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허물 볼수록 분별심 깊어지니 그저 방하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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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겨울햇살이 한 낮의 화엄사 도량을 채우고 있다. 연기(緣起)대사의 눈에는 백제 땅을 휘감고 있는 지리산이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신령스런 산으로 느껴졌다. 부처님의 원융무애 한 ‘화엄사상’을 펴기에는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있는 지리산이 최상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리하여 연기대사는 지금의 화엄사에 절터를 잡은 것이다.
각황전 옆으로 나있는 백팔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하나를 밟을 때마다 번뇌 한 가지를 버리면서 올라오라는 의미일 터이다. 계단의 끝에는 노송으로 둘러싸인 사사자(四獅子)3층사리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연기(緣起)대사의 효심이 서려 있는 석탑 앞에 서니 가슴이 뭉클하다. 석탑의 스님상은 연기대사의 어머니가, 석탑과 마주하고 있는 석등에는 한쪽 무릎을 꿇고 차를 공양하는 연기대사가 조각되어 있다. 효심이 지극했던 연기대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공양하는 자신의 모습을 석등의 형태로 조각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사사자석탑을 외호하듯 바로 그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견성당(見性堂)은 현산 스님의 거처이다. 조석으로 드나들며 석탑과 연기 대사에게 눈 맞춤한 세월도 십여 년에 이른다. 이 또한 예사롭지 않은 인연이다.
견성당에 들어서려면 성적문(惺寂門)을 지나야 한다. 공부의 길은 성적을 여의지 않아야 하는 법, 마음이 깨끗하고 고요해져야 비로소 공부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가르침을 온 몸으로 전하고 있다.
사미승 때부터 제방의 선원을 다니며 공부한 그 햇수를 헤아려보니 반 백 년의 세월이다. 산천에 꽃이 피고 지는 것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공부가 참으로 다급했기에 좌복 위에서 100안거를 훨쩍 넘겼다. 스님은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면서 ‘마음공부’가 결코 쉽지 만은 않다고 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한 세상 어영부영 살다 보면 눈은 곧 침침해지고 백발이 찾아오고 세월은 금방이라. 내 면목 모르고 살아온 시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죄 아닌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진면목을 깨닫지 못한 것이 ‘죄업’인 것을 안다면 하루가 다급하지.”
현산 스님은 출가 전부터 ‘화두참선’을 알았고 화두참선을 원 없이 해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아마도 전생에 익힌 습이 있어 그랬던 모양이라”면서 출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를 이을 아들 하나 점지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어머니는 광주 약사암에서 백일기도를 했다. 백일기도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가사 장삼을 수하신 스님 한 분이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은 태몽이 되었고, 스님은 출생과 더불어 집안에서 ‘스님이 될 아이’로 특별하게 생각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대흥사 스님이었던 한문 선생님에게 <반야심경> <능엄경>등의 경전을 배웠다. 부처님 가르침에 절로 환희심이 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경전을 공부했다. 그때 화두참선도 배웠는데, 물질의 세계가 아닌 고귀한 정신세계가 따로 있음을 알게 된 경이로운 사건이었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출가를 해야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한 집안을 책임져야 할 장남이었기에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원래 스님이셨던 분이 우리 집에 잠시 아들로 온 것인데, 정해진 길로 가야지”하시면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을 뿐더러 “꼭 도인이 되라”고 축복 해주시더란다. 본생담(本生譚)의 한 구절을 듣는 듯하다.
도천 스님을 은사로 입산하여 행자생활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고나서 선방을 떠돌았다. 일생을 선방에서만 보내온 만큼 동산 스님, 전강 스님, 효봉 스님, 경봉 스님, 춘성 스님, 금오 스님, 구산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을 모시고 공부할 수 있었다.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모시고 잠깐 공부했는데,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에 두루 능통하셨고 특히 계를 철저히 지키셨습니다. 청정하신 분이라 그런지 열반하실 때도 참 깨끗하게 고요하게 가셨어요. 새벽에 일어나 도량청소하고 선방에서 정진하고 나시더니, ‘몸이 좀 안 좋아 병원에 가보아야겠다’고 하시더니 그날 오후에 열반에 들었어요. 이것만 보아도 보통 공부한 분이 아니지요.
