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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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 바보하인 이야기
3.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4. 장조류 이야기
5. 죽은 뒤 저 세상은 있는가?
6. 윤회의 과학적 증명
7. 오세암 대웅전 현판에 새겨진 글의 내력
8. 생사에 자유자재한 스님들
9.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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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반갑습니다. 어르신들 모두 건강한 모습을 뵈오니 무엇보다 반갑습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환갑, 진갑이 넘으면 스스로가 늙었다고 생각하고, 경로당에 가서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기가 일수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올해로103세가 되신 연세 대 김형석 교수가 TV에 출연하여 “60세 이후는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동시에 열매를 맺는 시기다. 60살쯤 되면 철이 들고 내가 나를 믿게 된다. 75살 까지는 점점 성장하는 것도 가능하고, 이후로도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본인의 성취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씀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여기 오신 분들은 자기 개발을 위해서 무언가 하나라도 더 배워보겠다고 오신 분들이므로 저절로 고개가 숙여 집니다.
보아하니 오늘 이 자리에는 평소 잘 아는 분도 계시고, 저보다 나이 드신 분들도 많이 계시므로 강의하기가 무척 어렵겠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왜냐하면 어르신들은 나이를 그냥 잡수신 게 아니라 그동안 살아오면서 본 것, 들은 것, 직접 경험한 것이 많기 때문에 내 생각과 다른 얘기는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 옳은 것일까요? 서울 가본 놈하고, 안 가본 놈이 싸우면 안 가본 놈이 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컵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새 물을 담을 수 없듯이 나의 생각이 절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새로운 진리를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 저의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는 절데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으시고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오늘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인문학에 관한 분야로써, 미국ㆍ프랑스ㆍ독일ㆍ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벌써부터 많은 관심을 가져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저도 강의를 많이 들어 봤습니다만, 들을 때는 그런대로 이해가 되었으나 제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 제가 하고자하는 깊은 뜻이 들어 있음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바보하인 이야기
옛날 어떤 마을에 천석이나 하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의 집에는 많은 하인이 있었는데, 그 하인들 가운데 바보하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식전에 바보하인에게 “아침밥을 먹고 시장에 다녀와야 하니 그렇게 알아라.”하고 일렀습니다. 그 바보 하인은 힘이 장사인 까닭에 시장에 데리고 가서 무거운 짐을 가지고 올 심산이었습니다. 주인이 아침밥을 먹고 그 하인을 찾았으나 하인이 도통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집 안팎을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인이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야 빈 지게를 지고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그 하인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어디를 갔기에 이제 나타나느냐?”
“아침밥을 먹고 시장을 다녀와야 된다기에 시장을 다녀왔습니다.”
“이 사람아 시장을 가면 무슨 일인가 물어보고 나와 같이 가야지 자네 혼자 갔다 오면 어떻게 한단 말이야.”
“어쩐지 시장을 다 돌아 다녀도 제가 시장에 무엇 때문에 왔는지 몰라서 그냥 왔습니다.”
하인의 대답을 들은 주인은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마침 주위를 살펴보니 조그만 막대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것을 집어서 하인에게 주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네가 바보라는 상으로 주는 것이니, 너보다 더 어리석은 바보를 만나거든 전해주고 만나지 못하거든 네가 죽을 때까지 보관하여라.”
바보 하인은 비록 바보였지만 그것이 자랑스러운 막대기가 아닌 줄 알고, 자기보다 더 못난 바보를 찾아보았지만, 그런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자기 방에 그 막대기를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주인 방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 바보 하인이 들어가 보니, 주인 영감이 방 한가운데 누워서 신음하고 있고, 가족들이 주위에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왜 집안 식구들이 울고 있고, 주인마님은 앓고 계십니까?”
“내가 멀리 갈 것 같아 이러는 모양이다.”
“마님께서 멀리 가시다니요? 어디로 가십니까, 동쪽으로 가십니까, 서쪽으로 가십니 까, 아니면 북쪽으로 가십니까, 남쪽으로 가십니까?”
“어느 곳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느 쪽으로 가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로 가십니까?”
“무슨 일로 가는지도 모른다.”
“가시는 길이 멉니까? 가깝습니까?”
“먼지 가까운지 그것도 모른다.”
“노자는 얼마나 듭니까?”
“그것도 모른다.”
이 말을 들은 바보는 재빨리 자기 방으로 가서 단장을 꺼내 주인마님에게 전하면서“이것은 나으리가 가지십시오.”
“이것이 무슨 막대기냐?”
