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근(六根, ṣaḍ indriyāṇi)
육근(六根)은 인간의 신체를 말하는 불교에서의 기본 개념의 하나다.
그러다가 보니, 간단히 인식하고
그 이상의 정의는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육근은 불교철학의 근간은 기초를 이루는 개념이므로
좀 더 깊은 이해를 해 둘 필요가 있어 재론하고자 한다.
‘인간’에 대한 불교의 기본적인 인식은,
사람은 몸과 정신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인간의 몸은 물질인 눈(眼根), 귀(耳根), 코(鼻根), 혀(舌根), 피부(身根)의
집합체로 보고, 정신작용은 마음(意)으로 봐서,
인간은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근(六根)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불교에서는 육근(六根)의 ‘근(根)’을 일반적으로 감각기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빠알리어로는 indriya(인드리야), 산스크리트어로 indraiya(인드라이야)다.
‘인드리야’를 ‘근(根)’으로 옮긴 것은 식(識)의 근간, ― 식의 뿌리가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에서는
인간은 심(心)⋅신(身) ― 즉,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를 좀 더 세분하면,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관이 여섯 개 있다고 해서, -
이를 육근(6根)이라 하는데, 안(眼-눈)⋅이(耳-귀)⋅비(鼻-코)⋅설(舌-혀)⋅
신(身-몸뚱이)⋅의(意-마음)라는 여섯 기관이 있고,
이에 의해 우리 인간이 있게 된다고 본다.
여기서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 다섯은 육체이고,
의(意)는 정신이므로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졌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육근은 각기 하는 일이 있다.
눈은 본다. 무엇을 보느냐? 물체를 본다. 물체를 색(色)이라 한다.
눈에 잘 띄니까.
귀는 듣는다. 무엇을 듣느냐? 소리를 듣는다. 소리를 성(聲)이라 한다.
코는 냄새를 맡는다. 냄새를 향(香)이라 한다.
혀는 맛을 본다. 맛을 미(味)라 한다.
신(身)은 몸뚱이다. 몸뚱이는 피부 촉감으로 감지를 한다.
그것을 촉(觸)이라 한다.
불교에서는 마음도 무엇을 한다고 여긴다. 무엇을 하는가?
마음은 세상만사를 알려고 한다. 세상만사를 법(法)이라 한다.
이와 같이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라는
육근은 각기,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이라는
감각대상을 가지게 된다.
이 여섯 가지 감각대상을 육경(6境, ṣaḍ viṣayā)이라 한다.
그리고 육근이 각기 감각대상(육경)을 만나면 무엇인가를 알아낸다.
그것을 식(識)이라 한다.
눈(眼)이 물체(色)를 보면, ― 즉, 안(眼)이 색(色)을 만나면,
안식(眼識)이 생긴다.
귀(耳)가 소리(聲)를 들으면, ― 즉, 이(耳)가 성(聲)을 만나면,
이식(耳識)이 생긴다.
코(鼻)가 냄새(香)를 맡으면, ― 즉, 비(鼻)가 향(香)을 만나면,
비식(鼻識)이 생긴다.
혀(舌)가 맛을 보면, ― 즉, 설(舌)이 미(味)를 만나면,
설식(舌識)이 생긴다.
몸(身)이 접촉(觸)을 하면, ― 즉, 신(身)이 촉(觸)을 만나면,
신식(身識)이 생긴다.
마음(意)이 세상만사(法)를 만나면, ― 즉, 의(意)가 법(法)을 만나면,
의식(意識)이 생긴다.
이렇게 해서 6식(識, ṣaḍ vijñāna)이 생기는데,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그래서 마음이 작용을 해서 알음알이를 하는데,
그 아는 행위를 식(識)이라 한다.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의식(意識)을 6식(六識)이라 한다. 초기 불교에서는 6식까지만 있는 것으로 봤다.
이와 같이 육근이 육경을 만나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을
육식이라 하고, 이렇게 마음의 작용을 분류하는 것을 심법(心法)이라 한다.
