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들이여,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비탄을 뛰어넘게 하고, 고통과 근심을 소멸하게 하고,
正道를 얻게 하고, 열반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길이 있으니 곧 四念處이다.
네가지란 무엇인가?
-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관찰하고,
- 마음에 대해 마음을 관찰하고,
- 법에 대해 법을 관찰하여
노력과 正知(바른 이해)와 念(알아차림)을 갖추어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거룩한 해탈로 이끄는 (niyyānikā) 사념처를 닦고 익히면,
그것을 닦는 자에게 곧바로 괴로움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사념처를 잃어버리면 그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잃는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사념처를 얻으면 그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사념처를 닦고 익히면 결정코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고 소멸하여
고요해지고 충분히 알고 올바로 깨달아 열반을 성취하는데 도움이 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동쪽으로 향하고 동족으로 기울고 동쪽으로 임한 나무가 있다고 하자.
그 나무의 뿌리가 잘리면 어떤 방향으로 떨어지겠는가?
세존이시여, 그것이 향하고 그것이 기울고 그것이 임하는 곳으로 떨어집니다.
비구들이여, 이와같이 비구가 사념처를 닦고 익히면, 그는 열반으로 향하고 열반으로 기울고 열반으로 임한다.
비구들이여, 사념처를 닦고 익히면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는데 도움이 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사념처를 닦고 익히면 현세에서 깨닫거나,
아직 집착이 남아있다면 아나함에 이르는 두가지 과보 가운에 어느 한가지가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사념처를 잘 정립하여 불사(不死)를 놓치지 말라.
비구들이여, 正念과 正知를 실천해야 한다
어떻게 正念을 실천하는가?
어떻게 正知를 실천하는가?
비구들이여,
- 나아가는 것과 물러서는 것을 올바로 알고,
- 앞을 보는 것과 뒤를 보는 것을 올바로 알고,
- 굽히는 것과 펴는 것을 올바로 알고,
- 법복과 발우와 가사를 지니는 것을 올바로 알고,
-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것을 올바로 알고,
- 대변과 소변을 보는 것을 올바로 알고,
- 가고 서고 앉고 잠자고 깨고 말하고 침묵하는 것을 올바로 알아야 한다.
어떻게 正知를 실천하는가?
비구들이여,
이 세상에 비구들은 느낌[사유, 지각]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느낌이 유지되는 것을 알고 느낌이 소멸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四念處를 세가지 방식으로 수행해야 한다.
- 안으로,
- 밖으로,
- 안팎으로...
그렇다면 그대는 善法의 근본을 청정하게 하라.
선법의 근본이란 어떠한 것인가?
지극히 청정한 계행과 올바른 견해이다.
수행승이 청정한 계행과 올바른 견해를 얻은후 그대는 계행에 의존하고 계행을 바탕으로 四念處를 세가지 방식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대가 계행에 의존하고 계행을 바탕으로 사념처를 이와같이 세가지 방식으로 수행하면,
그대에게 밤이나 낮이나 선법의 성장이 기대되지 선법의 감퇴는 기대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올바로 이해하여(正知) 모든 것을 하나로 하고 마음을 정화하고 집중에 들고 마음을 통일하여
몸, 느낌, 마음, 법을 여실히 알기 위해 몸, 느낌, 마음, 법을 관찰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노력과 正知와 념을 갖춰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고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하여 몸, 느낌, 마음, 법을 관찰한다.
그가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해 몸, 느낌, 마음, 법을 관찰하면 그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욕망(chanda)을 끊는다.
욕망이 끊어짐으로써 불사가 실현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노력과 正知와 념을 갖춰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고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하여 몸 느낌, 마음, 법을 관찰한다.
그가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해 몸 느낌, 마음, 법을 관찰하면 그 몸 느낌, 마음, 법이 충분히 알게된다.
몸 느낌, 마음, 법을 충분히 알게 되면 불사가 실현된다.
념처란 어떠한 것인가? (#1)
념처수행이란 어떠한 것인가?
이와같이 비구는 노력과 正知와 念을 갖추어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여
몸 느낌, 마음, 법에서 생성의 법을 관찰하고 소멸의 법을 관찰하고 생성하고 소멸하는 법을 관찰한다.
념처수행에 이르는 길을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팔정도이니 곧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다.
비구들이여, 사념처의 생성과 소멸에 관해 설하겠다. 잘 들어라.
- 몸의 생성이란 어떠한 것인가? 자양분이 생겨나면 몸이 생겨난다. 자양분이 소멸하면 몸이 소멸한다.
- 느낌의 생성이란 어떠한 것인가? 접촉이 생겨나면 느낌이 생겨난다.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한다.
- 마음의 생성이란 어떠한 것인가? 名色이 생겨나면 마음이 생겨난다. 명색이 소멸하면 마음이 소멸한다.
- 법의 생성이란 어떠한 것인가? 作意가 생겨나면 법이 생겨난다. 작의가 소멸하면 법이 소멸한다.
