깟사빠 사자후경(Kassapasihanada Sutta. D8)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우준냐에서 깐나깟탈라에 있는 녹야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나체수행자 깟사빠가 세존께 다가왔다. 와서는 세존과 힘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섰다.
* 사자후(sihanada)는 siha(사자)-nada(소리)의 역어인데 주석서에서는 "다른 교설에 의해서 깨뜨려지지 않고 자신의 교설을 명쾌하게 밝히는 두려움 없는 소리"(DA.iii.844)로 설명하기도 하고 "뛰어난 소리이며 우둔하지도 않고 포악하지도 않은 사자가 내는 최상(uttama)의 소리"(DA.iii.879)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자후라는 제목이 부튼 경은 모두 다른 종교나 다른 사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이 결코 따를 수 없고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부처님의 교단에만 있는 뛰어난 가르침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뭇짐승들이 사자후를 듣고 두려워하듯이 부처님의 이러한 사자후를 듣고 외도들릉 두려워하고 자취를 감추게 된다.
* 초기경들과 주석서들에서 깟사빠(Kassapa, 가섭)라고 불리는 사람은 DPPN에 의하면 30명 가까이 된다. 그래서 그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각각 다른 별칭으로 부르고 있다. 가장 유명한 부처님의 직계제자인 깟사빠 존자는 마하깟사빠(대가섭)라 불렀고, 우루웰라에서 천 명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한 가섭 3형제 中 맏형은 우루웰라 깟사빠라 불렀다. 본경에 나오는 깟사빠는 나체수행자인데 본경 24에 의하면 그는 세존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2. 한 곁에 서서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그는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비난하고 힐난하고 비방한다.'라고.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그는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비난하고 힐난하고 비방한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고따마 존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는 자들입니까? 혹시 거짓으로 고따마 존자를 헐뜯는 것은 아닙니까? 그들은 법에 따라서 법을 설명한 것입니까? 누구든 함께 법을 닦는 동료가 이것을 따라 말하더라도 비난받아야 할 경우를 만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저는 고따마 존자를 비난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3. "깟사빠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그는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비난하고 힐난하고 비방한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내가 말한 대로 말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 대신 그들은 있지도 않는 거짓으로 나를 헐뜯는 것이다.
깟사빠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天眼)으로, 난행고행의 삶을 살았던 어떤 고행자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 불행한 상태(苦界), 비참항 상태(惡趣),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 눈(天眼)으로, 난행고행의 삶을 살았던 어떤 고행자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 좋은 세계(善處), 하늘 세계(天界)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 눈(天眼)으로, 적은 고통으로 머물렀던 어떤 고행자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 불행한 상태(苦界), 비참항 상태(惡趣),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 눈(天眼)으로, 적은 고통으로 머물렀던 어떤 고행자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 좋은 세계(善處), 하늘 세계(天界)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나는 이런 고행자들의 온 곳과 갈 곳과 죽고 태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고 있는데 어찌 내가 모든 고행을 비난하고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힐난하고 비방하겠는가?"
*이처럼 고행에 대한 부처님의 태도는 명확하시다. 고행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고행을 하는 그 사람의 심리구조,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사악한 마음으로 고행하면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좋은 마음으로 고행하면 천상에 날 것이다. 이처럼 외형적인 수행 방법이나 의례의식, 난행고행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테크닉이나 의식을 거행하고 실행하는 자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4. "깟사빠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현명하고 영리하고 다른 자들과의 논쟁에 뛰어나고 화살로 머리카락조차 맞힐 수 있는 지경이라서 그들은 예리한 통찰지로써 다른 견해들을 단번에 잘라버린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나는 어떤 점들에 있어서는 일치하고, 어떤 점들에 있어서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때에 '옳다'고 말하는 것을 나도 어떤 때는 '옳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들이 어떤 때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나도 어떤 때는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때에 '옳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때 나는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들이 어떤 때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때 나는 '옳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때에 '옳다'고 말하는 것을 그들도 어떤 때는 '옳다'고 말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때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그들도 어떤 때는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때에 '옳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때 그들은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때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때 그들은 '옳다'고 말하기도 한다.
5.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한다.
'도반들이여,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들에 대해서는 일단 그대로 두도록 합시다. 서로 일치하는 점들에 대해서는 이제 현자들이 (다음과 같이) 스승은 스승끼리, 집단(sangha)은 집단끼리,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게 합시다. 즉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 불리고,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이러한 법들을 남김없이 버렸습니까? 사문 고따마입니까, 아니면 다른 스승들입니까?라고."
