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 니까야(증일)

여섯의 모음 - 제6장 대 품(A6:55-A6:64. Mahā-vagga)

수선님 2018. 4. 29. 12:00

                              Ⅱ. 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Dutiya-paṇṇāsaka


제6장 대 품

Mahā-vagga


소나 경(A6:55)

Soṇ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에 소나 존자는 라자가하에서 차가운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소나 존자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있을 때 문득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존의 제자들은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나는 취착을 없애지 못했고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 집은 부유하다. 나는 재물을 즐길 수도 있고 공덕을 지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이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가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지어야겠다.’


세존께서는 마음으로 소나 존자의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을 아시고 마치 힘 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재빠르게 독수리봉 산을 떠나 차가운 숲에 소나 존자의 앞에 나타나셔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소나 존자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소나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나여, 그대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있을 때 문득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존의 제자들은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나는 취착을 없애지 못했고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 집은 부유하다. 나는 재물을 즐길 수도 있고 공덕을 지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이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가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지어야겠다.’라고.”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전에 재가자였을 때 류트의 활줄 소리에 능숙하였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류트의 활줄이 지나치게 팽팽한데도 그대의 류트는 그때 선율이 아름답고 연주하기에 적합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류트의 활줄이 지나치게 느슨한데도 그대의 류트는 그때 선율이 아름답고 연주하기에 적합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그러나 그대의 류트의 활줄이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고 적당한 음계(音階)에 맞추어졌을 때 그대의 류트는 그때 선율이 아름답고 연주하기에 적합하게 되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그와 같이 지나치게 열심인 정진은 들뜸으로 인도하고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은 나태함으로 인도한다. 소나여, 그러므로 그대는 정진을 고르게 유지해야 한다. 다섯 가지 기능들[五根]의 균등함을 꿰뚫어야 하고 거기서 표상을 취해야 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소나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처럼 소나 존자를 교계하신 뒤 마치 힘 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재빠르게 차가운 숲에서 사라져 독수리봉 산에 나타나셨다.


2. 소나 존자는 그 뒤에 정진을 고르게 유지하였고 다섯 가지 기능들[五根]의 적당함을 꿰뚫었으며 거기서 표상을 취하였다. 소나 존자는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성취하고자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을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그래서 소나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소나 존자는 아라한과를 얻은 뒤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세존께 찾아가리라. 가서 세존의 곁에서 구경의 지혜를 말씀드리리라.’

그래서 소나 존자는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소나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3. “세존이시여, 아라한이고 번뇌를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비구는 여섯 가지 경우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출리에 대한 확신이 있고, 멀리 여읨에 대한 확신이 있고, 악의 없음에 대한 확신이 있고, 갈애의 소멸에 대한 확신이 있고, 취착의 소멸에 대한 확신이 있고, 어리석지 않음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4. “세존이시여, 그런데 여기 어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이 존자는 오직 믿음만을 의지하여 출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구나.’라고. 

세존이시여,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번뇌를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한 비구는 다시 더 해야 할 수행이나 이미 획득한 것에다 더 모으는 것을 자신에게서 찾아보지 못합니다. 그는 탐욕이 소멸하였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에 출리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성냄이 소멸하였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에 출리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어리석음이 소멸하였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에 출리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5. “세존이시여, 그러나 여기 어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이 존자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갈구하면서도 멀리 여읨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구나.’라고. 

세존이시여,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번뇌를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한 비구는 다시 더 해야 할 수행이나 이미 획득한 것에다 더 모으는 것을 자신에게서 찾아보지 못합니다. 그는 탐욕이 소멸하였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에 멀리 여읨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성냄이 소멸하였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에 멀리 여읨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어리석음이 소멸하였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에 멀리 여읨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6. “세존이시여, 그러나 여기 어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이 존자는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을 가져 본질로부터 되돌아가면서도 성냄 없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구나.’라고.

세존이시여,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번뇌를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한 비구는 다시 더 해야 할 수행이나 이미 획득한 것에다 더 모으는 것을 자신에게서 찾아보지 못합니다. 그는 탐욕이 소멸하였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에 성냄 없음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성냄이 소멸하였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에 성냄 없음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어리석음이 소멸하였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에 성냄 없음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7. “세존이시여, 그런데 여기 어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이 존자는 오직 믿음만을 의지하여 출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구나.’라고. 

세존이시여,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번뇌를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한 비구는 다시 더 해야 할 수행이나 이미 획득한 것에다 더 모으는 것을 자신에게서 찾아보지 못합니다. 그는 탐욕이 소멸하였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에 갈애의 소멸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성냄이 소멸하였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에 갈애의 소멸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어리석음이 소멸하였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에 갈애의 소멸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8. “세존이시여, 그러나 여기 어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이 존자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갈구하면서도 멀리 여읨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구나.’라고. 

세존이시여,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번뇌를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한 비구는 다시 더 해야 할 수행이나 이미 획득한 것에다 더 모으는 것을 자신에게서 찾아보지 못합니다. 그는 탐욕이 소멸하였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에 취착의 소멸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성냄이 소멸하였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에 취착의 소멸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어리석음이 소멸하였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에 취착의 소멸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9. “세존이시여, 그러나 여기 어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이 존자는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을 가져 본질로부터 되돌아가면서도 성냄 없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구나.’라고.

세존이시여,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번뇌를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한 비구는 다시 더 해야 할 수행이나 이미 획득한 것에다 더 모으는 것을 자신에게서 찾아보지 못합니다. 그는 탐욕이 소멸하였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에 어리석지 않음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성냄이 소멸하였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에 어리석지 않음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어리석음이 소멸하였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에 어리석지 않음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10.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 만일 눈으로 인식되는 강한 형상들이 눈의 영역에 나타나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의 마음에 섞이지 않나니,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다시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만일 귀로 인식되는 강한 소리들이 청각의 영역에 나타나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의 마음에 섞이지 않나니,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다시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만일 코로 인식되는 강한 냄새들이 후각의 영역에 나타나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의 마음에 섞이지 않나니,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다시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만일 혀로 인식되는 강한 맛들이 미각의  영역에 나타나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의 마음에 섞이지 않나니,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다시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만일 몸으로 인식되는 강한 감촉들이 촉각의 영역에 나타나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의 마음에 섞이지 않나니,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다시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만일 마노(마음)로 인식되는 강한 법(마음현상)들이 마노의 영역에 나타나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의 마음에 섞이지 않나니,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다시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11.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틈이 없고 균열이 없고 단단하게 뭉쳐진 바위산이 있습니다. 만일 동쪽에서 강한 비를 동반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더라도 그 바위산을 흔들지 못하고 진동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합니다. 만일 서쪽에서 강한 비를 동반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더라도 그 바위산을 흔들지 못하고 진동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합니다. 만일 북쪽에서 강한 비를 동반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더라도 그 바위산을 흔들지 못하고 진동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합니다. 만일 남쪽에서 강한 비를 동반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더라도 그 바위산을 흔들지 못하고 진동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는 만일 눈으로 인식되는 강한 형상들이 눈의 영역에 나타나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의 마음에 섞이지 않나니,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다시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는 만일 귀로 인식되는 강한 소리들이 청각의 영역에 나타나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의 마음에 섞이지 않나니,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다시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는 만일 코로 인식되는 강한 맛들이 후각의 영역에 나타나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의 마음에 섞이지 않나니,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다시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는 만일 혀로 인식되는 강한 맛들이 미각의 영역에 나타나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의 마음에 섞이지 않나니,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다시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는 만일 몸으로 인식되는 강한 감촉들이 촉각의 영역에 나타나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의 마음에 섞이지 않나니,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다시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는 만일 마노로 인식되는 강한 법들이 마노의 영역에 나타나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의 마음에 섞이지 않나니,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다시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12. “출리에 대한 확신이 있고

  멀리 여읨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성냄 없음에 대한 확신이 있고

  취착의 소멸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갈애의 소멸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어리석지 않음에 대한 확신이 있는 자는

  감각장소들의 일어남을 보고 

  바르게 마음이 해탈하노라.

