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념처경을 중심으로 본 초기불교수행법 / 미산
초기불교를 다시본다
▒ 차 례 ▒
1. 머리말
2. 불교 수행의 공통원리
원리 1: 밖에서 안으로
원리 2: 지금 여기
원리 3: 마음챙김
원리 4: 분별심을 떠나 있는 그대로 보기
원리 5: 거문고 줄을 조율하듯 정진하라
3. 초기불교 수행의 이론
1) 세간적인 정견과 출세간적인 정견
2) 팔정도는 불교의 종합수행법이다
4. 초기불교 수행의 실제
1) 초기불교의 수행 관련 3대 경전
2) 사띠를 중심축으로 한 사마타와 위빠싸나
3) 《대념처경》에 나타난 사념처관법
(1) 《대념처경》의 구조
(2) 사념처 수행의 요건과 실제
① 신ㆍ수ㆍ심ㆍ법의 수관 ② 열심히 정진함
③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④ 탐착과 혐오의 분별심 버리기
5. 맺음말: 한국의 수행 풍토 속에서의 초기불교 수행법의 의미
1. 머리말
요즈음 들어 수행에 대한 관심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한국불교에만 이런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추세로, 특히 서양불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한마디로 ‘수행불교’라 할 수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수행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걸까? 아마도 종교의 수행을 통해 행복과 평화, 현대사회의 생존경쟁에서 지친 신심(身心)의 안정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 하지만 인간들의 삶의 현장은 온갖 고통과 번민, 갈등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삶의 과정은 이러한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고통을 없애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오랜 인류문명사를 통해서 인간들은 그 구체적인 방법들을 강구해 왔다. 인간이 창조해낸 종교, 철학, 의학, 과학, 또는 심리학 등과 같은 다양한 이론체계와 실천체계들은 고통을 종식시키고 행복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물론 이 가운데는 고통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일시적인 안정과 평화를 도와줄 뿐 또 다른 번민과 문제를 가져다 준다.
붓다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수행하기 전에 이미 알라라 카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다라는 인도 전통 수행자들을 스승으로 명상수행을 한 적이 있다. 《아리야빠리웨사나경(Ariyaparivesa?a sutta)》에 따르면, 붓다도 이들에게서 한동안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과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배웠다.1) 1) M. I, 163-165, 240; M . II, 94, 212; Vin. I, 7.
그러나 그들의 방법은 극단적이었고 궁극적인 안심입명(安心立命)에 이르는 ‘깨침과 열반의 길’은 아니었다. 붓다는 그들을 떠나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보리수 아래서 사색과 명상을 거듭한 끝에 깨침과 열반을 성취했다. 붓다가 새롭게 발견하여 정리 개발한 수행법은 사성제로 요약되는 ‘연기와 중도의 길’이었다. 사성제란 인생이 고통에 가득 찬 이유가 번뇌와 집착에 있음을 인식하고, 팔정도를 실천하면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번뇌와 집착의 원인은 모든 존재 현상이 영원하며, 존재의 이면에 아뜨만(atman, 自我)과 같은 변치 않는 실체가 있다는 잘못된 관념(산냐, sanna)이다. 이런 실체 관념의 척파(斥破)는 정견(正見)을 통해서 가능하며, 팔정도 가운데 특히 정념(正念)과 정정(正定)의 수행을 구체화한 초기불전의 호흡관, 사념처관, 염신관 등의 수행 행법(行法)들은 고질적인 실체관념으로 인해 생긴 미세한 번뇌조차도 녹여내 해탈 열반의 길로 인도한다.
본 논문에서는 모든 불교 수행에 통용될 수 있는 공통원리와 팔정도의 수행체계에 따른 초기불교 수행의 이론적 바탕을 규명해 보고, 《대념처경》과 그밖에 수행 관련 초기 경전들에 나오는 사념처관의 구체적인 과정과 실제 행법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또한 조계종 수행의 커다란 축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간화선 수행 전통 속에서 이런 초기경전의 수행법들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간략히 언급하려고 한다.
2. 불교 수행의 공통원리
붓다가 해탈의 길을 제시하신 후로 수많은 수행법들이 시대와 지역의 특성에 맞게 전승 발전되어 왔다. 초기불교시대에 성행했으리라 추측되는 행법들은 주로 호흡관법과 사념처관이다. 하지만 부파불교시대와 대승불교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더 다양한 수행법들이 수행이론과 함께 발달하였다. 티베트에서는 번쇄한 교리적 바탕과 세밀한 실제 행법들을 중심으로 밀교 수행이 강조되었다.
또한 중국에서도 불교의 발전이 가장 융성할 시기에 선불교라는 새로운 형태의 수행운동이 전개되었다. 조사선은 기존의 교리적 언어의 관념화를 척파하고 어떠한 실체관념도 용납하지 않는 새로운 이론과 언어로 붓다의 근본정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수행법이다.