6. "깟사빠여, 그런데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 불리고,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승들은 부분적으로만 버렸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이와 같이 여기서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면 대부분은 내가 칭송된다."
7. "깟사빠여, 또 현자들이 (다음과 같이) 스승은 스승끼리, 집단은 집단끼리,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도록 하자.
즉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 유익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라 불리고, 흰 것이고 흰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성취하였습니까? 사문 고따마입니까, 아니면 다른 스승들입니까?'라고.
8. "깟사빠여, 그런데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 유익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라 불리고, 흰 것이고 흰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성취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승들은 부분적으로만 성취하였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이와 같이 여기서 지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면 대부분은 내가 칭송된다."
9. "깟사빠여, 또 다시 현자들이 (다음과 같이) 스승은 스승끼리, 집단은 집단끼리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도록 하자.
즉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 불리고,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이러한 법들을 남김없이 버렸습니까?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의 모임입니까, 아니면 다른 스승들의 제자들의 모임입니까?라고."
10 ."깟사빠여, 그런데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 불리고,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의 모임이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승들의 제자들의 모임은 부분적으로만 버렸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이와 같이 여기서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면 대부분은 내가 칭송된다."
11. "깟사빠여, 또 현자들이 (다음과 같이) 스승은 스승끼리, 모임은 모임끼리,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도록 하자.
즉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 유익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라 불리고, 흰 것이고 흰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성취하였습니까?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 모임입니까, 아니면 다른 스승들의 제자들 모임입니까?'라고.
12. "깟사빠여, 그런데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 유익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라 불리고, 흰 것이고 흰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 모임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성취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승들의 제자들의 모임은 부분적으로만 성취하였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이와 같이 여기서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면 대부분은 내가 칭송된다."
13. "깟사빠여, (우리에게는) 도가 있고 도닦음이 있나니 그대로 수행을 하면 '사문 고따마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된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도가 있고 어떤 도 닦음이 있기에 그대로 도 닦으면 '사문 고따마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되는가?
그것은 바로 이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八正道)이니,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 이다. 이것이 바로 그 도요, 바로 그 도닦음이니, 그대로 수행을 하면 '사문 고따마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된다."
14. 이와 같이 말하자 나체 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도반 고따마시여, 다음과 같은 고행을 닦는 것도 이러한 사문 · 바라문들에게는 사문의 본업이라 불리고, 바라문의 본업이라 불립니다.
도반 고따마시여, 그는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그는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 , 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삽니다.
도반 고따마시여, 다음과 같은 고행을 닦는 것도 이러한 사문 · 바라문들에게는사문의 본업이라 불리고, 바라문의 본업이라 불립니다. 그는 채소를 먹는 자이고,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입니다.
도반 고따마시여, 다음과 같은 고행을 닦는 것도 이러한 사문 · 바라문들에게는사문의 본업이라 불리고, 바라문의 본업이라 불립니다. 그는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습니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데 몰두하며 지냅니다."
"깟사빠여, 비록 그가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가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고, 그가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 ,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살더라도, 그는 단지 방편으로 음식을 먹기에만 몰두하여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통찰지의 구족을 수행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고, 바라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깟사빠여, 비록 그가 채소를 먹는 자이고,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라 할지라도, 그는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통찰지의 구족을 수행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고, 바라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깟사빠여, 비록 그가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데 몰두하며 지낸다 할지라도, 그는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통찰지의 구족을 수행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고, 바라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16.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깟사빠여,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라는 것은 세속에서는 당연하다.
깟사빠여, 그런데 만일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가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고, 그가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 , 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사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깟사빠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나체수행자가 되어야지, 관습을 거부하며 살아야지, 손에 (받아) 핥아서 먹어야지, (음식을 주기 위해서)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가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고, 그가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 ,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살아야지.'라고 하면서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깟사빠여, 그런데 채소를 먹는 자이고,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라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깟사빠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채소를 먹는 자가 되어야지,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가 되어 살아야지.'라고 하면서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깟사빠여, 그런데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데 몰두하며 지낸다 할지라도,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깟사빠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살아야지,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살아야지,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 물에 들어가는 데 몰두하여 살아야지.'라고 하면서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17.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깟사빠여, '사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라는 것은 세속에서는 당연하다. 깟사빠여, 그런데 만일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가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고, 그가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 , 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사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깟사빠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나체수행자가 되어야지, 관습을 거부하며 살아야지, 손에 (받아) 핥아서 먹어야지, (음식을 주기 위해서)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가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고, 그가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 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산다.'라고 하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깟사빠여, 그런데 채소를 먹는 자이고,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라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깟사빠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채소를 먹는 자가 되어야지,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다.'라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깟사빠여, 그런데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데 몰두하며 지낸다 할지라도,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깟사빠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살아야지,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살아야지,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 물에 들어가는 데 몰두하며 지낸다.'라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18.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계의 구족입니까?
