“임금님의 창고란 바로 허공의 성품[허공성]이니라. 그것은 시방의 허공세계를 받아들여 모두가 다 너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다. 또 다른 말로는 임금님의 창고를 허공장보살이라고도 일컫는다. 네 만약 그것에 대해 있고 없음과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음을 말한다면, 모두가 양의 뿔이 되느니라. 양의 뿔이란 바로 네가 구하여 찾는 것이니라.”

배상공이 물었다.
“임금님의 창고 속에는 진짜 칼이 있습니까?”
“그것도 역시 양의 뿔이니라.”
“임금님의 창고 속에 애초부터 진짜 칼이 없다면, 왕자가 그 창고에서 진짜 칼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나간 것이어늘, 어찌하여 스님께서는 그저 없다고만 말씀하십니까?”
“칼을 가지고 나갔다는 것은 여래의 심부름꾼에 비유한 것이다. 네 만약 임금님의 창고 속에서 왕자가 진짜 칼을 가지고 나갔다고 말한다면, 창고 안에 있는 허공도 함께 따라 갔을 것이니라. 그러나 본원의 허공성(허공성)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이 무슨 말이겠느냐? 설령 네가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양의 뿔이니라.”

문 여왕고장내 도무여시도 복원회시 사운 왕고장자 즉허공성야 능섭십방허공세계 개총불출니심 역위지허공장보살 니약도시유시무 비유비무 총성양각 양각자 즉니구멱자야
문 왕고장중유진도부 사운 차역시양각 운 약왕고장중 본무진도 하고운왕자지왕고중진도 출지이국 하독언무 사운 지도출자 차유여래사자 니약언왕자지왕고중진도출거자 고중응공거야 본원허공성 불가피이인장거 시십마어 설니유자 개명양각

23. 여래의 심부름꾼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심인(심인)을 받았으니, 말을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다.”
“만약 말 전한 사람이라면 양의 뿔을 여의지 못한 사람이겠군요.”
“가섭존자는 스스로 본래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양의 뿔이 아니니라. 만약 여래의 마음을 깨달으면 곧 여래의 뜻을 알게 되며, 여래의 겉모습을 보는 사람은 곧 여래의 심부름꾼에 속하는 자로서 말 전하는 사람이 되느니라. 아난존자가 20여년 동안 부처님의 시자로 있었으면서도 다만 여래의 겉모양만 보았기 때문에 부처님으로부터 ‘세간을 구제하는 것을 보는 자는 양의 뿔을 벗어나지 못하니라’는 꾸지람을 들었다.”

문 가섭수불심인 득위전어인부 사운 시 운 약시전어인 응불이득양각 사운 가섭 자령득본심 소이불시양각 약이령득여래심 견여래의 견여래색상자 즉속여래사 위전어인 소이아난 위시자이십년 단견여래색상 소이피불가운 <유관구세자 불능이득양각>

24. 무분별지는 얻을 수 없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문수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칼을 든 것은 어찌 된 까닭입니까?”
“500명의 보살들이 전생을 아는 지혜를 얻어서 지난 과거 생의 업장을 볼 수 있었다. 500이란 너의 오음으로 된 몸이니라. 이 숙명을 보는 장애 때문에 부처가 되기를 구하고 보살, 열반을 구하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문수보살이 지혜로써 헤아리는 칼을 가지고 부처를 봄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베어 버렸다. 그래서 ‘아주 잘 베어 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칼입니까?”
“헤아리는 마음이 칼이다.”
“헤아리는 마음이 이미 칼이라고 한다면 부처를 봄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베어 버린 것인데, 그렇다면 능히 베는 그 마음은 어떻게 없앨 수 있습니까?”
“너의 분별이 없는 지혜로써 보는 것이 있다고 분별하는 마음을 베느니라.”
“부처를 봄이 있다느니 혹은 부처를 구함이 있다느니 하는 마음을 내는 경우에는 분별이 없는 지혜의 칼로써 베는 것이지만, 그 지혜의 칼이 있는 것은 어찌 해야 합니까?”
“분별 없는 지혜로써 있다는 견해[유견]와 없다는 견해[무견]를 베어 버리면, 분별 없는 지혜도 또한 얻을 수 없느니라.”
“지혜로써 지혜를 자르지 말며, 칼로써 칼을 자르지 마소서.”
“칼이 스스로 칼을 베어서 칼과 칼이 서로 베어지면, 칼 또한 얻을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혜가 스스로 지혜를 베어서, 지혜와 지혜가 서로 베어지면 지혜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어미와 자식이 함께 죽는 것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

문 문수집검어구담전자 여하 사운 오백보살 득숙명지 견과거생업장 오백자 즉니오음신 시 이견차숙명장고 구불구보살열반 소이문수장지해검 해차유견불심고 고언니선해 운 하자시검 사운 해심 시검 운 해심기시검 단차유견불심 기여능단견심 하능제득 사운 환장니무분별지 단차유견분별심 운 여작유견유구불심 장무분별지검단 쟁내유지검재하 사운 약무분별지 해유견무견 무분별지 역불가득 운 불가이지갱단지 불가이검갱단검 사운 검자해검 검검상해 즉검역불가득 지자해지 지지상해 즉지역불가득 모자구상 역복여시

25. 견성이란?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자성을 보는 것[견성]이란 무엇입니까?”
“성품이 곧 보는 것이요, 보는 것이 곧 성품이니, 성품으로써 다시 성품을 보지 말라. 또 들음이 그대로 성품이니 성품으로서 다시 성품을 들으려 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성품이라는 견해를 내며, 능히 성품을 듣고 능히 성품을 보아서 문득 같다거나 다르다는 견해를 일으킨다. 저 경에서 분명히 말하기를, ‘볼 수 있는 바는 다시 보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너는 어찌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얹겠느냐? 경에서 분명히 말하기를, ‘마치 소반 위에 구슬을 흩어 놓는 것과 같아서, 큰 구슬은 크게 둥글며, 작은 구슬은 작게 둥글어서 각각의 구슬끼리 알지 못하며, 각각 서로를 방해 하지 않아서, 일어날 때에 <내가 일어난다> 말하지 않으며, 없어질 때에 <내가 없어진다>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4생과 6도가 이렇지 않은 경우가 없느니라.
또 중생이 부처를 보지 못하고 부처가 중생을 보지 못하며, 4과(사과)가 4향(사향)을 보지 못하고 4향이 4과를 보지 못하며, 3현(삼현), 10성(십성)이 등각과 묘각을 보지 못하고 등각과 묘각이 3현, 10성을 보지 못하며, 나아가 물이 불을 보지 못하고 불이 물을 보지 못하며, 땅이 바람을 보지 못하고 바람이 땅을 보지 못하며, 중생이 법계에 들지 못하고 부처가 법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법의 성품은 가고 옴이 없으며 능히 보는 것도 보여지는 대상도 없다. 능히 이와 같을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본다느니 혹은 나는 듣는다느니 말하겠느냐?
무엇보다도 선지식의 회하에서 깨닫도록 하여라. 선지식이 나에게 법을 설하시며,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셔서 중생들에게 법을 설해 주신다. 그러나 가전연은 다만 생멸하는 마음을 가지고 실상(실상)의 법을 전하였기 때문에 유마거사에게 꾸중을 들었느니라. 분명히 말하건대, 어떤 법이라도 본래로 속박하지 않는데 어찌 풀어제칠 필요가 있겠으며, 또 본래 물들지도 않는데 굳이 맑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말하기를, ‘모든 법의 참다운 모양이 이와 같거늘 어찌 말로써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네가 지금 다만 시비하는 마음, 염정(염정)을 따지는 마음을 내고 하나하나마다 알음알이를 배워 얻어서, 온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결정코 취하려고 하는 것을 곧 보게 되는데, 도대체 누가 마음의 눈을 갖추었으며,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말해 보아라. 만약 이렇게 한다면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현격하게 다른 것이니, 다시 무슨 견성(견성)을 논하겠느냐?”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이미 성품이 그대로 보는 것이며 보는 것이 그대로 성품이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성품이 본래 장애가 없어야 하며 제한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하여 물건이 가로막히면 곧 보지 못하고, 또 허공이 가운데서 가까우면 보고 멀어지면 보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이것은 네가 망령되게 다르다는 견해를 낸 것이니라. 만약 물건이 앞에 가로막히면 보지 못하고 그것이 없어지면 본다고 생각하여, 성품을 가로막는 장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잘못이니라. 성품이란 보는 것도 보지 않는 것도 아니며, 법 또한 보는 것도 보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만약 견성한 사람이라면 어느 곳인들 나의 본래 성품이 아님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6도, 4생과 산하 대지가 모두 내 성품의 맑고 본체 그대로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물질[색]을 보는 것이 곧 마음[심]을 보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물질과 마음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모양에 집착하여 보고 듣고 느끼고 알아서 눈 앞의 물건을 없애고 나서야 비로소 보려고 하는 자들은 2승(이승)의 무리 가운데 떨어진, 의지하여 통하려는 견해이니라. 허공 가운데서 가까우면 보고 멀면 볼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외도에 떨어지고 만다. 분명히 말하노니,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것이니, 가까우면서도 볼 수 없는 것이 중생들의 성품이니라. 가까이 있어도 오히려 그렇거늘, 멀어서 볼 수 없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이겠느냐?”

