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과 수행

<동체대비(同體大悲)>

수선님 2025. 4. 13. 12:43

<동체대비(同體大悲)>

‘동체대비(同體大悲)’는 대자대비(大慈大悲)와 더불어 불교교리 핵심사상의 하나이다.

동체대비와 대자대비의 가르침을 뒷받침하는 경전 전거(典據)로 들 수 있는 게 있다.

예컨대, <관보현행법경(觀普賢行法經)>에는 “모든 사람을 부처님이라 여기고, 모든 중생을 부모라 얘기하라”는 구절이 있다.

또 <법망경(梵網經)>에서는 “모든 남자는 나의 아버지이며, 모든 여자는 나의 어머니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즉, 핏줄과 가족의 범위를 뭇 중생으로까지 무한대로 확대시켜 공대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체대비(同體大悲)에서 ‘동체(同體)’는 한 몸 또는 같은 몸,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말이다. 부처님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마치 자기 몸이 겪는 것처럼 똑같이 느낀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중생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고통과 슬픔을 자기 몸이 겪는 고(苦)와 비(悲)로 받아들여 대신할 정도로 연민의 정을 가지셨다는 의미이다.

나와 남 사이에 추호의 타산이 없이 사랑과 연민을 한껏 베푼다는 뜻이다.

특히 타인에 대한 연민을 자기 자신과 동일하게 쏟을 때, 이것을 ‘동체대비’라 한다.

이 동체대비는 부처님의 정각(正覺)에서 얻어진 무한한 이타심(利他心)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범부와 성인의 차이는 인간성 성숙의 높고 낮음이다. 성숙된 인간성의 사람일수록 대자(大慈)의 마음을 더 많이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청화(淸華, 1924~2003) 큰 스님의 말씀을 새겨들어보자.

「우리가 연기법(緣起法)을 안다고 생각할 때는 바로 부처를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연기법을 알면 나를 아는 것이고 연기법을 모르면 부처라는 나를 모른다.'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럴 정도로 연기법은 불교의 대강령(大綱領)입니다. 실은 연기법이라 하는 우주의 대법(大法) 위에 불교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연기법이 바로 우주의 대법입니다. 따라서 우주가 바로 인연(因緣)ㆍ연기(緣起)이므로 다른 종교나 다른 철학도 표현은 좀 달리한다 하더라도 모두가 연기법에 포섭되고 특히 불교는 연기법으로 체계가 돼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동체대비(同體大悲)라는 말을 많이 쓰지 않습니까. 불교에서 '동체대비'라는 것은 남하고 나하고 같은 몸이기 때문에 참다운 사랑과 참다운 자비가 나온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불ㆍ보살(佛菩薩)은 일체 중생을 동일체로 관찰하기 때문에 대자비심(大慈悲心)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째서 다른 사람과 나와 같은 것인가?

분명히 현상적인 세계에서는 뿔뿔이 있는 것인데 왜 한 몸, 한 마음일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내린 것이 이른바 바로 연기법(緣起法)입니다. …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깨달은 분이 도인(道人)이고, 진여불성을 깨닫지 못하면 제아무리 무엇을 분별지로 많이 안다 하더라도 도인이 아닙니다.

생명 자체를 깨달아 체증(體證)해야 도인입니다. 따라서 그 자리를 성취한 분들은 나와 남을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나한테 들어 있는 것이나 너한테 들어 있는 것이나 조금도 차이가 없는 진여불성이 들어 있으므로 어떻게 남을 무시하고 다르게 구분 지어서 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동체대비라는 말은 그런 자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따라서 참다운 도덕(道德)이라는 것도, 우리가 이제 자기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해야 참다운 도덕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

쌍둥이 형제 중 한 사람이 아프면 나머지 다른 한 사람도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형제가 아닌 남녀 간의 연인 사이에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조용필이 부른 노래 중에 그가 있음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음에 그가 있으며, 내가 없음에 그가 없고, 그가 없음에 내가 없다는 식의 가사조차 있다. 그만큼 연기법이 동체대비심의 밑바탕이 돼있는 것이다.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으로 나 혼자의 행복이 아니라, 소외되고 그늘진 곳의 이웃과 더불어 함께하는 상생행복(相生幸福)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자신과 인연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는 쉽지 않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어려우면 도와줄 수 있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도와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을 도우는 것이 부처님의 자비정신이자 마음이요, 곧 동체대비의 정신이다.

우리의 본래면목은 선(善)과 사랑 그 자체이다. 그래서 본래심대로 사는 것만이 불교의 목표요 열반의 경계인 것이다.