어떤 것이 마음의 구족입니까?
어떤 것이 통찰지의구족입니까?"
*마음의 구족(citta-sampada)은 삼매의 구족(samadhi-sampada)과 동의어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도 "마음이라는 제목 아래 삼매를 서술했고"(Vis.1.7)라고 적고 있다. 삼매를 닦아서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1)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아라한(應供)이며,
바르게 깨달은 분(正等覺, 正遍智)이며,
영지(靈智)와 실천이 구족하신 분이시며(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며,
깨달은 분(佛)이며,
세상의 존귀하신 분(世尊)이다.
그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그는 법을 설한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게 (법을 설하고)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법을 설하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낸다.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서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에게 믿음을 가진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한다. '재가의 삶이란 막혀있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소라고동처럼 빛나는 청정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리라.'라고. 그는 나중에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적건 많건 간에 다 떠나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들을 받아지녀 공부수행한다. 유익한 몸의 업과 말의 업을 잘 갖추고, 생계를 청정히 하고, 계를 구족하고,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고,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고,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깟사빠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계를 구족하는가?
[짧은 길이의 계: 모두 26가지로 계를 지님]
1) 여기 비구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읜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는다. 겸손하고 자비로운 자가 되어 일체의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무른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2) 그는 주지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읜다. 준 것만울 받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며 스스로 훔치지 않아 청정하게 머문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3) 그는 금욕적이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범행을 닦는다. 독신자가 되어 성행위의 저속함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4) 그는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멀리 여읜다. 그는 진실을 말하며 진실에 부합하고 굳건하며 믿음직하며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5) 그는 중상모략하는 말을 버리고 중상모략하는 말을 멀리 여읜다.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하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는다. 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하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와 같이 이간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6) 그는 거친 말(욕설)을 버리고 거친 말을 멀리 여읜다. 그는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바르고 대중이 좋아하고 대중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하는 자이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7) 그는 꾸며낸 말을 버리고 꾸며낸 말을 멀리 여읜다. 그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이며, 담아둘 만하며, 이유가 있고, 의미가 분명하며, 이익을 줄 수 있는 말을 시의 적절하게 하는 자이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8)
1] 그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것을 멀리 여읜
2] 그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자이다. 그는 밤에 먹는 것을 그만두고 때 아닌 때 먹는 것을 멀리
여읜다.
3] 그는 춤,노래,음악,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멀리 여읜다.
4] 그는 화환을 두르고 향수를 바르고 화장품으로 꾸미는 것을 멀리 여읜다.
5] 그는 높고 큰 침상을 멀리 여읜다.
6] 그는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7] 그는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8] 그는 생고기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9] 그는 여자나 동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10] 그는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11] 그는 염소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12] 그는 닭과 돼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13] 그는 코끼리,소,말,암말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14] 그는 농토나 토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15] 그는 남의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여읜다.
16] 그는 사고파는 것을 멀리 여읜다.
17] 그는 저울을 속이고 금속을 속이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멀리 여읜다.
18] 그는 악용하고 속이고 횡령하고 사기하는 것을 멀리 여읜다.
19] 그는 상해,살상,포박,약탈,노략질,폭력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중간 길이의 계: 모두 10가지로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멀리함]
1) 어떤 사문이나 어떤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성한 뜻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씨앗류와 초목류를 해치면서 살아간다. 즉 뿌리로 번식하는 것, 줄기로 번식하는 것, 마디로 번식하는 것, 싹으로 번식하는 것, 다섯번째로 종자로 번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씨앗류와 초목류를 해치는 것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2)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축적해두고 즐기는데 빠져 지낸다. 즉 음식을 축적하고, 마실 것을 축적히고, 옷을 축적히고, 탈 것을 축적하고, 그 축적한 것을 즐기는데 빠져서 지낸다.