문 여하시견성 사운 성즉시견 견즉시성 불가이성갱견성 문즉시성 불가이성갱문성 기니작성견 능문능견성 편유일이법생 타분명도 소가견자 불가갱견 니운하두상갱저두 타분명도 여반중산주 대자대원 소자소원 각각불상지 각각불상애 기시 불언아기 멸시 불언아멸 소이 사생육도 미유불여시 차중생 불견불 불불견중생 사과불견사향 사향불견사과 삼현십성 불견등묘이각 등묘이각 불견삼현십성 내지수불견화 화불견수 지불견풍 풍불견지 중생 불입법계 불불출법계 소이법성 무거래 무능소견 능여차 인십마 도아견아문 어선지식처 득계오 선지식 여아설법 제불 출세 여중생설법 가전연 기위이생멸심 전실상법 피정명가책 분명도 일절법 본래무박 하용해타 본래불염 하용정타 고운실상 여시 기가설호 여금기성시비심염정심 학득일지일해 요천하행 견인편의정당취 수유심안 수강수약 약야여차 천지현수 갱설십마견성
문 기언성즉견견즉성 기여성자무장애 무제한 운하격물즉불견 우어허공중 근즉견원즉불견자 여하 사운 차시니망생이견 약언격물불견 무물언견 편위성유격애자 전무교섭 성차비견비불견 법역비견비불견 약견성인 하처불시아지본성 소이 육도사생 산하대지 총시아지성정명체 고운견색편견심 색심 불이고 기위취상작견문각지 거각전물 시의득견자 즉타이승인중의통견해야 허공중 근칙견원칙불견 차시외도중수 분명도비내역비외 비근역비원 근이불가견자 만물지성야 근상불가견 갱도원이불가견 유십마의지

26. 한 생각 일지 않으면 곧 보리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소생(소생)이 알지 못하겠사오니, 큰스님께서는 가르쳐주십시오.”
“내게는 한 물건도 없어서, 이제까지 남들에게 한 물건도 전혀 가르켜 준 바가 없다. 너는 한량없는 세월 전부터 그저 남에게 가르침을 받아서 이해하려고만 하니, 이야말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왕의 난[왕난]에 빠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는 다만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생각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받음이 없는 몸이며, 한 생각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생각 없는 몸이니라. 절대로 인위적인 조작에 휩쓸리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행함이 없는 몸이며, 요리조리 따지고 분별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식(식)이 없는 몸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달리 한 생각 일으키기만 하면 그대로 12인연에 빠져들어서, 무명이 행을 연하여 서로 인(인)이 되기도 하고 또 과(과)가 되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늙음과 죽음이 서로서로 인이 되기도 하고 과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선재동자가 110곳에서 선지식을 구했지만, 다만 12인연 속에서만 구하다가 최후에 미륵보살을 만났었다. 그러자 미륵보살이 문수보살을 찾아뵈라고 다시 가르켜 주었다. 문수보살이란 다름 아닌 바로 너의 근본 무명이니라.
만약 마음과 마음이 각기 달라서 그저 밖으로만 선지식을 구하는 자는, 한 생각이 갓 일어났다가는 꺼지고 꺼졌다가는 또 생긴다. 그러므로 너희 비구들도 생, 노, 병, 사 하기도 하여 인과의 값을 치뤄 오면서 마침내는 다섯 갈래[오취)의 생멸을 당한다. 다섯 갈래란 5음(오음)이니 한 생각 일어나지 않으면 곧 18계(계)가 공하여 이 몸 그대로가 보리의 꽃 열매이며, 또한 이 마음이 그대로 신령스런 지혜이며 신령스런 보리좌이니라. 그러나 만약 집착하는 바가 있으면 이 몸은 곧 송장이 되고, 마음은 송장 지키는 귀신이 되고 만다.”

문 학인 불회 화상 여하지시 사운 아무일물 종래 불증장일물여인 니무시이래 기위피인지시 멱계멱회 차가불시제자여사 구함왕난 니단지일념불수 즉시무수신 일념불상 즉시무상신 결정불천류조작 즉시무행신 막사량복도분별 즉시무식신 니여금 재별기일념 즉입십이인연 무명연행 역인역과 내지로사역인역과 고 선재동자일백일십처구선지식 기향십이인연중구 최후 견미륵 미륵 각지견문수 문수자 즉여본지무명 약심심별이 향외구선지식자 일념재생즉멸 재멸우생 소이 여등비구 역생역노 역병역사 수인답과이래 즉오취지생멸 오취자 오음야 일념 불기 즉십팔계공 즉시편시보제화과 즉심편시영지 역운영대 약유소주저 즉신위사시 역운수사시귀

27. 둘 아닌 법문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유마거사가 잠자코 있으니 문수보살이 찬탄하기를 ‘이것이야말로 둘 아닌 법문[불이법문]에 드는 것이로다’했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둘 아닌 법문이란 바로 너의 본 마음이니라. 그러니 법을 설했느니 혹은 설하지 않았느니 하는 것은 기멸(기멸)이 있는 것이다. 말 없을 때에는 나타내 보인 것이 없으므로 문수보살이 찬탄한 것이니라.”
“유마거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소리가 단멸된 것이 아닙니까?”
“말이 곧 침묵이고 침묵이 그대로 말이다. 말과 침묵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소리의 실제 성품도 역시 단멸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문수보살이 본래 들음[본문]도 역시 단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일찌기 말하지 않은 때가 없다’고 하신 것은 여래의 말씀이 곧 법이요 법이 곧 말씀이니, 법과 말씀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나아가 보신, 화신, 보살, 성문과 산하대지와 물, 새, 수풀이 일시에 법을 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도 설법이고 침묵도 설법이어서, 종일 설법하나 일찍이 설한 바가 없다. 이미 이와 같다면 말없음으로서 근본을 삼느니라.”

문 정명 묵연 문수찬탄운시진입불이법문 여하 사운 불이법문 즉니본심야 설여불설 즉유기멸 무언설시 무소현시고 문수찬탄 운 정명 불설 성유단멸부 사운 어즉묵묵즉어 어묵불이고 운성지실성 역무단멸 문수본문 역무단멸 소이여래상설 미증유불설시 여래설즉시법 법즉시설 법설불이고 내지보화이신보살성문 산하대지 수조수림 일시설법 소이어역설묵역설 종일설이미상설 기약여시 단이묵위본

28. 한 마음의 법 가운데서 방편으로 장엄하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성문이 3계에서는 모습을 감추지만, 보리에 있어 감추지 못하는 까닭은 어찌된 것입니까?”
“여기서 말한 모습이란 바탕이니라. 성문들이 다만 3계의 견도혹(견도혹)과 수도혹(수도혹)을 끊을 수 있어 이미 번뇌를 여의긴 하였으나, 보리에 있어서는 모습을 감추지 못한 까닭이니라. 그래서 보리 가운데서 마왕에게 붙들리어 숲 속에 앉아 있으면서, 도리어 보리를 미세하게 본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그런데 보살들은 3계와 보리에 있어서 결정코 버리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느니라. 취하지 않으므로 7대(칠대)가운데서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하고, 버리지않으므로 외도, 마구니가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다. 네 다만 한 법에라도 집착하려 하면 흔적[인자]이 벌써 생기게 된다. 있음[유]에다 도장을 찍으면 곧 6도, 4생의 무늬가 나오고, 공(공)에다 도장을 찍으면 곧 모양 없는 무늬가 나타나느니라. 만약 모든 사물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이 도장은 허공과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어서, 공(공)이 본래 공이 아니고 도장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닌 줄을 다만 알지니라. 시방 허공 세계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심은 번갯불을 보는 것과 같으며, 꿈틀거리는 모든 벌레를 보는 것은 메아리와 마찬가지이며, 시방의 셀 수 없는 많은 국토를 보는 것은 흡사 바다 가운데 한 방울 물과 같은 것이다. 매우 기폭 깊은 법문을 듣더라도 허깨비와 같아서,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으며, 법과 법이 서로 다르지 않고, 나아가 천만 가지의 경론(경론)이 오로지 너의 한 마음 때문이니라. 모든 모양을 결코 취하지 않으므로, 말하기를 ‘이와 같은 한 마음 속에서 방편으로 부지런히 장엄한다’고 하였느니라.”

문 성문인 장형어삼계 불능장어보제자 여하 사운 형자 질야 성문인 단능단삼계견수 이이번뇌 불능장어보제 고 환피마왕어보제중착득 어림중연좌 환성미세견보제심야 보살인 이어삼계보제 결정불사불취 부취고 칠대중멱타불득 불사고 외마역멱타불득 여단의저일법 인자조성야 인저유 즉육도사생문출 인저공 즉무상문현 여금 단지결정불인일절물 차인 위허공불일불이 공본불공 인본불유 십방허공세계제불출세 여견전광일반 관일절준동함령 여향일반 견십방미진국토 흡사해중일적수상사 문일절심심법 여환여화 심심불이 법법불이내지천경만론 기위니지일심 약능불취일절상고 언 <여시일심중 방편근장엄>

29. 인욕선인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내가 옛날 가리왕에게 몸뚱이가 토막토막 잘리었다’는 경우는 어떤 것입니까?”
“선인(선인)이란 곧 너의 마음이며, 가리왕이란 구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이니라. 그리고 왕위를 지키지 않는다고 함은 이로움을 탐하는 마음이니라. 그런데 요사이 공부하는 이들이 덕과 공을 쌓지는 않고, 보는 것마다 배워서 알려고 하니 가리왕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물질을 볼 때는 선인의 눈을 멀게 하고, 소리를 들을 때는 선인의 귀를 먹게 한다. 나아가 무엇을 느껴 알 때에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마디마디 갈기갈기 찢겨진다고 한 것이니라.”
“선인이 참을 때는 마디마디 갈기갈기 찢김이 없어서, 한 마음으로 참았느니 혹은 참지 않앗느니 하는 말은 가당치 않겠습니다.”
“네가 남이 없는 견해[무생견]을 내어서, 인욕을 닦는 견해거나 구할 것이 없다는 견해를 내는 것은 모두 손상을 주는 것이니라.”
“선인도 몸을 잘리울 때 아품을 느낍니까? 만약 이런 가운데 고통을 받는 사람이 없다면 누가 고툥을 받습니까?”
“네가 이미 고통받을 것이 없다면 나타나서 도대체 무엇을 찾는 것이냐?”

문 여아석위가이왕할절신체여하 사운 선인자 즉시니심 가리왕 호구야 불수왕위 위지탐리 여금학인 불적공루덕 견자편의학 여가리왕하별 여견색시 괴각선인안 문성시 괴각선인이 내지각지시 역복여시 환작절절지해 운 기여선인 인시 불합갱유절절지해 불가일심인일심불인야 사운 니작무생견 인욕해무구해 총시상손 운 선인 피할시 환지통부 우운차중무수자 시수수통 사운 니기불통 출두래 멱개심마

30. 한 법도 얻을 수 없음이 곧 수기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연등부처님이 수기하신 때는 오백세(오백세) 이내입니까, 오백세 밖입니까?”
“오백세 이내에 수기를 받을 수 없느니라. 이른바 수기라 하는것은 너의 근본을 결정코 잊어 버리지 않아서, 하염있는 법도 잃지 않고 보리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세간과 세간 아님을 모두 요달했기 때문에 오백세 밖을 벗어나서 따로 수기를 얻을 수 없고, 또한 오백세 이내에도 수기를 얻지 못한다.”
“세간 3제(삼제)의 모양을 요달할 수 없습니까?”
“한 법도 얻을 수 없느니라.”
“그런데 무엇 때문에 경(경)에서 오백세(오백세)를 지난다고 자주 말씀하시어, 앞뒤로 시간을 길게 말씀하셨습니까?”
“오백세(오백세)가 길로 멀어서 오히려 아직은 선인(선인)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연등부처님께서 수기하실 때는 실로 얻었다할 작은 법도 없느니라.”

