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입도요문론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수선님 2023. 2. 26. 14:01

1. 불보살[佛菩薩]께 헌사[獻辭]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님들께 머리 숙여 예배를 올립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제가 이 논(論)을 지었으나 부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을까 두려우니 부디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만약 부처님의 이치를 알았거든 일체 유정의 중생에게 모두 회향하여 내세(來世)에 다 함께 성불하기를 바라옵니다.

 

稽首和南十方諸佛 諸大菩薩衆 弟子今作此論 恐不會聖心 願

賜懺悔 若會聖理 盡將廻施一切有情 願於來世 盡得成佛

 

2. 돈오(頓悟)

 

"어떤 법을 닦아야 곧 해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돈오의 한 문[一門] 만이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을 돈오(頓悟)라고 합니까?"

"돈(頓)이란 단박에 망념(妄念)을 없앰이요, 오(悟)란 얻은 바 없음[無所得]을 깨치는 것이니라."

"무엇부터 닦아야 합니까?"

"근본(根本)부터 닦아야 하느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근본부터 닦는 것입니까?"

"마음이 근본이니라."

"마음이 근본임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능가경]에 이르기를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고 하였고, [유마경]에 이르기를 '정토(淨土)를 얻고저 하면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하나니 그 마음 깨끗함을 따라 불국토가 깨끗해진다' 하였고, [유교경]에 이르기를 '마음을 한 곳으로 통일하여 제어하면 성취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고 하였고, 어떤 경에서는 '성인은 마음을 구하나 부처를 구하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구하면서 마음을 구하지 아니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나 몸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몸은 다스리나 마음을 다스리지 아니한다'고 하였고, [불명경]에 이르기를 '죄는 마음에서 났다가 다시 마음을 좇아서 없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악과 일체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알지니, 그런 까닭에 마음이 근본이니라. 만약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모름지기 근본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런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고 쓸데 없이 노력을 허비하여 바깥 모양에서 구한다면 옳지 않느니라. [선문경]에 이르기를 '바깥 모양에서 구한다면 비록 몇 겁을 지난다 해도 마침내 이루지 못할 것이요, 안으로 마음을 관조하여 깨치면 한 생각 사이에 보리를 증득한다'고 하였느니라."

 

問 欲修何法 卽得解脫

答 唯有頓悟一門 卽得解脫

云何爲頓悟

答 頓者 頓除妄念 悟者 悟無所得

問 從何而修

答 從根本修

云何從根本修

答 心爲根本

云何知心爲根本

答 楞伽經云 心生卽種種法生 心滅卽種種法滅 維摩經云 欲得 淨土 當淨其心 隨其心淨 卽佛土淨 遺敎經云 但制心一處 無事不辨 經云 聖人 求心不求佛 愚人 求佛不求心 智人 調心不調身 愚人 調身不調心 佛名經云 罪從心生 還從心滅 故知善 惡一切 皆由自心 所以 心爲根本也 若求解脫者 先須識根本

若不達此理 虛費功勞 於外相 求 無有是處 禪門經云 於外相求 雖經劫數 終不能成 於內覺觀 如一念頃 卽證菩提

 

3. 선정(禪定)

 

"근본을 닦으려면 무슨 법으로써 닦아야 합니까?"

"오직 좌선하여 선정을 하면 얻을 수 있느니라. [선문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인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구할진댄 곧 선정(禪定)이 요긴한 것이니, 만약 선정이 없으면 망상이 시끄럽게 일어나서 그 선근(禪根)을 무너뜨린다' 고 하였느니라."

"어떤 것을 선(禪)이라 하며 어떤 것을 정(定)이라 합니까?"

"망념(妄念)이 일어나지 아니함이 선(禪)이요, 앉아서 본성(本性)을 보는 것이 정(定)이니라. 본성이란 너의 무생심(無生心)이요, 정이란 경계를 대(對)함에 무심하여 팔풍(八風)에 움직이지 아니함이니라. 팔풍이란, 이로움과 손실(利.衰), 헐뜯음과 높이 기림(毁.譽), 칭찬함과 비웃음(稱.譏), 괴로움과 즐거움(苦.樂)을 말하느니라. 만약 이와 같이 정(定)을 얻은 사람은 비록 범부(凡夫)라고 하더라도 부처님 지위(佛位)에 들어 가느니라.

  

왜냐하면 [보살계경(菩薩戒經)]에 이르기를 '중생이 부처님계(佛戒)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 지위에 들어간다' 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얻은 것을 '해탈' 이라고 하며 또 '피안에 이르렀다'고 하느니라. 이는 육도(六度)를 뛰어넘고 삼계(三界)를 벗어난 대력보살(大力菩薩)이며 무량력존(無量力尊)이니 대장부(大丈夫)인 것이니라."

 

問 夫修根本 以何法修

答 惟坐禪禪定 卽得 禪門經云 求佛聖智 卽要禪定 若無禪定

念想 喧動 壞其善根

問 云何爲禪 云何爲定

答 妄念不生 爲禪 坐見本性 爲定 本性者 是汝無生心 定者 對境無心 八風不能動 八風者 利衰毁譽稱譏苦樂 是名八風 若得如是定者 雖是凡夫 卽入佛位 何以故 菩薩戒經云 衆生 受佛戒 卽入諸佛位 得如是者 卽名解脫 亦名達彼岸 超六度越三界 大力菩薩 無量力尊 是大丈夫

 

4. 무주처(無住處)와 무주심(無住心)

 

"마음이 어느 곳에 머물러야 곧 머무는 것입니까?"

"머무는 곳이 없는데에 머무는 것이 곧 머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머무는 곳이 없는 것입니까?"

"일체처(一切處)에 머물지 아니함이 곧 머무는 곳 없는데에 머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일체처(一切處)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한다 함은 선악(善惡).유무(有無).내외(內外).중간(中間)에 머물지 아니하며, 공(空)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공(空)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선정(禪定)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선정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함이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함이니, 다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 곧 머무는 곳이니라. 이와 같이 얻은 것을 머물음이 없는 마음(無住心) 이라 하는 것이니 머물음이 없는 마음이란 부처님의 마음이니라."

"그 마음은 어떤 물건과 같습니까?"

"그 마음은 푸르지도 않고 누르지도 않으며, 붉지도 않고 희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아니하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아니하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아니하여, 담연(湛然)하고 항상 고요한 이것이 본래 마음의 형상이며 또 본래 몸이니 본래의 몸이란 곧 부처님의 몸이니라."

 

問 心住何處卽住

答 住無住處卽住

問 云何是無住處

答 不住一切處 卽是住無住處

問 云何是不住一切處

答 不住一切處者 不住善惡有無內外中間 不住空 亦不住不空

不住定亦不住不定 卽是不住一切處 只箇不住一切處卽是住處

也 得如是者 卽名無住心也 無住心者 是佛心

問 其心似何物

答 其心 不靑不黃不赤不白 不長不短不法不來 非垢非淨 不生不滅 湛然常寂 此是本心形相也 亦是本身 本身者 卽佛身也

 

5. 자성견(自性見)

 

"몸과 마음은 무엇으로써 보는 것입니까? 눈으로 봅니까, 귀로 봅니까, 몸과 마음 등으로 봅니까?"

"보는 것은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느니라."

"이미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을진댄 다시 어떻게 보는 것입니까?"

"이것은 자성(自性)으로 보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담연히 비고 고요하므로, 비고 고요한 본체(體) 가운데서 이 보는 것[見]이 능히 나느니라."

"다만 청정의 본체 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이 보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비유하면 밝은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일체 모양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으니, 왜냐하면 밝은 거울이 무심이기 때문이니라. 배우는 사람이 만약 마음에 물든 바 없어 망심이 나지 아니하고 주관과 객관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자연히 청정한 것이니, 청정한 까닭에 능히 이 보는 것이 생겨나느니라. [법구경]에 이르기를 '필경의 공 가운데서 불꽃 일듯 건립함이 선지식이다' 고 하였느니라.

 

問 身心 以何爲見 是眼見 耳見 鼻見 及 身心等見

答 見無如許種見

云 旣無如許種見 復何見

答 是自性見 何以故 爲自性 本來淸淨 湛然空寂 卽於空寂體

中 能生此見

問 只如淸淨體 尙不可得 此見 從何而有

答 喩如明鑑中 雖無像 能見一切像 何以故 爲明鑑無心故 學人 若心無所染 妄心 不生 我所心 滅 自然淸淨 以淸淨故 能生此見 法句經云 於 畢竟空中 熾然建立 是善知識也

 

6. 열반경(涅槃經)의 이구(二句)

 

"[열반경] 금강신품(金剛身品)에 이르기를 '볼 수 없되 분명하고 밝게 볼 수 있어 아는 것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도 없다' 하니 무슨 뜻입니까?"

" '볼 수 없다'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모양이 없어서 얻을 수 없는 까닭에 볼 수 없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얻을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공적하고 담연하여 가고 옴이 없으나 세간의 흐름을 여의지 않으니 세간의 흐름이 능히 흐르지도 아니하여 탄연히 자재[自在]함이 곧 '분명하고 밝게 보는 것' 이니라.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자성의 모양이 없어서 본래 분별(分別)이 없음을 이름하여 아는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알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은 분별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사묘용을 갖추어서 능히 일체를 분별하여 알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알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반야(般若)의 게송]에 이르기를 '반야(般若)는 아는 것이 없으나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반야는 보지 못하나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고 하였느니라."

 

問 涅槃經 金剛身品 不可見 了了見 無有知者 無不知者 云何答 不可見者 爲自性體 無形 不可得故 是名不可見也 然 見不可得者 體寂湛然 無有去來 不離世流 世流不能流 坦然自在卽 是了了見也 無有知者 爲自性 無形 本無分別 是名無有知者 無不知者 於無分別體中 具有恒沙之用 能分別一切 卽無事不

知 是名無不知者 般若偈云 般若 無知 無事不知 般若 無見無事不見

 

7. 불견유무[不見有無]가 진해탈[眞解脫]

 

"경에서 이르기를 '있음(有)과 없음(無)을 보지 않는 것이 참다운 해탈이다'고 하시니 어떤 것이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않는 것입니까?"

"깨끗한 마음을 증득하였을 때를 곧 '있음'이라 하고, 그 가운데서 깨끗한 마음을 얻었다는 생각이 나지 않음이 곧 '있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얻고서,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이 곧 '없음'을 보지 못함이니, 그런 까닭에 `있음과 없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능엄경]에 이르기를 '지견(知見)에 앎(知)을 세우면 무명(無明)의 근본이 되고 지견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것이 곧 열반이며 또한 해탈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問 經云 不見有無卽眞解脫 何者是不見有無答 證得淨心時 卽名有 於中 不生得淨心想 卽名不見有也 得想無生無住 不得作無生無住想 卽是不見無也 故 云不見有無也 楞嚴經云 知見 立知 卽無明本 知見 無見 斯卽涅槃 亦名解脫

 

8. 무소견(無所見)

 

"어떤 것이 보는 바가 없는 것입니까?"

"만약 남자나 여자 및 일체 색상을 보되, 그 가운데에 사랑함과 미워함[愛憎]을 일으키지 아니하여 보지 못함과 더불어 같은 것이, 곧 보는 바가 없는 것이니라."