“주인님이 바보상으로 저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까? 주인 마님께서 나보다 더 못난 바보에게 전하라고 하셨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주인 나으리가 저만 못한 바보이기에 드리는 것입니다. 주인마님은 먼 길을 가신다고 하면서 가는 곳도 모르고, 가는 쪽(방향)도 모르고, 노자가 얼마나 드는 지도 모르고, 무슨 일로 가는지도 모른다 하시니, 저보다 주인마님이 더 바보가 아니십니까?”
이 이야기는 불교 『백유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께서 바보하인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 속의 바보 하인이나 주인마님만이 바보이고,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떻게든 바보하인이나 주인 마님같은 바보는 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바보를 면하기 위해서는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죽은 뒤 저 세상은 과연 있는 것인지 여러분들과 함께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난 가을 친구 몇 명과 함께 남산 등산을 갔다가 팔각정에서 10년 만에 한 동기생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동기생이 대뜸 한다는 소리가 “야, 니 와 이리 늙었노?”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나는 어디가면 내 나이로 안 보는데, 내가 보니 니가 더 늙었구만?’하는 생각이 번쩍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늙어가는 것은 잘 모릅니다. 남은 늙어도 자기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아야 하는데, 친구는 늙어도 자기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자 말자 달려가고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어디인가요? 기실(其實)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곧 늙어가고 죽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저를 비롯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이미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종착역이 저만큼 보이는 곳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인생의 종착역이 어디인가요? 그것은 제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는 말이기에 하지 않겠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시간은 돈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 시간은 곧 생명입니다. 하루가 지났다는 것은 내 생명이 하루 단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것은 내 생명이 일 년 단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방 직 후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은 50살을 겨우 넘었다고 합니다. 내가 20대였던 50년 전만해도, 130여 호가 사는 우리 마을에 회갑을 넘긴 남자는 다섯 손가락을 곱을 정도였고, 부모가 회갑 때가지 살아 계시면 큰 경사로 알고, 온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함께 축하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인생은 육십부터', ‘육십은 청춘'이란 말이 있듯이, 회갑나이는 노인 축에 끼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회갑연을 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고, 그 대신 칠순, 팔순 잔치를 많이 하고 있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100세 시대, 100세 시대 하니까 모두들 100세까지 사는 줄 알고 있는데, 80세까지 사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요 축복인 것 같습니다. 2018년 6월 말,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5180만 1449명이고, 그 중 남자가 2586만 1116명이고, 여자가 2594만 333명으로 남자보다 7만 9317명이 더 많으며, 한국인이 7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86%, 75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54%, 8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30%, 85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15%, 9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생존할 확률은 5%라고 합니다. 즉, 90세가 되면 100명 중 95명은 다 저 세상으로 가고, 5명만 살아남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99세까지 생존한 사람은 648명뿐이라고 하는데, 너나없이 100세까지 산다는 착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수명은 79세, 여자의 평균 수명은 85세라고 합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6년이나 오래 사는 것은 전문가들은 남자가 여자보다 사회생활이 길고 경쟁이 심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또한 여자가 남자보다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자의 경우 괴로우면 울기도 하고 남편에게 바가지도 긁고, 맘껏 감정을 표출해 스트레스를 풀지만 남자의 경우는 괴로워도 참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흡연이나 과음을 하기 때문에 여자가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생명공학자들은 인간의 건강과 수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밤잠을 설쳐가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미 1953년 왓슨에 의해 DAN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였고, 1997년 영국 에딘버러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켰으며, 2003년 유전자의 비밀을 밝히는 ‘인체 게놈프로젝트’를 완성하여, 인간의 의도대로 유전자를 조작해 각종 질병의 치료는 물론 대물림되는 체질마저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의학자들은 향 후 5~10년 이내에 현대의학으로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암이나 에이즈를 완전 정복하고, 20년 이내에는 인간의 수명을 130세까지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학이나 유전공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흐르는 시간은 잠시도 멈추지 않습니다. 잠시 잠깐이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됩니다. 그러는 사이 해가 거듭되면 병들어 결국은 길기만 한 것 같은 인생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이 세상에 확실한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현재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현재 살아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도 부인할 수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의 죽음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은 나면 반드시 죽기 마련입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입니다.