문 연등불수기 위재오백세중 오백세외 사운 오백세중 불득수기 소언수기자 니본결정불망 불실유위 불취보제 단이요세비세 역불출오백세외별득수기 역불어오백세중득수기 운 요세삼제상 불가득이부 사운 무일법가득 운 하고 언빈경오백세 전후극시장 사운 오백세장원 당지유시선인 고 연등수기시 실무소법가득

31. 법신은 얻을 수 없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교(교) 가운데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억겁 동안 전도된 생각을 녹이어서, 3대 아승기 겁을 거치지 않고 법신을 얻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만약 3대 아승기의 헤아릴 수 없는 겁을 통하여 수행을 함으로서 증득한 바가 있는 자는, 간지스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겁이 지난다 하더라도 깨닫지 못한다. 만약 한 찰나 사이에 법신을 획득하여 곧바로 분명하게 깨달아 성품을 보는 것은 오히려 3승교(삼승교)의 극치를 이룬 말씀이다. 왜냐하면 가히 얻을 수 있는 법신을 보기 때문에 모두가 불요의교(불요의교)에 속하는 것이니라.”

문 교중 운쇄아억겁전도상 불역승기획법신자 여하
사운 약이삼무수겁수행 유소증득자 진항사겁불득 약어일찰나중획득법신 직요견성자 유시삼승교지극담야 하이고 이견법신가획고 개속불요의교중수

32. 마셔보아야 물맛을 안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법을 보고 단박에 깨달은 사람은 조사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조사의 뜻은 허공 밖을 벗어났느니라.”
“그러면 한계가 있습니까?”
“한계가 없느니라. 이는 모두 일정한 숫자로 헤아리는 대대(대대)하는 법이니라.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한량이 있지도 않고 한량이 없음도 아니며 한량이 있고 없음이 아님도 아니어서, 대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하였다. 너희 요즘 배우는 사람들이 3승교 밖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는데, 어찌 선사라 부를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겠다. 으뜸으로 선을 수행하는 사람일진댄, 함부로 망령되이 다른 견해를 내지 말라. 마치 어떤 사람이 물을 마셔보면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다. 움직이거나 머물러 있거나 한 찰나 사이에 생각생각이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다면 윤회를 면치 못하느니라.”

문 견법돈요자 견조사의부 사운 <조사심출허공외> 운 유한제부 사운 유무한제 차개수량대대지법 조사운 <차비유한량 비무한량 비비유무한량 이절대고> 니여금학자 미능출득삼승교외 쟁환작선사 분명향여도 일등학선 막취차망생이견 여인음수 냉난 자지 일행일주 일찰나간 념념불이 약불여시 불면윤회

33. 참된 사리(사리)는 볼 수 없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부처님의 몸은 하염이 없기 때문에 모든 숫자적인 개념으로 한정할 수가 없거늘, 어찌하여 부처님 몸의 사리가 여덟섬 너말이 됩니까?”
“네가 이런 견해를 낸다면, 그저 껍데기 사리만 볼 뿐 참된 사리는 보질 못하느니라.”
“사리가 본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노력하여 얻은 결과입니까?”
“본래 있는 것도 아니며 노력하여 수행의 결과로 얻으신 것도 아니니라.”
“그렇다면 어찌하여 부처님 사리는 그토록 잘 다듬어졌고 그토록 정교로와서, 금빛 사리가 항상 있는 것입니까?”
이에 대사께서 꾸짖어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견해를 가지고서 어찌 참선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너는 허공에 사리가 있는 것을 일찍이 보았느냐? 모든 부처님의 마음은 큰 허공과 같은데 무슨 사리를 찾는 것이냐?”
“지금에도 분명히 눈으로 사리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법입니까?”
“그것은 너의 망상심이 일어나서 사리라고 보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화상께서는 사리가 있습니까? 청컨대 내보여 주십시오.”
“참 사리는 보기 어렵느니라. 네가 다만 열 손가락으로 수미산의 높은 봉우리를 한꺼번에 움켜쥐어 그것을 부수어 가루로 만든다면 비로소 참 사리를 보게 되리라.”

문 불신무위 불타제수 하고 불신사리팔곡사두 사운 니작여시견 기견가사리 불견진사리 운 사리위시본유 위복공훈 사운 비시본유 역비공훈 운 약비본유 우비공훈 하고여래사리 유연유정 금골 상존 사내가운 니작여차견해 쟁환작학선인 니견허공증유골부 제불심동태허 멱십마골 운 여금견유사리 차시하법 사운 차종니망상심생 즉견사리 운 화상 환유사리부 청장출래간 사운 진사리난견 니단이십지 촬진묘고봉위미진 즉견진사리

34. 일체처에 마음이 나지 않음

“대저 참선해서 도를 닦는 이는 모름지기 어디에서나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한다. 다만 ‘마음의 작용을 잊으면 곧 부처님의 도가 융성하고, 사량분별하면 곧 마구니의 도가 치성해진다’하는 것만은 논할 뿐이니, 끝내는 털끝만큼한 작은 법도 얻지 못하니라.”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조사께서 어떤 사람에게 법을 전하여 부촉하셨습니까?”
“사람에게 줄 법이 없느니라.”
“그렇다면 어찌하여 2조(이조) 혜가스님이 달마스님께 마음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청했습니까?”
“네가 만약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2조께서는 분명히 마음을 찾아서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찾으려 해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달마스님께서, ‘너의 마음을 이미 편하게 해주었노라’고 하신 것이니라. 만일 얻은 바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생멸법으로 돌아가고 만다.”

부참선학도 수득일절처불생심 기론망기즉불도륭 분별즉마군성 필경무모두허 소법가득
문 조전법부여하인 사운 무법여인 운 운하이조청사안심 사운 니약도유 이조즉합멱득심 멱심불가득고 소이도여니안심경 약유소득 전귀생멸

35. 조계문하생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구경에 무명을 얻으십니까?”
“무명이란 바로 모든 부처님들께서 도를 얻으신 자리이니라. 그러므로 연기법이 바로 도량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한 티끌 한 빛깔이 그대로가 가이 없는 진리의 성품이니라. 발을 들었다 놓는 것이 모두 도량을 여의지 않나니, 도량이란 얻은 바가 없는 것이니라. 내 너에게 말하노니, 다만 이 얻은 바 없는 자리를 도량에 앉아 있음이라고 하느니라.”
“무명이란 밝음입니까, 어두움입니까?”
“밝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두움도 아니다. 밝음과 어두움이란 서로 바뀌어서 갈아드는 법이니라. 그렇다고 무명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것이다. 밝지 않음이 곧 본래의 밝음이어서,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느니라. 이 한마디 말이 온천하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비록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사리불과 같아서, 모두 함께 헤아려 사량할지라도 부처님의 지혜는 측량할 수 없도다’라고 했다. 부처님의 걸림 없는 지혜를 허공을 벗어나 너희들이 언어 문자로는 따져볼 수가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한량과 같은 삼천대천 세계에 갑자기 어떤 보살이 출현하여, 한 번 걸터앉으매 모든 삼천대천 세계를 걸터앉아버린다 해도, 보현보살의 한 털구멍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네가 지금 무슨 본래의 이치를 가지고서 그것을 배우려고 하겠느냐?”
“말씀대로 배워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둘이 없는 본원의 성품으로 돌아가지만, 방편에는 여러 문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둘이 없는 본원의 성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무명의 참 성품이니, 이것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성품이니라. 또 방편에 여러 문이 있다는 뜻은, 성문들은 무명이 생겼다 없어진다고 보며, 연각들은 다만 무명이 없어지는 것만을 보고 무명이 생기는 것은 보지 못하여 생각마다 적멸을 증득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이 종일 생겨나나 그 남이 없음을 보시고, 또 그것이 종일 없어지지만 그 없어짐이 없는 것임을 보아서,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음이 곧 대승의 최고 과(과)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과(과)가 가득 차면 깨달음이 원만하고, 꽃이 피면 세계가 일어나서, 한발짝 드니 그대로가 부처요, 한발짝 내리니 그대로가 중생이도다’고 하는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을 양족존(양족존)이라 부르는 것은 이(이)의 측면에도 구족하시고, 사(사)의 측면에도 구족하시며, 나아가 중생에도 구족하시고 나고 죽음에도 구족하시며, 모든 것에 다 구족하시니 구족하시므로 구할 것이 없느니라. 그대들이 지금 생각생각에 부처는 배우려 하면서 중생을 싫어하니, 만약 중생을 싫어하면 이것이야말로 저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어, 똥치는 그릇을 들고 희론의 똥을 제거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다만 너희들에게 옛부터 알음알이로 배워서 알려는 마음과 도를 보려는 마음을 없애려고 그러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마음들을 모두 없애 버리고 나면 희론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며, 또한 똥을 내다버린다고 하느니라. 이는 다만 너희로 하여금 마음을 내지않게 하시는 것이다. 또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저절로 큰 지혜가 완성된다는 것은,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분별을 결코 내지 않아서 일체를 모두 분별치 않아야만 비로소 우리 조계의 문하에 들어오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옛부터 성인들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법을 조금은 행하였다’고 하신 것이다. 때문에 행함 없음[무행]이 나의 법문(법문)이니라. 오로지 한 마음의 문일 따름이니, 모든 사람이 이 문에 이르러서는, 모두 감히 들어오지는 못하나 전혀 없었다고 말하지는 말라. 다만 얻은 사람이 적을 뿐이니, 얻은 자는 곧 부처이니라.
편히 하여라.”

