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잡)

[스크랩] 제24상윳따 - 견해 상윳따(Ditthi samyutta) - 제1장 예류자 품(Sotapatti vagga. S24:1-

수선님 2018. 4. 8. 11:56

                                    제24주제(S24)

                            견해 상윳따( Diṭṭhi-saṁyutta)


제1장 예류자 품

Sotāpatti-vagga


바람 경(S24:1)

Vā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바람은 불지 못하고(불지않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흐르지 않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에 탐착하여 이와같이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난다(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느낌이 있을 때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에 탐착하여 이와같이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난다(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인식(지각)이 있을 때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에 탐착하여 이와같이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난다(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에 탐착하여 이와같이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난다(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의식에 집착하고 의식에 탐착하여 이와같이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난다(견해를 일으킨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영원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을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바람은 불지 못하고 강은 흐르지 못하고 임산부는 출산하지 못하고 태양과 달은 뜨지 못하고 지지 못하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는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註) 원자론(原子論)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무가지 등을 뿌러뜨리고 바람이 불지만 부는 것은 바람이 아니고 소위 바람의 원자이다. 강물이 흐르지만 실제 물은 흐르지 않고 흐르는 것은 소위 물의 원자이다. 임산부들은 출산한다고 하지만 그녀들은 임신하지 않았고 태아는 출산되지 못하고 태아의 원자만 출산된다. 따라서 바람.강물.임산부들은 실제 기둥이나 산봉우리처럼 고정되어 있다라는 원자론적 견해이다. 


"바람" 이라는 경전에서는 '바람이 불지 않고 강물이 흐르지 않고 임산부가 출산하지 못하고 해와 달이 뜨거나 지지 못하고 모든 것이 기둥처럼 고정되어 있다'라는 견해가 외도적인 사견임을 붓다는 지적하고 있다. 붓다고사는 주석에서 '태양과 달이 뜨고 질지라도 그것들은 뜨고 지는 것이 아니다. 태양과 달의 원자가 뜨고 지는 것이다. 실제로 태양과 달은 기둥이나 산봉우리처럼 고정되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이것은 원자론에 입각한 견해이다. 


붓다는 이러한 세계관은 존재의 다발(오온)에 대한 집착과 탐착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는 존잭의 다발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견해를 일으킬 수 없다고 설하고 있다. 순간적인 지각현상(인식현상)에 영원한 실체성을 부여하는 집착의 작용에 의해서 그러한 사견이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나의 것 경(S24:2)

Etaṁmam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는 견해를 일으키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킨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의 나의 자아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는 견해가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그것은 자아이다 경(S24:3)

Soatt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이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이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견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으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나의 존재는 있지 않음 경(S24:4)

Nocamesiy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없음 경(S24:5)

Natth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이러한 견해가 일어나는가?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깨달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목숨이 끝날 때는 흙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간다. 네명의 인부가 관에 죽은자를 메고 가서 화장터에 도착할 때 까지만 울면서 간다. 마침내 뼈는 잿빛으로 변하고 보시와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업을 짓거나(행위) 경(S24:6)

Karo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러한 견해가 일어나는가?

‘스스로 업을 짓고(행하고), 업을 짓게 하거나(행하게 하고),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 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업을 짓고 업을 짓게하거나, 도륙하고 도륙하도록 시켜도, 고문(학대)하고 고문하게 시켜도, 슬프하고 슬퍼하게 하여도,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여도, 전율하고 전율하게 하여, 생명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은 가지고 문을 부수어 집에 침임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칼과 같은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조각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의 남쪽을 다니면서 살육하고 살육하게 하고 절단하며 절단하게 시키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의 과보도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에 의해서도 수행에 의해서도 계행을 지키더라도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공덕이 없으며 공덕의 과보가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원인 경(S24:7)

Hetu-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천착하여 이러한 견해가 일어나는가?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서로 변이하며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지각)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이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거기에는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자연의 본성에 의하여 여섯 종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註)결정론자인 막깔리 고쌀라(Makkhali gosala)의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


7.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큰 견해 경(S24:8)

Mahādiṭṭh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이러한 견해가 일어나는가?

‘일곱 가지 요소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질을 집착하고 인식 탐착하여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일곱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즐거움의 요소, 괴로움의 요소, 그리고 일곱 번째로 목숨의 요소이다. 이들 일곱 가지 요소(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벤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 가지 요소(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백 4십만 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6천 6백 가지 모태가 있다. 5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세계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아귀,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매듭, 7백 가지 절벽,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꿈, 7백 가지 꿈이 있다. 그리고 8백 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유전하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행이나 금께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 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다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종극에 이른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종극에 이른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註) 빠꾸다 깟짜야나(Pakudha kaccayana): 절대적인 도덕 부정론을 주장한 그는 '생명을 해치고 주지않는 것을 빼앗고 집을 침입하여 도둑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겁탈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물론적으로 7요소설을 주장했다. 이들 7요소는 변화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주장하에 '만약 날카로운 칼이 머리를 잘라도 아무도 누구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 아니며 단지 7요소 사이를 따라 칼이 통관한 것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진아의 불괴성과 불변성을 주장하는 초기 베단타적인 우파니샤드의 영원주의(상주론)에 영향을 받은 허무주의이다. 


7.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세상은 영원함 경(S24:9)

Sassatalo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음 경(S24:10)

Asassatalo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유한함 경(S24:11)

Antav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집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유한하지 않음 경(S24:12)

Anantav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김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생명이 바로 몸임(영혼과 육신은 같다) 경(S24:13)

Taṁjīvaṁtaṁsarīra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천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생명과 몸은 다름(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 경(S24:14)

Aññṁjīvaṁaññaṁsarīra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영혼과 육신은 같지 않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함 경(S24:15)

Hotitathāga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그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음 경(S24:16)

NaHotitathāga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함 경(S24:17)

HoticanacaHotitathāga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에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님 경(S24:18)

NevahotinanaHotitathāga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집착하고 물질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집착하고 느낌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집착하고 인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집착하고 형성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집착하고 의식을 탐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인식한 것, 얻은(획득한)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가 이 여섯 가지 경우들에 대한 의심(의혹)이 제거되고 괴로움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에 대한 의심도 제거되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 예류자]여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제1장 예류자 품이 끝났다. 첫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바람 ② 이것은 나의 것 ③ 이 자아 ④ 나의 존재는 있지 않음 ⑤ 없음 ⑥ 행위 ⑦ 원인 ⑧ 큰 견해

⑨ ~ ⑩ 세상 ⑪ ~ ⑫ 유한함 ⑬ ~ ⑭ 생명⑮ ~ ⑱ 여래이다.


출처 : 붓다의 옛길
글쓴이 : 실론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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