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 니까야(증일)

여섯의 모음 - 제3장 위없음 품(A6:21-A6:30. Anuttariya-vagga)

수선님 2018. 4. 29. 11:57

제3장 위없음 품

Anuttariya-vagga


사마까 경(A6:21)

Sāma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사마가마까의 호수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어떤 천신이 멋진 모습을 하고 온 호수를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찾아갔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천신은 한 곁에 서서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 가지 법은 비구를 쇠퇴로 인도합니다. 무엇이 셋인가요? 

잡다한 일(세속적인 일)하기를 좋아하는 것과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과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은 비구를 쇠퇴로 인도합니다.”


천신은 이렇게 말하였고 스승께서는 그것에 동의를 하셨다. 천신은 ‘스승께서 나의 말에 동의를 하셨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는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거기서 사라졌다.


2. 세존께서 그 밤이 지나자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젯밤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어떤 천신이 멋진 모습을 하고 온 호수를 환하게 밝히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다가와서는 나에게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천신은 나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 가지 법은 비구를 쇠퇴로 인도합니다. 무엇이 셋인가요? 

잡다한 일하기를 좋아하는 것과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과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은 비구를 쇠퇴로 인도합니다.’

천신은 이렇게 말하였고 나는 그것에 동의를 하였다. 천신은 ‘스승께서 나의 말에 동의를 하셨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나에게 절을 올리고는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거기서 사라졌다.

 

비구들이여, 천신들조차도 유익한 법[善法]들로부터 쇠퇴하게 된다고 인정하는 그런 것들은 참으로 그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 없고 손해가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쇠퇴로 인도하는 세 가지 다른 법을 더 설하리라.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떠한 세 가지가 쇠퇴하는 법인가?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것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나쁜 친구와 어울리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가 쇠퇴하는 법이다.”


4.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과거에 유익한 법들로부터 쇠퇴한 자들은 모두 이러한 여섯 가지 법 때문에 쇠퇴하였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미래에 유익한 법들로부터 쇠퇴할 자들은 모두 이러한 여섯 가지 법 때문에 쇠퇴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현재에 유익한 법들로부터 쇠퇴하는 자들은 모두 이러한 여섯 가지 법 때문에 쇠퇴한다.”


쇠퇴하지 않음 경(A6:22)

Aparihāniya-sutta 

1.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을 설하리라.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섯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인가?

잡다한 일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잠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무리 짓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훈계를 잘 받아들이는 것, 

좋은 친구와 사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섯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이다.”


3.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과거에 유익한 법들로부터 쇠퇴하지 않은 자들은 모두 이러한 여섯 가지 법 때문에 쇠퇴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미래에 유익한 법들로부터 쇠퇴하지 않을 자들은 모두 이러한 여섯 가지 법 때문에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현재에 유익한 법들로부터 쇠퇴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이러한 여섯 가지 법 때문에 쇠퇴하지 않는다.”


두려움 경(A6:23)

Bhaya-sutta 

1. “비구들이여, 두려움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병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종기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결박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진흙탕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두려움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욕탐에 묶여서 사람들은 금생에도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내생에도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두려움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괴로움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욕탐에 묶여서 사람들은 금생에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내생에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괴로움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병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욕탐에 묶여서 사람들은 금생에도 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내생에도 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병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종기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욕탐에 묶여서 사람들은 금생에도 종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내생에도 종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종기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결박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욕탐에 묶여서 사람들은 금생에도 결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내생에도 결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결박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진흙탕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욕탐에 묶여서 사람들은 금생에도 진흙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내생에도 진흙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진흙탕이라는 것은 감각적 쾌락들과 동의어다.”


4. “두려움, 괴로움, 병, 종기, 결박, 진흙탕

  이들은 모두 감각적 쾌락을 일컫나니

  여기에 중생은 집착한다네.

  생사의 원인인 취착에 두려움을 보는 자는

  취착하지 않고 생사가 멸절한 열반을 얻고 해탈하리.

  안전함을 얻은 그들은 행복하고

  지금 여기에서 모든 오염원(번뇌)들을 놓아버려 평화로우며

  모든 원한과 두려움 건넜고

  윤회의 모든 고통 초월했다네.”