그러나 자아(ego)는 엄밀한 의미에 본래심이 아닌 중생심이기 때문에, 오히려 성스러운 본래심을 방해한다. 따라서 자아(ego)를 초월한 동체대비의 경지에 이를 때만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의 기쁨이나 행복에도 질투심 없이 진심으로 같이 즐거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자대비(大慈大悲)는 부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자비)를 뜻한다. 모든 중생에 대한 자애로움이 슬플 정도로 광대무변하다는 뜻으로서 무차별적 자애와 큰 사랑의 의미가 들어있다.

‘대비(大悲)’는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부처님을 상징하는 말로서 부처님의 가없는 자비를 형용할 때 쓰인다. 남의 고통마저도 공감하는 무한한 사랑을 말한다. 나와 남이 따로 없다는 자타불이(自他不二)사상, 남의 생명을 내 생명과 동일하게 보는 경지,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남의 생명도 소중하고, 나와 상관없는 남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같은 맥락의 말이다.

그런데 이기적 욕망을 앞세우고 살아가는 범부의 심리는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에 대비심을 상실하고 끝없는 투쟁심리를 가지고 욕구충족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사람의 인격은 수양과 비례한다. 수양되지 못한 인격은 결국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공덕을 성취하지 못한다. 불만의 응어리를 삭이지 못하고 원증(怨憎)의 감정을 앞세워 조그마한 잘못도 용서하지 못하고 사정없이 매도해버리는 폭발성 감정 풀이가 우리사회에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을 지도해야 할 정치인들 세계일수로 더 심하다.

인간심리에 흐르는 정신기류가 불안해지고, 그것에 감전된 사회현상이 비상식적으로 나타날 때, 가치관이 전도되고 규범이 서지 않아 사회가 항상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할 때 우리는 곧잘 범하고 응징하는 죄와 벌의 악순환 속에서 자타 공영을 외면하고 쓸데없는 분쟁을 야기 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방일가(十方一家) 사생일신(四生一身)의 진리를 확실하게 깨달은 사람은 이 세상 만물과 자기 몸이 하나임을 이해한다. 불ㆍ보살의 경지에 이르면 시방이 한 집안[十方一家]이요, 사생이 한 몸[四生一身]임을 자각하게 된다.

※시방일가(十方一家)---사방 모두가 일가친척이란 말이다. 모두가 한 가족이란 말임.

※사생일신(四生一身)---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이 나와 한 몸이란 뜻임. 즉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이 모두 나와 한 몸이란 말임.

그리하여 모든 중생과 자신이 한 가족, 더 나아가서는 한 몸이라고 하는 이른바, 동체대비의 대자비심으로 살아가게 된다.

시방세계를 내 집 삼고, 육도사생을 내 몸같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말인데, 우주를 내 집으로 삼고 만 생령을 내 몸 삼아서 일체중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실존적 존재였던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라만상 중에 그 자체로 고유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소멸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는 사실을 증득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자기가 영원한 자신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불변의 아트만(Atmam)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쳤던 것이다.

그래서 해탈하지 못하는 한, 윤회라는 쳇바퀴로 천계(天界)에서 축생에 이르는 6도 사이를 끝없이 돌고 도는 과정에서 내 부모가 전생에선 나를 괴롭히고 못살 게 군 권력자였을 수도 있고, 내가 모시고 있는 부모는 전생에선 나의 원수였을 수도 있다. 또 살다가 인연가합(因緣假合)이 끝나면 그가 나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내가 그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가르침을 편 것이다.

인간의 현실이 생존경쟁의 마당으로만 해석될 때, 살벌해지는 투쟁심리는 더욱 앞설 것이다.

그러나 문화가 있고 예술이 있고 종교가 있는 사회는,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새로운 정신운동에 의해 극복하고 계도해 간다.

특히 인간이 종교적 심성을 가질 때, 삶의 본질을 향해 기울이는 심성이 높아지므로 사회의 분위기를 그만큼 순하게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내가 나 아닌 남의 좋은 것을 사랑하고 좋지 못한 것을 이해로 받아들여 잘못된 것을 용서해주는 미덕을 함양해 삶의 의미를 높여가는 질적 창조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가치인 바, 이것을 위해 우리는 부단히 자기 자신을 성찰해가야 하겠다.

그리고 만물과 내가 하나임을 알게 될 때에 만물을 대할 때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 같은 대자대비심(大慈大悲心)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일체중생의 괴로움이 곧 자기 자신의 괴로움이 돼, 그 괴로움마저 함께 나누게 되는 것이 불ㆍ보살(佛菩薩)이다.