그러나 그는 축적해두고 즐기는 이런 것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3)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구경거리를 보는데 빠져서 지낸다. 즉 춤, 노래, 연주, 연극, 낭송, 박수치며 하는 공연, 심벌즈로 하는 공연, 북치며 하는 공연, 예술품 전람회, 쇠공놀이, 죽봉놀이, 곡예, 코끼리싸움, 말싸움, 황소싸움, 염소싸움, 숫양싸움, 닭싸움, 메추리싸움, 봉술, 권투, 레슬링, 모의전투, 군대의 행진, 군대의 집합, 열병이다.
그러나 그는 구경거리를 보는 이런 것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4)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노름이나 놀이에 빠져 지낸다. 즉 팔목 체스장기, 십목 체스장기, 허공에 판이 있는 양 가정하고 하는 체스장기, 돌차기 놀이, 쌓기 놀이, 주사위놀이, 자치기, 맨손으로 벽에 그리는 놀이, 풀피리 불기, 장난감 쟁기질 놀이, 재주 넘기, 잎사귀 접어서 돌리기, 장난감 저울놀이, 장난감 수레놀이, 장난감 활쏘기, 글자 맞히기, 생각 맞히기, 불구자 흉내내기이다.
그러나 그는 노름이나 놀이에 빠지는 이런 일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5)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큰 (호사스런) 침구와 좌구를 사용하면서 지낸다. 즉 아주 큰 침상, 다리에 동물 형상을 새긴 자리, 긴 술을 가진 이불, 울긋불긋한 천 조각을 덧댄 이불, 흰색 양털 이불, 꽃들을 수놓은 양털 이불, 솜으로 채운 누비이불, 동물을 수놓은 양털이불, 한쪽이나 양쪽에 술을 가진 양털이불, 보석을 박은 이불, 비단 이불, 무도장의 양탄자, 코끼리 등덮개, 수레 깔게, 사슴가죽 깔게, 영양가죽 깔게, 차양있는 양탄자, 붉은 베게와 붉은 발 한 받침이 있는 긴 의자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높고 큰 (호사스런) 침구와 좌구를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6)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치장하고, 장엄하는 일에 몰두한다. 즉 몸에 향가루 바르기, 기름으로 안마하기, 향수로 목욕하기, 사지를 안마하기, 거울 보기, 속눈썹 검게 칠하기, 화환과 향과 화장품으로 치장하기, 얼굴에 분칠하기, 화장 팔찌, 머리띠, 장식용 지팡이, 장식한 약통, 긴 칼, 일산, 수놓은 신발, 터번, 보석으로 만든 관모, 야크꼬리로 만든 불자(拂子), 긴 술로 장식된 흰옷을 입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치장하고 장엄하는 일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7)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쓸데없는 이야기에 몰두하면서 지낸다. 즉 왕의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들 이야기, 군대 이야기, 재난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음료수 이야기, 옷 이야기, 침대 이야기, 화환 이야기, 향 이야기, 친척 이야기, 탈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거리 이야기, 우물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하찮은 이야기,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관련된 이야기, 번영과 불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8)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논쟁에 몰두하면서 살아간다. 즉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그릇된 도를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른 도를 닦는 자이다.''내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그대가 (오랫동안) 주장해온던 것은 (한 마디로) 논파되었다''나는 그대의 (교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 보라.'라고.
그러나 그는 이러한 논쟁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9)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전령이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즉 왕, 대신, 왕족, 바라문, 장자, 젊은이들이 '여기에 가시오, 저기에 가시오, 이것을 저기로 가지고 자시오, 저것을 여기로 가지고 오시오.'라는 것에 대해서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전령이나 심부름꾼 노릇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10)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계략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암시를 주고, 비방하고,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계략과 쓸데없는 말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긴 길이의 계: 모두 7가지로 삿된 생계를 멀리함]
1)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몸의 툭징으로 예언하기, 벼락이나 하늘의 조짐에 따라 점치기, 해몽, 관상, 쥐가 파먹은 옷의 구멍에 따라서 점치기, 불을 섬김, 주걱으로 헌공함, 쌀가구 헌공, 쌀 헌공, 버터 헌공, 기름 헌공, 잎으로 하는 헌공, 피의 헌공, 수상(手相)보기, 집터 보기, 대지 보기, 묘지의 귀신 물리치기, 망령 물리치기, 흙집에 사는 자의 주술, 뱀 부리는 주술, 독극물 제조술, 전갈 부리는 기술, 쥐 부리는 기술, 새 부리는 기술, 까마귀 부리는 기술, 수명 예언하기, 화살에 대항하는 주문, 동물들의 울음을 아는 주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2)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보석, 옷감, 지팡이, 칼, 긴 칼, 화살, 활, 다른 무기, 여자, 남자, 소년, 소녀, 남녀 노비, 코끼리, 말, 물소, 황소, 암소, 염소, 양, 닭, 메추리, 큰 도마뱀, 귀걸이(혹은 집의 박공), 거북이, 다른 동물들 이런 것들의 색깔이나 모양이나 다른 특징들을 보고 점을 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3)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왕들의 진격이 있을 것이다. 왕들의 퇴각이 있을 것이다. 우리 쪽 왕들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저쪽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이다. 저쪽 왕들의 공격이 있을 터이고, 우리쪽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이다. 우리 쪽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저쪽 왕들이 패배할 것이다. 저쪽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우리 쪽 왕들이 패배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이편이 승리할 것이고 저편이 승리할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4)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월식이 있을 것이다. 