비록 여러 가지 수행법들의 언어의 표현과 구체적인 행법들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르게 성장했다 할지라도, 이들 수행법 속에서 일관성 있는 이론적 토대를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불교전통의 모든 수행법들이 붓다의 근본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원리들은 초기불교의 수행뿐만 아니라, 부파불교, 대승불교, 밀교, 그리고 선불교의 수행에 이르기까지 두루 적용할 수 있는 불교의 공통적인 수행 원리들이다.2) 2) 불교수행의 공통원리에 대한 서지학적 연구는 진행 중에 있으므로, 이 논문에서는 문헌적 근거를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연구가 진행되는 대로 다른 지면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 원리들의 특징은 행복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해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행복은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멸되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리 1: 밖에서 안으로
흔히 사람들은 행복을 밖에서 구한다. 인도의 우화집에 보면 행복은 인간들의 가슴 속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인간들이 행복을 쟁취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결과 불행지고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브라흐만이라는 최고신이 모든 것을 밖에서만 구하는 인간들의 속성을 잘 알아 행복을 가슴 속에 감추고 밖에서는 열지 못하도록 특수 잠금장치를 해놓았다고 한다. 이 행복의 문은 안에서만 열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눈ㆍ귀ㆍ코ㆍ혀ㆍ몸의 다섯 감각기관(五感)을 통해서 끊임없이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의 외부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여섯 번째 인식기관인 마노(mano, 意)는 오감을 통해 입력된 감각정보와 이미 저장된 다른 인식정보들과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담마(dhamma, 法)라는 대상을 인식한다. 즉 안ㆍ밖의 모든 정보들은 마노의 대상인 담마로 처리된다.
이 담마들은 마노에 의해서 항상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어 이에 따라 탐착과 혐오의 분별심을 일으키게 된다. 또한 몸과 마음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것을 보호하고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끝없이 밖을 향해서 구한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요인이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안에 있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필터를 통해서 처리된 정보는 불행의 업력만 축적하게 되지만, 반면에 ‘무상ㆍ고ㆍ무아’라는 삼법인(三法印)의 필터를 거친 정보는 행복의 길인 해탈ㆍ열반을 실현하는 튼튼한 기초를 마련해 준다.
결국 모든 물심(物心)의 현상(phinomina, dhamma), 즉 담마는 항상 밖이 아닌 안에서만 처리되며, 어떤 필터를 통해서 여과되느냐에 따라 행복 아니면 불행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처럼 수행의 제1원리는 항상 마음의 빛을 ‘밖에서 안으로’ 돌이켜(廻光反照) 이 물심현상의 향방을 면밀히 살피는 것이다.
원리 2: 지금 여기
물심현상의 향방을 면밀히 살피는 것, 즉 담마의 성찰은 바로 지금 여기 구체적인 삶 속에서 매순간 되어야 한다. 지금 여기를 놓쳐버리면 담마는 모두 담마라는 관념(산냐)으로 변해버려 ‘나’라고 하는 필터’를 거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지금 여기에 깨어 있으면 ‘무상ㆍ고ㆍ무아’라는 삼법인(三法印)의 필터로3) 걸러져 법의 관념화를 방지할 수 있게 된다. 3) 간화선의 경우는 화두의 필터로 그 밖의 다른 수행법은 각기 다른 필터로 법의 관념화를 막는다.
초기경전에서는 법의 관념화를 막는 방지 장치를 ‘dit.t.he va?dhamme’(딧테 와 담메)라는 숙어로 표현하고 있다. 직역하면 ‘바로 보여지는 현상(법)에서’이고 ‘지금 여기(here and now)’로 의역할 수 있다.4) 4) 《금강경》에는 ‘dr.s.t.e eva dharme’로 되어 있고, 현장은 ‘以現法中’으로 번역했다.
즉 지금 여기 눈에 보이는 현상을 놓치지 않고 그 현상의 본질을 간파하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중부》(中部, Majjhima Nikaya 131경) 등에서 지금 여기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신다.
과거를 되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넘보지도 마라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현상(法)을 바로 여기서 통찰하라.5) 5) M. III, 187.
이처럼 과거나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오직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않도록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여기를 놓쳐버리면 고착된 관념, 즉 산냐에 떨어지고 만다.
원리 3: 마음챙김
수행의 또 다른 원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다. 늘 마음을 챙겨 지금 여기 자신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아는 것이다. 마음챙김은 사띠(sati, 念)의 우리말 번역이며 알아차림은 삼빠자나(sampajanna)의 옮김이다. 보통 합성어로 사띠-삼빠자나(sati-sampajanna)로 쓰이는데, 한역은 정념ㆍ정지(正念 正知)로 번역된다.
최근에 사띠의 우리말 번역이 마음챙김, 마음지킴, 수동적 주의집중 등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사띠의 온전한 뜻을 다 드러내지는 못한다. 필자는 편의상 고요한 소리의 책자에 주로 쓰고 있는 마음챙김이라는 번역어로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화두챙김이라는 단어가 이미 통용되고 있고, 사띠는 어떤 불교의 마음 수행법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행법이기 때문이다.