"일체 색상을 대할 때는 곧 본다고 하거니와 색상을 대하지 않을 때도 또한 본다고 할 수 있습니까?"

"보느니라."

"물건을 대할 때는 설령 보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건을 대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서 보는 것이 있습니까?"

"지금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물건을 대하거나 물건을 대하지 않거나를 논(論)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다고 하는 그 성품은 영원한 까닭에 물건이 있을 때도 보고 물건이 없을 때도 또한 보는 것이니라. 그런 까닭에 물건에는 본래 스스로 가고 옴(去來)이 있으나 본다는 성품에는 가고 옴이 없음을 알지니, 다른 모든 감각기관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바로 물건을 볼 때에 보는 가운데 물건이 있습니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서지 못하느니라."

"바로 물건이 없음을 볼 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없습니까?"

"보는 가운데는 물건 없는 것도 서지 못하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는 곧 들을 수 있거니와 소리가 없을 때에도 들을 수 있습니까?"

"역시 듣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엔 설령 들을 수 있다고 하지만 소리가 없을 때는 어떻게 듣습니까?"

"지금 '듣는다'고 하는 것은 소리가 있거나 없거나를 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듣는다'는 자성은 영원한 까닭에 소리가 있을 때도 듣고 소리가 없을 때도 또한 듣느니라."

"이렇게 듣는 자는 누구입니까?"

"이는 자기의 성품이 듣는 것이며 또한 아는 이가 듣는다고 하느니라."

 

問 云何是無所見

答 若見男子女人及一切色像 於中 不起愛憎 與不見 等 卽是

無所見也

問 對一切色像時 卽名爲見 不對色像時 亦名見否

答 見

問 對物時 從有見 不對物時 云何有見

答 今言見者 不論對物與不對物 何以故 爲見性 常故 有物之

時 卽見 無物之時 亦見也 故知物 自有去來 見性 無來去也

諸根 亦爾

問 正見物時 見中 有物否

答 見中 不立物

問 正見無物時 見中 有無物否

答 見中 不立無物

問 有聲時卽有聞 無聲時 還得聞否

答 亦聞

問 有聲時 從有聞 無聲時 云何得聞

答 今言聞者 不論有聲無聲 何以故 爲聞性 常故 有聲時卽聞

無聲時亦聞

問 如是聞者是誰

答 是自性聞 亦名知者聞

 

9. 돈오문(頓悟門)의 종지(宗旨)와 체용(體用).

 

1. 종지와 체용

"이 돈오문은 무엇으로써 종취(宗趣)를 삼고 무엇으로써 참 뜻(旨)을 삼고 무엇으로써 본체로 삼으며 무엇으로써 작용(用)으로 삼는 것입니까?"

"무념을 종취로 삼고, 망심이 일어나지 않음을 참 뜻으로 삼으며, 청정을 본체로 삼고, 지혜로써 작용을 삼느니라."

"이미 무념으로 종취를 삼는다고 말씀할진댄 무념이란 어떤 생각이 없는 것입니까?"

"무념이란 삿된 생각이 없음이요, 바른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삿된 생각이며, 어떤 것이 바른 생각입니까?"

"있음(有)을 생각하고 없음(無)을 생각하는 것이 삿된 생각이요, 있음과 없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괴로움[苦]과 즐거움[樂], 나는 것[生]과 없어짐[滅], 취함[取]과 버림[捨], 원망(怨)과 친함(親), 미워함(憎)과 사랑함(愛)을 생각하는 것이 모두 삿된 생각이요, 괴로움과 즐거움 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어떤 것이 바른 생각입니까?"

"바른 생각이란 오직 보리(菩提)만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보리는 얻을 수 있습니까?"

"보리는 얻을 수 없느니라."

"이미 얻을 수 없을진댄 어떻게 오직 보리만 생각합니까?"

"보리는 다만 거짓으로 이름을 세운 것이라 실지로 얻을 수 없으며 또한 과거에도 미래에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까닭에 곧 생각 있음이 없느니라. 오직 이 무념을 진실한 생각이라 하는 것이니 보리는 생각할 바가 없는 것이니라.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 생각하는 바가 없음이니, 다만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무념이란 모두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운 것인지라 모두가 하나의 본체로서 같음이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는 것이니라.

   

다만 일체처에 무심함을 알면 곧 이것이 무념이니 무념을 얻을 때에 자연해탈이니라."

   

"어떻게 하여야 부처님의 행을 하는 것입니까?"

"일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 행동이라 하며 또 바른 행동이라 하며 또 성스러운 행동이라 함이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있음과 없음 미워함과 사랑함 등을 행하지 않는 것이니라. [대율]5권 보살품에서 이르기를 '일체 성인들은 중생의 행동을 행하지 않고, 중생들은 이와 같은 성인의 행동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느니라."

"어떤 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까?"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곧 바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이라 합니까?"

"일체 색을 볼 때에 물들거나 집착함을 일으키지 아니함이니, 물들거나 집착하지 아니한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므로, 곧 보는 바 없음을 본다고 하는 것이니라. 만약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얻었을 때 곧 부처님의 눈이라 하나니 다시 별다른 눈이란 없느니라. 만약 일체 색을 볼 때에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보는 바가 있다고 하는 것이니 보는 바가 있음이 곧 중생의 눈이니라. 다시 별다른 눈을 가지고 중생의 눈이라 할 것이 없으니, 내지 다른 오근(五根)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問 此頓悟門 以何爲宗 以何爲旨 以何爲體 以何爲用

答 無念 爲宗 妄心不起 爲旨 以淸淨爲體 以智爲用

問 旣言無念爲宗 未審 無念者 無何念

答 無念者 無邪念 非無正念

問 云何爲邪念 云何爲正念

答 念有念無 卽名邪念 不念有無 卽名正念 念善念惡 名爲

邪念 不念善惡 名爲正念 乃至苦樂生滅取捨怨親憎愛 竝名

邪念 不念苦樂等 卽名正念

問 云何是正念

答 正念者 唯念菩提

問 菩提 可得否

答 菩提 不可得

問 旣不可得 云何唯念菩提

答 只如菩提 假立名字 實不可得 亦無前後得者 爲不可得

故 卽無有念 只箇無念 是名眞念 菩提 無所念 無所念者

卽一切處無心 是無所念 只如上說 如許種無念者 皆是隨事

方便 假立名字 皆同一體 無二無別 但知一切處 無心 卽是

無念也 得無念時 自然解脫

問 云何行佛行

答 不行一切行 卽名佛行 亦名正行 亦名聖行 如前所說不

行有無憎愛等 是也 大律卷五 菩薩品云一切聖人 不行於衆

生行 衆生 不行如是聖行

問 云何是正見

答 見無所見 卽名正見

問 云何名見無所見

答 見一切色時 不起染著 不染著者 不起愛憎心 卽名見無所見也 若得見無所見時 卽名佛眼 更無別眼 若見一切色時 起愛憎者 卽名有所見 有所見者 卽是衆生眼 更無別眼作衆 生眼 乃至 諸根 亦復如是

 

2. 이성공(二性空)

"이미 지혜로써 작용을 삼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이 지혜입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空)한 줄 아는 것이 곧 해탈이며 두 가지 성품이 공하지 않은 줄 알면 해탈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을 지혜라 하며 또 삿됨과 바름을 요달하였다고 하며 또 본체와 작용을 안다고 하느니라.

   

두 가지 성품이 공했다고 하는 것은 있음과 없음, 선과 악, 사랑함과 미워함이 나지 아니한 것을 이름하여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고 하느니라."

 

問 旣言以智爲用者 云何爲智

答 知二性空 卽是解脫 知二性不空 不得解脫 是名爲智 亦 名了邪正 亦名識體用 二性空 卽是體 知二性空 卽是解脫 更不生疑 卽名爲用 言二性空者 不生有無 善惡愛憎 名二性空

 

10. 돈오(頓悟)는 단바라밀(檀波蘿蜜)로 부터

 

"이 돈오의 문은 어디로부터 들어갑니까?"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들어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이 보살의 행(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단바라밀 하나 만을 말씀하시며 어떻게 구족하여야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미혹한 사람은 다섯바라밀이 모두 단바라밀로 말미암아 나는 것인 줄 알지 못한 것이니 오직 단바라밀만을 수행하면 곧 육바라밀을 모두 구족하는 것이니라."

"어떤 인연으로 단바라밀이라고 합니까?"

"단(檀)이란 보시(布施)를 말하느니라."

"어떤 물건을 보시하는 것입니까?"

"두 가지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두가지 성품입니까?"

"선과 악의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며, 있음과 없음의 성품, 사랑함과 미워함의 성품, 공과 공 아님의 성품, 정과 정 아님의 성품과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함의 성품을 보시해 버려서 일체 모든 것을 전부 보시해 버리면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느니라.

   

만약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을 때에 또한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하며 또 보시한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함이 곧 진실로 보시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이니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고 하느니라.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 함은 곧 일체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법의 성품이 공하다 함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니라.

   

만약 일체처에 무심함을 얻었을 때에는 한 모양(一相)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느니라.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다 함은 곧 실상이니 실상이란 여래의 묘한 색신의 모양이니라.

   

[금강경]에 이르기를 '일체의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곧 모든 부처님이라 한다' 고 하였느니라."

   

"부처님은 육바라밀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어떻게 하나를 말하며 능히 구족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바라건대 하나가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하는 까닭을 말씀해 주십시요."

"[사익경]에 이르기를 '망명존이 범천에게 말하되

만약 보살이 일체의 번뇌를 버리면 단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보시요,

모든 법에 대해서 일어나는 바가 없음이 시라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지계요,

모든 법에 대하여 손상하는 바가 없음이 찬제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인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모양을 떠남이 비리야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정진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머무는 바가 없음이 선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선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희론이 없음이 반야바라밀이라 하니니 곧 지혜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여섯 가지 법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지금 다시 여섯 가지 법에 이름을 붙이면 첫째는 버림과 둘째는 일어나지 아니함과 세째는 손상하지 않음과 네째는 모양을 떠남과 다섯째는 머물지 않음과 여섯째는 희론이 없음과 다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법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움이요, 묘한 이치에 이르러서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느니라.

   

다만 하나를 버릴 줄 알면 일체를 버림이요, 하나가 일어나지 않으면 곧 일체가 일어나지 않거늘 미혹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차이가 있다고 모두 말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여섯 가지 법의 숫자에 머물러서 오래도록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니라.

   

너희들 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하나니, 다만 보시의 법만을 닦으면 만법이 두루 원만해지거늘 하물며 다섯 가지 법이 어찌 구족하지 않겠는가."

