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 니까야(장)

삼명경 (三明經, Tevijja Sutta, D13)

수선님 2018. 3. 25. 11:27


삼명경 (三明經, Tevijja Sutta, D13)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500명의 많은 비구들과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시다가 마나사까다라는 꼬살라의 바라문 마을에 도착하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마나사까다의 북쪽에 있는 아찌라와띠 강 언덕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에 잘 알려진 바라문의 큰 가문 출신들이 마나사까따에 많이 머물고 있었는데 그들은 짱끼 바라문, 따룩카 바라문, 뽁카라사띠 바라문, 자눗소니 바라문, 또데야 바라문 이었으며, 그 외에도 다른 잘 알려진 바라문의 큰 가문 출신들이 머물고 있었다.

 

3. 와셋타와 바라드와자라는 (두 바라문 출가자) 산책을 나와서 이리저리 포행하다가 법(道.길))과 법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4. 와셋타 바라문은 이와 같이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것은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설하신 것이다."

  

5.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이와 같이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것은 따룩카 바라문이 설하신 것이다."

  

6. 와셋타 바라문은 바르드와자 바라문을 설득시킬 수 없었고 바라드와자 바라문도 와셋타 바라문를 설득시킬 수 없었다.

  

7. 그러자 와셋타 바라문은 바라드와자 바라문을 불러서 말했다. 

"바라드와자여, 사문 고따마는 사꺄의 후예인데 사꺄 가문으로부터 출가하여 마나사까따 북쪽의 아찌라와띠 강 언덕에 있는 망고 숲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 正遍智)이시며,

    영지(靈智)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이시며(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게사는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이시며,

    세상의 존귀하신 분(世尊)이시다'라고. 

  

바라드와자여, 우리 같이 사문 고따마께 가봅시다. 가서 사문 고따마께 이 뜻을 여쭈어봅시다. 그래서 사문 고따마께서 우리에게 설명해 주시는 대로 호지(護持)합시다."

"그렇게 합시다."라고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와셋타 바라문에게 대답했다.  


* 마나사까따 마을: 다른 경들과 본경의 주석서에 의하면 짱끼 바라문은 오빠사다에, 따룩카는 잇치닝갈라에, 뽁카라사띠는 욱깟타에, 자눗소니는 사왓티에, 또데야는 디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마나사까따는 아름다운 곳이어서 이들 유명한 바라문들은 이곳 아찌라와띠 언덕에 집(별장?)을 짓고 울타리를 만들어 남들이 접근 못하게 하여 여기서 만뜨라 공부(mantasajjhaya)를 하였다고 한다, (DA.ii.399) 

한편 맛지마 니까야의 주석서에 의하면 이들은 모두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의 궁중제관(purohita)들이었다고 한다.(MA.iii.431)


8. 와셋타와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이 계신곳으로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와셋타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여, 여기 저희 둘은 산책을 나와서 일저리 포행하여 다니다가 법과 법이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것은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설하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것은 따룩카 바라문이 설하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에 대해서 분쟁이 있고 말다툼이 있고 이견이 있습니다."

   

9. "와셋타여, 참으로 그대는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것은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설하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것은 따룩카 바라문이 설하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와셋타여, 그러면 무엇에 대해서 분쟁이 있고 무엇에 대해서 말다툼이 있고 무엇에 대해서 이견이 있단 말인가?"  

 

10."고따마 존자시여, 법과 법이 아닌 것에 대해서 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앗다리야 바라문, 띳띠리야 바라문, 찬도까 바라문, 찬다와 바라문, 브라흐마짜리야 바라문과 같은 바라문들은 무엇이든 간에 여러 가지 법에 대해서 천명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법은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예를 들면 마을이나 성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많은 길이 있다면 그 길 모두는 마을에서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앗다리야 바라문, 띳띠리야 바라문, 찬도까 바라문, 찬다와 바라문, 브라흐마짜리야 바라문과 같은 바라문들은 무엇이든 간에 여러 가지 법에 대해서 천명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법은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합니다." 

 

* 우빠니샤드를 지은 바라문들 여기에 언그되는 바라문들의 이름을 산스끄리뜨로 적어 보면 앗다리야(Adhariya)는 Adhvaryu이고, 띳띠리야(Tittiriya)는 Taittiriya이고, 찬도까(Chandoka)는 Chandoya이고, 찬다와(Chandava)와 브라흐마짜리야(Brahmacariya)는 빠알리어와 같다. 이 가운데 처음의 셋은 각각 「아이따레야 우빠니샤드」, 「따이띠리야 우빠니샤드」, 「찬도가 우빠니샤드」 등고층 우빠니샤드를 지은 자들과 그 이름이 일치한다. 그리고 브라흐마짜리야는 「브르하다란냐까 우빠니샤드」와 관련이 있느니 모른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따이띠리야와 찬도갸는 「따이띠리야 우빠니샤드」, 「찬도가 우빠니샤드」를 짓거나 결집한 바라문임에 틀림없다. 이들 우빠니샤드들은 모두 고층 우빠니샤드로 현존 우빠니샤드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으며,특히 찬도가, 브르하다란야까, 따이띠리야는 일찍부터 베단따 학파에서 가장 중요한 우빠니샤드로 중시 하였고 우빠니샤드 철학의 백미이다. 우빠니샤드 철학의 핵심은 우리나라에서도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알려져 있듯이 브라만(궁극적인 실체로서의 브라만 혹은 범천)과 하나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우빠니샤드 들에는 브라만(혹은 범천)에 도달하는 여러 가지 도가 설해지고 있다.

