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따 니빠따(Sutta-nipata, 경집/經集)>
<숫따 니빠따(Sutta-nipata, 經集)>는 빠알리어 <5부 니까야> 가운데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aya, 小部)에 속해 있으며, 빠알리 삼장 중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경이므로 가장 오래된 경이라 하겠다. 따라서 초기경전을 대표하는 경의 하나이다.
이는 초기경전이 ‘구전(口傳)’에 의해 전승됐음을 짐작케 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형식의 경전이다. 그래서 이 경전을 읽으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룬 직후의 가르침을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숫따 니빠따(Sutta-nipata)’는 sutta와 nipata의 합성어로, 숫따는 ‘경’을 뜻하며 nipata는 이음, 연결, 장, 절, 집성의 뜻을 가진다. 이를 조합하면, <숫따 니빠따>는 ‘경의 모음’이라 할 수 있다. ‘경의 모음’을 한역한 것이 ‘경집(經集)’이다.
아마도 이 경의 각각이 독립된 경전으로 전해지다가 어느 땐가 하나의 경으로 합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여러 가지 부처님 말씀을 모아놓은 경전인데, 갖가지 설화, 대화, 짧은 서정시, 격언, 속요(俗謠) 등을 운문(게송)으로 엮은 것이기에 마치 시문집(詩文集)과 같은 경이다.
<숫따 니빠따>는 다섯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을 단위(개별) 경전으로 구분하면 72경이 되며, 이것을 다시 게송으로 세분하면 1,149개의 게송과 산문으로 이뤄져있으며, 이 경전은 불교문학의 백미라 하겠다.
――빠알리어 <5부 니까야>의 내용――
1. 디가 니까야(Digha Nikaya ― 장부 ― 길이가 긴 경을 모은 것.
2.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aya ― 중부 ― 중간 정도 길이의 경을 모은 것.
3. 상윳따 니까야(Samyutta Nikaya ― 상응부 ― 주제가 분명한 경들을 주제별로 모은 것. 잡아함(雜阿含)이라고도 한다.
4.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aya ― 증지부아함(增支部) ―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 중 주제의 법수가 분명한 말씀을 숫자별로 모아 결집한 경으로 하나부터 열하나까지 모두 11가지 모음으로 분류했다.
5.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aya ― 소부(小部) ― 위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 나머지 짧은 경들을 모은 것으로, <쿳다까 니까야> 안에는 법구경(法句經), 본생경(本生經), 여시어경(如是於經), 닛데사(義釋, Niddesa), 숫따니빠따(경집/經集), 장로게(長老偈), 장로니게(長老尼偈) 등 15개의 경문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숫따니빠타>이다.
――숫따니빠따(경집/經集)는 다섯 장으로 구성돼있다――
①뱀의 비유(蛇品), ②작은 장(小品), ③큰 장(大品), ④여덟 편의 시(義品),
⑤피안에 이르는 길(彼岸道品).
➀ 뱀의 비유(蛇品)는 열두 개의 경으로 돼있다.
제1경에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라는 구절이 되풀이돼있어 <사경(蛇經)>이라고 부른다.
제2경은 소치는 다니야에 관한 글로 16편의 시구로 된 경이다.
제3경에는 독신 수행자를 위해 모든 집착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는 유명한 구절의 반복이 있다.
➁ 작은 장(小品)은 비교적 짧은 열네 개의 경으로 돼있다.
제11경은 8편의 시로 돼있고, 부처님이 아들인 라훌라를 위해 말씀하신 부분이다.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함께 있는 승단의 선배들을 가볍게 보거나 교만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타이르는가 하면, 다시는 세속에 돌아가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➂ 큰 장(大品)은 상당히 긴 열두 개의 경으로 돼있다.
제1 <출가경>, 제2 <정진경>, 제11 <나라카경> 등 세 경은 부처님의 전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자료다.
제9 <바셋타경>에서는 출신 성분에 의해 바라문[제1계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가 하는 행위에 의해 바라문도 될 수 있고 천민도 될 수 있다고, 사성(四姓)평등의 이치를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제12 <두 가지 관찰경>은 소박한 형식으로 모든 사물의 기원이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➃ 여덟 편의 시(義品)는 여덟 편의 시로 이루어진 경이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두 번 째의 <동굴경> 과 세 번 째의 <분노경> 등은 여덟 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일찍부터 16경으로 구성돼있었는데 한역 <의품경(義品經)>은 바로 이 경이다.
➄ 피안에 이르는 길(彼岸道品)은 앞의 경전들과는 달리 전체가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열여섯 바라문들이 한 사람씩 부처님께 물으면 대답해주는 문답식 16절과 서(序) 와 결(結)을 합해 18절로 돼있다.