일식이 있을 것이다. 행성의 합삭이 있을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할 것이다. 혹은 잘못된 항로로 운행할 것이다. 유성이 떨어질 것이다. 짙은 노을이 낄 것이다. 지진이 일어날 것이다. 천둥이 칠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이 뜨거나 지거나 흐리거나 깨끗할 것이다. 월식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일식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별이 가려지는 일은 다시 저러한 일을 가져올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항로로 운행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별들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항로로 운행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유성이 떨어짐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짙은 노을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천둥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의 지고 흐리고 깨끗함도 각각 여러가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5)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비가 내릴 것이다, 가뭄이 들 것이다, 퐁년이 들 것이다, 흉년이 들 것이다, 민심이 안정될 것이다, 민심이 흉흉할 것이다, 질병이 들 것이다, 건강하게 될 것이다,' 라거나 계산법, 암산법, 셈법, 시작(詩作)법, 처세술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6)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결혼할 때에 신부 집에 들어가는 날 또는 떠나는 날을 택일하고, 약혼이나 이혼의 길일을 택해 주고, 돈을 모으거나 지출하는 날을 택해 주고, 불행이나 행운울 가져오게 하는 주문을 외우고, 발육부진인 태아의 원기를 회복하도록 주문을 외우고, 말더듬이나 벙어리가 되도록 주문을 외우고, 손에 풍이 들도록 주문을 외우고, 귀머거리가 되도록 주문울 외우고, 거울에(신울 모셔와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소녀의 몸에(신을 모셔와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하녀의 몸에(신을 모셔외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태양을 숭배하고, 대범천을 숭배하고, 입에서 불을 내뿜고, 행운의 여신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7)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신의 축복을 비는 의식, 귀신을 부르는 의식, 흙집에 들어가서 주문을 외우는 의식, 정력을 왕성하게 하는 의식, 성불구자가 되게 하는 의식, 집지을 땅을 마련하는 의식, 집 지을 땅을 신성하게 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의식을 위해 입을 씻고 목욕재계하고 불에 제사를 지낸다. 구토제와 하제와 거담제와 점액제거제를 주고, 귀약과 안약과 코약과 연고와 연고제거제를 주고, 안과의사, 외과의사, 소아과의사 일을 하고, 이전에 처벙한 약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 진통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깟사빠여,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관정(灌頂)한 끄샤뜨리야 왕은 적을 정복하였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서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는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戒蘊)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깟사빠여, 이와 같이 비구는 계를 구족한다.
[삼매의 구족]
1) "깟사빠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키는가?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감각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여기 비구는 귀로 소리를 들음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귀의 감각기능(耳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귀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여기 비구는 코로 냄새를 맡음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코의 감각기능(鼻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코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코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코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여기 비구는 혀로 맛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혀의 감각기능(舌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혀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여기 비구는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몸의 감각기능(身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여기 비구는 마노(意)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眼))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렵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깟사빠여, 이와 같이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킨다.
(2) 깟사빠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는가?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갈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 · 서면서 · 앉으면서 ·잠들면서 · 잠을 깨면서 · 말하면서 ·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깟사빠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잘 갖춘다.
(3) 깟사빠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얻은 필수품만으로) 만족하는가?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과 몸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을 지키며 살아간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과 몸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을 지키며 간다.
