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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의 모음 - 제5장 빤짤라 품(A9:42-9:51. Pañcāla-vagga)

수선님 2018. 5. 20. 11:54

제5장 빤짤라 품

Pañcāla-vagga


빤짤라 경(A9:42)

Pañcāl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우다이 존자가 아난자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우다이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 아난다여, 신의 아들 빤짤라짠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속박 가운데서도 기회 얻음을 깨달으셨으니

  대 지혜자요, 초연한 영웅이요,

  성자요, 삼매와 고요함을 깨달으신 세존이시라.’


도반 아난다여, 그런데 어떤 것이 속박이며, 어떤 것이 속박 가운데서도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이 속박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입니까? 


눈으로 인식되는 형상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쾌락을 자극하는 것)것들입니다.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입니다.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입니다.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입니다.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觸]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러한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이 속박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속박 가운데서도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속박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는 무엇이 속박입니까? 

여기서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소멸되지 않으면 그것은 속박입니다.”


4.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부터 고요해져,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얻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속박 가운데서도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속박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는 무엇이 속박입니까? 

여기서는 희열이 소멸되지 않으면 그것은 속박입니다.”


5.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속박 가운데서도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속박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는 무엇이 속박입니까? 

여기서는 평정과 행복이 소멸되지 않으면 그것은 속박입니다.”


6.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속박 가운데서도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속박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는 무엇이 속박입니까? 

여기서는 물질에 대한 인식이 소멸되지 않으면 그것은 속박입니다.”


7.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속박 가운데서도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속박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는 무엇이 속박입니까? 

여기서는 공무변처의 인식이 소멸되지 않으면 그것은 속박입니다.”


8.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속박 가운데서도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속박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는 무엇이 속박입니까? 

여기서는 식무변처의 인식이 소멸되지 않으면 그것은 속박입니다.”


9.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이여, 이것이 속박 가운데서도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속박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는 무엇이 속박입니까? 

여기서는 무소유처의 인식이 소멸되지 않으면 그것은 속박입니다.”


10.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속박 가운데서도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속박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는 무엇이 속박입니까? 

여기서는 비상비비상처의 인식이 소멸되지 않으면 그것은 속박입니다.”


11.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문다.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속박 가운데서도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몸으로 체험한 자 경(A9:43)

Kāyasakkhī-sutta 

1. “도반 아난다여, ‘몸으로 체험한 자,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이여,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4.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5.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혜해탈 경(A9:44)

Paññāvimutta-sutta 

1. “도반 아난다여, ‘통찰지를 통하여 해탈한 자[慧解脫], 통찰지를 통하여 해탈한 자’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통찰지를 통하여 해탈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도반 우다이이여, 이것이 '통찰지를 통하여 해탈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의식[識]’이라고 하면서 식무변처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상수멸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통찰지를 통하여 해탈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양면해탈 경(A9:45)

Ubhatabhāgavimutta-sutta 

1. “도반 아난다여, ‘양면으로 해탈한 자(兩面解脫), 양면으로 해탈한 자’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양면으로 해탈한 자'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떠남(離)에서 생겨난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부터 고요해져,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얻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 기쁨으로부터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念)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로 그것,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얻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슬픔)이 사라진(소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제4선(四禪)을 얻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양면으로 해탈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양면으로 해탈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도반이여, 이것이 '양면으로 해탈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보아 알 수 있음 경1(A9:46)

Sandiṭṭhika-sutta 

1. “도반 아난다여,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법,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법’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법'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떠남(離)에서 생겨난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부터 고요해져,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얻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기쁨으로부터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念)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로 그것,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얻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슬픔)이 사라진(소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제4선(四禪)을 얻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법'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법'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이여, 이것이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법'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보아 알 수 있음 경2(A9:47)

1. “도반 아난다여,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열반,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열반’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열반'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떠남(離)에서 생겨난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부터 고요해져,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얻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기쁨으로부터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念)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로 그것,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얻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슬픔)이 사라진(소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제4선(四禪)을 얻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열반 경(A9:48)

Nibbāna-sutta 

1. “도반 아난다여, ‘열반, 열반’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열반'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떠남(離)에서 생겨난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부터 고요해져,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얻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기쁨으로부터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念)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로 그것,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얻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슬픔)이 사라진(소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제4선(四禪)을 얻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이여, 이것이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반열반 경(A9:49)

Parinibbāna-sutta 

1. “도반 아난다여, ‘반열반, 반열반’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반열반'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떠남(離)에서 생겨난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부터 고요해져,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얻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기쁨으로부터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念)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로 그것,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얻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슬픔)이 사라진(소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제4선(四禪)을 얻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반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반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반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구성요소 경(A9:50)

Tadaṅga-sutta 

1. “도반 아난다여, ‘구성요소를 통한 열반, 구성요소를 통한 열반’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구성요소를 통한 열반'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떠남(離)에서 생겨난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부터 고요해져,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얻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기쁨으로부터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念)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로 그것,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얻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슬픔)이 사라진(소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제4선(四禪)을 얻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구성요소를 통한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구성요소를 통한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구성요소를 통한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기 경(A9:51)

Diṭṭhadhammika-sutta 

1. “도반 아난다여, ‘지금 여기에서의 열반, 지금 여기에서의 열반’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금 여기에서의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떠남(離)에서 생겨난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부터 고요해져,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얻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기쁨으로부터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念)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로 그것,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얻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슬픔)이 사라진(소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제4선(四禪)을 얻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의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의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의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제5장 빤짤라 품이 끝났다. 다섯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빤짤라 ② 몸으로 체험한 자 ③ 혜해탈 ④ 양면해탈 ⑤ ~ ⑥ 스스로 보아 알 수 있음 ⑦ 열반 

⑧ 반열반 ⑨ 구성요소 ⑩ 지금 여기이다.


첫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이 끝났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