인천 용화사에 선방은 없고 조실채만 있을 때 전강 스님을 모시고 공부했어요. 스님은 초저녁에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 12시만 되면 눈을 뜨고 계속 정진을 하셨는데, 젊은 사람들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의 수행력을 보였습니다. 그때 스님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판검사가 되려고 해도 병이 생길 정도로 공부해야 하는데, 만법의 왕인 마음을 공부하는데도 그만한 대가와 시간을 들여야 한단다. 세세생생 몸에 익혀온 습을 바꾸려면 당연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주장이다.
“무엇이든 오랜 시간 몰두해야 성취할 수 있잖아요. 참선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각이 깨끗해지며 허황된 것에 속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솟아나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혜안을 갖추면 자신이 행복합니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여쭈었다.
“첫째는 불견세간우(不見世間憂)라,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알고 보면 다 내 업장이고 내 탓이지, 다른 사람들의 탓이 아닙니다. 남의 허물을 보지 않으면 분별심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세상의 허물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허물을 보다 보면 진심(嗔心)이 일어납니다. 진심이 일게 되면 결국 육체가 병들어 무너지고, 마음 또한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됩니다. 옛 조사님들은 그래서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다만 나의 허물을 잘 살필 것이며, 산란한 마음을 화두로 돌이켜서 ‘이뭣고’ 를 참구하라고 일렀습니다. 이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자니 육조 혜능 스님의 일화 한 토막이 떠올랐다.
혜능 스님의 명성을 듣고 신회 스님이 찾아왔다. 혜능스님께 예배하고 나서 물었다.
“스님은 좌선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이 말을 들은 혜능 스님은 벌떡 일어나서 신회 스님을 몽둥이로 세 번이나 때리고 나서 물었다.
“내가 그대를 때렸는데 아프더냐, 아프지 않더냐?”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자 혜능 스님이 말씀하였다.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한다.”
이 말씀에 신회 스님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었고 다시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째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니, 본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니 그 까닭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면서 남의 허물을 보아서 무엇 하랴. 남의 허물을 입에 올리면 올릴수록 분별심만 깊어지니 그저 방하착하란다. 평생을 선방 수좌로 살아오신 현산 스님은 마음공부는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침이 없단다.
“내 면목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하고 듣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했는데 돈과 권력이 아무리 많은들, 자식을 아무리 잘 키운들 무슨 이득이 있겠어요? 깨달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번뇌가 사라지는데, 사람들은 이 맛을 몰라서 하지 않는 것이겠지. ‘이 뭣고’ 한번 잘하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을 갖게 되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니 안타까워요. 수행이 쉽지만은 않지만 어렵다고 하지 않으면 세세생생 업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라.”
한 마음 깨치고 보면 들끓던 욕망과 번뇌와 어리석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자유를 누리게 된다. 욕심을 앞세우지 않는, 구하는 바 없이 기도를 하면 마음이 얼마나 편안한지 모른다면서 우선 이러한 기도부터 해 보기를 권했다.
스님은 한 때는 몸이 아주 쇠약하여 선방에서 방부도 잘 받아주지 않을 정도였다. 주변 사람들이 스님의 건강을 염려하여 공부를 만류하기도 했지만, 현산 스님은 ‘선방수좌가 공부하다 죽으면 그것보다 더 큰 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 내놓고 공부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건강이 좋아졌다면서 “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 참선에 다 있음”을 강조했다.
사대성고취(四大成苦聚)
삼계진화택(三界盡火宅)
여아구출몰(汝我舊出沒)
겁해종난식(劫海終難息)
사대가 고통이 모여 이루어졌으니 삼계가 다 화택이니라.
너와 나 나고 죽음을 계속하기를 겁의 바다가 다하도록 쉬기 어렵구나.
