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불교교설]⑫ 12연기법.. 역관과 순관
앞에서 나라고 불리는 5취온은 2법인 12처에 의해 3사화합인 18계가 되면 이어서 촉, 수, 상, 사가 발생하는 데..
그렇게 생기는 촉, 수, 상, 사(행)를 무상으로 알지 못하고 집착하면 그것이 집기하여 존재(有)로 여기게 되니 그것이 5취온으로
일반인은 5온이라고 한다. 5온이 있다는 것은 고가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생긴 게 된다.
불교는 고멸을 목표로 하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고를 멸하려면 5취온을 멸해야만 하리라.
그런데 범부들은 5온은 멸할 수 없는 실재하는 존재로 아는데 실은 그게 아니라 5취온인 5온으로 분명히 멸할 수 있다고 보여 주는 게 바로 12연기법의 환멸문이다.
해서 여기서는 5온과 일체 고가 어떻게 생기는지 보여주는 12연기법의 유전문과 5온멸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환멸문을 알아본다.
하나. 연기 pratitya-samutpada 란 마음법이다.
연기를 3세양중인과설이라 하여 인연생기(因緣生起)로 이해하는 것은 세간법으로 하사도(下士道)가 된다.
윤회를 설명하는 원리인 3세양중인과설은 세간법이다.
인과법은 어떤 인(因) 조건과 만나 과(果)가 되는 것을 말한다.
'한 씨앗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에서 씨앗인 인이 변해 많은 열매라는 과가 된다. 그러나
연기법은 조건인 연(緣)만 있을 뿐, 인(因 hetu)이 없다.
연기법은 마음을 설명하는 것으로 존재를 설명하는 법이 아니다. 다만 초급 불제자이거나 세간에서는 마음법을 이해하기 쉽지 않기에
12연기법을 3세양중인과설처럼 방편으로 존재법인양 설하신 것이다. 그런데
상좌부와 대승불교 가리지 않고 3세양중인과설을 연기법의 정설처럼 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3세양중인과설이 연기법의 핵심은 아니더라도 불교의 출발을 [지금 여기 나]라고 할 때. 3세양중인과설은 불교의 출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3세양중인과설인 인연법이 경 곳곳에 설해져 있다.
인과(인연)법과 연기법은 무엇이 다른지를 살펴보자.
인과(인연)법
비 록 연기법의 근본에서 벗어나 있는 게 인연법이라 하지만.. 연기법을 3세양중인과설이라 하듯이.. 인연법은 연기법 가운데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뿐 아니라 근본경전인 <잡아함경> 안에 연기법을 인연법으로 설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238. 인연경(因緣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의 미후지 곁에 있는 2층 강당에 계셨다.
이 때 어떤 비구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因)과 무슨 연(緣)으로 안식(眼識)이 생기며, 무슨 인과 무슨 연으로 귀[耳]·코[鼻]·혀[舌]·몸[身]·뜻의 식(識)이 생깁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눈이 빛깔을 인연하여 안식이 생기느니라. 왜냐 하면 만일 안식이 생겼다면, 그 일체는 눈[眼]이 빛깔[色]과 인연이 되었기 때문이니라. 귀[耳]는 소리[聲]를 인연하고, 코[鼻]는 냄새[香]를 인연하며, 혀[舌]는 맛[味]을 인연하고, 몸[身]은 감촉[觸]을 인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뜻[意]이 법(法)을 인연하여 의([意識)이 생기나니, 왜냐 하면 모든 의식, 그 일체는 다 뜻이 법을 인연하여 생기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비구들아, 안식은 인연으로 생기고 ………… 나아가 의식도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여기에 나오는 안과 색 등은 6근, 6경으로 해석하는 게 편하다.
따라서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인연법을 무시하기 보다는 연기법을 바르게 이해하는 과정에서 방편으로 포함시키는 게 적당하지 않은가 한다.
296. 인연경(因緣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인연법(因緣法)과 연생법(緣生法)을 설명하리라.
어떤 것을 인연법이라고 하는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내지)…… 이러이러하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연생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명(無明)과 행(行) 등등이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出現)하시건 혹은 세상에 출현하시지 않으시건 이 법은 항상 머무르나니, 법이 항상 머무르는 곳을 법계라고 한다. 이러이러하여 저 여래께서 스스로 깨닫고 알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시고, 열어 보여 나타내시며, 드날리시는 것이니,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건 혹은 세상에 출현하시지 않건 간에 이 법은 항상 머무르나니, 법이 항상 머무르는 곳을 법계라고 한다. 이러이러하여 저 여래께서 스스로 깨닫고 알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시고, 열어 보여 나타내시며 드날리신 것이니, 이른바 '태어남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296경>을 보면.. 연기법은 바로 인연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연과 연생이 무엇이 다른지를 설명한다.