아난다여, 이 세상에 비구는 노력과 正知와 念을 갖춰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고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하여 몸 느낌, 마음, 법을 관찰하는데 관찰하면서
육체적인 대상, 육체적인 불편, 마음의 위축이 생겨나거나 밖으로 마음이 산란해지면,
아난다여, 그 비구는 무언가 기쁘게 하는 특징에 마음을 지향해야하는데 무언가 기쁘게 하는 특징에 마음을 지향하면 즐거움이 생기고 즐거움이 생기면 희열이 행겨나고 희열이 생겨나면 몸이 안정되고 몸이 안정되면 지복을 느끼고 지복을 느끼면 이와같이 ‘나는 나의 마음이 지향하는 목표를 얻었다. 이제 나의 마음에서 그것을 철수해 보자’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는 그 마음에서 그것을 철수하여 사유와 숙고에서 벗어나면 ‘나는 사유를 벗어나고 숙고를 벗어나 내적으로 깊이 새겨 지복을 느낀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와같이 지향하는 수행이 있다.
아난다여, 이와같이 지향하지 않는 수행은 어떠한 것인가?
비구가 외적으로 마음을 지향하지 않고 ‘나의 마음은 외적으로 지향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래서 ‘그것은 앞으로나 뒤로나 위축되지 않고 해탈하여 지향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알지만
또한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하여 몸 느낌, 마음, 법을 관찰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올바로 알고 깊이 새겨 지복을 느낀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와같이 지향하지 않는 수행이 있다.
아난다여, 이와같이 나는 지향하는 수행도 설하고 지향하지 않는 수행도 설한다.
나는 자비를 느끼며 그대를 위하여 제자의 이익을 위하여 스승이 해야 할 일을 행했다.
아난다여, 여기 나무 밑에서, 여기 빈집에서 선정에 들어 방일하지 말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
이것이 나의 그대를 위한 가르침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나라의 미인, 나라의 미인이라고 하면서 대중이 모였다고 하자.
그 나라의 미녀는 또한 춤도 가장 잘 추고 노래도 가장 잘 할 것이다.
나라의 미녀가 춤도 가장 잘 추고 노래도 가장 잘 한다고 하면 더욱 많은 대중들이 모여들 것이다.
이 때에 삶을 원하고 죽음을 원하지 않고, 즐거움을 원하고 괴로움을 원하지 않는 이가 왔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에게 이와같이 ‘이보게, 그대는 이 기름으로 가득채운 그릇을 가지고 대중들과 나라의 미녀 사이를 돌아다녀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이 칼을 뽑아 그대의 뒤를 따라 다니며 조금이라고 기름을 떨어뜨리면 그대의 목을 벨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은 그 기름 그릇을 깊이 새기지 않고 밖으로 방일을 일삼을 수 있겠는가?
[비구들] 그럴 수 없습니다.
[세존] 비구들이여, 내가 비유를 설한 것은 그 의미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 의미는 이와 같다.
가득찬 기름은 이 몸에 대한 념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와같이 ‘몸에 대한 념을 닦고 익히고 수레로 만들고 바탕으로 삼고 경험하고 쌓아나가고 잘 성취할 것이다’라고 배워야 한다.
[밧다] 아난다여, 세존께서 훌륭한 계행에 관해 설하셨는데 그것은 어떠한 의미로 설하셨습니까?
[아난다] 밧다여, 훌륭합니다. 그대가 말을 걸어온 것도, 말솜씨도, 질문도 훌륭합니다.
세존께서 훌륭한 계행에 관해 설하신 것은 어디까지나 사념처의 토대를 닦기 위해서 설하신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어떠한 힘이 들어가는 일이든 땅에 의지하고 땅을 기반으로 그 모든 힘이 들어가는 일이 이뤄 진다.
비구들이여, 이와같이 비구는 계행에 의지하고 계행을 기반으로 사면처를 닦고 사념처의 토대를 익힌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들이 계행에 의지하고 계행을 기반으로 사념처의 토대를 닦고 사념처의 토대를 익히는가?
예를 들어 어떠한 씨앗으로 자라는 식물이든 그 성장, 증대, 성숙을 이룬다면, 그 모든 것은 땅에 의존하고.....
예를 들어 용들은 산의 제왕 히말라야에 의존하여 몸을 성장시키고 힘을 얻는다.
그들은 거기서 몸을 성장시키고 힘을 얻은 뒤에 작은 못에 들어가고 작은 못에 들어가서 큰 못으로 들어간다.
큰 못에 들어가서 작은 강으로, 큰강으로, 큰 바다로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몸을 크고 광대하게 키운다.
비구들이여, 念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그대들에 대한 가르침이다. 어떻게 념을 실천해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다리가 없거나 二足, 四足, 多足이거나 형상이 있거나 형상이 없거나 지각이 있거나 지각이 없는 모든 중생들이 있지만
그들 가운데 선서, 세존, 정등각자가 최상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와같이 선법들이 있지만 그 모든 법들은
불방일을 근본으로 하고
불방일을 연결고리로 삼음으로
불방일이 그 모든 것 가운데 최상이라고 불린다.
나는 불방일한 비구야말로 사념처를 닦고 사념처를 익힐 것이라고 기대한다.