히말라야 경(A6:24)

Himavanta-sutta 

1.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산의 왕 히말라야를 부수어버리나니 하찮은 무명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무엇이 여섯인가?”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삼매의 증득에 능숙하고, 

삼매에 머무는데 능숙하고, 

삼매에서 출정하는데(삼매에서 깨어나는데) 능숙하고, 

삼매의 즐거움에 능숙하고, 

삼매의 영역에 능숙하고, 

삼매로 마음을 기울이는 것에 능숙하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산의 왕 히말라야를 부수어버리나니 하찮은 무명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계속해서 생각함 경(A6:25)

Anussati-sutta 

1.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이 있다. 무엇이 여섯인가?”


2.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여래를 계속해서 생각한다[隨念].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시며, 영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이시며, 세상의 존귀하신 분(世尊)이시다.’라고.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여래를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압도되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고, 어리석음에 압도되지 않는다. 그때 그의 마음은 여래를 의지하여 확고해진다. 그는 욕심을 떠났고, 벗어났고, 여의었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욕심이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대상으로 삼은 뒤 여기 어떤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3.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법을 계속해서 생각한다.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 있는 자 누구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법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압도되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고, 어리석음에 압도되지 않는다. 그때 그의 마음은 법을 의지하여 확고해진다. 그는 욕심을 떠났고, 벗어났고, 여의었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욕심이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대상으로 삼은 뒤 여기 어떤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4.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승가를 계속해서 생각한다.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느니, 저 네 쌍의 분들이요[四雙] 여덟 단계에 계신 분[八輩]들이시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공양 받아 마땅하고, 시중받아 마땅하고,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승가를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압도되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고, 어리석음에 압도되지 않는다. 그때 그의 마음은 승가를 의지하여 확고해진다. 그는 욕심을 떠났고, 벗어났고, 여의었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욕심이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대상으로 삼은 뒤 여기 어떤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5.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계를 계속해서 생각한다. 

‘나의 계는 훼손되지 않고, 뚫어지지 않고, 오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벗어났고, 현자들이 찬탄하고, 비난받지 않고, 삼매로 인도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계를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압도되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고, 어리석음에 압도되지 않는다. 그때 그의 마음은 계를 의지하여 확고해진다. 그는 욕심을 떠났고, 벗어났고, 여의었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욕심이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대상으로 삼은 뒤 여기 어떤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6.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한다. 

‘나는 인색함의 때에 얽매인 사람들 가운데서 인색함의 때가 없는 마음으로 재가에 산다.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반드시 부응하고, 보시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이것은 참으로 내게 이득이구나. 이것은 참으로 내게 큰 이득이구나.’라고.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압도되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고, 어리석음에 압도되지 않는다. 그때 그의 마음은 보시를 의지하여 확고해진다. 그는 욕심을 떠났고, 벗어났고, 여의었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욕심이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대상으로 삼은 뒤 여기 어떤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7.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천신을 계속해서 생각한다. 

‘사대왕천의 신들이 있고, 삼십삼천의 신들이 있고, 야마천의 신들이 있고, 도솔천의 신들이 있고, 화락천의 신들이 있고, 타화자재천의 신들이 있고, 범신천의 신들이 있고, 그보다 높은 천의 신들이 있다. 이런 신들은 믿음을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다. 이런 신들은 계를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계가 있다. 이런 신들은 배움을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배움이 있다. 이런 신들은 보시를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보시가 있다. 이런 신들은 통찰지를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통찰지가 있다.’라고.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천신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압도되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고, 어리석음에 압도되지 않는다. 그때 그의 마음은 천신을 의지하여 확고해진다. 그는 욕심을 떠났고, 벗어났고, 여의었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욕심이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과 동의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대상으로 삼은 뒤 여기 어떤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이 있다.”


깟짜나 경(A6:26)

Kacc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마하깟짜나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도반이시여.”라고. 

마하깟짜나 존자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2.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도반들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반들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재가의 삶 가운데서 기회 얻음을 깨달으셨습니다. 이것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 그것은 바로 여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입니다. 무엇이 여섯인가요?”