  

11. "와셋타여, 그대는 벗어남으로 인도한다고 말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벗어남으로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와셋타여, 그대는 벗어남으로 인도한다고 말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벗어남으로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와셋타여, 그대는 벗어남으로 인도한다고 말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벗어남으로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12. "와셋타여, 그런데 세 가지 베다(세가지 베다 경전)에 능통한 바라문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이라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그런데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스승이라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그런데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스승이라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그런데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일곱 세대 전의 스승들의 계보 가운데어느 한 스승이라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3. "와셋타여, 바라문들의 선조가 되는 자들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트라를 만들고 만트라를 설한 선인(仙人)들이었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노래인 만트라 구절들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고 있다.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띠마, 야마딱기,앙기사라,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비구(출가 바라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나는 범천은 어디 있는지, 범천은 어떻게 있는지, 범천은 언제부터 있는지 나는 이것을 알고 나는 이것을 본다.'라고 말하였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4. "와셋타여, 이와 같이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일곱 세대 전의 스승들의 계보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바라문들의 선조가 되는 자들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뜨라를 만들고 만뜨라를 설한 선인(仙人)들이었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노래인 만트라 구절들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띠마, 야마딱기,앙기사라,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비구(걸식하는 자. 바라문 출가자)이다.

 

그런데 그들도 '나는 범천은 어디 있는지, 범천은 어떻게 있는지, 범천은 언제부터 있는지 나는 이것을 알고 나는 이것을 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길을 가르친다.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되고 만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15. "와셋타여,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그 바라문들은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하면서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하는 길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와셋타여, 예를 들면 눈먼 자들이 줄을 지어서 서로서로 닿아 있는데 처음 사람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사람도 보지 못하고, 마지막 사람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와셋타여, 그와 같이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설하는 것은 장님 줄서기와 같다고 생각되는구나. 처음 사람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사람도 보지 못하고, 마지막 사람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이런 말은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오직 이름뿐임이 밝혀지고 만다. 허망하게 되고 만다. 공허하게 되고 만다."

 

* '직접 본' : '직접 본'으로 옮긴 원어는 sakkhidittha이다. 여기서 sakkhi는 sva(자신의) + akkhi(눈)으로 분석되며 그래서 '눈으로'라는 뜻이고dittha 는 drs(to see)의 과거분사이다. 그래서 '눈으로 직접 본'이라는 의미이다. 논리나 추론이 아니라 직접 대면하여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sacchi-kiroya(실현)도 '눈으로 행함'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살려 '실현'으로 옮기는데 같은 의미이다.

세존께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베다는 모두 전승되어 온 것이지 아무도 범천을 직접 본 사람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16.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도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과 달을 보기도 하고,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곳에서 빌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하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도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과 달을 보기도 하고,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곳에서 빌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합니다."

   

17.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도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과 달을 보기도 하고,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곳에서 빌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8. "와셋타여, 이와 같이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도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과 달을 보기도 하고,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곳에서 빌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일곱 세대 전의 스승들의 계보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바라문들의 선조가 되는 자들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트라를 만들고 만뜨라를 설한 선인(仙人)들이었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노래인 만뜨라 구절들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띠마, 야마딱기,앙기사라,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비구이다.

 

그런데 그들도 '나는 범천은 어디 있는지, 범천은 어떻게 있는지, 범천은 언제부터 있는지 나는 이것을 알고 나는 이것을 본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길을 가르친다.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되고 만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와셋타여,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그 바라문들은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하면서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하는 길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게 함.

즉 그들이 진정으로 태양과 달에 가느 길을 알고 있다면 그 길을 가면 되지 태양과 달을 숭배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들이 보통 사람들처럼 태양과 달을 숭배한다는 말은 거기에 이르는 길을 모른다는 것과 마찬가지며 그들 스스로 범부라고 인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한편,「찬도갸 우빠니샤드」등의 여러 우빠니샤드들과 「마하바라따」등에서 태양은 신들에게로 가는 길(deva-yana)이요달은 조상에게로 가는 길(pitr-yana)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19. "와셋타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나는 이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미녀를 갈망하고 탐한다.'고 말한다 하자. 그러면 그에게 '그대여, 그대는 그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끄샤뜨리아인지 바라문인지 와이샤인지 수드라인지 알기는 하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그런 그에게 다시, '그대여, 그대는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를 갈망하고 탐하는데 나라에서 제일가는 그 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피부가) 검은지 흰지 황색인지, 어떤 마을이나 성읍이나 도시에 사는지 아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는 다시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그에게 다시, '그대여,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여인)을 갈망하고 탐하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람은 터무니 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람은 터무니 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20. "와셋타여, 이와 같이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도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과 달을 보기도 하고,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곳에서 빌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일곱 세대 전의 스승들의 계보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바라문들의 선조가 되는 자들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트라를 만들고 만트라를 설한 선인(仙人)들이었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노래인 만뜨라 구절들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띠마, 야마딱기,앙기사라,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비구이다.