즉 간화선에서 늘 화두를 놓치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게 하는 것과 화두를 들고 성성하게 깨어 있는 상태는 사띠의 기능 때문이다. 염불이나 주력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생각생각 불보살의 명호나 만트라를 놓치지 않고 늘 마음에 챙기는 것이 사띠이다. 이처럼 ‘챙김’이라는 능동적인 기능과 ‘깨어 있는 마음’이라는 수동적 기능을 조화롭게 공유하고 있는 것이 사띠이며, 모든 불교 수행에 있어서 사띠는 중심축의 역할을 한다. 초기불교 수행체계인 37조도품에 있는 5근(五根)/ 5력(五力: 信ㆍ智ㆍ精進ㆍ定ㆍ念)의 경우와 간화선의 3가지 필수요건(大信心ㆍ大憤心ㆍ大疑心)을 비교해 보면 사띠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다.
오력에서 염(念), 즉 사띠는 접시저울의 중심축과 같은 역할을 하며 저울의 양접시에 믿음(信)과 지혜(智) 그리고 정진(精進)과 삼매(定)가 각각 서로 짝하여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수행의 진전이 있게 된다. 간화선에서는 대의심을 축으로 하여 대신심과 대분심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대의심은 지혜, 삼매, 그리고 마음챙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특수한 심리현상이다.
대의심은 지혜의 근원지인 자성청정심에의 계합을 대전제로 한다. 의단이 형성되면 모든 분별경계가 붙을 수 없고, 의단 자체가 지혜의 발광체라고 볼 수 있다. 대의심이란 늘 화두와 함께 하는 것, 즉 화두챙김이 있으므로 가능하며 이것이 사띠이다. 사띠가 지속적으로 현전하면 자연히 마음이 안정되고 삼매가 이루지는 것이다. 이처럼 사띠는 불교 수행 전반에 걸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원리 4: 분별심을 떠나 있는 그대로 보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심식작용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는 안팍의 모든 정보들은 마노의 대상인 담마로 처리된다. 이것들은 자아의식과 결부되어 항상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어 이에 따라 탐착과 혐오의 분별심을 일으키게 된다.
불행의 업력을 축적하는 ‘나’라고 하는 필터를 통해서 정보가 처리되기 전에 사띠로써 해탈ㆍ열반 쪽의 필터를 거치도록 조정을 하게 되면 탐착과 혐오의 분별심이 아닌 평정심이 일어나게 된다. 평정심은 지금 여기 눈에 보이는 현상을 놓치지 않고 그 현상의 본질을 간파하기 때문에 치우침이 없다.
치우침이 없는 중도의 입장에서 물심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직관의 힘이 커진다. 자아의 필터로 걸러진 현상은 항상 좋다/싫다의 분별심을 떠날 수 없기에 현상의 본질과 본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신심명》에도 ‘다만 애착과 증오의 마음만 떠나면 모든 현상들의 본 모습이 통연히 명백하리라’고 하였다. 애착과 증오의 분별심에 걸려 있으면 사물이나 현상의 한 측면만을 보고 판단하기 쉽지만, 분별심을 벗어나 평정심을 회복하면 현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여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직관적으로 통찰할 수 있다.
원리 5: 거문고 줄을 조율하듯 정진하라
모든 불교 수행뿐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성취의 원리는 중도의 입장을 견지하며 쉬지 않고 꾸준히 한 곳에 매진하는 것이다. 초기경전에서 대승경전, 선어록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정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간화선의 3대 요건 중에 하나가 대분심을 발하여 정진함임을 볼 때 정진이 수행원리의 근간이 됨을 알 수 있다.
초기경전에 보면 소나라는 수행자는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수행하였으나 번뇌와 욕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문의 길을 포기하러 온 소나에게 붓다는 과거 세속에 있을 때 거문고를 잘 탓느냐고 물어보신다. 부유하게 살던 소나였기에 항상 가무를 즐기며 거문고를 연주하며 지냈다고 답했다. 그러자 붓다는 마치 거문고 줄을 조율하듯 정진하라고 충고하신다.
팽팽한 거문고 줄처럼 너무 지나쳐도 안되고 그렇다고 느슨한 거문고 줄처럼 너무 늘어져 게을러도 안 된다. 중도를 지키는 것이 으뜸이며, 꾸준히 쉬지 않고 하면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간화선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대분심을 발하여 공부하라 했다고 육단심으로 밀어부치면 상기병에 시달리게 되어 더 이상 정진을 못하게 된다. 그러나 정진심을 늦추면 삼매에 추진력이 없게 되고 바로 혼침에 빠지게 된다. 치우치지 않는 적정한 선에서의 긴장감과 추진력을 가질 때 최상의 정진 효과를 낼 수 있다.
위와 같은 불교 수행의 공통원리를 염두에 두고 초기불교 수행의 이론을 살펴보면 많은 면에서 초기의 형태를 띠고 있는 수행의 이론과 실제가 모든 불교 수행의 근거와 토대를 마련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 초기불교 수행의 이론
불교는 고통의 근원을 파헤쳐 궁극적 행복과 완전한 해탈을 지향하는 종교이다. 인간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2,500여 년 전 부처님은 고통의 현상과 그 원인의 진단, 그리고 고통을 치료하기 위한 목표와 실제적인 치료방법을 개발해 세상에 내놓으셨다. 이로써 인간의 고통에 대한 종합적인 교리체계와 실천체계가 완성되었다.
