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고우 스님의 돈황본 육조단경 대강좌] 자기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하게 된다

수선님 2022. 8. 28. 12:02

“지위가 높은 국왕이나 대신이라 하더라도 국민을 괴롭히는 그 사람이 천한 사람이니라. 너는 국민을 괴롭히는 국왕이나 대신보다 훨씬 더 귀한 사람이다.”

<사진설명>고우 스님이 돈황본 육조단경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강좌를 주최한 불교인재개발원 박윤흔 상임고문과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우리는 ‘똥은 더럽다’고 ‘금은 귀하다’고 합니다. 상당히 대립되는 물건인데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다)로 그 자리를 깨달으면 금이나 똥이나 조금도 차이가 없는 아주 깨끗한 것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혼용하지는 않습니다. 금덩어리를 밖에 두지 않고, 또 똥 덩어리를 귀하다고 해서 옷장 안에 넣어 두지는 않습니다.

각기 용도에 맞게 적절하게 쓰면서도 어느 것이 더럽고, 깨끗하고, 귀하고, 천하다 이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알면 사실 빈부의 차이도 없습니다. 모든 차이를 초월하면 인위적으로 분배 안 해도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듯이 자연적으로 빈부 차이는 있는 그대로 평등하면서 또 많은 데서 적은 데로 자연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그런 의식으로 전환됩니다.

부처님께서 수다타 장자에게 ‘더 많이 가져도 좋다’ 하신 뜻

부처님 당시 굉장한 부자였던 수다타 장자(長子)가 “부처님이시여, 제 재산이 제가 공부하고 부처님이 발견한 세계를 체험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겠습니다.”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너는 더 가져라.” 하셨습니다. 부자인데 더 가져라 합니다. 왜 일까요?

원래 ‘수다타(Sudatta)’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인데 그것을 한문으로 번역하면 ‘급고독(給孤獨)’ 즉, ‘외롭고 소외된 사람한테 배급을 잘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진 것을 제대로 활용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본래무일물’을 모르기 때문에 재산 활용을 못해서 그걸로 인하여 자기도 해치고 남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문에 매일 나옵니다. 땅값이 올라서 졸부가 되었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수다타 같은 분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자기도 도움 되고 남도 도움 되는 이 존재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본래무일물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쓰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수다타 장자에게 “너는 더 가져라.”고 하셨던 겁니다. 부처님께서는 많이 가지거나 적게 가지는 것보다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다른 종교 얘기하기가 그렇습니다마는 예수님은 “부자가 천당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부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 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굉장히 부지런한 분입니다. 부처님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분이 부처님이 아니에요. 살아서 삶의 현장에서 활발하게 행동하는 분이 부처님이지, 산중에서 망부석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분이 부처님은 아닙니다.

그렇게 오해를 하시면 안 됩니다. 부처님은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부지런하고 이해심도 많고 굉장히 지혜롭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를 돕고 남을 돕는 것인지를 너무나 지혜롭게 잘 아는 분이십니다.

또 게송으로 말하였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여기서 다시 이 게송이 나오는데 이것은 〈돈황본〉에 나오니까 할 수 없이 거론하기는 하겠습니다마는, 〈덕이본〉이나 다른 판본에는 이 게송이 없습니다. 내용을 보더라도 앞의 게송만 해도 충분한데 두 번째 나온 이 게송은 군더더기일 뿐입니다. 내용도 거의 유사합니다. 후대 사람들이 편집을 하면서 뒤의 게송에 대한 필요성을 안 느꼈기 때문에 뺀 것 같기도 합니다.

절 안의 대중들이 혜능이 지은 게송을 보고 다들 괴이하게 여기므로, 혜능은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게송 두 개를 벽에 썼습니다. 서쪽 벽에 썼는데 절 내에 있는 대중들이 혜능 스님이 능히 이 게송을 짓는 것을 보고는 다들 괴이하게 여깁니다.

일자무식(一字無識)이고 이름도 제대로 불려 지지 않았던 8개월 동안 방앗간에서 묵묵히 방아만 찧던 혜능 스님에 대해서 사람들은 전혀 관심을 안 가졌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게송을 지어내니까 대중들이 잘 알지는 못해도 신수 스님보다 낫다는 느낌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대중들이 이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겼던 겁니다.

오조 스님께서 문득 혜능의 게송을 보시고 바로 큰 뜻을 잘 알고 있음을 알았으나 여러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 대중에게 말씀하기를 “이 게송도 또한 아직 요달(了達)하지 못하였다!” 하셨다.