  이렇게 바르게 해탈하여

  마음이 평화로운 비구는

  이미 한 것에다 더 모으지 않으며

  더 해야 할 바도 없네.

  단단하게 뭉쳐진 바위산을

  바람이 흔들지 못하듯이

  형상∙소리∙냄새∙맛∙감촉∙현상들은

  그것이 원하는 것이건, 그렇지 않은 것이건 간에

  그러한 비구를 관통하지 못하네.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해탈하였으니

  마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할 뿐이로다.”


팍구나 경(A6:56)

Phaggu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팍구나 존자가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팍구나 존자가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연민하는 마음을 내시어 팍구나 존자를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동의하셨다.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삼매를 풀고 일어나셔서 팍구나 존자에게 가셨다. 팍구나 존자는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고 침상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팍구나 존자에게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만 되었다, 팍구나여. 침상에서 일어나려 하지 말라. 여기 이미 마련된 자리가 있지 않은가? 나는 여기 앉을 것이다.”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신 뒤 팍구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팍구나여, 어떻게 견딜만한가? 그대는 편안한가? 괴로운 느낌이 진정되고 더 심하지는 않은가? 진정되었고 더 심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가?”

“세존이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편안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느낌은 더 심하기만 진정되지 않습니다. 더 심하기만 하고 진정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힘센 사람이 시퍼런 칼로 머리를 쪼개듯이 그와 같이 거센 바람이 제 머리를 내리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편안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느낌은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습니다. 더 심하기만 하고 진정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힘센 사람이 튼튼한 가죽 끈으로 제 머리를 죄어 머리띠를 동여맨 것처럼 그와 같이 제 머리에 심한 두통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편안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느낌은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습니다. 더 심하기만 하고 진정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능숙한 백정이나 백정의 조수가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 배를 도려내듯이 그와 같이 거센 바람이 제 배를 도려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편안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느낌은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습니다. 더 심하기만 하고 진정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힘센 두 사람이 힘없는 사람의 양팔을 잡고 숯불구덩이 위에서 굽고 태우듯이 그와 같이 제 몸에는 극심한 불덩이가 끓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편안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느낌은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습니다. 더 심하기만 하고 진정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중병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팍구나 존자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그리고 팍구나 존자는 세존께서 가신 뒤 오래지 않아 임종하였다. 그가 죽을 때 감각기능들은 지극히 맑았다. 


2.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팍구나 존자가 세존께서 나오신 뒤 오래지 않아 임종하였습니다. 그가 죽을 때에 감각기능들은 지극히 맑았습니다.”

“아난다여, 팍구나 비구의 감각기능들이 왜 지극히 맑지 않았겠는가? 

아난다여, 팍구나 비구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였는데 그는 법의 가르침을 들은 뒤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

아난다여, 바른 시간에 법을 경청하고 바른 시간에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에는 여섯 가지 이익이 있다. 무엇이 여섯인가?”


3.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낮은 단계의 족쇄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 여래를 친견하게 된다. 여래는 그에게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한 가르침을 설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그는 그러한 법의 가르침을 듣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바른 시간에 법을 경청하는 첫 번째 이익이다.


아난다여, 비구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죽을 때 여래를 친견하지 못하지만 여래의 제자를 친견하게 된다. 여래의 제자는 그에게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한 가르침을 설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그는 그러한 법의 가르침을 듣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바른 시간에 법을 경청하는 두 번째 이익이다.


아난다여, 비구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였다. 그는 죽을 때 여래를 친견하지 못하고 여래의 제자를 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한다. 그가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할 때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바른 시간에 법을 경청하는 세 번째 이익이다.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로부터는 마음이 해탈하였다. 그러나 재생의 근거를 파괴한 위없는 열반을 대상으로는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였다. 그는 죽을 때 여래를 친견하게 된다. 여래는 그에게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한 가르침을 설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그는 그러한 법의 가르침을 듣고 재생의 근거를 파괴한 위없는 열반을 대상으로 마음이 해탈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바른 시간에 법을 경청하는 네 번째 이익이다.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로부터는 마음이 해탈하였다. 그러나 재생의 근거를 파괴한 위없는 열반을 대상으로는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였다. 그는 죽을 때 여래를 친견하지는 못하지만 여래의 제자를 친견하게 된다. 여래의 제자는 그에게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한 가르침을 설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그는 그러한 법의 가르침을 듣고 재생의 근거를 파괴한 위없는 열반을 대상으로 마음이 해탈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바른 시간에 법을 경청하는 다섯 번째 이익이다.


아난다여, 비구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로부터는 마음이 해탈하였다. 그러나 재생의 근거를 파괴한 위없는 열반을 대상으로는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였다. 그는 죽을 때 여래도 친견하지 못하고 여래의 제자도 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한다. 그가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할 때 재생의 근거를 파괴한 위없는 열반을 대상으로 마음이 해탈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바른 시간에 법을 경청하는 여섯 번째 이익이다.


아난다여, 바른 시간에 법을 경청하고 바른 시간에 의미를 자세히 살펴볼 때 이러한 여섯 가지 이익이 있다.”


여섯 태생 경(A6:57)

Chaḷabhijāt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세존이시여, 뿌라나 깟사빠는 여섯 부류의 태생을 천명하였습니다. 그는 흑인의 태생을 천명하였고 청인의 태생을 천명하였고 적인의 태생을 천명하였고 황인의 태생을 천명하였고 백인의 태생을 천명하였고 순백인의 태생을 천명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뿌라나 깟사빠는 이 가운데 흑색의 태생으로는 양을 도살하는 자들, 돼지를 도살하는 자들, 새를 잡는 자들, 사슴을 죽이는 자들, 사냥꾼들, 물고기 잡는 자들, 도둑들, 도둑을 죽이는 집행관들, 감옥지기들, 혹은 다른 잔인한 직업을 가진 자들을 들고 있습니다. 

청색의 태생으로는 가시와 함께 머무는 비구들과 업을 설하고 도덕적 행위 지음을 설하는 자들을 들고 있습니다.

적색의 태생으로는 한 벌의 옷만을 입는 니간타들을 들고 있습니다.

황색의 태생으로는 나체 수행자들의 제자인 흰옷을 입는 재가자들을 들고 있습니다.

백색의 태생으로는 아지와까들과 여자 아지와까들을 들고 있습니다.

