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일한 길 :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꾸루의 깜맛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바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身隨觀)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부처님의 육성이 생생히 살아있는 초기경들 가운데서
실참수행법을 들라면
본경 「대념처경」과,
「중부」의 「들숨남숨에 마음챙기는 경」(Anapanasatii Sutta, 出入息念經, M118)과
「몸에 마음챙기는 경」(Kayagatasati Sutta, 念身經, M119)의 셋을 들 수 있다.
물론 「중부」의 「염처경」(M10)도 들어야겠으나
「염처경」은 사성제에서 고성제에 관한 부분만 제외하고는 본경과 그 내용이
일치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세 경들(대념처경,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경, 몸에 마음챙기는 경)을
초기경들 가운데서 실참수행을 설하신 수행삼경(修行三經)이라 불러도 괜찮다.
이 가운데서 본경은 수행법을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의 네 가지 주제 하에 집대성한 것으로
초기 수행법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경이며 그런 만큼 유명한 경이기도 하다.
마음챙김으로 대표되는 초기불교 수행법은
이 경을 토대로 지금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남방의 수행법으로 알려진 위빳사나 수행법은 모두 이 경을 토대로 하여
가르쳐지고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본경은 「장아함 」에는 실려 있지 않고 「염처경」(念處經)으로 옮겨져서
「중아함」의 98번째 경으로 중국에 소개되었다.
2-1. 몸을 관찰(身隨觀): 들숨날숨에 마음챙김
2.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숲 속에 가거나, 나무아래 기거하거나, 외진 장소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마음챙겨 숨을 둘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신행(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하면서 공부짓는다.
비구들이여,
마치 숙련된 도공이나 도공의 도제가
길게 돌리면서 '길게 돌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돌리면서 ;짧게 돌린다.'고 꿰뚫어 아는 것처럼,
그와 같이 비구는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신행(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하면서 공부짓는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2-2. 몸을 관찰: 자세四威儀)에 마음챙김
3.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어가면서 '걷고 있다.'고 꿰뚫어 알고,
서있으면서 '서있다.'고 꿰뚫어 알며,
앉아 있으면서 '앉아 있다.'고 꿰뚫어 알고,
누워있으면서 '누워있다.'고 꿰뚫어 안다.
또 그의 몸이 다른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 그 자세대로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2-3. 몸을 관찰: 거동에 마음챙김
4.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갈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의복·발우를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서면서·앉으면서·잠들면서·잠을 깨면서·말하면서·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2-4. 몸을 관찰: 몸의 32가지 부위에 대한 마음챙김
5.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갖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빨, 살갖,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근막, 지라, 허파, 큰창자, 작은창자, 위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피부의)기름기, 침, 콧물, 관절활액, 오줌 등이 있다.'고.
비구들이여,
이는 마치 양쪽에 주둥이가 있는 가마니에
여러 가지 곡물, 즉 밭벼, 보리, 녹두, 완두, 참깨, 논벼 등이 가득 담겨 있는데
어떤 눈밝은 사람이 그 자루를 풀고 반조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밭벼, 이것은 보리, 이것은 녹두, 이것은 참깨, 이것은 논벼다.'고.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갖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廷)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빨, 살갖,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근막, 지라, 허파, 큰창자, 작은창자, 위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피부의)기름기, 침, 콧물, 관절활액, 오줌 등이 있다.'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2-5. 몸을 관찰: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에 대한 마음챙김
6.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요소(界)별로 고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비구들이여,
마치 솜씨 좋은 백정이나 그 조수가
소를 잡아서 각을 뜬 다음 큰 길 네거리에 이를 벌여놓고 앉아 있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요소(界)별로 고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2-6. 몸을 관찰: 아홉 가지 시체에 대한 마음챙김
7. "다시 비구들이여,
1)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8. "다시 비구들이여,
2)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9. "다시 비구들이여,
3)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이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4)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5)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6)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10."다시 비구들이여,
7)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된 것을 보게 될 곳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8)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단지 뼈무더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9)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그 백골이 해를 넘기면서 삭아 가루가 된 것을 보게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3. 느낌에 마음챙김(受隨觀)
11.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비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비세속적인 즐거움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세속적인 괴로움을 느끼면서 '세속적인 괴로움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비세속적인 괴로움을 느끼면서 '비세속적인 괴로움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비세속적안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비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느낌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느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느낌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느낌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4. 마음에 마음챙김(心隨觀)
12.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1)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탐욕을 여읜 마음을 탐욕을 여읜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2)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성냄이 없는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3) 미혹이 있는 마음을 미혹이 있는 마음이러 꿰뚫어 안다.