 

問 此門 從何而入

答 從檀波羅密入

問 佛說六波羅密 是菩薩行 何故 獨說檀波羅密 云何具足

而得入也

答 迷人 不解五度皆因檀度生 但修檀度 卽六度悉皆具足

問 何因緣故 名爲檀度

答 檀者 名爲布施

問 布施何物

答 布施却二性

問 云何是二性

答 布施却善惡性 布施却有無性 愛憎性 空不空性 定不定性 淨不淨性 一切 悉皆施却 卽得二性空 若得二性空時 亦 不得作二性空想 亦不得作念有施想 卽是眞行檀波羅密 名萬緣 俱絶 萬緣 俱絶者 卽一切法性空 是也 法性空者 卽 一切處無心 是 若得一切處無心時 卽無有一相可得 何以故爲自性 空故 無一相可得 無一相可得者 卽是實相 實相者 卽是如來妙色身相也 金剛經云 離一切諸相 則名諸佛

問 佛說六波羅密 今云何說一 卽能具足 願說一具六法之因答 思益經 云 網明尊 謂梵天言 若菩薩 捨一切煩惱 名檀波羅密 卽是布施 於諸法 無所起 名尸羅波羅密 卽是持戒於諸法 無所傷 名□提波羅密 卽是忍辱 於諸法離相 名毘離耶波羅密 卽是精進 於諸法無所住 名禪波羅密 卽是禪定 於諸法無戱論 名般若波羅密 卽是智慧 是名六法 今更名六法 不異一捨 二無起 三無傷 四離相 五無住 六無戱論 如是六法 隨事方便 假立名字 至於妙理 無二無別 但知一捨 卽一切捨 無起卽一切無起 迷途不契 悉謂有差 愚者 滯其 法數之中 卽長輪生死 告汝學人 但修檀之法 卽萬法 周圓 況於五法豈不具耶

 

11. 삼학(三學)을 함께 쓰다.

 

"삼학을 함께 쓴다 하니 어떤 것이 삼학이며 어떤 것이 함께 쓰는 것입니까?"

"삼학이란 '계·정·혜' 니라."

"어떤 것을 '계·정·혜' 라 합니까?"

"청정하여 물들지 아니함이 계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알아 경계를 대하여 고요함이 정이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알 때에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며 마음이 청정함을 알 때에 청정하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여 내지 선·악을 모두 능히 분별하되 그 가운데에 물들지 아니하여 자재를 얻음을 혜라고 하느니라. 만약 계·정·혜의 본체가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 때에 곧 분별함이 없어서 곧 동일의 본체이니 이것이 삼학을 함께 쓴다고 하는 것이니라."

 

問 三學等用 何者是三學 云何是等用

答 三學者 戒定慧是也

問 云何是戒定慧

答 淸淨無染 是戒 知心不動 對境寂然 是定 知心不動時 不生不動想 知心淸淨時 不生淸淨想 乃至善惡 皆能分別 於中 無染 得自在者是名爲慧也 若知戒定慧體俱不可得時 卽無分別者 卽同一體 

是名三學等用

 

12. 무생심(無生心)

 

"만약 마음이 청정함에 머물 때에는 청정함에 집착하는 것이 아닙니까?"

"청정함에 머뭄을 얻었을 때에 청정함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이 청정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라."

"마음이 공에 머물 때에는 공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까?"

"만약 공하다는 생각을 짓는다면 곧 공에 집착한 것이니라."

"만약 마음이 머뭄이 없는 곳에 머물 때에 머뭄이 없는 곳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까?"

"다만 공한 생각을 지으면 곧 집착할 곳이 없으니 네가 만약 머물 바 없는 마음을 분명하고 밝게 알고저 할진댄 바로 좌선할 때에 다만 마음만 알고, 모든 사물을 생각하여 헤아리지 말며 모든 선악을 생각하여 헤아리지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생각하여 헤아리지 아니하면 과거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지니 곧 과거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미래의 일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니 원하지도 아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하면 미래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지니 곧 미래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현재의 일은 이미 현재라 일체의 일에 집착함이 없음을 알 뿐이니, 집착함이 없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집착함이 없음인지라 현재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서 곧 현재의 일이 없다고 하느니라. 삼세를 거두어 모을 수 없음이 또한 삼세가 없다고 말하느니라.

   

마음이 만약 일어날 때에 따라가지 아니하면 가는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 없어짐이요, 만약 마음이 머물 때에 또한 머뭄에 따르지 아니하면 머무는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서 머무는 마음이 없음이니, 이것이 머무는 곳 없는 곳에 머문다고 하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머뭄이 머뭄에 있을 때에는 다만 사물이 머물 뿐이요, 또한 머무는 곳이 없으면 머무는 곳 없음도 없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마음이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면 곧 본래 마음[本心]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성품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느니라.

   

만약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마음이란 곧 부처님 마음[佛心]이며, 또한 해탈심이며, 또한 보리심이며, 또한 무생심이며, 또한 색의 성품이 공함이라 이름하나니, 경에 이르기를 '무생법인을 증득했다'고 함이 이것이니라.

   

너희들이 만약 이와 같이 아직 체득하지 못하였을 때는 노력하고 노력하여 부지런히 공력을 더하여 공부를 성취하면 스스로 알 수 있으니, 그러므로 안다고 하는 것은 일체처에 무심함이 곧 아는 것이니라.

   

무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되어 참되지 않음이 없으니, 거짓됨이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인 것이며 참됨이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라. 다만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곧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란 자연해탈이니라."

 

問 若心住淨時 不是着淨否

答 得住淨時 不作住淨想 是不着淨

問 心住空時 不是着空否

答 若作空想 卽名着空

問 若心得住無住處時 不是着無住處否

答 但作空想 卽無有着處 汝若欲了了識無所住心時 正坐之時 但知心 莫思量一切物 一切善惡 都莫思量 過去事 已過去而莫思量 過去心 自絶 卽名無過去事 未來事未至 莫願莫求 未來心 自絶 卽名無未來事 現在事 已現在 於一切事 但知無著 無著者 不起憎愛心 卽是無著 現在心 自絶 卽名 無現在事 三世不攝 亦名無三世也 心若起去時 卽莫隨去去心 自絶 若住時 亦莫隨住 住心 自絶 卽無住心 卽是住

無住處也 若了了自知 住在住時 只物住 亦無住處 亦無無住處也 若自了了知 心不住一切處 卽名了了見本心也 亦名了了見性也 只箇不住一切處心者 卽是佛心 亦名解脫心 亦 名菩提心 亦名無生心 亦名色性空 經云證無生法忍是也 汝若未得如是之時 努力努力 勤加用功 功成自會 所以會者 一切處無心 卽是會 言無心者 無假不眞也 假者 愛憎心 是也 眞者 無愛憎心 是也 但無愛憎心 卽是二性空 二性空者

自然解脫也

 

13. 상주(常住)

 

"앉아서만 쓸 수 있는 것입니까, 다닐 때도 또한 쓸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 공(功)을 쓴다고 말함은 단지 앉아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하는 짓는 바 움직이는 모든 때 가운데 항상 써서 사이가 끊어짐이 없음이 항상 머문다고 하느니라."

 

問 只坐爲用 行時 亦得爲用否

答 今言用功者 不獨言坐 乃至 行住坐臥所造運爲 一切時中 常用無間 卽名常住也

 

14. 오종법신(五種法身)

 

"[방광경(方廣經)]에 이르기를 '다섯 가지 법신은 첫째는 실상법신이요, 둘째는 공덕법신이요, 셋째는 법성법신이요, 네째는 응화법신이요, 다섯째는 허공법신이다'고 하였는데, 자기의 몸에는 어떤 것이 이것입니까?"

"마음이 무너지지 아니함을 아는 것이 실상법신이며, 마음이 만상을 포함하는 것을 아는 것이 공덕법신이며, 마음이 무심임을 아는 것이 법성법신이며, 근기따라 응하여 설법함이 응화법신이며, 마음이 형상이 없어 얻을 수 없음을 아는 것이 허공법신이니, 만약 이 뜻을 확실히 아는 이는 곧 증득할 것이 없음을 아느니라.

   

얻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음이 곧 불법법신을 증득한 것이요, 만약 증득함이 있고 얻음이 있음을 증득으로 삼는 이는 곧 삿된 견해의 증상만인이며 외도라고 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유마경]에 이르기를 '사리불이 천녀에게 묻되 그대는 얻은 바가 무엇이며 증한 바가 무엇이기에 말재주가 이와 같으냐' 하고 물으니, 천녀가 대답하기를 '나는 얻음도 없고 증함도 없어서 이와 같음을 얻었오. 만약 얻음이 있고 증함이 있으면 불법 가운데에 증상만인이 되는 것이오' 라고 하였느니라."

 

問 方廣經云 五種法身 一實相法身 二功德法身 三法性法身 四應化法身 五虛空法身 於自己身 何者是

答 知心不壞 是實相法身 知心含萬像 是功德法身 知心無心 是法性法身 隨根應說 是應化法身 

知心無形 不可得 是虛空法身 若了此義者 卽知無證也 無得無證者 卽是證佛法法身 若有證有得 以爲證者 卽邪見增上慢人也 名爲外道 何以故 維摩經云 舍利佛 問天女曰 汝何所得 何所證 辯乃得如是 天女答曰 我無得無證 乃得如是 若有得有證 卽於佛法中 爲增上慢人也

 

15. 등각(等覺)과 묘각(妙覺)

 

"경에 이르기를 '등각, 묘각'이라 하니, 무엇이 등각이며 무엇이 묘각입니까?"

"색(色)에 즉하고 공(空)에 즉함이 등각이요, 두 가지 성품이 공한(二性空) 까닭에 묘각이라 하며, 또한 깨달음이 없음과 깨달음이 없음도 없음을 일컬어 묘각이라 하느니라."

"등각과 묘각이 다릅니까, 다르지 않습니까?"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두 이름을 세운 것으로서, 본체는 하나요, 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니 내지 일체법이 모두 그러하니라."

 

問 經云 等覺妙覺 云何是等覺 云何是妙覺

答 卽色卽空 名爲等覺 二性空故 名爲妙覺 又云 無覺無無覺 名爲妙覺問 等覺與妙覺 爲別 爲不別

答 爲隨事方便 假立二名 本體是一 無二無別 乃至一切法皆然也

 

16. 설법(說法)

 

"[금강경]에 이르기를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다'하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반야의 체는 필경 청정하여 한 물건도 얻을 수 없음이 설할 법이 없다고 함이요, 반야의 공적한 본체 가운데에 항사의 묘용을 갖추어서 알지 못할 일이 없음이 법을 설한다고 함이니, 그러므로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라고 하느니라."

 

問 金剛云 無法可說 是名說法 其意云何

答 般若體畢竟淸淨 無有一物可得 是名無法可說 卽於般若 空寂體中 具恒沙之用 卽無事不知是名說法 故云無法可說 是名說法

 

17. 금강경의 경천(輕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수지독송하여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게 되면 이 사람은 전세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세의 사람들의 경멸과 천대를 받음으로 해서 전세의 죄업이 곧 소멸하여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대선지식을 아직 만나지 못하여 오직 악업만 짓고 청정한 본래 마음이 삼독의 무명에 덮여서 능히 나타나지 못하므로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말한 것이니라. 금세의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 것은, 곧 오늘 발심하여 불도를 구함으로 무명이 다 없어지고 삼독이 나지를 아니해서 곧 본래 마음이 명랑하고 다시 어지러운 생각이 없으며, 모든 악이 영원히 없어져 버리므로써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하느니라. 무명이 모두 없어져서 어지러운 생각이 나지 아니하면 자연히 해탈한 것이므로 마땅히 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니, 곧 발심한 때를 금세라 하는 것이요, 격생이 아니니라."