한국인의 사망률 1위는 각종 암으로 인한 사망(26.3%)이고, 2위는 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13.9%)이며, 3위는 급성심근색으로 인한 사망(7.3%)이라고 합니다. 늘그막에 암이나 뇌출혈로 쓰러진다면 본인의 고통은 말 할 것도 없고, 간병하는 가족들이 겪는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요즈음 ‘구구팔팔 이삼사'란 건배사가 크게 유행을 하고 잇는데, 이 말 속에는 구십구세까지 병치레 안하고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아픈 뒤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 건배사대로 되었으면 오직 좋겠습니까만 인생사가 어디 뜻대로 되는 것입니까?
장조류 이야기
옛날에 장조류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장조류의 소꼽친구 중에 도인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 스님이 선정 삼매에 들어보니 장조류의 명(命)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장조류를 찾아가서 권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자네도 이제 염불도 좀 하고 참선공부도 좀 하게."
"나도 그럴 생각이라네, 그런데 다음의 세 가지를 다 이루고 난 뒤 그렇게 하겠네."
"그 세 가지가 뭔가?"
"첫째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좀 더하여 돈을 벌이는 것이고, 둘째는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내는 일이고, 셋째는 아들딸들이 잘 사는 것을 보는 일이라네."
오늘 여기 계시는 분들에게 누가 이런 권유를 해 온다면(인생 공부 좀 하라고 한다면), 아마 장조류와 별반 다름없는 대답을 할 것입니다.
장조류의 첫 번째 대답은 아직은 돈을 좀 더 벌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글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장조류가 농사꾼인지, 장사꾼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 아직-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장조류나 우리들이나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대게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고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이러한 부모님들의 마음을 알기나 할까요? 그리고 그렇게 알뜰살뜰 모아서 자식에게 물려준다고 한들 그 재산이 얼마나 오래 갈지도 의문입니다. “머니(돈), 머니해도 머니가 제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돈이라고 하는데, 왜 돈을 돈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돌고 도는 것이 돈이라고 해서 돈이라고 한답니다.
저승에서 현대 정주영회장이 삼성의 이병철 회장을 만났는데, 정주영 회장이 이병철 회장에게 “형님 버스비가 없어서 그러니 500원만 빌려 주세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이병철 회장이 무엇이라고 대답했겠습니까? “자네도 이승 에 올 때(죽은 뒤에는 저승이 이승이 되고 이승이 저승이 됩니다), 돈 한 푼 못 가지고 왔나?. 나도 한 푼도 못 가지고 와서 무일푼이라네.”라고 대답 하더랍니다.
옛말에 3대가는 부자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재물이란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을 뿐 영원히 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승 갈 때 한 푼도 가져 갈수 없는 것이 또한 재물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지 않습니까?.
재물뿐만 아니라 명예나 지위 또한 영원히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내가 그 직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영원히 국회위원 줄 알고, 시장인줄 알고, 경찰서장인줄 알고 목에 힘주고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을 많이 보는데, 이런 사람은 아직까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은 돈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올바른 생각, 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일 것입니다. 즉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고, 웃어른을 받들 줄 알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심어주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 줄 참된 유산이 아닐까요?.
장조류의 두 번째, 세 번째 대답은 아들 딸 들이 결혼하여 잘 사는 것 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모든 부모님들의 공통된 바램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우리 때에는 결혼이란 무조건 해야 되는 것인 줄 알았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은 결혼이란 필수조건이 아니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며, 좋은 사람(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혼자 살지 억지로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할 것입니까? 자식도 품안의 자식이라 했습니다. 다 큰 자식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고 또 해서도 안 됩니다. 또 어렵사리 결혼시켜 놓아도 첫손자 볼 때까지는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 1위라고 하니, 서로 다투기만 해도 혹시 갈라서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이래저래 부모님들은 자식 문제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한 옛 말이 하나도 허튼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좀 옆길로 갔습니다만, 도인 스님은 친구인 장조류에게 아무리 권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고 그냥 절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장조류가 사망했다는 부고장이 날아왔습니다. 스님은 문상을 가서 조문하기를,
나의 친구 장조류여! 내가 참선, 염불을 하라고 했지
그러니까 친구는 세가지를 다 이룬 뒤에 한다고 했지
염라대왕 그 양반 분수가 어지간히 없네.
세가지 일을 마치기도 전에 갈고리로 끌고 가다니.
스님의 조문은 염라대왕을 나무라는 듯이 지었지만, 세상일에 매달리다 보면, 인생 공부를 할 시간이 없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불시에 저승사자가 밀어 닥칩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후다닥 정신을 차려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입니까?
죽은 뒤 저 세상은 있는가?