 

그런데 그들도 '나는 범천은 어디 있는지, 범천은 어떻게 있는지, 범천은 언제부터 있는지 나는 이것을 알고 나는 이것을 본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길을 가르친다.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되고 만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와셋타여,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그 바라문들은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하면서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하는 길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21. "와셋타여, 에를 들면 어떤 사람이 누각에 오르기 위하서 큰 사거리에서 사다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런 그에게 '그대여, 그대는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대는 그 누각이 동쪽 방향에 있다고 아는가? 아니면 남쪽 방향이나 서쪽 방향이나 북쪽 방향이나 위나 아래나 가운데 있다고 아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다시, '그대여, 그대는 그대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그런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드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람은 터무니 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람은 터무니 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22. "와셋타여, 이와 같이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도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과 달을 보기도 하고,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곳에서 빌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일곱 세대 전의 스승들의 계보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바라문들의 선조가 되는 자들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트라를 만들고 만트라를 설한 선인(仙人)들이었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노래인 만뜨라 구절들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띠마, 야마딱기,앙기사라,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비구이다.


그런데 그들도 '나는 범천은 어디 있는지, 범천은 어떻게 있는지, 범천은 언제부터 있는지  나는 이것을 알고 나는 이것을 본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길을 가르친다.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되고 만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23. "와셋타여,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그 바라문들은 '이것이야말로 곧은 법이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하면서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하는 길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24. "와셋타여, 예를들면 이 아짜라와띠 강이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큼 넘실대는 물로 가득 차 있다 하자. 그때 저 언덕을 원하고, 저 언덕을 찾고, 저 언덕으로 가려 하고,저 언덕으로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온다고 하자. 그는 이쪽 언덕에 서서 '저 언덕이여 이쪽으로 오라. 저 언덕이여 이쪽으로 오라'고 저쪽 언덕을 부른다고 하자.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부른다고 해서, 빈다고 해서, 원한다고 해서, 기뻐한다고 해서, 아짜라와띠 강의 저쪽 언덕이 이쪽 언덕으로 오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5.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바라문들이 행하는 법들을 버려 버리고 바라문들이 행하지 않는 법들을 받아 지니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드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소마를 되기를 원합니다. 와루나를 되기를 원합니다. 이사나를 되기를 원합니다. 빠자빠띠를 되기를 원합니다. 범천을 되기를 원합니다. 마힛디를 되기를 원합니다. 야마를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바라문들이 행하는 법들을 버리고 바라문들이 행하지 않는 법들을 받아 지니면서 빈다고 해서, 원한다고 해서, 기뻐한다고 해서, 몸이 무너진 뒤에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바라문들이 행하는 법들

"오계, 십선업도로 분류된 법들이 바로 바라문들이 행해야 하는 법이라고 알아야 한다."(Ibid)

오계는 살생, 도둑질, 음행, 망어, 불음주이고 십선업도는 살생, 도둑질, 음행, 망어, 양설, 악구, 기어, 탐욕, 성냄, 사견의 반대이다.


26. "와셋타여, 예를 들면 아짜라와띠 강이 까마귀가 마실 수 있를 만큼 넘실대는 물로 가득 차 있다 하자. 그때 저 언덕을 원하고, 저 언덕을 찾고, 저 언덕으로 가려 하고, 저 언덕으로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온다고 하자. 그는 이쪽 언덕에서 단단한 사슬로 손을 뒤로 한 채 꽁꽁 묶여 있다 하자.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데도 그 사람이 아짜라와띠 강의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갈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7.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있나니 성스러운 율에서는 이것을 족쇄라고도 부르고 얽매임이라고도 부른다. 무엇이 다섯인가?

 

눈으로 인식되는 형상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환락을 야기하는) 것들이다.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觸)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이것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니 성스러운 율에서는 이것을 족쇄라고도 부르고 얽매임이라고도 부른다.

  

"와셋타여,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이런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묶이고, 홀리고, 푹 빠져서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에 무지하여 그것을 즐기고 있다."

 

28. "와셋타여,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바라문들이 행하는 법들을 버려 버리고 바라문들이 행하지 않는 법들을 받아 지니면서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묶이고, 홀리고, 푹 빠져서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에 무지하여 그것을 즐기면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족쇄와 얽매임에 묶여 있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29. "와셋타여, 예를 들면 이 아짜라와띠 강이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큼 넘실대는 물로 가득 차있다 하자. 그때 저 언덕을 원하고, 저 언덕을 찾고, 저 언덕으로 가려 하고, 저 언덕으로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온다고 하자. 그는 이쪽 언덕에 머리까지 (덮개를) 뒤집어 쓰고 누워있다 하자.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데도 그 사람이 아찌라와띠 강의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갈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30.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다섯 가지 장애(五蓋)가 있나니 성스러운 율에서는 이것을 덮개라고도 부르고, 장애라고도 부르고, 가리개라고도 부르고, 씌우개라고도 부른다. 무엇이 다섯인가?