불교의 핵심적인 교리체계는 삼법인(三法印)과 연기설(緣起說)이며 실천체계는 사제설(四諦說)이다. 모든 존재현상의 특성은 덧없이 변하는 것(諸行無常)이며, 주재(主宰)하는 실체가 없고(諸法無我), 애착의 삶은 모두 괴로움(一切皆苦)이다.
이것을 삼법인이라 하는데 모든 존재현상이 시간적으로 서로 조건지워져 있으면서(時間的 因果關係性) 덧없이 변하므로 무상한 것이며, 또한 공간적으로 서로 관계되어 있으므로(空間的 相關關係性) 나라고 하는 독립적인 실체가 없어 무아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런 삶의 시공간적 연기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모든 존재현상을 시간적으로 영원하며 공간적으로 어떤 실체로써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집착한다. 바로 이런 집착과 착각이 인간들을 고통의 늪 속에서 허덕이게 한다.
고통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실천적 방법론이 사제설인데, 이는 붓다께서 깨치신 후에 최초로 설한 바라나시 사슴동산 설법에 잘 나타나 있다.6) 6) 바라나시 사슴동산 설법은 율장(Vin. I, 8-10)과 경장(M. I, 171; S. V, 421)에 수록되어 있다.
사제의 첫째인 고제(苦諦)는 인간의 괴로워 하는 상태에 대한 교설이며, 둘째인 집제(集諦)는 이러한 괴로움이 발생되는 원인에 대한 교설이다. 셋째 멸제(滅諦)는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에 대한 교설이며, 마지막 도제(道諦)는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붓다는 고통의 구체적인 소멸 방법으로 여덟 가지의 바른 삶(八正道, ariyo at.t.hangiko maggo)을 위한 수행법을 제시하였다.7) 7) D. II, 311; M. I, 251; S .Vm 8-10 참조.
팔정도는 근본불교 수행의 요체일 뿐만 아니라 유구한 세월을 통해 많은 수행자들에 의해 개발되고 계승된 불교의 각종 수행법의 토대가 되고 있다. 팔정도에 대한 전체적인 논의에 앞서, 팔정도의 첫 덕목인 정견이 왜 그토록 중요한 지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1) 세간적인 정견과 출세간적인 정견
정견은 모든 불교수행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정견은 모든 불교수행의 시작이며 끝이다. 정견이라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수행의 결과는 잘못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중부》(117경)의 《마하짜따리사카경(Maha?atta?沖saka-sutta)》에는8)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적 능력이 바로 정견이다’라는 의미로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다. “비구들이여, 정견은 팔정도 수행의 시작이다. 왜 정견이 시작인가? 8) M. III, 72.
잘못된 견해는 잘못된 견해라고 이해하고 바른 견해는 바른 견해라고 이해한다.” 그러므로 이 경에서 붓다는 수행하기 전에 정견을 먼저 확립하도록 가르친다. 정견의 확립은 모든 존재의 실상을 무상과 고와 무아로 보고, 사성제의 관점에서 보아 모두 연기해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처럼 연기적으로 파악해야 고정된 판단 근거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정견으로 성숙하고, 정견을 통해서 정화될 수 있다. 자유로 가는 길, 즉 명확한 통찰력을 얻는 것을 출세간적 정견(lokuttara sammadit.t.hi)이라 한다. 이미 성자의 영역에 들어선 예류(預流, sota?anna) 이상의 성자들만이 이런 출세간적인 정견을 가질 수 있다. 반면에 범부들은 아직 번뇌가 있어 윤회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지만 인과법을 믿고 덕스러운 삶의 태도로 보시와 기도를 실천하고 부모님을 잘 섬기며 바르게 수행하는 브라흐만과 사문 수행자들을 믿고 따른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세간적 정견(pun???ha?iya?sammadit.t.hi: lokiya sammadit.t.hi)이라 한다. 이 경전에서 정견을 세간과 출세간의 두 가지 관점에서 분류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보통 사람들의 신행 생활은 대부분 처음엔 세속적인 가치관과 실용적 동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 경은 이러한 일반적인 태도를 일단 정견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런 태도의 한계를 인식하고 한 차원 높여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수행이 깊어짐에 따라 이 세간적 가치관은 마침내 출세간적인 가치관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비로소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음을 이 두 가지 정견의 대비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더 이상의 업그레이드가 필요 없는 완전한 깨침의 경지를 증득할 때까지 수행을 통해서 정견, 즉 바른 견해를 끊임없이 키워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견은《마하짜따리사카경》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듯이 팔정도의 다른 모든 덕목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도착점인 것이다.
2) 팔정도는 불교의 종합수행법이다
팔정도의 수행 덕목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수행의 핵심사항들이 종합적으로 집대성되어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팔정도의 각 덕목들은 정견을 얼마나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수행결과가 달라진다. 팔정도 실천의 출발점은 정념이고 그 노력이 정정진이며 이것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집중에너지가 형성되면 정정, 행동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정어, 정업, 정명이다.