문 불궁득무명부 사운 무명 즉시일절제불득도지처 소이연기시도장 소견일진일색 편합무변이성 거족하족 불이도장 도장자 무소득야 아향니도 기무소득 명위좌도장 운무명자 위명 위암 사운비명비암 명암시대사지법 무명 차불명 역불암 불명 기시본명 불명불암 기저일구자 난각천하인안 소이도 <가사만세간 개여사리불 진사공도량 불능측불지> 기무애혜 출과허공 무니어론처 석가량등삼천대천세계 홀유일보살출래일과 과각삼천대천세계 불출보현일모공 니여금 파십마본령의학타 운 기시학불득 위십마 도귀원성무이 방편유다문 여지하 사운 귀원성무이자 무명실성 즉제불성 방편유다문자 성문인 견무명생견무명멸 연각인 단견무명멸 불견무명생 념념증적멸 제불 견중생 종일생이무생 종일멸이무멸 무생무멸 즉대승과 소이도 <과만보제원 화개세계기 거족즉불 하족즉중생> 제불양족존자 즉이족사족 중생족생사족 일절등족 족고불구 시니여금 념념학불 즉혐저중생 약혐저중생 즉시방타십방제불 소이불출세래 집제분기견제희론지분 기교니제각종래학심견심 제득진 즉불수희론 역운반분출 기교니불생심 심약불생 자연성대지자 결정불분별불여중생 일절진불분별 시득입아조계문하 고자고선성운 <소행아법문> 소이무행위아법문 기시일심문 일절인도저이 진불감입 불도전무 기시소인득 득자 즉시불 진중

36. 계급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어떻게 해야 수행의 등급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종일토록 밥을 먹되 일찍이 한 톨의 쌀알도 씹은 바가 없으며, 종일토록 걸어다니지만 일찍이 한 조각의 땅도 밟은 바가 없다. 이러할 때에 나와 남 등의 구별이 사라져, 종일토록 갖가지 일을 하면서도 그 경계에 현혹되지 않아야만 비로소 자유자재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생각생각 모든 모양을 보지 않아서 앞뒤의 3제(삼제)를 헤아리지 말라. 과거는 감이 없으며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으니, 편안하고 단엄하게 앉아 움직이는 대로 내맡겨 얽매이지 않아야만 비로소 해탈했다고 할 수 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 이 문중의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서도 오로지 서너명만이 얻었을 뿐이니라. 만약 도 닦기를 일삼지 않는다면 재앙을 받을 날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힘을 다하여 모름지기 금생에 도업을 마칠 것이요, 뉘라서 누겁토록 나머지 재앙을 받겠는가?’라고 하였느니라.”

스님께서는 당(당) 대중(대중 ; 847-859)년간에 본주(본주) 황벽산에서 세연을 마치셨다. 선종(선종) 황제가 단제선사(단제선사)라고 시호를 내리고 탑호는 광업(광업)이라 하였다.

문 여하득불락계급 사운 종일끽반 미증교저일립미 종일행 미증답저일편지 여마시 무인아등상 종일불이일절사 불피제경혹 방명자재인 념념불견일절상 막인전후삼제 전제무거 금제무주 후제무래 안연단좌 임운불구 방명해탈 노력노력 차문중 천인만인 기득삼개오개 약불장위사 수앙유일재 고운 <저력금생수료각 수능누겁수여앙>
사어당대중년중종어본산 선종칙익단제선사 탑왈광업
제4권 신심명(신심명)
머리말

<신심명(신심명)>은 삼조(삼조) 승찬대사(승찬대사)가 지은 글입니다. 명(명)이란 일반적으로 금석(금석), 그릇, 비석 따위에 자계(자계)의 뜻으로나, 남의 공적 또는 사물의 내력을 찬양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여 새긴 한문 글귀를 말하는데, 이 <신심명)>은 삼조(삼조)스님께서 우리가 처음 발심할 때로부터 마지막 구역성불할 때까지 가져야 하는 신심에 대해서 남겨 놓으신 사언절구(사언절구)의 시문(시문)입니다.
이 <신심명>은 글 자체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심이란 도(도)의 본원(본원)이며 진여법계(진여법계)에 사무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글은 우리 수도인의 좌우명(좌우명)인 것입니다. 승찬대사는 수(수)나라의 양제(양제) 대업(대업) 2년 10월 5일(서기 606년)에 입적하셨으며, 그의 세수는 알 수 없습니다. 승찬대사가 돌아가신 지 150여 년 뒤 당(당)나라 현종(현종) 황제가 감지선사(감지선사)라 시호(시호)를 올리고 탑호(탑호)를 각적(각적)이라 하였으며 그 당시 유명한 재상인 방관(방관)이 탑비문을 지었습니다.
승찬대사는 본래 대풍질(대풍질)이라는 큰 병에 걸려 있었는데 오늘날의 문등병입니다. 스님은 문둥병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하다 이조(이조) 혜가 대사(혜가대사)를 찾아가 자기의 성명도 밝히지 않고 불쑥 물었습니다.
“제자는 문둥병을 앓고 있사옵니다. 화상께서는 저의 죄를 참회케 하여주십시오.”
“그대는 죄를 가져 오노라. 죄를 참회시켜 주리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느니라. 그대는 그저 불(불), 법(법), 승(승) 삼보(삼보)에 의지하여 안주해라.”
“지금 화상(화상)을 뵈옵고 승보(승보)는 알았으나 어떤 것을 불보(불보), 법보(법보)라 합니까?”
“마음이 부처며 마음이 법이니라.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요, 승보도 또한 그러하니 그대는 알겠는가?”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은 마음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으며 마음이 그러하듯 불보와 법보도 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이에 혜가대사께서 그가 법기(법기)인 줄 아시고 매우 기특하게 여겨 바로 머리를 깎아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의 보배이다. 구슬 찬(찬)자를 서서 승찬(승찬)이라 하라.”
그해 3월 18일 복광사(복광사)에서 구족계(구족계)를 받고 그로부터 병이 차츰 나아져서 2년 동안 혜가스님을 시봉하였습니다.
승찬대사는 평생을 은거하여 지내다가 나중에 어린 나이의 도신선사(도신선사)를 만나 법을 깨우쳐 주고 뒤에 구족계를 받게 한 후 법을 전하면서
“나에게서 법을 받았다고 절대로 말하지 말아라.”
고 당부 하셨다고 합니다.
돌아가실 때에는 법회하던 큰 나무 밑에서 합장한 채 서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때 사람들이 묘를 써서 스님을 모셨는데, 뒤에 이상(이상)이라는 사람이 신회선사(신회선사)에게 물어서 산곡사(산곡사)에 승찬대사의 묘가 있음을 알고는 가서 화장하여 사리(사리) 삼백 알을 얻었다고 합니다.
승찬스님은 본래 문둥병을 앓았기 때문에 문둥병이 나은 후에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스님을 적두찬(적두찬)이란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이는 대머리의 붉은 살뿐이라는 뜻입니다.
그 승찬대사가 남겨 놓은 저술이 바로 이 <신심명>입니다. 요즈음 일본 학자들 가운데는 그 분이 숨어 다니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의 행적에 모순된 점이 많다고 하여 실제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ㄱ사적인 여러 가지 점들을 상고해 보면 삼조 승찬스님이 실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고 나는 봅니다.
그런데 이 <신심명>에 있어서 그 신(신), 곧 믿음이 보통의 신(신), 믿음이 아니라 신, 해, 오, 증(신해오증) 전체를 통하는 신(신), 믿음입니다. 글 전체는 4언절구(사언절구)로 해서 146구 584자로 되어 있는 간단한 글이지만, 팔만대장경의 심오한 불법도리와 천칠백 공안의 격외도리(격외도리)전체가 이 글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모두들 평(평)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의리적(의리적)으로 법문한 것 같지만 간단한 이 글 전체 속에 격외도리가 다 갖추어져 있으며, 교리의 현묘한 뜻도 빠짐없이 있습니다. 중국에 불법이 전해진 이후로 ‘문자로서는 최고의 문자’라고 학자들이 격찬할 뿐만 아니라 삼조 승찬대사의 <신심명>같은 문자는 하나일 뿐, 둘은 없다고들 평합니다. 그러므로 이 글이 불교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불교사상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신심명의 근본 골자가 무엇인가 하면 글 전체가 모두 양별을 여읜 중도(중도)에 입각해 있다는 것입니다. 글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대(대대)를 40대(사십대)로 갖추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대(대대)란 곧 미워함과 사랑함[증애]. 거슬림과 다름[역순], 옳고 그름[시비] 등등 일상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생의 상대 개념 즉 변견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심명>은 간단한 법문이지만 대대(대대)를 떠난 중도법을 간명하게 보여준 드문 저술입니다. <신심명>은 일관된 논리로서 선(선)이나 교(교)를 막론하고 불교 전체를 통하여 양변을 여읜 중도(중도)가 불교의 근본 사상임을 표현한 총괄적인 중도총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심명신심명

 1 지도무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유혐간택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2 단막증애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동연명백   통연히 명백하리라.
 3 호리유차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천지현격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4 욕득현전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막존순역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5 위순상쟁   어긋남과 따름이 서로 다툼은
   시위심병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
 6 불식현지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도노념정   공연히 생각만 고요히 하려 하도다.
 7 원동태허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무흠무여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
 8 양유취사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소이불여   그 까닭에 여여하지 못하도다.
 9 막축유연   세간의 인연도 따라가지 말고
   물주공인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말라.
10 일종평회   한 가지를 바로 지니면
   민연자진   사라져 저절로 다하리라.
11 지동귀지   움직임을 그쳐 그침으로 돌아가면
   지갱미동   그침이 다시 큰 움직임이 되나니