이렇게 해서 모든 존재, 즉 우리 몸의 구조가 관계하는 영역이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이라는
18가지 범주(十八界)로 나누어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식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와 같이 인식작용을 일으키는
육근(六根) ‧ 육경(六境) ‧ 육식(六識)을 합한 것이 18가지 범주,
― 즉, 18계(十八界)이다.
이렇게 해서 알게 된 18계(十八界)가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일체법, 일체만유(세상만물)를 다 포함한 분류법이다.
그리고 육근과 육경을 합친 것을 12처(處)라고 한다.
즉, 12처란 주로 물질을 중심으로 한 분류이므로 색법(色法)이라 한다.
이와 같이 12처가 주로 물질적인 색법(色法)의 분류인데 비해,
18계는 여기에 심법(心法)을 추가해
색(色)과 심(心) 양면을 다 포함하는 일체만유의 분류법이다.
우리 삶 전체가 바로 18계이다. 우리 우주 전체가 바로 18계이다.
좀 더 자세하게는, 눈⋅귀⋅코⋅혀⋅몸뚱이(피부)⋅마음의 6종 감각기관,
즉 육근과 그 대상인 물질(色)⋅소리(聲)⋅냄새(香)⋅맛(味)⋅촉감(觸)⋅사물
혹은 현상(法)의 6경, 그리고 이 6근⋅6경을 연(緣)으로 해서
생기는 6가지 마음의 활동, 즉 6식을 합한 것이 18계이다.
그리고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이라는
육체의 다섯 부분을 5근(根)이라 하는데,
이 5근에 의지해 활동하는 심식(心識), 즉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을
전5식(前五識)이라 한다. 나머지 의식을 제6식이라 한다.
이 전5식은 매우 단순하고 현재적이어서
마치 거울에 비치는 그대로 인식하는 수준이다.
즉, 전5식은 분별하는 인식은 못한다.
반드시 제6식인 의식의 도움을 받아야 분별하는 인식을 하게 된다.
예컨대, 눈이 뭣(비행기)을 본다(여기까지가 안식이다),
아! ‘비행기다’ 하는 것은 제6식인 의식이 한다.
따라서 눈이 (날아가는)비행기를 보고 있다는 말은
안식이 의식의 도움을 받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6식인 의식은 전5식과는 관계없이
스스로 혼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다.
인간의 의식 활동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나 사상(思想)이라든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일어나는 여러 사고(思考), 기억(記憶),
추리(推理), 예상(豫想), 상상(想像), 공상(空想) 따위의
복잡하고 다양한 의식이 있다.
이것을 제6식인 의식이 하는 것이다.
즉, 제6식인 의식(意識)은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생각하며, 미래를 예측하고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이다.
눈, 귀, 코, 혀, 몸 등 5근을 통해
외부의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 등을 인식할 때,
제6식인 의식은 선과 악을 결정하며, 취사선택을 결정하고,
모든 생각을 결정해 정신작용을 나타내고,
몸의 행동도 결정한다.
제6식인 ‘의식’은 생각이 깊고 넓으며 모든 것을 반연해 생각한다.
말하자면 대뇌의 작용은 거의 제6식인 의식이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와인을 음미하는데, 맛과 향은 입과 코가 맡는다.
즉 설식과 비식에 의해 와인의 맛과 향을 맡지만
이게 와인이구나 하고 알아챈다든지, 맛이 좋다 나쁘다든지,
이 와인은 어디 산이라고 알아채는 것은
의식(제6식)이 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제6식인 의식은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과는
다른 좀 높은 차원의 인식이어서 우리 대뇌의 언어활동은
대강 제6식인 의식(mano-vijnana)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지하고 사고하는 정신작용 대부분이 제6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가 쓰는 ‘의식(意識)’이라는 단어가 바로 불교용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제6식인 의식이 전5식을
총괄하고, 분별 시비하는 마음이어서 요별식(了別識)이라고도 한다.
