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고 행복
인간 생존과 직결된 일하기·먹기·잠자기 등 일상 난관 봉착
코로나19는 정치·경제·사회 등 기존 틀 송두리째 뒤엎어
부처님도 “가족 돌보고 베풀고 이치맞는 행동이 행복” 강조
세상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은 일하기, 먹기, 놀기, 잠자기 등 네 가지 행위의 반복이다. 첫째, 일하기는 먹이를 구하기 위한 일체의 경제행위를 말한다. 오늘날의 직업이 바로 생계유지를 위한 일하기다. 교육도 미래의 경제행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일하기에 포함된다. 둘째, 먹기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신체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음식물을 섭취해야 한다. 셋째, 놀기는 문화생활인데,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먹고 난 뒤에 즐긴다. 오늘날의 오락과 예술 및 스포츠 등이 이에 속한다. 넷째, 잠자기는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생리현상이다.
이 네 가지 행위 중에서 어느 하나가 결핍되어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특히 그 중에서 일하기, 먹기, 잠자기는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물리적 거리 두기를 실행함으로써 난관에 봉착한 것이 바로 일하기다. 직장이 폐쇄됨으로써 재화를 획득할 기회가 없어졌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인간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놀기, 즉 문화생활을 향유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따라서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크나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적으로 평범한 일상이 무너졌다. 코로나19는 정치・경제・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틀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렸다. 각국의 국경이 폐쇄되고 마음대로 외출도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2주간 자가 격리를 실시해야 한다. 이처럼 사람들의 활동이 멈추니 경제활동도 자연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물리적 거리 두기로 집안에서만 생활하다보니, 가정 폭력이 증가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부모를 요양병원에 입원 시킨 자식들은 부모를 면회할 수조차 없다. 자식들은 부모가 자기를 버린 것으로 오해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마음대로 만날 수 없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갈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전개됨으로써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가장 큰 기적이 곧 평범한 일상임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 2006년 7월 ‘지혜의 말씀’이라는 사보(寺報)에 “오늘도 큰 기적이 있었구나!”라는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다. 이 칼럼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단란하게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다. 그런데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이를테면 직장에 출근했던 남편이나 학교에 갔던 자녀가 제 시간에 돌아오지 않으면 이미 이상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가 혹시 불행한 사고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 혼비백산하게 된다. 이와 같이 별 일이 생기고 나면 그때서야 아무 일 없던 그 때를 그리워하며, 그때가 바로 행복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아무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 곧 행복임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행복은 평범한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또 자기 주변에 큰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아무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 곧 기적이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붓다는 숫따니빠따(Suttanipāta)의 길상경(Mahāmaṅgala-sutta)에서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이 곧 행복임을 강조한 바 있다.
“어리석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이다.”(Sn.259)
“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돌보고, 일을 함에 질서가 있어 혼란스럽지 않은 것,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이다.”(Sn.262)
“남에게 베풀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며, 친지를 보호하고, 비난을 받지 않게 처신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이다.”(Sn.263)
“세상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근심과 티끌 없이 안온한 것,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이다.”(Sn.268)
이와 같이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돌보고, 일을 함에 질서가 있어 혼란스럽지 않은 것, 남에게 베풀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며, 친지를 보호하고, 비난을 받지 않게 처신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신기루와 같은 기적을 바란다. 인간의 능력으로서 불가능한 일을 이룬 것만 기적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이 곧 기적이다. 어쩌면 살아있는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들의 삶은 괴로움의 연속이다. 매일매일 직장에 나가는 것은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별다른 일이 없었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임을 알고,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경에 나오는 빨리어 망갈라(maṅgala)는 길상(吉祥), 상서(祥瑞), 축제(祝祭) 등으로 번역된다. 이 망갈라를 국내에서는 ‘행복’ 혹은 ‘축복’으로 번역했다. 축복을 사전에서는 “앞으로의 행복을 빎”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축복은 다른 존재가 나의 행복을 내려준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만, 행복은 남이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축복’보다는 ‘행복’이라는 번역이 더 붓다의 가르침에 가깝다. 중국에서는 이 경의 이름을 ‘길상경’이라고 번역했다.
불교도 중에는 깨달음이나 어떤 특별한 기적의 가피를 간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이라는 특별한 경지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깨닫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깨달음이란 ‘진리에 대한 눈뜸’일 뿐이다. 하루하루의 삶을 바르게 영위하는 것이 곧 바른 깨달음이자 기적이다. 코로나19의 종식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43호 / 2020년 7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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