비구들이여, 세가지 느낌이 있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있다.
이러한 세가지 느낌을 충분히 알기 위해 사념처를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세가지 번뇌(漏, āsava)가 있다.
감각적 쾌락의 번뇌(kāmāsava),
존재의 번뇌(bhavāsava),
무명의 번뇌(avijjāsava)이다.
이러한 세가지 번뇌를 충분히 알기 위해서 사념처를 닦아야 한다.
세가지 추구(esanā)가 있다.
감각적 쾌락에 해한 추구,
존재에 대한 추구,
청정한 삶에 대한 추구가 있다.
이 세가지를 ....하기 위해 사념처를 닦아야 한다.
세가지 자만(vidhā)이 있다.
나는 우월하다는 자만,
나는 동등하다는 자만,
나는 저열하다는 자만이 있다....
세가지 번뇌(āsava)가 있다.
감각적 쾌락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지의 번뇌가 있다....
세가지 존재(bhavā)가 있다.
감각적 쾌락의 존재,
형상의 존재,
무형상의 존재가 있다...
세가지 고(dukkha)가 있다.
고통의 고,
형성의 고,
변화의 고가 있다.
세가지 황무지(khilā)가 있다.
탐욕의 황무지,
성냄의 황무지,
어리석음의 황무지가 있다.
세가지 갈애(taṅhā)가 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가 있다.
네가지 暴流(ogha)가 있다.
감각적 쾌락의 폭류,
존재의 폭류,
견해의 폭류,
무지의 폭류가 있다.
네가지 집착(upādāna)이 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
견해에 대한 집착,
미신과 터부에 대한 집착,
실체가 있다는 환상에 대한 집착이 있다.
네가지 속박(ganthā)이 있다.
탐욕에 의한 신체의 속박,
성냄에 의한 신체의 속박,
미신과 터부에 의한 신체의 속박,
독단적 집착에 의한 신체의 속박이 있다.
일곱가지 경향(anusaya)이 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의 경향,
성내는 경향,
견해를 만드는 경향,
의심하는 경향,
자만하는 경향,
존재에 대한 탐욕의 경향,
무지의 경향이 있다.
다섯가지 감각적 쾌락(kāmaguṇa)이 있다.
기분좋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시키는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에 의해 인식되는 형상,소리,냄새,맛,감촉이 있다.
다섯가지 장애(nivaraṇāni)가 있다
감각적 쾌락의 장애,
분노의 장애,
해태와 혼침의 장애,
흥분과 회한의 장애,
의심의 장애가 있다.
다섯가지 집착된 존재의 모임이 있다.
색,수,상,행,식취온이 있다.
다섯가지 하부의 결박(orambhāgiya)이 있다.
실체가 있다는 환상에 의한 결박,
모든일에 대한 의심에 의한 결박,
미신과 터부에 의한 결박,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에 의한 결박,
성냄에 의한 결박이 있다...
다섯가지 상부의 결박(uddhambhāgiya)이 있다.
형상계에 대한 욕망에 의한 결박,
무형상계에 대한 욕망에 의한 결박,
자만하는 마음에 의한 결박,
자기정당화에 의한 결박,
무지에 의한 결박이 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갠지즈강이 동쪽으로 향하고 동쪽으로 기울고 동쪽으로 임하듯이,
비구들은 열반으로 향하고 열반으로 기울고 열반으로 임하는 사념처를 닦는다.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 도반 아누룻다여, 얼마나 많은 법을 닦고 수행하여 위대한 신통지를 얻었습니까?
[아누룻다] 도반들이여, 사념처를 닦고 수행하여 위대한 신통지를 얻었습니다.
이 사념처를 닦고 수행하여 나는 하늘의 세계에 관해 잘 압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옹기를 뒤엎으면 물을 토해내지 다시 삼키는 법은 없다.
이와같이 사념처를 닦고 익히면 악법과 불선법을 토해내지 다시 삼키는 법이 없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한여름의 마지막 달에 먼지와 진흙이 흩날릴 때에 커다란 구름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면 그 먼지들을 홀연히 사라지게 하고 그치게 하듯이 사념처를 닦고 익히면 이미 일어난 악, 불선법들을 홀연히 사라지게 하고 그치게 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이미 생겨난 커다란 구름을 태풍이 나타나면 홀연히 사라지게 하고 그치게 하듯이....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허공에는 여러 가지 바람이 분다.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남쪽에서도, 바람이 불고먼지바람이 불고, 먼지없는 바람이 불고, 찬바람이 불고, 더운 바람이 불고, 미풍이 불고, 태풍이 불 듯이
사념처를 닦고 익히면 사정근을, 사신족통을, 오력을, 오근을, 칠각지를, 팔정도를 닦고 원만히 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바다 위의 배가 돛대와 밧줄을 장착하고 육개월 동안 물에 표류하다가 겨울에 육지에 도착하면 밧줄이 바람과 햇빛에 달아 비구름에 젖어 쉽게 소모되고 썩어 없어지듯이,
비구가 사념처를 닦고 익히면 장애들이 쉽게 소모되고 썩어 없어진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한 객사가 있어 그곳에는 객이 동쪽에서, 서쪽에서, 북쪽에서, 남쪽에서 와서 머물고, 왕족, 바라문, 평민, 노예도 와서 머물 듯이 비구가 사념처를 닦고 익히면 잘 알고 충분히 알아야 할 법을 잘 알고 충분히 알게 되며, 잘 알고 버려야만 할 법을 잘 알고 버리게 되며, 잘 알고 실현되어야 할 법을 잘 알고 실현하며, 잘 알고 닦아야 할 법들을 잘 알고 닦는다.