육신의 죽음은 생(生)의 끝인가. 또 다른 생의 연속인가? 저 세상-천당과 지옥은 정말 있는 것인가? 윤회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이 문제는 정말 난제(어려운 문제)요 수수께끼요 아포리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형이상학적인 문제로써, 과거에는 철학과 종교에서 18세기 독일의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라는 사람이 ‘사후의 문제는 논증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철학에서 제외시켜 버림으로서 오늘날에는 종교의 영역에서만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내세가 있기는 뭐가 있어? 나쁜 일 하지 말고 착한 일 하라고 공연히 지어낸 이야기이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하루살이가 어떻게 내일이 있음을 알겠으며, 가을 한철 사는 메뚜기가 어떻게 이듬해 봄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까? 인간은 그 알량한 지식으로 죽으면 그만 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4대성인이라면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를 들고 있는데, 그중 공자님은 살아 계실 때, 십대제자의 한 사람인 자로가 하루는 공자에게 “우리가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하고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기를 “금생의 일도 다 모르는 데, 내생의 일을 어찌 알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유교는 매우 현실적입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유교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에는 내세관이 없기 때문에 유교를 종교라고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금까지 늘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공자님을 제외한 다른 성인들은 한결같이 내세를 말하고 있는데, 문제는 내세에 대한 견해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체로부터 해방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은 뒤에 심판이나 천당이나 지옥도 없고 오직 자유만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도교의 장자도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자의 처가 죽자 혜자가 문상을 간 즉, 장자가 토기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혜자가 이를 보고 "한 평생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처가 죽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자, 장자는 "그렇지 않다. 내 처가 죽은 것이 이것이 처음이라면 어찌 처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본디 근본을 생각하면 본래 죽음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하니 내 어찌 소동을 피우며 통곡하고 슬퍼하겠는가? 그런 짓은 사리를 분별치 못한 행위이니, 이 때문에 곡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보았습니다.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신이 만들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에도 남자는 남자의 육체, 여자는 여자의 육체, 그리고 유아로서 죽은 사람은 성인의 육체를 가지고 승천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때에 그렇게 가는 것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따라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당에 갈 수 있는가? 그 선결조건은 철저한 믿음, 무조건적인 믿음입니다. 그럼 기독교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이 구세주(救世主)임을 믿어야 하고, 성령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여 태어난 것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이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과 하늘로 승천하신 것, 그리고 이 세상에 다시 심판하러 오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으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고, 이걸 믿지 못하면 기독교인이 못되는 것입니다.
「부활」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등, 걸작을 많이 남긴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는 한 때 기독교에 심취하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악마는 유혹하지만 신은 참고 견딘다」등, 복음적인 내용의 문학작품을 많이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만년에는 기독교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진리의 길을 찾아 집을 나섰다가 어느 시골 조그만 역사에서 객사하고 말았는데,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며 남긴 말은 ‘나는 진리를 사랑한다…많이…’였다고 합니한다. 이 말 속에 그가 얼마나 참된 진리를 갈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신을 믿는 사람이다. 그 다음 행복한 사람은 신이 있는 지 없는 지,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신이 있는 지 없는 지 따지는 사람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신을 믿으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톨스토이 자신은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불교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을 같은 것도 아니며, 또한 다른 것도 아니다(不一不異)라고 봅니다. 즉 삶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은 하나(生死一如)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마음과 육신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또한 다른 것도 아니며, 마음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육신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육신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기 때문에, 그 육신으로써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경우에 마음은 그 육신을 떠나는데, 이것이 죽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집을 짓고 살다가 그 집이 허물어져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새 집을 지어 이사를 가는 것처럼 마음이 육신이라는 집에 살다가 그 육신이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을 때 그 육신을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떠나가는 마음은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를 되찾아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육신이 생전에 지은 업(業)의 전부를 고스란히 지닌 채 자신의 업에 맞는 새로운 몸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불교의 윤회설입니다.
윤회의 과학적 증명
근대에 와서 과학문명만이 아니라 정신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영혼이 있다는 것이, 윤회가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인과가 분명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윤회한다는 것이 오늘날에 와서 과학적으로 증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첫째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는 대개 두서너 살 되는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데, 아이들이 말을 배우면서 전생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곧 “나는 어느 곳에 살던 누구인데, 이러이러한 생활을 했다”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을 따라서 조사를 해보면 모두 사실과 맞다는 것입니다.
흔히 천재니 신동이니 생이지지(生而知之, 태어날 때부터 아는 것)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태어난 뒤로 한 번도 글을 배운 일이 없는데 글자를 다 아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이지지라고 합니다.