깟사빠여, 이와 같이 비구는 (얻은 필수품만으로) 만족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어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부죄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며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4)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문다.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성냄의 오점을 제거하여 성냄이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여 성냄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이 없이 머문다.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문다.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유익한 법들에 아무런 의문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장사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성공하여 옛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부인을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분이 생길 것이다. '나는 전에 빚을 내어 장사를 했다. 그런 나는 장사에서 성공하여 이제 옛 빚을 다 갚았다. 그뿐만 아니라 부인을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분이 생겼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과도 같다. 그 사람은 식욕도 잃어버릴 것이고 그의 몸에 힘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그는 병에서 회복될 것이다. 식욕도 왕성하고 힘도 다시 생겨날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렸다. 그런 나는 이제 병에서 회복하였다. 식욕도 왕성하고 힘도 다시 생겨났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옥에 갇혔다가 얼마 뒤 옥에서 풀려난 것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이제 안전하고 두려울 것도 없고 또 재산도 축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옥에 갇혔다. 그런 나는 이제 옥에서 풀려났다. 나는 안전하고 두려울 것도 없고 또 재산도 축나지 않았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종이 되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매여서,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없이 지내다가 얼마 뒤 종살이에서 풀려난 것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이제 독립하여 더 이상 남에게 매이지 않고, 제 가고 샆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종이 되어 내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매여서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없이 지내다가 이제 종살이에서 풀려났다. 이제 나는 독립하여 더 이상 남에게 매이지 않고,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어떤 부유하고 번창한 사람이 먹을 것도 없고 위험이 도사리는 사막을 걷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얼마 뒤 그 사막을 다 건너서 위험이 없는 안전한 처소인 마을 주변에 무사히 다다랐고 또 재산도 축나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부유하고 번창했는데 먹을 것도 없고 위험이 도사리는 사막을 걸었다. 이제 나는 그 사막을 다 건너서 위험이 없는 안전한 처소인 마을 주변에 무사히 다다랐고 또 재산도 축나지 않았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五蓋)가 제거되지 못한 것을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진 사람(욕심), 환자(성냄), 옥에 갇힌 사람(해태와 혼침), 종(들뜸과 후회), 사막을 걷는 여행자(의심)로 여긴다.
그러나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에서 벗어난 사람, 병이 쾌유한 사람, 감옥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 자유인, 그리고 안전한 곳에 다다른 사람으로 여긴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다섯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할 때 환희가 생겨난다. 환의로운 자에게는 희열이 생긴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편안하다. 몸이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그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그는 떨쳐버림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 몸 구석구석 떨쳐버림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솜씨 좋은 때밀이나 그의 조수가 금속 대야에 목욕가루를 가득히 담아 놓고는 물을 알맞게 부어가며 계속 이기면 그 목욕가루덩이(반죽)에 물기가 젖어들고 스며들어 물기가 안팎으로 흠뻑 스며들 뿐, 그 덩이가 물기를 흘려보내지 않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 몸 구석구석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이것도 역시 그에게는 마음의 구족이다.
깟사빠여, 다시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그는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 몸 구석구석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물로 채워지는 호수가 있다 하자, 그런데 그 호수에는 동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서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북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남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또 하늘에서 때때로 소나기마저도 내리지 않는다면 그 호수의 밑바닥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올라 그 호수를 차가운 물로 흠뻑 적시고 충만케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할 것이다. 그러면 온 호수의 어느 곳도 이 차가운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 몸 구석구석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이것도 역시 그에게는 마음의 구족이다.
깟사빠여, 다시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그는 희열이 사라진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 몸 구석구석 희열이 사라진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예를들면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이 피어있는 호수에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들이 물 속에서 생기고 자라서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물 속에 잠긴 채 무성하게 어우러져 있는데, 차가운 물이 그 꽃들을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든다면 그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의 어떤 부분도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희열이 사라진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 몸 구석구석 희열이 사라진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이것도 역시 그에게는 마음의 구족이다.
깟사빠여, 다시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그는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으로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서 앉아 있다. 온몸 구석구석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사람이 머리까지 온몸에 하얀 천을 덮어쓰고 앉아 있다면 그의 몸 어느 부분도 하얀 천으로 덮이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으로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서 앉아 있다. 온몸 구석구석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이것도 역시 그에게는 마음의 구족이다."
[통찰지의 구족]
1)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지(知)와 견(見)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알음알이는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깟사빠여, 예를 들면 깨끗하고 최상품인 유리 보석이 팔각형이고 아주 잘 가공되고 맑고 투명하여 모든 특질을 갖추었으며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실이나 갈색의 실로 묶여 있다 하자. 그것을 눈이 있는 사람이 손에 놓고서 '이 유리 보석은 깨끗하고 최상품인 유리 보석이 팔각형이고 아주 잘 가공되고 맑고 투명하여 모든 특질을 갖추었는데,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실이나 갈색의 실로 묶여 있구나.'라고 살펴보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지(知)와 견(見)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알음알이는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깟사빠여, 이것이 그에게는 통찰지의 구족이다.