인연법이란 연기 공식인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에 나오는
' ~이 있으면 ~이 있고, ~이 멸하면 ~이 멸한다' 에서 보듯 있으면 또는 멸하면 에 해당하는 게 연기가 된다.
달리 말하면 빵만드는 공장에서 빵만드는 기계에 해당하는 게 연기가 된다.
해서 무명이라 재료를 넣으면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며 결국은 고라는 결과물이 생긴다.
무명 대신에 명을 넣으면 고멸이란 결과가 생기고.
연생법이란 연해 생긴 것으로.. 12연기법에 나오는 12지인 무명, 행, 식, 명색, 6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를 말한다.
연해 생긴 것은 집기(集起)를 하니 존재화가 된다. 세간에서 일체를 존재로 보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세간에서는 존재화된 진리의 시계(=세속제)가 된다.
그러기에 그것은 부처님이라 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여 존재화가 되면 그것은 수행으로 멸할 수 있는 것에서 벗어난다.
아라한 게(偈)인 불수후유(不受後有)의 뜻도 "지금 나는 있지만 이 생(5온)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몸(나)을 받지 않는다" 고 새기게 된다.
설일체유부의 불교가 그랬고,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남방불교는 그와 같은 입장에서 불교를 바라보는 상좌부도 그와 같다.
그러나 근본불교의 중심은 그게 아니라 일체는 심연생으로 보는 연기법을 바탕으로 한다.
인연법이 아닌 연기법은 어떤 것인가?
연기법
287. 성읍경(城邑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전생에 아직 정각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 때 나는 혼자서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선정(禪定)에 들어 사유(思惟)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떤 법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으며, 어떤 법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일까?'
곧 바르게 사유하여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고, 태어남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존재·취함·애욕·느낌·접촉·6입처도 그와 같으며, 명색에 대해서도 어떤 법이 있기 때문에 명색이 있으며, 어떤 법을 인연하기 때문에 명색이 있는 것일까?' 하고 사실 그대로의 빈틈없고 한결같음을 일으켰다. 곧 바르게 사유하자 '식이 있기 때문에 명색이 있으며, 식을 인연하기 때문에 명색이 있다'는 사실 그대로의 빈틈없고 한결같음이 생겼다.
내가 이렇게 사유했을 때, 식을 한계로 돌아오게 되고 그것을 넘어설 수가 없었으니,
이른바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6입처가 있으며, 6입처를 연하여 촉이 있고, 촉을 연하여 느낌이 있으며, 느낌을 연하여 애욕이 있고, 애욕을 연하여 취함이 있으며, 취함을 연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연하여 태어남이 있으며, 태어남을 연하여 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이 있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모였다.
我作是思惟時,齊識而還不能過彼,
謂緣識名色,緣名色六入處,緣六入處觸,緣觸受,
緣受愛,緣愛取,緣取有,緣有生,緣生老、
病、死、憂、悲、惱、苦。如是如是純大苦聚集。
저 <287경>을 보면 식을 연해 명색이 있다는 연식명색(緣識名色)이 나온다.
만일 이것을 인과법으로 해석하면 인(因)인 식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과(果)인 명색이 생긴 것으로 이해하리라.
그러나 연기 pratitya-samutpada란 (그것을) 연해pratitya 함께sam 생겨 있다 utpada는 뜻처럼..
연식명색(緣識名色)이란 식을 연해 식과 명색이 함께 생겨 있다는 뜻이 된다.
식과 명색이 함께 있을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곳은 무명이 있는 곳이요, 순전히 커다란 고(純大苦)가 모여(聚集) 있는 곳이리라.
그곳이 어디일까?
마음이다.
그 말은 12연기의 12지(支)가 생겨 있는 곳은 바로 마음이란 뜻이다.
그런데 무명이 있으면 연무명행이요, 연행식, 연식명색, 연명색6입,.. 연생노사 라고 할 때,
12지는 어떻게 생겨 있는 게 되는가?..
