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니파타

숫타니파타의 구성과 내용

수선님 2023. 7. 30. 12:57

1. 『숫타니파타』의 구성

『숫타니파타』는 5장 72묶음 1,149편의 시로 짜여져 있다. 그러나 각 장을 이루고 있는 72개의 묶음들을 보면 내용의 일관성이 전혀 없고 묻는 상대에 따라, 또는 그때그때의 상황과 사정에 알맞게 즉흥적으로 읊어진 시들이 그 대부분이다. 그래서 다른 여타의 불경들처럼 그 내용에 알맞는 어떤 특정한 제목을 붙이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말(Sutta)의 모음(Nipata)'이라고 일컫게 된 것이다.

이경은「사품」,「소품」,「대품」,「의품」,「피안도품」의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제4장인 「의품」만이 지겸에 의해 한역되어 「의족경」(2권)으로 남아 있다.

제1장「사품」에는 12개의 경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제1경에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버리는 것처럼』이라는 구절이 되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경(蛇經)」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또 제 3경에는 『코뿔소처럼 혼자서 걸어가라』고 설하는 유명한 시구가 들어 있기도 하다.

제2장 「소품」에는 비교적 짧은 14개의 경으로 되어 있다. 제11경은 석존이 아들인 라후라를 위해 설한 것인데, 부처의 아들이라 해서 함께 있는 현자들을 가볍게 보거나 교만한 마음을 지녀서는 안 된다고 간곡하게 타이르고 있다.

제3장은 「대품」은 약간 긴 12개의 경으로 수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출가경」(제1경) 「정근경」(제2경), 그리고 「날라까경」(제11경)의 3경은 석존의 전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자료이고, 「바세타경」(제9경)에서는 사성평등 이치를 설하고, 「두가지 고찰경(二種隨觀經)」(제12경)에는 소박한 연기이 이치가 설하여져 있다.

제4장 「의품」은 「8게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8편의 게로 이루어진 경전이 많다. 옛부터 16개의 경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에 해당하는 한역의「의족경」도 역시 16경으로 되어 있다.

제5장「피안도품」은 앞의 품들과는 달리 전체가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16명의 바라문의 학생들이 석존에게 질문을 하면 석존이 대답해 주는 문답 16절과 맨 앞의 서게(序偈), 그리고 마지막 결어의 2절을 합해 도합 18절로 구성되어 있다.

숫타니파타는 한 저작자의 저술이 아니고, 개인보다는 집단적으로 집성된 경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경전들은 다섯 품으로 분류되며 첫 네품은 함께 집성되었지만 서로 다른 통일성이 없는 경전들로 이루어져있다 반면 다섯 번째의 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각본에 따라 경전이 집성되었다. 첫 세 품의 38경 가운데 7개 이상의 경이 다른 경전에서 발견되고, 많은 분리된 시들이 다른 경전적인 텍스트 속에서 발견된다. 네 번 째의 품은 쌍윳따니까야, 바니야, 우다나에서 그 이름이 언급되고 있으며, 다섯 번째의 품은 쌍윳따니까야, 앙굿따라니까야에서 그 이름이 인용되고 있다.

2. 『숫타니파타』의 내용

『숫타니파타』의 세부적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 1. 처음의 장(Uragavagga)

12묶음 220편의 시로 짜여져 있다.

1.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 17편의 시로 되어 있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수행자는 이 헛된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이다.

2. 소치는 사람 - 16편의 시로 되어 있다.

소유지향적인 삶을 사는 소치는 다니야와 존재 지향적인 삶을 사는 석존의 삶을 비교하므로 우리가 진정 추구하여야 할 삶은 무엇인가에 서술한다.

3.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 41편의 시로 되어 있다.

수행자는 가족적인 집착의 삶과 불필요한 인간관계로부터 멀리 떠나라는 가르침이다.

4. 밭가는 사람 - 7편의 시로 되어 있다.

'진정한 농부는 누구인가?', 이 문제를 놓고 바라드바쟈와 석존 사이에 오고간 대화이다.

바라바쟈는 결국 석존께서 진정한 농부다라고 인정, 석존께 귀의한다.

5. 금속세공인, 춘다 - 7편의 시로 되어 있다.

네 종류의 수행자에 대하여 즉 '도의 승리자', '도를 말하는 사람' '도에 의해 사는 사람' '도를 더럽히는 자' 에 대해 금속세공자인 춘다가 석존께 질문하였는데 그에 대해 석존의 답변과 우리가 추구하여야 할 삶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6. 파멸 - 25편의 시로 되어 있다.

열한가지의 파멸에 대하여 신과 석존 사이에 오고간 대화이다.

이와 같은 파멸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주의하여야할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7. 비천한 사람 - 27편의 시로 되어 있다.

사람을 천하게 만드는 조건에 대하여 브라만 바라드바쟈와 석존 사이에 오고간 대화이다.

이러한 조건을 통해 우리가 지양해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8. 자비에 대하여 - 10편의 시로 되어 있다.

자비로운 마음과 좋은 생각을 갖게 되면 축복은 도처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9. 눈 덮인 산에 사는 야차 - 28편의 시로 되어 있다.

깨달은 분에 대한 의문을 두 명의 야차(귀신)가 석존을 찾아가 묻고 그 가르침을 듣고 제자가 된 이야기이다. 구리가 추구하여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0. 알라바까이야기 - 12편의 시로 되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재산은 무엇인가 / 어떤 일을 하면 마음이 편안한가 / 맛 중에 가장 좋은 맛은 무엇인가 / 어떻게 사는 것이 최상의 삶인가' 야차 알라바까의 이네가지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11. 승리- 14편의 시로 되어 있다.

이 육체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벗어나 저 진리를 향해 나아가라는 가르침이다.

12. 성자 - 15편의 시로 되어 있다.

종회무진으로 얽히는 이 인간 관계에서 벗어나 외롭게 진리의 길을 가라는 가르침이다.

제 2. 짧은 장 (Kulavagga)

14묶음 183편의 시로 짜여져 있다.

1. 보배 - 17편의 시로 되어 있다.

깨달음 불(佛), 그의 가르침(法), 그리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이들(僧), 이 셋을 통해서 구제(구원)는 가능하다는 가르침이다.

2. 불결한 음식 - 14편의 시로 되어 있다.

인간을 정화시키는 것은 형식적인 계율이 아니라 생각과 행위의 정화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3. 진실한 우정에 대하여 - 5편의 시로 되어 있다.

진실한 우정에 대한 가르침이다.

4. 덧없는 행복 - 12편의 시로 되어 있다.

최상의 행복에 대한 가르침이다.

5. 수킬로마 야차 - 4편의 시로 되어 있다.

탐욕에 대한 가르침이다.

6. 진리에 맞는 삶 - 10편의 시로 되어 있다.

수행자의 삶에 대한 가르침이다.

7. 진정한 수행자 - 32편의 시로 되어 있다.

부(富)와 권력 때문에 진정한 수행자들이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8. 나룻배 - 8편의 시로 되어 있다.

진정한 스승에 대한 가르침이다.

9. 최상의 목적 - 7편의 시로 되어 있다.

최고의 목표에 이르려면 어찌해야 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다.

10. 부지런히 노력하라 - 4편의 시로 되어 있다.

수행자는 게으르거나 무기력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이다.

11. 나훌라여, 듣거라 - 8편의 시로 되어 있다.

당신의 아들 나훌라에게 주는 석존의 가르침이다.

12. 수행자 반기사 - 16편의 시로 되어 있다.

'이 육체가 죽으면 그것으로서 모든 게 끝인가. 아니면 다시 또 어떤 것이 남아 있는가' - 이에 대한 가르침이다.

13. 구도자의 길 - 17편의 시로 되어 있다.

구도자의 길에 대한 가르침이다.

14. 제자 담미까 물음 - 29편의 시로 되어 있다.

구도자의 삶과 이 세상의 삶에 대한 가르침이다.

제 3. 큰 장(Mahavagga)

12묶음 326편의 시로 짜여져 있다.

1. 집을 버리다 - 20편의 시로 되어 있다.

빔비사라 왕과 석존의 대화로 출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2. 최선을 다하라 - 25편의 시로 되어 있다.

마라(악마)의 유혹을 물리친 석존의 고행담(苦行譚)이다.

3. 말을 잘하는 비결 - 5편의 시로 되어 있다.

말을 지혜롭게 하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다.

4. 불을 섬기는 사람, 순다리까 - 33편의 시로 있다.

불을 섬기는 사람 순다리까와 석존과의 대화로서 "누구에게 공양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5. 젊은 마가의 물음 - 23편의 시로 되어 있다.