잘 알고 충분히 알아야 할 법은 어떠한 법인가? 그것은 오취온이다. 다섯가지란 무엇인가? 색취온, 수취온, 상취온, 행취온, 식취온이다.
잘 알고 버려야할 법은 어떠한 법인가? 그것은 무명과 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잘 알고 실현되어야 할 법은 어떠한 법인가? 그것은 지혜와 해탈이다.
잘 알고 닦아야 할 법은 어떠한 법인가? 그것은 止와 觀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갠지즈 강은 동쪽으로 향하고 동쪽으로 기울고 동쪽으로 임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미와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 ‘우리는 이 갠지즈 강을 서쪽으로 향하고 서쪽으로 기울고 서쪽으로 임하게 하겠다’라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많은 사람들이 갠지즈 강을 서쪽으로 향하고 서쪽으로 기울고 서쪽으로 임하게 할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세존이시여, 갠지즈 강은 동쪽으로 향하고 동쪽으로 기울고 동쪽으로 임하는데, 단지 많은 사람을 피곤하고 곤혹하게 할 뿐, 서쪽으로 향하고 서쪽으로 기울고 서쪽으로 임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비구들이여, 이와같이 사념처를 닦고 익히면 그에게 왕이나 왕의 신하나 친지나 친척이 재물을 가지고 와서 이와같이 ‘이 사람아, 어찌 이런 가사로 그대를 괴롭힌단 말인가?
왜 삭발하고 발우를 들고 돌아다니는가?
오라, 세속의 생활로 돌아가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쌓자’ 라고 유혹한다고 하여도 그가 배움을 버리고 세속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만약 마음이 오랜 세월 멀리떠남으로 향하고 멀리떠남으로 기울고 멀리떠남으로 임하면 세속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다섯가지 장애야말로 불건전한 쓰레기라고 말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다섯가지 장애야말로 순전히 불건전한 쓰레기이다.
다섯가지란 무엇인가?
-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장애,
- 분노의 장애,
- 혼침과 해태의 장애,
- 흥분과 회한의 장애,
- 의심의 장애이다.
비구들이여, 사념처야말로 건전한 재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사념처야말로 오로지 건전한 재산이다.
비구들이여, 옛날에 매가 매추라기를 날쌔게 습격하여 붙잡았다.
그 때 매추라기는 매에게 사로잡혀 이처럼 슬퍼했다. ‘
나는 오늘 내 영역이 아닌 곳, 다른 경계 지역을 여행해서 불행하고 복도 없다.
만약 내가 오늘 나의 영역, 나의 아버지의 경계내에서 여행했다면 싸우더라도 이와 같이 나를 붙잡지 못했으리라’ ‘
매추라기여, 그대의 영역, 그대 아버지의 경계는 어떠한 곳인가? 바로 쟁기로 갈라진 밭의 흙덩이가 덮인 곳 아닌가?’
그러자 매는 자신의 힘을 신뢰하여 자신의 힘을 자랑하지 않고 메추라기를 놓아주었다.
‘메추라기여, 가라, 그곳으로 가더라도 나로부터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메추라기는 쟁기로 갈라진 밭의 흙더미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많은 흙을 올려 놓고 서서 매에게 말했다.
‘이제 매여, 나에게 와보라, 나에게 와보라.’
그러자 매는 자신의 힘을 늦추지 않고 자신의 힘을 조여서 양날개를 접고 갑자기 메추라기를 공격했다.
메추라기는 ‘이 매가 나를 덮친다.’ 라고 알고 그 흙더미 사이로 물러섰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그 매는 그곳에 가슴을 부딪쳤다.
비구들이여,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 다른 경계를 거니는 자는 이와 같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 다른 경계를 거닐지 말라.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 다른 경계를 거닐면 악마가 그 기회를 얻고 악마가 그 대상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 다른 경계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다섯가지 감각적 쾌락이다. 다섯가지란 무엇인가?
기분좋고 즐겁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주고 유혹적인,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의해 알려지는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들이 있다.
이것이 자신의 영역이 아닌 다른 경계이다.
비구들이여, 자신의 영역, 아버지의 경계를 거닐어라. 그러면 악마가 그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 대상을 얻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 자신의 영역, 아버지의 경계는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사념처이다.
비구들이여, 산의 제왕 히말라야 산에 원숭이도 못오고 사람도 못오는 험준한 지역이 있다.
비구들이여, 산의 제왕 히말라야 산에 원숭이는 오지만 사람은 못오는 험준한 지역이 있다.
