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스크랩] 가장 훌륭한 길(42장경)

수선님 2018. 6. 3. 13:07

가장 훌륭한 길(42장경)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고요하게 되는 것

이것이 가장 훌륭한 길이다.

부모를 떠나 출가하고

마음을 이해하여 근원에 도달하고

무형의 법을 이해하는 사람을 일컬어

사문(shramanas)이라 한다.

계율을 잘 지키고

행위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으며

성자의 결실에 이르기 위하여 정진하는 사람을 일컬어

아라한(arhat)이라 한다.

 

그 다음은 아나함(anagamin)이다.

이번 생이 끝날 때

아나함의 영혼은 천상계로 올라가

아라한을 성취한다.

 

그 다음은

사다함(skridagamin)이다.

사다함은 천상계에 오른 후

한 번 더 지상에 돌아와서

아라한을 성취한다.

 

그 다음은 수다원(srdtapanna)이다.

수다원은

일곱 번 태어난 후

마침내 아라한에 도달한다.

욕망이 단절된 사람은

수족이 끊어진 것과 같아서

다시는 그 욕망을 쓰지 못한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존재는 열 가지 일로써 선을 이루기도 하고

악을 이루기도 한다.

그들 중 셋은 몸에 의존하고

넷은 입을 의존하며

그리고 셋은 생각에 의존한다.

몸에 의존하는 악에 세 가지는

죽이는 것, 훔치는 것, 간음하는 것이다.

입에 의존하는 네 가지는

남을 비방하는 것, 악담하는 것, 거짓말하고, 아첨하는 것이다.

생각에 의존하는 세 가지는

질투, 분노, 어리석음이다.

이 모든 것은 성자의 길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그것들은 악한 일이라고 한다.

이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으면

곧 열 가지 착한 일이 될 것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집 없는 사문은 욕망을 끊어서

집착에서 자유롭다.

자기 마음의 근원을 이해하고

붓다의 가장 깊은 가르침을 통찰하여

무형의 법을 이해한다.

안으로는 편견을 가지지 아니하며

밖으로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다.

진리에도 얽매이지 않고

업(karma)도 짓지 않는다.

편견도 작위도 없으며

수행함도 깨달음도 없으며

여러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가장 높으니

이를 일컬어 법(dharma)라 한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사문이 되어

법의 가르침을 받는 자는

세속의 모든 재물을 버리고

남에게 빌어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하루에 한 번의 식사와

한 나무 밑에서

하루 이상 머물지 말아야한다.

사람을 어리석고 비이성적으로 만드는 것은

집착과 탐욕이기 때문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잘못을 범한 사람이

스스로 뉘우치지 않고 또 그 마음을 씻지 않으면

업보가 자신의 몸에 돌아오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이 바다로 들어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과 같다.

많은 잘못을 범한 사람이

그것이 그릇된 줄을 알고 자신을 고쳐 선을 행한다면

업보가 저절로 없어질 것이니

마치 환자가 땀을 내고 점점 회복되어 가는 것과 같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악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와 악의에 찬 욕을 하더라도

그것을 참고 견디며 그에게 화내지 말라.

악한 사람은 남을 욕함으로써

스스로 욕하는 것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법을 지켜 큰 자비를 행한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일부러 찾아와서 나를 비난했다.

그러나 내가 침묵을 지키고 대답하지 않았더니

그는 비난하기를 그쳤다.

그때 내가 그에게 물었다.

“만일 당신이 이웃에게 선물을 가지고 갔으나

그가 그것을 받지 않는다면

그 선물은 다시 그대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내가 말했다..

“지금 당신이 나를 욕했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당신은 그 욕을 당신 자신에게 한 것이다.

그것은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고,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다.

당신은 스스로 범한 죄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주의하여 악한 일을 멈추어라.”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을 비난하는 악한 자는

하늘을 향하여 침을 뱉는 사람과 같다.

그 침은 하늘에 올라가지 않고

자기 자신 위에 떨어질 것이다.

악한 자는 또

바람을 향하여 먼지를 터는 사람과 같다.

그 먼지는 곧 자기를 더럽히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상처를 받지 않으며

악담은 악한 사람 스스로를 파괴시킨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배우는 것만으로 법을 이루려고 애쓰면

법을 알기 어렵고

흉금으로 법을 지키면

참으로 큰 것이 도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법을 행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은

큰복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문이 붓다에게 물었다.

“이 복은 다함이 있습니까?”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타고 있는 한 횃불에서

사람들이 가져 온 수많은 다른 홰에

불을 나누어 붙이는 것과 같다.