자선사업가인 마가의 물음, "누구에게 어떻게 베푸는 것이 옳은 것이가"에 하는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6. 방랑하는 구도자, 사비야 - 38편의 시로 되어 있다.

방랑하는 구도자 사비야의 물음, "수행승, 눈뜬이"에 대한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7. 브라만 셀라 이야기 - 26편의 시로 되어 있다.

브라만 셀라와 석존이 만나 스승에 관해 이야기 한 것이다.

8. 화살 - 20편의 시로 되어 있다.

인생은 짧고 이 세상은 덧없지만 그러나 진리를 찾아가는 이에게는 축복이 있다는 가르침이다.

9. 젊은이 바세타 - 63편의 시로 되어 있다.

'진정한 브라만이란 누구인가' 이에 대한 가르침이다.

10. 비난하는 사람, 꼬칼리야 - 22편의 시로 되어 있다.

남을 이유없이 비난하는 자의 말로에 대한 가르침이다.

11. 홀로 가는 수행자, 날라까 - 45편의 시

예언자 아지타의 조카인 날라까에게 주는 석존의 말이다.

12. 두 가지 고찰 - 42편의 시로 되어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고뇌는 우빠디(물질)로부터 비롯된다는 가르침이다.

제 4장 시(時) 의 장 (Atthakavagga

16 묶음 210편의 시로 짜여져 있다.

1. 욕망 - 6편의 시로 되어 있다.

너무 감각적인 기쁨에만 매달리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2. 동굴 - 8편의 시로 되어 있다.

육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다.

3. 악의 - 8편의 시로 되어 있다.

구도자는 칭찬과 비난에 무관심하라는 가르침이다.

4. 청정 - 8편의 시로 되어 있다.

어떠한 주의 주장이나 관념에도 붙잡히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5. 최상 - 5편의 시로 되어 있다.

수행자는 절대로 말싸움(논쟁)에 끼여들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6. 늙음 - 10편의 시로 되어 있다.

수행자는 자기 자신을 통해서 스스로를 정화시키면서 집 없이 살아가야 된다는 가르침이다.

7. 구도자 티샤메티야 - 10편의 시로 되어 있다.

독신 수행자는 방사(房事)를 멀리하라는 가르침이다.

8. 파수라 - 11편의 시로 되어 있다.

그 어떤 말싸움(논쟁)을 통해서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화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말싸움에서 떠나 묵묵히 니르바나(진리)의 길을 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9. 마간디야 - 13편의 시로 되어 있다.

마간디야와 석존의 대화. 마간디야는 그의 딸을 석존의 아내로 삼아달라고 데리고 왔다. 그러나 석존은 이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 사이에 진지한 대화가 오고갔다.

10. 죽음이 오기 전에 - 14편의 시로 되어 있다.

현자(깨달은 이)란 누구인가? 이에 대한 가르침이다.

11. 투쟁 - 16편의 시로 되어 있다.

투쟁과 말싸움의 발단에 대한 가르침이다.

12. 문답, 그 첫째 - 17편의 시로 되어 있다.

말싸움을 일삼고 있는 철학자들에 관한 언급이다.

13. 문답, 그 둘째 - 20편의 시로 되어 있다.

논쟁과 철학을 통해서는 결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14. 빠름 - 20편의 시로 되어 있다.

수행자가 해야 할 것과 삼가야 할 것에 대한 가르침이다.

15. 무기에 대하여 - 20편의 시로 되어 있다.

깨달은 이에 대한 언급이다.

16. 사리불 - 21편의 시로 되어 있다.

제자 사리불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제5. 피안(彼岸)의 장

18묶음 174편의 시로 짜여져 있다.

1. 서시 - 56편의 시로 되어 있다.

브라만 바바리가 그의 제자 16명을 석존에게 보내어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부서지는 것>에 대하여 묻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2. 구도자 아지타의 물음 - 8편의 시로 되어 있다.

아지타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3. 구도자 티샤메티아의 물음 - 3편의 시로 되어 있다.

티샤메티아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4. 구도자 푼나까의 물음 - 6편의 시로 되어 있다.

푼나까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5. 구도자 메타구의 물음 - 12편의 시로 되어 있다.

메타구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6. 구도자 도따까의 물음 - 8편의 시로 되어 있다.

도다까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7. 구도자 우파시바의 물음 - 8편의 시로 되어 있다.

우파시바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8. 구도자 난다의 물음 - 7편의 시로 되어 있다.

난다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9. 구도자 헤마까의 물음 - 4편의 시로 되어 있다.

헤바까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10. 구도자 토테야의 물음 - 4편의 시로 되어 있다.

토테야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11. 구도자 깝빠의 물음 - 4편의 시로 되어 있다.

깝빠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12. 구도자 가투칸니의 물음 - 5편의 시로 되어 있다.

가투칸니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대답이다.

13. 구도자 바드라부다의 물음 - 4편의 시로 되어 있다.

바드라부다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14. 구도자 우다야의 물음 - 7편의 시로 되어 있다.

우다야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15. 구도자 포살라의 물음 - 4편의 시로 되어 있다.

포살라에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16. 구도자 모가라쟈의 물음 - 4편의 시로 되어 있다.

모가라쟈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대답이다.

17. 구도자 핑기야의 물음 - 4편의 시로 되어 있다.

늙은 핑기야의 물음에 대한 석존의 대답이다.

18. 열여섯 명의 물음에 대한 총정리 - 27편의 시로되어 있다.

열여섯 명의 물음에 대한 졍전 기록자의 언급과 선생 바바리와 핑기야의 대화이다.

Ⅳ.『숫타니파타』에 나타난 근본불교의 가르침

1. 재가자에 대한 가르침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재가자들은 불교신자가 아닌 것에서 불교신자가 된 자와 재가불교신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다니야와 빔비사라가 전자이며 춘다와 다미카가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다니야는 목축을 하는 자로 마히 강변에서 우기를 대비하다가 붓다를 만나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에 대해 말한다. 그는 상당히 많은 소와 건강한 자녀들과 정숙한 아내를 가진 자로 가정적이나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재산과 명예와 가정 등 소유의 증대가 곧 행복과 비례한다고 믿는 것 이였는데 석존으로부터 미혹을 벗고 탐욕의 불을 끄고 그 무엇도 소유하지 않고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 세계를 듣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이 추구하던 것들이 행복의 요건이 아닌 속박의 굴레가 되어 다시 윤회를 하게 하는 무상한 것임을 깨닫고 아내와 귀의하게 된다. 다니야는 목축업에 종사하는 특정인물이지만 소유의 증대는 곧 행복과 비례한다고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빔비사라는 마가다국의 왕으로 고타마가 출가하여 왕사성에 왔을 때 회견하고 출가를 만류하였다. 뒤에 석존께서 성도한 후 다시 만나 교화되어 가르침을 받았다. 『숫타니파타』에 나온 부분은 석존께서 출가하여 왕사성에서 걸식할 때 밤비사라가 석존을 만났을 때이다. 빔비사라왕은 석존의 모습에 감탄하고 찾아가 재물을 선물하며 석존의 뜻을 돌리려 하지만 석존은 모든 욕망에는 근심이 있고 출가는 평온하다는 알아 정진하며 출가생활을 즐긴다고 말한다.

춘다는 금세공업자로 인도사회에서 천하게 생각되는 직종이다. 춘다는 석존께 세상에는 어떤 수행자들이 있는지 물었다. 석존께서는 길을 아는자, 길을 가리키는자, 길위에 사는자, 그리고 길을 더럽히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들의 신앙심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담미카는 코살라국 사위성의 재가신도로 500명의 신도들과 함께 붓다를 찬미하면서 불제자의 생활법에 대하여 가르침을 청하였다. 석존께서는 오계와 팔제게 및 출가자에 대한 보시와 부모공양, 올바른 직업, 근면 성실한 생활을 할 것을 말씀하셨다.

위와 같은 등장인물들 이외는 재가자들의 이름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다양한 계층의 재가자들이 나타나 석존께 진리를 알고자 했으며 석존께서는 누구에게나 올바른 가르침을 주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불교의 개방성이 어느 정도 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담마까가 불제자가 되려면 출가하는 것과 집에서 믿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좋은지를 석존에게 물었을 때 석존께서는 출가수행자들을 위한 규정을 일반 제가자들이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재가자가 지켜야 할 것을 따로 설해 주셨다.즉 석존께서는 출가와 재가의 각각 삶의 특성을 인정하면서 각자의 처지에 맞게 가르침을 실행하고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재가자의 특성은 가정생활을 하며 재산을 소유하고 경제행위를 하며 사회속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에 석존께서는 재가자들에게 설한 가르침은 출가자들에게는 설하지 않은 방향 즉 공덕을 중시한다.