미혹이 없는 마음을 미혹이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4) 위축된 마음을 위축된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산란한 마음은 산란한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5) 고귀한 마음을 고귀한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고귀하지 않은 마음을 고귀하지 않은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6) (아직도) 위가 남아 있는 마음을 (아직도) 위가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더 이상) 위가 없는(無上心) 마음을 (더 이상) 위가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7) 삼매에 든 마음을 삼매에 든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을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8)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마음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5-1. 법의 관찰(法隨觀): 다섯 가지 장애(五蓋)에 마음챙김
13.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기에게 감각적 욕망이 있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감각적 욕망이 없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감각적 욕망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감각적 욕망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악의가 있을 때 '내게 악의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악의가 없을 때 '내게 악의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악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악의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악의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해태와 혼침이 있을 때 '내게 해태와 혼침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해태와 혼침이 없을 때 '내게 해태와 혼침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해태와 혼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해태와 혼침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해태와 혼침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들뜸과 후회가 있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들뜸과 후회가 없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들뜸과 후회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들뜸과 후회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회의적 의심이 있을 때 '내게 의심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의심이 없을 때 '내게 의심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의심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의심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의심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5-3. 법의 관찰: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處)에 마음챙김
15.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바구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六內外處)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어떻게 비구가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을 꿰뚫어 안다. 형상을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緣)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귀를 꿰뚫어 안다. 소리를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緣)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코를 꿰뚫어 안다. 냄새를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緣)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혀를 꿰뚫어 안다. 맛을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緣)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몸을 꿰뚫어 안다. 감촉을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緣)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마노를 꿰뚫어 안다. 법을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緣)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5-4. 법의 관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에 마음챙김
16.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기에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念覺支)가 있을 때
'내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擇法覺支)가 있을 때
'내게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精進覺支)가 있을 때
'내게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喜覺支)가 있을 때
'내게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輕安覺支)가 있을 때
'내게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定覺支)가 있을 때
'내게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捨覺支)가 있을 때
'내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5-5. 법의 관찰: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마음챙김
17.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四聖諦)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5-5-1.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에 마음챙김
18.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태어남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태어남, 출생, 도래함, 생김, 탄생, 오온의 나타남, 감각장소(處)를 획득함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태어남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늙음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늙음, 노쇠함, 부서진 (이빨), 희어진 (머리털), 주름진 피부,
수명의 감소, 감각기능(根)의 허약함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늙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죽음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저런 중생들의 종말, 제거됨, 부서짐, 사라짐, 사망, 죽음, 서거,
오온의 부서짐, 시체를 안치함, 생명기능(命根)의 끊어짐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죽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근심인가?
비구들이여,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괴로운 현상에 맞닿은 사람의 근심, 근심함,
근심스러움, 내면의 근심, 내면의 슬픔
- 이를 일러 근심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탄식인가?
비구들이여.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 저런 괴로운 법에 맞닿은 사람들의 한탄, 비탄,
한탐함, 비탄함, 한탄스러움, 비탄스러움
- 이를 일러 탄식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육체적 고통인가?
비구들이여,
몸의 고통, 몸의 불편함, 몸에 맞닿아 생긴 고통스럽고 불편한 느낌
- 이를 일러 육체적 고통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정신적인 고통인가?
비구들이여,
정신적인 불편함, 마음에 맞닿아 생긴 고통스럽고 불편한 느낌
- 이를 일러 정신적 고통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절망인가?