오늘날의 인류사회를 지구촌의 글로벌시대라 한다. 전 세계가 일일 생활권에 든 이상, 옆집에 누가 사는지는 몰라도 인터넷으로 세계 방방곡곡의 사건과 사고가 시시각각으로 전달되는 이상, 이미 우리는 하나의 사회 속에 있다. 따라서 중생이 아프니 보살이 아프듯 이미 하나의 몸, 즉 동체대비의 마음을 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세계일화(世界一花)’라 하지 않는가. 세계일화란 세계는 한 송이 꽃이란 말로서 <화엄경>에 나오는 말이다. ‘세계일화’란 모든 세계는 한 송이 꽃이라는 것인데, 천지가 모두 한 뿌리이고[만유동근(萬有同根)], 이러한 생각이 바로 부처님 대자대비심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 꽃으로 피어나되, 좀스럽게 내 꽃 네 꽃 가리지 말고, 모두 하나가 되는 그런 큰 꽃 한 송이를 피워내라는 말이다. 다 같이 한 송이 꽃인데, 내 잘났느니 네 잘났느니 우열을 따지고 비교하지 말라는 말이다.

해외 포교에 일생을 바쳤던 숭산(崇山行願, 1927~2004) 스님은 항상 '세계일화(世界一花)'를 설법했다고 한다. 모두가 자기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을 때, 세계가 한 송이 꽃이 된다고 봤다. 그리하여 숭산 스님은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땅에 의지해 있고, 땅은 하늘을 의지해 있고, 하늘은 대우주를 의지해 있고, 대우주는 도법을 의지해 있고, 도는 마음을 의지해 있다. 그러니 도교도 마음이요, 유교도 마음이요, 불교도 마음이다. 도교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쓰는 것이요, 유교는 마음을 격식에 따라 잘 지키는 것이며, 불교는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

'세계가 한 송이 꽃'이라는 의미의 세계일화는 2600여 년 전 부처님께서 인도 영축산에서 연꽃 한 송이를 들어보이심으로써 우주의 실상을 설파한데서 유래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만공(滿空, 1871~1946) 선사가 국화인 무궁화 꽃잎에 붓으로 ‘세계일화(世界一花)’를 쓰셨다.

그리고 숭산 스님이 전 세계 국가와 사람들을 화합과 조화의 정신으로 뭉치게 할 수 있는 장의 일환으로 ‘세계일화대회’를 창설한 바 있다.

이분들의 뜻은 모두 평등, 조화, 평화에 대한 표현이었다. 이는 나와 너, 태양과 달, 하늘과 땅, 공기와 물 등이 근본적으로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그 뿌리가 같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오늘날 지구촌을 잘 가꾸자고 해서 가이아(Gaia)이론이 주장되기도 했다. 가이아란 지구와 지구에 사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범지구적 실체로서,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것이다. 즉, 지구가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며 조화롭게 조절되는 하나의 유기체임을 강조한다.

가이아이론은 지구표면에서 진행되는 현상을 지구전체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즉 대기권, 수권(水圈), 암석권, 생물권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으로서 설명하려는 전일적(全一的, holistic) 접근방법을 도입해 현대 지구시스템과학(Earth system science)의 출현에 큰 기여를 했다.

가이아(Gaia)의 가설은 지구상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며, 물리적, 화학적 환경을 생명현상에 적합한 상태로 유지하는 최적조건을 유지하려고 언제나 자기제어기능을 갖추고 자기 스스로 조정하고 스스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이아이론은 한편으로 생명이 없는 무생물에게까지 생명의 존엄성을 부여하게 된다.

가이아이론은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물리⋅화학적 환경을 유지하는데 전 지구의 생물권이 관여하고 있다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인류는 이제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구의 다른 생물권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희생시킨 암적인 존재였다. 그리하여 지구재앙을 스스로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지구재앙을 극복하는 길은 전 지구를 아우르는 동체대비심을 발휘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此有故彼有 此無故彼無]”라고 설파하셨다. 가이아이론이나 세계일화, 지구촌 정신도 이 연기법과도 일맥상통해 있다.

대자대비(大慈大悲), 자리이타(自利利他), 자타불이(自他不二), 불인지심(不忍之心), 원융무애(圓融无涯) 정신도 같은 맥락이고, 이 모든 원리는 부처님이 증득하신 진리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이덕호(아미산)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들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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