그들은 그것으로 밥을 짓고, 어둠을 밝히나

원래의 횃불은 항상 변함없이 타고 있다.

법의 복도 이와 같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한 명의 착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이

악한 사람 백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오계를 지키는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이

착한 사람 천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수다원에게 공양하는 것이

오계를 지키는 사람 만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사다함에게 공양하는 것이

수다원 백만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아나함에게 공양하는 것이

사다함 천만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아라한에게 공양하는 것이

아나함 십억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벽지불에게 공양하는 것이

아라한 십억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삼세제불에게 공양하는 것이

벽지불 백억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생각 없고, 머묾 없고, 닦음 없고, 얻음 없는 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이

삼세제불 천억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스무 가지 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첫 번째, 가난한 자가 보시하기 어렵고

두 번째, 강하고 부유한 자가 도를 배우기 어려우며

세 번째, 목숨을 버리고 확실하게 죽기 어렵다.

네 번째, 오직 소수의 복 받은 사람들만이 붓다의 경전을 얻어

볼 수 있으며

다섯 번째, 붇다가 계실 때 태어나기 어렵고

여섯 번째, 성욕을 극복하고 욕심을 참기 어렵다.

일곱 번째, 좋은 것을 보고 탐내지 않기 어렵고

여덟 번째, 모욕을 당하고 화내지 않기 어려우며

아홉 번째, 권력을 가진 사람이 억누르기 않기 어렵다.

열 번째, 일을 만나서 순수한 마음을 갖기 어렵고

열한 번째, 널리 배우고 연구하기 어려우며

열두 번째, 아만심을 멸하기 어렵다.

열세 번째, 배우지 못한 사람을 멸시하지 않기 어렵고

열네 번째,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기 어려우며

열 다섯 번째, 타인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기 어렵다.

열 여섯 번째, 진정한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열 일곱 번째, 깨달음을 얻고 도를 실행하기 어려우며

열 여덟 번째, 사람들을 제도하기 어렵다.

열 아홉 번째, 항상 지가 자신이 주인으로 존재하기 어렵고

스무 번째, 붓다의 길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한 사문이 붓다께 물었다.

어떻게 하여야 숙명통을 얻고

최상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잇습니까?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순수한 마음으로 뜻을 한결같이 하면

최상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잇다.

그것은 마치 거울을 닦아서

먼지가 제거되면 밝아지는 것과 같다.

욕심을 끊고 구하는 바가 없으면

숙명통을 얻게 될 것이다.

사문이 붓다에게 물었다.

무엇이 참된 것이고 무엇이 위대한 것입니까?

 

붓다께서 대답하셨다.

 

참된 것은 도를 실천하는 것이고 진리를 따르는 것이고

위대한 것은 뜻이 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대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한 사문이 붓다께 물었다.

무엇이 가장 강한 것이고 무엇이 가장 밝은 것입니까?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온유함이 가장 강한 것이니

악한 생각을 품지 않으므로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건강하다.

온유한 사람은 악한 마음이 없으므로

반드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가장 밝은 것은

티끌이 완전히 정화되어

순수함이 변함이 없고 흠 없음이 지속되는 마음이다.

그러한 마음은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시방에 있는 모든 것을

보지 못함이 없고 듣지 못함이 없으며

일체지를 얻었기 때문에

가장 밝은 것이라 한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도를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손으로 맑은 물을 휘저으면

사람이 와서 아무리 얼굴을 비춰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열정으로 얽히어 애타는 마음은 불순하여

절대로 도를 볼 수 없다.

그러니 사문들이여, 열정을 버려라.

열정의 때가 다할 때

도는 스스로 드러날 것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도를 보는 것은

횃불을 들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어두움은 곧 사라지고

빛만 홀로 남는다.

도를 배워서 진리를 보면

무명은 소멸되고

광명만 영원히 남을 것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교리는 생각하되 생각함이 없이 생각하고

행하되 행함이 없이 행하며

말하되 말함이 없이 말하고

또 수행하되 수행을 넘어선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진리와 가깝지만

모르는 사람은 더욱 멀어진다.

그 도는 말과 표현을 넘어 있어

물질에 걸리지 아니하니

털끝만큼만 어긋나도

영원히 잃어버리고 만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을 살피어

덧없음을 생각하고

세상을 살피어

덧없음을 생각하라.

하지만 영적 깨달음을 얻게 되면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알며 그대는 곧

도에 이르게 된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몸을 이루는 사대가

제각기 이름만 있을 뿐

자아는 없다고 생각하라.