비구들이여, 산의 제왕 히말라야 산에 원숭이도 오고 사람도 오는 평탄하고 즐길만한 지역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곳에서 한 사냥꾼이 원숭이가 다니는 길에 타르나무를 놓아서 원숭이르르 잡으려 한다.
그때에 그들 원숭이들 가운데 어리석고 경솔한 자가 그 타르나무에 접근해서 손으로 만지면 그는 즉시 사로잡힌다.
손을 빼고 싶어 다른 손으로 만지면 그것도 달라붙는다.
양쪽 손을 빼고 싶어 한발로 만지면 그것도 달라 붙는다.
두손과 한발을 빼고 싶어 다른 발로 만지면 그것마저 달라 붙는다.
양손과 양발을 빼고 싶어 입으로 만지면 그 입마저 역시 달라 붙는다.
그 원숭이는 다섯군데가 묶여 신음하며 누워 고난에 빠지고 불행에 떨어져 사냥꾼이 원하는 데로 해야 한다.
사냥꾼은 그것을 꼬챙이에 찔러 그 나무막대기에 조여 운반할 준비를 한 뒤에 원하는 곳을 향해 그곳을 떠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왕이나 왕의 대신을 위한 요리사가 어리석고 무능하고 숙련되지 못한데 시큼하고 쓰고 맵고 달고 떫거나 떫지 않거나 짜거나 짜지 않은 여러 종류의 수프를 준비했다고 하자.
그 요리사는 어리석고 무능하고 숙력되지 못해서 그 자신의 주인의 음식의 기호를 파악하지 못하고 ‘오늘은 시큼한 수프가 나의 주인의 맘에 든다’라고 그는 그 시큼한 것을 가져와서 그 시큼한 것을 많이 집어넣어 시큼한 맛을 낸다. ‘오늘은 쓴[매운, 달콤한, 떫은, 떫지 않은, 짠, 짜지 않은] 수프가 나의 주인의 맘에 든다’라고 그는 그 쓴[매운, 달콤한, 떫은, 떫지 않은, 짠, 짜지 않은] 것을 가져와서 그 쓴[매운, 달콤한, 떫은, 떫지 않은, 짠, 짜지 않은] 것을 많이 집어넣어 쓴[매운, 달콤한, 떫은, 떫지 않은, 짠, 짜지 않은] 맛을 낸다.
비구들이여, 그 요리사는 어리석고 무능하고 숙련되지 못해서 보호받지 못하고 급여를 받지 못하고 상여금을 받지 못한다.
왜인가?
그 요리사는 어리석고 무은하고 숙련되지 못해서 자신의 음식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와같이 이 세상에 비구가 어리석고 무능하고 숙련되지 못하면, 열심히 잘 알아서 탐욕과 근심의 극복을 위해 몸[느낌, 마음, 법]에 대하여 몸[느낌, 마음, 법]을 관찰할 때,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고 번뇌를 버리지 못하여 그 특징을 파악하지 못한다.
이와같이 비구가 어리석고 무능하고 숙련되지 못하면 현세에서 지복의 삶을 얻지 못하고 念에 의한 올바른 삶을 성취하지 못한다.
왜인가?
그 비구가 어리석고 무능하고 숙련되지 못하여 자신의 마음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왕이나 왕의 대신을 위한 요리사가 현명하고 유능하고 숙련되었는데 시큼하고 쓰고 맵고 달고 떫거나 떫지 않거나 짜거나 짜지 않은 여러 종류의 수프를 준비했다고 하자.
그 요리사는 현명하고 유능하고 숙력되어서 그 자신의 주인의 음식의 기호를 파악하고 ‘오늘은 이 수프가 나의 주인의 맘에 들것이다’라고 그것을 가져와서 그것을 많이 집어넣어 그 맛을 나타낸다. ‘오늘은 시큼한 수프가 나의 주인의 맘에 든다’라고 그는 그 시큼한 것을 가져와서 그 시큼한 것을 많이 집어넣어 시큼한 맛을 낸다. ‘오늘은 쓴[매운, 달콤한, 떫은, 떫지 않은, 짠, 짜지 않은] 수프가 나의 주인의 맘에 든다’라고 그는 그 쓴[매운, 달콤한, 떫은, 떫지 않은, 짠, 짜지 않은] 것을 가져와서 그 쓴[매운, 달콤한, 떫은, 떫지 않은, 짠, 짜지 않은] 것을 많이 집어넣어 쓴[매운, 달콤한, 떫은, 떫지 않은, 짠, 짜지 않은] 맛을 낸다.
비구들이여, 그 요리사는 현명하고 유능하고 숙련되어서 보호받고 급여를 받고 상여금을 받는다.
왜인가?
그 요리사는 현명하고 유능하고 숙련되서 자신의 음식의 특징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와같이 이 세상에 비구가 현명하고 유능하고 숙련되면, 열심히 잘 알아서 탐욕과 근심의 극복을 위해 몸[느낌, 마음, 법]에 대하여 몸[느낌, 마음, 법]을 관찰할 때, 마음을 집중하고 번뇌를 버리어 그 특징을 파악한다.
