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위파사나 수행법은 20세기 초에 미얀마와 태국에서 부활된 것이다. 위파사나 수행법이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수행법은 다양하다. 한 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미얀마에서만 20종류 이상의 위파사나 수행법이 있다고 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레디 사야도는 영국제국이 미얀마를 통치하던 시기에 호흡 관찰을 바탕으로 한 위파사나 수행법(아나파나 위파사나)을 스스로 실천하고, 출가 승려와 재가 수행자를 지도한 선구자였고 현재 미얀마 위파사나 수행의 최초의 스승 가운데 한 분이었다.
레디 사야도는 마하시 사야도의 스승인 밍군 사야도(1868~1955, 사티파타나 위파사나)와 함께 미얀마 위파사나 수행의 원천이 되었다. 레디 사야도의 수행의 전통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고엔카 위파사나 수행법과 순룬 사야도의 위파사나 수행법의 연원이 된다.
출가한 후에 아비담마타 상가하(아비담마 길라잡이)를 배우며, 아비담마에 대한 공부를 하였고, 당시에 사용되던 교제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기도 하였다. 하지만 18세가 되던 해에 삼장에만 한정되어 있던 사원교육에 만족하지 못했고 점성술에 능통한 아버지의 일을 배우려고 냐나 다자 사미는 환속한다.
6개월 후에 스승이었던 민틴 사야도(Myinhtin Sayadaw)가 다시 사원으로 들어오라고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그러자 민틴 사야도는 몽 텟 콩 청년이 매우 총명하고 지식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제안을 던진다. 그것은 힌두교의 베다(Veda)를 배우고 싶으면 다시 절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베다를 알고 싶었던 청년은 다시 사미가 되었다. 후에 레디 사야도는 이렇게 회고하였다.
“처음에 나는 베다의 지식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점을 보아주며 살아가려고 했지만, 스승들께서는 현자이었기 때문에 한량없는 자비심으로 어리석은 나를 구제해주셨다.”
8개월 동안 베다를 완전하게 배운 후 1866년, 20세가 되던 해에 비구계를 받게 된다. 이듬해 당시의 수도이며 불교 교육의 중심지였던 만달레이로 떠났다. 당시 민돈왕(Min Don, 1853~1878 치세)은 불교흥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자신도 왕실을 중심으로 위파사나 수행을 몸소 실천하기도 하였다.
산짜웅 사야도(San-Kyaung Sayadaw)의 지도를 받던 어느 날, 2,000명의 학승에게 산짜웅 사야도는 바라밀(paramii-붓다의 10 가지 바라밀 수행)에 대한 문제 20가지 제시하였고, 이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답한 이는 오직 냐나 다자 비구 밖에 없었다.
1871년 4월 15일부터 9월 12일까지 민돈왕의 후원으로 기원전 1세기에 스리랑카에서 제4차 결집이 있은 후로 약 2,000년 만에 제 5차 결집이 만달레이에서 열리게 되었다. 당시 결집된 팔리 삼장은 729개의 돌비석에 새겨져 지금도 만달레이 언덕 아래의 쿠도도 파고다(Kuthodaw Pagoda)에 잘 보존되어 있다. 제5차 결집에서 25세의 젊은 냐나 다자비구는 아비담마의 편집하고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28세가 되던 해에 당시의 모든 교학시험을 통과한 냐나 다자 비구는 자신이 교육받던 사원의 강사가 되었다. 8년 동안 만달레이에서 후학을 지도한 후에, 36세가 되던 해에 몬와(Monywa)로 가서 한 사원에서 낮에는 비구와 사미에게 팔리 삼장을 가르쳤고, 저녁 무렵에는 강 건너 편에 있는 작은 절로 가서 위파사나 수행을 하였다.
레디 사야도가 어떤 방법으로 수행하였는가 구체적인 정보는 없지만, 전통적인 수행방법인 호흡에 대한 관찰과 몸의 감각을 관찰하는 방법을 바탕으로 한 위파사나 수행을 하였을 것이라고 고엔카 전통에서는 정리하고 있다. 이 방법은 사야 텟 지와 우 바 킨을 거쳐 고엔카지의 위파사나 수행법으로 이어진다.
1885년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냐나 다자 비구는 이듬 해 몬와 북 쪽에 있는 귀신들이 나온다고 하는 레디 숲으로 들어갔고, 재가자들은 스님의 활동을 위해서 레디 또야 사원을 건립하게 된다. 이곳에서 레디 사야도는 수행에 더욱 정진하게 된다. 여기에서 본래의 법명보다는 지역이나 사원의 이름으로 존경하는 스승을 부르는 관습에 의해 레디 사야도라는 명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교학에 뛰어난 학승이 수행에 전념하는 모습은 많은 불자들의 마음에 수행에 대한 씨앗을 심어 놓았다.
레디 또야 사원에서 후학을 지도하면서 자신의 수행을 쌓은 지 10년 후부터 레디 사야도는 자신의 저작을 펴내기 시작하였다. 첫 번 째 저술은 1897에 출판된 『궁극적 진리 해설(Paramattha-dipani (Manual of Ultimate Truth)』이었다. 다음에 출판 된 것은 팔리 문법서인 『언어 해설(Nirutta-dipani)』이었다. 이러한 저술을 통해서 미얀마에서 가장 학식 있는 비구로 알려지게 되었다.
레디 또야 사원을 중심으로 미얀마 전국을 다니면서 교학과 수행을 지도하기 시작한 레디 사야도는 교학과 수행을 겸비한 스승이었으며, 출가자뿐만 아니라 재가자들에게 수행을 지도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만달레이에서 프로메(Prome)로 가는 이틀 동안의 여행길에서 책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레디 사야도는 『12연기 해설』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팔리 삼장을 거의 외우고 있었던 레디 사야도는 책을 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레디 사야도는 『불교 해설(The Manuals of Buddhsim)』에서 76가지 해설(Dipani)과 주석 등을 지었으며, 일반 재가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미얀마어로 많은 법문을 남겨서 불교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13년에는 영국의 팔리성전협회의 요청으로 아비담마에 대한 해설서를 『팔리성전협회지(Journal of Pali Text Society)』에 소개하기도 하여 그 명성이 서양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1914년에는 서양인을 위해서 『위파사나 수행해설(Vipassana magga dipani)』을 저술하였다. 레디 사야도는 밍군 사야도는 달리 위파사나 수행처를 만들어서 지도하지 않았지만, 그가 지도한 제자들은 수행처를 만들어 수행법을 지도하였다. 1923년 77세로 입적한 레디 사야도는 많은 저술과 개별적인 수행 지도를 통해서 오늘날 면면히 살아있는 전통이 되어있다.
< 법보신문, 2004년 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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