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해설

벽암록(碧巖錄) 소개

수선님 2024. 2. 25. 13:11

■『벽암록(碧巖錄)』

① 개요(槪要)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같은 중국(中國)의 대표적(代表的) 선록(禪錄)에 수록된 1,700개의 공안(公案) 가운데 가장 핵심적(核心的)인 것으로 평가(評價)되는 100가지를 뽑아 본칙(本則)과 송(頌)으로 소개하는 한편, 앞뒤로 수시(垂示)와 착어(著語)․평창(評唱) 등을 덧붙인 선서(禪書)로서 문자(文字)로 표현된 깨달음의 세계(世界)를 대표(代表)하는 책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예로부터 수많은 선적(禪籍) 중에서도 단연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로 꼽히고 있음

② 이름의 유래(由來)

원오 극근(圓悟 克勤 : 1063~1135) 선사(禪師)가 호남(湖南) 예주(澧州)의 협산(夾山) 영천원(靈泉院)에 머무를 때 그 방장실(方丈室)의 편액(扁額)에 ‘원포아귀청장후 조함화락벽암전(猿抱兒歸靑嶂後 鳥啣花落碧巖前 : ‘원숭이가 새끼를 품에 안고 푸른 절벽 뒤로 돌아가고, 새가 꽃을 물어 푸른 바위 앞에 떨어뜨린다’는 의미(意味))’란 글귀가 걸려 있었는데, 그 중 ‘벽암(碧巖)’이란 단어를 취하여 ‘벽암록(碧巖錄)’이라 한 것이라고 함

③ 편찬 과정(編纂 過程)

㉠ 원오 극근(圓悟 克勤)

『벽암록(碧巖錄)』의 저자(著者)는 원오 극근(圓悟 克勤) 선사(禪師)이지만, 사실 원오(圓悟)는 이 책의 저본(底本 : ‘원본(原本)’이라고도 함)이 되는『송고백칙(頌古百則 : 일명 ‘설두송고(雪竇頌古)’라고도 함)』을 지은 설두 중현(雪竇 重顯 : 980~1052) 선사(禪師)의 법손(法孫)으로서 스승인 설두(雪竇)가『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운문광록(雲門廣錄)』․『조주록(趙州錄)』등의 선록(禪錄) 중에서 공안(公案) 100개를 뽑아 편찬한『송고백칙(頌古百則)』중의 본칙(本則)과 송(頌)에 대해 수시(垂示)와 착어(著語)․평창(評唱) 등을 덧붙이고 이름을 새롭게 바꾸어 편찬하였을 뿐임

㉡ 장명원(張明遠)

한편, 이번에는 원오(圓悟)의 수제자(首弟子)이자 간화선(看話禪)의 제창자(提唱者)인 대혜 종고(大慧 宗杲 : 1089~1163)가 분서(焚書)에 나서기도 했는데, 그 이유(理由)는 당시 선승(禪僧)들이 참선(參禪)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단지 이 책의 내용(內容)만을 줄줄 암기(暗記)하고 다니면서 마치 큰 깨달음이나 얻은 듯이 처신하고 있어, 이 책이 없어져야 구두선(口頭禪)에 빠진 가짜 선승(禪僧)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판단(判斷)에서였다고 하며, 오히려 이로 인해『벽암록(碧巖錄)』은 더 유명(有名)해져 원(元)나라 성종(成宗) 때에 이르러 장명원(張明遠)이란 거사(居士)가 사본(寫本)을 찾아내 다시 간행(刊行)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음

㉢ 무문 혜개(無門 慧開)

또한『벽암록(碧巖錄)』의 영향(影響)을 받아 선승(禪僧)인 무문 혜개(無門 慧開)는 1228년에 옛 공안(公案) 48개[칙(則)]를 뽑아 그 하나하나마다 그의 시[송(頌)]와 촌평(寸評)을 덧붙여『무문관(無門關)』이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이 책은『벽암록(碧巖錄)』에 비해 그 내용(內容)이 간결(簡潔)하고 소박(素朴)하기 때문에 선(禪)의 입문서(入門書)로서 널리 읽혀지고 있음

④ 주요 내용(主要 內容)

㉠ 구성(構成)

ⓐ 형식상(形式上)

대표적(代表的)인 공안(公案) 100개를 뽑아 그것을 ‘본칙(本則)’이라 하고, 그 본칙(本則)에 대해 설두(雪竇) 자신이 깨달은 바를 운문(韻文) 형태(形態)의 자유로운 스타일로「게송(偈頌)」을 읊은 것을 ‘송(頌)’이라 하여 결국『벽암록(碧巖錄)』의 골조(骨組)를 이루는데, 본칙(本則)은 반드시 ‘거(擧 :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의미(意味))‘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음

나머지 부분은 원오(圓悟)가 직접 정리한 내용(內容)인데, 먼저 ‘수시(垂示)’는 본칙(本則)을 읽기에 앞서 그 칙(則)의 종지(宗旨)나 착안점(着眼點)을 제시하는 일종의 서문(序文)으로서 백칙(百則) 모두에 다 붙어 있지는 않으며, ‘착어(著語)’는 본칙(本則)과 송(頌)의 구절구절마다 매달아 놓은[착(著)] 일종의 논평[어(語)]이라 할만한 짤막한 단평(短評)으로서 주로 냉소(冷笑)와 질타(叱咤)․풍자(諷刺)와 독설(毒舌)로 가득 차 있는 반면, ‘평창(評唱)’은 해설(解說)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비교적 온건(穩健)한 문투(文套)로 고사(故事)를 인용해가며 자세한 해설(解說)을 곁들이고 있어 크게 대비(對比)가 되는데, 후세(後世)의 평자(評者)들은 오히려 ‘착어(著語)’에 대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선기(禪機)를 격발(激發)하는 ‘용의 눈[용안(龍眼)]’과 같다며 높은 평가(評價)를 내림

ⓑ 내용상(內容上)

제1칙(第一則)의 제목(題目)이 ‘달마확연무성(達磨廓然無聖)’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中國) 선종(禪宗)의 초조(初祖)라 불리는 보리 달마(菩提 達磨 : ?~536(?)) 대사(大師)로부터 시작된 이 책은 이 책의 편찬자(編纂者)인 설두(雪竇)가 원래 운문(雲門) 계열(系列)의 승려(僧侶)였기에 운문 문언(雲門 文偃 : 864(?)~949) 선사(禪師)와 관련된 내용(內容)이 16회로 가장 많이 등장하지만, 조주 종심(趙州 從諗 : 778~897) 선사(禪師)와 관련된 내용(內容)도 두 번째에 해당하는 12회나 등장할 만큼 그 비중(比重)이 아주 대단한데, 이는 이 책에 등장한 각 공안(公案)들이 후세(後世)에 미친 영향력을 따져볼 때, 감히 조주(趙州) 선사(禪師)의 그것에 견줄만한 상대(相對)가 없었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제1칙(第一則)인 ‘달마확연무성(達磨廓然無聖)’에 이어 제2칙(第二則)으로 ‘조주지도무난(躁州至道無難)’이 소개된 것임

㉡ 특징(特徵)

이 책의 장점(長點)은 고도(高度)의 은유(隱喩)와 상징법(象徵法)이자 언설(言說)을 초월(超越)한 지도(至道)의 가치(價値)에 대한 탐구(探究)로서 철저히 중국화(中國化)된 불교(佛敎)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에, 주로 조주 종심(趙州 從諗 : 778~897)․운문 문언(雲門 文偃 : 864(?)~949) 선사(禪師)들의 일화(逸話)가 주축(主軸)을 이루고 있는데, 그 내용(內容)은 탈속(脫俗)과 괴기(怪奇)로 꾸며져 있으며, 모든 이야기의 결론(結論) 부분은 언제나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이 강조되고 있어 결국 선종(禪宗)의 독자성(獨自性)과 우월성(優越性)을 강조하는 ‘선(禪)의 지침서(指針書)’가 되고 있음

 

 

 

碧巖錄(벽암록)에 대하여

 

중국 송(宋)나라 때의 불서(佛書). 정확하게는 「불과환오선사벽암록(佛果悟禪師碧嚴錄)」 또는 「불과벽암파관격절(佛果碧嚴破關擊節)」이라 하며, 중국 선종(禪宗) 5가(家)의 하나인 운문종(雲門宗)의 설두 중현(雪竇重顯)이 「전등록(傳燈錄)」 1,700칙(則)의 공안 가운데서 조주종심과 운문문언(雲門文偃)을 중심으로 하는 고칙공안백칙(古則公案百則)을 골라, 하나하나에 게송(偈頌)을 달고, 「설두송고(雪竇頌古)」에 임제종(臨濟宗)의 환오극근(圓悟克勤)이 각칙(各則)에 수시〈垂示〉․저어(著語)․평창(評唱)을 덧붙여 자유롭게 평석(評釋)을 한 책이다. 환오의 제자에 의해 편찬․간행된 뒤,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으며, 옛날에는 「벽암집(碧巖集)」이라고 했다. 선종(禪宗), 특히 임제종(臨濟宗)의 공안집(公案集)으로는 으뜸가는 것으로, 선종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적(典籍)으로 여긴다. 10권으로 되어 있고, 1125년에 완성되었다. 성립된 뒤로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현존하는 것 중 1300년(大德 4) 장명원(張明遠)에 의한 간행본이 가장 오래되었지만, 이 책에 실린 서문으로 보아 이전에도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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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은 설두가 조사들의 언행을 편집하여 찬한 100가지의 본칙(本則)과 송(頌)에 원오가 붙인 수시(垂示), 저어(著語), 평창(評唱)의 오부로 구성되어 있다. 칙이란 말을 붙인 것은 조사들의 언행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장 모범적인 것이어서 법칙과도 같다는 말이다. 송은 그 가르침의 지향하는 바를 설두가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수시는 본칙의 내용에 대한 전반적인 암시에 해당한다. 저어는 단평이다. 조사 언행의 그 대목에 조사의 주안점이 어디에 있는지 거기에 대응하는 이가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 원오가 나름의 암시를 준 대목이다. 평창은 종합적인 해설로 여러 주석과 참고자료를 실어 놓은 부분이다.

 

 

본 사이트에서는 종래의 일반 선례에 따라 단평에 해당하는 <저어>와 설명에 해당하는 <평창>을 생략하고 <수시>와 <본칙>, <송>만을 올렸다.

 

 

 

모른다

【제001칙】

〈수시〉-------------------------------------------

 

산 너머에 연기가 오르면 불이 난 줄 알고, 담 너머 뿔이 보이면 소인 줄 알며, 하나를 들으면 셋을 알고, 눈짐작이 저울눈보다 정확하다는 따위는 선가에서는 밥 먹고 차 마시듯 당연한 일이다. 온갖 흐름을 끊게 되면, 동에서 솟고 서로 사라지고, 거꾸로 하고 바로 하고, 세우고 눕히고, 주고 받음에서 자유자재하게 된다. 바로 이렇게 되었을 때, 자 말해 보아라. 이러한 사람의 딛고 가고자 하는 곳, 의도하는 바를...

 

 

〈본칙〉--------------------------------------------

양무제가 달마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근본이 되는 가장 성스런 진리입니까."

"텅 비어 성스럽다 할 것도 없습니다."

"나와 마주한 당신은 누구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무제는 그 뜻을 깨닫지 못했다. 달마스님은 양자강을 건너 위 나라로 갔다.

무제가 후에 그 일에 대해 지공에게 물으니, 지공이 말하였다.

 

"폐하! 이 사람을 모르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이는 관음대사이며 부처님의 심인을 전하는 분입니다."

무제는 후회하고 사신을 보내어 모시려 하자,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폐하, 사신을 보내어 모시려 하지 마십시오. 온 나라 사람이 부르러 가더라도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송〉------------------------------------------------

성제확연이라, 어찌 참뜻을 밝혔다 하랴

내 앞에 있는 이 누구요에 모른다는 대답

남몰래 양자강 건너가 버리니

가시덤불 돋아남 면하기 어렵겠네

온 나라 사람 뒤쫓아도 돌아올 리 없으니

천년 만년 후회해도 모두 헛일이리

후회는 말아라. 맑은 바람 어디에나 불고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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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두스님이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요즈음에도 달마가 있느냐."

 

설두스님이 스스로 답하여 말했다.

"있다. 그 달마를 불러오너라. 내 발이나 씻게 해야겠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제002칙】

〈수시〉-------------------------------------------

하늘과 땅이 오히려 좁고 옹색하며, 해와 달 온갖 별들이 빛을 잃었다. 설사 방망이를 비오듯 쳐 대고, 천둥치듯 할을 터뜨려 본들, 최고의 가르침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다. 비록 삼세의 부처님들이라 한들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역대 조사인들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체의 경전들의 설명도 미치지 못하고, 눈밝은 이들이라도 스스로 구제하지 못한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 어떻게 가르침을 청하여 배워야 하겠느냐. 부처라고 말하는 것도 진흙 속을 헤매고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꼴이요, 선(禪)이라 부르는 것도 얼굴 가득히 부끄러움만 드러낼 뿐이다. 구참 상사들은 말을 기다리지 않고 다 아는 것이지만, 초심자들은 모름지기 곧바로 궁리하여 취해야 한다.

 

〈본칙〉-------------------------------------------

조주스님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고 오직 간택을 하지 않으면 될 뿐이다. 말하는 순간 간택에 떨어지거나 명백함에 떨어질 것이니 나는 명백한 속에도 있지 않느니라. 그런데 너희는 밝고 밝은 것을 오히려 소중히 여기고 있지는 않느냐."

 

그 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이미 밝고 밝음에도 머물지 않는다 하셨는데, 스님은 무엇을 소중히 여기십니까."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나도 모른다."

그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 이미 모른다 하셨으면 어째서 밝고 밝음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하셨습니까."

조주스님은 말하였다.

"제법 따지는 재주는 있었구나. 절이나 하고 물러가거라."

 

〈송〉-------------------------------------------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나니

말도 맞고 글도 맞네

하나 속에 수많은 뜻 다 들었으니

 

둘이라고 두 개 만은 아니라네

하늘에는 해가 뜨고 달이 저물고

난간 앞에 산은 깊고 물은 차구나

해골처럼 앎이 다해 기쁨인들 서리만

마른 나무 용의 노래 덜 말랐구나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어라

간택 명백 네 스스로 살펴보아라.

 

 

 

 

하루를 살아도 부처로 살면

【제003칙】

〈수시〉-------------------------------------------

어느 때는 행위를 보여주기도 하고, 어느 때는 경계를 들어 주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짧은 한 마디 대꾸로 깨우쳐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고운 살에 상처를 내어 흠집 투성이로 만드는 것이다. 대도의 활동이 드러남은 세간의 법칙 속에 있지 않다. 지극한 도가 하늘을 덮고 땅을 덮음을 헤아려 안다 하여도, 그것은 손으로 더듬어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찾아낼 수 있어도 좋고, 찾아낼 수 없어도 좋다. 그런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찾아낼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잘못이고, 찾아낼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잘못이다. 아주 위험한 일이다. 찾아낼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찾아낼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안 된다 하면, 이를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본칙〉-------------------------------------------

마조스님이 노환으로 몸이 편치 않았다. 원주가 찾아와서 물었다.

"스님,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마조스님이 말하였다.

"일면불도 있고 월면불도 있다."

 

〈송〉-------------------------------------------

일면불이니 월면불이니

오제 삼황 그것들 다 무엇이더냐

이십 년 내내 괴로웠던 나날들

그것들 찾아 창룡굴 몇번이나 들락였나

능히 감당하여 이을지언정

눈밝은 이들이여 가벼이 여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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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면불은 천팔백년, 월면불은 하루 밤낮만 산다고 한다.

 

 

 

 

눈 위에 서리를 얹으면

【제004칙】

〈수시〉-------------------------------------------

푸른 하늘의 밝은 태양은 동쪽을 가리키지도 서쪽을 선긋지도 않고 모두를 끌어안고 밝게 비춘다. 그러나 시절인연에 따르려면 마땅히 병에 따라 적당한 약을 주어야만 한다. 말해 보아라. 적극적으로 풀어 줄 것인가, 아니면 절대적으로 침묵할 것인가.

〈본칙〉-------------------------------------------

덕산 스님이 위산에 이르러 바랑을 멘 채 법당에서 동에서 서로, 서쪽에서 동으로 왔다갔다 하더니 뒤돌아보며 말했다.

“없다, 없어!"

그리고는 곧바로 나가버렸다. 덕산스님이 문 앞에 이르러 말하였다.

"너무 경솔했나..좀 더 살펴봐야겠다."

그리고는 몸가짐을 가다듬고 다시 들어가 뵈었다. 위산스님이 앉으려 하니, 덕산스님이 좌구를 집어들면서 말하였다.

"스님!"

위산스님이 불자를 잡으려 하자, 덕산스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는 소맷자락을 떨치며 나가버렸다.

덕산스님은 법당을 뒤로 하고 짚신을 신고는 곧바로 떠나버렸다.

위산스님이 저녁나절에 수좌에게 물었다.

"아까 새로 찾아온 스님은 어디 있는가."