1993년(벌써 한 20여년이 지났네요), 4월16일 아침 8시 MBC TV에 부산에 사는 13살 된 정연득이란 아이가 출연하여, 일어로 물으면 일어로 대답하고, 영어로 물으면 영어로 대답하고, 중국어 러시아어 불란서어로 물으면 중국어 러시아어 불란서어로 대답하는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 아나운서가 “누구한테 배웠느냐?”고 물으니“아무한테도 배운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한국에 태어나기 전에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1968년 일본에서 개최한 동경올림픽경기를 직접 참관하였다고 하며, 그때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사실과 똑 같았습니다. 그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내 눈으로 직접 보았는데, 그때 그걸 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때 TV에서 본 정연득군의 얼굴색은 마치 병자처럼 노랗게 보였고, 몸이 허약하여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가 중퇴하였다고 했는데(5개 국어를 하는데, 학교에 다닐 필요도 없겠지만), 금년 봄에 정연득이 TV에 또 한 번 출연 하였습니다. 정연군은 이제 어엿한 30대 중반의 모습이었고, 몸이 뚱뚱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지금 대구에서 살고 있는데, 텔레비전에 나온 이후 기자들이 하도 찾아 와서 숨어 지냈다고 하며, 이제는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몇 년 전 KBS 방송에 경북 안동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생인 여자아이가 출연하여 피아노를 치는데, 아나운서가“피아노 누구한테 배웠어요?”하고 물으니 “그냥쳐요."라고 답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연득 군이나, 안동에 사는 여자 아이는 배우지 않고 알고 있으니, 다 전생의 기억(전생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있으면 말해 보세요?.
이러한 전생기억에 대해 누구보다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이안 스티븐슨 교수입니다. 이안 스티븐슨 교수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사실을 조사하고 확인하거나 다른 학자들을 보내어 조사토록 했는데, 1973년까지 2,000여건의 전생기억을 가진 사례를 조사하여 학계에 보고하고, 그중 대표적인 사례를 뽑아서 「윤회를 나타내는 20가지 사례」라는 책으로 출판하였는데, 어떤 사람이든 반대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두 번째, 차시환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내 몸뚱이는 아주 죽어 버리고, 남의 송장을 의지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입니다. 1916년 2월26일자 중국 신주일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중국 산동성에 최천선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무식한 석공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서른 두 살 되든 해에 그만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죽은 뒤 3일 후에 장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관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부랴부랴 곽을 열고 보니 죽은 사람이 살아나 멀뚱멀뚱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우리 아빠가 살았다.”, “아이구 여보.” 하며, 그 부모, 자식, 부인들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식구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라고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죽었다가 깨어나더니 정신착란이 되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수일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에 기운을 차리고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식구들을 못 알아보고, 또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주위에 붓과 벼루가 있는 것을 보더니 종위 위에 글을 쓰는데, 본시 최천선이라는 사람은 일자 무식꾼인데 글을 아주 잘 쓰는 것입니다. 그 글의 내용인 즉‘자기는 월남에 사는 유건중이라는 사람인데, 병이 들어서 치료하기 위해 어머니가 땀을 낸다고 두꺼운 이불을 씌워 땀을 내다가 그만 꼬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여기 이렇게 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월남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한자문화권으로, 말은 다르지만 한자를 쓰면 통합니다.
월남 사는 유건중의 육신은 죽어버리고 혼만 중국 산동성에 사는 최천선의 몸을 빌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가 기력을 완전히 회복한 후 중국말을 조금씩 가르쳐서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자꾸 전생에 살던 곳으로 갈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꾸 소문이 나서 중국 북경대학에서 데리고 가서 정신감정을 해 보았는데, 정신은 조금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한 월남에 유건중이라는 사람이 살다가 죽었는지 조회를 해보니 모두 다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참으로 희귀한 일이라 하여 중국 정부에서 이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연금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최면을 걸어 전생을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분야에 유명한 사람은 영국의 케논 박사입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도 몇 년 전에 연예인을 대상으로 최면을 걸어 전생을 알아보는 프로를 방영한 일이 있었는데, 가령 스무 살이 되는 사람을 최면을 걸어서 열 살 때로 돌아가면 그때의 말이나 행동을 하며, 세 살 때로 돌아가면 세 살 먹은 어린 아이의 말과 행동을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50년 전에 어디 있었느냐고 최면을 걸면 성명이나 주소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고 맙니다. 그것을 조사하여 사실과 맞춰보면 모두 일치하는 것입니다.