순백색의 태생으로는 난다 왓차와 끼사 상낏짜와 막칼리 고살라를 들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뿌라나 깟사빠는 이러한 여섯 부류의 태생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3. “아난다여,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뿌라나 깟사빠가 천명한 이러한 여섯 부류의 태생에 동의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예를 들면 가난하고 무일푼이고 궁핍한 사람이 있다하자. 어떤 사람이 그가 원하지도 않는데 그에게 고깃덩이를 잘라주면서 ‘여보게 이 사람아, 이 고기를 먹고 그 대가를 지불하게.’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뿌라나 깟사빠는 사문∙바라문들이 동의하지도 않은 여섯 부류의 태생을 천명하였다. 마치 어리석고, 우둔하고, 들판을 모르고,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아난다여, 나는 이제 여섯 부류의 태생을 천명하리니 그것을 잘 마음에 새겨 듣도록 하여라. 이제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4. “아난다여, 그러면 무엇이 여섯 부류의 태생인가?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검은 태생이면서 검은 법을 생기게 한다. 

어떤 사람은 검은 태생이면서 흰 법을 생기게 한다. 

여기 어떤 사람은 검은 태생이면서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열반을 생기게 한다. 

여기 어떤 사람은 흰 태생이면서 검은 법을 생기게 한다. 

여기 어떤 사람은 흰 태생이면서 흰 법을 생기게 한다. 

여기 어떤 사람은 흰 태생이면서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열반을 생기게 한다.”


5.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검은 태생이면서 검은 법을 생기게 하는가?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비천한 가문에서 태어나나니, 천민의 가문이나 사냥꾼의 가문이나 죽세공의 가문이나 마차공의 가문이나 넝마주이 가문에 태어난다. 그는 가난하고 먹고 마실 것이 부족하고 생계가 곤란하다. 거친 음식이나 겨우 몸을 가리는 천조차도 아주 어렵게 얻는다. 그는 못생기고 보기 흉하고 기형이고 병약하고 눈멀고 손이 불구고 절름발이이고 반신불수다. 그는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숙소와 불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질러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검은 태생이면서 검은 법을 생기게 한다.”


6.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검은 태생이면서 흰 법을 생기게 하는가?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비천한 가문에서 태어나나니, 천민의 가문이나 사냥꾼의 가문이나 죽세공의 가문이나 마차공의 가문이나 넝마주이 가문에 태어난다. 그는 가난하고 먹고 마실 것이 부족하고 생계가 곤란하다. 거친 음식이나 겨우 몸을 가리는 천조차도 아주 어렵게 얻는다. 그는 못생기고 보기 흉하고 기형이고 병약하고 눈멀고 손이 불구고 절름발이이고 반신불수다. 그는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숙소와 불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한다. 그는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서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검은 태생이면서 흰 법을 생기게 한다.”


7.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검은 태생이면서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열반을 생기게 하는가?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비천한 가문에 태어나나니, 천민의 가문이나 사냥꾼의 가문이나 죽세공의 가문이나 마차공의 가문이나 넝마주이 가문에 태어난다. 그는 가난하고 먹고 마실 것이 부족하고 생계가 곤란하다. 거친 음식이나 겨우 몸을 가리는 천조차도 아주 어렵게 얻는다. 그는 못생기고 보기 흉하고 기형이고 병약하고 눈멀고 손이 불구고 절름발이이고 반신불수다. 그는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숙소와 불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수하고 집을 나와 출가한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마음의 오염원이고 통찰지를 무력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고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마음을 확고하게 하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들을 있는 그대로 닦아서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열반을 생기게 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검은 태생이면서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열반을 생기게 한다.”


8.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흰 태생이면서 검은 법을 생기게 하는가?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높은 가문에 태어나나니, 부유하고 많은 재물과 많은 재산과 많은 금은과 많은 재화와 수입과 많은 가산과 곡식을 가진 부유한 끄샤뜨리야 가문이나 부유한 바라문 가문이나 부유한 장자의 가문에 태어난다. 그는 멋있고 수려하고 우아하며 준수한 용모를 갖춘다. 그는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숙소와 불을 얻는다.

그러나 그는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질러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흰 태생이면서 검은 법을 생기게 한다.”


9.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흰 태생이면서 흰 법을 생기게 하는가?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높은 가문에 태어나나니, 부유하고 많은 재물과 많은 재산과 많은 금은과 많은 재화와 수입과 많은 가산과 곡식을 가진 부유한 끄샤뜨리야 가문이나 부유한 바라문 가문이나 부유한 장자의 가문에 태어난다. 그는 멋있고 수려하고 우아하며 준수한 용모를 갖춘다. 그는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숙소와 불을 얻는다.

그러나 그는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한다. 그는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서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흰 태생이면서 흰 법을 생기게 한다.”


10.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흰 태생이면서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열반을 생기게 하는가?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높은 가문에 태어나나니, 부유하고 많은 재물과 많은 재산과 많은 금은과 많은 재화와 수입과 많은 가산과 곡식을 가진 부유한 끄샤뜨리야 가문이나 부유한 바라문 가문이나 부유한 장자의 가문에 태어난다. 그는 멋있고 수려하고 우아하며 준수한 용모를 갖춘다. 그는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숙소와 불을 얻는다.

그러나 그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수하고 집을 나와 출가한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마음의 오염원이고 통찰지를 무력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고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마음을 확고하게 하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들을 있는 그대로 닦아서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열반을 생기게 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흰 태생이면서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열반을 생기게 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여섯 부류의 태생이다.”


번뇌 경(A6:58)

Āsava-sutta 

1.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한 비구는 공양 받아 마땅하고, 시중받아 마땅하고,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다. 무엇이 여섯인가?


비구들이여,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하는 번뇌들은 단속하면 없어진다.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하는 번뇌들은 수용하면 없어진다.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하는 번뇌들은 감내하면 없어진다. 

피함으로써 없애야 하는 번뇌들은 피하면 없어진다. 

버림으로써 없애야 하는 번뇌들은 버리면 없어진다. 

닦음으로써 없애야 하는 번뇌들은 닦으면 없어진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단속하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눈의 감각기능[眼根]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지 못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귀의 감각기능(耳根)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지 못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코의 감각기능(鼻根)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코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지 못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코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혀의 감각기능(舌根)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지 못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몸의 감각기능[身根]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지 못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마노(마음)의 기능[意根]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마노의 기능을 잘 단속하지 못하고 머무는 자에게는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노의 감각기능들을 잘 단속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잘 단속하지 못하고 머무는 자에게는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그러나 잘 단속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단속하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한다고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수용하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옷을 수용하나니 오직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날파리∙모기∙바람∙뙤약볕∙파충류와 닿는 것을 물리치고,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기 위해서다.


그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음식을 수용하나니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치를 위해서도 아니며, 치장을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위해서도 아니며, 단지 살아 있는 한 이 몸을 지탱하고 유지하고 해를 입지 않도록 하고 청정범행을 잘 지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불편해던 느낌을 물리치고 새로운 느낌을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허물없이 안온하게 머물 것이다.’라고.