"그 당시에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고 떠나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훗날 고봉정상에 암자를 짓고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할 것이다."

 

〈송〉-------------------------------------------

한 번 보고 또 다시 가서 살피니

눈 위에 서리 더해 위험할 뻔하였다

비기장군 포로 되어 고생한 꼴 될 뻔했네

온전히 돌아 나올 자 몇이나 될까

 

곧장 달려 나왔구나, 우물쭈물하지 않고

고봉정상의 풀 속에 편히 앉아 있구나.

좁쌀 알 만한 대지

【제005칙】

〈수시〉-------------------------------------------

근본적 가르침을 굳게 세우려면, 영특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성불시켜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영특한 사람은 상대방의 능력을 알아채는 것과 거기에 알맞은 대응수단을 쓰는 것을 동시에 하며, 펴고 말고 죽이고 살리며 주고 빼앗는 것을 마음대로 하며, 유(有)에 구애되지 않고 공(空)에 얽혀 있지 않으며, 이치와 실생활에 조금의 차이도 없이 병행해 나간다. 가령 한 걸음 양보하여 제이의적인 입장에 섰다가도, 곧바로 문자어구들을 끊어버린다면, 초심자들은 전혀 머무를 데가 없어지고 만다. 어제 그런 소리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오늘도 이런 소리하고 있으니 내 죄가 하늘에 닿을 만하다. 여기 만일 눈밝은 자가 있다면, 이 원오와 설봉을 조금도 업신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눈밝지 않다면 호랑이 아가리 속에 몸을 눕힌 것과도 같이 몸을 망치고 목숨 잃음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칙〉-------------------------------------------

설봉스님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온 대지를 쥐어 들면 좁쌀 만하구나. 이를 면전에다 던져도 새까만 칠통 같아 알지 못하네. 보청고 북을 치고 모두들 찾아보도록 하여라."

 

〈송〉-------------------------------------------

우두도 마두도 모습을 감추었고

조계의 거울에는 티끌 하나 없네

북치고 찾으라 하나 그대들은 못 보리

봄 맞은 갖은 꽃들 누굴 위해 피었는가

 

 

 

하루 하루가 좋은 날

【제006칙】

〈본칙〉-------------------------------------------

운문스님이 말했다.

"15일 전의 일은 그대들에게 묻지 않겠다. 15일 이후에 대해 한마디 해보아라."

대중들이 대답이 없자 운문스님 스스로 답하여 말했다.

"날마다 날마다 좋은 날이다."

 

〈송〉-------------------------------------------

하나를 버리고 일곱을 가졌으니

온 천지 어디에도 그만한 사람 없네

깊은 계곡 물소리에 천천히 걸으며

날아가는 새의 자취 보는대로 그려내네

무성한 풀과 낮게 드리운 구름

수보리 앉은 바위에는 꽃들 흩어져 있네

가련하고 가련하다 허공신 순야타여

꼼짝 하지 말아라 꼼짝하면 30방

 

 

네가 부처니라

【제007칙】

〈수시〉-------------------------------------------

말 이전의 참 진리는 어떠한 성인도 전해 줄 수 없다. 직접 터득하지 못하면 끝없는 우주 저 편 만큼이나 멀리 있다. 가령 약간 터득한 바가 있어서, 세상 사람들의 말머리를 꽉 막아버려도, 그것으로 영리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늘이 덮을 수 없고, 땅이 실을 수 없으며, 허공이 다 담지 못하고, 해와 달이 다 비출 수 없으며, 부처도 없고, 유아독존의 나도 없다고 할 정도는 되어야, 조금은 뭘 아는 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아직 멀었다. 하나의 털끝 위에서도 진리를 깨닫고, 대광명을 뿜으며, 온갖 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어, 모든 사물에서 자유를 얻으며, 무엇을 가져 와도 옳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자 말해 보아라. 어떤 것을 얻었기에 이같이 기묘하고 특별할 수 있는지를... 대중은 알아들었는가. 옛사람의 한마의 노고를 겪고 세운 공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세상을 덮을 공을 다시 논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그만 두고라도, 설두스님의 공안은 어떻게 하여야 알아들을까.

 

〈본칙〉-------------------------------------------

어떤 스님이 법안스님에게 물었다.

"혜초가 스님께 여쭙겠습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법안스님이 대답했다.

"네가 혜초니라."

 

 

 

〈송〉-------------------------------------------

강남에는 봄바람 산들산들

자고새는 꽃그늘에 우짖는다

용문삼급 넘어야 물고기 용되건만

어리석은 이는 밤새 못물만 퍼내누나

 

 

 

눈썹이 아직 남아 있는가

【제008칙】

〈수시〉-------------------------------------------

참진리를 터득하면, 길을 가면서도 참진리를 자유롭게 쓸 수 있음이, 용이 물을 얻고, 호랑이가 산을 의지하는 것과도 같다. 참진리를 터득하지 못하면, 세속적으로 처신함이, 숫양이 담장을 치받고 뿔이 울타리에 걸려 꼼짝 못하는 꼴이 되거나, 나무를 지키며 토끼가 부딛쳐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도 같다. 참진리를 터득한 사람의 한마디는 때로는 웅크린 사자와도 같고, 때로는 금강왕의 보검과도 같으며, 때로는 모든 이의 말문을 막아버리고, 때로는 잔물결을 따르고 큰물결 타는 것과도 같다. 또 길을 가다가도 참진리를 씀이, 마음을 알아주고, 기분을 헤아리며, 희비를 알아차려, 서로 꼭 마음이 들어맞아 서로의 밝음을 증명할 수도 있다. 세속적으로 처신하는 자에게는, 지혜의 눈을 갖추고서, 시방을 방비하며, 깎아지른 천길 절벽을 세울 수도 있다. 그래서 참진리의 큰 쓰임이 나타남은 법칙에 얽매어 있지 않다고 한 것이다. 때로는 한 포기 풀이 일장육척 금빛 부처님으로 쓰이게 하고, 때로는 일장육척 금빛 부처님이 풀 한 포기로 쓰이게 하기도 한다. 자 말해보아라. 이 어떤 도리인가. 그래 자세히 알았는가.

 

 

〈본칙〉-------------------------------------------

취암스님이 하안거 끝에 대중법문을 하였다.

"한여름 결제 이후로 여러분들을 위해서 설법했는데, 취암의 눈썹이 붙어 있는가."

보복스님이 답했다.

"도둑질하는 놈이 정직할 리 없다."

장경스님이 답했다.

"눈썹이 자꾸 자라고 있다."

운문스님이 답했다.

"함정이다. 함정. 조심해."

 

〈송〉-------------------------------------------

취암이 보인 뜻

천고에 상대할 이 없네

함정이다 조심해 응수하다니

돈 잃고 죄 덮어 쓴 꼴

보복의 완곡한 말씀도

칭찬인지 비난인지 알 수가 없네.

말 많다 취암이여

정녕코 도둑놈이로다

 

 

 

흰옥에는 티가 없으나

누가 가려내겠는가.

장경화상 똑똑히 알아

눈썹 자꾸 자란다 했네

 

 

 

언제나 열려 있는 진리의 문

【제009칙】

〈수시〉-------------------------------------------

밝은 거울이 경대 위에 있으면 아름답고 못생김 저절로 가려지고, 막야 명검이 손에 있으면 죽이고 살림 그의 마음대로다. 한나라 사람이 가고 오랑캐가 오건, 오랑캐가 가고 한나라 사람이 오건 거울은 그대로 비취 줄 따름이요, 죽을 사람 살릴 수도 살 사람 죽일 수도 있는 것은 막야검을 쥔 사람의 마음이다. 자 말해 보아라. 그럴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를. 만약 관을 꿰뚫어 보는 눈과 몸을 바꾸는 수단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경우에 어쩔 수도 없을 것이 뻔하다. 자 말해보라. 어떠한 것이 관을 꿰뚫어 보는 눈과 몸을 바꾸는 수단인가를...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주의 모습입니까."

조주스님이 말했다.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다."

 

〈송〉-------------------------------------------

 

조주가 뭐냐고 다그쳐 물었지만

금강의 눈에는 티끌 하나 없다네

동서남북 어디에나 문은 있지만

쳐도 두들겨도 열리지 않는다네

 

 

에라 이 멍텅구리 사기꾼

【제010칙】

〈수시〉-------------------------------------------

옳다 옳다 그르다 그르다 시끄럽기도 하다. 논쟁을 벌인다면, 나름대로 근거는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말했다. 만일 절대적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석가도 미륵도 문수도 보현도 그리고 온갖 성인들도, 천하의 종사들도 모두 별 것 아니다. 모두 다 숨 들이키고 소리 삼킬 뿐 끽소리도 못한다. 그러나 상대적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초파리나 눈에놀이나 온갖 꿈틀거리는 모든 생명들도, 하나하나 대광명을 뿜고, 만길 벼랑을 세운다. 만약 절대적인 것에도 상대적인 것에도 의거하지 않고 말해야 한다면, 자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규정이 있으면 규정을 따라야 하고, 규정이 없다면 선례를 따라야 할 것이다.

 

 

〈본칙〉-------------------------------------------

목주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즘 어디 있다 왔느냐."

스님이 갑자기 꽥, 소리질렀다. 목주스님이 다시 말했다.

"노승이 너에게 일할을 당하였구나."

스님이 또다시 소리지르자 목주스님이 말했다.

"서너 차례 소리지른 다음에는 어찌하려고 하느냐."

스님은 말이 없었다. 목주스님이 그 스님을 후려치며 말했다.

"이런 멍텅구리 사기꾼!"

 

〈송〉-------------------------------------------

꽥꽥 또 꽥꽥 잘도 꽥꽥대누나

선의 도리 나름대로 아는 듯도 하다

이 중이 범대가리 올라탔다 말한다면

탄 놈이나 그러는 놈이나 모두 애꾸눈

누가 애꾸눈이냐

잡아다 세상 사람들과 구경 좀 하자.

 

 

 

술지게미 먹고 취해 다니는 놈들

【제011칙】

〈수시〉-------------------------------------------

부처님과 조사들의 큰 솜씨를 모두 제 손아귀에 넣고, 하늘과 사람 온갖 생명들이 모두 그의 지시를 받으며, 대수롭지 않은 일구일언으로 모든 무리를 놀라 움직이게 하고, 일거수 일투족으로 사슬을 쳐서 깨고 목에 씌운 칼을 부수며, 향상의 길에 있는 이들을 만나면 향상의 일로 이끄는 사람이 있다. 자 말해보아라. 어떤 사람이 일찍이 그런 일을 해 보였는가를. 이 말의 가리키는 곳을 이제 알았는가를...

 

〈본칙〉-------------------------------------------

황벽스님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모두가 술지게미나 먹고 진짜 술을 마신 듯이 취해 다니는 놈들이다. 할 일 없이 이 절 저 절로 공밥이나 얻어먹고 다닌다면 언제 깨닫겠느냐. 아무리 찾아다녀도 이 당나라에는 큰 선사가 없다는 것을 너희가 알고는 있느냐."

그때 어떤 스님이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여러 총림에서 대중을 지도하고 거느린 것들은 무엇입니까."

황벽스님이 말하였다.

"선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스승이 없다는 말이다."

 

〈송〉-------------------------------------------

늠름하고 고고한 기풍 스스로 자랑 않고

천하에 앉아서 용도 뱀도 다스린다

대중천자가 일찍이 슬쩍 건드렸다가

세 번이나 직접 혼이 났다네

 

 

내 베옷 무게가 세 근이다

【제012칙】

〈수시〉-------------------------------------------

 

 

 

 

살인도 활인검은 옛부터의 법도이며,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것이다. 죽여도 터럭 하나 다치지 않고, 살린다 해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향상의 외길은 온갖 성인들도 전할 수 없다 하였다. 학자들이 헛되이 애를 쓰는 것은 마치 달 그림자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은 원숭이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자, 말해 보아라. 이미 전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번잡한 이야기와 공안 따위가 그렇게 많은지를... 눈 똑바로 뜬 자라면 다음의 본보기를 잘 살펴보아라.

 

〈본칙〉-------------------------------------------

어떤 스님이 동산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동산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입은 삼베옷 세 근이라네."

 

〈송〉-------------------------------------------

금까마귀는 날고 옥토끼는 달린다

훌륭한 대답 어찌 가볍게 응수했다 하겠는가

온갖 격식 다 갖추고 동산을 만나다니

절름발이 자라와 눈먼 거북이 빈 골짝에 떨어진 꼴이로다

 

꽃은 만발하고 비단은 눈부시다

남녘에는 대숲, 북녘에는 나무숲

문득 생각이 나네. 장경과 육대부

도를 아는 이들이라 울지 않고 웃었다네.

----------------------------------

※ 장경과 육대부 : 남전보원이 죽자 그의 제자 육환대부가 스승의 관 앞에서 통곡은 하지 않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에 자리를 지키던 주승(主僧)이 이 모양을 보고 노발대발했다. 그러자 육환대부는 이번에는 대성통곡을 하며 소리쳤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우리 스승께서는 이제 세상을 버리고 멀리 가셨구나. 나중에 장경대안이 이 육환대부의 말을 듣고는 칭찬했다.

 

 

 

은주발에 소복한 하얀 눈

【제013칙】

〈수시〉-------------------------------------------

구름이 큰 들판에 모이니 온 법계에 간직되지 않은 데 없고, 눈이 갈꽃을 덮으니 온통 흰빛이다. 차다고 하면 눈같이 차고, 작다고 하면 쌀가루같이 작으며, 깊고 깊어 눈으로 엿볼 수 없고, 은밀하고 은밀하여 마구니 외도가 헤아릴 수 없다. 하나를 보고 셋을 아는 자라면 그런대로 안심이 된다. 천하 사람들의 말문을 콱 막을 수 있는 한마디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자 말해 보아라. 이 어떤 사람의 경지인가를...

 

〈본칙〉-------------------------------------------

어떤 스님이 파릉스님에게 물었다.

"제바종이란 무엇입니까."

 

 

파릉스님이 말하였다.

"하얀 은주발에 소복히 담은 흰 눈."

 

 

〈송〉-------------------------------------------

신개원의 노승 견식도 뛰어나지

하얀 은주발 속 소복한 흰 눈이라

구십육종 외도들은 스스로 알아야 하리

그래도 모른다면 하늘 가 달에나 물어 보아라

제바종 제바종

붉은 깃발 아래 끝없이 이는 맑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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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바종이란 삼론종을 가리킨다. 제바종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당시의 불교학승들에게 유행한 일체개공(一切皆空)을 주장한 삼론종에 대한 선적인 견해를 물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때 그때 하신 말씀

【제014칙】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일대시교입니까."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하신 말씀이다."

 

〈송〉-------------------------------------------

그때 그때 한 말씀 참으로 뛰어나다

구멍 없는 철추로 쐐기 거듭 박았도다

한바탕 웃음소리 온 우주에 가득 차니

어젯밤 검은 용 뿔 꼬인 채 기죽었네

(대단하고 대단하다. 소양의 노인에게는 아직도 쐐기 하나 남아 있구나.)

 

 

아무 말도 안 했겠지

【제015칙】

〈수시〉-------------------------------------------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검은 옛부터의 규범이며 지금에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자, 말해 보아라. 지금 당장 어떤 것이 살인도이고 활인검인지를....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설법을 듣는 사람도, 설법을 할 일도 없다면 그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한 말씀도 안 하셨을 것이다."

 

〈송〉-------------------------------------------

도일설은 대일설의 한 부분

생사를 같이할 뜻 각별하기도 하다

팔만사천 대중들 모두 다 장님

삼십삼 조사 모두 호랑이 굴 들어갔네

훌륭하고 또 훌륭하여라.

어지럽고 바쁘게 흐르는 물 속의 달이여.

 

 

알 껍질을 깨 주시면

【제016칙】

〈수시〉-------------------------------------------

지극한 도에는 샛길이 없고, 그 도에 있는 사람에게는 감히 다가가기 힘들다. 정법은 보고 들을 수 없으며, 말이나 글과는 아득히 떨어져 있다. 만약 가시밭을 헤치고 나가, 부처님과 조사의 밧줄을 풀어 버리고, 은밀한 경지를 얻게 되면, 온 하늘이 꽃을 바치려 해도 길이 없고, 외도가 엿보려 해도 문이 없다. 하루종일 일을 해도 한 일이 없고, 하루종일 설법해도 한 가르침이 없다. 자유자재이어서, 줄탁의 솜씨를 펴고, 살활의 칼을 쓸 수가 있다. 비록 그렇다 해도, 교화의 일에 종사하게 되면, 한 손은 들어올리며 한 손은 잡을 줄 알아야 조금은 쓸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분의 일을 할 때에는 그런 것은 거의 쓸데가 없는 것이다. 이 본분의 일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

 

〈본칙〉-------------------------------------------

어떤 스님이 경청스님에게 물었다.

"학인이 알에서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으니, 톡 쪼아 주십시오."

경청스님이 말했다.

"그렇게 하면 과연 살 수 있겠느냐."

그 스님이 말했다.

"살아나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겠지요."

경청스님은 말하였다.