또한 팔정도는 초전법륜에서 붓다가 제시한 대표적인 불교수행법으로서 여덟 가지 측면에서의 수행을 뜻한다. 이러한 팔정도를 계(戒, 정어, 정업, 정명)ㆍ정(定, 정정진, 정념, 정정)ㆍ혜(慧, 정견, 정사유) 삼학(三學)의 구조 속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수행내용에 따라 세 가지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삶과 사물에 대해서 올바른 견해를 갖는 것이다. 이는 팔정도의 첫 덕목인 정견에서 제시되는 것으로서 불교의 기본적 교리를 듣고 공부하여 올바른 이해를 하는 것이다. 즉 불교의 근본 가르침인 사성제, 삼법인, 십이연기, 중도설, 무아설 등을 깊이 궁구하여 삶과 존재의 실상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정립하는 것이다.
둘째는 올바른 견해에 근거하여 실천적 노력을 하는 것이다. 정사유로부터 정정진에 이르는 수행은 사고, 언어, 행동, 생활을 포괄하는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다.
셋째는 불교의 가르침을 실제로 체험하는 수행이다. 정념과 정정이 이러한 체험적 수행에 해당한다. 즉 정념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깊이 관찰하여 괴로움과 번뇌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닫고 정정을 통해 올바른 정신 집중을 하여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난 적멸한 경지인 삼매를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팔정도에 대한 전체적인 구성을 염두에 두고, 이제 근본불교의 구체적인 수행의 행법(行法)을 잉태시킨 정념과 정정의 내용인 사념처관법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자.
4. 초기불교 수행의 실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팔정도는 불교의 종합수행법이다. 특정한 기법이나 테크닉으로 안정과 평온의 효과를 얻으려는 일시적인 처방전이 아니라, 고통의 근원적인 치유를 통해 삶을 총체적으로 변화 향상시키는 수행의 행법, 즉 정견이라는 지혜를 완성하는 행법이다. 정념과 정정은 지혜의 완성을 위한 행법의 핵심이며 사념처관과 호흡관 등은 각각 정념과 정정의 내용을 실제 행법화하여 지혜(정견)를 완성케 하는 것이다
1) 초기불교의 수행 관련 3대 경전
초기불교의 수행 관련 3대 경전은 《대념처경(大念處經, Mahasatipat.t.-hana-sutta)》,9) 《염신경(念身經, Ka?agata?ati-sutta)》,10) 그리고 《입출식념경(入出息念經, Anapanasati-sutta)》이다.11) 위의 경들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독특한 수행체계를 가지고 있다. 9) 《대념처경》(D. II, 290-315)엔 사성제의 교설이 있으나 《염처경》(M. I, 55-63)엔 빠져 있다. 《염처상응》 (S. V, 141-192) 참조. 10) M. III, 88-99. 11) M. III, 78-88.
《대념처경》에서는 마음챙김의 대상을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으로 하고, 《염신경》에서는 몸의 다양한 현상들을 대상으로 하며, 《입출식념경》은 몸의 여러 현상들 중에서 호흡 현상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이 경들이 공통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행법은 각각의 제목에 나타나 있듯이 사띠(sati), 즉 마음챙김이다. 여러 현상(法)에 대한 마음챙김을 중심축으로 하여 지혜(정견)와 삼매(정정)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 경들이 궁극적으로 가르치고자 하는 바는 해탈ㆍ열반의 길이지만,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경로는 각기 다르다. 《대념처경》은 몸·느낌·마음·법의 4가지 대상을 설하고 있지만 결국 법념처로 귀결되며, 5가지 장애의 극복과 7각지와 4성제의 수관(隨觀)을 통해 해탈에 이른다.
《염신경》은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통해서 4선과 5신통을 개발하는 삼매수행으로 이끌어 마지막 미세번뇌까지도 소멸하여 누진통을 거쳐 해탈을 성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입출식념경》은 처음 단계에서는 삼매수행으로 들어가지만 전체 구조는 사념처로 짜여 있고 칠각지를 통해 해탈에 이른다.
2) 사띠를 중심축으로 한 사마타와 위빠싸나
위의 모든 경들은 사띠를 중심축으로 하여 수관과 내관의 행법이나 사마타 행법을 가르친다. 여기서 사띠를 중심으로 지혜 수행을 하는 것을 위빠싸나(vipassana in-sight, 內觀), 즉 내관 혹은 줄여서 관(觀)이라 한다. 역시 사띠를 중심으로 삼매 수행을 하는 것을 사마타(samatha, 止)라 한다.
이 둘의 중요한 차이점은 전자는 지혜의 계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후자는 마음의 고요와 평안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위빠싸나란 문자 그대로 모든 물심의 현상을 분석해서 안으로 깊이 통찰한다는 뜻이다. (vipassana 여성명사로서 접두어 vi(분리해서)와 동사 dr.(보다)에서 파생된 중성명사 passana(봄, 통찰)의 합성어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현상의 본질을 무상ㆍ고ㆍ무아로 수관(隨觀, anupassana 하는 것을 위빠싸나라 한다.