『숫타니파타』에서 천신이 인간의 행복에 대해 묻자 그에 대한 대답으로 석존께서는 자기 처지에 맞는 장소에 사는 것과 공덕을 쌓는 것 그리고 스스로 바른 서원을 하는 것을 최상의 행복이라고 들고 있다. 『숫타니파타』에서는 공덕에 관해서는 출가자들에게 설한 교설은 찾아 볼 수 없고 재가자에게만 강조된 교설임을 알 수 있다. 공덕은 이로운 행위, 덕으로 전생에 쌓인 공덕의 양에 의해 하늘에 태어나거나. 혹은 미래의 축복되는 형태로 되는데 근본이 되는 것이며 선한 행위로 악과 대비되는 것으로 행위자에게 생기는 일종의 선한 힘이다. 이러한 공덕을 가지고 오는 것은 보시와 계, 수행, 휼륭한 행동 등의 덕목이 함께 따라온다.

보시는 인간 최상 행복의 하나의 요건으로 제시된다. 보시로 인한 공덕을 쌓으면 사후에 가서도 걱정이 없다고 설한다. 비록 불교의 궁극 목적은 내세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성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당시 사회에 있던 선행을 하면 공덕을 쌓고 공덕을 쌓으면 내세에 좋게 태어난다는 가르침을 불교도 받아 들인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중생의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제시한 석존께서의 교화방법을 생각해 본다면 보시에 대한 가르침은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한 초보적인 방편으로 이해 될 수 있다. 즉 당시 사회에 기존해 있던 관념과 행위를 불교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계는 "명상하다. 봉사하다, 실천하다는 뜻을 지닌 sil이라는 동사어근에서 파생된 단어로 습관성, 행위, 성격, 경향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습관과 행위에는 선 혹은 악한 것이 있지만 계라고 할 때는 선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계는 선한 습관, 선한 행위, 선한 성격 등의 의미로 사용되어 진다. 그러므로 계는 본래 자발적으로 악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으로 단지 금지적인 조항이 아니다. 스스로 악한 행위를 떠나는 정신력 혹은 강한 의지로 악을 억제하거나 다스리는 자각적인 힘이라고 하겠다.

『숫타니파타』에서 Sn.394~400.까지는 재가자들이 준수해야 할 덕목으로 8제계가 나와 있다.

Sn.394. 산 것을 죽이거나 남을 시켜 죽여서는 안된다. 그리고 죽이는 것에 동의해도 안된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폭력을 두려워하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폭력을 거두어야 한다.

Sn.395. 그리고 제자는 주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또 어디에 있든 그것을 갖지 말라. 빼앗거나 빼앗는 것에 동의하지도 말라. 주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서는 안된다.

Sn.396.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타오르는 불구덩이를 피하듯 순결 하지 못한 행위를 삼가라. 만일 순결을 닦을 수 없더라도 남의 아내를 범해서는 안된다.

Sn.397. 모임에 있는 무리 가운데 있든 간에 누구도 남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을 시켜도 거짓말에 동의해도 안된다. 모든 근거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Sn.398. 또 술을 마셔서도 안된다. 이 가르침을 기뻐하는 재가자는 이 것은 마침내 미치게 하는 것임을 알고 마시게 해도 안 되고 마시는 것에 동의해서도 안된다.

Sn.399.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취함으로써 악을 짓고 또한 남들로 하여금 방일하게 하고 나쁜 짓을 하게 한다. 이 불행의 원인을 피하라. 미치게 하며 어둡게 하는 것인데 어리석은 자가 이를 즐기는 것이다.

Sn.400. 생명을 해치지 말라. 주지 않는 것을 갖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 술을 마시지 말라. 순결하지 못한 성적 교섭을 떠나라. 밤에는 때 아닌 때의 음식을 먹지 말라.

Sn.401. 화환을 걸치지 말고 향수를 쓰지 말라. 적당한 깔개를 깐 바닥이나 침상에서 자라. 이것이야말로 여덟 고리로 된 포살이다. 괴로움을 끝낸 깨달은 님의 가르침이라.

오계의 덕목은 당시 인도 일반의 윤리와 거의 같으나. 그것을 지키는 데는 중도적인 태도와 건전한 정신이 중시된다. 재가자는 가정을 갖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오계이외에 가정에서의 윤리, 부모 형제나 처자와 친적들간의 윤리 등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모에 대한 효도가 강조되고 있다. 부모를 섬기고 처자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 행복이며 법답게 모은 재물을 가지고 부모를 섬길 것이며 재산이 넉넉하면서도 노쇠한 부모를 섬기지 않는 것은 파멸의 문이라고 하였다. 부모, 형제, 자매 혹은 계모를 때리는 자는 천한 자라고 하고 있다. 부부간의 윤리에 대해서는 사음을 피할 것으로 이미 오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혈통을 자랑하고 재산과 문벌을 자랑하면서 자기의 친척을 멸시하는 것은 파멸의 문이며 친척간의 우애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다.

가정생활을 영위할 직업에 관한 윤리도 역시 간략하게 언급되고 있다. “지식과 기술을 쌓는 것”과 “혼탁하지 않는 업무”가 인간의 행복으로 말해지고 있다. “법답게 모은 재산으로 부모를 섬기라”고 한 게송에서 법답게 모은다는 것은 바른 직업으로 인하여 얻은 재산을 말하는 것이니 이 가운데 직업윤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당한 장사를 하라고 구체적으로 말한 곳도 있다. 이 직업의 윤리는 경제의 윤리와도 직결되는 것이므로 재가자의 윤리에서 소홀히 취급될 수 없는 부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 외로 악인을 멀리하고 선인을 가까이 하며, 수행자들을 만나고, 가르침을 듣고, 법담을 나누고, 인내, 유순, 겸손, 만족 등의 덕을 지니며 악을 멀리하고, 덕행을 소홀히 하지 말 것 등을 설하고 있다.

위에서 제시한 덕행들과 반대의 행위를 일삼는 자들에 대해서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Sn.248. 살아 있는 것들을 자기 뜻대로 지배하려 하며 적대감과 불쾌감을 뿜는 자 기회만 있으면 남을 해치려고 벼르는 자는 죽어서는 암흑 속으로 들어갈 것이며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Sn.660. 나쁜 말과 나쁜 뜻을 일으켜서 성자를 헐뜯는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서 기나긴 고통을 받게 된다.

Sn.664. 그 말이 천박하고 불성실 한 비천한 자여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고 악행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자여 유치하고 불길하고 무능력한 자여 그대는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려대고 있구나. 그대는 이제 기나긴 세월동안 깊은 지옥에 떨어져 살게 될 것이다.

악행을 하여 지옥에 간다는 것은 재가자에게만 설해진 것은 아니며 불교출가자들도 올바른 수행을 하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 것을 면할 수 없다.

코깔리야경에서는 지옥에 대하여 자세하게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지옥의 상황과 고통이 그림을 그리듯 자세히 묘사되고 있는데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중생들에게 깨우쳐 주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된다.

지옥에 떨어진 자의 수명은 한 수레의 깨를 한 사람이 100년에 한 알씩 다 꺼내도 끝나지 않는다고 하니 사람들은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선행을 함을 게을리지 말라고 한다.

2. 출가자에 대한 가르침

① 의복

옷에 대하여 출가자들에 준 게송은 몇 편이 있다. 옷을 얻을 수 없다고 걱정하지도 말고, 적은 것으로 만족하며, 또 얻더라도 묵히거나 쌓아두지 말며, 침구와 가사를 세탁할 때 물을 조심해서 사용하고 이에 집착하여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가르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물질적 소유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고 물을 아껴서 사용하라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다.

② 걸식

붓다는 걸식에 관하여 시간과 그 마음과 몸가짐 방법 그리고 걸식을 끝낸 뒤의 행동에까지 매우 상세하게 가르침을 주셨다. 이는 걸식도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연장이라는 가르침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Sn.386. 출가수행자는 때 아닌 때에 돌아다니지 말라 정해진 때에 밥을 얻으러 마을로 가라 때 아닌 때에 돌아다니게 되면 집착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체험한 사람들은 결코 때 아닌 때에 돌아다니지 않는다.

Sn.387. 이모든 형상과 소리 맛과 냄새와 감촉은 우리를 완전히 취하게 한다. 이것들에 대한 욕망을 잘 다스리고 정해진 때에 음식을 얻기 위하여 마을로 가라.

Sn.388. 정해진 때에 음식을 얻은 다음 조용한 곳에 가 홀로 앉아라. 자신의 내면을 잘 관찰하고 마음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

Sn.711. 마을로 내려가서는 집집마다 너무 성급하게 돌아다니지 말라. 탁발하는 동안은 어떤 이야기도 하지 말라. 그리고 음식을 대접하도록 고의로 유도하는 말을 해서도 안된다.