12 유체양변   오직 양변에 머물러 있거니
   영지일종   어찌 한가지임을  알건가.
13 일종 불통  한 가지에 통하지 못하면
   양처실공   양쪽 다 공덕을 잃으리니
14 유유몰유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종공배공   공함을 따르면 공함을 등지느니라.
15 다언다려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전불상응   더욱 더 상응치 못함이요
16 절언절려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무처불통   통하지 않는 곳 없느니라.
17 귀근득지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수조실종   비춤을 따르면 종취를 잃나니
18 수유반조   잠깐 사이에 돌이켜 비춰보면
   승각전공   앞의 공함보다 뛰어남이라
19 전공전변   앞의 공함이 전변함은
   개유망견   모두 망견 때문이니
20 불용구진   참됨을 구하려 하지 말고
   유수식견   오직 망녕된 견해만 쉴지니라.
21 이견불주   두 견해에 머물지 말고
   신막추심   삼가 쫓아가 찾지 말라.
22 재유시비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분연실심   어지로이 본 마음을 잃으리라.
23 이유일유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일역막수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
24 일심불생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무구   만 법이 허물 없느니라.
25 무구무법   허물이 없으면 법이 없고
   불생불심   나지 않으면 마음이랄 것도 없음이라
26 능수경멸   주관은 객관을 따라 소멸하고
   경축능심   객관은 주관을 따라 잠겨서
27 경유능경   객관은 주관으로 말미암아 객관이요
   능유경능   주관은 객관으로 말미암아 주관이니
28 욕지양단   양단을 알고저 할진대
   원시일공   원래 하나의 공이니라.
29 일공동양   하나의 공은 양단과 같아서
   제함만상   삼라만상을 함께 다 포함하여
30 불견정추   세밀하고 거칠음을 보지 못하거니
   영유편당   어찌 치우침이 있겠는가.
31 대도체관   대도는 본체가 넓어서
   무역무난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거늘
32 소견호의   좁은 견해로 여우같은 의심을 내어
   전급전지   서둘수록 더디어지도다.
33 집지실도   집착하면 법도를 잃음이라
   필입사로   반드시 삿된 길로 들어가고
34 방지자연   놓아 버리면 자연히 본래로 되어
   체무거주   본체는 가거나 머무름이 없도다.
35 임성합도   자성에 맡기면 도에 합하여
   소요절뇌   소요하여 번뇌가 끊기고
36 계념괴진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혼침불호   혼침함이 좋지 않느니라.
37 불호노신   좋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하용소친   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건가.
38 욕취일승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물악육진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39 육진불악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환동정각   도리어 정각(정각)과 동일함이라.
40 지자무위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우인자박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41 법무이법   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망자애착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42 장심용심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기비대착   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43 미생적란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고
   오무호악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거니
44 일절이변   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는
   양유짐작   자못 짐작하기 때문이로다.
45 몽환공화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하노파착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46 득실시비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방각   일시에 놓아 버려라.
47 안약불수   눈에 만약 졸음이 없으면
   제몽자제   모든 꿈 저절로 없어지고
48 심약불이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만법일여   만법이 한결 같느니라.
49 일여체현   한결 같음은 본체가 현묘하여
   올이망연   올연히 인연을 잊어서
50 만법제관   만법이 다 현전함에
   귀복자연   돌아감이 자연스럽도다.
51 민기소이   그 까닭을 없이하면
   불가방비   견주어 비할 바가 없음이라
52 지동무동   그치면서 움직이니 움직임이 없고
   동지무지   움직이면서 그치니 그침이 없나니
53 양기불성   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하거니
   일하유이   하나인들 어찌 있을건가.
54 구경궁극   구경하고 궁극하여
   불존궤칙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요
55 계심평등   마음에 계합하여 평등케 되어
   소작구식   짓고 짓는 바가 함께 쉬도다.
56 호의정진   여우 같은 의심이 다하여 맑아지면
   정신조직   바른 믿음이 고루 발라지며
57 일절불유   일체가 머물지 아니하여
   무가기억   기억할 아무것도 없도다.
58 허명자조   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불노심력   애써 마음 쓸 일 아니로다.
59 비사량처   생각으로 헤아릴 곳 아님이라
   식정난측   의식과 망정으론 측량키 어렵도다.
60 진여법계   바로 깨친 진여의 법계에는
   무타무자   남도 없고 나도 없음이라
61 요급상응   재빨리 상응코저 하거든
   유언불이   둘 아님을 말할 뿐이로다.
62 불이개동   둘 아님은 모두가 같아서
   무불포용   포용하지 않음이 없나니
63 십방지자   시방의 지혜로운 이들은
   개입차종   모두 이 종취로 들어옴이라.
64 종비촉정   종취란 짧거나 긴 것이 아니니
   일념만년   한 생각이 만년이요
65 무재불재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십방목전   시방이 바로 눈 앞이로다.
66 극소동대   지극히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아서
   망절경계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67 극대동소   지극히 큰 것이 작은 것과 같아서
   불견변표   그 끝과 겉을 볼 수 없음이라.
68 유즉시무   있음이 곧 없음이요
   무즉시유   없음이 곧 있음이니
69 약불여차   만약 이 같지 않다면
   불심수수   반드시 지켜서는 안되느니라.
70 일즉일절   하나가 곧 일체요
   일절즉일   일체가 곧 하나이니
71 단능여시   다만 능히 이렇게만 된다면
   하려불필   마치지 못할까 뭘 걱정하랴.
72 신심불이   믿는 마음은 둘 아니요
   불이신심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73 언어도단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비거래금   과거.미래.현재가 아니로다.
제5권 증도가(증도가)
머리말