만일 6입처 자리에서 보면 그 6입처에 무명에서 명색까지 들어 있는 것처럼 있는 것이고,
노사에서 보면 무명에서 생까지가 들어 있는 것처럼 있는 게 된다.
이때 노사는 몸의 노사가 아닌 마음에 인식된 노사가 된다.
둘, 연기를 보면 법을 보고, 법을 보면 연기를 본다.
법이란 두가지 의미가 있으니 하나는 진리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일체 각각을 지칭한다.
연기를 보면 법을 보고, 법을 보면 연기를 본다에 나오는 법은 두가지 의미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중아함. 상적유경>에 나오는 저 문장에서 법은 5온인 일체법을 의미한다.
3. 사리자상응품 제 3권
30) 상적유경(象跡喩經) 제 10 [초 1일송]
여러 현자들이여, 마치 재목과 진흙과 물풀로써 허공을 덮으면 집이라는 이름이 생기는 것처럼, 여러 현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몸도 그와 같아서 힘줄과 뼈와 피부와 살과 피로 허공을 싸면 곧 몸이라는 이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의 안처(眼處)가 무너지고 바깥 경계인 빛깔이 광명을 받지 못하면 곧 생각이 없게 되어 안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의 안처가 무너지지 않고 바깥 경계인 빛깔이 광명을 받으면 곧 생각이 있게 되어 안식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안의 안처와 빛깔, 안식이 바깥 빛깔을 알면 이것은 색음(色陰)에 속하고, 만일 각이 있으면 이것은 각음(覺陰)이요, 상이 있으면 이것은 상음(想陰)이며, 사가 있으면 이것은 사음(思陰)이요, 식이 있으면 이것은 식음(識陰)이니, 이렇게 음이 모여 합하는 것을 관찰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
왜냐 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는 5성음(盛陰)은 인연을 좇아 생긴다고 말씀하셨으니, 색성음(色盛陰)과 각성음(覺盛陰) 상성음(想盛陰) 행성음(行盛陰) 식성음(識盛陰)이 그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內]의 이처(耳處) 비처(鼻處) 설처(舌處) 신처(身處) 의처(意處)가 무너지고 바깥의 법이 광명을 받지 못하면 곧 생각이 없게 되어 의식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의 의처가 무너지지 않고 바깥 경계인 법이 광명을 받으면 곧 생각이 있게 되어 의식이 생기게 됩니다. 안의 의처와 법과 의식이 바깥의 색법을 알면 이것은 색음에 속하고, 만일 각이 있으면 이것은 각음(覺陰)이요, 상(想)이 있으면 이것은 상음(想陰)이며, 사(思)가 있으면 이것은 사음이요, 식(識)이 있으면 이것은 식음이니, 이렇게 음이 모여 합하는 것을 관찰합니다.
<상적유경>에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2법인 6내외입처가 6식을 만나 18계가 되어 3사화합촉이 생기면..
식음이 생기고, 느낌이 생기면 수음(受陰, 覺陰), 상음, 사음(행음) 그리고 식음이 생긴다고 했다.
이렇게 2법에 의해 각각의 5음이 생기도록 하는 게 연기다. 따라서 연기를 본다는 것은 2법에서 생긴 5온과 5온의 각각을 보며,
5온은 연기에 의해 생겨 있는 것으로 아는 것이니.. 5온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보는 게 된다.
이렇듯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일체는 모두 연기에 의해 생겨 있는 것으로.. 그런 일체는 그대로 진리를 현현하고 있는 게 된다.
따라서 바르게 아는 일체는 그대로 진리가 된다. 따라서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
그런데 연기를 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하다고 하는데.. 봄여름가을겨울을 볼 수 있나..
쌓여던 눈이 녹고, 새싹이 움트니 봄이 온 줄 알고, 신록이 짙어지니 여름이, 온 산이 붉게 물들고 낙옆이 지니 가을인라고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법을 볼 뿐 4계절이 변하는 것은 보지 못한다.
그처럼 법은 보지만 연기는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연기를 보면 법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세상에서는 눈이 녹고, 낙옆이 지는 것을 보면 실재하는 눈(雪)이 사라지고, 실재하던 잎이 떨어져 사라지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눈이나 잎은 실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그렇게 인식되고 있던 것 뿐이다.
따라서 연기를 보면 눈이라 낙옆이 실재하는 존재로 무상asassata이 아닌 법으로 무상 anicca 임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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