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 Early Buddhism

[스크랩] 바로보고 살기

수선님 2018. 5. 2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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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보고 살기

대연스님 인오선원 주지
기사 입력시간 : 2009-09-13 18:48:51

많은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거나 속임수에 넘어가거나 거짓말을 믿어서 손해를 입는다. 그리고 후회를 하면서 자신에게 손해가 생기도록 만든 사람이나 존재를 원망한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각도로 본다면 자신의 욕망(慾望)과 무지(無智)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기 스스로 그러한 일을 만들었으므로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
필자가 사는 인오선원의 문은 항상 열려있으니 참 다양한 사람들이 문턱을 넘어온다. 한번은 나이가 좀 많이 드신, 할머니라고 불러야 될만한 두 분이 오셨다. 도심에서 포교를 하시느라고 수고가 많다면서 인사를 하기에 앉으시라고 권했다.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물었더니 지나가시다가 인오선원의 간판을 보고 어떤 스님이 사는지 궁금해서 들어왔노라고 하셨다.
두 분이 경북 의성에 사신다고 하시기에 필자도 예전에 의성에 있는 사찰에서 지낸 적이 있어서 의성에 관해 몇 마디의 이야기를 나눴지만 대답이 좀 이상했다. 그러던 중에 한 분이 가방에서 삼베 두 뭉치를 꺼내 놓으면서 아는 친척을 찾아 대구까지 왔는데 이사를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며 삼베를 좀 팔아달라고 했다. 자신들이 직접 짠 삼베라면서 제값에 팔고 싶지만 당장 여비가 아쉬우니 아쉬우니 헐값에라도 처분해야겠다고 했다.
사실 필자는 모시나 삼베옷을 입지 않는다. 무명옷도 거의 입지 않는다. 삼베나 모시옷 등은 값도 값이려니와 손질이 많이 필요한 옷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해야하는 게으른 필자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다. 경제적인 능력도 없거니와 혼자 손질해서 입을 만큼 부지런하지 않다며 정중히 거절을 했더니 값을 말하지 않은 채 싸게 주겠다고 하며 계속해서 필자 앞으로 삼베 두 필을 들이밀었다. 하도 들이밀기에 손으로 만져보았더니 직접 짰다는 삼베가 중국제였다. 중국제와 국산은 질감이 아예 다르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다. 필자가 속으로 ‘에이, 사기 치실 곳을 잘못 찾으셨습니다.’라고 했지만 웃으며 정중히 두 분에게 삼베를 건네 드렸다. 두 분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곱게 떠나가셨다. 필자가 중국 삼베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웃고 넘길 수 있었던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에 의해 손해를 보고나서야 많은 후회를 한다. 손해를 보고 난 뒤에 생각해보면 자신이 얼마나 허무하게 속았는지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에 후회가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 금전적인 손해뿐만 아니라 마음에 남은 정신적인 상처 때문에 오래도록 쓰라린 아픔을 곱씹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결코 남을 욕하거나 원망할 수가 없다. 자기 스스로가 욕망에 눈이 어두워서 상대가 하는 말과 행동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뿐이다.
어떤 말이나 현상, 사물을 바라볼 때 아주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안목으로 지혜롭게 판단한다면 속을 일이 없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종종 그것을 무시하게 만든다. 자신의 욕망에 눈이 어두워 다른 것들을 살펴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는 것이다. ‘설마’하는 마음, ‘내가 누군데 속아’하는 자만심, 무지 등등 참 많은 이유로 속으며 살아간다.
속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일일이 따지고 사는 것이 귀찮아서 그러려니 하고 산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쓴다고 생각하며 호방하게 웃고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가끔은 오죽하면 사기를 쳐서 살아가겠냐며 오히려 거짓말하는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모두 자기 그릇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 속임수의 목표가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속임을 당하는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결코 긍정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혜롭게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지혜롭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한다. 본인 자신은 물론이고 더불어 사는 사람까지 행복하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야한다. 다른 사람에게 악업(惡業)을 짓게 하는 것도 결코 좋은 행위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업(善業)의 좋은 결과만으로 살아도 쉽지 않을 세상을 나쁜 행위의 결과로써 받는 고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롭겠는가?
업은 행위라는 뜻이다. 행위에 관한 결과가 업보(業報)이다. 과거(전생을 포함)를 알고 싶은가? 자신이 현재 처해진 상황을 보면 된다. 미래를 알고 싶은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 된다. 참 쉽지 않은가?

출처:대구신문
출처 : 슬기롭고 온화하게
글쓴이 : waterwindlik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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