 

감각적 쾌락의 장애, 성냄의 장애, 해태 · 혼침의 장애(혼침과 졸음), 들뜸 · 후회의 장애(들뜸의 장애), 의심의 장애이다.

 

'와셋타여, 이들 다섯 장애(五蓋)가 있나니 성스러운 율에서는 이것을 덮개라고도 부르고, 장애라고도 부르고, 가리개라고도 부르고, 씌우개라고도 부른다.

  

와셋타여,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이들 다섯 가지 장애에 덮히고, 방해받고, 가리고, 씌어 있다.

 

와셋타여,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바라문들이 행하는 법들을 버려 버리고 바라문들이 행하지 않는 법들을 받아 지니면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에 덮히고, 방해받고, 가리고, 씌어 있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31.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늙고 나이 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바라문들이 말하기를 범천은 소유물이 있다고 들었는가, 범천은 소유물이 없다고 들었는가?"

"소유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고 들었는가, 없다고 들었는가?"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적대하는 마음이 있다고 들었는가, 없다고 들었는가?"

"적대하는 마음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오염된 마음이 있다고 들었는가, 없다고 들었는가?"

"오염된 마음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자유자재하다고 들었는가, 자유자재하지 않다고 들었는가?"

"자유자재하다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32.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소유물이 있는가, 소유물이 없는가?"

"소유물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원망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적대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적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오염된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오염된 마음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자유자재한가, 자유자재하지 않은가?"

"자유자재하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33. "와셋타여,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소유물을 가졌고 범천은 소유물이 없다. 그런데도 소유물을 가진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소유물이 없는 범천과 합류하고 합일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34. "와셋타여, 참으로 소유물을 가진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소유물이 없는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느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35. "와셋타여,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고 범천은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적대하는 마음을 가졌고 범천은 적대하는 마음이 없다.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오염된 마음을 가졌고 범천은 오염된 마음이 없다.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자유자재하지 못하고 범천은 자유자재하다. 그런데도 자유자재하지 못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자유자재한 범천과 합류하고 합일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36. "와셋타여, 자유자재하지 못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자유자재한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와셋타여, 여기서 참으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잘못) 들어가서는 (진흙창에) 빠져버린다. 빠져서는 낙담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건너기 쉬운 것이라 생각하며 건너려한다. 그러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처한 이런 것을 두고 삼베다의 사막이라고 부르고, 삼베다의 황무지라고도 부르며, 삼베다의 재앙이라고도 부른다."  


* 소유물

주석서에서는 여기서 소유물이란 여자(아내)를 소유하는 것을 말하며, 범천이 소유물이 없다는 것은 감각적인 욕망이 없기 때문에 아내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DA.ii.404)즉 욕계 천상의 신들은 아내를 거느리고 있지만 범천의 신들은 이미 거친 감각적 옥망은 다하였기 때문에 아내를 거느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독신수행을 브라흐마짜리야(brahma-cariya, 梵行)라고 하며, 본서에서는 청정범행으로 옮가고 있다. 청정범행의 일차적 의미는 성행위를 완전히 여읜 삶(methna-virti, MA.ii.68)을 말한다.

  

37.  이렇게 말씀하시자 와셋타 바라문 학도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께서는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을 알고 계신다.'라고 들었습니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서 마나사까따까지는 가깝고 멀지 않지 않은가?"

"그러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서 마나사까따까지는 가깝고 멀지 않습니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기 어떤 사람이 그 마나사까따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사람들이 그에게 마나사까따로 가는길을 묻는다고 하자. 

와셋타여, 그 사람이 그 마나사까따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그에게 마나사까따로 가는 길을 물으면 그는 (대답하는 것이) 느리고 우물쭈물 대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하면 그 사람은 마나사까따에서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마나사까따로 가는 길을 모두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8. "와셋타여, 참으로 그 사람이 그 마나사까따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그에게 마나사까따로 가는 길을 물으면  설혹 그는 (대답하는 것이) 느리고 우물쭈물 댈 수가 있겠지만 여래에게 범천의 세상과 범천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물으면 느리거나 우물쭈물 대지 않는다.

 

와셋타여, 나는 범천을 잘 알고, 범천의 세상을 잘 알고, 범천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닦음을 잘 알고, 그 법을 닦아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잘 안다."

    

39.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께서는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을 설하신다.'라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제게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바라문 사람들을 구원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와셌타여, 그렇다면 들어라.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라고 와셋타 바라문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40.  "와셋타여 

(1)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아라한(應供)이며,

      바르게 완전히 분(正等覺, 正遍智)이며,

      영지(靈智)와 실천이 구족하신 분이시며(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며,

      깨달은 분(佛)이며,

      세상의 존귀하신 분(世尊)이다.

