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잡)

[스크랩] 제24상윳따 - 제2장 세 번째 여행 품(Tattiya gamana vagga. S24:45-S24:70)

수선님 2018. 4. 8. 11:57

                                       제2장 세 번째 여행 품

                                     Tattiya-gamana-vagga


바람 경(S24:45)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바람은 불지 못하고(불지않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흐르지 않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에 탐착하여 이와같이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난다(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느낌이 있을 때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에 탐착하여 이와같이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난다(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인식(지각)이 있을 때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에 탐착하여 이와같이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난다(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에 탐착하여 이와같이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난다(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의식에 집착하고 의식에 탐착하여 이와같이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난다(견해를 일으킨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난다.”


이것은 나의 것 경(S24:46)

Etaṁmam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는 견해를 일으키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에 탐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에 탐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에 탐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에 탐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견해르르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킨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는 견해가 일어난다.”


그것은 자아이다 경(S24:47)

Soatt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이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견해가 일어난다.'


나의 존재는 있지 않음 경(S24:48)

Nocamesiy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없음 경(S24:49)

Natth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러한 견해가 일어나는가?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주) 이 경은 윤리적 허무주의를 고취시키는 철학적 유물론을 전개시키고 있다. 아지타 께사깜발린(Ajita Kesakambalin)은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론자이다. 그는 지수화풍의 네 가지 물질적 원소만이 참된 실재라고 하여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이러한 유물론자들은 감각적으로 지각가능한 인상만을 인정하고 분리된 지각에 물질적 실체성을 부여함으로써 인과성을 부정한다. 유물론자들은 자성론자(自性論者.svabhavavadin)로서 물리적 개체를 구성하는 질료의 명령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내적 본성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결정론자이므로, 인간의 노력을 부정하고 도덕적 정신적인 모든 영역에서 인과성을 부정하며 따라서 무인론(無因論. ahetuvada)을 주장한다.
인도에서는 이같은 유물론자들을 로카야타(lokayata)라고 불렀으며 한역불전에서는 순세외도(順世外道)라고 불렀다. 또한 짜르와까(carvaka)라고 하는데 그것은 유물론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특히 도덕적 인과성의 부정에 따라 인간의 사후 존재를 부정한다는 측면에서 허무론은 단멸론(斷滅論. ucchedavada)라고 불리운다. 넓게는 우연론이나 숙명론도 이러한 허무론에 속하며 특징적으로 도덕적인 허무주의, 무정부주의를 표방한다.


업을 짓거나(행위) 경(S24:50)

Karo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러한  견해가 일어나는가?

‘스스로 업을 짓고(행하고), 업을 짓게 하거나(행하게 하고),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스스로 업을 짓거나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업을 짓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업을 짓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업을 짓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업을 짓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업을 짓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주) 이 경은 뿌라나 깟싸빠(Purana Kassapa)의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 그의 비결정론은 일상적 의미의 우연론이 아니라 불교적인 연기사상을 부정하는 절대적인 우연론으로서의 무인론(無因論. ahetuvada)이다. 모든 원인과 결과는 무(無)에서 유(有)가 나오는 것처럼 초월적이고 완전히 우연적이어서 절대적으로 예측가능하지도 않고, 무법칙적으로 변화하므로 인과관계는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으며, 인과적 연속성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단멸론(斷滅論. ucchedavada)에 속한다. 따라서 인간 행위에 있어서도 도덕적 책임감은 성립될 수 없다. 그는 경의 내용과 같은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이 뿌리나 깟싸빠가 윤리적인 삶을 부정하는 무작설(無作說. akiriyavada)이라고 불리우는 견해를 갖게 된 이유이다. 붓다는 그러한 깟싸빠를 무작론자(無作論者. akiriyavadin)라고 부르고 자신은 작론자(作論者. kiriyavadin)라고 불렀다. 붓다가 깟싸빠를 비난한 것은 도덕적 책임감에 입각한 윤리적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그의 비결정론 때문이었다.


