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도량의 여래 앞 보배연꽃 사자좌에 있는 보현보살이 시방의 일체세계에 두루 널리 미치는 신심(身心)으로 불가사의한 자재신통력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 난 선재동자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시방세계의 보현보살들 인가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나긴 구도여행 끝에 비로자나여래의 사자좌 앞에서 보현보살의 광대무변한 중생구제의 자비활동을 보고나서 허공계처럼 광대한 열 가지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영원한 법계의 부처님과 보현의 영원한 행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법계에 들어감(入法界)’을 현실세계에서 실증(實證)하게 하는 것은 선재동자가 오직 현실에서 보현보살을 보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보리도량에서 여래의 앞에 있는 보배연꽃 사자좌에 앉아 있는 보현보살을 본다는 것은, 보현보살의 경계가 부처님의 경계와 가지런함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보현보살이 도달한 지위가 부처님의 지위와 같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현보살은 본래 형체가 없는 법신인 여래를 보살이라고 하는 인격체로 구체화(具體化)하여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선재동자가 보현보살을 보는 것은 바로 여래를 보는 것이 된다.
시방의 일체세계에서 자비심을 근본으로 해서 중생구제의 보살행을 적극적으로 두루 실천하고 있는 보현보살의 모습은 그대로 부처님의 활동모습이며, 입법계품의 첫머리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적극적으로 자비로운 중생구제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여래의 사자빈신삼매(師子頻申三昧)의 구체적인 모습인 것이다.
이처럼 보현보살의 도량은 여래의 앞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보현의 원의 바다(願海)라고 하는 것도 오직 여래의 덕(德)의 전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기나긴 구법여행의 끝에 보현보살이 행하신 바를 실증하였기 때문에 선재동자는 마침내 보현행의 도량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고, 보현행의 도량은 이제 선재동자가 머물고 있는 도량이 된 것이다. 선재동자가 이제 보현보살과 같이 되었기 때문에 시방세계의 부처님 처소에 있는 무량한 보현보살이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격려와 인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보현보살은 선재동자에게 시방세계에 널리 있는 자신의 신심(身心)에서 나타나는 무애자재한 신통조화를 보게 하고, 일체세계의 미진수와 같은 여러 삼매를 얻게 한 후에, 이러한 경계를 성취할 수 있게 된 인연을 설하는데, 그 요점은 다음과 같다.
“선남자여, 나는 과거의 불가설 불가설 세계의 티끌 수만큼의 겁에 보살의 행을 행하며 온갖 지혜를 구하였다.…선남자여, 나는 생각하니 그러한 겁의 바다에서 잠깐 동안 부처님 교법을 순종하지 않았거나 잠깐 동안 성내는 마음, 나와 내 것이라는 마음, 나와 남을 차별하는 마음, 보리심을 여의는 마음을 내거나 생사하는 가운데 고달픈 마음, 게으른 마음, 장애하는 마음,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고, 다만 위없고 무너뜨릴 수 없고 온갖 지혜를 모으는 도를 돕는 법(助道法)인 큰 보리심에 머물러 있었다.…선남자여, 내가 법을 구한 것은 모든 중생을 구호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과거의 인연은 불가설 불가설 세계의 티끌 수만큼의 겁 동안에 말하여도 다할 수 없다.…선남자여, 그대는 나의 이 육신을 보라. 이 육신은 그지없는 겁의 바다에서 이루어진 것이니 한량없는 천억 나유타 겁에도 보기 어렵고 듣기 어렵다.…선남자여, 만일 중생이 나의 청정한 세계를 보고 들은 이는 반드시 이 청정한 세계에 날 것이요, 만일 중생이 나의 청정한 몸을 보고 들은 이는 반드시 나의 청정한 몸 가운데 날 것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마땅히 나의 청정한 몸을 보아야 한다.”
이 구절은 보현보살의 자재한 신통력과 청정한 법신이 무량겁동안 보살행을 행하며, 언제나 부처님의 교법을 순종하여 가르침에 어긋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보리심에 머물러 있으면서 모든 중생을 구호하고자 한 인연으로 성취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불도(佛道)를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마땅히 실천해야 할 만고불변의 공도(共道)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자신의 청정한 육신을 보라고 강조하는 것은 오랜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진 구체적인 인격체로서의 자신을 보라고 하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법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도 보살행과 같은 구체적인 인격의 활동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선재동자가 보현보살의 몸을 보니 보현보살이 낱낱 세계바다에서 모든 세계의 티끌수와 같은 몸구름을 나타내어 시방의 모든 세계에 가득하고 중생들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향하게 하며, 선재동자는 또 자기의 몸이 보현보살의 몸 속에 있는 시방의 모든 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권탄준/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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