"역시 형편없는 놈이로구나."

 

〈송〉-------------------------------------------

옛 부처에게는 뚜렷한 가풍이 있으니

함부로 대들었다가는 혼쭐이나 난다네

어미와 새끼도 서로 모르는 일을

누가 알아 동시에 쫀단 말인가

톡 톡 쪼으면 깨어나련만

아직도 껍질 속에 갇쳐만 있구나

힘껏 두드려 깨어주려 해도

천하 납승들 헛된 수작 싫다네

 

 

 

오래 앉아 있어야 피곤하기만 하다

【제017칙】

〈수시〉-------------------------------------------

못을 자르고 쇠를 끊어야 본분종사라 할 수 있다. 화살을 겁내고 칼을 두려워한 데서야 어찌 사통팔달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 경지는 그런대로 되었다 치더라도, 흰 파도가 하늘에 넘칠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본칙〉-------------------------------------------

어떤 스님이 향림스님에게 물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향림스님이 말하였다.

"오래 앉아 있어 봐야 피곤하기만 하다."

 

〈송〉-------------------------------------------

한 사람 두 사람 천만 사람들

모두들 굴레 벗고 짐을 풀었네

왼 쪽 오른 쪽 살피며 따르는 이 있다면

 

 

자호가 유철마 치듯 맞아야 하리

【제018칙】

〈본칙〉-------------------------------------------

숙종 황제가 혜충국사에게 물었다.

"스님께서 돌아가시면 무엇을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혜충국사는 말하였다.

"노승에게 무봉탑을 만들어 주십시오."

"스님께서 탑의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

혜충국사가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말했다.

"알았습니까."

황제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법을 배운 탐원이라는 제자가 있는데 이 일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묻도록 하십시오."

국사가 입적한 뒤 황제는 조서를 내려 탐원에게 물었다.

"이 뜻이 무엇입니까."

탐원이 말하였다.

"상강은 남으로 흐르고 담강은 북으로 흐른다. 그 가운데 황금이 있어 온 나라를 가득 채운다. 그늘 없는 나무 아래 같이 타고 가는 배, 유리궁전에 사는 이들 중에는 알 만한 이 없노라."

 

 

〈송〉-------------------------------------------

무봉탑 보려해도 참으로 어렵다

맑고 깊은 연못에는 청룡이 깃들 수 없네

층층이 높고 높아 그림자 드리운다

천년 만년 사람들과 더불어 바라보리

 

 

손가락 하나 치켜세워

【제019칙】

〈수시〉-------------------------------------------

한 점 티끌 일어도 온 대지가 포함되어 있고, 꽃 한 송이 피어도 온 세계가 일어난다. 티끌이 일어나지 않고 꽃이 아직 피지 않았을 때에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옛말에도 한 타래 실은 한번만 자르면 모두 끊어져 조각이 나고, 한군데만 물들여도 모두 물들고 만다고 하였다. 지금 그와 같이, 온갖 갈등을 끊어버리고, 참된 자기의 보배를 이끌어내며, 높고 낮음에 두루 응하고, 앞뒤에 차이가 없으면, 본래 면목 스스로 이룰 수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아래의 글을 잘 살펴보아라.

〈본칙〉-------------------------------------------

구지스님은 묻기만 하면 오로지 손가락 하나만을 세워 보였다.

 

〈송〉-------------------------------------------

구지화상의 손가락 불쑥 치킨 깊은 사랑

온 우주 통틀어도 그 같은 이 다시 없네

일찍이 넓은 바다 띄워놓은 널빤지 하나

캄캄한 밤바다에서 눈먼 거북 건져 줬네

 

 

서쪽에서 온 뜻은 없다

【제020칙】

〈수시〉-------------------------------------------

온 산 봉우리에도 담장의 돌 위에도 참 진리 가득하다. 망설이거나 우두커니 꾸물대면 정녕 헛수고일 뿐이다. 혹 개중에 썩 나서서, 바다를 뒤집고, 수미산을 걷어차며, 할로 흰 구름 걷어내고, 허공을 쳐부수며, 당장에 어떤 때 어떤 곳에서도, 모든 사람의 말문을 막고, 그 누구도 가까이 하기 어렵게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자, 말해 보아라. 옛부터 어떤 사람이 그러할 수 있었는지를...

 

〈본칙〉-------------------------------------------

용아스님이 취미스님에게 물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취미스님이 말했다.

“나에게 선판을 가져오너라."

용아스님이 선판을 가져다가 주자. 취미스님은 받자마자 그대로 후려쳤다.

용아스님이 말하였다.

"치려면 마음대로 치십시오. 그래도 조사께서 오신 뜻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용아스님은 다시 임제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임제스님이 말했다.

"내게 방석 좀 갖다 주게."

용아스님이 방석을 가져다 주자, 임제스님이 받자마자 방석으로 후려쳤다.

용아스님이 말하였다.

"치는 것은 마음대로 치십시오.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송〉-------------------------------------------

용아산 속 용에겐 눈이 없구나

썩은 물이 어찌 고풍을 드날리리

선판이고 포단이고 다 쓸 줄 모르니

노행자나 불러다 주어야 하리

(저 늙은이 이것으로 끝내기에는 미진한 것이 있어 다시 한 게송 덧붙인다.)

노공에게 주어야 무슨 소용 있으랴

앉아서나 기대서나 불조의 맥 이을 생각 없다네

저녁 구름 돌아와도 산 감싸기 미흡하나

먼 산은 첩첩 한없이 푸르구나

 

피기 전엔 연꽃, 핀 다음엔 연잎

【제021칙】

〈수시〉-------------------------------------------

법의 깃발을 세우고, 종지를 내세우는 따위는 비단 위에 꽃을 펴는 것과도 같다. 굴레를 벗고 짐을 내리면 그야말로 태평시절이다. 만약 격 밖의 한마디를 터득했다면 하나를 드러내도 셋을 알 것이나, 그렇지 못하다면 옛사람의 공안에 의거해 그 언행 등을 잘 들어 두어야 할 것이다.

 

〈본칙〉-------------------------------------------

어떤 스님이 지문스님에게 물었다.

"연꽃이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지문스님이 말했다.

"연꽃이니라."

스님이 지문스님에게 물었다.

"물 위에 나온 뒤에는 어떻습니까."

지문스님이 말했다.

"연잎이다!"

 

〈송〉-------------------------------------------

연꽃이라 연잎이다 일러주었건만

물 밖에 나옴은 무엇이고 물 안은 또 무엇인가

그런 것은 강남 강북 아무에나 물어 보라

한 여우의심 덜어주니 또 다른 의심 따라오네

 

 

 

내 안의 독사 한 마리

【제022칙】

〈수시〉-------------------------------------------

크고 커서 바깥이 없고, 작고 작아서 없는 것에 가깝다. 잡았다 놓았다 함이 다른 데서 비롯하지 않고, 말고 펼침이 오로지 참 나에 달려 있다. 달라붙음을 풀고 결박을 벗어나려면, 자취를 떼내어버리고 이런 저런 말씀을 다 삼켜 버려야 하며, 모두들 참다움의 요처에 자리잡고, 각자가 천길 벼랑에 서야만 한다. 자 말해 보아라. 이 어떠한 사람의 경계인지를....

 

〈본칙〉-------------------------------------------

설봉스님이 대중들에게 말했다.

"남산에 코가 자라처럼 생긴 독사가 있다. 너희들은 모두 잘 보아 두거라."

장경 혜릉스님이 말하였다.

"오늘 대중들 중에 반드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떤 스님이 이를 현사스님에게 전하였다. 현사스님이 말하였다.

"혜릉 법형이므로 그처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현사스님이 말했다

"남산까지 갈 필요가 뭐 있겠느냐."

(운문스님은 설봉스님 앞에 주장자를 던지면서 뱀이라 겁주는 시늉을 하였다.)

〈송〉-------------------------------------------

상골암 높고 높아 오르는 이 없어라

오른 이에게 독사는 장난감

혜릉도 현사도 어쩌지 못했구나

모두들 독사에 몸 망치고 숨 끊기네

운문은 이미 알고 있었네

풀 헤쳐 보아야 동서남북 어디에도 독사 없음을

별안간 주장자 불쑥 내밀었지

설봉 앞에 던진 건 독사 아가리

독사 아가리여 번개불과 같구나

눈 치켜 떠 살펴도 보이지 않네

설두산 유봉 그 독사 있기는 있지

모든 이 하나하나 열심히 살펴보게나

(설두스님이 소리쳤다."바로 네 발 밑을 살펴보아라.")

 

 

 

해골이 온 들에 가득했으리

【제023칙】

〈수시〉-------------------------------------------

옥은 불로 가려내고, 금은 시금석으로 알아내며, 칼날은 터럭으로 시험해 보고, 물의 깊고 얕음은 지팡이로 재어 본다. 선승의 깊고 얕음이나 진리에 직면하고 있는지 돌아서 있는지는 그의 한 두 마디 말, 일거일동, 일진일퇴, 일문일답으로 가려낸다. 자, 말해 보아라. 어떻게 가려내야 할지를....

 

〈본칙〉-------------------------------------------

보복스님과 장경스님이 산에서 노닐 때, 보복스님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것이 바로 묘봉정이다."

장경스님이 말하였다.

"옳기는 옳지만 애석하구나."

그후 이를 경청스님에게 말하자 경청스님은 말하였다.

"장경스님이 아니었다면 온 들녘에 해골이 가득 널려 있었을 것이다."

 

〈송〉-------------------------------------------

묘봉산 봉우리 우거진 수풀

얻기는 했다만 누구를 주랴

손공이 가려내지 않았던들

해골만 그득, 누가 알았으랴

 

 

 

네 활개를 펴고 드러누우니

【제024칙】

〈수시〉-------------------------------------------

높고 높은 봉우리에 서 있으면 악마나 외도도 능히 알지 못하고, 바다 속으로 가면 부처의 눈으로도 엿볼 수 없다. 하지만 비록 눈은 유성 같고 솜씨는 번갯불 같더라도 아직 꼬리를 질질 끌고 가는 거북이를 면치 못한다.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본칙〉-------------------------------------------

어느 날 위산 영우스님에게 산 아래 있던 비구니 유철마가 찾아왔다.

위산스님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늙은 암소야, 네가 왔느냐."

그녀는 스님의 농담을 슬쩍 비키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일 오대산에서 큰 법회가 있다는데 스님께서도 가십니까?."

그러자 화상은 네 활개를 펴고 드러누웠다.

유철마는 곧바로 돌아갔다.

 

〈송〉-------------------------------------------

철마를 타고 겹겹이 쌓인 성으로 들어갔으나

여섯 나라가 이미 평정되었다는 칙명만 들었네

그래도 쇠채찍 들고 돌아오는 사람에게 묻건만

밤은 깊고 고요하니 누구와 함께 대궐을 거닐까

 

 

천봉만봉 속으로

【제025칙】

〈수시〉-------------------------------------------

아무리 훌륭한 마음의 작용을 지녔다 해도 깨달음에 달라붙은 채 떠나지 않는다면 독의 바다에 빠지게 될 것이다. 뛰어난 한 마디를 내뱉아 천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지 못한다면 범속에 떨어지고 말것이다. 부싯돌이 반짝하는 순간에 검고 흰 것을 알아보고 번갯불이 번쩍할 때 생사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면 시방을 좌단하고 천 길 벼랑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자, 이런 활작용이 있음을 아느냐?.

〈본칙〉-------------------------------------------

연화봉의 암주가 주장자를 들고서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옛사람들은 여기에 이르러 무엇 때문에 머물려 하지 않았는가."

대중들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스스로 대중을 대신하여 말하였다.

"그들이 수행의 도상에서 별 도움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이어 말하였다.

"궁극적으로 무엇인가."

또 스스로 대신해 말하였다.

"주장자를 비껴든 채 옆 눈 팔지 않고 첩첩이 쌓인 산봉우리 속으로 곧장 들어가노라."

 

〈송〉-------------------------------------------

눈에는 티끌 모래, 귀에는 흙투성이

천봉만봉 속에서도 살지 않으리

꽃은 지고 물은 흘러 그저 아득타

눈 꼬리 치켜들고 찾아보건만

그림자도 이미 볼 수 없어라

 

 

무엇이 기특한 일인가

【제026칙】

〈본칙〉---------------------------

어떤 스님이 백장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기특한 일입니까."

백장스님이 말하였다.

"홀로 대웅봉에 앉아 있구나."

스님이 절을 올리자, 백장스님이 대뜸 후려쳤다.

 

〈송〉--------------------------------

백장은 천마 타고 달마의 선 세계 치달리니

그 교화의 수단은 보통 선승과 같지 않네

번갯불 번쩍, 부싯돌 반짝 임기웅변의 솜씨

우습구나 공연히 호랑이 수염만 비틀었네

 

 

가을바람에 완전히 드러나다

【제027칙】

〈수시〉------------------------------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해 주고, 하나를 들면 셋 까지 밝혀 주며, 토끼를 보면 곧 매를 놓아주고, 불을 피우면 바람 방향을 보아 잘 타도록 피워 주면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자, 그건 그렇다 치고 호랑이 굴에 들어가려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나무가 메마르고 잎이 질 때면 어떠합니까."

"가을 바람에 완전히 드러났느니라."

 

〈송〉---------------------------

물음에도 대답에도 깊은 뜻 서렸구나

삼 구 헤아려라 화살은 먼 구름 밖

넓은 들에 찬바람 온 하늘에 가랑비

그대는 아는가 소림사의 나그네

웅이산 깊은 숲에 잠든 듯 깨어 있음

 

 

 

할 말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찌 알리

【제028칙】

〈본칙〉-----------------------

남전스님이 백장산의 열반스님을 참방하자, 백장 열반스님이 물었다.

"예로부터 많은 성인이 남에게 설하지 않은 법이 있었느냐."

"있습니다."

"어떤 것이 남에게 설하지 않은 법이냐."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외물도 아닙니다."

"말해버렸구나."

"저는 이렇습니다만 스님은 어떠합니까."

"나는 큰 선지식이 아니다. 할 말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찌 알겠느냐."

"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너에게 너무 말했구나."

 

〈송〉---------------------------

부처도 달마도 말하지 못한 것

중들은 지금도 찾아 헤매네

맑고 밝은 거울은 만물을 비치고

남쪽 하늘에서 북두칠성을 보네

칠성의 자루 별 간 데 없어라

자루 별 어디 갔나 찾아 헤매는

코 쥐고 입 벌린 그 못난 꼴들

 

 

그를 따라가거라

【제029칙】

〈수시〉--------------------------

물고기가 헤엄치면 물이 흐려지고 새가 날면 깃털이 떨어진다. 주인과 손님은 확실하게 분별하고 흑과 백을 환히 나누어 본다면 바로 밝은 거울에 사물이 비치듯이, 손바닥 안에 야광주가 있듯이 되어 한인도 호인도 다 비치고 소리나 빛깔로 야광주의 진짜를 알아낸다. 자, 말해 보아라. 어찌하여 그렇게 되는지를...

 

 

 

〈본칙〉-----------------------

 

어떤 스님이 대수스님에게 물었다.

"겁화가 훨훨 타서 대천세계가 모두 무너지는데 󰡐이것󰡑도 따라서 무너집니까."

"무너진다."

"그렇다면 그를 따라가겠습니다."

"그를 따라가거라!"

 

 

〈송〉---------------------------

활활 타는 겁화 속에서 질문을 던진 셈

이 중 아직도 이중 관문에 걸려 있네

그의 말에 끌려 다니다니 가련하구나

대수는 드넓은 세상 홀로 노닐고 있는데

 

 

진주에는 큰 무가 나느니라

【제030칙】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들으니 스님께서는 남전스님을 친견했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진주에 큰 무우가 나느니라."

 

〈송〉--------------------------

진주의 큰 무우라 천하 중들 흉내내지만

 

 

고니 희고 까마귀 검음 뉘라서 알랴

조주는 도둑일세 중의 코를 비틀었으니

 

 

아니다, 아니야

【제031칙】

〈수시〉------------------------------

움직이면 그림자가 나타나고, 깨달으면 알음이 생겨난다. 그렇다고 움직이지도 않고 깨닫지도 않는다면 여우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투철하게 사무치고, 꽉 믿어서 실오라기 만한 가리움마저 없다면, 용이 물을 얻은 듯, 범이 산을 의지한 듯하여, 놓아버려도 기와부스러기에서 광명이 나오고, 잡아들여도 황금이 빛을 잃게 되어, 옛사람의 공안도 빙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가 말해 보아라.

 

〈본칙〉---------------------------

 

마곡스님이 석장을 지니고 장경스님에게 가, 선상 주위를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장경스님이 말하였다.

"옳지, 옳지!"

마곡스님이 또 다시 남전스님에게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아니다, 아니야."

마곡스님이 말하였다.

"장경스님은 옳다고 하는데, 스님은 무엇 때문에 옳지 않다고 하십니까."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장경스님은 옳고 틀린 것은 너다. 그런 것은 바람의 힘에서 굴러나온 것이니 결국 사라지고 만다."