빠알리어로 된 성전 중에는 수많은 숫타가 있는데, 하필 이 경만을 <경집(經集)>이라 부른 까닭은, 다른 경전에는 그 나름의 특정한 이름을 붙일 만한 것이 있었지만 이 경에는 그런 이름을 붙일 만한 것이 없어 ‘경집’이라 불리게 된 것 같다.
이 중에서 여덟 편의 시(義品)와 피안에 이르는 길(彼岸道品) 등 세 장은 처음에는 독립된 경전으로 유포됐던 가장 오래된 경이라고 본다.
이 경의 성립된 시기는 <법구경> 등과 같이 아소카왕(재위 BC 268∼BC 232) 이전에 성립한 것이 확실시 되는 희유한 경전이다. <숫따니빠따>는 부처님 탄생을 이야기한 문헌 중 최고(最古)의 것이다.
<숫따니빠따>는 다른 불교 저서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작품의 하나이며, 초기불교의 문화적⋅종교적 배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숫타니파타는 초기 불교경전이기 때문에 소박하고 단순했던 초기 불교 모습, 부처님의 말씀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숫타니파타는 번거로운 교리는 찾아볼 수 없다. 부처는 단순하고 소박한 형식으로 인간이 가야할 길을 펼쳐 보이고 있다. 따라서 부처에 대한 호칭도 '눈뜬 사람', 거룩하나 스승' 정도로 평범하게 표현돼있다.
이 속의 <닛데사(義釋, Niddesa)>는 <숫따니빠따>의 주석서이다. ‘닛데사’는 ‘의미의 해석’이란 뜻인데, <숫따니빠타> 제1장의 ‘외뿔소의 뿔’과 마지막 두 편인 제4장 여덟 편의 시(義品)와 제5장 피안에 이르는 길(彼岸道品)에 대한 어구(語句)의 주석서이다. 이 닛데사가 성립된 아소카왕 시대에는 아직도 경집(숫따니빠따) 전체가 정리되지 않았던 것 같다.
<숫따니빠따>는 빠알리어로 된 남전(南傳) 경장에 속한 경이다. 그러나 한역 장경 속에도 이 경의 제4품 의품(義品)에 해당되는 <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 2권이 번역 포함돼있다. 이는 쿠샨 왕조(1세기 후반~3세기 전반의 통일왕조) 시기에 서북 인도 출신인 지겸(支謙)이 중국으로 와서 오(吳)나라 초기(223~253)에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상당히 일찍 남전 경장의 일부가 북방에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숫따니빠따> 내용은 발전, 수정되기 전의 소박하고 단순한 초기불교가 그대로 설해져 있어서, 후기에 이루어진 경전처럼 현학적이고 번거로운 교리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부처님은 그와 같이 단순하고 소박하게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을, 즉 모순과 갈등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해탈의 저 세계[피안]에 이르는 길을 말씀하신 것이다. 진리란 간단명료한 것임을 우리는 이 경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을 읽는 독자들은 그 단순한 형식이 먼저 눈에 띌 것이다, 어떤 때는 다소 지루한 말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초기경전의 소박한 형태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구절마다 눈을 뜬 사람의 인간미가 배어 있는 점에 주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은 후기경전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가르침을 듣고자 찾아와 묻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은 알아듣기 쉬운 표현으로 피안에 이르는 길을 차근차근 말씀하신다. 그래서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석가모니와 초기불교를 이해하는 데에 아주 요긴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에 대한 호칭도 '눈뜬 사람', '눈이 있는 분', '거룩한 스승' 정도로 평범하게 표현돼 있다. 대승경전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싱겁게 여겨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초기경전의 단순 소박한 그 형태를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난해한 불교술어들은 아주 후기에 이루어진 것이고, 초기에는 아래 글처럼 풀어서 쓴 듯한 이런 알기 쉬운 표현을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칭찬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아무리 비난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오욕락을 떠나 모든 감각기관을 잘 다스리는 사람, 이런 사람을 진정한 성자라 한다.” <숫따니빠따>에 나오는 진정한 성자를 표현한 부처님 게송이다.
<숫타니빠따>는 무엇보다도 석가모니 부처를 역사적 인물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경이다. 물론 <아함경> 등에도 부처의 역사적 행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점이 많이 있으나 <아함경>보다 이 경이 먼저 이루어진 경이므로 부처님의 육성이 제일 먼저 더 생생하게 담겨 있는 경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미국 LA 원명사 주지 일아(一雅) 스님이 <숫따니빠따> 번역서를 펴냈다.