2)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형상을 가지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다른 몸을 만들어 낸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사람이 문자 풀로부터 갈대를 골라내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문자 풀이고 이것은 갈대이다. 문자 풀과 갈대는 다르다. 문자 풀로부터 갈대는 제거되었다.'라고.
깟사빠여, 다시 예를 들면 사람이 칼을 칼집에서 끄집어내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칼과 칼집은 다르다. 칼집으로부터 칼은 끄집어내졌다."라고.
깟사빠여, 다시 예를 들면 사람이 뱀을 개미집으로부터 끄집어내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뱀이고 이것은 개미집이다. 뱀과 개미집은 다르다. 개미집으로부터 뱀은 끄집어내졌다.'라고.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형상을 가지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다른 몸을 만들어 낸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통찰지의 구족이다.
3)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통변화(神足通)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된다. 여럿이 된후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숙련된 도기공이나 도기공의 제자가 잘 준비된 진흙으로부터 그릇을 원하는 대로 만들고 빚어내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다시 예를 들면 숙련된 상아 세공자나 그의 제자가 잘 준비된 상아로부터 어떤 상아 제품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고 빚어내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다시 예를 들면 숙련된 금세공자나 그의 제자가 잘 준비된 금으로부터 어떤 금제품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고 빚어내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통변화(神足通)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된다. 여럿이 된후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통찰지의 구족이다.
4)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성한 귀의 요소(天耳界)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天耳界]를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天耳通)
깟사빠여, 예를 들면 먼 길을 여행하는 자가 큰 북소리, 무딩가 북소리, 고옫소리, 빠나와 북소리, 딘디마 북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큰 북소리다, 이것은 무딩가 북소리다, 이것은 고동 소리다, 이것은 빠나와 북소리다, 이것은 딘디마 북소리다.'라고.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성한 귀의 요소(天耳界)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天耳界]를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 (天耳通)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통찰지의 구족이다.
5)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린다.
탐냄을 지닌 마음을 탐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탐냄을 떠난 마음을 탐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성냄을 떠난 마음을 성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을 어리석음이 떠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집중된한 마음을 집중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산란한 마음을 산란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광대한(고귀한) 마음을 광대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광대하지(고귀하지) 않은 마음을 광대하지(고귀하지) 않은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삼매를 얻는 마음을 삼매을 얻는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여인이나 남자가 젊으면 치장하기를 좋아하며 깨끗하고 흠 없는 거울이나 맑은 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점이 있는 것은 점이 있다고 알고 점이 없는 것은 없다고 아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중생과 다른 인간들의 마음을 꿰뚫어 안다.
탐냄을 지닌 마음을 탐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탐냄을 떠난 마음을 탐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성냄을 떠난 마음을 성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을 어리석음이 떠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집중된한 마음을 집중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산란한 마음을 산란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광대한(고귀한) 마음을 광대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광대하지(고귀하지) 않은 마음을 광대하지(고귀하지) 않은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삼매를 얻는 마음을 삼매을 얻는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통찰지의 구족이다.
6)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벡천 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고통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여러가지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사람이 자기 마을로부터 다른 마을로 갔다가 다시 또 다름 마을로 갔다가 자기 마을로 되돌아 온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우리 마을로부터 다른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이와 같이 서있었고, 이와 같이 앉아있었고, 이와 같이 말하였고, 이와 같이 침묵하였다. 나는 그 마을로부터 다시 다른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이와 같이 서있었고, 이와 같이 앉아있었고, 이와 같이 말하였고, 이와 같이 침묵하였다. 그리고 그 마을로부터 다시 우리 마을로 되돌아왔다.'라고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벡천 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고통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여러가지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통찰지의 구족이다.
7)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天眼)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의 세계(천상)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저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사거리 가운데에 높은 누각이 있는데 시력이 좋은 사람이 거기에 서서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과 길을 걷거나 사거리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사람들은 집에 들어가는구나, 이들은 나오는구나, 이들은 길을 걷고 있구나, 이들은 사거리 가운데 앉아 있구나.'라고.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天眼)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의 세계(천상)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저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통찰지의 구족이다.