케논은 1,382명에 대한 전생사례를 수집하여 학계에 보고하고, 1952년에「인간의 잠재력」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는데,「케논 보고서」 에 의하면 환자를 아무리 치료해도 병이 낫지 않아 최면을 걸어 전생회귀(前生回歸)를 해 보니, 그 병이 전생에서 넘어 온 것을 알고, 그 전생의 발병원인에 의거해서 치료하여, 병을 고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전생요법인데, 이 전생요법은 요즘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전생투시(前生透視, 불교에서 말하는 숙명통과 유사함)를 통하여 전생을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분야에 유명한 사람은 미국의 에드가 케이시인데, 에드가 케이시는 사람을 딱보면-사진만 보아도-전생을 알아내는 사람이어서, 사람들은 그를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하여 기적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드가 케이시는 2,500명의 전생을 조사하여 「초능력의 비밀」. 「윤회의 비밀」 이란 책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번역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책입니다.
그러면 죽은 뒤에 다음 생이 있고, 윤회를 한다고 할 때 어떤 법칙에 의해서 윤회를 하는가? 내가 내 마음대로 천당을 가고 지옥을 가고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는가? 에드가 케이시의 보고서에 의거해서 살펴보아도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내가 지은대로 받는다는 인과법칙(因果法則)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내가 아주 오래 전에 학생회 법회에 가서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한 학생이 일어나서 “방금 법사님께서는 윤회를 말씀을 하셨는데, 윤회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왜 윤회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라고 물으니까, 그 학생이 “죽고 나면 끝이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내 마음대로 하겠는데, 내생이 있고 인과가 있다고 하니 겁이 납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윤회도 없고, 인과도 없으면 저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윤회가 있고, 인과가 있다니 어떻게 합니까? 이는 마치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해를,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지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세암 대웅전 현판에 새겨진 글의 내력
그럼 여기서 윤회전생에 관한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강원도 설악산에는 신흥사, 백담사, 오세암 등, 절이 많이 있는데, 오세암 대웅전에 조그만 현판이 하나 걸려 있다고 합니다. 혹시 오세암에 갔다 오신 분 있으세요? 저는 신흥사와 백담사는 갔다 왔는데, 오세암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현판에 세긴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한문으로 쓰여진 것을 우리말로 풀이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발로 한번 걷어찬 것이 볼 귀 세대로 돌아왔고
떡 한 개 준 것이 3년 양식으로 돌아왔네
이와 같이 인과가 명백할진데
불자여 모름지기 인과를 한치도 의심하지 말게나.
이 시가 쓰여진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시대 강원도 설악산은 인제군수의 관할이었습니다. 지금부터 한 400여 년 전, 인제군수가 새로 부임하여 초도순시 차 오세암을 찾았습니다.
마침 점심때가 되었는지라 주지 스님이 점심상을 차려왔는데, 워낙 가난한 절이라 달리 대접 할 것도 없고 하여 보리밥 한 그릇에 된장과 꼬치 몇 개를 내어 왔더니, 인제 군수가 벌컥 화를 내고 점심상을 뒤엎으며 “이걸 나더러 먹으란 말이냐?"하면서 볼기를 3대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엉겁결에 볼기를 맞은 노승이 저만큼 나가 덜어지자 무슨 마음이 들었던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며, 수행하고 있던 아전에게 “앞으로 이 절(오세암)에 3년 먹을 양식을 대 주라."고 분부하고는 훵하니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볼기를 맞은 노승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볼기를 때릴 때는 언제이거, 3년 먹을 양식을 주라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인가?
‘볼기3대 3년 양식, 볼기3대 3년 양식’ 노승은 이것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몇날 며칠을 씨름 하던 어느 날, 노승의 눈앞에 전생이 훤히 보였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백석이나 하는 시골부자 살았습니다. 섣달 그믐날 점심 때 쯤, 새해 차례에 올릴 떡을 빚어서, 하녀가 쟁반에 담아 주인마님에게 드리려고 가지고 오는데, 집에 기르던 개가 그 떡을 낚아채려고 뛰어오르니, 마루에 앉자있던 주인이 벌떡 일어나서 개의 목을 걷어찼습니다. 그러자 개가 ‘깨갱갱’하며 저만큼 나가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무슨 맘이 들었던지 떡 한 조각을 떼어서 개에게 던져주니 개는 덥석 그 떡을 받아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생의 부자는 죽어서 노승이 되었고, 개는 죽어서 인제군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과가 한 치도 어김없이 명명백백한 것을 깨달은 노승은 후세 사람들을 깨우쳐주기 위해 글을 지어(발로 한번 걷어찬 것이 볼 귀 세대로 돌아왔고 떡한 개 준 것이 3년 양식으로 돌아왔네. 이와 같은 사실이 명백할진데, 불자여 모름지기 인과를 한치도 의심하지 말게나) 법당에 달아 두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생사에 자유자재한 스님들
이와 같이 우리 중생들은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끝없이 나고 죽고, 나고 죽는 생사윤회를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견성성불(見性成佛)한 이에게 죽음은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번뇌의 적멸이며, 법신의 탄생입니다.