반면에 찰나멸ㆍ찰나생하는 마음(citta)들이 호흡이나 몸의 단일한 현상에 몰입되어 어떤 다른 대상에 의해 동요되지 않고 생멸하는 마음이 순일하게 흐르는 상태를 삼매(samadhi)라 한다. 또한 이 맑고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을 사마타 행법이라 한다.
사마타 행법 자체로는 번뇌를 멸해 지혜를 발현케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주 극히 미세한 번뇌까지를 제거해 해탈에 이르는 데 최적의 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매우 중요한 도구의 역할을 한다. 마음이 극도로 순일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극미세의 근본번뇌를 감지해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예로부터 사마타와 위빠싸나의 균형잡힌 실천은 이후 발달된 부파와 대승불교의 모든 가르침에서도 한결같이 강조되었다. 천태선나 간화선의 수행전통에서 지관균행(止觀均行)이니 정혜쌍수(定慧雙修)니 하는 언급들이 바로 그것이다.
지와 관을 균등하게 혹은 선정과 지혜를 조화롭게 닦아가기 위해서 접시저울의 중심축과 같은 사띠, 즉 염처수행이 선정과 지혜의 양쪽의 접시에 끊임없이 힘을 전달하고 있어야 한다. 초기불교의 전형적인 실천체계로서 사념처(四念處)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념처경》은 이 사념처의 수행을 대변하는 경전적 근거라는 점에서 가히 주목할 만한 문헌이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의 대표적인 행법인 사념처 수행을 《대념처경》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3) 《대념처경》에 나타난 사념처관법
사념처관법은 팔리 5부 니카야 중에서 《중부》의 《염처경(念處經, Satipat.t.hana-sutta)》과 《장부》의 《대념처경(大念處經, Mahasatipat.t.hana-sutta)》에12) 설해져 있다. 먼저 《대념처경》의 전체적인 구조를 정리해 본다. 12) 각주 9 참조.
(1) 《대념처경》의 구조
《대념처경》은 기본적으로 신·수·심·법(身受心法)을 관찰의 대상으로 한다. 이것을 4념처라 하는데, 경전은 이 4가지 염처를 기본축으로 하여 각각의 특성에 따라 세부적인 현상에 대한 관찰을 제시한다. 신념처에 14가지의 육체적 현상, 수념처에 9가지의 감각적 현상, 심념처에 16가지의 심리적 현상, 그리고 법념처에 5가지 범주의 정신 육체적 현상에 대한 관찰을 정형구(定型句)와 함께 열거하고 있다.
이같은 관찰들이《대념처경》의 본론을 구성하고 있고 이 모든 현상들의 생멸 무상성(生滅 無常性)을 골자로 하는 정형구(III)가 각각의 수행법에 대한 설명 뒤에 21번 반복된다. 서론에서는 사념처 수행이야말로 슬픔과 괴로움을 떠나 영원한 행복의 세계인 열반에 이르는 유일한 길(eka?ana magga)임을 강조하는 정형구(I)와 함께 사념처 수행의 핵심을 나타내는 정형구(II)가 각 염처마다 한번씩 반복된다.
아울러 결론에서도 사념처 수행은 열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정형구를 반복하면서 수행에 소요되는 기간과 깨침의 성취에 대해 언급한다.
(2) 사념처 수행의 요건과 실제
《대념처경》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이 경이 제시하는 수행의 핵심은 위에서 언급한 불교 수행의 원리와 일맥상통한다. 먼저 사념처 행법의 전반적인 체계를 제시하고 있는 다음의 인용구를 살펴보자.
4념처, 여기서 4가지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마음챙겨 알아차리고 열심히 정진하는 비구는 세상에 대한 탐착과 혐오의 (분별하는) 마음을 놓아버리고 몸에서 몸의 수관(身隨觀)을 행한다……. 그는 느낌(감각)에서 느낌의 수관(受隨觀)을 행한다……. 그는 마음에서 마음의 수관(心隨觀)을 행한다……. 그는 법에서 법의 수관(法隨觀)을 행한다.13) 13) D. II, 290.
이 짧은 인용구에 사념처 수행의 키워드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① 신ㆍ수ㆍ심ㆍ법의 수관, ② 열심히 정진함, ③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④ 탐착과 혐오의 분별심 버리기 등만으로 사념처 수행의 중요한 개념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이론적인 배경은 이미 불교수행의 공통원리를 다루면서 언급했으므로 실제적인 행법을 중심으로 논의해 본다.
① 신ㆍ수ㆍ심ㆍ법의 수관
위의 ‘몸에서 몸의 수관(身隨觀)을 행한다’ 라는 등의 경문에서 주의해서 볼 점은 처소격으로 쓰인 몸에서(ka?e)라는 단어이다. 이때 처소격은 물심현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장(場)을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몸의 장에서의 현상들을(dhamma) 대상화하여 그 흐름을 따라 관찰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느낌의 장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대상화하여 그 흐름을 관찰하며, 마음의 장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대상화하여 그 흐름을 관찰한다. 또한 법의 장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대상화하여 그 흐름을 관찰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상들이란 몸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로써 호흡, 몸의 움직임(行ㆍ住ㆍ坐ㆍ臥), 몸 안의 각종 기관들과 부정(不淨)한 것들, 몸의 구성 요소(四大)들,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썩어 가는 모습들이다.14) 14) D. II, 291-297.