 

그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거처를 수용하나니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날파리∙모기∙바람∙뙤약볕∙파충류와 닿는 것을 물리치고, 오직 기후의 변화에서 생기는 위험을 없애고, 조용한 곳에 홀로 머묾을 편안히 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수용하나니 오직 일어난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물리치고, 병 없음을 최상으로 하기 위해서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수용하면 그러한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수용하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한다고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감내하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감내한다.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날파리∙모기∙바람∙뙤약볕∙파충류에 닿음과, 고약하고 언짢은 말들을 견디고, 몸에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을 감내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감내하지 않으면 그에게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감내하면 그러한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감내하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한다고 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피하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피함으로써 없애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사나운 코끼리를 피하고, 사나운 말을 피하고, 사나운 소를 피하고, 사나운 개를 피하고, 뱀, 나뭇등걸, 가시덤불, 협곡, 낭떠러지, 더러운 물구덩이[泥沼], 더러운 웅덩이[小澤地]를 피한다. 적합하지 않은 자리에 앉고, 갈 곳이 아닌 곳에 다니고, 저열한 도반들을 사귀어서 지자인 동료 수행자들이 저열한 곳에 신심을 낼지도 모르는 적합하지 않은 자리, 영역이 아닌 곳, 저열한 도반들을 지혜롭게 숙고하여 피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피하지 않으면 그에게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피하면 그러한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피하여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피함으로써 없애야 한다고 한다.”


7.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버리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버림으로써 없애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지혜롭게 숙고하여 이미 일어난 악의에 찬 생각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지혜롭게 숙고하여 이미 일어난 해코지하려는 생각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지혜롭게 숙고하여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삿되고 해로운 법들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그에게 고뇌와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버리면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버리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버림으로써 없애야 한다고 한다.”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닦으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닦음으로 없애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사라짐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念覺支]를 닦는다.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사라짐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법에 대한 선별(간택)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를 닦는다.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사라짐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를 닦는다.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사라짐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희열(기쁨)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喜覺支]를 닦는다.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사라짐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편안함(안온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를 닦는다.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사라짐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定覺支]를 닦는다.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사라짐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捨覺支]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수행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함과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수행하면 그러한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수행하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수행으로 없애야 한다고 한다.”


나무장수 경(A6:59)

Dārukammi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나디까에서 벽돌집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나무장사를 하는 장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나무 장사를 하는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장자여, 그대의 가문에서는 보시를 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 가문에서는 보시를 합니다. 

세존이시여, 숲에 머물고 탁발음식만 수용하고 분소의를 입는 아라한 비구들이나 혹은 아라한도를 얻은 그러한 이들에게 보시를 합니다.”

“장자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고 자손들로 번민하고 까시에서 산출된 전단향을 사용하고 화환과 향과 연고를 즐겨 사용하고 금과 은을 지니는 그대 같은 재가자가 이러한 아라한들이나 이러한 아라한도를 구족한 이들을 알기는 어렵다.


장자여, 만일 숲속에 머무는 비구가 들뜨고 오만하고 우쭐대고 수다스럽고 산만하게 말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집중하지 못하며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는 비난받을 것이다. 

만일 숲속에 머무는 비구가 들뜨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우쭐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산만하게 말하지 않고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正知] 잘 삼매에 들며 마음집중이 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는 칭송받을 것이다.


장자여, 만일 마을 부근에 머무는 비구가 들뜨고 오만하고 우쭐대고 수다스럽고 산만하게 말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집중하지 못하며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는 비난받을 것이다. 

만일 마을 부근에 머무는 비구가 들뜨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우쭐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산만하게 말하지 않고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正知] 잘 삼매에 들며 마음집중이 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는 칭송받을 것이다.


장자여, 만일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비구가 들뜨고 오만하고 우쭐대고 수다스럽고 산만하게 말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집중하지 못하며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는 비난받을 것이다. 

만일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비구가 들뜨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우쭐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산만하게 말하지 않고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正知] 잘 삼매에 들며 마음집중이 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는 칭송받을 것이다.


장자여, 만일 공양청(집으로 초대하여 공양을 올림)에 응하는 비구가 들뜨고 오만하고 우쭐대고 수다스럽고 산만하게 말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집중하지 못하며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는 비난받을 것이다. 

만일 공양청에 응하는 비구가 들뜨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우쭐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산만하게 말하지 않고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正知] 잘 삼매에 들며 마음집중이 되고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는 칭송받을 것이다.


장자여, 만일 분소의를 입는 비구가 들뜨고 오만하고 우쭐대고 수다스럽고 산만하게 말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집중하지 못하며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는 비난받을 것이다. 

만일 분소의를 입는 비구가 들뜨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우쭐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산만하게 말하지 않고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正知] 잘 삼매에 들며 마음집중이 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는 칭송받을 것이다.


장자여, 만일 장자들이 준 값비싼 가사를 입는 비구가 들뜨고 오만하고 우쭐대고 수다스럽고 산만하게 말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는 비난받을 것이다. 

만일 장자들이 준 값비싼 가사를 입는 비구가 들뜨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우쭐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산만하게 말하지 않고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正知] 잘 삼매에 들며 마음집중이 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는 칭송받을 것이다.


장자여, 그대는 승가에 보시를 하라. 그대가 승가에 보시를 하면 마음에 청정한 믿음이 생길 것이다. 그대가 청정하게 믿는 마음을 가지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세존이시여, 이제 저는 오늘부터 승가에 보시를 하겠습니다.”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경(A6:60)

Hatthisāripu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에 많은 장로 비구들이 탁발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서 집회장에 함께 모여 앉아 아비담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때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가 장로 비구들이 아비담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에 끼어들어 방해했다. 

그러자 마하꼿티따 존자가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는 장로 비구들이 아비담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계속해서 끼어들어 방해하지 마십시오. 찟따 존자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이렇게 말하자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의 도반이었던 비구들이 마하꼿티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꼿티따 존자는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는 현자입니다.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는 장로 비구들과 함께 아비담마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이것을 알기란 어렵습니다.”


2.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스승을 의지해서 머물거나 다른 존중할 만한 동료 비구들을 의지해서 머물 때는 친절한 사람처럼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처럼 겸손하고 평화로운 사람처럼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그가 스승으로부터 멀어져버리고 존중할 만한 동료 비구들로부터 멀어져버리면,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지냅니다. 이처럼 섞여 지내고 해이해지고 제멋대로고 잡답을 일삼으면서 지낼 때 애욕이 그의 마음을 물들여버립니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들판에서 풀을 뜯곤 하던 황소가 밧줄에 묶이거나 외양간에 갇혔는데, 누군가 말하기를 ‘들판에서 풀을 뜯곤 하던 황소는 다시는 들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르게 말한 것이겠습니까?”

“꼿티따 존자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들판에서 풀을 뜯곤 하던 그 황소는 밧줄을 끊거나 외양간을 부수고 다시 들판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비구는 스승을 의지해서 머물거나 다른 존중할 만한 동료 비구들을 의지해서 머물 때는 친절한 사람처럼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처럼 겸손하고 평화로운 사람처럼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그가 스승으로부터 멀어져버리고 존중할 만한 동료 수행자들로부터 멀어져버리면,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지냅니다. 이처럼 섞여 지내고 해이해지고 제멋대로고 잡담을 일삼으면서 지낼 때 애욕이 그의 마음을 물들여버립니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3.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나는 초선을 얻었다.’라고 하면서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지냅니다. 이처럼 섞여서 지내고 해이해지고 제멋대로고 잡담을 일삼으며 지낼 때 애욕이 그의 마음을 물들여버립니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사거리 대로에 억수같은 비가 내리면 먼지는 가라앉지만 흙탕물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말하기를 ‘이제 사거리 대로에 다시는 먼지가 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르게 말한 것입니까?”