 

〈송〉--------------------------

이래도 틀렸다, 저래도 틀렸다

절대 말하지 마라

사해에 물결이 잔잔하고

모든 강물에 썰물이 빠졌다

고책의 가풍이 열두 대문보다도 높은데

문마다 길 있건만, 텅 비어 쓸쓸하네

쓸쓸하지 않음이여

선지식은 병 없는 약을 잘 사용하느니라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제032칙】

〈수시〉-----------------------

시방을 딱 끊어버리고, 일천 개의 눈이 단박에 열리고, 단 한마디로 수많은 말을 꼼짝 못하게 하니, 일만 기틀이 싹 사라진다. 생사를 함께 할 사람이 있느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공안을 처리하지 못하겠거든 옛사람들의 말을 살펴보아라.

 

〈본칙〉---------------------------

정상좌가 임제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임제스님이 선상에서 내려와 멱살을 잡고는 뺨을 후려치고 대뜸 밀쳐버렸다.

정상좌가 우두커니 서 있자, 곁에 있던 스님이 말하였다.

"정상좌야, 왜 절을 올리지 않느냐."

정상좌가 절을 하려다가 홀연 크게 깨우쳤다.

 

〈송〉--------------------------

단제스님이 사용했던 전기를 이어받았으니

받은 것이 어찌 점잖을 리 있으랴

거령신의 쳐든 손 일격에

천만 겹의 화산이 부서져버렸네

 

 

한 쪽 눈만 갖추었다

【제033칙】

〈수시〉---------------------------

동서를 분별하지 않고 남북을 구분하지 않아, 아침부터 저녁나절까지 저녁부터 아침나절까지 무심하니, 이러면 그가 졸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어느 때는 눈빛이 유성처럼 빛나기도 하니, 이러면 그가 깨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어느 때는 남쪽을 북쪽이라고 하기도 한다. 말해 보아라, 이는 마음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도인이냐, 범인이냐? 여기에서 뛰어 넘어야만 비로소 귀착점을 알아, 옛사람은 이러하기도 저러하기도 했음을 알 것이다. 말해 보아라, 이는 어떤 상황이냐?

 

〈본칙〉--------------------------

상서 진조가 자복스님을 떠보러 갔는데, 자복스님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일원상을 그렸다.

진조는 말하였다.

"제자가 이렇게 와서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일원상을 그리시어 어쩌자는 것입니까."

자복스님이 곧 방장실의 문을 닫아버렸다.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진조는 겨우 한쪽 눈만 갖추었다.")

 

〈송〉---------------------------

둥그런 진주 구르고 옥구슬은 돌돌돌

말에 싣고 나귀에 얹어 철선을 타고는

온 세상 일없는 나그네에게 나누어주네

큰 자라를 낚을 때에는 올가미를 던져라

(설두스님은 다시 말하였다."천하의 납승이 벗어나지 못하리라.")

 

 

 

아직도 산놀이를 못하였구나

【제034칙】

〈본칙〉---------------------------

앙산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사이 어디에 있다 왔느냐."

"여산에서 왔습니다."

"오로봉을 가보았느냐."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화상아, 아직도 산놀이를 못했구나."

(운문스님은 말하였다."이 말씀은 모두 자비로움 때문에 한 차원 내려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송〉----------------------

한 단계 낮췄는지 아닌지

누가 식별할 수 있으랴

흰 구름은 겹겹이 쌓이고

붉은 해는 높이 솟았다

왼쪽으로 돌아볼 틈도 없이

오른쪽으로 돌아보니 벌써 늙었네

그대는 보지 못하였나 한산자를

너무 일찍 길을 떠나

십 년이 되도록 돌아오질 못하고

왔던 옛길마저 잊어버렸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는 안 되지

【제035칙】

 

〈수시〉--------------------------

용과 뱀을 구별하고 옥과 돌을 가리며, 흰 것과 검은 것을 구별하고 의심을 결단하는 데에, 만일 이마 위에 일척안이 없거나 팔꿈치 아래 호신부가 없으면 언제나 첫머리부터 빗나가 버린다. 그저 지금 보고 듣는 것에 어둡지 않고, 성색에 순수하며 참다우니, 말해 보아라, 이는 검은 것인지 흰 것인지, 굽은 것인지 곧은 것인지를,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결판을 내야 하겠느냐?

 

〈본칙〉------------------------------

문수가 무착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남방에서는 불법을 어떻게 수행하느냐."

"말법시대의 비구가 계율을 조금 받드는 정도입니다."

"대중이 얼마나 되느냐."

"삼백 명 또는 오백 명 정도입니다."

무착이 도리어 문수에게 물었다.

"여기서는 어떻게 수행하는지요."

"범부와 성인이 함께 있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지요."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이다."

 

〈송〉------------------------

일천 봉우리 굽이굽이 쪽빛처럼 푸르른데

문수와 이야기했다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리

우습구나, 청량산에 대중이 얼마냐고

앞도 삼삼, 뒤도 삼삼

 

 

풀꽃 따라 갔다가 지는 꽃에 돌아오다

【제036칙】

〈본칙〉--------------------------

어느날 장사스님이 산을 유람한 후 문 앞에 이르자, 수좌가 물었다.

"스님, 어딜 다녀오십니까."

"산을 유람하고 오는 길이다."

"어디까지 갔다 오셨습니까."

"처음엔 향기로운 풀을 따라갔다가, 지는 꽃을 따라서 돌아왔느니라."

"아주 봄날 같군요."

"아무렴, 가을날 이슬 방울이 연꽃에 맺힌 때보다야 낫지."

 

 

〈송〉-------------------------

대지엔 티끌 한 점 없는데

어느 사람인들 보려 하지 않으랴

처음엔 향기로운 풀을 따라갔다가

다시 지는 꽃을 따라 돌아왔네

파리한 학은 차가운 나무 위에 발돋움하고

미친 원숭이는 옛 누대에서 휘파람 부네

장사의 한없는 뜻이여!

 

 

어느 곳에서 마음을 구하나

【제037칙】

〈수시〉---------------------------

번개치는 듯한 기봉을 생각으로 헤아리려 한다면 헛수고이며, 허공에 내려치는 천둥소리는 귀를 막아도 되지 않는다. 머리 위로는 붉은 깃 펄럭이고 귓전 뒤로는 쌍검을 돌린다. 만일 눈빛이 예리하지 못하고 손이 날쌔지 못하면 어떻게 이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고개를 떨구고 오랫동안 생각하며 의근으로 헤아리지만, 해골 앞에서 무수한 귀신을 본다는 것을 참으로 모를 것이다. 말해보라, 의근에 떨어지지도 않으며 득실에 얽매이지 않고, 문득 이렇게 깨달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본칙〉-----------------------------

반산스님이 말했다.

"삼계에 법이 없는데 어느 곳에서 마음을 구할까."

 

〈송〉------------------------

삼계에 법이 없는데

어디에서 마음을 찾을까

흰 구름은 일산이요

흐르는 물소리는 비파소리라

한두 곡조도 아는 이 없나니

비 개인 밤 못에 가을 물이 깊다

 

 

조사의 마음 도장

【제038칙】

〈수시〉-----------------------

만일 점오(漸悟)를 논한다면 참된 이치에 등지고 세속의 도리에 부합되어, 법석대는 저자에서도 횡설수설할 것이다. 돈오(頓悟)를 논한다면 조짐과 자취를 남기지 않으므로 일천 성인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돈, 점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어떠할까? 민첩한 사람은 말 한 마디에 깨치고 날쌘 말은 한 채찍이면 된다. 바로 이러한 시절에 어느 누가 작가이겠느냐?

 

〈본칙〉-----------------------------

풍혈스님이 영주의 관아에서 법문을 하였다.

"조사의 마음 도장은 무쇠소의 기봉처럼 생겼는데 도장을 떼면 집착하는 것이고 찍으면 망가진다. 떼지도 못하고 찍지도 못하니, 찍어야 옳겠느냐 찍지 않아야 옳겠느냐."

그때 노파장로가 대중 속에서 나와 물었다.

"저에게 무쇠소의 기봉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인가하지 마십시오."

풍혈스님이 말했다.

"고래를 낚아 바다를 맑게 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개구리 걸음으로 진흙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짓은 안 한다."

노파장로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자, 풍혈스님이 소리를 지른 다음 말하였다.

"장로는 왜 말을 계속하지 못하느냐."

여전히 노파장로가 머뭇거리니, 풍혈스님은 불자로 한 번 치고 말하였다.

"말 할 거리를 생각하느냐? 어서 말해보아라."

노파장로가 말을 하려고 하자, 풍혈스님이 또다시 한 차례 치니 목사가 말하였다.

"불법과 왕법이 한 가지군요."

 

 

"그대가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난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풍혈스님은 바로 법좌에서 내려와 버렸다.

 

〈송〉------------------------

노파스님 사로잡아 무쇠소에 앉혔으니

삼현의 창과 갑옷에 가벼이 덤비지 못하리

초왕의 성으로 모여든 물이여

'할'하는 소리에 거꾸로 흐르는구나

 

 

황금털 사자

【제039칙】

〈수시〉----------------------------

깨달음의 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고, 세속적인 지식만을 유포하는 사람은 원숭이가 우리에 갇힌 것과 같다. 불성의 의미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시절인연을 살펴보아야 하며, 백 번 달구어 순금으로 제련하려 한다면 모름지기 작가의 풀무가 있어야 한다. 말해보라. 대용이 눈 앞에 나타나는 사람은 무엇을 가지고 시험해야 하겠느냐?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청정법신입니까."

"꽃나무로 장엄한 울타리니라."

"이럴 때는 어떠합니까."

"황금빛 털 사자니라."

〈송〉------------------------

꽃울타리여!

어리석은 짓 하지 마라

눈금은 저울대에 있지 받침대에 있지 않다

이러함이여!

전혀 잡다함이 없나니

황금빛 털 사자를 그대들은 살펴보라.

 

 

꿈결에 보는 것 같이

【제040칙】

〈수시〉----------------------------

쉬고 또 쉬니 무쇠나무에 꽃이 핀다. 있느냐, 있느냐? 총명한 녀석이라도 벌써 손해를 본다. 설사 종횡무진 자재하여도 그는 콧구멍이 뚫릴 것이다. 말해보라, 까다로운 곳이 어디에 있는가를...

 

〈본칙〉----------------------------

육긍대부가 남전스님과 대화를 하던 중 육긍대부가 말하였다.

"조법사는 󰡐천지는 나와 한 뿌리며,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고 하였는데,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남전스님이 뜨락에 핀 꽃을 가리키며 대부를 부르더니 말하였다.

"요즘 사람들은 이 한 포기의 꽃을 마치 꿈결에 보는 것과 같이 하느니라."

 

 

〈송〉-----------------------

듣고 보고 느끼고 앎이 따로따로 아니고

산과 물의 경관이 거울 속에 있지 않네

서리 내린 하늘에 달은 지고 밤 깊은데

뉘와 함께 하랴. 맑은 연못 차가운 그림자

 

 

 

날 밝으면 가거라

【제041칙】

〈수시〉----------------------------

시비가 서로 얽힌 곳은 성인도 알 수 없고, 역순이 교차할 때는 부처 또한 분별하지 못한다. 뛰어난 절세의 인물이어야만, 무리 가운데 빼어난 보살의 능력을 발현하여, 얼음 위에서 걷기도 하며 칼날 위를 달린다. 이는 마치 기린의 뿔과 같으며 불 속에 피어난 연꽃과 같다. 시방을 벗어났다는 것을 뚜렷이 봐야만 비로소 같은 길을 걷는 자임을 알 것이다. 누가 이처럼 솜씨 좋은 사람이겠느냐?

 

〈본칙〉-----------------------------

조주스님이 투자스님에게 물었다.

"완전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을 때는 어떠합니까."

투자스님은 말하였다.

"밤에 다니지 말고 날이 밝으면 가거라."

 

 

〈송〉--------------------------

살아서 안목은 갖췄으나 죽은 것과 같고

함께 먹어 안 될 약으로 작가 어찌 감별하리

옛 부처도 오히려 이르지 못했다 하는데

어느 누가 티끌 모래 뿌려대는가

 

 

눈덩이로 쳤어야지

【제042칙】

〈수시〉---------------------------

혼자서 제창하고 홀로 희롱하여도 흙탕물을 끼얹는 것이요, 북치고 노래하기를 혼자서 모두 하더라도 은산철벽이다. 이리저리 궁리했다가는 해골 앞에서 귀신을 볼 것이며, 찾으며 생각하면 캄캄한 산 아래 떨어지리라. 밝고 빛나는 태양은 하늘에 솟아 있고, 소슬한 맑은 바람은 온 누리에 가득하다. 말해 보아라, 옛사람에게도 잘못된 곳이 있었는가를...

 

〈본칙〉-----------------------------

방거사가 약산스님을 하직하자, 약산이 열 명의 선객에게 문 앞까지 전송하도록 하였다. 거사는 허공에 날리는 눈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잘도 내린다. 송이송이 딴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구나."

그러자 곁에 있던 선객이 말하였다.

"어느 곳으로 떨어집니까."

거사가 따귀를 한 차례 치자 선객들이 말하였다.

"거사께서는 어찌 거친 행동을 하십니까."

 

 

"그대가 그래 가지고서도 선객이라 한다면 염라대왕이 용서해 주지 않을 것이다."

"거사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거사가 또다시 따귀를 친 후에 말하였다.

"눈은 떴어도 장님 같으며 입을 벌려도 벙어리 같다."

(설두스님은 다르게 논평하였다."처음 물었을 때 눈덩이를 뭉쳐서 바로 쳤어야지.")

 

〈송〉------------------------

눈덩이로 쳐라, 눈덩이로 쳐라

방노인의 기관은 잡을 수 없어라

천상, 인간도 전혀 모르나니

눈 속, 귓속까지 끊긴 듯 맑고 시원해라

씻은 듯 끊김이여,

파란 눈 달마라도 알아채기 어려우리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

【제043칙】

〈수시〉----------------------------

하늘과 땅을 구별하는 듯한 말들은 만세토록 모두 받들겠지만, 범과 외뿔소를 사로잡는 기틀은 많은 성인들도 알아차릴 수 없다. 당장에 실오라기만큼의 가리움이 없으며 완전한 기틀이 도처에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향상의 겸추를 밝히려 한다면 작가의 용광로이어야 한다. 말해 보아라, 예로부터 이러한 가풍이 있었는지를...

〈본칙〉-----------------------------

어떤 스님이 동산스님에게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다가오는데 어떻게 피하시렵니까."

"왜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느냐."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이 어디입니까."

"추울 때는 스님을 춥게 하고 더울 때는 스님을 덥게 한다."

 

〈송〉-------------------------

손을 드리우면 그대로 만 길 벼랑 같으니

굳이 정위 편위 따질 것이 있겠는가

옛 유리궁전에 비치는 밝은 달이여

우습구나 영리한 사냥개 일없이 섬돌을 오르네

 

 

북을 칠 줄 알지

【제044칙】

〈본칙〉-----------------------------

화산스님이 법어를 하였다.

"익히고 배우는 것을 들음이라 하고, 더 배울 것이 없는 것을 가까움이라 한다. 이 두 가지를 초월해야 만이 참된 초월이라고 한다."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참된 초월입니까."

"북을 칠 줄 알지."

"무엇이 참다운 이치입니까."

"북을 칠 줄 알지."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북을 칠 줄 알지."

"향상인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북을 칠 줄 알지."

 

〈송〉-----------------------

한 사람은 연자방아를 끌고

또 한 사람은 흙을 나르네

대기를 드러내려면 천균의 활이어야지

일찍이 상골산 노승 공을 굴렸다지만

화산스님 북을 칠 줄 안다는 것 만하랴

그대에게 알리노니,

제멋대로 해석하지 말아라

단 것은 달고 쓴 것은 쓰거니

 

 

삼베적삼 무게가 일곱 근

【제045칙】

〈수시〉-----------------------------

말하고자 하면 바로 말을 하나니 온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요, 행하려면 곧 행하나니 전기를 휘두름에 남에게 사양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전광석화와 같아 기염보다도 빠르고 바람보다 빨라 세찬 물에서도 칼을 가로지른다. 향상의 겸추를 들더라도 칼이 소용없고 혀가 묶이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닥 길은 터놓았다.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일만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무명 장삼 한 벌을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다."

 

〈송〉------------------------

치밀한 물음으로 늙은 저울 내질렀으나

일곱 근 장삼 무게 몇이나 알았을까

이제 서호에 던져버렸으니

맑은 바람 내려불어 누구에게 부촉할까

 

 

몸을 빠져 나오기는 쉽지만

【제046칙】

〈수시〉----------------------------

한 번의 망치질로 범부, 성인을 초월하고, 반 마디의 말로서 속박을 풀어버렸다. 얼음 위를 걷고 칼날 위를 달리 듯하며, 현사의 세계 속에서 현상에 따라 행한다. 종횡무진한 오묘한 작용은 그만두고라도 찰나에 대뜸 떠나버렸을 때는 어떠하냐?

 

〈본칙〉-----------------------------

경청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문 밖에 무슨 소리가 나느냐."