자아가 없는 것처럼

그것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이기적인 욕망에 따라

명성과 명예를 구하지만

그것들을 얻었을 때는

몸은 이미 늙어있다.

만약 세상의 명성만을 좇고

도를 배우지 아니한다면

그대의 수고는 헛되이 되고

기운만 낭비할 뿐이다.

그것은 마치 향을 사르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향냄새가 좋다고 칭찬 받아도

향이 다 타고나면 그 뒤에 향나무를 태우는 불만 남는

것과 같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재물과 이성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칼날에 묻어 있는

몇 방울의 꿀을 먹으려고 하는 아이와 같다.

그것은 한번 먹을 것도 못 되지만

아이가 혀가 상하는 위험 속으로 치달려 간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가족과 재물에 얽매이는 것은

감옥에 있는 것보다 더 난감하니

죄수는 풀려날 때가 있지만

가장은 가족의 끈에서 벗어날 생각을 품지 않는다.

사람이 애욕에 눈을 뜰 때는

아무것도 그의 타락을 막을 수 없어서

호랑이의 입에라도 뛰어들 것이다.

애욕 속의 진흙 속에 빠지는 이들을 범부라 하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한 이들을 아라한이라 한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애욕 같은 것은 없다.

애욕은 가장 강한 열정이다.

다행이 우리는 더 강한 것을 한 가지 가지고 있다.

진리에 대한 갈망이 애욕보다 약하다면

세상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나

바른 도를 따를 수 있겠는가?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애욕에 빠져있는 사람은

횃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 달리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손을 태우는 화를 입는다.

천신이 붓다에게 아름다운 선녀를 보내어

붓다의 뜻을 깨뜨리려하자 붇다가 말씀하셨다.

“물러가거라! 오물로 가득 찬 가죽 주머니가 와서 어쩌자는

것이냐?”

그러자 천신이 공손하게 절하고 도의 본질에 대하여 물었다.

붇다가 그를 위하여 말해주니 그는 곧 수다원과를 얻었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도를 따르는 사람은

물결 따라 흘러가는

나뭇조각처럼 움직여야 한다.

나무가 양쪽 언덕에 닿지 않고

사람에게 붙잡히자 않고

신들에게 가로막히지 않고

소용돌이에 머물지 않고

썩지도 않는다면

마침내 대양에 도달하리라.

나는 보장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정욕에 빠지지 않고

삿된 도에 휘말리지 않고

정진하여 함이 없는 곳에 이르러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리라고

나는 보장한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뜻을 믿지 말라

너의 뜻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육체적 쾌락에 빠지는 것을 항상 삼가라.

육체적 쾌락에 빠지면 반드시 화를 입을 것이다.

아라한과를 얻은 후에야

너의 뜻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사문들이여, 여자들을 보지 말라.

만약 그들을 봐야만 한다면

그들에게 말하기를 삼가라.

만약 그들에게 말해야 한다면

바른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해야한다.

‘나는 지금 사문이니 혼탁한 세상을

진흙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순결한 연꽃처럼 살아가야 한다.

늙은 여인은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나이 많은 여인은 누님처럼

나이 적은 여자는 누이동생처럼

또 어린아이는 딸처럼 대하리라.’

그리하여 이 모두를 제도할 마음을 내고

악한 생각들을 쉬어 없애야 한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도를 닦은 사람들은

마른풀에 든 사람이 불에 가까이 가는 것을 피하듯

육체적 쾌락에 빠지는 것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음욕이 그치지 않는 것에 절망하여

스스로 성기를 끊고자 하니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성기를 끊는 것은

마음을 끊는 것만 못하다.

마음이 주인이니

주인이 고요해지면 하인은 따라서 고요해질 것이다.

삿된 생각들을 그치지 못하면

성기를 끊는다고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그에 붓다는 게송을 읊으셨다.

“정욕은 의지에서 생겨나고

의지는 생각과 상상에서 자라나니

양쪽이 다 고요하여지면

색도 없고 윤회도 없다.”

이 게송은 카샤파 붓다의 말씀이시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탐욕에서 근심이 생기고

근심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탐욕이 떠나면

두려움도 없고 근심도 없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도를 따르는 사람은

단신으로 무수한 적과 싸우는 전사와 같다.

그들은 모두

온몸에 갑옷을 걸치고 싸움터로 나가지만

그 중에는 어떤 사람은 겁을 집어먹고,

어떤 사람은 도중에 물러나고,

어떤 사람은 싸우다 죽고,

어떤 사람은 승리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오, 사문이여!