“꼿티따 존자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거리 대로에 사람들이 많이 왕래할 것이고 소와 짐승들이 많이 왕래할 것이고 바람과 태양이 습기를 말려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먼지가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나는 초선을 얻었다.’라고 하면서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지냅니다. 이처럼 섞여서 지내고 해이해지고 제멋대로고 잡담을 일삼으며 지낼 때 애욕이 그의 마음을 물들여버립니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4.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나는 제2선을 얻었다.’라고 하면서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지냅니다. 이처럼 섞여서 지내고 해이해지고 제멋대로고 잡담을 일삼으며 지낼 때 애욕이 그의 마음을 물들여버립니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마을이나 성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호수가 있는데 거기에 억수같은 비가 내리면 조개껍질도 자갈과 조약돌도 가려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말하기를 ‘이제 저 호수에 다시는 조개껍질도 자갈과 조약돌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르게 말한 것이겠습니까?”

“꼿티따 존자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 호수의 물을 마실 것이고 소와 짐승들이 마실 것이고 바람과 태양이 물기를 말려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조개껍질과 자갈과 조약돌도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나는 제2선을 얻었다.’라고 하면서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지냅니다. 이처럼 섞여서 지내고 해이해지고 제멋대로고 잡담을 일삼으며 지낼 때 애욕이 그의 마음을 물들여버립니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5.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나는 제3선을 얻었다.’라고 하면서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지냅니다. 이처럼 섞여서 지내고 해이해지고 제멋대로고 잡담을 일삼으며 지낼 때 애욕이 그의 마음을 물들여 버립니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맛난 음식을 배불리 먹은 사람은 간밤에 만든 식은 밥엔 흥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말하기를 ‘이제 저 사람은 다시는 음식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르게 말한 것이겠습니까?”

“꼿티따 존자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맛난 음식을 배불리 먹은 사람의 몸에 영양분이 남아 있을 때까지는 다른 음식을 원하지 않겠지만 그 영양분이 다하면 다시 음식을 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나는 제3선을 얻었다.’라고 하면서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지냅니다. 이처럼 섞여서 지내고 해이해지고 제멋대로고 잡담을 일삼으며 지낼 때 애욕이 그의 마음을 물들여버립니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6.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나는 제4선을 얻었다.’라고 하면서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지냅니다. 이처럼 섞여서 지내고 해이해지고 제멋대로고 잡담을 일삼으며 지낼 때 애욕이 그의 마음을 물들여버립니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산의 협곡에 호수가 있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물결이 일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 말하기를 ‘이제 저 호수에 다시는 물결이 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르게 말한 것이겠습니까?”

“꼿티따 존자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동쪽에서 강한 비를 동반한 바람이 불어오면 그 호수에는 물결이 일고, 서쪽에서 강한 비를 동반한 바람이 불어오면 그 호수에는 물결이 일고, 북쪽에서 강한 비를 동반한 바람이 불어오면 그 호수에는 물결이 일고, 남쪽에서 강한 비를 동반한 바람이 불어오면 그 호수에는 물결이 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머뭅니다. 그는 ‘나는 제4선을 얻었다.’라고 하면서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지냅니다. 이처럼 섞여서 지내고 해이해지고 제멋대로고 잡담을 일삼으며 지낼 때 애욕이 그의 마음을 물들여버립니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7.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모든 표상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표상이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나는 표상이 없는 마음의 삼매를 얻었다.’라고 하면서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지냅니다. 이처럼 섞여서 지내고 해이해지고 제멋대로고 잡담을 일삼으며 지낼 때 애욕이 그의 마음을 물들여버립니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왕이나 왕의 대신이 네 무리의 군대와 더불어 원정을 떠나 어떤 밀림에서 하룻밤 야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나는 코끼리 소리와 말 소리와 전차 소리와 보병 소리와 큰북 소리, 작은북 소리, 고동 소리, 징소리, 고함소리 때문에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말하기를 ‘이제 저 밀림에서 다시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르게 말한 것이겠습니까?”

“꼿티따 존자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저 왕이나 왕의 대신이 그 밀림에서 떠나면 다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곤 하기 때문입니다.”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사람은 모든 표상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표상이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나는 표상이 없는 마음의 삼매를 얻었다.’라고 하면서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지냅니다. 이처럼 섞여서 지내고 해이해지고 제멋대로고 잡담을 일삼으며 지낼 때 애욕이 그의 마음을 물들여버립니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8. 그 뒤에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는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의 도반 비구들은 마하꼿티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마하 꼿티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마하꼿티따 존자는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가 이러이러한 경지를 증득했지만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갈 것이다.’라고 마음으로 그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아니면 신들이 ‘존자시여,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는 이러이러한 경지를 증득했지만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삶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라고 존자께 이런 뜻을 알려주었습니까?”

“도반들이여, 나는 마음으로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의 마음을 알았고 신들도 역시 나에게 이런 뜻을 알려주었습니다.”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의 도반 비구들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는 이러이러한 경지를 증득했지만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가버렸습니다.”

“비구들이여, 찟따는 오래지 않아서 다시 출가하게 될 것이다.”


9.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는 오래지 않아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수하고 집을 나와 다시 출가하였다. 그때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성취하고자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그래서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중간 경(A6:61)

Majj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에 많은 장로 비구들이 탁발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집회장 함께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을『숫따니빠따』「도피안 품」의 「멧떼야의 질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양극단을 알고서

중간도 더럽히지 않네.

나는 그를 대인이라 부르노니

그는 여기서 바느질하는 여인을 넘어섰노라.”


도반들이여, 여기서 어떤 것이 첫 번째 극단이고 어떤 것이 두 번째 극단이며, 어떤 것이 중간이고 어떤 것이 바느질하는 여인입니까?”


2.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감각접촉[觸]이 첫 번째 극단이고 감각접촉이 일어남이 두 번째 극단이며 감각접촉의 소멸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바느질하여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3. 이렇게 말하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과거가 첫 번째 극단이고 미래가 두 번째 극단이며 현재가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바느질하여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4. “이렇게 말하자 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즐거운 느낌이 첫 번째 극단이고 괴로운 느낌이 두 번째 극단이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바느질하여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5. “이렇게 말하자 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정신[名]이 첫 번째 극단이고 물질[色]이 두 번째 극단이며 의식[識]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바느질하여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6. 이렇게 말하자 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內處]가 첫 번째 극단이고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가[六外處]가 두 번째 극단이며 의식[識]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바느질하여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7. 이렇게 말하자 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有身, 五取蘊]이 첫 번째 극단이고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의 일어남이 두 번째 극단이며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의 소멸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바느질하여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8. 이렇게 말하자 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우리 모두는 각자의 영감에 따라 설명을 하였습니다. 