"빗방울 소리입니다."

"중생이 전도되어 자기를 미혹하고 외물을 쫓는구나."

"스님께서는 뮈라고 하시렵니까."

"하마터면 자신을 미혹할 뻔했느니라."

"자신을 미혹할 뻔하시다니 무슨 뜻입니까."

"몸을 빠져 나오기는 그런대로 쉽지만 그것을 그대로 말하기란 어렵다."

 

〈송〉-----------------------------

빈 집의 빗방울 소리

작가 선지식도 대답하기 어려워라

만일 성인의 무리에 들어갔다 한다면

여전히 모르리라.

알건 모르건

남산, 북산에 세찬 비가 쏟아진다

 

 

여섯으로는 알 수 없다

【제047칙】

〈수시〉-----------------------------

하늘이 어찌 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사계절은 운행하고, 땅이 어찌 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만물을 자라게 한다. 사계절이 운행하는 곳에서 본체를 볼 수 있고 만물이 생장하는 곳에서 오묘한 용을 볼 수 있다. 말해보라, 어느 곳에서 납승을 볼 수 있을까? 어언동용 또는 행주좌와에 의존하지 말고, 말로도 설명하지 말고, 분별할 수 있겠느냐?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법신입니까."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여섯으로는 알 수 없다."

 

〈송〉--------------------------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푸른 눈 달마도 다 셈하지 못하리

소림에서 신광에게 부촉했다 말들 하나

옷을 걷어붙이고는 천축으로 돌아갔네

천축은 아득하여 찾을 곳이 없는데

간밤에 유봉 건너다보며 잠을 잤다네

 

 

차 화로를 엎어버렸어야지

【제048칙】

〈본칙〉----------------------------

왕태부가 초경사에 들어가니, 차를 달이고 있었다. 그때 낭상좌가 명초와 함께 차 끊이는 냄비를 붙잡고 있다가, 낭상좌가 차 냄비를 뒤집어버리자, 태부가 이를 보고서 상좌에게 물었다.

"차 끊이는 화로 밑에 무엇이 있습니까."

낭상좌가 말하였다.

"화로를 받드는 신이 있지요."

"화로를 받드는 신이 왜 차 냄비를 엎어버렸습니까."

"오랜 동안의 벼슬살이 하루아침에 쫓겨났지요."

태부는 소매를 떨치고 나가버렸다. 명초가 말하였다.

"낭상좌는 초경사의 밥을 얻어먹고는 도리어 강 건너편에서 떼지어 시끌벅적거리는구나."

"스님께서는 어떠십니까."

"귀신에게 당했구나."

(설두스님은 말하였다."명초가 그 말을 하자마자, 차 달이는 화로를 뒤엎어버렸어야지.")

 

〈송〉-------------------------

찬바람이 일 듯 다그쳐 물었으나

대처함은 훌륭한 솜씨 못되었네

가련하다. 애꾸눈의 용이여

어금니와 발톱을 드러내지 않으니

어금니와 발톱을 펼치게 되면

구름과 우레가 생기나니

물을 뒤엎는 파도 몇 번이나 겪었던가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

【제049칙】

〈수시〉----------------------------

종횡으로 뚫고 다니며 적장의 북과 깃발을 빼앗으며, 백 겹 천 겹 포위망도 앞뒤를 잘 살펴 적절하게 빠져나오며, 범의 머리에 걸터앉고 범의 꼬리를 잡는 솜씨가 있어도 아직 작가 선지식은 못된다. 우두귀신이 사라지자 마두귀신이 다시 오는 듯한 신출귀몰이라도 기특할 게 없다. 말해보아라. 뛰어난 사람이 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본칙〉------------------------------

삼성스님이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무엇을 미끼로 해서 잡아야 합니까."

"네가 그물에서 빠져나오거든 말해 주겠다."

삼성스님이 말했다.

"천오백 명이나 거느리는 선지식이 화두도 모르는구나."

설봉스님이 말했다.

"노승은 주지의 일이 바쁘다."

 

〈송〉-------------------------

그물을 뚫는 황금빛 물고기

물 속에 있다고 말하지 마라

하늘을 흔들고 땅을 휘저으며

지느러미를 떨치고 고리를 흔드네

고래가 뿜는 파도 천 길을 날고

진동하는 우레 소리 맑은 회오리바람

천상과 인간에 아는 사람 몇인가

 

 

밥통의 밥, 물통의 물

【제050칙】

〈수시〉----------------------------

단계를 건너뛰고 방편을 초월하여 기틀마다 서로 호응하고 구절마다 서로 투합된다 하더라도, 큰 해탈문에 들어가 큰 해탈의 작용을 얻지 못했다면 어떻게 불조를 저울질하고 종문의 귀감이 될 수 있겠는가? 말해 보아라, 문제의 핵심에 직면해서는 단도직입적이고, 역순의 경계에 종횡하나, 그것을 초월하는 구절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진진삼매입니까."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바리때 속의 밥, 물통 속의 물이니라."

 

〈송〉-------------------------

바리때 속의 밥, 물통 속의 물

말 많은 스님도 입을 떼기 어려우리

북두성, 남극성은 제 자리에 있는데

하늘 닿는 흰 물결 평지에서 일어나네

헤아릴까, 말까?

그만둘까, 할까?

속옷도 없는 장자의 아들이로다.

 

 

마지막 한마디를 알고 싶은가

【제051칙】

〈수시〉----------------------------

시비가 생기자마자 혼란스러워 마음을 잃게 되고, 단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또한 알 수 없다. 말해 보아라. 늘어놓아야 하겠느냐, 아니면 그만두어야 하겠느냐? 여기에 이르러서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아는 것이 있어, 말에 막히고 기연이나 경계에 얽매인다면, 모두 풀에 의지하고 나무에 붙은 것처럼 허망한 짓이 될 뿐이다. 설령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 이르렀다 하여도 만 리나 떨어진 곳에서 고향을 바라보는 것과 같을 뿐이다. 이를 알겠느냐? 아직 알지 못했다면 그대로 있는 공안을 깨치도록 하거라.

 

〈본칙〉------------------------------

설봉스님이 암자에 주석할 때에 두 스님이 찾아와 예배를 하자, 설봉스님이 그들을 보고 암자 문을 열고 몸을 내밀면서 말하였다.

"뭐냐."

찾아온 스님 또한 같은 말을 하였다.

"뭐냐."

그러자 설봉스님은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되돌아가버렸다. 그 스님이 그 뒤 암두스님 처소에 이르자, 암두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영남지방에서 왔습니다."

"설봉스님한테는 갔다 왔느냐."

"갔다 왔습니다."

"무슨 말을 하더냐."

스님이 지난날에 했던 대화를 말씀드리자, 암두스님은 말하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냐."

"설봉스님은 아무런 말씀 없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일러주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 그에게 일러주었더라면 천하 사람들이 설봉스님을 어찌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 스님이 여름 안거 끝에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추어내어 법문을 청하였다.

"왜 진작 묻지 않았느냐."

"감히 쉽게 여쭙지 못했습니다."

"설봉스님이 나와 한 가지에서 나기는 했으나, 나와 똑같지는 않다. 말후구를 알고자 하는냐? 이것뿐이다."

 

〈송〉-------------------------

마지막 한 마디 그대에게 말하리니

밝음과 어둠이 쌍쌍인 때로구나

한가지에서 나온 것은 모두 알지만

죽음을 달리한다는 건 모르는구나

까맣게 모르는구나

석가와 달마도 분별해 보아야 알 일

남북동서로 돌아가련다

한밤중에 함께 보네 일천 바위 뒤덮은 눈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고

【제052칙】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조주 돌다리의 소문을 들은 지가 오래인데 막상 와 보니 외나무다리뿐이군요."

"너는 외나무다리만 보았을 뿐, 돌다리는 보지 못했구나."

"어떤 것이 돌다리입니까."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지."

 

〈송〉-------------------------

고고한 위세 안 부려도 도는 드높나니

바다에 들어가면 큰 자라를 낚아야지

우습다, 같은 시대의 관계스님이여

쏜살같은 급류라 하랴 부질없는 헛수고

 

 

뭐 날아가버렸다고

【제053칙】

〈수시〉----------------------------

온 세상 어디에도 감추지 못하고 완벽한 기봉을 드높이 드러내며, 어디에도 막힘이 없어 한 수 한 수마다 몸을 벗어날 기틀이 있으며, 말마다 사심이 없어 사물마다에 살인의 뜻이 있다. 말해 보아라, 옛사람이 결국에 어느 곳에서 쉬었는가를...

 

〈본칙〉----------------------------

마조스님이 백장스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들오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말하였다.

"저것이 무엇이냐."

백장스님이 말하였다.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날아가느냐."

"날아가버렸습니다."

스님이 마침내 백장스님의 코끝을 비틀자, 백장스님이 고통을 참느라 신음하였다.

마조스님이 말하였다.

"뭐, 날아가버렸다고."

 

〈송〉-------------------------

들오리여, 어디 있는지 알가 수 없네

마조스님은 만나자 말을 걸었네

산, 구름, 바다, 달 등 온갖 것들 말했으나

여전히 모르고 도리어 날아가려 하네

날아가려 하는 순간 잡아들였네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습니다

【제054칙】

〈수시〉----------------------------

생사를 뚫고 나오며, 기관도 헤치고 나와 무심히 무쇠를 끊고 못을 자르며 어느 곳에서나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 말해 보아라, 이는 어떠한 사람의 경지인가를...

 

〈본칙〉-----------------------------

운문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서선사에서 왔습니다."

"서선사에서 요즈음 무슨 얘기들을 하더냐."

스님이 양 손을 벌리자, 운문스님이 한 차례 뺨을 후려쳤다, 스님은 말하였다.

"제게도 할 말이 남아 있습니다."

운문스님이 문득 두 손을 펴 보였다. 스님이 말이 없자, 운문스님이 다시금 후려쳤다.

 

〈송〉-------------------------

일시에 호랑이 머리와 꼬리를 잡으니

늠름한 위엄이 4백 고을에 떨치네

묻노니 어쩌면 그처럼 준험한가

 

 

 

말할 수 없다

【제055칙】

〈수시〉-------------------------------------------

은밀하고도 완전한 참인 이 소식을 대뜸 깨치고, 갖가지의 반연 속에서도 그것을 다룰 수 있어 단박에 당처를 알아챈다. 전광석화 속에서도 잘못을 순간에 끊고, 호랑이 머리를 타고 꼬리를 잡는 경지에 천 길 벼랑처럼 우뚝 서 있구나. 그러나 이런 경지는 그만두더라도 가느다란 길을 놓아 수행자를 지도하는 부분이 있느냐?

〈본칙〉-------------------------------------------

도오스님이 점원스님과 함께 어느 집에 이르러 조문을 하게 되었는데 점원스님이 관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도오스님이 말하였다.

"살았어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

"왜 말로 못합니까."

"말로는 안 되지! 안되고 말고!"

돌아오는 길에 점원스님이 말하였다.

"스님, 어서 말씀해 보십시오. 말하지 않으시면 치겠습니다."

"때리려면 때려라. 그러나 말은 할 수 없다."

점원스님이 후려쳤다.

그 뒤 도오스님이 돌아가시자 점원스님이 석상스님에게 이르러 전에 있었던 얘기를 말하니,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살아도 말로 못하고 죽어도 말로는 못한다."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합니까."

"말할 수 없지, 말할 수 없고 말고."

점원스님은 그 말에 깨우침이 있었다. 하루는 점원스님이 삽을 들고 법당 위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가자,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무얼 하고 있느냐."

"선사의 영골을 찾고 있습니다."

"거대한 파도는 까마득히 질펀하고 흰 물결은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무슨 선사 영골을 찾겠다는 것이냐."

점원스님은 말하였다.

"쓸데없이 애를 쓰네."

태원의 부상좌는 말하였다.

"선사의 영골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송〉-------------------------------------------

토끼와 말은 뿔이 있고

소와 염소는 뿔이 없네

가는 털도 끊겨서

산과 같구나

황금빛 영골이 지금도 남아 있어

하늘 닿는 흰물결에 어디서 찾으랴

찾을 곳이 없어라

서천으로 돌아가다 잃어버린 신발 한 짝

 

 

화살 한 대로 세 관문을 깨면

【제056칙】

〈수시〉-------------------------------------------

모든 부처님이 일찍이 세상에 출현하였으나 사람에게 한 법도 전해 준 적이 없으며, 조사도 일찍이 서쪽에서 왔으나 마음을 전수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밖으로 치달리며, 자기 자신에게 있는 하나의 대사인연도 일천 성인이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런데 지금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말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느냐? 만일 통달하지 못했다면 갈등의 소굴 속에서 알아차리도록 하여라.

〈본칙〉-------------------------------------------

거양선객이 흠산스님에게 물었다.

"한 화살촉으로 세 관문을 격파했을 때는 어떠합니까."

"관문 속에 있는 주인공을 내놓아 보아라."

"잘못이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지요."

"당장에 고쳐봐라!"

"화살은 잘 쏘셨는데 맞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거양선객이 바로 나가버리자,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잠깐!"

거양선객이 머리를 돌리자, 흠산스님이 멱살을 움켜쥐고 말하였다.

"한 화살로 세 관문을 격파하는 것은 그만두고 저 흠산에다 화살을 쏘아보아라."

거양선객이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자, 흠산스님이 일곱 방망이를 치면서 말하였다.

"이놈이 앞으로도 30년은 더 헤매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송〉-------------------------------------------

그대에게 관문 속의 주인공을 내보내니

활을 쏜 무리들은 거칠게 굴지 마라

눈을 보호하려 하면 반드시 귀를 먹고

귀를 버리자니 두 눈이 멀게 될 터

화살 한 대가 세 관문을 깨부수니

화살이 지난 뒷길 또렷또렷 분명하네

그대는 듣지 못하였나

현사스님 하신 말

 

"대장부란 천지가 개벽되기 이전에 이미 마음으로 조종을 삼는다

 

 

어느 것이 간택이냐

【제057칙】

〈수시〉-------------------------------------------

깨닫기 이전에도 은산철벽 같지만 깨달은 뒤에도 본래의 자기는 그대로 원래 은산철벽이다.

어떤 사람이 󰡐그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에게 말할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한 기틀을 내보일 수 있고, 한 경계를 살필 줄 알며, 핵심 되는 길목을 꽉 틀어막고 범부도 성인도 어쩌지 못하는 경지라 하더라도 특별할 것은 없다.󰡑 그렇지 못하다면 옛사람의 행동을 보도록 하라.

 

〈본칙〉-------------------------------------------

어느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니 오직 간택을 그만두면 된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간택하지 않는 것입니까."

"천상천하에 나 홀로 존귀하니라."

"이것도 오히려 간택입니다."

"야, 이놈아! 어느 곳이 간택이란 말이냐."

스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송〉-------------------------------------------

바다처럼 깊고

산 같이 견고하네

등에와 모기 사나운 바람 부리고

땅강아지와 개미가 무쇠기둥 흔드네

간택함이여!

난간에 매단 헝겊북이로구나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린다

【제058칙】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고 오로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라 하였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에 집착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전에도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으나 5년이 지났어도 잘 모르겠다."

 

〈송〉-------------------------------------------

코끼리 기지개 켜고 사자는 포효하네

알아낼 수 없는 맛의 말이여

사람의 입을 꽉 막아버렸네

남북동서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리네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

【제059칙】

〈수시〉-------------------------------------------

하늘을 두루고 땅을 감싸며 성인을 뛰어넘고 범부를 뛰어넘으니 백 가지 풀 끝에서 열반의 오묘한 마음을 보이고 창칼이 오가는 와중에서 납승의 목숨을 심사한다. 말해 보아라, 이는 어떤 사람의 은혜를 입었기에 이처럼 할 수 있었는가를...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게 없고 그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라 하였는데, 말을 하기만 하면 그것이 곧 간택인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지도하시겠습니까."

"왜 이 말을 다 인용하지 않느냐."

"제가 여기까지 밖에 못 외웁니다."

"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게 없고 오로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니라."

 

〈송〉-------------------------------------------

물로 씻을 수도 없고

바람으로 날릴 수도 없네

범이 걸어가고 용이 지나가니

귀신이 소리치고 혼령이 울부짖네

머리가 세 척인 줄 그 누가 알리

마주하여 말없이 외발로 서 있네

 

 

주장이 천지를 삼키니

【제060칙】

〈수시〉-------------------------------------------

부처와 중생은 본디 차이가 없는데 산하와 자기가 어찌 차등이 있겠느냐? 그러나 무엇 때문에 이 두 가지가 뒤섞여 있는 것이냐? 만일 화두를 잘 다스리고 굴리며 요새가 되는 길목을 꽉 틀어막는다면 조금도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실수하지 않는다면 온 세상 어디에서라도 조금도 까딱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화두를 잘 다스리고 굴리는 것이냐?

 

〈본칙〉-------------------------------------------

운문스님이 주장자를 가지고 대중에게 설하였다.

"주장자가 용으로 변하여 천지를 삼켜버렸으니, 산하대지는 어디에 있느냐."

