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한 달간 『불교학보』 제36집(1999년)에 실렸던 「인도불교 교단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쇠퇴Ⅰ- 초기불교 교단의 성립과 발전」을 게재합니다.
인도불교 교단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쇠퇴
- 초기불교 교단의 성립과 발전 -
1. 들어가는 말
불교는 인도의 풍토에서 발생한 종교이자 철학으로서 초기불교시대에서 시작해서 부파불교, 대승불교로 발전하면서 5,6세기경까지는 그 교리가 완전하게 조직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까지 발달한 인도 사상의 모든 것을 융합·통일하여 그 정수를 갖추게 됨으로써 가장 이상적인 종교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불교는 인도 사상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인도 사상사에 있어서 불교는 초기 우빠니샤드 시대(800 - 500 B.C)의 뒤에 나타났는데, 상고시대 제4기 철학의 소산이다. 제 1기는 리그-베다 시대(1500 - 1000 B.C)로서 아리얀민족이 자연 현상을 신격화하여 예배하고 그들의 웅지를 펼쳐나간 시대로서 신화적 우주관을 가지고 인더스강 유역에서 활동하던 시대이다.
제2기는 브라흐마나(1000- 800 B.C)로서 아리얀이 편자브지방으로부터 야무나강과 갠지스강 상류지방으로 이동하면서 정착하면서, 카스트제도를 확립하고 종교적인 의례를 확립시킨 시대로서 神智學的인 祭儀 중심의 시대이다.
제 3기 초기 우빠니샤드시대로서 농경생활로 인해 사회가 안정되고, 사성계급제도가 이미 확고해졌는데, 그 가운데 특히 끄샤뜨리야계급이 사회적 실력을 장악한 계급으로 부상하면서 브라흐만(승려)계급과 대등한 지위를 차지하고 종교·철학적 지식에서 오히려 브라흐만계급을 능가하던 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에 아리얀족은 야무나강과 갠지스강 중류 지방에 정착하여 자아 문제에 전념하면서 종래의 외향적이고 우주론적인 사변활동으로부터 인간의 내향적 자아에 대한 자각이 크게 일어남으로써, 實在에 대한 탐구의 방향을 전환하여 자아철학(自我哲學)을 확립시킨 시대이다. 이상의 사상적 조류의 변천은 아리얀들의 생활 무대의 변천에 따라 나타났으며, 베다 중심의 사상적 특색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고시대 사상을 인도철학에서는 브라만교(Brahmanism)라고 칭하고 有派로 분류한다.
제4기는 갠지스강 하류 지역인 현재 바라나시와 빠뜨나 지방으로 활동의 중심을 이동한 시대로, 이 시대는 신흥 자유사상가들이 배출되어 바라문교 사상의 전통을 무시하고 非바라문적 사조가 크게 일어남으로써 끄샤뜨리아 계급이 사회의 중심이 된 시대다. 당시 아리얀족과 원주민 사이에 혼혈이 성행하였고, 풍요한 물질생활은 상공업을 일으켜 대도시가 발달되었으며, 왕권이 신장되면서 바라문들의 권위는 무시되어 점차로 사성계급제도가 무너지고 있는 추세였다.
그리하여 도시 문화의 발달과 물질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새로운 문화의 태동과 종교 운동이 일어났던 것 이다. 그 가운데 종래의 바라문교와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 자이나교나 불교가 싹을 틔웠는가 하면, 유물론, 회의론, 쾌락주의 등이 주창되어 상호간에 자유로운 논의를 진행하였고, 한편으로는 출가하여 神定에 전념하는 수행자들도 많이 나타났다. 이들은 인도철학에서는 전통적 양대 분파 중 無派로 분류한다. 이 시대에 새롭게 나타난 사상가들을 沙門이라 부른다.
원시불교경전에서는 당시의 여러 가지 철학, 종교, 사상들을 62견 또는 363논쟁가로 분류하였는데, 그 중 가장 유력했던 학파는 육사외도(六師外道)와 불교였다. 당시 사상계는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확립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돈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석가모니는 大覺을 체득하여 새로운 가르침을 펼쳤다.