이와같이 비구가 현명하고 유능하고 숙련되면 현세에서 지복의 삶을 얻고 念에 의한 올바른 삶을 성취할 수 있다.
왜인가?
그 비구가 현명하고 유능하고 숙련되어 자신의 마음의 특징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세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베쌀리 부근에서 친구나 친지나 식구를 따라 안거를 보내라. 나는 이곳 벨루가마까에서 안거를 할 것이다.
[비구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비구들은 대답하고 베쌀리 부근에서 친구나 친지나 식구를 따라 안거를 보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벨루가마까에서 안거에 드셨다.
그후 세존께서 안거에 드셨을 때 심한 질병이 생겼다. 고통스러운 느낌 때문에 사경에 들 정도였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곳에서 念과 正知로써 고난을 겪지 않고 참아내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만약 내가 시자에게 알리지 않고 비구승단을 보살피지 않고 반열반에 드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지금 내가 이 질병을 정진력으로 이겨내어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어떨까?’라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정진력으로 질병을 이겨내고 목숨을 유지하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질병에서 일어나셨다. 질병에서 일어나신지 얼마되지 않아 정사에서 나와 승원 뒤의 그늘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존자 아난다는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한쪽으로 물러 앉은 아난다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아난다] 세존이시여, 참아내셨으니 더없이 기쁩니다.
견디어 내셨으니 더없이 기쁩니다.
세존께서 병이 들어 실로 저의 몸은 마비되고 제 앞은 캄캄하고 가르침도 제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비구 승단을 위해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기 전에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안심을 얻었습니다.
[세존] 아난다여, 비구승단이 나에게 기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안팎 없이 가르침을 다 설했다.
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師拳은 없다.
‘내가 비구승단을 이끌어 간다’라든가 ‘비구승단이 나에게 지시를 받는다’라든가 하더라도 비구 승단에 관하여 더 이상 무엇을 언급할 것인가? 여래는 이와같이 ‘내가 비구승단을 이끌어 간다’라든가 ‘비구승단이 나에게 지시를 받는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비구승단에 관하여 더 이상 무엇을 언급할 것인가?
아난다여, 그러나 나는 지금 늙고 노쇄하고 연로하고 만년에 이르렀으며 내 나이 80이 되었다.
예를 들어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의지하여 가듯이 여래의 몸도 가죽끈에 의지하여 가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여래가 일체의 특징을 마음으로 짓지 않고 가지가지의 느낌을 소멸하고 특징을 뛰어넘는 마음의 삼매(animittacetosamādhi)를 성취하면 그때에 여래의 몸은 지극히 안온하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남을 귀의지처로 하지 말고 , 법을 섬으로 하고 법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어떻게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남을 귀의지처로 하지 말고 , 법을 섬으로 하고 법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않는가? ......(사념처)
아난다여, 이제 내가 멸도한 후에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남을 귀의지처로 하지 않고,
법을 섬으로 하고 법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배우고자 열망하는 나의 비구승들, 최상자들이 될 것이다.
그때 존자 사리뿟따는 미가다의 날라가마까에 있었는데 질병이 들어 고통스러하고 중병이 되었다.
마침 사미 쭌다가 존자 사리뿟따의 시중을 들었다.
그런데 존자 사리뿟따는 그 질병으로 반열반에 들었다.
그러자 사미 쭌다는 사리뿟다의 발우와 가사를 들고 싸왓티의 제따와나 아나타삔다까 승원에 있는 존자 아난다를 찾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존자 아난다에게 인사하고 한쪽으로 물러앉았다.
한쪽으로 물러앉아 사미 쭌다는 존자 아난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쭌다] 존자여, 사리뿟다 존자께서 반열반에 들었습니다. 이것이 존자의 발우와 가사입니다
[아난다] 도반 쭌다여, 그런 사연이 있다면 함께 세존을 찾아 뵙도록 하자.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가자. 그 사연을 말하도록 하자.
그래서 존자 아난다와 사미 쭌다는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앉았다. 한쪽으로 물러앉은 존자 아난다는 세존께 이와같이 말했다.
[아난다] 세존이시여, 이 사미 쭌다가 이와 같이 ‘존자여, 사리뿟다 존자께서 반열반에 들었습니다. 이것이 존자의 발우와 가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존자 사리뿟따가 반열반에 들었다는 사연을 듣고 실로 저의 몸은 마비되고 제 앞은 캄캄하고 법들도 제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세존] 아난다여, 사리뿟따가 그대로부터 戒蘊[定蘊, 慧蘊, 解脫蘊, 解脫知見蘊]을 가지고 반열반에 들었는가?
[아난다] 세존이시여, 존자 사리뿟따는 저를 훈계하고 인도하고 알게하고 교시하고 권도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하고 설법하는데 피곤을 몰랐으며 그와 함께 청정한 삶을 영위하는 자를 수호하였으므로 저희는 존자 사리뿟따가 가르침에 생기를 불어넣고 가르침을 즐기고 가르침을 수호한 것에 대하여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 아난다여, 내가 이미 설하지 않았는가? 모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이와는 이별하게 되고 떨어지게 되고 분리된다.