비구들이여,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괴로운 법에 맞닿은 사람의 실망, 절망, 실망함, 절망함
- 이를 일러 절망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나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오 참으로 우리에게 태어나는 법이 있지 않기를! 참으로 그 태어남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 ' 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원한다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것도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늙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오 참으로 우리에게 늙는 법이 있지 않기를! 참으로 그 늙음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 '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원한다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것도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병들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오 참으로 우리에게 병드는 법이 잇지 않기를! 참으로 그 병듦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원한다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것도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을 하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오, 참으로 우리에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하는 법이 있지 않기를!
참으로 그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원한다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것도 역시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요컨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물질의 무더기(色取蘊),
(나 등으로) 취착하는 느낌의 무더기(受取蘊),
(나 등으로) 취착하는 인식의 무더기(想取蘊),
(나 등으로) 취착하는 상카라들의 무더기(行取蘊),
(나 등으로) 취착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識取蘊) 이다.
비구들이여, 요컨대 이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5-5-2.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에 마음챙김
19.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인가?
그것은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횐희와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런 갈애는 어디서 일어나서 어디서 자리 잡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거기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형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소리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냄새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맛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감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대상인) 법(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감각접촉(觸)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5-5-3.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에 마음챙김
20.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인가?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집착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그런 이 갈애는 어디서 없어지고 어디서 소멸되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형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소리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냄새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맛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감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대상인) 법(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감각접촉(觸)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코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혀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몸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마노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5-5-4. 괴로움의 소멸로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에 마음챙김
2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견해(正見)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지혜
- 이를 일러 바른 견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사유(正思惟)인가?
비구들이여,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不害)에 대한 사유
- 이를 일러 바른 사유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위(正業)인가?
비구들이여,
살생을 삼가고,
도둑질을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는 것
- 이를 일러 바른 행위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생계(正命)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삿된 생계를 제거하고 바른 생계로 생명을 영위한다.
- 이를 일러 바른 생계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인 바른 정진(正精進)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善法)들을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개발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정진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마음챙김(正念)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身隨觀)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마음챙김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삼매(正定)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가 있고 떨쳐버림에서 생겼고,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 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며(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온하게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앴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삼매라 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들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들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들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6. 이와 같이 칠 일을 닦는 사람은...
22.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이와 같이 칠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칠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육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육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오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오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사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사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삼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삼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이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이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일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알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일곱 달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일곱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여섯 달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여섯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다섯 달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다섯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네 달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네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석 달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석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두 달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두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한 달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한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보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보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칠 일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것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라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하였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2. 자세에 마음챙기고(걷고, 서고, 앉고, 눕고)
3. 거동에 마음챙기고(나아가고 물러서고 먹고 싸고)
4. 몸의 32가지 부위에 마음챙기고
5. 네 가지 근본물질에 마음챙기고(땅, 물, 불, 바람)
6. 아홉 가지 시체의 모습에 마음챙기고(썩어서 하얗게 삭은 가루)
7. 느낌에 마음챙기고(즐겁고, 괴롭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8. 마음에 마음챙기고(탐냄, 성냄, 미혹, 산란, 위축 고귀, 위가 있는, 삼매, 해탈)
9. 다섯 가지 장애에 마음챙기고(감각적 욕망, 악의, 해태와 혼침,들뜸과 후회, 의심)
10. 다섯 무더기에 마음챙기고(물질, 느낌, 인식, 상카라, 알음알이의 일어나고 소멸함)
11. 여섯 가지 감각장소에 마음챙기고(안,의,비,설,신,의와 그 족쇄들)
12.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에 마음챙기고(념, 택법, 정진, 희, 경안, 정, 사각지)
13.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마음챙기어(오취온, 육처등의 일어남, 소멸함, 팔지성도)
구경의 지혜를 얻어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형성된 모든 것은 소멸하나니 지극히 청정함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위없는 설법에 감사드립니다.
부처님은 백겁동안 만나기 어렵다고 들었삽거늘
이 중생은 부처님을 뵈었고 그 분의 법을 들었으니 여한이 없습니다.
무엇이 일어나고 무엇이 멸하는가
원인이 일어나고 원인이 멸한다네.
(대념처경이 끝났다.) http://blog.daum.net/ibakdal/1737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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