3. “도반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여래를 계속해서 생각합니다[隨念]. 

‘이런 이유로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시며, 영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이시며, 세상의 존귀하신 분(世尊)이시다.’라고.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여래를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압도되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고, 어리석음에 압도되지 않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은 여래를 의지하여 확고해집니다. 그는 욕심을 떠났고, 벗어났고, 여의었습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서 욕심이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과 동의어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성스러운 제자는 모든 곳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성냄 없는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머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을 대상으로 삼은 뒤 여기 어떤 중생들은 청정한 법을 가진 자가 됩니다.”


4. “다시 도반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법을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 있는 자 누구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법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압도되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고 어리석음에 압도되지 않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은 법을 의지하여 확고해집니다. 그는 욕심을 떠났고, 벗어났고, 여의었습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서 욕심이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과 동의어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성스러운 제자는 모든 곳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성냄 없는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머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을 대상으로 삼은 뒤 여기 어떤 중생들은 청정한 법을 가진 자가 됩니다.”


5. “다시 도반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승가를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느니, 저 네 쌍의 분들이요[四雙] 여덟 단계에 계신 분[八輩]들이시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공양 받아 마땅하고, 시중받아 마땅하고,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승가를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압도되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고, 어리석음에 압도되지 않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은 승가를 의지하여 확고해집니다. 그는 욕심을 떠났고, 벗어났고, 여의었습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서 욕심이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과 동의어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성스러운 제자는 모든 곳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성냄 없는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머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을 대상을 삼은 뒤 여기 어떤 중생들은 청정한 법을 가진 자가 됩니다.”


6. “다시 도반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계를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나의 계는 훼손되지 않고, 뚫어지지 않고, 오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벗어났고, 현자들이 찬탄하고, 비난받지 않고, 삼매로 인도한다.’라고.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계를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압도되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고, 어리석음에 압도되지 않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은 계를 의지하여 확고해집니다. 그는 욕심을 떠났고, 벗어났고, 여의었습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서 욕심이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과 동의어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성스러운 제자는 모든 곳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성냄 없는 마음으로 머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을 대상으로 삼은 뒤 여기 어떤 중생들은 청정한 법을 가진 자가 됩니다.”


7. “다시 도반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나는 인색함의 때에 얽매인 사람들 가운데 인색함의 때가 없는 마음으로 재가에 산다.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반드시 부응하고, 보시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이것은 참으로 내게 이득이구나. 이것은 참으로 내게 이득이구나.’라고.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압도되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고, 어리석음에 압도되지 않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은 보시를 의지하여 확고해집니다. 그는 욕심을 떠났고, 벗어났고, 여의었습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서 욕심이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과 동의어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성스러운 제자는 모든 곳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성냄 없는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머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을 대상으로 삼은 뒤 여기 어떤 중생들은 청정한 법을 가진 자가 됩니다.”


8. “다시 도반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천신을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사대왕천의 신들이 있고, 삼십삼천의 신들이 있고, 야마천의 신들이 있고, 도솔천의 신들이 있고, 화락천의 신들이 있고, 타화자재천의 신들이 이고, 범신천의 신들이 있고, 그보다 높은 천의 신들이 있다. 이런 신들은 믿음을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다. 이런 신들은 계를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계가 있다. 이런 신들은 배움을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배움이 있다. 이런 신들은 보시를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보시가 있다. 이런 신들은 통찰지를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통찰지가 있다.’라고.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천신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압도되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고, 어리석음에 압도되지 않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은 천신을 의지하여 확고해집니다. 그는 욕심을 떠났고, 벗어났고 여의었습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서 욕심이란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과 동의어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성스러운 제자는 모든 곳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성냄 없는 마음으로 머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을 대상으로 삼은 뒤 여기 어떤 중생들은 청정한 법을 가진 자가 됩니다.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도반들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반들이여. 도반들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재가의 삶 가운데서 기회 얻음을 깨달으셨습니다. 이것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 그것은 바로 여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입니다.”


시간 경1(A6:27)

Sama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세존이시여, 어떤 경우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 찾아 가기에 적당합니까?”


3. “비구여, 여섯 가지 경우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 찾아 가기에 적당하다.