 

〈송〉-------------------------------------------

주장자가 건곤을 삼키나니

복사꽃 지는 물결 말해 무엇하리

꼬리를 태운 놈도 구름 안개 못 잡으니

부레 말리는 놈 되었다 어찌 정신 잃을쏘냐

이로써 법문은 다하였거니

들었느냐, 못 들었느냐

깨끗하여 말쑥해야 하니

다시는 어지럽게 하지 말아라

일흔두 방망이도 가벼운 용서이니

백오십 방망이 쳐 용서해주기 어렵다

(갑자기 설두스님이 주장자를 들고 법좌에서 내려오니, 대중들이 모두 흩어졌다.)

 

 

티끌 하나 세우면

【제061칙】

〈수시〉-------------------------------------------

법당을 세우고 종지를 세우는 일은 본분종사에게 돌려야 하겠지만, 용과 뱀을 판정하고 흑백을 분별함은 작가 선지식의 일이다. 칼날 위에서 살리고 죽이는 것을 논하고 몽둥이질할 때에 그 기연의 마땅함을 분별하는 경지는 그만두고, 홀로 법왕궁에 노니는 일 구는 어떻게 헤아려야 할지 말해 보아라.

 

〈본칙〉-------------------------------------------

풍혈스님이 법어를 하였다.

"한 티끌을 세우면 나라가 흥성하고,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한다."

(설두스님은 주장자를 들고서 말하였다. "생사를 함께 할 납승이 있느냐.")

 

〈송〉-------------------------------------------

촌로가 구겨진 이맛살을 펴지 않는다 해도

국가의 웅대한 터전 세우고자 하는데

지모 있는 신하와 맹장 지금 어디에 있나

만 리에 맑은 바람 부니 자연히 알게 되네

그 가운데 보물 한 가지가 있다

【제062칙】

〈수시〉-------------------------------------------

스승에게 배우지 않고 얻은 지혜로 작위 없는 묘용을 발휘하며, 조건 없는 자비로써 청하지 않는 훌륭한 벗이 되며, 한 구절에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한 기연 속에 놓아주고 사로잡기도 한다.

 

〈본칙〉-------------------------------------------

운문스님이 대중에게 설법을 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 우주의 사이, 그 가운데 하나의 보배가 있어 형산에 감춰져 있다. 등롱을 들고 불전으로 향하고, 삼문을 가지고 등롱 위로 왔노라."

 

〈송〉-------------------------------------------

살펴보고 또 살펴보아라

옛 언덕에 그 누가 낚싯대를 잡고 있나

구름은 뭉게뭉게 물은 넘실넘실

밝은 달 갈대꽃을 스스로 살펴보아라

 

 

남전이 고양이 목을 베다

【제063칙】

〈수시〉-------------------------------------------

생각으로도 이르지 못하니 반드시 끊임이 없어야 하고, 말이나 설명으로도 미치지 못하니 대뜸 깨쳐야 한다. 번개가 치고 별똥이 튀는 듯하며, 폭포를 쏟아붓고 산악을 뒤집는 것 같다. 대중 가운데 이를 아는 사람이 있느냐?

 

〈본칙〉-------------------------------------------

하루는 동서 양편 승당에서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자, 남전스님이 이를 보고 마침내 고양이를 잡으며 말하였다.

"말할 수 있다면 베지 않겠다."

대중들이 대답이 없자,

남전스님이 고양이를 두 동강으로 베어버렸다.

 

 

〈송〉-------------------------------------------

양 편 승당에는 모두 엉터리 선객들

티끌만 자욱할 뿐 어찌할 줄 모르네

다행히도 남전스님 법령을 거행하여

단칼에 두 동강내어 한 쪽을 택했네

 

 

 

짚신을 머리에 이고

【제064칙】

〈본칙〉-------------------------------------------

남전스님이 다시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어 조주스님에게 묻자, 조주스님은 갑자기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네가 그 때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송〉-------------------------------------------

공안 분명히 하여 조주에게 물으니

장안성 안에서 한가로이 노니네

짚신 머리에 이었으나 아는 사람 없어

고향산천에만 가면 모두가 쉬게 되네

 

 

훌륭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제065칙】

〈수시〉-------------------------------------------

모양이 없으면서도 형상이 시방허공을 가득 메워 반듯하고 넓으며, 무심하여 온 세계에 두루 하면서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하나를 들면 나머지 셋을 밝히며, 눈대중으로 척 보고 착 알아차려 비 쏟아지듯 방망이를 때리고, 우레가 치듯 할을 한다 해도 향상인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말해 보아라. 무엇이 향상인의 일인가를...

 

〈본칙〉-------------------------------------------

외도가 부처님에게 물었다.

"말이 있는 것도 묻지 않고, 말이 없는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이 말없이 한참 있으니, 외도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주시어 저로 하여금 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시었습니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는 무엇을 얻었기에 도에 들어갔다 말하였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훌륭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것과 같다."

 

 

〈송〉-------------------------------------------

기틀의 바퀴를 굴리지 않았으나

굴리면 반드시 양쪽으로 달리리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려 있으니

당장에 어여쁘고 추함을 분간하네

곱고 추함 분간하여 미혹의 구름 걷히니

자비의 문 어디엔들 티끌먼지가 일어나랴

생각하니 채찍 그림자 엿보는 좋은 말은

천 리를 바람처럼 달리다가도 부르면 곧 되돌아오네

("돌아왔구나!" 설두스님이 손가락을 세 번 튕겼다)

 

 

 

스님의 머리가 떨어졌습니다

【제066칙】

〈수시〉-------------------------------------------

기틀에 당하여서는 범을 빠뜨리는 덫을 당장에 놓고, 도적을 사로잡는 작전을 이리저리 짠다. 밝음에도 합하고 어둠에도 합하며, 한꺼번에 놓아주기도 하고 한꺼번에 잡아들이기도 한다. 죽은 뱀을 가지고 노는 것은 저들 작자 선지식에게 맡겨라.

 

〈본칙〉-------------------------------------------

암두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느냐."

"서경에서 왔습니다."

"황소가 지나간 뒤에 칼을 주었느냐."

"주었습니다."

암두스님이 목을 그의 앞으로 쑥 내밀며 소리쳤다.

"얏!"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의 머리가 떨어져버렸습니다."

암두스님이 껄껄대고 크게 웃었다.

스님이 그 뒤 설봉스님에게 이르자, 설봉스님이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느냐."

"암두스님에게서 왔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스님이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자, 설봉스님이 서른 방망이를 쳐서 쫓아내버렸다.

 

〈송〉-------------------------------------------

황소가 지난 뒤에 칼을 주었다는데

크게 웃는 웃음은 작가만이 알 수 있네

서른 방망이도 또한 가볍게 용서이니

이익 본 것 같으나 결국 손해 본 것이네

 

 

 

상을 한번 후려치고

【제067칙】

〈본칙〉-------------------------------------------

양무제가 부대사를 초청하여 금강경을 강의하게 하였다. 부대사가 법좌 위에서 경상을 한 번 후려치고 바로 자리에서 내려와 버리자, 무제는 깜짝 놀랐다.

그리하여 지공스님이 물으니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이를 아시겠는지요."

"모르겠습니다."

"부대사는 금강경 강의를 마쳤습니다."

 

〈송〉-------------------------------------------

쌍림에 이 몸을 의탁하지 않고

양나라 땅에서 티끌 먼지 일으켰네

당시에 지공 노인 만나지 않았던들

황급히 나라를 떠나는 사람이었으리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제068칙】

〈수시〉-------------------------------------------

하늘로 통하는 관문을 뒤흔들고 지축을 뒤엎으며, 범과 무소를 사로잡고 용과 뱀을 가려내는 팔팔한 놈이어야 구절마다 투합되고 기틀마다 상응할 수 있다. 예로부터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하였겠느냐.

 

〈본칙〉-------------------------------------------

앙산스님이 삼성스님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혜적입니다."

양산스님이 말하였다.

"혜적은 바로 나다."

"저의 이름은 혜연입니다."

앙산스님이 껄껄대며 크게 웃었다.

 

〈송〉-------------------------------------------

잡아들이기도 놓아주기도 하니, 이 무슨 종지인가

호랑이를 타는 목적 공을 끊는 데 있네

실컷 웃어 제키고는 어디로 갔는가

천 년이 지나도록 자비의 바람 진동하리

 

 

동그라미 하나 그리고

【제069칙】

〈수시〉-------------------------------------------

말 한마디도 붙일 수 없는 조사의 심인장은 무쇠소처럼 생긴 기봉이다. 가시덤불을 뚫고 나온 납승은 이글거리는 화로 위에 한 점의 눈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평지에서 종횡으로 관통하는 것은 그만두고, 어떠한 수단이나 방편에도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겠느냐?

 

 

〈본칙〉-------------------------------------------

남전, 귀종, 마곡스님이 함께 혜충국사를 예방하러 가는 도중에 남전스님이 땅에 일원상을 그려놓고 말하였다.

"말하면 가겠다."

귀종스님이 일원상 가운데 앉자, 마곡스님은 여인처럼 다소곳이 절하는 시늉을 하니, 남전스님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떠나지 않겠네."

귀종스님은 말하였다.

"이 무슨 수작이냐."

 

〈송〉-------------------------------------------

유기가 화살로 원숭이를 쏘니

나무 끼고 도는 화살 어찌 그리 곧은지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서

어느 누가 일찍이 적중시켰을까

돌아갈까 돌아가세

조계로에는 안 가리라

(설두스님이 말하였다. "조계로는 평탄한데 무엇 때문에 안 가느냐.")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 말하라

【제070칙】

〈수시〉-------------------------------------------

사람을 통쾌하게 하는 한마디 말이고, 말을 날쌔게 달리게 하는 하나의 채찍이며, 만 년이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만 년이다. 단박에 깨치는 길을 알려고 하는가? 말하기 이전에 있다. 말해 보아라, 말하기 이전에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를...

 

〈본칙〉-------------------------------------------

위산, 오봉, 운암스님이 함께 백장스님을 모시고 서 있자, 백장스님이 위산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을 닫아버리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

"스님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나는 사양치 않고 그대에게 말해 주고 싶지만 훗날 나의 자손을 잃을까 염려스럽다."

 

〈송〉-------------------------------------------

스님이 말해 보십시오

뿔 돋힌 호랑이가 풀숲에서 나왔네

열 고을에 봄이 가니 꽃잎은 시들한데

산호 가지 가지마다 햇살이 빛나네

 

 

이마에 손을 얹고 너를 바라보겠다

【제071칙】

〈본칙〉-------------------------------------------

백장스님이 다시 오봉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막고 어떻게 말하겠느냐."

오봉스님이 말하였다.

"스님도 막아야 합니다."

백장스님이 말하였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마에 손을 얹고 너를 바라보겠다."

 

〈송〉-------------------------------------------

스님더러 먼저 목도 입도 없애라니

용사의 진을 단숨에 쳐부쉈네

이 장군 같은 솜씨 길이 못 잊으리

아득한 하늘가의 물수리를 맞추었네

 

 

나의 자손을 잃어버렸군

【제072칙】

〈본칙〉-------------------------------------------

백장스님이 또 다시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막고 어떻게 말하겠느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스님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백장스님이 말하였다.

"나의 자손을 잃어버렸구나."

 

〈송〉-------------------------------------------

스님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웅크린 황금사자 일어날 줄 모르네

여기 둘 저기 셋 옛길만 헤매누나

대웅산 밑에 손가락 퉁기는 소리

 

 

흰머리 검은머리

【제073칙】

〈수시〉-------------------------------------------

 

 

 

법을 말하는 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 것도 나타내 보이지 않으며, 법을 듣는 자도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터득하지 않는다. 사실 말하는 입장에서도 이미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나타내지 않는 것이라면 차라리 말하지 않음만 못하고, 듣는 쪽에서도 이미 아무것도 듣지 않고 얻지 않은 것이라면 차라리 듣지 않음만 못하다. 그러면 말하지 않고 듣지 않으면 되는가 하면 그것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지금 여러분이 내 이야기를 귀로 듣고 있다면 아직 멀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런 잘못을 면하고 밝은 눈을 갖춘 자가 될 수 있겠는가?

 

〈본칙〉-------------------------------------------

어떤 스님이 마조스님에게 물었다.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떠나서, 스님께서는 저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그대로 가르쳐 주십시오."

"내, 오늘 피곤하여 너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지장스님에게 물어 보거라."

스님이 지장스님에게 물으니, 지장스님이 말하였다.

"왜 큰스님에게 묻지 않았느냐."

"스님에게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머리가 아파서 자네에게 말할 수 없으니 회해 사형에게 묻도록 하게."

스님이 회해스님에게 물어보니 회해스님이 말하였다.

 

 

"나도 그것은 모른다."

스님이 이를 마조스님에게 말씀드리자, 마조스님은 말하였다.

"지장스님의 머리는 희고, 회해스님의 머리는 검다."

 

〈송〉-------------------------------------------

뛰는 놈에 나는 놈, 누가 알아들으랴

마대사의 한마디, 천하를 휩쓸었네

백주 강도 임제인들, 어찌 그를 당하랴

글과 말 없는 경지 배울 길이 없어

스스로 이곳 저곳 찾아서 헤매노라

 

 

밥통을 들고 춤을 추다

【제074칙】

〈수시〉-------------------------------------------

모름지기 선승이란 막야의 명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고 그 칼날로 마음에 달라붙은 갈등의 병을 즉석에서 잘라버리며 명경 같은 반야의 지혜를 높이 내걸고 단 한마디로도 분명하게 본래 불심의 불가사의한 대광명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은밀한 신비의 경지에서는 추우면 옷을 입고 배고프면 밥을 먹는 식으로 자유무애하게 뜻대로의 생활을 한다. 그런 사람은 또 보통 사람이 상상도 못할 만큼 신출귀몰한 활약을 하므로 도저히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 자, 그럼 알 수 있겠느냐?

 

 

 

〈본칙〉-------------------------------------------

금우스님은 언제나 점심 때가 되면 몸소 밥통을 가지고 승당 앞에서 춤을 추면서 껄껄대며 말하였다.

"보살아! 밥 먹어라."

(설두스님은 말하였다."그러나 금우스님의 마음씨가 좋지는 않다.")

 

 

〈송〉-------------------------------------------

구름 속 어디선가 터지는 웃음소리

두 손으로 안아다 나누어 준 뜻

번뜩이는 눈을 가진 황금사자여

그대는 어디서나 선뜻 알아보리

 

 

한 놈만 팬다

【제075칙】

〈수시〉-------------------------------------------

반야의 지검을 언제나 눈 앞에 드러내 놓고 있는 사람은 남을 죽이는 것도 살리는 일도 때와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서, 손에 꼭 잡고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내던져 버리거나 제 뜻대로이다. 자 말해 보아라. 너와 나라는 차별에 빠지지 않고 서로의 상대적인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본칙〉-------------------------------------------

어느 스님이 정주스님의 회하에 있다가 오구스님을 찾아오자, 오구스님이 물었다.

"정주스님의 가르침은 이곳과 무엇이 다르냐."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지 않다면 다시 그에게로 가거라.”

그리고는 대뜸 후려쳤다. 그러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방망이 끝에 눈이 있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쳐서는 안 됩니다."

오구스님이 말하였다.

"오늘은 한 놈만 친다"

그리고는 또 다시 세 차례를 후려치자, 스님이 나가버렸다.

오구스님이 말하였다.

"억울한 방망이를 얻어맞는 놈이 있기는 있었구나."

스님이 몸을 돌리면서 말하였다.

"국자 자루가 스님의 손아귀에 있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오구스님의 손에 있던 방망이를 빼앗아 세 차례 후려치니, 오구스님은 말하였다.

"억울한 매로구나, 억울한 매야."

"누가 맞고 있습니까."

"경솔하게 치는 놈이구나."

스님이 문득 절을 올리자, 오구스님이 말하였다.

"그러면 그렇지."

스님이 큰 소리로 웃고 밖으로 나가자, 오구스님은 말하였다.

"이럴 수가, 이렇게 할 수 있다니 "

 

 

 

〈송〉-------------------------------------------

부르기는 쉬워도 주기는 어렵다네

일대 일의 선기 자세히 보라

굳은 반석도 언젠가는 부서지고

깊은 바닷물도 언젠가는 마르리

오구여, 오구 늙은이여

그 누가 무모하게 몽둥이를 내어주리

 

 

밥은 먹었느냐

【제076칙】

〈수시〉-------------------------------------------

우리의 본심은 아주 작다고 보면 싸라기 같고, 아주 차갑다고 보면 어름이나 서리처럼 차갑다. 그러나 넓게 보면 온 누리에 가득 차 있어서 밝음이나 어둠 따위를 초월한다. 낮고 낮은 밑바닥, 즉 미혹으로 찬 범부의 세계에도 본심 본성 곧, 여래의 지혜덕상은 넘치고 있고 높고 높은 곳, 즉 부처나 깨달은 자라도 범부보다 더 많은 것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또 긍정도 부정도 모두 이 우주 절대의 진리 속에 있다. 과연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자가 있느냐 없느냐?

 

〈본칙〉-------------------------------------------

단하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느냐."