  

그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그는 법을 설한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게 (법을 설하고)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법을 설하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낸다."

  

41.(2) "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서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에게 믿음을 가진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한다. '재가의 삶이란 막혀있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소라고동처럼 빛나는 청정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리라.'라고. 그는 나중에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적건 많건 간에 다 떠나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42. (3)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들을 받아지녀 닦는다. 유익한 몸의 업과 말의 업을 잘 갖추고, 생계를 청정히 하고, 계를 구족하고,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고, 마음새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고,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와셋타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계를 구족하는가?

 

(4) [짧은 길이의 계: 모두 26가지로 계를 지님]

  

1) 여기 비구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읜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는다. 겸손하고 자비로운 자가 되어 일체의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문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2) 그는 주지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읜다. 준 것만울 받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며  스스로 훔치지 않아 청정하게 머문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3) 그는 금욕적이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범행을 닦는다. 독신자가 되어 성행위의 저속함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4) 그는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멀리 여읜다. 그는 진실을 말하며 진실에 부합하고 굳건하며 믿음직하며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5) 그는 중상모략하는 말을 버리고 중상모략하는 말을 멀리 여읜다.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하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는다. 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하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와 같이 이간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그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6) 그는 욕하는 말(거친 말)을 버리고 욕하는 말을 멀리 여읜다. 그는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바르고 대중이 좋아하고 대중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하는 자이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7) 그는 꾸며 낸 말을 버리고 꾸며낸 말을 멀리 여읜다. 그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이며, 담아둘 만하며, 이유가 있고, 의미가 분명하며, 이익을 줄 수 있는 말을 시의 적절하게 하는 자이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8) 

1] 그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것을 멀리 여읜다.

2] 그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자이다. 그는 밤에 먹는 것을 그만두고 때 아닌 때 먹는 것을 멀리 여읜다.

3] 그는 춤,노래,음악,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멀리 여읜다.

4] 그는 화환을 두르고 향수를 바르고 화장품으로 꾸미는 것을 멀리 여읜다.

5] 그는 높고 큰 침상을 멀리 여읜다.

6] 그는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7] 그는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8] 그는 생고기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9] 그는 여자나 동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10] 그는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11] 그는 염소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12] 그는 닭과 돼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13] 그는 코끼리,소,말,암말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14] 그는 농토나 토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15] 그는 남의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여읜다.

16] 그는 사고파는 것을 멀리 여읜다.

17] 그는 저울을 속이고 금속을 속이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멀리 여읜다.

18] 그는 악용하고 속이고 횡령하고 사기하는 것을 멀리 여읜다.

19] 그는 상해,살상,포박,약탈,노략질,폭력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5) [중간 길이의 계: 모두 10가지로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멀리함]

 

1) 어떤 사문이나 어떤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성한 뜻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씨앗류와 초목류를 해치면서 살아간다. 즉 뿌리로 번식하는 것, 줄기로 번식하는 것, 마디로 번식하는 것, 싹으로 번식하는 것, 다섯번째로 종자로 번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씨앗류와 초목류를 해치는 것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2)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축적해두고 즐기는데 빠져 지낸다. 즉 음식을 축적하고, 마실 것을 축적히고, 옷을 축적히고, 탈 것을 축적하고, 그 축적한 것을 즐기는데 빠져서 지낸다. 

그러나 그는 축적해두고 즐기는 이런 것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3)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구경거리를 보는데 빠져서 지낸다. 즉 춤, 노래, 연주, 연극, 낭송, 박수치며 하는 공연, 심벌즈로 하는 공연, 북치며 하는 공연, 예술품 전람회, 쇠공놀이, 죽봉놀이, 곡예, 코끼리싸움, 말싸움, 황소싸움, 염소싸움, 숫양싸움, 닭싸움, 메추리싸움, 봉술, 권투, 레슬링, 모의전투, 군대의 행진, 군대의 집합, 열병이다. 

그러나 그는 구경거리를 보는 이런 것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4)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노름이나 놀이에 빠져 지낸다. 즉 팔목 체스장기, 십목 체스장기, 허공에 판이 있는 양 가정하고 하는 체스장기, 돌차기 놀이, 쌓기 놀이, 주사위놀이, 자치기, 맨손으로 벽에 그리는 놀이, 풀피리 불기, 장난감 쟁기질 놀이, 재주 넘기, 잎사귀 접어서 돌리기, 장난감 저울놀이, 장난감 수레놀이, 장난감 활쏘기, 글자 맞히기, 생각 맞히기, 불구자 흉내내기이다. 