기존에 이 경전을 번역한 책이 여러 권 있지만, 비구니 스님의 섬세한 글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톨릭신학대 졸업이라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일아 스님은 석남사에서 법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운문사승가대학과 태국 위백이솜 위빠사나 명상수도원과 미얀마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수행한 이력을 갖고 있다. 또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LA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와 갈릴리 신학대 불교학 강사를 지낸 바 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따니빠따> 제1장 4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집착이나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은 세상의 유혹과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 풍요에 탐닉하지 않고, 사회적 지위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은 외부의 자극이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굽히지 않는 강한 마음을 상징한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꿋꿋하게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야한다는 뜻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다.
“퍼진 뱀의 독을 약초로 제고하듯이, 일어난 분노를 제거하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낡고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교제하는 사람에게는 애정이 생긴다. 애정을 따라서 괴로움이 생긴다. 애정에서 일어난 위험을 보고서,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떤 살아있는 존재들이건,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 남김없이, 길거나 크거나 중간이거나, 짧거나 조그맣거나 거대하거나,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사는 것이나 가까이 사는 것이나, 태어난 것이나 태어날 것이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행복하라.”
“길을 알고, 진리를 이해하고, 모든 집착의 제거로 번뇌의 버림을 확실하게 본다면, 그는 세상을 바르게 유행하리라.”
“방황하는 자가 아닌 명상하는 자가 돼야 한다. 그는 그릇된 행동을 삼가야 한다. 게을러서는 안 된다. 비구는 앉을 자리와 누울 자리가 있는, 소음이 없는 곳에서 지내야 한다.”
<숫따니빠따>의 가르침 하나하나는 언제나 교훈적이고,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바른 삶에 대한 가르침과 윤회에서 벗어남을 주제로 한 게송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감각적인 쾌락과 갈애, 집착을 벗어나 한적하고 고요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출가 비구들에게 탁발하며 숲에서 사는 수행자의 언행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으며, 일반인들에게 출가의 이익을 권하고 있다.
후반부로 가면 논객들과의 논쟁이 다수 나온다. 다른 교단의 수행자와 브라만 사상가들이 논객을 자처하면서 부처님과 논쟁을 벌인다. 이에 부처님은 세세한 가르침으로 그들을 교화시킨다.
<숫따니빠따>가 쓰인 것은 스리랑카에서 기원전 94년 경의 일이다. 빠알리어로 쓰인 초기 경전으로 영어 번역을 필두로 많은 국가에서 번역작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정 스님과 전재성 박사 등이 번역을 통해 이 경전을 소개했다.
일아 스님이 번역한 <숫따니빠따>는 총 5개의 장으로 구분돼 있다.
첫 장은 게송의 끝마디에 ‘뱀이 허물을 벗듯’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로 끝을 맺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제2장은 ‘작은 장’으로 정의로운 삶, 브라만에게 합당한 것, 정진, 올바른 유행의 길을 제시한 가르침을 담았다.
제3장 ‘큰 장’에서는 출가의 이익과 정진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또 삶을 화살에 비유하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삶을 어떻게 바르게 살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제4장 ‘여덟의 장’은 감각적 쾌락, 사악한 생각, 늙음에의 경, 청정한 것에 대한 게송 등으로 엮어져 있으며,
제5장 피안 가는 길의 장에서는 브라만 등 논객과의 대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면, 아지따가 ‘세상의 커다란 두려움이 무엇인가’ 묻자 부처님께서는 “집착과 괴로움”이라고 답을 한다. 이런 논쟁으로 볼 때 부처님이 깨달은 당시 많은 사상가들이 난립한 시대였으며, 40세 전후의 부처님에 대한 소문이 인도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도 추론할 수 있다. 경전의 배경을 알고 책을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일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숫따니빠따> 번역을 일역이나 영역에 의존했고, 전재성 박사가 유일하게 원전을 번역했는데, 인연담과 주석을 합쳐 방대한 분량이 됐다. 이에 빠알리 원전을 번역해 이번에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번역의 이유를 설명하고 “경전을 읽으면 마치 승원이 존재하기 전, 초창기 출가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숲에서 정진하고 탁발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는 청빈한 삶이 그려진다.”며 “이 가르침처럼 우리의 삶도 소박하고 순수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불사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들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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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숫따 니빠따(Sutta-nipata, 경집/經集)>|작성자 아미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남전경전 중에서 유명한 <숫따니빠타(Sutta-nipata, 경집/經集)>에 실려 있는 ‘무소의 뿔’ 편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숫따니빠타>는 불경 가운데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경으로 초기경전을 대표하는, ― 초기경전이 ‘구전(口傳)’에 의해 전승됐음을 짐작케 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형식의 경전이다.
그런데 이 글은 출가 수행자(出家修行者)를 대상으로 한 가르침임을 전제로 해서 읽어야 한다. 아니면 오해를 할 수 있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 무소의 뿔은 무소의 코 위에 우뚝 솟은 뿔로서 출가 수행자의 독각(獨覺)을 상징하고 있다.