Sn.716. 날라까여 그대에게 지금부터 수행자의 길을 할해 주리라. 음식을 먹을 때는 마땅히 칼날의 비유를 잊지 말라. 혀와 맛을 잘 절제하고 너무 포식하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Sn.65. 맛좋은 음식만을 탐하지 말고 굳이 좋아하는 것만을 골라 취하려 하지도 말라. 다른 사람을 부야할 의무조차도 필요없으니 문전마다 밥을 빌며 거주처에 대한 애착을 끊어 버리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거라.

걸식할 때 정해진 시간을 엄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시간을 엄수하는 것은 인간의 욕구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것의 하나인 식욕에 대한 집착을 끊는 의미가 담겨있다. 걸식할 때의 몸과 마음의 자세로 말을 조심하라는 것을 면도날에 비유하면서 면도날에 혀가 베이지 않도록 시주물건을 받을 때 주의하라는 것이며 그 외 음식물을 빨리 얻으려는 생각으로 조급하게 다니지 말며 음식을 얻으려는 말을 꺼내지도 말고 마치 벙어리처럼 음식을 얻으라고 가르치신다. 65번 게송은 탁발을 하다보면 나쁜 음식보다 좋은 음식을 주는 집에 더 집착하기 쉽다. 석존은 그렇게 가리어 탁발하지 말기를 말씀하시며 이는 수행자가 좋은 음식을 주는 집으로 바로 가는 것을 금하는 내용이기도 하겠다.

음식에 대한 석존께서는 어떤 시각을 지녔기에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지 다음의 게송을 보며 알 수 있다.

Sn.387. 이 모든 형상과 소리 맛과 냄새와 감촉은 우리를 완전히 취하게 한다. 이것들에 대한 욕망을 잘 다스리고 정해진 때에 음식을 얻기 위하여 마을로 가라.

Sn.747. 고통의 시작은 모두 음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므로 음식에 대한 탐욕이 없어지게 되면 고통도 따라서 소멸된다.

Sn.748. 음식으로부터 솟구치는 이 고통을 보라 이 불행을 보라. 음식을 무분별하게 마구 취하지 않는 사람들을, 진리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을, 미한 생존자들과 같이 취급해서는 결코 안된다.

오관의 대상은 인간을 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관의 대상인 맛은 인간을 도취시키는 것이며 이는 곧 고의 원인이라는 것이 석존의 시각이다. 음식으로부터의 불행을 잘 알아 탐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또한 석존께서는 엄격한 탁발을 하였다.

Sn.217. 남이 주는 것으로 생활하며 새 음식이나 먹던 음식이나 먹다 남은 음식을 얻더라도 음식을 준 그 사람을 칭찬하거나 욕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을 진정한 성자라 하느니.

Sn.712. 음식을 얻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음식을 얻지 못하는 것도 역시 좋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편안한 기분으로 돌아가거라. 과일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에 관계치 않고 담담한 마음으로 되돌아가듯

Sn.713. 밥그릇을 들고 걸어가는 저 수행자는 벙어리는 아닌데 마치 벙어리와 같구나. 그 음식을 준 사람을 절대로 얕잡아 보지 않는다.

Sn.388. 정해진 때에 음식을 얻은 다음 조용한 곳에 가 홀로 앉아라. 자신의 내면을 잘 관찰하고 마음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

Sn.708. 수행자는 탁발을 끝낸 후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 숲속의 나무 밑으로 가서 조용히 앉아야 한다.

석존의 수행은 단순히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일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걸식에서는 욕심에 집착하지 않고 오감을 잘 억제하고 음식과 욕구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이를 위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걸식의 의의를 말해 본다면 걸식이 단지 수행자들의 식생활을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는 무집착과 무소유의 삶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또한 더구나 걸식은 매일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수행이기에 더욱 큰 의의가 있다.

③ 거주처

석존께서 수행자의 거주처에 대하여서 설한 것은 다음의 게송을 통해 알 수 있다.

Sn.72. 이빨이 강한 사자가 뭇 짐승을 제압하고 능히 정글의 왕으로 군림하듯 궁핍하고 외딴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거라.

Sn.338. 진실한 사람들과 가까이하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아라. 조용하고 평화로운 그런 곳에 머물러라. 그리고 음식은 언제나 양에 맞게 절제하라.

Sn.925. 언제 어디서나 명사의 자세를 잃지 말라. 그리고 되도록이면 한적한 곳에 머물러 살아야 한다.

Sn.958. 수행자는 저속한 무리들과 휩쓸리는게 싫어서 인적이 드문 곳이나 나무 밑 그리고 묘지 부근을 좋아하며 때로는 산의 동굴 속에 머물기도 합니다.

Sn.708. 수행자는 탁발을 끝낸 후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 숲속의 나무 밑으로 가서 조용히 앉아야 한다.

Sn.709. 그리고 명상에 전념하라. 숲에서 너 자신의 즐거움을 찾도록 하라. 나무 밑의 명상을 통해서 저 자신의 행복을 찾도록 하라.

석존께서 설한 거주처는 궁벽한 곳, 인가를 떠나 깊숙하고 고요한 곳, 한가한 곳이다. 구체적인 곳으로 나무 아래, 묘지, 산 속의 동굴 이다. 이는 인도의 자연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709게송처럼 숲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선정에 전념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궁벽하고 고요한 곳을 찾는 의도는 그러한 외적인 환경이 수행을 하는데 특히 선정을 하는데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걸식이 외형적 행동인 동시에 정신적인 의의를 지니는 것처럼 거주처 역시 외적으로 고요한 곳에 수행하면서 정신적으로 온갖 의지처에 대한 집착을 끊음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3. 대인관계와 언어에 대한 가르침

① 친구

석존께서는 모소의 뿔처럼 홀로 수행에 정진할 것을 권하면서 동시에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두 살믱 모습은 다른 것처럼 보여서 가능하지 않다고 보일 지도 모르지만 석존께서는 삶의 외적인 양상보다 내면의 정신적인 차원 즉 어느 것에서 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삶을 지향하므로 가능한 것이다.

석존께서는 수행생활에 있어 친교를 금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제와 애정에서 고가 생기고 여럿이 함께 있으면 잔소리와 말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신다.

Sn.338. 진실한 사람과 가까이 하라

Sn.58. 지성적이며 진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런 고상한 벗을 가까이 하라. 이는 여러 가지로 이익이 되나니 모든 의심을 잘라 버리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거라.

Sn.45. 현명하고 올바른 벗들을 만난다면 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그들과 무리지어 함께 가거라.

석존께서 사귀기를 권하는 벗은 선하고 그릇된 견해가 아니라 법을 널리 배우고 총명하고, 협력하며, 현명한 특성을 지닌 자이다. 석존께서는 친구를 얻는 행복을 기리며 이런 좋은 벗은 사귈 것을 권하지만 동시에 멀리해야 하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릇되고 굽은 것에 사로잡힌 자. 혹은 탐욕에 빠져 게으른 자, 남에게 고통을 주는 자. 남의 덕을 가리는 자들이다. 이는 진리를 알고 총명하며 협조하는 자들과 대조되며 좋고 나쁨의 기준이 그가 지니고 있는 어떤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도덕적 품성과 자질과 바른 삶의 자세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Sn.56. 탐내지 말라. 속이지 말라. 그리고 조금도 조급해 하지 말라. 이 혼탁과 미망을 남김없이 씻어 버리고 이 세상의 모든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서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거라.

Sn.57.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그런 나쁜 벗과는 아예 가까이 말라. 감각적인 쾌락에만 탐닉해 있는 그런 벗과도 가까이하지 말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처럼 혼자 가거라.

Sn.148. 남을 속여서는 안된다. 또 남을 멸시해서도 안된다. 남을 괴롭히거나 고통을 주어서는 더욱 안된다.

함께 수행하는 공동체에도 거짓수행자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자들을 "쌀겨수행자"라고 별칭하여 경계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있다.

Sn.281. 그대들은 모두 일치단결해서 이런 사람을 멀리 날려 보내야 한다. 쌀겨를 저 멀리 멀리 날려 보내듯.

Sn.282. 그리고 수행자도 아니면서 자칭 수행자라고 떠벌리는 놈들을 저 멀리 멀리 날려 보내야 한다. 죄악에 찬 욕망과 행동, 그리고 옳지 못한 생각을 갖고 있는 그들을 멀리 더 멀리, 아주 멀리 날려 보내야 한다.

다음은 몸은 집을 나와 비록 출가하여 외적으로는 수행자이나 사실은 수행자가 아닌 자들의 행동에 대한 내용이다.

Sn.275. 거칠게 말하며 남을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자. 이런 짐승 같은 자의 삶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 세월이 갈수록 불어나는 것은 그 자신의 더러움뿐이다.