그러나 그는 노름이나 놀이에 빠지는 이런 일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5)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큰 (호사스런) 침구와 좌구를 사용하면서 지낸다. 즉 아주 큰 침상, 다리에 동물 형상을 새긴 자리, 긴 술을 가진 이불, 울긋불긋한 천 조각을 덧댄 이불, 흰색 양털 이불, 꽃들을 수놓은 양털 이불, 솜으로 채운 누비이불, 동물을 수놓은 양털이불, 한쪽이나 양쪽에 술을 가진 양털이불, 보석을 박은 이불, 비단 이불, 무도장의 양탄자, 코끼리 등덮개, 수레 깔게, 사슴가죽 깔게, 영양가죽 깔게, 차양있는 양탄자, 붉은 베게와 붉은 발 한 받침이 있는 긴 의자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높고 큰 (호사스런) 침구와 좌구를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6)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치장하고, 장엄하는 일에 몰두한다. 즉 몸에 향가루 바르기, 기름으로 안마하기, 향수로 목욕하기, 사지를 안마하기, 거울 보기, 속눈썹 검게 칠하기, 화환과 향과 화장품으로 치장하기, 얼굴에 분칠하기, 화장 팔찌, 머리띠, 장식용 지팡이, 장식한 약통, 긴 칼, 일산, 수놓은 신발, 터번, 보석으로 만든 관모, 야크꼬리로 만든 불자(拂子), 긴 술로 장식된 흰옷을 입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치장하고 장엄하는 일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7)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쓸데없는 이야기에 몰두하면서 지낸다. 즉 왕의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들 이야기, 군대 이야기, 재난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음료수 이야기, 옷 이야기, 침대 이야기, 화환 이야기, 향 이야기, 친척 이야기, 탈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거리 이야기, 우물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하찮은 이야기,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관련된 이야기, 번영과 불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8)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논쟁에 몰두하면서 살아간다. 즉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그대는 그릇된 도를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른 도를 닦는 자이다.''내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그대가 (오랫동안) 주장해온던 것은 (한 마디로) 논파되었다''나는 그대의 (교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 보라.'라고. 

그러나 그는 이러한 논쟁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9)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전령이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즉 왕, 대신, 왕족, 바라문, 장자, 젊은이들이 '여기에 가시오, 저기에 가시오, 이것을 저기로 가지고 자시오, 저것을 여기로 가지고 오시오.'라는 것에 대해서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전령이나 심부름꾼 노릇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10)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계략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암시를 주고, 비방하고,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계략과 쓸데없는 말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6) [긴 길이의 계: 모두 7가지로 삿된 생계를 멀리함]

  

1)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몸의 툭징으로 예언하기, 벼락이나 하늘의 조짐에 따라 점치기, 해몽, 관상, 쥐가 파먹은 옷의 구멍에 따라서 점치기, 불을 섬김, 주걱으로 헌공함, 쌀가구 헌공, 쌀 헌공, 버터 헌공, 기름 헌공, 잎으로 하는 헌공, 피의 헌공, 수상(手相)보기, 집터 보기, 대지 보기, 묘지의 귀신 물리치기, 망령 물리치기, 흙집에 사는 자의 주술, 뱀 부리는 주술, 독극물 제조술, 전갈 부리는 기술, 쥐 부리는 기술, 새 부리는 기술, 까마귀 부리는 기술, 수명 예언하기, 화살에 대항하는 주문, 동물들의 울음을 아는 주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2)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보석, 옷감, 지팡이, 칼, 긴 칼, 화살, 활, 다른 무기, 여자, 남자, 소년, 소녀, 남녀 노비, 코끼리, 말, 물소, 황소, 암소, 염소, 양, 닭, 메추리, 큰 도마뱀, 귀걸이(혹은 집의 박공), 거북이, 다른 동물들 이런 것들의 색깔이나 모양이나 다른 특징들을 보고 점을 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3)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왕들의 진격이 있을 것이다. 왕들의 퇴각이 있을 것이다. 우리 쪽 왕들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저쪽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이다. 저쪽 왕들의 공격이 있을 터이고, 우리쪽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이다. 우리 쪽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저쪽 왕들이 패배할 것이다. 저쪽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우리 쪽 왕들이 패배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이편이 승리할 것이고 저편이 승리할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4)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월식이 있을 것이다. 일식이 있을 것이다. 행성의 합삭이 있을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할 것이다. 혹은 잘못된 항로로 운행할 것이다. 유성이 떨어질 것이다. 짙은 노을이 낄 것이다. 지진이 일어날 것이다. 천둥이 칠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이 뜨거나 지거나 흐리거나 깨끗할 것이다. 월식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일식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별이 가려지는 일은 다시 저러한 일을 가져올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항로로 운행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별들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항로로 운행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유성이 떨어짐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짙은 노을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천둥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의 지고 흐리고 깨끗함도 각각 여러가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5)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비가 내릴 것이다, 가뭄이 들 것이다, 퐁년이 들 것이다, 흉년이 들 것이다.  민심이 안정될 것이다, 민심이 흉흉할 것이다, 질병이 들 것이다, 건강하게 될 것이다,라거나 계산법, 암산법, 셈법, 시작(詩作)법, 처세술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6)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결혼할 때에 신부 집에 들어가는 날 또는 떠나는 날을 택일하고, 약혼이나 이혼의 길일을 택해 주고, 돈을 모으거나 지출하는 날을 택해 주고, 불행이나 행운울 가져오게 하는 주문을 외우고 발육부진인 태아의 원기를 회복하도록 주문을 외우고,  말더듬이나 벙어리가 되도록 주문을 외우고, 손에 풍이 들도록 주문을 외우고, 귀머거리가 되도록 주문울 외우고, 거울에(신울 모셔와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소녀의 몸에(신을 모셔와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하녀의 몸에(신을 모셔외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태양을 숭배하고, 대범천을 숭배하고, 입에서 불을 내뿜고, 행운의 여신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7)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踐)한 지식을 통해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신의 축복을 비는 의식, 귀신을 부르는 의식, 흙집에 들어가서 주문을 외우는 의식, 정력을 왕성하게 하는 의식, 성불구자가 되게 하는 의식, 집지을 땅을 마련하는 의식, 집 지을 땅을 신성하게 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의식을 위해 입을 씻고 목욕재계하고 불에 제사를 지낸다. 구토제와 하제와 거담제와 점액제거제를 주고, 귀약과 안약과 코약과 연고와 연고제거제를 주고, 안과의사, 외과의사, 소아과의사 일을 하고, 이전에 처벙한 약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 진통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여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7) 와셋타여,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와셋타여,  예를 들면 관정(灌頂)한 끄샤뜨리야 왕은 적을 정복하였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서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는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戒蘊)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비구는 계를 구족한다." 