깨달음에 이르고자 할 때는

마땅히 그 마음을 굳게 가지고 용감하게 길을 걸어

어떤 경계가 나타나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마주치는 모든 마장을 깨부수고

깨달음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밤에 한 사문이

카샤파 붓다의 유교경을 외우고 있었다.

그의 음조가 너무 슬프고 약해서

붓다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너는 집에 없는 사문이 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느냐?”

사문이 대답하였다.

“거문고 타기를 좋아했습니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거문고 줄이 느슨하면 어떻더냐?”

사문이 대답하였다.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면 어떻더냐?”

“소리가 끊어집니다.”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아니하면 어떻더냐?”

“모든 소리가 제대로 납니다.”

그러자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도를 배우는 것도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다.

마음이 고르고 적당하면 도를 얻을 수 있으나

도에 대하여 너무 급한 생각을 내면 몸이 피로하게 되고

몸이 피로하면 정신도 싫증이 나고

정신이 싫증나면 수행도 늦어지게 되며

수행이 늦어지면 많은 해악이 따라오게 된다.

그러므로 청정하고 안락해야 도를 얻을 것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쇠붙이를 두들겨

찌꺼기를 깨끗이 버리고

그릇을 만들어내면

그 그릇은 빼어날 것이다.

도를 따른 그대 사문이여,

마음에 있는 더러운 열정의 때를 깨끗이 하면

그대의 행위가 청정해질 것이다.

비록 악도를 벗어낫더라도

사람으로 태어나는 행운은 드물다.

인간으로 태어나다 하더라도

여섯 가지 감각을 완전히 갖추는 행운은 드물다.

여섯 가지 감각을 완전히 갖추었다 하더라도

붓다가 살아 있을 때 태어나는 행운은 드물다.

붇다가 살아 계실 때 태어났더라도

깨달은 이를 만나는 것은 드문 행운이다.

깨달은 이를 만나더라도

신뢰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드문 행운이다.

신뢰하는 마음을 냈다 하더라도

보리심을 깨닫는 것은 드문 행운이다.

보리심을 깨달았다하더라도

닦을 것도 도달할 것도 없는

영적 상태를 깨닫는 것은 드문 행운이다.

오, 붓다의 아들이여!

그대가 나에게서 수천 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나의 계를 기억하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깨달음의 열매를 얻을 것이다.

그대가 내 곁에 있어서 나를 항상 본다 하더라도

나의 계를 지키지 않는다면

끝내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붓다께서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길겠는가?”

사문이 대답하였다.

“며칠간입니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도를 모르는구나.”

붓다께서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길겠는가?”

사문이 대답하였다.

“밥 먹는 동안입니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도를 잘 모르는구나.”

붓다께서 다시 세 번째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길겠는가?”

사문이 대답하였다.

“호흡하는 사이에 있습니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정말 옳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붓다의 도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붓다가 가르친 것을 모두 믿고 따라야한다.

그것은 꿀과도 같아서 안도 달고 바깥도 달고 전체가 달다.

나의 가르침은 그와 같다.

오 사문이여!

그대는 수레를 끄는 소와 같이 몸을 움직이나

마음으로는 행하지 않는 수행을 해서는 안된다.

마음이 도를 따르면 외부적인 행동으로

자신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

도를 닦는 사람은 진흙 수렁을 지나

험한 길을 가는 소의 예를 잘 따라야한다.

소는 아무리 피로하더라도 똑바로 앞을 쳐다보고

진흙수렁을 빠져 나오기 전에는 결코 쉬지 않고

거기를 빠져 나와야만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오, 사문이여!

열정과 죄는 더러운 진흙탕보다

더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곧은 마음으로 도를 생각해야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왕후의 자리를

햇살 위를 떠다니는 티끌로 보고

금과 옥을 기왓장이나 자갈로 본다.

나는 비단으로 짠 옷을 다 떨어진 누더기로 본다.

나는 이 우주를 작은 겨자씨로 본다.

나는 아나바탑다 호수를 발에 바르는 기름방울로 본다.

나는 붓다들이 방편으로 가르친 문을

상상으로 만든 보배로 본다.

나는 위없는 도리를 꿈에 본 금과 천으로 본다.

나는 붓다들의 가르침을 눈앞에 허공꽃으로 본다.

나는 니르바나를 밤낮으로 깨어 있는 것으로 본다.

나는 삿되고 바름을 여섯 마리 용의 춤으로 본다.

나는 평등의 가르침을 진실의 땅으로 본다.

 

 

 

 

출처 : 나 홀로 길을 걷네 ...
글쓴이 : 古圓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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