 

問 若有善男子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 先世罪業 應墮惡道 以今世人輕賤故 先世罪業 卽爲消滅 當得何뇩多羅三 三菩提 其義云何

答 只如有人 未遇大善知識 唯造惡業 淸淨本心 被三毒無明所覆 不能顯了故 云爲人輕賤也 以今世人輕賤者 卽是今日 發心求佛道 爲無明 滅盡 三毒 不生 卽本心 明朗 更無亂念 諸惡 永滅故 以今世人輕賤也 無明 滅盡 亂念 不生自然解脫故 云當得菩提 卽發心時名爲今世 非隔生也

 

18. 여래(如來)의 오안(五眼)

 

"또 여래의 다섯 가지 눈이란 어떤 것입니까?"

"색의 청정함을 보는 것이 육안이요, 색의 본체가 청정함을 보는 것이 천안이요, 모든 색의 경계와 내지 선악에 대해서 모두 미세하게 분별하여 물듦이 없고 그 가운데 자재함이 혜안이요, 보아도 보는 바가 없음이 법안이요, 보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음도 없는 것이 불안이라고 하느니라."

 

又云 如來五眼者 何

答 見色淸淨 名爲肉眼 見體淸淨 名爲天眼 於諸色境乃至 善惡 悉能微細分別 無所染著 於中 自在名爲慧眼 見無所見 名爲法眼 無見無無見 名爲佛眼

 

19. 대승(大乘)과 최상승(最上乘)

 

"또 대승과 최상승의 뜻은 어떠합니까?"

"대승이란 보살승이요, 최상승이란 불승이니라."

"어떻게 닦아야 이 승을 얻습니까?"

"보살승을 닦음이 대승이니 보살승을 증득하여 다시 관(觀)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닦을 곳이 없음에 이르러 담연히 항상 고요하여 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아니함이 최상승이니 곧 이것이 불승이니라."

 

又云 大乘最上乘 其義云何

答 大乘者 是菩薩乘 最上乘者 是佛乘

又問 云何修而得此乘

答 修菩薩乘者 卽是大乘 證菩薩乘 更不起觀 至無修處 湛然常寂 不增不減 名最上乘 卽是佛乘也

 

20. 정혜(定慧)를 함께 씀

 

"[열반경]에 이르기를 '선정은 많고 지혜가 적으면 무명을 떠나지 못하며 선정은 적고 지혜가 많으면 삿된 견해를 증장하며 선정과 지혜를 함께 하는 까닭에 해탈이다'고 하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일체 선악에 대하여 모든 것을 분별함이 지혜요, 분별하는 곳에 애증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물드는 바에 따라가지 아니함이 선정이니, 곧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니라."

 

問 涅槃經云 定多慧少 不離無明 定少慧多 增長邪見 定慧等故 卽名解脫 其義云何

答 對一切善惡 悉能分別 是慧 於所分別之處 不起愛憎 不隨所染 是定 卽是定慧等用也

 

21. 경상(鏡像)과 정혜(定慧)

 

"말이 없고 설함이 없음이 곧 선정이라 하니, 바로 말하고 설할 때도 선정이라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말함과 말하지 않음을 논하지 않고 항상 선정인 것이니라. 왜냐하면 선정의 본성을 쓰기 때문에 말하거나 분별할 때에 곧 말하거나 분별함도 선정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공(空)한 마음으로 색(色)을 볼 때에는 색을 볼 때도 또한 공이며, 만약 색을 보지 아니하고 말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을 때도 또한 공이며, 내지 보고 듣고 깨닫고 알 때에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공하기 때문에 곧 일체처에 있어서 모두 공한 것이니, 공이란 곧 집착이 없음이며 집착이 없음이 곧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니라.

   

보살이 항상 이와 같이 공 그대로[等空]의 법을 써서 구경에 이르는 까닭에 선정과 지혜가 함께 함을 곧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다시 그대들을 위하여 비유로써 나타내 보여 그대들로 하여금 분명하게 알아서 의심을 끊게 하리라.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모습을 비출 때에 그 밝음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추지 아니할 때도 또한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밝은 거울의 작용에는 밝게 비친다는 정(情)이 없으므로 비출 때도 움직이지 않고 비추지 아니할 때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라. 어째서 그러냐 하면 분별의 정(情)이 없는 가운데에는 움직이는 것도 없고 움직이지 않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또,

  

'햇빛이 세상을 비출 때 그 빛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약 비추지 않을 때도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빛이 분별의 정(情)이 없기 때문이니 정이 없음으로써 빛이 비추므로 움직이지 아니하며 비추지 않을 때도 또한 움직이지 아니 하느니라. 비춘다 함은 지혜요, 움직이지 아니한다 함은 선정이니 보살이 선정과 지혜를 함께한 법을 써서 삼먁삼보리를 얻는 까닭에 선정과 지혜를 함께 씀이 곧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정(情)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범부의 정이 없음이요, 성인의 정이 없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범부의 정이며 어떤 것이 성인의 정입니까?"

"만약 두 가지 성품을 일으키면 곧 범부의 정이요, 두 가지 성품이 공(空)하기 때문에 곧 성인의 정이니라."

 

又問 無言無說 卽名爲定 正言說之時 得名定否

答 今言定者 不論說與不說常定 何以故 爲用定性 言說分別時 卽言說分別 亦定 若以空心 觀色時 卽觀色時 亦空 若不觀色不說不分別時 亦空 乃至見聞覺知 亦復如時 何以 故 爲自性空 卽於一切處悉空 

空卽無著 無著 卽是等用 爲菩薩 常用如是等空之法 得至究竟故 云定慧等者 卽名解脫也

今更爲汝譬喩顯示 令汝惺惺得解斷疑 譬如明鑑照像之時 其明 動否 否也 不照時 亦動否 不也 何以故 爲明鑑用 無情明照 所以照時 不動 不照 亦不動 何以故 爲無情之中 無有動者 亦無不動者 又如日光 

照世之時 其光 動否 不也若不照時 動否 不也 何以故 爲光無情故 用無情光照 所以不動 不照亦不動 

照者 是慧 不動者 是定 菩薩 用是定慧等法 得三菩提故 云定慧等用 卽是解脫也 今言無情者 無凡情 

非無聖情也問 云何是凡情 云何是聖情

答 若起二性 卽是凡情 二性空故 卽是聖情

 

22. 언어도단 심행처멸(言語道斷 心行處滅)

 

"경에 이르기를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 그 뜻이 어떠합니까?"

"말로써 뜻을 나타냄에 뜻을 얻으면 말이 끊어지니 뜻이 곧 공함이요, 공함이 곧 도인지라, 도는 곧 말이 끊어진 까닭에 언어의 길이 끊어졌다고 하느니라.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중도실제의 뜻을 얻어서 다시 관(觀)을 일으키지 아니함을 말함이니, 관(觀)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곧 나는 것이 없음(無生)이니라. 나는 것이 없는 까닭에 곧 모든 색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색의 성품이 공한 까닭에 곧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짐이요,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짐이 곧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진 것이니라."

 

問 經云 言語道斷心行處滅 其義如何

答 以言顯義 得義言絶 義卽是空 空卽是道 道卽是絶言故 云言語道斷 心行處滅 謂得義實際更不起觀 不起觀故 卽是無生 以無生故 卽一切色性空 色性空故 卽萬緣 俱絶 萬緣具絶者 卽是心行處滅

 

23. 여여(如如)

 

"여여란 어떤 것입니까?"

"여여(如如)란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이니 마음이 진여인 까닭에 여여라고 하느니라. 과거 모든 부처님들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셨고 현재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시고 미래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또한 성도하실 것이니, 삼세에 닦아 증한 바의 도가 다름이 없으므로 여여라 함을 알지니라.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들도 또한 같으며 미륵에 이르러도 또한 같으며 내지 일체 중생에 이르러도 모두 같다. 왜냐하면 불성이란 끊어지지 아니하고 있는 성품이기 때문이니라'고 하였느니라."

 

問 如如者 云何

答 如如 是不動義 心眞如故名如如也 是知過去諸佛 行此行 亦得成道 現在佛 行此行 亦得成道 未來佛 行此行 亦得成道 三世所修證道 無異故 名如如也 維摩經云 諸佛 亦如也 至於彌勒 亦如也 乃至一切衆生 悉皆如也 何以故 爲佛性 不斷有性故也

 

24. 즉색즉공(卽色卽空)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하며 범에 즉하고 성에 즉함이 돈오입니까?"

"그러하니라."

"어떤 것이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함이며 어떤 것이 범부에 즉하고 성인에 즉한 것입니까?"

"마음에 물듦이 있음이 곧 색이요, 마음에 물듦이 없음이 곧 공이며, 마음에 물듦이 있음이 곧 범부요 마음에 물듦이 없음이 곧 성인이니라. 또한 진공묘유이므로 곧 색이요, 색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곧 공이니, 지금 공이라고 말한 것은 이 색의 성품이 스스로 공함이요 색이 없어져서 공한 것은 아니니라. 지금 색이라고 하는 것은 이 공의 성품이 스스로 색이요, 색이 능히 색인 것은 아니니라."

 

問 卽色卽空 卽凡卽聖 是頓悟否

答 是

問 云何是卽色卽空 云何是卽凡卽聖

答 心有染 卽色 心無染 卽空 心有染 卽凡 心無染 卽聖又云 眞空妙有故 卽色 色不可得故 卽空 

今言空者 是色性自空 非色滅空 今言色者 是空性自色 非色能色也

 

25. 진(盡)과 무진(無盡)

 

"경에 이르기를 '다함과 다함 없음의 법문'이란 무슨 뜻입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한 까닭에 보고 들음이 나지 않음이 다함[盡]이니 다함이란 모든 망루(妄漏)가 다함이며, 다함이 없음은 남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하사의 묘용을 갖추고 있어서 일을 따라 응하여 나타나서 모두 다 구족하여, 본체 가운데에 손감이 없음을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다함과 다함 없음의 법문인 것이니라."

"다함과 다함 없음이 하나입니까, 다릅니까?"

"본체는 하나이나 말하면 다름이 있느니라."

"본체가 이미 하나일진댄 어째서 다름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라 함은 말의 본체[體]요, 말함은 본체의 작용이니 일을 따라서 응용하는 까닭에 본체는 같으나 말함은 다르다고 하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천상의 한 해[日] 아래 여러 가지 그릇들을 놓아두고 물을 채우면 하나하나의 그릇 가운데 모두 해가 있어서, 모든 그릇 가운데의 해가 다 원만하여 하늘 위의 해와 아무런 차별이 없는 까닭에 본체는 같다고 말하는 것이요, 그릇에 따라 이름을 세워서 곧 차별이 있으므로 다른 것이니라. 그러므로 본체는 같으나 말하면 곧 다름이 있다고 하느니라.

 

그릇에 나타난 모든 해가 모두 원만하여 하늘의 본래 해와 또한 손감이 없는 까닭으로 다함이 없다고 하느니라."