원인 경(S24:51)

Hetu-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천착하여 이러한 견해가 일어나는가?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서로 변이하며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지각)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주) 이 경은 결정론을 주장한 막칼리 고쌀라(Makkhali Gosala)의 견해를 비난한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은 자연의 불변의 법칙으로 생겨난다고 주장했으며, 인간의 모든 체험에서 우연을 추방하였다. 그의 주장은 극단적인 자연적 결정론으로 붓다는 이러한 숙명론적 결정론이 모든 이교적인 이론 가운데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불교의 무자비한 입장을 고쌀라의 견해를 폄하하고 때로는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는 비록 극단적인 결정론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결정의 범주를 종(種)으로 규정한 과학적인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

"모든 동물, 모든 유정, 모든 존재, 모든 생명은 ... 결정과 종과 자연의 본성에 희해서 서로 변이하여 여섯 가지 종류에 따라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받는다." 여기서 결정론이란 단어의 관건이 되는 '결정과 종과 자연의 본성에 의해서 서로 변이하여'란 복합어 즉niyatisangatibhavaparinata 란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학자들 간에 결정론에 대한 많은 이견이 있어왔다. 전통적으로 붓다고싸는 이 말을 병렬복합어(dvanda)로 해석해서 모든 존재는 운명(niyati)과 기회(sangati)와 본성(bhava)에 의해 전개된다고 주장했다.

고쌀라는 모든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강하게 결정되어 있는 것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모든 사건들이 미리 결정되어 있으며 운명지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운명은 신들의 힘과 권능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노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너무 극단적인 결정론은 무조건적 결정론으로 무인론이며, 결과적으로 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에 의하면 인간과 세계는 마치 실타래가 던져졌을 때 완전히 풀릴 때까지 풀려나가듯이(seyyatha pi nama suttagule khitte nibbethiyamanam eva phaleti)가차없는 목적론과 일치하는 무자비한 과정의 산물이다. 고쌀라의 주장은 인과법칙의 가혹함에서 연원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숙명론은 결과적으로 정신적인 인과성에서 자명한 자유의지마저 부정할 수 밖에 없었다.


큰 견해 경(S24:52)

Mahādiṭṭh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러한 견해가 일어나는가?

‘일곱 가지 요소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주) 절대적인 도덕부정론을 주장하는 빠꾸다 깟차야나(Pakudga Kaccayana)의 주장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목숨의 요소등 이 일곱 가지는 만든 것이나 만들게 한 것이 아니고 창조된 것이너가 창조하게 한 것이 아니고 생겨나지 않으나 견고해서 석녀와 같고 산봉우리와 같이 서 있고 기둥처럼 단단하여 움직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서로 핍박하지 않는다. 서로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유물론적으로 7요소설(지(pathavikava), 수(apokaya), 화(tejokaya), 풍(vayoka), 고(dukkha), 락(sukha), 영혼(jiva을 뜻하는데,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유물론자들과 다른 이원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캇차야나가 인정하는 영혼은 물질적인 것으로 지극히 유물론적이다. 이들 7요소는 불생산이며 움직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서로 인과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토대위에 '만약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잘라도 아무도 누구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 아니며, 단지 7요소 사이를 따라 칼이 통과한 것이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가르침은 진아의 불괴성과 불변성을 주장하는 초기 베단따적인 우빠지니사드의 영원주의에 영향을 받은 허무주의이다. 


세상은 영원함 경(S24:53)

Sassatalo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음 경(S24:54)

Asassatalo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유한함 경(S24:55)

Antav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집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유한하지 않음 경(S24:56)

Anantav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생명이 바로 몸임(영혼과 육신은 같다) 경(S24:57)

Taṁjīvaṁtaṁsarīra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천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생명과 몸은 다름(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 경(S24:58)

Aññṁjīvaṁaññaṁsarīra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함 경(S24:59)

Hotitathāga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음 경(S24:60)

NaHotitathāga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함 경(S24:61)

HoticanacaHotitathāga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김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님 경(S24:62)

NevahotinanaHotitathāga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 않는 것도 아니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물질을 가진 자아 경(S24:63)

Rūpīatt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물질을 가지지 않은 자아 경(S24:64)

Arūpīa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자아는 물질[色]을 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물질을 가지기도 가지지 않기도 함 경(S24:65)

Rūpīcārūpīc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자아는 물질[色]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물질을 가지는 것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님 경(S24:66)

Nevarūpīnārūpī-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자아는 물질[色]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전적으로 행복함 경(S24:67)

Ekantasukhī-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집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전적으로 괴로움 경(S24:68)

Ekantadukkhī-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함 경(S24:69)

Sukhadukkhī-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님 경(S24:70)

Adukkhamasukhī-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처럼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 이것이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을 집착하여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제2장 세 번째 여행 품(Tattiya-gamana-vagga) 이 끝났다.



출처 : 붓다의 옛길
글쓴이 : 실론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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