도반들이여, 우리는 세존께 갑시다. 가서 세존께 이러한 뜻을 아뢰어 세존께서 저희들에게 설명해주시는 대로 호지합시다.”

“그렇게 합시다, 도반이여.”라고 장로 비구들은 그 비구에게 대답했다.


9. 장로 비구들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장로 비구들은 이제까지 있었던 대화를 빠짐없이 모두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누구의 말이 잘 말한 것[金言]입니까?”

“비구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방편적으로 잘 말하였다. 나는『숫따니빠따』「도피안 품」의「멧떼야의 질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했다.

“지혜로운 자는 양극단을 알고서

중간도 더럽히지 않네.

나는 그를 대인이라 부르노니

그는 여기서 바느질하는 여인을 넘어섰노라.”

이제 그대들은 그것을 들어라. 듣고 잘 마음에 새겨 듣도록 하여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장로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0. “비구들이여, 감각접촉[觸]이 첫 번째 극단이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이 두 번째 극단이며 감각접촉의 소멸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이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바느질하여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된다.”


인간의 기능에 대한 지혜 경(A6:62)

Purisindriyañāṇ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대중과 함께 꼬살라에서 유행을 하시다가 단다깝빠까라는 꼬살라들의 성읍에 도착하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길을 벗어나 어떤 나무 아래에 가셔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고 비구들은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단다깝빠까로 들어갔다. 그때 아난다 존자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아찌라와띠 강으로 목욕을 갔다. 아지라와띠 강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서 가사 하나만을 입고 몸을 말리고 계셨다.


2. 어떤 비구가 아난자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난다여, 세존께서 ‘데와닷따는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겁(劫)이 다 하도록 지옥에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 받을 수 없다.’고 하신 것은 온 마음으로 몰두하신 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아니면 어떤 신이 말한 것을 듣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도반이여, 세존께서 그렇게 설명하신 것입니다.”


3.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아찌라와띠 강으로 목욕을 갔습니다. 아지라와띠 강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서 가사 하나만을 입고 몸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비구가 제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 아난다여, 세존께서 ‘데와닷따는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겁이 다 하도록 지옥에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설명하신 것은 온 마음으로 몰두하신 뒤 그렇게 하셨습니까, 아니면 어떤 신이 말한 것을 듣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 그렇게 설명하신 것입니다.’라고.”

“아난다여, 그 비구는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신참이거나 장로라면 어리석고 영민하지 못한 자일 것이다. 어떻게 내가 분명하게 설명한 것을 두 조각을 내버린단 말인가?

아난다여, 내가 이렇게 온 마음으로 몰두한 뒤 설명을 한 사람은 데와닷따 이외에 어떤 사람도 나는 보지 못한다. 

아난다여, 내가 털끝만큼이라도 데와닷따에게서 밝은 법을 보았더라면, 나는 ‘데와닷따는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겁이 다 하도록 지옥에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털끝만큼도 데와닷따에게서 밝은 법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데와닷따는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겁이 다 하도록 지옥에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설명한 것이다.


아난다여, 예를 들면 분뇨로 가득한 한길이 넘는 분뇨구덩이가 있는데 거기에 사람이 머리까지 온통 빠졌다고 하자. 비록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그의 이로움을 바라고 이익을 바라고 유가안은(瑜伽安隱)을(열반) 바라면서 그를 분뇨구덩이로부터 끌어내려 하나 그가 분뇨구덩이에 완전히 빠졌기 때문에 그를 잡고 끌어올릴 분뇨가 묻지 않은 곳을 털끝만큼이라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나는 털끝만큼이라도 데와닷따에게서 밝은 법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데와닷따는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겁이 다 하도록 지옥에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설명한 것이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여래가 인간의 기능에 대한 지혜를 분석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지금이 적절한 시기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설해주실 적절한 시기입니다. 세존의 말씀을 듣고 저와 비구들은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아난다여, 그렇다면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4. “아난다여,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도 있고 해로운 법들도 있다.’라고 알아 차린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이 사라졌고 해로운 법들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에게 유익함의 뿌리가 잘린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유익함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유익함이 드러날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사람은 미래에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예를 들면 훼손되지 않고 썩지 않고 바람과 햇빛에 손상되지 않고 상하지 않고 뿌리를 잘 내리는 씨앗들이 있는데 이를 기름지고 잘 경작된 땅에 뿌렸다 하자. 그대는 이 씨앗들이 잘 자라 증장하고 풍성하게 될 것이라고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도 있고 해로운 법들도 있다.’라고 알아 차린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마음을 잘 이해하여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이 사라졌고 해로운 법들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에게 유익함의 뿌리가 잘린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유익함의 잠재성향으로부터 유익함이 드러날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사람은 미래에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인간을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인간의 기능에 대한 지혜도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미래에 법의 일어남도 안다.”


5. “아난다여,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도 있고 해로운 법들도 있다.’라고 알아 차린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이 사람에게는 해로운 법들이 사라졌고 유익한 법들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에게 해로움의 뿌리가 잘린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 해로움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해로움이 드러날 것이다. 이와 같이 그 사람은 미래에 쇠퇴할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예를 들면 훼손되지 않고 썩지 않고 바람과 햋빛에 손상되지 않고 상하지 않고 뿌리를 잘 내리는 씨앗들이 있는데 이를 넓은 바위에 뿌렸다 하자. 그대는 이 씨앗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증장하지 못하고 풍성하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도 있고 해로운 법들도 있다.’라고 알아 차린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이 사람에게는 해로운 법들이 사라졌고 유익한 법들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에게 해로움의 뿌리가 잘린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 해로움의 잠재성향으로부터 해로움이 드러날 것이다. 이와 같이 그 사람은 미래에 쇠퇴할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인간을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인간의 기능에 대한 지혜도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미래에 법의 일어남도 안다.”


6. “아난다여,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도 있고 해로운 법들도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이 사람에게는 밝은 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다. 이 사람은 전적으로 검고 해로운 법들 갖추었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비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예를 들면 훼손되었고 썩었고 바람과 햇빛에 손상되었고 상했고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씨앗들이 있는데 이를 기름지고 잘 경작된 땅에 뿌렸다 하자. 그대는 이 씨앗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증장하지 못하고 풍성하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와 같이 여기서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도 있고 해로운 법들도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이 사람에게는 밝은 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다. 이 사람은 전적으로 검고 해로운 법들 갖추었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비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인간을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인간의 기능에 대한 지혜도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미래에 법의 일어남도 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세 부류의 사람들 말고 여기에 상응하는 다른 세 부류의 사람들을 천명하실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천명할 수 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7. “아난다여,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도 있고 해로운 법들도 있다.’라고 알아 차린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이 사라졌고 해로운 법들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에게 유익함의 뿌리가 잘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다 통째 뿌리 뽑히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사람은 미래에 쇠퇴할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예를 들면 시뻘겋게 달구어지고 불꽃을 튀기고 빛을 내는 숯불을 넓은 바위에 던졌다 하자. 그대는 이 숯불이 타오르지 않고 번지지 않고 뒤덮지 않을 것이라고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예를 들면 해거름에 태양이 지면 광명은 사라질 것이고 어둠이 드러날 것이라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예를 들면 저녁에 밤이 반이나 지났을 때에 광명은 사라졌고 어둠이 드러났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도 있고 해로운 법들도 있다.’라고 알아 차린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이 사라졌고 해로운 법들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에게 유익함의 뿌리가 잘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다 통째 뿌리 뽑히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사람은 미래에 쇠퇴할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인간을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인간의 기능에 대한 지혜도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미래의 법의 일어남도 안다.”