또한 느낌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은 즐거움, 괴로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음 등 순간순간의 감각과 감정들이다.15) 15) D. II, 297-299.
조건에 의해서 순간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총체적인 마음의 현상들이란 탐냄,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의 부정적인 의식 상태와 베품, 관용, 지혜와 같은 긍정적인 의식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법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은 초기불교의 주요 교설인 오개(五蓋),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칠각지(七覺支), 사성제(四聖諦)이다.16) 16) D. II, 299-300.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앞서 말한 몸, 느낌, 마음에 대한 현상들도 다름아닌 법(法), 즉 담마(dhamma)이다. 이제 여기에서는 수행의 전 과정이 요약 정리되면서, 위의 5가지 불교 교설의 틀 속에서의 법의 관찰을 하도록 되어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교리들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사량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 속에서 실제적으로 그 담마를 체험해 가는 것이다.
② 열심히 정진함
첫 번째 행법이 관찰법이라면 이것은 집중정진법의 이미지를 준다. ‘햇볕’ ‘열기’의 뜻인 a?a?a에서 파생된 용어인 a?a?沖란 ‘열성적인’ ‘열중하는’ ‘에너지가 충만한’이란 뜻이다. 인도의 건기 동안의 강열한 햇빛과 사방에 불을 피워 놓고 고행(tapas)을 하는 브라만교의 집중과 삼매의 명상 정진 문화를 연상하게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교경전에서의 이 단어의 용법은 고행이나 중도를 벗어난 자학행위가 아니라 위리야(viriya), 즉 정진이란 의미를 가진다. 거문고 줄을 조율하듯 치우치지 않고 꾸준히 조화롭게 정진하여 방일하거나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③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초기불교 관법 수행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지금 여기의 순간순간의 현상들을 포착하여 놓치지 않고 명료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처럼 사념처 수행의 가장 중요한 점은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의 행법을 완전히 터득하는 데 있다.
사실상 이 행법의 수련장은 명상센터나 깊은 산중의 선원뿐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지금 각자가 처해 있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행할 수 있다. 대인 관계에서 의견 충돌로 화가 치밀어 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성냄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 사념처 수행이 가능할까?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면서 짐을 두고 내리지 않을까 신경을 쓴다거나 혼잡한 곳에서 돈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여 짐과 돈지갑을 잘 챙겨야 하는 불안한 상태에서 어떻게 염처 수행을 해야 할까?
먼저 성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성냄은 탐진치라는 근본번뇌에 해당하는 매우 강력한 부정적 심리 에너지이다. 이것은 심념처(心念處) 수행의 영역이다. 이 행법의 요체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어떤 현상에 대해서라도 대상화하여 마음을 챙겨 알아차리는 것이다. 진심이 일어나면, 진심이라고 알아차리면 된다. 알아차리게 되면, 생겨난 진심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수행의 힘이 약한 일상의 마음으로는 진심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 진심을 다루는 법에 능숙하지 못하므로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성냄의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의 힘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면, 진심이 일어나는 순간 알아차릴 수 있고, 그 다음 순간 진심의 세력은 약해져 마침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수행에 의해 생겨난 지혜의 힘에 의해서 번뇌가 제어되는 과정이다. 진심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뿐만 아니라, 진심이 없는 마음이라는 긍정적인 마음도 정확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즉, 진심을 알아차린 후 진심이 사라졌으면, 진심이 사라졌음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알아차림이라는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부정적인 마음들은 사라지고, 긍정적인 마음, 청정한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긍정적인 마음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짐으로써 생겨난 긍정적인 마음도 집착의 대상이 된다면 결국 또 다른 번뇌인 탐착심(부정적인 마음)이 생겨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마음이 생겨나면, 생겨났음을 바로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이어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부정적인 마음도 긍정적인 마음도 거부나 집착의 대상이 아니라 정념과 정지(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의 대상이 될 때, 수행은 제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그대로 다른 상황의 예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고층 건물에 올라갔을 때 미리 조심스레 살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긍정적인 태도이며 두려움에 떨어 안절부절 안정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부정적인 마음 상태이다. 마찬가지로 혹시 짐을 놓고 내리지나 않을까, 돈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하여 미리미리 대비하여 잘 챙기는 것은 긍정적인 상태의 마음이며 노심초사하여 지나치게 불안해하는 것은 부정적인 태도이다.
그 어떠한 마음 상태가 되더라도 생겨나고 경험된 것은 알아차림의 대상이지, 집착의 대상은 아니다. 부정적인 요소가 없어지고, 긍정적인 요소가 생겨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요소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수행의 바른 길이다.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되는 좋은 마음의 순간들은 수행이 향상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향상된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잘 챙겨 깨어 있음을 지키는 것은 바른 수행의 첩경이다.