 

問 經云 盡無盡法門如何

答 爲二性空故 見聞無生 是盡 盡者 諸漏盡 無盡者 於無生體中 具恒沙妙用 隨事應現 悉皆具足 於本體中 亦無損滅 是名無盡 卽是盡無盡法門也

問 盡與無盡 爲一 爲別

答 體是一 說卽有別

問 體旣是一 云何說別

答 一者 是說之體 說是體之用 爲隨事應用故 云體同說別 喩如天上一日下 置種種盆器盛水 一一器中 皆有於日 諸器中日 悉皆圓滿 與天上日 亦無差別故 云體同 爲隨器立名 卽有差別 所以有別 故云體同 說卽有別 所現諸日 悉皆圓滿 於上本日 亦無損滅故 云無盡也

 

26. 불생불멸(不生不滅)

 

"경에 이르기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하니 어떤 법이 나지 아니하며 어떤 법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착하지 않음이 나지 않음이요, 착한 법은 없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어떤 것이 착함이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음입니까?"

"착하지 않음이란 염루심(染漏心)이요, 착한 법이란 염루심이 없음이니 다만 염루가 없으면 곧 착하지 않음이 나지 않음이며, 염루가 없음을 얻었을 때에 곧 청정하고 둥글고 밝아 담연히 항상 고요해서 마침내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착한 법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나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한 것이니라."

 

問 經云 不生不滅 何法不生 何法不滅

答 不善 不生 善法 不滅

問 何者善 何者不善

答 不善者 是染漏心 善法者 是無染漏心 但無染無漏 卽是 不善不生 得無染無漏時 卽淸淨圓明 

湛然常寂 畢竟不遷 是名善法不滅也 此卽是不生不滅

 

27. 불계(佛戒)는 청정심(淸淨心)

 

"[보살계]에 이르기를 '중생이 부처님 계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의 지위에 들어가는지라 지위가 대각과 같아서 참으로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다'고 하시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계란 청정한 마음이니 만약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청정행을 수행하여 받는 바가 없는 마음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의 계를 받았다고 하느니라.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다 청정하여 받음이 없는 행을 닦아서 불도를 이룬 것이니, 지금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받음이 없는 청정행을 닦는 사람은 곧 부처님과 더불어 공덕을 균등하게 써서 다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 지위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 깨달은 사람은 부처님과 더불어 깨달음이 같으므로 지위가 대각과 같아서 참으로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니라. 청정한 마음으로부터 지혜가 나는지라 지혜가 청정함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며 또한 이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니라."

 

問 菩薩戒云 衆生 受佛戒 卽入諸佛位 爲同大覺已 眞是諸佛子 其義云何

答 佛戒者 淸淨心 是也 若有人 發心 修行淸淨行 得無所受心者 名受佛戒也 過去諸佛 皆修淸淨無受行 得成佛道今時 有人 發心修無受淸淨行者 卽與佛功德等用 無有異也 故云入諸佛位也 如是悟者 與佛悟同故 云位同大覺已 眞是諸佛子 從淸淨心生智 智淸淨 名爲諸佛子 亦名此佛子

 

28. 불(佛)과 법(法)의 선후(先後)

 

"부처님과 법에 있어서 부처님이 앞입니까, 법이 앞입니까? 만약 법이 앞이라고 하면 법은 어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이며, 만약 부처님이 앞이라고 하면 어떤 가르침을 이어 받아서 도를 이룬 것입니까?"

"부처님은 법보다 앞에 있기도 하고 법의 뒤에 있기도 하느니라."

"어찌하여 부처와 법에 앞뒤가 있습니까?"

"만약 적멸법에 의거하면 법이 앞이요 부처님이 뒤이며, 문자법에 의거하면 부처님이 앞이요 법은 뒤이니라. 왜냐하면 일체 모든 부처님이 모두 적멸법에 의해서 성불을 했으므로 곧 법이 앞이요 부처님은 뒤이니,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의 스승됨은 이른바 법이다'고 하였느니라. 성도하고 나서 비로소 십이부경을 널리 설하여 중생을 인도하여 교화하시니 중생이 부처님 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수행하여 성불하므로 곧 부처님이 앞이요 법은 뒤인 것이니라."

 

問 只是佛之與法 爲是佛在先 爲是法在先 若法在先 法是何佛所說 若佛在先 承何敎而成道

答 佛 亦在法先 亦在法後

問 因何佛法先後

答 若據寂滅法 是法先佛後 若據文字法 是佛先法後 何以 故 一切諸佛 皆因寂滅法而得成佛 卽是法先佛後 經云 諸佛所師 所謂法也 得成道已 然始廣說十二部經 引化衆生衆生 承佛法敎 修行得成佛 卽是佛先法後也

 

29. 설통(說通)과 종통(宗通)

 

"어떤 것이 설법은 통하고 종취는 통하지 못한 것입니까?"

"말과 행동이 서로 틀림이 곧 설법은 통하고 종취는 통하지 못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한 것입니까?"

"말과 행동이 차이가 없음이 곧 설법도 통하고 종취도 통한 것이니라."

 

問 云何是說通宗不通

答 言行相違卽是說通宗不通

問 云何是宗通說亦通

答 言行無差 卽是說通宗亦通

 

30. 도(到)와 부도(不到)

 

"경에 이르기를 '이르되 이르지 아니하고 이르지 않되 이른 법'이란 무엇입니까?"

"말은 이르러도 행은 이르지 못함이 이르렀으나 이르지 못함이요, 행은 이르러도 말은 이르지 못함이 이르지 않되 이르른 것이며, 행과 말이 함께 이르름이 이르고 이름이라 하느니라."

 

問 經云 到不到不到到之法云何

答 說到行不到 名爲到不到 行到說不到 名爲不到到 行說俱到 名爲到到

 

31. 부진유위(不盡有爲)며 부주무위(不住無爲)

 

"불법은 유위(有爲)에도 다하지 아니하고 무위(無爲)에도 머물지 아니한다 하니 어떤 것이 유위에도 다하지 아니하고 무위에도 머물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유위에도 다하지 아니한다 함은 처음 발심으로부터 드디어 보리수 아래에서 등정각을 이루시고 마침내 쌍림에 이르러 열반에 드실 때까지 그 가운데 일체법을 모두 다 버리지 않음이 곧 유위(有爲)에도 다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무위(無爲)에도 머물지 아니한다 함은 비록 무념을 닦는다 할지라도 무념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으며, 비록 공을 닦으나 공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으며, 비록 보리·열반·무상·무작을 닦으나 무상·무작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음이 곧 무위에도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問 佛法 不盡有爲 不住無爲 何者是不盡有爲 何者是不住 無爲

答 不盡有爲者 從初發心 至菩提樹下成等正覺 後至雙林入 般涅槃 於中 一切法 悉皆不捨卽是不盡有爲也 不住無爲者 雖修無念 不以無念 爲證 雖修空 不以空爲證 雖修菩提涅 槃無相無作 不以無相無作 爲證 卽是不住無爲也

 

32. 지옥유무(地獄有無)

 

"지옥이 있습니까, 지옥이 없습니까?"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하느니라."

"어째서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합니까?"

"마음을 따라 짓는 바 일체 악업이 곧 지옥이 있음이요, 만약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곧 지옥이 없느니라."

 

問 爲有地獄 爲無地獄

答 亦有亦無

問 云何亦有亦無

答 爲隨心所造一切惡業 卽有地獄 若心無染 自性 空故 卽無地獄

 

33. 중생(衆生)과 불성(佛性)

 

"죄를 지은 중생도 불성이 있습니까?"

"또한 불성이 있느니라."

 이미 불성이 있을진댄 바로 지옥에 들어갈 때에 불성도 함께 들어갑니까?"

"함께 들어가지 않느니라."

"바로 지옥에 들어갈 때에 불성은 다시 어느 곳에 있습니까?"

"또한 함께 들어가느니라."

"이미 함께 들어갈진댄 지옥에 들어갈 때 중생이 죄를 받음에 불성도 또한 함께 죄를 받습니까?"

"불성이 비록 중생을 따라 함께 지옥에 들어가지만 중생이 스스로 죄의 고통을 받는 것이요 불성은 원래 고통을 받지 않느니라."

"이미 함께 지옥에 들어갔을진댄 무엇 때문에 지옥고를 받지 아니합니까?"

"중생이란 모양[相]이 있음이니 모양이 있는 것은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있음이요, 불성이란 모양이 없음이니 모양이 없는 것은 곧 공한 성품이니라. 그러므로 진공의 성품은 무너짐이 없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허공에 땔 나무를 쌓으면 땔 나무는 스스로 무너지나 허공은 무너지지 않음과 같으니 허공은 불성에 비유하고 땔 나무는 중생에 비유한 것이니, 그러므로 함께 들어가나 함께 받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問 受罪衆生 有佛性否

答 亦有佛性

問 旣有佛性 正入地獄時 佛性 同入否

答 不同入

問 正入之時 佛性 復在何處

答 亦同入

問 旣同入 正入時衆生 受罪 佛性 亦同受罪否

答 佛性 雖隨中生同入 是衆生 自受罪苦 佛性 元來不受

問 旣同入 因何不受

答 衆生者 是有相 有相者 卽有成壞 佛性者 是無相 無相者 卽是空性也 是故 眞空之性 無有壞者 喩如有人 於空積薪 薪自受壞 空不受壞也 空喩佛性 薪喩衆生 故 云同入 而不同受也

 

34. 삼신사지(三身四智)

 

"팔식을 굴려서 네 가지 지혜를 이루며 네 가지 지혜를 묶어서 삼신(三身)을 이룬다 하니, 몇 개의 식이 한 지혜를 함께 이루며, 몇 개의 식이 한 지혜를 홀로 이루는 것입니까?"

"눈·귀·코·혀·몸의 이 다섯 식이 함께 성소작지를 이루고, 제육식은 의식이니 홀로 묘관찰지를 이루고, 제칠 심식은 홀로 평등성지를 이루며, 제팔 함장식은 홀로 대원경지를 이루느니라."

"이 네 가지 지혜는 각각 다른 것입니까, 같은 것입니까?"

"본체는 같으나 이름이 다르니라."

"본체가 이미 같을진댄 어째서 이름이 다르며, 이미 일을 따라 이름을 세울진댄 바로 하나의 본체일 때 어떤 것이 대원경지입니까?"

"당연히 공적하여 둥글고 밝아 움직이지 아니함이 곧 대원경지요, 능히 모든 육진에 대하여 사랑함과 미움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 곧 평등성지요, 능히 모든 육근의 경계에 들어가 잘 분별하되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자재를 얻음이 곧 묘관찰지요, 능히 모든 육근으로 하여금 일을 따라서 응용하여 모두 정수(正受)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이 없음이 곧 성소작지니라."

"네 가지 지혜[四智]를 묶어서 세 가지 몸[三身]을 이룬다 함은 몇 개의 지혜가 함께 한 몸을 이루며 몇 개의 지혜가 홀로 한 몸을 이룹니까?"

"대원경지는 홀로 법신을 이루고, 평등성지는 홀로 보신을 이루며 묘관찰지와 성소작지는 함께 화신을 이루니, 이 세 가지 몸도 또한 거짓으로 이름을 세워 분별하여 다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한 것이니라. 만약 이 이치를 확실히 알면 또한 삼신의 응용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본체의 성품은 모양이 없어서 머물음이 없는 근본을 좇아서 서니 또한 머물음이 없는 근본도 없느니라."