Sn.276. 언제나 말싸움하기를 좋아하며 어리석음으로 뒤덮여 있는 사람은 아무리 진리를 가르쳐 줘도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Sn.277. 그는 또 그 자신의 깨끗한 마음을 휘저으면서 무지, 저 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는 죄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Sn.278. 이런 사람은 마침내 불행에 빠지게 되며 이 모태에서 저 모태로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끝없이 헤매게 된다. 그리고 이 삶이 끝날 때 그를 맞는 것은 고통뿐이다.

Sn.279. 저 똥통을 보라. 기나긴 세월이 흘러갔어도 거기 쌓이는 것은 오직 똥무더기뿐이다. 죄악으로 가득 찬 사람도 이와 같아서 다시 순수해지기란 좀처럼 힘든 일이다.

Sn.280. 그러므로 알지어다. 이런 사람은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으로서 죄악에 가득 찬 욕망과 생각, 그리고 죄악으로 얼룩진 행동이 있을 뿐이다.

엉터리 수행자는 마음 안으로 계를 지킴이 없으면서 겉으로 가사를 입고 출가자의 생활용품 때문에 출가행자로 보이는 것뿐이다. 그들은 우매하고 논쟁을 즐기고, 눈 뜬 사람의 설법을 알아듣지 못하고, 남을 괴롭히기를 좋아하고, 삿된 욕망에 사로잡혀 그릇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자이다.

석존께서는 공동생활에서도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Sn.283. 다시 순수해져라. 그리고 생각을 깊게 갖고 순수한 사람들과 이웃하며 살아가라. 그러면 너는 다시 지혜로워질 것이며 밤에 울던 그 고통과 고뇌는 영원히 가버릴 것이다.

같은 목적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수행하는 공동체이므로 먼저 스스로 순수해지며 서로 화합하여 살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러한 수행자 공동체도 모두 궁극목표는 고를 멸하는 해탈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화합하며 지혜로워질 것을 당부하신 것이다.

함께 수행하는 데 있어서 좋은 벗을 사귀고 휼륭한 스승을 섬기고 가르침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수행자 자신의 자세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바로 교만과 자만에 대한 경계이다. 칭찬이나 비난에 좌우되지 않고 교만을 떠나 스스로 남보다 뛰어나다거나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Sn.213. 홀로 걸어가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수행자. 칭찬에도 비난에도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그리고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남에게 끌려가지 않고 오히려 남을 끌고 가는 사람, 이런 사람을 진정한 성자라 하느니.

Sn.214. 아무리 칭찬을 해도 또 비난을 퍼부어도 기둥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 욕정을 떠나 모든 감각기관을 잘 다스리는 사람, 이런 사람을 진정한 성자라 하느니.

Sn.218. 영혼의 순수성을 잘 지켜 감으로써 그 어떤 것에게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며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이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이런 사람을 진정한 성자라 하느니.

Sn.328. 웃음과 농담과 슬픔과 혐오, 거짓말과 사기와 탐욕과 오만, 그리고 격분과 거친 말과 탐닉을 버리고 확고한 태도로써 꿋꿋이 나가라.

Sn.930. 수행자는 사고 파는 일에 지나치게 참견해서는 안된다. 남들로부터 비난을 받지도 말고 아무하고나 함부로 교제하지도 말라. 이익만을 노리는 사람들과는 아예 상대도 해주지 말라.

Sn.968. 노여움과 오만에 지배되지 말라. 이 두 놈을 뿌리째 뽑아 버려라. 유쾌함과 불쾌함, 이 두 가지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Sn.799. 지혜에 관해서도 계율이나 도덕에 관해서도 편견을 가져서도 절대로 안된다. 나는 남과 동등하다. 나는 남보다 못하다. 이는 남보다 뛰어나다. 이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Sn.855. 침착하고 언제나 생각이 깊으며 그는 자기 자신을 남들과 동등하다거나 우수하다거나 못났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욕망의 불꽃이 더 이상 타오르지 않는다.

Sn.860. 현자는 탐욕을 떠났으므로 인색하지 않으며 나는 남보다 우수하다. 나는 남보다 동등하다. 나는 남보다 못하다는 이런 식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분별심을 버렸으므로 더 이상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Sn.918.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거나 못하다거나 또는 다른 사람과 동등하다고 생각지 말라.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는 굳이 자신을 돋보이려고 애쓰지 말라.

Sn.954. 현자는 자기 자신이 자기와 동등한 무리들 속에 있다고도 말하지 않고 자기보다 수준 낮은 무리들 속에 있다고도 하지 않으며 또한 자기보다 나은 무리들 속에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평온한 곳에 이르렀으며 헛된 욕심의 꿈에서 깨어났다. 그러므로 그는 그 어떤 것이라도 붙잡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스스로 분별하지 말고 그대로 자신을 보고 인정하며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화합하고 좋은 점을 배워 함께 궁극의 목표에 가는 것이 공동체수행자가 지향해야할 자세이다. 이것이 석존께서 홀로 수행함과 동시에 더불어 함께 수행하는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② 언어

『숫타니파타』에서는 지양되어야 할 언어와 지향되어야 할 언어에 대한 가르침이 상세히 나온다. 언어는 비단 수행자 뿐만 아니라 일반 제가자들도 지켜야할 사항이다. 언어는 단지 의사전달의 표현수단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올바른 언어는 온화한 인간관계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Sn.657.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의 입속에서는 도끼도 함께 태어난다. 어리석은 자는 악한 말을 함부로 지껄여서 그 도끼로 그 자신을 찍는다. 거짓말을 하지말라.

Sn.328. 웃음과 농담과 슬픔과 혐오, 거짓말과 사기와 탐욕과 오만, 그리고 격분과 거친 말과 탐닉을 버리고 확고한 태도로써 꿋꿋히 나가라.

Sn.931. 빈말을 하지 말라. 다 알면서도 사악한 짓을 해서는 안된다. 또 생활이나 지식, 도덕 계율에 관해서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Sn.943 거짓에 끌려가지 말라. 겉모양에 유혹당하지 말라. 욕망을 꿰뚫고 지나가라. 폭력을 삼가면서 가라.

Sn.967.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말라. 헛된 말을 하지 말라. 약한 것이건 강한 것이건 살아 있는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언제나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의 동요를 느끼거든 악마의 무리라 생각해서 가차없이 이를 버려야 한다. 남을 비방하지 말라.

Sn.362. 남을 헐뜯지 않고 노여움과 인색함에서 풀려난 사람, 비위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 그는 이 세상에서 올바른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Sn.389. 혹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경우가 있다면 상대방에게 뛰어난 진리만을 이야기하라. 헐뜯는 말이나 남을 비난하는 말은 가능하면 하지 말아라.

Sn.852. 그는 집착이 없으며 속이지 않는다. 그는 탐하지 않으며 인색하지 않다. 그는 오만하지 않으며 증오하지도 않는다. 그는 결코 이쪽에서 이말 하고 저쪽에서 저말을 하지 않는다.

Sn.930. 수행자는 결코 거만해서는 안된다.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은근히 선동하는 말을 하지 말라. 그리고 불화를 가져오는 언행은 되도록이면 삼가야 한다.

Sn.660. 나쁜 말과 나쁜 뜻을 일으켜서 성자를 헐뜯는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서 기나긴 고통을 받게 된다.

Sn.661. 거짓말을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또 어떤 짓을 하고도 나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떼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비열한 자들로서 죽어서 저 세상에 가서는 같은 운명을 받게 될 것이다.

Sn.664. 그 말이 천박하고 불성실하고 비천한 자여,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고 악행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자여, 유치하고 불길하고 무능력한 자여, 그대는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려대고 있구나. 그대는 이제 기나긴 세월 동안 깊은 구렁에 떨어져 살게 될 것이다.

Sn.275. 거칠게 말하며 남을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자. 이런 짐승 같은 자의 삶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 세월이 갈수록 불어나는 것은 그 자신의 더러움뿐이다.

악어는 도끼 같은 것으로 자신을 찍는 화를 자초하며 거짓과 양설을 일삼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며 언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Sn.863. 투쟁과 논쟁, 슬픔과 간탐, 그리고 오만과 거친 말은 모두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또 투쟁과 논쟁은 간탐을 동반하며 논쟁이 일어날 때 거기 자연히 거친 말이 있게 된다.

투쟁, 논쟁은 모두 집착에서 비롯되며 논쟁에서의 거친 말은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불화합을 일으키므로 수행에 있어서는 특히 경계해야 하는 것들이다.