  

(8) "와셋타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키는가?        


와셋타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감각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여기 비구는 귀로 소리를 들음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귀의 감각기능(耳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귀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여기 비구는 코로 냄새를 맡음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코의 감각기능(鼻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코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코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코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여기 비구는 혀로 맛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혀의 감각기능(舌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혀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여기 비구는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몸의 감각기능(身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여기 비구는 마노(마음.意)로 법(마음현상)을 식별함(식별작용)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眼))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렵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킨다.

   

(9) 와셋타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는가?

 

와셋타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갈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 · 서면서 · 앉으면서 · 잠들면서 · 잠을 깨면서 · 말하면서 ·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잘 갖춘다.

   

(10) 와셋타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얻은 필수품만으로) 만족하는가?

 

와셋타여, 여기 비구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과 몸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을 지키며 살아간다.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과 몸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을 지키며 간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비구는 (얻은 필수품만으로) 만족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어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부죄를 틀고 상체를 똑바로 세우며 전면에 마음새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11)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문다.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성냄의 오점을 제거하여 성냄이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여 성냄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이 없이 머문다.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문다.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유익한 법들에 아무런 의문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와셋타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장사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성공하여 옛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부인을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분이 생길 것이다. '나는 전에 빚을 내어 장사를 했다. 그런 나는 장사에서 성공하여 이제 옛 빚을 다 갚았다. 그뿐만 아니라 부인을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분이 생겼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와셋타여, 예를 들면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과도 같다. 그 사람은 식욕도 잃어버릴 것이고 그의 몸에 힘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그는 병에서 회복될 것이다. 식욕도 왕성하고 힘도 다시 생겨날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렸다. 그런 나는 이제 병에서 회복하였다. 식욕도 왕성하고 힘도 다시 생겨났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와셋타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옥에 갇혔다가 얼마 뒤 옥에서 풀려난 것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이제 안전하고 두려울 것도 없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옥에 갇혔다. 그런 나는 이제 옥에서 풀려났다. 나는 안전하고 두려울 것도 없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와셋타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종이 되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매여서,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없이 지내다가 얼마 뒤 종살이에서 풀려난 것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이제 독립하여 더 이상 남에게 매이지 않고, 제 가고 샆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종이 되어 내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종이여서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없이 지내다가 이제 종살이에서 풀려났다. 이제 나는 독립하여 더 이상 남에게 매이지 않고,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와셋타여, 예를 들면 어떤 부유하고 번창한 사람이 먹을 것도 없고 위험이 도사리는 사막을 걷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얼마 뒤 그 사막을 다 건너서 위험이 없는 안전한 처소인 마을 주변에 무사히 다다랐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부유하고 번창했는데 먹을 것도 없고 위험이 도사리는 사막을 걸었다. 이제 나는 그 사막을 다 건너서 위험이 없는 안전한 처소인 마을 주변에 무사히 다다랐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五蓋)가 제거되지 못한 것을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진 사람(욕심), 환자(악의), 옥에 갇힌 사람(해태와 혼침), 종(들뜸과 후회), 사막을 걷는 여행자(의심)로 여긴다. 그러나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에서 벗어난 사람, 병이 쾌유한 사람, 감옥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 자유인, 그리고 안전한 곳에 다다른 사람으로 여긴다. "

  

"와셋타여, 그는 자신에게서 다섯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환희가 생겨난다. 환희로운 자에게는 희열이 생긴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편안하다. 몸이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76. "그는 자애(慈)가 함께하는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77. "와셋타여, 예를 들면 고동을 부는 자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에서 다 들을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이처럼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은 자에게, 제한된 (욕계의) 업은 여기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 여기에 더 이상 정체해 있지 않는다. 

