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 니까야(증일)

아홉의 모음 - 제6장 안은 품(A9:52-A9:62. Khema-vagga)

수선님 2018. 5. 20. 11:55

                                       Ⅱ. 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Dutiya-paṇṇāsaka


제6장 안은 품

Khema-vagga


안은 경1(A9:52)

Khem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우다이 존자가 아난자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우다이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 아난다여, ‘안은, 안은’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안은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안은'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주) * 여기에서 '거친사유(vitakka)'란 'vivtark'에 기원을 둔 말로, '사유하다. 사색하다. 헤아리다'의 어원적 의미를 가진다. 보통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다. 또한 '미세한 사유(vicara)란 'vivcar'에 기원을 둔 말로, '맴돌다.사찰하다.조사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이들 두 용어는 본문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첫 번째 선정에서의 심리상태를 나타낼 때 사용되며, '거친 사유의 작용'과 '미세한 사유의 작용'으로 대별된다.

"빠띠삼비다막가"의 마하박가(I.제25장 6절)에 보면 '두 번째 선정에 들어간 자에게는 거친 사유와 마세한 사유에 의한 언어적 현상(語行.어행)이 그친다(dutiyajjhanam samapannassa vitakkavicara vacfsankhara patippassadha honti...)'라는 구절이 나오는 바, 이를 통해 'vitakka'와 'vicara'는 언어적 사고의 영역 안에서 진행되는 마음의 작용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PsA 에 따르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사유한다는 것은 거친 사유이며, 사유함은 거친 사유이며, 추론이라 불리우는것은 거친 사유이다. 그것에 의해 마음이 의지하는 바(對象.대상) 안에서 맴도는 것이 미세한 사유이며, 배회하는 것이 미세한 사유이며. 따라 다니는 것이라 불리우는 것이 미세한 사유이다.  

* 평정(upekkha 捨)이란 'upaviks(가까이 응시하다)'에서 기원한 말로 원래의 의미는 '밀착해서 보다'이다. 즉 어떠한 대상에 대해 주관적 관념이나 사념을 '배제한(捨(버릴 사)' 상태에서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이와 같은 원래의 의미에서 출발하여 인식 주체의 심리적 상황을 밝히는 말로 사용 되기에 이르렀는데, 평정, 냉철함, 초연함등으로 번역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이 용어는 보통 선정의 상태, 그 중에서도 네 번째 선정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는데, 그것의 전형이 되는 어구가 '捨念淸淨(사념청정. upekkha-sati-parisuddhi)' 즉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이다. 그러나 원래의 뜻은 '평정된 마음으로 보는 것(ajjhupekkhana)'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장애없이 사물을 주시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빠사나(vipassana)'의 수행이 선정의 상태로 연결되는 것을 밝힌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다시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안은'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안은'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안은 경2(A9:53)

1. “도반 아난다여, ‘안은을 얻음, 안은을 얻음’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안은을 얻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안은을 얻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안은을 얻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안은을 얻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불사(不死) 경1(A9:54)

Amata-sutta 

1. “도반 아난다여, ‘불사, 불사’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불사'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불사'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불사'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불사'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불사(不死) 경2(A9:55)

1. “도반 아난다여, ‘불사를 얻음, 불사를 얻음’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불사를 얻음'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불사를 얻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불사를 얻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불사를 얻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 없음 경1(A9:56)

Abhaya-sutta 

1. “도반 아난다여, ‘두려움 없음, 두려움 없음’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두려움 없음'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두려움 없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두려움 없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두려움 없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 없음 경2(A9:57)

1. “도반 아난다여, ‘두려움 없음을 얻음, 두려움을 없음을 얻음’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두려움 없음을 얻음'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두려움 없음을 얻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두려움 없음을 얻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두려움 없음을 얻음'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편안함 경1(A9:58)

Passaddhi-sutta 

1. “도반 아난다여, ‘편안함, 편안함'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편안함'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편안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편안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편안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편안함 경2(A9:59)

1. “도반 아난다여, ‘차례로 편안함, 차례로 편안함’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차례로 편안함'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차례로 편안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차례로 편안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차례로 편안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소멸 경(A9:60)

Nirodha-sutta 

1. “도반 아난다여, ‘소멸, 소멸’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소멸'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소멸'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소멸'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소멸'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차례로 소멸함 경(A9:61)

Anupubbanirodha-sutta 

1. “도반 아난다여, ‘차례로 소멸함[次第滅], 차례로 소멸함’이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차례로 소멸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2.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차례로 소멸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뭅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차례로 소멸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사성제를 본 뒤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 우다이여, 이것이 '차례로 소멸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방편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제거하여 실현할 수 있음 경(A9:62)

Pahāyabhabba-sutta 

1. “비구들이여, 아홉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아라한과를 실현할 수 없다. 무엇이 아홉인가?


탐욕, 성냄, 어리석음, 분노, 원한, 위선, 앙심, 질투, 인색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아홉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아라한과를 실현할 수 없다.”


2. “비구들이여, 아홉 가지 법을 제거하면 아라한과를 실현할 수 있다. 무엇이 아홉인가?”


탐욕, 성냄, 어리석음, 분노, 원한, 위선, 앙심, 질투, 인색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아홉 가지 법을 제거하면 아라한과를 실현할 수 있다.”



제6장 안은 품이 끝났다. 여섯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② 안은 ③ ~ ④ 불사(不死) ⑤ ~ ⑥ 두려움 없음 ⑦ ~ ⑧ 편안함 ⑨ 소멸 ⑩ 차례로 소멸함 

⑪ 제거하여 실현할 수 있음이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