비구여, 여기 비구가 감각적 쾌락에 사로잡히고 감각적 쾌락에 압도된(속박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런 때에는 마음 닦는 비구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저는 감각적 쾌락에 사로잡히고 감각적 쾌락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제가 감각적 쾌락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면 마음 닦는 비구는 그에게 감각적 쾌락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적당한 첫 번째 경우다.


다시 비구여, 여기 비구가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성냄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런 때에는 마음 닦는 비구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저는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성냄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제가 성냄를 제거하도록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면 마음 닦는 비구는 그에게 성냄를 제거하도록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적당한 두 번째 경우다.


다시 비구여, 여기 비구가 해태와 혼침(혼침과 졸음)에 사로잡히고 해태와 혼침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런 때에는 마음 닦는 비구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저는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히고 해태와 혼침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제가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면 마음 닦는 비구는 그에게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적당한 세 번째 경우다.


다시 비구여, 여기 비구가 들뜸과 후회(들뜸)에 사로잡히고 들뜸과 후회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들뜸과 후회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런 때에는 마음 닦는 비구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저는 들뜸과 후회에 사로잡히고 들뜸과 후회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들뜸과 후회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제가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도록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면 마음 닦는 비구는 그에게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도록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적당한 네 번째 경우다.


다시 비구여, 여기 비구가 의심에 사로잡히고 의심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의심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런 때에는 마음 닦는 비구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저는 의심에 사로잡히고 의심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의심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제가 의심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면 마음 닦는 비구는 그에게 의심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적당한 다섯 번째 경우다.


다시 비구여, 여기 비구가 어떤 표상을 대상으로 하여 그 표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즉시에 번뇌들이 다하게 되는 그러한 표상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 이런 때에는 마음 닦는 비구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저는 어떤 표상을 대상으로 하여 그 표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즉시에 번뇌들이 다하게 되는 그러한 표상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저의 번뇌들이 다하도록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면 마음 닦는 비구는 그에게 번뇌들이 다하도록 법을 설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적당한 여섯 번째 경우다.

 

비구여, 이러한 여섯 가지 경우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 찾아 가기에 적당하다.”


시간 경2(A6:28)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많은 장로 비구들이 탁발하여 공양을 마친 뒤 집회소에 함께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반들이여,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어떤 시간에 찾아 가는 것이 좋을까요?”


2.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마음 닦는 비구가 탁발하여 공양을 마친 뒤 발을 씻고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 그 시간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3.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마음 닦는 비구가 탁발하여 공양을 마친 뒤 발을 씻고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 시간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걸어서 피곤한데다 아직 그 시간에는 완전히 고요해지지 않았고, 식곤증으로 나른한데다 아직 그 시간에는 완전히 고요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은 마음 닦은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나 마음 닦는 비구가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머묾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승원의 그늘에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 그 시간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4.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마음 닦는 비구가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머묾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승원의 그늘에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 시간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에는 그가 낮 동안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삼매의 표상이 아직 그에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가기에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나 마음 닦는 비구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 그 시간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5.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마음 닦는 비구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 그 시간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에는 그의 몸이 기력이 충만하여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잘 새기기에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6. 이렇게 말하자 마하깟짜나 존자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저는 이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비구여, 다음의 여섯 가지 경우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찾아 가기에 적당한다. 무엇이 다섯인가?’”


“‘비구여, 여기 비구가 감각적 쾌락에 사로잡히고 감각적 쾌락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런 때에는 마음 닦는 비구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저는 감각적 쾌락에 사로잡히고 감각적 쾌락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제가 감각적 쾌락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면 마음 닦는 비구는 그에게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적당한 첫 번째 경우다.


다시 비구여, 여기 비구가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성냄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런 때에는 마음 닦는 비구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저는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성냄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제가 성냄를 제거하도록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면 마음 닦는 비구는 그에게 성냄를 제거하도록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적당한 두 번째 경우다.


다시 비구여, 여기 비구가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히고 해태와 혼침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런 때에는 마음 닦는 비구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저는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히고 해태와 혼침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제가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면 마음 닦는 비구는 그에게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적당한 세 번째 경우다.