 

問 轉八識成四智 束四智成三身 幾箇識 共成一智 幾箇識 獨成一智

答 眼耳鼻舌身 此五識 共成成所作智 第六 是意 獨成妙觀 察智 第七心識 獨成平等性智 第八含藏識 獨成大圓鏡智

問 此四智爲別 爲同

答 體同名別

問 體旣同 云何名別 旣隨事立名 正一體之時 何者是大圓 鏡智

答 湛然空寂 圓明不動 卽大圓鏡智 能對諸塵 不起愛憎 卽是二性空 二性空 卽平等性智 能入諸根境界 善能分別 不起亂想而得自在 卽是妙觀察智 能令諸根 隨事應用 悉入正受 無二相者卽是成所作智

問 束四智成三身者 幾箇智共成一身 幾箇智獨成一身

答 大圓鏡智 獨成法身 平等成智 獨成報身 妙觀察智與成 所作智 共成化身 此三身 亦假立名字分別 只令未解者看 若了此理 亦無三身應用 何以故 爲體性 無相 從無住本而立 亦無無住本

 

35. 불진신(佛眞身)

 

"어떤 것이 부처님의 참된 몸을 보는 것입니까?"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아니하는 것이 부처님의 참된 몸을 보는 것이니라."

"어째서 있음[有]과 없음[無]을 보지 않음이 부처님의 참된 몸[眞身]을 보는 것입니까?"

"있음[有]은 없음[無]으로 인해서 서고, 없음은 있음으로 인해서 나타나느니라. 본래 있음을 세우지 아니하면 없음도 또한 존재하지 아니하니 이미 없음이 존재하지 않는데 있음을 어디서 얻을 수 있으리오. 있음과 없음이 서로 인해서 비로소 있으니 이미 서로 인해서 있으니 모두가 생멸이니라. 다만 이 두 견해를 떠나면 곧 부처님의 참된 몸을 보는 것이니라."

"다만 있음[有]과 없음[無]도 오히려 서로 건립하지 못하거늘 부처님의 진신[眞身]이 다시 무엇을 좇아서 설 수 있습니까?"

"물음이 있기 때문이니, 만약 묻지 않을 때엔 진신의 이름도 서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만약 물건의 모양을 대할 때는 모양이 나타나나 만약 모양을 대하지 않을 때는 마침내 모양을 볼 수 없음과 같으니라."

 

問 云何是見佛眞身

答 不見有無卽是見佛眞身

問 云何不見有無卽是見佛眞身

答 有因無立 無因有顯 本不立有 無亦不存 旣不存無 有從何得 有之與無 相因始有 旣相因而有 悉是生滅也 但離此二見 卽是見佛眞身

問 只如有無 尙不可交建立 眞身 復從何而立

答 爲有問故 若無問時 眞身之名 亦不可立 何以故 譬如明鏡 若對物像時 卽現像 若不對像時 終不見像

 

36.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함(常不離佛)

 

"어떤 것이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마음에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고 경계를 대하여는 고요하여 어느 때나 필경 공적하면 이것이 곧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함이니라."

 

問 云何是常不離佛

答 心無起滅 對境寂然 一切時中 畢竟空寂 卽是常不離佛

 

37. 무위법(無爲法)

 

"어떤 것이 무위법(無爲法)입니까?"

"유위법(有爲法)이니라."

"지금 무위법을 물었거늘 어째서 유위라고 대답하십니까?"

"있음[有]은 없음[無]으로 인해서 서고 없음은 있음으로 인해서 나타나느니라. 본래 있음을 세우지 아니하면 없음은 어디서 날 것인가? 만약 참된 무위(無爲)를 논할진댄 곧 유위(有爲)도 취하지 아니하고 또한 무위도 취하지 아니함이 참된 무위법이니라. 왜냐하면 경에 이르기를 '만약 법의 모양을 취하면 곧 아상과 인상에 집착하고 만약 법의 모양 아닌 것을 취하여도 곧 아상과 인상에 집착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법도 취하지 말고 법 아님도 취하지 말라'고 하시니 이것이 곧 참된 법을 취함이니라. 만약 이 이치를 밝게 알면 곧 참된 해탈이며 둘 아닌 법문을 아는 것이니라."

 

問 何者是無爲法

答 有爲是

問 今問無爲法 因何答有爲是

答 有因無立 無因有顯 本不立有 無從何生 若論眞無爲者 卽不取有爲 亦不取無爲 是眞無爲法也 何以故 經云 若取法相 卽著我人 若取非法相 卽著我人 是故不應取法 不應取非法  卽是取眞法也 若了此理 卽眞解脫 卽會不以法問

 

38. 중도(中道)

 

"어떤 것이 중도의 뜻입니까."

"가[邊]의 뜻이니라."

"지금 중도를 물었거늘 무엇 때문에 가[邊]의 뜻이라고 대답하십니까?"

"가[邊]는 가운데[中]로 말미암아 서고 가운데[中]는 가[邊]로 말미암아 나느니라. 만약 본래 가[邊]가 없으면 가운데는 무엇을 따라 있으리오. 지금 가운데라고 하는 것은 가로 말미암아 비로소 있는 것이므로 가운데와 가가 서로 인하여 서 있어서 모두가 항상함이 없음[無常]을 알지니 색·수·상·행·식도 이와 같으니라."

 

問 何者是中道義

答 邊義是

問 今問中道 因何答邊義是

答 邊因中立 中因邊生 本若無邊 中從何有 今言中者 因邊始有故 知中之與邊 相因以立 悉是無相 色受想行識 亦復如是

 

39. 오음(五陰)

 

"어떤 것을 오음(五陰)이라 합니까?"

"색을 대하여 색에 물들어 색을 따라 남[生]을 받는 것을 색음(色陰)이라 하며, 팔풍(八風)을 받아들인 까닭으로 삿된 믿음을 즐겨 모아서 받아들임에 따라 남[生]을 받는 것을 수음(受陰)이라 하며, 미혹한 마음이 생각을 취하여 생각을 따라 남[生]을 받는 것을 상음(相陰)이라 하며, 모든 행을 결집하여 행을 따라 남[生]을 받는 것을 행음(行陰)이라 하며, 평등한 본체에 망령되이 분별을 일으키고 얽매어 붙어서 허망한 의식이 남[生]을 받는 것을 식음(識陰)이라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오음이라고 일컫느니라."

 

問 何名五陰等

答 對色染色 隨色受生 名爲色陰 爲領納八風 好集邪信 卽隨領受中生 名爲受陰 迷心取相 隨想受生 名爲想陰 結集諸行 隨行受生 名爲行陰 於平等體 妄起分別繫著 虛識受生 名爲識陰 故云五陰

 

40. 이십오유(二十五有)

 

"경에 이르기를 '이십오유(二十五有)'라고 하니 어떤 것입니까?"

"뒤의 몸을 받는 것이 이십오유이니, 뒤의 몸[後有身]이란 곧 육도에 생을 받는 것이니라. 중생이 현세에 마음이 미혹하여 기꺼이 모든 업을 맺어 뒤에 업을 따라 생(生)을 받는 까닭에 뒤가 있다[後有]고 하느니라. 세상에 만약 어떤 사람이 구경해탈을 닦을 뜻을 품고 무생법인을 증득한 사람은 곧 삼계를 영원히 떠나서 후유(後有)를 받지 않나니,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 사람은 곧 법신(法身)을 증득함이요 법신이란 곧 불신(佛身)이니라."

"이십오유의 이름을 어떻게 분별합니까?"

"본체는 하나이지만 씀에 따라 이름을 세워서 이십오유를 나타내기 때문이니, 이십오유는 십악과 십선과 오음이니라."

"어떤 것이 십악·십선입니까?"

"십악은 죽이는 것, 훔치는 것, 음행하는 것, 거짓말, 아첨하는 말, 이간하는 말, 나쁜말 내지 탐냄, 성냄, 삿된 견해이니 이것이 십악이요, 십선이란 다만 십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니라."

 

問 經云 二十五有 何者是

答 受後有身 是也 後有身者 卽六道受生也 爲衆生 現世心迷 好結諸業 後卽隨業受生故 云後有也 世若有人 志修究竟解脫 證無生法忍者 卽永離三界 不受後有 不受後有者 卽證法身 法身者 卽是佛身

問 二十五有名 云何分別

答 本體是一 爲隨用立名 顯二十五有 二十五有 十惡十善五陰 是 問 云何是十惡十善

答 十惡 殺盜狀 妄言綺言兩舌惡口 乃至貪瞋邪見 此名十惡 十善者 但不行十惡 卽是也

 

41. 무념(無念)과 돈오(頓悟)

 

1. 무념(無念)

"위에서 무념을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념이란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일체 경계가 없어서 나머지 생각으로 구함이 없음이며, 모든 경계와 사물에 대하여 영영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이 곧 무념이니라. 무념이란 참된 생각[眞念]을 이름함이니 만약 생각으로 생각을 삼는다면 곧 삿된 생각[邪念]이요 바른 생각[正念]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경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에게 육념(六念)을 가르치면 생각이 아님[非念]이다'고 하나니, 육념이 있으면 삿된 생각[邪念]이요 육념이 없으면 곧 참된 생각[眞念]이라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선남자야, 우리가 무념법(無念法) 가운데 머물러서 이와 같은 금색의 삼십이상을 얻어 큰 광명을 놓아서 세계를 남김없이 비추나니, 이 불가사의한 공덕은 부처님이 설명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머지 승(乘)들이 능히 알 수 있으리오' 하였느니라.

   

무념을 얻은 사람은 육근(六根)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자연히 모든 부처님 지견에 들어가나니, 이러한 법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 곳집이며 또 법의 곳집이라 하나니, 곧 능히 일체가 부처이며 일체가 법이니라. 왜냐하면 무념인 까닭이니, 경에 이르기를 '일체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이 경으로부터 나오신다'고 하였느니라."

  

"이미 무념이라고 하면서 부처님 지견에 들어간다고 하니 다시 무엇을 좇아서 세웁니까?"

"무념을 좇아서 세우니 무슨 까닭인가? 경에 이르기를 '머뭄이 없는 근본을 좇아서 일체법을 세운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비유컨대 밝은 거울과 같다'고 하였으니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남이니, 왜냐하면 거울이 밝은 까닭에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나느니라.