8. “아난다여,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도 있고 해로운 법들도 있다.’라고 알아 차린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이 사람에게는 해로운 법들이 사라졌고 유익한 법들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에게 해로움의 뿌리가 잘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다 통째 뿌리 뽑히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사람은 미래에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예를 들면 시뻘겋게 달구어지고 불꽃을 튀기고 빛을 내는 숯불을 마른 풀 더미나 장작더미에 던졌다 하자. 그대는 이 숯불이 타오르고 번지고 뒤덮을 것이라고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예를 들면 밤이 지나고 새벽에 태양이 떠오르면 어둠은 사라질 것이고 광명이 드러날 것이라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예를 들면 정오에 밥 먹을 때에 어둠은 사라졌고 광명이 드러났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도 있고 해로운 법들도 있다.’라고 알아 차린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이 사람에게는 해로운 법들이 사라졌고 유익한 법들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에게 해로움의 뿌리가 잘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다 통째 뿌리 뽑히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사람은 미래에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인간을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인간의 기능에 대한 지혜도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미래의 법의 일어남도 안다.”


9. “아난다여,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도 있고 해로운 법들도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대하여 이와 같이 알아차린다. ‘이 사람에게는 해로운 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다. 이 사람은 전적으로 밝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법을 갖추었기 때문에 바로 지금 여기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예를 들면 차갑고 완전히 꺼진 숯불을 마른 풀 더미나 장작더미에 던졌다 하자. 그대는 이 숯불이 타오르지 않고 번지지 않고 뒤덮지 않을 것이라고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이 사람에게는 유익한 법들도 있고 해로운 법들도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대하여 이와 같이 알아차린다. ‘이 사람에게는 해로운 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다. 이 사람은 전적으로 밝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법을 갖추었기 때문에 바로 지금 여기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인간을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인간의 기능에 대한 지혜도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이해하여 미래의 법의 일어남도 안다.


아난다여, 여기서 앞의 세 부류의 인간들 가운데 한 사람은 쇠퇴하지 않을 것이고 한 사람은 쇠퇴할 것이며 한 사람은 악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난다여, 여기서 뒤의 세 부류의 인간들 가운데 한 사람은 쇠퇴하지 않을 것이고 한 사람은 쇠퇴할 것이며 한 사람은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다.”


꿰뚫음 경(A6:63)

Nibbedhika-sutta 

1.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꿰뚫음의 방법에 대한 법문을 설할 것이다.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꿰뚫음의 방법에 대한 법문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을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들의 원인과 근원을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들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느낌을 알아야 한다. 느낌들의 원인과 근원들을 알아야 한다. 느낌들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느낌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느낌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느낌의 소멸로 인도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인식을 알아야 한다. 인식들의 원인과 근원을 알아야 한다. 인식들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인식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인식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인식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번뇌를 알아야 한다. 번뇌들의 원인과 근원을 알아야 한다. 번뇌들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번뇌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번뇌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업을 알아야 한다. 업들의 원인과 근원을 알아야 한다. 업들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업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업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업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원인과 근원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


3.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을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들의 원인과 근원을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들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조건하여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이 있다. 눈으로 인식되는 형상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쾌락을 불러 일으키는) 것들이다.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觸]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비구들이여, 비록 이들이 감각적 욕망은 아니지만 성스러운 율에서는 감각적 욕망의 가닥이라 부른다. 

註) 비록 이들이 감각적 쾌락은 아니지만 성스러운 율에서는 감각적 쾌락의 가닥이라 부른다. : ‘감각적 쾌락’은 Kāma를 옮긴 것이고 ‘감각적 쾌락의 가닥’은 Māma-guṇa를 옮긴 것이다. 본문은 다른 경들에서 ‘감각적 쾌락의 가닥’의 정형구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이 설명은 ‘감각적 쾌락의 가닥’에 대한 설명이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설명은 아니라고 부연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을 통해서 생긴 애욕이 인간의 감각적 쾌락이니

  세상의 다채로운 대상들은 감각적 쾌락이 아니로다.

  생각을 통해서 생긴 애욕이 인간의 감각적 쾌락이니

  세상의 다채로운 대상들은 그냥 머물 뿐이어라.

  슬기로운 자들은 그것에 대한 의욕을 길들이노라.”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감각적 쾌락들의 원인과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접촉[觸]이 감각적 쾌락의 원인과 근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감각적 쾌락들의 차이점인가? 

비구들이여, 형상들에 대한 감각적 쾌락이 다르고, 소리들에 대한 감각적 쾌락이 다르고, 냄새에 다른 감각적 쾌락이 다르고, 맛에 대한 감각적 쾌락이 다르고 감촉에 대한 감각적 쾌락이 다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감각적 쾌락들의 차이점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감각적 쾌락의 과보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이 있을 때는 늘 그것에 어울리는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을 만들게 된다. 그 존재가 공덕이 되건 악덕이 되건 말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감각적 쾌락의 과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감각적 쾌락의 소멸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 소멸하면 감각적 쾌락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바른 길[八支聖道]이 감각적 쾌락의 소멸에 이르는 닦음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 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원인과 근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차이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과보를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이 꿰뚫는 청정범행이 감각적 쾌락의 소멸이라고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을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5. “‘비구들이여, 느낌을 알아야 한다. 느낌의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느낌의 일어남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느낌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나니 즐거운 느낌[樂受], 괴로움 느낌[苦受],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이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느낌들의 원인과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접촉[觸]이 느낌들의 원인과 근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느낌들의 차이점인가? 

비구들이여,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이 있고 비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이 있다.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이 있고 비세속적인 괴로운 느낌이 있다.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있고 비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느낌들의 차이점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느낌의 과보인가?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는 늘 그것에 어울리는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을 만들게 된다. 그 존재가 공덕이 되건 악덕이 되건 말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느낌의 과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느낌의 소멸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닦음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느낌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원인과 근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차이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과보를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이 꿰뚫는 청정범행이 느낌의 소멸이라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느낌을 알아야 한다. 느낌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느낌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느낌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7. “‘비구들이여, 인식을 알아야 한다. 인식의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인식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인식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인식이 있나니 형상의 인식, 소리의 인식, 냄새의 인식, 맛의 인식, 감촉의 인식, 법의 인식이다.”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인식들의 원인과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접촉[觸]이 인식들의 원인과 근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인식들의 차이점인가? 비구들이여, 형상들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 소리들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 냄새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 맛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 감촉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 법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인식들의 차이점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인식의 과보인가?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는 늘 그것에 어울리는 인습적 표현이라는 과보가 생긴다고 나는 말한다. 인식할 때 마다 항상 인습적인 표현을 하나니, 인식하는 자는 항상 이와 같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인식의 과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인식의 소멸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 소멸하면 인식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 인식의 소멸에 이르는 닦음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인식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원인과 근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차이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과보를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이 꿰뚫는 청정범행이 인식의 소멸이라고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인식을 알아야 한다. 인식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인식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인식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9. “‘비구들이여, 번뇌를 알아야 한다. 번뇌의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번뇌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번뇌가 있나니, 감각적 쾌락의 번뇌[慾惱], 존재의 번뇌[有惱], 무명의 번뇌[無明惱]이다.”