오조 스님은 혜능 스님의 게송을 보고 손가락을 벗어난 달의 입장에서 게송을 지었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오조 스님은 깨달음의 게송을 지은 사람이 있으면 직접 가서 법을 전해 육조(六祖)로 삼겠다고 하셨는데, 신수 스님이나 다른 스님이 이 게송을 지었다면 오조 스님도 반가워하고 그 사람을 격려하고 칭찬도 하고 법을 전해줬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법의 전수를 놓고 스님들 사이에 다툼이 있는데, 그 당시에도 다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오조 스님은 혜능 스님이 대중들로부터 위해(危害)를 받을까 굉장히 조심합니다.

여기에서도 대의를 잘 알았으나 대중들이 알까 두려워서, 혜능을 위해할까 싶어서 오조 스님은 대중들에게 ‘이 게송도 또한 아직 요달하지 못했다’ 즉 ‘아직 깨달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이런 걸로 봐서 그 당시에도 스님들이 견성 못 했으니까, 사람이니까, 시기하고 질투하고 패거리도 있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가 지금과 조금 다른 점은 법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명예나 돈 때문이 아닌 법 때문에 그랬다고 하니까 조금은 낫습니다. 그러나 법 때문에 했든 명예나 돈 때문에 했든 다투는 마음을 갖는 것은 불교가 아닙니다.

‘본래무일물’ 그 자리를 깨닫게 되면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는 다툼이 없습니다.

모두가 평등하니 직업에는 빈부귀천이 없다.

제가 어디 가면 이 얘기를 잘 하는데, 부처님 당시에 똥 푸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도는 계급사회였으니까, 모두가 똥 푸는 일을 하는 사람을 천민으로 여겼고, 스스로도 자기 하는 일이 천하다고 해서 자기 학대를 많이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진설명>돈황본 육조단경 강좌를 수강하는 150여명의 불자들이 고우 스님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하고, 바른 마음으로 열심히 살면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니까, 부처님을 한 번 만나 뵈었으면 했는데, 스스로 자기 직업이 부끄럽고 옷에 냄새도 나고 해서 부처님을 뵐 생각을 못했어요. 어느 날 부처님께서 이 이야기를 듣고는 이 똥 푸는 사람이 오는 길목에서 기다렸는데, 이 분이 부처님이 계시는 모습을 보자 스스로 부끄러워 다른 길로 피해갔어요.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다음 날 그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이 분이 피해가는 것을 보시고는 그 길을 따라 갑니다. 그래서 이 똥 푸는 일을 하시는 분이 부처님이 자기를 따라 오시는 것을 아시게 되었죠. 그래서 이 분이 부처님께 가셔서 “부처님이시여! 왜 저를 괴롭히십니까? 저는 부끄러워 부처님 근처에 가지 않으려 하는데 왜 부처님께서는 저를 따라 오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자신을 천민이라고 학대하는데, 천민이라는 것도 힘 있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도이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귀천이 있었겠느냐.” “그러면 제 직업이 천하지 않습니까?” 라고 묻자, 부처님께서는 “천하지 않느니라.

아무리 지위가 높은 국왕이나 대신이라 하더라도 국민을 괴롭히는 그 사람이 천한 사람이니라. 너는 남이 하지 않으려는 일을 기꺼이 하고 있고, 또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려고 열심히 돈도 벌고 있으니까, 너에게도 이롭고 남에게도 이로운 일을 하는 것이다. 너는 국민을 괴롭히는 국왕이나 대신보다 훨씬 더 귀한 사람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이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하게 된다.

우리도 ‘본래무일물’ 자리를 보게 되면 자기 자신을 굉장히 사랑하게 됩니다. 불교는 어찌 보면 자기를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불교는 자기를 희생하는 종교다.” 라고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천만에요. 자기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남도 사랑합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은 남도 학대합니다. 여러분이 자기 스스로 자신을 사랑 안 하면 절대 남한테 사랑받지 못합니다.

저도 제 자신을 굉장히 학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학대 때문에 젊어서 출가 전에 폐결핵에 걸렸습니다. 얼마 전에 신도님의 권유로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폐가 70내지 60퍼센트 밖에 제 기능을 못 한다고 해요. 저는 폐병에 걸린 이유를 출가한 이후에 알았습니다. ‘나를 학대해서 폐병이 걸렸구나!’ 그 후로부터는 제 스스로 저를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가 굉장히 저 자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다른 사람 사랑하는 법도 배웠어요. 어찌 보면 불교는 자기를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절대 희생하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그렇게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계속〉


 

 

 

 

 

 

 

 

 

자기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하게 된다 - 법보신문

“지위가 높은 국왕이나 대신이라 하더라도 국민을 괴롭히는 그 사람이 천한 사람이니라. 너는 국민을 괴롭히는 국왕이나 대신보다 훨씬 더 귀한 사람이다.” 고우 스님이 돈황본 육조단경 강

www.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