어째서인가? 생겨나고 생성되면 괴멸하고야 마는 것을 두고 실로 괴멸하지 말라고 하느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견실한 큰 나무가 서있는데 커다란 가지 하나가 잘리듯이, 마찬가지로 커다란 비구승단이 있는데 견실한 사리뿟따가 반열반에 들었다. 어째서인가?
생겨나고 생성되면 괴멸하고야 마는 것을 두고 실로 괴멸하지 말라고 하느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난다야, 그러므로 자신을 섬으로 하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않는다면 그들 배우고자 열망하는 나의 수행승들, 어둠속의 빛들이 될 것이다.
[세존] 비구들이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반열반에 들었으니 실로 나에게 대중들이 있지만 텅빈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함께 지내던 곳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곳이든 상관없이 실로 나에게 그 대중들이 텅빈적이 없었다.
비구들이여, 과거세에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였던 그 세존들에게도 한 쌍의 최상의 제자가 있었다.
예를들어 나에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있는 것과 같다.
미래세에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인 그 세존들에게도 한 쌍의 최상의 제자가 있을 것이다.
예를들어 나에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있는 것과 같다.
현세의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인 그 세존들에게도 한 쌍의 최상의 제자가 있다.
예를들어 나에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있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아주 놀라운 일이다.
예전에 없었던 일이다. 제자로서 스승에 대하여 얼마나 가르침을 실천하고 훈계에 따르고 사부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기쁨을 주고 존중하고 존중받았는 지를 생각해보라.
비구들이여, 아주 놀라운 일이다.
예전에 없었던 일이다.
이처럼 한쌍의 제자가 열반에 들었을 때에 여래에게 슬픔이 없고 비탄이 없는 것을 생각해 보라.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생겨나고 생성되면 괴멸되고야 마는 것을 두고 실로 괴멸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섬으로 하라.
[사리뿟따] 어떠한 이를 위대한 사람(Mahāpurisa)이라 합니까?
[세존] 마음이 해탈하였으므로 위대한 사람이라고 나는 말하고 마음이 해탈하지 못했으므로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어떻게 마음이 해탈하는가?
여기에 비구가 노력과 正知와 念을 갖추어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고
-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면,
-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관찰하면
- 마음에 대해 마음을 관찰하면,
- 법에 대해 법을 관찰하면
마음은 정화되어 번뇌이 해탈한다.
어느때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가 가까이 다가와서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나눈 뒤에 한쪽으로 물러앉았다.
[사리뿟따] 세존이시여, 세존께 이와 같이 ‘수행자나 성직자 가운데 올바를 깨달음(sambodhi)에 관하여 세존보다도 탁월하고 더욱 초월적인 지혜를 가진 다른 이는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고 현제에도 없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존] 사리뿟따여, 그대의 모우왕같은 언설은 너무도 훌륭하다.
그대는 틀림없이 결정적으로 파악하여 사자후를 이와같이‘수행자나 성직자 가운데 올바를 깨달음(sambodhi)에 관하여 세존보다도 탁월하고 더욱 초월적인 지혜를 가진 다른 이는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고 현제에도 없다’라고 토했다.
그대는 과거세[미래세, 현세]에 거룩한 이,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이였던 그 세존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심찰하여 그와같이 아는가?
[사리뿟따]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 사리뿟따여, 과거, 미래, 현세에 걸쳐 거룩한 이,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이의 마음의 방평을 아능 지혜가 없다면 그대은 어떻게 이와같이 ‘수행자나 성직자 가운데 올바를 깨달음(sambodhi)에 관하여 세존보다도 탁월하고 더욱 초월적인 지혜를 가진 다른 이는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고 현세에도 없다’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가?
[사리뿟따] 세존이시여, 저는 과거, 미래, 현세에 걸쳐 거룩한이, 올바로 원만히 깨치신 이의 마음의 방편을 아는 지혜는 없어도 법에 대하여 유추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왕의 변방에 있는 도시가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견고한 성벽과 성문을 갖추었으나 유일한 성문을 갖고 있다고 합시다. 거기에 슬기롭고 유능하고 지혜로운 수문장이 모르는 자는 막고 아는 자만 들여보냅니다. 그는 이 도성의 주위로 길을 순찰하며 벽의 갈라진 곳이나 벽의 구멍 뚫린 곳이나 고양이가 드나들만한 곳을 보지 못하면 그는 이처럼 ‘어떠한 거친 중생이든지 이 도성을 드나드는 자들은 모두 이 문을 드나든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와같이 저는 법에 관해 유추합니다.
세존이시여, 과거세에[미래세, 현제세]에 거룩한이, 올바로 원만히 깨치신 이었던[이일, 인] 모든 세존들은 마음을 오염시키고 지혜를 약화시키는 다섯가지 장애를 버리고 마음을 사념처에 정초시키고 칠각지를 있는 그대로 닦아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았습니다.[깨달은 것입니다. 깨닸습니다.]