다시 비구여, 여기 비구가 들뜸과 후회에 사로잡히고 들뜸과 후회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들뜸과 후회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런 때에는 마음 닦는 비구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저는 들뜸과 후회에 사로잡히고 들뜸과 후회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들뜸과 후회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제가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도록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면 마음 닦는 비구는 그에게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도록 법을 설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적당한 네 번째 경우다.


다시 비구여, 여기 비구가 의심에 사로잡히고 의심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의심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런 때에는 마음 닦는 비구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저는 의심에 사로잡히고 의심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 때에는 이미 일어난 의심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제가 의심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면 마음 닦는 비구는 그에게 의심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적당한 다섯 번째 경우다.


다시 비구여, 여기 비구가 어떤 표상을 대상으로 하여 그 표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즉시에 번뇌들이 다하게 되는 그러한 표상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 이런 때에는 마음 닦는 비구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저는 어떤 표상을 대상으로 하여 그 표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즉시에 번뇌들이 다하게 되는 그러한 표상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저의 번뇌들이 다하도록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면 마음 닦는 비구는 그에게 번뇌들이 다하도록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다가가기에 적당한 여서 번째 경우다.

 

도반들이여, 저는 이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비구여, 이러한 여섯 가지 경우가 마음 닦는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 가기에 적당하다.’라고.”

 

우다이 경(A6:29)

Udāyī-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우다이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우다이여,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계속해서 생각함[隨念]의 장소가 있는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우다이 존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세존께서는 우다이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우다이여,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계속해서 생각함[隨念]의 장소가 있는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우다이 존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 세존께서는 우다이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우다이여,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계속해서 생각함[隨念]의 장소가 있는가?”

세 번째에도 우다이 존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우다이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우다이여, 스승께서 그대를 불러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도반 아난다여, 저는 세존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비구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합니다. 예를들어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합니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합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 쓸모없는 인간 우다이는 높은 마음에 조금도 전념하여 머무르지 않았다고 나는 알고 있었다. 

아난다여,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가 있는가?”

“세존이시여, 다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가 있습니다. 무엇이 다섯인가요?”


2. “세존이시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이니,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익히면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됩니다.”


3. “다시 세존이시여, 비구는 광명상(光明想)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낮이다.’라는 인식에 집중합니다. 낮에 광명을 본 것처럼 밤에도 광명을 보고, 밤에 광명을 본 것처럼 낮에도 광명을 보는 인식에 집중합니다. 이처럼 열려있고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이니,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익히면 지와 견을 획득하게 됩니다.”


4. “다시 세존이시여,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되돌아 봅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손발톱∙이∙살갗∙살∙힘줄∙뼈∙골수∙콩팥∙염통∙간∙지라∙허파∙창자∙장간막∙위∙똥∙쓸개즙∙가래∙고름∙피∙땀∙굳기름∙눈물∙[피부의] 기름기∙침∙콧물∙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라고. 

세존이시여, 이것이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이니,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익히면 감각적 쾌락을 제거하게 됩니다.”


5. “다시 세존이시여,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봅니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 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 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 먹고, 개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온갖 벌레들이 달려들어 파먹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봅니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봅니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봅니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봅니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봅니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된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봅니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단지 뼈 무더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봅니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그 백골이 해를 넘기면서 삭아 가루가 된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봅니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세존이시여, 이것이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이니,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익히면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을 뿌리 뽑게 됩니다.”


6. “다시 세존이시여, 비구는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이니,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익히면 여러 가지 요소를 꿰뚫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다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가 있습니다.”


7. “장하고 장하구나, 아난다여.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것을 여섯 번째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로 잘 간직하도록 하여라.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마음 챙겨서 나아가고 마음 챙겨서 물러나고 마음 챙겨서 서고 마음 챙겨서 앉고 마음 챙겨서 눕고 마음 챙겨서 업무를 처리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이니,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학습하면 마음챙기고 알아차리게[正念正知] 된다.”

 

위없음 경(A6:30)

Anuttari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위없음이 있다. 무엇이 여섯인가?