근대 한국불교를 새롭게 일으킨 스님으로 방한암 스님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그 스님이 나이 겨우 일곱 살에 시골 서당에서 사략(史略)을 알고 있었습니다.
“태고(太古)에 천황씨(天皇氏)가 있었다.”첫 대목을 읽던 소년은 선생님을 향하여 물었습니다.
“태고에 천황씨가 있었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천황씨 이전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당돌한 물음에 선생은 당황했습니다.
“그렇지, 천황씨 이전에는 반고씨가 있었지.” 소년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반고씨 이전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스승은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학의 어느 경전에도 그에 대한 해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암스님은 어릴 때부터 우주와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이렇게 회의하였으며, 어떤 것이든 해답을 얻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였습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22세 되든 해, 금강산에 있는 유점사에 찾아 들어가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경북 김천 수도암에서 한국불교의 중흥조라 일컬어지는 경허화상을 만나 가르침을 청하였는데, 화상은 금강경에 있는 한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니
개시허망(皆是虛妄)- 다 허망한 것이니
제상비상(諸相非相)- 만약 형상있는 것에서 형상 없는 것을 알면
즉견여래(卽見如來)- 곧 부처를 보리라
한암은 이 구절을 듣자 안광이 홀연이 열리면서 한 눈에 우주전체가 환히 들여다보였습니다. 그리고 듣는 것이나 보는 것이 모두 자신이 아님이 없었습니다. 아홉 살 때 서당에서 처음 가진 회의-반고 이전에 누가 있었느냐?-는 비로소 아침 안개 걷히듯이 풀렸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24세, 입산하여 3년째 되는 가을이었습니다. 도를 깨달은 한암스님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인연 있는 스님과 중생들을 제도하다가 50세 되든 해, 오대산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27년 동안 그는 동구 밖에 나오지 않은 채 76세의 나이로 일생을 거기서 마쳤습니다. 그는 오대산에 처음 들어올 때 소지했던 단풍나무 지팡이를 중대(中臺) 뜰앞에 꽃았습니다. 일영(日影, 해그림자)를 재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꽃인 자리에 잎사귀가 돋아 나와서 하나의 훌륭한 정자나무가 되었습니다. 지금 오대산 중대 앞에 서 있는 정자나무가 바로 스님의 지팡이였다고 합니다.
영주 부석사에는 의상대사가 꽃았다는 지팡이가 살아 있고, 순천 송광사에는 보조국사가 꽃았다는 지팡이가 살아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신라 고승과 고려 국사의 지팡이와 오대산 중대에 서 있는 지팡이나무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오대산하면 방한암 스님, 방한암하면 오대산이라고 할 만큼 오대산고 방한암 사이에는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대산에 있는 사찰과 암자와 적멸보궁의 주변에는 한암의 면목을 전하여 주는 이야기가 많이 숨어있습니다.
1.4후퇴 때였습니다. 오대산 내의 모든 승려는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한암만은 시자 두 세명과 함께 상원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1.4후퇴 직전 월정사와 상원사를 포함한 오대산 내의 모든 사암과 민가들이 우리 국군의 작전상 소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적군이 머무를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밤에 대원들을 이끌고 찾아온 장교는 절을 소각한다고 알렸습니다. 한암은 기다리라고 이르고 방에 들어가 가사와 장삼으로 갈아입고 나와, 법당으로 들어가 불상 앞에 정좌하고 난 뒤 합장하며, 장교에게 이제 불을 질러도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장교는 놀라면서 “스님 이러시면 어떡합니까?"라고 말하자, 한암은 “나는 부처님의 제자요, 부처님은 이런 경우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소. 당신은 어서 불을 지르시오."라며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그 장교는 한암의 인격과 거룩한 모습에 압도되고 감동 되어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부하에게 명령하여 법당의 문짝만을 떼어내 마당에서 불사르게 하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 상원사는 소실을 면했고 가장 오래된 동종인 국보 36호인 상원사 동종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1.4후퇴로 모두 피난을 떠난 지 두 달쯤 지나 1951년 3월 초 한암은 가벼운 병에 걸렸습니다. 병이 난 지 7일이 되는 날 아침,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시고는 손가락을 꼽으며“오늘이 음력으로 2월 14일이지."라고 말한 후 사시(오전 10시) 에 이르러 가사와 장삼을 찾아서 입고 선상(禪床)에 단정히 앉아서 태연한 자세를 갖추고 입적하였습니다.