"산밑에서 왔습니다"

 

"밥은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너에게 밥을 먹여준 사람은 안목을 갖추었느냐."

스님은 말이 없었다.

장경스님이 보복스님에게 물었다.

"밥을 먹여주었으니, 은혜를 갚을 만한 자격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였을까."

"주는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둘 다 장님이다."

"그 기틀을 다하여도 장님이 되었을까."

"나를 장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송〉-------------------------------------------

애썼다느니 장님이 아니라느니

소 머리 눌러 풀 먹이는 꼴이네

많고 많은 조사들 어쩌자고

바리떼들은 들고 왔는가

그 잘못 헤아릴 수가 없으니

온 세상 모두 그 때문에 고생이네

 

 

호떡!

【제077칙】

〈수시〉-------------------------------------------

절대평등한 입장에서 활약하면 매가 비둘기를 잡듯이 천하 사람의 코를 꿰어 잡을 수 있고, 상대차별의 입장에서 살면 거북이 껍질 속에 갇혀 있듯이 남의 손에 코를 꿰인 채 끌려다니게 된다. 만약 지금 여기에 갑자기 튀어나와서󰡐선의 궁극적인 경지에는 본래 절대평등도 상대차별도 없다. 그 아무것도 없는 데로 가서 어쩌겠다는 건가?󰡑하고 묻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절대평등도 상대차별도 없다는 너는 그 아무것도 없는 유령의 세계로 떨어져 버려 유령 생활을 할 것이다.󰡑라고 말해 줄 것이다. 자 말해 보아라. 어느 쪽이 검고 어느 쪽이 흰지를! 일정한 조문 같은 선의 규정이 있다면 그대로 하지만 없다면 종래의 관례를 따르거라.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말입니까."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호떡!"

 

〈송〉-------------------------------------------

부처도 안한 말 묻는 이 참 많다만

너덜너덜 남루한 그 꼴들을 보아라

호떡으로 때우나 붙어 있지 않으나

지금 천하 중들 떡 붙이기 분주하네

 

 

 

문득 물로 인해 깨닫다

【제078칙】

 

〈본칙〉-------------------------------------------

옛날에 열여섯 보살이 있었는데, 스님들을 목욕시킬 때 보통 때처럼 욕실에 들어갔다가 홀연히 물로 인해 깨우쳤다. 모든 선덕들이여, 저네들이 󰡐오묘한 감촉 또렷이 빛나며 부처님의 아들이 되었네󰡑라고 말했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모름지기 종횡으로 자재해야만이 비로소 그처럼 할 수 있다.

 

〈송〉-------------------------------------------

정녕 깨달은 이 하나면 족하다네

그런 이 자리에 활개 펴고 누워 있게

물로 깨달았다니 잠꼬대 말아라

향수 목욕했다는 놈 침이나 뱉어주리

 

 

모두가 부처님의 소리라는데

【제079칙】

〈수시〉-------------------------------------------

지극한 도의 오묘한 활동은 세상의 속된 법칙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지도를 움켜쥐거나 사로잡는데 별 힘이 들지 않는다. 자 말해 보아라.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과연 있었는지를...

 

〈본칙〉-------------------------------------------

어떤 스님이 투자스님에게 물었다.

"모든 소리가 부처님의 소리라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그렇다."

 

“스님, 방귀뀌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투자스님이 문득 후려치자 또 다시 물었다.

"거친 말과 자세한 말이 모두 제일의제로 귀결한다는데, 그렇습니까."

"그렇다!"

"스님을 말뚝에 매여 있는 노새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투자스님은 다시 대뜸 후려쳤다.

 

〈송〉-------------------------------------------

투자화상, 투자화상이여, 그 솜씨 거칠데 없구나

두 번씩이나 두둘겨 주다니, 정녕 자유자재일세

겁도 없이 파도에 뛰어든 중, 물귀신 못 면하리

홀연 살아만 난다면, 백천이 거꾸로 치흐르련만

 

 

급류 위에서 공을 친다

【제080칙】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갓 태어난 아이도 6식을 갖추고 있습니까."

"급류 위에서 공을 친다."

스님은 다시 투자스님에게 물었다.

"급류 위에서 공을 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한 순간도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

 

〈송〉-------------------------------------------

무공한 육식을 알고 물은 중

그 속셈 조주도 투자도 알았네

망망한 급류에 공을 던지라

뉘라서 알랴, 그 물결

흐르고 흘러흘러 어디로 가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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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식(눈, 귀, 코, 혀, 몸, 뜻)

 

 

세 걸음은 살아서 갔으나

【제081칙】

〈수시〉-------------------------------------------

모름지기 선의 수행자가 적의 군기를 빼앗고 북을 차지할 만한 역량이 있다면 천 명의 성인이 들이닥쳐도 그의 힘을 막을 수 없고 어떤 어려운 문제를 들고 와도 송두리째 해결할 수 있으며 그 어떤 기략으로도 범접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무슨 신통한 힘도 아니고 본래부터 그렇게 갖추어진 것도 아니다. 그저 일상생활의 태도가 그런 것이다. 자 말해 보아라. 무엇으로 해서 그렇듯 기특한 힘을 얻을 수 있는지를...

 

〈본칙〉-------------------------------------------

어떤 스님이 약산스님에게 물었다.

"널찍한 초원에 왕고라니와 사슴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고라니 가운데 왕고라니를 쏘아 맞출 수 있겠습니까."

 

 

"화살을 보아라."

스님이 벌떡 몸을 누이며 거꾸러지자 약산스님이 말하였다.

"시자야, 이 죽은 놈을 끌어내라."

스님이 문득 도망치자 약산스님이 말하였다.

"허튼 짓하는 놈! 어찌 깨달을 날이 있으랴."

(설두스님은 이를 들어 말하였다."세 걸음까지는 살아 있다 해도 다섯 걸음가면 꼭 죽을 것이다.")

 

〈송〉-------------------------------------------

대뜸 고라니를 알아차리고

한 방 드날린 약산의 솜씨

다섯 걸음 살아서 돌아갔던들

호랑이쯤 내몰 수 있었으련만

아, 그 사냥꾼 눈도 밝아라

(설두스님도 큰소리 한마디를 하였다."화살 나간다!")

 

 

산에 핀 꽃은 비단결 같고

【제082칙】

〈수시〉-------------------------------------------

아무리 낚싯줄을 늘어뜨려도 눈 밝은 자는 그 속셈을 다 알아차린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재로운 솜씨로 덤벼들어도 견식이 뛰어난 자는 대뜸 그 솜씨를 분별한다. 자, 말해 보아라. 그 낚싯줄이며 자재로운 솜씨란 어떤 것인지를...

 

〈본칙〉-------------------------------------------

어떤 스님이 대룡스님에게 물었다.

"색신은 부서지는데 어떠한 것이 견고한 법신입니까."

대룡스님이 말하였다.

"산에 핀 꽃은 비단결 같고 시냇물은 쪽빛처럼 맑구나."

 

〈송〉-------------------------------------------

물을 줄 모르니 대꾸인들 알 리 없지

시린 달 높은 바람 묵은 바위 외로운 노송

가소롭구나 성인에겐 어도 묵도 안 된다니

흰구슬 채찍 들어 이주 잘도 쳐부셨다

아니면 한바탕 소동이 있었을 것을

삼천조의 나라 벌이 한꺼번에 쏟아지리

 

 

남산 구름 북산 비

【제083칙】

〈본칙〉-------------------------------------------

운문스님이 대중에게 법문을 하였다.

"고불과 노주가 사이좋게 지내는데, 이는 몇 번째 등급이겠느냐."

스스로 대신하여 말하였다.

"남산에서 구름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

 

〈송〉-------------------------------------------

남산에는 구름 북산에는 비

사칠은 이십팔, 이삼은 육

조사님네들 다 알고 있어

당나라에서는 북도 치지 않았는데

신라는 벌써 상당식이네

괴로움이네 즐거움이네

떠들지 말아라

황금이 똥 같다 누가 말했나

 

 

둘이 아닌 법문

【제084칙】

〈수시〉-------------------------------------------

옳다고 말하나 과연 옳다고 할 만한 것이란 없고, 또 옳지 않다고 말하지만 과연 옳지 않다고 할 만한 것도 없다. 옳다 옳지 않다를 이미 저버리고 얻었다 잃었다를 모두 잊어버리면 깨끗한 벌거숭이가 되어 아무 거칠 것이 없지 않느냐. 자 말해 보아라. 내 앞뒤에 있는 것은 무었이냐? 어쩌다 한 중이 불쑥 다가와󰡐앞에 있는 것은 삼문이오. 뒤에 있는 것은 침당방장입니다.󰡑한다면, 이 자는 제대로 눈을 가진 자라 할 수 있겠느냐. 어떠냐? 만약 이런 인물을 알아보려 한다면 너희들 스스로가 직접 고인의 경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본칙〉-------------------------------------------

유마힐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살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그것은 무엇인가."

"제 생각으로는 일체의 법에 말도 없고 설명도 없으며, 보여줌도 없고 알려줌도 없으며, 모든 물음과 답변을 떠난 그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각자의 설명이 끝났습니다. 인자께서 말씀하셔야 하겠습니다. 무엇이 보살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설두스님은 말하였다."유마야, 무슨 말을 하겠느냐." 다시 말하였다."속셈을 간파해버렸다.")

 

〈송〉-------------------------------------------

가련타 유마노, 공연한 걱정으로

온 몸 꼬챙이 된 채 병들어 누웠구나

문수가 온다 하니 방안 털고 야단일세

불이문이 무언가 공연한 질문으로

그나마 낡은 문짝 박살날 뻔했다네

일묵으로 빠져가니

황금사자 문수도 찾아낼 길 없구나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치니

【제085칙】

〈수시〉-------------------------------------------

온 세상을 움켜쥔 채 털끝만큼도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끽소리 못하게 말문을 막아 버릴 수 있어야 중의 올바른 행동이라 한다. 지혜의 대광명으로 모든 존재를 밝게 비추어 그 진상을 알아내야만 금강안을 지닌 중이라 한다. 쇠를 금으로 바꾸고 금을 쇠로 바꾸는 사로잡고 놓아주는 솜씨가 있어야 중도 주장자를 든 보람이 있다고 한다. 천하 사람의 말문을 꽉 막아버려서 감히 한 마디도 못 꺼내게 하여 삼천리 밖으로 내쫓을 수 있어야 중의 도량이 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일을 전혀 못한다면 대체 그런 자를 뭐라고 해야 하겠느냐?

 

〈본칙〉-------------------------------------------

어느 스님이 동봉암주의 처소에 이르러 물었다.

"여기에서 느닷없이 호랑이를 만났을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암주가 대뜸 호랑이 울음소리를 내자, 스님은 바로 겁먹은 시늉을 하였다. 암주가 껄껄대며 크게 웃자, 스님이 말하였다.

"이 도적아!"

"노승을 어떻게 하겠느냐."

스님은 어쩌지 못하였다.

(설두스님은 말하였다."옳기는 옳지만, 어리석은 도둑처럼 자신의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칠 줄만 아는구나.")

 

〈송〉-------------------------------------------

제 때에 안 가지면 아뿔사 천리일세

얼룩무늬 호랑이 이빨 발톱 아직 없네

그대도 알리라 대웅산 밑 두 호랑이

우렁찬 목소리와 모습 천지를 흔들어

그대 정녕 아는가

호랑이 꼬리와 수염 한 손에 움켜쥠을

 

 

 

 

좋은 일도 없는 것만 못하다

【제086칙】

〈수시〉-------------------------------------------

온 세상을 한 손에 움켜쥔 채 털끝만큼도 새어나가지 않게 한다. 온갖 번뇌와 망상 따위를 끊어 버리고 사려와 분별이 조금도 남지 않게 한다. 함부로 입을 놀려 지껄이면 잘못되고 만다. 또 망설이면 엉뚱하게 빗나가 버린다. 자, 그럼 말해 보아라. 난관을 헤쳐 나간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무애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를...

 

〈본칙〉-------------------------------------------

운문스님이 법어를 내리셨다.

"사람마다 모두가 광명을 가지고 있다. 이를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고 어두컴컴하다. 어떤 것이 여러분의 광명이겠느냐."

스스로 대신하여 말하였다.

"부엌의 삼문이다."

다시 또 말하였다.

"좋은 일도 없는 것만 못하다."

 

〈송〉-------------------------------------------

저절로 눈부셔라 광명 여기 있으니

눈먼 그대 위해 알뜰히 말해 주었건만

꽃 지고 숲은 비어 광명천지 열렸으니

누군들 못 보랴

보인다 안 보인다 모두 부질없어라

거꾸로 소 타고도 불전에 드는 것을

현사가 세 가지 병에 관해 말하다

 

 

약과 병이 서로 치료한다

【제087칙】

〈수시〉-------------------------------------------

깨달음을 얻은 자에게는 아무런 난관도 없다. 어떤 때는 호젓한 봉우리 끝의 우거진 풀숲에 살고 또 어떤 때는 시끄러운 저자 속에서 적나라하게 아무 거리낌없이 거동한다. 또 느닷없이 분노하여 나타태자처럼 머리 셋과 팔 여섯을 휘두르는가 하면 홀연 일면불 월면불처럼 자비의 빛을 내뿜으며 도처에 나타나서 임기웅변의 방편으로 진흙과도 화합하고 물과도 화합한다. 그리고 홀연히 선의 궁극적인 경지에 오르면 부처의 눈으로도 엿볼 수가 없고 가령 천 명의 성인이 나타난다 해도 삼천리 저 밖으로 물러가 버릴 수밖에 없다. 자 그런 인물에 공명할 만한 자가 있느냐?

 

〈본칙〉-------------------------------------------

운문스님이 대중 법문을 하였다.

"약과 병이 서로 딱딱 맞으니, 온 대지가 약이다. 어느 것이 자기이겠느냐."

 

〈송〉-------------------------------------------

온 세상이 다 약이다

이 말을 잘못 안 이 얼마나 많았던가

억지로 재고 깎고

서툰 짓 안해도 길은 환히 트인 것을

아뿔싸, 실수로다

하늘 위 높은 콧대 단숨에 꺾였구나.

【제088칙】

〈수시〉-------------------------------------------

선문에서 지도하는 방법이란 어떤 것이 있는가 하면 바로 둘을 쪼개서 셋을 만드는 융통성이 있어야 하며, 사물의 깊은 도리를 이야기하는 데에도 자유자재의 솜씨가 있어야 한다. 또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을 지도함에 있어서 쇠사슬이나 오묘한 관문 같은 난문, 난제를 깨부수어야 한다. 불조의 정령에 따라 행동하며 수행자의 집착이나 망념을 남김없이 없애 주어야 한다. 자, 이런 활동을 할 때에도 어딘가 흠잡을 데가 있는 지 말해 보아라. 밝은 눈을 가진 자는 예를 하나 들 것이니 잘 보아 두어라.

 

〈본칙〉-------------------------------------------

현사스님이 대중 법문을 하였다.

"여러 총림의 노스님들이 모두 사람을 제접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고 하나, 갑자기 귀머거리, 봉사, 벙어리가 찾아왔을 때는 어떻게 맞이하겠는가? 봉사에게 백추를 잡고 불자를 곧추세워도 그는 보지 못하며, 귀머거리는 일체의 어언삼매도 듣지 못하며, 벙어리에게는 말을 하도록 시켜도 하지 못한다. 이들을 어떻게 맞이할까? 만일 이들을 제접하지 못한다면 불법은 영험이 없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가르쳐주기를 청하자,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절 좀 해봐라."

스님이 절을 올리고 일어나자, 운문스님이 주장자로 밀쳐버리니, 스님이 뒷걸음질치자,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너는 눈이 멀지는 않았구나."

다시 그를 불어 앞으로 가까이 오라 하여 스님이 다가오자,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귀머거리는 아니구나."

그리고는 물었다.

"알았느냐."

"모르겠습니다."

"너는 벙어리는 아니구나."

스님이 그로 인해 알아차리는 바가 있었다.

 

 

〈송〉-------------------------------------------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세상일 어지러워 안 본 듯, 안 들은 듯

말조차 잊었구나 까마득한 딴 세상

가엾은 세상 사람 그것을 모르다니

천리안이 어찌 보랴, 허허로운 이 경지

명악사가 어찌 들으랴 그윽한 이 소리

그 누가 알랴, 잎지고 꽃 피는 조화

창가에 홀로 앉아 지켜보는 이 기쁨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정녕 알겠느냐 무슨 뜻인지

 

 

 

 

온 몸이 손이고 눈이다

【제089칙】

〈수시〉-------------------------------------------

온 몸이 다 눈이 되어 버리면 새삼 본다는 느낌이 없고, 온 몸이 다 귀가 되면 새삼 듣는다는 느낌이 없으며, 온 몸이 그대로 입이 된다면 새삼 말한다는 느낌이란 없고, 또 온 몸이 그대로 마음이 되어 생각한다면 새삼 생각한다는 것을 느끼지 않게 된다. 온 몸이 눈, 귀, 입, 생각이 된다는 것은 우선 그런대로 괜찮지만, 그러나 만약 눈이 없다면 어떻게 보고, 귀가 없다면 어떻게 들으며, 입이 없다면 어떻게 말하고,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만약 이 내 질문에 대해 그럴듯한 해답을 내비치기라도 할 수 있다면 그런 인물은 역대의 조사들과 자리를 같이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역대의 조사들과 한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은 또 그렇다 치고, 과연 그런 경지에 이르려면 대체 어떤 분을 찾아가야 하는가를 말해 보아라.