   

배우는 사람의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에 망념이 나지 아니하고 아인심(我人心)이 없어져서 필경 청정하니 청정한 까닭으로 능히 한량없는 지견이 나느니라. 돈오란 금생을 떠나지 않고 곧 해탈을 얻나니 무엇으로써 그것을 아는가? 비유컨대 사자새끼가 처음 태어날 때도 사자인 것과 같으니 돈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돈오를 닦을 때에 곧 부처님 지위에 들어가느니라. 마치 대나무가 봄에 순이 나서 그 봄을 여의지 않고 곧 어미 대나무와 같게 되어 함께 다름이 없는 것과 같음이니, 왜냐하면 마음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問 上說無念 猶未盡決

答 無念者 一切處 無心 是 無一切境界 無餘思求是 對諸境色 永無起動 是卽無念 無念者 是名眞念也 若以念爲念者 卽是邪念 非爲正念 何以故 經云 若敎人六念 名爲非念有六念 名爲邪念 無六念者 卽眞念 經云 善男子 我等 住於無念法中 得如是金色三十二相 放大光明 照無餘世界 不可思議功德 佛說之 猶不盡 何況餘乘能知也 得無念者 六根 無染故 自然得入諸佛知見 得如是者 卽名佛藏 亦名法

藏 卽能一切佛 一切法 何以故 爲無念故 經云 一切諸佛等 皆從此經出

問 旣稱無念 入佛知見 復從何立

答 從無念立 何以故 經云 從無住本 立一切法 又云喩如明鑑 鑑中 雖無像而能現萬像 何以故 爲鑑明故 能現萬像 學人 爲心無染故 妄念 不生 我人心 滅 畢竟淸淨 以淸淨故 能生無量知見 頓悟者 不離此生 卽得解脫 何以知之 譬如師子兒 初生之時 卽眞獅子 修頓悟者 亦復如是 卽修之時 卽入佛位 如竹春生筍 不離於春 卽與母齊 等無有異 何以故 爲心空故

 

2. 돈오(頓悟)

"돈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순식간에 망념을 없애버리고 영원히 아인심(我人心)을 끊어서 필경 공적하여 곧 부처님과 같게 되어 다름이 없는 까닭에 범부가 성인이라고 하느니라. 돈오를 닦는 사람은 이 몸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삼계를 뛰어나나니, 경에 이르기를 '세간을 무너뜨리지 아니하고 세간을 뛰어나며 번뇌를 버리지 아니하고 열반에 들어간다'고 하였느니라.

   

돈오를 닦지 않는 사람은 마치 여우가 사자를 따라 좇아 다녀서 백천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사자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느니라."

 

修頓悟者 亦復如是 爲頓除妄念 永絶我人 畢竟空寂 卽與佛齊 等無有異故 云卽凡卽聖也 修頓悟者 不離此身 卽超三界 經云 不壞世間而超世間 不捨煩惱而入涅槃 不修頓悟者 猶如野干 隨逐師子 經百千劫 終不得成師子

 

3. 진여(眞如)와 무심(無心)

"진여의 성품은 실로 공한 것입니까, 실로 공하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공하지 않다고 말하면 곧 모양이 있는 것이요 만약 공하다고 말하면 곧 단멸이니, 일체 중생이 마땅히 무엇을 의지해서 닦아야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진여의 성품은 공하면서 또한 공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진여의 묘한 본체는 형상이 없어서 얻을 수 없으므로 또한 공하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공하여 모양이 없는 본체 가운데에 항사묘용이 구족하여 곧 사물에 응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또한 공하지 않다고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하나를 알면 천 가지가 따라오고 하나를 미혹하면 만 가지를 미혹한다'하니, 만약 사람이 하나를 지키면 만 가지 일을 마치는 것이니 이것이 오도(悟道)의 묘함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삼라만상이 한 법의 도장 찍힌 바라' 하니 어떻게 해서 한 법 가운데에서 갖가지 견해가 나오는 것인가?

   

이러한 공업(功業)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근본이 되니 만약 마음을 항복받지 아니하고 문자를 의지해서 증득하려 하면 옳지 못함이라.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여서 피차가 함께 떨어질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여 자세히 살필지니라.

   

다만 일이 닥쳐옴에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이렇게 얻은 사람은 곧 열반에 들어 무생법인을 증득하느니라. 이것을 불이법문이라 하며 또 다툼이 없다고 하며 일행삼매라고 하나니, 왜냐하면 필경 청정하여 아상과 인상이 없는 까닭이니라. 애증을 일으키지 않음이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며 보는 바가 없음이니, 곧 이것이 진여의 얻음이 없는 변론이니라."

 

又問 眞如之性 爲實空 爲實不空 若言不空 卽是有相 若言空者 卽是斷滅 一切衆生 當依何修而得解脫

答 眞如之性 亦空亦不空 何以故 眞如妙體 無形無相 不可得也 是名亦空 然 於空無相體中 具足恒沙之用 卽無事不應 是名亦不空 經云 解一卽千從 迷一卽萬惑 若人 守一萬事畢 是悟道之妙也 經云 森羅及萬像 一法之所印 云何 一法中而生種種見 如此功業 由行爲本 若不降心 依文取證 無有是處 自??他 彼此俱墜 努力努力 細細審之 只是事來 不受 一切處 無心 得如是者 卽入涅槃 證無生法忍 亦名不二法門 亦名無諍 亦名一行三昧 何以故 畢竟淸淨 無我人故 不起愛憎 是二性空 是無所見 卽是眞如無得之辯

 

42. 중생자도(衆生自度)

 

"이 논(論)은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전하지 말며 오직 견해가 같고 행함이 같은 이에게 전할 것이요, 마땅히 앞 사람이 참으로 신심이 있어 감당하여 물러가지 않는 사람인가를 관찰할 것이니, 이러한 사람을 위해 설명하고 보이어서 깨닫도록 해야 하느니라.

   

내가 이 논(論)을 지은 것은 인연 있는 사람을 위함이요 명리를 구하고자 함이 아니니라. 다만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 천가지 경 만 가지 논(論)은 중생이 미혹하기 때문에 마음과 행동이 한결같지 아니하여 삿됨을 따라 대응하여 설명한 것이므로 곧 여러 차별이 있으나, 구경해탈의 이치를 논하는 경우 일진댄 다만 일이 다가와도 받지 아니하고 일체처에 무심하여 영영 고요함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필경에 청정하여 자연해탈이니라.

   

너희들은 헛된 이름을 구하여 입으로는 진여를 말하되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서는 안되느니라. 곧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서 스스로 속임이라 하나니, 마땅히 악도에 떨어지느니라. 한 세상의 헛된 이름과 쾌락을 구하지 말라. 모르는 사이에 억겁의 재앙을 받게 되는 것이니 힘쓰고 힘쓸지니라.

   

중생이 스스로 제도함이요 부처님이 능히 제도하지 못하나니,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때엔 과거 모든 부처님이 티끌 수와 같아서 일체 중생을 모두 제도하여 마쳤을 것이어늘, 무엇 때문에 우리들은 지금까지 생사에 유랑하며 성불하지 못하였는가? 중생이 스스로 제도함이요 부처님이 능히 제도하지 못함을 마땅히 알라. 노력하고 노력하여 스스로 닦아서 다른 부처님의 힘을 의지하지 말지니, 경에 이르기를 '무릇 법을 구하는 자는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此論 不傳無信 唯傳同見同行 當觀前人 有誠信心 堪任不退者 如是之人 乃可爲說 示之令悟 吾作此論 爲有緣人 非求名利 只如諸佛所說千經萬論 只爲衆生 迷故 心行不同 隨邪應說 卽有差別 如論究竟解脫理者 只是事來不受 一切處無心 永寂如空 畢竟淸淨 自然解脫 汝莫求虛名 口說眞如 心似猿  卽言行 相違 名爲自? 當墜惡道 莫求一世虛 名快樂 不覺長劫受殃 努力努力 衆生 自度 佛不能度 若佛

能度衆生時 過去諸佛 如微塵數 一切衆生 總應度盡 何故我等 至今流浪生死 不得成佛 當知衆生 自度 佛不能度 努力努力自修 莫倚他佛力 經云 夫求法者 不著佛求

 

43. 동처부동주(同處不同住)

 

"내세에 있어서는 잡된 배움의 무리가 많을 것인데 어떻게 함께 살겠습니까?"

"다만 그 빛을 온화하게 할 뿐이요, 그 업은 같이하지 말지니 장소는 같이하나 같이 살지는 아니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흐름을 따르나 성품은 항상하다'고 하였느니라.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은 스스로 일대사인연인 해탈의 일을 위할지니, 아울러 처음 배우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부처님 같이 공경하고 배우며, 자기의 덕을 높이고 남의 능력을 질투하지 말며, 자기의 행동을 살피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춰내지 아니하면, 일체처에 있어서 방해되고 장애됨이 전혀 없어 자연히 쾌락한 것이니라.

   

거듭 게송을 설하여 말하리라.

 

인욕이 첫째 가는 도라

먼저 아인심을 없앨지니

일이 옴에 받는 바 없으면

참다운 보리의 몸이니라.

 

問 於來世中 多有雜學之徒 云何共住

答 但和其光 不同其業 同處不同住 經云 隨流而性常也 只如學道者 自爲大事因緣解脫之事 具勿輕末學 敬學如佛 不高己德 不疾彼能 自察於行 不擧他過 於一切處 悉無妨  自然快樂也 重說偈云 忍辱 第一道 先須除我人 事來 無所受 卽眞菩提身

 

44. 일체처(一切處)에 무심(無心)

 

"[금강경]에 이르기를 '보살이 아법(我法)이 없는 사람은 여래가 참다운 보살이라'고 말씀하시며, 또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여 영원히 생사를 끊어서 일체처에 무심하면 곧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다'고 하였느니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여래가 열반을 증득하여 영원히 생사를 끊었다'고 하였느니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나는 지금 뜻이 매우 좋아서

남이 욕할 때도 괴로움이 없고

말없이 시비를 말하지 않나니

열반과 생사가 같은 길이로다.

내 집의 근본 종지를 사무쳐 알아

본래로 푸르고 검은 분별이 없나니

일체 망상의 분별은

세상 사람이 밝게 알지 못함임을 알지니라.

  말세의 범부에게 이르노니

마음 가운데 우거진 풀을 없애 버려라.

내 지금 뜻이 크게 넓어서

말하지 않고 일 없어 마음이 편안하나니

종용하여 자재해탈이라

동서 어디를 가나 쉬워 어렵지 않도다.

종일토록 말 없이 적막하여

생각 생각에 이치를 향해 생각하노니

자연히 소요하여 도를 보아

생사와 결정코 상관치 않는도다.

내 지금 뜻이 몹시 기특하여

세상의 침해와 속임에 향하지 않음이라

영화는 모두 헛된 속임수이니

헤진 옷 거친 음식으로 굶주림을 채우는도다.

길에서 세상 사람을 만나 말하기를 게을리하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바보라 하네.

겉으로는 질린 듯 암둔해 보이나

마음 가운데는 밝기가 유리같아서

라후라의 밀행에 묵묵히 계합하나니

너희 범부들이 알 바 아니로다.

 

내 너희들이 참 해탈의 이치를 알지 못할까 두려워서 거듭 너희들에게 말해 보이노라."

 

金剛經云 菩薩 無我法者 如來說名眞是菩薩 又云 不取卽不捨 永斷於生死 一切處 無心 卽名諸佛子 涅槃經云 如來證涅槃 永斷於生死 偈曰 我今意況大好 他人罵時無惱 無言不說是非 涅槃生死同道 識達自家本宗 猶來無有靑  一切妄想分別 將知世人不了 寄言凡夫末代 除却心中藁草 我今意況大寬 不語無事心安 從容自在解脫 東西去易不難 終日無言寂寞 念念向理思看 自然逍遙見道 生死定不相干 我今意況大奇 不向世上侵欺 榮華總是虛? 弊衣序食充飢 道逢世人懶語 世人咸說我癡 外現  暗鈍 心中明若瑠璃 默契羅 密行 非汝凡夫所知 吾恐汝等 不會了眞解脫理 再示汝等

 

45. 필경정(畢竟淨)

 

"[유마경]에 이르기를 '정토를 얻고져 할진댄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하시니 무엇이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까?"