④ 탐착과 혐오의 분별심 버리기
마지막으로, 인간들의 이분법적인 심리상태를 극복해야 바른 사념처 수행의 길로 들어갈 수 있음 강조한 부분이다. 세간의 일상 생활을 잘 살펴보면 항상 ‘좋다-싫다’ ‘아름답다-추하다’ ‘나의 것이다-너의 것이다’ 등 분별의식 속에서 살아간다. 사념처 수행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첩경은 탐착해서 끌어들이거나 혐오하여 밀쳐내는 인간들의 고질적인 분별습관을 없애야 한다.
경문에서 탐착(abhijjha?은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은 강하게 탐착하여 끌어들이는 심리 에너지이고 혐오(domanassa)는 자신에게 해롭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거부하고 밀쳐내는 심리 에너지이다. 이런 심리적 에너지가 우리들의 삶 전체에 점철되어 있어, 이 에너지의 강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는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고통과 번민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
모든 불교수행의 목적은 우리의 의식 속에 깊게 뿌리내린 ‘자아’라는 강한 철옹벽을 녹여 없애는 데 있으며, 자아중심의 분별심에서 생긴 좋고 싫음의 두 극단을 지양하여 지혜의 발현과 자비의 실천을 꾀하는 데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념 수행이 구체화된 사념처 행법의 전반적인 체계를 살펴보았다.
5. 맺음말: 한국의 수행 풍토 속에서의 초기불교 수행법의 의미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초기불교의 수행요체는 팔정도이며 지혜의 발현은 팔정도의 수행을 통해서 가능하다. 팔정도는 사성제의 지단증수(知斷證修)라는 분명한 실천적 체계를 근거로 하고 있다. 괴로움의 현실을 바로 알고(知, parieyya), 그 원인을 단절(斷, paha?abba)해야 한다.
그래야 괴로움이 소멸된 열반을 성취(證, sacchika?abba)할 수 있으며, 그 방법으로써 팔정도의 실천(修, bha?etabba)이 있는 것이다. 초기불교의 대표적 수행법은 사념처관이며 불교의 공통 수행 원리에 그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대승불교와 선불교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불교 현재의 수행 풍토 속에서 이 초기불교의 수행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 한국불교는 다변화된 수행 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90여 개 선원에서 2000여 명의 수좌가 안거에 들어 간화선(혹은 다른 수행법) 수행에 들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기초 수행체계 및 지도체계가 부재인 실정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수행법의 혼재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간화선, 묵조선, 염불선, 천태선, 능엄선, 한마음선원의 주인공 수행법, 전통적 간화선에서 다소 일탈된 응용 간화선, 독경, 사경, 간경, 주력, 염불, 절, 금강경 독송회의 마음 바치는 수행법 등이 혼재되어 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달라이라마를 위시한 티베트불교 보리도차제론 수행, 틱낫한 스님의 ‘마음 다함’ 수련법, 그리고 위빠싸나 수행이 서양과 미얀마에서 계속 유입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른바 제3수행법(아봐타, 마음수련, 단학수련)의 확산과 일부 수련법의 폐해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다변화된 수행법의 확산과 함께 일반인들의 전통적 불교 환경 및 수행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에 비해 여기에 대한 불교계의 수행에 대한 전문 연구나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이 활성화되지 않아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런 과도적인 상황 속에서 초기불교의 수행론을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필자는 초기불교 전공자이지만 초기불교 근본주의자는 아니다. 요즈음 초기불교 근본주의자들은 흔히 초기불교 혹은 근본불교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부르짖는다. 그러나 필자는 근본불교만이 붓다의 가르침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고 그밖의 다른 불교 전통은 붓다의 근본 가르침에서 일탈되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시기와 장소에 상관없이 불교의 바른 수행 전통을 보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다고 본다. 위에 언급한 대로 기초 수행체계 및 지도체계가 부실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의 간화선은 바른 수행 전통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간화선은 붓다의 근본 가르침을 제대로 살려 그 시대와 장소에 맞게 새로운 언어로 수행의 실천체계를 정립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수행의 다양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의 간화선도 이제 이 시대와 지구촌에 걸맞는 수행체계로 거듭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중국에서 송대에 이르러 대혜종고 선사에 의해서 조사선이 간화선으로 본격적인 재정비를 했듯이 지금의 정신문화의 수준을 반영하여 한국의 선수행도 새롭게 탈바꿈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불교 수행 전반에 관한 다각적인 연구와 실천체계의 점검이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초기불교의 수행법을 다시 생각해 보고 현재의 제반 수행법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초기불교 수행법은 후기에 발달된 모든 불교 수행법의 이론적 근거와 실제적 토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지면 관계상 초기불교 수행법 자체만 다루었다. 앞으로 제반 수행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 이들 수행법들 간의 비교 연구와 함께 현대의 불교 수행 인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대안 수행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 미산스님
1972년 백양사로 출가. 동국대, 인도 푸나대 및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졸업. 철학박사.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부장. 논문으로 〈근본불교수행의 요체와 지성의 발현〉〈남방상좌불교의 심식설과 수행계위〉〈대념처경 주석서에 대한 이해〉 등이 있다.
[출처: 불교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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