즉, 전5식에 의해 인식이 일어나더라도
제6식인 의식에 의해서 이것이 뭐다, 저것이 뭐다,
좋다거나 싫다거나, 혹은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분별이 생긴다.
그래서 요별식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분별과 인식의 바탕, 그 뿌리가 되는 것이 육근(六根)이다.
육근이 없으면 인간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인간 = 육근’인 것이다.
그런데 불교에는 육근호용(六根互用)이란 말이 있다.
육근호용이란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을
서로 바꾸어가며 쓴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귀는 듣는 것인데 귀로 보고,
또 눈은 보는 것인데 눈으로 듣는다는 말이다.
귀로써 보고 눈으로 듣는, 육근을 서로 바꾸어 쓴다는 말은
본래 불교의 독특한 말이다.
보통의 상식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법문일 따름이지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하고 의심을 품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중생의 번뇌 망상으로 육근이 서로 막혀 있기 때문에
그런 경계(호용하는 경계)에 도달할 수 없을 뿐이지,
실제로 부사의(不思義)한 해탈 경계를 성취하면
무애자재(無碍自在)한 그런 경계가 나타나
육근이 서로 통해 바꾸어 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육근호용이다.
사람은 누구나 수행만 하면 육근호용이 돼,
모든 것에 무애자재한 경계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오장육부도 다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병이 들었을 때에는
그 아픈 데가 어디고 빛깔이 어떤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견안문(耳見眼聞)이라고 해서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말로서,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지만 업식(業識)으로 막혀 있을 뿐,
실제로 해탈 경계인 우리의 본래마음에는 그런 무애자재함이 있다고 한다.
수행을 해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육근호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사천(四川)에 사는 열한 살 된 어린이가
모든 것을 귀로 본다는 일화가 보도됐다.
눈을 아무리 가려놓아도 무엇이든지 다 보며,
또 아무리 캄캄하고 어두운 곳에서도 물체를 본다고 한다.
결국 이 아이는 귀로써 모든 것을 본다는 말이다.
중국의 학자들이 조사해 본 결과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그래서 전세계 언론에서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에도 그러한 사실을 소개한 글이 있다.
다음은 경봉(鏡峰, 1892∼1982) 스님의 법문이다.
경봉 스님은 통도사 조실 스님으로
오래 동안 통도사 사부대중을 지도하신 큰스님이시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것이 별 다른 게 아니라.
사람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눈⋅귀⋅코⋅혀⋅몸⋅생각을 가리켜서 육근(六根)이라고 하는 건데,
알고 보면 이 여섯 가지 감각이 사람을 망치는 도둑놈들인 거라.
그래서 부처님이 이 여섯 가지 도둑놈들에게 끌려 다니지 말고
제대로 잘 단속하라고 이르신 게야.
눈은 온갖 것을 다 본다.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보면 자기의 물건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심이 생기니,
눈을 ‘눈 도둑놈’이라고 한다.
귀(耳)는 사람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 온갖 소리를 다 들으려고 한다.
코는 온갖 좋은 향기를 다 맡으려 한다.
혀로는 온갖 것을 다 맛보려 한다.
몸 도둑놈은 좋은 촉감과 좋은 옷을 다 입으려 한다.
생각 도둑은 시시각각 온갖 것을 다 재고 분별한다.
이 도둑놈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면
그 사람은 신세를 망치게 되는 기라.
그러니 여러분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몸의 여섯 도둑놈들을 잘 다스려야 하는 기라.
내 말을 알아듣겠는가?
그런데, 이것들을 모두 도둑이라고 하지만
잘 교화(敎化)시키면 변해서
눈 도둑은 일월광명(日月光明) 세존(世尊)이 될 수도 있고,
귀 도둑은 성문여래(聲聞如來) 부처님이 될 수도 있고,
코 도둑은 향적여래(香積如來) 부처님이 될 수도 있고,
입 도둑은 법희여래(法喜如來) 부처님이 될 수도 있고,
몸 도둑은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이 될 수도 있고,
생각 도둑은 부동광여래(不動光如來)가 될 수도 있다.