석존께서는 특히 남을 비방하는 말을 매우 질책하셨다. 코깔리야경에서 코깔리야는 출가수행자인데 사리불과 목건련이 욕망에 잡힌 생각을 한다며 비당하다가 결국 병들어 죽어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

수행자가 탁발을 가거나 수행을 하다가 보면 뜻 아니게 욕을 먹거나 불쾌한 말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에 대꾸하지 않고 적대감을 갖지 않는 것은 힘들 일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언어란 단순히 경계대상만이 아니라 언어도 하나의 수행으로써 이해해야 할 것이다.

Sn.932. 수행자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욕설을 먹더라도 불쾌한 표정으로 여기에 응해서는 안 되며 거친 말로 마주 대꾸해서도 안된다. 진정한 수행자는 어떤 경우에도 적대적인 대답은 하지 않는다.

Sn.143. 니르바나에 이른 사람이 이 편안한 경지에서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공명하고 성실하며 말은 부드럽고 점잖아야 하며, 잘날 체 뽐내지 않는 것이다.

Sn.472. 그는 생존에 대한 욕망과 거친 말을 모두 버렸다. 그는 진리에 통달했으므로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당연히 공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

공동체에 있어서 가져야 할 언어는 다음과 같다

Sn.973.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받으면 진심으로 감사해 하라. 같은 동료들에게 자기주장만 너무 앞세우지 말고 감정을 다치게 말하지 말라. 그 때 그 장소에 어울리는 말을 할 것이며 남을 헐뜯으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

석존께서는 여러 다른 사람들과의 말에서 자칫 논쟁과 투쟁으로 갈수 있는 언어에 대하여 자신을 낮추고 감정을 내세우지 않도록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공동체생활에서 모두 화합으로 가는 실제적인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석존께서는 말할 때 태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Sn.143. 니르바나에 이른 사람이 이 편안한 경지에서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공명하고 성실하며 말은 부드럽고 점잖아야 하며, 잘날 체 뽐내지 않는 것이다.

Sn.664. 그 말이 천박하고 불성실하고 비천한 자여,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고 악행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자여, 유치하고 불길하고 무능력한 자여, 그대는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려대고 있구나. 그대는 이제 기나긴 세월 동안 깊은 구렁에 떨어져서 살게 될 것이다.

Sn.850. 현자는 노여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뒤에 가서 후회하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리고 덜렁대지 않으며 말을 할 때는 신중히 생각한다.

Sn.853. 그는 쾌락만을 탐하지 않으며 으시대지도 않고 늘 부드러우며 말이 솔직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어떤 것도 거부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Sn.930. 수행자는 결코 거만해서는 안된다.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은근히 선동하는 말을 하지 말라. 그리고 불화를 가져오는 언행은 되도록이면 삼가야 한다.

경계해야할 언어들 다음으로 지향해야할 언어는 다음과 같다.

Sn.450. 가장 좋은 말을 하라. 이것이 그 첫번째다. 진리에 맞는 말을 하라. 이것이 두번째이다. 남의 감정을 상하는 말을 하지 말라. 이것이 그 세번째이다. 진실을 말하라. 이것이 그 네번째이다.

Sn.451.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말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말을 하지 말라. 이것이 말을 잘하는 비결이다.

Sn.452. 애정이 담기 말을 하라. 그런 말을 사람들을 모두 원하고 있다. 죄악에 찬 말을 삼가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만 하라.

Sn.453. 진실이 불멸의 언어다. 이것은 영원의 법칙이다. 이 진실위에, 그리고 이 최선과 정의 위에 보라. 올바른 사람들은 꿋꿋이 서 있다.

Sn.454. 니르바나의 저 언덕에 이르기 위해서, 이 고뇌를 말려 버리기 위해서, 스승이여, 당신의 그 온화한 말은 그 모든 말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행자들의 언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언어나 공동체에 불화합을 야기하는 언어 거짓말, 양설을 경계하며 법과 좋은 말을 말하는 것을 지향한다. 그러나 언어는 마음과 생각의 표현임을 생각한다면 마음의 집착과 욕심이 일어나면 올바른 언어를 사용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언어가 단지 의사표현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그 자신의 마음의 수행과도 관계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존께서는 수행자들에게 어휘, 태도, 마음가짐 등의 세세한 가르침을 설하신 것이다.

③ 자비행

자비는 불교의 실천면에 있어서 중심 되는 덕목이다. 자(慈)는 팔리어로 metta이며 이는 친구(mitra)라는 말에서 파생된 추상명사로 최고의 우정을 말한다. 특정한 사람에 대해서만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우정을 지니는 말이다. 비(悲)의 원어는 karuna로 인생의 고를 탄식하여 슬퍼하는 것으로 불쌍히 여김, 동정을 의미한다.

자비에 대해서는 근본불교부터 매우 강조되었는데 『숫타니파타』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Sn.149. 어머니가 외아들을 보호하듯 살아 있는 이 모든 생명체에서 한없는 연민의 마음(자비심)을 일으켜야 한다.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어떤 조건이나 계산이 없는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그러한 무량한 마음으로 모든 생명체에 자비심을 베풀어야한다고 설하고 계신다. 자비의 대상인 모든 생명체에 대해서 석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말하고 계신다.

Sn.967.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말라. 헛된 말을 하지 말라. 약한 것이건 강한 것이건 살아 았는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언제나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의 동요를 느끼거든 악마의 무리라 생각해서 가차없이 이를 버려야 한다.

Sn.146. 어떠한 생명체라도 약한 것이건, 강한 것이건, 큰 것이건, 중간 것이건, 제아무리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Sn.147.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나려 하는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아. 부디 행복해져라.

강한 것이든 약한 것이든 눈에 보이는 것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 작은 것이든 큰것이든 또한 이미 존재하는 것이든 생을 구하는 것이든 모든 존재를 다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대상은 온갖 종류의 유형과 시간과 공간의 세계를 두루 포함하고 있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렇듯 자비의 대상은 한계가 없다.

Sn.35. 살아 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 살아 있는 것들을 괴롭히지 말라. 살아 있는 것들을 괴롭히지 말라. 너무 많은 자녀와 친구를 갖고자 하지도 말고,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거라.

Sn.515. 언제나 양보하고 생각이 깊기 때문에 그는 이 세상의 어떤 생명체도 해치지 않는다. 존재의 흐름을 이미 건너 편안에 이른 그에게는 어떠한 욕망이나 야망도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에게는 한없이 퍼지는 자비의 마음이 있다.

Sn.705. 「그는 나와 같고 나 또한 그와 같다」고 생각하라.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과 동일하게 생각해서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또한 남을 시켜 죽이게 해서도 안 된다.

일체의 생명들에 대하여 자비의 마음을 지니는 것은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괴롭히거나 폭력을 금함은 당연하다. 705에서도 왜 모든 생명들에 대해서 자비의 마음을 지녀야 하는지를 석존께서는 밝히고 있다. 모든 생명들에 대하여 서로 다르다는 분별심을 지니고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나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세계를 분별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기심은 분별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분별이 아니라 같다고 보는 마음을 지니라고 석존께서는 가르치고 계신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을 해함이 없듯이 그런 마음으로 모든 살아있는 것을 대하라고 하신다. 이 세상 어느 것도 나와 같다고 보는 관점에서 예외되는 것은 없으니 아무 것도 해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역설되고 있는 것이다.

수행자는 눈을 아래로 뜨고 다니라고 하였는데 이는 겸손의 뜻이 아니라 시선을 땅에 두어 미생물의 생명을 해하지 말하는 것으로 보행에 있어서도 정신을 차려 있어야 함을 말한다.

Sn.63. 눈은 언제나 밑을 보며 조금도 곁눈질하지 말고 이 모든 감각의 문을 굳게 지켜야 한다.

마가다왕 빔비사라가 붓다의 모습을 “그는 눈을 아래로 뜨고 정신을 차리고 있다”고 찬탄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으며 만물이 성장하는 우기에 유행하지 않고 일정한 장소에 머무는 것도 자비행의 하나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자비의 이상은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 전 우주를 향하여 열려 있는 것임을 반복하여 설하시는데 이는 내외적인 완전한 행복을 의미한다.

Sn.145. 살아 있는 것들아, 부디 행복하고 편안하여라.

Sn.150. 그 자비심이 골고루 스미게 하라. 위로, 아래로, 또는 옆으로, 장애도 없고, 적의도 없고, 척짓는 일도 없이 이 누리에 두루두루 스미게 하라.

위와 같이 인간 뿐 아니라 일체의 모든 생명들과 세계까지의 대상이 무량한 자비의 대상이라는 것은 서양사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불교만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한 자비는 단순히 마음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마음을 바탕으로 모든 생명과 세계에 대하여 자비행을 실행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Ⅴ. 숫타니파나를 통해 본 근본불교의 특징과 윤리

1. 평등

근본불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인격적, 종교적, 도덕적 향상과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나쁜 행위를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하여 생활을 청정하게 할 것을 일반적인 생활규범으로 권하고 있다.