<증도가(증도가)>는 영가(영가)스님이 지었습니다.
영가(영가)스님의 휘(휘)는 현각(현각)이요, 자(자)는 도명(도명)이며, 성은 대(대)씨이며, 절강성 온주부 영가현[절강성온주부영가현] 사람입니다.
어릴 때 출가하여 안으로는 삼장(삼장)을 두루 섭렵하고 밖으로는 외전에도 널리 통달하였다고 합니다.
영가스님은 본래 천태종 계통으로 천태지관(천태지관)을 많이 익혀서 그 묘를 얻고 항상 선관(선관)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천태종 팔조(팔조)인 좌계 현랑(좌계현랑) 법사와는 동문(동문)이며, 나중에 도를 성취하고 난 뒤에도 서로 서신 왕래를 하였다고 합니다.
일찍이 온주의 개원사(개원사)에 있으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지내며 효순하기로 소문이 났으나, 누님까지 함께 지내니 두 사람을 보살피고 있다하여 온 사중(사중)과 동구(동구)에서 비방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별세하여 상복을 입고서도 누님을 떠나 보내지 못하니 사람들의 비방이 더욱 심했으나 영가스님은 전혀 그러한 데 개으치 않았습니다.
영가스님이 천태종에 있으면서 선관을 닦고 선종과 비슷한 길을 밟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러면 왜 천태종에서 선종으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개원사 복도로 현책(현책)이라는 선사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나이는 60여세였습니다. 이때 그의 누님이 발 밖으로 그 노숙(노숙)을 보고,
“저 노스님을 방으로 청해서 대접했으면 좋겠다.”
고 하였습니다. 영가스님이 얼른 나가서 노스님을 청했더니, 노숙은 들어오지 않으려 하다가 스님의 간절한 청에 못이겨 방에 들어왔습니다. 그 노숙과 법에 대해 여러 가지로 토론해 보니 자신의 견처나 노스님의 견처가 같은 점도 많이 있고 독특한 점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책스님은 영가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의 법사는 누구인가?”
“제가 <방등경론>을 배울 때는 각각 스승이 계셨으나, 뒤에 <유마경>에서 불심종(불심종)을 깨치고는 아직 증명하실 분이 없습니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노스님은 영가스님의 기상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또 그 누님에게도 협기(협기)가 있음을 느끼고 다음과 같이 권했습니다.
“부모와 형제에게 효순하는 일도 한 가지 길이지만, 당신은 불법의 이치를 밝히기는 했으나 스승의 인가를 얻지 못하고 있소. 과거의 부처님들도 성인과 성인이 서로 전하시고 부처와 부처가 서로 인가하였습니다. 석가여래께서도 연등불의 수기를 받으셨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천연외도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오. 남방에 큰 스승으로 혜능선사가 계십니다. 그곳으로 가서 발 아래 예배하고 스승으로 섬기시오.”
그러자, 영가스님이
“다른 분을 증명법사로 모실 것이 아니라 스님께서 법이 수승하신 듯 하니 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면 좋겠습니다. 저를 위해서 허락해 주십시오.” 하자, 현책스님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로서는 그대의 증명법사가 되기는 곤란하오. 지금 조계에는 육조대사가 계셔서 사방에서 학자가 운집하여 법을 받는 터이니 만약 그대가 가겠다면 함께 가리다.”
그러나 영가스님은 누님을 홀로 남겨두고 떠날 수가 없어 망설였습니다. 그러자 누님이 하는 말이 “나는 다른 데 의지해서 지낼 수 있으니 나를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시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현책스님과 함께 떠났는데, 그 때에 영가스님의 나이는 31세였습니다. 그럭저럭 시흥현(시흥현) 조계산(조계산)에 이르니 때마침 육조대사(육조대사)께서 상당(상당)하여 법문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에 영가스님은 절도 하지 않고 선상을 세 번 돌고 나서 육환장을 짚고 앞에 우뚝 서있자니 육조대사께서 물으셨습니다.
“대저 사문(사문)은 삼천위의(삼천위의)와 팔만세행(팔만세행)을 갖추어서 행동이 어긋남이 없어야 하거늘, 대덕(대덕)은 어디서 왔기에 도도하게 아만을 부리는가?”
육조스님의 이러한 말씀은 건방기제 와서 인사도 하지 않고 선상만 세 번 돌고 턱 버티고 서 있기만 하니 그것은 아만심이 탱천하기 때문이 아니냐하는 힐난입니다. 그러나 육조스님이 영가스님 하는 짓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 번 슬쩍 법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그러자 영가스님께서
“나고 죽는 일이 크고, 무상(무상)은 빠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저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과는 뜻이 다르므로 그 깊은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육조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남[생]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가”
이렇게 육조스님께서 반문하시니 이것은 ‘네가 지금 무상이 빠르다고 하니 그 무상(무상)의 근본을 바로 체험하여 깨치고, 남이 없음[무생]을 요달하면 빠르고 빠르지 않음이 떨어져 버린 구경을 성취하게 되는데 왜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이에 영가스님이 답하였습니다.
“본체는 곧 남이 없고 본래 빠름이 없음을 요달하였습니다.”
본체는 원래 남이 없으니 그걸 우리가 체득할 필요가 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대로가 남이 없고 그대로가 빠름이 없는데, 다시 남이 없고 빠름이 없음을 요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영가스님이 반박하자, 육조스님이
“네 말과 같다. 네 말과 같다.”
고 인가하시니, 천여명의 대중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때에야 이로소 영가스님은 다시 동랑(동랑)으로 가서 육환장을 걸어 놓고 위의를 갖추어 육조스님께 정중히 예배하였습니다. 위의를 갖춘다는 것은 큰 가사를 입고 향을 피우고 스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영가스님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바로 하직 인사를 드리자 육조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리 빨리 돌아가려고 하느냐?”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거니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이지 않는 줄 아느냐?”
“스님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네가 참으로 남이 없는 도리를 알았구나!”
“남이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이는 남이 없음에 뜻이 있다면 남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뜻이 없다면 누가 분별하느냐?”
뜻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있는 그것부터가 분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욱조스님의 질책입니다.
“분별하는 것도 뜻이 아닙니다.”
분별을 하여도 심(심), 의(의), 식(식)의 사량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여대용의 나타남이라는 영가스님의 말씀입니다. 그러자 육조스님께서 선상에서 내려오시더니 영가스님의 등을 어루먼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장하다 옳은 말이다. 손에 방패와 창을 들었구나. 하룻밤만 쉬어 가거라.”
그리하여 그 때 사람들이 영가스님이 조계산에서 하룻밤만 자고 갔다 하여 일숙각(일숙각)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이튿날 육조스님께 하직을 고하니 몸소 대중을 거느리시고 영가스님을 전송하셨는데, 영가스님이 열 걸음쯤 걸어 가다가 석장을 세 번 내려치고 말했습니다.
“조계를 한 차례 만난 뒤로는 나고 죽음과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노라!”
선사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의 소문은 먼저 퍼져서 모두들 그를 ‘부사의(부사의) 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그의 가(가), 항(행), 게(게), 송(송)은 모두가 그의 누나가 수집한 것입니다.
영가스님은 선천(선천) 2년(서기 713년) 10월 17일에 입적하시니 세수 39세였으며, 시호(시호)는 무상대사(무상대사), 탑호(탑호)는 정광(정광)이라 하였습니다. 그해에 육조스님께서도 돌아가시니 세수 76세였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흔히 어떤 사람들은 이 법담(법담)을 평하기를, 영가스님이 육조스님보다 나은 듯하고 육조스님이 말에 몰리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가스님이 육조스님보다 수승한 사람이 아니냐고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평을 하면 영가스님을 잘못 본 사람입니다. 영가스님 자신이 <증도가(증도가)>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조계의 길을 깨친 뒤로 나고 죽음과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다.”고 하여, 조계산에 있는 육조스님을 찾아와서 근본을 확철히 깨쳤다고 자기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인(고인)들은 영가스님이 깨친 대목을 두고 말하기를 앞의 법담에서,
“어찌하여 남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가?”
하는 말 끝에서 깨쳤다고 봅니다.
영가스님이 자기 스스로 조계의 길을 확실히 깨치고 난 뒤에는 나고 죽음에 자재하다고 말씀하셨으며, 자기가 평생동안 연구했던 천태종을 버리고 육조스님의 조계 선종의 입장에서 법문하였고 저술도 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육조스님께 와서 깨친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영가스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고 선종에서 깨친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영가스님의 행장(행장)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살펴보고 <증도가(증도가)>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하겠습니다.
영가스님이 육조스님을 찾아가서 확철히 깨치고, 깨친 경지에 의지해서 <증도가>를 지었는데, 천태종이나 다른 교가의 사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천태종에서는 교리적으로 볼 때 맞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하여 이것이 일종의 미친 견해이지 바른 견해는 아니라고까지 혹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종에서 볼 때는 <증도가>가 선종사상을 대표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므로, 그러헥 비난하는 사람들은 선종을 모르는 데서 하는 말이지 바른 길을 아는 사람이면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벌대로 생각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선)과 교(교)의 관계가 <증도가>에서 더욱 더 완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선(선)에서는 ‘한 번 뛰어 넘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간다[일초직입여래지]’고 많이 주장하는데 대해서, 교[교]에서는 ‘점차고 닦아 성불하는 것[점수]’만을 근본으로 표방하므로 서로가 정반대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영가스님의 <증도가>에 대해서 천태종에서 가장 많이 공격했지만, 그 공격도 일시적인 것이 되고 말았으며, 영가스님의 <증도가>는 실제로 도 닦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만고의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증도가(증도가)>라 하였는데 ‘증(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살펴 봅시다.
‘증(증)’이란 구경(구경)을 바로 체득함을 말합니다.
깨달음[오]에도 증오(증오)와 해오(해오)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해오(해오)란 견해(견해), 지해(지해)를 말하는 것으로, 알ㄴ기는 분명히 알지만 실제 마음으로 체득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얼음이 본래 물인 줄은 알았지만 아직 녹지 않고 얼음 그대로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얼음을 녹여 물로 쓰고 있지는 못하듯이 중생이 본래 부처인 줄은 분명히 알았지만 번뇌망상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서 중생 그대로인 것, 그것을 해오(해오)라고 말합니다.
‘증오(증오)’란 얼음을 완전히 녹여서 물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 자체도 볼 수 없는 경계, 따라서 중생의 번뇌망상이 다 끊어져서 제팔 아뢰야 근본무명까지 끊어진 구경각을 말하니 곧 실지로 성불한 것, 견성한 것을 증오(증오)라 하고 간단히 줄여서 증(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가(교가)에서든지 선가(선가)에서든지 증(증)이라 하면 근본적으로 체달한 구경각(구경각)을 말하는 것이지 그 중간에서 뭘 좀 아는 걸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통된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 노래에 ‘증(증)’자를 붙였냐 하면, 선종에서 깨쳤다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증오(증오)’를 근본적으로 삼앗지 ‘해오(해오)’로서는 근본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가에서 깨쳤다고 하는 것,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한다는 것은 ‘증오(증오)’이지 ‘해오(해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조(보조)스님도 처음에는 선가에서 전한 법을 ‘해오(해오)’라고 잘못 보았다가 나중에 <간화결의론(간화결의론)>이라든가 <원돈성불론(원돈성불론)>같은 데서는 선이란 ‘증오(증오)’이지 ‘해오(해오)’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가에서의 근본 표본은 ‘해오(해오)’가 아닌 구경각이며, 선가에서의 깨달음[오]이란 구경적으로 체달한 것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노래 이름부터도 ‘증(증)’이라 하였지 ‘해(해)’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종에서는 언제든지 깨친 것을 ‘돈오(돈오)’라 하는데, “돈(돈)이란 망념을 순식간에 없애는 것이요 오(오)란 얻는 바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대주(대주)선사는 설파하고 있습니다.
근본 무명인 제팔 아뢰야는 무기무심(무기무심)의 마계(마계)까지 완전히 벗어나서 대원경지(대원경지)에 들어가 진여본성을 확철히 깨친 것이 곧 ‘증(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가에서는 그 중간적인 것을 ‘깨달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설명하는 <증도가>를 이해할 수 있지 ‘증오(증오)’와 해오(해오)‘를 혼동해서는 영원히 <증도가>를 모르고 마는 것입니다.
이 <증도가>는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해서 부처님으로부터 달마스님까지 달마스님에서 육조스님까지, 그리하여 오가칠종(오가칠종)으로 내려온 정안종사(정안종사)의 증오처(증오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증(증)’이라 한다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합니다.
그러면 어째서 도(도)라 하는가?
도(도)를 보리(보제)라 각(각)이라 하는데 <증(증)>을 근본으로 삼았으므로, 이 도(도)라 하는 것은 증(증)한 도(도)를, 구경각을 성취한 그 구경처(구경처)를 말합니다. 즉 도(도)란 구경을 깨친 ‘증(증)’한 도(도)이지 중각적인 도(도), 해(해)한 도(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경각인 도란 무엇인가?
“무심이 도라고 일컬어 말하지 말라.
무심도 오히려 한 겹 두터운 관문이 막혀 있느니라.
[막도무심운시도하라 무심유격일중관이니라]”
도는 무심과 통합니다. 우리가 실지로 공부해서 대무심지(대무심지)에 들어가서 구경각을 바로 성취하면 그만인데,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못하고 제팔 아뢰야 무기무심에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그 폐단을 막기 위해서 제팔 아뢰야의 무심 즉 멸진정(멸진정)의 무심은 도(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멸진정의 무심도 아주 벗어나서 제팔 아뢰야의 근본 무명까지 끊어진곳에서 구경각을 성취하여 대원경지가 현발한 이것이 도(도)인 것이며, 진연본성을 바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증)’이 곧 ‘도(도)’이며 ‘도(도)’가 곧 ‘증(증)’이라 하는 것입니다.
달마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밖으로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외식제연하고 내심무천
심여장벽하사와 가이입도니라]”
그러면 마음이 담과 벽 같아야 한다고 하니 목석과 같고 장승과 같은 무심지에 들어가 버리면 그것이 도(도)냐 하면, 그것이 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제팔 아뢰야 무기무심이 장애가 되어 근본적인 구경무심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참으로 구경의 대무심지에 들려면 멸진정의 가무심(가무심), 거기서 한 관문을 더 뚫어서 구경무심을 성취해야 바로 도(도)를 깨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인용한 달마스님의 말씀도 구경적인 도를 말씀함이지 중간적인 도가 아니며 증오(증오)의 ‘도(도)’이지, 해오(해오)의 ‘도(도)’는 아닙니다. 달마스님 이래로 선종에서 전해 내려온 것이 구경각을 ‘증(증)’이라 하고, ‘도(도)’라 하는 것도 ‘증(증)’을 근본 내용으로 삼기 때문에 구경각이 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도는 달마스님이 말씀하신 무심을 한층 넘어간 도가 되어야지 그 중간적인 것은 도가 아닙니다.
그러면 ‘가(가)’란 무엇인가?
영가스님 자신이 확철히 깨친 경계를 노래로써 표현한 것입니다. 영가스님이 육조스님을 찾아가 확철히 깨쳐 구경각을 성취하고 나서 그 경지를 시가(시가) 형식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증도가증도가
  1 군불견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2 절학무위한도인   배움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은
    불제망상불구진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히지 않으니
  3 무명실성 즉불성   무명의 참 성품이 곧 불성이요

    환화공신 즉법신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이로다.

  4 법신 각요무일물  법신을 깨달음에 한 물건도 없으니

    본원자성 천진불  근원의 자성이 천진불이라

  5 오음부운 공거래  오음의 뜬구름이 부질없이 가고 오며
 
    삼독수포허출몰  삼독의 물거품은 헛되이 출몰하도다.