8)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에서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아 차린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깊은 산에 호수가 있어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데 그곳에서 시력이 좋은 사람이 둑에서서 조개껍질, 자갈, 조약돌, 멈춰있거나 움직이는 고기 떼를 보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호수는 참 맑고 고요하고 깨끗하구나. 여기에 이런 조개껍질, 자갈, 조약돌이 있고 고기 떼는 멈춰있거나 움직이는구나.'라고.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에서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아 차린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통찰지의 구족이다.
깟사빠여, 이러한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통찰지의 구족과는 다른 더 높고 더 수승한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통찰지의 구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1. "깟사빠여, 계를 설하는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있어서 그들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계를 칭송하여 말한다.
깟사빠여, 그러나 성스러운 최상의 계에 관한 한 거기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자들을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계(增上戒)에 관한 한 내가 뛰어나다.
깟사빠여, 고행을 통한 금욕을 설하는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있어서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행을 통한 금욕을 칭송하여 말한다.
깟사빠여, 그러나 성스러운 최상의 고행을 통한 금욕에 관한 한 거기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자들을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금욕에 관한 한 내가 더 뛰어나다.
깟사빠여, 통찰지를 설하는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있어서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통찰지를 칭송하여 말한다.
깟사빠여, 그러나 성스러운 통찰지에 관한 한 거기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자들을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통찰지(增上慧)에 관한 한 내가 더 뛰어나다.
깟사빠여, 해탈을 설하는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있어서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탈을 칭송하여 말한다.
깟사빠여, 그러나 성스러운 최상의 해탈에 관한 한 거기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자들을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해탈에 관한 한 내가 더 뛰어나다.
22.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러나 빈집에서 사자후를 토하지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라고 말한다.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러나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하지는 않는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라고 말한다.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아울러 누구라도 그에게 질문을 한다.'라고 말한다.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러나 그들의 질문을 설명하지 않는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아울러 질문하는 자가 누구라도 그들의 질문을 설명한다.'라고 말한다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설명으로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는 못한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들에게 나는 질문에 대한 설명으로 그들을 흡족하게 한다'라고 말한다.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러나 들어야 할만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들에게는 나는 들어야 할 만한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러나 듣고서 청정하게 믿지는 않는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들에게는 나는 그들은 듣고서 청정하게 믿는다'라고 말한다.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러나 그들은 청정한 믿음을 행하지는 못한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들에게는 나는 그들은 청정한 믿음을 행한다.''라고 말한다.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여함을 닦지는 못한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들에게는 나는 여여함을 닦는다.''라고 말한다.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러나 도닦음을 성취한 분을 흡족하게 하지는 못한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아울러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에게 질문을 한다. 그들의 질문을 설명한다. 질문에 대한 설명으로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들어야 할 만한 것으로 생각한다. 듣고서 청정하게 믿는다. 청정한 믿음을 행한다. 여여함을 닦는다. 도닦음을 성취한 분을 흡족하게 한다.'라고 말한다,"
23. "깟사빠여, 한 때에 나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영취산, 靈鷲山)에 머물렀다. 거기서 니그로다라는 어떤 고행자가 높은 금욕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다. 나는 그가 질문한 높은 금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내가 설명해 주었을 때 그는 마음이 흡족해져서 마치 크게 도취한 것 같았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세존의 법을 듣고 마음이 흡족해져서 마치 크게 도취한 것 같지 않은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 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승가에 또한 귀의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24. "깟사빠여, 전에 외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의 견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넉 달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한다. 물론 여기에 개인마다 차이가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세존이시여, 만일 전에 외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기를 원히고 구족게를 받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하신다면 저는 4년의 견습기간을 거치겠습니다. 4년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시어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해 주소서,"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깟사빠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성취하고자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깟사빠 존자는 아라한들 중에 한 분이 되었다.
* 세존이시여, 지금까지 본경에서 나체수행자 깟사빠가 세존을 부를 때 사용한 호칭은 고따마 존자(bho Gotama)' 아니면 '도반 고따마(avuso Gotama)'였다.이제 그는 세존께 대한 믿음이 굳건해져서 마침내 세존을 반떼(bhante)라고 부르고 있다. 반떼(bhante)는 초기경에서 부처님이나 은사 스님이나 스승이나 주인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가장 높은 존칭이다. 외도들도 부처님께는 항상 도반(avuso)라고 부르고 있으며, 부처님을 스승으로 존경할 때만 반떼(bhante)라고 부른다. 본서에서는 bhante로 호칭할 때는 모두 '세존이시여'로 옯기고 있다.
(깟사빠 사자후경이 끝났다.)
실론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08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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