報身頌
海上曾營內外家 往來相續幾隨波
바다에 집지어 안팎으로 살림하고, 끊임없이 오가며 얼마나 파도에 휩쓸렸나
一朝古路雖平坦 舊習依前走兩叉
어느 날 파도가 잠들어 고요해졌지만, 오랜 습기/익힌 서원 공덕/ 여전히 두 갈래로 달리네/두 살림 산다.
〈보충설명1〉 고로(古路)는 파도가 일렁이기 전의 고요하고 광활한 바다. 진리 그 당처를 말합니다.
〈보충설명2〉 구습(舊習)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오랫동안 익혀온 서원과 만행의 공덕을 의미합니다.
〈보충설명3〉 수행과 원력으로 이루어진 몸이 보신입니다. 보신은 진리에만 주(住)하지도 않고 32상을 나투는 바깥 경계에만 주(住)하지도 않는 몸입니다. 송(頌)에서의 잔잔한 바다 속은 진리를, 바다 표면에 일렁이는 파도는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바깥 경계를 비유한 것입니다. 청정하고 광활한 진리는 하나지만, 이렇게 바다 속과 표면에 두 가닥 살림을 차리면서 양쪽을 중도로 오가며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 보신입니다.
보신은 범부중생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화두를 깨달아 법신과 화신의 징검다리로서 신행의 파장을 일으키는 10지 보살의 수행자들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극락세계에서 법장비구가 48서원을 세우고 아미타불이 되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보신불입니다.
化身頌
月磨銀源轉成圓 素面舒光照大千
달이 은하수를 오가며 둥그러지니, 뽀얀 얼굴이 빛을 발해 온 세계를 비추네.
連臂山山空捉影 孤輪本不落靑天
손잡아 줄지은 원숭이들 달그림자 잡으려 해보지만, 외로운 달 본래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도다.
〈보충설명1〉 법신을 근거로 세간의 역사적 인물로 등장하여 수행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화신입니다.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몸을 나퉈 교화하신 석가모니가 대표적인 화신입니다. 화신은 특정한 근기에 응해 설법하기 때문에 응신이라고도 합니다. 보신도 화신도 다 법신에서 나온 것이지만 화신은 육신을 가지고 출현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소멸됩니다.
〈보충설명2〉 삼신(三身)을 흔히 달로서 비유합니다. 둥근 달의 차고 고요함은 법신, 달이 천강(千江)에 잠겨 천개(千個)의 그림자를 이룬 것을 화신, 달에서 광명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신이라고 비유합니다.
〈보충설명3〉 연비산산(連臂山山)은 고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옛날 어느 산 속에서 한 스님이 열심히 수행하고 여법하게 살았습니다. 이런 모습에 감동한 원숭이들이 스님을 위해 물에 비친 달을 건져다가 공양 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숭이들은 서로서로 깍지 낀 손을 붙들고 길게 늘어서서 달을 건지러 연못에 들어갔지만 달은 건지지 못하고 모두 빠져 죽었습니다. 후에 원숭이들은 스님을 위한 원력과 공덕으로 환생하여 500나한이 되었습니다. 산산(山山)은 중국에서 원숭이를 말합니다.
소명태자에 의해 과목이 나눠진 금강경 32분 가운데 오늘 공부할 제27분은, 법신을 형상이나 소리로 찾아 볼 수 없다면 아무 것도 없는 단멸(斷滅)의 자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길 수 있으므로 그 의심을 끊어주기 위해 전개되는 내용입니다. 법신은 비교나 유추의 자리가 아닌 텅 빈 자리지만 인연에 의해 법신의 존재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단멸의 경계가 아닙니다. 이를테면 중생제도를 위해 사상(四相)을 끊고 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의 모습은 곧 법신이 반영되는 모습입니다. 석굴암의 부처님도 돌로서 모양을 갖춘 것이지만 그 형상 가운데 법신의 모습이 현현(顯現)하고 있습니다. 빛도 없고 소리도 없이 노란 개나리가 피지만 봄이 찾아온 것을 알 수 있듯이 법신은 형상이 없지만 그 현묘(玄妙)한 ‘용(用)’을 드러냅니다.
須菩提 汝若作是念 如來 不以具足相故 得阿多羅三三菩提 須菩提 莫作是念 如來 不以具足相故 得阿多羅三三菩提 須菩提 汝若作是 念發阿多羅三三菩提心者 說諸法斷滅 莫作是念 何以故 發阿多羅三三菩提心者 於法 不說斷滅相
“수보리여! 그대는 혹시 ‘여래가 구족상을 쓰는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수보리여! 여래가 구족상을 쓰는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말지니라. 수보리여! 그대는 혹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모든 법이 단멸되었다고 말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생각하지 말지니, 무슨 까닭인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모든 법에 斷滅相을 내지 않느니라.”
{六祖}須菩提 聞說眞身離相 便謂不脩三十二淸淨行 得佛菩提 佛 語須菩提 莫言如來 不脩三十二淸淨行 而得菩提 汝若言不脩三十二淸淨行 得阿菩提者 卽是斷滅佛種 無有是處
수보리가 진신(眞身)의 자리는 모든 상을 여의었다는 설법을 듣고, 곧 32상의 청정한 행을 닦지 않고도 불보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싶어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여래가 32상의 청정한 행을 닦지 않고 보리를 얻었다고 말하지 말지니라. 그대가 만약 32상의 청정한 행을 닦지 않고도 아뇩보리를 얻는다고 말하면 곧 부처의 종자를 끊어 버리는 것이라 옳지 못하니라.” 고 하신 것이다.
〈보충설명〉 ~‘변위불수삼십이청정행(便謂不脩三十二淸淨行)’~의 ‘위(謂)’는 ‘~생각하기를~’ 의 뜻.
{冶父}剪不齊兮理還亂 起頭來割不斷
깎아도 가지런하지 못함이여! 이치가 도리어 어지럽도다. 처음부터 끄집어내어 잘라버려도 끊어지지 않네.
〈보충설명〉 있는 모습을 깎는다고 해서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깎아도 다른 모습에 집착하게 되고, 번뇌를 죽이려 해도 또 다른 번뇌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텅 빈 진리의 입장을 바탕 삼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보리에 이르는 바른 길입니다.
不知誰解巧安排 捏聚依前又放開 莫謂如來成斷滅 一聲還續一聲來
알 수 없어라! 그 누가 교묘한 살림의 안배를 이해하리. 相을 비우고 이전처럼 또 놓았도다. 여래가 단멸을 이루었다 말하지 말라. 한 소리가 또 다시 한 소리에 이어져 오네.
〈보충설명〉 진리를 안배하며 살림을 잘 꾸리는 것은 모든 상(相)을 텅 비우고 또 비워버린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앞부분 설법에서는 상(相)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중생들이 또 그 말에 걸려 단멸에 빠질까봐 다시 단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봄이 오면 나무에 새 순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듯이 삼라만상에 스며있는 부처님의 설법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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