[세존] 사리뿟따여, 훌륭하다, 훌륭하다. 그대는 이 법문을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에게 반복하도록 하라. 모든 어리석은 사람이 여래에 대하여 의심이나 의혹을 품더라도 이 법문을 들으면 여래에 대한 그들의 의심이나 의혹은 끊어질 것이다.
한때 세존께서는 우루벨라의 네란자라 강 언덕에 있는 아자빨라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최초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셨다.
그때 홀로 명상하시는 세존께 마음속으로 이와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중생을 ...... (#1)....법에 대해 법을 관찰해야 한다’ 라고.
그러자 범천 싸함빠띠는 세존께서 일으킨 마음의 생각을 알아채고 마치 힘센 사람이 굽혀진 팔을 펴고 펴진 팔을 굽히는 듯한 사이에 범천계에서 모습을 감추고 세존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범천 싸함빠띠는 웃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세존께서 계신 곳을 향하여 합장하여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범천]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善逝시여, 그렇습니다. 중생을....(#1)... 법에 대해 법을 관찰해야 합니다.
이처럼 범천 사함빠띠는 말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태어남을 소멸시켜 그 궁극을 보는 님
유익과 애민을 지닌 님은 하나의 길을 알아
이길을 따라 거센 물결을 건넜고
건널 것이고 지금도 건너네.”
[세존] 비구들이여, 과거세에 한 대나무 곡예사가 대나무 곡예봉을 세워서 제자인 곡예사 메다까달리까를 불러 이와같이
‘오라 메다까달리까여, 그대는 대나무 곡예봉에 올라 나의 어깨 위에 서라.’ 라고 말했다. 비구들이여, 그래서 ‘스승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제자인 메다까달리까가 대나무 곡예사에게 대답하고는 대나무 곡예봉에 올라 스승의 어깨 위에 섰다.
비구들이여- 그때에 대나무 곡예사는 제자인 메다까달리까에게 이와같이 ‘메다까달리까여, 그대는 나를 수호하라. 나는 그대를 수호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서로를 보호하고 서로를 수호하여 곡예를 보여주고 이익을 획득하고 안전하게 곡예봉에서 내려올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처럼 말하자, 제자인 메다까달리까는 대나무 곡예사에게 이와같이 ‘스승이여,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대는 자신을 수호하십시오. 저는 저 자신을 수호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자신을 수호하고 자신을 수호하여 곡예를 보여주고 이익을 획득하고 안전하게 곡예봉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그것이 방법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세존] 비구들이여, 제자인 메다까달리까가 스승에게 말했듯이 ‘내가 자신을 수호할 것이다’라고 념처를 닦고 내가 남을 수호할 것이다 라고 념처를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자신을 수호하면 남을 수호하고 남을 수호하면 자신을 수호한다.
어떻게 자신을 수호하면 남을 수호하는가?
닦고 익히고 수행함으로써 가능하다. 이와같이 자신을 수호하면 남을 수호한다.
어떻게 남을 수호하면 자신을 수호하는가?
인내하고 해치지 않고 자애롭고 연민하는 것을 통해서 남을 수호하면 자신을 수호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내가 자신을 수호할 것이다’ 라고 념처를 닦고 ‘내가 남을 수호할 것이다’라고 념처를 닦아야 한다.
자신을 수호하면 남을 수호하고 남을 수호하면 자신을 수호한다.
[밧다] 도반 아난다여, 여래께서 반열반에 드신 후에 정법이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면[정법이 쇠퇴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고 그 조건은 무엇입니까?
[아난다] 도반 밧다여, 훌륭합니다.
사념처를 닦지 않고 수행하지 않는다면 여래가 반열반에 드신 뒤에 정법은 오래 지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법이 쇠퇴합니다.]
그러나 사념처를 닦고 익히면 여래가 반열반에 드신 뒤에도 정법은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쇠퇴하지 않습니다]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 도반 아누룻다여, 유학,유학 이라고 하는데 왜 유학이라고 합니까?
[아누룻다] 도반들이여, 사념처를 부분적으로 닦으면 유학이라고 합니다.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 도반 아누룻다여, 무학,무학 이라고 하는데 왜 무학이라고 합니까?
[아누룻다] 도반들이여, 사념처를 완전히 닦으면 무학이라고 합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몸, 느낌, 마음, 법의 관찰이다’라고 나에게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에 대하여 눈이 생겨나고 앎이 생겨나고 밝음이 생겨나고 빛이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몸, 느낌, 마음, 법의 관찰은 닦여져야 한다’라고 ....
비구들이여, ‘이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몸, 느낌, 마음, 법의 관찰은 닦여졌다’라고 나에게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에 대하여 눈이 생겨나고 앎이 생겨나고 밝음이 생겨나고 빛이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으로서 이 불교의 가르침과 계율에 새로 입문했다면,
비구들이여, 그들 비구들에게 이와 같이 사념처를 닦도록 격려하고 유도하여 그것을 정립시켜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불쌍히 여기면 그것에 응해서 청문하길 생각하는 벗이나 친구나 친지가 있다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사념처를 닦을 것을 권유하고 입문시키고 확립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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