"필경 청정으로 깨끗함(淨)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 청정으로 깨끗함을 삼는 것입니까?"

"깨끗함도 없고 깨끗함이 없음도 없음이 곧 필경 깨끗함이니라."

"어떤 것이 깨끗함도 없고 깨끗함이 없음도 없는 것입니까?"

"일체처에 무심함이 깨끗함이니 깨끗함을 얻었을 때에 깨끗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깨끗함이 없음이며, 깨끗함이 없음을 얻었을 때에 또한 깨끗함이 없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깨끗함이 없음도 없는 것이니라."

 

問 維摩經云 欲得淨土 當淨其心 云何是淨心

答 以畢竟淨 爲淨

問 云何是畢竟淨 爲淨

答 無淨無無淨 卽是畢竟淨

問 云何是無淨無無淨

答 一切處無心 是淨 得淨之時 不得作淨想 卽名無淨也 得無淨時 亦不得作無淨想 卽是無無淨也

 

46. 필경증(畢竟證)

 

"도를 닦는 사람은 무엇으로 증함을 삼습니까?"

"필경 증함으로 증함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 증함입니까?"

"증함이 없음과 증함이 없음도 없음이 필경 증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증함이 없음이며 어떤 것이 증함이 없음도 없는 것입니까?"

"밖으로 색과 소리 등에 물들지 아니하고 안으로 망념의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여 이렇게 얻은 것을 곧 증함이라고 함이니, 증함을 얻었을 때에 증득했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증함이 없음이며 증함이 없음을 얻었을 때에 또한 증함이 없다는 생각도 하지 아니함이 곧 증함이 없음도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問 修道者 以何爲證

答 畢竟證 爲證

問 云何是畢竟證

答 無證無無證 是名畢竟證

問 云何是無證 云何是無無證

答 於外 不染色聲等 於內 不起妄念心 得如是者 卽名爲證 得證之時 不得作證想 卽名無證也 得此無證之時 亦不得作 無證想 卽名無無證也

 

47. 진해탈(眞解脫)

 

"어떤 것이 해탈한 마음입니까?"

"해탈한 마음도 없고 또한 해탈한 마음이 없음도 없음이 곧 참 해탈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오히려 법도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리오' 하였으니 법이란 있음[有]이요 법 아님이란 없음[無]이니, 다만 있음과 없음[有無]을 취하지 아니하면 곧 참 해탈이니라."

 

問 云何解脫心

答 無解脫心 亦無無解脫心 卽名眞解脫也 經云 法尙應捨 何況非法也 法者 是有 非法 是無也 但不取有無 卽眞解脫

 

48. 필경득(畢竟得)

 

"어떻게 도를 얻습니까?"

"필경에 얻음으로써 얻음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의 얻음입니까?"

"얻음도 없고 얻음이 없음도 없음을 필경의 얻음이라 하느니라."

 

問 云何得道

答 以畢竟得 爲得

問 云何是畢竟得

答 無得無無得 是名畢竟得

 

49. 필경공(畢竟空)

 

"어떤 것이 필경의 공함입니까?"

"공함도 없고 공함이 없음도 없음을 곧 필경 공함이라고 하느니라."

 

問 云何是畢竟空

答 無空無無空 卽名畢竟空

 

50. 진여정(眞如定)

 

"어떤 것이 진여의 선정입니까?"

"선정도 없고 선정이 없음도 없음이 곧 진여의 선정이니, 경에 이르기를 '정한 법(定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할 것이 없으며 또한 여래가 설명할 정한 법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또 경에 이르기를 '비록 공을 닦으나 공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공한 생각을 짓지 않음이 곧 이것이며, 비록 선정을 닦으나 선정으로써 증함을 삼지 아니하여 선정이라는 생각을 짓지 않음이 곧 이것이며, 비록 깨끗함을 얻었으나 깨끗함으로써 증함을 삼지 아니하여 깨끗하다는 생각도 짓지 않음이 곧 이것이니라.

   

만약 선정을 얻고 깨끗함을 얻어서 일체처에 무심함을 얻었을 때에 이와 같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망상이니 곧 얽매이게 되어 해탈이라고 할 수 없느니라. 만약 이와 같이 얻었을 때에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자재를 얻되 이것을 가져 증함을 삼지 않으며 또한 이와 같다는 생각도 하지 아니할 때에 해탈을 얻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정진심을 일으키면 이는 망념으로서 정진이 아니니라. 만약 능히 마음이 망령되지 않으면 정진이 끝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問 云何是眞如定

答 無定無無定 卽名眞如定 經云 無有定法名阿뇩多羅三三菩提 亦無定法如來可說 經云 雖修空 不以空爲證 不得作空想 卽是也 雖修定 不以定爲證 不得作定想 卽是也 雖得淨 不以淨爲證 不得作淨想 卽是也 若得定得淨 得一切 處無心之時 卽作得如是想者 皆是妄想 卽被繫縛 不名解脫 若得如是之時 了了自知 得自在 卽不得將此爲證 亦不得作 如是想時 得解脫 經云 若起精進心 是妄非精進也 若能心不妄 精進無有涯

 

51. 중도(中道)는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

 

"어떤 것이 중도입니까?"

"중간도 없고 또한 이변(二邊)도 없음이 곧 중도니라."

"어떤 것이 이변입니까?"

"저 마음이 있고 이 마음이 있음이 이변이니라."

"어떤 것을 저 마음, 이 마음이라고 합니까?"

"밖으로 색과 소리에 얽매임을 저 마음이라 하며 안으로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이 마음이라 하느니라. 만약 밖으로 색에 물들지 아니하면 곧 저 마음이 없음이요, 안으로 망념이 나지 아니하면 곧 이 마음이 없음이니 이것은 두변이 없는 것이니라. 마음이 이미 두변이 없으니 중간이 또한 어찌 있을 것인가? 이와 같음을 얻는 것을 곧 중도라 하는 것이니 참된 여래의 도이니라.

   

여래의 도란 곧 일체 깨친 사람의 해탈이니, 경에 이르기를 '허공에 가운데와 가장자리가 없으니 모든 여래의 몸도 또한 그와 같다'고 하였느니라. 그리하여 일체 색이 공한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요 일체처에 무심함은 곧 일체색의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뜻이 다르지 아니하여 이것을 또한 색이 공함이라 하며 또 색이 법이 없음이라 하느니라.

   

너희가 만약 일체처에 무심함을 떠나서 보리·해탈과 열반·적멸과 선정·견성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느니라. 일체처에 무심이란 곧 보리·해탈과 열반·적멸과 선정 내지 육바라밀을 닦음이니 모두 성품을 보는 곳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금강경]에 이르기를 '조그마한 법도 얻을 수 없음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느니라."

 

問 云何是中道

答 無中間亦無二邊 卽中道也

問 云何是二邊

答 爲有彼心 有此心 卽是二邊

問 云何名彼心此心

答 外縛色聲 名爲彼心 內起妄念 名爲此心 若於外 不染色 卽名無彼心 內不生妄念 卽名無此心 此非二邊也 心旣無二邊 中亦何有哉 得如是者 卽名中道 眞如來道 如來道者 卽一切覺人解脫也 經云 虛空 無中邊 諸佛身亦然 然 一切色 空者 卽一切處無心也 一切處無心者 卽一切色性空 二義無別 亦名色空 

亦名色無法也 汝若離一切處無心 得菩提解脫 涅槃寂滅 禪定見性者 非也 一切處無心者 卽修菩提解脫涅 槃寂滅 禪定乃至六度皆見性處 何以故 金剛經云 無有少法 可得 是名阿뇩多羅三 三菩提也

 

52.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이 해탈(解脫)

 

"만약 일체 모든 행을 닦아서 구족하여 성취하면 수기를 얻을 수 있습니까?"

"얻을 수 없느니라."

"만약 일체의 법을 닦지 아니하고서 성취하면 수기를 얻을 수 있습니까?"

"얻을 수 없느니라."

"만약 이럴 때는 마땅히 무슨 법으로써 수기를 얻을 수 있습니까?"

"행 있음을 쓰지도 않고 행 없음도 쓰지 않으면 곧 수기를 얻느니라. 왜냐하면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행의 성품과 모양이 모두 다 무상하다'고 하였으며 [열반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이 가섭에게 말씀하시되 <모든 행이 항상한지라 옳은 곳이 없다>'고 하셨느니라.

   

너희는 다만 일체처에 무심하면 곧 모든 행이 없으며 또한 행이 없음도 없어서 곧 이것을 수기라 하느니라. 이른바 일체처에 무심이란 증애심이 없음이니 증애라고 말함은, 좋은 일을 보고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함을 곧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이라 하고, 나쁜 일을 보고도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함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느니라. 사랑함이 없음이란 곧 물든 마음이 없음을 이름하나니 곧 색의 성품이 공함이요, 색의 성품이 공함이란 곧 만 가지 인연이 다 끊어짐이요 만 가지 인연이 다 끊어짐은 자연해탈이니라.

   

너희들이 이것을 자세히 보아서 만약 뚜렷이 밝게 알지 못할 때엔 모름지기 빨리 물을 것이요 헛되이 보내지 말지어다. 너희들이 만약 이 가르침을 의지해 닦아서 해탈하지 못한다면 내가 곧 종신토록 너희들을 위해 대지옥고를 받을 것이며, 내가 만약 너희들을 속인 사람이면 내가 마땅히 나는 곳마다 사자나 호랑이나 이리의 밥이 될 것이다.

   

너희가 만약 이 가르침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부지런히 닦지 아니하면 내 알 바 아니니라.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에 다시 돌이킬 수 없나니 노력하고 노력해서 합당히 알아야 할지니라."

 

問 若有修一切諸行 具足成就 得受記否

答 不得

問 若以一切法無修 得成就 得受記否

答 不得

問 若恁?時 當以何法而得受記

答 不以有行 亦不以無行 卽得受記 何以故 維摩經云 諸行性相 悉皆無常 涅槃經云 佛告迦葉 諸行 是常 無有是處 汝但一切處無心 卽無諸行 亦無無行 卽名受記 所言一切處 無心者 無憎愛心 是 言憎愛者 見好事 不起愛心 卽名無愛心也 見惡事 亦不起憎心 卽名無憎心也 無愛者 卽名無染心 卽是色性空也 色性空者 卽是萬緣俱絶 萬緣俱絶者 自然解脫 汝細看之 若未惺惺了時 卽須早問 勿使空度 汝等 若依此敎修 不解脫者 吾卽終身爲汝受大地獄 吾若?汝者 吾當所生處 爲師子虎狼所食 汝若不依敎 自不勤修 卽不知也 一失人身 萬劫不復 努力努力 須合知爾

<<끝>>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1. 불보살[佛菩薩]께 헌사[獻辭]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님들께 머리 숙여 예배를 올립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제가 이 논(論)을 지었으나 부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을까 두려우니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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