석존께서는 올바른 법의 실현은 모든 인간이 인격적으로 평등하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그래서 석존께서는 계급제도를 부정하고 인간의 보편적 평등을 주장한다. 석존께서는 바라문의 출생적 계급 신분설에 대하여 인간은 원래 생물학적으로 모두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Sn.608. 머리칼에도, 머리에도, 귀에도, 눈에도, 입에도, 코에도, 입술에도, 눈썹에도,

Sn.609. 머리에도, 어깨에도, 배에도, 등에도, 엉덩이에도, 유방에도, 음부에도, 그리고 성교할 때도,

Sn.610. 손에도, 발에도, 손가락과 손톱에도, 무릎에도, 허벅지에도, 용모에도, 음성에도, 그들을 구성하고 있는 종의 특징에 따른 차이가 인간에게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Sn.611. 몸을 가지고 태어난 생물에게는 모두 그들의 종에 따라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 같은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차별을 두는 것은 다만 그 명칭에 의해서일 뿐이다.

위에서도 같이 인간의 구별은 오로지 이름에 의한 것이지 생물학적인 차이는 없다고 한다.

Sn.648. <김>이라는 성씨와 <아무개>라는 이름은 임시로 붙여진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대 부모들이 의견을 모아 임시로 붙여준 성명 석자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에 있어서의 신분의 차별은 단지 그가 어떠한 행위를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고,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그의 행위라고 보았다.

Sn.142. 인간은 결코 그의 신분에 의해서 비천해지거나 고귀해지지 않는다. 인간을 비천하고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신분이 아니라 그 자신의 행위다.

Sn.136. 출신 성분에 의해서 사람이 천하게 되는 것도 아니요. 또는 브라만의 혈통에서 태어났다 해서 브라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모두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얼마든지 <천한 사람>이 될 수 있고, <귀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Sn.462. 어느 계급의 출신인가를 묻지 말고 그 행위를 물어라. 모든 장작으로부터 똑같은 불이 타오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천한 계급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도 진리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있고 부끄러움을 알아서 자신을 잘 절제한다면 그는 가장 고귀한 사람이다.

석존께서 인정한 인간의 차별성은 오직 그 사람의 행위에 의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동일한 인격체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에게 여러 가지 조건이 주어지고, 그 조건에 의한 행위에 의해서 존경받고 존경받지 못하는 인간이 된다.

또한 출생, 이름, 성 등에 의한 인간의 차별은 없다고 본다. 생사고라는 원리는 누구나 동일하며 그로부터의 깨달음에 있어서도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평등사회실현에 대한 석존의 이념은 경제, 사회의 발전과 함께 당시의 바라문 주도의 사회구조에 큰 변화를 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석존께서는 그 실현을 위해 적극적인 사회운동을 전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완전한 평등 사회를 실현시킬 수 없었지만 그의 교단 내에서라고 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교단을 개방하고 교단 내에서는 모든 세속적 신분이 초월된다고 하였다.

2. 현실을 중시함

어떤 노인이 나이가 많아서 몸이 쇠약한 것을 한탄하면서 석존을 향해 이같이 말했다.

나는 이미 늙었습니다. 힘은 다하고 생명의 불마저 꺼져 갑니다. 잘 보이지도 잘 들리지도 않습니다. 내가 미혹한 그대로 도중에 죽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이법을 설해 주소서 그것을 나는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생과 노쇠를 버리는 일에 대하여 석존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목마름으로 비유되는 망집에서 빠져 고뇌를 일으키고 늙음에 엄습당해 있다 그러므로 애써서 망집을 버려라. 그리고 다시 생존상태에 머물지 않도록 하라.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되면 그것이 해탈인 것이며 그것 이외에 해탈이라는 특별한 상태가 있을리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제자인 투디야와의 대화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제자 투디야가 물었다. 모든 욕망이 머무르는 일이 없고 망집이 없고, 모든 의혹을 넘어선 사람 그는 어떤 해탈을 구하면 좋습니까 이에 대하여 석존은 모든 욕망이 머무르는 일이 없고, 망집이 없고, 모든 의혹을 초월한 사람에게는 따로 해탈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위의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경지가 그대로 해탈인 것이다. 망집을 벗어난 경지가 해탈이다. 그것은 생전에 이 세상에서 달성되는 것이다. 사후에 어떻게 되는가는 문제되지 않는다. 즉 현실에서 해탈을 한다는 것은 근본불교가 현실 안에서 존재하며 현실을 중요시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Sn.849. 죽기 전에 망집을 떠나고, 과거에 구애되지 않고, 현재에 있어서도 쓸데없이 생각에 잠기는 일이 없다면, 그는 미래에 대해서도 특히 걱정하는 일이 없다.

3. 가정윤리

상가는 출가자와 재가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출가자와 재가자가 지켜야 할 윤리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재가신도들은 먼저 불, 법, 승에 귀의할 것이 요구 된다. 그리고 재가자들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실천윤리는 오계와 팔제계가 있다.

남녀간에는 순수한 사랑이 강조된다. 결혼 생활이 승인되고 자신의 아내와 남편에 만족하고 음행을 해서는 안된다.

Sn.108. 자기 아내에게 만족하지 않고 창녀 또는 남의 아내와 분별없이 놀아나는 것,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Sn.123. 폭력을 쓰거나 또는 서로 눈이 맞아 친척이나 친구의 아내와 함부로 정을 통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컬어 <비천한 사람>이라 한다.

Sn.242. 생명을 죽이거나 구박하는 것, 도적질하고 거짓말하고 사기치는 것, 백해무익한 잡서나 읽으며 남의 아내를 노리는 것, 이것이 바로 불결한 음식이니라. 육식은 결코 불결한 음식이 아니니라.

Sn.396. 타오르는 불구덩이를 피하듯 현명한 사람은 순결하지 못한 생활을 피하라. 순결한 삶을 살 수 없다면 적어도 남의 아내(남편)와의 죄는 짓질 말아야 한다.

Sn.262. 부모를 섬기는 것, 처자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위없는 행복이다.

부부간의 있어서도 부부는 친하고 화목해야 한다. 남편은 아내를 존경하고 경멸하지 않으며 도리에 벗어나지 않아야 하며 권위를 부여해야한다. 반대로 아내는 집안에서 일을 잘 처리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남편을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 부부간의 윤리의 기본 덕목으로 제시된 서로간의 존중과 사랑은 그 당시 인도의 가부장적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볼 때 혁신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여성과 남성을 완전히 평등하게 보는 입장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도 가부장적인 수직적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존경과 부양을 강조한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이유는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늙은 부모를 봉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Sn.98. 자기는 풍족하게 살고 있으면서 늙어 쇠약한 부모는 돌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Sn.124. 자기는 재물이 풍족하면서도 늙고 쇠약한 부모를 섬기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또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도 근본적인 원리는 사랑과 봉사이며 그 수단도 정당해야 한다.

4. 사회윤리

먼저 석존께서는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 한사람이 휼륭한 인격자가 되도록 말씀하셨다. 휼륭한 인격자란 다름 아닌 사섭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사섭법이란 남에게 물질과 가르침과 위안을 베풀어주는 보시(布施), 남에게 정직하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화해시키는 말을 하는 애어(愛語), 남과 사회를 돕고 이롭게 하는 이행(利行), 남과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반드시 함께 해주는 동사(同事), 이 네가지 실천을 말한다. 이렇게 사섭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휼륭한 인격자이다. 이와 같이 사섭법이란 자리와 이타가 중심이 되는데, 다른 사람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배려가 구체화 될 때 바로 이태행이 된다. 또한 이타행의 실현에 의해서만 화홥과 협동에 의한 이상적인 사회 건설이 이루어 질 수 있겠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있어서는 스승은 제자를 잘 가르치며, 가르침을 잘 지키도록 하고 제자는 스승에 대해 예를 갖추고, 가까이에서 모시고, 올바른 가르침을 배워야 하고, 시중을 들고, 공손한 태도로 가르침을 받으며 스승에게 봉사해야 한다.

(무릇 제자인 자는 오사로써 스승에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스승 앞에서는 반드시 기립(起立)하고, 둘째 스승을 가까이하여 잘 모시고, 셋째 스승의 말씀을 잘 듣고, 넷째 스승을 존중하고, 다섯째 가르침을 모두 기억하는 일이다. 한편 스승도 또한 제자를 오사로써 보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제자를 잘 가르치고, 둘째 이미 배운 것을 잘 기억하게 하고, 셋째 모든 학문을 남김없이 가르치고, 넷째 좋은 친구를 알려주고, 다섯째 방소(方所)에서 보호하는 일이다. 木村泰鉉 著, 박경준 譯. 『原始佛敎 思想論』, (경서원, 1992), p.269.)