옛날부터 득도한 분들이 모두 생사에 자재(自在)함은 그 경지가 이미 생사를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3조 승찬대사는 법회를 마치고 방에서 쉬다가 떠날 때가 됐음을 알고 바깥으로 나서 뜰을 거닐다가 나뭇가지를 잡은 채 임종했습니다. 경통은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앉자 불을 붙이고 소신(燒身)공양을 했습니다. 당나라 등은봉 선사는 어느 날 제자에게 “내가 앉아서 돌아가신 스님은 많이 보았다.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더냐?”하고 물었습니다. 제자가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거꾸로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더냐?”하고 되물었습니다. 제자가 “그런 스님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하고 대답하자 “그르면 나는 거꾸로 서서 입적해야겠다.”라고 하면서 물구나무서기 한 채로 입적했습니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백문백답(百聞百答) 하시고 난 뒤 “나 그만 갈란다."고 하시며 열반하셨습니다.
3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성철스님을 화장을 하니 오색찬란한 사리가 130여과가 나왔으며, 몇 해 전에는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이 가부좌한 채 열반에 든 모습이 메스콤을 통해 공개되어 세인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죽음이 범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공포와 괴로움이 되고 있으나 보조국사나 한안선사같이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서는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만나더라도 밤이 잠이 들듯 아주 태연하게 죽을 수 있습니다.
맺음말
끝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고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 11월 7일, 금년 한해도 이제 달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새해를 맞이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금년 한해도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세월이 더디게만 가는 것 같더니, 60 고개를 넘고 보니 세월이 어찌 그리 빨리 가는지…일어나면 아침이고 돌아서면 저녁이고, 월요일가 하면 어느새 주말이고, 월초인가 하면 어느새 월말이 되어 있고…세월이 빠른 것인지 내 마음이 급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30대 초 서산대사 휴정스님이 지은 『선가귀감』을 읽은 적이 있는데, "꿈만 꿈이 아니고 인생이 한바탕 꿈이다."라는 귀절을 읽고 '꿈은 꿈이고, 인생은 인생이지 왜 인생을 꿈과 같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니, 이제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해마다 피는 꽃은 같거니와 사람은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모하는 것이 어찌 인간사(人間事) 뿐이겠습니까? 올해 핀 꽃도 엄밀히 따지면 지난해 피었던 꽃은 아닙니다. 만물은 끊임없이 유전(流轉)하고 모든 것은 물처럼 흐릅니다. 똑같은 시냇물에 두 번 다시 발을 씻을 수 없습니다. 흐르는 물이 다르듯이 발을 씻는 나 자신도 늘 변모합니다. 어제도 안녕, 오늘도 안녕, 내일도 안녕, 글세요? 내일은 기약이 없습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발부둥치며 살다 예고도 없이 부르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가야만 합니다.
오늘 못한 것은 내일 해야지, 내일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되지, 기회는 무한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바쁘게 살다보니 부모와 자식의 도리, 인간 도리를 제대로 못했는데, 앞으로는 잘 해야겠다고 다짐도 하고, 앞만 보고 열심히 살다보니 삶을 즐기지 못해, 이제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고, 가보지 못한 곳 여행도 하면서 즐겁게 살려는데, 어느 날 갑자기 떠나야 할 운명이 오면 갈 수 박에 없습니다. 천년만년 살 것 같지만 때가 되면 가야하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과거는 지나 버렸고 미래는 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오늘, 현재, 이 시간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을 천금(千金)같이 귀하게 여기고 알뜰살뜰 살아야 합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뜻있게 보내야 합니다. 가끔은 친구도 만나 세상 이야기도 나누고, 어디 맛집이 있다면 찾아가서 사먹기도 하고, 내 몸이 허락하는 한 구경도 다니시며 남은 여생, 즐겁게, 재미있게, 행복하게 사시길 바라며, 이만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2022.11.15. 경주시노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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