그의 가르침은 사상적으로는 비바라문 계통이지만 바라문교의 장점도 채용하여 극단을 피하는 중도적 입장에 서서 당시의 사상적 혼란과 여러 가지 모순을 시정하고 가장 건전한 진리로써 중생 구제에 큰 공헌을 하였다.
제4기에 나타난 자유사상 운동들은 종래의 바라문들과는 달리 '沙門'이라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종교 수행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사문'이란 '영적인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란 의미인데 초기 우빠니샤드시대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종교인 집단이었다.
그들은 집을 버리고 걸식생활을 하며 촌락이나 도시를 遊行하면서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는 출가자들이었다. 그들 주위에는 자연발생적으로 그들의 교설을 따르고 실천하는 무리들이 생겨나 憎伽라는 생활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들 공동체들은 사회적 계급이나 신분의 차별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평등하고 개방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불교는 이런 사문 그룹 중 한 부류였다. 불교는 우주의 진리인 法을 자각하여 '佛陀Buddha'가 된 석존, 즉 석가모니 부처님, 그리고 그의 가르침인 '法'과 그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단이 갖추어져 비로소 하나의 종교로 성립되었다.
불교 교단, 즉 '상가'는 불교의 생활 문화와 교법을 師資相承하여 전수하는 집단이다. 만약 상가가 없다면 우리는 불교의 생활 문화와 교법을 전수받을 수 없다. 따라서 상가를 잘 보호하고 육성하는 것은 불자로서 가장 중요한 본분이며 사명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불교는 우리 나라의 사상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불교는 '多'의 이론을 '一'로 만들면서도 그 '多'의 면목을 살리려했던 원효(元曉, 617-686)의 화쟁(和諍), 의천(義天, 1055-1101)의 禪敎 원융합일(圓融合一), 그리고 지눌(知訥, 1158-1210)의 돈오점수(頓悟漸修)로 이어지면서 그 훌륭한 전통이 1600여 년 동안 우리의 굳건한 사상적 기틀을 이루었다. 사상사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불교는 인도불교의 완성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불교를 상징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이 1998년도 11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또 한 차례 경악할만한 불상사를 일으켰다. 총무원 청사를 점거하기 위해 진입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충돌로 청사 앞마당에는 깨진 유리창과 부서진 의자가 널려 있었고, 서로 상대편을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대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지난 1988년 11월 18일자, 「현대불교신문」의 사설에는 조계종 종단분규 사태에 대하여 "화쟁정신으로 풀자"는 제호를 붙이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싣고 있다.
"총무원장이 뭐길래, 스님들이 왜 그래요?" "화쟁정신이 어디로 갔나?"
이 사태에 대하여 어느 불자는 "이번 일로 100만명의 불자들이 떨어져 나가리라"하는 통곡의 비탄의 신음 소리를 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서듯, 오늘의 우리 불자들은 불자로서 本分事에 如法했는가 대오, 각성, 참회하고 正法護持에 용맹정진하는 것이 가장 절실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논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어떻게 교단을 성립시켰고, 부처님의 제자들은 그들의 교단을 護持하여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그리고 왜 인도 땅에서 인도 불교 교단이 쇠망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고찰하는 것이 본 논문 전체의 목적으로 하고자 하는데, 지면 관계로 초기불교 상가가 어떻게 성립되고 유지, 발전되었는가에 대해서 축약하여 고찰하기로 한다.
교단 형성에 관한 지식을 얻는데 필요한 자료는 원시경전보다는 律藏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經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율장을 중심으로 하여 이 논제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 연구는 오늘의 우리 불교 교단이 어떻게 하면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그 해답을 찾는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먼저 상가의 의미와 구성을 개괄적으로 탐색하고자 한다.
- 『불교학보』 제36집(1999년)에 실렸던 「인도불교 교단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쇠퇴Ⅰ- 초기불교 교단의 성립과 발전」의 머릿말 -
[출처] 인도불교 교단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쇠퇴Ⅰ_(1) |작성자 만남 창조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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