10.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번뇌들의 원인과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무명이 번뇌들의 원인과 근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번뇌들의 차이점인가? 

비구들이여, 지옥으로 인도하는 번뇌가 있다. 축생의 모태로 인도하는 번뇌가 있다. 아귀계로 인도하는 번뇌가 있다. 인간 세계로 인도하는 번뇌가 있다. 천상 세계로 인도하는 번뇌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번뇌들의 차이점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번뇌의 과보인가? 

비구들이여, 번뇌가 있을 때는 늘 그것에 어울리는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을 만들게 된다. 그 존재가 공덕이 되건 악덕이 되건 말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번뇌의 과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번뇌의 소멸인가? 

비구들이여, 무명이 소멸하면 번뇌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닦음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번뇌를 꿰뚫어 알고, 그들의 원인과 근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차이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과보를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이 꿰뚫는 청정범행이 번뇌의 소멸이라고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번뇌를 알아야 한다. 번뇌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번뇌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11. “‘비구들이여, 업을 알아야 한다. 업의 발생을 알아야 한다. 업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업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의도가 업이라고 나는 말하노니 의도한 뒤 몸과 말과 마음으로 업을 짓는다.”


1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업들의 원인과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접촉[觸]이 업들의 원인과 근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업들의 차이점인가? 

비구들이여, 지옥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축생의 모태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아귀계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인간 세계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천상 세계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업들의 차이점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업의 과보인가? 

비구들이여, 업의 과보는 세 가지라고 나는 말하나니 그것은 금생에 일어나거나 혹은 다음 생에 일어나거나 혹은 일어나는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업의 과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업의 소멸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 소멸하면 업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 업의 소멸에 이르는 닦음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업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원인과 근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차이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과보를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이 꿰뚫는 청정범행이 업의 소멸이라고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업을 알아야 한다. 얼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업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업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13. “‘비구들이여, 괴로움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원인과 근원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듦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도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 자체가 괴로움이다.”

 

1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괴로움의 원인과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갈애가 괴로움의 원인과 근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괴로움의 차이점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는 아주 강한 것이 있고, 미미한 것이 있고, 천천히 사라지는 것이 있고, 빨리 사라지는 것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차이점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괴로움의 과보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얼이 빠진 어떤 사람은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 치며 울부짖고 광란한다. 그는 이런저런 괴로움에 사로잡히고 얼이 빠져 ‘누가 이 괴로움을 소멸하는 한 구절로 된 주문이나 두 구절로 된 주문을 아는 자가 없는가?’라고 밖에서 애써 구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은 어리석음이라는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요, 애써 구하는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과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인가? 

비구들이여, 갈애가 소멸하면 괴로움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닦음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 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괴로움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원인과 근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차이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과보를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이 꿰뚫는 청정범행이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괴로움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원인과 근원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꿰뚫음의 방법에 대한 법문이다.”


사자후 경(A6:64)

Sīhanāda-sutta 

1. “비구들이여, 여래에게는 여서 가지 여래의 힘이 있나니, 이러한 힘을 구족하여 여래는 대웅(大雄)의 위치를 얻었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梵輪]을 굴린다. 무엇이 여섯인가?”


2. “비구들이여, 여래는 원인을 원인이라고,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 아닌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원인을 원인이라고,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 아닌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이 여래가 가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얻었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3.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행한 업의 과보를 있는 그대로 조건과 원인과 함께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행한 업의 과보를 있는 그대로 조건과 원인과 함께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가 가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얻었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4.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等地]의 오염원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等地]의 오염원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가 가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얻었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5.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宿命通]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해내는 이것도 여래가 가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얻었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6.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는[天眼通] 이것도 여래가 가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얻었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7.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무는 이것도 여래가 가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얻었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8. “비구들이여, 여기서 만일 다른 사람들이 여래에게 다가와서 원인을 원인이라고,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 아닌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로 무장하여 여래에게 질문을 하면, 여래는 원인을 원인이라고,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 아닌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아는 그 지혜에 따라서 그들에게 그대로 설명을 한다.”


9. “비구들이여, 여기서 만일 다른 사람들이 여래에게 다가와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행한 업의 과보를 있는 그대로 조건과 원인과 함께 아는 지혜로 무장하여 여래에게 질문을 하면,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행한 업의 과보를 있는 그대로 조건과 원인과 함께 아는 그 지혜에 따라서 여래는 그들의 질문을 받으면 그들에게 그대로 설명을 한다.”


10. “비구들이여, 여기서 만일 다른 사람들이 여래에게 다가와서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等地]의 오염원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로 무장하여 여래에게 질문을 하면, 여래는 선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等地]이 오염원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아는 그 지혜에 따라서 여래는 그들의 질문을 받으면 그들에게 그대로 설명을 한다.”


11. “비구들이여, 여기서 만일 다른 사람들이 여래에게 다가와서 수많은 전생의 삶들을 기억하여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宿命通]로 무장하여 여래에게 질문을 하면, 여래는 전생의 삶들을 기억하여 있는 그대로 아는 그 지혜에 따라서 여래는 그들의 질문을 받으면 그들에게 그대로 설명을 한다.”


12. “비구들이여, 여기서 만일 다른 사람들이 여래에게 다가와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남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天眼通]로 무장하여 여래에게 질문을 하면, 여래는 중생들이 죽고 태어남을 있는 그대로 아는 그 지혜에 따라서 여래는 그들의 질문을 받으면 그들에게 그대로 설명을 한다.”


13. “비구들이여, 여기서 만일 다른 사람들이 여래에게 다가와서 번뇌가 다함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漏盡通]로 무장하여 여래에게 질문을 하면, 여래는 번뇌가 다함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에 따라서 여래는 그들의 질문을 받으면 그들에게 그대로 설명을 한다.”


14. “비구들이여, 원인을 원인이라고,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 아닌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는 마음이 잘 집중된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잘 집중되지 않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행한 업의 과보를 있는 그대로 조건과 원인과 함께 아는 지혜도 마음이 잘 집중된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잘 집중되지 않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等地]의 오염원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도 마음이 잘 집중된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잘 집중되지 않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수많은 전생의 삶들을 기억하여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도 마음이 잘 집중된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잘 집중되지 않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중생들이 죽고 태어남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도 마음이 잘 집중된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잘 집중되지 않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번뇌가 다함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도 마음이 잘 집중된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잘 집중되지 않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삼매는 지혜를 얻는 닦음과 익힘이며, 삼매에 들지 못함은 나쁜 닦음과 익힘이다.”


제6장 대 품이 끝났다. 여섯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소나 ② 팍구나 ③ 여섯 태생 ④ 번뇌 ⑤ 나무장수 ⑥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⑦ 중간 

⑧ 인간의 기능에 대한 지혜 ⑨ 꿰뚫음 ⑩ 사자후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