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의 핵심 - 해체해서 보기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
무상.고.무아 각각 통찰하면
탐욕이 빛바래 해탈.열반 실현
이쯤에서 초기불교의 핵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초기불교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해보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해체해서 보기’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이 해체라는 용어는 이미 초기불전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는데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 영감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 칭송되며 시작(詩作)에 능했던 왕기사 존자는 <천 명이 넘음 경>(S8:8)에서 부처님을 “부분들로 해체해서 설하시는 분”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여기서 해체는 빠위밧자(pavibhajja)나 위밧자(vibhajja)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위밧자(vibhajja)라는 술어는 빠알리 삼장을 2600년 동안 고스란히 전승해온 상좌부 불교를 특징짓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밧자-와딘(해체를 설하는 자들)이라 부르면서 자부심을 가져왔다. 이런 상좌부 불교를 일본학자들은 분별상좌부라 옮겼는데 분별이란 말이 상대를 폄하하는 말인 듯해서 필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존재’는 12처로, ‘세계’는 18계로, 진리는 사성제로,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보게 되면 온.처.계.제.연 등으로 해체해서 설해지는 모든 존재(諸法, sabbe dhamma)의 무상.고.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함으로 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그래서 해탈.열반.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불전의 450군데에서나 강조되고 있다.
예를 들면 땅에 떨어진 머리칼을 보고 아무도 아름답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머리라는 특정한 곳에서 특정한 색깔과 특정한 형태로 여인이라는 전체상과 얼굴이라는 부분상에 묶여 있을 때 머리칼을 아름답다하고 그것에서 애욕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머리칼을 ‘단지 머리칼’로만 해체해서 보면 그것은 애욕의 대상이 아니요 오히려 염오의 대상이다.
해체라는 말이 나오면 필자를 아는 사람은 즉시에 이영애님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 하늘나라 선녀님들보다 더 예쁜 이영애님의 눈과 코와 입술이 아무리 예쁘다할지라도 그것은 전체상을 이루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눈을 빼고 코를 분리하고 입술을 도려내어 알코올에 담가두었다면 아무도 그것에서 애욕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만일 애욕을 일으킨다면 그야말로 성도착증환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아름답다 여기는 것은 우리가 관념적으로 취하는 전체상과 부분상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처럼 해체해서 보면 무상.고.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염오가 일어난다.
그래서 <대념처경>(D22) 등의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수행 방법의 핵심도 나라는 존재를 몸.느낌.마음.심리현상들(신.수.심.법)로 해체해서 그 중의 하나에 집중(삼매, 사마타)하거나 그 중의 하나에 대해서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반야, 위빳사나)이다.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그는 불교적 수행을 하는 자가 아니라고 해야 한다. 나와 존재와 세상과 진리와 생사문제를 이처럼 온.처.계.제.연으로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깨달음을 실현할 수 없다.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
세계를 공(空)으로 보려는 것이 반야중관의 직관적인 시각이고 세계를 깨달음의 입장에서 아름답게 꽃으로 장엄하여 보려는 것이 화엄의 종합적인 시각일 것이다. 여기에 반해 초기불교는 세계를 법으로 해체해서 봐서 깨달음을 실현하려는 해체적인 시각이다. 직관이나 통합만을 강조해온 한국불교에는 초기불교의 해체적 시각이 너무너무 필요하다고 감히 강조하고 싶다.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출처] [각묵스님의 초기불교 산책] 초기불교의 핵심 - 해체해서 보기 |작성자 별하나두리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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