보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 

듣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 

얻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 

닦음과 익힘들 가운데 위없음, 

섬기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위없음이 있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보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상보(象寶)를 보러 가고, 마보(馬寶)를 보러 가고, 보배보(寶具寶)를 보러 가고, 여러 가지 다른 것을 보러 가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삿된 닦음을 가진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러 간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리고 이런 봄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고,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확고한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과 흔들림이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보기 위해서 가는 자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친견(親見)은 위없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는 것이니, 즉 확고한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과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보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보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이라 한다. 이것이 보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이다. 


4. "그러면 어떤 것이 듣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북소리를 들으러 가고, 류트 소리를 들으러 가고, 노래 소리를 들으러 가고, 여러 가지 다른 것을 들으러 가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삿된 닦음을 가진 사문이나 바라문의 법을 들으러 간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듣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듣는 것이 아니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리고 이런 들음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고,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싫어하여 떠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확고한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과 흔들림이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설하는 법을 듣기 위해서 가는 자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들음은 위없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는 것이니, 즉 확고한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과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설하는 법을 듣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듣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이라 한다. 


이와 같이 보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과 듣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을 설했다. 


5. "그러면 어떤 것이 얻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아들을 얻고, 아내를 얻고, 재물을 얻고, 여러 가지 다른 것을 얻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삿된 닦음을 가진 사문이나 바라문에게서 믿음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얻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얻는 것이 아니다.’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리고 이런 얻음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고,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확고한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과 흔들림이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여래나 여래의 제자로부터 믿음을 얻는 자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얻음은 위없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는 것이니, 즉 확고한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과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여래나 여래의 제자로부터 믿음을 얻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얻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이라 한다. 


이와 같이 보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과 듣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과 얻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을 설했다. 


6. "그러면 어떤 것이 닦음과 익힘들 가운데 위없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코끼리에 대해 공부하고, 말에 대해 공부하고, 마차에 대해 공부하고, 활에 대해 공부하고, 칼에 대해 공부하고, 여러 가지 다른 것에 대해 공부하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삿된 닦음을 가진 사문이나 바라문에게서 공부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공부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리고 이런 공부는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고,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확고한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과 흔들림이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에서 높은 계를 공부 짓고 높은 마음을 공부 짓고 높은 통찰지를 공부 짓는 자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닦음과 익힘은 위없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는 것이니, 즉 확고한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과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에서 높은 계를 공부 짓고 높은 마음을 공부 짓고 높은 통찰지를 공부 짓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공부지음 가운데 위없음이라 한다. 


이와 같이 보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과 듣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과 얻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과 닦음과 익힘 가운데 위없음을 설했다. 


7. "그러면 어떤 것이 섬기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끄샤뜨리야를 섬기고, 바라문을 섬기고, 장자를 섬기고, 여러 가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삿된 닦음을 가진 사문이나 바라문을 섬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섬기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섬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리고 이런 섬김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고,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확고한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과 흔들림이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섬기는 자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섬김은 위없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는 것이니, 즉 확고한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과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섬기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섬기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이라 한다. 


이와 같이 보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과 듣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과 얻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과 닦음과 익힘 가운데 위없음과 섬기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을 설했다. 


8. "그러면 어떤 것이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아들을 얻는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아내를 얻는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재물을 얻는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여러 가지 다른 것을 얻는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삿된 닦음을 가진 사문이나 바라문을 계속해서 생각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에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리고 이런 계속해서 생각함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고,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확고한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과 흔들림이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자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계속해서 생각함은 위없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는 것이니, 즉 확고한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과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위없음이 있다.”


9. “고귀한 친견과 위없는 들음을 얻고

  위없는 얻음과 위없는 닦음과 익힘을 즐거워하며

  섬길 준비가 되어 있고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고

  한적함과 함께 하고 불사(不死)로 향하는 안은함을 닦으며

  불방일에 환희하고 슬기롭고 계를 구족한 자들은

  적당한 시기에 괴로움이 소멸된 [열반을] 안다.”



제3장 위없음 품이 끝났다.세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사마까 ② 쇠퇴하지 않음 ③ 두려움 ④ 히말라야 ⑤ 계속해서 생각함 ⑥ 깟짜나 ⑦ ~ ⑧ 시간 ⑨ 우다이 ⑩ 위없음이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