와셋타여, 이것이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78. "다시 와셋타여, 비구는 연민(悲)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와셋타여, 예를 들면 고동을 부는 자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에서 다 들을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이처럼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은 자에게, 제한된 (욕계의) 업은 여기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 여기에 더 이상 정체해 있지 않는다. 

와셋타여, 이것도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79. "다시 와셋타여, 비구는 기뻐함(喜)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와셋타여, 예를 들면 고동을 부는 자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에서 다 들을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이처럼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은 자에게, 제한된 (욕계의) 업은 여기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 여기에 더 이상 정체해 있지 않는다. 

와셋타여, 이것도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다시 와셋타여, 비구는 평정(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평정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와셋타여, 예를 들면 고동을 부는 자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에서 다 들을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이처럼 평정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은 자에게, 제한된 (욕계의) 업은 여기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 여기에 더 이상 정체해 있지 않는다. 

와셋타여, 이것도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 인도 바라문 수행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저주」(dhik,curse)이다.

「수따니빠따」5장도 바로 이 저주로부터 시작된다. 인도에서 제일가는 희곡인 「샤꾼딸라」에서도 바라문의 저주가 희곡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외 「라마야나」 「마하바라따」 등 인도를 대표하는 문헌에서도 바라문의 위엄과 권위를 표시하는 것으로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바라문들의 저주이다. 이러한 저주에 대해서 내리신 세존의 처방이 바로 이 사범주(四梵住, brahmavihira,네 가지 거룩한 마음이다. 바라문들의 제일의 염원인 범천에 태어나려면 악의를 품고 저주를 할 것이 아니라 자애(慈, metta), 연민(悲, karuna), 같이 기뻐함(喜, mudita), 평온(捨, upekkha)을 닦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 제한된 (욕계의) 마음

"제한된 업을 짓는 것을 욕계라고 부른다. 무량한 업을 짓는 것을 색계와 무색계라고 부른다."(DA.ii.406) 한편 「청정도론」과 「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는 욕계의 마음을 제한된 마음이라 하고, 색계와 무색계의 마음을 고귀한 마음이라고 부른다. 욕계의 마음은 그 힘이나 지배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제한된(partta) 마음이라 하고, 색계나 무색계의 마음은 장애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고귀하고, 고귀한 禪에 의해서 얻어졌기 때문에 고귀하다고 설명한다.

 

* 여기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

욕계의 업은 제한되어 있지 있고 색계, 무색계의 업의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네 가지 거룩한 마음은 색계 혹은 무섹계의 삼매에 속하는 제한되어 있지 않은 무량한 마음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주석서나 아비담마나 대승에서는 이를 사무량심(四無量心, appamanna)이라 부른다. 사무량심을 닦는 삼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청정도론」IX장을 참조할 것

  

80.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와같이 머무는 비구는 소유물이 있는가, 소유물이 없는가?"

"소유물이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원망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적대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적대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오염된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오염된 마음이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자유자재한가, 자유자재하지 않한가?"

"자유자재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81. "와셋타여, 참으로 비구는 소유물이 없고 범천도 소유물이 없다. 그러면 소유물이 없는 비구가 소유물이 없는 범천과 합류하고 합일하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참으로 소유물이 없는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소유물이 없는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한다."

 

"와셋타여, 참으로 비구는 원망하는 마음이 없고 범천도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 그러면 원망하는 마음이 없는 비구가 원망하는 마음이 없는 범천과 합류하고 합일하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참으로 원망하는 마음이 없는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원망하는 마음이 없는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한다."

  

"와셋타여,  참으로 비구는 적대하는 마음이 없고 범천도 적대하는 마음이 없다. 그러면 적대하는 마음이 없는 비구가 적대하는 마음이 없는 범천과 합류하고 합일하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참으로 적대하는 마음이 없는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적대하는 마음이 없는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한다."

  

"와셋타여, 참으로 비구는 오염된 마음이 없고 범천도 오염된 마음이 없다. 그러면 오염된 마음이 없는 비구가 오염된 마음이 없는 범천과 합류하고 합일하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참으로 오염된 마음이 없는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오염된 마음이 없는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한다."

  

"와셋타여, 참으로 비구는 자유자재하고 범천도 자유자재하다. 그러면 자유자재한 비구가 자유자재한 범천과 합류하고 합일하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자유자재한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자유자재한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한다."


82. 이렇게 말씀하시자 와셋타와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물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또한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 주소서." 


*소유물도 없고, 원망도 없고, 적대도 없고, 오염원도 없고, 자유자재한 출가 비구야말로 참으로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한 와셋타와 바라드와자는 나중에 부처님 아래로 출가하여 범천에 태어나는 것과는 비견할 수조차 없는 번뇌 멸한 아라한이 된다.

 

 

 (삼명경이 끝났다.)

 

 












실론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08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