 

〈본칙〉-------------------------------------------

운암스님이 도오스님에게 물었다.

"대비보살은 수많은 손발을 사용하여, 무엇을 합니까."

"사람이 한밤중에 등 뒤로 베개를 더듬는 것과 같다."

"알았습니다."

"뭐냐."

"온몸이 손이요, 눈입니다."

"큰 소리는 쳤다만 열이면 여덟을 말했을 뿐이다."

"사형께서는 어떠십니까."

"온몸이 손이요, 눈이다."

 

〈송〉-------------------------------------------

편신, 통신을 떠들 것 없네

둘 다 조정에선 십만리 저 편일세

대붕이 날개 펴고 구만리 상공으로

바람차고 치솟으니 사해가 뒤집히네

아서라 그 따위 짓 먼지 풀썩 떠오르듯

터럭하나 둥 뜨듯 보잘 것 없다네

그대는 못 보는가 제석천의 구슬 휘장

그림자 영롱한 채 겹겹이 둘러친 걸

어찌 대비보살 뿐이랴

봉두의 손과 눈 여기저기 깔려 있네

아는가, 그 손, 그 눈 어디서 오는 지를

 

 

조개가 달을 머금다

【제090칙】

〈수시〉-------------------------------------------

절대 그 자체에 의거한 한마디란 천만의 성현도 전해줄 수가 없다. 눈 앞의 한 오라기 실도 영원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다. 그렇듯 우주의 참 모습이 여기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자, 어떠냐 알 수 있겠느냐?

 

〈본칙〉-------------------------------------------

어떤 스님이 지문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반야의 체입니까."

 

 

"조개가 밝은 달을 머금었다."

"무엇이 반야의 용입니까."

"토끼가 새끼를 뱄다."

 

〈송〉-------------------------------------------

텅 빈 채 한없이 커다란 이 덩어리

무어라 말과 글로 나타낼 수 있으리

사람과 하늘 모두 이에서 공생 보내

조개와 토끼라 깊은 그 뜻 알 수 없어

스님네 옥신각신 그칠 날이 없구나

 

 

 

무소는 아직 그대로 있다

【제091칙】

〈수시〉-------------------------------------------

미혹도 깨달음도 다 떠나고, 불법과 선에서도 풀려나서 다시는 없는 높은 경지를 가르쳐 보이며 참된 깨달음의 집을 세워야 한다. 그러면 무슨 일에도 자유자재로 대응할 수 있고, 사방팔면 어디서나 밝고 뚜렷하게 보여서 그런 경지에 곧장 다다르게 된다. 자, 말해 보아라. 어떻게 하면 그러한 인물과 함께 살고 죽는 입장에 설 수 있는지를...

 

〈본칙〉-------------------------------------------

염관스님이 하루는 시자를 불러 말하였다.

"무소뿔 부채를 가져오너라."

"부채가 다 부서져버렸습니다."

"부채가 부서졌다면 나에게 무소를 되돌려다오."

시자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투자스님은 말하였다.

"사양치 않고 가져다 드리겠습니다만 뿔이 온전치 못할까 염려스럽습니다."

설두스님은 이에 염하였다.

"나는 온전치 못한 뿔을 필요로 한다"

석상스님은 말씀하셨다.

"스님에게 되돌려 줄 것은 없다"

설두스님은 이를 염하셨다.

"무소는 아직 그대로 있다"

자복스님은 일원상을 그리고서 그 가운데 소 우자 한 자를 썼다.

설두스님은 이를 염하셨다.

"조금 전엔 무엇 때문에 가지고 나오지 않았느냐."

보복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춘추 높으시니 따로 사람에게 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설두스님은 이를 염하셨다.

"고생을 했지만 공로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송〉-------------------------------------------

우주란 하나의 부채 같은 것

그 부채 누구나 다 갖고 있건만

그게 뭐냐 물으면 아무도 몰라

맑은 바람 무소의 뿔 그걸 잡으려 드나

구름 흘러 비 그치니 쫒을 길 없어

-------------------------------

수도자들에게 설두가 말하였다.

"맑은 바람 다시 일고 뿔 새로 돋았으니, 놀라운 한 마디 어느 누가 해보겠는가."

아무런 대꾸가 없자 다시 한 마디 하였다.

"부채가 망가졌으니 무소를 거져오란다. 자, 그것이 있느냐."

그러자 한 중이 말하였다.

"자, 여러분 이젠 끝났습니다. 어서 돌아가 편히들 쉬십시오."

설두가 그 말에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고래를 낚으려고 낚시를 던졌더니 두꺼비만 한 마리 겨우 걸렸구나!"

그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부처, 자리에서 내려오다

【제092칙】

〈수시〉-------------------------------------------

거문고 줄만 조금 퉁겨도 무슨 곡인지를 아는 그런 사람이란 천 년에 한 번도 만나기 어렵다. 토끼를 보자 곧 매를 풀어놓듯 어떤 뛰어난 자가 나타나도 일시에 덮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말과 글을 한 마디 속에 몰아넣고 삼천대천세계를 티끌 하나 속에 포함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과 하나가 되어 자유로운 경지를 얻었음을 입증할 사람이 있겠느냐?

 

〈본칙〉-------------------------------------------

어느날 부처가 법좌에 오르자 문수보살이 백추를 치면서 말하였다.

 

"법왕이 설하는 법을 잘 보라. 법왕의 법이란 방금 본 그와 같은 것이다."

부처는 그만 자리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송〉-------------------------------------------

그 많은 열성 중에 눈 밝은 이 누구인가

법왕의 법이란 그런 것이 아닐세

영산회상 열성 중 뛰어난 자 있다면

문수인들 그 어찌 백퇴를 두들기랴

 

 

대광이 춤을 추다

【제093칙】

〈본칙〉-------------------------------------------

한 스님이 대광스님에게 물었다.

"저 금우화상의 기행에 대해 장경화상이 󰡐끼니에 대한 고마움이지󰡑라고 대답했다는데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대광스님이 잠자코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그 중이 절을 했다.

대광화상이 물었다.

"대체 무엇을 보고 절을 했느냐."

그러자 이번에는 그 중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

"이 여우귀신 같은 놈!"

대광스님이 크게 꾸짖었다.

 

〈송〉-------------------------------------------

춤을 춘 것 좋다마는 여우귀신 더 좋아라

그 누가 말했던가, 누런 잎이 돈이라고

조계의 빛나는 선 그런 꼴이 된다면

평지풍파 일어서 모두 저승길이리

 

 

능엄경의 보이지 않는 곳

【제094칙】

〈수시〉-------------------------------------------

절대적인 한마디란 천만의 현성도 전해 줄 수 없고, 눈 앞에 펼쳐지는 사물이란 실오라기 하나도 영원히 이어져 결코 끊기는 일이 없다. 말갛게 씻긴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경지에 공터의 흰 소와 눈을 치켜뜨고 귀를 쫑긋 세운 금털 사자가 있다. 금털 사자는 잠시 밀어두고 과연 공터의 흰 소란 무엇이냐?

 

〈본칙〉-------------------------------------------

능엄경에 이르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내가 보지 않을 때에 왜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하는가? 만일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본다면 자연 저 보지 않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만일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결코 물상이 아닐 것이어늘, 어찌 네가 아니랴.」

 

〈송〉-------------------------------------------

코끼리 다 보이고 소 또한 다 보인들

천하의 잘난 선승 모두가 장님일세

노랑머리 석가를 지금 보고 싶은가

무량무수 불토에 부처님들 많건만

모두들 여기저기 서성이며 맴도네

 

 

차나 마시고 가게

【제095칙】

〈수시〉-------------------------------------------

부처다, 깨달음이다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머물면 머리에 뿔이 생기고 만다. 부처도 깨달음도 없다는 경지도 재빨리 지나쳐 버려야 한다. 지나치지 않으면 무성한 망상의 숲에 빠지고 만다. 그렇다고 말갛게 씻어낸 듯한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물아일여의 세계에 있다는 것도 토끼가 나무 그루에 부딪혀 주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자, 말해보라.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본칙〉-------------------------------------------

어느날 장경스님이 말하였다.

"차라리 아라한에게 삼독이 있다 말할지언정 여래에게 두 종류의 말씀이 있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여래께서 말씀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두 종류의 말씀이 없었을 뿐이다."

보복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여래의 말씀인가."

"귀먹은 사람이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는가."

"그대가 제이의에서 말했다는 것을 참으로 알겠군."

장경스님이 보복스님에게 되물었다.

"어떤 것이 여래의 말씀인가."

"차나 마시고 정신차려라!"

 

〈송〉-------------------------------------------

여래의 말에 첫째 둘째 어디 있나

썩은 물 속에 용은 없는 법

용 없으면 잔잔한 물결 고요한 달 빛

용 있으니 바람 없이 사나운 파도

불쌍한 해릉이여, 해릉선객이여

꽃 피는 춘삼월에

용문도 못 오른 채 이마만 다쳤구나.

 

 

 

진흙부처는 물을 건너지 않으니

【제096칙】

〈본칙〉-------------------------------------------

어느날 조주스님이 삼전어로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송〉-------------------------------------------

진흙 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하니

온 천지 신광이건만 한 밤 꼬박 눈 속일세

아, 누군들 흉내야 못내랴

금부처는 용광로를 못 건너니

자호 찾는 이들 「개조심」 보았으리

아, 어딘들 맑은 바람 없으랴

나무 부처는 불을 넘지 못하니

생각하라 파조타의 번개 같은 그 지팡이

아, 이젠 나를 찾았어라.

 

 

금강경 읽으면 죄업이 소멸되나

【제097칙】

〈수시〉-------------------------------------------

집어들기도, 내버리기도 하며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다 해도 아직 솜씨 있는 선자라 할 수 없다. 또 하나를 보면 셋을 아는 영리한 자라 하더라도 아직 선을 터득했다고 할 수가 없다. 천지를 갑자기 뒤엎고 온 세상을 사로잡을 말을 하며, 우뢰같이 달리고 번개처럼 치달으며 구름인양 내닫고 빗발같이 퍼부어서 못을 기울이고 산을 쓰러뜨리며 항아리 물을 쏟아 놓고 동이를 쓰러뜨리는 재주가 있다 해도 그 정도로는 아직 선의 반도 터득했다 할 수 없다. 그럼 과연 하늘의 관문을 돌려 열 줄 알고 지축을 옮겨 놓을 만한 역량을 지닌 자가 있느냐?

 

〈본칙〉-------------------------------------------

금강경에 이르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사람에게 업신여김과 천대를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선세에 지은 죄업으로 응당 악한 세계에 떨어져야 하겠지만 금생에 사람들의 업신여김과 천대를 받았기 때문에 선세의 죄업이 바로 소멸되느니라.」

 

〈송〉-------------------------------------------

손바닥에 있다네 금강의 밝은 구슬

누군들 공 있으면 선뜻 내어 주련만

어중이 떠중이들 그런 자 하나 없네

악마인들 어쩌랴 이것 저것 다 없으니

석가여, 석가여 구슬 든 날 아는가

아무렴 알지, 알고 말고

 

 

 

틀렸어, 틀렸어

【제098칙】

〈수시〉-------------------------------------------

요즘 곧잘 하안거 같은 법회 때 시끄럽게 쓸데없는 수작만 늘어놓고 있는데 거의 모든 수행자들이 그것을 괴롭게 여기고 있다. 금강의 보검으로 닥치는 대로 베어 버려야 비로소 그런 짓들이 아무 소용없음을 깨닫게 된다. 자, 말해 보아라. 그 금강의 보검이란 어떤 것인지를! 눈들을 치뜨고 그 보검의 빼어 든 날을 한 번 보아라.

 

〈본칙〉-------------------------------------------

천평스님이 행각할 때 서원스님을 참방하여 보통 때처럼 말하였다.

"불법을 안다 말하지 말아라. 󰡐그것󰡑을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아도 없구나."

하루는 서원스님이 멀리서 바라보고 그를 부르며 말하였다.

"종의야!"

천평스님이 머리를 들자, 서원스님이 말하였다.

"틀렸어."

천평스님이 두세 걸음을 걸어가자, 서원스님은 또다시 말하였다.

"틀렸어."

천평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서원스님은 말하였다.

"조금 전에 두 번 󰡐틀렸어󰡑라고 말하였는데 서원이 틀렸느냐, 상좌가 틀렸느냐."

"제가 틀렸습니다"

서원스님은 또다시 말하였다.

"틀렸어."

천평스님이 그만두려 하자, 서원스님이 말하였다.

"우선 여기에 머물며 여름 결제를 지내면서 상좌와 함께 이 두 번 틀렸다는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천평스님은 곧바로 떠나버렸다. 그 뒤 사원에 주석하면서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처음 행각할 때 업풍에 끌려 사명장로의 처소에 찾아갔더니, 연이어 두 번이나 󰡐틀렸어󰡑라고 말한 뒤 나에게 그곳에 머물면서 여름 결제를 보내며 함께 생각해 보자고 하였다. 나는 그때는 틀렸다는 것을 몰랐지만 내가 그곳을 떠나 남방으로 떠날 때 비로소 틀려버린 것임을 알았다."

 

 

〈송〉-------------------------------------------

부끄럽다. 선의 가문

경박한 그 따위짓 골라서 하려드니

자랑스런 그 불법

배 속에 가득한들 무슨 소용 있는가

가련한 녀석일세

우스운 놈이라네 저 늙은 천평화상

애당초 행각한 게 잘못이었다니

그 따위론 안될 걸세 답답한 천평 노인

서원의 그 맑은 바람 시원한 줄 왜 모르나

(한 중이 문득 나서 "안되겠소." 한다면 설두는 말하리라. "나의 이 안 된다와 천평의 한마디가 과연 뭐가 다른가.")

 

 

 

부처의 정수리를 밟고

【제099칙】

〈수시〉-------------------------------------------

용이 읊조리면 안개가 일고, 호랑이가 울부짖으면 바람이 생겨난다. 뛰어난 선자가 불법을 가르치면 금과 옥이 서로 울리듯 사람들을 완벽한 그 아름다움 속에 취하게 만든다. 그런 선자의 자유로운 활동은 화살과 화살이 맞부딪듯 조금도 빈틈이 없이 훌륭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활기는 온 세계 어디에나 멀고 가까운 곳의 차별 없이 그대로 드러난 채 예나 지금이나 분명하다. 자 말해 보아라. 이러한 경지를 어떤 사람이 지니고 있는지를...

 

〈본칙〉-------------------------------------------

숙종황제가 충국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십신조어입니까."

"단월이여!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초월해가십시오."

"모르겠습니다."

"자기의 청정법신이 있다고 잘못 알지 마십시오."

〈송〉-------------------------------------------

국사란 이름도 군더더기

천하에 그만한 이 또 어디 있었으랴

임금을 부축하여 올바르게 이끌어

부처님 머리 밟고 넘어가게 했다네

소중한 그 황금뼈 단매에 쳐부수니

이제 천지간에 아무것도 없어라

온 누리 고즈너기 밤은 깊고 깊은데

뉘라서 창룡굴에 찾아들 이 있으랴

 

 

 

가지마다 달린 달

【제100칙】

〈수시〉-------------------------------------------

이제 이 강론도 처음부터 끝까지 무난히 끝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서로 대면해서 말해 온 것이 모두 아무 사심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아무 말도 안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갑자기 누군가가 나서서 󰡐한 여름 내내 질문을 받고 말을 해 왔으면서도 새삼 아무 말도 안한 거나 같다니 그게 될 말입니까?󰡑 하고 따진다면, 나는 󰡐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가르쳐 주지.󰡑 하고 말해 줄 것이다. 자 말해 보아라. 그 부증설은 곧 말하는 것부터 꺼리는지, 아니면 말하는 것을 유익하다 하는지를...

 

〈본칙〉-------------------------------------------

어떤 스님이 파릉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취모검입니까."

파릉스님이 말하였다.

"산호 가지마다 달이 달려 있구나"

 

〈송〉-------------------------------------------

취모의 검이여 세상 불평 다스려라

뛰어난 솜씨란 오히려 서투른 법

손바닥 손끝으로 휘두르는 그 검

하늘에 번뜩이며 하얀 눈 위 비추네

뉘라서 그런 검 갈고 닦을 수 있으랴

산호 가지가지 달빛 곱게 걸려 있네

 

 

 

 

 

 

 

벽암록(碧巖錄) 소개

■『벽암록(碧巖錄)』 ① 개요(槪要)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같은 중국(中國)의 대표적(代表的) 선록(禪錄)에 수록된 1,700개의 공안(公案) 가운데 가장 핵심적(核心的)인 것으로 평가(評價)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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