수행을 위해 오락가락 하지 않고 꼿꼿하게 홀로 정진해 나가는 모습을 무소의 뿔로 형상화 한 것이다.
즉,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은 서릿발 같은 단호함을 의미한다 하겠다.
무소는 코뿔소의 다른 이름이다. 아프리카 코뿔소는 뿔이 두 개이지만, 인도 코뿔소로 뿔이 하나이다.
따라서 뿔이 하나인 인도 코뿔소를 염두에 두고 한 길로 가라는 뜻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한 가르침이다.
뿔이 하나인 코뿔소, 그리고 주로 혼자 사는 코뿔소, 또 강하고 우직해 보이는 코뿔소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가르침이다. 경전의 주요내용은 아래와 같다.
『 •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고, 살아 있는 그 어느 것도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만남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 사랑으로부터 근심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친구를 좋아한 나머지 마음이 거기 얽매이게 되면 본래의 뜻을 잃는다. 가까이 사귀면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본래의 뜻’이란 자기가 목적한 바를 뜻한다.
•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집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숲속에서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었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 이 구절만은 혼자서 가라가 아니고 함께 가라고 돼 있다. 원래 붓다는 쓸데없는 인연을 만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소의 뿔에 비유해서 이 가르침을 편 것이다. 그래서 나쁜 벗들을 만났을 때는, 수행자는 차라리 혼자서 가는 것이 낫다는 뜻이 들어있다. 이러저러한 잘못된 벗들과는 함께 가지 마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만남이 있다. 그리고 그 인연이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도반(道伴)이라면 그 인연을 존중해서 함께 가라고 한 것이다. 훌륭한 도반은 서로 격려를 해서 오히려 수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로 마음 닦는 이와의 사귐이라면 귀히 여기라는 가르침이다.
•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이빨이 억세며 뭇 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핍하고 외딴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를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탐욕과 혐오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속박을 끊고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보기 드물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따니빠타>에서 ‘무소의 뿔’ 편은 전체 41문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가 게송으로 엮어져 있다. 그리고 매 단락마다 문장 뒤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 마무리하면서 ‘무소뿔’에 비유한 것은 무소의 뿔이 하나인 것처럼 스스로 홀로 진리를 추구하라, 무소의 뿔처럼 단단하고 곧게 가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세상 모든 일에 집착을 버리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라는 가르침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집착을 끊으라는 말이 이어진다.
일단 출가한 수행자라면 자녀, 친구, 아내 등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에 얽매이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길을 흔들림 없이 가라는 이야기이다.
인연에 얽매이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그래서 사람들과의 인연에 집착하게 되면, 자신이 원래 가려고 했던 길에 장애가 생기게 된다.
수행자가 출가해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수행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런 점 수행자의 외로운 길이 눈에 선한 듯 실감이 나는 글이다.
출가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혼자서 왔다 혼자서 가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고 해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혼자일 수밖에 없다.
분주하게 산다고 해도 외로움을 떨칠 수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고 해도 갈 때는 끝내 혼자일 수밖에 없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부처의 말씀은 인간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그 혼자인 자신이 다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 그러므로 그런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고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 출가자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이상,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는 부처님 최후의 가르침인 이 말과도 같은 맥락의 말이라 볼 수 있다.
죽을 때가 돼서야 세상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다.
더 늦기 전에 이것저것 반연에 얽매이지 말고 한길로 정진하라는 말이다.
불교는 본질적으로 체제 이탈적이며 반제도적인 측면이 있다.
싯다르타의 출가 행위 자체가 제도로부터의 이탈이었다.
그리하여 싯다르타의 이탈 행위는 출가 이후에도 계속됐다.
생로병사의 고(苦)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그는 배움을 얻기 위해 당시 위대한 스승으로 알려진 알라라 칼라마라라와 웃다카 라마풋다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당시 인도를 대표하는 선각자이자 교단의 지도자였다. 붓다는 이들 문하에 들어갔고, 두 사람은 붓다의 사람됨을 높이 사 제자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붓다는 이 두 사람에게서 어느 정도 배웠다고 생각하자 ‘남아 있어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홀로 구도를 계속했다.
어느 스승에게서도, 어떤 수행으로도 만족할 만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보리수 아래에서 목숨 건 수행을 새로이 시작했다.
비단 부처님만이 아니다. 지나간 역사에서 위대한 영웅적 수행자들은 모두 안락과 정주를 버리고 끊임없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외로운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임제(臨濟義玄, ?~867) 선사가 ‘살불살조(殺佛殺祖)’ 하라는 언명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자들에겐 나침반과도 같은 지침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고 한 것은 어떤 인연에도 구애 받지 말고 자유자재하게 외로움을 극복하고 한 길로 정진하라는 말이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들의 글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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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작성자 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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