Sn.445. 그들은 내 가르침을 실행하면서 게으르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근심할 것이 없고, 욕망이 없는 경지에 그들은 도달하리라."

Sn.482. 스승이시여, 저 같은 사람은 보시를 받을 수 있는 사람, 제사 때 찾아가 공양을 드릴 사람을, 저는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 알고 싶습니다.

Sn.534. 가르침을 듣고 나서는, 세상의 옳고 그른 모든 이치를 잘 알고, 모든 일의 정복자, 의혹이 없는 사람, 해탈한 사람, 괴로움이 없는 사람을 <박식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Sn.814. 탐닉하는 자의 파멸을 말씀해주십시오.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 우리도 멀리할 것을 배우겠습니다.

Sn.933. 잘 분별하고 늘 조심해서 배우라. 모든 번뇌의 소멸된 상태가 <평안>임을 알고, 고타마의 가르침에 게을리 하지 말아라.

친구 간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윤리의식은 사섭법으로 서로간의 봉사가 강조된다. 붓다는 좋은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를 구분한다. 좋은 친구는 도와주는 친구, 어려울 때나 즐거울 때나 여전한 친구, 위험을 생각하고 말해 주는 친구, 동정해 주는 친구 등 많을 것이다. 이에 반해 좋지 못한 친구는 말뿐인 친구, 감언이설을 하는 친구 등이다. 친구에 관한 것은 위의 본문 중 대인관계에서 설명하였기에 다시 설명하지는 않겠다.

(무릇 집안의 아들 된 자는 오사로써 친구에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보시이고, 둘째 애어이고, 셋째 이행이고, 넷째 동사이고 다섯째 악평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또 다른 친구 역시 오사로써 그에게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친구를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고, 둘째 이미 유혹에 넘어간 친구에게는 그 재산을 보호해 주고, 셋째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의지처가 되어주고, 넷째 불행에 처했을 때 못본 체하지 말고, 다섯째 그의 자손까지도 존중하는 것이다.)

5. 직업윤리

석존은 먼저 정당한 직업을 배우고, 이 직업을 통해서 얻은 재물로 가정을 꾸려가며, 여력이 있으면 저축하여 불시에 대비하는 것이 곧 건전한 가정생활의 기초가 된다고 설하였다. 석존은 이처럼 저축을 장려하였지만, 지나치게 절약하여 수입에 비해 터무니없이 궁핍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도 배척하였다.

일찍이 발가(跋迦, B(V)yagghapajja)라고 하는 나이 어린 바라문(婆羅門)이 석존께, “어떻게 하면 현세에 안락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석존은 사법(四法)을 실천하라고 가르쳤다.

(사법은 방편구족(方便具足), 수호구족(守護具足), 선지식구족(善知識具足), 정명구족(正命具足)이다. 첫 번째 방편구족이란 직업적 수양의 완비를 말하고, 두 번째 수호구족이란 재물의 보존을 말하며, 세 번째의 선지식구족이란 착한 친구와 사귀어 도덕적 수양을 쌓는 것을 말하고 네 번째의 정명구족이란 재물을 낭비하지 않음과 동시에 지나치게 인색하지 않음과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루는 생활을 영위함을 말한다. 즉 정명구족은 낭비를 피함과 동시에 인색함을 피해야 함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석존은 수입에 비해 너무 사치스러운 생활(ura jivika)을 영위하는 것을 優蕓鉢離果에는 씨앗이 없음에 비유하고, 수입에 비하여 너무 궁핍한 생활은(kasira jivika)을 영위하는 것을 餓死狗(ajadhumarika)에 비유하여 이러한 것들을 경계하고 있다. 석존은 여기에서도 중도(中道)의 생활을 주장하신다. 석존은 생계를 세우는 도를 가르친 뒤에 후세안락의 4법을 설하던 중, 그 하나로서 시구족(施具足, cagasampada)의 법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무소득(無所得)의 마음으로 해탈시(解脫施, muttacaga)를 행해야 하는 법이다. 경제적 안정은 가정을 도덕적이게 하는 기초임과 동시에, 재물을 얻는 것도 재물을 쓰는 것도 모두 도덕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 불교의 근본정신이다. 그러므로 직업 또한 건전한 직업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하며 부지런히 재산을 모아야 한다. 합당한 일을 하고 인내로써 부지런히 노력하고 근면하는 사람은 재물을 얻게 된다.

Sn.187. 때와 장소에 맞게 일을 하며 잘 참으며 노력하는 사람은 능히 재산을 얻는다.

Sn.79. 노력은 내 황소이어서 나를 안온의 경지로 실어다 줍니다.

Sn.266. 인내하는 것, 온순한 것, 수행자들을 만나는 것, 때로는 이치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 이것이 위없는 행복이다.

Sn.184. 사람은 신앙으로써 거센 흐름을 건너고, 정진으로 바다를 건넌다. 근면으로써 고통을 초월하고, 지혜로써 완전히 청정해진다.

직업에는 올바른 직업과 올바르지 않는 직업이 있다. 올바른 직업은 농업, 상업, 목축, 전당포, 임대업, 건축업, 관리, 계산업 등이다. 올바르지 않은 직업은 무기 판매, 노예 거래, 고기 판매, 도살자, 사냥꾼, 어부, 도둑, 사형 집행인 인데 그 외 악업을 짓는 여러 직업을 말한다.

(원시불전에는 고기를 팔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는 것 같지만, 술을 팔고 사는 것은 용인되지 않는다. 이밖에 인신매매는 불교에서 엄격히 금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위에서 열거한 내용 중에서도 그것이 남을 해롭게 할 목적이 아닌 경우, 예컨데 극약이라 할지라도 어떤 질병을 치유할 목적으로 독약을 제조하였다면 결코 범계가 되지 않는다.)

6. 경제윤리

근본불교의 경제윤리는 먼저 이원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출가자의 경제윤리와 재가자의 경제윤리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출가자의 윤리는 출가자로 하여금 절대로 경제적인 활동, 즉 이윤을 추구하는 행동을 엄하게 금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출가자는 절대적인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출가자는 금전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고, 출가 수행자들은 수행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물질만을 그것도 신도들로부터 보시를 통해 받아야만 한다.

다음으로 재가자의 경제윤리는 출가자에 비하여 매우 적극적이다. 석존께서는 재산을 모으는데 적극적으로 힘써야 하며 재가자이 경제활동에 있어서 신앙과 덕행등 올바른 도덕과 법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할 것을 말씀하셨다.

Sn.182. 이 세상에서는 신앙이 사람에게 으뜸가는 재산이다. 덕행이 두터우면 안락을 가져 온다. 진실이 맛 중의 맛이며, 지혜롭게 사는 것이 최상의 생활이라 할 수 있다.

Sn.187. 때와 장소에 맞게 일을 하며 잘 참으며 노력하는 사람은 능히 재산을 얻는다.

Sn.404. 법답게 얻은 재물을 가지고 부모를 섬기라.

Sn.487. 고타마시여, 저는 참으로 베푸는 사람이며, 관대하여 구하는 바에 응하며, 법에 따라 재물을 구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재산사용을 금하고 있다.

Sn.102. 재물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만을 누리기 위해서 그것들을 사용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파멸의 문이다.

Sn.112. 술과 고기를 분별없이 먹으며, 재산을 마구 낭비하는 여자, 또는 이런 사내에게 재정권을 맡긴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Sn.122. 법정에서 증인을 설 때 자신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또는 돈 때문에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컬어<비천한 사람>이라 한다.

Sn.124. 재산이 많으면서도 늙은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컬어 <비천한 사람>이라 한다.

위와 같이 재산을 운용한다면 남을 괴롭히는 것은 물론이며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길이 될 것이다. 석존께서는 재가자들이 재산을 열심히 모으되 반드시 정당한 규범에 따라서 재산을 모을 것을 당부하신 것이다.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불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종사할 직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의 습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사실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올바른 직업의 윤리와 경제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근본불교에서는 세속인에게 매우 금욕적이거나 극단적인 인내생활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중도사상에 의하여 수입과 지출의 균형 잡힌, 당시 사회상식으로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생활수준의 유지를 승인하고 있다. 비유하면 상인이나 혹은 상인의 도제가 있어서 적당한 이윤과 소실을 알며 또한 그와 같은 사람은 재산의 수입과 지출을 알아서 균형이 잡힌 생활을 하고 너무 사치에 떨지 않고 너무 궁핍에도 떨지 않는다. 경제인은 근면하게 생업에 종사하며 이와 같이 중도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노력하고 인내하는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