  6 증실상무인법 실상을 증득하여  인. 법이 없으니

    찰나 멸각아비업  찰나에 아비지옥의 업을 없애버림이라
 
  7 약장망어광중생  거짓말로 중생을 속인다면
 
    자초발설진사겁 진사겁토록 발설지옥 보를 스스로 부르리로다.
  8 돈각요여래선   여래선을 단박에 깨치니

    육도만행 체중원   육도만행이 본체 속에 원만함이라

  9 몽이 명명유육취   꿈속에선 밝고 밝게 육취가 있더니

    각후 공공무대천   깨친 후엔 비고 비어 대천 세계가 없도다.
 10 무죄복무손익   죄와 복이 없고 손해와 이익도 없나니

    적멸성중 막문멱   적멸한 성품 가운데서 묻고 찾지 말라.
 11 비래 진경 미증마   예전엔 때 낀 거울 미처 갈지 못했더니
    금일 분명수부석   오늘에야 분명히 닦아 내었도다.

 12 수무념수무생   누가 생각이 없으며 누가 남이 없는가.

    약실무생무불생   진실로 남이 없으면 나지 않음도 없나니
 13 환취기관목인문   기관목인을 불러 붙들고 물어 보라.

    구불시공조만성   부처 구하고 공 베풂을 조만간 이루리로다.
 14 방사대막파착   사대를 놓아 버려 붙잡지 말고

    적멸성중 수음긌   적멸한 성품 따라 먹고 마실지어다.
 15 제행 무상일절공   모든 행이 무상하여 일체가 공하니
 
    즉시여래대원각   이는 곧 여래의 대원각이로다.

 16 결정설표진승   결정된 말씀과 참됨을 나타낸 법을

    유인 불긍임정징   어떤 사람은 긍정치 않고 정에 따라 헤아림이라
 17 직절근원불소인   근원을 바로 끊음은 부처님 인가하신 바요
    적엽심지 아불능   잎 따고 가지 찾음은 내 할 일 아니로다.
 18 마니주 인불식   마니주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니

    여래장이 친수득   여래장 속에 몸소 거두어 들임이라

 19 육반신용공불공   여섯 가지 신통묘용은 공하면서 공하지 않음이요
    일과원광색비색   한 덩이 두렷한 빛은 색이면서 색이 아니로다.
 20 정오안득오력   오안을 깨끗이 하여 오력을 얻음은

    유증내지난가측   증득해야만 알 뿐 헤아리긴 어렵도다.

 21 경리 간형견불난   거울속의 형상 보기는 어렵지 않으나

    수중착월쟁념득   물속의 달을 붙들려 하나 어떻게 잡을 수 있으랴.
 22 상독행상독보   항상 홀로 다니고 항상 홀로 걷나니

    달자동유열반로   통달한 이 함께 열반의 길에 노닐도다.

 23 조고신청풍자고   옛스러운 곡조 신기 맑으며 풍채 스스로 드높음이여
    모췌골강인불고   초췌한 모습 앙상한 뼈 사람들 돌아보지 않는도다.
 24 궁석자구칭빈   궁색한 부처님 제자 입으로는 가난타 말하나
    실시신빈도불빈   실로 몸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치 않음이라.
 25 빈칙신상피루갈   가난한 즉 몸에 항상 누더기를 걸치고

    도칙심장무가진   도를 얻은 즉 마음에 무가보(무가보)를 감추었도다.
 26 무가진용무진   무가보는 써도 다함이 없나니

    이물응시종불린   중생 이익하며 때를 따라 끝내 아낌이 없음이라
 27 삼신사지 체중원   삼신. 사지는 본체 가운데 원만하고

    팔해육통 심지인   팔해탈 육신통은 마음땅의 인(인)이로다.
 28 상사 일결일절요   상근기는 한번 결단하여 일체를 깨치고
    중하 다문다불신   중. 하근기는 많이 들을수록 더욱 믿지 않는도다.
 29 단자회중해구의   스스로 마음의 때 묻은 옷을 벗을 뿐

    수능향외과정진   뉘라서 밖으로 정진을 사랑할건가.

 30 종타방임타비   남의 비방에 따르고 남의 비난에 맡겨두라.
    파화소천도자피   불로 하늘을 태우려 하나 공연히 자신만 피로하리로다.
 31 아문흡사음감로   내 듣기엔 마치 감로수를 마심과 같아서
    쇄융돈입불사의   녹아서 단박에 부사의 행탈경에 들어가리로다.
 32 관악언 시공덕   나쁜 말을 관찰함이 바로 공덕이니

    차칙성오선지식   이것이 나에게는 선지식이 됨이라

 33 불인산방기원친   비방 따라 원망과 친한 마음 일지 않으면
    하표무생자인력   하필이면 남이 없는 자비인욕의 힘 나타내 무엇할건가.
 34 종역통설역통   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함이여

    정혜원명불체공   선정과 지혜가 두렷이 밝아 공에 응체하지 않는도다.
 35 비단아금독달요   나만 이제 통달하였을 뿐 아니라

    하사제불체개동   수 많은 모든 부처님 본체는 모두 같도다.
 36 사자후무외설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백수문지개뇌열    뭇 짐승들 들으면 모두 뇌가 찢어짐이라
 37 향상 분파실각위    향상은 분주하게 달아나 위엄을 잃고
    천룡 적청생흔열    천룡은 조용히 듣고서 희열을 내는도다
 38 유강해섭산천    강과 바다에 노닐고 산과 개울을 건너서
    심사방도위참선    스승 찾아 도를 물음은 참선 때문이라
 39 자종인득조계로    조계의 길을 인식하고 부터는

    요지생사불상간    생사와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도다.

 40 행역선좌역선    다녀도 참선이요 앉아도 참선이니

    어묵동정체안연    어묵동정에 본체가 편안함이라

 41 종우봉도상탄탄    창. 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가요독약야한한    독약을 마셔도 한가롭고 한가롭도다.

 42 아사득견연등불    우리 스승 부처님께서 연등불을 뵈옵고
    다겁 증위인욕선    다겁토록 인욕선인이 되셨도다.
 43 기회생기회사    몇번을 태어나고 몇 번인나 죽었던가.

    생사유유무정지    생사가 아득하여 그침이 없었도다.

 44 자종돈오요무생    단박에 깨쳐 남이 없음을 요달하고부터는
    어제영욕하우희    모든 영욕에 어찌 근심하고 기뻐하랴.

 45 입심산주란약    깊은 산에 들어가 고요한 곳에 머무니

    잠음유수장송하    높은 산 그윽하여 낙락장송 아래로다.

 46 우유정좌야승가    한가히 노닐며 절 집에서 조용히 앉았으니
    격적안거실소쇄    고요한 안거 참으로 소쇄하도다.

 47 각즉요불시공    깨친즉 그만이요 공 베풀지 않나니

    일절유위법불동    모든 유위법과 같지 않도다.

 48 주상포시 생천복    모양과 머무는 보시는 하늘에 나는 복이나
    유여앙전사허공    마치 허공에 화살을 쏘는 것과 같도다.
 49 세력진전환추    세력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나니

    초득래생불여의    내생에 뜻과 같지 않는 과보를 부르리로다.
 50 쟁사무위실상문    어찌 함이 없는 실상문에

    일초직입여래지    한번 뛰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감과 같으리오.
 51 단득본초수말    근본만 얻을 뿐 끝은 근심치 말지니

    여정류리함보월    마치 깨끗한 유리가 보배달을 머금음과 같도다.
 52 기능해차여의주    이미 이 여의주를 알았으니

    자리리타종불갈    나와 남을 이롭게 하여 다함이 없도다.
 53 강월조송풍취    강엔 달 비치고 소나무엔 바람 부니

    영야청소하소위    긴긴 밤 맑은 하늘 무슨 하릴 있을건가.
 54 불성계주 심지인    불성계의 구슬은 마음의 인이요

    무로운하 체상의    안개. 이슬. 구름. 노을은 몸 위의 옷이로다.
 55 강룡발해호석    용을 항복받은 발우와 범싸움 말린 석장이여
    양고금환명역역    양쪽 쇠고리는 역력히 울리는도다.

 56 불시표형허사지    이는 모양을 내려 허투루 지님이 아니요
    여래보장 친종적    부처님 보배 지팡이를 몸소 본받음이로다.
 57 불구진불단망    참됨도 구하지 않고 망령됨도 끊지 않나니
    요지이법 공무상    두 법이 공하여 모양 없음을 분명히 알았도다.
 58 무상무공무불공    모양도 없고 공도 없고 공 아님도 없음이여
    즉시여래진실상    이것이 곧 여래의 진실한 모습이로다.

 59 심경명감무애    마음의 거울 밝아서  비침이 걸림 없으니
    곽연영철주사계    확연히 비치어 항사세계에 두루 사무치도다.
 60 만상삼라영현중    만상삼라의 그림자 그 가운데 나타나고
    일과원명비내외    한 덩이 두렷이 밝음은 안과 밖이 아니로다.
 61 활달공발인과    활달히 공하다고 인과를  없다하면

    망망탕탕초앙화    아득하고 끝없이 앙화를 부르리로다.

 62 기유저공병역연    있음을 버리고 공에 집착하면 병이기는 같으니
    환여피익이투화    마치 물을 피하다가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도다.
 63 사망심취진이    망심을 버리고 진리를 취함이여

    취사지심성교위    취사하는 마음이 교묘한 거짓을 이루도다.
 64 학인 불요용수행    배우는 사람이 잘 알지 못하고 수행하나니
    진성인적장위자    참으로 도적을 아들로 삼는 짓이로다.

 65 손법재멸공덕    법의 재물을 덜고 공덕을 없앰은

    막불유사심의식    심. 의. 식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음이라
 66 시이 선문 요각심    그러므로 선문에선 마음을 물리치고
    돈입무생지견력    남이 없는 지견의 힘에 단박에 들어가도다.
 67 대장부병혜검    대장부가 지혜의 칼을 잡으니

    반약봉혜금강염    반야의 칼날이요 금강의 불꽃이로다.

 68 비단능최외도심    외도의 마음만 꺾을 뿐 아니요

    조증락각천마담    일찍이 천마의 간담을 떨어뜨렸도다.

 69 진법뢰격법고    법의 우레 진동하고 법고를 두드림이여

    포자운혜쇄감로    자비의 구름을 펴고 감로수를 뿌리는도다.
 70 룡상 축답윤무변    용상이 차고 밟음에 윤택이 그지 없으니
    삼승오성 개성오    삼승과 오성이 모두 깨치는도다.