“세상은 덧없고 몸뚱이는 한량없이 덧없어요. 세상에 나오는 것도 고통이고 죽는 것도 고통이고, 병든 것도 고통 아닙니까. 더구나 다치게 되면 몸뚱이가 온통 고통의 덩어리임을 사무치게 깨닫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언제 죽음과 재앙이 닥칠지 모릅니다. 고(苦)에서 벗어나려면 참선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육조 스님께서 ‘어리석은 사람은 복은 닦고 도(道)는 닦지 않으면서 복을 닦는 것이 곧 도(道)라 한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복을 빌지만 죽음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병과 죽음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합니다.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육신을 애지중지해도 병과 죽음이 불시에 닥치면 벗어날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해요.
부처님은 삼계를 불난 집에 비유했어요. 자신은 잘 살고 있다고 해도 탐진치(貪瞋癡) 오욕번뇌 속에 살고 있으니, 불난 집에 앉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번뇌를 끊지 못하는 한 나고 죽음을 면할 수가 없어요. 요즈음 ‘웰다잉’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던데, 평소에 정진하면서 잘 살았다면 죽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종정이셨던 혜암 스님의 은사스님은 비록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언제 가겠다는 말씀을 하고 해인사 원당암에서 좌탈입망(坐脫立亡)할 정도로 엄청난 수행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동산 스님께서도 깨끗하게 열반하신 것을 보면 선정(禪定)의 힘은 이런 것입니다.”
스님은 ‘참선전도사를 자청하신 것 같다’고 했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스님은 화두를 받은 그 순간부터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더란다. 평생을 선방 수좌로 살아오면서 한 번도 깨달음에 대해 의심을 해 본 일이 없었다. ‘신심은 모든 공덕의 어머니요 신심이 모든 보배 가운데 제일’이라 했듯이 신심이 장해야 공부가 잘 되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깨달음에 대한 확신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바로 참선으로 들어가기 어려운 사람은 <금강경>을 반복해서 독경하다보면 화두가 들리게 된단다. 또 <보현행원품>을 염송하고 몸으로 행한다면 그 또한 큰 공부가 되어 깨달음에 이른다고 했다.
“애를 쓴다고 금방 되지는 않지만 깨달음 그 자체에는 빠르고 더딘 것이 없어요. 순간에 대오했건, 천생만생 선근을 닦아 깨달았건, 깨달음의 당체는 한 결 같이 똑같습니다.”
동안거 결제를 며칠 앞 둔 터이라 방부를 들인 스님들이 인사차 찾아왔다.
“선등선원의 기운이 어느 선원보다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정진을 하다보면 피곤하고 기운이 쇠해지기도 하는데 여기는 오히려 정진을 하면 할수록 힘이 난다고 그래요.”
아마도 지리산이 뿜어내는 힘찬 기운 탓이 아닐까 싶다.
스님이 우려 낸 차맛은 일품이었다. 차맛이 좋다고 했더니 화엄사에서 직접 채취한 야생차라 했다.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할 때 차씨를 가지고 와서 절 주변과 장죽전에 심은 것이다. 선방 스님들이 차를 애용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눈꺼풀에 무겁게 내려앉는 수마(睡魔)를 쫓아내기 위함도 그 중 한 가지이다. 현산 스님께서 수마를 쫓기 위하여 마신 차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졌다. 100안거를 훨씬 넘긴 그 이면에는 많은 고통과 고난이 있었을 터인데 화두참선을 용광로인양 모든 것을 녹여낸 스님의 가멸찬 수행정진을 가늠해 보았다.
날마다 새롭게 맞이하는 날이기에 선정에 들어가는 것도 날마다 새롭다는 스님, 그만큼 하루를 온전하게 치열하게 살아낸다는 의미이다.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면 날마다 새롭게 살아내라’는 스님의 말씀 오롯이 받아들고, 지리산을 향해 큰 숨 한 번 들이 쉬고 내쉬었다.
현산 스님 약력
1961년 도천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0년 고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 1964년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 사미 때부터 전국의 선방을 다녔고 산철결제까지 합하여 100안거를 성만. 동산 스님, 전강 스님, 효봉 스님, 경봉 스님, 춘성 스님, 금오 스님, 구산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을 모시고 공부. 지금은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이며, 화엄사 선등선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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