이 여섯 도둑이 변해서 여섯 부처님이 되는 것이지. 다른 게 아니다.
이렇게 부처님이 되면 그 사람이 완벽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겠는가?“
6근이란
① 안근(眼根:시각기관과 시각능력),
② 이근(耳根:청각기관과 청각능력),
③ 비근(鼻根:후각기관과 후각능력),
④ 설근(舌根:미각기관과 미각능력),
⑤ 신근(身根:촉각기관과 촉각능력),
⑥ 의근(意根:사유기관과 사유능력) 등을 가리키는데,
이 6근으로 인해 저질러진 죄장(罪障)을
뉘우치는 것을 육근참회(六根懺悔)라고 하며,
그렇게 참회하고 6근을 끊어
깨끗해지는 것을 육근청정(六根淸淨)이라고 한다.
육근(六根)은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이며,
여섯 가지 몸 부위로서, 사람의 몸이 가지고 있는 여섯의 기본기능을 의미한다.
이 육근에 의해 사회적인 악, 개인적인 악 등
온갖 몹쓸 짓이 다 일어나므로 육근을 청정하게 하란 말이다.
육근을 통해 앎이 일어나는 것이 식(識)이다.
• 안(眼-눈) ― 사람을 보든지 사물을 보든지, 좋은 것만 골라서 보고,
오염되고 나쁜 것은 보지 말라는 뜻이다.
미운 사람도 예쁘게 보고 더렵혀진 것도 새것과 같이 볼 것이며,
사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라는 뜻이다.
• 이(耳-귀) ― 악하고 불순한 이야기는 듣지 말고
선하고 좋은 말만 골라서 들으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모두 악하고 독한 소리는 듣기 싫어한다.
남을 욕하고 비판만 하는 소리도 듣기 싫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옛말과 같이 불필요한 이야기는
나에게 백 해 무익이다.
그래서 듣기 싫은 이야기는 빨리 잊어버리고
좋은 말은 오랫동안 기억해 두라는 뜻이다.
• 비(鼻-코) ― 코를 깨끗이 하라는 것이 아니고
냄새를 잘 맡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향기보다 쿠린내 나는 악취가 더 많이 깔려있다.
되도록 나쁜 냄새(나쁜 일)는 피하고, 좋은 냄새(좋은 일)만 맡으라는 말이다.
• 설(舌-혀) ― 맛 좋은 것만 찾지 말고, 몸에 좋은 것을 찾으라는 말이다.
그리고 나쁜 말을 하지 말고, 좋은 말만 가려서 하라는 말이다.
혀를 잘못 놀려 패가망신하는 수도 있고,
말 잘 해줘서 용기를 불러일으켜 일어서게 해 줄 수도 있다.
그러니 혀끝을 조심하라는 말이다.
• 심(心-마음)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다.
모든 것이 마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인간의 심성엔 욕심, 야심, 질투, 시샘, 성냄, 어리석음 등 온갖 나쁜 것이 많다.
따라서 보시, 봉사, 자비, 은혜, 사랑 등 좋은 심성을 길러
남을 배려하는 풍조가 만연하면 이 사회가 바로 진여의 세계,
열반적정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 신(身-몸뚱이) ― 선ㆍ악은 마음으로 짓지만, 몸으로 표현하게 된다.
(몸뚱이로 온갖 못된 짓을 다한다. 살인, 강간…)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은 지옥이다.
각자 자기 몸을 잘 관리해서 악행의 근본이 되는 몸을 청정하게 하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육근청정이라.
육근에서 일어나는 모든 욕념(欲念)을 깨끗이 끊어버리고
무애(無礙)의 경지에 도달하라는 것이 수행이다.
그래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열반적정을 구현할 수 있다.
그것이 불자가 가야 할 길이다. 그러려고 불교를 믿는다.
그래서 <법화경> ‘법사공덕품’에서는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공덕에 대해 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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