 71 설산비니갱무잡    설산의 비니초는 다시 잡됨이 없어

    순출제호아상납    순수한 제호를 내니 나 항상 받는도다.
 72 일성 원통일절성    한 성품이 두렷하게 모든 성품에 통하고
    일법 편함일절법    한 법이 두루하여 모든 법을 포함하나니
 73 일월 보현일절수    한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고

    일절수월 일월섭    모든 물의 달을 한 달이 포섭하도다.

 74 제불법신 입아성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나의 성품에 들어오고
    아성 환공여래합    나의 성품이 다시 함께 여래와 합치하도다.
 75 일지 구족일절지    한 지위에 모든 지위 구족하니

    비색비심비행업    색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요 행업도 아니로다.
 76 탄지원성팔만문    손가락 퉁기는 사이에 팔만법문 원만히 이루고
    찰나 멸각삼기겁    찰나에 삼아승지겁을 없애버리는도다.
 77 일절수구비수구    일체의 수구와 수구 아님이여

    여오령각하교섭    나의 신령한 깨침과 무슨 상관 있을건가.
 78 불가훼불가찬    훼방도 할 수 없고 칭찬도 할 수 없음이여
    체약허공물애안    본체는 허공과 같아서 한계가 없도다.

 79 불이당처상담연    당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연하니

    멱칙지군불가견    찾은 즉 그대를 아나, 볼 수는 없도다.
 80 취불득사불득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나니

    불가득중 지마득    얻을 수 없는 가운데  이렇게 얻을 뿐이로다.
 81 묵시설설시묵    말 없을 때 말하고 말할 때 말 없음이여
    대시문개무옹색    크게 베푸는 문을 여니 옹색함이 없도다.
 82 유인 문아해하종    누가 나에게 무슨 종취를 아느냐고 물으면
    보도마가반약력    마하반야의 힘이라고 대답해 주어라.

 83 혹시혹비인불식    혹은 옳고 혹은 그릇됨을 사람이 알지 못하고
    역행순행천막측    역행. 순행은 하늘도 헤아리지 못하도다.
 84 오조증경다겁수    나는 일찍이 많은 겁 지나며 수행하였으니
    불시등한상광혹    부질없이 서로 속여 미혹케 함이 아니로다.
 85 건법당입종지    법의 깃발을 세우고 종지를 일으킴이여

    명명불칙조계시    밝고 밝은 부처님 법 조계에서 이었도다.
 86 제일가섭 수전등    첫번째로 가섭이 맨 먼저 등불을 전하니
    이십팔대 서천기    이십팔대는 서천의 기록이로다.

 87 법동유입차토    법이 동쪽으로 흘러 이 땅에 들어와서는
    보제달마위초조    보리달마가 첫 조사 되었도다.

 88 육대전의 천하문    륙대로 옷 전한 일 천하에 소문났고

    후인득도하궁수    뒷 사람이 도 얻음을 어찌 다 헤아리랴.
 89 진불립망본공    참됨도 서지 못하고 망도 본래 공함이여
    유무구견불공공    있음과 없음을  다 버리니 공하지 않고 공하도다.
 90 이십공문 원불저    이십공문에 원래 집착하지 않으니

    일성여래체자동    한 성품 여래의 본체와 저절로 같도다.
 91 심시근법시진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양종 유여경상흔    둘은 거울 위의 흔적과 같음이라.

 92 흔구진제광시현    흔적인 때 다하면 빛이 비로소 나타나고
    심법쌍망성즉진    마음과 법 둘 다 없어지면 성품이 곧 참되도다.
 93 차말법악시세    말법을 슬퍼하고 시세를 미워하노니

    중생 박복난조제    중생의 복 얇아 조복받기 어렵도다.

 94 거성원혜사견심    성인 가신 지 오래고 사견이 깊어짐이여
    마강법약다원해    마구니는 강하고 법은 약하여 원해가 많도다.
 95 문설여래돈교문    여래의 돈교문 설교를 듣고서는

    한불멸제령와쇄    부숴 없애버리지 못함을 한탄하는도다.
 96 작재심앙재신    지음은 마음에 있으나 재앙은 몸으로 받나니
    불수원소갱우인    모름지기 사람을 원망하고 허물치 말지어다.
 97 욕득불초무간업    무간지옥의 업보를 부르지 않으려거든
    막방여래정법륜    여래의 바른 법륜을 비방하지 말아라.

 98 전단림무잡수    전단향 나무 숲에는 잡나무가 없으니

    울밀심심사자주    울창하고 깊숙하여 사자가 머무는도다.
 99 경정림한독자유    경계 고요하고 숲 한적하여 홀로 노니니
    주수비금 개원거    길짐승과 나는 새가 모두 멀리 달아나도다.
100 사자아중수후    사자 새끼를 사자 무리가 뒤따름이여

    삼세 즉능대효후    세 살에 곧 크게 소리치는도다.

101 약시야간 축법왕    여우가 법왕을 쫓으려 한다면

    백년요괴허개구    백년 묵은 요괴가 헛되이 입만 엶이로다.
102 원돈교물인정    원돈교는 인정이 없나니

    유의불결직수쟁    의심있어 결정치 못하거든 바로 다툴지어다.
103 불시산승 령인아    산승이 인아상을 들어냄이 아니요

    수행 공락단상갱    수행타가 단. 상의 구덩이에 떨어질까 염려함이로다.
104 비불비시불시    그름과 그르지 않음과 옳음과 옳지 않음이여
    차지호리실천리    털끝만큼 어긋나도 천리길로 잃으리도다.
105 시즉용여돈성불    옳은 즉 용녀가 단박에 성불함이요

    비즉선성 생함추    그른 즉 선성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짐이로다.
106 오조년래적학문    나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쌓아서

    역증토소심경론    일찍 주소를 더듬고 경론을 살폈도다.

107 분별명상 불지휴    이름과 모양 분별함을 쉴 줄 모르고

    입해산사도자곤    바다 속 모래 헤아리듯 헛되이 스스로 피곤하였도다.
108 각피여래고가책    문득 여래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으니

    수타진보유하익    남의 보배 세어서 무슨 이익 있을건가.
109 종래 층등학허행    예전엔 비칠거리며 헛된 꾸지람을 들었으니
    다년 왕작풍진객    여러 해를 잘못 풍진객(풍진객) 노릇하였도다.
110 종성사착지해    성품에 삿됨을 심고 알음알이 그릇됨이여
    불달여래원돈제    여래의 원돈제를 통달치 못함이로다.

111 이승 정진물도심    이승은 정진하나 도의 마음이 없고

    외도 총명무지혜    외도는 총명해도 지혜가 없도다.

112 역우치역소해    우치하고도 겁이 많으니

    공권지상 생실해    빈 주먹 손가락 위에 실다운 견해를 내는도다.
113 집지위월왕시공    손가락을 달로 집착하여 잘못 공부하니
    근경진중 허날괴    육근. 육경. 육진 가운데서 헛되이 괴이한 짓 하는도다.
114 불견일법 즉여래    한 법도 볼 수 없음이 곧 여래니

    방득명위관자재    바야흐로 이름하여 관자재라 하는도다.
115 요즉업장 본래공    마치면 업장이 곧 공함이요

    미요환수상숙채    마치지 못하면 도리어 묵은 빛 갚으리로다.
116 기봉왕선불능손    굶다가 임금 수라 만나도 먹을 수 없으니
    병우의왕쟁득차    병들어 의왕 만난들 어찌 나을 수 있으랴.
117 재욕행선지견력    욕망 속에서 참선하는 지견의 힘이여

    화중생연종불괴    불 속에서 연꽃 피니 끝내 시들지 않는도다.
118 용시범중오무생    용시비구는 중죄 짓고도 남이 없는 법을 깨달으니
    조시성불우금재    벌써 성불하여 지금에 있음이로다.

119 사자후무외설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심차몽동완피단    어리석은 완피달을 몸시 슬퍼하는도다.
120 지지범중장보제    중죄 범하면 보리를 막는 줄만 알 뿐

    불견여래개비결    여래께서 비결 열어 두심은 보지 못하도다.
121 유이비구범음살    어떤 두 비구 음행과 살생 저지르니

    파이형광 증죄결    우바리의 반딧불은 죄의 매듭 더하였고
122 유마대사돈제의    유마대사 단박에 의심을 없애줌이여

    환동혁일소상설    빛나는 해가 서리. 눈 녹임과 같도다.

123 불사의해탈력    불사의한 해탈의 힘이여

    묘용항사야무극    묘한 작용 항하사같아 다함 없도다.

124 사사공양 감사노    네 가지 공양을  감히 수고롭다 사양하랴.
    만양황금 역소득    만량 황금이라도 녹일 수 있도다.

125 분골쇄신미족수    뼈가 가루되고 몸이 부숴져도 다 갚을 수 없나니
    일구요연초백억    한 마디에 요연히 백억 법문을 뛰어 넘도다.
126 법중왕최고승    법 가운데 왕 가장 높고 수승함이여

    하사여래동공증    강 모래같이 많은 여래가 함께 증득하였도다.
127 아금해차여의주    내 이제 이 여의주를 해설하오니

    신수지자개상응    믿고 받는 이 모두 상응하리도다.

128 요요견무일물    밝고 밝게 보면 한 물건도 없음이여

    역무인혜역무불    사람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

129 대천세계 해중구    대천세계는 바다 가운데 거품이요

    일절성현 여전불    모든 성현은 번갯불 스쳐감과 같도다.
130 가사철륜 정상선    무쇠바퀴를 머리 위에서 돌릴지라도

    정혜원명종불실    선정과 지혜가 두렷이 밝아 끝내 잃지 않는도다.
131 일가냉월가열    해는 차게 하고 달은 뜨겁게 할지언정

    중마불능괴진설    뭇 마구니가 참된 말씀 부술 수 없도다.
132 상가쟁영만진도    코끼리 수레 끌고 위풍당당히 길을 가거니
    수견당랑 능거철    버마재비 수레길을 막는 걸 누가 보겠는가.
133 대상 불유어토경    큰 코끼리는 토끼 길에 노닐지 않고

    대오 불구어소절    큰 깨달음은 작은 절개에 구애되지 않나니
134 막장관견방창창    대통같은 소견으로 창창히 비방하지 말라.
    미요오금위군결    알지 못하기에 내 이제 그대 위해 결단해 주는도다.

 

 

 

 

 

[출처] 선림보전|작성자 노원앙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